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이 책은 애덤 스미스의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를 한국어로 완역한 것이다. 요약하거나 간추리지 않았다. 원문 한 문단이 번역문 한 문단이며, 열네 부분의 문단 수가 원문과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다. 본문 512문단, 원문 114,928단어다.
먼저 밝혀야 할 것 이 책은 오늘 통용되는 《도덕감정론》과 목차가 다르다
저본 표제지에는 "THE SIXTH EDITION" 이라 찍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스미스 자신의 제6판(런던, 1790)이 아니라 더블린 서점가가 자기들 나름으로 센 판수다. 근거는 본문 구조다.
| 이 책(더블린 1777) | 스미스 제6판(1790) | |
|---|---|---|
| 부의 수 | 6부 | 7부 |
| 「도덕철학의 여러 체계」 | 제6부 | 제7부 |
| 「덕의 성격」 | 없음 | 제6부 (신규) |
| 제3부 | 1편 4장 | 6장으로 확장 |
1790년 개정 이전의 텍스트이고, 1777년이라는 간행 연도로 보아 제4판(런던, 1774)의 본문이다. 제5판은 1781년이므로 1777년 인쇄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에는 스미스가 죽기 직전에 새로 써 넣은 제6부 「덕의 성격」, 곧 신중·정의·선행· 자기 통제를 차례로 논하는 대목이 없다. 오늘 서점에서 파는 《도덕감정론》과 차례가 다른 이유가 이것이다. 다만 「가슴 속의 사람(the man within)」이라는 저 유명한 표현은 이 판본에도 이미 두 번 나온다.
부록으로 붙은 「언어의 최초 형성에 관한 고찰」은 제3판(1767)부터 본문 뒤에 함께 인쇄된 스미스의 별개 논문이다. 저본에 들어 있으므로 함께 옮겼다. 한국어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글이다.
sympathy는 「동정」이 아니라 「동감」이다
이 책은 첫 문장부터 sympathy 위에 서 있다. 그런데 스미스가 말하는 sympathy는 남의 슬픔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이 아니다. 기쁨도 분노도 감사도 함께 느끼는 것, 곧 남의 자리에 서서 그 마음을 내 안에 다시 일으키는 일이다.
그래서 이 번역은 그것을 동감으로 옮겼고, 본문 어디에도 「동정」을 쓰지 않았다. 스미스가 sympathy를 쉬운 말로 풀 때 쓰는 fellow-feeling은 「함께 느끼는 마음」으로 따로 두었다.
감정을 가리키는 네 낱말을 섞지 않았다
sentiment(291회) · passion(293회) · affection(135회) · emotion(78회). 넷이 모두 한국어 「감정」으로 끌린다. 그래서 저본 전체를 문장 단위로 세어 확인했다.
- affection과 emotion이 한 문장에 함께 오는 자리 — 0회 - sentiment와 emotion이 함께 오는 자리 — 12회. 그 열두 곳도 두 낱말을 맞세운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관찰자 쪽과 당사자 쪽에서 각각 가리킨 용법이다
그러므로 잠글 필요가 있는 것은 둘뿐이었다.
- passion → 정념. 「비사회적 정념·사회적 정념·이기적 정념」은 1부 2편의 장 제목이다 - affection → 정서. 적정성은 「정서가 그 원인에 걸맞은가」로 판정된다. 1부 논증의 축이다. 그래서 「애정」으로 옮기지 않았다. 스미스의 affection에는 분개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 sentiment와 emotion은 둘 다 감정이다. 겹쳐도 무방하다는 것이 위의 근거다
indifferent를 「무관심한」으로 옮기면 뜻이 뒤집힌다
18세기 영어의 indifferent는 「이해관계가 없는, 편들 것이 없는」이다. 그래서 the indifferent spectator는 「무관심한 관찰자」가 아니라 「이해관계 없는 관찰자」이고, 이것은 the impartial spectator, 곧 「공평한 관찰자」와 거의 같은 것을 가리킨다.
이 번역에서 「공평한 관찰자」는 26회 나오고, 저본의 impartial spectator도 26회다.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무관심」이라는 낱말은 본문에 0회다.
같은 종류로 뜻이 뒤집히는 당대 낱말을 모두 잡아 옮겼다. sensible …임을 알고 있다(「분별 있는」이 아니다) · interested 사리를 따지는 · amiable 사랑을 부르는 · respectable 존경을 부르는 · awful 경외를 일으키는 · nice 섬세한 · complacency 흐뭇함 · officious 남을 살피며 애쓰는(칭찬하는 말이다) · condescension 스스로 낮추어 대함(역시 칭찬이다) · generous 도량이 큰 · temper 기질 · police 치안·행정.
