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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den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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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

나는 내가 대부분의 사람만큼은 사람 사귀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피가 넘치는 사람이 내 앞길에 나타나면 그동안만큼은 거머리처럼 그에게 들러붙을 채비도 넉넉히 되어 있다. 나는 타고난 은자가 아니며, 볼일이 있어 술집에 가게 된다면 그곳의 가장 끈질긴 단골보다도 더 오래 버티고 앉아 있을지 모른다.

내 집에는 의자가 셋 있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둘은 우정을 위해, 셋은 사교를 위해. 손님이 예상보다 많이 몰려오면 그들 모두에게 내줄 의자는 세 번째 의자 하나뿐이었지만, 그들은 대개 서서 자리를 아껴 주었다. 작은 집 하나에 위대한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놀랍다. 한번은 내 지붕 아래에 스물다섯에서 서른 명의 영혼이 저마다 몸까지 거느리고 한꺼번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러고도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헤어지곤 했다. 공공건물이든 개인 집이든 우리의 집들은 거의 셀 수 없이 많은 방과 거대한 홀과 포도주며 그 밖의 평화의 군수품을 쌓아 두는 지하실을 거느리고 있어서, 거기 사는 사람에 비해 터무니없이 커 보인다. 집이 하도 넓고 웅장하니 거기 사는 사람은 집에 들끓는 해충처럼만 보인다. 트레몬트 하우스나 애스터 하우스나 미들섹스 하우스 같은 호텔 앞에서 전령이 나팔을 불어 사람을 불러낼 때, 거기 사는 모든 사람을 대신해 우스꽝스러운 생쥐 한 마리가 현관 앞 회랑으로 기어 나왔다가 이내 다시 포석 틈 어느 구멍으로 숨어드는 꼴을 보면 나는 놀란다.

그렇게 작은 집에서 이따금 겪은 불편이 하나 있었으니, 손님과 내가 큰 생각을 큰 말로 꺼내기 시작할 때 손님에게서 충분히 멀리 떨어지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생각이 항구에 들기 전에 돛을 갖추고 한두 바닷길을 달려 보려면 자리가 넉넉해야 한다. 생각의 탄환은 듣는 사람의 귀에 닿기 전에 옆으로 흔들리고 튀어 오르는 움직임을 다 이겨 내고 마지막의 곧은 탄도에 들어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탄환이 그의 머리 옆을 뚫고 도로 빠져나갈지도 모른다. 우리의 문장에도 그 사이에서 펼쳐져 대열을 짓기까지 자리가 필요했다. 사람도 나라처럼 서로의 사이에 알맞게 넓고 자연스러운 경계, 나아가 꽤 넓은 중립 지대까지 두어야 한다. 나는 호수 건너편 기슭에 있는 벗과 호수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남다른 사치라는 것을 알았다. 내 집에서는 우리가 너무 가까워서 들을 수가 없었다. 들릴 만큼 낮게 말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잔잔한 물에 돌 두 개를 너무 가까이 던지면 물결이 서로를 깨뜨리는 것과 같다. 우리가 그저 수다스럽고 목청 큰 이야기꾼일 뿐이라면 서로 바싹 붙어 서서 뺨을 맞대고 서로의 숨결을 느껴도 괜찮다. 그러나 삼가며 생각 깊게 말하려면 더 멀리 떨어져서, 모든 체열과 습기가 날아갈 틈을 주어야 한다. 우리 각자 안에 있는, 말을 걸 수 없거나 말을 넘어서 있는 그것과 가장 친밀한 교제를 누리려면 침묵해야 할 뿐 아니라, 대개는 어떤 경우에도 서로의 목소리를 결코 들을 수 없을 만큼 몸을 멀리 두어야 한다. 이 기준에 비추면 말이란 귀가 어두운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소리쳐야 한다면 말할 수 없는 섬세한 것들이 많다. 대화가 더 높고 웅대한 가락을 띠기 시작하면 우리는 의자를 조금씩 뒤로 밀어 마침내 맞은편 두 구석의 벽에 닿게 했고, 그러면 대개 그래도 자리가 모자랐다.

