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여름 방학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 산 위로는 용담꽃처럼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몇 주 동안 눈부시게 뜨거운 날이 하루 또 하루 이어졌으며, 이따금 짧고 세찬 뇌우가 한 차례씩 지나갈 뿐이었다. 강은 숱한 사암 바위와 전나무 그늘과 좁은 골짜기 사이로 길을 내며 흐르는데도 물이 어찌나 데워졌는지 밤늦게까지 멱을 감을 수 있었다. 작은 도시 둘레에는 온통 건초와 두벌 풀 냄새가 감돌았고, 몇 뙈기 안 되는 곡식 밭의 좁은 띠가 노랗게, 금갈색으로 익어 갔으며, 개울가에는 독미나리를 닮은 흰 꽃 풀들이 사람 키만큼 무성하게 자랐다. 그 풀은 꽃이 우산 모양으로 피고 늘 아주 작은 딱정벌레들로 덮여 있으며, 속이 빈 줄기를 잘라 피리와 호루라기를 만들 수 있는 풀이었다. 숲 가장자리에는 털이 보송보송하고 노란 꽃을 피운 위엄 있는 우단담배풀이 길게 줄지어 뽐냈고, 털부처꽃과 분홍바늘꽃은 가늘고 질긴 줄기 위에서 흔들리며 비탈 전체를 보랏빛 도는 붉은색으로 덮었다. 전나무 아래 숲 속에는 은빛 솜털이 난 넓은 뿌리잎과 튼튼한 줄기, 높이 줄지어 매달린 고운 붉은 종 모양 꽃을 단 키 크고 꼿꼿한 붉은 디기탈리스가 엄숙하고 아름답고 낯설게 서 있었다. 그 곁에는 갖가지 버섯이 있었다. 붉게 빛나는 광대버섯, 살지고 넓적한 그물버섯, 기묘한 싸리버섯, 붉고 가지가 많은 산호버섯, 그리고 이상하게 빛깔이 없고 병든 듯 살진 구상난풀. 숲과 풀밭 사이 히스 덮인 수많은 둑에서는 질긴 금작화가 불타는 듯 노랗게 타올랐고, 그다음에는 보랏빛 에리카가 길게 띠를 이루었으며, 그다음에는 풀밭이 펼쳐졌는데, 대개 두 번째 풀베기를 앞둔 풀밭은 황새냉이와 동자꽃과 샐비어와 체꽃으로 알록달록 뒤덮여 있었다. 활엽수 숲에서는 되새들이 쉴 새 없이 노래했고, 전나무 숲에서는 여우처럼 붉은 다람쥐들이 우듬지 사이를 내달렸으며, 둑과 담과 마른 도랑에서는 초록 도마뱀들이 따스함 속에서 기분 좋게 숨 쉬며 반짝였고, 풀밭 너머로는 높고 우렁차며 지칠 줄 모르는 매미의 노래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이 무렵 도시는 무척 시골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건초 수레와 건초 냄새와 낫을 두드려 벼리는 소리가 거리와 하늘을 가득 채웠다. 공장 두 곳만 없었더라면 마을에 와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방학 첫날 이른 아침, 늙은 안나가 겨우 일어났을 무렵 한스는 벌써 부엌에 서서 조바심을 내며 커피를 기다렸다. 그는 불 피우는 일을 거들고 빵집에서 빵을 받아 왔으며, 갓 짠 우유를 부어 식힌 커피를 후딱 들이켜고는 빵을 주머니에 넣고 뛰어나갔다. 위쪽 철둑에서 그는 걸음을 멈추고 바지 주머니에서 둥근 양철 상자를 꺼내 부지런히 메뚜기를 잡기 시작했다. 기차가 지나갔다. 쏜살같이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자리는 선로가 몹시 가파르게 오르는 구간이어서, 기차는 창문을 죄다 열어 놓고 승객도 별로 없이 아주 느긋하게, 연기와 증기로 된 길고 즐거운 깃발을 뒤로 펄럭이며 지나갔다. 그는 기차를 바라보았고, 희뿌연 연기가 소용돌이치다가 이윽고 햇살 가득한 이른 아침의 맑은 하늘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런 것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못 보았던가! 그는 잃어버린 아름다운 시간을 이제 갑절로 되찾고 다시 한번 아무 거리낌도 걱정도 없는 어린아이가 되고 싶다는 듯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메뚜기 상자와 새 낚싯대를 들고 다리를 건너 뒤쪽 뜰들을 지나 강에서 가장 깊은 곳인 말웅덩이로 걸어가는 동안, 남모르는 기쁨과 사냥꾼의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거기에는 버드나무 줄기에 기대어 다른 어느 곳보다 편하고 방해받지 않고 낚시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그는 줄을 풀고 작은 납 봉돌을 달았으며, 통통한 메뚜기를 사정없이 바늘에 꿰어 크게 휘둘러 강 한가운데로 던졌다. 오래되고 익숙한 놀이가 시작되었다. 작은 피라미들이 떼를 지어 미끼 둘레로 몰려와 바늘에서 그것을 뜯어내려 했다. 미끼는 곧 다 뜯어 먹혔고, 두 번째 메뚜기 차례가 왔고, 또 하나, 그리고 네 번째, 다섯 번째가 이어졌다. 그는 점점 더 조심스럽게 메뚜기를 바늘에 꿰었고, 마침내 봉돌을 하나 더 달아 줄을 무겁게 하자 이제 처음으로 제법 큰 물고기가 미끼를 건드려 보았다. 물고기는 미끼를 조금 당겨 보다가 놓았다가, 다시 건드려 보았다. 이번에는 덥석 물었다. 솜씨 좋은 낚시꾼이라면 줄과 낚싯대를 타고 손가락 끝에 전해 오는 그 떨림을 느낀다! 한스는 일부러 한 번 홱 채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물고기가 걸려 있었다. 물 위로 모습이 드러나자 한스는 그것이 붉은눈황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붉은눈황어는 넓적하고 희누렇게 빛나는 몸통과 세모난 머리, 특히 배지느러미가 붙은 자리의 고운 선홍빛으로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 그러나 그가 어림해 보기도 전에 물고기는 필사적으로 한 번 몸부림치더니 겁에 질려 수면 위에서 맴돌다가 달아나 버렸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서너 번 몸을 뒤집더니 은빛 번개처럼 깊은 데로 사라지는 것이 아직 보였다. 미끼를 제대로 물지 않았던 것이다.
