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생물의 상호 유연관계 · 형태학 · 발생학 · 흔적 기관
분류에 대하여, 무리 아래 딸린 무리에 대하여. 자연 분류 체계에 대하여. 분류에서 따르는 규칙과 마주치는 어려움을 변화를 동반한 계승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하여. 변종의 분류에 대하여. 계승은 분류에 언제나 쓰여 왔다는 것에 대하여. 상사 형질 또는 적응 형질에 대하여. 두루 걸치고 복잡하며 사방으로 뻗는 유연관계에 대하여. 절멸이 무리를 갈라놓고 또렷이 구분해 준다는 것에 대하여. 형태학에 대하여, 같은 강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그리고 같은 개체의 여러 부분 사이에서. 발생학에 대하여, 그 법칙들을 변이가 이른 나이에 덮쳐 오지 않고 그에 맞먹는 나이에 유전된다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하여. 흔적 기관에 대하여, 그 기원의 설명에 대하여. 요약.
생명이 처음 밝아 온 때부터 모든 생물은 등급이 차츰 내려가는 정도로 서로 닮아 있음이 드러나며, 그리하여 무리 아래 딸린 무리로 묶일 수 있다. 이 분류는 별을 별자리로 묶는 것처럼 제멋대로인 것이 분명 아니다. 한 무리는 오로지 뭍에 살기에 알맞고 다른 무리는 물에 살기에 알맞으며, 하나는 살을 먹고 다른 하나는 식물질을 먹는 식이었다면 무리가 있다는 것은 단순한 뜻을 지녔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서 사정은 그와 크게 다르다. 같은 하위 무리에 드는 구성원조차 습성이 다른 일이 얼마나 흔한지는 익히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변이와 자연선택을 다룬 우리의 둘째 장과 넷째 장에서 나는 가장 많이 변이하는 것이 넓게 분포하고 널리 퍼져 있으며 흔한 것, 곧 더 큰 속에 드는 우세한 종이라는 것을 보이려 했다. 그렇게 생겨난 변종, 곧 발단기의 종은 내가 믿기로 끝내 새롭고 또렷이 구분되는 종으로 바뀌며, 이것들은 유전의 원리에 따라 또 다른 새롭고 우세한 종을 낳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지금 크고 대체로 우세한 종을 많이 거느린 무리는 그 크기가 끝없이 불어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또한 각 종의 변이하는 후손이 자연의 살림에서 되도록 많고 되도록 서로 다른 자리를 차지하려 애쓰는 데서 그 형질이 갈라지려는 끊임없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을 보이려 했다. 이 결론은 어떤 작은 지역에서든 가장 바짝 경쟁하게 되는 생명의 형태가 크게 다양하다는 것을 살펴봄으로써, 또 귀화에 관한 어떤 사실들을 살펴봄으로써 뒷받침되었다.
나는 또한 수가 늘고 형질이 갈라지고 있는 형태에는 덜 갈라지고 덜 개량된 앞선 형태를 밀어내고 없애 버리는 끊임없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보이려 했다. 나는 독자에게 앞서 설명한 이 여러 원리의 작용을 보여 주는 도해1로 돌아가 주기를 청한다. 그러면 하나의 조상에게서 나온 변화한 후손이 무리 아래 딸린 무리로 쪼개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결과임을 보게 될 것이다. 도해에서 맨 위 가로줄의 글자 하나하나는 여러 종을 거느린 한 속을 나타낸다고 보아도 좋다. 그리고 이 줄의 모든 속은 함께 하나의 강을 이룬다. 모두가 오래되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어버이에게서 계승되었고 따라서 무언가를 함께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왼쪽의 세 속은 같은 원리에 따라 함께 가진 것이 많아 아과를 이루며, 이는 오른쪽의 다음 두 속을 거느린 아과와 구분된다. 그 두 속은 계승의 다섯째 단계에서 공통 어버이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이 다섯 속도 덜하기는 하나 함께 가진 것이 많으며, 그것들은 오른쪽으로 더 나아간 세 속을 거느린 과와 구분되는 과를 이룬다. 그 세 속은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갈라져 나왔다. 그리고 (A)에서 계승된 이 모든 속은 (I)에서 계승된 속들과 구분되는 목을 이룬다.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조상에게서 계승된 많은 종이 여러 속으로 묶이고, 그 속들이 아과와 과와 목에 들거나 그 아래 딸리며, 그 모두가 하나의 강으로 묶이는 것을 본다. 이리하여 무리 아래 무리가 딸린다는 박물학의 저 큰 사실은, 너무 낯익은 나머지 우리를 늘 충분히 놀라게 하지는 않지만, 내 판단으로는 온전히 설명된다.
박물학자들은 각 강의 종과 속과 과를 이른바 자연 분류 체계에 따라 늘어놓으려 애쓴다. 그러나 이 체계란 무엇을 뜻하는가? 어떤 저자들은 그것을 다만 가장 닮은 생물을 함께 놓고 가장 닮지 않은 것을 갈라놓는 얼개로, 또는 일반 명제를 되도록 짧게 말하기 위한 인위적 수단으로 볼 뿐이다. 곧 한 문장으로 이를테면 모든 포유류에 공통된 형질을 주고, 또 한 문장으로 모든 식육류에 공통된 형질을 주고, 또 한 문장으로 개의 속에 공통된 형질을 준 다음, 문장 하나를 덧붙여 개의 종류마다 온전한 기재를 주는 식이다. 이 체계의 기발함과 쓸모는 다툴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많은 박물학자는 자연 분류 체계에 무언가 더한 뜻이 담겨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그것이 창조주의 설계를 드러낸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의 차례를 말하는지 공간의 차례를 말하는지, 아니면 창조주의 설계라는 말로 그 밖의 무엇을 뜻하는지가 밝혀지지 않는다면, 내 생각에는 그것으로 우리 지식에 보태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린네2의 저 유명한 말, 그리고 우리가 다소 감추어진 꼴로 곧잘 마주치는 말, 곧 형질이 속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속이 형질을 준다는 말 같은 표현은 우리 분류에 단순한 닮음보다 무언가 더한 것이 들어 있음을 뜻하는 듯하다. 나는 무언가 더한 것이 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계승의 가까움이, 곧 생물이 서로 닮는 것의 알려진 유일한 원인이 바로 그 끈이며, 그것이 여러 정도의 변화에 가려져 있기는 하나 우리 분류로 얼마쯤 드러난다고 믿는다.
이제 분류에서 따르는 규칙들과, 분류가 알려지지 않은 어떤 창조의 설계를 내준다거나 일반 명제를 말하고 서로 닮은 형태를 한데 놓기 위한 얼개일 뿐이라고 보는 견해에서 마주치는 어려움들을 살펴보자. 생활의 습성을 결정하고 자연의 살림에서 각 생물이 차지하는 전반적 자리를 결정하는 구조의 부분이 분류에서 매우 높은 중요성을 지니리라고 생각할 만도 했고 옛날에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보다 더 그릇된 것은 없다. 생쥐와 뒤쥐가 겉으로 닮은 것, 듀공과 고래가 닮은 것, 고래와 물고기가 닮은 것을 두고 조금이라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 닮음은 생물의 삶 전체와 그토록 긴밀히 이어져 있는데도 한낱 「적응 형질 또는 상사 형질」로 매겨진다. 그러나 이 닮음을 다루는 데로 우리는 다시 돌아와야 한다. 심지어 일반 규칙으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짜임새의 어느 부분이든 특별한 습성과 관계가 적을수록 분류에서는 더 중요해진다고.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오언3은 듀공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한다. 「생식 기관은 동물의 습성이나 먹이와 가장 먼 관계에 있는 것이므로, 나는 그것이 그 동물의 참된 유연관계를 매우 또렷이 가리켜 준다고 늘 여겨 왔다. 이 기관의 변화에서는 한낱 적응에 따른 형질을 본질적인 형질로 잘못 볼 가능성이 가장 적다.」 식물에서도 마찬가지다. 온 삶이 거기에 달려 있는 영양 기관이 첫 주요 구분을 빼면 거의 뜻을 지니지 못하는 반면, 생식 기관과 그 산물인 씨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분류할 때 짜임새의 어느 부분에서 보이는 닮음이 바깥 세계와의 관계에서 그 생물의 안녕에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것에 기대서는 안 된다. 아마 이런 까닭에서 거의 모든 박물학자가 생명이나 생리에서 높은 중요성을 지니는 기관의 닮음에 가장 큰 무게를 두게 된 면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기관이 분류에서도 중요하다는 이 견해가 대체로 참인 것은 의심할 바 없으나 언제나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 기관이 분류에서 지니는 중요성은 내가 믿기로 많은 종에 걸쳐 그것이 더 한결같다는 데 달려 있다. 그리고 이 한결같음은 그런 기관이 대체로 종이 제 생활 조건에 적응하는 동안 변화를 덜 겪었다는 데 달려 있다. 한 기관이 생리에서 지니는 중요성만으로는 그 분류상의 값어치가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러리라고 믿을 온갖 까닭을 지닌 대로 같은 기관이 거의 같은 생리적 값어치를 지니는 근연한 무리들에서 그 분류상의 값어치가 크게 다르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거의 드러난다. 어느 무리를 다뤄 본 박물학자라면 누구나 이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이는 거의 모든 저자의 글에서 아주 충분히 인정되어 왔다. 가장 높은 권위인 로버트 브라운4을 인용하는 것으로 넉넉할 것이다. 그는 Proteaceæ의 어떤 기관들을 이야기하며, 속을 가르는 데서 그것들이 지니는 중요성은 「이 과에서만이 아니라 내가 알기로는 모든 자연적인 과에서 그 모든 부분의 중요성과 마찬가지로 매우 고르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는 온전히 사라진 듯 보인다」고 말한다. 또 다른 저작에서 그는 Connaraceæ의 여러 속이 「씨방을 하나 가지느냐 여럿 가지느냐에서, 배젖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꽃눈 속의 겹침이 기왓장처럼 포개지느냐 맞닿느냐에서 다르다. 이 형질 가운데 어느 하나만 떼어 놓아도 흔히 속을 가르는 수준을 넘는 중요성을 지니지만, 여기서는 그 모두를 함께 가져와도 Cnestis를 Connarus에서 갈라놓기에 넉넉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곤충에서 예를 하나 들자면, 웨스트우드5가 말한 대로 Hymenoptera(벌목)의 한 큰 구분에서는 더듬이가 구조에서 가장 한결같다. 다른 구분에서는 그것이 크게 다르며 그 차이는 분류에서 아주 낮은 값어치를 지닌다. 그런데도 같은 목의 이 두 구분에서 더듬이가 생리에서 서로 다른 중요성을 지닌다고 말할 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같은 생물 무리 안에서 같은 중요한 기관이 분류에서 서로 다른 중요성을 지니는 사례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또한 흔적만 남았거나 오그라든 기관이 생리나 생명에서 높은 중요성을 지닌다고 말할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상태에 있는 기관이 분류에서 높은 값어치를 지니는 일이 흔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어린 반추류의 위턱에 있는 흔적 이와 다리의 어떤 흔적 뼈들이 반추류와 후피류 사이의 가까운 유연관계를 드러내는 데 매우 쓸모 있다는 것을 다툴 이는 아무도 없다. 로버트 브라운은 흔적만 남은 작은 꽃이 볏과 식물의 분류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생리에서 매우 하찮은 중요성밖에 지니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부분에서 끌어온 형질이면서도 무리 전체를 규정하는 데 매우 쓸모 있다고 두루 인정되는 사례는 수없이 들 수 있다. 이를테면 콧구멍에서 입으로 트인 길이 있느냐 없느냐, 오언에 따르면 이것이 물고기와 파충류를 절대적으로 갈라 주는 유일한 형질이다. 그리고 유대류에서 턱뼈 모서리가 안쪽으로 꺾이는 것, 곤충의 날개가 접히는 방식, 어떤 Algæ에서는 빛깔 하나, 볏과 식물에서는 꽃의 여러 부분에 난 잔털 하나, 척추동물에서는 털이냐 깃이냐 하는 살갗 덮개의 성질이 그렇다. Ornithorhynchus6가 털 대신 깃으로 덮여 있었다면, 내 생각에 박물학자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 하찮은 형질을 이 기묘한 생물이 새와 파충류와 맺는 유연관계의 정도를 가리는 데서 안쪽의 중요한 기관 어느 하나에서 구조가 가까워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도움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찮은 형질이 분류에서 지니는 중요성은 주로 그것이 어느 정도씩 중요한 다른 여러 형질과 상관되어 있다는 데 달려 있다. 형질이 여럿 모였을 때 지니는 값어치는 박물학에서 참으로 뚜렷하다. 그래서 곧잘 이야기되듯 어떤 종이 생리에서 높은 중요성을 지니고 거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여러 형질에서 제 근연한 것들과 어긋나면서도, 그것을 어디에 매길지 우리를 조금도 망설이게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또한 아무리 중요한 것일지라도 단 하나의 형질에 바탕을 둔 분류는 늘 실패해 왔음이 드러났다. 짜임새의 어느 부분도 보편적으로 한결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때조차 형질이 여럿 모이면 중요해진다는 것만이, 내 생각에는 형질이 속을 주는 것이 아니라 속이 형질을 준다는 린네의 저 말을 설명해 준다. 이 말은 너무 가벼워 규정할 수 없는 자잘한 닮음의 항목들을 눈여겨본 데서 나온 듯하기 때문이다. Malpighiaceæ에 드는 어떤 식물은 온전한 꽃과 퇴화한 꽃을 함께 피우는데, 쥐시외7가 말한 대로 그 퇴화한 꽃에서는 「종에 고유한 형질, 속에 고유한 형질, 과에 고유한 형질, 강에 고유한 형질의 대부분이 사라져 우리 분류를 비웃는다」. 그러나 Aspicarpa가 프랑스에서 여러 해 동안 퇴화한 꽃만 피워 구조의 가장 중요한 여러 항목에서 그 목의 본래 유형과 그토록 놀랍도록 어긋났을 때에도, 쥐시외가 말하듯 리샤르 씨는 이 속을 여전히 Malpighiaceæ 안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슬기롭게 알아보았다. 이 경우는 우리 분류가 때때로 어떤 정신 위에 세워질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물학자들이 실제로 일할 때 그들은 어떤 무리를 규정하거나 어떤 종을 자리매김하는 데 쓰는 형질이 생리에서 지니는 값어치를 두고 애태우지 않는다. 어떤 형질이 거의 한결같고 아주 많은 형태에 공통되며 다른 것들에는 공통되지 않음을 알아내면 그들은 그것을 높은 값어치를 지닌 것으로 쓴다. 더 적은 수에 공통되면 낮은 값어치를 지닌 것으로 쓴다. 이 원리가 참된 원리임은 몇몇 박물학자가 널리 털어놓은 바이며, 저 뛰어난 식물학자 오귀스탱 생틸레르8만큼 또렷이 말한 이는 없다. 어떤 형질이 다른 형질과 늘 상관되어 나타난다면, 그 사이에 이어 주는 끈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그것에 특별한 값어치가 매겨진다. 대부분의 동물 무리에서 피를 밀어내거나 피에 공기를 불어넣거나 품종을 이어 가게 하는 기관 같은 중요한 기관이 거의 한결같음이 드러나므로 그것들은 분류에 매우 쓸모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어떤 동물 무리에서는 이 모든 가장 중요한 생명 기관이 아주 낮은 값어치의 형질을 내놓는다는 것이 드러난다.