그러나 내 "가장 좋은" 방, 언제든 손님을 맞을 채비가 된 내 응접실, 그 양탄자에 햇볕이 좀처럼 들지 않는 방은 집 뒤의 소나무 숲이었다. 여름날 귀한 손님이 오면 나는 그들을 그리로 데려갔고, 값을 매길 수 없는 하인이 바닥을 쓸고 가구의 먼지를 털고 물건을 가지런히 정돈해 두었다.

손님이 한 사람 오면 이따금 내 검소한 끼니를 함께 들었고, 그동안 옥수수 죽을 젓거나 잿불 속에서 빵 한 덩이가 부풀어 익는 것을 지켜본다고 해서 대화가 끊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무 사람이 와서 내 집에 앉으면, 빵이 두 사람 몫은 넉넉히 있었을지 몰라도 저녁 이야기는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먹는 일이 버려진 습관이라도 된 듯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절제를 실천했고, 이것은 한 번도 손님 대접에 어긋나는 일로 여겨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가장 알맞고 사려 깊은 처사로 여겨졌다. 그토록 자주 보수를 해 주어야 하는 육체의 소모와 쇠퇴가 그럴 때는 기적처럼 늦추어지는 듯했고, 생명의 기운은 제자리를 지켰다. 나는 이런 식사로 스물이 아니라 천 명도 대접할 수 있었다. 혹시 누가 나를 집에서 만나고도 실망하거나 배고픈 채로 떠났다면, 적어도 내가 그를 딱하게 여겼다는 것만은 믿어도 좋다. 많은 주부가 의심하지만, 낡은 관습을 몰아내고 새롭고 더 나은 관습을 세우기란 이렇게 쉽다. 내놓는 만찬에 평판을 걸 필요는 없다. 나로 말하면, 어떤 케르베로스도 그 집 사람이 나에게 저녁을 먹이겠다고 법석을 떨 때만큼 효과적으로 나를 어떤 사람의 집에 드나들지 못하게 막지는 못했다. 나는 그것을 다시는 그렇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아주 정중하고도 에두른 암시로 받아들였다. 나는 그런 자리를 다시는 찾지 않을 것 같다. 손님 하나가 노란 호두나무 잎에 명함 삼아 적어 준 스펜서의 시구를 내 오두막의 좌우명으로 삼는다면 나는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곳에 이르러 그들은 작은 집을 가득 채우고,
대접이 없는 곳에서 대접을 바라지 않는다.
쉼이 그들의 잔치요 모든 것이 그들 뜻대로이니,
가장 고귀한 마음이 가장 큰 만족을 누린다."1

