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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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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1771년 5월 4일

떠나오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내 좋은 친구, 사람의 마음이란 대체 무엇일까! 그토록 사랑하는 너를, 한시도 떨어져 지낸 적 없던 너를 두고 오면서 기뻐하다니! 너는 나를 용서해 주겠지. 나는 알아. 그 밖의 인연들은 꼭 나 같은 마음을 괴롭히려고 운명이 일부러 골라 놓은 것 같지 않았어? 가엾은 레오노레! 그래도 나는 잘못이 없었어. 그 아가씨의 자매가 부리는 제멋대로인 매력이 내게 즐거운 소일거리가 되어 주는 사이에, 그 가엾은 가슴속에서 정열이 자라났다고 해서 그게 내 탓이란 말이야? 그렇지만 정말 나는 아무 잘못도 없을까? 그 아가씨의 감정을 내가 키워 준 게 아닐까? 우스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도 우리를 그토록 자주 웃게 만들던 그 아가씨의 꾸밈없는 천성의 표현을 나 자신도 즐기지 않았던가? 내가 혹시…… 아, 사람이란 대체 무엇이기에 제 신세를 한탄할 수 있단 말인가! 약속할게, 친구야, 정말로 약속해. 나는 달라지겠어. 운명이 우리 앞에 내놓는 자잘한 불행을 늘 그래 왔듯이 되새김질하는 짓은 이제 그만두겠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을 누리고,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두겠어. 네 말이 옳아, 내 좋은 친구. 사람들이 지나간 불행의 기억을 불러내는 데 상상력을 그토록 부지런히 쓰지 않고 그저 덤덤한 현재를 견디기만 한다면, 사람들 사이의 고통은 훨씬 줄어들 거야. 사람이 왜 그렇게 생겨 먹었는지는 하느님만 아시겠지!

어머니께는 네가 이렇게 좀 전해 줘. 맡기신 일은 내가 힘껏 잘 처리해서 곧 소식을 드리겠다고. 숙모님을 만나 뵈었는데 우리 집에서 다들 말하는 그런 못된 여자와는 거리가 멀었고, 쾌활하고 성미가 급하지만 더없이 착한 마음씨를 지닌 분이야. 나는 유산 몫을 내주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불만을 숙모님께 설명드렸어. 숙모님은 숙모님대로 사정과 까닭을 말씀하시고, 어떤 조건이면 전부를, 그것도 우리가 요구한 것보다 더 많이 내줄 생각이 있는지 일러 주셨어. 요컨대 지금은 그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아. 어머니께 다 잘될 거라고 말씀드려 줘. 그리고 친구야, 이 자잘한 일을 겪으면서 나는 세상의 어긋남이 간계나 악의보다 오해와 게으름에서 더 많이 생겨나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어. 적어도 간계와 악의가 그보다 드문 것만은 분명해.

그건 그렇고 나는 여기서 아주 잘 지내. 이 낙원 같은 고장에서 고독은 내 마음에 더없이 귀한 향유가 되고, 젊음의 계절인 이 봄은 자주 떨리곤 하는 내 마음을 넘치도록 데워 준다. 나무마다 덤불마다 꽃다발이라서, 풍뎅이가 되어 향기의 바다 속을 떠다니며 거기서 먹을 것을 다 구할 수 있었으면 싶을 정도야.

시내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아. 그 대신 사방으로 말로 다 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져 있지. 그래서 돌아가신 M 백작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더없이 아름답게 얽히며 더없이 사랑스러운 골짜기들을 이루는 이곳 언덕들 가운데 하나에 정원을 꾸몄어. 정원은 소박해서, 들어서자마자 학식 있는 정원사가 아니라 느낄 줄 아는 마음이, 여기서 스스로를 누리고 싶어 한 한 사람의 마음이 설계도를 그렸다는 것을 대번에 느끼게 돼. 그분이 가장 아끼던 자리이자 이제는 내가 아끼는 자리이기도 한 허물어진 작은 정자에서, 나는 고인을 생각하며 벌써 여러 번 눈물을 흘렸어. 머지않아 나는 이 정원의 주인이 될 거야. 겨우 며칠 사이에 정원사가 나를 따르게 되었으니, 그 사람도 손해 볼 일은 없을 거야.

5월 10일

놀라운 명랑함이 내 온 영혼을 사로잡았어. 내가 온 마음으로 누리는 이 달콤한 봄날 아침들처럼. 나는 혼자이고, 나 같은 영혼을 위해 지어진 이 고장에서 내 삶을 기뻐하고 있다. 나는 너무 행복해, 내 좋은 친구. 고요히 존재한다는 느낌 속에 너무나 깊이 잠겨 있어서 그 때문에 내 그림이 손해를 보고 있어. 지금은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 선 하나도 못 긋겠어.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만큼 내가 위대한 화가였던 적은 없었어. 정다운 골짜기가 내 주위로 안개를 피워 올리고, 높이 뜬 해가 빛 한 줄기 스며들지 못하는 내 숲의 어둠 위에 머물러 있고, 몇 가닥 햇살만이 그 안쪽 성소로 몰래 숨어들 때, 그럴 때 나는 쏟아져 내리는 개울가 높은 풀숲에 누워 땅 가까이에서 수천 가지 풀잎이 하나하나 신기하게 눈에 들어온다. 풀줄기 사이에서 우글거리는 작은 세계를,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온갖 벌레와 날벌레의 모습을 내 가슴 가까이 느끼고, 우리를 당신 모습대로 지으신 전능하신 분이 곁에 계심을, 우리를 영원한 환희 속에 띄워 안고 지켜 주시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분의 숨결을 느낀다. 친구야! 그러다 내 눈앞이 어스름해지고, 내 주위의 세계와 하늘이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처럼 온전히 내 영혼 속에 깃들면, 그때 나는 자주 그리움에 잠겨 생각해. 아, 이것을 다시 표현할 수 있다면! 네 안에서 이토록 충만하게, 이토록 따뜻하게 살아 있는 것을 종이에 불어넣어서, 네 영혼이 무한한 하느님의 거울이듯 그 종이가 네 영혼의 거울이 되게 할 수 있다면! 친구야…… 하지만 나는 그 때문에 무너지고 말아. 이 현상들이 지닌 장엄함의 힘에 눌려 쓰러지고 만다.

이 고장 주위에 사람을 홀리는 정령들이 떠도는 것인지, 아니면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이렇게 낙원처럼 만들어 주는 것이 내 마음속의 따뜻하고 거룩한 환상인지 나는 모르겠어. 마을 바로 앞에 샘이 하나 있는데, 나는 멜루지네와 그 자매들처럼 그 샘에 홀려 붙들려 있어. 작은 언덕을 내려가면 둥근 천장이 덮인 곳 앞에 이르고, 거기서 스무 개쯤 되는 계단을 내려가면 맨 밑에서 대리석 바위 사이로 더없이 맑은 물이 솟아난다. 위쪽을 빙 둘러싼 나지막한 담, 그 자리를 사방으로 덮은 키 큰 나무들, 그곳의 서늘함, 그 모든 것에 어딘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데가, 어딘가 으스스한 데가 있어. 내가 거기 한 시간씩 앉아 있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어. 그러면 시내에서 처녀들이 물을 길으러 와. 더없이 순박하고도 더없이 요긴한 일, 옛날에는 왕의 딸들이 몸소 하던 일이지. 거기 앉아 있으면 족장 시대의 정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난다. 옛 조상들이 샘가에서 서로 알게 되고 청혼하던 모습이며, 샘과 샘물 둘레에 은혜로운 정령들이 떠돌던 모습이. 아, 무더운 여름날 먼 길을 걸은 뒤 샘의 서늘함으로 기운을 되찾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나 이 느낌을 함께 느끼지 못할 거야.

5월 13일

내 책을 보내 줄까 묻는 거야? 친구야, 제발 부탁이니 그것들을 내게서 치워 줘! 나는 이제 누가 이끌어 주고 북돋워 주고 부추겨 주는 걸 바라지 않아. 이 마음은 저 혼자서도 충분히 들끓으니까. 내게 필요한 건 자장가인데, 그걸 나는 내 호메로스에서 넘치도록 찾았어. 들끓는 내 피를 나는 얼마나 자주 달래어 재우는지 몰라. 이 마음만큼 들쭉날쭉하고 갈피를 못 잡는 것을 너는 본 적이 없을 테니까. 친구야! 내가 시름에서 방탕으로, 달콤한 우수에서 파멸을 부르는 정열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느라 그토록 자주 짐을 진 너에게 이걸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내 여린 마음을 아픈 아이처럼 다뤄.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주지. 이 말은 다른 데 옮기지 마. 그걸 두고 나를 나무랄 사람들이 있으니까.

5월 15일

이곳의 가난한 사람들은 벌써 나를 알아보고 좋아해. 특히 아이들이 그래. 서글픈 사실을 하나 깨달았는데, 처음에 내가 그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것저것 다정하게 물었을 때 몇몇은 내가 자기들을 놀리려는 줄 알고 아예 퉁명스럽게 쫓아 버리기까지 했다는 거야. 나는 그런 일로 언짢아하지 않았어. 다만 전부터 여러 번 느꼈던 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꼈지. 신분이 좀 있는 사람들은 서민에게 다가가면 무언가 잃기라도 할 것처럼 늘 차갑게 거리를 둔다. 그런가 하면 몸을 낮추는 척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오만을 더 따끔하게 느끼게 하는 경박한 사람들과 짓궂은 장난꾼들도 있다.

우리가 평등하지 않고 평등할 수도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아. 그래도 나는 체면을 지키려면 이른바 천한 무리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질까 봐 두려워 적을 피해 숨는 겁쟁이만큼이나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

얼마 전 샘에 갔더니 젊은 하녀 하나가 물동이를 맨 아래 계단에 내려놓고, 그걸 머리에 이는 걸 거들어 줄 동무가 오지 않나 두리번거리고 있었어. 나는 내려가서 그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내가 거들어 줄까요, 아가씨?" 내가 말했다. 아가씨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이고, 아니에요, 나리!" 아가씨가 말했다. "사양하지 말아요." 아가씨는 옷깃을 매만졌고, 나는 물동이를 이는 걸 거들어 주었다. 아가씨는 고맙다고 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5월 17일

이것저것 아는 사람은 많이 생겼지만, 어울릴 만한 벗은 아직 찾지 못했어. 내게 사람을 끄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내게 매달려. 그래서 우리 길이 겨우 짧게만 겹칠 때면 마음이 아프다. 여기 사람들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어.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인류란 참 한결같은 것이다. 대부분은 먹고살기 위해 시간의 거의 전부를 일에 쏟고, 그러고도 조금 남는 자유가 오히려 겁이 나서 어떻게든 그것을 떨쳐 버릴 방도를 찾아다닌다. 오, 인간의 본분이여!

그래도 참 착한 사람들이야! 이따금 나도 나를 잊고, 잘 차린 식탁에 둘러앉아 터놓고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거나 알맞은 때에 마차 나들이나 춤판을 벌이는 것처럼 사람에게 아직 허락된 기쁨을 그들과 함께 누릴 때가 있어. 그러면 기분이 아주 좋아져. 다만 내 안에 쓰이지 못한 채 썩어 가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숨겨 두어야 하는 다른 힘이 아직 얼마나 많이 잠들어 있는지는 떠올리지 말아야 해. 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온통 죄어든다. 그래도 어쩌겠어! 오해받는 것이 우리 같은 사람의 운명인걸.

아, 내 젊은 날의 벗이 세상을 떠나다니. 아, 내가 그 사람을 알았다니!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하겠지. 너는 바보야! 이승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을 찾고 있잖아!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가졌었어. 그 마음을, 그 큰 영혼을 느꼈어. 그 사람 앞에 있으면 나는 실제의 나보다 더 큰 사람이 된 것 같았지.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었으니까. 하느님! 그때 내 영혼의 힘 가운데 쓰이지 않고 남은 것이 하나라도 있었던가? 내 마음이 자연을 끌어안는 그 놀라운 느낌을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남김없이 펼쳐 보일 수 있지 않았던가?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은 더없이 섬세한 감정과 더없이 날카로운 재치가 끝없이 엮어 내는 피륙이 아니었던가? 그 재치는 무례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온갖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그 하나하나에 천재의 인장이 찍혀 있었어. 그런데 이제는! 아, 그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만큼 나보다 먼저 무덤으로 갔다. 나는 그 사람을 결코 잊지 못할 거야. 그 굳센 마음도, 그 거룩한 너그러움도.

며칠 전에는 V라는 젊은이를 만났어. 터놓고 지내기 좋은 녀석이고 얼굴도 퍽 복스럽게 생겼는데, 대학을 갓 나온 참이라 스스로 현자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보다는 더 안다고 믿는 눈치야. 이것저것 보니 공부도 열심히 한 모양이야. 한마디로 꽤 쓸 만한 지식이 있어. 내가 그림을 많이 그리고 그리스어를 할 줄 안다는 말을 듣더니(이 고장에서는 둘 다 별똥별처럼 드문 일이다) 내게 와서 아는 것을 잔뜩 늘어놓더라. 바퇴에서 우드까지, 드 필에서 빙켈만까지. 그러고는 줄처의 『이론』 제1권을 끝까지 다 읽었고, 고대 연구에 관한 하이네의 강의를 받아 적은 필사본까지 있다고 장담했어. 나는 그냥 내버려 두었지.

또 한 사람, 아주 훌륭한 사람을 알게 되었어. 제후의 법무관인데, 숨김없고 진실한 사람이야. 아이들 사이에 있는 그분을 보면 영혼이 기뻐진다고들 해. 아이가 아홉이나 되는데, 특히 맏딸 이야기를 다들 많이 해. 그분이 나를 초대해서, 머지않아 찾아가 볼 생각이야. 여기서 걸어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제후의 사냥 별장에 사는데, 아내가 죽은 뒤 이곳 시내와 관아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그리로 옮겨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대.

그 밖에 비뚤어진 괴짜 몇이 내 앞길에 굴러들어 왔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참을 수 없지만 그중에도 제일 못 참겠는 건 우정을 드러내는 짓거리야.

잘 있어! 이 편지는 네 마음에 꼭 들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일어난 일만 적었으니까.

5월 22일

사람의 삶이 꿈일 뿐이라는 생각은 벌써 많은 사람이 해 보았고, 이 느낌은 나에게도 늘 따라다닌다. 사람이 지닌, 일하고 탐구하는 힘이 얼마나 좁은 제약 속에 갇혀 있는지를 볼 때, 모든 활동이 결국 욕구를 채우는 데로 흘러가는데 그 욕구라는 것이 우리의 가엾은 생존을 늘이는 것 말고는 아무 목적도 없다는 것을 볼 때, 그리고 무언가를 캐묻다가 어떤 대목에서 마음을 놓는 것도 꿈꾸는 체념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를 가두고 있는 벽에 알록달록한 형상과 환한 풍경을 그려 넣는 짓일 뿐이라는 것을 볼 때, 빌헬름, 그 모든 것 앞에서 나는 말을 잃는다. 나는 내 안으로 돌아가 거기서 하나의 세계를 찾아낸다! 하지만 그것도 분명한 모습과 살아 있는 힘보다는 예감과 어렴풋한 욕망 속의 세계여서, 모든 것이 내 감각 앞에서 아른거리고, 나는 꿈꾸듯 미소 지으며 세상 속으로 걸어간다.

아이들은 자기가 왜 무언가를 원하는지 모른다. 이 점에서는 학식 높은 학교 선생과 가정교사들의 의견이 모두 같다. 그런데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이 땅 위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고, 아이들처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참된 목적을 좇아 행동하지도 않으며, 아이들처럼 비스킷과 과자와 회초리로 다스려진다는 것, 그것은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엔 손에 잡힐 듯 뻔한 일인데도.

