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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제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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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그러고 나서 클레르발이 다음 편지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바로 나의 엘리자베스가 보낸 편지였다.

"사랑하는 빅터에게"

"넌 아팠어, 아주 많이 아팠어. 다정하고 고마운 헨리가 꼬박꼬박 편지를 보내 주는데도 네 걱정을 놓을 수가 없어. 넌 편지를 쓰는 것도, 펜을 쥐는 것조차 금지당했지. 그래도 빅터, 우리 걱정을 가라앉히려면 네 말 한마디가 꼭 필요해. 오랫동안 나는 우편이 올 때마다 이번에는 네 글 한 줄이 오겠지 생각했고, 그렇게 숙부님을 달래서 잉골슈타트까지 가시겠다는 걸 말렸어. 숙부님이 그 먼 길의 불편과 어쩌면 위험까지 겪으시지 않도록 막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 가지 못하는 게 얼마나 자주 안타까웠는지 몰라! 네 병상을 지키는 일이 돈만 바라는 어느 늙은 간병인한테 맡겨졌을 거라고 나는 혼자 상상하는데, 그런 사람은 네가 무엇을 바라는지 짐작도 못 할 테고, 네 가엾은 사촌처럼 정성과 애정을 다해 돌봐 주지도 못할 텐데. 하지만 이제 그것도 다 지난 일이야. 네가 정말로 나아지고 있다고 클레르발이 편지에 썼거든. 네가 머잖아 네 손으로 쓴 글씨로 이 소식이 맞다고 확인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

"어서 나아서 우리에게 돌아와. 행복하고 명랑한 집과, 너를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네 아버지는 아주 정정하셔. 너를 보는 것, 네가 잘 지낸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말고는 바라시는 게 없어. 그것만 되면 그 자애로운 얼굴에 근심 한 점 드리우지 않으실 거야. 우리 어니스트가 얼마나 컸는지 보면 너도 무척 기쁠 거야! 이제 열여섯 살인데, 활기와 기운이 넘쳐. 진짜 스위스 사람이 되어 외국 군대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적어도 형이 우리에게 돌아올 때까지는 우리가 그 애를 보내 줄 수가 없어. 숙부님은 먼 나라에서 군인으로 사는 걸 탐탁지 않아 하셔. 하지만 어니스트는 한 번도 너만큼 끈기 있게 공부에 매달리지 못했어. 공부를 지긋지긋한 족쇄로 여기고, 산을 타거나 호수에서 노를 저으며 바깥에서만 지내. 우리가 한발 물러서서 그 애가 고른 길로 가게 해 주지 않으면 그 애가 게으름뱅이가 될까 봐 걱정이야."

"네가 떠난 뒤로 우리 귀여운 아이들이 자란 것 말고는 달라진 게 별로 없어. 파란 호수와 눈 덮인 산은 결코 변하지 않아. 그리고 우리의 평온한 집과 만족스러운 마음도 그 바뀌지 않는 법칙을 따르는 것 같아. 나는 자잘한 일들로 시간을 보내며 즐겁게 지내고, 무슨 수고를 하든 내 둘레에서 행복하고 다정한 얼굴만 보는 것으로 넉넉히 보답받아. 네가 떠난 뒤로 우리 작은 집안에 단 하나 바뀐 일이 있어. 저스틴 모리츠가 어떻게 우리 식구가 되었는지 기억나? 아마 기억 안 나겠지. 그러니 그 애 내력을 몇 마디로 들려줄게. 저스틴의 어머니 모리츠 부인은 아이 넷을 둔 과부였는데, 저스틴은 그 가운데 셋째였어. 저스틴은 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이상하게 비뚤어진 마음 탓에 어머니는 그 애를 견디지 못했고, 모리츠 씨가 죽은 뒤에는 그 애를 아주 모질게 대했어. 숙모님이 그걸 보시고, 저스틴이 열두 살 때 그 어머니를 설득해서 그 애가 우리 집에 와서 살도록 허락을 받아 내셨지. 우리나라의 공화 제도는 둘레의 큰 군주국들에 퍼진 것보다 더 소박하고 행복한 풍습을 낳았고,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계층 사이의 구별이 덜하고, 아랫사람들도 그리 가난하지도 멸시받지도 않으니 몸가짐이 더 점잖고 도덕적이야. 제네바의 하인은 프랑스나 영국의 하인과 같은 뜻이 아니야. 이렇게 우리 집에 들어온 저스틴은 하인의 일을 배웠어. 하지만 우리 복된 나라에서 그 처지는 무지하다거나 인간의 존엄을 내버린다는 뜻을 품고 있지 않아."

