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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제8장 마지막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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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마지막 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어터슨 씨가 난롯가에 앉아 있는데, 뜻밖에도 풀이 찾아왔다.

"아니, 풀, 웬일인가?" 그가 외쳤다. 그러다 그를 다시 한번 쳐다보고는 덧붙였다. "무슨 일이 있나? 박사가 아픈가?"

"어터슨 나리," 사내가 말했다. "뭔가 잘못되었습니다."

"앉게, 여기 포도주도 한 잔 있네." 변호사가 말했다. "자, 천천히, 원하는 게 뭔지 똑똑히 말해 보게."

"나리도 박사님 버릇은 아시지요." 풀이 대답했다. "그렇게 틀어박히시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서재에 틀어박히셨는데, 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나리. 마음에 든다면 벼락을 맞아도 좋습니다. 어터슨 나리, 저는 무섭습니다."

"이 사람아," 변호사가 말했다. "분명하게 말해 보게. 무엇이 무섭다는 건가?"

"한 주쯤 전부터 무서웠습니다." 풀은 물음을 고집스럽게 못 들은 척하며 대꾸했다. "이제는 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내의 모습이 그 말을 넉넉히 뒷받침해서, 그의 태도는 나쁜 쪽으로 달라져 있었고 처음 무섭다고 털어놓던 순간 말고는 한 번도 변호사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입도 대지 않은 포도주 잔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방바닥 한구석에 눈길을 두고 앉아 있었다. "이제는 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가 되풀이했다.

"자," 변호사가 말했다. "자네한테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는 건 알겠네, 풀.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겠어. 그게 무엇인지 말해 보게."

"흉한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풀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흉한 일이라니!" 꽤 겁이 나서 그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려던 변호사가 외쳤다. "무슨 흉한 일!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나리." 대답이 돌아왔다. "저와 함께 가셔서 직접 보시겠습니까?"

어터슨 씨는 대답 대신 일어나 모자와 두꺼운 외투를 챙겼지만, 그러면서 집사의 얼굴에 떠오른 크나큰 안도의 빛을 보고 놀랐고, 그에 못지않게, 뒤따라 나서려고 잔을 내려놓을 때까지도 포도주에 입도 대지 않았다는 것에도 놀랐는지 모른다.

바람에 기울어진 듯 하얗게 바랜 달이 등을 대고 누워 있고 더없이 투명하고 얇은 천 같은 조각구름이 날아가는, 거칠고 추운 3월다운 밤이었다. 바람 때문에 말을 하기 어려웠고, 얼굴에는 피가 몰려 붉은 얼룩이 졌다. 게다가 바람이 거리를 유난히 말끔히 쓸어 낸 듯 행인이 없어서, 어터슨 씨는 런던의 그 동네가 이렇게 텅 빈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렇지 않기를 바랐다. 평생 처음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만지고 싶다는 바람을 이토록 날카롭게 느꼈는데, 아무리 애써도 재앙이 닥치리라는 짓누르는 예감이 마음속으로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른 광장은 바람과 먼지로 가득했고, 가운데 뜰의 가냘픈 나무들은 쇠울타리에 제 몸을 채찍질하듯 부딪치고 있었다. 오는 내내 한두 걸음 앞서 걷던 풀은 이제 보도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추고, 살을 에는 날씨인데도 모자를 벗더니 붉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그러나 서둘러 오기는 했어도 그가 닦아 낸 것은 힘을 써서 맺힌 땀이 아니라, 숨통을 조이는 어떤 고뇌가 짜낸 진땀이었으니,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입을 열자 목소리는 거칠고 갈라져 있었다.

"자, 나리," 그가 말했다. "다 왔습니다. 하느님, 아무 일도 없게 해 주소서."

"아멘이네, 풀." 변호사가 말했다.

그러자 하인은 몹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문이 사슬을 건 채로 열렸고, 안에서 목소리가 물었다. "풀이에요?"

"괜찮아." 풀이 말했다. "문 열어."

그들이 들어선 현관 홀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고, 벽난로에는 불을 높이 지펴 놓았으며, 그 둘레에 남녀 하인들이 모두 양 떼처럼 옹기종기 모여 서 있었다. 어터슨 씨를 보자 하녀는 발작하듯 흐느끼기 시작했고, 요리사는 "하느님 고맙기도 하지! 어터슨 나리세요." 하고 외치며 그를 껴안기라도 할 듯 달려 나왔다.