낚시꾼의 몸속에서 이제 사냥의 흥분과 열띤 주의력이 깨어났다. 그의 눈길은 가느다란 갈색 낚싯줄이 물에 닿는 자리에 날카롭게, 꼼짝 않고 매달려 있었고, 두 뺨은 붉게 달아올랐으며, 몸놀림은 짧고 재빠르고 확실했다. 두 번째 붉은눈황어가 물려 올라왔고, 그다음엔 잡기가 아까울 만큼 작은 잉어가 한 마리, 그다음엔 잇따라 모래무지 세 마리가 올라왔다. 모래무지는 아버지가 즐겨 먹는 것이라 특히 반가웠다. 모래무지는 기껏해야 손바닥만큼 자라고, 비늘이 잘고 살진 몸통에 우스꽝스러운 흰 수염이 달린 굵은 머리와 작은 눈과 날씬한 꼬리 쪽 몸을 하고 있다. 빛깔은 초록과 갈색 사이인데, 물 밖으로 나오면 강철 같은 푸른빛을 띤다.
그사이 해가 높이 솟았다. 위쪽 둑의 물거품은 눈처럼 하얗게 빛났고, 물 위로 더운 공기가 아른거렸으며, 고개를 들면 무크 산 위에 손바닥만 한 눈부신 구름 몇 조각이 떠 있었다. 날이 더워졌다. 맑게 갠 한여름 날의 열기를 드러내는 데는, 파란 하늘 중턱에 고요히 하얗게 떠서 빛을 가득 머금고 흠뻑 빨아들인 나머지 오래 바라볼 수도 없는 그 몇 점의 작고 잔잔한 구름만 한 것이 없다. 그 구름이 없으면 파란 하늘을 보아도, 반짝이는 강물을 보아도 얼마나 더운지 미처 모를 때가 많다. 그러다가 거품처럼 하얗고 단단하게 뭉친 그 한낮의 돛단배 몇 척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문득 햇볕이 따갑게 느껴져서 그늘을 찾고 젖은 이마를 손으로 훔치게 된다.
한스는 차츰 낚싯대에 덜 마음을 썼다. 그는 조금 피곤했고, 어차피 한낮이 가까워지면 거의 아무것도 낚이지 않는 법이다. 황어들은 가장 늙고 큰 것들까지도 이 무렵이면 볕을 쬐러 위로 올라온다. 그것들은 수면 바로 아래에서 크고 검은 무리를 지어 꿈꾸듯 상류로 헤엄쳐 가다가, 이따금 눈에 보이는 까닭도 없이 갑자기 놀라곤 하며, 이 시간에는 어떤 낚시에도 걸려들지 않는다.
그는 낚싯줄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쳐 물에 드리워 두고, 땅바닥에 앉아 초록빛 강을 바라보았다. 물고기들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고, 검은 등이 하나 또 하나 수면에 떠올랐다. 더위에 이끌려 올라와 홀린 듯 고요히, 느릿느릿 헤엄치는 무리였다. 따뜻한 물속에서 저것들은 참 좋겠다! 한스는 장화를 벗고 두 발을 물에 담갔다. 수면 가까이의 물은 아주 미지근했다. 그는 잡은 물고기들을 바라보았다. 물고기들은 커다란 물뿌리개 속에서 꼼짝 않고 떠 있다가 이따금 살짝 물을 철벙거릴 뿐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비늘과 지느러미에서 흰빛, 갈색, 초록, 은빛, 흐린 금빛, 파란빛과 그 밖의 빛깔들이 반짝였다.
무척 고요했다. 다리 위를 지나는 수레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고, 방앗간의 덜거덕 소리도 여기서는 아주 희미하게만 들렸다. 다만 하얀 둑의 쉼 없이 부드러운 물소리만이 고요하고 서늘하게, 졸음을 부르며 들려왔고, 뗏목 말뚝 둘레에서는 흘러가는 물이 소용돌이치며 내는 나직한 소리가 났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문법과 작문, 산수와 암기, 그리고 길고 쉴 틈 없이 쫓기던 한 해의 고문 같은 온갖 북새통이 졸음 오는 따뜻한 시간 속에 조용히 가라앉았다. 한스는 두통이 조금 났지만 여느 때만큼 심하지는 않았고, 이제 다시 물가에 앉아 둑에서 물거품이 흩어지는 것을 보며 낚싯줄 쪽으로 눈을 깜박일 수 있었으며, 곁의 물뿌리개 속에서는 잡은 물고기들이 헤엄쳤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자기가 주 시험에 붙었고 그것도 2등을 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맨발로 물을 철벙 차고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휘파람으로 가락을 불기 시작했다. 제대로 휘파람을 불 줄은 몰랐다. 그것은 오랜 근심거리였고, 그 때문에 같은 반 아이들에게서 놀림도 꽤 받았다. 그는 이 사이로, 그것도 나직하게만 불 수 있었지만, 집에서 쓰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고, 지금은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지금 교실에 앉아 지리 수업을 받고 있었고, 그 혼자만 자유의 몸이 되어 풀려나 있었다. 그는 그들을 앞질렀고, 이제 그들은 그보다 아래에 있었다. 그들은 그를 꽤나 괴롭혔다. 그에게는 아우구스트 말고는 친구가 없었고, 그들의 싸움질과 놀이를 별로 즐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그들은 그의 뒷모습이나 바라보라지, 그 멍청이들, 그 고집불통들. 그는 그들을 어찌나 경멸했던지 입을 삐죽거리느라 잠깐 휘파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낚싯줄을 감아올리다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바늘에 미끼가 한 오라기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상자에 남은 메뚜기들은 놓아주었고, 메뚜기들은 얼떨떨하고 시들한 채 짧은 풀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옆의 무두질 공장에서는 벌써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밥 먹으러 갈 시간이었다.
점심 식탁에서는 거의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뭐 좀 잡았냐?" 아버지가 물었다.