"너도 기억하겠지만, 저스틴은 네가 무척 아끼던 아이였어. 언젠가 네가, 기분이 언짢을 때도 저스틴이 한 번 쳐다보기만 하면 다 풀린다고 했던 게 기억나. 아리오스토가 안젤리카1의 아름다움을 두고 든 것과 같은 까닭이라고 했지. 그 애는 그렇게 마음이 열려 있고 행복해 보였으니까. 숙모님은 저스틴을 몹시 아끼셔서, 처음 생각하셨던 것보다 더 나은 교육을 시켜 주셨어. 이 은혜는 넉넉히 갚아졌어. 저스틴은 세상에서 가장 고마워할 줄 아는 아이였거든. 그 애가 고맙다는 말을 늘어놓았다는 게 아니야. 그런 말이 그 애 입에서 나오는 걸 나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 하지만 그 애 눈을 보면 자기를 보살펴 주신 분을 거의 숭배한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성격은 쾌활하고 여러 면에서 철이 없었지만 숙모님의 몸짓 하나하나에는 더없이 마음을 썼고, 숙모님을 모든 훌륭함의 본보기로 여겨 그 말투와 몸가짐을 흉내 내려 애썼어. 그래서 지금도 저스틴을 보면 숙모님 생각이 자주 나."

"사랑하는 숙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다들 제 슬픔에 빠져 있느라, 숙모님이 앓으시는 동안 더없이 애타는 정성으로 곁을 지킨 가엾은 저스틴을 아무도 돌아보지 못했어. 가엾은 저스틴은 몹시 앓았어. 하지만 그 애에게는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어."

"그 애의 형제자매가 하나씩 죽었고, 어머니에게는 소홀히 대하던 딸 하나 말고는 자식이 하나도 남지 않았어. 그 여자는 양심이 괴로웠어. 아끼던 자식들이 죽은 것은 자기의 편애를 벌하려는 하늘의 심판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지. 그 여자는 로마 가톨릭 신자였는데, 고해 신부도 그 생각을 굳혀 준 것 같아. 그래서 네가 잉골슈타트로 떠나고 몇 달 뒤에, 뉘우친 어머니가 저스틴을 집으로 불러들였어. 가엾은 아이! 우리 집을 떠날 때 그 애는 울었어. 숙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그 애는 많이 달라져 있었어. 슬픔 때문에, 전에는 유난히 발랄하던 몸가짐이 부드러워지고 사랑스럽게 온순해졌지. 어머니 집에서 지내는 것도 그 애의 명랑함을 되찾아 줄 만한 생활은 아니었어. 그 가엾은 여자는 뉘우치면서도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해서, 이따금 자기가 모질게 군 걸 용서해 달라고 저스틴에게 빌었지만, 그보다 훨씬 자주 형제자매가 죽은 게 그 애 탓이라고 몰아세웠어. 끊임없이 애태운 끝에 모리츠 부인은 마침내 쇠약해졌고, 처음에는 그 때문에 더 신경질적이 되었지만 이제는 영원히 평안해. 지난겨울 초, 추위가 막 닥칠 무렵에 세상을 떠났어. 저스틴은 우리에게 돌아왔고, 정말이지 나는 그 애를 무척 아껴. 아주 영리하고 상냥하고, 정말 예뻐.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애의 몸가짐과 말투를 보면 사랑하는 숙모님 생각이 자꾸 나."

"사랑하는 빅터, 귀여운 윌리엄 이야기도 몇 마디 해야겠어. 네가 그 애를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이에 비해 키가 아주 크고, 웃음 띤 사랑스러운 파란 눈에 속눈썹은 짙고, 머리카락은 곱슬곱슬해. 웃으면 건강하게 발그레한 두 뺨에 작은 보조개가 하나씩 패. 벌써 꼬마 색시를 한둘 두었는데, 그중에서도 다섯 살 난 예쁜 꼬마 루이자 비롱을 제일 좋아해."

"자, 빅터, 이제는 제네바의 좋은 이웃들 소문도 좀 듣고 싶겠지. 예쁜 맨스필드 양은 젊은 영국 신사 존 멜번 씨와 결혼할 날을 앞두고 벌써 축하 방문을 받았어. 맨스필드 양의 못생긴 언니 마농은 지난가을에 부자 은행가 뒤빌라르 씨와 결혼했고. 네가 제일 좋아하던 학교 친구 루이 마누아르는 클레르발이 제네바를 떠난 뒤로 몇 번 불운을 겪었지만, 벌써 기운을 되찾았고 아주 발랄하고 예쁜 프랑스 여자 타베르니에 부인과 곧 결혼한다는 소문이야. 그 부인은 과부이고 마누아르보다 나이가 훨씬 많지만, 모두에게 칭찬받고 사랑받는 사람이야."

