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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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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지리적 분포 (이어서)

민물 생물의 분포. 대양섬에 사는 것들에 대하여. 양서류1와 육상 포유류가 없는 것에 대하여. 섬에 사는 것들과 가장 가까운 본토에 사는 것들의 관계에 대하여. 가장 가까운 원천에서 이루어진 정착과 그 뒤의 변화에 대하여. 앞 장과 이 장의 요약.

호수와 강 체계는 서로 뭍이라는 장벽으로 갈라져 있으니 민물 생물은 같은 나라 안에서조차 넓게 퍼지지 못했으리라고, 또 바다는 보기에 그보다 더 건널 수 없는 장벽이니 먼 나라에까지는 결코 뻗어 나가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할 만도 하다. 그러나 실상은 정확히 그 반대다. 아주 다른 강(綱)에 드는 수많은 민물 종이 엄청나게 넓은 분포를 가질 뿐 아니라, 근연한 종들이 놀랍게도 온 세계에 걸쳐 우세하게 퍼져 있다. 나는 브라질의 민물에서 처음으로 채집하던 때에 민물 곤충과 조개 따위가 영국의 것과 닮은 데에, 그리고 둘레의 육상 생물이 영국의 것과 닮지 않은 데에 크게 놀랐던 일을 잘 기억한다.

그러나 민물 생물이 넓게 퍼지는 이 힘은 그토록 뜻밖이기는 해도 내 생각에는 대개의 경우, 그들이 못에서 못으로 또는 개울에서 개울로 짧고 잦은 이주를 하기에 알맞게, 그것도 그들에게 매우 쓸모 있게 갖추어져 왔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넓게 흩어지기 쉬운 성질은 이 능력에서 거의 필연적인 결과로 따라 나올 것이다. 여기서는 몇 가지 경우만 살필 수 있다. 물고기에 대해서는, 같은 종이 멀리 떨어진 대륙의 민물에 함께 나타나는 일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같은 대륙 안에서는 종이 흔히 넓게, 그리고 거의 변덕스럽게 퍼져 있다. 두 강 체계가 어떤 물고기는 함께 가지고 어떤 물고기는 달리 가지기 때문이다. 몇 가지 사실은 이따금 우연한 수단으로 옮겨질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인도에서 회오리바람이 살아 있는 물고기를 드물지 않게 떨어뜨리는 일이 그렇고, 물에서 꺼낸 알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나는 민물고기가 흩어지는 것을 주로 최근 시기에 땅의 높이가 조금씩 달라져 강들이 서로 흘러들게 된 일 탓으로 돌리는 쪽으로 기운다. 또한 높이가 달라지지 않고도 홍수가 났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 사례를 들 수 있다. 우리는 라인강의 뢰스2에서, 지질학으로 보아 아주 최근의 시기 안에 땅의 높이가 상당히 달라졌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으며, 그때 지표에는 지금 살아 있는 육상 조개와 민물 조개가 깔려 있었다. 이어진 산줄기의 양쪽에서 물고기가 크게 다른 것도 같은 결론으로 이끄는 듯하다. 그런 산줄기는 이른 시기부터 강 체계를 갈라놓아 그것들이 서로 이어지는 일을 온전히 막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연한 민물고기가 세계의 아주 멀리 떨어진 지점에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어떤 민물고기는 아주 오래된 형태에 들고, 그런 경우에는 큰 지리적 변화가 일어나기에 넉넉한 시간이, 따라서 많은 이주가 이루어질 시간과 수단이 있었을 것이다. 둘째로, 바닷물고기는 조심스레 다루면 천천히 민물에서 살도록 길들일 수 있다. 그리고 발랑시엔3에 따르면 오직 민물에만 갇혀 있는 물고기 무리는 거의 하나도 없으니, 어느 민물 무리에 드는 바다 종이 바닷가를 따라 멀리 옮겨 간 뒤 변화를 겪어 먼 땅의 민물에 적응하게 되는 일을 그려 볼 수 있다.

민물 조개의 어떤 종들은 아주 넓은 분포를 가지며, 내 이론에서 공통 어버이에게서 계승되어 단 하나의 원천에서 나왔을 것이 틀림없는 근연한 종들이 온 세계에 걸쳐 우세하게 퍼져 있다. 그 분포는 처음에 나를 몹시 당혹스럽게 했다. 그 알은 새에게 실려 갈 것 같지 않고, 어른 개체와 마찬가지로 바닷물에 닿으면 곧바로 죽기 때문이다. 나는 귀화한 어떤 종이 같은 나라 안에 어떻게 빠르게 퍼졌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두 가지 사실이 (그리고 아직 관찰되지 않은 다른 사실도 많을 것이 틀림없다) 이 주제에 얼마간 빛을 비춰 준다. 개구리밥으로 덮인 못에서 오리가 불쑥 떠오를 때 이 작은 풀이 그 등에 붙어 있는 것을 나는 두 번 보았다. 또 나는 개구리밥을 이 수조에서 저 수조로 조금 옮기다가 전혀 뜻하지 않게 한쪽 수조에 다른 쪽의 민물 조개를 들여놓은 일이 있다. 그러나 아마 더 효과가 큰 다른 매개가 있다. 나는 민물 조개의 알이 많이 부화하고 있는 수조에 오리의 발을 매달아 두었는데, 이는 자연의 못에서 잠자는 새의 발을 대신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극히 작고 막 부화한 조개가 여럿 그 발 위로 기어올라 어찌나 단단히 달라붙었던지 물에서 꺼내어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만 조금 더 자란 뒤에는 제 스스로 떨어져 나갔다. 막 부화한 이 연체동물은 본디 물에 사는 것인데도 오리 발에 붙은 채 축축한 공기 속에서 12시간에서 20시간을 살아남았다. 그만한 시간이면 오리나 왜가리는 적어도 600마일4이나 700마일은 날 수 있고, 바람에 밀려 바다를 건너 대양섬이나 그 밖의 먼 지점에 이른다면 웅덩이나 개울에 내려앉을 것이 틀림없다. 찰스 라이엘 경5은 또한 Dyticus6 한 마리가 Ancylus(삿갓조개를 닮은 민물 조개)를 단단히 붙인 채 잡힌 일을 내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 같은 과에 드는 물방개인 Colymbetes 한 마리가 가장 가까운 뭍에서 45마일 떨어진 곳에서 비글호에 날아든 적이 있다. 순풍이 불었다면 얼마나 더 멀리 날 수 있었을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식물에 대해서는 많은 민물 종이, 나아가 늪에 사는 종까지도 대륙에 걸쳐서나 가장 외딴 대양섬에까지 얼마나 엄청난 분포를 가지는지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알퐁스 드 캉돌7이 말한 대로 이것은 물에 사는 구성원이 아주 적은 육상 식물의 큰 무리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그 물에 사는 것들은 마치 그 결과이기라도 하듯 곧바로 아주 넓은 분포를 얻는 듯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이 사실은 흩어지기에 알맞은 수단으로 설명된다. 나는 앞서 흙이 드물기는 해도 이따금 새의 발과 부리에 얼마간 붙는다고 말한 바 있다. 못의 진흙 가장자리를 자주 찾는 섭금류는 갑자기 놀라 날아오를 때 발에 진흙을 묻히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 목에 드는 새가 가장 크게 떠도는 무리이며 넓은 바다 한가운데의 가장 외딴 메마른 섬에서도 이따금 발견된다는 것을 나는 보일 수 있다. 그들은 바다 위에 내려앉을 것 같지 않으니 발에 묻은 흙이 씻겨 나가지 않을 것이고, 뭍에 이르면 본디 자주 찾던 민물 자리로 날아갈 것이 틀림없다. 나는 식물학자들이 못의 진흙에 씨가 얼마나 가득 들어 있는지를 알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나는 작은 실험을 몇 가지 해 보았으나 여기서는 가장 두드러진 경우만 들겠다. 나는 2월에 작은 못 가장자리의 물속 세 지점에서 진흙을 큰 숟갈로 세 술 떠냈다. 이 진흙은 말렸을 때 무게가 6과 4분의 3온스8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여섯 달 동안 서재에 덮어 두고 자라는 대로 하나하나 뽑아 세었다. 식물은 여러 가지였고 모두 537포기였다. 그런데도 그 끈끈한 진흙은 아침 찻잔 하나에 다 들어갈 만한 양이었다. 이런 사실을 헤아려 보면 물새가 민물 식물의 씨를 아득히 먼 거리까지 실어 나르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이 식물들의 분포가 아주 넓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매개가 더 작은 민물 동물 가운데 일부의 알에도 작용해 왔을지 모른다.