"다섯 마리요."
"오, 그래? 그래, 늙은 놈은 잡지 않게 조심해라. 그러면 나중에 새끼가 하나도 없을 테니까."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너무 더웠다. 그리고 밥을 먹고 곧바로 멱을 감으러 가면 안 된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대체 왜 안 된다는 걸까? 몸에 해롭다나! 해롭기는 무슨. 한스는 더 잘 알았다. 그는 금지를 어기고 숱하게 멱을 감으러 갔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 못된 짓을 하기에는 그는 이미 너무 어른이었다. 세상에, 시험장에서는 그를 "자네"라고 불렀다!
결국 뜰의 가문비나무 아래 한 시간 누워 있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았다. 그늘은 넉넉했고, 책을 읽거나 나비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두 시까지 거기 누워 있었고, 하마터면 잠이 들 뻔했다. 그러나 이제 멱 감으러 가자! 멱 감는 풀밭에는 꼬마들 몇뿐이었고, 큰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앉아 있었으며, 한스는 그것이 진심으로 고소했다. 그는 아주 천천히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 그는 따뜻함과 서늘함을 번갈아 즐길 줄 알았다. 한동안 헤엄치고 자맥질하고 첨벙거리다가, 또 한동안은 강가에 엎드려 빠르게 말라 가는 살갗 위로 햇볕이 이글거리는 것을 느꼈다. 꼬마들은 우러러보듯 그의 둘레를 살금살금 맴돌았다. 그렇지, 그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아이들과 생김새도 아주 달랐다. 가늘고 볕에 그은 목 위에는 지적인 얼굴과 남을 내려다보는 눈을 지닌 고운 머리가 자유롭고 우아하게 얹혀 있었다. 그 밖에는 몹시 마르고 팔다리가 가늘고 연약해서, 가슴과 등에서 갈비뼈를 셀 수 있을 정도였고, 장딴지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오후 거의 내내 그는 햇볕과 물 사이를 오가며 지냈고, 네 시가 지나자 그의 반 아이들 대부분이 서둘러 떠들썩하게 달려왔다.
"야, 기벤라트! 넌 이제 좋겠다."
그는 느긋하게 기지개를 켰다. "뭐, 그럭저럭."
"신학교에는 언제 가?"
"9월에야 가. 지금은 방학이야."
그는 부러움을 사도록 내버려 두었다. 뒤쪽에서 비웃는 소리가 크게 나고 누군가 이런 노래를 불렀지만, 그것조차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
촌장 댁 리자베트처럼!
대낮에도 누워 자는데,
나는 그렇게 못 살지.
그는 그저 웃었다. 그사이 아이들은 옷을 벗었다. 하나는 냉큼 물에 뛰어들었고, 다른 아이들은 먼저 조심스럽게 몸을 식혔으며, 더러는 그 전에 잠깐 풀밭에 눕기도 했다. 자맥질을 잘하는 아이가 감탄을 샀다. 겁쟁이 하나가 뒤에서 떠밀려 물에 빠지며 사람 살려 하고 소리쳤다. 아이들은 서로 쫓고 달리고 헤엄쳤으며, 뭍에서 몸을 말리던 아이들에게 물을 끼얹었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고함 소리가 요란했고, 강폭 전체가 밝고 젖어 번들거리는 몸뚱이들로 반짝였다.
한 시간 뒤 한스는 자리를 떴다. 물고기가 다시 미끼를 무는 따뜻한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녁 먹을 때까지 그는 다리 위에서 낚시를 했지만 거의 아무것도 낚지 못했다. 물고기들은 미끼를 탐내며 따라왔고 미끼는 번번이 뜯어 먹혔지만, 걸려드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바늘에 버찌를 꿰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크고 물렀던 모양이다. 그는 나중에 한 번 더 해 보기로 했다.
저녁 식사 때 그는 아는 사람들이 잔뜩 축하하러 다녀갔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오늘 자 주간지를 보여 주었는데, '관보'란 아래에 이런 짧은 기사가 실려 있었다. "하급 신학교 입학시험에 이번에 우리 시는 단 한 명의 응시생, 한스 기벤라트를 보냈다. 방금 들어온 기쁜 소식에 따르면, 이 응시생은 2등으로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는 신문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랑과 기쁨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그 뒤에 그는 다시 낚시하러 갔다. 이번에는 미끼로 치즈 몇 조각을 가져갔다. 치즈는 물고기 입에 맞고, 땅거미 속에서도 물고기 눈에 잘 띈다.
그는 낚싯대는 세워 두고 아주 간단한 손 낚시만 가져갔다. 그것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낚시였다. 낚싯대도 찌도 없이 줄을 손에 쥐고 하는 낚시라서, 도구라고 해 봐야 줄과 바늘뿐이었다. 조금 더 힘들었지만 훨씬 재미있었다. 그렇게 하면 미끼의 아주 작은 움직임까지 손안에 쥐고 있을 수 있었고, 물고기가 건드려 보고 덥석 무는 것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으며, 줄의 떨림만으로 물고기들을 눈앞에 보듯 살필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낚시는 제대로 배워야 할 수 있다. 손가락이 재야 하고, 첩자처럼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좁고 깊이 파이고 굽이진 강 골짜기에는 땅거미가 일찍 내렸다. 다리 아래 물은 검고 고요하게 누워 있었고, 아래쪽 방앗간에는 벌써 불이 켜져 있었다. 다리와 골목 위로 이야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흘러 다녔고, 공기는 조금 후텁지근했으며, 강에서는 시시때때로 검은 물고기가 짧게 꼬리를 치며 뛰어올랐다. 이런 저녁이면 물고기들은 이상하리만큼 들떠서, 지그재그로 이리저리 쏜살같이 오가고, 공중으로 몸을 튕기고, 낚싯줄에 부딪히고, 앞뒤 가리지 않고 미끼에 달려든다. 치즈 마지막 조각을 다 썼을 때 한스는 작은 잉어 네 마리를 낚아 올렸다. 그것은 내일 목사에게 갖다줄 생각이었다.