"뭐야, 뭐야? 다들 여기 있는 건가?" 변호사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주 법도에 어긋나는, 아주 볼썽사나운 일이로군. 자네들 주인이 알면 조금도 좋아하지 않을 걸세."

"다들 무서워서 그럽니다." 풀이 말했다.

아무도 이의를 다는 사람 없이 멍한 침묵이 흘렀다. 다만 하녀만 목소리를 높여 이제는 큰 소리로 울었다.

"입 다물어!" 풀이 하녀에게 말했는데, 그 목소리가 어찌나 사나웠던지 그 자신의 신경도 몹시 곤두서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실 하녀가 그렇게 갑자기 울음소리를 높였을 때 그들은 모두 화들짝 놀라, 무서운 일을 기다리는 얼굴로 안쪽 문을 돌아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너는," 집사는 칼 닦는 아이에게 말을 이었다. "촛불 하나 갖다 다오. 당장 이 일을 끝장내야겠다." 그런 다음 그는 어터슨 씨에게 따라와 달라고 청하고 앞장서서 뒤뜰로 나갔다.

"자, 나리," 그가 말했다. "되도록 살그머니 오십시오. 나리께서 들으시되, 나리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나리, 혹시라도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가지 마십시오."

이렇게 뜻밖의 말로 끝맺자 어터슨 씨의 신경이 움찔하며 하마터면 몸의 중심을 잃을 뻔했지만, 그는 용기를 되찾아 집사를 따라 실험실 건물로 들어가, 상자와 병이 잡동사니처럼 쌓인 외과 강의실을 지나 계단 밑에 이르렀다. 여기서 풀은 그에게 한쪽에 비켜서서 들어 보라고 손짓하고는, 자기는 촛불을 내려놓더니 누가 보아도 있는 결심을 다 짜내는 기색으로 계단을 올라가, 조금 떨리는 손으로 서재 문의 붉은 모직 천을 두드렸다.

"어터슨 나리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그가 외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시 한번 변호사에게 귀를 기울이라고 세차게 손짓했다.

안에서 목소리가 대답했다. "아무도 만날 수 없다고 전하게." 투덜거리는 목소리였다.

"고맙습니다, 나리." 풀은 승리감 같은 것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촛불을 집어 들고 어터슨 씨를 데리고 마당을 다시 가로질러 큰 부엌으로 갔는데, 부엌은 불이 꺼져 있었고 바닥에서는 바퀴벌레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리," 그는 어터슨 씨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게 주인님 목소리였습니까?"

"많이 달라진 것 같네." 변호사는 몹시 창백한 얼굴로, 그러나 그 눈길을 맞받으며 대답했다.

"달라졌다고요? 그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집사가 말했다. "제가 이분 댁에서 스무 해를 지냈는데, 그 목소리에 속겠습니까? 아닙니다, 나리. 주인님은 누가 해치웠습니다. 여드레 전에, 주인님이 하느님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는 걸 저희가 들었을 때 누가 해치운 겁니다. 그런데 주인님 대신 저 안에 있는 게 누구인지, 그리고 그게 왜 저기 머물러 있는지, 그건 하늘에 대고 울부짖을 일입니다, 어터슨 나리!"

"이건 아주 이상한 이야기로군, 풀. 이 사람아, 이건 꽤 터무니없는 이야기야." 어터슨 씨가 손가락을 깨물며 말했다. "자네 짐작대로라고 치세. 지킬 박사가, 그러니까, 살해되었다고 치자고. 그렇다면 살인자가 무엇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겠나? 그건 앞뒤가 맞지 않아.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일세."

