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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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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지리적 분포

오늘날의 분포는 물리적 조건의 차이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장벽의 중요성에 대하여. 같은 대륙에서 나는 산물들의 유연관계에 대하여. 창조의 중심지에 대하여. 기후와 땅 높낮이의 변화로 말미암은, 또 이따금 일어나는 수단으로 말미암은 분산 수단에 대하여. 온 세계에 걸친 빙하기1 동안의 분산에 대하여.

지구 겉면에 걸친 생물의 분포를 살필 때 우리 눈길을 붙드는 첫 번째 큰 사실은, 여러 지역에 사는 것들 사이의 닮음도 닮지 않음도 그 기후와 그 밖의 물리적 조건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즈음 이 문제를 연구한 저자라면 거의 누구나 이 결론에 이르렀다. 아메리카 하나만 놓고 보아도 그것이 참임을 밝히기에 거의 넉넉할 것이다. 극 둘레의 땅이 거의 이어져 있는 북쪽 부분을 빼면, 지리적 분포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구분 가운데 하나가 신세계와 구세계 사이의 구분이라는 데 모든 저자가 뜻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 광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미국 한가운데에서 그 맨 남쪽 끝까지 가로질러 가 보면 우리는 더없이 갖가지인 조건을 만난다. 가장 축축한 지역, 메마른 사막, 높이 솟은 산, 풀밭 평원, 숲, 늪, 호수, 큰 강이 거의 모든 온도 아래에 펼쳐져 있다. 구세계의 기후나 조건 가운데 신세계에서 짝을 찾을 수 없는 것은 거의 없다. 적어도 같은 종이 대개 요구하는 만큼 가깝게는 찾을 수 있다. 조건이 아주 조금만 남다른 작은 자리에 갇혀 사는 생물 무리를 만나는 일은 지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예컨대 구세계에는 신세계의 어느 곳보다 더 더운 작은 지역들을 꼽을 수 있겠지만, 그곳에 남다른 동물상이나 식물상이 사는 것은 아니다. 구세계와 신세계의 조건이 이렇게 나란함에도, 거기 사는 산물들은 얼마나 널리 다른가!

남반구에서 위도 25도와 35도 사이에 놓인 오스트레일리아와 남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서쪽의 넓은 땅덩이를 견주어 보면, 우리는 조건이 모두 지극히 비슷한 곳들을 찾아낼 것이다. 그런데도 이보다 더 철저히 서로 다른 세 동물상과 식물상을 꼽기란 아마 할 수 없을 것이다. 또는 남위 35도 남쪽 남아메리카의 산물을 남위 25도 북쪽의 산물과 견주어 볼 수도 있다. 이 둘은 따라서 상당히 다른 기후에서 사는데도, 거의 같은 기후 아래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나 아프리카의 산물보다 서로 견줄 수 없이 가깝게 이어져 있음이 드러날 것이다. 바다에 사는 것들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우리의 전반적인 살핌에서 우리 눈길을 붙드는 두 번째 큰 사실은, 어떤 종류의 장벽이든, 곧 자유로운 이주를 가로막는 무엇이든, 여러 지역의 산물들 사이의 차이와 가깝고 중요하게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신세계와 구세계의 거의 모든 뭍 산물이 크게 다르다는 데서 본다. 다만 땅이 거의 맞닿아 있는 북쪽 부분은 예외인데, 거기서는 기후가 조금만 달랐다면 지금 엄밀히 북극에 속하는 산물에게 그러하듯 북쪽 온대의 형태에게도 자유로운 이주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위도 아래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사는 것들이 크게 다르다는 데서도 같은 사실을 본다. 이 나라들은 서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만큼 거의 다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각 대륙 안에서도 우리는 같은 사실을 본다. 높이 솟아 끊이지 않고 이어진 산맥의 맞은편끼리, 큰 사막의 맞은편끼리, 때로는 큰 강의 맞은편끼리도 서로 다른 산물을 보기 때문이다. 다만 산줄기와 사막 따위는 대륙을 갈라놓는 대양만큼 건널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 오래 버텨 왔을 법하지도 않으므로, 그 차이는 서로 다른 대륙을 특징짓는 차이보다 정도에서 훨씬 못하다.

바다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같은 법칙을 본다.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의 동쪽 해안과 서쪽 해안의 두 바다 동물상보다 더 뚜렷이 구분되는 짝은 없어서, 물고기든 조개든 게든 함께 나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 큰 두 동물상을 갈라놓는 것은 좁지만 건널 수 없는 파나마 지협뿐이다. 아메리카 해안에서 서쪽으로는 열린 대양의 넓은 공간이 뻗어 있고, 이주하는 것들이 쉬어 갈 섬이 하나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장벽을 만나며, 이것을 지나자마자 태평양의 동쪽 섬들에서 또 하나의 온통 구분되는 동물상을 만난다. 그리하여 여기서 바다 동물상 셋이 서로 그리 멀지 않은 나란한 선을 따라 저마다 걸맞은 기후 아래 북으로도 남으로도 멀리 뻗어 있으나, 뭍이든 열린 바다든 건널 수 없는 장벽으로 서로 갈라져 있기에 온전히 구분된다. 다른 한편 태평양의 열대 지역 동쪽 섬들에서 더 서쪽으로 나아가면 우리는 건널 수 없는 장벽을 만나지 않으며, 반구 하나를 가로질러 아프리카 해안에 이를 때까지 쉬어 갈 섬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이 광대한 공간에 걸쳐 우리는 또렷이 나뉘어 구분되는 바다 동물상을 만나지 않는다. 위에 말한 동아메리카와 서아메리카와 태평양 동쪽 섬들의 서로 가까운 세 동물상에는 조개도 게도 물고기도 함께 나는 것이 거의 하나도 없지만, 많은 물고기가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걸쳐 살고, 많은 조개가 경도로는 거의 정확히 맞은편에 있는 태평양 동쪽 섬들과 아프리카 동쪽 해안에 함께 난다.

앞의 말에 얼마쯤 들어 있는 세 번째 큰 사실은, 같은 대륙이나 같은 바다에서 나는 산물들의 유연관계다. 종 자체는 지점과 자리에 따라 구분되는데도 그러하다. 이것은 가장 널리 통하는 법칙이며 어느 대륙이나 헤아릴 수 없는 사례를 내놓는다. 그런데도 박물학자가 예컨대 북에서 남으로 여행할 때, 종으로는 구분되면서도 또렷이 이어져 있는 생물 무리가 잇따라 서로 자리를 갈마드는 모양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가깝게 이어져 있으나 구분되는 종류의 새들에게서 거의 비슷한 지저귐을 듣고, 비슷하게 지었으나 똑같지는 않은 그 둥지를 보며, 거의 같은 무늬로 물든 알을 본다. 마젤란해협 가까운 평원에는 Rhea(아메리카타조)의 한 종이 살고, 북쪽 라플라타의 평원에는 같은 속의 다른 종이 산다. 같은 위도 아래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볼 수 있는 참타조나 에뮤가 사는 것이 아니다. 같은 라플라타 평원에서 우리는 아구티와 비스카차를 본다. 우리네 산토끼와 집토끼와 거의 같은 버릇을 지니고 같은 설치목에 드는 동물이지만, 그 짜임새는 뚜렷이 아메리카의 유형을 보인다. 코르디예라의 높은 봉우리에 오르면 우리는 고산에 사는 종류의 비스카차를 찾는다. 물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비버나 사향쥐를 찾지 못하고 코이푸와 카피바라를 찾는데, 이것들도 아메리카 유형의 설치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사례를 들 수 있다. 아메리카 해안 앞바다의 섬들을 보면, 지질 구조가 아무리 다르더라도 거기 사는 것들은 모두 남다른 종일지언정 본바탕은 아메리카의 것이다. 우리는 지난 장에서 보인 대로 지나간 시대를 돌아볼 수 있으며, 그때에도 아메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바다에 아메리카의 유형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본다. 우리는 이 사실들에서, 뭍과 물의 같은 지역에 걸쳐 공간과 시간을 꿰뚫어 지배하며 그 물리적 조건과는 상관없는 어떤 깊은 생물의 끈을 본다. 이 끈이 무엇인지 캐어묻게 되지 않는 박물학자라면 호기심이 적은 사람일 것이 틀림없다.

내 이론에서 이 끈은 그저 유전이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한 아주 닮은 생물을, 또는 변종의 경우에서 보듯 서로 거의 닮은 생물을 낳는 원인은 그것 하나뿐이다. 서로 다른 지역에 사는 것들이 닮지 않은 것은 자연선택을 거친 변화 탓으로 돌릴 수 있고, 아주 버금가는 정도로만 서로 다른 물리적 조건의 직접적인 영향 탓으로 돌릴 수 있다. 닮지 않은 정도는 다음에 달려 있을 것이다. 더 우세한 생명의 형태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일이 얼마나 쉽게, 또 얼마나 먼 시기에 이루어졌는가. 앞서 들어온 것들이 어떤 성질이었고 얼마나 많았는가. 그리고 서로 생존을 다투는 가운데 그것들이 주고받은 작용과 반작용이 어떠했는가. 내가 이미 자주 말한 대로 생물과 생물의 관계야말로 모든 관계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 이리하여 장벽은 이주를 막음으로써 크나큰 중요성을 띠게 되고, 시간도 자연선택을 거친 느린 변화의 과정에 그러하다. 널리 퍼져 사는 종, 개체 수가 넘쳐나는 종, 제 넓게 퍼진 고향에서 이미 수많은 겨룸 상대를 이겨 낸 종은, 새 나라로 퍼져 나갈 때 새 자리를 차지할 가장 좋은 기회를 얻을 것이다. 새 고향에서 그것들은 새 조건에 놓일 것이고 자주 더 나아간 변화와 나아짐을 겪을 것이다. 그리하여 더욱 승리를 거두고 변화한 후손의 무리를 낳을 것이다. 변화를 동반한 이 유전의 원리로 우리는 속의 갈래가, 속 전체가, 나아가 과까지도 어떻게 같은 지역에 갇혀 있게 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이는 아주 흔하고 널리 알려진 일이다.

