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 「W를 찾아서」 다시 보기, 같은 강연을 듣고 왜 한 사람만 움직였을까
시골의사 박경철의 아주대 특강 「W를 찾아서」(2008)를 다시 읽어요. 강연의 요지와 우리 해석을 나누고, 생성형 AI 시대와 『월든』의 한 대목으로 이어 봤어요.
목차
이 글은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이 2008년 아주대학교에서 한 특강 「W를 찾아서」를 바탕으로 썼어요. 저희가 참고한 영상은 '부자일기' 채널이 2022년에 다시 올린 「다음의 W를 찾아서 1탄」이에요(영상 보기). 처음 올라온 원본 영상은 찾지 못했어요. 1부 내용은 이 영상의 자막 원문으로 확인했고, 2부 내용은 서로 다른 사람이 쓴 정리 글 여러 편을 대조해 겹치는 부분만 옮겼어요. 아래에서 "강연의 요지"라고 쓴 부분은 박경철의 이야기이고, "제 생각"이라고 쓴 부분은 저희 해석이에요.
강연의 요지: 같은 강연을 들은 두 사람
1993년, 막 외과 전문의가 된 박경철은 대전의 한 신설 종합병원에 혼자 외과 의사로 들어가요. 연봉을 세 배 준다는 말에 갔더니 외래, 수술, 응급 수술을 혼자 다 맡는 자리였죠. 3주쯤 지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휘청거리던 무렵, 서울의 경제연구소에 다니는 친구가 전화를 해요. 미래 사회를 이야기하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 강연을 하는데, 이걸 안 들으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요.
처음엔 말도 안 된다며 끊었는데, "평생 후회한다"는 말이 수술 중에도 귀에서 떠나지 않았대요. 결국 원장에게 서울에서 대장암 세미나가 있다고 둘러대고 길을 나서요. 혼자 가기 심심해서 데려간 사람이 미국 텍사스에서 MBA를 마치고 돌아와 일자리 없이 지내던 친구였어요.
연구소 강당은 박사급 연구원들로 꽉 차 있었어요. 그런데 찢어진 청바지에 야구 모자를 쓴 강연자가 칠판에 W를 쓰더니, 머지않아 'WWW'의 세상이 오고 그 안으로 은행도 증권사도 들어온다고 말해요. 그때는 그래픽으로 된 웹을 상상하는 사람조차 드물던 시절이에요. 10분쯤 지나자 뒷줄부터 사람들이 나가기 시작했고, 30분이 지나니 앞줄 몇 명만 남았대요. 박경철도 게임 만들다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해요. 강연에서 그는 이 강연자를 그냥 'W'라고 불러요.
같이 간 친구는 달랐어요. 강연이 끝나자마자 뛰어나가 주차장에서 시동을 거는 강연자의 차 문을 붙잡았어요. 그 길로 마포의 고깃집까지 따라가 새벽 2시까지 그 세상에 뛰어들 실마리를 달라고 매달렸고요. 그리고 얼마 뒤 박경철의 월급을 거의 다 빌려 대구의 분식집 뒤 작은 방에서 사업을 시작해요. 친구가 부탁한 건 하나였어요. 컴퓨터로 편지를 주고받는 데 쓸 주소, 그러니까 이메일 아이디를 하나 만들어 달라는 것.
박경철의 답은 이랬어요. 너 1년에 편지 세 통이나 쓰냐, 그 시간에 컴퓨터로 편지를 왜 쓰냐, 편지는 손으로 쓰는 거다, 이 사업은 무조건 망한다. 그래서 만든 아이디가 '어펜딕스(appendix)', 맹장이었대요. 너는 내 인생의 맹장 같은 놈이라는 뜻으로요. 강연에 따르면 그 서비스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 이메일 서비스였고, 1999년 초에는 외국 투자사의 큰 투자를 받을 만큼 커졌어요.