뒷날 플리머스 식민지의 총독이 된 윈슬로가 동행 한 사람과 함께 숲을 지나 걸어서 마사소이트에게 예방을 갔을 때, 그들은 지치고 굶주린 채 그의 거처에 이르렀고 추장은 그들을 잘 맞아 주었지만 그날은 먹는 이야기를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밤이 되자, 그들 자신의 말을 빌리면 이러했다. "그는 우리를 자기와 자기 아내가 자는 침상에 눕혔는데, 그들은 한쪽 끝에, 우리는 다른 쪽 끝에 누웠다. 침상이라야 땅에서 1피트 높이에 널빤지를 깔고 그 위에 얇은 거적을 덮은 것뿐이었다. 그의 우두머리 부하 둘이 자리가 모자라 우리 곁과 우리 위로 밀고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보다 잠자리에 더 녹초가 되었다." 이튿날 한 시에 마사소이트는 도미보다 세 배쯤 큰 "자기가 쏘아 잡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다." "이것을 삶자 적어도 마흔 사람이 한몫을 바랐고, 대부분이 그것을 먹었다. 이틀 밤과 하루 동안 우리가 먹은 것은 이 한 끼뿐이었다. 우리 가운데 하나가 자고새 한 마리를 사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굶은 채로 길을 나섰을 것이다." 먹을 것과 잠이 모자라 머리가 어지러워질까 두렵기도 하고("야만인들의 야만스러운 노래 때문에.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잠드는 버릇이 있다"), 걸을 힘이 남아 있을 때 집에 닿고 싶기도 해서 그들은 길을 떠났다. 잠자리로 말하자면 그들이 변변찮은 대접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에게 불편했던 것이 원주민에게는 틀림없이 예우로 마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먹는 일에 관해서라면 원주민이 그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을지 나는 모르겠다. 그들 자신이 먹을 것이 없었고, 사과가 손님에게 음식을 대신할 수 있다고 여길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윈슬로가 다른 때 그들을 찾아갔을 때는 그들에게 넉넉한 철이어서 이 점에서 모자람이 없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어디서든 모자랄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숲에 사는 동안 내 평생 어느 때보다 손님이 많았다. 몇 사람은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그곳에서 다른 어디에서보다 더 좋은 처지로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하찮은 볼일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줄었다. 이 점에서 내 손님은 내가 읍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키질을 당한 셈이다. 나는 사교라는 강물들이 흘러드는 고독이라는 큰 바다 안쪽으로 아주 멀리 물러나 있었으므로, 내게 필요한 만큼에 대해서라면 대개 가장 고운 앙금만이 내 둘레에 가라앉았다. 게다가 저쪽 건너편에 아직 탐사되지 않고 개간되지 않은 대륙들이 있다는 증거들이 내게로 떠밀려 오기도 했다.

오늘 아침 내 오두막에 누가 왔는가 하면, 참으로 호메로스풍의, 아니 파플라고니아풍의 사람이었다. 그는 하도 알맞고 시적인 이름을 지녀서 여기에 그 이름을 찍어 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캐나다 사람이고 나무꾼이자 울타리 말뚝을 만드는 사람인데, 하루에 말뚝 쉰 개에 구멍을 뚫을 수 있고, 지난 저녁에는 개가 잡아 온 우드척 한 마리로 끼니를 때웠다. 그도 호메로스에 대해 들은 적이 있고, "책이 없으면" "비 오는 날 뭘 해야 할지 모를" 것이라고 하지만, 아마 여러 해 장마철이 지나도록 책 한 권을 끝까지 다 읽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멀리 떨어진 그의 고향 교구에서 그리스어를 직접 소리 내어 읽을 줄 아는 어느 신부가 그에게 『신약』의 성경 구절 읽는 법을 가르쳤다. 그래서 지금 나는 그가 책을 들고 있는 동안, 아킬레우스가 슬픈 얼굴을 한 파트로클로스를 나무라는 대목을 그에게 옮겨 주어야 한다. "파트로클로스, 너는 왜 어린 계집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느냐?"

"아니면 너 혼자 프티아에서 무슨 소식이라도 들었느냐?
사람들 말로는 악토르의 아들 메노이티오스가 아직 살아 있고,
아이아코스의 아들 펠레우스도 미르미돈 사람들 사이에 살아 있다는데,
그 둘 가운데 누가 죽었다면 우리가 크게 슬퍼하련만."2

