AI 시대에도 읽고 쓰는 능력이 중요한 이유, 연구가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AI가 글을 대신 써 주는데 왜 아직 읽고 써야 할까요. 생성형 AI와 비판적 사고 연구, MIT 뇌파 실험, 성인 문해력 조사를 정직하게 읽고 무엇까지 말할 수 있는지 따져 봤어요.

목차

AI에게 보고서 초안을 부탁하면 30초 만에 그럴듯한 글이 나와요. 문단도 반듯하고 맞춤법도 틀린 데가 없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글을 그대로 올려도 될지 판단하는 데는 30초로 안 끝나요. 어딘가 미심쩍은데 어디가 미심쩍은지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거든요. 저는 그 순간이 AI 시대에 읽고 쓰는 능력이 어디로 옮겨 갔는지 보여 준다고 생각해요. 쓰는 일은 기계가 거들어 줘도, 읽고 판단하는 일은 아직 우리 자리에 남아 있어요.

이 글에서는 그 느낌을 연구로 확인해 볼게요. 다만 미리 고백할 게 있어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AI를 더 잘 쓴다"를 직접 증명한 연구는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연구들이 실제로 보여 준 것과, 거기서 우리가 조심스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을 나눠서 적을게요.

한국 성인의 읽기 능력, 10년 사이에

2024년 12월 OECD가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2주기 결과를 내놓았어요. 31개 나라에서 16~65세 성인 약 16만 명의 언어능력, 수리력, 문제해결력을 잰 조사예요. 한국 성인의 언어능력은 249점으로 OECD 평균 260점보다 낮았고, 10여 년 전 1주기보다 24점이 떨어졌어요. 가장 낮은 수준(1수준 이하)에 머무는 성인도 약 31%로 OECD 평균 26%보다 많았고요. 다만 16~24세는 276점으로 OECD 평균 273점과 비슷했어요. 나이가 들수록 점수가 크게 떨어지는 모양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언어능력은 시험 문제를 푸는 힘이라기보다 글을 읽고 이해하고 평가해서 쓸 줄 아는 힘이에요. 공교롭게도 이 조사가 진행된 2022~2023년은 생성형 AI가 일상으로 들어온 시기와 겹쳐요. 글을 대신 써 주는 도구가 쏟아지던 바로 그때, 글을 읽고 평가하는 힘이 줄고 있었다는 거죠. 둘 사이에 인과가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 점수는 AI 이전부터 이어진 흐름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두 그래프를 나란히 놓으면 질문 하나가 생겨요. AI를 쓰는 데에도 읽는 힘이 필요할까요?

연구들이 실제로 보여 준 것

AI를 믿을수록 덜 따져 본다

2025년 CHI 학회에서 카네기멜런대와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진(Hao-Ping Lee, Advait Sarkar 등)이 논문을 하나 발표했어요. 일하면서 생성형 AI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쓰는 지식 노동자 319명에게 실제로 AI를 쓴 사례 936건을 받아 분석했죠. 결과는 꽤 선명했어요. AI가 그 일을 잘해 낼 거라고 믿는 사람일수록 결과물을 따져 보는 비판적 사고를 덜 했다고 답했어요. 반대로 "AI 없이도 이 일을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큰 사람, 그리고 "AI 결과물을 내가 평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큰 사람일수록 비판적 사고를 더 했다고 답했고요.

단서가 있어요. 전부 스스로 답한 설문이라 실제 행동을 잰 것이 아니고, 연구진도 인과를 밝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적었어요. 응답자도 젊고 기술에 익숙한 쪽으로 쏠려 있었어요.

몇 분 전에 쓴 글을 기억하지 못했다

MIT 미디어랩의 나탈리야 코스미나(Nataliya Kosmyna) 연구진은 2025년 6월 「Your Brain on ChatGPT」라는 보고서를 공개했어요. 대학생 54명을 ChatGPT를 쓰는 그룹, 검색 엔진을 쓰는 그룹, 아무 도구 없이 쓰는 그룹으로 나눠 에세이를 쓰게 하고 뇌파(EEG)를 쟀어요. 도구 없이 쓴 그룹의 뇌 연결망이 가장 넓고 강했고, 검색 그룹이 중간, ChatGPT 그룹이 가장 약했어요. ChatGPT 그룹은 몇 분 전에 자기가 쓴 에세이의 문장을 인용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고, 그 글이 자기 글이라는 느낌도 낮았어요. 마지막 4회차에는 18명이 남아 그룹을 바꿔 봤는데, 도구 없이 쓰다가 ChatGPT를 쓰게 된 사람들은 기억 회상이 높게 나타났고, 반대로 ChatGPT를 쓰다가 도구 없이 쓰게 된 사람들은 뇌 연결이 약하게 나타났다고 해요.

이 연구는 무게를 덜어서 읽어야 해요. 공개 당시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예비 결과였고, 표본이 작고, 에세이 쓰기라는 과제 하나만 봤어요. "ChatGPT가 뇌를 망가뜨린다"는 식의 기사 제목은 연구가 말한 것보다 훨씬 멀리 나간 거예요. 연구가 보여 준 건, 적어도 이 과제에서는 생각을 기계에 맡긴 만큼 내 머리에 남는 것도 줄었다는 정도예요.