지난 장에서 말한 대로 나는 필연적인 발달의 법칙 따위를 믿지 않는다. 각 종의 변이성은 독립된 성질이며 그 개체가 복잡한 생존경쟁에서 이득을 보는 만큼만 자연선택에 이용될 것이므로, 서로 다른 종의 변화 정도는 한결같은 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서로 곧바로 겨루는 여러 종이 한 무리로 새 나라에 들어갔고 그 나라가 그 뒤에 격리되었다면, 그것들은 변화를 겪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주도 격리도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들은 생물을 서로 새로운 관계에 놓음으로써만, 그리고 그보다 덜한 정도로 둘레의 물리적 조건과 새로운 관계에 놓음으로써만 작용한다. 지난 장에서 우리가 보았듯 어떤 형태는 엄청나게 먼 지질 시기부터 거의 같은 성격을 지켜 왔다. 그와 같이 어떤 종은 광대한 공간에 걸쳐 이주하고서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이런 견해에 서면, 같은 속의 여러 종은 세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살고 있더라도 본디 같은 근원에서 나왔음이 뚜렷하다. 같은 조상에게서 계승했기 때문이다. 지질 시대 전체에 걸쳐 변화를 거의 겪지 않은 종이라면, 그것들이 같은 지역에서 이주해 왔으리라고 믿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오랜 옛적부터 잇따라 일어났을 광대한 지리와 기후의 변화 동안이라면 거의 어떤 양의 이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속의 종들이 비교적 가까운 시기 안에 생겨났다고 믿을 까닭이 있는 다른 많은 경우에는 이 점에 큰 어려움이 있다. 또 뚜렷한 것은, 같은 종의 개체들이 지금은 멀리 떨어져 격리된 지역에 살고 있더라도 그 어버이가 처음 생겨난 한 지점에서 나왔음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지난 장에서 설명한 대로, 종으로 구분되는 어버이에게서 자연선택을 거쳐 똑같이 동일한 개체가 생겨났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박물학자들이 크게 논해 온 물음에 이른다. 곧 종이 지구 겉면의 한 지점에서 창조되었는가 여러 지점에서 창조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같은 종이 어떻게 어느 한 지점에서 지금 발견되는 여러 멀고 격리된 지점까지 이주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내기가 지극히 어려운 경우가 아주 많은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도 각 종이 하나의 지역 안에서 처음 생겨났다는 견해의 단순함은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를 물리치는 이는 보통의 생식에 뒤이은 이주라는 참된 원인2을 물리치고 기적의 작용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한 종이 사는 지역이 이어져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리고 어떤 식물이나 동물이 서로 아주 먼 두 지점에 살거나 그 사이가 이주로 쉽게 건널 수 없는 성질일 때, 그 사실은 놀랍고 예외적인 것으로 제시된다. 바다를 건너 이주하는 능력은 아마 어떤 다른 생물보다도 뭍의 포유류에서 더 또렷이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에 맞게 우리는 같은 포유류가 세계의 멀리 떨어진 지점에 사는 설명할 수 없는 경우를 보지 못한다. 대브리튼이 예전에 유럽과 이어져 있었고 따라서 같은 네발짐승을 지닌다는 따위의 경우에 어려움을 느낄 지질학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종이 떨어진 두 지점에서 생겨날 수 있다면, 어째서 우리는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에, 또는 유럽과 남아메리카에 함께 사는 포유류를 하나도 찾지 못하는가? 생활 조건은 거의 같아서 유럽의 동식물이 숱하게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 귀화했는데, 또 남반구와 북반구의 이 먼 지점들에 본디부터 있던 식물 가운데 똑같이 동일한 것이 얼마쯤 있는데 어찌 그러한가? 내가 믿는 대로 그 답은 이러하다. 포유류는 이주할 수 없었던 반면, 어떤 식물은 분산 수단이 갖가지여서 저 광대하고 끊어진 사이 공간을 건너 이주했다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장벽이 분포에 미쳐 온 크고 놀라운 영향은, 대다수의 종이 한쪽에서만 생겨났고 다른 쪽으로 이주할 수 없었다는 견해에 서야만 이해된다. 몇 안 되는 과와 많은 아과, 아주 많은 속, 그보다도 더 많은 수의 속의 갈래가 하나의 지역에 갇혀 있다. 그리고 여러 박물학자가 살핀 대로, 가장 자연스러운 속, 곧 종들이 서로 가장 가깝게 이어져 있는 속은 대체로 한 곳에 머물거나 한 지역에 갇혀 있다. 계열에서 한 단계 아래로 내려가 같은 종의 개체에 이르렀을 때 정반대의 규칙이 지배하여 종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둘 이상의 구분되는 지역에서 생겨났다면, 그것은 얼마나 야릇한 어긋남이겠는가!

그러므로 다른 많은 박물학자에게 그러했듯 나에게도, 각 종이 하나의 지역에서만 생겨났고 그 뒤에 지나간 조건과 지금의 조건 아래에서 제 이주 능력과 살아갈 능력이 허락하는 데까지 그 지역에서 퍼져 나갔다는 견해가 가장 그럴듯해 보인다. 같은 종이 어떻게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건너갈 수 있었는지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가까운 지질 시대 안에 분명히 일어난 지리와 기후의 변화는 많은 종의 예전에 이어져 있던 사는 범위를 끊거나 띄엄띄엄하게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사는 범위가 이어져 있지 않은 예외가 하도 많고 하도 무거운 성질이어서 각 종이 하나의 지역에서 생겨나 거기서 갈 수 있는 데까지 이주했다는 믿음을, 곧 전반적인 고찰로 그럴듯해진 그 믿음을 우리가 버려야 하는지 하는 것뿐이다. 지금 멀리 떨어진 지점에 사는 같은 종의 예외적인 경우를 모두 논하는 것은 가망 없이 지루한 일일 것이다. 그런 많은 경우에 어떤 설명이 주어질 수 있다고 나는 잠시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쯤 미리 짚어 둔 뒤에 나는 가장 놀라운 부류의 사실 몇을 논하겠다. 곧 멀리 떨어진 산맥의 꼭대기에, 또 북극과 남극 지역의 멀리 떨어진 지점에 같은 종이 있다는 것이 하나요, 둘째로 (다음 장에서) 민물 산물의 넓은 분포요, 셋째로 몇백 마일3의 열린 바다로 갈라져 있는데도 섬과 본토에 같은 뭍 종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구 겉면의 멀고 격리된 지점에 같은 종이 있다는 것이 각 종이 하나의 태어난 자리에서 이주했다는 견해로 많은 사례에서 설명될 수 있다면, 예전의 기후와 지리의 변화 및 이따금 일어나는 갖가지 운반 수단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헤아릴 때, 이것이 보편의 법칙이었다는 믿음이 내게는 견줄 수 없이 가장 안전해 보인다.

이 문제를 논하면서 우리는 동시에 우리에게 똑같이 중요한 점 하나를 살필 수 있게 된다. 곧 내 이론에서 모두 공통 조상에게서 계승한 한 속의 여러 구분되는 종이, 그 조상이 살던 지역에서 (이주하는 어느 대목에선가 변화를 겪으면서) 이주해 나올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지역에 사는 것들의 대부분이 두 번째 지역의 종들과 가깝게 이어져 있거나 그것들과 같은 속에 든다면 그 지역은 아마 예전 어느 시기에 이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것들을 받아들였으리라는 것이 거의 어김없는 사실임을 보일 수 있다면, 내 이론은 더 튼튼해질 것이다. 변화의 원리에 서면 어떤 지역에 사는 것들이 어째서 그 지역을 채워 준 다른 지역에 사는 것들과 이어져 있어야 하는지를 우리가 또렷이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륙에서 몇백 마일 떨어진 곳에 솟아올라 생긴 화산섬은 아마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대륙에서 몇몇 이주자를 받아들일 것이고, 그 후손은 변화했더라도 유전으로 대륙에 사는 것들과 뚜렷이 이어져 있을 것이다. 이런 성질의 경우는 흔하며, 뒤에 더 온전히 보겠지만 따로따로 창조되었다는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한 지역의 종과 다른 지역의 종의 관계에 대한 이 견해는, (종이라는 낱말을 변종으로 바꾸어 놓으면) 월리스 씨4가 얼마 전에 낸 재치 있는 논문에서 내세운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논문에서 그는 "모든 종은 미리 존재하던 가깝게 이어진 종과 공간에서도 시간에서도 겹치게 생겨났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나는 이제 편지를 주고받아 그가 이 겹침을 변화를 동반한 생식 탓으로 돌린다는 것을 안다.

"단일한 창조 중심지와 여러 창조 중심지"에 대한 앞의 말은 이와 이어진 다른 물음에 곧바로 닿지는 않는다. 곧 같은 종의 모든 개체가 한 쌍이나 한 자웅동체에게서 계승했는가, 아니면 어떤 저자들이 헤아리듯 동시에 창조된 많은 개체에게서 계승했는가 하는 것이다. 결코 교잡하지 않는 생물이 있다면 그런 생물에서는 내 이론상 종이 잇따라 나아진 변종에게서 계승했음이 틀림없다. 그 변종들은 다른 개체나 변종과 섞인 적이 없고 서로 갈마들며 자리를 빼앗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변화하고 나아지는 각 단계마다 각 변종의 모든 개체는 하나의 어버이에게서 계승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 곧 새끼를 칠 때마다 늘 둘이 어울리거나 자주 교잡하는 모든 생물에서는, 느린 변화의 과정 동안 종의 개체들이 교잡으로 거의 한결같이 지켜졌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많은 개체가 동시에 달라져 갔을 것이고, 변화의 총량이 각 단계마다 하나의 어버이에게서 계승한 데서 비롯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말뜻을 밝혀 보자면 이러하다. 우리 잉글랜드의 경주마는 다른 어느 품종의 말과도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그 다름과 뛰어남은 어느 한 쌍에게서 계승한 데서 온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개체를 고르고 길들이는 데 끊임없이 마음을 쏟은 데서 온 것이다.

"단일한 창조 중심지"라는 이론에 가장 큰 어려움을 안겨 준다고 내가 고른 세 부류의 사실을 논하기 전에, 나는 분산 수단에 대해 몇 마디 해 두어야 한다.