"글쎄요, 어터슨 나리, 나리는 납득시키기 어려운 분이지만, 그래도 해 보겠습니다." 풀이 말했다. "지난 한 주 내내(나리도 아셔야 합니다) 저 서재에 사는 그 사람, 아니 그것, 그게 무엇이든 간에, 그게 밤낮없이 무슨 약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는데, 마음에 드는 걸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그러니까 주인님 말씀입니다만, 때로 분부를 종이에 적어서 계단에 던져 두시곤 했습니다. 이번 한 주 동안 저희가 받은 건 그것뿐, 쪽지와 닫힌 문뿐이었고, 식사조차 거기 두면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몰래 안으로 들여갔습니다. 그런데 나리, 날마다, 그래요, 하루에도 두 번 세 번씩 분부와 불평이 내려왔고, 저는 시내의 약품 도매상이란 도매상은 다 날아다니듯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물건을 가지고 돌아올 때마다 순수하지 않으니 돌려주라는 쪽지가 또 나왔고, 다른 가게에 낼 주문서가 또 나왔습니다. 무엇에 쓰려는지는 몰라도, 이 약이 지독하게도 급한 모양입니다, 나리."

"그 쪽지 가진 게 있나?" 어터슨 씨가 물었다.

풀은 주머니를 더듬어 구겨진 쪽지 한 장을 내밀었고, 변호사는 촛불 가까이 몸을 숙이고 꼼꼼히 살폈다. 내용은 이러했다. "지킬 박사가 모 상회에 인사를 드립니다. 귀사가 지난번에 보낸 견본은 불순하여 지금 그의 목적에는 전혀 쓸모가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18…년에 지킬 박사는 모 상회에서 꽤 많은 양을 사들인 바 있습니다. 이에 귀사에 더없이 정성껏 찾아봐 주시기를, 그리고 같은 품질의 것이 남아 있다면 곧바로 보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비용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킬 박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는 편지가 꽤 침착하게 이어졌지만, 이 대목에서 갑자기 펜이 튀며 쓴 사람의 감정이 터져 나와 있었다. "제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옛날 것을 좀 찾아 주시오."

"이상한 쪽지로군." 어터슨 씨가 말했다. 그러다 날카롭게 물었다. "이걸 어떻게 자네가 펴 보게 되었나?"

"모 상회 사람이 몹시 화가 나서, 나리, 쓰레기처럼 이걸 저한테 도로 던졌습니다." 풀이 대꾸했다.

"이건 틀림없이 박사 글씨일세. 자네도 알겠지?" 변호사가 말을 이었다.

"저도 그렇게 보이긴 했습니다." 하인은 조금 뾰로통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글씨가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그걸 봤습니다!"

"봤다고?" 어터슨 씨가 되뇌었다. "그래서?"

"바로 그겁니다!" 풀이 말했다. "이렇게 된 일입니다. 제가 정원에서 갑자기 강의실로 들어갔습니다. 그게 이 약인지 뭔지를 찾으러 슬그머니 나와 있었던 모양으로, 서재 문이 열려 있었고 그게 방 저쪽 끝에서 상자들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가자 그게 고개를 들고 무슨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더니 위층 서재로 휙 뛰어 올라갔습니다. 제가 그걸 본 건 1분도 채 안 되었지만, 머리카락이 고슴도치 가시처럼 곤두섰습니다. 나리, 그게 주인님이라면 어째서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었겠습니까? 주인님이라면 어째서 쥐새끼처럼 찍 소리를 지르며 저한테서 달아났겠습니까? 저는 주인님을 모신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내는 말을 멈추고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하나같이 아주 이상한 일들이로군." 어터슨 씨가 말했다. "하지만 이제 좀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네. 풀, 자네 주인은 분명히 앓는 사람을 괴롭히면서 그 모습까지 일그러뜨리는 그런 병에 걸린 걸세. 그러니 어쩌면 목소리도 달라졌을 테고, 그러니 가면을 쓰고 친구들을 피하는 것이고, 그러니 가엾게도 언젠가는 나으리라는 희망을 붙들게 해 주는 그 약을 그토록 애타게 찾는 걸세. 하느님, 그 희망이 헛되지 않게 해 주소서! 이게 내 설명일세. 생각하면 무척 슬프고, 그래, 끔찍하기도 하지, 풀. 하지만 분명하고 자연스럽고, 앞뒤가 잘 맞으며, 우리를 터무니없는 불안에서 모두 건져 주네."