그는 "그거 좋네요." 하고 말한다. 그는 앓는 사람에게 주려고 이 일요일 아침에 벗겨 모은 흰떡갈나무 껍질 한 아름을 옆구리에 끼고 있다. "오늘 같은 날 이런 걸 구하러 다녀도 나쁠 건 없겠지요." 그가 말한다. 그에게 호메로스는 위대한 작가였지만, 그의 글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보다 더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세상에 그토록 어두운 도덕의 빛깔을 드리우는 악덕과 질병이 그에게는 거의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스물여덟 살쯤 되었고, 열두 해 전에 캐나다와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합중국으로 일하러 왔는데, 돈을 벌어 마침내 농장을 사려는 것이었고 아마 고향 땅에 살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는 가장 거친 거푸집에서 부어 낸 사람이었다. 몸은 다부지되 굼떴지만 거동에는 품위가 있었고, 햇볕에 그은 굵은 목, 숱 많은 검은 머리, 흐릿하고 졸린 듯한 푸른 눈을 지녔는데 그 눈에 이따금 표정의 불이 켜졌다. 그는 납작한 회색 천 모자를 쓰고, 칙칙한 양털빛 외투를 입고, 소가죽 장화를 신었다. 그는 고기를 아주 많이 먹는 사람이어서, 여름 내내 나무를 베었으므로 내 집을 지나 2마일쯤 떨어진 일터로 점심을 양철 들통에 담아 가지고 다니곤 했다. 식은 고기, 흔히 식은 우드척 고기였고, 커피는 허리띠에 끈으로 매달아 흔들리는 돌 병에 담겨 있었다. 그는 이따금 나에게도 한 모금 권했다. 그는 일찍 내 콩밭을 가로질러 지나갔지만, 양키들이 보이는 것처럼 일터에 닿으려고 애태우거나 서두르지는 않았다. 그는 몸을 상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밥값만 벌어도 그만이었다. 오는 길에 개가 우드척을 잡으면 그는 흔히 점심을 덤불 속에 놓아두고 1마일 반을 되돌아가서 그것을 손질해 자기가 하숙하는 집 지하실에 두고 왔는데, 그 전에 밤이 될 때까지 그것을 호수에 가라앉혀 두어도 안전하지 않을까 하고 반 시간 동안 궁리부터 했다. 그는 이런 주제를 오래 곱씹기를 좋아했다. 그는 아침에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비둘기가 참 빽빽하게도 많네요! 날마다 일하는 게 내 생업만 아니라면 사냥으로 먹고 싶은 고기는 다 얻을 텐데. 비둘기, 우드척, 토끼, 자고새, 참말이지! 일주일 먹을 걸 하루에 다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솜씨 좋은 나무꾼이었고, 자기 기술에 얼마간 멋과 장식을 부리기도 했다. 그는 나무를 땅에 바싹 붙여 평평하게 베었는데, 뒤에 돋는 움이 더 힘차게 자라고 썰매가 그루터기 위로 미끄러져 지나갈 수 있게 하려는 뜻이었다. 그는 쌓아 놓은 장작을 받치려고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남겨 두는 대신, 그것을 깎고 깎아서 마침내 손으로 꺾을 수 있을 만큼 가느다란 말뚝이나 막대기로 만들곤 했다.