분산 수단에 대하여. 찰스 라이엘 경5과 다른 저자들이 이 문제를 훌륭하게 다루었다. 여기서 나는 더 중요한 사실을 아주 짧게 간추릴 수밖에 없다. 기후의 변화는 이주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다. 어떤 지역은 기후가 달랐을 때는 이주의 큰길이었다가 지금은 건널 수 없게 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갈래의 이야기는 곧 얼마쯤 자세히 논해야 하겠다. 땅 높낮이의 변화도 아주 큰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다. 좁은 지협 하나가 지금 두 바다 동물상을 갈라놓고 있다. 그것을 물에 잠기게 해 보라. 또는 예전에 잠겨 있었다고 해 보라. 그러면 두 동물상은 이제 섞일 것이고 예전에도 섞였을 수 있다. 지금 바다가 뻗어 있는 곳에 예전 어느 시기에 땅이 있어 섬과 섬을, 어쩌면 대륙과 대륙까지 이어 주어 뭍 산물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게 했을 수 있다. 지금 있는 생물이 살아온 기간 안에 큰 높낮이의 바뀜이 일어났다는 것을 다툴 지질학자는 없을 것이다. 에드워드 포브스6는 대서양의 모든 섬이 가까운 과거에 유럽이나 아프리카와 이어져 있었음이 틀림없고 유럽도 마찬가지로 아메리카와 이어져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저자들도 이처럼 모든 대양에 가설의 다리를 놓았고 거의 모든 섬을 어느 본토엔가 이어 붙였다. 참으로 포브스가 쓴 논거를 믿어야 한다면, 가까운 과거에 어느 대륙엔가 이어져 있지 않았던 섬은 거의 하나도 없다고 인정해야 한다. 이 견해는 같은 종이 가장 먼 지점까지 분산한 일의 고르디아스 매듭을 잘라 내고 많은 어려움을 없앤다. 그러나 내가 판단하기로는 지금 있는 종이 살아온 기간 안에 그토록 엄청난 지리의 변화가 있었다고 인정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 대륙에 큰 높낮이의 출렁임이 있었다는 증거는 넉넉하지만, 가까운 시기 안에 대륙들을 서로 이어 주고 그 사이에 놓인 여러 대양의 섬들과 이어 줄 만큼 그 자리와 뻗음이 광대하게 바뀌었다는 증거는 없어 보인다. 지금은 바다 밑에 묻힌 많은 섬이 예전에 있었고 그것들이 식물과 많은 동물이 이주하는 동안 쉬어 가는 자리가 되어 주었으리라는 것을 나는 기꺼이 인정한다. 산호가 자라는 대양에서 그렇게 가라앉은 섬은 그 위에 서 있는 산호의 고리, 곧 환초로 이제 표시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고 내가 믿는 대로 각 종이 하나의 태어난 자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온전히 인정되고, 시간이 흐르며 우리가 분포 수단에 대해 무언가 분명한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예전에 땅이 어디까지 뻗어 있었는지를 마음 놓고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시기 안에 지금 아주 떨어져 있는 대륙들이 서로, 또 지금 있는 많은 대양의 섬과 이어져서 끊이지 않았거나 거의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 언젠가 밝혀지리라고는 나는 믿지 않는다. 분포에서 나타나는 여러 사실, 예컨대 거의 모든 대륙의 맞은편 바다 동물상이 크게 다르다는 것, 여러 땅과 심지어 바다의 제3기7 거주자가 지금의 거주자와 가깝게 이어져 있다는 것, 포유류의 분포와 바다의 깊이 사이에 (뒤에 보겠지만)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는 것, 이런 사실들과 그 밖의 사실들은 포브스가 내놓고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인 견해에 필요한 저 엄청난 지리의 격변이 가까운 시기 안에 있었다고 인정하는 데 맞서는 것으로 내게는 보인다. 대양의 섬에 사는 것들의 성질과 그 서로의 비율도 그 섬들이 예전에 대륙과 이어져 있었다는 믿음에 맞서는 것으로 내게는 보인다. 그 섬들이 거의 한결같이 화산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그것들이 가라앉은 대륙의 잔해라는 인정에 힘을 실어 주지 않는다. 그것들이 본디 뭍의 산맥으로 있었다면 적어도 몇몇 섬은 다른 산꼭대기처럼 화강암이나 변성 편암, 화석을 품은 오래된 바위 따위로 이루어졌을 것이고, 한낱 화산 물질의 더미로만 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우발적 수단이라 불리지만 더 마땅히는 이따금 일어나는 분포 수단이라 불릴 만한 것에 대해 몇 마디 해야 한다. 여기서 나는 식물에만 한정하겠다. 식물학 저작에서는 이 식물 저 식물이 널리 퍼지기에 알맞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 옮겨지는 일에 대해서라면 그것이 얼마나 쉽고 어려운지는 거의 온통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해도 좋다. 버클리 씨8의 도움을 받아 내가 몇 가지 실험을 해 보기 전까지는 씨앗이 바닷물의 해로운 작용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다. 놀랍게도 나는 87종류 가운데 64종류가 28일 동안 담긴 뒤에도 싹텄고 몇몇은 137일 동안 담긴 뒤에도 살아남았음을 알아냈다. 편의를 위해 나는 주로 작은 씨앗을 깍지나 열매 없이 시험했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며칠 안에 가라앉았으므로 소금물에 상하고 말고를 떠나 넓은 바다를 떠서 건널 수는 없었다. 그 뒤에 나는 더 큰 열매와 깍지 따위를 시험했고 그 가운데 얼마는 오래 떠 있었다. 푸른 나무와 말린 나무의 뜨는 성질이 얼마나 다른지는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는 홍수가 식물이나 가지를 씻어 내리고 그것이 둑에서 마른 뒤에 냇물이 새로 불면 바다로 쓸려 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하여 나는 익은 열매가 달린 식물 94종의 줄기와 가지를 말려 바닷물에 놓아 보게 되었다. 대부분은 빨리 가라앉았으나, 푸를 때는 아주 잠깐만 떠 있던 것이 마르고 나서는 훨씬 오래 떠 있기도 했다. 예컨대 익은 개암은 곧바로 가라앉았으나 말리고 나서는 90일 동안 떠 있었고 그 뒤에 심었더니 싹텄다. 익은 열매가 달린 아스파라거스는 23일 동안 떠 있었고 말리고 나서는 85일 동안 떠 있었으며 그 씨앗은 뒤에 싹텄다. Helosciadium9의 익은 씨앗은 이틀 만에 가라앉았으나 말리고 나서는 90일 넘게 떠 있었고 그 뒤에 싹텄다. 통틀어 말린 식물 94종 가운데 18종이 28일 넘게 떠 있었고, 그 18종 가운데 얼마는 훨씬 더 오래 떠 있었다. 그러므로 씨앗 87종류 가운데 64종류가 28일 담긴 뒤에 싹텄고, 익은 열매가 달린 식물 94종 가운데 18종이 (앞의 실험과 모두 같은 종은 아니다) 말린 뒤에 28일 넘게 떠 있었으니, 이 빈약한 사실에서 무엇이든 미루어 볼 수 있는 만큼은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다. 어느 나라든 식물 100종 가운데 14종의 씨앗은 28일 동안 바다의 흐름에 떠서 옮겨질 수 있고 싹 틔울 힘을 지킬 것이다. 존스턴의 《자연 지도첩》에 따르면 대서양의 여러 흐름의 평균 속도는 하루에 33마일이다 (어떤 흐름은 하루에 60마일로 달린다). 이 평균으로 보면 한 나라에 속한 식물 100종 가운데 14종의 씨앗은 924마일의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로 떠갈 수 있고, 뭍에 얹혔을 때 안쪽에서 부는 큰바람에 알맞은 자리로 날려 가면 싹틀 것이다.

내 실험에 뒤이어 마르텐스 씨10가 비슷한 실험을 했는데 훨씬 나은 솜씨였다. 그는 씨앗을 상자에 담아 실제 바다에 놓아, 참으로 떠다니는 식물처럼 번갈아 젖었다 공기에 드러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씨앗 98가지를 시험했는데 대부분 내 것과 달랐다. 그러나 그는 큰 열매를 많이 골랐고 바다 가까이 사는 식물의 씨앗도 골랐다. 이것은 떠 있는 기간의 평균과 소금물의 해로운 작용을 견디는 힘의 평균을 높여 주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 그는 열매가 달린 식물이나 가지를 미리 말리지 않았다. 우리가 본 대로 이것은 그 가운데 얼마를 훨씬 오래 떠 있게 했을 것이다. 결과는 그의 씨앗 98가지 가운데 18가지가 42일 동안 떠 있었고 그 뒤에 싹 틔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도에 드러난 식물은 우리 실험에서처럼 거센 움직임에서 보호받은 식물보다 짧게 떠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식물상에 속한 식물 100종 가운데 10종쯤의 씨앗이 말린 뒤에 900마일 너비의 바다를 건너 떠갈 수 있고 그 뒤에 싹트리라고 헤아리는 편이 아마 더 안전할 것이다. 큰 열매가 작은 열매보다 자주 더 오래 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큰 씨앗이나 큰 열매를 지닌 식물은 다른 어떤 수단으로도 옮겨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퐁스 드 캉돌11은 그런 식물이 대체로 사는 범위가 좁음을 보였다.

그러나 씨앗은 이따금 다른 길로 옮겨질 수도 있다. 떠내려온 나무는 대부분의 섬에, 가장 넓은 대양 한가운데 있는 섬에까지 밀려 올라온다. 그리고 태평양 산호섬의 원주민은 연장으로 쓸 돌을 오로지 떠내려온 나무의 뿌리에서만 얻으며, 이 돌은 값진 왕실 세금이 된다. 살펴보니 고르지 않은 모양의 돌이 나무뿌리에 박혀 있을 때 그 틈과 뒤쪽에 작은 흙덩이가 아주 자주 갇혀 있는데, 하도 완벽하게 갇혀 있어서 아무리 오래 옮겨져도 흙 한 알 씻겨 나가지 않는다. 나이 50년쯤 된 참나무에서 이렇게 나무에 온전히 갇혀 있던 작은 흙덩이 하나에서 쌍떡잎식물 셋이 싹텄다. 이 관찰이 정확하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또 나는 새의 주검이 바다에 떠 있을 때 곧바로 먹히지 않고 벗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떠 있는 새의 모이주머니에 든 갖가지 씨앗은 오래도록 생명을 지킨다. 예컨대 완두와 살갈퀴는 바닷물에 며칠만 담겨도 죽는다. 그러나 30일 동안 만든 소금물에 떠 있던 비둘기의 모이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놀랍게도 거의 다 싹텄다.

