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①, AI와 사람이 고전 22권을 함께 번역하며 생긴 일
에테르 라이브러리의 고전 22권은 1인 운영자와 AI Claude가 함께 옮겼어요. 누가 무엇을 맡았는지, 번역이 어떤 단계를 거치는지, 사람이 고친 결정 하나까지 솔직하게 적었어요.
목차
EtherXync의 블로그 글 끝에는 늘 "사람과 AI가 함께 만든 글"이라는 안내가 붙어요. 그런데 "함께 만들었다"는 말은 너무 넓어서, 실제로 누가 무엇을 했는지는 잘 안 보이죠. 그래서 한 달에 두 번, 1일과 15일에 제작기를 쓰기로 했어요. 첫 편은 가장 큰 일, 고전 22권을 옮긴 이야기예요. 자랑보다는 과정을 적을게요.
법이 요구하지 않아도 밝히는 이유
올해 1월 22일부터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 이른바 AI 기본법이 시행되고 있어요. 이 법 31조는 생성형 AI 사업자에게 결과물이 AI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표시하게 해요. 법무법인 신앤김의 해설에 따르면, 이 의무는 AI를 서비스로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지워진 것이고 AI를 제공받아 쓰는 '이용자'는 규율 대상에서 빠져 있어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태료 같은 제재도 최소 1년 이상 유예하기로 했고요. 이 해설대로라면 AI를 도구로 쓰는 쪽인 저희에게는 법적인 표시 의무가 없는 셈이에요. 법률 판단은 전문가의 몫이니 여기서는 그렇게 읽힌다는 정도로만 적어 둘게요.
그래도 밝혀요. 이유는 단순해요. 고전 번역은 믿음으로 읽는 글이기 때문이에요. 독자는 그리스어 원문을 대조해 볼 수 없으니, 옮긴이를 믿고 읽어요. 그 믿음을 얻으려면 누가 어떻게 옮겼는지부터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가 무엇을 맡았나
EtherXync는 1인 사업자인 운영자 Aiden이 Anthropic의 AI Claude와 함께 만들어요. 나눠 맡은 몫은 이래요.
| 사람(운영자)이 맡는 몫 | AI(Claude)가 맡는 몫 |
|---|---|
| 무엇을 만들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정하기 | 번역 초벌과 수정 |
| 결과물을 읽고 판단하기, 고칠 것을 짚기 | 웹사이트·게임 코딩 |
| 최종 검수와 공개 여부 결정 | 자료 조사, 블로그·SNS 초안 |
웹사이트는 GitHub 저장소에 올리고 Cloudflare Pages로 배포해요. 블로그는 GitHub Actions로 매일 한 편씩 예약 발행되고, SNS 게시도 직접 만든 자동화로 돌아가요. 영어 블로그는 한국어 글을 번역하지 않고 미국 독자에게 맞춰 따로 써요. 이 글도 같은 방식으로 Claude가 초안을 쓰고 운영자가 방향을 잡았어요.
22권, 원전과 대조하며
지금까지 에테르 라이브러리에 올린 고전은 한국어 완역 22권이에요. 영어 원전만 있는 게 아니라서, 『명상록』은 그리스어 원전, 『군주론』은 이탈리아어 원전, 헤세와 카프카는 독일어 원전과 대조했어요. 영문판도 16권이 있는데, 영어로 쓰인 원작 8권과 저희가 직접 영어로 옮긴 8권이에요. 전부 무료이고 웹에서 읽거나 EPUB·PDF로 받을 수 있어요.
저작권은 한국과 미국 기준으로 퍼블릭 도메인인 책만 올려요. 다만 어떤 책은 다른 나라에서 아직 보호받고 있어서, 그 나라에서 접속하면 책을 막고 안내를 띄워요. 무료라고 아무 데서나 다 열어 둘 수는 없었어요.
번역은 이렇게 굴러가요
한 권을 옮길 때 거치는 단계는 여섯이에요.
- 번역 사양서 먼저. 본문에 손대기 전에 용어집과 말투표부터 만들어요. 이 책에서 핵심 낱말을 무엇으로 옮길지, 누가 누구에게 존댓말을 쓰는지 같은 약속이에요. 수백 쪽을 옮기다 보면 같은 낱말이 3장과 20장에서 다르게 옮겨지기 쉬운데, 그걸 막는 장치예요.
- 초벌. 사양서를 따라 Claude가 전체를 한 번 옮겨요.