알려지지 않은 다른 매개도 아마 한몫을 했을 것이다. 나는 민물고기가 어떤 종류의 씨는 먹고 다른 여러 종류는 삼킨 뒤에 도로 뱉어 낸다고 말한 바 있다. 작은 물고기조차 노란 수련이나 Potamogeton(가래속)의 씨처럼 어지간한 크기의 씨를 삼킨다. 왜가리를 비롯한 새들은 한 세기 또 한 세기 날마다 물고기를 삼켜 왔다. 그러고는 날아올라 다른 물가로 가거나 바람에 밀려 바다를 건넌다. 그리고 우리는 씨가 덩어리로든 똥으로든 도로 나올 때 여러 시간이 지난 뒤에도 싹 틔우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보았다. 저 아름다운 수련인 Nelumbium의 씨가 얼마나 큰지를 보고 이 식물에 대한 알퐁스 드 캉돌의 말을 떠올렸을 때, 나는 그 분포가 도무지 설명될 수 없는 채로 남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듀본9은 남부의 큰 수련(후커 박사10에 따르면 아마도 Nelumbium luteum)의 씨를 왜가리의 위에서 찾아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해 보지는 못했으나, 유비로 미루어 다른 못으로 날아가 물고기를 배불리 먹은 왜가리가 위에서 Nelumbium의 씨가 소화되지 않은 채 든 덩어리를 도로 뱉어 내리라고 믿게 된다. 또는 물고기를 이따금 떨어뜨린다고 알려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끼에게 먹이를 주다가 씨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분포의 이런 여러 수단을 살필 때, 이를테면 솟아오르는 작은 섬에 못이나 개울이 처음 생겨날 때 그곳은 비어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씨나 알 하나만으로도 자리 잡을 기회가 넉넉하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어느 못이든 이미 차지하고 있는 종의 개체들 사이에는 그 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늘 생존경쟁이 있겠지만, 그 종류의 수가 뭍의 것에 견주어 적으므로 물에 사는 종 사이의 경쟁은 육상의 종 사이보다 덜 혹독할 것이다. 따라서 남의 나라 물에서 온 침입자는 육상의 정착자보다 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더 나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일부, 어쩌면 많은 민물 생물이 자연의 등급에서 낮은 자리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낮은 생물이 높은 것보다 덜 빠르게 달라지거나 변화한다고 믿을 만한 까닭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같은 물 종이 이주하는 데에 평균보다 긴 시간을 줄 것이다. 우리는 많은 종이 예전에는 민물 생물이 퍼질 수 있는 만큼 이어진 모습으로 아득히 넓은 지역에 걸쳐 퍼져 있다가 그 뒤 중간 지역에서 절멸했을 가능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민물 식물과 하등 동물이 똑같은 형태를 그대로 지녔든 얼마쯤 변화했든 넓게 분포하는 것은, 내가 믿기로는 주로 그 씨와 알이 동물에 의해, 특히 나는 힘이 크고 이 물에서 저 물로, 흔히 멀리 떨어진 물로 자연스레 옮겨 다니는 민물새에 의해 널리 흩어지는 데 달려 있다. 이리하여 자연은 꼼꼼한 정원사처럼 어떤 성질을 지닌 모판에서 씨를 거두어 그 씨에 꼭 그만큼 알맞은 다른 모판에 떨어뜨린다.

대양섬에 사는 것들에 대하여. 이제 우리는 같은 종의 모든 개체와 근연한 종의 모든 개체가 하나의 어버이에게서 계승되었고, 따라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지구의 멀리 떨어진 지점들에 살게 되었다 해도 모두 공통의 출생지에서 나왔다고 보는 견해에 가장 큰 난점을 들이대는 것으로 내가 골라 둔 세 부류의 사실 가운데 마지막에 이른다. 나는 포브스11의 대륙 확장설을 정직하게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미 말했다. 그 견해를 제대로 밀고 나가면 최근 시기 안에 지금 있는 모든 섬이 어떤 대륙에 거의 또는 온전히 붙어 있었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견해는 많은 난점을 없애 주겠지만, 내 생각에는 섬의 생물에 관한 사실을 모두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이어지는 논의에서 나는 흩어짐이라는 문제에만 매이지 않고, 독립된 창조와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라는 두 이론의 참됨에 관계되는 다른 사실도 살피겠다.

대양섬에 사는 온갖 종류의 종은 같은 넓이의 대륙 지역에 사는 것에 견주면 수가 적다. 알퐁스 드 캉돌은 식물에서, 월러스턴12은 곤충에서 이를 인정한다. 위도로 780마일에 걸쳐 뻗은 뉴질랜드의 큰 넓이와 다양한 서식 자리를 보고, 그 꽃식물이 겨우 750가지인 것을 희망봉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같은 넓이에 있는 것과 견주어 보면, 물리적 조건의 차이와는 전혀 무관한 무언가가 그토록 큰 수의 차이를 낳았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형이 고른 케임브리지 주만 해도 식물이 847가지이고 작은 앵글시섬은 764가지인데, 이 수에는 고사리 몇 가지와 들여온 식물 몇 가지가 들어 있고 다른 몇 가지 점에서도 이 견줌은 아주 공정하지는 않다. 메마른 어센션섬이 본래부터 꽃식물을 6가지도 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 그런데도 뉴질랜드에서, 그리고 이름 댈 수 있는 다른 모든 대양섬에서 그러했듯 많은 식물이 그곳에 귀화했다. 세인트헬레나에서는 귀화한 식물과 동물이 본래부터 그곳에 있던 생물을 여럿 거의 또는 온전히 없애 버렸다고 믿을 만한 까닭이 있다. 종마다 따로 창조되었다는 교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가장 잘 적응한 식물과 동물이 대양섬에 넉넉한 수만큼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뜻하지 않게 여러 원천에서 그 섬들을 채운 것이 자연이 한 것보다 훨씬 더 가득하고 더 완전했기 때문이다.