그는 아주 조용하고 외로우면서도 그토록 행복했기에 내 흥미를 끌었다. 그는 눈으로 넘쳐흐르는 좋은 기분과 만족의 우물이었다. 그의 즐거움에는 섞인 것이 없었다. 이따금 나는 그가 숲에서 나무를 베며 일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흐뭇한 웃음과 함께 캐나다 프랑스어로 인사를 건넸다. 영어도 그만큼 잘했는데도 그랬다. 내가 다가가면 그는 일을 멈추고, 웃음을 반쯤 참으며 자기가 베어 넘긴 소나무 둥치를 따라 길게 드러누워서는 속껍질을 벗겨 공처럼 둥글게 말아 씹으며 웃고 이야기했다. 그에게는 동물의 기운이 하도 넘쳐서, 무엇이든 그를 생각하게 하고 간질이는 것이 있으면 이따금 웃다가 넘어져 땅바닥을 뒹굴기도 했다. 그는 나무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외치곤 했다. "이런! 여기서 나무 베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요. 이보다 나은 놀이는 바라지도 않아요." 이따금 한가할 때면 그는 주머니 권총을 가지고 하루 종일 숲에서 놀았는데, 걸어가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자기 자신에게 예포를 쏘았다. 겨울에는 불을 피워 한낮에 주전자에 커피를 데웠고, 그가 통나무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으면 박새들이 이따금 날아와 그의 팔에 앉아서 그가 손가락에 쥔 감자를 쪼아 먹곤 했다. 그는 "작은 녀석들이 곁에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에게서 주로 자라난 것은 동물로 사는 사람이었다. 몸으로 견디는 힘과 만족에서 그는 소나무와 바위의 사촌이었다. 나는 한번 그에게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밤에 이따금 지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진지하고 엄숙한 얼굴로 대답했다. "젠장, 난 평생 지쳐 본 적이 없어요." 그러나 그 안의 지성의 사람, 이른바 영혼의 사람은 갓난아기 안에서처럼 잠들어 있었다. 그는 가톨릭 신부들이 원주민을 가르치는 그 순진하고 효과 없는 가르침만 받았는데, 그 가르침에서 배우는 이는 결코 의식의 단계까지 교육받지 못하고 믿음과 공경의 단계까지만 교육받으며, 아이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아이로 남는다. 자연은 그를 지을 때 튼튼한 몸과 만족을 그의 몫으로 주었고, 그가 일흔 해 한평생을 아이로 살 수 있도록 공경과 의지로 사방을 받쳐 주었다. 그는 하도 꾸밈없고 순박해서 어떤 소개도 그를 소개하는 데 쓸모가 없었다. 우드척을 이웃에게 소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가 그랬듯 이웃도 그를 스스로 알아내야 했다. 그는 어떤 배역도 연기하지 않으려 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일한 품삯을 주어 그를 먹이고 입히는 데 보탰지만, 그는 그들과 한 번도 의견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는 하도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겸손해서,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을 겸손하다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 겸손이 그 안에서 따로 떨어진 성질이 아니었고 그는 겸손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에게 반신(半神)이었다. 그런 사람이 온다고 일러 주면 그는 그토록 대단한 이는 자기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모든 책임을 스스로 떠맡아 자기를 그대로 잊힌 채 두리라 여기는 듯이 굴었다. 그는 칭찬하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특히 작가와 설교자를 우러렀다. 그들이 해내는 일은 기적이었다. 내가 글을 꽤 많이 쓴다고 하자 그는 오랫동안 내가 그저 글씨 쓰는 일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 자신이 놀랄 만큼 글씨를 잘 썼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 큰길가 눈 위에 프랑스어 악센트 부호까지 제대로 붙여 멋지게 써 놓은 그의 고향 교구 이름을 보고 그가 지나갔음을 알았다. 나는 그에게 자기 생각을 글로 써 보고 싶은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읽어 주고 써 준 적은 있지만 생각을 써 보려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아니, 그건 할 수 없다, 무엇을 먼저 써야 할지 모르겠고, 그러다가는 죽을 것 같으며, 게다가 그와 함께 철자까지 신경 써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들리는 말로는 이름난 현자이자 개혁가인 어떤 사람이 그에게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물음이 일찍이 누군가의 머리에 떠오른 적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놀란 듯 킥킥 웃으며 캐나다 사투리로 대답했다. "아뇨, 난 이대로도 꽤 좋은데요." 