- 냉독. 원문을 덮고 한국어만 읽어요. 원문을 옆에 두면 어색한 문장도 '원문이 그러니까' 하고 넘어가게 되거든요. 한국어 독자는 원문 없이 읽으니, 원문 없이도 읽히는지부터 봐요.
- 원문 대조. 다시 원문을 펴고 빠진 것, 잘못 읽은 것, 지나치게 풀어 쓴 것을 찾아요.
- 자동 검사. 원문과 번역의 문단 수가 1:1로 맞는지, 용어집대로 일관되게 옮겼는지, 번역투나 AI가 쓴 티가 나는 문장이 있는지를 프로그램으로 걸러요.
- 전자책 빌드 검사. EPUB·PDF로 묶었을 때 깨지는 곳이 없는지 확인해요.
이 단계들을 Claude 혼자 돌리는 건 아니에요. 운영자가 방향을 잡고, 의미를 검수하면서 고칠 곳을 짚어요. 그렇게 고친 결정 하나를 예로 들어 볼게요.
master는 '주인'이 아니라 '장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master라는 낱말이 자주 나와요. 사전의 첫 뜻대로 옮기면 '주인'이에요. 그런데 이 책에서 master는 문맥에 따라 뜻이 달라요. 동업조합과 도제살이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도제를 거느리고 일터를 꾸리는 숙련 기술자를 가리켜요. 의미 검수 단계에서 운영자는 이런 자리의 master를 '주인'보다 '장인'으로 옮기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바꿨어요. 지금 우리 판의 1권 10장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셰필드에서는 동업조합의 내규에 따라 어느 칼장이 장인도 한 번에 도제를 한 명 넘게 둘 수 없다.
여기에 '주인'을 넣어 보면 차이가 느껴져요. "어느 칼장이 주인도"라고 하면 가게 주인인지, 집주인인지, 노예를 부리는 사람인지 흐려져요. '장인'이라고 하면 도제와 직인과 장인으로 이어지는 당시 일터의 사다리가 바로 그려지고요. 낱말 하나지만, 이런 결정이 쌓여 책 한 권의 읽힘새가 정해져요.
이 장면이 제작 방식을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해요. 사전에 맞는 낱말을 빠르게 찾아내는 건 AI가 잘해요. 그 낱말이 이 문장, 이 독자에게 맞는지 판단하는 건 사람이 붙들고 있는 몫이에요. 기계가 틀려서 사람이 고친다기보다, 두 일이 원래 다른 일인 거예요.
다음 제작기에서는
번역 말고도 같은 방식으로 만든 것들이 있어요. 게임은 싱크(저작권이 끝난 클래식 악보로 만든 리듬 게임), 워드 러시, 네온 드라이브, 버저비터, 종이비행기, 클레이 사격까지 여섯 개예요. 운영자가 직접 해 보고 "음이 안 맞는다", "버튼 간격이 좁다", "타이밍이 헷갈린다" 같은 피드백을 주면 Claude가 고치는 식으로 수십 번 다시 만들었어요. 싱크는 7차 개편까지 갔고요. 한국어 사용자를 위한 영어 공부 앱 One Page English도 운영자가 Claude Code로 만든 앱이에요. 칠판 강의 180강이 들어 있고 ₩4,900 평생 이용권으로 팔고 있어요.
11월 15일 제작기 ②에서는 이 게임과 사이트, SNS를 만들며 겪은 일을, 이번엔 실패담 위주로 적을게요. 혹시 AI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면, 이번 주에 한 번쯤 물어보면 좋겠어요. 내가 맡긴 일 가운데 판단까지 맡겨 버린 건 없는지요. 저희도 매번 그 질문으로 돌아가요. 에테르 라이브러리가 처음 어떤 마음으로 시작됐는지는 「무료 고전 100권 프로젝트, 왜 하필 100권일까」에 적어 두었어요.
참고한 자료
- 법무법인 신앤김, AI 기본법 시행 관련 뉴스레터(투명성 확보 의무, 이용자 정의, 제재 유예), 2026: https://shinkim.com/kor/media/newsletter/3114
- 애덤 스미스, 『국부론』 1권 10장, 에테르 라이브러리 한국어판: https://etherxync.com/library/books/wealth-of-nations/
이 글은 사람과 AI가 함께 만들었어요. 주제와 방향은 EtherXync 운영자가 정하고, 자료 조사와 초안은 AI(Claude)가 함께해요. 인용과 숫자는 출처를 확인해 밝혀요. 어떻게 만드는지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