살아 있는 새는 씨앗을 옮기는 데 아주 효과 높은 일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갖가지 새가 얼마나 자주 큰바람에 밀려 대양을 건너 광대한 거리까지 날아가는지를 보여 주는 사실을 나는 많이 들 수 있다. 내 생각에 우리는 그런 형편에서 그것들이 나는 속도가 흔히 한 시간에 35마일이 되리라고 마음 놓고 헤아릴 수 있다. 어떤 저자들은 훨씬 높게 어림했다. 영양이 있는 씨앗이 새의 창자를 지나가는 사례를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열매의 단단한 씨앗은 칠면조의 소화 기관까지도 상하지 않고 지나갈 것이다. 두 달 동안 나는 내 뜰에서 작은 새들의 똥에서 씨앗 12종류를 주웠는데, 그것들은 멀쩡해 보였고 그 가운데 몇을 시험해 보았더니 싹텄다. 그러나 다음 사실이 더 중요하다. 새의 모이주머니는 위액을 내지 않으며, 내가 시험으로 아는 대로 씨앗이 싹트는 것을 조금도 해치지 않는다. 그런데 새가 먹이를 많이 찾아 삼킨 뒤에도 모든 낟알이 12시간, 심지어 18시간이 지나도록 모래주머니로 넘어가지는 않는다고 사람들은 분명히 단언한다. 이 사이에 새는 쉽사리 500마일 거리까지 밀려갈 수 있고, 매가 지친 새를 노린다는 것은 알려져 있으니 찢긴 모이주머니의 내용물이 이렇게 쉽게 흩뿌려질 수 있다. 브렌트 씨12가 내게 알려 준 바로는 그의 친구 하나가 프랑스에서 잉글랜드로 전서구를 날리는 일을 그만두어야 했는데, 잉글랜드 해안의 매가 도착하는 비둘기를 하도 많이 잡아 죽였기 때문이다. 어떤 매와 올빼미는 먹이를 통째로 삼키고 12시간에서 20시간 사이를 두고 덩어리를 게워 내는데, 내가 동물원에서 한 실험으로 아는 대로 그 덩어리에는 싹틀 수 있는 씨앗이 들어 있다. 귀리와 밀과 기장과 카나리아풀과 삼과 토끼풀과 사탕무의 씨앗 얼마는 여러 맹금의 위 속에 12시간에서 21시간 있은 뒤에도 싹텄다. 사탕무 씨앗 둘은 이렇게 2일 14시간 붙들려 있은 뒤에도 자랐다. 내가 알아낸 바로 민물고기는 많은 뭍 식물과 물 식물의 씨앗을 먹는다. 물고기는 자주 새에게 먹히니 이렇게 씨앗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질 수 있다. 나는 갖가지 씨앗을 죽은 물고기의 위 속에 밀어 넣고 그 몸을 물수리와 황새와 펠리컨에게 주었다. 이 새들은 여러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씨앗을 덩어리로 게워 내거나 똥으로 내보냈고, 그 씨앗 가운데 몇은 싹 틔울 힘을 지켰다. 그러나 어떤 씨앗은 이 과정에서 언제나 죽었다.

새의 부리와 발은 대체로 아주 깨끗하지만, 나는 거기에 흙이 묻기도 한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 한번은 자고새 한 마리의 발 하나에서 마른 찰흙 22그레인13을 떼어 냈는데, 이 흙 속에는 살갈퀴 씨앗만 한 자갈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 씨앗은 이따금 먼 거리까지 옮겨질 수 있다. 거의 어디서나 흙에 씨앗이 배어 있음을 보여 주는 사실을 많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지중해를 건너는 몇백만 마리의 메추라기를 잠시 떠올려 보라. 그 발에 묻은 흙에 작은 씨앗 몇이 들어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가 의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곧 이 문제로 되돌아와야 하겠다.

빙산이 흙과 돌을 싣기도 하고 덤불과 뼈와 뭍새의 둥지까지 실어 나른 일이 알려져 있으므로, 라이엘이 헤아린 대로 빙산이 이따금 북극과 남극 지역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씨앗을 옮겼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또 빙하기 동안에는 지금 온대인 지역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옮겼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나는 거의 의심할 수 없다. 아소르스제도에는 본토에 더 가까운 다른 대양의 섬에 견주어 유럽과 함께 나는 식물의 종이 아주 많고, 또 (왓슨 씨14가 말한 대로) 위도에 견주어 식물상의 성격이 얼마쯤 북쪽의 것이어서, 나는 이 섬들이 빙하기 동안 얼음에 실려 온 씨앗으로 얼마간 채워졌으리라고 짐작했다. 내 청에 따라 찰스 라이엘 경은 하르퉁 씨15에게 편지를 써서 그가 이 섬들에서 떠돌이 바위를 보았는지 물었고, 그는 그 군도에서 나지 않는 화강암과 다른 바위의 큰 조각들을 찾았다고 답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빙산이 예전에 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들의 해안에 제 바위 짐을 부려 놓았다고 마음 놓고 미루어 볼 수 있으며, 적어도 그것이 북쪽 식물의 씨앗을 거기 실어 왔을 가능성은 있다.

위의 여러 운반 수단이, 또 의심할 바 없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다른 여러 수단이 해마다, 몇백 년 동안, 몇만 년 동안 작용해 왔음을 헤아리면, 많은 식물이 이렇게 널리 옮겨지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놀라운 사실이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운반 수단을 때로 우발적이라 부르지만 이것은 엄밀히 옳지 않다. 바다의 흐름은 우발적이지 않으며, 늘 부는 큰바람의 방향도 그렇지 않다. 짚어 둘 것은 어떤 운반 수단도 씨앗을 아주 먼 거리까지 실어 나르지는 못하리라는 점이다. 씨앗은 바닷물의 작용에 아주 오래 드러나면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새의 모이주머니나 창자에 오래 실려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수단들은 몇백 마일 너비의 바다를 이따금 건너거나 섬에서 섬으로, 또는 대륙에서 이웃한 섬으로 건너기에는 넉넉하겠지만, 멀리 떨어진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건너기에는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멀리 떨어진 대륙의 식물상은 그런 수단으로 크게 섞이지 않을 것이고, 지금 우리가 보는 대로 구분된 채로 남을 것이다. 바다의 흐름은 그 길로 보아 북아메리카에서 영국으로 씨앗을 실어 오는 일이 결코 없겠지만, 서인도 제도에서 우리 서쪽 해안으로는 씨앗을 실어 올 수 있고 실제로 실어 온다. 다만 그 씨앗은 그렇게 오래 소금물에 담겨 죽지 않았더라도 우리 기후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거의 해마다 뭍새 한두 마리가 대서양 전체를 건너 북아메리카에서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서쪽 해안으로 밀려온다. 그러나 이 떠돌이가 씨앗을 옮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곧 발에 붙은 흙 속에 담아 오는 것인데 이것 자체가 드문 우연이다. 이런 경우에도 씨앗 하나가 알맞은 흙에 떨어져 다 자랄 가능성은 얼마나 적겠는가! 그러나 대브리튼처럼 잘 채워진 섬이 알려진 한 (또 이것을 밝히기는 아주 어려울 것이다) 지난 몇백 년 동안 이따금 일어나는 운반 수단으로 유럽이나 다른 어느 대륙에서 들어온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본토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빈약하게 채워진 섬이 비슷한 수단으로 이주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리라고 따지는 것은 큰 잘못일 것이다. 어떤 섬으로 옮겨진 씨앗이나 동물 20가지 가운데 새 고향에 잘 들어맞아 귀화할 만한 것은 하나를 겨우 넘을 뿐이리라는 것을, 영국보다 훨씬 덜 채워진 섬이라 하더라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것은 섬이 솟아올라 생기는 동안, 또 거기 사는 것들이 온전히 채워지기 전에, 긴 지질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따금 일어나는 운반 수단이 이루어 낼 일에 맞서는 타당한 논거가 되지 못한다. 거의 헐벗은 땅에서 해를 끼치는 벌레나 새가 거의 없거나 아주 없다면, 어쩌다 닿은 씨앗은 거의 모두 틀림없이 싹트고 살아남을 것이다.

빙하기 동안의 분산에 대하여. 몇백 마일에 이르는 저지대로 서로 갈라져 있고 그 저지대에서는 고산 종이 도저히 살 수 없는데도 산꼭대기마다 같은 식물과 동물이 있다는 것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주했을 가능성이 겉보기에 없는데도 멀리 떨어진 지점에 같은 종이 사는, 알려진 가장 놀라운 사례 가운데 하나다. 알프스나 피레네의 눈 덮인 지역과 유럽의 맨 북쪽 지역에 같은 식물이 그토록 많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의 화이트산맥에 있는 식물이 모두 래브라도의 식물과 같고, 에이사 그레이16에게서 우리가 듣는 대로 거의 모두 유럽의 가장 높은 산에 있는 식물과 같다는 것은 훨씬 더 놀랍다. 멀리 1747년에 이미 이런 사실은 그멜린17으로 하여금 같은 종이 여러 구분되는 지점에서 따로따로 창조되었음이 틀림없다고 결론짓게 했다. 그리고 아가시18와 다른 이들이 빙하기에 생생하게 눈길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같은 믿음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곧 보겠지만 빙하기는 이 사실들에 대한 단순한 해명을 내놓는다. 아주 가까운 지질 시기 안에 중부 유럽과 북아메리카가 북극의 기후를 겪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물에서도 무생물에서도 거의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증거로 안다. 불에 탄 집의 잔해도,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산들이 긁힌 옆구리와 닦인 겉면과 얹힌 바위로 그 골짜기가 얼마 전까지 얼음의 흐름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들려주는 것보다 더 또렷이 제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못한다. 유럽의 기후는 하도 크게 바뀌어서 북부 이탈리아에서는 옛 빙하가 남긴 거대한 빙퇴석이 이제 포도와 옥수수로 옷 입고 있다. 미국의 넓은 지역에 걸쳐 떠돌이 바위와, 떠내려온 빙산과 해안 얼음에 긁힌 바위가 예전의 추운 시기를 뚜렷이 드러낸다.