"편지를 쓰다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어. 하지만 끝맺으려니 다시 걱정이 밀려와. 편지해 줘, 빅터. 한 줄이라도, 한마디라도 우리에게는 축복일 거야. 헨리에게는 그 친절과 애정과 숱한 편지에 천 번 만 번 고맙다고 전해 줘. 우리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어. 잘 있어, 빅터. 몸조심하고, 부탁이니 꼭 편지해!"

"엘리자베스 라벤차"

"제네바에서, 17○○년 3월 18일."


"엘리자베스, 사랑하는 엘리자베스!" 편지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외쳤다. "당장 편지를 써서 다들 걱정을 덜어 줘야겠어." 나는 편지를 썼고, 그 일로 몹시 지쳤다. 그러나 회복은 이미 시작되어 순조롭게 나아갔다. 2주가 더 지나자 나는 방을 나설 수 있었다.

회복한 뒤 맨 먼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클레르발을 대학의 여러 교수에게 소개하는 일이었다. 그 일을 하면서 나는 상처 입은 내 마음에는 몹시 어울리지 않는 거친 대접을 겪었다. 그 치명적인 밤, 내 노동이 끝나고 내 불행이 시작된 그 밤 이후로 나는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에조차 격렬한 반감을 품게 되었다. 다른 데는 건강을 거의 되찾은 뒤에도 화학 기구를 보기만 하면 신경 증세의 고통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헨리는 그것을 알아채고 내 기구들을 모두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치워 두었고, 전에 실험실로 쓰던 방을 내가 싫어하게 된 것을 눈치채고는 숙소도 바꾸어 주었다. 그러나 교수들을 찾아갔을 때 클레르발의 이런 배려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발트만 교수는 내가 과학에서 이룬 놀라운 진보를 친절하고 따뜻하게 칭찬함으로써 나를 고문했다. 그는 곧 내가 그 화제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진짜 까닭은 짐작하지 못하고 내 감정을 겸손 탓으로 돌리고는, 화제를 내 진보에서 학문 그 자체로 돌렸는데, 나를 이야기에 끌어들이고 싶어서라는 것이 뻔히 보였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나를 기쁘게 하려 했지만 나를 괴롭혔다. 그는 훗날 나를 느리고 잔인한 죽음으로 몰아넣는 데 쓰일 도구들을 하나씩 공들여 내 눈앞에 늘어놓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의 말에 몸부림쳤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을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 늘 남의 기분을 재빨리 알아채는 눈과 마음을 지닌 클레르발이, 자기는 그런 일을 전혀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그 화제를 피했고, 이야기는 더 일반적인 쪽으로 흘러갔다. 나는 마음속으로 벗에게 고마워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그가 놀랐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지만, 그는 한 번도 내 비밀을 캐내려 하지 않았다. 나는 끝 모를 애정과 존경이 뒤섞인 마음으로 그를 사랑했지만, 자주 기억에 떠오르는 그 사건을 끝내 그에게 털어놓을 마음을 먹지 못했는데, 남에게 자세히 이야기하면 그 일이 내 마음에 더 깊이 새겨질 뿐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크렘페 교수는 그만큼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거의 견딜 수 없을 만큼 예민한 상태였으므로, 그의 거칠고 무뚝뚝한 찬사는 발트만 교수의 선량한 칭찬보다도 더 큰 고통을 주었다. "빌어먹을 녀석 같으니!" 그가 외쳤다. "이보게 클레르발 군, 정말이지 이 친구가 우리를 모두 앞질렀네. 그래, 눈을 크게 뜨고 싶으면 뜨게.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야.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를 복음서만큼이나 굳게 믿던 풋내기가 이제 대학의 맨 꼭대기에 올라섰단 말일세. 얼른 끌어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체면을 잃고 말 거야. 그래, 그래,"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내 얼굴을 보고 말을 이었다. "프랑켄슈타인 군은 겸손하지. 젊은이에게는 훌륭한 덕목이야. 젊은이는 자기를 낮출 줄 알아야 하네, 알겠나, 클레르발 군. 나도 젊을 때는 그랬지. 하지만 그런 건 금세 닳아 없어지는 법일세."

이제 크렘페 교수는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다행히 그 덕분에 이야기는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화제에서 벗어났다.