따뜻한 바람이 골짜기 아래로 불어 내려갔다. 날은 몹시 어두워졌지만 하늘은 아직 밝았다. 어둠에 잠겨 가는 작은 도시 전체에서 교회 탑과 성의 지붕만이 밝은 하늘로 검고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아주 먼 어딘가에서 뇌우가 치는 모양이었다. 이따금 아득히 먼 데서 부드러운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열 시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 한스는 머리와 팔다리가 오랜만에 기분 좋게 피곤하고 졸렸다. 빈둥거리고, 멱 감고, 낚시하고, 꿈꾸며 흘려보낼 아름답고 자유로운 여름날이 길게 줄지어 그의 앞에 놓여, 그의 마음을 놓이게 하며 어서 오라고 그를 꾀었다. 다만 한 가지, 아예 1등을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그를 갉아먹었다.
이른 오전에 벌써 한스는 목사관 현관 마루에 서서 물고기를 건넸다. 목사가 서재에서 나왔다.
"아, 한스 기벤라트구나! 잘 잤니! 축하한다, 진심으로 축하해. 그런데 그건 뭐냐?"
"그냥 물고기 몇 마리예요. 어제 낚았어요."
"아니, 이것 봐라! 고맙다. 자, 어서 들어오너라."
한스는 잘 아는 서재로 들어갔다. 사실 이곳은 목사의 방처럼 보이지 않았다. 화분 냄새도 담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꽤 많은 장서는 목사들의 서재에서 흔히 보는, 닳고 비뚤어지고 좀먹고 곰팡이 얼룩이 핀 책들이 아니라, 거의 모두 깔끔하게 칠하고 금박을 입힌 새 책등을 보여 주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지런히 정리된 책들의 제목에서도 새로운 정신이 느껴졌다. 사라져 가는 세대의 예스럽게 점잖은 신사들 속에 살던 것과는 다른 정신이었다. 목사 서재의 명예로운 자랑거리인 벵겔, 외팅거, 슈타인호퍼, 그리고 뫼리케가 「탑 위의 늙은 수탉」에서 그토록 아름답고 정답게 노래한 경건한 찬송 시인들1은 여기에 없거나, 있더라도 수많은 현대 저작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잡지 철과 서서 쓰는 책상과 종이가 흩어진 커다란 책상까지, 모든 것이 학구적이고 진지해 보였다. 여기서 일을 많이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실제로 여기서는 일을 많이 했다. 다만 설교나 교리 문답이나 성경 공부보다는 학술지에 실을 연구와 논문, 그리고 자기 책을 쓰기 위한 예비 연구에 더 힘을 쏟았다. 꿈꾸는 신비주의와 예감에 찬 골똘한 사색은 이곳에서 쫓겨났고, 학문의 깊은 구렁을 넘어 목마른 민중의 영혼에게 사랑과 연민으로 몸을 기울이는 소박한 마음의 신학도 쫓겨났다. 그 대신 이곳에서는 열심히 성서 비평을 했고, 현대 신학자들의 입에서는 물처럼 술술 흘러나오지만 손가락 사이로는 뱀장어처럼 미끄러져 빠져나가는 "역사적 그리스도"를 뒤쫓았다.
신학도 다른 데와 다를 바 없다. 예술인 신학이 있고, 학문이거나 적어도 학문이 되려고 애쓰는 신학이 있다. 그것은 옛날에도 지금과 같았다. 학문 쪽 사람들은 늘 새 부대에 정신이 팔려 묵은 포도주를 놓쳤고, 예술가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런저런 오류에 태평하게 머물면서도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은 비판과 창조, 학문과 예술 사이의 오래되고 대등하지 않은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학문은 늘 옳지만 그것으로 덕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예술은 믿음과 사랑과 위로와 아름다움과 영원을 예감하는 마음의 씨앗을 거듭 밖으로 뿌리며 거듭 좋은 땅을 만난다. 삶은 죽음보다 강하고, 믿음은 의심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한스는 처음으로 서서 쓰는 책상과 창문 사이의 작은 가죽 소파에 앉았다. 목사는 더없이 친절했다. 그는 아주 친구처럼 신학교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거기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공부하는지 일러 주었다.
"그곳에서 겪게 될 가장 중요한 새 일은" 목사가 끝으로 말했다. "신약성경의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거다. 그러면 너한테 새로운 세계가 열릴 거야. 공부할 거리도 많고 기쁨도 많은 세계지. 처음에는 그 언어가 애를 먹일 거다. 그건 이제 아티카 그리스어가 아니라, 새로운 정신이 빚어낸 새로운 말이거든."
한스는 귀 기울여 들었고, 참된 학문에 가까이 다가갔다는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 새로운 세계를 학교에서 차근차근 배우다 보면" 목사가 말을 이었다. "물론 그 매력이 얼마쯤 깎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신학교에서는 처음에 히브리어가 너를 너무 한쪽으로만 붙잡아 둘지도 모르고. 그러니 네가 마음이 있다면 이번 방학에 조금 시작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러면 신학교에 가서 다른 일에 쓸 시간과 힘이 남아 있어서 기쁠 거다. 누가복음을 몇 장 같이 읽어 보면 어떻겠니? 그러면 그 언어를 거의 놀이 삼아 곁들여 배우게 될 거다. 사전은 내가 빌려주마. 하루에 한 시간쯤, 많아야 두 시간만 들이면 될 거다. 물론 그 이상은 안 된다. 무엇보다 지금은 네가 마땅히 누려야 할 휴식을 취해야 하니까. 물론 이건 그저 제안일 뿐이다. 그 좋은 방학 기분을 이걸로 망쳐 놓고 싶지는 않구나."
한스는 물론 좋다고 했다. 이 누가복음 시간이 자유라는 즐겁고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옅은 구름 한 조각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거절하기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방학 동안 새 언어를 이렇게 곁들여 배우는 것은 분명히 일이라기보다 즐거움일 터였다. 게다가 신학교에서 배워야 할 수많은 새것, 특히 히브리어 앞에서 그는 가뜩이나 은근한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그는 아주 불만스럽지는 않은 마음으로 목사 집을 나와, 낙엽송 길을 따라 숲으로 올라갔다. 작은 언짢음은 벌써 날아가 버렸고, 이 일을 곰곰 생각할수록 그럴듯하게 여겨졌다. 신학교에서도 친구들을 뒤로 따돌리려면 그곳에서 더욱 공명심에 차서 끈질기게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기어코 그러고 싶었다. 대체 왜? 그것은 그 자신도 몰랐다. 세 해 전부터 사람들이 그를 눈여겨보았고, 교사들과 목사와 아버지, 특히 교장이 그를 다그치고 들쑤시며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그 긴 세월 내내 한 학년 한 학년 올라가는 동안 그는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수석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그 자신도 맨 꼭대기에 서서 아무도 곁에 두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그 멍청한 시험 걱정은 이제 끝났다.