대양섬에서는 사는 것들의 종류가 적기는 하지만, 고유한 종(곧 세계의 다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종)의 비율은 흔히 지극히 크다. 이를테면 마데이라의 고유한 육상 조개의 수나 갈라파고스제도의 고유한 새의 수를 아무 대륙에서나 발견되는 수와 견주고, 다시 그 섬들의 넓이를 그 대륙의 넓이와 견주어 보면 이것이 참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은 내 이론에서 예상할 만한 것이다. 이미 설명했듯 오랜 간격을 두고 이따금 새롭고 격리된 구역에 다다라 새로운 동료들과 겨뤄야 하는 종은 변화를 겪기 아주 쉽고, 흔히 변화한 후손의 무리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섬에서 한 강의 종이 거의 모두 특유하다고 해서 다른 강의 종이나 같은 강의 다른 갈래의 종도 특유하다는 결론은 결코 따라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 차이는 변화하지 않은 종이 손쉽게, 그것도 한 무리로 건너와 그들 사이의 상호 관계가 그다지 흐트러지지 않은 데 달려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갈라파고스제도에서는 뭍새가 거의 모두 특유하지만 바닷새는 11가지 가운데 2가지만이 특유하다. 그리고 바닷새가 뭍새보다 이 섬들에 더 쉽게 다다를 수 있었으리라는 것은 뻔하다. 한편 버뮤다는 갈라파고스제도가 남아메리카에서 떨어진 것과 거의 같은 거리만큼 북아메리카에서 떨어져 있고 흙도 아주 특유한데, 고유한 뭍새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J. M. 존스 씨13의 훌륭한 버뮤다 기록에서, 북아메리카의 아주 많은 새가 해마다 크게 이동하는 동안 이 섬을 주기적으로 또는 이따금 찾는다는 것을 안다. 마데이라도 특유한 새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E. V. 하코트 씨14가 내게 알려 준 바로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많은 새가 거의 해마다 바람에 밀려 그리로 온다. 그러니 버뮤다와 마데이라라는 이 두 섬은 오랜 세월 예전 보금자리에서 서로 겨루며 서로에게 맞추어진 새들로 채워진 셈이다. 그리고 새 보금자리에 자리 잡았을 때 저마다는 다른 것들에 의해 제자리와 제 버릇에 붙들려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변화를 겪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마데이라에는 특유한 육상 조개가 놀랄 만큼 많이 살지만, 그 바닷가에만 갇혀 사는 바다 조개는 한 종도 없다. 바다 조개가 어떻게 흩어지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그 알이나 애벌레가 아마도 바닷말이나 떠다니는 나무토막에, 또는 섭금류의 발에 붙어서 300마일이나 400마일에 이르는 트인 바다를 건너 육상 조개보다 훨씬 쉽게 실려 갈 수 있으리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마데이라의 여러 곤충 목도 보기에 비슷한 사실을 보여 준다.

대양섬은 어떤 강이 모자랄 때가 있고, 그 자리는 보기에 그곳에 사는 다른 것들이 차지한다. 갈라파고스제도에서는 파충류가, 뉴질랜드에서는 날개 없는 거대한 새가 포유류의 자리를 대신한다. 갈라파고스제도의 식물에서는 여러 목의 비율이 다른 곳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후커 박사가 보여 주었다. 그런 경우는 대개 그 섬의 물리적 조건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 설명은 내게 적잖이 의심스러워 보인다. 나는 건너오기 쉬운 정도가 적어도 조건의 성질만큼은 중요했다고 믿는다.

먼 섬에 사는 것들에 대해서는 눈에 띄는 작은 사실을 많이 들 수 있다. 이를테면 포유류가 살지 않는 어떤 섬에서는 고유한 식물 가운데 일부가 아름답게 갈고리 진 씨를 가진다. 그런데 갈고리 진 씨가 네발짐승의 털에 실려 옮겨지기에 알맞게 적응해 있다는 것만큼 두드러진 관계도 드물다. 이 경우는 내 견해에서 아무 난점도 되지 않는다. 갈고리 진 씨가 다른 어떤 수단으로 섬에 실려 갔을 수 있고, 그 식물이 그 뒤 조금 변화하면서도 갈고리 진 씨를 그대로 지녀 고유한 종을 이루었다면, 그 씨는 어떤 흔적 기관 못지않게 쓸모없는 부속물을 달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많은 섬 딱정벌레에서 붙어 버린 딱지날개 밑에 쪼그라든 날개가 그러하다. 또 섬에는 다른 곳에서는 풀 종만 드는 목에 속하는 나무나 떨기나무가 있을 때가 많다. 그런데 알퐁스 드 캉돌이 보인 대로 나무는 그 까닭이 무엇이든 대개 좁은 분포를 가진다. 그러므로 나무가 먼 대양섬에 다다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풀은 다 자란 나무와 키로 겨루어 이길 가망이 없지만, 섬에 자리 잡아 풀하고만 겨루게 되면 점점 더 크게 자라 다른 식물을 넘어섬으로써 쉽사리 유리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선택은 섬에서 자라는 풀이 어느 목에 들든 그 키를 늘리는 쪽으로 흔히 기울 것이고, 그리하여 그것을 먼저 떨기나무로, 끝내는 나무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대양섬에 목 전체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보리 생뱅상15이 오래전에 양서류(개구리·두꺼비·영원)가 큰 바다에 점점이 박힌 그 많은 섬 어디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 주장을 확인하려 애썼고, 그것이 엄밀하게 참임을 알아냈다. 다만 나는 뉴질랜드라는 큰 섬의 산지에 개구리가 있다는 말을 확실히 들었다. 그러나 이 예외는 (그 정보가 옳다면) 빙하의 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그토록 많은 대양섬에 개구리와 두꺼비와 영원이 두루 없는 것은 그 섬들의 물리적 조건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섬은 이 동물들에게 유난히 잘 맞는 듯하다. 개구리가 마데이라와 아소르스제도와 모리셔스에 들어와 골칫거리가 될 만큼 불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동물과 그 알이 바닷물에 닿으면 곧바로 죽는다고 알려져 있으니, 내 견해에서는 그것들이 바다를 건너 실려 가기가 몹시 어려우리라는 것, 따라서 어느 대양섬에도 살지 않는 까닭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창조 이론에서는 어째서 그것들이 그곳에 창조되지 않았는지 설명하기가 몹시 어려울 것이다.