AI가 잘하는 일과 못 하는 일의 경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파브리치오 델라쿠아(Fabrizio Dell'Acqua) 연구진은 보스턴컨설팅그룹 컨설턴트 758명으로 실험을 했어요. AI가 잘하는 종류의 과제에서는 GPT-4를 쓴 사람들이 일을 더 많이, 더 빨리, 더 잘했어요. 그런데 AI가 그럴듯하지만 틀린 답을 내기 쉬운 과제에서는 정반대였어요. AI 없이 푼 사람들의 정답률은 84.5%였는데, GPT-4를 쓴 사람들은 70.6%, 프롬프트 요령까지 배운 사람들은 60%로 떨어졌어요. 연구진은 이 경계가 울퉁불퉁하고 눈에 잘 안 보인다고 해서 '들쭉날쭉한 경계(jagged frontier)'라고 불렀어요. 그 경계를 알아보는 건 결국 사람의 판단이고요.

정직하게, 반대쪽 증거도

AI가 쓰기 실력의 격차를 줄여 준다는 연구도 있어요. MIT의 샤케드 노이(Shakked Noy)와 휘트니 장(Whitney Zhang)이 2023년 『사이언스』에 낸 실험에서는 대졸 직장인 453명이 ChatGPT를 쓰자 글쓰기 과제 시간이 40% 줄고 품질 평가는 18% 올랐어요. 그리고 원래 글을 덜 잘 쓰던 사람이 더 크게 도움을 받아 사람 사이의 차이가 줄었어요. 그러니 "글을 잘 써야 AI 시대에 살아남는다"는 말은 반만 맞아요. 매끈한 문장을 만드는 일은 AI가 정말로 잘 거들어 주거든요.

그래서 무엇까지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연구들을 한데 놓으면 이렇게 정리돼요. 어떤 연구도 '독서량'을 직접 재지 않았어요. 하지만 공통으로 가리키는 곳은 있어요. AI 시대에 사람에게 남는 몫은 문장을 만드는 일보다 문장을 판단하는 일이고, 그 판단은 "나도 이걸 할 줄 안다", "나는 이걸 평가할 수 있다"는 감각과 함께 움직였어요. 그리고 그 감각은 생각을 통째로 맡길수록 약해지는 쪽으로 보였고요.

여기서부터는 제 짐작이에요. 그 판단력을 키우는 가장 오래되고 검증된 훈련이 읽고 쓰기라고 저는 생각해요. 남의 긴 글을 따라가며 논리의 빈틈을 알아채는 연습, 내 생각을 한 문장씩 써 보며 어디가 흐린지 확인하는 연습이요. 연구가 이걸 증명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에요. 다만 연구가 보여 준 그림과 어긋나지는 않아요.

제 편만 아는 사람

이 판단력에 대해 160여 년 전에 가장 날카롭게 쓴 사람은 존 스튜어트 밀일 거예요. 『자유론』 2장에서 그는 법정에서 상대의 논거를 자기 논거만큼 깊이 연구했다는 키케로 이야기를 꺼내요. 그리고 제 편의 근거만 알고 반대편의 근거는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적어요.

그에게 이성적인 자리는 판단의 보류일 것이며,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한 그는 권위에 끌려가거나, 세상 사람들 일반이 그러하듯 제 마음이 가장 기우는 편을 택한다.

밀은 반대편 이야기를 스승에게서 요약으로 전해 듣는 것으로는 모자란다고까지 말해요.

그는 그 논변을 가장 그럴듯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꼴로 알아야 한다.

이 문장을 지금 읽으면 '권위'라는 낱말이 다르게 보여요. 확신에 찬 말투로 반듯한 답을 내놓는 AI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권위가 되기 쉬우니까요. 앞의 CHI 논문에서 AI를 믿을수록 덜 따져 봤다는 결과가 밀의 이 문장과 겹쳐 보여요. 밀이 말한 처방은 반대편을 가장 그럴듯한 꼴로 직접 들어 보는 거였어요. 남이 대신 정리해 준 반론 말고요. 그 일은 결국 읽기예요.

오늘 해 볼 작은 실험 두 가지

거창한 결심 말고, AI를 쓰는 방식만 조금 바꿔 보는 걸 권하고 싶어요. 저도 같이 해 보는 중이에요.

  • AI를 열기 전에 세 줄만 먼저 쓰기. 보고서든 메일이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세 줄로 먼저 적고 나서 AI에게 넘겨요. MIT 연구의 4회차에서 먼저 스스로 써 본 사람들이 나중에 도구를 쓸 때 기억 회상이 높게 나타났다는 결과가 있었어요. 예비 결과이긴 해도 해 볼 만한 습관이에요.
  • AI 답을 받으면 반대편 한 줄 써 보기. "이 답이 틀렸다면 어디가 틀렸을까?"를 한 줄로요. 밀의 말대로 반대편을 모르면 권위에 끌려가기 쉬우니까요.

AI가 써 준 글이 미심쩍은데 어디가 미심쩍은지 모르겠다는 그 느낌, 저는 그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아주 좋은 신호라고 생각해요. 아직 내 판단이 깨어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 느낌을 말로 짚어 낼 수 있게 해 주는 게 읽기예요. 요약 대신 원문을 끝까지 읽는 이유는 「AI 요약 시대에 원문을 끝까지 읽는 이유」에, 완독을 못 해도 괜찮은 이유는 어제 쓴 「책을 끝까지 못 읽어도 괜찮을까」에 적어 두었어요. 『자유론』 2장은 에테르 라이브러리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어요.

참고한 자료

이 글은 사람과 AI가 함께 만들었어요. 주제와 방향은 EtherXync 운영자가 정하고, 자료 조사와 초안은 AI(Claude)가 함께해요. 인용과 숫자는 출처를 확인해 밝혀요. 어떻게 만드는지 보기

이 글에 나온 책

이 글에 대해 이야기해요

더 읽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