그래도 방학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일이었다. 산책하는 사람이라곤 그 하나뿐인 이 아침 시간의 숲은 다시 얼마나 낯설도록 아름다웠던가! 가문비나무가 기둥처럼 줄줄이 서서 끝없는 회당을 청록빛으로 둥글게 덮고 있었다. 덤불은 별로 없었고 여기저기 산딸기 덤불이 무성할 뿐이었으며, 그 대신 몇 시간을 걸어도 끝나지 않을 만큼 넓고 부드럽고 털가죽 같은 이끼 바닥이 깔려 있었고, 거기에 키 작은 월귤 나무와 에리카가 자라 있었다. 이슬은 벌써 말랐고, 화살처럼 곧은 줄기들 사이로는 숲의 아침 특유의 후텁지근함이 일렁였다. 햇볕의 온기와 이슬 기운과 이끼 냄새, 송진과 전나무 잎과 버섯 냄새가 뒤섞인 그 기운은 가벼운 마취처럼 모든 감각에 살랑살랑 감겨 왔다. 한스는 이끼 위에 몸을 던지고, 거무스름하게 촘촘히 열린 월귤 덤불을 훑어 먹으며, 여기저기서 딱따구리가 나무줄기를 쪼는 소리와 질투 많은 뻐꾸기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거무스름한 전나무 우듬지 사이로 티 없이 짙푸른 하늘이 들여다보았고, 먼 곳으로는 수천수만의 곧게 선 줄기들이 서로 밀치며 엄숙한 갈색 벽을 이루었으며, 여기저기 노란 햇빛 조각이 따뜻하고 진하게 빛나며 이끼 위에 흩어져 있었다.
사실 한스는 크게 한 바퀴 산책할 생각이었고 적어도 뤼첼러 농장이나 크로커스 풀밭까지는 가 볼 참이었는데, 지금 그는 이끼 위에 누워 월귤을 먹으며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가 이렇게 피곤하다는 것이 그 자신도 이상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서너 시간 걷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기운을 내서 제대로 한참 걸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몇백 걸음을 걸었다. 그런데 어느새,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게, 그는 다시 이끼 위에 누워 쉬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누워 있었고, 그의 눈길은 깜박이며 줄기와 우듬지 사이를, 그리고 초록 땅바닥 위를 헤맸다. 이 공기가 이토록 사람을 피곤하게 하다니!
점심 무렵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또 두통이 났다. 눈도 아팠다. 숲길에서 햇빛이 지독히도 눈부셨던 것이다. 그는 오후 반나절을 뿌루퉁하게 집 안에서 서성거렸고, 멱을 감고서야 다시 생기가 돌았다. 이제 목사에게 갈 시간이었다.
가는 길에 작업장 창가의 세발 걸상에 앉아 있던 구두장이 플라이크가 그를 보고 안으로 불러들였다.
"어디 가니, 얘야? 요즘은 통 안 보이더구나."
"지금 목사님한테 가야 해요."
"아직도? 시험은 끝났잖니."
"네, 이제는 다른 걸 해요. 신약성경이요. 그러니까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쓰였는데, 제가 배운 그리스어하고는 또 아주 다른 그리스어래요. 그걸 이제 배워야 해요."
구두장이는 모자를 뒤통수로 한참 밀어 올리고, 생각 많은 넓은 이마에 굵은 주름을 잔뜩 모았다. 그는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한스." 그가 나직이 말했다. "내가 한 가지 일러 줄 게 있다. 지금까지는 시험 때문에 잠자코 있었지만, 이제는 너한테 따끔하게 말해 둬야겠다. 너도 알아 둬야 한다. 목사는 불신자야. 그 사람은 너한테 성경이 틀리고 거짓말투성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믿게 만들 거다. 그 사람하고 신약성경을 읽고 나면, 너도 모르는 사이에 네 믿음을 잃고 말 거다."
"하지만 플라이크 아저씨, 그냥 그리스어 공부일 뿐이에요. 어차피 신학교에 가면 배워야 하는걸요."
"네 말은 그렇지. 하지만 성경을 경건하고 양심 바른 선생들한테 배우는 것하고, 더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한테 배우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래도 그분이 정말 하느님을 안 믿는지는 모르잖아요."
"알지, 한스. 안타깝게도 다들 안다."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해요? 벌써 가겠다고 약속했는데요."
"그럼 가야지, 그야 당연하다. 하지만 되도록 자주는 가지 마라. 그리고 그 사람이 성경을 두고, 성경은 사람이 지어낸 것이고 거짓말투성이이며 성령이 일러 주신 게 아니라는 그런 소리를 하거든, 나한테 와라. 같이 이야기해 보자. 그러겠니?"
"네, 플라이크 아저씨. 하지만 분명히 그렇게 나쁘진 않을 거예요."
"두고 봐라. 내 말 잊지 마!"