박경철은 그 과정이 몹시 괴로웠다고 말해요. 친구가 잘된 게 배가 아파서가 아니었대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에게 같은 말을 들었는데, 왜 친구에게는 인생을 걸 복음으로 들리고 자기에게는 망상에 빠진 사람의 기괴한 이야기로 들렸는지가 이해되지 않았던 거죠.
강연의 요지: 0.1%, 0.9%, 그리고 99%
답은 그 무렵 우연히 펼친 책에서 나왔대요(어느 책인지는 강연에서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요). 여기서 박경철은 제러미 리프킨에게서 빌려 온,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는 틀을 꺼내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새 세상을 여는 0.1%의 창의적인 사람, 그것을 알아보고 함께 뛰어들어 문명을 세우는 0.9%의 통찰력 있는 사람, 그리고 나머지 99%. 리프킨은 이 99%를 '잉여인간'이라고 불렀대요. 박경철은 그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고,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요. W는 0.1%였고, 친구는 0.9%였고, 자기는 잉여인간이었다고요.
그다음에 그는 이게 1990년대에만 일어난 일인지 궁금해서 역사를 거꾸로 뒤져 봐요. 강연에서 든 예는 이래요. 영국에서 모직 기계가 나오자 그 뒤에 양털이 필요해진다는 걸 먼저 본 사람들이 감자밭을 갈아엎고 양을 쳤고,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쓴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 헨리 포드의 자동차가 처음엔 신문의 조롱거리였다는 이야기. 그 뒤로 무전기, 트랜지스터, 반도체와 개인용 컴퓨터까지, 거의 10년마다 새 W가 오고 그때마다 0.1%와 0.9%와 "설마"를 외치는 99%가 되풀이됐다는 거예요. (강연의 역사 예시는 세부가 정확하지 않은 데도 있어서, 여기서는 큰 흐름만 옮겨요.)
두 번째 기회는 휴대전화였대요. 원장이 선물한 휴대전화를 들고 친구들 모임에 갔다가, 언젠가 우리도 다 이걸 들고 다니지 않겠냐고 했더니 다들 삐삐면 충분한데 그걸 왜 쓰냐고 했대요. 그 순간 그는 데자뷔를 느껴요. 100년 전 헨리 포드를 비웃던 신문 기사와 똑같은 대화였거든요. 그는 기계를 만들 줄도 회사를 세울 줄도 몰랐으니, 생활비를 뺀 월급으로 그 통신 회사 주식을 계속 샀어요. 시골의사가 주식 투자자로 이름이 난 계기가 이 이야기예요. 그런데 그는 강연에서 그걸 투자라고 부르지 않아요. 지나가는 W라는 버스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올라탔을 뿐이고, 자기는 다음 W 버스를 기다리는 "승차 대기자"일 뿐이라고요. (수익률 숫자는 옮기지 않아요. 이 글은 투자 이야기가 아니에요.)
강연의 요지: W를 알아보는 눈은 어디서 오나
1999년 말 그 주식을 정리하고 나니 다시 숙제가 생겼어요. 2000년대의 새 W는 무엇인가.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대요. 그래서 내린 결정이 놀라워요. 2000년 말부터 이듬해 중반까지, 의사를 그만두고 열 달 동안 스스로 백수가 돼요. 그 시간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친구, 연극하는 친구, 연구소에 있는 친구, 엉뚱한 일에 빠진 친구까지 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찾아가 밥을 사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내 머리로 안 보이면 보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는 거였죠. 1부는 그렇게 이야기가 정리되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끝나요.
2부에서 그는 이 힘을 통찰이라고 부르고, 그 힘이 전공 공부에서만 나오지 않는다고 말해요. 전공을 열심히 하는 건 모두가 하는 일이라는 거죠. 그가 권한 건 예술과 문화, 사회와 철학에 눈을 열고, 오감에 직관까지 깨워 작은 자극에 반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왜?"라고 묻는 습관. 정리 글들은 그가 기계 문명이 그 질문을 금지해 왔고, 사람의 머리로 가치를 만드는 시대엔 그 질문이 핵심이 된다고 말했다고 전해요.