우리는 배(胚)에서 끌어온 형질이 어른 개체에서 끌어온 형질과 똑같이 중요해야 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우리 분류는 물론 각 종의 모든 나이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흔히 보는 견해에서는 배의 구조가 어째서 이 목적에 어른 개체의 구조보다 더 중요해야 하는지가 결코 뚜렷하지 않다. 자연의 살림에서 제 몫을 온전히 하는 것은 어른 개체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 위대한 박물학자 밀른 에드워즈와 아가시9는 배의 형질이 동물 분류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힘주어 주장해 왔으며, 이 교리는 참인 것으로 아주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같은 사실이 꽃식물에도 들어맞는다. 그 두 주요 구분은 배에서 끌어온 형질, 곧 배의 잎 또는 떡잎의 수와 자리, 그리고 유아(幼芽)와 유근(幼根)이 자라나는 방식 위에 세워졌다. 발생학을 논할 때 우리는 분류가 계승이라는 생각을 말없이 품고 있다는 견해에서 이런 형질이 어째서 그토록 값진지를 보게 될 것이다.
우리 분류는 유연관계의 사슬에 뚜렷이 좌우되는 일이 잦다. 모든 새에 공통된 여러 형질을 규정하는 일만큼 쉬운 것은 없다. 그러나 갑각류의 경우 그런 규정은 지금까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계열의 양 끝에는 함께 가진 형질이 거의 하나도 없는 갑각류가 있다. 그런데도 양 끝의 종은 다른 것들과 뚜렷이 가깝고 그것들은 또 다른 것들과 가까우며 그렇게 이어지기에, 이 강에 속하고 마디동물의 다른 어느 강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틀림없이 알아볼 수 있다.
지리적 분포도 아마 썩 논리적이지는 않으나 분류에 곧잘 쓰여 왔으며, 특히 아주 가까운 형태가 아주 많이 모인 무리에서 그러했다. 테밍크10는 어떤 새 무리에서 이 관행이 쓸모 있음을, 나아가 반드시 필요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곤충학자와 식물학자가 따라 왔다.
끝으로 목·아목·과·아과·속처럼 서로 다른 종의 무리들이 지니는 상대적 값어치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들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거의 제멋대로인 듯하다. 벤담 씨11를 비롯한 몇몇 뛰어난 식물학자는 그 값어치가 제멋대로임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 식물과 곤충에서, 숙련된 박물학자들이 처음에는 한낱 속으로 매겼다가 그 뒤 아과나 과의 자리로 끌어올린 형태 무리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처음에 놓쳤던 중요한 구조적 차이를 더 연구해 찾아냈기 때문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정도의 차이를 지닌 근연한 종이 수없이 뒤이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분류에서 앞서 말한 모든 규칙과 도움과 어려움은, 내가 나 자신을 크게 속이는 것이 아니라면 다음과 같은 견해에서 설명된다. 곧 자연 분류 체계는 변화를 동반한 계승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 어떤 두 종 또는 여러 종 사이의 참된 유연관계를 보여 준다고 박물학자들이 여기는 형질은 공통 어버이에게서 물려받은 형질이며 그런 한에서 모든 참된 분류는 계보에 따른 것이라는 것, 그리고 박물학자들이 저도 모르게 찾아 온 감추어진 끈은 알려지지 않은 어떤 창조의 설계나 일반 명제를 말하는 일, 또는 어지간히 닮은 것들을 한데 놓고 갈라놓는 일이 아니라 계승의 공통됨이다.
그러나 나는 내 뜻을 더 충분히 밝혀야 하겠다. 나는 각 강 안에서 무리들이 다른 무리들과의 마땅한 위아래 관계와 연관 속에 놓이는 배열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려면 엄밀하게 계보에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여러 가지나 무리 사이의 차이의 크기는, 그것들이 공통 조상에게 같은 정도로 핏줄이 가깝더라도 크게 다를 수 있으며, 이는 그것들이 겪은 변화의 정도가 서로 다른 데서 온다. 그리고 이것이 그 형태들을 서로 다른 속이나 과나 절이나 목에 매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독자가 수고를 아끼지 않고 4장의 도해를 찾아본다면 그 뜻을 가장 잘 이해할 것이다. A부터 L까지의 글자가 실루리아기12에 살았던 근연한 속들을 나타내고 그것들이 알려지지 않은 더 이른 시기에 있었던 어떤 종에게서 계승되었다고 해 보자. 이 속 가운데 셋(A와 F와 I)의 종이 오늘날까지 변화한 후손을 전해 왔으며, 그것이 맨 위 가로줄의 열다섯 속(a14에서 z14까지)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하나의 종에서 나온 이 모든 변화한 후손은 핏줄이나 계승에서 같은 정도로 이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비유하자면 그것들은 모두 백만 촌수가 같은 사촌이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도 그것들은 서로 크게, 또 서로 다른 정도로 다르다. A에게서 계승되어 이제 두세 과로 쪼개진 형태들은 마찬가지로 두 과로 쪼개진 I의 후손들과는 구분되는 목을 이룬다. 또 A에게서 계승된 지금 있는 종을 어버이 A와 같은 속에 매길 수도 없고, I에게서 나온 것을 어버이 I와 같은 속에 매길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 있는 속 F14는 조금밖에 변화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으며, 그렇다면 그것은 어버이 속 F와 같은 자리에 매겨질 것이다. 지금도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생물이 실루리아기의 속에 드는 것과 꼭 같다. 그리하여 모두 핏줄로 같은 정도로 이어져 있는 생물들 사이의 차이의 크기나 값어치가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 계보에 따른 배열은 오늘날만이 아니라 계승의 시기마다 엄밀하게 참인 채로 남는다. A에게서 나온 변화한 후손은 모두 공통 어버이에게서 무언가를 함께 물려받았을 것이고 I의 후손도 모두 그러할 것이다. 후손의 아래 딸린 가지마다, 이어지는 시기마다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A나 I의 후손 가운데 어떤 것이 너무 크게 변화해 제 어버이의 자취를 어느 정도 또는 온전히 잃었다고 우리가 가정하기로 한다면, 그런 경우 자연 분류에서 그것의 자리는 어느 정도 또는 온전히 잃어버린 것이 될 것이다. 지금 있는 생물에서도 때때로 그런 일이 일어난 듯하다. 속 F의 후손은 그 계승의 온 줄기를 따라 조금밖에 변화하지 않았다고 가정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아직 한 속을 이룬다. 그러나 이 속은 크게 외따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여전히 제 마땅한 중간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F는 본디 형질에서 A와 I의 중간이었고, 이 두 속에서 계승된 여러 속은 그 형질을 어느 정도 물려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자연스러운 배열은 종이 위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은 도해에 나타나 있으나 너무나 단순하게 나타나 있다. 가지 치는 도해를 쓰지 않고 무리의 이름을 한 줄로 늘어놓기만 했다면 자연스러운 배열을 주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무리에 드는 생물들 사이에서 우리가 자연에서 찾아내는 유연관계를 평평한 면 위에 한 줄로 나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리하여 내가 품은 견해에서 자연 분류 체계는 족보처럼 그 배열이 계보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무리가 겪은 변화의 정도는 그것들을 이른바 서로 다른 속·아과·과·절·목·강에 매기는 것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다.
분류를 보는 이 견해를 언어의 경우를 들어 보이는 것도 해 볼 만한 일이다. 우리가 사람의 온전한 족보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의 여러 인종13을 계보에 따라 배열한 것이 오늘날 온 세계에서 쓰이는 갖가지 언어의 가장 좋은 분류를 내줄 것이다. 그리고 죽은 언어를 모두, 또 중간에 있으며 천천히 달라지는 방언을 모두 아울러야 한다면, 그런 배열이 내 생각에는 가능한 유일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아주 오래된 언어는 거의 달라지지 않아 새 언어를 별로 낳지 않은 반면, 다른 언어는 (공통의 한 갈래에서 계승된 여러 갈래가 퍼져 나가고 그 뒤 외따로 떨어지며 문명의 상태가 저마다 달라진 탓에) 크게 달라져 새 언어와 방언을 많이 낳았을 수 있다. 같은 줄기에서 나온 언어들 사이의 갖가지 정도의 차이는 무리 아래 딸린 무리로 나타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마땅한 배열, 나아가 가능한 유일한 배열은 여전히 계보에 따른 것이리라. 그리고 이것은 엄밀하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것이 죽은 언어와 오늘의 언어를 모두 가장 가까운 유연관계로 함께 이어 주고 각 말의 갈라져 나온 줄기와 기원을 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하나의 종에게서 계승되었다고 믿어지거나 알려진 변종의 분류를 잠깐 살펴보자. 이것들은 종 아래로 묶이고 변종 아래로 아변종이 묶인다. 그리고 우리가 기르는 산물에서는 비둘기에서 보았듯 몇 가지 다른 정도의 차이가 더 필요하다. 무리 아래 딸린 무리가 있게 된 기원은 변종에서나 종에서나 같으니, 곧 계승의 가까움과 갖가지 정도의 변화다. 변종을 분류할 때 따르는 규칙도 종에서와 거의 같다. 여러 저자는 변종을 인위 분류 체계가 아니라 자연 분류 체계에 따라 매겨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를테면 파인애플의 두 변종을 그 열매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나 마침 거의 똑같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묶지 말라는 주의를 우리는 듣는다. 또 스웨덴순무와 보통 순무를 먹을 수 있는 굵은 줄기가 그토록 닮았는데도 함께 놓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가장 한결같은 부분이 무엇이든 그것이 변종을 매기는 데 쓰인다. 그리하여 저 위대한 농학자 마셜14은 소에서 이 목적에 뿔이 매우 쓸모 있다고 말한다. 뿔이 몸의 모양이나 빛깔 따위보다 덜 변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양에서는 뿔이 덜 한결같으므로 훨씬 덜 쓸모 있다. 변종을 매기는 데서 우리에게 참된 족보가 있다면 계보에 따른 분류가 두루 선호되리라고 나는 생각하며, 그것은 몇몇 저자가 시도해 온 바이기도 하다. 변화가 더 있었든 덜 있었든 유전의 원리가 가장 많은 항목에서 가까운 형태들을 함께 붙들어 두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tumbler 비둘기15에서 어떤 아변종은 부리가 더 길다는 중요한 형질에서 다른 것들과 다르지만, 그런데도 공중제비를 도는 공통의 습성 때문에 모두 함께 묶인다. 그러나 short-faced 품종은 이 습성을 거의 또는 온전히 잃었다. 그런데도 이 주제를 두고 아무런 따짐이나 생각 없이 이 tumbler들은 같은 무리 안에 묶인다. 핏줄로 가깝고 다른 몇몇 점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호텐토트16가 흑인17에게서 계승되었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내 생각에 그는 빛깔과 다른 중요한 형질에서 흑인들과 아무리 많이 다르더라도 흑인 무리 아래 매겨질 것이다.