클레르발은 자연과학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한 번도 공감한 적이 없었고, 그가 좋아하는 문학 공부는 나를 사로잡았던 공부와 전혀 달랐다. 그는 동방의 언어들을 완전히 제 것으로 익히려는 뜻을 품고 대학에 왔는데, 그래야 스스로 정해 둔 인생 계획을 펼칠 터전이 열리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길은 걷지 않기로 마음먹은 그는, 모험심을 펼칠 무대로 동방에 눈을 돌렸다. 페르시아어와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가 그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나도 쉽게 같은 공부에 뛰어들게 되었다. 나는 원래 빈둥거리는 것을 못 견디는 성미였고, 이제는 생각에서 달아나고 싶고 예전 공부가 싫어졌던 터라, 벗과 함께 배우는 학생이 된 것이 큰 위안이 되었으며, 동방 학자들의 저작에서 가르침뿐 아니라 위로까지 얻었다. 나는 그처럼 그 언어들을 비판적으로 깊이 연구하려 하지는 않았다. 잠시 즐거움을 얻는 것 말고 다른 데 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뜻을 이해하려고 읽었고, 그것만으로도 내 수고는 넉넉히 보답받았다. 그들의 우수는 마음을 달래 주고 그들의 기쁨은 마음을 북돋워 주는데, 다른 어느 나라 작가들을 공부할 때도 그만한 것은 겪어 보지 못했다. 그들의 글을 읽으면 삶은 따스한 햇살과 장미 정원, 아름다운 적의 미소와 찡그림, 그리고 제 심장을 태우는 불꽃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다. 그리스와 로마의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시와는 얼마나 다른가!

이런 일들로 여름이 지나갔고, 나는 늦가을에 제네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몇 가지 일로 늦어지는 사이에 겨울이 오고 눈이 내려 길을 도저히 지날 수 없게 되었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내 여행은 이듬해 봄으로 미뤄졌다. 나는 이렇게 늦어지는 것이 몹시 쓰라렸다. 고향 도시와 사랑하는 벗들이 그토록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귀향이 그렇게 오래 미뤄진 것은 오로지, 클레르발이 그곳 사람 누구와도 아직 사귀기 전에 그를 낯선 곳에 혼자 남겨 두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래도 겨울은 즐겁게 지나갔고, 봄은 유난히 늦게 왔지만 막상 오자 그 아름다움이 늦장을 넉넉히 갚아 주었다.

벌써 5월이 시작되어 나는 출발 날짜를 정해 줄 편지를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헨리가, 내가 그토록 오래 살아온 이 고장과 몸소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잉골슈타트 근교를 걸어서 돌아보자고 했다. 나는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나는 걷기를 좋아했고, 고향의 풍경 속에서 이런 산책을 할 때면 클레르발은 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동무였다.

우리는 이렇게 2주 동안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내 몸과 기운은 진작 회복되어 있었는데, 들이마시는 맑은 공기와 길에서 저절로 마주치는 일들, 그리고 벗과 나누는 이야기 덕분에 한층 더 튼튼해졌다. 그전까지 공부는 나를 같은 인간들과의 어울림에서 떼어 놓고 사람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클레르발은 내 마음속의 더 나은 감정들을 불러내어, 자연의 모습과 아이들의 밝은 얼굴을 사랑하는 법을 내게 다시 가르쳐 주었다. 훌륭한 벗이여! 너는 얼마나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고, 내 마음이 너와 같은 높이에 이를 때까지 끌어올리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이기적인 탐구에 매달리느라 나는 움츠러들고 옹졸해져 있었지만, 너의 상냥함과 애정이 내 감각을 따뜻하게 녹여 활짝 열어 주었다. 나는 몇 해 전, 모두를 사랑하고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슬픔도 걱정도 몰랐던 그 행복한 사람으로 돌아갔다. 행복할 때면 생명 없는 자연도 내게 더없이 즐거운 느낌을 안겨 주는 힘이 있었다. 맑은 하늘과 푸른 들판이 나를 황홀하게 했고, 때는 참으로 거룩한 계절이어서 산울타리에는 봄꽃이 피어 있었고 여름꽃은 벌써 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떨쳐 내려고 아무리 애써도 이길 수 없는 무게로 나를 짓누르던 생각들도 이제는 나를 어지럽히지 않았다.

헨리는 내가 명랑해진 것을 기뻐했고, 내 기분을 진심으로 함께 느껴 주었다. 그는 자기 영혼을 가득 채운 느낌들을 털어놓으면서도 나를 즐겁게 해 주려고 애썼다. 이때 그가 보여 준 재치와 지혜는 참으로 놀라웠다. 그의 이야기는 상상력으로 가득했고, 페르시아와 아랍의 작가들을 흉내 내어 놀라운 공상과 열정이 넘치는 이야기를 그 자리에서 지어내는 일도 아주 잦았다. 어떤 때는 내가 좋아하는 시를 읊어 주었고, 어떤 때는 나를 논쟁으로 끌어들여 무척 기발한 솜씨로 자기 주장을 펼쳤다.

우리는 어느 일요일 오후에 대학으로 돌아왔다. 농부들은 춤을 추고 있었고, 마주치는 사람마다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나 역시 기분이 한껏 올라, 걷잡을 수 없는 기쁨과 흥에 겨워 껑충껑충 뛰듯이 걸었다.

주

  1. 1. 안젤리카: 아리오스토의 『광란의 오를란도』(1516)에 나오는 카타이의 공주. 아름다움으로 기사들을 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