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권
1 영혼아, 너는 언젠가 선하고 단순하고 하나이며 벌거벗은 모습이 되어, 너를 둘러싼 몸보다 더 또렷이 드러나게 될까? 언젠가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맛보게 될까? 언젠가 가득 차서 아쉬울 것이 없고, 쾌락을 누리려고 살아 있는 것이든 살아 있지 않은 것이든 무엇 하나 그리워하거나 탐내지 않게 될까? 더 오래 누릴 시간도, 장소나 고장이나 좋은 날씨도, 마음 맞는 사람들도 바라지 않게 될까? 그 대신 지금 처지에 만족하고 지금 곁에 있는 모든 것을 기뻐하며, 스스로를 이렇게 설득하게 될까? 모든 것은 신들에게서 와서 네 곁에 있고, 모든 것이 너에게 좋으며 앞으로도 좋으리라고. 신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 그리고 완전한 생명체를 지키려고 신들이 앞으로 내줄 것은 모두 그러하리라고. 그 생명체는 선하고 의롭고 아름다우며, 모든 것을 낳고 한데 묶고 감싸 안으며, 해체되는 것들을 끌어안아 그와 비슷한 다른 것들이 생겨나게 한다. 너는 언젠가 신들과 사람들과 한 도시의 시민으로 어울려 살면서, 그들을 조금도 탓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비난도 받지 않는 그런 영혼이 될까?
2 자연의 다스림만 받는 존재로서 네 본성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살펴라. 그런 다음 그것을 행하고 받아들여라. 다만 동물로서 네 본성이 그 때문에 더 나빠지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라. 다음에는 동물로서 네 본성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살피고, 그것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이성적 동물로서 네 본성이 그 때문에 더 나빠지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라. 그리고 이성적인 것은 곧 시민다운 것이기도 하다. 이 잣대들을 쓰되, 그 밖의 일에 쓸데없이 매달리지 마라.
3 일어나는 모든 일은 네가 본디 견딜 수 있게 일어나거나, 견딜 수 없게 일어나거나 둘 중 하나다. 네가 본디 견딜 수 있게 일어난다면 언짢아하지 말고, 타고난 대로 견뎌라. 견딜 수 없게 일어난다면 그래도 언짢아하지 마라. 그 일은 너를 다 써 버리고 나면 저도 사라질 것이다. 다만 기억하라. 네 판단에 달린 것이라면, 곧 그렇게 하는 것이 네게 이롭다거나 네가 마땅히 할 일이라고 여김으로써 견딜 만하고 참을 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너는 무엇이든 본디 견딜 수 있다.
4 그가 실수하거든 너그럽게 가르치고, 놓친 것을 보여 주어라. 그럴 수 없다면 너 자신을 탓하라. 아니, 너 자신조차 탓하지 마라.
5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영원 전부터 너를 위해 미리 마련되어 있었다. 원인들의 얽힘이 영원 전부터 네 존재와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함께 자아 왔다.
6 원자들이거나 자연이거나, 먼저 이것을 확고히 해 두자. 나는 자연이 다스리는 전체의 한 부분이다. 다음으로, 나는 나와 같은 종류인 부분들과 한 집안처럼 얼마간 맺어져 있다. 이것들을 기억하는 한, 나는 부분인 만큼 전체가 나눠 주는 어떤 것에도 불만을 품지 않을 것이다. 전체에 이로운 것은 무엇이든 부분에게 해롭지 않기 때문이다. 전체는 자기에게 이롭지 않은 것을 품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본성에 공통된 점이지만, 우주의 본성은 여기에 더해 어떤 바깥 원인에게도 강요당해 제게 해로운 것을 낳는 일이 없다. 그러니 내가 이런 전체의 부분임을 기억하는 한 나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고, 나와 같은 종류인 부분들과 맺어져 있는 한 공동체를 거스르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같은 종류인 것들을 헤아리고, 내 모든 충동을 모두에게 이로운 쪽으로 이끌며 그 반대쪽에서는 거두어들일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지면 삶은 순조롭게 흐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시민들에게 이로운 행동을 하며 나아가고 도시가 나눠 주는 것은 무엇이든 반기는 시민의 삶이 순조롭게 흐르리라고 네가 생각하는 것과 같다.