자연 상태의 종에서는 어느 박물학자나 사실상 계승을 제 분류에 끌어들여 왔다. 그는 가장 낮은 등급, 곧 종의 등급에 암수 둘 다를 넣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이 때로 가장 중요한 형질에서 얼마나 엄청나게 다른지는 어느 박물학자나 알고 있다. 어떤 만각류에서는 어른이 되었을 때 수컷과 자웅동체 사이에 공통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이 거의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갈라놓을 생각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박물학자는 같은 개체의 여러 유생 단계가 서로 그리고 어른 개체와 아무리 다르더라도 그것을 하나의 종으로 넣는다. 스텐스트루프가 말한 이른바 세대 교번18도 마찬가지로 넣는데, 그것은 오직 기술적인 뜻에서만 같은 개체로 여겨질 수 있다. 그는 기형도 넣고 변종도 넣는데, 변종을 넣는 것은 그것이 어버이 형태와 바짝 닮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거기서 계승되었기 때문이다. 카우슬립이 프림로즈에게서 계승되었다고 믿는 이는, 또는 그 반대로 믿는 이는 그 둘을 하나의 종으로 함께 매기고 하나의 규정을 준다. 앞서 세 개의 또렷이 구분되는 속으로 매겨져 있던 세 난초 형태(Monochanthus와 Myanthus와 Catasetum)가 때때로 같은 꽃대에서 피어난다는 것이 알려지자마자 그것들은 곧바로 하나의 종에 들어갔다. 그러나 캥거루의 어떤 종이 오랜 변화의 과정을 거쳐 곰에게서 생겨났음이 증명될 수 있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이 한 종을 곰과 같은 자리에 매겨야 하는가, 그리고 다른 종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가정은 물론 터무니없다. 나는 상대에게 되묻는 논법19으로 답할 수도 있겠으니, 곰의 배에서 온전한 캥거루가 나오는 것이 목격된다면 무엇을 해야 하겠느냐고 물을 수 있다. 온갖 유비에 따르면 그것은 곰과 같은 자리에 매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캥거루 과의 다른 모든 종도 틀림없이 곰의 속 아래 매겨져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전체가 터무니없다. 계승이 함께 가까웠던 곳에는 닮음이나 유연관계도 반드시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암수와 유생이 때로 지극히 다른데도 같은 종의 개체를 함께 매기는 데 계승이 두루 쓰여 왔고, 어느 정도 때로는 상당한 크기의 변화를 겪은 변종을 매기는 데도 계승이 쓰여 왔으니, 변화가 정도에서 더 크고 이루어지는 데 더 긴 시간이 걸렸을 뿐 이 같은 계승이라는 요소가 종을 속 아래로, 속을 더 높은 무리 아래로 묶는 데도 저도 모르게 쓰여 온 것은 아닐까? 나는 그것이 그렇게 저도 모르게 쓰여 왔다고 믿는다. 그리고 오직 그렇게 보아야만 우리의 가장 뛰어난 분류학자들이 따라 온 여러 규칙과 길잡이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글로 적힌 족보가 없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닮음으로 계승의 공통됨을 알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한 각 종이 최근에 놓였던 생활 조건과 관련해 변화했을 가능성이 가장 적은 형질을 고른다. 이 견해에서 흔적만 남은 구조는 짜임새의 다른 부분만큼 좋고 때로는 그보다 더 좋다. 어떤 형질이 아무리 하찮더라도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턱뼈 모서리가 꺾인 것일 뿐이든, 곤충의 날개가 접히는 방식이든, 살갗이 털로 덮였느냐 깃으로 덮였느냐이든, 그것이 서로 다른 많은 종에, 특히 생활 습성이 아주 다른 종에 두루 나타난다면 그것은 높은 값어치를 띤다. 그토록 다른 습성을 지닌 그토록 많은 형태에 그것이 있는 까닭을 우리는 오직 공통 어버이에게서 물려받았다는 것으로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조의 낱낱의 항목에 대해서는 이 점에서 그르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형질이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습성이 서로 다른 큰 생물 무리 전체에 걸쳐 함께 나타난다면, 우리는 계승 이론에 서서 이 형질이 공통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상관되거나 한데 모인 형질이 분류에서 특별한 값어치를 지닌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어떤 종이나 종의 무리가 제 가장 중요한 특징 몇 가지에서 근연한 것들과 어긋나면서도 어째서 그것들과 함께 안심하고 매겨질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일은 형질이 아무리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라도 넉넉한 수만큼 계승의 공통됨이라는 감추어진 끈을 드러내는 한 안심하고 이루어질 수 있고 또 흔히 이루어진다. 두 형태에 함께 가진 형질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도, 이 양 극단의 형태가 중간 무리들의 사슬로 함께 이어져 있다면 우리는 곧바로 그 계승의 공통됨을 미루어 알 수 있고 그것들을 모두 같은 강에 넣는다. 생리에서 높은 중요성을 지닌 기관, 곧 가장 다양한 삶의 조건 아래에서 생명을 지켜 주는 데 쓰이는 기관이 대체로 가장 한결같다는 것을 알아내므로 우리는 그것에 특별한 값어치를 매긴다. 그러나 다른 무리나 한 무리의 다른 절에서 이 같은 기관이 크게 다름이 드러나면 우리는 곧바로 우리 분류에서 그것을 덜 값진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앞으로 배의 형질이 어째서 분류에서 그토록 높은 중요성을 지니는지 뚜렷이 보게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리적 분포도 크고 널리 퍼진 속을 매길 때 이따금 쓸모 있게 끌어들일 수 있다. 또렷이 구분되고 외따로 떨어진 지역에 사는 같은 속의 모든 종은 아마 틀림없이 같은 어버이에게서 계승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에 서면 우리는 참된 유연관계와 상사 또는 적응에 따른 닮음 사이의 매우 중요한 구별을 이해할 수 있다. 라마르크20가 이 구별에 처음으로 눈길을 돌렸고 매클레이21를 비롯한 이들이 그것을 훌륭히 이어받았다. 후피류에 드는 동물인 듀공과 고래 사이에서 몸의 모양과 지느러미 같은 앞다리가 닮은 것, 그리고 이 두 포유류와 물고기가 닮은 것은 상사다. 곤충에서는 그런 사례가 수없이 많다. 그리하여 린네는 겉모습에 속아 매미아목의 곤충 하나를 실제로 나방으로 매겼다. 우리는 보통 순무와 스웨덴순무의 굵은 줄기처럼 우리가 기르는 변종에서도 같은 종류의 것을 얼마쯤 본다. 그레이하운드와 경주마가 닮았다는 말은 어떤 저자들이 아주 또렷이 구분되는 동물들 사이에서 끌어낸 상사보다 그리 더 억지스럽지도 않다. 형질은 계승을 드러내는 한에서만 분류에 참으로 중요하다는 내 견해에 서면, 상사 형질 또는 적응 형질이 그 생물의 안녕에 더없이 중요하면서도 분류학자에게는 거의 값어치가 없는 까닭을 우리는 뚜렷이 이해할 수 있다. 아주 또렷이 구분되는 두 계승의 줄기에 드는 동물이 비슷한 조건에 쉽게 적응해 겉으로 바짝 닮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닮음은 그것들이 제 마땅한 계승의 줄기와 맺고 있는 핏줄의 관계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감추는 쪽으로 기울 것이다. 우리는 겉보기에 역설로 보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으니, 곧 어떤 강이나 목을 다른 강이나 목과 견줄 때에는 상사인 바로 그 형질이 같은 강이나 목의 구성원끼리 견줄 때에는 참된 유연관계를 내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몸의 모양과 지느러미 같은 팔다리는 고래를 물고기와 견줄 때에는 상사일 뿐이니, 그것은 두 강 모두에서 물속을 헤엄치기 위한 적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의 모양과 지느러미 같은 팔다리는 고래 과의 여러 구성원 사이에서는 참된 유연관계를 드러내는 형질 노릇을 한다. 이 고래류는 크고 작은 그토록 많은 형질에서 일치하므로 그것들이 몸의 전반적인 모양과 팔다리의 구조를 공통 조상에게서 물려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의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고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또렷이 구분되는 강에 드는 구성원들이 잇따른 작은 변화를 거쳐 거의 비슷한 사정 아래에서 살도록, 이를테면 뭍과 공기와 물이라는 세 터전에 살도록 적응하는 일이 흔했으므로, 우리는 또렷이 구분되는 강들의 하위 무리 사이에서 수의 나란함이 이따금 관찰되어 온 까닭을 아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한 강에서 이런 성질의 나란함에 놀란 박물학자는 다른 강에서 무리의 값어치를 제멋대로 올리거나 내림으로써 (그리고 이 값 매김이 지금까지 제멋대로였음은 우리의 온 경험이 보여 준다) 그 나란함을 넓은 범위로 쉽게 넓힐 수 있었을 것이다. 7분법·5분법·4분법·3분법 분류22는 아마 이렇게 생겨났을 것이다.
더 큰 속에 드는 우세한 종의 변화한 후손은 그것들이 속한 무리를 크게 만들고 그 어버이를 우세하게 만든 이점을 물려받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것들은 널리 퍼지고 자연의 살림에서 점점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 거의 틀림없다. 그리하여 더 크고 더 우세한 무리는 크기가 계속 불어나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 더 작고 더 약한 많은 무리를 밀어낸다. 이리하여 우리는 지금 있는 것이든 죽어 없어진 것이든 모든 생물이 몇 안 되는 큰 목에, 그보다 더 적은 수의 강에 들며 그 모두가 하나의 큰 자연 분류 체계에 든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 더 높은 무리의 수가 얼마나 적고 그것들이 온 세계에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발견이 새로운 목에 드는 곤충을 단 하나도 보태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후커 박사에게서 들은 대로 식물계에서는 그것이 작은 크기의 목 두셋만을 보탰다는 사실이 두드러진다.
