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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enstein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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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어느 날 저녁 나는 실험실에 앉아 있었다. 해는 이미 졌고, 달이 막 바다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일을 하기에는 빛이 모자라 나는 손을 놓은 채, 오늘 밤은 이만 일을 그만둘지 아니면 쉬지 않고 매달려 서둘러 끝을 볼지 생각하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앉아 있는 동안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따져 보게 되었다. 세 해 전에도 나는 똑같은 일에 매달렸고, 그 결과 유례없이 잔혹한 짓으로 내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그 마음을 영원히 더없이 쓰라린 회한으로 채운 악귀를 만들어 냈다. 이제 나는 또 하나의 존재를 빚으려 하고 있었는데, 그 성품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여자는 제 짝보다 만 배는 더 악독해져서 살인과 비참을 그 자체로 즐기게 될지도 몰랐다. 그는 사람 사는 곳을 떠나 황야에 숨겠다고 맹세했지만 그 여자는 맹세하지 않았다. 그리고 십중팔구 생각하고 따질 줄 아는 동물이 될 그 여자는, 자기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맺어진 약속을 따르기를 거부할지도 몰랐다. 둘이 서로 미워할 수도 있었다. 이미 살아 있는 피조물은 제 흉한 생김새를 혐오했는데, 그 흉함이 여자의 모습을 하고 눈앞에 나타나면 더 큰 혐오를 품지 않겠는가? 여자 또한 역겨워하며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 인간의 더 뛰어난 아름다움에 끌릴지도 몰랐다. 그 여자가 떠나 버리면 그는 다시 혼자가 되어, 자기와 같은 종에게마저 버림받았다는 새로운 모욕에 격분할 것이었다.

설령 둘이 유럽을 떠나 신대륙의 황야에 산다 해도, 악령이 그토록 목말라하던 공감이 맨 먼저 낳을 결과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일 것이고, 그러면 악마의 종족이 땅 위에 퍼져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태롭고 공포로 가득한 처지로 몰아넣을지도 몰랐다. 나 하나 좋자고 대대로 이어질 끝없는 세대에 이 저주를 지울 권리가 내게 있단 말인가? 전에는 내가 만든 존재의 궤변에 마음이 움직였고 그의 악귀 같은 위협에 넋을 잃었지만, 이제 처음으로 내 약속이 얼마나 사악한지 불현듯 깨달았다. 다가올 시대가 나를 역병이라 저주하리라고, 어쩌면 온 인류의 존재를 값으로 치르고서라도 제 평화를 사기를 서슴지 않은 이기적인 인간이라 저주하리라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몸을 떨었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때 문득 고개를 들었다. 달빛 속에 악령이 창가에 서 있었다. 자기가 맡긴 일을 하며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입술이 섬뜩한 웃음으로 일그러졌다. 그렇다, 그는 내 여행길을 줄곧 따라왔다. 숲속을 서성이고, 동굴에 숨고, 넓고 황량한 들판에 몸을 피하며 따라왔다. 그리고 이제 일이 얼마나 되었는지 살피고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러 왔다.

그를 바라보는 동안 그의 얼굴에는 더할 나위 없는 악의와 배신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와 같은 것을 또 하나 만들겠다던 약속을 떠올리자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나는 격정에 떨며 만들고 있던 것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흉물은 앞으로 존재할 그 피조물에게 자기 행복을 걸고 있었는데, 내가 그것을 부수는 것을 보고는 악마 같은 절망과 복수의 울부짖음을 내지르며 물러갔다.

나는 방을 나와 문을 잠그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엄숙히 맹세한 뒤, 떨리는 걸음으로 내가 지내는 방을 찾아갔다. 나는 혼자였다. 우울을 걷어 주고, 더없이 끔찍한 몽상이 주는 메스꺼운 압박에서 나를 풀어 줄 사람은 곁에 아무도 없었다.

몇 시간이 흘렀고, 나는 창가에 머문 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잦아들어 바다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온 자연이 고요한 달의 눈길 아래 쉬고 있었다. 고깃배 몇 척만이 물 위에 점점이 떠 있었고, 이따금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어부들이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를 물 건너로 실어 왔다. 나는 그 고요를 느꼈지만 그 고요가 얼마나 깊은지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물가 가까이에서 노 젓는 소리가 내 귀를 붙잡았고, 누군가 내 집 바로 가까이에서 뭍으로 올라왔다.