7 전체의 부분들, 곧 우주가 본디 품고 있는 모든 것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소멸이란 변한다는 뜻으로 해 두자. 이것이 부분들에게 본디 나쁜 일이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부분들이 변화를 향해 가고 저마다 다르게 소멸하도록 지어져 있는 터에 전체가 훌륭하게 굴러갈 리 없다. 자연이 몸소 제 부분들을 해치려고, 그것들을 악에 쉽게 빠지고 어쩔 수 없이 악에 떨어지게 만들려고 작정했겠는가? 아니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자연이 몰랐겠는가? 둘 다 믿기 어렵다. 누가 자연이라는 말을 아예 빼고 이것들이 본디 그렇게 생겨 먹었다고 설명한다 해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전체의 부분들이 본디 바뀌게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연에 어긋나는 무슨 일이 벌어진 듯 놀라거나 언짢아하니 말이다. 더구나 해체는 저마다를 이루고 있던 바로 그것들로 돌아가는 일이다. 해체란 무언가를 이루었던 원소들이 흩어지는 일이거나, 단단한 것은 흙 같은 것으로, 숨 같은 것은 공기 같은 것으로 바뀌는 일이다. 그래서 이것들도 전체의 이성 속으로 다시 거두어진다. 그 전체가 주기마다 불에 타 버리든, 영원한 교체로 새로워지든 마찬가지다. 단단한 것도 숨 같은 것도 처음 태어날 때부터 지녀 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모두 어제나 그제 먹은 음식과 들이마신 공기에서 흘러든 것이다. 그러니 바뀌는 것은 이렇게 받아들인 것이지, 네 어머니가 낳은 것이 아니다. 그것이 너를 저 고유한 성질을 띤 것(idiōs poion)에 아주 단단히 엮어 놓는다고 해 보자. 내 생각에 그 고유한 성질은 지금 하는 이야기와 아무 상관이 없다.
8 선한 사람, 염치 있는 사람, 진실한 사람, 마음이 깨어 있는(emphrōn) 사람, 마음을 함께하는(symphrōn) 사람, 마음이 드높은(hyperphrōn) 사람.1 스스로에게 이런 이름을 붙였거든,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 이름들을 잃더라도 서둘러 되찾아라. 기억하라. '마음이 깨어 있다'는 말은 하나하나를 가려 살피는 주의력과 무엇 하나 건성으로 넘기지 않는 태도를 뜻했다. '마음을 함께한다'는 말은 공통의 자연이 나눠 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뜻했다. '마음이 드높다'는 말은 생각하는 부분이 살의 부드럽거나 거친 움직임 위로, 하찮은 명성과 죽음과 그 밖의 그런 것들 위로 높이 솟는 것을 뜻했다.
남들이 너를 그런 이름으로 불러 주기를 탐내지 않고 이 이름들 안에 너를 지켜 낸다면, 너는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삶으로 들어설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머물면서 이런 삶 속에서 찢기고 더럽혀지는 것은 지독하게 무디고 목숨에 연연하는 자나 할 짓이다. 맹수와 싸우는 투사들 가운데 반쯤 뜯어먹힌 채 상처와 핏덩이로 범벅이 되고서도, 그 몰골 그대로 내일 똑같은 발톱과 이빨 앞에 다시 내던져질 텐데도 하루만 더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자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이 몇 안 되는 이름을 배 삼아 올라타라. 거기 머물 수 있다면, 축복받은 자들의 섬2으로 옮겨 가 사는 사람처럼 머물러라. 그러나 미끄러져 떨어지고 붙들지 못한다고 느끼거든, 네가 버텨 낼 수 있는 어느 구석으로 담대하게 물러나라. 아니면 아예 삶에서 걸어 나가라. 성내지 말고, 단순하고 자유롭고 염치 있게. 삶에서 적어도 이 한 가지, 그렇게 떠나는 일만은 해낸 사람으로서.
이 이름들을 기억하는 데는 신들을 기억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된다. 신들은 아첨받기를 바라지 않으며, 이성적인 존재는 모두 자기들을 닮기를,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나무의 일을, 개는 개의 일을, 벌은 벌의 일을, 사람은 사람의 일을 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기억하라.
9 광대극, 전쟁, 허둥댐, 무기력, 굴종. 이것들이 날마다 네 성스러운 원칙들을 지워 버릴 것이다. 자연을 탐구하지 않은 채 떠올렸다가 흘려보내는 원칙이라면 모두. 모든 것을 보고 행할 때는 실천하는 힘이 완성되는 동시에 관조하는 힘도 일하게 하고, 하나하나를 아는 데서 오는 자신감은 드러나지 않게, 그러나 숨기지도 않고 지켜 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언제 단순함을 누리겠는가? 언제 진중함을 누리겠는가? 언제 하나하나를 제대로 알아보는 즐거움을 누리겠는가? 그것이 실체로는 무엇이며, 우주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본디 얼마나 오래 버티게 되어 있으며,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누구에게 속할 수 있으며, 누가 그것을 주고 빼앗을 수 있는지를.