철학자라면 그와 사귀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낯선 사람에게 그는 세상 일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나는 이따금 그에게서 전에 본 적 없는 사람을 보았고, 그가 셰익스피어만큼 지혜로운지 아이처럼 그저 무지한지, 그에게 섬세한 시적 의식이 있다고 짐작해야 할지 어리석음이 있다고 짐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읍 사람 하나가 내게 말하기를, 작고 머리에 꼭 맞는 모자를 쓰고 혼자 휘파람을 불며 마을을 느긋이 거니는 그를 만났을 때 변장한 왕자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의 책이라고는 책력 한 권과 산수책 한 권뿐이었는데, 산수에는 꽤 능했다. 책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어서, 그는 거기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담겨 있다고 여겼고, 실제로도 상당 부분 그렇다. 나는 그 무렵의 갖가지 개혁에 대해 그의 속을 떠보기를 좋아했는데, 그는 언제나 그것들을 가장 단순하고 실제적인 빛 아래에서 보았다. 그는 그런 것을 전에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공장 없이 지낼 수 있겠느냐고 나는 물었다. 그는 집에서 짠 버몬트산 회색 옷을 입어 왔는데 그거면 좋았다고 했다. 차와 커피 없이 지낼 수 있겠느냐? 이 나라에 물 말고 다른 마실 것이 있느냐? 그는 솔송나무 잎을 물에 담가 우려 마셔 보았는데 더운 날에는 물보다 낫더라고 했다. 돈 없이 지낼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는 돈이 얼마나 편리한지를 보여 주었는데, 그 설명이 이 제도의 기원에 관한 가장 철학적인 해설을 떠올리게 했고 그것과 들어맞았으며, 돈을 뜻하는 라틴어 pecunia의 어원 바로 그것과도 들어맞았다. 그의 재산이 소 한 마리이고 그가 가게에서 바늘과 실을 사고 싶다면, 그때마다 그 값어치만큼 소의 일부를 저당 잡히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불편할 테고 곧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많은 제도를 어떤 철학자보다도 더 잘 옹호할 수 있었다. 그 제도들이 자기와 관련된 대로 설명하면서 그것들이 널리 퍼진 참된 까닭을 댔고, 사변이 그에게 다른 까닭을 일러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번은 사람이란 깃털 없는 두 발 짐승이라는 플라톤의 정의와, 누군가 털 뽑은 수탉을 내보이며 그것을 플라톤의 사람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릎이 반대로 굽는다는 것이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따금 이렇게 외쳤다. "난 이야기하는 게 정말 좋아요! 이런, 하루 종일이라도 떠들 수 있겠어요!" 여러 달 그를 보지 못했다가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이번 여름에 무슨 새로운 생각을 얻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아이고," 그가 말했다. "나처럼 일해야 하는 사람은 전에 했던 생각이나 잊어버리지 않으면 잘하는 거예요. 같이 김매는 사람이 경주라도 할 기세면, 참말로, 정신을 거기 붙들어 둬야 해요. 잡초 생각만 하게 되지요." 그런 때면 그는 이따금 먼저 나에게 무슨 나아진 것이 있느냐고 묻곤 했다. 어느 겨울날 나는 그에게 늘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바깥의 신부를 대신할 무엇을 그의 안에 두고, 살아가는 데 더 높은 동기를 두어 보라고 넌지시 일러 주고 싶어서였다. "만족이요!" 그가 말했다. "어떤 사람은 이것에 만족하고 어떤 사람은 저것에 만족하지요. 어떤 사람은, 아마, 먹을 게 넉넉하면 하루 종일 등은 불 쪽에, 배는 식탁 쪽에 두고 앉아 있는 걸로 만족할 거예요, 이런!" 그러나 나는 어떤 꾀를 부려도 그가 사물을 영적으로 보게 할 수 없었다. 그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은 단순한 편의, 짐승도 알아줄 법한 그런 것인 듯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맞는 말이다. 내가 그의 생활에 무엇이든 고칠 점을 일러 주면, 그는 아무런 아쉬움도 내비치지 않고 그저 너무 늦었다고만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정직과 그 비슷한 덕목들을 철저히 믿었다.