빙하 기후가 예전에 유럽에 사는 것들의 분포에 미친 영향은 에드워드 포브스가 놀랍도록 또렷하게 설명한 대로 본바탕에서 다음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빙하 시기가 예전에 그랬듯 천천히 다가왔다가 물러간다고 가정해 보면 그 변화를 더 쉽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추위가 다가오고 더 남쪽의 지대 하나하나가 북극 생물에게 알맞아지고 예전에 거기 살던 더 온대의 것들에게 알맞지 않게 되면서, 뒤의 것들은 자리를 빼앗기고 북극의 산물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더 온대인 지역에 사는 것들은 그와 동시에 남쪽으로 옮겨 갈 것이며, 장벽에 막히면 그 경우에는 죽어 없어질 것이다. 산은 눈과 얼음으로 덮이고 예전에 거기 살던 고산 생물은 평원으로 내려올 것이다. 추위가 가장 심해질 무렵이면 우리는 한결같은 북극의 동물상과 식물상이 중부 유럽을 덮고 남으로 알프스와 피레네까지, 나아가 스페인까지 뻗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온대인 미국의 지역도 마찬가지로 북극의 식물과 동물로 덮일 것이고, 이것들은 유럽의 것들과 거의 같을 것이다. 우리가 모두 남쪽으로 옮겨 갔다고 가정하는 지금의 극 둘레 거주자가 온 세계에 걸쳐 놀랍도록 한결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빙하기가 북아메리카에서 유럽보다 조금 일찍 또는 조금 늦게 다가왔다고 가정할 수 있고, 그러면 거기서 남쪽으로 옮겨 가는 일도 조금 일렀거나 조금 늦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지막 결과에는 아무 차이도 내지 않을 것이다.

따뜻함이 돌아오면서 북극의 형태는 북쪽으로 물러날 것이고, 더 온대인 지역의 산물이 그 물러나는 뒤를 바싹 따라붙을 것이다. 그리고 산기슭에서 눈이 녹으면서 북극의 형태는 드러나고 녹은 땅을 차지하고, 따뜻함이 더해질수록 늘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갈 것이다. 그동안 그 형제들은 북쪽으로 가는 여행을 이어 갈 것이다. 그리하여 따뜻함이 온전히 돌아왔을 때, 얼마 전까지 구세계와 신세계의 저지대에서 한 무리로 함께 살던 바로 그 북극의 종들은 (그보다 낮은 모든 높이에서는 죽어 없어진 채) 멀리 떨어진 산꼭대기에, 또 양 반구의 북극 지역에 격리되어 남겨질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미국의 산과 유럽의 산처럼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지점에 같은 식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또 우리는 이렇게 각 산맥의 고산 식물이 특히 그 바로 북쪽이나 거의 바로 북쪽에 사는 북극 형태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다. 추위가 다가올 때의 이주도, 따뜻함이 돌아올 때의 되이주도 대체로 바로 남쪽과 북쪽으로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왓슨 씨가 말한 대로 스코틀랜드의 고산 식물은, 또 라몽19이 말한 대로 피레네의 고산 식물은 특히 북부 스칸디나비아의 식물과 이어져 있다. 미국의 고산 식물은 래브라도의 식물과, 시베리아 산의 고산 식물은 그 나라의 북극 지역의 식물과 이어져 있다. 예전에 빙하기가 있었다는 더없이 잘 확인된 사실에 바탕을 둔 이 견해들은 유럽과 아메리카의 고산 산물과 북극 산물의 오늘날 분포를 하도 흡족하게 설명해 주는 것으로 내게는 보여서, 다른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산꼭대기에 같은 종이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다른 증거 없이도 더 추운 기후가 예전에 그것들이 그 사이의 낮은 땅을 건너 이주하도록 허락했고 그 땅이 그 뒤에 그것들이 살기에 너무 더워졌다고 거의 결론지을 수 있다.

빙하기 뒤로 기후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따뜻했던 적이 있다면 (미국의 어떤 지질학자들은 주로 화석 Gnathodon20의 분포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믿는다), 북극과 온대의 산물은 아주 늦은 시기에 북쪽으로 조금 더 나아갔다가 그 뒤에 지금의 고향으로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빙하기 뒤에 끼어든 이 조금 더 따뜻한 시기에 대해서는 나는 흡족한 증거를 만나지 못했다.

북극의 형태는 남쪽으로 길게 이주하고 다시 북쪽으로 되이주하는 동안 거의 같은 기후에 놓여 있었을 것이며, 특히 눈여겨볼 것은 그것들이 한 무리로 함께 머물렀으리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것들 서로의 관계는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을 것이고, 이 책에서 가르친 원리에 따라 그것들은 큰 변화를 겪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따뜻함이 돌아오는 순간부터 처음에는 산기슭에, 마침내는 산꼭대기에 격리되어 남겨진 우리 고산 산물의 경우는 얼마쯤 달랐을 것이다. 서로 멀리 떨어진 산맥에 모두 같은 북극 종이 남겨져 그 뒤로 줄곧 거기서 살아남았을 법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십중팔구 그것들은 빙하기가 시작되기 전에 산에 있었음이 틀림없고 빙하기의 가장 추운 시기 동안에는 한동안 평원으로 밀려 내려갔을 옛 고산 종과 섞였을 것이다. 또 그것들은 얼마쯤 다른 기후의 영향에 놓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들 서로의 관계는 어느 정도 흐트러졌을 것이고, 따라서 변화를 겪기 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내는 대로 실제로 그러했다. 유럽의 여러 큰 산맥의 오늘날 고산 식물과 동물을 견주어 보면, 아주 많은 종이 똑같이 동일하기는 하지만 어떤 것은 변종을 보이고 어떤 것은 의심스러운 형태로 매겨지며 몇몇은 구분되면서도 가깝게 이어진 종, 곧 대표하는 종이기 때문이다.

빙하기 동안 실제로 일어났다고 내가 믿는 바를 밝히면서 나는 그 시작 무렵에 북극의 산물이 오늘날처럼 극 둘레에서 한결같았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분포에 대한 앞의 말은 엄밀히 북극의 형태에만 닿는 것이 아니라 많은 아북극의 형태와 몇몇 북쪽 온대의 형태에도 닿는다. 이 가운데 얼마는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더 낮은 산과 평원에서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빙하기가 시작될 무렵 세계 곳곳의 아북극 형태와 북쪽 온대 형태가 어째서 그만큼 한결같아야 하는지를 내가 어떻게 설명하는지 마땅히 물을 만하다. 오늘날 구세계와 신세계의 아북극 산물과 북쪽 온대 산물은 대서양과 태평양의 맨 북쪽 부분으로 서로 갈라져 있다. 빙하기 동안 구세계와 신세계에 사는 것들이 지금보다 더 남쪽에서 살았을 때 그것들은 더 넓은 대양의 공간으로 훨씬 더 온전히 갈라져 있었음이 틀림없다. 나는 위의 어려움이 반대 성질을 지닌 더 이른 기후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넘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빙하기 전 더 새로운 플라이오세21 동안, 그리고 세계에 사는 것들의 대부분이 종으로 지금과 같았던 동안 기후가 오늘날보다 따뜻했다고 믿을 좋은 까닭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위도 60도의 기후 아래 사는 생물이 플라이오세 동안에는 더 북쪽으로 극권 안쪽, 곧 위도 66도에서 67도 사이에 살았고, 엄밀히 북극에 속하는 산물은 그때 극에 더 가까운 끊어진 땅에 살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런데 지구본을 보면 우리는 극권 아래로 서유럽에서 시베리아를 지나 동아메리카까지 거의 끊이지 않은 땅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빙하기 전 시기에 구세계와 신세계의 아북극 산물과 북쪽 온대 산물이 그만큼 한결같아야 했던 것을, 나는 극 둘레 땅이 이렇게 이어져 있었다는 것과 그에 따라 더 알맞은 기후 아래에서 서로 오가며 이주할 수 있었다는 것 탓으로 돌린다.

앞서 말한 까닭에서 우리 대륙이 크지만 부분적인 높낮이의 출렁임을 겪기는 했어도 오래도록 거의 같은 상대적 자리에 머물러 왔다고 믿기에, 나는 위의 견해를 넓혀서 더 이르고 더 따뜻했던 어느 시기에, 이를테면 더 오래된 플라이오세 동안에 같은 식물과 동물이 많은 수로 거의 끊이지 않은 극 둘레 땅에 살았다고 미루어 보는 쪽으로 크게 기운다. 그리고 이 식물과 동물은 구세계에서도 신세계에서도 빙하기가 시작되기 훨씬 전, 기후가 덜 따뜻해지면서 천천히 남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고 미루어 보는 쪽으로 기운다. 내가 믿는 대로 우리는 이제 대부분 변화한 상태로 중부 유럽과 미국에서 그 후손을 본다. 이 견해에 서면 우리는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산물 사이에 동일한 것은 아주 적으면서도 이어져 있는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두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고 대서양으로 갈라져 있음을 헤아리면 이것은 더없이 놀라운 관계다. 우리는 나아가 여러 관찰자가 말한 야릇한 사실, 곧 제3기의 뒤쪽 단계 동안 유럽과 아메리카의 산물이 오늘날보다 서로 더 가깝게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다. 이 더 따뜻한 시기 동안 구세계와 신세계의 북쪽 부분은 땅으로 거의 끊이지 않게 이어져 다리 노릇을 하며 거기 사는 것들이 서로 오가며 이주하게 해 주었을 것이고, 그 다리는 그 뒤에 추위로 건널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플라이오세의 따뜻함이 천천히 줄어드는 동안, 신세계와 구세계에 함께 살던 종들이 극권 남쪽으로 이주하자마자 그것들은 서로 온전히 끊어졌음이 틀림없다. 더 온대인 산물에 관한 한 이 갈라짐은 아득한 옛날에 일어났다. 그리고 식물과 동물은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한쪽 큰 지역에서는 본디 아메리카의 산물과 섞여 그것들과 겨루어야 했을 것이고, 다른 쪽 큰 지역에서는 구세계의 산물과 그러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큰 변화에 알맞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훨씬 더 가까운 시기 안에 두 세계의 여러 산맥과 북극 땅에 격리되어 남겨진 고산 산물보다 훨씬 더 큰 변화에 알맞은 것이다. 그리하여 신세계와 구세계의 온대 지역에 지금 사는 산물을 견주어 볼 때 우리는 동일한 종을 아주 적게 찾게 되었다 (다만 에이사 그레이가 얼마 전에 예전에 헤아리던 것보다 더 많은 식물이 동일함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큰 강에서 어떤 박물학자는 지리적 품종으로 매기고 어떤 박물학자는 구분되는 종으로 매기는 많은 형태를 찾고, 모든 박물학자가 종으로 구분된다고 매기는 가깝게 이어진 형태, 곧 대표하는 형태를 숱하게 찾는다.