10 거미는 파리 한 마리를 잡고 우쭐한다. 어떤 사람은 토끼 새끼를, 어떤 사람은 그물로 잔고기를, 어떤 사람은 멧돼지 새끼를, 어떤 사람은 곰을, 어떤 사람은 사르마티아인3을 잡고 우쭐한다. 원칙을 따져 보면 이들은 다 강도가 아닌가?
11 모든 것이 어떻게 서로 바뀌어 가는지 관조하는 방법을 익히고, 늘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 분야에서 꾸준히 단련하라. 이만큼 도량을 키워 주는 것은 없다. 그런 사람은 몸을 벗어 던졌다. 머지않아 사람들 곁을 떠나며 이 모든 것을 두고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서, 자기가 하는 일에서는 정의에, 그 밖에 일어나는 일에서는 우주의 본성에 자신을 온통 내맡겼다. 누가 자기를 두고 무슨 말을 하거나 무슨 생각을 하거나 자기에게 맞서 무슨 짓을 하든 마음에 두지도 않는다. 지금 하는 일을 올바르게 하고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사랑하는 것, 이 두 가지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온갖 분주함과 열성을 내려놓았고, 법을 따라 곧은 길을 끝까지 가는 것, 그리고 곧은 길을 가는 신을 따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12 무엇을 해야 할지 살펴볼 수 있는데 넘겨짚을 필요가 어디 있는가? 훤히 보이면 흔쾌히, 뒤돌아보지 말고 그 길로 가라. 보이지 않으면 멈추고 가장 좋은 조언자들에게 물어라. 다른 무엇이 이를 가로막으면, 정의로워 보이는 것을 붙든 채 지금 주어진 형편에 따라 따져 가며 나아가라. 그것을 이루는 것이 가장 좋다. 실패란 결국 거기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서 이성을 따르는 사람은 느긋하면서도 재빠르고, 밝으면서도 침착하다.
13 잠에서 깨자마자 스스로에게 물어라. 정의롭고 훌륭한 일을 남이 비난한다고 해서 너에게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아무 차이도 없다. 남을 칭찬하고 헐뜯으며 거들먹거리는 이 사람들이 잠자리에서는 어떤 자들이고 밥상머리에서는 어떤 자들인지, 무슨 짓을 하고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좇으며 무엇을 훔치고 무엇을 빼앗는지 잊었는가? 그것도 손발로가 아니라 자기 안의 가장 귀한 부분으로 그런다는 것을. 그 부분은 마음만 먹으면 신의가 되고, 염치가 되고, 진실과 법과 선한 신령이 되는데도 말이다.
14 배우고 염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주고 도로 거두는 자연에게 말한다. "주고 싶은 것을 주어라. 거두고 싶은 것을 거두어 가라." 그는 이 말을 허세 부리며 하지 않는다. 그저 순순히 따르며 자연에게 선의를 품고 할 뿐이다.
15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산속에 있는 듯 살아라. 우주를 한 도시로 여기며 어디서나 그렇게 산다면, 거기서 살든 여기서 살든 아무 차이가 없다. 사람들이 보게 하라. 본성에 맞게 사는 참된 사람을 그들이 지켜보게 하라. 견딜 수 없다면 그들이 그를 죽이게 하라. 그렇게 사느니 그 편이 낫다.
16 선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두고 더는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고, 그런 사람이 되어라.
17 영원 전체와 실체 전체를 끊임없이 마음에 그려라. 그리고 개별적인 것은 모두 실체에 견주면 무화과 씨 한 알이고, 시간에 견주면 송곳 한 바퀴라는 것도.
18 눈앞의 것 하나하나에 눈길을 멈추고, 그것이 벌써 해체되며 변하고 있다고, 말하자면 썩거나 흩어지고 있다고, 아니면 저마다 본디 정해진 대로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라.
19 먹고 자고 짝짓고 똥 누고 그 밖의 일을 할 때 그들은 어떤 꼴인가? 그다음 주인 행세를 하며 거들먹거리거나, 성을 내며 높은 데서 호통칠 때는 어떤 꼴인가? 조금 전만 해도 그들은 얼마나 많은 자들에게, 무엇 때문에 종노릇을 했던가. 그리고 조금 뒤면 또 그런 처지에 놓일 것이다.