지질학적 이어짐을 다룬 장에서 나는 각 무리가 오래 이어지는 변화의 과정에서 대체로 형질이 크게 갈라졌다는 원리에 서서, 더 오래된 생명의 형태가 어째서 곧잘 지금 있는 무리들 사이의 중간에 얼마쯤 가까운 형질을 보이는지를 밝히려 했다. 오래되고 중간에 있는 몇몇 어버이 형태가 이따금 조금밖에 변화하지 않은 후손을 오늘날까지 전해 왔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이른바 맞닿은 무리나 벗어난 무리23를 내줄 것이다. 어떤 형태가 더 많이 벗어나 있을수록 내 이론에서 없어지고 아주 사라져 버린 이어 주는 형태의 수는 더 많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벗어난 형태가 절멸로 호되게 시달렸다는 증거를 얼마쯤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대체로 지극히 적은 수의 종으로만 나타나며, 실제로 나타나는 종들은 대체로 서로 아주 또렷이 구분되는데 이것이 다시 절멸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Ornithorhynchus와 Lepidosiren 두 속은 저마다 하나가 아니라 열두 종으로 나타났더라도 덜 벗어나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쯤 조사해 본 뒤에 내가 알아낸 대로 종이 그렇게 풍부한 일은 벗어난 속의 몫으로 흔히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벗어난 형태를 더 성공한 경쟁자에게 정복당한 스러져 가는 무리로, 그 몇몇 구성원이 유리한 사정이 남달리 겹친 덕에 살아남은 것으로 봄으로써만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워터하우스 씨24는 어떤 동물 무리에 드는 구성원이 아주 또렷이 구분되는 다른 무리와 유연관계를 보일 때 이 유연관계는 대개 두루 걸치는 것이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워터하우스 씨에 따르면 모든 설치류 가운데 비스카차25가 유대류와 가장 가깝다. 그러나 그것이 이 목에 가까워지는 항목들에서 그 관계는 두루 걸치는 것이며 어느 한 유대류 종과 다른 종보다 더 가까운 것이 아니다. 비스카차가 유대류와 맺는 유연관계의 항목들은 참된 것이며 한낱 적응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믿어지므로, 그것들은 내 이론에서 함께 물려받은 데서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스카차를 비롯한 모든 설치류가 아주 오래된 어떤 유대류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그것은 지금 있는 모든 유대류에 대해 어느 정도 중간인 형질을 지녔으리라고 가정하거나, 아니면 설치류와 유대류가 둘 다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고 그 뒤 두 무리 모두 갈라지는 방향으로 크게 변화했으리라고 가정해야 한다. 어느 견해에서든 우리는 비스카차가 제 오래된 조상의 형질을 다른 설치류보다 더 많이 물려받아 간직해 왔다고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지금 있는 어느 한 유대류와 특별히 가까운 것이 아니라 그 공통 조상의 형질이나 그 무리의 이른 구성원의 형질을 얼마쯤 간직한 덕에 모든 또는 거의 모든 유대류와 간접으로 가까울 것이다. 다른 한편 워터하우스 씨가 말한 대로 모든 유대류 가운데 Phascolomys(웜뱃)는 설치류의 어느 한 종이 아니라 그 목 전체와 가장 가깝게 닮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 닮음이 상사일 뿐이며 Phascolomys가 설치류와 같은 습성에 적응하게 된 데서 온 것이라는 의심을 강하게 품을 만하다. 손위 드 캉돌26은 또렷이 구분되는 식물 목들의 유연관계가 지닌 두루 걸치는 성질에 대해 거의 같은 관찰을 해 놓았다.
공통 어버이에게서 계승된 종이 수를 불리고 형질이 차츰 갈라진다는 원리에, 그리고 그것들이 몇몇 형질을 유전으로 함께 간직한다는 것을 아울러 놓으면, 같은 과나 더 높은 무리의 모든 구성원을 함께 이어 주는 지극히 복잡하고 사방으로 뻗는 유연관계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절멸로 또렷이 구분되는 무리와 하위 무리로 쪼개진 어떤 종의 과 전체의 공통 어버이는, 제 형질 가운데 얼마를 여러 방식과 정도로 변화시켜 모두에게 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여러 종은 (그토록 자주 언급한 도해에서 볼 수 있듯) 길이가 갖가지인 에두른 유연관계의 선으로 많은 선조를 거슬러 올라가며 서로 이어져 있을 것이다. 오래되고 귀한 가문의 수많은 일가 사이의 핏줄 관계는 계보 나무의 도움을 받아도 보이기가 어렵고 그 도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듯, 우리는 박물학자들이 같은 큰 자연의 강에 드는 살아 있는 구성원과 죽어 없어진 구성원 사이에서 알아차린 갖가지 유연관계를 도해의 도움 없이 서술하는 데서 겪어 온 유별난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절멸은 4장에서 보았듯 각 강 안의 여러 무리 사이의 틈을 또렷이 하고 넓히는 데 중요한 몫을 해 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강 전체가 서로 또렷이 구분되는 것까지도, 이를테면 새가 다른 모든 척추동물과 구분되는 것까지도, 새의 이른 조상을 다른 척추동물 강의 이른 조상과 이어 주던 많은 오래된 생명의 형태가 아주 사라져 버렸다고 믿음으로써 설명할 수 있다. 물고기를 양서류와 한때 이어 주던 생명의 형태는 덜 온전히 절멸했다. 어떤 다른 강에서는 그보다도 덜했으니 Crustacea(갑각류)가 그렇다. 여기서는 더없이 놀랍도록 다양한 형태가 길지만 끊어진 유연관계의 사슬로 아직도 함께 묶여 있기 때문이다. 절멸은 무리를 갈라놓았을 뿐 결코 무리를 만들지 않았다. 이 땅에서 살았던 모든 형태가 갑자기 다시 나타난다면, 모두가 지금 있는 가장 미세한 변종들 사이만큼이나 미세한 단계로 서로 섞여 들 터이므로 무리마다 다른 무리와 가릴 수 있게 하는 규정을 주기란 아주 불가능하겠지만, 그런데도 자연 분류, 적어도 자연스러운 배열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해로 눈을 돌려 이를 볼 수 있다. A부터 L까지의 글자가 열한 개의 실루리아기 속을 나타낸다고 하고, 그 가운데 몇몇이 변화한 후손의 큰 무리를 낳았다고 해 보자. 이 열한 속과 그 태초의 어버이 사이의 모든 중간 고리, 그리고 그 후손의 가지와 곁가지마다에 있는 모든 중간 고리가 아직 살아 있다고, 그 고리들이 가장 미세한 변종들 사이만큼이나 미세하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경우 여러 무리의 여러 구성원을 그 더 가까운 어버이와 가릴 수 있게 하는 규정을, 또는 그 어버이를 그들의 오래되고 알려지지 않은 조상과 가릴 수 있게 하는 규정을 주기란 아주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도 도해의 자연스러운 배열은 여전히 참일 것이다. 그리고 유전의 원리에 따라 A에게서나 I에게서 계승된 모든 형태는 무언가를 함께 가질 것이다. 나무에서 우리는 이 가지 저 가지를 짚어 낼 수 있다. 갈라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는 둘이 하나로 합쳐져 섞이는데도 그렇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여러 무리를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크든 작든 각 무리의 형질 대부분을 나타내는 유형이나 형태를 골라낼 수 있을 것이고 그리하여 그 사이의 차이가 지닌 값어치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강에서든 모든 시간과 공간에 걸쳐 살았던 형태를 모두 모으는 데 언젠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토록 완전한 수집을 이루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어떤 강에서는 우리가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밀른 에드워즈는 최근 한 빼어난 논문에서, 그런 유형이 속한 무리를 우리가 갈라내고 규정할 수 있든 없든 유형을 눈여겨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끝으로 우리는 생존경쟁에서 비롯하며 하나의 우세한 어버이 종에서 나온 많은 후손 사이에 절멸과 형질 분기를 거의 피할 수 없이 불러오는 자연선택이, 모든 생물의 유연관계에서 나타나는 저 크고 보편적인 특징 곧 무리 아래 무리가 딸리는 것을 설명해 준다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함께 가진 형질이 별로 없는데도 암수와 온갖 나이의 개체를 하나의 종 아래 매기는 데 계승이라는 요소를 쓴다. 우리는 인정된 변종을 그 어버이와 아무리 다르더라도 매기는 데 계승을 쓴다. 그리고 나는 이 계승이라는 요소가 박물학자들이 자연 분류 체계라는 말 아래 찾아 온 감추어진 이음의 끈이라고 믿는다. 자연 분류 체계가 완성된 한에서는 그 배열이 계보에 따른 것이며, 공통 어버이에게서 나온 후손들 사이의 차이의 등급이 속·과·목 따위의 말로 나타난다는 이 생각에 서면 우리는 우리가 분류에서 따를 수밖에 없는 규칙들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어째서 어떤 닮음을 다른 닮음보다 훨씬 더 값지게 여기는지, 어째서 흔적만 남고 쓸모없는 기관이나 생리에서 하찮은 중요성밖에 지니지 않는 기관을 쓰는 것이 허락되는지, 어째서 어떤 무리를 또렷이 구분되는 다른 무리와 견줄 때에는 상사 형질 또는 적응 형질을 단칼에 물리치면서도 같은 무리의 테두리 안에서는 바로 그 형질을 쓰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형태와 죽어 없어진 형태가 모두 어떻게 하나의 큰 체계로 함께 묶일 수 있는지, 각 강의 여러 구성원이 어떻게 가장 복잡하고 사방으로 뻗는 유연관계의 선으로 함께 이어져 있는지를 뚜렷이 볼 수 있다. 우리는 아마 어느 한 강의 구성원들 사이의 풀 수 없는 유연관계의 그물을 결코 풀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또렷한 목표를 앞에 두고 알려지지 않은 어떤 창조의 설계를 바라보지 않을 때에는, 더디지만 확실한 나아감을 바랄 수 있다.
형태학에 대하여. 우리는 같은 강의 구성원들이 생활 습성과는 무관하게 그 짜임새의 전반적인 설계에서 서로 닮아 있음을 보았다. 이 닮음은 흔히 「유형의 통일」이라는 말로, 또는 그 강의 서로 다른 종에서 여러 부분과 기관이 상동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주제 전체는 형태학이라는 두루 쓰이는 이름 아래 든다. 이것은 박물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문이며 그야말로 박물학의 혼이라 할 만하다. 붙잡기에 맞추어 생긴 사람의 손, 파기에 맞추어 생긴 두더지의 손, 말의 다리, 쇠돌고래의 지느러미, 박쥐의 날개가 모두 같은 본을 따라 지어졌고 같은 뼈를 같은 상대적 자리에 품고 있다는 것보다 더 신기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조프루아 생틸레르27는 상동인 기관에서 상대적인 이어짐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해 왔다. 그 부분들은 모양과 크기에서 거의 어떤 정도로든 달라질 수 있으면서도 늘 같은 차례로 서로 이어져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팔과 아래팔의 뼈가, 또는 넓적다리와 종아리의 뼈가 자리바꿈한 것을 결코 찾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아주 다른 동물에서도 상동인 뼈에 같은 이름을 줄 수 있다. 우리는 곤충의 입이 지어진 데서도 같은 큰 법칙을 본다. 박각시나방의 엄청나게 긴 나선 주둥이, 벌이나 노린재의 신기하게 접힌 주둥이, 딱정벌레의 큰 턱보다 더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도 그토록 다른 목적에 쓰이는 이 모든 기관은 윗입술과 큰턱과 두 쌍의 작은턱이 한없이 여러 갈래로 변화해 이루어진 것이다. 갑각류의 입과 팔다리가 지어지는 것도 이와 상사한 법칙이 다스린다. 식물의 꽃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강의 구성원들에서 나타나는 이 본의 닮음을 쓸모로 설명하려 하거나 궁극 원인의 교리로 설명하려 하는 것보다 더 가망 없는 일은 없다. 그 시도가 가망 없다는 것은 오언이 『팔다리의 본성』이라는 그의 매우 흥미로운 저작에서 드러내 놓고 인정한 바다. 각 생물이 따로 창조되었다고 보는 흔한 견해에서 우리는 다만 그저 그럴 뿐이라고, 창조주께서 동물과 식물을 저마다 그렇게 지으시는 것을 기꺼워하셨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잇따른 작은 변화가 자연선택된다는 이론에 서면 그 설명은 뚜렷하다. 변화 하나하나는 변화한 형태에 어떤 식으로든 이롭지만, 성장의 상관을 거쳐 짜임새의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잦다. 이런 성질의 달라짐에서는 본디의 본을 바꾸거나 부분을 자리바꿈하려는 경향이 거의 또는 전혀 없을 것이다. 팔다리의 뼈는 어떤 정도로든 짧아지고 넓어질 수 있고 차츰 두꺼운 막에 싸여 지느러미 노릇을 할 수 있다. 또 물갈퀴 달린 발은 그 모든 뼈나 어떤 뼈가 어떤 정도로든 길어질 수 있고 그것을 잇는 막이 어떤 정도로든 커져서 날개 노릇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모든 큰 변화 속에서 뼈의 얼개나 여러 부분의 상대적인 이어짐을 바꾸려는 경향은 없을 것이다. 모든 포유류의 오래된 조상, 이른바 원형이 그 팔다리를 무슨 목적에 쓰든 지금 있는 전반적인 본에 따라 지녔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강 전체에 걸친 팔다리의 상동인 지음이 지닌 뚜렷한 뜻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다. 곤충의 입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만 그 공통 조상이 윗입술과 큰턱과 두 쌍의 작은턱을 가졌고 이 부분들은 아마 모양이 매우 단순했다고 가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자연선택이 곤충의 입이 구조와 기능에서 한없이 다양한 까닭을 설명해 줄 것이다. 그런데도 어떤 부분이 오그라들었다가 끝내 온전히 퇴화하고, 다른 부분이 함께 붙고, 또 다른 부분이 겹치거나 불어남으로써 한 기관의 전반적인 본이 너무나 흐려진 나머지 끝내 사라질 수 있음은 생각해 볼 만하다. 이것은 우리가 일어날 수 있는 범위 안이라고 알고 있는 달라짐이다. 죽어 없어진 거대한 바다도마뱀의 지느러미발에서, 또 빨아 먹는 어떤 갑각류의 입에서 전반적인 본은 이렇게 어느 정도 흐려진 듯하다.