몇 분 뒤, 누군가 살며시 문을 열려는 듯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떨었다. 누구인지 예감이 들어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오두막에 사는 농부 하나를 깨우고 싶었지만, 무서운 꿈속에서 자주 느끼는 그 무력감, 닥쳐오는 위험에서 달아나려 해도 헛되이 애만 쓰게 되는 그 무력감에 사로잡혀, 나는 그 자리에 뿌리박힌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곧 복도를 따라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내가 두려워하던 흉물이 나타났다. 그는 문을 닫고 내게 다가와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시작한 일을 당신 손으로 부쉈구려. 무슨 속셈이오? 감히 약속을 깨겠다는 것이오? 나는 고생과 비참을 견뎠소. 나는 당신과 함께 스위스를 떠났소. 라인강 기슭을 따라, 버드나무 우거진 섬들 사이로, 언덕 꼭대기를 넘어 기다시피 따라왔소. 잉글랜드의 황야에서, 스코틀랜드의 황무지에서 여러 달을 지냈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피로와 추위와 굶주림을 견뎠소. 그런데 감히 내 희망을 부수겠다는 것이오?"

"꺼져라! 그래, 나는 약속을 깬다. 생김새로나 사악함으로나 너와 똑같은 것을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

"노예야, 전에는 내가 너와 이치를 따졌다. 그러나 너는 내가 몸을 낮춰 줄 값어치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냈다. 내게 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너는 네가 비참하다고 믿겠지만, 나는 너를 햇빛조차 증오스러울 만큼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 너는 나의 창조자다. 그러나 나는 너의 주인이다. 복종해라!"

"내가 망설이던 때는 지났고, 네 힘이 끝날 때가 왔다. 네 위협으로는 나를 움직여 사악한 짓을 하게 만들 수 없다. 오히려 네 위협 때문에, 악덕을 함께할 짝을 너에게 만들어 주지 않겠다는 결심이 굳어질 뿐이다. 내가 냉정한 정신으로, 죽음과 비참을 즐기는 악령을 이 땅에 풀어놓겠느냐? 꺼져라! 내 결심은 확고하다. 네 말은 내 분노를 돋울 뿐이다."

괴물은 내 얼굴에서 내 결심을 읽고, 어찌할 수 없는 분노에 이를 갈았다. "사람마다 가슴에 품을 아내를 얻고 짐승마다 제 짝이 있는데, 나만 홀로 있어야 한단 말이냐?" 그가 외쳤다. "나에게도 애정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애정은 혐오와 멸시로 되돌아왔다. 인간아! 미워할 테면 미워해라. 그러나 조심해라! 너의 시간은 두려움과 비참 속에 흘러갈 것이고, 머지않아 벼락이 떨어져 너의 행복을 영원히 앗아 갈 것이다. 내가 비참의 밑바닥에서 기는 동안 너는 행복하겠다는 것이냐? 너는 내 다른 정념들은 꺾을 수 있다. 그러나 복수가 남아 있다. 이제부터 빛보다도 먹을 것보다도 소중한 복수가!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전에, 나의 폭군이자 나를 괴롭히는 자인 너는 너의 비참을 내려다보는 해를 저주하게 될 것이다. 조심해라. 나는 두려움을 모르고, 그래서 강하다. 나는 뱀처럼 교활하게 지켜보다가 그 독으로 물 것이다. 인간아, 너는 네가 입힌 상처를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 악마야, 그만둬라. 그런 악의에 찬 소리로 공기를 더럽히지 마라. 나는 너에게 내 결심을 밝혔고, 말 따위에 굽힐 겁쟁이가 아니다. 썩 물러가라. 나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좋다. 가겠다. 그러나 기억해라. 네 결혼식 날 밤에 내가 함께 있겠다."

나는 앞으로 달려들며 외쳤다. "이 악당아! 내 사형 집행장에 서명하기 전에, 너 자신부터 안전한지 확인해 두어라."