뭍에서 그러하듯 바닷물에서도, 플라이오세나 그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 동안 극권의 이어진 해안을 따라 거의 한결같았던 바다 동물상이 천천히 남쪽으로 이주한 일은, 변화의 이론에 서면 지금 온전히 갈라진 지역에 사는 가깝게 이어진 많은 형태를 설명해 준다. 이리하여 내 생각에 우리는 온대 북아메리카의 동쪽 해안과 서쪽 해안에 지금 있는 것과 제3기의 대표하는 형태가 많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또 (데이나22의 훌륭한 저작에 적혀 있는 대로) 지중해와 일본의 바다에 가깝게 이어진 갑각류가 많고 어떤 물고기와 다른 바다 동물도 그러하다는 훨씬 더 놀라운 경우도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지역은 이제 대륙 하나와 적도의 대양 거의 반구로 갈라져 있다.

지금 갈라져 있는 바다에 사는 것들의, 또 마찬가지로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온대 땅에 지나간 시대와 오늘날 사는 것들의 이런 관계, 동일하지는 않으면서 이어져 있는 관계는 창조의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들이 그 지역들의 거의 비슷한 물리적 조건에 맞추어 비슷하게 창조되었다고는 우리가 말할 수 없다. 예컨대 남아메리카의 어떤 부분을 구세계의 남쪽 대륙과 견주어 보면, 우리는 물리적 조건이 모두 가깝게 들어맞는 나라들을 보면서도 거기 사는 것들은 철저히 서로 다름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가까운 우리 주제인 빙하기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포브스의 견해가 크게 넓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유럽에서 우리는 영국의 서쪽 해안에서 우랄산맥까지, 또 남으로 피레네까지 추운 시기의 더없이 뚜렷한 증거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얼어붙은 포유류와 산의 초목의 성질에서 시베리아도 비슷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미루어 볼 수 있다. 히말라야를 따라 900마일 떨어진 지점들에서 빙하가 예전에 낮은 곳까지 내려왔던 자취를 남겼고, 시킴에서 후커 박사23는 거대한 옛 빙퇴석에 옥수수가 자라는 것을 보았다. 적도 남쪽에서 우리는 뉴질랜드에 예전에 빙하가 작용했다는 얼마쯤의 직접적인 증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섬의 널리 떨어진 산들에서 발견되는 같은 식물들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발표된 어느 보고를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아 남동쪽 모퉁이에도 빙하가 작용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지니고 있다.

아메리카를 보자. 그 북쪽 절반에서는 얼음에 실려 온 바위 조각이 동쪽에서는 남으로 위도 36도에서 37도까지, 지금은 기후가 아주 다른 태평양 해안에서는 남으로 위도 46도까지 눈에 띄었다. 떠돌이 바위는 로키산맥에서도 눈에 띄었다. 적도 남아메리카의 코르디예라에서는 빙하가 한때 지금의 높이보다 훨씬 아래까지 뻗어 있었다. 중부 칠레에서 나는 안데스의 어느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높이 800피트쯤 되는 거대한 부스러기 둔덕의 짜임새에 놀랐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있는 어떤 빙하보다 훨씬 아래에 남겨진 거대한 빙퇴석이었음을 이제 나는 확신한다. 더 남쪽으로 대륙의 양쪽에서, 위도 41도부터 맨 남쪽 끝까지 우리는 제 어미 바위에서 멀리 옮겨진 거대한 바위에서 예전에 빙하가 작용했다는 더없이 또렷한 증거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빙하기가 세계 맞은편에 있는 이 멀리 떨어진 여러 지점에서 엄밀히 같은 때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에 그 시기가 가장 늦은 지질 시기 안에 들어 있었다는 좋은 증거가 우리에게 있다. 또 그것이 햇수로 재어 지점마다 엄청나게 긴 시간 이어졌다는 빼어난 증거도 있다. 추위가 지구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보다 일찍 다가왔거나 그쳤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점마다 오래 이어졌다는 것과 지질학의 뜻에서 같은 시대였다는 것을 보면, 적어도 그 시기의 한 부분 동안에는 그것이 온 세계에 걸쳐 실제로 같은 때였을 법하다고 내게는 보인다. 반대되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면 우리는 적어도 빙하의 작용이 북아메리카의 동쪽과 서쪽에서, 적도 아래의 코르디예라와 더 따뜻한 온대 지대 아래의 코르디예라에서, 또 대륙 남쪽 끝의 양쪽에서 같은 때였다고 인정할 만하다. 이것이 인정된다면 온 세계의 온도가 이 시기에 동시에 더 서늘했다고 믿지 않기 어렵다. 그러나 내 목적에는 어떤 넓은 경도의 띠를 따라 온도가 같은 때에 더 낮았다는 것만으로도 넉넉하겠다.

온 세계가, 적어도 넓은 경도의 띠가 극에서 극까지 같은 때에 더 추웠다는 이 견해에 서면, 동일한 종과 이어진 종의 오늘날 분포에 많은 빛을 비출 수 있다. 아메리카에서 후커 박사는 티에라델푸에고의 꽃식물 가운데 40종에서 50종이, 곧 그 빈약한 식물상에서 결코 작지 않은 몫이 유럽과 함께 난다는 것을 보였다. 이 두 지점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러하며, 가깝게 이어진 종도 많다. 적도 아메리카의 높은 산에는 유럽의 속에 드는 남다른 종이 숱하게 난다. 브라질의 가장 높은 산에서 가드너24는 그 사이의 넓은 더운 나라에는 없는 유럽의 속 몇을 찾아냈다. 마찬가지로 카라카스의 시야산(Silla)에서 이름난 훔볼트25는 오래전에 코르디예라를 특징짓는 속에 드는 종들을 찾아냈다. 아비시니아의 산에는 여러 유럽의 형태와 희망봉의 남다른 식물상을 대표하는 몇몇이 난다. 희망봉에는 사람이 들여오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유럽의 종이 아주 적게 있고, 그 산에는 아프리카의 열대 안쪽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유럽의 대표하는 형태 몇이 있다. 히말라야에, 또 인도반도의 격리된 산맥에, 실론의 높은 곳에, 자바의 화산 봉우리에 많은 식물이 나는데 그것들은 똑같이 동일하거나 서로를 대표하며, 동시에 그 사이의 더운 저지대에는 없는 유럽의 식물을 대표한다. 자바의 더 높은 봉우리에서 거둔 속의 목록은 유럽의 어느 언덕에서 거둔 수집품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오스트레일리아 남쪽의 형태가 보르네오 산꼭대기에서 자라는 식물로 또렷이 대표된다는 사실이다. 후커 박사에게서 내가 듣는 대로 이 오스트레일리아 형태 가운데 얼마는 말라카반도의 높은 곳을 따라 뻗어 있고, 한쪽으로는 인도에, 다른 쪽으로는 북으로 일본까지 성기게 흩어져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남쪽 산에서 F. 뮐러 박사26는 여러 유럽의 종을 발견했다. 사람이 들여오지 않은 다른 종들은 저지대에 난다. 그리고 후커 박사에게서 내가 듣는 대로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있으나 그 사이의 열대 지역에는 없는 유럽의 속을 길게 늘어놓을 수 있다. 후커 박사의 훌륭한 《뉴질랜드 식물상 서설》에는 저 큰 섬의 식물에 대해 이와 비슷하고 놀라운 사실이 실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세계에 걸쳐 더 높은 산에서 자라는 식물과 남반구와 북반구의 온대 저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이 때로 똑같이 동일함을 본다. 그러나 그것들은 훨씬 더 자주 종으로 구분되며, 그러면서도 더없이 놀랍게 서로 이어져 있다.

이 짧은 간추림은 식물에만 해당한다. 뭍 동물의 분포에 대해서도 엄밀히 이와 비슷한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바다 산물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일어난다. 한 예로 나는 가장 높은 권위자인 데이나 교수의 말을 끌어올 수 있다. 곧 "뉴질랜드가 갑각류에서 세계의 다른 어느 곳보다 제 대척점인 대브리튼과 더 가깝게 닮았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라는 말이다. J. 리처드슨 경27도 뉴질랜드와 태즈메이니아 따위의 해안에 북쪽 물고기 형태가 다시 나타난다고 말한다. 후커 박사가 내게 알려 준 바로는 Algæ(조류) 25종이 뉴질랜드와 유럽에 함께 나지만 그 사이의 열대 바다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짚어 둘 것은 남반구의 남쪽 부분과 열대 안쪽 지역의 산맥에서 발견되는 북쪽의 종과 형태가 북극의 것이 아니라 북쪽 온대 지대에 든다는 것이다. H. C. 왓슨 씨가 얼마 전에 말한 대로 "극의 위도에서 적도의 위도로 물러날수록 고산 식물상, 곧 산의 식물상은 참으로 점점 덜 북극다워진다." 지구의 더 따뜻한 지역의 산과 남반구에 사는 형태 가운데 많은 것은 값매김이 의심스러워서, 어떤 박물학자는 종으로 구분된다고 매기고 어떤 박물학자는 변종으로 매긴다. 그러나 어떤 것은 분명히 동일하고, 많은 것은 북쪽 형태와 가깝게 이어져 있으면서도 구분되는 종으로 매겨야 한다.