네가 이 말에 뭐라고 할지 아니까 기꺼이 털어놓을게. 아이들처럼 그날그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인형을 끌고 다니고, 옷을 벗겼다 입혔다 하고, 엄마가 과자를 넣고 잠가 둔 서랍 둘레를 잔뜩 공손하게 살금살금 맴돌다가, 마침내 바라던 것을 낚아채면 두 볼이 미어지게 먹으며 "더!" 하고 외치는 사람들 말이야. 그들은 행복한 피조물이다. 자기의 하찮은 소일거리나 심지어 자기의 정열에다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인류의 구원과 복지를 위한 거대한 사업이라고 장부에 올리는 사람들도 형편이 좋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겠지! 그러나 겸허하게 이 모든 것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아는 사람, 살 만한 시민마다 제 작은 뜰을 얼마나 알뜰하게 낙원으로 가꿀 줄 아는지, 불행한 사람도 짐을 진 채 얼마나 꿋꿋이 헐떡이며 제 길을 가는지, 그리고 모두가 이 햇빛을 일 분이라도 더 보려고 똑같이 애쓰는지를 보는 사람, 그래, 그런 사람은 말이 없다. 그도 제 세계를 제 안에서 지어내고, 사람이기에 그 역시 행복하다. 그리고 아무리 좁은 테두리에 갇혀 있어도 그는 늘 마음속에 자유의 달콤한 느낌을 간직한다.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이 감옥을 떠날 수 있다는 느낌을.

5월 26일

너는 예전부터 내 버릇을 알지. 어딘가 정이 가는 곳에 자리를 잡고 오두막을 하나 지어, 모든 것을 줄이고 그 안에 깃들어 사는 버릇 말이야. 여기서도 나를 끌어당기는 작은 곳을 하나 다시 찾아냈어.

시내에서 걸어서 한 시간쯤 되는 곳에 사람들이 발하임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언덕에 기대앉은 자리가 아주 흥미로워서 오솔길을 따라 마을 위쪽으로 나가면 골짜기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나이가 들었어도 상냥하고 쾌활한 여주인이 포도주와 맥주와 커피를 파는 주막이 있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보리수 두 그루야. 넓게 뻗은 가지로 교회 앞 작은 광장을 덮고 있는데, 광장은 빙 둘러 농가와 헛간과 마당으로 에워싸여 있어. 이렇게 정답고 아늑한 곳은 좀처럼 찾지 못했어. 그래서 나는 주막에서 작은 탁자와 의자를 그리로 내다 놓게 하고, 거기서 커피를 마시며 내 호메로스를 읽어. 어느 맑은 오후에 우연히 처음 그 보리수 아래 갔을 때 그곳은 아주 한적했어. 다들 들일을 나갔고, 네 살쯤 된 사내아이 하나만 땅바닥에 앉아 있었지. 그 아이는 반 살쯤 된 다른 아기를 제 두 발 사이에 앉혀 두 팔로 가슴에 꼭 안고 있었는데, 그렇게 아기의 의자 노릇을 하면서 까만 눈으로 쾌활하게 두리번거리기만 할 뿐 아주 얌전히 앉아 있었어. 그 모습이 즐거워서 나는 맞은편에 놓인 쟁기에 걸터앉아 형제의 그 모습을 퍽 신이 나서 그렸어. 바로 옆의 울타리와 헛간 문, 부서진 수레바퀴 몇 개도 모두 서 있는 차례 그대로 그려 넣었더니, 한 시간쯤 지나자 내 생각은 조금도 보태지 않았는데도 짜임이 좋고 아주 흥미로운 그림이 한 장 완성되어 있었어. 그 일로 나는 앞으로는 오로지 자연만 따르겠다는 결심을 굳혔어. 자연만이 끝없이 풍요롭고, 자연만이 위대한 예술가를 길러 낸다. 규칙을 편들어 할 말은 많겠지. 시민 사회를 칭찬하며 할 수 있는 말과 비슷한 말들 말이야. 규칙에 맞추어 자기를 다듬는 사람은 결코 멋없는 것, 형편없는 것을 만들어 내지 않을 거야. 법과 예의범절에 맞춰 빚어진 사람이 결코 견딜 수 없는 이웃이나 남다른 악당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 대신, 누가 뭐라고 하든, 모든 규칙은 자연의 참된 느낌과 그 참된 표현을 망가뜨리고 말 거야! 너는 이렇게 말하겠지. '그건 너무 심해! 규칙은 그저 테두리를 지어 주고, 웃자란 덩굴을 쳐 줄 뿐이야' 운운. 친구야, 비유를 하나 들어 볼까? 이건 사랑과 똑같아. 젊은 마음이 한 아가씨에게 온통 빠져서 하루의 모든 시간을 그 아가씨 곁에서 보내고, 자기가 그 아가씨에게 온전히 자신을 바친다는 것을 매 순간 보여 주려고 온 힘을, 온 재산을 쏟아붓는다고 하자. 그런데 거기에 속물 하나, 관직에 앉은 사람 하나가 와서 이렇게 말한다면. '젊은 양반!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인 일이오. 다만 인간답게 사랑해야 하오! 시간을 나누시오. 어떤 시간은 일에 쓰고, 쉬는 시간은 아가씨에게 바치시오. 재산을 따져 보고, 꼭 필요한 데 쓰고 남는 것이 있으면 그걸로 아가씨에게 선물을 하는 것까지 말리지는 않겠소. 다만 너무 자주는 말고, 생일이나 영명 축일 같은 때에나' 운운. 그 사람 말을 따르면 쓸모 있는 젊은이가 하나 생기겠지. 어느 제후에게든 그 젊은이를 관청에 앉히라고 나부터 권하겠어. 다만 그의 사랑은 그걸로 끝장이고, 그가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도 끝장이야. 오, 친구들이여! 천재의 물줄기가 왜 그렇게 드물게 터져 나오는지, 왜 그렇게 드물게 높은 물결로 밀려들어 너희의 놀란 영혼을 뒤흔드는지 아니? 친구들이여, 그 강 양쪽 기슭에는 점잖은 양반들이 살고 있거든. 물이 넘치면 그들의 정자며 튤립 꽃밭이며 배추밭이 쓸려 가 버릴 테니, 그들은 미리 둑을 쌓고 물길을 돌려서 앞으로 닥칠지 모를 위험을 막을 줄 아는 거야.

5월 27일

보아하니 나는 황홀경에, 비유와 웅변에 빠져서 그 아이들이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끝까지 이야기하는 걸 잊었구나. 어제 편지에서 아주 토막토막 내보인 그 화가다운 느낌에 흠뻑 잠긴 채, 나는 그 쟁기 위에 두 시간은 앉아 있었어. 그러자 저녁 무렵 젊은 여자 하나가 작은 바구니를 팔에 걸고, 그동안 꼼짝도 하지 않던 아이들에게로 다가오며 멀리서 소리친다. "필립스, 정말 착하구나." 여자는 내게 인사를 했고, 나도 답례하고 일어나 가까이 가서 아이들의 어머니냐고 물었어. 여자는 그렇다고 하면서 큰아이에게 흰 빵 반 조각을 주고, 어린것을 안아 들어 어머니의 온 사랑을 담아 입을 맞추었다. "필립스한테 어린것을 봐 달라고 맡기고 저는 맏이를 데리고 시내에 갔다 왔어요. 흰 빵이랑 설탕이랑 죽 끓일 질냄비를 사러요." 여자가 말했다. 뚜껑이 떨어져 나간 바구니 안에 그 모든 것이 보였다. "우리 한스(막내 이름이 그랬다)한테 저녁에 수프를 끓여 주려고요. 큰 녀석, 그 말썽꾸러기가 어제 필립스하고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죽을 두고 다투다가 냄비를 깨 먹었거든요." 내가 맏이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여자가 풀밭에서 거위 몇 마리를 쫓아다니고 있다고 말하기가 무섭게 그 아이가 뛰어와 둘째에게 개암나무 회초리를 하나 건네주었다. 나는 그 여자와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여자가 교사의 딸이고 남편은 사촌의 유산을 받으러 스위스로 길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 사람들이 남편을 속이려고 편지에 답장도 안 했대요. 그래서 남편이 직접 그리로 간 거예요. 무슨 사고나 없었으면 좋겠는데, 통 소식이 없어요." 그 여자와 헤어지기가 쉽지 않았어. 나는 아이들에게 크로이처 한 닢씩을 주었고, 막내 몫으로도 한 닢을 여자에게 주며 시내에 갈 때 그 애 수프에 넣을 흰 빵을 사다 주라고 했어.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친구야, 내 감각이 더는 버티지 못할 때 그 온갖 소동을 가라앉혀 주는 건 이런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야. 행복한 평온 속에서 제 삶의 좁은 테두리를 걸어가고, 하루하루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 가고, 잎이 지는 것을 보면서도 겨울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밖에 하지 않는 사람 말이야.

그 뒤로 나는 자주 그리로 나가. 아이들은 나한테 아주 익숙해졌어. 내가 커피를 마실 때면 설탕을 얻어 가고, 저녁이면 버터 바른 빵과 신 우유를 나와 나눠 먹지. 일요일마다 크로이처 한 닢은 빠짐없이 받고, 내가 예배 시간이 끝난 뒤에 거기 가 있지 않으면 주막 여주인이 대신 내주라는 분부를 받아 두었어.

아이들은 나를 스스럼없이 대하고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특히 마을 아이들이 더 모여들 때 그 애들이 드러내는 정열과 꾸밈없이 터져 나오는 욕심을 보는 게 나는 아주 즐거워.

아이들이 나리를 성가시게 해 드릴까 봐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덜어 주느라 무척 애를 먹었어.

5월 30일

얼마 전에 그림에 관해 네게 한 말은 시에도 분명히 들어맞아. 뛰어난 것을 알아보고 그것을 감히 말로 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물론 몇 마디 안 되는 말에 많은 것이 담겼지만. 오늘 나는 한 장면을 보았는데, 있는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가가 될 거야. 하지만 시니 장면이니 목가니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우리가 자연의 한 모습에 마음을 쏟으려면 꼭 그렇게 무언가를 깎고 다듬어야 하는 걸까?

이런 서두를 보고 무언가 고상하고 거창한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너는 또 단단히 속은 거야. 나를 이렇게 생생하게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농군 머슴 하나니까. 늘 그렇듯 나는 이야기를 서툴게 할 테고, 너는 늘 그렇듯 내가 과장한다고 여기겠지. 이번에도 발하임이야. 이런 귀한 일들을 낳는 건 언제나 발하임이야.

보리수 아래에서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 그 사람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는 핑계를 대고 뒤에 남았지.

농군 머슴 하나가 이웃집에서 나와, 얼마 전 내가 그렸던 그 쟁기에 붙어 무언가를 손보기 시작했어. 그 사람 됨됨이가 마음에 들어서 나는 말을 걸고 형편을 물었는데, 우리는 곧 알게 되었고, 이런 부류 사람들과 늘 그렇듯 곧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어. 그 사람은 어느 과부 집에서 일하는데 대접을 아주 잘 받는다고 했고, 그 여주인 이야기를 어찌나 많이 하고 어찌나 칭찬하던지 그가 그 여자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있다는 걸 금세 알아챌 수 있었지. 여주인은 이제 젊지 않고, 첫 남편에게 몹쓸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는 시집가지 않으려 한다고 했어. 그런데 그의 이야기에서는 그 여자가 그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매혹적인지, 그 여자가 자기를 골라 첫 남편의 잘못에 대한 기억을 지워 주게 해 주기를 그가 얼마나 바라는지가 너무나 또렷이 비쳐 나와서, 이 사람의 순수한 애정과 사랑과 신의를 네 눈에 그려 보이려면 그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다 되풀이해야 할 정도야. 아니, 그의 몸짓에 담긴 표정과 목소리의 울림과 눈빛에 감춰진 불꽃까지 함께 생생하게 그려 내려면 가장 위대한 시인의 재능이 있어야 할 거야. 그래, 그의 온 존재와 표정에 깃들어 있던 그 섬세함은 어떤 말로도 나타낼 수 없어. 내가 옮길 수 있는 건 다 투박할 뿐이야. 특히 마음을 울린 건, 내가 그와 여주인의 사이를 엉뚱하게 생각하거나 그 여자의 행실을 의심하지나 않을까 그가 걱정하던 모습이야. 그가 그 여자의 생김새와 몸에 대해, 젊음의 매력은 없어도 그를 억누를 수 없이 끌어당겨 사로잡는 그 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게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는, 나 혼자 내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나 되새길 수 있을 뿐이야. 나는 평생 그렇게 간절한 욕망과 뜨겁고 애타는 그리움을 이토록 순수한 모습으로 본 적이 없어. 아니, 이토록 순수한 것은 생각해 본 적도 꿈꿔 본 적도 없다고 해도 좋아. 나를 나무라지 마. 그 순진함과 진실함을 떠올리면 내 영혼 가장 깊은 곳이 달아오르고, 그 신의와 다정함의 모습이 어디든 나를 따라다니고, 나 자신이 거기 불이 붙기라도 한 것처럼 목말라 애태운다고 해도.

이제 그 여자도 되도록 빨리 한번 보려고 해. 아니, 곰곰 생각해 보니 그러지 않는 게 낫겠어. 그 여자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게 나아. 내 눈으로 보면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모습과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잖아. 그 아름다운 그림을 내가 왜 망쳐야 해?

6월 16일

왜 편지를 안 쓰느냐고? 그런 걸 묻다니, 너도 학식 있는 사람이면서.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쯤은 짐작했어야지.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내 마음에 바짝 다가온 사람을 알게 되었어. 나는…… 모르겠어.

더없이 사랑스러운 사람 하나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차례대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거야. 나는 즐겁고 행복해. 그러니 좋은 역사가는 못 돼.

천사라니! 쳇! 누구나 제 사람을 두고 그렇게 말하지, 안 그래?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이 얼마나 완벽한지, 왜 완벽한지 네게 말할 재간이 없어. 이것만 말해 둘게. 그 사람이 내 온 마음을 사로잡았어.

그토록 영리하면서 그토록 순박하고, 그토록 굳세면서 그토록 착하고, 참되게 살며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영혼은 고요해. 내가 그 사람을 두고 하는 이런 말은 다 쓰레기 같은 헛소리야. 그 사람의 모습을 한 가닥도 그려 내지 못하는 지긋지긋한 추상일 뿐이야. 다음에…… 아니, 다음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야기할게.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못 할 거야. 우리끼리 얘기지만, 편지를 쓰기 시작한 뒤로 나는 벌써 세 번이나 펜을 내려놓고 말에 안장을 얹게 해서 그리로 달려가려 했어. 오늘 아침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맹세해 놓고도, 해가 아직 얼마나 높이 떠 있나 보려고 자꾸만 창가로 가. 이겨 내지 못했어. 그 사람에게 가야만 했어. 빌헬름, 이제 다시 돌아왔어. 저녁으로 버터 바른 빵을 먹으며 네게 편지를 쓸 거야. 정답고 쾌활한 아이들, 그 사람의 동생 여덟에게 둘러싸인 그 사람을 보는 게 내 영혼에 얼마나 큰 환희인지! 이대로 계속 쓰다가는 너는 끝에 가서도 처음만큼밖에 모르겠지. 그럼 들어 봐. 억지로라도 자세히 이야기해 볼게.

얼마 전에 네게 썼지. S 법무관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이 자기 은신처, 아니 자기의 작은 왕국에 곧 놀러 오라고 했다고. 나는 그걸 미뤄 두었고, 그 조용한 고장에 숨겨져 있던 보물을 우연이 내게 드러내 보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영영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이곳 젊은이들이 시골에서 무도회를 열기로 했고, 나도 기꺼이 끼기로 해서, 이곳에 사는 착하고 예쁘지만 그 밖에는 별 볼 일 없는 아가씨에게 춤 상대가 되어 달라고 청했어. 그리고 내가 마차를 한 대 빌려 내 춤 상대와 그 사촌을 태우고 잔치가 열리는 곳으로 가면서, 가는 길에 샤를로테 S를 태워 가기로 정해졌지. "아름다운 아가씨를 알게 되실 거예요." 넓게 베어 낸 숲을 지나 사냥 별장으로 가는 길에 내 춤 상대가 말했어. "조심하세요." 사촌이 거들었다. "반하지 않게요!" "어째서요?" 내가 물었다. "벌써 임자가 있거든요." 춤 상대가 대답했다. "아주 훌륭한 남자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일을 정리하고 번듯한 자리도 구해 보려고 멀리 떠나 있어요." 그 소식은 내게 별 상관이 없었어.