포유류도 또 하나의 비슷한 경우를 보여 준다. 나는 가장 오래된 항해기들을 꼼꼼히 뒤졌으나 아직 그 일을 끝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는 대륙이나 큰 대륙섬에서 300마일 넘게 떨어진 섬에 육상 포유류가 (원주민16이 기르는 집짐승은 빼고) 산다는, 의심할 바 없는 사례를 하나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훨씬 가까이 있는 섬도 여럿이 똑같이 비어 있다. 늑대를 닮은 여우가 사는 포클랜드 제도가 예외에 가장 가깝다. 그러나 이 무리는 본토와 이어진 해저 둔덕 위에 놓여 있으므로 대양섬으로 볼 수 없다. 게다가 예전에 빙산이 그 서쪽 바닷가로 큰 바위를 실어 왔으니, 오늘날 북극 지역에서 그토록 자주 일어나는 것처럼 예전에 여우를 실어 왔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작은 섬이 작은 포유류를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작은 포유류는 대륙에 가깝기만 하면 세계 여러 곳의 아주 작은 섬에도 나타나며, 우리의 작은 네발짐승이 귀화해 크게 불어나지 않은 섬은 이름 대기 어렵기 때문이다. 흔한 창조의 견해에서 포유류를 창조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많은 화산섬은 그것들이 겪은 엄청난 깎임과 그 제3기 지층이 보여 주듯 넉넉히 오래되었다. 다른 강에 드는 고유한 종이 생겨날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대륙에서는 포유류가 다른 하등 동물보다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사라진다고 여겨진다. 육상 포유류는 대양섬에 나타나지 않지만, 날아다니는 포유류는 거의 모든 섬에 나타난다. 뉴질랜드에는 세계의 다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박쥐가 2가지 있다. 노퍽섬, 비티제도17, 보닌제도, 캐롤라인제도와 마리아나제도, 모리셔스가 저마다 특유한 박쥐를 가지고 있다. 창조의 힘이라는 것이 어째서 먼 섬에 박쥐는 내고 다른 포유류는 내지 않았느냐고 물을 만하다. 내 견해에서 이 물음에는 쉽게 답할 수 있다. 육상 포유류는 어느 것도 넓은 바다를 건너 실려 갈 수 없지만 박쥐는 날아서 건널 수 있기 때문이다. 박쥐가 대낮에 대서양 멀리까지 떠도는 것이 목격된 바 있다.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두 종이 본토에서 600마일 떨어진 버뮤다를 규칙적으로 또는 이따금 찾는다. 이 과를 특별히 연구한 톰스 씨18에게서 나는 같은 종 가운데 많은 것이 엄청나게 넓은 분포를 가지며 대륙에서도 멀리 떨어진 섬에서도 발견된다고 듣는다. 그러므로 그렇게 떠도는 종이 새 보금자리에서 그 새 처지에 맞추어 자연선택을 통해 변화했다고 가정하기만 하면, 섬에 고유한 박쥐가 있으면서 육상 포유류는 하나도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섬이 대륙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 육상 포유류가 없는 것 말고도, 어떤 섬을 이웃한 본토에서 갈라놓는 바다의 깊이와, 그 둘 모두에 같은 포유류 종이나 얼마쯤 변화한 근연한 종이 있는 것 사이에도 거리와는 어느 정도 무관한 관계가 있다. 윈저 얼 씨19는 이 점에 대해 큰 말레이 제도에 관하여 두드러진 관찰을 남겼다. 이 제도는 셀레베스20 가까이에서 깊은 바다의 띠가 가로지르며, 이 띠가 크게 구별되는 두 포유류 동물상을 갈라놓는다. 그 양쪽의 섬들은 어지간한 깊이의 해저 둔덕 위에 놓여 있고, 아주 가깝게 근연하거나 똑같은 네발짐승이 산다. 이 큰 제도에 몇 가지 변칙이 나타나는 것은 틀림없고, 어떤 포유류가 사람의 손을 거쳐 귀화했을 법하기에 몇몇 경우에는 판단을 내리기가 무척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곧 월리스 씨21의 놀라운 열의와 연구를 통해 이 제도의 박물학에 많은 빛이 비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아직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에서 이 주제를 좇아갈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나아간 데까지는 이 관계가 대체로 들어맞는다. 영국은 얕은 해협으로 유럽과 갈라져 있는데 양쪽의 포유류가 같다. 비슷한 해협으로 오스트레일리아와 갈라진 많은 섬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사실을 만난다. 서인도 제도는 깊이가 1000패덤22에 가까운, 깊이 잠긴 둔덕 위에 서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아메리카의 형태를 발견하지만 종은 물론 속까지도 구별된다. 변화의 양은 어느 경우에나 흐른 시간에 어느 정도 달려 있고, 땅의 높이가 달라지는 동안 얕은 해협으로 갈라진 섬이 더 깊은 해협으로 갈라진 섬보다 최근 시기 안에 본토와 이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다의 깊이와, 섬에 사는 포유류가 이웃 대륙의 포유류에 대해 지니는 근연성의 정도 사이에 흔히 나타나는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창조가 저마다 따로 이루어졌다는 견해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다.

대양섬에 사는 것들에 대한 앞의 모든 논의는, 곧 종류가 적다는 것, 특정한 강이나 강의 갈래에서 고유한 형태가 풍부하다는 것, 양서류처럼 무리 전체가 없고 날아다니는 박쥐가 있는데도 육상 포유류가 없다는 것, 어떤 식물 목의 비율이 유별나다는 것, 풀 형태가 나무로 발달해 온 것 따위는, 내게는 우리의 모든 대양섬이 예전에 이어진 땅으로 가장 가까운 대륙과 붙어 있었다는 견해보다 이따금 작용하는 운반 수단이 긴 시간에 걸쳐 크게 효과를 내 왔다는 견해에 더 잘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뒤의 견해에서라면 이주가 아마 더 온전했을 것이고, 변화를 인정한다면 생물과 생물 사이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따라 모든 생물 형태가 더 고르게 변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먼 섬에 사는 것들 가운데 여럿이 같은 종의 형태를 그대로 지녔든 다다른 뒤에 변화했든 어떻게 지금의 보금자리에 이를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크고 무거운 난점이 많다는 것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잔해 하나 남아 있지 않은 많은 섬이 쉬어 가는 자리로 있었을 가능성을 눈감아서는 안 된다. 여기서는 난점이 되는 경우 가운데 하나만 사례로 들겠다. 거의 모든 대양섬에는, 가장 외떨어지고 가장 작은 섬에조차 육상 조개가 살며, 대개 고유한 종이지만 이따금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는 종이 살기도 한다. 오거스터스 A. 굴드 박사23는 태평양 섬들의 육상 조개에 대해 흥미로운 경우를 여럿 들었다. 그런데 육상 조개가 소금에 아주 쉽게 죽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알은 적어도 내가 시험해 본 것으로는 바닷물에 가라앉고 그 물에 죽는다. 그런데도 내 견해에서는 그것들을 옮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있어야만 한다. 막 부화한 새끼가 땅에 앉아 쉬는 새의 발 위로 이따금 기어올라 달라붙어서 그렇게 실려 가는 것일까? 나는 육상 조개가 겨울잠을 자면서 껍데기 입구에 막으로 된 칸막이를 치고 있을 때 떠다니는 나무토막의 틈에 끼여 어지간히 넓은 바다의 팔을 건너 떠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여러 종이 이 상태에서 7일 동안 바닷물에 담겨 있고도 다치지 않고 견뎌 낸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조개 가운데 하나가 Helix pomatia였는데, 그것이 다시 겨울잠에 든 뒤 나는 그것을 20일 동안 바닷물에 넣어 두었고 그것은 온전히 되살아났다. 이 종은 두꺼운 석회질 뚜껑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는 그것을 떼어 냈고, 그것이 막으로 된 새 뚜껑을 만들어 냈을 때 14일 동안 바닷물에 담가 두었더니 되살아나 기어 나갔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실험이 더 필요하다.

섬에 사는 것들에 대해 우리에게 가장 두드러지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것들이 가장 가까운 본토에 사는 것들과 근연성을 지니면서도 실제로 같은 종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사실의 사례는 수없이 들 수 있다. 나는 하나만 들겠다. 적도 바로 아래, 남아메리카 해안에서 500마일과 600마일 사이만큼 떨어져 있는 갈라파고스제도의 경우다. 이곳에서는 뭍과 물의 거의 모든 산물이 아메리카 대륙의 틀림없는 낙인을 지니고 있다. 뭍새가 26가지 있고 그 가운데 25가지를 굴드 씨24는 이곳에서 창조되었으리라 여겨지는 구별되는 종으로 매긴다. 그런데도 이 새 대부분이 온갖 형질에서, 그 버릇과 몸짓과 울음소리에서 아메리카의 종과 가깝게 근연하다는 것은 뚜렷했다. 다른 동물도 그러하고, 이 제도의 식물상에 대한 후커 박사의 훌륭한 논문이 보인 대로 거의 모든 식물도 그러하다. 대륙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태평양의 이 화산섬에 사는 것들을 바라보는 박물학자는 그런데도 자기가 아메리카 땅에 서 있다고 느낀다. 어째서 그러한가? 갈라파고스제도에서 창조되었고 다른 어디에서도 창조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종이 어째서 아메리카에서 창조된 종과의 근연성을 그토록 뚜렷한 낙인으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가? 생활 조건에도, 그 섬들의 지질학적 성질에도, 그 높이나 기후에도, 여러 강이 함께 어우러진 비율에도 남아메리카 해안의 조건과 가깝게 닮은 것은 하나도 없다. 실은 이 모든 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편 흙이 화산에서 온 성질이라는 점에서, 기후와 높이와 섬의 크기에서 갈라파고스제도와 베르데제도25 사이에는 상당한 정도의 닮음이 있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것들은 얼마나 온전하고 절대적으로 다른가! 베르데제도에 사는 것들은 갈라파고스의 것들이 아메리카에 대해 그러하듯 아프리카의 것들과 이어져 있다. 나는 이 큰 사실이 독립된 창조라는 흔한 견해로는 어떤 설명도 받을 수 없다고 믿는다. 반면 여기서 내세우는 견해에서는, 갈라파고스제도가 이따금 작용하는 운반 수단으로든 예전에 이어져 있던 땅으로든 아메리카에서 정착자를 받아들였을 법하다는 것, 베르데제도는 아프리카에서 그리했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런 정착자가 변화를 겪기 쉬우리라는 것이 뻔하다. 그러면서도 유전의 원리가 그들이 본래 태어난 곳을 여전히 드러내 보인다.