20 우주의 본성이 저마다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저마다에게 이롭다. 그것도 우주의 본성이 가져다주는 바로 그때 이롭다.
21 "땅은 비를 사랑하고, 장엄한 하늘도 사랑한다."4 그리고 우주는 장차 일어날 일을 이루기를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우주에게 말한다. 나도 너와 함께 사랑한다고. "이런 일은 일어나기를 사랑한다(philei)"는 말도 바로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닌가?5
22 너는 여기서 살며 이미 익숙해졌거나, 바깥으로 떠나며 그것이 네가 바라던 바이거나, 죽으며 네 소임을 다 마쳤거나, 셋 중 하나다.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기운을 내라.
23 이것을 늘 또렷이 보라. 시골이라는 것도 결국 이와 같고, 여기 있는 모든 것이 산꼭대기나 바닷가나 네가 원하는 어디에 있는 것과 똑같다. 플라톤의 말을 그대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말한다. "산속에 우리를 둘러치고, 우는 양 떼의 젖을 짠다."6
24 내 지도 이성(hēgemonikon)은 내게 무엇인가? 나는 지금 그것을 어떤 것으로 만들고 있는가? 지금 그것을 무엇에 쓰고 있는가? 정신이 텅 비어 있지는 않은가? 공동체에서 풀려나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는가? 이 살덩이에 녹아 붙고 뒤섞여서 살덩이와 함께 이리저리 쏠리지는 않는가?
25 주인에게서 달아나는 자는 도망 노예다. 법이 주인이니, 법을 어기는 자도 도망 노예다. 그런데 괴로워하거나 성내거나 두려워하는 자는 만물을 다스리는 이가 정해 둔 일 가운데 무언가가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나리라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만물을 다스리는 이가 곧 법(nomos)이며, 저마다에게 돌아갈 몫을 나누어 준다(nemōn).7 그러니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성내는 자는 도망 노예다.
26 사람은 씨를 자궁에 떨구고 물러난다. 그 뒤로는 다른 원인이 넘겨받아 일하고 아기를 빚어낸다. 무엇에서 무엇이 나오는가! 또 사람은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그 뒤로는 다른 원인이 넘겨받아 감각과 충동을, 요컨대 생명과 힘과 그 밖의 것들(얼마나 많고, 또 어떤 것들인가!)을 만든다. 이렇게 감추어진 채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고, 그 힘을 보라. 무게로 끌어내리는 힘과 위로 밀어 올리는 힘을 보듯이, 눈으로는 아니지만 그 못지않게 또렷이.
27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전에도 이와 똑같이 일어났다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라. 앞으로도 그렇게 일어나리라는 것도 생각하라. 네가 몸소 겪었거나 옛 역사에서 알게 된 같은 모양의 연극과 무대를 통째로, 이를테면 하드리아누스의 궁정 전체와 안토니누스의 궁정 전체,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와 크로이소스의 궁정 전체를 눈앞에 떠올려 보라. 그것들은 모두 지금과 같았고, 다만 다른 사람들이 연기했을 뿐이다.
28 무슨 일에든 괴로워하거나 언짢아하는 사람은 모두 제물로 바쳐지며 발버둥 치고 꽥꽥대는 새끼 돼지와 같다고 생각하라. 침상에서 홀로 말없이 신음하는 사람도 그와 같다. 우리가 묶여 있는 처지를 생각하라. 그리고 일어나는 일을 기꺼이 따르는 것은 이성적 동물에게만 주어졌고, 그저 따르는 것은 모두에게 필연이라는 것을.
29 네가 하는 일 하나하나에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라. 이것을 못 하게 된다고 해서 죽음이 무서운 것인가?
30 누군가의 잘못에 비위가 상하거든 곧바로 눈을 돌려 너도 그와 비슷한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지 따져 보라. 이를테면 돈이나 쾌락이나 하찮은 명성 따위를, 종류야 어떻든 선이라고 판단하는 잘못 말이다. 여기에 마음을 쏟으면 금세 노여움을 잊을 것이다. 그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내몰리고 있다는 생각이 함께 떠오를 테니까. 그가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아니면, 할 수 있다면 그를 내모는 것을 그에게서 떼어 내 주어라.