이제 앞의 사실들에 어떤 빛을 비출 수 있는지 보자. 많은 지질학의 증거가 떠받치는 믿음, 곧 온 세계가, 또는 그 큰 부분이 빙하기 동안 같은 때에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는 믿음에 서서 말이다. 빙하기는 햇수로 재어 아주 길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귀화한 어떤 식물과 동물이 몇백 년 안에 얼마나 광대한 공간에 퍼졌는지를 떠올리면, 이 시기는 어떤 양의 이주에도 넉넉했을 것이다. 추위가 천천히 다가오면서 모든 열대 식물과 다른 산물은 양쪽에서 적도 쪽으로 물러났을 것이고, 그 뒤를 온대의 산물이 따랐으며 그 뒤를 다시 북극의 산물이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것은 지금 우리가 다룰 바가 아니다. 열대 식물은 아마 크게 절멸을 겪었을 것이다. 얼마나 크게 겪었는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어쩌면 예전에 열대는 오늘날 희망봉과 온대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떤 부분에 빽빽이 모여 있는 것만큼 많은 종을 떠받쳤을 것이다. 많은 열대 식물과 동물이 상당한 추위를 견딜 수 있음을 우리가 아는 대로, 온도가 알맞게 떨어지는 동안에는 많은 것이 죽어 없어지기를 면했을 수 있으며, 더욱이 가장 따뜻한 자리로 달아나 그러했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에 새겨 둘 큰 사실은 모든 열대 산물이 어느 정도 고통을 겪었으리라는 점이다. 다른 한편 온대의 산물은 적도에 더 가까이 이주한 뒤에 얼마쯤 새로운 조건에 놓이기는 했겠지만 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온대 식물이 겨룸 상대의 침입에서 보호받는다면 제 기후보다 훨씬 따뜻한 기후를 견딜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열대 산물이 고통을 겪는 상태여서 침입자에게 굳건한 앞면을 내밀 수 없었음을 마음에 두면, 더 힘차고 우세한 온대 형태 얼마가 본바닥 무리를 뚫고 들어가 적도에 이르거나 적도를 건너기까지 했을 가능성이 내게는 있어 보인다. 물론 그 침입은 높은 땅이, 그리고 아마 메마른 기후가 크게 도왔을 것이다. 팰코너 박사28가 내게 알려 준 대로 온대 기후에서 온 여러해살이식물에 그토록 해로운 것은 열대의 더위에 어우러진 축축함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가장 축축하고 가장 더운 지역은 열대 토박이에게 피난처를 주었을 것이다. 히말라야 북서쪽의 산맥과 길게 뻗은 코르디예라가 침입의 두 큰 길을 마련해 준 듯하다. 그리고 후커 박사가 얼마 전에 내게 알려 준 놀라운 사실은, 티에라델푸에고와 유럽에 함께 나는 꽃식물 46종쯤이 모두 북아메리카에도 아직 있다는 것이다. 북아메리카는 그 행군의 길목에 놓여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추위가 가장 심했을 때, 곧 북극의 형태가 제 본바닥 나라에서 위도로 25도쯤 이주해 피레네 기슭의 땅을 덮었을 때, 어떤 온대 산물은 열대의 저지대까지 들어가고 건넜으리라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가장 추웠던 이 시기에 적도 아래 바다 높이의 기후는 지금 거기 6000피트나 7000피트 높이에서 느끼는 기후와 거의 같았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가장 추웠던 이 시기 동안 열대 저지대의 넓은 공간이 열대와 온대가 섞인 초목으로 옷 입고 있었으리라고 나는 헤아린다. 후커가 생생하게 그려 낸 대로 지금 히말라야 기슭에서 야릇하게 무성히 자라는 것과 같은 초목이다.

이리하여 내가 믿는 대로 상당수의 식물과 몇몇 뭍 동물과 어떤 바다 산물이 빙하기 동안 북쪽과 남쪽의 온대 지대에서 열대 안쪽 지역으로 이주했고, 어떤 것은 적도를 건너기까지 했다. 따뜻함이 돌아오면서 이 온대 형태는 저지대에서 죽어 없어지고 자연히 더 높은 산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적도에 이르지 못한 것들은 북쪽으로나 남쪽으로 예전의 고향을 향해 되이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도를 건넌 형태들은, 주로 북쪽의 것인데, 제 고향에서 더욱 멀리 맞은편 반구의 더 온대인 위도로 나아갔을 것이다. 북극의 조개 무리 전체가 남쪽으로 길게 이주하고 다시 북쪽으로 되이주하는 동안 변화를 거의 겪지 않았다고 지질학의 증거에서 믿을 까닭이 우리에게 있지만, 열대 안쪽의 산과 남반구에 자리 잡은 저 침입 형태의 경우는 온통 달랐을 수 있다. 이것들은 낯선 것들에 둘러싸였으니 많은 새로운 생명의 형태와 겨루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짜임새와 버릇과 체질에서 선택된 변화가 그것들에게 이득이 되었을 법하다. 이리하여 이 떠돌이들 가운데 많은 것이 북반구나 남반구의 제 형제들과 유전으로 여전히 뚜렷이 이어져 있으면서도, 이제 새 고향에서 뚜렷이 구분되는 변종이나 구분되는 종으로 있다.

아메리카에 대해 후커가,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 알퐁스 드 캉돌이 힘주어 내세운 놀라운 사실은, 동일한 식물과 이어진 형태가 반대 방향보다 북에서 남으로 훨씬 더 많이 이주한 듯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르네오와 아비시니아의 산에서 남쪽 식물 형태 몇을 본다. 북에서 남으로 이주가 이렇게 우세한 것은 북쪽에 땅이 더 넓게 뻗어 있고 북쪽 형태가 제 고향에서 더 많은 수로 존재했으며 따라서 자연선택과 겨룸을 거쳐 남쪽 형태보다 더 높은 단계의 완전함, 곧 지배하는 힘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리하여 빙하기 동안 그것들이 뒤섞였을 때 북쪽 형태가 덜 힘센 남쪽 형태를 이길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꼭 같다. 아주 많은 유럽의 산물이 라플라타에서, 또 그보다 덜한 정도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땅을 뒤덮고 어느 정도 토박이를 이겨 낸 반면, 남쪽 형태가 유럽의 어느 곳에든 귀화한 것은 지극히 적다. 지난 200년이나 300년 동안 라플라타에서, 또 지난 30년이나 40년 동안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씨앗을 실어 나를 법한 가죽과 양털과 그 밖의 물건이 유럽에 크게 들어왔는데도 그렇다. 열대 안쪽의 산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얼마쯤 일어났음이 틀림없다. 빙하기 전에 그 산들은 의심할 바 없이 그곳 고유의 고산 형태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거의 어디서나 북쪽의 더 넓은 지역과 더 효율 높은 일터에서 생겨난 더 우세한 형태에게 크게 자리를 내주었다. 많은 섬에서 토박이 산물은 귀화한 것과 거의 같은 수이거나 오히려 더 적다. 그리고 토박이가 실제로 죽어 없어지지는 않았더라도 그 수는 크게 줄었으며, 이것은 절멸을 향한 첫 단계다. 산은 뭍 위의 섬이다. 그리고 빙하기 전에 열대 안쪽의 산은 온전히 격리되어 있었음이 틀림없다. 나는 이 뭍 위의 섬에 있던 산물이 북쪽의 더 넓은 지역 안에서 생겨난 산물에게 자리를 내주었다고 믿는다. 참된 섬의 산물이 얼마 전부터 어디서나 사람의 손으로 귀화한 대륙의 형태에게 자리를 내준 것과 꼭 같다.

북쪽과 남쪽의 온대 지대와 열대 안쪽 지역의 산에 사는 이어진 종들의 사는 범위와 유연관계에 대해 여기서 내놓은 견해로 모든 어려움이 풀렸다고 나는 결코 헤아리지 않는다. 아주 많은 어려움이 아직 풀려야 한다. 나는 이주의 정확한 노선과 수단을 짚어 낸다고 내세우지 않으며, 어떤 종은 이주하고 다른 종은 이주하지 않은 까닭도, 어떤 종은 변화해 새로운 형태의 무리를 낳고 다른 종은 달라지지 않고 남은 까닭도 짚어 낸다고 내세우지 않는다. 어째서 어떤 종은 사람의 손으로 낯선 땅에 귀화하고 다른 종은 그러지 못하는지, 어째서 어떤 종은 제 고향 안에서 다른 종보다 두 배나 세 배 멀리 퍼지고 두 배나 세 배 흔한지를 우리가 말할 수 있기 전에는 그런 사실을 설명하기를 바랄 수 없다.

나는 아직 풀려야 할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가장 놀라운 어려움 몇은 남극 지역에 대한 후커 박사의 식물학 저작에 훌륭하도록 또렷하게 적혀 있다. 여기서 그것을 논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케르겔렌과 뉴질랜드와 티에라델푸에고처럼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지점에 동일한 종이 나타나는 데 대해서만 이렇게 말하겠다. 빙하기가 끝나 갈 무렵에 라이엘이 헤아린 대로 빙산이 그것들의 분산에 크게 관여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오로지 남쪽에만 갇혀 있는 속에 드는 아주 구분되는 여러 종이 이 지점들과 남반구의 다른 멀리 떨어진 지점에 있다는 것은,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라는 내 이론에서 훨씬 더 놀라운 어려움의 경우다. 이 종들 가운데 얼마는 하도 구분되어서, 빙하기가 시작된 뒤로 그것들이 이주하고 그 뒤에 그만한 정도로 변화할 시간이 있었다고 우리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들은 남다르고 아주 구분되는 종이 어떤 공통의 중심지에서 사방으로 뻗는 선을 따라 이주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내게는 보인다. 그리고 나는 북반구에서와 마찬가지로 남반구에서도 빙하기가 시작되기 전의 더 따뜻했던 시기를 바라보는 쪽으로 기운다. 지금은 얼음으로 덮인 남극의 땅이 지극히 남다르고 격리된 식물상을 떠받치던 때 말이다. 나는 이 식물상이 빙하기에 죽어 없어지기 전에 몇몇 형태가 이따금 일어나는 운반 수단으로, 또 지금 있는 섬과 지금은 가라앉은 섬이 쉬어 가는 자리가 되어 준 덕분에, 어쩌면 빙하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빙산의 도움으로 남반구의 여러 지점에 널리 분산되었으리라고 짐작한다. 내가 믿는 대로 이런 수단으로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남쪽 해안은 같은 남다른 식물 생명의 형태로 옅게 물들게 되었다.