비슷한 사실은 많이 들 수 있다. 참으로 섬의 고유한 생물이 가장 가까운 대륙이나 가까운 다른 섬의 생물과 이어져 있다는 것은 거의 보편적인 규칙이다. 예외는 적고 그 대부분은 설명할 수 있다. 그리하여 케르겔렌의 식물은 그 땅이 아메리카보다 아프리카에 가까이 있는데도 후커 박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 아메리카의 식물과 이어져 있으며 그것도 아주 가깝게 이어져 있다. 그러나 이 섬이 주로 우세한 해류에 떠밀린 빙산이 흙과 돌과 함께 싣고 온 씨로 채워졌다고 보면 이 변칙은 사라진다. 뉴질랜드는 그 고유한 식물에서 다른 어느 지역보다 가장 가까운 본토인 오스트레일리아와 훨씬 가깝게 이어져 있다. 이는 예상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남아메리카와도 뚜렷이 이어져 있는데, 남아메리카는 그다음으로 가까운 대륙이기는 해도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이 사실은 변칙이 된다. 그러나 이 난점은 뉴질랜드와 남아메리카를 비롯한 남쪽 땅들이 오래전에 거의 중간쯤 되면서도 먼 지점에서, 곧 빙하기26가 시작되기 전 초목에 덮여 있던 남극의 섬들에서 얼마간 채워졌다고 보면 거의 사라진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서쪽 모퉁이의 식물상과 희망봉의 식물상 사이의 근연성은 희미하기는 해도 실재한다고 후커 박사가 내게 확언하는데, 이는 훨씬 더 눈에 띄는 경우이며 지금으로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근연성은 식물에만 한정되어 있고, 언젠가는 설명되리라고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어느 제도에 사는 것들이 종으로는 구별되면서도 가장 가까운 대륙에 사는 것들과 가깝게 근연하도록 만드는 법칙을, 우리는 이따금 같은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작은 규모로, 그러나 더없이 흥미롭게 펼쳐져 있는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갈라파고스제도의 여러 섬에는 내가 다른 데서 보인 대로 아주 놀랍게도 서로 매우 가깝게 이어진 종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저마다 따로 있는 섬에 사는 것들은 대개 구별되면서도 세계의 다른 어느 곳에 사는 것들보다 견줄 수 없이 가까운 정도로 서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이는 내 견해에서 예상할 만한 바로 그것이다. 그 섬들은 서로 아주 가까이 있어서 같은 본래의 원천에서, 또는 서로에게서 건너온 것들을 받아들였을 것이 거의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섬들의 고유한 생물 사이의 이런 다름은 내 견해에 맞서는 논거로 쓰일 수 있다. 서로 바라보이는 거리에 있고 지질학적 성질이 같으며 높이와 기후 따위가 같은 여러 섬에서, 건너온 것들 가운데 많은 수가 정도는 작더라도 어떻게 저마다 다르게 변화하게 되었느냐고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랫동안 내게 큰 난점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어떤 지방의 물리적 조건이 그곳에 사는 것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뿌리 깊은 잘못에서 비롯한다. 반면 저마다가 겨뤄야 하는 다른 생물의 성질이 적어도 그만큼은 중요하고 대개는 성공의 훨씬 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내 생각에 다툴 여지가 없다. 그런데 갈라파고스제도에 사는 것들 가운데 세계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는 것들을 보면 (고유한 종은 그것들이 다다른 뒤에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지를 지금 살피고 있으므로 여기에 공정하게 넣을 수 없으니 잠시 제쳐 둔다) 여러 섬 사이에 상당한 양의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발견한다. 이 차이는 참으로 그 섬들이 이따금 작용하는 운반 수단으로 채워졌다고 보면 예상할 만한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식물의 씨는 이 섬으로, 다른 식물의 씨는 저 섬으로 실려 왔다고 보면 그렇다. 그러므로 예전에 건너온 것이 그 섬들 가운데 하나 또는 여럿에 자리 잡았을 때, 또는 그 뒤 이 섬에서 저 섬으로 퍼져 나갔을 때, 그것은 섬마다 다른 생활 조건에 놓였을 것이 틀림없다. 저마다 다른 생물의 무리와 겨뤄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떤 식물은 가장 알맞은 땅이 이 섬에서는 저 섬에서보다 구별되는 다른 식물들에게 더 온전히 차지되어 있음을 보게 되었을 것이고, 얼마쯤 다른 적들의 공격에 놓였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변이했을 때 자연선택은 아마 섬마다 다른 변종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종은 대륙에서 어떤 종이 널리 퍼지면서도 같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을 우리가 보듯, 퍼져 나가면서도 그 제도 전체에 걸쳐 같은 형질을 지닐 수 있다.

갈라파고스제도의 이 경우에서, 그리고 그보다 덜하기는 해도 비슷한 몇몇 사례에서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저마다 따로 있는 섬에서 생겨난 새로운 종이 다른 섬으로 빠르게 퍼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 섬들은 서로 바라보이면서도 깊은 바다의 팔로 갈라져 있고 그 너비는 대개 영국 해협보다 넓으며, 그것들이 예전 어느 시기에 이어져 붙어 있었다고 볼 까닭은 없다. 바다의 해류는 빠르고 그 제도를 가로질러 휩쓸며, 거센 바람은 유난히 드물다. 그래서 그 섬들은 지도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서로 갈라져 있다. 그런데도 꽤 많은 종이, 세계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든 그 제도에만 갇혀 있는 것이든, 여러 섬에 두루 걸쳐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몇 가지 사실에서 이것들이 아마 어느 한 섬에서 다른 섬들로 퍼졌으리라고 미루어 볼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우리는 가깝게 근연한 종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서로의 영역으로 밀고 들어갈 가능성에 대해 흔히 잘못된 견해를 가진다. 한 종이 다른 종에 견주어 어떤 이점이든 가지고 있다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그것을 온전히 또는 얼마쯤 밀어낼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둘 다 자연 안의 제자리에 똑같이 잘 맞추어져 있다면, 아마 둘 다 제자리를 지키며 거의 얼마가 되었든 오랫동안 따로 떨어져 있을 것이다. 사람의 손을 거쳐 귀화한 많은 종이 새로운 나라에 놀랄 만큼 빠르게 퍼졌다는 사실에 익숙하기에 우리는 대부분의 종이 그렇게 퍼지리라고 미루어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새로운 나라에서 귀화하는 형태가 대개는 본래부터 그곳에 있던 생물과 가깝게 근연하지 않고 아주 구별되는 종이며, 알퐁스 드 캉돌이 보인 대로 큰 비율로 구별되는 속에 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갈라파고스제도에서는 섬에서 섬으로 날아가기에 그토록 잘 적응한 새조차 많은 수가 섬마다 구별된다. 그리하여 가깝게 근연한 흉내지빠귀가 3가지 있고 저마다 제 섬에만 갇혀 있다. 이제 채텀섬27의 흉내지빠귀가 바람에 밀려 찰스섬으로 갔다고 해 보자. 찰스섬에는 그 섬 나름의 흉내지빠귀가 있다. 어째서 그것이 거기에 자리 잡는 데 성공해야 하는가? 우리는 찰스섬이 제 종으로 넉넉히 채워져 있다고 안심하고 미루어 볼 수 있다. 해마다 그곳에서는 도저히 길러 낼 수 없을 만큼 많은 알을 낳기 때문이다. 그리고 찰스섬에 특유한 흉내지빠귀가 적어도 채텀섬에 특유한 종만큼은 제 보금자리에 잘 맞추어져 있다고 미루어 볼 수 있다. C. 라이엘 경과 월러스턴 씨는 이 주제에 관계되는 눈에 띄는 사실을 내게 알려 주었다. 곧 마데이라와 그에 잇닿은 작은 섬 포르투산투가 구별되면서도 서로 대표종이 되는 육상 조개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돌 틈에 산다는 것, 그리고 해마다 많은 양의 돌이 포르투산투에서 마데이라로 실려 가는데도 뒤의 섬이 포르투산투의 종에게 점령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두 섬 모두 유럽의 어떤 육상 조개에게 점령되었는데, 그 조개는 토착 종에 견주어 어떤 이점을 가졌던 것이 틀림없다. 이런 고찰에서 나는 갈라파고스제도의 여러 섬에 사는 고유한 종과 대표종이 섬에서 섬으로 두루 퍼지지 않은 것을 크게 놀라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대륙의 여러 구역에서처럼 다른 많은 사례에서도,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같은 생활 조건 아래에서 종이 뒤섞이는 것을 막는 데 아마 중요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스트레일리아의 남동쪽 모퉁이와 남서쪽 모퉁이는 물리적 조건이 거의 같고 이어진 땅으로 붙어 있는데도, 구별되는 포유류와 새와 식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산다.