목사는 아직 집에 오지 않아서 한스는 서재에서 기다려야 했고, 금박 입힌 책 제목들을 바라보는 동안 구두장이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목사와 신식 성직자들 전반을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전에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으로 그는 자기 자신이 이 일에 끌려 들어간 것을 긴장과 호기심 속에서 느꼈다. 그에게 이 일은 구두장이에게만큼 중요하고 끔찍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여기서 오래되고 커다란 비밀 뒤로 파고들 수 있겠다는 냄새를 맡았다. 예전 학교 시절에는 하느님이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악마와 지옥에 관한 물음이 이따금 그를 공상 같은 골똘한 생각으로 들끓게 했지만, 지난 몇 해 엄하고 부지런한 세월 동안 그 모든 것이 잠들어 버렸고, 학교에서 배운 그리스도교 신앙은 구두장이와 이야기할 때나 이따금 얼마쯤 자기만의 생기를 띠며 깨어났다. 그 사람을 목사와 견주어 보노라면 그는 웃음이 나왔다. 쓰라린 세월 속에서 얻은 구두장이의 다부진 굳건함을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플라이크는 영리하기는 하지만 소박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이었고, 경건주의 타령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놀림을 받았다. 경건회 형제들의 모임에서 그는 엄한 형제 재판관이자 성경을 힘차게 풀이하는 사람으로 나섰고,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경건회도 열었지만, 그 밖에는 그저 작은 수공업자였고 다른 모든 사람처럼 좁은 사람이었다. 그와 달리 목사는 노련하고 말 잘하는 사람이자 설교자일 뿐 아니라, 부지런하고 엄격한 학자이기도 했다. 한스는 경외심을 품고 책장들을 올려다보았다.
목사는 곧 돌아와서 프록코트를 가벼운 검은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학생의 손에 누가복음 그리스어 원문 책을 쥐여 주며 읽어 보라고 했다. 라틴어 수업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은 몇 문장밖에 읽지 않았는데, 그 문장들을 고지식할 만큼 글자 그대로 옮겼고, 그다음에 선생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예문에서 이 언어 특유의 정신을 솜씨 좋게, 막힘없이 풀어냈으며, 이 책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야기하면서, 단 한 시간 만에 소년에게 배우는 일과 읽는 일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심어 주었다. 한스는 구절마다 낱말마다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와 과제가 숨어 있는지, 옛날부터 수천의 학자와 사색가와 연구자들이 그 물음들을 붙들고 얼마나 애써 왔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이 시간에 자기도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무리에 받아들여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사전과 문법책을 빌려 와 집에서 저녁 내내 공부를 이어 갔다. 이제 그는 참된 연구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많은 공부와 지식의 산을 넘어가는지 느꼈고, 그 길을 헤쳐 나가며 길가에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구두장이는 당분간 잊혔다.
며칠 동안 이 새로운 일이 그를 온통 사로잡았다. 그는 저녁마다 목사에게 갔고, 참된 학문은 날마다 더 아름답고 더 어렵고 더 애써 얻을 만한 것으로 여겨졌다. 아침 이른 시간에는 낚시를 하러 가고 오후에는 멱 감는 풀밭에 갔지만, 그 밖에는 집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시험의 두려움과 승리 속에 가라앉아 있던 공명심이 다시 깨어나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동시에 지난 몇 달 동안 그토록 자주 느꼈던 그 야릇한 느낌이 다시 머릿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통증이 아니라, 빨라진 맥박과 몹시 들뜬 힘들이 의기양양하게 서둘러 몰아치는 것이었고, 거세게 앞으로 내닫고 싶은 조급한 갈망이었다. 물론 나중에는 두통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 미세한 열기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책 읽기와 공부가 폭풍처럼 나아갔다. 그럴 때면 여느 때 같으면 15분씩 걸리던 크세노폰의 가장 어려운 문장들도 놀이하듯 읽었고, 사전도 거의 들추지 않은 채 날카로워진 이해력으로 어려운 쪽 전체를 재빠르고 즐겁게 날아 넘었다. 이렇게 치솟은 공부 열과 앎에 대한 목마름에 오만한 자부심이 함께 겹쳤다. 학교도 교사도 배우던 해들도 이미 오래전에 뒤로 지나가 버렸고, 이제는 자기만의 길을 걸어 앎과 능력의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 그것이 다시 그를 덮쳤고, 동시에 가볍고 자주 끊기는 잠과 이상하게 또렷한 꿈도 찾아왔다. 밤중에 가벼운 두통과 함께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할 때면,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조바심이 그를 사로잡았고, 자기가 모든 친구보다 얼마나 앞서 있는지, 교사들과 교장이 얼마나 존경을, 아니 감탄까지 담아 자기를 바라보았는지를 생각하면 남을 내려다보는 자부심이 차올랐다.
교장에게는 자기가 일깨운 이 아름다운 공명심을 이끌어 주고 그것이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더없는 기쁨이었다. 훈장에게는 심장이 없다느니, 훈장이란 뼈만 남고 넋이 빠진 샌님이라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말라! 천만의 말씀이다. 오랫동안 자극해도 꿈쩍 않던 아이의 재능이 마침내 터져 나오고, 소년이 나무칼과 새총과 활 같은 철부지 장난감을 내려놓고 앞을 향해 애쓰기 시작하고, 공부의 진지함이 볼 통통한 개구쟁이를 섬세하고 진지하고 거의 금욕적인 소년으로 바꾸어 놓고, 얼굴은 더 어른스럽고 지적으로, 눈빛은 더 깊고 목표가 뚜렷하게, 손은 더 차분하고 희고 고요하게 변해 가는 것을 볼 때면, 교사의 영혼은 기쁨과 자랑으로 웃는다. 어린 소년 안에 있는 자연의 거친 힘과 욕망을 길들이고 뿌리 뽑아, 그 자리에 고요하고 절도 있으며 국가가 인정한 이상을 심는 일, 그것이 교사의 의무이며 국가가 그에게 맡긴 직분이다. 지금은 만족한 시민이자 부지런한 관리가 된 사람 가운데, 학교의 이런 노력이 없었더라면 걷잡을 수 없이 날뛰는 개혁가나 열매 없는 생각에 잠긴 몽상가가 되었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 아이 안에는 무언가가, 거칠고 규칙 없고 교양 없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그것은 먼저 부서져야 했다. 위험한 불꽃이 있었으니, 그것은 먼저 꺼지고 짓밟혀야 했다. 자연이 빚어낸 그대로의 인간은 헤아릴 수 없고 속을 알 수 없으며 적대적인 무엇이다. 그것은 이름 모를 산에서 쏟아져 내리는 급류이고, 길도 질서도 없는 원시림이다. 그리고 원시림을 솎아 내고 치우고 힘으로 가두어야 하듯이, 학교는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부수고 굴복시키고 힘으로 가두어야 한다. 학교의 과제는 그를 윗선이 승인한 원칙에 따라 사회의 쓸모 있는 일원으로 만들고 그 안에 몇 가지 자질을 일깨우는 것이며, 그 자질을 완전히 길러 내어 영광스럽게 마무리하는 일은 그 뒤 병영의 빈틈없는 규율이 맡는다.