나는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는 나를 피해 서둘러 집을 빠져나갔다. 잠시 뒤 나는 그가 배에 오른 것을 보았다. 배는 화살처럼 빠르게 물을 가르며 나아가더니 곧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모든 것이 고요해졌지만, 그의 말이 귓가에 울렸다. 나는 내 평화를 죽인 살인자를 뒤쫓아 바다에 처넣고 싶은 분노로 타올랐다. 상상이 나를 괴롭히고 찌르는 천 가지 모습을 불러내는 동안, 나는 불안에 쫓겨 방 안을 바삐 서성였다. 왜 그를 뒤쫓아 목숨을 건 싸움으로 맞붙지 않았던가? 그러나 나는 그를 놓아 보냈고 그는 본토 쪽으로 길을 잡았기에, 그 끝없는 복수에 바쳐질 다음 희생자가 누구일지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의 말을 떠올렸다. "네 결혼식 날 밤에 내가 함께 있겠다." 그렇다면 그때가 내 운명이 이루어지도록 정해진 때였다. 그 시각에 나는 죽을 것이고, 그의 악의를 채워 주는 동시에 꺼뜨릴 것이었다. 그런 앞날을 생각해도 두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엘리자베스를, 약혼자를 그토록 잔인하게 빼앗겼음을 알게 될 때 엘리자베스가 흘릴 눈물과 끝없는 슬픔을 떠올리자, 여러 달 만에 처음으로 눈물이 내 눈에서 쏟아졌다. 그리고 나는 처절하게 싸워 보지도 않고 적 앞에 쓰러지지는 않으리라 결심했다.

밤이 지나고 해가 바다에서 떠올랐다. 분노의 격렬함이 절망의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것을 평온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내 감정은 한결 평온해졌다. 나는 간밤에 다툼이 벌어진 그 소름 끼치는 곳인 집을 나와 바닷가를 거닐었다. 나는 그 바다를 나와 같은 인간들 사이를 가르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여기다시피 했고, 아니, 정말로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슬며시 들기까지 했다. 고달프기야 하겠지만 갑작스러운 불행의 충격에 시달리지 않고 그 메마른 바위섬에서 평생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다. 돌아간다면 나는 제물이 되거나, 내가 손수 만든 악령의 손아귀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게 될 터였다.

나는 사랑하는 모든 것과 떨어져 그 이별에 비참해하는, 쉴 곳 없는 유령처럼 섬을 헤맸다. 한낮이 되어 해가 더 높이 떠오르자 나는 풀밭에 누웠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지난밤을 꼬박 새운 데다 신경은 곤두서 있었고, 눈은 뜬눈으로 지새운 밤과 비참함에 벌겋게 달아 있었다. 그렇게 빠져든 잠은 나를 새롭게 해 주었고, 깨어나자 나는 다시 나와 같은 인간들의 무리에 속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지난 일을 한결 침착하게 돌이켜 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악귀의 말은 여전히 조종처럼 귓가에 울렸고, 꿈만 같으면서도 현실처럼 또렷하고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해가 한참 기울도록 나는 여전히 바닷가에 앉아, 걸신들린 듯 사나워진 허기를 귀리 과자로 달래고 있었다. 그때 고깃배 한 척이 바로 가까이에 닿더니, 사내 하나가 내게 꾸러미를 가져다주었다. 제네바에서 온 편지들과, 와서 함께하자고 간청하는 클레르발의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클레르발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헛되이 시간만 보내고 있으며, 런던에서 사귄 벗들이 인도 사업을 두고 시작한 교섭을 마무리하려면 돌아와야 한다고 편지로 알려 왔다고 했다. 더는 떠날 날을 미룰 수 없지만, 런던으로 가는 여행에 이어 지금 짐작하는 것보다 더 일찍 먼 항해를 떠나게 될지도 모르니 될 수 있는 한 많은 시간을 자기와 함께 보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니 외로운 섬을 떠나 퍼스에서 만나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자고 애원했다. 이 편지는 어느 만큼 나를 삶으로 불러 돌려놓았고, 나는 이틀 뒤에 섬을 떠나기로 했다.