"나리," 집사가 얼굴이 얼룩덜룩하게 창백해지며 말했다. "그건 우리 주인님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우리 주인님은," 여기서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속삭이기 시작했다. "키가 크고 체격이 훌륭한 분인데, 그건 오히려 난쟁이에 가까웠습니다." 어터슨이 반박하려 했다. "아이고, 나리," 풀이 외쳤다. "제가 스무 해를 모신 주인님을 몰라보겠습니까? 평생 아침마다 주인님을 뵌 그 서재 문에서 주인님 머리가 어디쯤 오는지 제가 모르겠습니까? 아닙니다, 나리. 가면을 쓴 그것은 결코 지킬 박사님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하느님만 아시겠지만, 결코 지킬 박사님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살인이 벌어졌다고 마음 깊이 믿습니다."

"풀," 변호사가 대답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확인하는 것이 내 의무가 되겠군. 자네 주인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 친구가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듯한 이 쪽지가 아무리 알쏭달쏭하더라도, 나는 그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것을 내 의무로 여기겠네."

"아, 어터슨 나리,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요!" 집사가 외쳤다.

"그럼 이제 두 번째 문제일세." 어터슨이 말을 이었다. "누가 그 일을 하겠나?"

"그야, 나리와 저지요." 겁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 한번 잘했네." 변호사가 대꾸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자네가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내가 책임지겠네."

"강의실에 도끼가 하나 있습니다." 풀이 말을 이었다. "나리께서는 부엌 부지깽이를 드시면 되겠습니다."

변호사는 그 투박하지만 묵직한 연장을 손에 쥐고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풀, 자네 알고 있나?" 그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자네하고 내가 지금 꽤 위험한 처지에 몸을 던지려 한다는 걸 말일세."

"정말 그렇고말고요, 나리." 집사가 대꾸했다.

"그렇다면 우리 서로 솔직해지는 게 좋겠네." 상대가 말했다. "우리 둘 다 말한 것보다 더 많은 걸 생각하고 있어. 숨김없이 털어놓세. 자네가 본 그 가면 쓴 형체 말일세, 누군지 알아보았나?"

"글쎄요, 나리, 워낙 순식간이었고 그게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어서 맹세까지는 못 하겠습니다."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게 하이드 씨였느냐는 말씀이라면, 그래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몸집이 거의 같았고, 재빠르고 가벼운 그 몸놀림도 같았습니다. 그리고 실험실 문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그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살인 사건 때 그자가 아직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잊지 않으셨겠지요, 나리?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어터슨 나리, 그 하이드 씨를 만나 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있네." 변호사가 말했다. "한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지."

"그렇다면 나리께서도 저희처럼 아시겠군요. 그 신사한테는 뭔가 괴상한 데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섬뜩하게 하는 무언가가요. 제대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리. 그저 뼛속이 어쩐지 싸늘하고 가늘어지는 느낌이었다고밖에는요."

"자네 말 같은 느낌을 나도 좀 받았다는 걸 인정하네." 어터슨 씨가 말했다.

"그렇지요, 나리." 풀이 대꾸했다. "그런데 원숭이 같은 그 가면 쓴 것이 약품들 사이에서 펄쩍 뛰어나와 서재로 휙 들어가는데, 등골을 따라 얼음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 그게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건 압니다, 어터슨 나리. 저도 그 정도는 배웠습니다. 하지만 사람한테는 느낌이라는 게 있고,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건대 그건 하이드 씨였습니다!"

"그래, 그래." 변호사가 말했다. "내 두려움도 같은 쪽으로 기우네. 그 관계에서는 악이, 내 두려워하던 대로, 악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걸세. 그래, 정말로 자네 말을 믿네. 가엾은 해리는 죽임을 당했고, 그 살인자는 (무슨 목적인지는 하느님만 아시겠지만) 아직도 피해자의 방에 숨어 있다고 나는 믿네. 좋아, 우리 이름을 복수라 하세. 브래드쇼를 부르게."

부름을 받고 온 하인은 얼굴이 몹시 하얗고 떨고 있었다.

"정신 차리게, 브래드쇼." 변호사가 말했다. "이렇게 마음 졸이는 게 자네들 모두에게 견디기 힘들다는 건 아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걸 끝낼 작정일세. 여기 풀하고 나는 서재로 쳐들어갈 걸세. 아무 일도 없다면 그 책임은 내 넓은 어깨가 다 짊어지겠네. 그동안 혹시라도 정말로 무슨 일이 잘못되었거나, 어떤 악당이 뒤쪽으로 달아나려 할지 모르니, 자네와 그 아이는 튼튼한 몽둥이를 하나씩 들고 모퉁이를 돌아가 실험실 문에서 지키고 서 있게. 자리 잡는 데 10분을 주겠네."