꼬마 기벤라트는 얼마나 훌륭하게 자랐던가! 쏘다니며 노는 버릇은 거의 저절로 버렸고, 수업 시간에 멍청하게 웃는 일도 오래전부터 없었으며, 뜰 가꾸기와 토끼 기르기와 그 성가신 낚시도 그만두라는 대로 순순히 그만두었다.
어느 날 저녁 교장이 몸소 기벤라트네 집에 나타났다. 우쭐해하는 아버지를 정중하게 떼어 낸 뒤, 그는 한스의 방에 들어가 누가복음을 붙들고 앉아 있는 소년을 보았다. 그는 더없이 다정하게 인사했다.
"기특하구나, 기벤라트, 벌써 또 공부하는구나! 그런데 왜 통 얼굴을 안 비치느냐? 날마다 기다렸다."
"찾아뵈려고 했습니다만" 한스가 변명했다. "하다못해 좋은 물고기라도 한 마리 가져다드리고 싶었습니다."
"물고기? 무슨 물고기 말이냐?"
"그러니까, 잉어나 뭐 그런 것 말입니다."
"아, 그래. 그럼 너 다시 낚시를 하는 게냐?"
"네, 조금만 합니다. 아버지가 허락하셨습니다."
"흠. 그래. 아주 재미있느냐?"
"네, 그렇습니다."
"좋다, 아주 좋아. 방학은 네가 훌륭히 얻어 낸 거니까. 그러니 지금은 곁들여 공부까지 할 마음은 별로 없겠구나?"
"아닙니다, 교장 선생님,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네가 스스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다."
"그럼요, 하고 싶습니다."
교장은 숨을 몇 번 깊이 쉬고 성긴 수염을 쓰다듬더니 의자에 앉았다.
"자, 한스, 사정은 이렇다." 그가 말했다. "아주 좋은 시험 바로 뒤에 갑자기 뒷걸음질이 오는 일이 많다는 건 오래된 경험이다. 신학교에서는 여러 새 과목을 익혀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늘 방학 동안 미리 공부해 온 학생들이 얼마쯤 있게 마련이다. 시험을 덜 잘 본 아이들인 경우도 많지. 그런 아이들이 방학 내내 월계관을 베고 쉰 아이들을 밀어내고 갑자기 위로 치고 올라온다."
그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여기 학교에서는 늘 1등을 하는 게 쉬웠지. 하지만 신학교에서는 다른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하나같이 재능이 있거나 아주 부지런한 아이들이라, 그렇게 손쉽게 앞지를 수 없을 거다. 알아듣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방학에 조금 미리 공부해 두라고 권하고 싶었다. 물론 적당히 말이다! 너는 지금 실컷 쉴 권리도 있고 의무도 있다. 하루에 한두 시간쯤이면 알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쉽게 궤도에서 벗어나고, 다시 제대로 굴러가기까지 몇 주가 걸린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기꺼이 하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좋다. 신학교에 가면 히브리어 다음으로 특히 호메로스가 너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줄 거다. 지금 단단한 바탕을 깔아 두면 호메로스를 갑절로 즐기고 깊이 이해하며 읽게 될 게다. 호메로스의 언어, 옛 이오니아 방언과 호메로스의 운율은 아주 독특하고 아주 별스러운 것이라서, 이 서사시들을 제대로 즐기려면 부지런함과 철저함이 있어야 한다."
물론 한스는 이 새로운 세계에도 기꺼이 뛰어들 마음이 있었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고약한 꼬리는 뒤에 따라왔다. 교장은 헛기침을 하고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네가 수학에도 몇 시간 들여 주면 좋겠다. 셈을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수학이 네 강점이었다고 하기는 어려우니까. 신학교에 가면 대수와 기하를 시작해야 하니, 준비 수업을 몇 번 받아 두는 게 아무래도 좋겠다."
"네, 교장 선생님."
"내 집에는 언제든 와도 좋다. 그건 너도 알 거다.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걸 보는 게 나한테는 명예가 걸린 일이다. 그런데 수학은 아버지께 부탁드려서 교수님한테 개인 교습을 받게 해 달라고 해야겠다. 일주일에 서너 번쯤."
"네, 교장 선생님."
이제 공부는 다시 더없이 반갑게 활짝 꽃피었고, 한스는 이따금 한 시간쯤 낚시를 하거나 산책을 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헌신적인 수학 교사는 늘 멱을 감던 그 시간을 자기 수업 시간으로 골랐다.
한스는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이 대수 시간만큼은 즐겁게 여길 수가 없었다. 무더운 오후 한복판에 멱 감는 풀밭 대신 교수의 더운 방으로 가서, 먼지 끼고 모기가 윙윙대는 공기 속에서 지친 머리와 마른 목소리로 a 더하기 b, a 빼기 b를 외는 것은 아무래도 쓰라린 일이었다. 그럴 때면 공기 속에 무언가 사람을 마비시키고 몹시 짓누르는 것이 있어서,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그것이 막막함과 절망으로 바뀌기도 했다. 수학과 그의 사이는 대체로 묘했다. 그는 수학이라면 꽉 막혀서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학생들 축에 들지는 않았다. 이따금 훌륭한, 아니 멋들어진 풀이를 찾아내고는 기뻐하기도 했다. 그가 수학에서 마음에 들어 한 것은, 거기에는 헷갈림도 속임수도 없고, 주제에서 벗어나 엉뚱한 곁가지를 기웃거릴 여지도 없다는 점이었다. 같은 까닭으로 그는 라틴어를 무척 좋아했다. 이 언어는 명료하고 확실하며 뜻이 하나뿐이고, 의심이라는 것을 거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셈을 해서 답이 다 맞아도 거기서 제대로 된 무엇이 나오지는 않았다. 수학 과제와 수업은 평평한 큰길을 걷는 것 같았다. 늘 앞으로 나아가고 날마다 어제는 몰랐던 무언가를 알게 되지만, 갑자기 넓은 전망이 열리는 산 위에는 끝내 오르지 못했다.