그에게서는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어떤 뚜렷한 독창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이따금 그가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은 하도 드문 현상이라 나는 그것을 보려고 어느 날이든 10마일을 걸어갈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많은 제도를 새로 만들어 내는 일과 같았다. 그는 머뭇거렸고 어쩌면 자기 뜻을 또렷하게 나타내지 못했지만, 그 뒤에는 늘 내놓을 만한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하도 원시적이고 동물의 삶에 깊이 잠겨 있어서, 그저 학식만 있는 사람의 생각보다 더 장래가 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남에게 전할 만한 무엇으로 여무는 일은 드물었다. 그는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도, 아무리 평생 비천하고 글을 모르더라도, 언제나 자기 눈으로 보거나 아예 보는 척을 하지 않는 천재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런 사람들은 어둡고 흐릴지는 몰라도, 한때 바닥이 없다고 여겨졌던 월든 호수만큼이나 바닥을 모를 만큼 깊다.

많은 나그네가 나와 내 집 안을 보려고 길을 벗어나 찾아왔고, 들른 핑계로 물 한 잔을 청했다. 나는 그들에게 호수에서 물을 마신다고 말하고 그쪽을 가리키며 국자를 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내 생각에 4월 1일 무렵, 누구나 움직이는 철에 찾아오는 해마다의 방문을 면하지는 못했다. 손님들 가운데 진기한 견본도 몇 있었지만 나에게도 행운의 몫이 돌아왔다. 구빈원과 그 밖의 곳에서 모자란 사람들이 나를 보러 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지닌 지혜를 다 짜내게 하고 나에게 속을 털어놓게 하려고 애썼고, 그럴 때면 지혜를 우리 대화의 주제로 삼았다. 그래서 보상을 받았다. 사실 나는 그들 가운데 몇이 이른바 읍의 빈민 감독관이나 행정위원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을 알았고, 이제는 처지가 뒤바뀔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혜에 관해서라면 반편과 온편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특히 어느 날은 남을 해칠 줄 모르는 단순한 빈민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와 나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가 다른 빈민들과 함께 울타리 재목처럼 쓰이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가축과 그 자신이 헤매지 않도록 들판에서 부셸 됫박 위에 서 있거나 앉아 있곤 했다. 그는 더없이 소박하고 진실하게, 겸손이라 불리는 어떤 것보다도 훨씬 위에 있는, 아니 차라리 훨씬 아래에 있는 태도로 자기가 "지능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그것이 그의 말이었다. 주님이 그를 그렇게 지으셨지만 주님은 다른 이만큼 그도 아끼신다고 그는 여겼다. "난 늘 이랬어요." 그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요. 정신이 별로 없었어요. 다른 애들 같지 않았어요. 머리가 약해요. 주님의 뜻이겠지요." 그리고 그는 자기 말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거기 있었다. 그는 나에게 형이상학의 수수께끼였다. 나는 그렇게 장래가 있어 보이는 바탕 위에서 동료 인간을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그가 하는 말은 모두 그토록 단순하고 진실하고 참되었다. 그리고 과연, 그가 스스로를 낮추어 보일수록 그는 높아졌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지혜로운 계산의 결과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 가련하고 머리 약한 빈민이 놓은 진실과 솔직함의 바탕에서라면 우리의 교제가 현자들끼리의 교제보다 더 나은 무엇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흔히 읍의 빈민으로 꼽히지는 않지만 꼽혀야 마땅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손님이 몇 있었다. 어쨌든 세상의 빈민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러분의 환대가 아니라 여러분의 환자 대접에 호소하는 손님이며, 도움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 호소의 서두에 무엇보다 자기는 결코 스스로를 돕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정보를 늘어놓는다. 나는 손님에게, 그 식욕을 어떻게 얻었든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식욕을 지녔더라도 상관없지만 실제로 굶주리고 있지는 않기를 요구한다. 자선의 대상은 손님이 아니다. 내가 다시 내 일을 보러 가며 점점 더 먼 데서 대꾸하는데도 자기 방문이 언제 끝났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철새의 철에는 거의 온갖 수준의 지혜를 지닌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지혜가 남아돌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농장의 몸가짐이 밴 도망 노예들도 있었다. 그들은 우화 속 여우처럼 사냥개들이 자기 발자취를 쫓으며 짖어 대는 소리를 듣는 듯이 이따금 귀를 기울였고, 마치 이렇게 말하려는 듯 애원하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오, 그리스도교도여, 나를 돌려보내려 하십니까?"