우리가 마당 문 앞에 마차를 댔을 때 해가 산 너머로 지려면 아직 15분쯤 남아 있었어. 몹시 무더웠고, 아가씨들은 희끄무레하고 눅눅한 작은 구름들이 지평선 둘레에 모여드는 것을 보고 뇌우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어. 나는 날씨를 아는 척 큰소리를 쳐서 그 사람들의 걱정을 달랬지만, 실은 나도 우리 잔치가 낭패를 보겠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어.

마차에서 내리자 하녀 하나가 문으로 나와서, 로테 아가씨가 곧 나오실 테니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했어. 나는 마당을 지나 잘 지은 집으로 갔고, 앞 계단을 올라 문을 들어서는 순간 내 평생 본 것 가운데 가장 매혹적인 광경이 눈에 들어왔어. 현관방에서 열한 살부터 두 살까지 여섯 아이가 한 아가씨 둘레에서 북적거리고 있었어. 아가씨는 몸매가 아름답고 키는 중간쯤이었으며, 팔과 가슴에 연분홍 리본을 단 수수한 흰 옷을 입고 있었어. 검은 빵을 한 덩이 들고 둘러선 꼬마들에게 나이와 식욕에 맞추어 한 조각씩 잘라 주고 있었는데, 어찌나 다정하게 건네주던지. 아이들은 빵을 자르기도 전부터 작은 손을 한참 높이 뻗치고 있다가, 저마다 꾸밈없이 "고마워!" 하고 외치고는 저녁 빵을 들고 신이 나서 뛰어가거나, 좀 얌전한 아이는 낯선 손님들과 자기네 로테가 타고 갈 마차를 보러 마당 문 쪽으로 차분히 걸어갔어. "죄송해요." 아가씨가 말했다. "번거롭게 안까지 들어오시게 하고, 아가씨들을 기다리게 해서요. 옷을 차려입고 제가 없는 동안 집안일을 이것저것 일러두느라 아이들에게 간식 주는 걸 잊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저 말고는 아무한테도 빵을 잘라 달라고 하지 않거든요."

나는 아무 의미 없는 인사말을 건넸지만, 내 온 영혼은 그 모습에, 그 목소리에, 그 몸가짐에 머물러 있었고, 놀란 마음을 겨우 가라앉혔을 즈음 아가씨는 장갑과 부채를 가지러 방으로 뛰어 들어갔어. 꼬마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곁눈질로 바라보았고, 나는 막내에게 다가갔어. 더없이 복스러운 얼굴의 아이였어. 아이가 뒷걸음질 치는데 마침 로테가 문으로 나오며 말했어. "루이, 친척 아저씨께 손 내밀어 드려." 아이는 아주 스스럼없이 그렇게 했고, 나는 아이의 콧물 묻은 작은 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심으로 입을 맞추고 말았어.

"친척 아저씨라고요?" 나는 로테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제가 아가씨와 친척이 될 만한 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 "어머." 로테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친척은 아주 넓게 퍼져 있거든요. 그 많은 친척 가운데 제일 못된 사람이 하필 베르테르 씨라면 서운하겠어요." 로테는 나가면서 자기 바로 아래 동생인 열한 살쯤 된 조피에게, 아이들을 잘 돌보고 아버지가 말 타러 나가셨다가 돌아오시면 안부를 전해 드리라고 일렀다. 꼬마들에게는 자기에게 하듯 조피 언니 말을 잘 들으라고 했고, 몇몇은 꼭 그러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그런데 여섯 살쯤 된 깜찍한 금발 꼬마 하나가 말했다. "그래도 조피 언니는 로테 언니가 아니잖아. 우린 로테 언니가 더 좋단 말이야." 큰 사내아이 둘은 마차 뒤에 기어올라 있었는데, 내가 사정해 주자 로테는 서로 장난치지 않고 꼭 붙잡고 있겠다고 약속하면 숲 앞까지 같이 타고 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아가씨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옷차림, 특히 모자를 두고 한마디씩 하고, 무도회에 올 사람들을 한바탕 흉보았어. 그러는 사이 로테가 마부에게 마차를 세우게 하고 동생들을 내리게 했지. 아이들은 누나 손에 한 번 더 입을 맞추겠다고 졸랐고, 맏이는 열다섯 살 나이에 어울릴 만한 온갖 다정함을 담아, 둘째는 무척 거칠고 덜렁대며 입을 맞추었어. 로테는 꼬마들에게 다시 한번 안부를 전하라고 했고, 우리는 길을 계속 갔어.

사촌이 로테에게 얼마 전에 보낸 책을 다 읽었느냐고 물었어. "아뇨." 로테가 말했다. "마음에 안 들어요. 도로 가져가세요. 그 전 책도 더 나을 게 없었어요."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가 로테의 대답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어. 그 대답은…… 나는 로테가 하는 말 하나하나에서 깊은 성품을 보았고, 말 한마디마다 그 얼굴에서 새로운 매력이, 정신의 새로운 빛줄기가 터져 나오는 것을 보았어. 내가 자기를 이해한다는 것을 느꼈는지, 그 얼굴은 차츰 즐겁게 피어나는 것 같았어.

"어렸을 때는 소설만큼 좋아한 게 없었어요." 로테가 말했다. "일요일에 어디 구석에 앉아 미스 제니의 행복과 불운을 온 마음으로 함께 느낄 수 있을 때면, 하느님은 아시겠지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그런 책이 지금도 제게 어느 정도 매력이 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책을 손에 잡는 일이 워낙 드무니까 정말 제 취향에 맞는 책이어야 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그 안에서 제 세계를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람, 제 주변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도 그 이야기가 제 집안 살림만큼이나 흥미롭고 마음에 와닿는 사람이에요. 제 살림이야 물론 낙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체로는 말할 수 없는 행복이 솟아나는 샘이거든요."

나는 이 말에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려고 애썼어. 물론 오래가지는 못했지. 로테가 지나가는 말로 『웨이크필드의 목사』며 ……에 대해 그토록 진실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나는 완전히 넋을 잃었고, 해야 할 말을 다 쏟아 냈어. 한참 뒤에 로테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돌렸을 때에야, 그 사람들이 그동안 마치 그 자리에 없는 사람들처럼 눈만 뜨고 앉아 있었다는 걸 알아챘지. 사촌은 여러 번 비웃듯 콧날을 세우고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어.

이야기는 춤추는 즐거움으로 넘어갔어. "이 정열이 잘못이라면 기꺼이 고백할게요." 로테가 말했다. "저는 춤만큼 좋은 게 없어요. 뭔가 머릿속이 복잡할 때 음이 어긋난 제 클라비어로 콩트르당스 한 곡을 두들기고 나면 다 괜찮아져요."

이야기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그 까만 눈동자에 넋을 빼앗겼는지, 그 생기 있는 입술과 싱그럽고 발랄한 뺨이 얼마나 내 온 영혼을 끌어당겼는지, 그 사람이 하는 말의 근사한 뜻에 깊이 빠져서 그 사람이 어떤 낱말로 말하는지조차 얼마나 자주 듣지 못했는지, 너는 나를 아니까 짐작이 가겠지. 간단히 말하면, 무도회가 열리는 집 앞에 마차가 멈췄을 때 나는 꿈꾸는 사람처럼 마차에서 내렸고, 어스름 내린 세상 속에서 꿈에 잠겨 넋을 놓고 있었던 탓에, 불 밝힌 큰방에서 우리를 맞으며 울려 오는 음악 소리에도 거의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오드랑 씨 두 사람과 아무개라는 사람이(그 많은 이름을 누가 다 기억하겠어) 사촌과 로테의 춤 상대였는데, 마차 문 앞에서 우리를 맞아 자기 아가씨들을 데려갔고, 나는 내 아가씨를 모시고 위층으로 올라갔어.

우리는 미뉴에트를 추며 서로 빙빙 감돌았는데, 내가 아가씨들에게 차례로 춤을 청하자 하필 가장 견디기 힘든 아가씨들일수록 손을 내밀고 끝을 맺을 줄을 몰랐어. 로테와 그 춤 상대가 영국 춤을 시작했고, 줄지어 추다가 로테가 우리와 한 무리가 되어 춤 동작을 시작했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을지 너도 느낄 수 있을 거야. 로테가 춤추는 걸 봐야 해! 봐, 그 사람은 온 마음과 온 영혼을 다해 춤에 빠져 있어. 온몸이 하나의 화음이고, 그토록 근심 없고 그토록 거리낌 없어. 마치 이것이 전부라는 듯이, 그 밖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그 순간에는 분명 다른 모든 것이 그 사람 앞에서 사라져 버릴 거야.

나는 로테에게 두 번째 콩트르당스를 청했어. 로테는 세 번째를 약속하더니,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게 스스럼없는 태도로 독일 춤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어. "여기서는 한 짝인 사람끼리 독일 춤을 출 때는 끝까지 같이 추는 게 유행이에요." 로테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제 짝은 왈츠가 서툴러서, 제가 그 수고를 덜어 주면 오히려 고마워할 거예요. 함께 오신 아가씨도 왈츠를 못 추고 추고 싶어 하지도 않아요. 영국 춤을 추실 때 보니 왈츠를 잘 추시겠던데, 독일 춤을 저와 추고 싶으시면 가서 제 짝에게 허락을 받으세요. 저는 그쪽 아가씨에게 가 볼게요." 나는 손을 내밀어 약속했고, 우리는 그동안 로테의 짝이 내 춤 상대의 말벗이 되어 주기로 정했어.

드디어 춤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한동안 팔을 갖가지로 엮었다 풀었다 하며 즐겼어. 로테가 얼마나 매혹적으로, 얼마나 날렵하게 움직이던지! 그러다 마침내 왈츠가 시작되어 천체들처럼 서로를 감돌며 구르자, 처음에는 제대로 출 줄 아는 사람이 아주 드물어서 물론 조금 뒤죽박죽이 되었어. 우리는 영리하게 그 사람들이 실컷 날뛰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가장 서툰 사람들이 춤판을 비우자 끼어들어, 또 한 쌍인 오드랑과 그 춤 상대와 함께 끝까지 씩씩하게 버텼어. 그렇게 몸이 가볍게 움직인 적은 없었어. 나는 더는 사람이 아니었어. 더없이 사랑스러운 사람을 품에 안고 폭풍처럼 함께 날아다니니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고, 그리고…… 빌헬름,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 맹세했어. 내가 사랑하는 아가씨, 내가 마음을 둘 권리가 있는 아가씨는, 설령 그 때문에 내가 파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 말고 다른 누구와도 왈츠를 추게 하지 않겠다고. 내 말 알겠지!

우리는 숨을 돌리려고 큰방을 몇 바퀴 걸어서 돌았어. 그러고 나서 로테가 자리에 앉았는데, 내가 한쪽에 챙겨 둔 오렌지가 이제 남은 것이라곤 그것뿐이어서 아주 요긴하게 쓰였어. 다만 로테가 예의상 염치없는 옆자리 아가씨에게 한 조각씩 나누어 줄 때마다 내 가슴은 바늘에 찔리는 것 같았지.

세 번째 영국 춤에서 두 번째 짝이 된 우리가 줄 사이를 춤추며 지나가는 동안, 하느님은 아시겠지만 나는 더없는 환희에 잠겨 로테의 팔과 눈에 매달려 있었어. 그 눈에는 더없이 활짝 열린 순수한 즐거움이 참되게 가득 담겨 있었지. 그러다 한 부인 곁에 이르렀는데, 이제 그리 젊지 않은 얼굴에 퍽 상냥한 표정이 어려 있어서 전부터 내 눈에 띄던 사람이야. 그 부인이 웃으며 로테를 바라보더니 을러대듯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고, 스쳐 지나가는 사이에 알베르트라는 이름을 두 번, 아주 의미심장하게 부른다.

"알베르트가 누구예요?" 나는 로테에게 물었다. "여쭤봐도 실례가 안 된다면요." 로테가 막 대답하려는데 큰 8자 돌기를 하느라 우리는 서로 떨어져야 했고, 그렇게 서로 엇갈려 지나칠 때 로테의 이마에 무언가 생각에 잠긴 빛이 보이는 것 같았어. "숨길 게 뭐 있겠어요." 나란히 걷는 대목에서 내게 손을 내밀며 로테가 말했다. "알베르트는 훌륭한 사람이고, 저는 그 사람과 약혼한 거나 다름없어요." 그건 새로운 소식이 아니었어(오는 길에 아가씨들이 말해 주었으니까). 그런데도 너무나 새로웠어. 몇 순간 만에 내게 그토록 소중해진 로테와 이어서 그 일을 생각해 본 적은 아직 없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정신이 어지러워져 나를 잊고 엉뚱한 짝 사이로 끼어드는 바람에 모든 게 엉망이 되었고, 로테가 침착하게 이리 끌고 저리 당기며 온 정신을 다 쏟고서야 겨우 금세 바로잡을 수 있었어.

춤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까부터 지평선에서 번쩍이는 것이 보였고 내가 줄곧 마른번개일 뿐이라고 둘러대던 번개가 훨씬 세지기 시작하더니 천둥소리가 음악을 덮어 버렸어. 아가씨 셋이 줄에서 뛰쳐나가고 그 짝들이 뒤따랐어. 소란이 온 방에 번졌고 음악이 멎었지. 즐거움 한가운데서 불행이나 무서운 일이 우리를 덮치면 여느 때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당연해. 한편으로는 대비가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쪽이 더 큰 까닭인데, 우리 감각이 이미 느낌을 향해 활짝 열려 있어서 그만큼 더 빨리 인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이야. 여러 아가씨가 터뜨린 기묘한 표정들도 이런 까닭으로 돌릴 수밖에 없어. 가장 영리한 아가씨는 한구석에 창을 등지고 앉아 귀를 막았어. 또 한 아가씨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첫 번째 아가씨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어. 세 번째 아가씨는 그 둘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두 동무를 끌어안았지. 몇몇은 집에 가겠다고 했고,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더 모르는 다른 아가씨들은 우리 젊은 녀석들의 뻔뻔한 짓을 막을 만큼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 녀석들은 하늘로 올라가야 할 겁에 질린 기도를 곤경에 빠진 미인들의 입술에서 죄다 가로채느라 무척 바빠 보였어. 우리 신사들 몇은 조용히 파이프 담배를 피우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나머지 일행은 덧문과 휘장이 있는 방을 내주겠다는 여주인의 영리한 제안을 마다하지 않았어. 그 방에 들어서자마자 로테는 의자를 둥글게 늘어놓느라 바빴고, 일행이 로테의 부탁대로 자리에 앉자 놀이를 하나 하자고 제안했어.