지금 다루는 주제에는 똑같이 신기한 또 하나의 갈래가 있다. 곧 한 강의 서로 다른 구성원에서 같은 부분을 견주는 것이 아니라 같은 개체 안의 서로 다른 부분이나 기관을 견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생리학자는 머리뼈의 뼈들이 일정한 수의 척추뼈의 바탕이 되는 부분들과 상동이라고, 곧 수와 상대적인 이어짐에서 그것에 들어맞는다고 믿는다. 척추동물의 강과 마디동물의 강에 드는 구성원마다 앞다리와 뒷다리는 뚜렷이 상동이다. 우리는 갑각류의 놀랍도록 복잡한 턱과 다리를 견줄 때에도 같은 법칙을 본다. 꽃에서 꽃받침과 꽃잎과 수술과 암술의 상대적인 자리, 그리고 그 속속들이의 구조가 그것들이 나선으로 늘어선 변태한 잎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견해에서 이해된다는 것은 거의 누구에게나 낯익다. 기형인 식물에서 우리는 한 기관이 다른 기관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곧잘 얻는다. 또 우리는 배 시기의 갑각류에서, 다른 많은 동물에서, 그리고 꽃에서 다 자라면 지극히 달라지는 기관이 성장의 이른 단계에서는 꼭 같다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다.
흔히 보는 창조의 견해에서 이 사실들은 얼마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인가! 어째서 뇌가 그토록 수가 많고 그토록 유별난 모양을 한 뼈 조각으로 이루어진 상자에 싸여 있어야 하는가? 오언이 말한 대로 포유류가 새끼를 낳을 때 따로 떨어진 조각들이 물러나 주는 데서 오는 이로움은 새의 머리뼈에서 나타나는 같은 지음을 결코 설명해 주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 박쥐의 날개와 다리가 그토록 온전히 다른 목적에 쓰이는데도 그것을 이루는 데 비슷한 뼈가 창조되었어야 하는가? 어째서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복잡한 입을 가진 갑각류는 그 결과로 늘 다리가 더 적어야 하며, 거꾸로 다리가 많은 것은 입이 더 단순해야 하는가? 어째서 어느 꽃에서든 꽃받침과 꽃잎과 수술과 암술은 그토록 아주 다른 목적에 맞추어져 있으면서도 모두 같은 본을 따라 지어져야 하는가?
자연선택 이론에 서면 우리는 이 물음에 흡족하게 답할 수 있다. 척추동물에서 우리는 어떤 돌기와 부속물을 지닌 안쪽 척추뼈의 줄을 본다. 마디동물에서 우리는 몸이 바깥 부속물을 지닌 마디의 줄로 나뉜 것을 본다. 그리고 꽃식물에서 우리는 잇따른 나선 돌림잎의 줄을 본다. 같은 부분이나 기관이 한없이 되풀이되는 것은 (오언이 말한 대로) 모든 낮거나 조금밖에 변화하지 않은 형태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척추동물의 알려지지 않은 조상이 많은 척추뼈를 지녔고, 마디동물의 알려지지 않은 조상이 많은 마디를 지녔으며, 꽃식물의 알려지지 않은 조상이 많은 나선 돌림잎을 지녔다고 쉽게 믿을 수 있다. 우리는 앞서 여러 번 되풀이된 부분이 수와 구조에서 유난히 변이하기 쉽다는 것을 보았다. 그 결과 자연선택이 오래 이어지는 변화의 과정에서 여러 번 되풀이된 본디 비슷한 요소 가운데 일정한 수를 붙들어 가장 다양한 목적에 맞추어 적응시켰으리라는 것은 아주 그럴듯하다. 그리고 변화의 크기 전체가 작고 잇따른 걸음으로 이루어졌을 터이므로, 우리는 그런 부분이나 기관에서 강한 유전의 원리가 지켜 낸 어느 정도의 근본적인 닮음을 찾아낸다고 해서 놀랄 것이 없다.
연체동물이라는 큰 강에서는 한 종의 부분들을 또렷이 구분되는 다른 종의 부분들과 상동으로 맞출 수 있는데도 연속 상동은 몇 가지밖에 짚어 낼 수 없다. 곧 우리는 한 부분이나 기관이 같은 개체 안의 다른 것과 상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드물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연체동물에서는 그 강의 가장 낮은 구성원에서조차 어느 한 부분이 한없이 되풀이되는 것을 동물계와 식물계의 다른 큰 강들에서만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박물학자들은 머리뼈를 변태한 척추뼈로 이루어진 것이라 말하고, 게의 턱을 변태한 다리라 말하고, 꽃의 수술과 암술을 변태한 잎이라 말하는 일이 잦다. 그러나 헉슬리 교수28가 말한 대로 이런 경우에는 머리뼈와 척추뼈를, 턱과 다리 따위를 하나가 다른 하나에서가 아니라 어떤 공통된 요소에서 변태한 것이라 말하는 편이 아마 더 옳을 것이다. 그러나 박물학자들은 그런 말을 비유의 뜻으로만 쓴다. 그들은 오랜 계승의 과정 동안 어떤 종류의 태초의 기관이, 곧 한쪽 경우에는 척추뼈가 다른 쪽 경우에는 다리가 실제로 머리뼈나 턱으로 변화했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이런 성질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겉모습이 어찌나 강한지 박물학자들은 이런 뚜렷한 뜻을 지닌 말을 쓰지 않기가 어렵다. 내 견해에서는 이 말들을 글자 그대로 쓸 수 있다. 그리고 이를테면 게의 턱이, 만일 그것이 오랜 계승의 과정 동안 참된 다리에서나 어떤 단순한 부속물에서 정말로 변태한 것이었다면 유전을 거쳐 간직했을 법한 수많은 형질을 간직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설명된다.
발생학에 대하여. 개체 안의 어떤 기관이 다 자라면 아주 달라져 서로 다른 목적에 쓰이면서도 배에서는 꼭 같다는 것은 이미 지나가는 말로 언급했다. 또한 같은 강 안의 또렷이 구분되는 동물의 배도 놀랍도록 비슷한 일이 잦다. 이를 보여 주는 데 아가시가 말한 사정보다 나은 증거는 없으니, 어떤 척추동물의 배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을 잊은 탓에 그는 이제 그것이 포유류의 것인지 새의 것인지 파충류의 것인지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방과 파리와 딱정벌레 따위의 벌레 같은 유생은 다 자란 곤충보다 훨씬 더 바짝 서로 닮았다. 그러나 유생의 경우 그 배는 움직이며 저마다 특별한 삶의 길에 적응해 왔다. 배가 닮는다는 법칙의 자취는 때로 꽤 늦은 나이까지 이어진다. 그리하여 같은 속의 새와 아주 가까운 속의 새는 첫 깃과 둘째 깃에서 서로 닮는 일이 잦으니, 지빠귀 무리의 점무늬 깃에서 우리가 보는 대로다. 고양이 무리에서는 대부분의 종이 줄무늬나 점무늬를 줄지어 지니며, 사자의 새끼에게서도 줄무늬를 뚜렷이 가려낼 수 있다. 우리는 드물기는 하나 식물에서도 이따금 이런 종류의 것을 본다. 그리하여 Ulex(가시금작화)의 배 시기의 잎과 잎자루가 잎 노릇을 하는 아카시아29의 첫 잎들은 Leguminosæ(콩과)의 보통 잎처럼 깃꼴로 갈라져 있다.
같은 강의 아주 다른 동물의 배가 서로 닮는 구조의 항목들은 그 삶의 조건과 직접 관계가 없는 일이 잦다. 이를테면 우리는 척추동물의 배에서 아가미 틈 가까이 있는 동맥의 유별난 고리 모양 흐름이 비슷한 조건과 관계있다고 가정할 수 없다. 어미의 배 속에서 길러지는 어린 포유류에서도, 둥지에서 깨어나는 새의 알에서도, 물속에 있는 개구리의 알에서도 그렇다. 우리가 그런 관계를 믿을 까닭은 사람의 손과 박쥐의 날개와 쇠돌고래의 지느러미에 있는 같은 뼈가 비슷한 생활 조건과 관계있다고 믿을 까닭보다 나을 것이 없다. 사자 새끼의 줄무늬나 어린 검은지빠귀의 점무늬가 이 동물들에게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다거나 그것들이 놓인 조건과 관계있다고 가정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동물이 배로 지내는 동안 어느 한때에 움직이며 제 앞가림을 해야 할 때에는 사정이 다르다. 이 움직이는 시기는 삶에서 더 일찍 올 수도 있고 더 늦게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오든 유생이 제 생활 조건에 적응한 것은 어른 동물에서와 꼭 마찬가지로 완전하고 아름답다. 그런 특별한 적응 탓에 근연한 동물의 유생이나 움직이는 배가 닮은 것이 때로 크게 흐려진다. 그리고 두 종의 유생이나 두 종 무리의 유생이 그 어른 어버이만큼, 나아가 그보다 더 크게 서로 다른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유생은 움직이더라도 배가 함께 닮는다는 법칙에 여전히 어느 정도 바짝 따른다. 만각류가 이를 잘 보여 준다. 저 이름난 퀴비에30조차 따개비가 (분명히 그러한 대로) 갑각류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 유생을 한 번 보면 그렇다는 것이 틀림없이 드러난다. 또 만각류의 두 주요 구분인 자루가 있는 것과 자루가 없는 것은 겉모습에서 크게 다른데도 그 여러 단계 모두에서 유생을 거의 가려낼 수 없다.