그 가운데 진짜 도망 노예 하나를 나는 북극성 쪽으로 보내는 일을 도왔다. 병아리 한 마리를 거느린, 그것도 오리 새끼 한 마리를 거느린 암탉 같은, 생각이 하나뿐인 사람들. 백 마리 병아리를 맡아 키우게 된 암탉들처럼 생각이 천 가지이고 머리는 헝클어진 사람들. 그 병아리들은 모두 벌레 한 마리를 쫓아다니다가 아침 이슬마다 스무 마리씩 길을 잃고, 그 결과 털이 곱슬곱슬해지고 옴이 오른다. 다리 대신 생각을 지닌 사람들, 일종의 지적인 지네여서 보는 사람의 온몸에 소름이 기게 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화이트산맥에서처럼 손님들이 이름을 적을 방명록을 두자고 했다. 그러나 아아! 나는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그런 것이 필요 없다.

나는 손님들의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와 소년과 젊은 여자들은 대개 숲에 와서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호수와 꽃들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잘 썼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농부들까지도, 고독과 일거리만 생각했고, 내가 무엇인가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사는지만 생각했다. 그들은 이따금 숲속을 한가로이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뻔히 보였다. 생계를 꾸리거나 그것을 지키는 데 시간을 몽땅 빼앗긴, 매인 데 많고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 신을 마치 자기들이 독점이라도 한 주제처럼 이야기하며 갖가지 의견을 견디지 못하는 목사들, 의사들, 변호사들, 내가 나간 사이에 내 찬장과 침대를 들추어 본 불안한 주부들(아무개 부인은 내 홑이불이 자기 것만큼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젊음을 그만두고 직업이라는 다져진 길을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결론 내린 젊은이들, 이들은 모두 대체로 내 처지에서는 그리 많은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 바로 그게 걸림돌이었다. 나이를 막론하고 남녀를 막론하고 늙고 병약한 사람들과 겁 많은 사람들은 무엇보다 병과 뜻밖의 사고와 죽음을 생각했다. 그들에게 삶은 위험으로 가득 차 보였고(위험 따위 생각하지 않으면 무슨 위험이 있겠는가?), 그들은 신중한 사람이라면 B 의사가 부르자마자 달려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자리를 조심스레 고르리라 생각했다. 그들에게 마을은 글자 그대로 방위 공동체(com-munity), 서로를 지키려고 맺은 동맹이었으며, 그들은 약상자 없이는 허클베리 따러도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요컨대 사람이 살아 있으면 언제나 죽을 위험이 있다. 다만 애초에 살아도 죽은 듯 사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그 위험이 적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사람은 달려 나가 무릅쓰는 만큼의 위험을 앉아서도 무릅쓴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개혁가라 일컫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야말로 가장 지겨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노상 이런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내가 지은 집,
이것은 내가 지은 집에 사는 사람.

그러나 그들은 셋째 줄이 이렇다는 것을 몰랐다.3

이것은 내가 지은 집에 사는 그 사람을
들볶는 사람들.

닭을 치지 않았으니 나는 닭 사냥하는 매는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 사냥하는 매는 오히려 두려웠다.

나에게는 마지막 부류보다 더 반가운 손님들이 있었다. 장과를 따러 오는 아이들, 깨끗한 셔츠를 입고 일요일 아침 산책을 나온 철도 일꾼들, 낚시꾼과 사냥꾼, 시인과 철학자, 요컨대 자유를 위해 숲으로 나와 정말로 마을을 뒤에 두고 온 모든 정직한 순례자를, 나는 이렇게 맞을 채비가 되어 있었다. "어서 오시오, 영국 사람들! 어서 오시오, 영국 사람들!" 나는 그 종족과 교류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

  1. 1. 스펜서, 『선녀 여왕』 제1권.

  2. 2. 『일리아스』 제16권. 아킬레우스가 울며 찾아온 파트로클로스에게 하는 말.

  3. 3. 영국 전래 동요 「잭이 지은 집」을 비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