벌칙 놀음에서 달콤한 몫이라도 챙길까 하는 기대에 입술을 쪽 내밀고 몸을 쭉 펴는 사람이 여럿 눈에 띄었다. "숫자 세기 놀이를 해요!" 로테가 말했다. "자, 잘 들어요! 제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원을 따라 돌 테니, 여러분도 빙 돌아가며 자기 차례에 오는 수를 하나씩 세는 거예요. 불이 번지듯 빨리 이어져야 하고, 막히거나 틀리는 사람은 따귀를 한 대 맞아요. 그렇게 천까지 가는 거예요." 그건 정말 볼 만했다. 로테는 팔을 쭉 뻗고 원을 따라 돌았다. 첫 사람이 "하나" 하고 시작하자 옆 사람이 "둘", 그다음 사람이 "셋", 그렇게 차례로 이어졌다. 그러다 로테가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빨리. 그러자 누군가 틀렸다. 철썩! 따귀 한 대. 다들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다음 사람도 틀렸다. 철썩! 그리고 점점 더 빨리. 나도 따귀를 두 대 얻어맞았는데, 로테가 다른 사람들에게 때리는 것보다 더 세게 때린 것 같아서 속으로 몹시 기뻤다. 천까지 다 세기도 전에 모두가 웃고 떠드는 통에 놀이는 끝나 버렸다. 가까운 사이끼리 서로 짝지어 한쪽으로 물러났고, 뇌우는 지나갔으며, 나는 로테를 따라 큰방으로 갔다. 가는 길에 로테가 말했다. "따귀 맞느라 다들 날씨고 뭐고 다 잊어버렸네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저도 제일 겁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였어요." 로테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대담한 척하다 보니 정말 용감해졌지 뭐예요." 우리는 창가로 갔다. 천둥은 먼 데서 울리고, 고마운 비가 들판 위로 소리 없이 내렸으며, 더없이 상쾌한 향기가 따뜻한 공기에 가득 실려 우리에게로 올라왔다. 로테는 팔꿈치를 괴고 서서 바깥 풍경을 깊이 꿰뚫어 보듯 바라보았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를 보았다. 그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로테는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고 말했다. "클롭슈토크!" 나는 곧바로 로테가 마음에 품고 있던 장엄한 송가를 떠올렸고, 로테가 그 한마디 암호로 내게 쏟아부은 감정의 물결 속으로 빠져들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로테의 손 위로 몸을 숙이고 더없이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그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다시 그 눈을 올려다보았다. 고귀한 시인이여! 이 눈길 속에서 당신을 우러르는 마음을 당신이 보았더라면! 그토록 자주 더럽혀진 당신의 이름을, 나는 이제 다시는 남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다!

6월 19일

지난번 이야기를 어디까지 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아. 다만 잠자리에 든 게 새벽 두 시였다는 것, 그리고 편지를 쓰는 대신 네 앞에서 수다를 떨 수 있었다면 아마 아침까지 너를 붙잡아 두었으리라는 것은 알아.

무도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지. 오늘도 그럴 만한 날이 아니야.

더없이 장엄한 해돋이였어. 물방울 떨어지는 숲과 생기를 되찾은 주위의 들판! 함께 탄 아가씨들은 꾸벅꾸벅 졸았어. 로테는 나도 같이 눈을 붙이지 않겠느냐고, 자기 때문이라면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이 눈이 떠 있는 걸 보는 동안은 아무 걱정 없어요." 나는 로테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 둘은 로테네 대문 앞까지 끝내 버텼는데, 하녀가 조용히 문을 열어 주고는 로테가 묻자 아버지도 꼬마들도 잘 있고 다들 아직 자고 있다고 했어. 나는 그날 안에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며 로테와 헤어졌어. 로테는 허락해 주었고, 나는 갔어. 그 뒤로는 해와 달과 별이 태평하게 제 살림을 꾸려 가도 상관없어. 나는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온 세상이 내 주위에서 사라져 버렸어.

6월 21일

하느님이 성인들에게나 아껴 두시는 행복한 나날을 나는 살고 있으니,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되든 삶의 기쁨을, 가장 순수한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야. 너도 내 발하임을 알지. 나는 거기 완전히 자리를 잡았어. 거기서 로테에게 가려면 반 시간밖에 안 걸려. 거기서 나는 나 자신을, 그리고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행복을 느껴.

발하임을 산책할 곳으로 골랐을 때, 그곳이 하늘과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이제 내 모든 소망을 품고 있는 그 사냥 별장을, 나는 먼 길을 거닐다가 때로는 산 위에서, 때로는 들판에서 강 건너로 얼마나 자주 바라보았는지 몰라!

빌헬름, 나는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어. 널리 퍼져 나가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떠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사람의 욕망에 대해서, 그리고 다시, 기꺼이 제약에 몸을 맡기고 익숙한 길을 따라 오른쪽도 왼쪽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굴러가고 싶어 하는 마음속 충동에 대해서.

참 신기한 일이야. 이곳에 와서 언덕 위에서 아름다운 골짜기를 내려다보았을 때, 사방의 모든 것이 나를 얼마나 끌어당겼는지. 저기 작은 숲! 아, 저 그늘 속에 섞여들 수 있다면! 저기 산꼭대기! 아, 저기서 넓은 고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면! 서로 사슬처럼 이어진 언덕들과 정다운 골짜기들! 오, 저 속에서 나를 잃어버릴 수 있다면! 나는 서둘러 가 보았다가 돌아왔고, 바라던 것을 찾지 못했어. 오, 먼 곳은 미래와 똑같아! 어스름에 싸인 커다란 전체가 우리 영혼 앞에 놓여 있고, 우리의 감정은 우리의 눈처럼 그 안으로 흐릿하게 풀어져 들어가. 그러면 우리는, 아! 우리의 온 존재를 바치고 싶어서, 단 하나의 크고 장엄한 느낌이 주는 온갖 환희로 우리를 가득 채우고 싶어서 애가 탄다. 그리고 아! 서둘러 가 닿아서 저기가 여기가 되고 나면, 모든 것은 전과 다름이 없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가난 속에, 우리의 좁은 테두리 속에 서 있고, 우리의 영혼은 빠져나가 버린 위안을 찾아 목말라한다.

그래서 가장 갈피를 못 잡는 떠돌이도 끝내는 고향을 다시 그리워하고, 제 오두막에서, 아내의 품에서, 아이들에 둘러싸여, 그들을 먹여 살리는 일 속에서, 넓은 세상에서 헛되이 찾아 헤매던 환희를 찾아낸다.

아침마다 해가 뜰 때 내 발하임으로 나가서 주막 뜰에서 손수 완두를 따고, 자리에 앉아 꼬투리의 실을 벗기며 틈틈이 내 호메로스를 읽을 때, 작은 부엌에서 냄비를 하나 골라 버터를 떠 넣고 꼬투리째 불에 올려 뚜껑을 덮고 그 곁에 앉아 이따금 흔들어 줄 때, 그럴 때면 페넬로페에게 청혼하러 온 오만한 구혼자들이 황소와 돼지를 잡아 가르고 굽는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져. 족장 시대 삶의 자취만큼 나를 고요하고 참된 감정으로 채워 주는 것은 없어. 하느님 덕분에 나는 그 자취를 꾸밈없이 내 살림살이에 엮어 넣을 수 있어.

자기가 손수 기른 배추 한 포기를 식탁에 올리면서, 그 배추만이 아니라 그것을 심던 맑은 아침과 물을 주던 사랑스러운 저녁들과 그것이 쑥쑥 자라는 것을 보며 기뻐하던 그 모든 좋은 날을 한순간에 다시 함께 누리는 사람, 그 사람이 느끼는 소박하고 순진한 환희를 내 마음도 느낄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6월 29일

그저께 시내 의사가 법무관을 보러 이리로 나왔다가, 내가 로테의 동생들 틈에서 땅바닥에 뒹구는 걸 보았는데, 몇은 내 위로 기어오르고 몇은 나를 놀려 대고, 나는 아이들을 간질이며 함께 시끌벅적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 그 의사는 아주 교조적인 꼭두각시인데, 말을 하면서 소맷부리 주름을 매만지고 목둘레의 주름 장식을 끝도 없이 잡아 빼는 사람이야. 그는 이런 짓이 지각 있는 사람의 체면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어. 그의 코를 보고 알았지. 하지만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가 아주 사리에 맞는 이야기를 늘어놓게 내버려 둔 채 아이들이 무너뜨린 카드 집을 다시 지어 주었어. 그 뒤로 그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법무관네 아이들은 그러지 않아도 버릇이 없는데 그 베르테르라는 자가 이제 아주 망쳐 놓는다고 투덜거렸대.

그래, 빌헬름, 이 땅에서 내 마음에 가장 가까운 건 아이들이야.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그 작은 것 안에서 언젠가 꼭 필요하게 될 온갖 미덕과 온갖 힘의 싹을 볼 때, 고집에서 장차 굳건하고 단단한 성품을, 장난에서 세상의 위험을 가볍게 비켜 지나갈 좋은 기분과 경쾌함을 볼 때, 그 모든 것이 그토록 때 묻지 않고 그토록 온전할 때! 그럴 때면 나는 늘, 늘 인류의 스승이 하신 금과옥조를 되뇐다. "너희가 이 아이들 가운데 하나처럼 되지 않으면!" 그런데 친구야,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우리가 본보기로 삼아야 할 아이들을 우리는 아랫사람처럼 다룬다. 아이들은 제 뜻을 가져서는 안 된다나! 그럼 우리는 뜻이 없나? 그 특권은 대체 어디서 오지? 우리가 나이가 더 많고 더 똑똑하니까! 하늘에 계신 선하신 하느님, 당신 눈에는 늙은 아이들과 어린 아이들이 보일 뿐, 그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어느 쪽을 더 기뻐하시는지는 당신의 아들이 벌써 오래전에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분을 믿으면서도 그분 말씀을 듣지 않아. 그것도 해묵은 이야기지! 그러고는 자기 아이들을 제 모습대로 길러 내고, 그리고…… 잘 있어, 빌헬름! 이 이야기로 더 횡설수설하고 싶지 않아.

7월 1일

로테가 앓는 사람에게 어떤 존재일지, 나는 내 가슴으로 느껴. 병상에서 시들어 가는 많은 사람보다 내 가슴이 더 형편없으니까. 로테는 며칠 동안 시내에 사는 어느 훌륭한 부인 곁에서 지낼 텐데, 의사들 말로는 그 부인이 임종이 가까워서 이 마지막 순간에 로테를 곁에 두고 싶어 한대. 지난주에 나는 로테와 함께 St 마을 목사님을 찾아갔어. 산속으로 한 시간쯤 비켜 들어간 작은 마을이야. 우리는 네 시쯤 거기 닿았어. 로테는 둘째 여동생을 데리고 갔어. 키 큰 호두나무 두 그루가 그늘을 드리운 목사관 마당에 들어서자, 선량한 노목사님이 집 문 앞 걸상에 앉아 계시다가 로테를 보고는 다시 살아난 듯 생기가 돌아 마디 많은 지팡이도 잊은 채 감히 일어나 로테를 맞으러 나오셨어. 로테는 그리로 달려가 목사님을 다시 앉으시게 하고 곁에 앉아 아버지의 안부를 잔뜩 전하고, 목사님이 늘그막에 얻은 지저분하고 꾀죄죄한 막내아들, 노년의 귀염둥이를 끌어안아 주었어. 로테가 노인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네가 봤어야 해. 반쯤 먹은 그분 귀에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뜻밖에 죽은 젊고 튼튼한 사람들 이야기며 카를스바트 온천이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하고, 내년 여름에 거기 가시겠다는 결심을 칭찬하고, 지난번 뵈었을 때보다 훨씬 좋아 보이고 훨씬 기운이 나 보이신다고 하는 모습을. 그동안 나는 목사 부인에게 인사를 차렸어. 노인은 아주 기운이 나셨고, 우리에게 그토록 사랑스러운 그늘을 드리워 주는 아름다운 호두나무를 내가 참지 못하고 칭찬했더니, 조금 힘겨워하시면서도 그 나무 내력을 들려주기 시작하셨어. "늙은 나무는 누가 심었는지 우리도 모르오."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이 목사라는 사람도 있고 저 목사라는 사람도 있소. 그런데 저 뒤에 있는 젊은 나무는 내 아내와 나이가 같소. 시월이면 쉰 해가 되지. 장인어른이 아침에 그 나무를 심으셨는데, 그날 저녁 무렵 아내가 태어났소. 그분은 이 자리에서 나보다 앞서 목사로 계셨는데, 그 나무를 얼마나 아끼셨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소. 나도 그분 못지않게 아끼오. 스물일곱 해 전에 내가 가난한 학생으로 처음 이 마당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그 나무 아래 들보 위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소." 로테가 목사님 따님의 안부를 묻자, 슈미트 씨와 함께 일꾼들이 있는 풀밭에 나갔다는 대답이 돌아왔어. 노인은 이야기를 이어 가셨어. 앞선 목사님이 어떻게 자기를 아끼게 되었고 그 딸도 어떻게 자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처음에는 그분의 보좌 목사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후임자가 되었는지. 그 이야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사 댁 따님이 이른바 슈미트 씨와 함께 정원을 지나 이리로 왔어. 따님은 로테를 따뜻하게 반겼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 아가씨가 퍽 마음에 들었어. 날렵하고 몸매가 좋은 갈색 머리 아가씨로, 시골에서 잠깐 지내는 동안이라면 좋은 말벗이 되어 줄 만한 사람이었지. 그 애인은(슈미트 씨는 처음부터 그렇게 나섰으니까) 점잖지만 말이 없는 사람이었어. 로테가 자꾸 대화에 끌어들이는데도 우리 이야기에 끼려 하지 않았지. 무엇보다 나를 서글프게 한 건, 그가 말을 섞지 않는 까닭이 머리가 모자라서라기보다는 고집과 언짢은 기분 때문이라는 것이 그 얼굴에서 보이는 것 같았다는 거야. 안타깝게도 그 뒤에 그건 너무나 뚜렷해졌어. 산책할 때 프리데리케가 로테와 나란히, 그리고 이따금 나와도 나란히 걷자, 그러지 않아도 거무스름한 그 신사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져서, 로테가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프리데리케에게 너무 다정하게 굴었다고 눈치를 줄 지경이 되었어. 사람들이 서로 괴롭히는 것만큼 나를 언짢게 하는 건 없어. 특히 모든 기쁨에 가장 활짝 열려 있을 수 있는 인생의 꽃다운 시절에 젊은이들이 얼마 안 되는 좋은 날을 찌푸린 얼굴로 서로 망쳐 놓고는, 너무 늦어서야 그 낭비가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음을 깨닫는 걸 보면 말이야. 그게 속을 긁어서, 저녁 무렵 목사관으로 돌아와 식탁에 둘러앉아 우유를 먹다가 이야기가 세상의 기쁨과 슬픔으로 흘러가자, 나는 그 실마리를 붙잡고 언짢은 기분을 정말 진심으로 나무라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어. "우리 사람들은 좋은 날은 너무 적고 나쁜 날은 너무 많다고 자주 불평하지요." 내가 말을 꺼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대개 잘못된 불평이에요. 하느님이 날마다 마련해 주시는 좋은 것을 누리도록 우리가 늘 마음을 열어 둔다면, 불행이 닥쳐도 그것을 견딜 힘이 넉넉히 생길 거예요." "하지만 우리 마음은 우리 뜻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목사 부인이 대꾸했다. "몸에 달린 게 얼마나 많은데요! 몸이 편치 않으면 무엇 하나 마음에 차지 않는 법이에요." 나는 그 말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그걸 일종의 병으로 보고 무슨 약이 없는지 따져 보기로 하지요." 내가 말을 이었다. "그거 들을 만한 말씀이네요." 로테가 말했다. "적어도 많은 게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저는 믿어요. 저 자신을 보면 알아요. 무언가가 저를 성가시게 해서 기분을 망치려 들면, 저는 벌떡 일어나 콩트르당스 두어 곡을 부르며 정원을 오락가락해요. 그러면 금세 사라져요." "바로 그 말을 하려던 참이었어요." 내가 받았다. "언짢은 기분은 게으름과 꼭 같아요. 언짢은 기분도 일종의 게으름이니까요. 우리 본성은 그쪽으로 몹시 기울어 있지만, 그래도 한 번만 기운을 내어 마음을 다잡으면 일이 손에 착착 붙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데서 참된 즐거움을 찾게 되지요." 프리데리케는 아주 열심히 귀를 기울였고, 젊은 남자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아니며 특히 자기 감정은 마음대로 다스릴 수 없다고 반박했다. "지금 문제는 불쾌한 감정이에요." 내가 대꾸했다. "그런 감정이라면 누구든 기꺼이 떨쳐 버리고 싶어 하지요. 그리고 자기 힘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는 해 보기 전에는 아무도 몰라요. 정말이지, 병든 사람은 의사란 의사는 다 찾아다니며 물어볼 테고, 바라던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큰 체념도, 아무리 쓴 약도 마다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정직한 노인이 우리 이야기에 끼려고 귀를 기울이며 애쓰는 것을 보고, 목사님 쪽으로 말을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온갖 악덕을 나무라는 설교는 많지만, 언짢은 기분을 두고 설교단에서 애쓴 분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건 도시 목사들이 할 일이오."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농사꾼들은 기분이 언짢을 일이 없거든. 그래도 이따금 해서 나쁠 건 없겠소. 적어도 내 아내와 법무관 나리한테는 좋은 교훈이 될 테니." 다들 웃었고 목사님도 함께 껄껄 웃으시다가 기침이 터져서 우리 이야기는 한동안 끊겼어. 그러자 젊은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언짢은 기분을 악덕이라고 하셨는데, 그건 지나친 말씀 같은데요." "천만에요." 내가 대답했다. "자기 자신과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그 이름을 받을 만하다면요. 우리가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저마다의 마음이 이따금 스스로에게 베풀 수 있는 즐거움까지 서로 빼앗아야 할까요? 언짢은 기분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걸 숨기고 혼자 감당해서 주위의 기쁨을 깨뜨리지 않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있다면 대 보세요! 아니, 언짢은 기분이란 오히려 우리 자신이 하찮다는 데서 오는 속 깊은 불만, 우리 자신에 대한 못마땅함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못마땅함에는 언제나 어리석은 허영심에 부추겨진 질투가 얽혀 있고요. 우리 손으로 행복하게 해 주지 않은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그게 견딜 수 없는 거예요." 내가 열을 올리며 말하는 것을 보고 로테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고, 프리데리케의 눈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나를 더 몰아세웠다. "남의 마음을 휘어잡는 힘을 가졌다고 그 힘으로 그 마음속에서 저절로 싹트는 소박한 기쁨을 빼앗는 사람들은 화를 입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세상의 어떤 선물도, 어떤 호의도, 우리를 휘두르는 사람의 시기 어린 불편한 심기 때문에 망쳐 버린 한순간의 자기 기쁨을 메워 주지 못해요."