「시인」과 「부인」
approbation과 disapprobation을 시인(是認)·부인(否認)으로 옮겼다. 한국어 「시인」은 「죄를 시인하다」처럼 자백의 뜻으로 더 많이 쓰이므로, 이 책에서 처음 나오는 자리에 각주를 달아 「옳다고 여겨 받아들임 / 옳지 않다고 여겨 물리침」 임을 밝혔다. 도덕 판단을 가리키는 술어이고, 이 책 전체가 「무엇이 우리의 시인을 받는가」를 묻는 책이기 때문이다.
당대 법률용어는 뜻이 통하게 옮기고 당대 용어를 각주에 남겼다
2부 3편에 로마법의 과실 등급이 라틴어 그대로 나온다. 본문은 현대 한국 법률용어로 옮기고 라틴어는 각주에 적었다. culpa lata → 중대한 과실(「중과실은 고의에 가깝다」), culpa levis → 경과실, culpa levissima → 극히 가벼운 과실.
다만 본문에 없는 술어를 본문에 심지는 않았다. 이 세 등급은 스미스의 각주에만 있고 본문은 그냥 negligence다. 6부에서 그로티우스를 논하는 대목의 justitia expletrix · attributrix도 같은 방식으로, 본문은 「채워 주는 정의 / 나누어 주는 정의」로 옮기고 라틴어는 각주에 두었다.
부록에서는 낱말을 옮기지 않았다
부록 「언어의 최초 형성에 관한 고찰」은 낱말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논문이다. 스미스의 논증은 「이 낱말에는 격 변화가 있고 저 낱말에는 전치사가 붙는다」는 형태에 관한 것이어서, 예시로 인용된 낱말을 한국어로 옮겨 버리면 논증 자체가 사라진다.
그래서 라틴어·이탈리아어 예시는 원형 그대로 두고 괄호로 뜻만 달았다. arboris(나무의) · sacer Herculi(헤라클레스께 바친) · Io sono amato(나는 사랑받는다). 이런 예시가 173항목, 본문에 239번 나온다.
한국어에는 격 변화도 성도 없다. 스미스가 설명하는 현상이 한국어 독자에게 바로 통하지 않는 자리에는 옮긴이 각주로 한국어와 견주어 한두 줄 덧붙였다.
저본의 오식을 조용히 고치지 않았다
18세기 인쇄본이라 활자 오식이 적지 않다. publish가 punish 자리에 있고, sail이 fail로 찍혀 있고, she가 the로 찍혀 있는 자리가 있다. 이런 곳은 뜻이 통하는 쪽으로 옮기고, 저본이 무엇이라 찍혀 있었는지를 각주에 적었다. 역자가 조용히 고치면 독자는 자기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18세기 철자(compleat, chearful, intirely, œconomy, shewing)는 오식이 아니므로 그대로 읽었다.
저본에는 인쇄면의 쪽번호가 낱말에 들러붙어 남은 자리가 360곳 있었다(37unmanly, 168Nature 꼴). 전수 확인해 걷어 냈다. 스미스 자신이 붙인 본문 번호(1. First, I say…)는 각주가 아니라 본문이므로 번호를 살려 옮겼다.
문체
- 18세기 균형 잡힌 산문이다. 긴 문장을 토막내지 않았다. 80자 이상 문장이 열네 부분에서 31%에서 67%까지 나온다 - 줄표(—)를 쓰지 않았다. 삽입구는 괄호나 문장 분리로 옮겼다 - 스미스가 독자를 부르는 대목(Let us suppose, We may observe)을 학술 번역의 무인칭 문체로 밀어 버리지 않았다 - it seems · perhaps · in some measure · I say 같은 유보는 장식이 아니라 논증의 일부이므로 모두 살렸다 - 자연(Nature)과 운(Fortune)을 스미스는 she로 받는다. 한국어에서는 여성 대명사를 지우고 옮겼다
각주
원저 각주 29개와 옮긴이 주 170개다. 원저 각주는 저본의 번호를 그대로 두었고, 옮긴이가 붙인 것은 모두 「옮긴이 —」로 시작한다.
옮긴이 주를 다는 자리는 정해 두었다. 첫 등장 인물의 생몰년 한 줄, 당대 법률·학파 용어, 당대 제도, 저본 오식. 각주에서 스미스를 꾸짖지 않았다. 사실만 적고 판단은 읽는 이에게 맡긴다.
권리
애덤 스미스(1723~1790)의 원저는 퍼블릭 도메인이다. 영어가 원문이므로 중간 역자가 없고, 따라서 중역이 아니다. 이 한국어 번역은 CC BY-NC 4.0으로 공개한다. 출처를 밝히면 자유로이 나누어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