돈 이야기로 시작한 강연이 돈을 목표로 삼지 말라는 말로 끝나는 것도 흥미로워요. 돈과 명예는 변화를 이끈 결과로 따라오는 부산물일 뿐이고, 그걸 쫓아 방향을 바꾸면 줄에 묶여 끌려다니는 개와 다르지 않다는 비유도 나와요. 마지막엔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라는 말, 그리고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렸다는 말로 맺어요.
제 생각: 99%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솔직히 '잉여인간'이라는 말은 지금 들으면 좀 아파요. 저도 처음 이 강연을 봤을 때 '나는 당연히 99%겠구나' 하고 기운이 빠졌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다시 따라가 보면, 1993년의 박경철이 99% 쪽에 섰던 이유는 머리가 나빠서도 게을러서도 아니었어요. 그는 3주째 잠을 못 자고 있었고, 이미 아는 세계의 논리로 새것을 재단했어요. 1년에 편지 세 통도 안 쓰는데 이메일을 누가 쓰냐는 판단은 그 시절엔 꽤 합리적이었어요. 문제는 지금의 습관으로 내일의 쓰임을 쟀다는 데 있었죠.
그러니 0.9%와 99%를 가르는 건 재능보다는 몇 가지 작은 동작 같아요. 하나는 "이게 왜 될까?"를 진지하게 묻는 것. 친구는 그 질문을 들고 주차장까지 뛰어갔고 새벽 2시까지 놓지 않았어요. 다른 하나는 작게라도 직접 해 보는 것. 친구가 처음 차린 건 거창한 회사가 아니라 분식집 뒤의 작은 방이었어요. 그리고 하나 더. 박경철 자신도 다음 W가 안 보이자 자기보다 잘 보는 사람들을 찾아가 들었어요. 안 보이는 걸 부끄러워하는 대신 보이는 사람 곁으로 간 거죠.
이 질문을 지금으로 옮겨 보면 바로 떠오르는 게 생성형 AI예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6년 3월에 낸 「2025 인터넷이용실태조사」를 보면, 생성형 AI를 써 본 국민이 44.5%로 한 해 전 33.3%에서 11.2%포인트 늘었어요. 그런데 써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10대(68.2%)와 20대(56.0%)에서는 "관심이나 필요가 없어서"가 가장 많았고, 60대와 70대 이상에서는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라는 답이 다른 세대보다 많았대요.
저는 이 숫자를 보고 1993년의 젊은 박경철이 떠올랐어요. "1년에 편지 세 통도 안 쓰는데?"와 "나는 딱히 필요 없는데?"는 꽤 닮은 문장이거든요. 물론 AI가 정말 이 시대의 W인지는 아무도 몰라요. 강연도 W를 맞히는 요령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다만 필요 없다는 판단이 내가 지금 하는 일의 기준에서 나온 건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써 보고 나온 건지는 스스로 구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지만 어떤 종목을 사라는 뜻은 아니에요.
『월든』이 덧붙이는 질문: 그래서 무슨 말을 할 건데
여기서 반대쪽 저울추 하나를 놓고 싶어요. 1854년, 전신이 막 미국 대륙을 잇기 시작하던 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1장 「경제」에 이렇게 썼어요. 저희 번역으로 옮겨요.
우리의 발명품은 흔히 진지한 일에서 우리의 주의를 흩뜨리는 예쁜 장난감이다. 그것은 개량되지 않은 목적을 위한 개량된 수단일 뿐이며, 그 목적에는 이미 너무나 쉽게 이를 수 있었다.
조금 뒤에는 이런 문장이 이어져요.