그 순간 내 가슴은 벅차올랐어. 지나간 많은 일의 기억이 내 영혼에 밀려들었고, 눈에 눈물이 고였어.

"이 말을 날마다 자기 자신에게 해 주기만 한다면!" 나는 외쳤다. "네가 벗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그들에게 그들의 기쁨을 그대로 두고, 그 기쁨을 함께 누리면서 그들의 행복을 늘려 주는 것밖에 없다고. 그들의 속 깊은 영혼이 애태우는 정열에 시달리고 시름에 짓밟힐 때, 너는 그들에게 위안 한 방울이라도 줄 수 있느냐?

그리고 네가 꽃다운 시절에 속을 파먹어 들어간 그 사람에게 마지막의 가장 두려운 병이 덮쳐, 그 사람이 더없이 비참하게 기진한 채 누워 있고, 감각을 잃은 눈은 하늘만 바라보고, 핏기 없는 이마에 죽음의 식은땀이 맺혔다 말랐다 하는데, 너는 저주받은 사람처럼 침대 앞에 서서 네가 가진 모든 것으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꺼져 가는 그 사람에게 기운 한 방울, 용기 한 점이라도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내주고 싶어서 불안에 속이 뒤틀린다면."

이 말을 하는 동안, 내가 곁에서 지켜보았던 그런 장면의 기억이 온 힘을 다해 나를 덮쳤어. 나는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자리를 떴고, 이제 가자고 나를 부르는 로테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들었지. 돌아오는 길에 로테는 내가 무슨 일에나 너무 뜨겁게 마음을 쏟는다고, 그러다가는 몸을 망치고 말 거라고 얼마나 나를 꾸짖던지! 몸을 아끼라고! 오, 천사여! 당신을 위해서라도 나는 살아야 해!

7월 6일

로테는 늘 죽어 가는 벗 곁에 있고 늘 한결같아서, 눈길 닿는 곳마다 고통을 덜어 주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늘 곁에 있어 주는 다정한 사람이야. 어제저녁 로테가 마리아네와 꼬마 말헨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어. 나는 그걸 알고 뒤따라가 만나서 함께 걸었어. 한 시간 반쯤 걷다가 시내 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게 그토록 소중했고 이제는 천 배나 더 소중해진 그 샘에 이르렀어. 로테는 나지막한 담에 걸터앉았고, 우리는 그 앞에 섰어.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어. 아, 내 마음이 그토록 외로웠던 시절이 다시 눈앞에 살아났지. "정다운 샘아, 그 뒤로 나는 네 서늘함에 기대어 쉬지 못했고, 바삐 지나가느라 너를 쳐다보지도 않은 적이 많았구나." 내가 말했다. 내려다보니 말헨이 물 한 잔을 들고 무척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어. 나는 로테를 바라보며 로테가 내게 어떤 사람인지를 온전히 느꼈어. 그때 말헨이 잔을 들고 다가왔어. 마리아네가 잔을 받아 주려 하자 "아니야!" 아이가 더없이 사랑스러운 얼굴로 외쳤다. "아니, 로테 언니가 먼저 마셔!" 아이가 그 말을 외치는 진실함과 착한 마음에 나는 어찌나 황홀해졌던지, 그 느낌을 나타낼 길이 달리 없어서 아이를 땅에서 번쩍 안아 들고 힘껏 입을 맞추었어. 아이는 곧바로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어. "잘못하셨어요." 로테가 말했다. 나는 당황했다. "이리 와, 말헨." 로테가 아이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가며 말을 이었다. "자, 이 맑은 샘물로 얼른얼른 씻어. 그러면 괜찮아."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았어. 꼬마가 젖은 작은 손으로 얼마나 열심히 두 볼을 문지르던지. 이 기적의 샘물이 온갖 더러움을 씻어 내고 흉한 수염이 나는 창피를 막아 주리라고 얼마나 굳게 믿던지. 로테가 "이제 됐어!" 하는데도 아이는 많이 씻으면 조금 씻는 것보다 더 효험이 있다는 듯 계속 열심히 씻었어. 빌헬름, 정말이지 나는 어떤 세례식에도 이보다 더 경건한 마음으로 참석한 적이 없어. 그리고 로테가 올라왔을 때, 한 민족의 죄를 씻어 준 예언자 앞에 엎드리듯 그 사람 앞에 엎드리고 싶었어.

저녁에 나는 기쁨에 겨워 이 일을 어떤 남자에게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어. 분별이 있으니 사람다운 마음도 있겠거니 믿었던 사람이지. 그런데 웬걸! 그는 로테가 아주 잘못했다면서, 아이들에게 엉터리를 믿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런 것이 수많은 오류와 미신을 낳으니 아이들을 일찍부터 거기서 지켜 주어야 한다고 하더라. 그때 나는 그 남자가 일주일 전에 아이에게 세례를 받게 했다는 게 생각나서, 그 말을 흘려듣고 내 마음속으로 진실에 충실하기로 했어. 하느님이 우리에게 하시듯 우리도 아이들에게 해야 한다고. 하느님은 우리가 다정한 착각 속에서 그렇게 비틀거리며 걸어가게 하실 때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해 주시니까.

7월 8일

사람이란 얼마나 아이 같은지! 눈길 한 번을 얼마나 탐내는지! 사람이란 얼마나 아이 같은지! 우리는 발하임에 갔어. 아가씨들은 마차를 타고 갔는데, 산책하는 동안 나는 로테의 까만 눈에서 무언가를…… 나는 바보야, 용서해 줘! 너도 그 눈을, 그 눈을 봐야 하는데. 짧게 말할게(잠이 와서 눈이 감기니까). 그러니까, 아가씨들이 마차에 올랐고, 마차 곁에 젊은 W와 젤슈타트와 오드랑과 내가 서 있었는데, 다들 마차 문으로 그 젊은 녀석들과 수다를 떨었고, 녀석들은 물론 가볍고 들뜬 축들이었지. 나는 로테의 눈을 찾았어. 아, 그 눈은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옮겨 갔어! 그런데 나한테는! 나한테는! 나한테는! 오로지 로테에게 마음을 다 바치고 체념한 채 거기 서 있던 나한테는 그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어! 내 마음은 로테에게 천 번이나 작별 인사를 했어! 그런데 로테는 나를 보지 않았어! 마차가 떠나갔고, 내 눈에 눈물이 맺혔어. 마차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로테의 머리 장식이 마차 문 밖으로 내밀어지더니, 로테가 뒤를 돌아보는 거야. 아! 나를 보려고? 친구야! 나는 이 불확실함 속을 떠다니고 있어. 그게 내 위안이야. 어쩌면 로테가 나를 보려고 돌아보았을지도 몰라! 어쩌면! 잘 자! 오, 나는 얼마나 아이 같은지!

7월 10일

사람들 사이에서 로테 이야기가 나올 때 내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는지 네가 봐야 해! 게다가 누가 나한테 그 사람이 마음에 드느냐고 묻기라도 하면! 마음에 드느냐니! 나는 그 말이 죽도록 싫어. 로테가 그저 마음에 들 뿐, 모든 감각과 모든 감정을 가득 채우지는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대체 어떤 인간일까! 마음에 든다니! 마음에 든다니! 얼마 전에는 누가 나한테 오시안이 마음에 드느냐고 묻더라!

7월 11일

M 부인이 아주 위독해. 나는 그분이 살아나기를 빌고 있어. 로테와 함께 괴로워하니까. 이제 로테는 어떤 벗의 집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데, 오늘 로테가 놀라운 일을 하나 들려주었어. M 영감은 탐욕스럽고 고약한 구두쇠라 평생 아내를 단단히 들볶고 옥죄었는데, 그래도 부인은 늘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 왔대. 며칠 전 의사가 가망이 없다고 하자 부인은 남편을 불러(로테도 방에 있었어) 이렇게 말했대. "당신한테 털어놓을 게 있어. 내가 죽고 나면 일이 꼬이고 속상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나는 지금까지 될 수 있는 대로 알뜰하고 빈틈없이 살림을 꾸려 왔어. 그런데 이 서른 해 동안 당신을 속여 온 걸 용서해 줘야겠어. 당신은 결혼 초에 부엌살림과 그 밖의 집안 씀씀이로 얼마 안 되는 돈을 정해 주었지. 살림이 커지고 장사가 늘어도 당신은 거기 맞춰 내 주급을 늘려 줄 생각을 도무지 안 했어. 요컨대, 씀씀이가 가장 컸을 때도 당신은 내가 일주일에 7굴덴으로 버티기를 바랐다는 거, 당신도 알잖아.

그래서 나는 군말 없이 그 돈을 받고는, 모자라는 몫을 주마다 가게 매상에서 꺼내 썼어. 아내가 금고에 손을 대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하나도 헛되이 쓰지 않았고, 이 일을 고백하지 않고도 마음 편히 영원으로 걸어갈 수 있었을 거야. 다만 나 다음에 살림을 맡을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모를 테고, 당신은 당신의 첫 아내도 그 돈으로 꾸려 나갔다고 언제까지나 우길지도 모르니까."

두 배는 들 것 같은 씀씀이를 7굴덴으로 감당해 낸다면 무언가 다른 속사정이 있으리라고 의심해 볼 법도 한데, 사람의 마음이 그걸 못 할 만큼 믿을 수 없이 눈이 멀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로테와 나눴어. 하지만 나도 예언자의 마르지 않는 기름병이 자기 집에 있다 해도 놀라지 않고 받아들였을 사람들을 알고 있어.

7월 13일

아니, 나는 나 자신을 속이는 게 아니야! 나는 로테의 까만 눈에서 나와 내 운명을 향한 참된 마음을 읽어. 그래, 나는 느껴. 그리고 이 점에서는 내 마음을 믿어도 돼. 로테가…… 오, 이 말로 하늘을 입 밖에 내도 될까, 낼 수 있을까? 로테가 나를 사랑해!

나를 사랑해!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해지는지, 내가…… 너한테는 말해도 되겠지, 너는 이런 걸 알아주니까. 로테가 나를 사랑한 뒤로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우러르는지!

이게 주제넘은 생각일까, 아니면 참된 관계를 느끼는 걸까? 로테의 마음에서 내가 무언가를 빼앗길까 두려워할 만한 사람을 나는 몰라. 그런데도…… 로테가 약혼자 이야기를 할 때, 그토록 따뜻하게, 그토록 사랑을 담아 그 사람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모든 명예와 지위를 빼앗기고 칼까지 빼앗긴 사람이 된 것 같아.

7월 16일

아, 내 손가락이 무심코 로테의 손가락에 닿을 때, 식탁 아래서 우리 발이 마주칠 때면, 그것이 온 핏줄을 타고 얼마나 짜릿하게 흐르는지! 나는 불에 덴 듯 물러나지만, 어떤 은밀한 힘이 나를 다시 앞으로 끌어당겨. 모든 감각이 어질어질해져. 오! 그런데 로테의 순진함, 그 거리낌 없는 영혼은 그런 작은 허물없음이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느끼지 못해. 이야기하다가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고,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내게 다가앉아서 그 거룩한 입김이 내 입술에 닿을 듯할 때면, 나는 벼락을 맞은 듯 그대로 가라앉을 것만 같아. 그리고, 빌헬름! 만약 내가 감히 이 하늘을, 이 믿음을…… 내 말 알겠지. 아니, 내 마음은 그렇게까지 썩지 않았어! 약해! 약하기는 하지! 그런데 그게 썩은 게 아니고 뭐야? 로테는 내게 성스러운 사람이야. 로테 앞에서는 모든 욕망이 입을 다물어. 로테 곁에 있으면 내가 어떤지 나도 모르겠어. 영혼이 내 모든 신경 속에서 뒤집히는 것 같아. 로테에게는 클라비어로 치는 곡이 하나 있는데, 천사 같은 힘으로 연주해. 그토록 소박하고 그토록 정신이 깃들어 있지! 로테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데, 로테가 첫 음을 짚기만 해도 나는 온갖 괴로움과 혼란과 변덕에서 다시 살아나.

옛 음악의 마력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믿기지 않는 게 없어. 그 소박한 노래가 나를 얼마나 사로잡는지! 그리고 로테는 그 노래를 꼭 알맞은 때에 들려줄 줄 알아. 내가 머리에 총알을 박아 버리고 싶은 바로 그런 때에! 내 영혼의 혼란과 어둠이 흩어지고, 나는 다시 숨을 쉬게 돼.

7월 18일

빌헬름, 사랑이 없다면 세상이 우리 마음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 불 없는 환등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작은 등불을 넣기만 하면 하얀 벽에 더없이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비치지! 그게 지나가는 허깨비일 뿐이라 해도, 우리가 철부지 소년들처럼 그 앞에 서서 그 신기한 모습에 넋을 잃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 오늘은 로테에게 갈 수 없었어. 빠질 수 없는 모임에 붙들렸거든. 어떻게 하겠어? 나는 하인을 그리로 보냈어. 오늘 로테 곁에 갔던 사람 하나라도 내 곁에 두고 싶어서. 얼마나 애타게 그를 기다렸는지, 다시 보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부끄럽지만 않았다면 그의 머리를 붙잡고 입을 맞추었을 거야.

볼로냐 돌 이야기가 있지. 햇빛에 내놓으면 그 빛을 빨아들였다가 밤에 한동안 빛을 낸다는 돌. 내게는 그 하인이 그랬어. 로테의 눈길이 그의 얼굴에, 뺨에, 저고리 단추와 외투 깃에 머물렀다고 생각하니 그 모든 게 그토록 거룩하고 그토록 소중했어! 그 순간에는 1,000탈러를 준대도 그 녀석을 내주지 않았을 거야. 그 녀석이 곁에 있는 게 그렇게 좋았어. 부디 이걸 비웃지 말아 줘. 빌헬름, 우리가 행복할 때 그게 허깨비일까?