배는 자라는 동안 대체로 짜임새가 높아진다. 짜임새가 더 높다거나 더 낮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또렷이 규정하기가 거의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나는 이 표현을 쓴다. 그러나 나비가 애벌레보다 더 높다는 것을 다툴 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어떤 기생 갑각류에서처럼 다 자란 동물이 대체로 유생보다 등급에서 더 낮다고 여겨진다. 다시 한번 만각류를 끌어오자면, 첫 단계의 유생은 세 쌍의 다리와 매우 단순한 홑눈 하나와 주둥이 모양의 입을 지니는데 그것으로 많이 먹어 크기가 크게 자란다. 나비의 번데기 단계에 해당하는 둘째 단계에서 그것들은 아름답게 지어진 여섯 쌍의 헤엄다리와 한 쌍의 훌륭한 겹눈과 지극히 복잡한 더듬이를 지닌다. 그러나 입은 닫혀 있고 온전하지 않아 먹을 수 없다. 이 단계에서 그것들의 일은 잘 발달한 감각 기관으로 찾아내고 활발한 헤엄 능력으로 다다라, 달라붙어 마지막 변태를 겪기에 알맞은 자리를 얻는 것이다. 이것이 끝나면 그것들은 평생 붙박인다. 이제 그 다리는 붙잡는 기관으로 바뀌고 그것들은 잘 지어진 입을 다시 얻는다. 그러나 더듬이는 없고 두 눈은 이제 아주 작고 단순한 홑눈점 하나로 도로 바뀐다. 이 마지막의 온전한 상태에서 만각류는 유생이었을 때보다 더 높게 짜인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더 낮게 짜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속에서는 유생이 보통의 구조를 지닌 자웅동체로 자라나기도 하고 내가 보완 수컷31이라 부른 것으로 자라나기도 한다. 그리고 뒤의 경우 그 발달은 틀림없이 뒷걸음쳤다. 그 수컷은 한낱 주머니여서 짧은 동안 살며 번식을 위한 것을 빼면 입도 위도 그 밖의 중요한 기관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와 어른 개체 사이에 구조의 차이가 있는 것을, 또 같은 강 안의 아주 다른 동물의 배가 바짝 닮은 것을 보는 데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이 사실들을 어떤 식으로든 성장에 반드시 따라붙는 것으로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테면 박쥐의 날개나 쇠돌고래의 지느러미가 배에 어떤 구조든 보이자마자 모든 부분이 제 비율을 갖춘 채 그려지지 않았어야 할 뚜렷한 까닭은 없다. 또 어떤 동물 무리 전체에서, 또 다른 무리의 어떤 구성원에서 배는 어느 때에도 어른 개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하여 오언은 갑오징어에 대해 「변태가 없다. 두족류다운 형질이 배의 여러 부분이 다 갖추어지기 훨씬 전에 드러난다」고 말했고, 거미에 대해서도 「변태라 부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곤충의 유생은 가장 다양하고 활발한 습성에 적응해 있든, 어버이에게 먹이를 얻거나 알맞은 영양 한가운데 놓여 아주 움직이지 않든, 그런데도 거의 모두가 비슷한 벌레 같은 발달 단계를 거친다. 그러나 몇 안 되는 경우에는, 이를테면 Aphis(진딧물)의 경우에는 이 곤충의 발달을 그린 헉슬리 교수의 훌륭한 그림을 보면 우리는 벌레 같은 단계의 자취를 조금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발생학의 이 여러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곧 배와 어른 개체 사이에 구조의 차이가 매우 두루 나타나되 보편적이지는 않다는 것, 같은 배 안의 부분들이 끝내 아주 달라져 다양한 목적에 쓰이면서도 성장의 이 이른 시기에는 같다는 것, 같은 강 안의 서로 다른 종의 배가 대체로 서로 닮되 보편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 배의 구조가 삶의 어느 때에 움직이며 제 앞가림을 하게 되는 경우를 빼면 그 삶의 조건과 바짝 관계있지는 않다는 것, 배가 때로는 그것이 자라나 이르는 다 자란 동물보다 겉보기에 더 높은 짜임새를 지닌다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사실이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라는 견해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마 기형이 배를 아주 이른 시기에 덮치는 일이 잦은 탓에, 작은 변이도 반드시 똑같이 이른 시기에 나타난다고 흔히 가정된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 우리에게는 증거가 별로 없다. 실은 증거가 오히려 다른 쪽을 가리킨다. 소와 말과 여러 애완 동물의 사육자가 그 동물이 태어난 뒤 얼마쯤 지나기 전에는 그 장점이나 모양이 끝내 어떻게 될지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이를 뚜렷이 본다. 우리는 그 아이가 키가 클지 작을지, 그 이목구비가 정확히 어떠할지를 늘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떤 변이가 삶의 어느 시기에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어느 시기에 온전히 드러나느냐다. 그 원인은 배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작용했을 수 있고, 내가 믿기로 대체로 그렇게 작용해 왔다. 그리고 그 변이는 어버이나 그 조상이 놓였던 조건에 암수의 생식 요소가 영향을 받은 데서 올 수 있다. 그런데도 아주 이른 시기에, 배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그렇게 일어난 결과가 삶의 늦은 때에 나타날 수 있다. 오직 늙은 나이에만 나타나는 유전병이 한쪽 어버이의 생식 요소에서 자손에게 전해졌을 때가 그렇다. 또는 교배한 소의 뿔이 어느 한쪽 어버이의 뿔 모양에 영향을 받았을 때가 그렇다. 아주 어린 동물이 어미의 배 속에 있는 동안, 또는 알 속에 있는 동안, 또는 어버이에게 길러지고 보호받는 동안에는 그 형질 대부분이 삶에서 조금 더 일찍 온전히 얻어지느냐 조금 더 늦게 얻어지느냐가 그 안녕에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이를테면 부리가 긴 덕에 먹이를 가장 잘 얻는 새에게, 어버이에게 먹이를 얻는 동안에는 그런 길이의 부리를 갖추었든 갖추지 않았든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각 종이 지금의 구조를 얻게 된 잇따른 많은 변화가 저마다 삶의 그리 이르지 않은 시기에 덮쳐 왔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우리가 기르는 동물에서 나온 얼마쯤의 직접적인 증거가 이 견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잇따른 변화 하나하나가, 또는 그 대부분이 지극히 이른 시기에 나타났을 가능성도 아주 크다.
나는 1장에서, 어떤 변이가 어버이에게서 어느 나이에 처음 나타나든 그것이 자손에게서 그에 맞먹는 나이에 다시 나타나는 경향이 있음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증거가 얼마쯤 있다고 말했다. 어떤 변이는 오직 그에 맞먹는 나이에만 나타날 수 있으니, 이를테면 누에나방의 애벌레나 고치나 성충 상태에서 나타나는 남다름이 그렇고, 또 거의 다 자란 소의 뿔에서 나타나는 남다름이 그렇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아가, 우리가 보기에 삶에서 더 일찍 나타날 수도 더 늦게 나타날 수도 있었을 변이가 자손과 어버이에게서 그에 맞먹는 나이에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것이 한결같이 그러하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가장 넓은 뜻으로 받아) 어버이에게서보다 자식에게서 더 이른 나이에 덮쳐 온 변이의 사례를 꽤 여럿 들 수 있다.
이 두 원리는 그 참됨이 인정된다면, 내가 믿기로 위에서 밝힌 발생학의 모든 주요 사실을 설명해 줄 것이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기르는 변종에서 이와 상사한 몇 가지 경우를 살펴보자. 개에 대해 글을 쓴 어떤 저자들은 그레이하운드와 불도그가 그토록 달라 보이면서도 실은 아주 가까운 변종이며 아마 같은 야생 줄기에서 계승되었으리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나는 그 강아지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보고 싶어졌다. 사육자들은 그것이 그 어버이만큼이나 다르다고 내게 말했고, 눈으로 보아 판단하기에도 거의 그런 듯했다. 그러나 다 자란 개와 태어난 지 엿새 된 그 강아지를 실제로 재어 보니 나는 그 강아지가 비율의 차이를 온전히 갖추는 데 한참 못 미침을 알아냈다. 또 나는 짐말과 경주마의 망아지가 다 자란 말만큼 다르다는 말을 들었다. 이 두 품종 사이의 차이가 온전히 사육 아래의 선택으로 말미암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생각하기에 이 말은 나를 크게 놀라게 했다. 그러나 경주마와 무거운 짐말의 어미와 태어난 지 사흘 된 새끼를 꼼꼼히 재게 해 보니, 나는 그 새끼가 비율의 차이를 온전히 갖추는 데 결코 이르지 못했음을 알아냈다.
집비둘기의 여러 사육 품종이 하나의 야생 종에게서 계승되었다는 증거가 내게는 결정적으로 보이므로, 나는 여러 품종의 어린 비둘기를 깨어난 지 열두 시간 안에 견주어 보았다. 나는 야생 줄기와 pouter와 fantail과 runt와 barb와 dragon과 carrier와 tumbler에서 부리와 입의 너비와 콧구멍과 눈꺼풀의 길이와 발의 크기와 다리의 길이의 비율을 꼼꼼히 재었다(여기서 자세한 것을 들지는 않겠다). 그런데 이 새들 가운데 어떤 것은 다 자랐을 때 부리의 길이와 모양에서 어찌나 유별나게 다른지, 그것들이 자연의 산물이었다면 또렷이 구분되는 속에 매겨졌으리라는 것을 나는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여러 품종의 갓 깬 새를 한 줄로 늘어놓았을 때, 그 대부분을 서로 가려낼 수는 있었지만 위에서 밝힌 여러 항목에서 나타나는 비율의 차이는 다 자란 새에서보다 견줄 수 없을 만큼 작았다. 특징이 되는 차이의 어떤 항목은, 이를테면 입의 너비는 어린 새에서 거의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규칙에 한 가지 두드러진 예외가 있었으니, short-faced tumbler의 새끼는 야생 바위비둘기의 새끼나 다른 품종의 새끼와 그 모든 비율에서 어른 상태에서와 거의 꼭 같은 만큼 달랐기 때문이다.
위에서 든 두 원리는 우리가 기르는 변종의 뒤늦은 배 단계에 관한 이 사실들을 설명해 주는 듯하다. 애호가들은 말과 개와 비둘기를 번식시키려고 고를 때 그것이 거의 다 자랐을 때 고른다. 그들은 바라는 성질과 구조가 삶에서 더 일찍 얻어졌든 더 늦게 얻어졌든, 다 자란 동물이 그것을 지니고 있다면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방금 든 경우, 특히 비둘기의 경우는 각 품종에 값어치를 주며 사람의 선택으로 쌓여 온 특징적인 차이가 대체로 삶의 이른 시기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며, 그에 맞먹는 이르지 않은 시기에 자손에게 유전되었음을 보여 주는 듯하다. 그러나 열두 시간 되었을 때 제 마땅한 비율을 갖춘 short-faced tumbler의 경우는 이것이 보편적인 규칙은 아님을 증명한다. 여기서는 그 특징적인 차이가 여느 때보다 이른 시기에 나타났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 차이가 맞먹는 나이가 아니라 더 이른 나이에 유전되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사실들과 위의 두 원리를 (뒤의 것은 참임이 증명되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 그럴듯함은 보일 수 있다) 자연 상태의 종에 적용해 보자. 새의 한 속을 들어 보자. 그것은 내 이론에서 어떤 하나의 어버이 종에게서 계승되었고 그 여러 새로운 종은 저마다 다른 습성에 따라 자연선택을 거쳐 변화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잇따른 많은 작은 변이의 걸음이 꽤 늦은 나이에 덮쳐 와 그에 맞먹는 나이에 유전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가정한 속의 새로운 종의 새끼는 어른보다 훨씬 더 바짝 서로 닮는 경향을 뚜렷이 보일 것이다. 비둘기의 경우에서 우리가 본 그대로다. 우리는 이 견해를 과 전체나 강 전체로 넓힐 수 있다. 이를테면 어버이 종에서 다리 노릇을 하던 앞다리가 오랜 변화의 과정을 거쳐 어떤 후손에서는 손으로, 다른 후손에서는 지느러미발로, 또 다른 후손에서는 날개로 쓰이게 적응할 수 있다. 그리고 위의 두 원리, 곧 잇따른 변화 하나하나가 꽤 늦은 나이에 덮쳐 오고 그에 맞먹는 늦은 나이에 유전된다는 원리에 따라, 어버이 종의 여러 후손의 배에 있는 앞다리는 여전히 서로 바짝 닮을 것이다. 그것들은 변화하지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낱낱의 새로운 종마다 배의 앞다리는 다 자란 동물의 앞다리와 크게 다를 것이다. 뒤의 것에 있는 다리는 삶의 꽤 늦은 시기에 큰 변화를 겪어 그리하여 손이나 지느러미발이나 날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오래 이어진 단련이나 쓰임이, 다른 한편으로 쓰이지 않음이 한 기관을 변화시키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든 그 영향은 주로 다 자란 동물에 미칠 것이다. 그것은 제 활동 능력을 온전히 갖추었고 제 삶을 스스로 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효과는 그에 맞먹는 다 자란 나이에 유전될 것이다. 반면에 어린것은 쓰임과 쓰이지 않음의 효과로 변화하지 않은 채 남거나 더 작은 정도로 변화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잇따른 변이의 걸음이 우리가 전혀 모르는 원인에서 삶의 아주 이른 시기에 덮쳐 올 수도 있고, 또는 걸음마다 그것이 처음 나타난 때보다 더 이른 시기에 유전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short-faced tumbler에서처럼) 어린것이나 배는 다 자란 어버이 형태와 바짝 닮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갑오징어와 거미처럼 어떤 동물 무리 전체에서, 그리고 Aphis처럼 곤충이라는 큰 강의 몇몇 구성원에서 발달의 규칙임을 보았다. 이런 경우에 어린것이 아무런 변태도 겪지 않는다는 것, 또는 가장 이른 나이부터 제 어버이와 바짝 닮는다는 것의 궁극 원인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다음 두 사정에서 비롯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어린것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진 변화의 과정 동안 발달의 아주 이른 단계에서 제 앞가림을 해야 했다는 것, 둘째로 그것이 제 어버이와 꼭 같은 생활 습성을 따랐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그 종이 살아남으려면 새끼가 아주 이른 나이에 그 비슷한 습성에 맞추어 제 어버이와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가 아무런 변태도 겪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마 얼마쯤 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한편 어린것이 제 어버이와 어느 정도 다른 생활 습성을 따르고 그 결과 조금 다르게 지어지는 것이 이로웠다면, 그에 맞먹는 나이에 유전된다는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어린것 곧 유생은 자연선택으로 제 어버이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정도로든 쉽게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차이는 또한 잇따른 발달 단계와 상관되게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첫 단계의 유생이 둘째 단계의 유생과 크게 다를 수 있으니, 만각류에서 그러함을 우리는 보았다. 어른은 움직이는 기관이나 감각 기관 따위가 쓸모없을 자리나 습성에 알맞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 마지막 변태는 뒷걸음쳤다고 말할 것이다.