그러나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일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화학 기구들을 꾸려야 했고, 그러자면 그 혐오스러운 작업이 벌어졌던 방에 들어가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스꺼운 도구들을 손으로 만져야 했다. 이튿날 새벽, 나는 용기를 넉넉히 끌어모아 실험실 문의 자물쇠를 열었다. 내가 부숴 버린, 반쯤 만들다 만 피조물의 잔해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산 사람의 살을 짓이겨 놓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잠시 멈췄다가 방에 들어섰다. 떨리는 손으로 기구들을 방 밖으로 나르다가, 내 작업의 잔해를 그대로 남겨 두었다가는 농부들의 공포와 의심을 살 테니 그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들을 돌멩이와 함께 바구니에 잔뜩 담아 치워 두고 바로 그날 밤 바다에 던지기로 했으며, 그동안은 바닷가에 앉아 화학 기구들을 닦고 정리했다.

악령이 나타난 그날 밤 이후 내 감정에 일어난 변화보다 더 완전한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전에는 무슨 결과가 따르든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 음울한 절망 속에서 내 약속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눈앞을 가리던 막이 걷혀 처음으로 똑똑히 보게 된 것 같았다. 일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생각은 한순간도 들지 않았다. 내가 들은 위협이 생각을 짓눌렀지만,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서 그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만든 악귀와 같은 것을 또 하나 만드는 것은 더없이 비열하고 잔악한 이기심의 소행이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렸고, 다른 결론으로 이끌 수 있는 생각은 모두 마음에서 몰아냈다.

새벽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에 달이 떠올랐다. 나는 바구니를 작은 거룻배에 싣고 물가에서 4마일쯤 바다로 나아갔다. 사방이 더없이 쓸쓸했다. 배 몇 척이 뭍으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 배들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끔찍한 죄를 저지르려는 사람 같은 기분이 들어, 같은 인간들과 마주칠까 봐 몸서리치며 조마조마하게 피했다. 그때까지 맑던 달이 한순간 갑자기 짙은 구름에 덮였고, 나는 그 어둠을 틈타 바구니를 바다에 던졌다. 바구니가 가라앉으며 꾸르륵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하늘은 구름에 덮였지만 공기는 맑았고, 마침 일기 시작한 북동풍에 쌀쌀하기는 했어도 그 바람이 나를 상쾌하게 하고 기분 좋은 느낌으로 채워 주어, 나는 물 위에 좀 더 머물기로 했다. 나는 키를 똑바로 고정해 두고 배 바닥에 몸을 쭉 뻗고 누웠다. 구름이 달을 가려 모든 것이 어두웠고, 들리는 것이라고는 용골이 물결을 가르며 내는 배의 소리뿐이었다. 그 웅얼거림에 마음이 누그러져, 나는 곧 깊이 잠들었다.

얼마나 오래 그렇게 있었는지 모르지만, 깨어나 보니 해가 이미 꽤 높이 떠 있었다. 바람이 거셌고, 파도가 쉴 새 없이 내 작은 거룻배를 위협했다. 바람은 북동풍이었고, 내가 떠나온 해안에서 나를 멀리 밀어냈을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뱃길을 바꾸려 애썼지만, 한 번만 더 시도했다가는 배가 순식간에 물로 가득 차리라는 것을 곧 알았다. 이런 처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람에 떠밀려 가는 것뿐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얼마간 공포를 느꼈다. 나침반도 없었고, 세상의 이쪽 바다 언저리의 지리를 너무도 몰라서 해가 떠 있어도 방향을 잡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드넓은 대서양으로 떠밀려 가 굶주림의 온갖 고통을 맛보거나, 둘레에서 울부짖으며 나를 때려 대는 끝없는 물속에 삼켜질지도 몰랐다. 이미 여러 시간을 바다에 나와 있었던 터라, 앞으로 닥칠 다른 고통들의 전주곡이라 할 타는 듯한 갈증에 시달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바람에 쫓겨 날아가고 다른 구름이 곧 그 자리를 메웠고, 바다를 내려다보니 그곳이 내 무덤이 될 터였다. "악귀야," 내가 외쳤다. "네 일은 벌써 이루어졌구나!" 나는 엘리자베스와 아버지와 클레르발을 생각했다. 모두 뒤에 남겨 두고 왔으니, 괴물이 그들에게 피에 굶주린 무자비한 정념을 마음껏 채울지도 몰랐다. 이 생각에 나는 몽상 속으로 빠져들었는데, 그 몽상이 어찌나 절망적이고 무서웠던지, 이 모든 장면이 내 앞에서 영영 막을 내리려는 지금도 그것을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해가 지평선 쪽으로 기울면서 바람은 차츰 잦아들어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되었고, 부서지는 큰 파도도 사라졌다. 그 대신 묵직한 너울이 일었다. 나는 멀미가 나서 키를 붙잡고 있기도 힘들었는데, 그때 갑자기 남쪽으로 높은 땅이 길게 뻗어 있는 것이 보였다.