브래드쇼가 나가자 변호사는 시계를 보았다. "자, 풀, 우리도 우리 자리로 가세." 그는 그렇게 말하고 부지깽이를 겨드랑이에 낀 채 앞장서 마당으로 나갔다. 조각구름이 달 위로 몰려들어 이제는 아주 캄캄했다. 깊은 우물처럼 건물들에 둘러싸인 그곳에는 바람이 이따금 휙휙 불어닥칠 뿐이었는데, 그 바람이 그들의 발치에서 촛불을 이리저리 흔드는 사이 그들은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 몸을 피했고, 거기 말없이 앉아 기다렸다. 사방에서 런던이 엄숙하게 웅웅거렸지만, 가까운 곳의 고요를 깨뜨리는 것은 서재 바닥을 이리저리 오가는 발소리뿐이었다.

"저렇게 하루 종일 걸어 다닙니다, 나리." 풀이 속삭였다. "그래요, 밤에도 거의 내내 그럽니다. 약품상에서 새 견본이 올 때만 잠깐 그칠 뿐입니다. 아, 저렇게 쉬지도 못하게 하는 걸 보면 양심이 어지간히 괴로운 게지요! 아, 나리, 저 발걸음마다 더럽게 흘린 피가 묻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들어 보십시오, 조금 더 가까이. 마음을 귀에 모으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어터슨 나리. 저게 박사님 발소리입니까?"

발소리는 가볍고 묘했으며, 그렇게 느리게 걷는데도 어딘가 흔들거리는 가락이 있어서, 헨리 지킬의 무겁고 삐걱거리는 걸음과는 정말이지 달랐다. 어터슨은 한숨을 쉬었다. "다른 소리는 전혀 없나?" 그가 물었다.

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은," 그가 말했다. "한 번은 저게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운다고? 어떻게?" 변호사가 말했다. 갑자기 오싹한 공포가 몸을 훑고 지나갔다.

"여자처럼, 아니면 길 잃은 영혼처럼 울었습니다." 집사가 말했다. "그 소리를 가슴에 안고 물러 나오는데, 저도 따라 울 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10분이 거의 다 되었다. 풀이 포장용 짚더미 밑에서 도끼를 파냈고, 쳐들어갈 때 비출 수 있도록 가장 가까운 탁자 위에 촛불을 놓았으며, 두 사람은 숨을 죽이고 그 끈질긴 발소리가 밤의 고요 속에서 여전히 오락가락, 오락가락하는 곳으로 다가갔다. "지킬," 어터슨이 큰 소리로 외쳤다. "자네를 만나야겠네." 그는 잠시 기다렸지만 대답은 없었다. "분명히 경고하네. 우리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나는 자네를 만나야겠고 만나고 말겠네." 그가 말을 이었다. "곱게 안 되면 험하게라도, 자네가 동의하지 않으면 완력으로라도!"

"어터슨," 목소리가 말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게!"

"아, 저건 지킬의 목소리가 아니야. 하이드의 목소리야!" 어터슨이 외쳤다. "문을 부수게, 풀!"

풀이 도끼를 어깨 위로 휘둘렀다. 그 일격에 건물이 흔들렸고, 붉은 모직 천을 씌운 문이 자물쇠와 경첩에 부딪쳐 펄쩍 튀었다. 순전한 짐승의 공포 같은 처참한 비명이 서재 안에서 울려 나왔다. 도끼가 다시 올라갔고, 다시 문짝이 쩍 소리를 내며 문틀이 튀었다. 네 번 도끼가 내리쳤지만 나무는 단단했고 문짝 장식은 솜씨가 뛰어나서, 다섯 번째에 이르러서야 자물쇠가 터지며 부서진 문이 안쪽 양탄자 위로 쓰러졌다.

쳐들어간 이들은 자기들이 낸 소란과 그 뒤를 이은 고요에 질려 조금 물러서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조용한 등잔불 아래 서재가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는데, 벽난로에서는 기분 좋은 불이 빛을 내며 타닥거렸고, 주전자는 가느다란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며, 서랍 한두 개가 열려 있었고, 업무용 책상 위에는 서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으며, 불 가까이에는 차를 마실 채비가 차려져 있었다. 그날 밤 런던에서 가장 조용한 방, 그리고 약품이 가득한 유리장들만 아니라면 가장 평범한 방이라고 누구라도 말했을 것이다.