찰스 라이엘 경은 놀라운 한 대목에서 내 말과 거의 똑같은 말로 기후의 큰 갈마듦이 지리적 분포에 미치는 영향을 헤아려 보았다. 나는 세계가 얼마 전에 그가 말한 큰 변화의 주기 가운데 하나를 겪었다고 믿는다. 또 이 견해를 자연선택을 거친 변화와 어우르면 같은 생명의 형태와 이어진 생명의 형태, 그 양쪽의 오늘날 분포에서 나타나는 숱한 사실이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살아 있는 물결은 짧은 한 시기 동안 북쪽에서도 남쪽에서도 흘러나와 적도에서 엇갈렸으나, 북쪽에서 더 큰 힘으로 흘러 남쪽을 거침없이 잠기게 했다고 말할 만하다. 밀물이 제 표류물을 수평의 선으로 남기되 물이 가장 높이 오르는 해안에서는 더 높이 올라가듯이, 살아 있는 물결도 우리 산꼭대기에 제 살아 있는 표류물을 남겼으니 그 선은 북극의 저지대에서 적도 아래의 큰 높이까지 완만하게 올라간다. 이렇게 뭍에 얹혀 남겨진 갖가지 생물은 사람의 미개한29 여러 인종30에 견줄 수 있다. 거의 모든 땅의 산속 요새로 쫓겨 올라가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며, 그들은 둘레 저지대에 예전에 살던 이들을 일러 주는 기록이며, 우리에게 흥미로 가득 차 있다.

주

  1. 1. 빙하기 — 원문은 the Glacial period. 유럽 북부와 북아메리카가 얼음에 덮였던 가까운 과거의 시기를 가리켜 당시에 쓰던 말이다. 9장에서도 짧게 나왔고, 이 장 뒤쪽 절반이 이 시기를 논증의 축으로 삼는다.

  2. 2. 참된 원인 — 원문은 라틴어 vera causa. 눈앞에서 실제로 작용하는 것이 확인된 원인만을 설명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당시 과학 방법론의 원칙이며, 다윈은 스승 격인 존 허셜과 라이엘에게서 이 말을 물려받았다.

  3. 3. 마일 — 이 장에서 다윈이 쓰는 단위는 모두 영국 단위다. 1마일은 약 1.61킬로미터, 1피트는 약 30.5센티미터다. 9장에서 밝힌 대로 원문의 단위를 그대로 두었다.

  4. 4. 월리스 씨 —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 영국의 박물학자로 말레이 제도를 답사했다. 여기서 다윈이 끌어온 논문은 1855년의 「새로운 종의 출현을 조절해 온 법칙에 대하여」다. 1858년 월리스가 다윈에게 보낸 원고가 《종의 기원》을 서둘러 펴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5. 5. 찰스 라이엘 경 —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 영국의 지질학자로 《지질학 원리》(1830~1833)에서 지금 눈앞에서 작용하는 힘이 같은 세기로 아득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고 보는 견해를 폈다. 9장에서도 나왔다.

  6. 6. 에드워드 포브스 — 에드워드 포브스(Edward Forbes, 1815~1854). 영국의 박물학자로 준설기로 바다 밑을 훑어 수심에 따른 생물 분포를 조사했고, 영국 제도의 식물상을 빙하기의 이주로 설명했다. 6장과 9장에서도 나왔다.

  7. 7. 제3기 — 원문은 tertiary. 당시의 구분으로 오늘날의 신생대 가운데 제4기 이전의 시기를 가리켰다. 6장과 9장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다.

  8. 8. 버클리 씨 — 마일스 조지프 버클리(Miles Joseph Berkeley, 1803~1889). 영국의 성직자이자 균학자·식물병리학자로, 다윈의 씨앗 침수 실험을 도왔고 그 결과를 1855년 《가드너스 크로니클》에 함께 실었다.

  9. 9. Helosciadium — 미나리과의 한 속이다. 확립된 한국어 통용명이 없어 학명만 두었다.

  10. 10. 마르텐스 씨 — 마르탱 마르텐스(Martin Martens, 1797~1863). 벨기에 뢰번의 화학자이자 식물학자로, 다윈의 실험을 이어받아 씨앗을 실제 바닷물에 담그는 방식으로 다시 해 보았다.

  11. 11. 알퐁스 드 캉돌 — 알퐁스 드 캉돌(Alphonse de Candolle, 1806~1893). 스위스의 식물학자로 《합리적 식물지리학》(1855)을 썼다. 다윈은 이 책에서 식물 분포의 자료를 많이 끌어왔다.

  12. 12. 브렌트 씨 — 버나드 브렌트(Bernard Brent, 1822~1867). 영국의 비둘기 사육가로 다윈과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 1장에서도 다윈은 사육가들에게서 얻은 관찰을 여럿 끌어왔다.

  13. 13. 그레인 — 영국의 무게 단위로 1그레인은 약 0.065그램이다. 22그레인은 약 1.4그램에 해당한다. 원문의 단위를 그대로 두었다.

  14. 14. 왓슨 씨 — 휴잇 코트렐 왓슨(Hewett Cottrell Watson, 1804~1881). 영국의 식물학자로 《키브리튼 식물지》에서 영국 식물의 분포를 지역별로 정리했다. 다윈은 여러 장에서 그의 자료를 끌어온다.

  15. 15. 하르퉁 씨 — 게오르크 하르퉁(Georg Hartung, 1821~1891). 독일의 지질학자로 아소르스제도와 카나리아제도의 화산 지질을 조사했다.

  16. 16. 에이사 그레이 — 에이사 그레이(Asa Gray, 1810~1888). 미국 하버드의 식물학자로 북아메리카와 동아시아 식물상의 닮음을 밝혔다. 다윈의 견해를 미국에 소개하고 옹호했다.

  17. 17. 그멜린 — 요한 게오르크 그멜린(Johann Georg Gmelin, 1709~1755). 독일 태생의 박물학자로 시베리아를 답사하고 《시베리아 식물지》를 냈다.

  18. 18. 아가시 —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 1807~1873). 스위스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박물학자다. 화석 물고기와 빙하를 연구했고 1840년에 예전에 유럽이 거대한 얼음에 덮여 있었다는 빙하기설을 내놓았다. 9장에서도 나왔으며, 뒤에 《종의 기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19. 19. 라몽 — 루이 라몽 드 카르보니에르(Louis Ramond de Carbonnières, 1755~1827).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박물학자로 피레네의 식물과 지질을 조사했다.

  20. 20. Gnathodon — 당시 북아메리카의 제4기 퇴적층에서 나오던 조개의 한 속으로 쓰이던 이름이다. 확립된 한국어 통용명이 없어 학명만 두었다.

  21. 21. 플라이오세 — 원문은 the Pliocene period. 라이엘이 제3기를 나누며 붙인 이름 가운데 하나로 오늘날에도 같은 이름으로 쓰인다. 다윈은 이를 다시 더 오래된 시기와 더 새로운 시기로 나누어 말한다.

  22. 22. 데이나 — 제임스 드와이트 데이나(James Dwight Dana, 1813~1895). 미국의 지질학자이자 동물학자로 미국 탐사 원정대에 참여해 갑각류와 산호초를 연구했다. 여기서 다윈이 끌어온 책은 《갑각류》(1852~1855)다.

  23. 23. 후커 박사 — 조지프 돌턴 후커(Joseph Dalton Hooker, 1817~1911). 영국의 식물학자로 남극과 히말라야를 답사했고 뒤에 큐 왕립식물원장을 지냈다. 다윈의 가장 가까운 벗이자 그의 이론을 처음으로 지지한 박물학자 가운데 하나다.

  24. 24. 가드너 — 조지 가드너(George Gardner, 1810~1849).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로 1836년부터 1841년까지 브라질을 답사했고 뒤에 실론 식물원장을 지냈다.

  25. 25. 훔볼트 —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1769~1859). 프로이센의 박물학자이자 탐험가로 남아메리카를 답사하고 식물지리학을 세웠다. 다윈은 그의 《여행기》를 읽고 비글호에 오를 마음을 굳혔다. 카라카스의 시야산(Silla de Caracas)은 그가 1800년에 오른 산이다.

  26. 26. F. 뮐러 박사 — 페르디난트 폰 뮐러(Ferdinand von Mueller, 1825~1896). 독일 태생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활동한 식물학자이며 빅토리아주의 식물학자이자 멜버른 식물원장을 지냈다.

  27. 27. J. 리처드슨 경 — 존 리처드슨(John Richardson, 1787~1865). 스코틀랜드의 박물학자이자 해군 군의관으로 북극 탐험에 참여했고 북아메리카의 물고기를 연구했다. 6장에서도 나왔다.

  28. 28. 팰코너 박사 — 휴 팰코너(Hugh Falconer, 1808~1865).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이자 고생물학자로 인도에서 일하며 히말라야의 식물과 시왈리크 구릉의 화석을 연구했다. 9장에서도 나왔다.

  29. 29. 미개한(savage) — 다윈 당시 유럽 박물학자들이 문자를 쓰지 않는 수렵·채집 사회의 사람을 가리켜 쓰던 말이다. 오늘날에는 쓰지 않으며, 수렵채집민이라 부르거나 야간족·셀크남족처럼 개별 집단의 고유 명칭으로 부른다. 당대의 사고를 보이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옮겼다. 6장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다.

  30. 30. 사람의 여러 인종 — 원문은 the races of man. 이 책에서 race는 생물의 계통을 뜻할 때 모두 「품종」으로 옮겼으나, 다윈이 사람 집단을 가리켜 쓴 세 자리(6장·11장·13장)만은 「인종」으로 옮겼다. 사람에게 「품종」을 쓰면 원문에 없는 뜻이 실리기 때문이다. 1859년의 race of man은 사람의 갈래를 뜻하는 평범한 말이었다. 여기서 다윈은 산속으로 밀려 올라간 사람 무리를 산꼭대기에 남겨진 생물에 견주는 비유로 이 말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