대양섬의 동물상과 식물상의 일반적 성격을 결정하는 원리는, 곧 그곳에 사는 것들이 똑같지는 않더라도 정착자가 가장 손쉽게 나왔을 지역에 사는 것들과 뚜렷이 이어져 있다는 원리는 (그 정착자는 그 뒤에 변화해 새 보금자리에 더 잘 맞추어졌다) 자연 전체에서 가장 널리 적용된다. 우리는 이를 모든 산에서, 모든 호수와 늪에서 본다. 고산28 종은 주로 식물인 같은 형태가 최근의 빙하기 동안 온 세계에 널리 퍼진 만큼을 빼면 둘레의 저지대에 사는 것들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아메리카에는 고산 벌새와 고산 설치류와 고산 식물 따위가 있는데 모두 엄밀하게 아메리카의 형태이며, 산이 천천히 솟아오르면서 둘레의 저지대에서 건너온 것들에게 자연스레 채워지리라는 것은 뻔하다. 호수와 늪에 사는 것들도 그러하다. 다만 옮겨지기가 아주 쉬운 덕분에 같은 일반적 형태가 온 세계에 주어진 만큼은 빼고 그렇다. 우리는 아메리카와 유럽의 동굴에 사는 눈먼 동물에서도 이와 같은 원리를 본다. 비슷한 다른 사실도 들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믿기로는, 아무리 멀리 떨어진 두 지역이라도 가깝게 근연한 종이나 대표종이 많이 나타나는 곳이면 어디서나 똑같은 종도 얼마간 발견되며, 이는 앞의 견해에 따라 예전 어느 시기에 두 지역 사이에 오감이나 이주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 두루 참임이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가깝게 근연한 종이 많이 나타나는 곳이면 어디서나 어떤 박물학자는 구별되는 종으로 매기고 어떤 박물학자는 변종으로 매기는 형태가 많이 발견된다. 이 의심스러운 형태들이 우리에게 변화 과정의 단계를 보여 준다.

어떤 종이 오늘날이든 다른 물리적 조건 아래의 예전 어느 시기든 이주하는 힘과 그 범위, 그리고 세계의 먼 지점에 그것과 근연한 다른 종이 있는 것 사이의 이 관계는 또 다른, 더 일반적인 모습으로도 드러난다. 굴드 씨는 오래전에 내게 세계에 걸쳐 퍼져 있는 새의 속에서는 많은 종이 아주 넓은 분포를 가진다고 말했다. 이 규칙이 대체로 참임을 나는 거의 의심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을 증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포유류 가운데서 우리는 그것이 박쥐에서 두드러지게 펼쳐져 있는 것을, 그보다 덜하기는 해도 Felidæ(고양이과)와 Canidæ(개과)에서 펼쳐져 있는 것을 본다. 나비와 딱정벌레의 분포를 견주어 보아도 우리는 그것을 본다. 대부분의 민물 생물도 그러하여, 거기서는 그토록 많은 속이 세계에 걸쳐 퍼져 있고 많은 개별 종이 엄청나게 넓은 분포를 가진다. 세계에 걸쳐 퍼진 속에서 모든 종이 넓은 분포를 가진다거나 평균해서 넓은 분포를 가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종 가운데 일부가 아주 넓게 퍼져 있다는 뜻일 뿐이다. 넓게 퍼진 종이 얼마나 쉽게 변이해 새로운 형태를 낳느냐가 그 평균 분포를 크게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같은 종의 두 변종이 아메리카와 유럽에 살고 있어서 그 종은 아득히 넓은 분포를 가진다. 그러나 변이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그 두 변종은 구별되는 종으로 매겨졌을 것이고, 함께 가지는 분포는 크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날개 힘이 센 어떤 새의 경우처럼 장벽을 건너 넓게 퍼질 능력을 보기에 갖춘 종이 반드시 넓게 퍼지리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넓게 퍼진다는 것은 장벽을 건너는 힘뿐 아니라, 먼 땅에서 낯선 동료들과 벌이는 생존경쟁에서 이기는 더 중요한 힘을 뜻한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속의 모든 종이 지금은 세계의 가장 먼 지점들에 흩어져 있더라도 하나의 어버이에게서 계승되었다고 보면, 우리는 적어도 그 종 가운데 일부가 아주 넓게 퍼져 있는 것을 발견해야 마땅하고, 대체로 그렇게 발견한다고 나는 믿는다. 변화하지 않은 어버이가 넓게 퍼지면서 퍼져 나가는 동안 변화를 겪어야 하고, 제 자손이 먼저 새로운 변종으로, 끝내는 새로운 종으로 바뀌기에 알맞은 갖가지 조건 아래에 스스로를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속의 넓은 분포를 살필 때 우리는 그 가운데 일부가 지극히 오래되었고 아득한 시기에 공통 어버이에게서 갈라져 나왔을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런 경우에는 큰 기후 변화와 지리적 변화가 일어나고 운반의 우연이 일어나기에, 따라서 그 종 가운데 일부가 세계 곳곳으로 이주해 그곳의 새로운 조건에 맞추어 조금 변화하기에 넉넉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지질학적 증거에서 각 큰 강 안에서 하등 생물이 대체로 고등 형태보다 느린 속도로 달라진다고 믿을 만한 까닭도 얼마간 있다. 따라서 하등 형태는 넓게 퍼지면서도 같은 종의 형질을 그대로 지닐 기회가 더 나았을 것이다. 이 사실은 많은 하등 형태의 씨와 알이 아주 작아서 멀리 옮겨지기에 더 알맞다는 것과 더불어, 오래전부터 관찰되어 왔고 최근에 알퐁스 드 캉돌이 식물에 대해 훌륭하게 논한 법칙, 곧 어떤 생물 무리든 등급이 낮을수록 더 넓게 퍼지기 쉽다는 법칙을 아마 설명해 준다.