7월 19일

"나는 그 사람을 보게 될 거야!" 아침에 잠에서 깨어 아름다운 해를 활짝 갠 마음으로 바라보며 나는 외쳐. "나는 그 사람을 보게 될 거야!" 그러면 그날 하루는 더 바랄 것이 없어.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이 기대 속에 삼켜져 버려.

공사를 따라 ***로 가라는 너희의 생각은 아직 내 생각이 되지 못했어. 나는 남의 밑에 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게다가 그 사람이 불쾌한 인간이라는 건 우리 모두 알잖아. 어머니가 내가 무슨 일이든 하기를 바라신다고 네가 썼는데, 그 말에 웃음이 나더라. 나는 지금도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아? 그리고 따지고 보면 완두콩을 세든 렌즈콩을 세든 매한가지 아니야? 세상만사는 결국 하찮은 짓거리로 끝나게 마련이고, 자기 정열이나 자기 욕구에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돈이나 명예나 그 밖의 무엇을 좇아 뼈 빠지게 일하는 사람은 언제나 바보야.

7월 24일

내가 그림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네가 그토록 바라니, 요즘 그림을 별로 못 그렸다고 말하느니 차라리 그 이야기는 통째로 건너뛰고 싶어.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고, 작은 돌멩이 하나, 풀잎 하나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향한 내 느낌이 이렇게 충만하고 절절했던 적이 없어. 그런데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형상을 그려 내는 내 힘이 너무 약해서 모든 것이 내 영혼 앞에서 아른거리고 흔들리기만 할 뿐, 윤곽 하나 붙잡을 수가 없어. 그래도 찰흙이나 밀랍이 있다면 그걸로 빚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아. 이런 상태가 더 오래가면 정말 찰흙을 가져다 주무르겠어. 과자밖에 안 나오더라도!

로테의 초상을 세 번이나 시작했다가 세 번 다 망신만 당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꼭 닮게 그리는 데 아주 자신이 있었던 터라 그만큼 더 속이 상해. 그래서 결국 로테의 실루엣을 떴는데, 그걸로 만족해야겠어.

네, 다정한 로테, 무엇이든 다 알아보고 주문해 둘게요. 일을 더 맡겨 주세요. 자주자주요. 한 가지만 부탁할게요. 내게 써 보내는 쪽지에 이제 모래는 뿌리지 마세요. 오늘 쪽지를 얼른 입술에 갖다 댔더니 이 사이에서 모래가 서걱거렸어요.

7월 26일

로테를 그렇게 자주 보지 않겠다고 벌써 여러 번 다짐했어. 그래, 그걸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날마다 나는 유혹에 지고 내일은 한번 가지 말아야지 하고 굳게 맹세하지만, 막상 아침이 오면 또 어쩔 수 없는 까닭이 생기고,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로테 곁에 와 있어. 로테가 저녁에 "내일 오시는 거죠?" 하고 말했으니 누가 안 갈 수 있겠어? 아니면 로테가 무슨 일을 맡겨서 그 대답을 몸소 갖다주는 게 도리일 것 같고, 아니면 날이 너무 좋아서 발하임에 갔다가, 일단 거기 가 있으면 로테에게는 반 시간 거리밖에 안 되니까! 나는 그 사람의 기운이 미치는 데에 너무 가까이 와 있어. 휙! 그러면 벌써 거기 가 있는 거야. 우리 할머니가 들려주던 자석산 옛이야기가 있어. 너무 가까이 다가간 배들은 순식간에 쇠붙이를 몽땅 빼앗겨서 못이 모조리 산으로 날아가 버리고, 가엾은 뱃사람들은 와르르 무너지는 널빤지들 틈에서 난파하고 말았대.

7월 30일

알베르트가 돌아왔어. 그러니 나는 떠날 거야. 그가 더없이 훌륭하고 더없이 고귀한 사람이어서 어느 모로 보나 내가 그보다 못하다고 기꺼이 인정할 만하다 해도, 그가 그 많은 완벽함을 소유하고 있는 걸 내 눈앞에서 지켜보는 건 견딜 수 없을 거야. 소유라니! 그만두자, 빌헬름. 약혼자가 왔어!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라 누구라도 좋아하게 될 사람이야. 다행히 나는 그를 맞이하는 자리에 없었어! 있었다면 가슴이 찢어졌을 거야. 게다가 그는 아주 반듯해서 내 앞에서는 아직 로테에게 단 한 번도 입을 맞추지 않았어. 하느님이 그에게 갚아 주시기를! 그가 로테를 그토록 존중하니, 그것 때문에라도 나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 그는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데, 그건 그 자신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로테가 애쓴 덕분인 것 같아. 여자들은 이런 일에 섬세하고, 또 그게 옳아. 숭배자 두 사람을 서로 좋은 사이로 지내게 할 수만 있다면, 좀처럼 잘되지는 않지만, 이득은 언제나 여자들 몫이니까.

그래도 알베르트에게 존경심을 품지 않을 도리가 없어. 그의 침착한 겉모습은 숨길 수 없는 내 성미의 불안과 무척 선명하게 대비가 돼. 그는 감정이 깊고 자기가 로테를 얻은 게 얼마나 큰 복인지 알며, 언짢은 기분도 거의 없어 보이는데, 너도 알다시피 그건 내가 사람에게서 다른 무엇보다 미워하는 죄야.

그는 나를 분별 있는 사람으로 여겨. 그리고 로테를 향한 내 애착과 로테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내가 느끼는 뜨거운 기쁨은 그의 승리감을 더해 줄 뿐이어서, 그는 로테를 더욱더 사랑하게 돼. 그가 이따금 사소한 질투로 로테를 괴롭히지는 않는지, 그건 따지지 않을래. 적어도 내가 그의 자리에 있다면 이 악마에게서 아주 안전하지는 못할 거야.

어찌 되었든 로테 곁에 있는 기쁨은 사라졌어. 이걸 어리석음이라고 해야 할까, 눈이 멀었다고 해야 할까? 이름이 무슨 상관이야! 일 자체가 다 말해 주잖아! 알베르트가 오기 전에도 나는 지금 아는 걸 다 알고 있었어. 로테에게 아무것도 바랄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았고, 바란 적도 없었어. 그토록 사랑스러운 사람 앞에서 바라지 않는 것이 가능한 한에서는 말이야. 그런데 이제 상대가 정말로 나타나 아가씨를 데려가 버리자, 이 얼간이는 눈을 휘둥그레 뜨는 거야.

나는 이를 악물고 내 비참함을 비웃고, 체념하라고, 이제 와서 달리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말할 만한 사람들은 그 두 배 세 배로 비웃어 줄 거야. 이 허수아비들을 내 눈앞에서 치워 줘! 나는 숲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로테에게 가는데, 알베르트가 정원의 덩굴 정자 아래 로테 곁에 앉아 있고 나는 더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면, 미친 듯이 들떠서 온갖 장난과 엉뚱한 짓을 벌여. "제발 부탁이에요." 오늘 로테가 내게 말했다. "어제저녁 같은 일은 다시 벌이지 마세요! 그렇게 쾌활하실 때는 무서워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나는 알베르트가 바쁠 때를 엿보다가 휙! 그 길로 나가. 로테가 혼자 있을 때 만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

8월 8일

부탁이야, 빌헬름,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순순히 따르라고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람들을 내가 견딜 수 없다고 욕했을 때, 그건 정말 너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어. 네가 그런 생각을 하리라고는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어. 그리고 따지고 보면 네 말이 옳아. 다만 한 가지만, 내 좋은 친구! 세상일은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아주 드물어. 감정과 행동은 매부리코와 납작코 사이에 온갖 층이 있듯이 그토록 다양한 빛깔로 갈라져 있거든.

그러니 내가 네 논증을 다 인정하면서도 그 이것 아니면 저것 사이로 슬쩍 빠져나가려 해도 나쁘게 생각하지 마.

너는 말하지. 로테에게 희망이 있든지 없든지 둘 중 하나라고. 좋아, 첫째 경우라면 그 희망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소원을 이루도록 애써 보고, 둘째 경우라면 마음을 다잡고 네 모든 힘을 갉아먹을 그 비참한 감정에서 벗어나도록 애써 봐. 내 좋은 친구! 말은 참 잘했어. 그리고…… 말하기는 쉽지.

그렇다면 서서히 퍼지는 병에 걸려 생명이 막을 길 없이 조금씩 꺼져 가는 불행한 사람에게, 단검으로 한 번에 찔러 그 고통을 끝내라고 요구할 수 있겠어? 그의 힘을 갉아먹는 그 병은 그와 동시에 거기서 벗어날 용기마저 빼앗아 가지 않겠어?

물론 너는 비슷한 비유로 내게 대꾸할 수도 있겠지. 머뭇거리고 망설이다가 목숨을 걸게 되느니 차라리 팔을 잘라 내게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모르겠어! 그리고 비유를 두고 서로 물고 늘어지지는 말자. 이만하면 됐어. 그래, 빌헬름, 나도 이따금 벌떡 일어나 모든 것을 떨쳐 버릴 듯한 용기가 솟는 순간이 있어. 그럴 때는…… 어디로 가야 할지만 안다면 나는 정말 떠날 거야.

저녁

한동안 내버려 두었던 일기장이 오늘 다시 손에 들어왔는데, 내가 이 모든 일 속으로 얼마나 다 알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들어왔는지 깜짝 놀랐어! 내 처지를 언제나 그토록 또렷이 보면서도 아이처럼 굴었고, 지금도 그토록 또렷이 보는데도 나아질 기미는 조금도 없다니!

8월 10일

내가 바보만 아니라면 더없이 좋고 더없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거야. 지금 내가 놓인 형편만큼 한 사람의 영혼을 즐겁게 해 줄 아름다운 조건들이 한데 모이기란 쉽지 않아. 아, 우리의 행복을 만드는 건 오로지 우리 마음뿐이라는 게 그토록 확실하다니. 그 사랑스러운 가족의 한 식구가 되어, 노인에게서는 아들처럼, 꼬마들에게서는 아버지처럼 사랑받고, 그리고 로테에게서도! 그리고 정직한 알베르트. 변덕스럽게 심술을 부려 내 행복을 깨는 일이 없고, 따뜻한 우정으로 나를 감싸 주고, 로테 다음으로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이야! 빌헬름, 우리가 함께 산책하며 서로 로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으면 정말 즐거울 거야. 세상에 이보다 우스꽝스러운 관계는 없을 텐데도, 나는 그 생각을 하면 자주 눈물이 나.

알베르트는 내게 로테의 훌륭한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줘. 어머니가 임종하면서 로테에게 집과 아이들을 맡기고 알베르트에게는 로테를 부탁했다는 것, 그 뒤로 전혀 다른 정신이 로테 안에 살아나서 살림을 돌보고 진지하게 일하며 참된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 로테의 시간은 한순간도 부지런한 사랑과 일 없이 흘러간 적이 없는데도 그 쾌활함과 가벼운 마음이 로테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그 곁을 나란히 걸으며 길가의 꽃을 꺾어 아주 정성껏 꽃다발을 만들어서는…… 곁을 흘러가는 강물에 던지고, 꽃들이 천천히 떠내려가는 것을 바라봐. 알베르트가 여기 남아 궁정에서 꽤 괜찮은 벌이의 관직을 얻게 되리라고 내가 네게 썼는지 모르겠어. 그는 궁정에서 아주 신임을 받고 있거든. 일의 질서와 부지런함으로 따지면 그만한 사람을 나는 거의 보지 못했어.

8월 12일

정말이지 알베르트는 하늘 아래 가장 좋은 사람이야. 어제 그와 놀라운 일이 있었어. 나는 작별 인사를 하러 그에게 갔어. 산에 말을 타고 다녀오고 싶어졌거든. 지금 이 편지도 거기서 쓰고 있어. 그런데 방 안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그의 권총이 눈에 띄었어. "여행길에 권총 좀 빌려줘." 내가 말했다. "그러든가." 그가 말했다. "장전하는 수고를 직접 하겠다면야. 나한테는 그냥 모양으로 걸려 있는 거야." 내가 하나를 내리자 그가 말을 이었다. "조심하다가 된통 당한 뒤로는 그런 물건하고는 상관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 이야기가 궁금했다. "석 달쯤 시골 친구 집에 머문 적이 있어." 그가 이야기했다. "작은 권총 두 자루를 장전하지 않은 채 두고 편히 잠을 잤지. 그런데 어느 비 오는 오후, 할 일 없이 앉아 있다가 웬일인지 우리가 습격을 당할 수도 있다, 권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너도 알잖아, 그런 거. 나는 하인에게 권총을 닦아서 장전하라고 주었어. 그런데 그 녀석이 하녀들하고 노닥거리다가 겁을 주려고 하는 바람에, 어떻게 된 건지 하느님만 아시겠지만, 꽂을대가 아직 안에 꽂힌 채로 총이 발사돼서 꽂을대가 한 하녀의 오른손 엄지 밑 두툼한 데로 박혀 엄지를 박살 내 버렸어. 그래서 나는 하소연을 들어야 했고, 치료비까지 물어 줘야 했지. 그 뒤로 나는 총이란 총은 모두 장전하지 않고 둬. 이 사람아, 조심이 다 뭐야? 위험은 다 배워 둘 수가 없는 거야! 물론……" 너도 알지, 나는 그 사람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 '물론'만은 질색이야. 어떤 일반 명제에도 예외가 있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 아니야? 그런데 사람이란 그렇게 자기를 정당화하려 들어! 자기가 무언가 성급하거나 일반적이거나 반만 맞는 말을 했다 싶으면 끝도 없이 제한하고 고치고 덧붙였다 뺐다 해서, 마침내 그 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거야.

그리고 이번에도 그가 이야기에 아주 깊이 빠져드는 바람에 나는 끝내 더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변덕스러운 생각에 잠겼다가, 벌떡 하는 몸짓으로 권총 총구를 오른쪽 눈 위 이마에 갖다 댔어. "저런!" 알베르트가 내게서 권총을 끌어 내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짓이야?" "장전 안 돼 있어." 내가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그게 무슨 짓이냐고?" 그가 참지 못하고 대꾸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어서 제 손으로 자기를 쏠 수 있는지 상상이 안 돼. 생각만 해도 역겨워."

"너희들은 왜 어떤 일을 두고 이야기만 하면 대뜸 '그건 어리석다, 그건 영리하다, 그건 좋다, 그건 나쁘다!' 하고 말해야 하는 거야?" 내가 외쳤다. "그게 다 무슨 뜻이지? 그렇게 말하려고 행동의 속사정을 캐 보기라도 했어?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까닭을 확실하게 밝혀낼 수 있어? 그럴 수 있다면 너희가 그렇게 서둘러 판단하지는 않을 거야." "어떤 행동은 무슨 동기에서 나왔든 여전히 악덕이라는 건 너도 인정하겠지." 알베르트가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 말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친구, 여기에도 몇 가지 예외는 있어." 내가 말을 이었다. "도둑질이 악덕인 건 맞아. 그런데 당장 굶어 죽게 된 자기와 식구들을 살리려고 도둑질에 나선 사람은 동정을 받아야 할까, 벌을 받아야 할까? 정당한 분노로 부정한 아내와 그 몹쓸 유혹자를 죽인 남편에게 누가 먼저 돌을 던지겠어? 더없이 행복한 한때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기쁨에 몸을 맡긴 아가씨에게는? 그 냉혈한 현학자인 우리 법률조차 마음이 움직여 벌을 거두는데."