교장의 수업은 조금 더 생기가 있었다. 물론 목사는 신약성경의 타락한 그리스어로도, 교장이 젊음이 싱그러운 호메로스의 언어로 만들어 내는 것보다 훨씬 매혹적이고 화려한 무언가를 여전히 만들어 낼 줄 알았다. 그러나 그래도 그것은 호메로스였다. 처음의 어려움 바로 뒤에서 놀라움과 즐거움이 튀어나와 거스를 수 없이 앞으로 꾀어 가는 호메로스였다. 한스는 신비롭도록 아름답게 울리면서도 알아듣기 어려운 시구 앞에서 떨리는 조바심과 긴장에 차서 앉아 있곤 했고, 그 고요하고 밝은 정원을 열어 줄 열쇠를 사전에서 찾느라 서두르고 또 서둘렀다.
이제 숙제도 다시 넉넉해졌고, 그는 많은 저녁을 어떤 과제를 물고 늘어진 채 다시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다. 기벤라트 씨는 이 부지런함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그의 둔한 머릿속에는 좁고 하찮은 수많은 사람이 품는 이상이 어렴풋이 살아 있었다. 제 줄기에서 가지 하나가 자기를 넘어 뻗어 나가, 그가 멍하니 우러러보는 높은 곳까지 자라는 것을 보는 일이었다.
방학 마지막 주에 교장과 목사는 갑자기 다시 눈에 띄게 너그러워지고 걱정스러워했다. 그들은 소년을 산책하라고 내보내고 수업을 멈추었으며, 그가 생기 있고 기운찬 몸으로 새 길에 들어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힘주어 말했다.
한스는 몇 번 더 낚시를 하러 갔다. 두통이 잦아서 그는 이제 연푸른 초가을 하늘을 비추는 강가에 건성으로 앉아 있었다. 그때 무엇 때문에 그토록 여름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그는 수수께끼 같았다. 이제는 오히려 방학이 끝나고, 전혀 다른 생활과 공부가 시작될 신학교에 가게 된 것이 기뻤다. 마음이 없었으므로 물고기도 거의 낚지 못했고, 한번은 아버지가 그것을 두고 농담을 하자 그는 더는 낚시를 하지 않고 낚싯줄을 다시 지붕 밑 방 벽장에 올려 두었다.
마지막 며칠이 되어서야 그는 몇 주 동안 구두장이 플라이크에게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이번에도 그는 억지로 마음을 다잡아야 그를 찾아갈 수 있었다. 저녁이었고, 구두장이는 무릎마다 어린아이를 하나씩 앉힌 채 거실 창가에 앉아 있었는데, 창문을 열어 두었는데도 가죽과 구두약 냄새가 온 집 안에 배어 있었다. 한스는 주눅이 든 채 구두장이의 단단하고 넓적한 오른손에 제 손을 얹었다.
"그래, 어떻게 지내니?" 구두장이가 물었다. "목사한테는 부지런히 다녔니?"
"네, 날마다 가서 많이 배웠어요."
"뭘 말이냐?"
"주로 그리스어요. 하지만 다른 것도 이것저것요."
"그런데 나한테는 한 번도 오고 싶지 않았니?"
"오고 싶기야 했죠, 플라이크 아저씨. 그런데 도무지 짬이 안 났어요. 목사님한테 날마다 한 시간, 교장 선생님한테 날마다 두 시간, 그리고 일주일에 네 번은 수학 선생님한테 가야 했거든요."
"지금 방학인데? 그건 터무니없는 짓이다!"
"모르겠어요. 선생님들이 그러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공부는 저한테 힘들지 않아요."
"그럴 테지." 플라이크가 그렇게 말하며 소년의 팔을 붙잡았다. "공부야 괜찮다 치자. 그런데 이 팔뚝은 이게 뭐냐? 얼굴도 이렇게 야위었고. 아직도 두통이 나니?"
"가끔요."
"그건 터무니없는 짓이다, 한스. 죄이기도 하고. 네 나이에는 바깥바람도 제대로 쐬고 몸도 움직이고 제대로 쉬어야 하는 법이다. 방학은 뭐 하라고 주는 거냐? 방구석에 틀어박혀 공부만 더 하라고 주는 건 아니잖니. 너는 아주 뼈와 가죽만 남았다."
한스는 웃었다.
"그래, 그래도 너는 이겨 내겠지. 하지만 지나친 건 지나친 거다. 그래, 목사한테 배운 공부는 어땠니? 그 사람이 뭐라고 하더냐?"
"이것저것 많이 말씀하셨지만, 나쁜 말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분은 엄청나게 많이 아세요."
"성경을 깔보는 말을 한 적은 없었니?"
"아뇨, 한 번도요."
"그거 다행이다. 내 너한테 일러두마. 영혼을 다치느니 차라리 몸을 열 번 망치는 게 낫다! 너는 나중에 목사가 되려고 하지. 그건 귀하고도 무거운 직분이고, 그 일을 하려면 너희 젊은 사람들 대부분하고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서, 언젠가 영혼들을 돕고 가르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지. 나는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라고, 그 일을 위해 기도하겠다."
그는 일어서더니 두 손을 소년의 어깨에 꽉 얹었다.
"잘 가거라, 한스. 늘 선한 길에 머물러라. 주께서 너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켜 주시기를. 아멘."
그 엄숙함이며 기도며, 평소의 사투리를 버리고 또박또박 표준말로 하는 말투가 소년에게는 숨 막히고 거북했다. 목사는 작별할 때 그런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채비를 하고 작별 인사를 다니느라 며칠이 빠르고 어수선하게 지나갔다. 침구와 옷가지, 속옷과 책을 담은 궤짝은 벌써 부쳤고, 이제는 여행 가방만 꾸리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서늘한 아침, 아버지와 아들은 마울브론으로 떠났다. 고향을 떠나고 아버지의 집을 나와 낯선 학교로 옮겨 가는 것은 아무래도 묘하고 가슴이 답답한 일이었다.
주
1. 벵겔·외팅거·슈타인호퍼는 18세기 슈바벤 경건주의 신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