방 한가운데 몹시 뒤틀린 채 아직도 경련하는 사람의 몸뚱이가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발끝으로 다가가 그것을 바로 눕혔고, 에드워드 하이드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몸에 비해 너무 큰 옷, 박사의 몸집에 맞는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의 힘줄은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지만 목숨은 이미 완전히 떠나 있었다. 손에 쥔 짓이겨진 약병과 공기 중에 감도는 쓴 아몬드 씨 같은 강한 냄새로, 어터슨은 자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의 시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늦게 왔군." 그가 엄하게 말했다. "구하기에도, 벌하기에도. 하이드는 심판을 받으러 갔네. 이제 우리한테 남은 일은 자네 주인의 시신을 찾는 것뿐일세."

그 건물의 훨씬 큰 부분은, 아래층을 거의 다 채우고 위에서 빛을 받는 강의실과, 한쪽 끝에 위층을 이루며 안마당을 내다보는 서재가 차지하고 있었다. 복도 하나가 강의실과 뒷골목 쪽 문을 이었고, 서재는 두 번째 계단으로 따로 이 복도와 통했다. 그 밖에 어두운 벽장 몇 개와 널찍한 지하실이 있었다. 그들은 이제 이 모든 곳을 샅샅이 살폈다. 벽장은 모두 비어 있었고 문에서 떨어지는 먼지로 보아 오랫동안 열린 적이 없었으므로, 저마다 한 번 보면 그만이었다. 지하실은 정말로 다 망가진 잡동사니로 가득했는데, 대부분 지킬보다 먼저 이 집에 살던 외과 의사 시절의 것이었지만, 문을 열자마자 여러 해 동안 입구를 봉해 두었던 거미줄이 통째로 떨어져 내려, 더 찾아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헨리 지킬은 죽은 모습으로도 산 모습으로도 어디에서도 흔적이 없었다.

풀이 복도의 판석을 발로 굴렀다. "여기 묻혀 계신 게 틀림없습니다." 그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아니면 달아났을지도 모르지." 어터슨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뒷골목 쪽 문을 살폈다. 문은 잠겨 있었고, 그 근처 판석 위에서 벌써 녹이 슨 열쇠가 눈에 띄었다.

"쓴 것 같지가 않군." 변호사가 말했다.

"쓰다니요!" 풀이 되받았다. "부러진 게 안 보이십니까, 나리? 누가 발로 짓밟기라도 한 것처럼요."

"그래," 어터슨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부러진 자리도 녹이 슬었어." 두 사람은 겁에 질려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건 내 머리로는 알 수 없는 일일세, 풀." 변호사가 말했다. "서재로 돌아가세."

그들은 말없이 계단을 올라가, 이따금 두려운 눈길로 시신을 힐끔거리면서 서재 안에 있는 것들을 더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 탁자 위에는 화학 작업을 한 흔적이 있어서, 어떤 흰 염(鹽)을 저울에 달아 여러 무더기로 나누어 유리 접시에 올려 두었는데, 그 불행한 사내가 실험을 하려다 방해를 받은 것 같았다.

"저게 제가 늘 가져다드리던 바로 그 약입니다." 풀이 말했다. 그가 말하는 사이에 주전자가 깜짝 놀랄 소리를 내며 끓어 넘쳤다.

그 소리에 그들이 벽난로 쪽으로 가 보니, 안락의자가 아늑하게 당겨져 있었고, 앉은 사람의 팔꿈치 바로 곁에 찻그릇이 차려져 있었으며, 잔에는 설탕까지 들어 있었다. 선반에는 책이 몇 권 있었고, 한 권이 찻그릇 옆에 펼쳐져 있었는데, 어터슨이 보니 놀랍게도 그것은 지킬이 여러 번 크게 존경한다고 말하던 경건한 책이었고, 그 여백에 그의 글씨로 끔찍한 신성 모독의 말들이 적혀 있었다.