이 땅에서 살았던 모든 생물이, 죽어 없어진 것이든 지금 있는 것이든 함께 매겨져야 하고 또 모두가 가장 미세한 단계로 이어져 왔으므로, 가장 좋은 배열, 나아가 우리 수집이 거의 완전하다면 가능한 유일한 배열은 계보에 따른 것이리라. 내 견해에서 계승은 박물학자들이 자연 분류 체계라는 말 아래 찾아 온 감추어진 이음의 끈이다. 이 견해에 서면 우리는 대부분의 박물학자가 보기에 배의 구조가 어른 개체의 구조보다 분류에 더 중요하기까지 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배는 덜 변화한 상태에 있는 동물이며, 그런 한에서 그것은 제 조상의 구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두 동물 무리가 구조와 습성에서 지금 아무리 서로 다르더라도, 그것들이 같거나 비슷한 배 단계를 거친다면 우리는 그 둘이 같거나 거의 비슷한 어버이에게서 계승되었으며 따라서 그만큼 가깝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이리하여 배의 구조가 함께 같다는 것은 계승이 함께 같음을 드러낸다. 어른 개체의 구조가 아무리 크게 변화하고 흐려졌더라도 그것은 계승이 함께 같음을 드러낼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만각류가 그 유생으로 곧바로 갑각류라는 큰 강에 든다고 알아볼 수 있음을 보았다. 각 종과 종 무리의 배 상태는 덜 변화한 그 오래된 조상의 구조를 우리에게 얼마쯤 보여 주므로, 우리는 어째서 오래되고 죽어 없어진 생명의 형태가 그 후손인 지금 있는 종의 배를 닮아야 하는지 뚜렷이 알 수 있다. 아가시는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이 법칙이 앞으로 참임이 증명되는 것을 보기를 바랄 뿐임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제 많은 배에 나타나 있다고 가정되는 그 오래된 상태가, 오랜 변화의 과정에서 잇따른 변이가 아주 이른 나이에 덮쳐 오는 것으로도 또 그 변이가 처음 나타난 때보다 이른 시기에 유전되는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은 경우에만 참임이 증명될 수 있다. 또한 오래된 생명의 형태가 지금 있는 형태의 배 단계와 닮는다는 이 가정된 법칙은 참일 수 있으면서도, 지질학의 기록이 시간에서 충분히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탓에 오랫동안, 또는 영영 증명될 수 없는 채로 남을 수 있음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이리하여 내가 보기에 박물학에서 무엇에도 뒤지지 않게 중요한 발생학의 주요 사실들은, 작은 변화가 어느 하나의 오래된 조상에게서 나온 많은 후손에게서 아마 가장 이른 때에 일어났을지라도 그 저마다의 삶에서 아주 이른 시기에 나타나지는 않고 그에 맞먹는 이르지 않은 시기에 유전된다는 원리로 설명된다. 우리가 이렇게 배를 각 동물 큰 강의 공통 어버이 형태를 어느 정도 흐릿하게 담은 그림으로 볼 때 발생학은 흥미가 크게 높아진다.
흔적만 남았거나 오그라들었거나 퇴화한 기관에 대하여. 쓸모없음의 도장이 찍힌 이 기묘한 상태의 기관이나 부분은 자연 곳곳에 지극히 흔하다. 이를테면 흔적만 남은 젖은 수컷 포유류에서 매우 흔하다. 나는 새의 「덧날개」32를 흔적 상태에 있는 발가락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많은 뱀에서 허파의 한쪽 잎은 흔적만 남았다. 다른 뱀에서는 골반과 뒷다리의 흔적이 있다. 흔적 기관의 사례 가운데 어떤 것은 지극히 신기하다. 이를테면 다 자라면 머리에 이가 하나도 없는 고래의 태아에게 이가 있다는 것, 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 송아지의 위턱에 잇몸을 결코 뚫고 나오지 않는 이가 있다는 것이 그렇다. 심지어 배 시기의 어떤 새의 부리에서 이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권위에 기대어 이야기된 바도 있다. 날개가 날기 위해 생겼다는 것보다 더 뚜렷한 것은 없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곤충에서 우리는 크기가 줄어 아주 날 수 없게 된 날개를, 그것도 단단히 맞붙은 딱지날개 밑에 놓인 것을 드물지 않게 보는가!
흔적 기관의 뜻은 조금도 헷갈릴 여지가 없는 일이 잦다. 이를테면 같은 속의 (나아가 같은 종의) 딱정벌레가 모든 점에서 서로 바짝 닮으면서도 하나는 온전한 크기의 날개를 지니고 다른 하나는 한낱 막의 흔적만 지니는 일이 있다. 여기서 그 흔적이 날개를 나타낸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흔적 기관은 때로 제 잠재력을 간직한 채 다만 발달하지 않았을 뿐이다. 수컷 포유류의 젖이 그러한 듯하니, 이 기관이 다 자란 수컷에게서 잘 발달해 젖을 낸 사례가 많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Bos(소) 속의 젖통에는 보통 발달한 젖꼭지 넷과 흔적만 남은 젖꼭지 둘이 있는데, 우리가 기르는 암소에서는 그 둘이 때때로 발달해 젖을 낸다. 같은 종의 낱낱의 식물에서 꽃잎이 때로는 한낱 흔적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잘 발달한 상태로 나타난다. 암수가 갈린 식물에서 수꽃은 곧잘 암술의 흔적을 지닌다. 그리고 쾰로이터33는 그런 수식물을 자웅동체인 종과 교배함으로써 잡종 자손에서 암술의 흔적이 크기가 크게 커졌음을 알아냈다. 이는 그 흔적과 온전한 암술이 본성에서 본디 같다는 것을 보여 준다.
두 목적에 쓰이는 기관은 그 가운데 하나에 대해, 나아가 더 중요한 목적에 대해 흔적만 남거나 아주 퇴화하면서도 다른 목적에는 온전히 제구실을 하는 채로 남을 수 있다. 그리하여 식물에서 암술의 일은 꽃가루관이 그 밑동의 씨방 안에 보호되어 있는 밑씨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암술은 암술대에 받쳐진 암술머리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어떤 Compositæ(국화과)에서 물론 수정될 수 없는 수꽃은 암술머리가 얹혀 있지 않아 흔적 상태에 있는 암술을 지닌다. 그러나 암술대는 잘 발달한 채로 남아 다른 국화과에서처럼 털로 덮여 있는데, 이는 둘레의 꽃밥에서 꽃가루를 쓸어내기 위한 것이다. 또 어떤 기관은 제 마땅한 목적에 대해서는 흔적만 남고 다른 일에 쓰일 수 있다. 어떤 물고기에서 부레는 물에 뜨게 한다는 제 마땅한 기능에 대해서는 흔적만 남은 듯하지만, 갓 생겨난 숨 쉬는 기관 곧 허파로 바뀌었다. 이와 비슷한 다른 사례도 들 수 있다.
같은 종의 개체들에서 흔적 기관은 발달의 정도와 다른 점에서 매우 변하기 쉽다. 게다가 아주 가까운 종들에서 같은 기관이 흔적만 남게 된 정도가 이따금 크게 다르다. 뒤의 사실은 어떤 무리에서 암컷 나방의 날개가 놓인 상태에서 잘 드러난다. 흔적 기관은 아주 퇴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유비에 따라 찾아내리라 기대할 만하고 그 종의 기형인 개체에서 이따금 찾아지는 기관의 자취를, 어떤 동물이나 식물에서 조금도 찾아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금어초(Antirrhinum)에서 우리는 대체로 다섯째 수술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때때로 보이기도 한다. 한 강의 서로 다른 구성원에서 같은 부분의 상동을 더듬어 갈 때 흔적을 쓰고 찾아내는 일보다 더 흔하거나 더 필요한 것은 없다. 이는 오언이 말과 소와 코뿔소의 다리뼈를 그린 그림에서 잘 드러난다.
고래와 반추류의 위턱에 있는 이 같은 흔적 기관이 배에서는 곧잘 찾아지지만 그 뒤에 아주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또한 흔적만 남은 부분이나 기관이 어른에서보다 배에서 곁의 부분에 견주어 크기가 더 크다는 것도 내가 믿기로 보편적인 규칙이다. 그리하여 이 이른 나이에 그 기관은 흔적만 남은 정도가 덜하거나, 나아가 어느 정도로도 흔적만 남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또한 어른에서 흔적만 남은 기관을 두고 제 배 시기의 상태를 간직했다고 말하는 일이 잦다.
나는 이제 흔적 기관에 관한 주요 사실들을 들었다. 그것들을 곰곰이 헤아려 볼 때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분과 기관이 어떤 목적에 더없이 훌륭하게 적응해 있다고 뚜렷이 일러 주는 바로 그 따짐의 힘이, 이 흔적만 남았거나 오그라든 기관은 온전하지 않고 쓸모없다고 똑같이 뚜렷이 일러 주기 때문이다. 박물학 저작에서 흔적 기관은 대체로 「고름을 위해」 또는 「자연의 얼개를 채우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이야기된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것은 설명이 아니며 그저 사실을 다시 말한 것일 뿐이다. 행성이 해 둘레를 타원 궤도로 돌기 때문에 위성도 고름을 위해, 그리고 자연의 얼개를 채우기 위해 행성 둘레를 같은 궤도로 돈다고 말하는 것이 충분하다고 여겨지겠는가? 어느 뛰어난 생리학자는 흔적 기관이 있는 까닭을 그것이 남아돌거나 몸에 해로운 물질을 내보내는 데 쓰인다고 가정함으로써 설명한다. 그러나 수꽃에서 곧잘 암술을 나타내며 그저 세포 조직으로만 이루어진 그 아주 작은 돌기가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고 우리가 가정할 수 있는가? 나중에 흡수되어 버리는 흔적 이가 생기는 일이 귀한 인산석회를 내보냄으로써 빠르게 자라는 배 시기의 송아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우리가 가정할 수 있는가? 사람의 손가락이 잘려 나갔을 때 그 그루터기에 온전하지 않은 손톱이 때로 나타난다. 나는 이 손톱의 자취가 알려지지 않은 성장의 법칙에서가 아니라 뿔 같은 물질을 내보내기 위해 나타났다고 믿느니, 매너티의 지느러미에 있는 흔적 손톱이 이 목적으로 생겨났다고 믿겠다.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라는 내 견해에서 흔적 기관의 기원은 단순하다. 우리가 기르는 산물에는 흔적 기관의 사례가 많다. 꼬리 없는 품종에 남은 꼬리의 그루터기, 귀 없는 품종에 남은 귀의 자취, 뿔 없는 소 품종에서 다시 나타나는 아주 작은 흔들리는 뿔(유엇34에 따르면 특히 어린 짐승에서 그렇다), 콜리플라워에서 꽃 전체가 놓인 상태가 그렇다. 우리는 기형에서 갖가지 부분의 흔적을 곧잘 본다. 그러나 나는 이 사례 가운데 어느 것이 흔적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 말고 자연 상태에서 흔적 기관이 생겨난 기원에 빛을 비춰 주는지 의심스럽다. 자연 아래의 종이 갑작스러운 달라짐을 겪는 일이 있는지 내가 의심하기 때문이다. 나는 쓰이지 않음이 주된 매개였다고 믿는다. 곧 그것이 잇따른 세대에 걸쳐 갖가지 기관을 차츰 줄어들게 해 끝내 흔적만 남게 했다고 믿는다. 어두운 동굴에 사는 동물의 눈이 그렇고, 날기를 억지로 해야 할 일이 드물어 끝내 나는 힘을 잃어버린 대양섬에 사는 새의 날개가 그렇다. 또 어떤 조건 아래에서 쓸모 있던 기관이 다른 조건 아래에서는 해로워질 수 있으니, 작고 훤히 드러난 섬에 사는 딱정벌레의 날개가 그렇다. 그리고 이런 경우 자연선택은 그 기관이 해가 없어지고 흔적만 남게 될 때까지 천천히 계속 그것을 줄여 갈 것이다.