"그건 전혀 다른 문제야." 알베르트가 대꾸했다. "정열에 휩쓸린 사람은 판단력을 다 잃어서 술 취한 사람이나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니까." "아, 너희 분별 있는 사람들이란!" 나는 웃으며 외쳤다. "정열! 술 취함! 광기! 너희 도덕군자들은 그렇게 태연하게, 그렇게 아무 관심 없이 서 있지. 술꾼을 꾸짖고 정신 나간 사람을 혐오하고, 제사장처럼 그냥 지나쳐 가고, 바리새인처럼 하느님이 자기를 이런 사람들처럼 만들지 않으셨다고 감사하지. 나는 한 번 이상 술에 취해 보았고, 내 정열은 광기에서 그리 멀었던 적이 없어. 그런데도 나는 그 어느 쪽도 뉘우치지 않아. 무언가 위대한 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낸 비범한 사람들은 예로부터 모두 술 취한 사람이나 미친 사람으로 손가락질받아야 했다는 것을 나는 내 나름대로 깨달았으니까. 그런데 평범한 삶에서도 누가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고귀하고 뜻밖의 일을 하기만 하면 거의 누구나 뒤에서 '저 사람은 취했어, 저 사람은 바보야!' 하고 외치는 걸 듣는 건 견딜 수 없어. 부끄러운 줄 알아, 이 맨정신들아! 부끄러운 줄 알아, 이 현자들아!" "또 그 변덕이 시작됐군." 알베르트가 말했다. "너는 뭐든지 지나치게 몰아붙여. 그리고 적어도 이번에는 분명히 틀렸어. 지금 이야기하는 자살을 위대한 행동에 견주다니. 그건 나약함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일인데. 고통스러운 삶을 꿋꿋이 견디는 것보다는 죽는 편이 물론 더 쉬우니까."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데 누가 하찮은 상투어를 들고 나오는 것만큼 나를 평정을 잃게 하는 논증은 없어서, 나는 하마터면 이야기를 끊어 버릴 뻔했어.

그래도 나는 마음을 가다듬었어. 그런 말은 이미 여러 번 들었고 그때마다 더 자주 화를 냈으니까. 그리고 조금 열을 올려 그에게 대꾸했지. "그걸 나약함이라고 하는 거야? 부탁이니 겉모습에 속지 마. 폭군의 견딜 수 없는 멍에 아래 신음하던 민족이 마침내 들끓어 일어나 사슬을 끊는다면, 그걸 나약하다고 할 수 있어? 집에 불이 붙은 걸 보고 놀란 나머지 온 힘이 팽팽하게 당겨져서 평소 같으면 꿈쩍도 못 했을 짐을 가볍게 들어 나르는 사람, 모욕을 당한 분노로 여섯 사람을 상대해 다 때려눕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나약하다고 할 수 있어? 그리고 이봐, 애쓰는 것이 힘이라면 왜 지나치게 애쓰는 것이 그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알베르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쁘게 듣지 마. 네가 드는 예는 여기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 것 같아." "그럴지도 몰라." 내가 말했다. "생각을 엮어 가는 내 버릇이 이따금 횡설수설에 가깝다는 핀잔을 벌써 여러 번 들었지. 그러면 다른 길로, 그렇지 않았더라면 기꺼이 지고 갔을 삶의 짐을 내던지기로 결심하는 사람의 심정이 어떨지 그려 볼 수 있는지 보자. 우리가 함께 느끼는 만큼만,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으니까."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어." 내가 말을 이었다.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어느 정도까지는 견딜 수 있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면 무너지고 말아. 그러니 여기서 문제는 누가 약하냐 강하냐가 아니라, 그 고통이 마음의 것이든 몸의 것이든 자기 고통의 크기를 끝까지 견뎌 낼 수 있느냐 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하는 것은 악성 열병으로 죽은 사람을 비겁하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괴상한 말이라고 생각해."

"역설이야! 아주 역설이야!" 알베르트가 외쳤다. "네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지는 않아." 내가 대꾸했다.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부르는 게 어떤 건지는 너도 인정하겠지. 본성이 공격을 받아 그 힘이 한편으로는 다 소모되고 한편으로는 제구실을 못 하게 되어서,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없고 어떤 다행스러운 변화로도 생명의 평상시 흐름을 되찾을 수 없는 그런 병 말이야.

자, 친구, 이걸 정신에 적용해 보자. 좁은 테두리에 갇힌 사람을 봐. 인상들이 어떻게 그에게 작용하고 생각들이 어떻게 그 안에 뿌리내리는지, 그러다 마침내 점점 커지는 정열이 어떻게 그에게서 차분한 분별력을 모두 빼앗고 그를 파멸시키는지를.

침착하고 분별 있는 사람이 그 불행한 사람의 처지를 내려다본들, 그에게 아무리 타이른들 소용없어! 병자의 침대 곁에 선 건강한 사람이 자기 힘을 조금도 병자에게 불어넣어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야."

알베르트에게는 이게 너무 막연한 이야기여서, 나는 얼마 전에 물에 빠져 죽은 채 발견된 한 아가씨를 그에게 떠올려 주고 그 아가씨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어. "착하고 어린 아가씨였어. 집안일의 좁은 테두리 안에서 주마다 정해진 일을 하며 자랐지. 즐거움이라고는 기껏해야 일요일에 조금씩 모아 장만한 나들이옷을 차려입고 또래들과 시내 둘레를 산책하거나, 큰 명절마다 한 번쯤 춤을 추거나, 그 밖에는 말다툼이나 고약한 뒷말을 핑계 삼아 이웃 여자와 더없이 살갑게 맞장구치며 몇 시간씩 수다를 떠는 것밖에는 알지 못했어. 그런 아가씨의 뜨거운 천성이 마침내 더 절실한 욕구를 느끼게 되고, 남자들의 아첨이 그 욕구를 부추겨. 예전의 즐거움은 차츰 맛을 잃어 가다가, 마침내 낯선 감정이 아가씨를 걷잡을 수 없이 끌어당기는 한 남자를 만나게 돼. 아가씨는 이제 모든 희망을 그 남자에게 걸고, 주위의 세상을 잊고,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 오직 그 사람, 단 하나뿐인 그 사람만을 느끼고, 오직 그 사람, 단 하나뿐인 그 사람만을 그리워해. 덧없는 허영심의 헛된 즐거움에 물들지 않았으니 아가씨의 갈망은 곧장 목적을 향해 나아가. 그 남자의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영원히 맺어져서 자기에게 모자란 모든 행복을 찾고, 그리워하던 모든 기쁨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누리고 싶은 거야. 모든 희망을 확실하게 봉인해 주는 거듭된 약속, 욕망을 키우는 대담한 애무가 아가씨의 영혼을 온통 휘감아. 아가씨는 몽롱한 의식 속에, 모든 기쁨을 미리 맛보는 느낌 속에 떠다니고, 더할 수 없이 팽팽하게 당겨져서, 마침내 모든 소망을 끌어안으려고 두 팔을 뻗어. 그런데 그 연인이 아가씨를 버리는 거야. 아가씨는 얼어붙은 채 넋을 잃고 낭떠러지 앞에 서 있어. 주위는 온통 어둠이고, 앞날도 위안도 예감도 없어! 아가씨가 오직 그 사람 안에서만 자기 존재를 느꼈는데, 바로 그 사람이 아가씨를 버렸으니까. 아가씨는 눈앞에 펼쳐진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잃은 것을 메워 줄 수 있는 많은 사람을 보지 못해. 온 세상에 버림받아 혼자라고 느낄 뿐이야. 그리고 눈이 멀어 마음의 끔찍한 고통에 짓눌려 궁지에 몰린 채, 사방에서 감싸 오는 죽음 속에 모든 괴로움을 묻어 버리려고 아래로 몸을 던져. 봐, 알베르트, 이게 많은 사람의 이야기야! 그런데 말해 봐. 이게 병의 경우와 다를 게 뭐야? 본성은 뒤엉키고 서로 부딪치는 힘들의 미로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그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거야. 그걸 지켜보면서 '어리석은 여자 같으니! 기다렸더라면, 시간이 흐르게 내버려 두었더라면 절망은 가라앉았을 테고, 위로해 줄 다른 남자가 벌써 나타났을 텐데'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화를 입을 거야. 그건 마치 누가 '바보 같으니, 열병으로 죽다니! 기운이 돌아오고 체액이 맑아지고 핏속의 소동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더라면 다 잘되었을 테고, 오늘까지 살아 있을 텐데!' 하고 말하는 것과 똑같아."

알베르트는 그 비교가 아직 와닿지 않는지 몇 가지 반론을 더 폈어. 무엇보다 내가 단순한 아가씨 이야기만 했을 뿐, 그렇게 좁은 테두리에 갇혀 있지 않고 더 많은 관계를 내다보는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지 자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거야. "친구, 사람은 사람이야." 내가 외쳤다. "정열이 날뛰고 인간의 한계가 그를 몰아붙일 때는 누가 가졌을지 모를 그 알량한 분별 따위는 거의, 아니 전혀 쓸모가 없어. 오히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 모자를 집어 들었어. 오, 내 가슴은 그토록 벅찼는데……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헤어졌어. 이 세상에서 누구도 남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듯이.

8월 15일

세상에서 사람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어 주는 건 사랑밖에 없다는 게 분명해. 로테가 나를 잃으면 서운해하리라는 걸 나는 느끼고, 아이들은 내가 늘 내일 또 오리라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해. 오늘은 로테의 클라비어를 조율해 주려고 나갔는데 그럴 짬이 나지 않았어. 꼬마들이 옛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졸 따라다녔고, 로테도 아이들 소원을 들어주라고 했거든. 나는 아이들에게 저녁 빵을 잘라 주었어. 이제 아이들은 로테가 잘라 줄 때만큼이나 내가 잘라 주는 빵도 좋아해. 그리고 손들이 시중을 드는 공주 이야기에서 제일 재미있는 대목을 들려주었어. 정말이지 나는 이 일에서 많은 걸 배워. 그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인상을 남기는지 놀라울 정도야. 가끔 곁가지 이야기를 지어내야 할 때가 있는데, 두 번째에 그걸 잊어버리면 아이들은 대번에 저번에는 달랐다고 해서, 요즘 나는 같은 이야기를 노래하듯 일정한 가락에 실어 줄줄 한결같이 읊는 연습을 하고 있어. 이 일로 나는 깨달았어.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고쳐서 두 번째 판을 내면, 시로서는 아무리 나아졌다 해도 그 책에는 반드시 해가 되리라는 걸. 첫인상은 우리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만들고, 사람이란 아무리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도 믿게 할 수 있게 생겨 먹었어. 그런데 그건 곧 단단히 박혀 버려서, 그걸 다시 긁어내고 지워 버리려는 사람은 화를 입을 거야!

8월 18일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다시 그 사람의 불행의 샘이 되어야 했단 말인가?

살아 있는 자연을 향한 내 가슴의 충만하고 따뜻한 느낌, 그토록 큰 환희로 나를 흘러넘치게 하고 주위의 세상을 내게 낙원으로 만들어 주던 그 느낌이, 이제는 견딜 수 없는 고문자가, 어느 길에서나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악령이 되어 버렸어. 예전에 바위 위에서 강 너머 저 언덕들까지 펼쳐진 기름진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싹트고 솟아나는 것을 보았을 때, 저 산들이 기슭에서 꼭대기까지 키 크고 빽빽한 나무로 덮이고 저 골짜기들이 갖가지로 굽이치며 더없이 사랑스러운 숲 그늘에 잠긴 것을 보았을 때, 잔잔한 강이 속삭이는 갈대 사이로 미끄러져 가며 부드러운 저녁 바람이 하늘 저편으로 실어 오는 정다운 구름들을 비추었을 때, 그리고 내 주위의 숲을 새들이 살아나게 하는 소리를 듣고, 수백만 마리 날벌레 떼가 해의 마지막 붉은 빛줄기 속에서 신나게 춤추고, 마지막으로 떨리는 그 햇살이 윙윙거리는 풍뎅이를 풀숲에서 풀어 주고, 내 둘레의 붕붕거림과 꿈틀거림이 내 눈길을 땅으로 이끌고, 내 단단한 바위에서 양분을 억지로 짜내는 이끼와 메마른 모래 언덕을 따라 자라 내려가는 덤불이 자연의 속 깊고 뜨겁고 거룩한 생명을 내게 열어 보였을 때, 그때 나는 그 모든 것을 얼마나 내 따뜻한 가슴에 끌어안았던가. 넘쳐흐르는 충만함 속에서 나는 신이 된 것 같았고, 끝없는 세계의 장엄한 형상들이 모든 것을 살리며 내 영혼 속에서 움직였어. 거대한 산들이 나를 에워싸고, 낭떠러지가 내 앞에 놓이고, 폭우에 불어난 개울들이 쏟아져 내리고, 강물이 내 발아래로 흘러가고, 숲과 산이 울려 퍼졌어. 그리고 나는 그 모든 헤아릴 수 없는 힘들이 땅속 깊은 곳에서 서로 얽혀 일하고 지어내는 것을 보았어. 그리고 이제 땅 위, 하늘 아래에는 온갖 피조물의 종족이 우글거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천 가지 모습으로 가득 차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작은 집에 모여 몸을 지키고 둥지를 틀고는, 제 생각대로 이 넓은 세상을 다스린다고 여기지! 가엾은 바보! 너는 너무 작으니까 모든 것을 그토록 하찮게 여기는 거야. 아무도 오르지 못한 산에서 아무 발길도 닿지 않은 황야를 지나 알려지지 않은 대양의 끝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지어내는 분의 정신이 불어 가며, 그 정신을 알아듣고 살아 있는 티끌 하나하나를 기뻐하셔. 아, 그때 나는 내 머리 위로 날아가는 두루미의 날개를 빌려 끝없는 바다의 기슭으로 날아가고 싶어서 얼마나 자주 애태웠던가. 무한한 것의 거품 이는 잔에서 저 부풀어 오르는 삶의 환희를 마시고, 비록 한순간일지라도 좁은 내 가슴의 힘으로, 모든 것을 자기 안에서 자기를 통해 지어내는 그 존재의 더없는 행복을 한 방울이라도 느껴 보고 싶어서.

형제여,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이 나를 위로해 줘. 그 말로 다 할 수 없는 열망을 다시 불러내어 다시 말로 해 보려는 이 애씀조차 내 영혼을 그 자신보다 높이 들어 올리지만, 그런 다음에는 지금 나를 에워싼 처지의 두려움을 갑절로 느끼게 해.

내 영혼 앞에서 휘장이 걷힌 것 같아. 끝없는 생명의 무대가 내 앞에서 영원히 입을 벌린 무덤의 심연으로 바뀌어 버려. 모든 것이 지나가 버리는데, '이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어? 모든 것이 번개처럼 빠르게 굴러 지나가고, 자기 존재의 온 힘을 끝까지 지켜 내는 일은 그토록 드물고, 아, 물살에 휩쓸려 가라앉고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고 마는데? 너와 네 곁의 사람들을 갉아먹지 않는 순간은 한순간도 없고, 네가 파괴자가 아닌 순간, 파괴자일 수밖에 없지 않은 순간은 한순간도 없어. 더없이 순진한 산책 한 번이 수천 마리 가엾은 벌레의 목숨을 앗아 가고, 발길 한 번이 개미들이 애써 지은 집을 허물고 작은 세계 하나를 짓밟아 비참한 무덤으로 만들어 버려. 하! 나를 움직이는 건 세상의 크고 드문 재앙이 아니야. 너희 마을을 쓸어 가는 홍수, 너희 도시를 삼키는 지진이 아니야. 내 가슴을 파먹어 들어오는 건 자연 전체에 숨어 있는 그 갉아먹는 힘이야. 이웃을,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는 것은 하나도 지어내지 않은 그 힘. 그래서 나는 불안에 떨며 비틀거려.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서 쉼 없이 짜이는 힘들이 내 주위에 있는데, 나는 영원히 삼키고 영원히 되새김질하는 괴물밖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해.

8월 21일

아침에 무거운 꿈에서 어렴풋이 깨어날 때 나는 헛되이 로테를 향해 팔을 뻗고, 밤이면 풀밭에서 로테 곁에 앉아 그 손을 잡고 천 번의 입맞춤으로 덮는 행복하고 순진한 꿈에 속았다가, 잠자리에서 헛되이 로테를 찾아. 아, 그럴 때 아직 반쯤 잠에 취한 채 로테를 더듬어 찾다가 그 바람에 정신이 들면, 짓눌린 가슴에서 눈물이 강물처럼 터져 나오고, 나는 위로받을 길 없이 어두운 앞날을 향해 울어.