방금 논한 관계들, 곧 낮고 느리게 달라지는 생물이 높은 것보다 넓게 퍼진다는 것, 넓게 퍼진 속의 종 가운데 일부가 그 자체로 넓게 퍼져 있다는 것, 고산과 호수와 늪의 생물이 서식 자리가 그토록 다른데도 (앞서 밝힌 예외는 빼고) 둘레의 저지대와 마른땅의 생물과 이어져 있다는 것 같은 사실, 같은 제도의 작은 섬들에 사는 구별되는 종들 사이의 아주 가까운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제도나 섬 전체에 사는 것들이 가장 가까운 본토에 사는 것들에 대해 지니는 두드러진 관계는, 내 생각에 종마다 따로 창조되었다는 흔한 견해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지만, 가장 가깝고 가장 손쉬운 원천에서 정착이 이루어졌고 그 뒤 정착자가 변화해 새 보금자리에 더 잘 적응했다고 보는 견해로는 설명된다.

앞 장과 이 장의 요약. 이 장들에서 나는 다음을 보이려 애썼다. 최근 시기 안에 틀림없이 일어난 기후와 땅 높이의 온갖 변화가 미친 온전한 영향에 대해, 그리고 같은 시기 안에 일어났을지 모를 비슷한 다른 변화에 대해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마땅히 감안한다면, 이따금 작용하는 운반의 많고도 기이한 수단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깊이 무지한지를 (이는 제대로 실험해 본 적이 거의 없는 주제다) 기억한다면, 한 종이 얼마나 자주 넓은 지역에 이어진 모습으로 퍼져 있다가 중간 구역에서 절멸했을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둔다면, 같은 종의 모든 개체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든 같은 어버이에게서 계승되었다고 믿는 데 따르는 난점은 넘어설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몇 가지 일반적인 고찰에서, 특히 장벽이 중요하다는 데서와 아속과 속과 과의 분포가 서로 닮았다는 데서 이 결론에 이끌리는데, 이는 많은 박물학자가 창조의 단일 중심지29라는 이름 아래 다다른 결론이다.

같은 속의 구별되는 종에 대해서는, 내 이론에서 그것들이 하나의 어버이 원천에서 퍼져 나왔을 것이 틀림없는데, 앞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무지를 감안하고 어떤 생물 형태는 더없이 느리게 달라져 그 이주에 엄청난 기간이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나는 그 난점이 넘어설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경우에도 같은 종의 개체들의 경우에도 그 난점이 지극히 무거울 때가 많기는 하다.

기후 변화가 분포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로 들면서 나는 근래의 빙하기가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이려 했다. 나는 그 빙하기가 온 세계에, 적어도 큰 경선 띠들에 동시에 영향을 미쳤다고 온전히 확신한다. 이따금 작용하는 운반의 수단이 얼마나 갖가지인지를 보이면서 나는 민물 생물이 흩어지는 수단을 얼마간 길게 논했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같은 종의 개체들이, 그리고 마찬가지로 근연한 종의 개체들이 어느 하나의 원천에서 나왔다고 인정하는 데 따르는 난점이 넘어설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지리적 분포의 크고 으뜸가는 사실은 모두 이주(대개 더 우세한 생물 형태의 이주)와 그 뒤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불어남이라는 이론으로 설명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여러 동물 구역과 식물 구역을 갈라놓는 장벽이 뭍이든 물이든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속과 속과 과가 한곳에 자리 잡는 것을, 그리고 이를테면 남아메리카에서 위도가 다른 곳들에 걸쳐 평원과 산지에, 숲과 늪과 사막에 사는 것들이 어떻게 그토록 신비롭게 근연성으로 서로 이어져 있고 또 예전에 같은 대륙에 살던 절멸한 생물과도 이어져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생물과 생물 사이의 상호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우리는 물리적 조건이 거의 같은 두 지역에 어째서 흔히 아주 다른 생물 형태가 사는지를 알 수 있다. 새로 사는 것들이 한 지역에 들어온 뒤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느냐에 따라, 어떤 형태는 들어오게 하고 다른 형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그 수를 많게도 적게도 한 통로의 성질에 따라, 들어온 것들이 서로와, 그리고 본래부터 그곳에 있던 생물과 얼마나 직접 겨루게 되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또 건너온 것들이 얼마나 빠르게 변이할 수 있었느냐에 따라, 지역마다 그 물리적 조건과는 무관하게 한없이 갖가지인 생활 조건이 뒤따를 것이고, 생물의 작용과 반작용이 거의 끝없이 일어날 것이며, 우리는 세계의 서로 다른 큰 지리 구역에서 어떤 생물 무리는 크게 변화하고 어떤 무리는 조금만 변화한 것을, 어떤 무리는 큰 세력으로 발달하고 어떤 무리는 적은 수로 살아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발견한다.

이와 같은 원리에서 우리는, 내가 보이려 애쓴 대로, 어째서 대양섬에는 사는 것이 적으면서도 그 가운데 많은 수가 고유하거나 특유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이주의 수단과 관련해 어째서 같은 강 안에서조차 어떤 생물 무리는 그 종이 모두 고유하고 다른 무리는 그 종이 모두 세계의 다른 곳에도 두루 있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어째서 양서류와 육상 포유류처럼 생물의 무리 전체가 대양섬에 없으면서, 가장 외떨어진 섬조차 날아다니는 포유류, 곧 박쥐의 특유한 종을 저마다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어째서 얼마쯤 변화한 상태의 포유류가 있는 것과 섬과 본토 사이 바다의 깊이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어째서 어느 제도에 사는 것들이 모두 여러 작은 섬에서 종으로는 구별되면서도 서로 가깝게 이어져 있어야 하는지를, 그리고 마찬가지로 가장 가까운 대륙이나 건너온 것들이 아마 나왔을 다른 원천의 생물과도 덜 가깝기는 해도 이어져 있어야 하는지를 똑똑히 알 수 있다. 우리는 어째서 서로 아무리 멀리 떨어진 두 지역에서도 똑같은 종이 있는 것과 변종이 있는 것과 의심스러운 종이 있는 것과 구별되면서도 서로 대표종이 되는 종이 있는 것 사이에 상관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고(故) 에드워드 포브스가 자주 힘주어 말한 대로, 시간과 공간 전체에 걸쳐 생명의 법칙에는 두드러진 나란함이 있다. 지나간 시간에 형태의 이어짐을 다스린 법칙이 오늘날 지역마다의 차이를 다스리는 법칙과 거의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를 많은 사실에서 본다. 각 종과 각 종의 무리가 견디어 온 기간은 시간 속에서 이어져 있다. 이 규칙의 예외는 아주 적어서, 어떤 중간 퇴적층에 없으면서 그 위와 아래에는 나타나는 형태를 우리가 아직 그 퇴적층에서 찾아내지 못한 탓으로 돌려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종이나 한 무리의 종이 사는 지역이 이어져 있다는 것은 분명 일반적인 규칙이다. 그리고 드물지 않은 그 예외는 내가 보이려 애쓴 대로 다른 조건 아래의 예전 어느 시기에 이루어진 이주나 이따금 작용하는 운반 수단으로, 그리고 그 종이 중간 구역에서 절멸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시간에서도 공간에서도 종과 종의 무리는 저마다 가장 크게 발달한 지점을 가진다. 어떤 시기에 속하든 어떤 지역에 속하든 종의 무리는 흔히 무늬나 빛깔 같은 사소한 형질을 함께 지니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오늘날 세계의 먼 구역들을 바라볼 때와 마찬가지로 긴 세월의 이어짐을 바라볼 때에도, 우리는 어떤 생물은 거의 다르지 않은 반면 다른 강에 들거나 다른 목에 들거나 심지어 같은 목의 다른 과에 들 뿐인 생물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시간에서도 공간에서도 각 강의 낮은 구성원은 대체로 높은 구성원보다 덜 달라진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이 규칙에는 뚜렷한 예외가 있다. 내 이론에서 시간과 공간 전체에 걸친 이 여러 관계는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세계의 같은 지역 안에서 잇따른 세월 동안 달라져 온 생물 형태를 보든, 먼 지역으로 이주한 뒤에 달라진 형태를 보든, 두 경우 모두 각 강 안의 형태는 보통의 생식이라는 같은 끈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두 형태든 핏줄로 가깝게 이어져 있을수록 시간과 공간에서도 대체로 서로 더 가까이 서 있을 것이다. 두 경우 모두 변이의 법칙은 같았고, 변화는 자연선택이라는 같은 힘으로 쌓여 왔다.