그다음 방을 둘러보던 그들은 큰 체경 앞에 이르렀고, 저도 모르게 오싹해하며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거울은 비스듬히 돌려져 있어서, 천장에 어른거리는 장밋빛 불빛과 유리장 앞면을 따라 수백 번 되비치며 반짝이는 불꽃, 그리고 몸을 숙여 들여다보는 그들 자신의 창백하고 겁에 질린 얼굴밖에는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았다.

"이 거울은 이상한 일들을 보았겠지요, 나리." 풀이 속삭였다.

"그래도 이 거울 자체보다 더 이상한 건 없을 걸세." 변호사가 같은 목소리로 받았다. "지킬이 무엇 때문에," 그는 그 말에서 흠칫 놀라 말을 멈추었다가, 그 나약함을 이겨 내고 말했다. "지킬이 대체 이걸 무엇에 쓰려고 했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풀이 말했다.

그다음 그들은 업무용 책상으로 갔다. 책상 위, 가지런히 놓인 서류들 가운데 큰 봉투 하나가 맨 위에 있었는데, 거기에 박사의 글씨로 어터슨 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변호사가 봉투를 뜯자 안에 든 것 몇 가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첫째는 유언장으로, 여섯 달 전에 그가 돌려준 것과 똑같이 별난 조건으로 작성되어 죽을 경우에는 유언장으로, 실종될 경우에는 증여 증서로 쓰이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하이드의 이름이 있던 자리에서, 변호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놀라며 가브리엘 존 어터슨이라는 이름을 읽었다. 그는 풀을 보았다가 다시 종이를 보았고, 마지막으로 양탄자 위에 길게 뻗은 죽은 악당을 보았다.

"머리가 어지럽군." 그가 말했다. "그자는 요 며칠 내내 이 방을 차지하고 있었어. 나를 좋아할 까닭도 없었지. 자기 이름이 밀려난 걸 보고 길길이 날뛰었을 텐데, 그런데도 이 문서를 없애지 않았어."

그가 다음 종이를 집어 들어 보니 박사의 글씨로 쓴 짧은 쪽지였고, 맨 위에 날짜가 적혀 있었다. "아, 풀!" 변호사가 외쳤다. "그 친구는 오늘 살아서 여기 있었어. 이렇게 짧은 사이에 처치되었을 리가 없네. 아직 살아 있는 게 틀림없어. 달아난 게 틀림없어! 그런데 왜 달아났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렇다면 이걸 자살이라고 감히 밝혀도 될까? 아, 조심해야 하네. 자칫하면 자네 주인을 무슨 끔찍한 파국에 휘말려 들게 할지도 모르겠어."

"왜 읽어 보지 않으십니까, 나리?" 풀이 물었다.

"두려워서일세." 변호사가 엄숙하게 대답했다. "하느님, 두려워할 까닭이 없게 해 주소서!" 그리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를 눈앞으로 가져가 다음과 같이 읽었다.

"어터슨에게. 이 글이 자네 손에 들어갈 때쯤이면 나는 사라지고 없을 걸세. 어떤 사정에서일지는 내 통찰력으로는 내다볼 수 없지만, 내 본능과, 이름 붙일 수 없는 내 처지의 모든 사정이 끝이 확실하고 머지않았다고 말해 주네. 그러니 가서, 먼저 래니언이 자네 손에 맡기겠다고 내게 일러 준 그 진술을 읽게. 그리고 더 듣고 싶다면,

"자네의 보잘것없고 불행한 친구

"헨리 지킬의 고백으로 넘어가게."

"세 번째 것이 있었지?" 어터슨이 물었다.

"여기 있습니다, 나리." 풀이 그렇게 말하며 여러 군데를 봉한 꽤 두툼한 꾸러미를 그의 손에 건넸다.

변호사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 종이 이야기는 아무 말도 하지 말게. 자네 주인이 달아났든 죽었든, 적어도 그의 명예는 지킬 수 있을 걸세. 지금이 열 시니, 나는 집에 가서 조용히 이 문서들을 읽어야겠네. 하지만 자정 전에 돌아오겠네. 그때 경찰을 부르세."

그들은 강의실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왔고, 어터슨은 다시 한번 홀의 난롯가에 모여 있는 하인들을 뒤에 남겨 두고, 이제 이 수수께끼를 풀어 줄 두 진술을 읽으려고 터벅터벅 사무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