31 사티리온을 보거든 소크라티코스나 에우티케스나 히멘을 떠올려라. 에우프라테스를 보거든 에우티키온이나 실바누스를, 알키프론을 보거든 트로파이오포로스를, 세베루스를 보거든 크리톤이나 크세노폰을 떠올려라.8 너 자신을 들여다보거든 황제들 가운데 누군가를 떠올려라. 누구를 보든 그에 맞먹는 사람을 떠올려라. 그런 다음 이런 생각이 함께 들게 하라.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 아니면 어딘지 모를 곳에 있다. 그렇게 하면 사람의 일이 연기이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끊임없이 보일 것이다. 한번 바뀐 것은 끝없는 시간 속에서 다시는 있지 않으리라는 것까지 함께 떠올린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애를 태우는가? 이 짧은 시간을 단정하게 건너가는 것으로 왜 만족하지 못하는가? 너는 얼마나 좋은 질료와 과제를 피해 다니는가! 이 모든 것이 삶의 일들을 정확하게, 자연을 탐구하는 눈으로 꿰뚫어 본 이성이 단련할 거리 말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이것들까지 네 것으로 만들 때까지 버텨라. 튼튼한 위가 무엇이든 제 것으로 삭이고, 활활 타는 불이 무엇을 던져 넣든 거기서 불꽃과 빛을 일으키듯이.
32 누구도 너를 두고 단순하지 않다거나 선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 말이 참이 되게 하지 마라. 너를 두고 그런 생각을 품는 자는 누구든 거짓말쟁이가 되게 하라. 이것은 모두 네게 달려 있다. 네가 선하고 단순한 사람이 되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할 바에야 더는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이성도 네가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33 주어진 이 질료를 두고 가장 건전하게 할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너는 그것을 하거나 말할 수 있다. 무엇에 가로막혔다는 핑계를 대지 마라. 쾌락을 좇는 자들에게 사치가 즐거움이듯, 네 앞에 놓이고 네 손에 떨어지는 질료를 두고 사람의 본바탕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너에게 즐거움이 되기 전에는, 너는 한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기 본성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즐거움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서나 할 수 있다. 원통에게는 어디서나 제 움직임대로 굴러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물도, 불도, 자연이나 이성 없는 영혼이 다스리는 그 밖의 것들도 마찬가지다. 가로막고 버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과 이성은 맞서 오는 모든 것을 뚫고 본디 생긴 대로, 또 원하는 대로 나아갈 수 있다.
불이 위로, 돌이 아래로, 원통이 비탈 아래로 가듯 이성이 모든 것을 뚫고 나아가는 이 수월함을 눈앞에 두고, 더는 아무것도 찾지 마라. 그 밖의 걸림돌은 송장 같은 이 몸뚱이에만 닿는다. 아니면, 판단이 끼어들어 이성이 스스로 굽히지만 않으면, 무엇 하나 부수지도 못하고 조금도 해를 끼치지 못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일을 겪는 사람 자신이 곧바로 나빠졌을 것이다. 다른 모든 지어진 것들은 무엇이든 나쁜 일을 당하면 그 때문에 당한 것 자체가 더 나빠지지만, 사람은,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닥쳐오는 일을 올바르게 쓸 때 오히려 더 나아지고 더 칭찬받을 만해진다. 한마디로 기억하라. 본디 시민인 자에게는 도시를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도 해가 되지 않고, 법을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도시도 해치지 않는다. 그런데 불운이라 불리는 이런 것들 가운데 법을 해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법을 해치지 않는 것은 도시도 시민도 해치지 않는다.
34 참된 원칙에 흠뻑 젖은 사람에게는 아주 짧은 말, 누구나 아는 흔한 말 한마디로도 괴로움과 두려움을 떨치라는 일깨움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이다. "잎은 바람이 땅 위에 흩뿌리니 / 사람의 세대도 그와 같다."9 네 어린 자식들도 잎새다. 그럴듯하게 환호하고 칭송하는 자들도, 반대로 저주를 퍼붓거나 뒤에서 조용히 헐뜯고 비웃는 자들도 잎새다. 죽은 뒤의 명성을 이어받을 자들도 똑같이 잎새다. 이것들은 모두 "봄철이 오면 돋아난다." 그러다 바람이 떨구고, 숲은 그 자리에 다른 잎을 틔운다. 짧게 사는 것은 모두에게 공통이다. 그런데 너는 모든 것이 영원히 있을 것처럼 피하고 좇는다. 조금 있으면 너도 눈을 감을 것이고, 너를 무덤까지 메고 간 사람을 곧 다른 누군가가 애도할 것이다.