8월 22일

불행이야, 빌헬름. 내 활동하는 힘이 갈피 없는 나태로 어긋나 버렸어. 나는 빈둥거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상상력도 없고, 자연을 느끼지도 못하고, 책은 진저리가 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법이야. 맹세하지만, 나는 이따금 날품팔이가 되었으면 싶어. 아침에 눈을 뜰 때 다가올 하루에 대한 기대와 충동과 희망을 갖기 위해서라도. 서류 더미에 귀까지 파묻힌 알베르트를 보면 자주 부러워서, 내가 그의 자리에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해. 벌써 여러 번 이런 생각이 불쑥 치솟았어. 너와 대신에게 편지를 써서, 네가 장담하는 대로 내게 거절되지 않을 공사관 자리를 청해 볼까 하고. 나도 그렇게 믿어. 대신은 오래전부터 나를 아껴 왔고, 무슨 일이든 맡아 보라고 오래 권해 왔으니까. 한 시간쯤은 나도 정말 그러고 싶어.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 보면, 자유를 참지 못하고 안장과 마구를 얹게 했다가 녹초가 되도록 부림을 당하는 말의 우화가 떠올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리고 친구야! 처지가 바뀌었으면 하는 내 안의 이 갈망은, 어디를 가든 나를 따라다닐 마음속의 불편한 조바심이 아닐까?

8월 28일

정말이지 내 병을 고칠 수 있는 거라면 이 사람들이 고쳐 줄 거야. 오늘은 내 생일인데, 이른 아침에 알베르트한테서 작은 꾸러미가 왔어. 열어 보자마자 연분홍 리본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 내가 로테를 처음 만났을 때 로테가 달고 있던 리본이고, 그 뒤로 여러 번 달라고 졸랐던 거야. 꾸러미 안에는 작은 십이절판 책 두 권도 들어 있었어. 작은 베트슈타인판 호메로스야. 산책할 때 무거운 에르네스티판을 들고 다니지 않으려고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판이지. 봐! 이 사람들은 이렇게 내 바람을 앞질러 알아주고, 주는 사람의 허영심이 받는 우리를 깎아내리는 눈부신 선물보다 천 배는 더 귀한, 우정이 베풀 수 있는 온갖 작은 호의를 이렇게 찾아내 줘. 나는 이 리본에 천 번 입을 맞추고, 숨을 쉴 때마다 그 행복했던 며칠, 그 몇 안 되는 다시 오지 않을 날들이 나를 흘러넘치도록 채워 주던 더없는 행복의 기억을 들이마셔. 빌헬름, 그래, 그런 거야. 나는 불평하지 않아. 삶의 꽃은 한낱 겉모습일 뿐이야! 얼마나 많은 꽃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져 버리는지, 열매를 맺는 꽃은 얼마나 적고, 그 열매 가운데 익는 것은 또 얼마나 적은지! 그래도 그런 열매가 아직 넉넉히 있어. 그런데…… 오, 내 형제여! 다 익은 열매를 소홀히 하고, 업신여기고, 맛보지도 않은 채 썩게 내버려 둘 수 있을까?

잘 있어! 눈부신 여름이야. 나는 자주 로테네 과수원에서 과일나무에 올라앉아 긴 장대 끝에 달린 과일 따개로 꼭대기의 배를 따. 로테는 아래 서서 내가 내려 주는 배를 받아.

8월 30일

불행한 녀석! 너는 바보가 아니냐? 너 자신을 속이는 게 아니냐? 이 날뛰는 끝없는 정열은 다 뭐란 말이냐? 나는 이제 로테에게 드리는 기도 말고는 기도가 없고, 내 상상력 앞에는 로테의 모습 말고 다른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내 주위 세상의 모든 것을 나는 로테와 이어서만 봐. 그 덕분에 행복한 시간도 꽤 많아. 다시 로테에게서 나를 떼어 내야 할 때까지는! 아, 빌헬름! 내 가슴이 나를 어디로 몰아가는지! 로테 곁에 두세 시간 앉아서 그 모습과 몸가짐과 그 말의 거룩한 표정에 넋을 놓고 있으면, 차츰 내 모든 감각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귀가 거의 들리지 않고, 자객처럼 무언가가 내 목을 조르고, 그러면 내 가슴이 거세게 뛰며 짓눌린 감각에 숨통을 틔워 주려 하지만 오히려 그 혼란을 더할 뿐이야. 빌헬름, 그럴 때는 내가 이 세상에 있는지조차 모르겠어! 그리고…… 이따금 서글픔이 이겨서 로테가 내 답답한 가슴을 자기 손 위에서 울음으로 풀어 내는 비참한 위안을 허락해 주지 않으면, 나는 나가야만 해. 밖으로 나가서 들판을 멀리 헤매고 다녀. 그럴 때는 가파른 산을 기어오르는 것이, 길 없는 숲에서 길을 헤쳐 나가는 것이, 나를 할퀴는 덤불을, 나를 찢는 가시밭을 뚫고 나가는 것이 내 즐거움이야! 그러면 조금 나아져! 조금! 그리고 지치고 목이 말라 이따금 길에 쓰러져 누울 때면, 이따금 깊은 밤에 높이 뜬 보름달 아래 외로운 숲속에서 구부러진 나무에 걸터앉아 상처 난 발바닥을 조금이라도 달래 주다가 지친 고요 속에 어스름 빛을 받으며 스르르 잠이 들 때면! 오, 빌헬름! 외딴 수도원의 방 한 칸, 거친 털옷과 가시 박힌 허리띠가 내 영혼이 목말라하는 위안일 거야. 잘 있어! 무덤 말고는 이 비참함의 끝이 보이지 않아.

9월 3일

나는 떠나야 해! 고마워, 빌헬름. 흔들리던 내 결심을 네가 굳혀 주었어. 벌써 두 주째 나는 로테를 떠날 생각을 품고 지내고 있어. 나는 떠나야 해. 로테는 다시 시내의 어느 벗 집에 가 있어. 그리고 알베르트는…… 그리고…… 나는 떠나야 해!

9월 10일

얼마나 대단한 밤이었는지! 빌헬름! 이제 나는 무엇이든 견뎌 낼 수 있어. 나는 다시는 로테를 보지 않을 거야! 오, 네 목에 매달려 천 줄기 눈물과 황홀 속에서 내 가슴에 몰아치는 감정들을 네게 털어놓을 수 없다니, 내 좋은 친구. 나는 여기 앉아 숨을 헐떡이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고, 아침을 기다리고 있어. 해가 뜨면 말이 오기로 되어 있어.

아, 로테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고, 다시는 나를 못 보리라는 건 생각도 못 하겠지. 나는 나를 떼어 냈어. 두 시간이나 이야기하는 동안 내 계획을 들키지 않을 만큼 강했어. 그런데 하느님,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였는지!

알베르트가 저녁을 먹고 나서 곧 로테와 함께 정원으로 나오겠다고 약속해서, 나는 테라스의 키 큰 밤나무 아래 서서, 이제 마지막으로 사랑스러운 골짜기 위로, 잔잔한 강 위로 지는 해를 지켜보았어. 이 자리에 로테와 함께 서서 바로 이 장엄한 광경을 지켜본 적이 얼마나 많았는데, 이제는…… 나는 그토록 사랑하던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거닐었어. 로테를 알기도 전부터 어떤 은밀한 끌림이 나를 이곳에 붙들어 두곤 했는데, 사귀기 시작한 무렵 우리 둘 다 이 작은 자리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기뻐했던가. 이곳은 사람의 솜씨로 지어낸 것들 가운데 내가 본 가장 낭만적인 곳 가운데 하나야.

처음에는 밤나무 사이로 넓은 전망이 펼쳐지지…… 아, 생각나. 너한테 벌써 이 이야기를 많이 썼던 것 같아. 키 큰 너도밤나무 울타리가 마침내 사람을 에워싸고, 그 옆에 붙은 작은 숲 때문에 가로수 길이 점점 어두워지다가, 마침내 모든 것이 닫힌 작은 자리 하나로 끝나는데, 거기에는 고독의 온갖 전율이 떠돌고 있어. 한낮에 처음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얼마나 은밀한 느낌이 들었는지 나는 아직도 느끼는데, 그곳이 앞으로 더없는 행복과 고통의 무대가 되리라는 것을 그때 나는 아주 어렴풋이 예감했어.

나는 떠남과 다시 만남을 생각하며 애타고 달콤한 생각에 반 시간쯤 잠겨 있다가, 두 사람이 테라스로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마주 달려가, 전율하며 로테의 손을 잡아 입을 맞추었어. 우리가 막 올라섰을 때 덤불 우거진 언덕 뒤로 달이 떠올랐어.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새 어두운 정자 가까이 와 있었어. 로테가 안으로 들어가 앉았고, 알베르트가 그 곁에, 나도 앉았어. 하지만 마음이 불안해서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 일어나 로테 앞에 섰다가, 이리저리 거닐다가, 다시 앉았어. 조마조마한 처지였지. 로테는 너도밤나무 울타리 끝에서 우리 앞의 테라스 전체를 비추는 달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라고 했어. 우리 둘레가 온통 짙은 어스름에 싸여 있어서 그만큼 더 놀라운 장관이었어. 우리는 말이 없었고, 잠시 뒤 로테가 입을 열었어. "달빛 아래를 거닐 때면 꼭 먼저 세상을 떠난 제 식구들 생각이 나요. 죽음과 저세상에 대한 느낌이 덮쳐 오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우리는 그 뒤에도 있을 거예요!" 로테는 더없이 장엄한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베르테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다시 알아볼 수 있을까요? 어떤 예감이 드세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로테, 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 나는 로테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눈에 눈물이 그득 고였다. "여기서도, 저 세상에서도 다시 만날 거예요!" 나는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어. 빌헬름, 이 애타는 작별을 가슴에 품고 있는 나에게 로테가 꼭 그걸 물어야 했을까!

"그리고 먼저 간 사랑하는 이들이 우리를 알고 있을까요?" 로테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잘 지낼 때, 우리가 따뜻한 사랑으로 그분들을 떠올릴 때 그걸 느낄까요? 오! 고요한 저녁에 어머니의 아이들, 이제는 제 아이들인 그 애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그 애들이 어머니 둘레에 모여 있던 것처럼 제 둘레에 모여 있으면, 어머니의 모습이 늘 제 주위를 떠돌아요. 그럴 때 그리운 눈물을 머금고 하늘을 바라보며, 어머니가 임종 때 제가 드린 약속,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겠다는 그 약속을 제가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잠깐이라도 들여다보실 수 있기를 바라요. 그러면 제가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외치는지 몰라요. '용서해 주세요, 소중한 어머니. 제가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해 주신 만큼 해 주지 못한다면요. 아! 그래도 저는 할 수 있는 걸 다 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입고 먹고, 아, 그리고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있어요. 우리가 얼마나 사이좋게 지내는지 보실 수 있다면, 사랑하는 거룩한 분이시여! 아이들의 행복을 빌며 마지막으로 가장 쓰라린 눈물을 흘리셨던 그 하느님을 더없이 뜨거운 감사로 찬양하실 거예요.'" 로테가 그렇게 말했어! 오, 빌헬름, 로테가 한 말을 누가 되풀이할 수 있겠어! 차갑게 죽은 글자가 어떻게 이 거룩한 정신의 꽃을 그려 낼 수 있겠어! 알베르트가 부드럽게 로테의 말을 끊었다. "너무 마음을 쓰는군요, 로테! 로테의 영혼이 이런 생각에 깊이 기울어 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부탁이에요." "오, 알베르트." 로테가 말했다. "당신도 잊지 않았지. 아버지가 여행을 떠나시고 우리가 꼬마들을 재우고 나서 작고 둥근 탁자에 함께 앉아 있던 그 저녁들을. 당신은 자주 좋은 책을 가지고 왔지만 읽을 틈은 거의 없었지. 그 훌륭한 영혼과 함께 지내는 게 무엇보다 소중하지 않았어? 아름답고 부드럽고 쾌활하고 늘 부지런하던 분! 내가 잠자리에서 하느님 앞에 엎드려 어머니처럼 되게 해 달라고 얼마나 자주 울며 빌었는지 하느님은 아셔."

"로테!" 나는 로테 앞에 엎드려 그 손을 잡고 천 줄기 눈물로 적시며 외쳤다. "로테! 하느님의 축복이, 그리고 어머니의 영혼이 로테 위에 머물러 있어요!" "그분을 아셨더라면." 로테가 내 손을 꼭 쥐며 말했다. "베르테르 씨가 알아 두실 만한 분이었어요!"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어.

내게 그보다 더 크고 더 자랑스러운 말이 건네진 적은 없었어. 로테는 말을 이었어. "그런 분이 꽃다운 나이에 떠나셔야 했어요. 막내아들이 여섯 달도 안 되었을 때요! 병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차분하셨고 다 받아들이셨어요. 다만 아이들이, 특히 젖먹이가 마음에 걸려 괴로워하셨어요. 마지막이 다가오자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오렴!' 하셨고,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갔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것들과 넋이 나간 큰아이들이 침대 둘레에 섰을 때, 어머니는 두 손을 들어 아이들 위에서 기도하시고, 차례로 입을 맞추고는 내보내셨어요. 그리고 제게 말씀하셨어요.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주렴!' 저는 손을 드리며 약속했어요! '많은 걸 약속하는구나, 내 딸아.' 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어머니의 마음과 어머니의 눈을 약속하는 거야. 네가 고마워하며 흘리는 눈물을 보고, 그게 어떤 건지 네가 느낀다는 걸 나는 자주 알았단다. 동생들에게는 그 마음을 주고, 아버지에게는 아내의 신의와 순종을 드려라. 네가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거야.'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으셨지만 아버지는 밖에 나가 계셨어요.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보이지 않으려고요. 아버지는 완전히 무너져 계셨어요.

알베르트, 당신도 방에 있었지. 어머니는 누가 걸어가는 소리를 듣고 누구냐고 물으시고는 당신을 곁으로 부르셨어. 그리고 당신과 나를 바라보셨어. 우리가 행복하리라는 것을, 함께 행복하리라는 것을 믿고 안심하신 평온한 눈길로." 알베르트가 로테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외쳤다. "우리는 행복해! 앞으로도 행복할 거야!" 그 침착하던 알베르트가 완전히 평정을 잃었고, 나는 나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몰랐어. "베르테르." 로테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런 분이 떠나셔야 했다니! 하느님! 사람이 자기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을 남이 메고 가게 내버려 둬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고 그걸 그토록 아프게 느끼는 건 아이들뿐이라는 걸 생각하면요. 아이들은 검은 옷 입은 아저씨들이 엄마를 메고 갔다고 오랫동안 하소연했어요!" 로테가 일어섰어. 나는 정신이 번쩍 들며 뒤흔들린 채 그대로 앉아 로테의 손을 잡고 있었어. "그만 가요." 로테가 말했다. "시간이 됐어요." 로테가 손을 빼려 했지만 나는 더 꼭 잡았어. "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 내가 외쳤다. "우리는 서로를 찾아낼 거예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거예요. 나는 떠나요." 내가 말을 이었다. "기꺼이 떠나요. 그래도 영원히 떠난다고 말해야 한다면 견딜 수 없을 거예요. 잘 있어요, 로테! 잘 있어, 알베르트! 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 "내일 말이죠?" 로테가 농담처럼 대꾸했다. 나는 그 '내일'이 가슴에 사무쳤어! 아, 로테는 몰랐어. 내 손에서 자기 손을 빼낼 때…… 두 사람은 가로수 길로 걸어 나갔어. 나는 선 채로 달빛 속에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땅바닥에 몸을 던져 실컷 울고는, 벌떡 일어나 테라스로 달려 나가 저 아래 키 큰 보리수 그늘 속에서 정원 문 쪽으로 로테의 흰 옷자락이 아른거리는 것을 아직 보았어. 나는 두 팔을 뻗었고, 그것은 사라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