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년판 서문
이 허구의 바탕이 된 사건은 다윈 박사와 독일의 몇몇 생리학 저술가들이 일어날 수 없는 일만은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1 그렇다고 내가 그런 상상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믿는다고 여기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상상의 작품을 떠받치는 토대로 삼으면서도, 나는 내가 그저 초자연적인 공포를 줄줄이 엮고 있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이 이야기의 흥미가 달린 그 사건은 유령이나 마법을 다룬 여느 이야기가 지닌 약점에서 벗어나 있다. 이 사건은 거기서 펼쳐지는 상황들이 새롭다는 점에서 내세울 만하다. 그리고 물리적 사실로는 아무리 불가능하다 해도,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평범한 관계가 내줄 수 있는 그 어떤 시각보다 더 넓고 더 우뚝한 시각을 상상력에 내주어, 인간의 정념을 그려 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인간 본성의 기본 원리가 지닌 진실은 지키려고 애쓰면서도, 그 원리들을 새롭게 짜 맞추는 일은 서슴지 않았다. 『일리아스』와 그리스의 비극 시, 『템페스트』와 『한여름 밤의 꿈』의 셰익스피어, 그리고 무엇보다 『실낙원』의 밀턴이 이 규칙을 따른다. 그러니 자기 노고로 남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스스로 즐거움을 얻으려는 더없이 보잘것없는 소설가라도, 주제넘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산문 소설에 이 자유를, 아니 이 규칙을 적용해도 될 것이다. 이 규칙을 받아들인 덕분에 인간 감정의 그토록 절묘한 짜임들이 최고의 시 작품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의 바탕이 된 상황은 우연한 대화에서 떠오른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즐거움을 얻으려고, 한편으로는 아직 써 보지 않은 마음의 힘을 시험해 보려고 시작한 것이었다. 작품이 나아가면서 여기에 다른 동기들도 섞여 들었다. 이 작품에 담긴 감정이나 인물에 어떤 도덕적 경향이 있든, 그것이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나는 결코 무관심하지 않다. 그러나 이 점에서 내 관심은 주로, 요즘 소설들이 사람의 기운을 빼놓는 해로움을 피하고 가족 사이의 애정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리고 보편적인 덕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보여 주는 데에만 머물렀다. 주인공의 성격과 처지에서 자연스레 우러나는 의견들이 언제나 나 자신의 신념이라고 여겨서는 결코 안 된다. 또 뒤에 이어지는 글에서 어떤 종류의 철학 학설이든 그것을 깎아내리려는 뜻을 끌어내는 것도 옳지 않다.
지은이에게 이 이야기가 더욱 각별한 까닭이 또 하나 있다. 이 이야기는 그 무대가 주로 펼쳐지는 장엄한 고장에서, 그리고 두고두고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벗들과 어울리던 가운데 시작되었다. 나는 1816년 여름을 제네바 근교에서 보냈다. 그해 날씨는 춥고 비가 잦아서, 저녁이면 우리는 활활 타는 장작불 둘레에 모여 앉았고, 이따금 마침 손에 들어온 독일 유령 이야기 몇 편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 안에 장난스럽게 흉내 내 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두 벗과 나는 저마다 초자연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나씩 쓰기로 했다(그 두 벗 가운데 한 사람이 쓴 이야기라면, 내가 언젠가 써 내기를 바랄 수 있는 그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에게 훨씬 더 환영받을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갑자기 맑게 갰고, 두 벗은 나를 두고 알프스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알프스가 펼쳐 보이는 장엄한 풍경 속에서 유령에 얽힌 공상은 모조리 잊어버렸다.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그때 끝까지 완성된 단 하나의 이야기다.
말로에서, 1817년 9월.
주
1. 이 서문은 남편 퍼시 비시 셸리가 지은이 이름으로 써서 1818년 초판에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