35 건강한 눈은 보이는 것을 모두 보아야 하고, "푸른 것만 보고 싶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눈병 난 눈이 하는 소리다. 건강한 귀와 코도 들리는 것, 냄새 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채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건강한 위는 맷돌이 갈도록 만들어진 모든 것을 대하듯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똑같이 대해야 한다. 그러니 건강한 마음도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채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 아이들이 무사하기를", "내가 무엇을 하든 모두가 칭찬하기를" 하고 말하는 마음은 푸른 것만 찾는 눈이요, 부드러운 것만 찾는 이빨이다.
36 아무리 복 받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을 때 곁에 서서 닥쳐오는 불행을 반기는 자가 몇은 있기 마련이다. 그가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고 하자. 그래도 마지막에 이렇게 혼잣말하는 자가 하나쯤 있지 않겠는가? "이 훈장 양반한테서 벗어나 이제 좀 숨을 돌려 볼까? 우리 누구에게도 모질게 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우리를 나무라고 있다는 걸 나는 느꼈거든." 훌륭한 사람의 경우에도 이렇다. 하물며 우리에게는 우리를 떨쳐 버리고 싶어 할 사람이 많을 만한 까닭이 그 밖에도 얼마나 많겠는가. 죽을 때 이것을 생각하면 너는 더 홀가분하게 떠날 것이다. 이렇게 헤아리면서. "나는 이런 삶을 떠난다. 내가 그토록 애쓰고 빌고 마음 썼던 동료들, 바로 그들이 어쩌면 그 덕에 무슨 다른 편안함이라도 얻을까 바라며 내가 떠나기를 바라는 삶을." 그런데 누가 여기 더 오래 머무르려고 매달리겠는가? 그렇다고 그들에게 덜 너그러운 마음으로 떠나지는 마라. 네 본래의 성품을 지키며 다정하고 호의적이고 온화하게 떠나라. 또 억지로 끌려 나가듯 떠나지도 마라. 편안히 죽는 사람의 작은 영혼이 몸에서 수월하게 빠져나오듯, 그들에게서 떠나는 것도 그래야 한다. 자연이 너를 그들과 이어 붙이고 한데 엮었으나, 이제는 풀어 준다. 나는 가까운 이들에게서 떠나는 셈이지만, 뒤로 끌려가며 버티지 않고 억지 없이 풀려난다. 이것 역시 자연에 따른 일 가운데 하나다.
37 누가 무슨 일을 하든 될 수 있는 대로 속으로 이렇게 묻는 버릇을 들여라. "이 사람은 무엇을 바라고 이 일을 하는가?" 그러나 너 자신부터 시작하라. 너 자신을 먼저 따져 보라.
38 기억하라. 줄을 당겨 꼭두각시를 움직이는 것은 저 안에 숨은 것이다. 그것이 말하는 힘이고, 그것이 생명이며,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그것이 사람이다. 그것을 마음에 그릴 때 그 둘레를 감싼 그릇 같은 몸과 거기 빚어 붙인 이 자잘한 기관들까지 함께 그리지 마라. 그것들은 자귀와 다를 바 없고, 몸에 붙어 자란다는 점만 다르다. 이 부분들을 움직이고 멈추게 하는 원인이 없다면, 그것들은 베 짜는 여인 없는 북, 글 쓰는 이 없는 갈대 펜, 마부 없는 채찍보다 조금도 더 쓸모 있지 않다.
주
1. 세 낱말은 모두 '마음'을 뜻하는 phrēn에 '안에(en-)', '함께(syn-)', '위에(hyper-)'를 붙여 만든 말이다.
2.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아끼는 영웅들이 죽은 뒤 옮겨 가 산다는 세상 끝의 섬.
3. 도나우강 너머에 살던 유목 민족. 마르쿠스는 170년대에 이들과 전쟁을 치렀다.
4. 에우리피데스의 단편.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8.1에도 인용된다.
5. 그리스어 philei는 '사랑한다'는 뜻과 함께 '흔히 ~한다'는 뜻으로도 쓴다. '흔히 일어난다'는 관용 표현을 글자 그대로 '일어나기를 사랑한다'로 읽은 말놀이다.
6.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174d~e. 성벽 안에 갇혀 사는 통치자를 산속 우리에서 가축을 치는 목자에 빗댄 대목이다.
7. 법(nomos)과 '나누어 준다(nemein)'를 엮은 말놀이.
8. 에우프라테스는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에 활동한 스토아 철학자다. 세베루스는 1.14의 세베루스로 보는 견해가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개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9. 호메로스 《일리아스》 6.147~149. 뒤의 "봄철이 오면 돋아난다"도 같은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