주

  1. 1. 양서류 — 다윈이 개구리·두꺼비·영원을 한데 묶어 부른 무리 이름이다. 당시 분류에서 파충류와 갈라 세운 이름이며 오늘날의 양서류에 해당한다. 라틴어 무리 이름이므로 음차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두었다.

  2. 2. 뢰스 — 원문은 loess. 바람에 실려 온 고운 흙이 두껍게 쌓여 이루어진 퇴적층으로, 라인강 유역의 것이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다.

  3. 3. 발랑시엔 — 아실 발랑시엔(Achille Valenciennes, 1794~1865). 프랑스의 어류학자로 퀴비에와 함께 방대한 어류 지리서를 냈다.

  4. 4. 마일 — 1마일은 약 1.6킬로미터다. 이 장에 나오는 패덤·온스를 비롯한 단위는 모두 원문의 것을 그대로 두었다.

  5. 5. 찰스 라이엘 경 —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 영국의 지질학자로 《지질학 원리》를 썼으며 다윈의 스승이자 벗이었다. 이 장 뒤에서는 「C. 라이엘 경」으로도 나온다.

  6. 6. Dyticus — 물방개 무리의 속 이름으로, 다윈 당시에 쓰이던 표기다. 오늘날에는 Dytiscus로 적는다.

  7. 7. 알퐁스 드 캉돌 — 알퐁스 드 캉돌(Alphonse de Candolle, 1806~1893). 스위스의 식물학자로 《합리적 식물지리학》(1855)에서 식물의 분포를 널리 다루었다. 원문은 줄곧 「Alph. de Candolle」로 적는다.

  8. 8. 온스 — 1온스는 약 28그램이다. 6과 4분의 3온스는 약 190그램에 해당한다.

  9. 9. 오듀본 — 존 제임스 오듀본(John James Audubon, 1785~1851). 미국의 조류학자이자 화가로 《미국의 새》를 냈다.

  10. 10. 후커 박사 — 조지프 돌턴 후커(Joseph Dalton Hooker, 1817~1911). 영국의 식물학자로 남극 항해와 히말라야 답사에서 식물을 모았고, 다윈이 자기 생각을 가장 먼저 털어놓은 벗이다. 이 장에서 인용되는 갈라파고스 식물상 논문은 1847년의 것이다.

  11. 11. 포브스 — 에드워드 포브스(Edward Forbes, 1815~1854). 영국의 박물학자이자 해양생물학자다. 지금의 섬들이 가까운 과거에 대륙과 이어져 있었다고 보아 생물의 분포를 설명했는데, 다윈이 「대륙 확장설」이라 부르며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이 견해다. 이 장 마지막 문단에 「고(故) 에드워드 포브스」로 다시 나온다.

  12. 12. 월러스턴 — 토머스 버넌 월러스턴(Thomas Vernon Wollaston, 1822~1878). 영국의 곤충학자로 마데이라와 베르데제도의 딱정벌레를 연구했다.

  13. 13. J. M. 존스 씨 — 존 매슈 존스(John Matthew Jones, 1828~1888). 《버뮤다의 박물학자》(1859)를 낸 영국의 박물학자다.

  14. 14. E. V. 하코트 씨 — 에드워드 버넌 하코트(Edward Vernon Harcourt, 1825~1891). 마데이라의 새를 기록한 영국의 조류학자다.

  15. 15. 보리 생뱅상 — 장바티스트 보리 드 생뱅상(Jean-Baptiste Bory de Saint-Vincent, 1778~1846). 프랑스의 박물학자로 대서양과 인도양의 섬들을 답사하고 그 생물을 기록했다.

  16. 16. 원주민 — 원문은 the natives. 다윈 당시 유럽 박물학자들이 섬이나 먼 땅에 본디 살고 있던 사람들을 가리켜 쓰던 말이다.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원주민 또는 선주민이라 하며, 개별 집단은 그 고유 명칭으로 부른다. 당대의 표현을 보이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옮겼다.

  17. 17. 비티제도 — 원문은 the Viti Archipelago. 비티(Viti)는 피지를 그곳 말로 부르는 이름이며,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피지제도라 한다. 같은 문장의 보닌제도(the Bonin Islands)는 오늘날의 오가사와라제도, 마리아나제도는 원문에 Marianne으로 적혀 있다. 원문의 이름을 그대로 두었다.

  18. 18. 톰스 씨 — 로버트 피셔 톰스(Robert Fisher Tomes, 1823~1904). 영국의 동물학자로 박쥐를 전문으로 연구했다.

  19. 19. 윈저 얼 씨 — 조지 윈저 얼(George Windsor Earl, 1813~1865). 영국의 항해가이자 민족지 연구자로 말레이 제도의 얕은 바다와 깊은 바다가 동물상을 가르는 것을 지적했다. 이 경계는 뒷날 월리스선이라 불리게 된다.

  20. 20. 셀레베스 — 원문은 Celebes. 오늘날의 술라웨시섬이다. 원문의 이름을 그대로 두었다.

  21. 21. 월리스 씨 —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 영국의 박물학자로 말레이 제도에서 채집하던 중 자연선택과 같은 생각에 이르러 1858년 다윈과 함께 논문을 발표했다. 이 책이 쓰일 때 그는 아직 현지에 있었다.

  22. 22. 패덤 — 물의 깊이를 재는 영국 단위로 1패덤은 6피트, 약 1.83미터다. 1000패덤은 약 1830미터에 해당한다.

  23. 23. 오거스터스 A. 굴드 박사 — 오거스터스 애디슨 굴드(Augustus Addison Gould, 1805~1866). 미국의 의사이자 패류학자로 태평양 탐사대가 모은 조개를 기재했다. 뒤에 나오는 새 연구자 굴드 씨와는 다른 사람이다.

  24. 24. 굴드 씨 — 존 굴드(John Gould, 1804~1881). 영국의 조류학자로 비글호가 싣고 온 새 표본을 맡아 기재했다. 갈라파고스의 새들이 저마다 구별되는 종이면서도 남아메리카의 종과 가깝다는 그의 판정이 다윈에게 결정적이었다.

  25. 25. 베르데제도 — 원문은 the Cape de Verde Islands 및 the Cape de Verde Archipelagos.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의 화산섬 무리로,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카보베르데라 한다. 원문의 이름을 그대로 두었다.

  26. 26. 빙하기 — 원문은 the Glacial period 및 the Glacial epoch. 다윈이 앞 장에서 길게 다룬, 가까운 과거에 북반구가 크게 추워진 시기를 가리킨다.

  27. 27. 채텀섬 — 원문은 Chatham Island. 갈라파고스제도의 섬으로 오늘날의 산크리스토발섬이다. 바로 뒤에 나오는 찰스섬(Charles Island)은 오늘날의 플로레아나섬이다. 둘 다 다윈이 비글호로 찾았을 때 쓰이던 영국식 이름이므로 원문의 이름을 그대로 두었다.

  28. 28. 고산 — 원문은 Alpine. 여기서는 알프스산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높은 산의 생물을 두루 이르는 말이며, 바로 뒤에 남아메리카의 예가 이어진다. 뒤 문단의 alpine도 같다.

  29. 29. 창조의 단일 중심지 — 원문은 single centres of creation. 같은 종이 여러 곳에서 따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한곳에서 생겨나 퍼져 나갔다고 보는 생각이다. 다윈은 이 결론 자체는 받아들이되 그 「창조」를 공통 어버이에게서의 계승으로 바꾸어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