우리는 메인주에서 텍사스까지 전신을 놓으려고 몹시 서두른다. 그러나 메인과 텍사스는 어쩌면 서로 전할 중요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소로는 새 기술을 알아본 0.9%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99% 쪽에서 팔짱을 낀 사람처럼 보이죠. 그런데 저는 이 문장이 박경철 강연의 뒷부분과 이상하게 잘 맞는다고 느껴요. 박경철은 W에 올라타라고 말하면서도 돈을 쫓지 말라고, "왜?"를 물으라고, 예술과 철학으로 감각을 키우라고 했어요. 소로의 말로 바꾸면 수단만 개량하지 말고 목적도 개량하라는 거예요.
AI로 하루에 보고서 열 개를 쓸 수 있게 됐다면, 그 열 개 안에 정말 할 말이 있는지가 다시 질문이 돼요. 이메일이 편지를 이긴 건 사람들이 서로 전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박경철이 이메일의 힘을 처음 실감한 것도 동창 170명에게 한꺼번에 온 편지 한 통이었어요. 답장을 보냈더니 이틀 만에 연락이 끊겼던 동창들의 소식이 쏟아졌대요. W를 알아보는 눈과 그 위에 무엇을 실을지 아는 마음은 같은 근육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무언가에 대해 자기 언어로 오래 생각해 본 사람만 새 도구가 그 생각을 어디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지 알아보니까요. 이 이야기는 AI 요약 시대에 원문을 끝까지 읽는 이유에서도 조금 다른 각도로 다뤘어요.
오늘 가져갈 질문 하나
강연을 다시 보고 제 노트에 남긴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질문 하나였어요. "요즘 내가 '그거 별로 필요 없어'라고 넘긴 것 중에, 한 번도 제대로 해 보지 않은 게 뭐지?"
이번 주에 하나만 골라 30분을 써 보면 어떨까요. AI든, 동네에 새로 생긴 무언가든, 아이가 빠져 있는 게임이든요. 해 보고 나서 역시 별로라면 그건 99%의 무관심이 아니라 0.9%의 판단이에요. 같은 결론이라도 자리가 달라요.
그리고 그 30분 뒤에 소로의 질문도 같이 던져 보면 좋겠어요. 이 도구로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월든』은 에테르 라이브러리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어요. 「경제」 장은 길지만, 새 기술에 들뜬 날 읽으면 묘하게 머리가 식어요. 박경철의 강연은 꼭 원래 목소리로 들어 보세요. 저희 요약에는 없는 그의 말투와 망설임이 거기 다 들어 있어요.
참고한 자료
- 박경철, 「W를 찾아서」, 아주대학교 특강(2008). 유튜브 재업로드: 부자일기 채널, 「시골의사 박경철 - 다음의 W를 찾아서 1탄」(2022. 1. 12.), 1부 내용은 이 영상의 자막으로 확인, https://www.youtube.com/watch?v=WCNeAWsLuLk
- 같은 강연 재업로드: 카이로스 생산자 셀아빠 채널, 「w를 찾아서 시골의사 박경철 선생님의 통찰의 강의」(2024. 2. 7.), https://www.youtube.com/watch?v=6BkpMtg76XA
- 오늘 공부 노트!, 「(요약/정리) 다음의 W를 찾아서 1탄」(2022. 4. 23.), maily.so · 「W를 찾아서 2탄. 통찰과 통섭」(2022. 4. 24.), maily.so
- 브런치 @gyun7902, 「1. 시골의사 박경철 'W를 찾아서'」(2022), brunch.co.kr
- 브런치 @carpediem7760, 「네 번째 W를 찾아서」, brunch.co.kr
- 김소연, 「국민 10명 중 4.4명 "생성형 AI, 나도 써봤다"」, 머니투데이(2026. 3. 31.),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5 인터넷이용실태조사」 보도, mt.co.kr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1854) 1장 「경제」, 에테르 라이브러리 한국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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