피로와, 몇 시간 동안 견딘 무서운 조바심으로 기진맥진해 있던 터라, 살았다는 이 갑작스러운 확신은 따뜻한 기쁨의 홍수처럼 가슴으로 밀려들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의 감정은 얼마나 변하기 쉬운가. 비참이 넘치는 가운데서도 삶에 매달리는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기이한가! 나는 옷 일부로 돛을 하나 더 만들어 달고, 육지를 향해 간절히 뱃머리를 돌렸다. 육지는 거칠고 바위투성이로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사람이 땅을 일군 흔적이 쉽게 눈에 띄었다. 해안 가까이에 배들이 보였고, 나는 별안간 문명 세계의 사람들 곁으로 되돌아온 것만 같았다. 나는 육지의 굽이를 조심스레 따라가다가, 마침내 작은 곶 뒤로 솟아오르는 첨탑 하나를 보고 반가워 소리쳤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으므로, 먹을 것을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인 그 마을로 곧장 배를 몰기로 했는데, 다행히 돈은 지니고 있었다. 곶을 돌자 작고 깔끔한 마을과 좋은 항구가 보였고, 나는 뜻밖에 살아났다는 기쁨에 가슴이 뛰는 채로 항구에 들어섰다.

내가 배를 매고 돛을 정리하는 동안 사람들 여럿이 그곳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내 모습에 몹시 놀란 듯했지만, 도와주기는커녕 저희끼리 수군거리며 손짓을 주고받았는데, 다른 때였다면 나는 그런 몸짓에 조금은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저 그들이 영어로 말한다는 것만 알아차렸고, 그래서 영어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시오, 여러분," 내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마을 이름이 무엇이고 여기가 어디인지 좀 알려 주시겠소?"

"곧 알게 될 거요." 쉰 목소리의 사내가 대답했다. "어쩌면 당신 입맛에 그리 맞지 않는 곳에 온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당신이 묵을 데를 당신한테 물어보고 정하지는 않을 거요. 내 장담하지."

낯선 사람에게서 그런 무례한 대답을 듣고 나는 몹시 놀랐고, 그의 동무들이 찌푸린 성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당황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 거칠게 대답하시오?" 내가 되물었다. "낯선 사람을 이렇게 박대하는 것이 영국 사람의 풍습은 아닐 텐데."

"영국 사람 풍습이 어떤지는 모르겠소." 사내가 말했다. "하지만 악당을 미워하는 건 아일랜드 사람 풍습이오."

이 이상한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이 빠르게 불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고, 그것이 나를 짜증스럽게 하면서도 어느 만큼은 불안하게 했다. 나는 여관으로 가는 길을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걸음을 옮기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나를 따라와 에워쌌는데, 그때 험상궂게 생긴 사내 하나가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자, 나리, 커윈 씨 댁으로 따라가서 당신이 누군지 해명해야겠소."

"커윈 씨가 누구요? 내가 왜 해명을 해야 하오? 여기는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오?"

"그렇소, 나리. 정직한 사람들한테야 넉넉히 자유로운 나라요. 커윈 씨는 치안판사요. 당신은 어젯밤 이곳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신사가 어떻게 죽었는지 해명해야 하오."

그 대답에 나는 깜짝 놀랐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나는 죄가 없었고, 그것은 쉽게 증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잠자코 길잡이를 따라갔고, 마을에서 가장 좋은 집 가운데 하나로 끌려갔다. 피로와 허기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몸이 약해진 기색이 겁을 먹었다거나 죄를 알고 있다는 뜻으로 읽히지 않도록 있는 힘을 다 끌어모으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몇 분 뒤에 나를 덮쳐, 치욕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공포와 절망 속에 모조리 꺼뜨려 버릴 재앙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그때 나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여기서 잠시 멈추어야겠다. 이제부터 이야기할 그 끔찍한 일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되살려 내려면 내 모든 용기를 짜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