느낄 수 없을 만큼 작은 걸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기능의 달라짐은 무엇이든 자연선택의 힘이 미치는 범위 안에 있다. 그리하여 생활 습성이 달라지는 동안 어떤 목적에 쓸모없거나 해롭게 된 기관이 쉽게 변화해 다른 목적에 쓰일 수 있다. 또는 한 기관이 그 예전 기능 가운데 오직 하나를 위해 간직될 수도 있다. 쓸모없게 된 기관은 변이하기 쉬울 만하다. 그 변이가 자연선택으로 막히지 않기 때문이다. 쓰이지 않음이나 선택이 한 기관을 줄이는 것이 삶의 어느 시기이든,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그 생물이 다 자라 활동 능력을 온전히 갖추었을 때일 텐데, 그에 맞먹는 나이에 유전된다는 원리가 그 줄어든 상태의 기관을 같은 나이에 다시 내놓을 것이고 따라서 배에서는 그것에 영향을 미치거나 그것을 줄이는 일이 드물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흔적 기관이 배에서는 상대적인 크기가 더 크고 어른에서는 상대적인 크기가 더 작은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줄어드는 과정의 걸음마다 그에 맞먹는 나이가 아니라 삶의 지극히 이른 시기에 유전된다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만한 좋은 까닭이 우리에게 있다) 흔적만 남은 부분은 아주 사라지는 쪽으로 기울 것이고, 우리는 온전한 퇴화의 경우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앞 장에서 설명한 아낌의 원리, 곧 어떤 부분이나 구조를 이루는 물질이 그것을 지닌 자에게 쓸모없다면 되도록 아껴진다는 원리도 아마 곧잘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흔적 기관을 온전히 지워 버리는 데로 기울 것이다.
이렇게 흔적 기관이 있는 것은 오래 이어져 온 짜임새의 모든 부분이 유전되려는 경향에서 오므로, 우리는 분류를 계보에 따라 보는 견해에서 분류학자들이 어째서 흔적만 남은 부분을 생리에서 높은 중요성을 지니는 부분만큼, 나아가 때로는 그보다 더 쓸모 있다고 여겨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흔적 기관은 한 낱말에서 철자에는 아직 남아 있으나 소리 내는 데는 쓸모없게 되었으면서도 그 말의 뿌리를 찾을 때 실마리 노릇을 하는 글자에 견줄 수 있다.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라는 견해에 서면 우리는 기관이 흔적만 남고 온전하지 않고 쓸모없는 상태로, 또는 아주 퇴화한 채로 있다는 것이 흔히 보는 창조의 교리에서는 틀림없이 그러한 대로 기묘한 난점을 들이대기는커녕 미리 내다볼 수도 있었던 일이며 유전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요약. 이 장에서 나는 다음을 보이려 했다. 모든 시간에 걸쳐 모든 생물에서 무리 아래 무리가 딸린다는 것, 살아 있는 존재와 죽어 없어진 존재를 모두 복잡하고 사방으로 뻗고 에두르는 유연관계의 선으로 하나의 큰 체계로 묶어 주는 그 관계의 성질, 박물학자들이 분류에서 따르는 규칙과 마주치는 어려움, 한결같고 널리 퍼져 있기만 하다면 생명에서 높은 중요성을 지니든 더없이 하찮은 중요성을 지니든, 또는 흔적 기관에서처럼 아무 중요성도 지니지 않든 형질에 매겨지는 값어치, 상사 형질 또는 적응 형질과 참된 유연관계의 형질 사이의 값어치의 큰 맞섬, 그리고 그 밖의 그런 규칙들, 이 모두가 박물학자들이 가깝다고 여기는 형태들이 어버이를 함께 가진다는 견해에 절멸과 형질 분기를 딸린 자연선택을 거친 그 변화를 아울러 놓으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는 것이다. 분류를 보는 이 견해를 살필 때, 계승이라는 요소가 같은 종의 암수와 나이와 인정된 변종을 그 구조가 아무리 다르더라도 함께 매기는 데 두루 쓰여 왔음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이 계승이라는 요소, 곧 생물이 서로 닮는 것의 확실하게 알려진 유일한 원인을 쓰는 것을 우리가 넓혀 간다면, 우리는 자연 분류 체계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 시도된 배열에서 계보에 따른 것이며, 얻어진 차이의 등급이 변종·종·속·과·목·강이라는 말로 표시된다.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라는 바로 이 견해에 서면 형태학의 모든 큰 사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된다. 한 강의 서로 다른 종에서 상동인 기관이 무슨 목적에 쓰이든 거기에 드러나는 같은 본을 바라보든, 아니면 낱낱의 동물과 식물마다 같은 본을 따라 지어진 상동인 부분들을 바라보든 그러하다.
잇따른 작은 변이가 반드시 또는 대체로 삶의 아주 이른 시기에 덮쳐 오지는 않으며 그에 맞먹는 시기에 유전된다는 원리에 서면, 우리는 발생학의 주요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다. 곧 낱낱의 배에서 다 자라면 구조와 기능에서 서로 크게 달라질 상동인 부분들이 닮아 있다는 것, 그리고 한 강의 서로 다른 종에서 상동인 부분이나 기관이 어른 구성원에서는 되도록 서로 다른 목적에 맞추어져 있는데도 닮아 있다는 것이다. 유생은 움직이는 배이며, 변화가 그에 맞먹는 나이에 유전된다는 원리를 거쳐 제 생활 습성에 맞추어 특별히 변화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에 서서, 그리고 기관이 쓰이지 않음에서든 선택에서든 크기가 줄어들 때 그것이 대체로 그 생물이 제 필요를 스스로 채워야 하는 삶의 시기에 일어난다는 것을 마음에 두고, 또 유전의 원리가 얼마나 강한지를 마음에 두면, 흔적 기관이 나타나는 것과 그것이 끝내 퇴화하는 것은 우리에게 설명할 수 없는 난점을 조금도 들이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있음은 미리 내다볼 수도 있었던 일이다. 분류에서 배의 형질과 흔적 기관이 지니는 중요성은 어떤 배열이 계보에 따른 것인 한에서만 자연스럽다는 견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끝으로 이 장에서 살펴본 여러 부류의 사실은 내가 보기에, 이 세상을 채우고 있는 생물의 수없이 많은 종과 속과 과가 모두 저마다 제 강이나 무리 안에서 공통 어버이에게서 계승되었으며 계승의 과정에서 모두 변화해 왔다는 것을 어찌나 뚜렷이 알리는 듯한지, 이 견해가 다른 사실이나 논증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겠다.
주
1. 4장의 도해 — 다윈이 4장 「자연선택」에서 내놓은 가지 치는 그림이다. 맨 아래 가로줄의 A부터 L까지가 한 속의 여러 종이고, 위로 올라가는 가로줄이 잇따른 시기를 나타내며, 갈라지는 점선이 형질 분기와 절멸을 나타낸다. 이 장에서 다윈은 그 도해를 분류의 뼈대를 보이는 데 다시 쓴다.
2. 린네 —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 1707~1778). 스웨덴의 박물학자로 오늘날에도 쓰이는 두 낱말로 된 학명 체계와 분류 계급 체계를 세웠다.
3. 오언 — 리처드 오언(Richard Owen, 1804~1892). 영국의 비교해부학자이자 고생물학자로 상동(homology)과 상사(analogy)를 개념으로 갈라 세운 사람이다. 이 장에서 다윈이 가장 자주 끌어오는 권위다.
4. 로버트 브라운 —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 1773~1858). 영국의 식물학자로 세포핵을 찾아내고 이른바 브라운 운동을 기재했다.
5. 웨스트우드 — 존 오바디아 웨스트우드(John Obadiah Westwood, 1805~1893). 영국의 곤충학자.
6. Ornithorhynchus — 오리너구리의 속명이다. 뒤 문단에 함께 나오는 Lepidosiren은 남아메리카에 사는 폐어의 속명이다. 다윈은 이 둘을 제 무리에서 크게 벗어난 형태의 본보기로 되풀이해 든다.
7. 쥐시외 — 아드리앵 드 쥐시외(Adrien de Jussieu, 1797~1853). 프랑스의 식물학자. 같은 문단의 리샤르 씨는 프랑스의 식물학자 아실 리샤르(Achille Richard, 1794~1852)다.
8. 오귀스탱 생틸레르 — 오귀스탱 프랑수아 세자르 프루브네살 드 생틸레르(Augustin François César Prouvençal de Saint-Hilaire, 1779~1853). 프랑스의 식물학자로 브라질 식물을 연구했다. 뒤에 나오는 조프루아 생틸레르와는 다른 사람이다.
9. 밀른 에드워즈와 아가시 — 앙리 밀른 에드워즈(Henri Milne Edwards, 1800~1885)는 프랑스의 동물학자이며,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 1807~1873)는 스위스 태생의 미국 박물학자로 물고기 화석과 빙하를 연구했다. 아가시는 끝까지 다윈의 이론에 반대했다.
10. 테밍크 — 코엔라트 야코프 테밍크(Coenraad Jacob Temminck, 1778~1858). 네덜란드의 조류학자.
11. 벤담 씨 — 조지 벤담(George Bentham, 1800~1884). 영국의 식물학자로 후커와 함께 『식물의 속』을 펴냈다.
12. 실루리아기 — 다윈 당시에는 화석이 넉넉히 나오는 가장 오래된 시기로 여겨졌다. 오늘날의 구분에서는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가 그 앞에 놓인다.
13. 사람의 여러 인종 — 원문은 the races of man. 이 책에서 race는 생물의 계통을 뜻할 때 모두 「품종」으로 옮겼으나, 다윈이 사람 집단을 가리켜 쓴 세 자리(6장·11장·13장)만은 「인종」으로 옮겼다. 사람에게 「품종」을 쓰면 원문에 없는 뜻이 실리기 때문이다. 1859년의 race of man은 사람의 갈래를 뜻하는 평범한 말이었다. 여기서 다윈은 사람의 족보를 언어의 분류에 견주는 비유로 이 말을 쓴다. 같은 문단 뒤쪽의 the several races, descended from a common race는 「여러 갈래」로 옮겼다.
14. 마셜 — 윌리엄 마셜(William Marshall, 1745~1818). 영국의 농학자로 잉글랜드 각 지방의 농법을 기록했다.
15. tumbler를 비롯한 비둘기 품종 이름 — 이 문단과 뒤 문단에 나오는 비둘기 품종 이름(tumbler, short-faced tumbler, pouter, fantail, runt, barb, dragon, carrier)은 한국어 통용명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1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원어를 그대로 두었다. tumbler는 공중제비를 도는 습성에서, short-faced는 짧은 얼굴에서 온 이름이다.
16. 호텐토트 — 원문은 Hottentot. 다윈 당시 유럽인이 남아프리카 남서부의 목축민을 가리켜 쓰던 말이다. 오늘날 통용되는 명칭은 코이코이(Khoikhoi)족이며, Hottentot은 식민지 시기의 타칭으로 남아프리카에서 현재 멸칭으로 분류된다. 당대의 말을 보이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옮겼다.
17. 흑인 — 원문은 Negro 및 negroes. 다윈 당시 영어권에서 아프리카 계통의 사람을 가리켜 쓰던 말이다. 오늘날 한국어에서 통용되는 말은 「흑인」이며, 영어권에서는 Black을 쓰고 Negro는 쓰지 않는다. 다윈이 대문자로 분류군처럼 쓴 the Negro group은 「흑인 무리」로 옮겼다. 이 대목에서 그가 드는 것은 혈통에 따라 분류한다는 원리의 예다. 당대의 말을 보이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옮겼다.
18. 세대 교번 — 원문은 the so-called alternate generations of Steenstrup. 요하네스 스텐스트루프(Johannes Steenstrup, 1813~1897)는 덴마크의 동물학자로, 해파리 같은 동물에서 생김새와 번식 방식이 다른 세대가 번갈아 나타나는 현상을 1842년에 기재했다.
19. 상대에게 되묻는 논법 — 원문은 라틴어 argumentum ad hominem. 여기서는 오늘날 쓰이는 「사람을 공격하는 오류」라는 뜻이 아니라, 상대가 내놓은 전제를 그대로 받아 그 전제로 되물어 보이는 논법을 가리킨다.
20. 라마르크 — 장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1744~1829). 프랑스의 박물학자로 생물이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론을 처음으로 체계 있게 내놓았다.
21. 매클레이 — 윌리엄 샤프 매클레이(William Sharp Macleay, 1792~1865). 영국의 곤충학자로 뒤 문단에 나오는 5분법 분류 체계를 내놓은 사람이다.
22. 7분법·5분법·4분법·3분법 분류 — 원문은 the septenary, quinary, quaternary, and ternary classifications. 자연의 무리가 언제나 일곱이나 다섯이나 넷이나 셋으로 나뉜다고 보아 그 수에 맞추어 생물을 매기려 한 19세기 전반의 분류 체계들이다.
23. 맞닿은 무리나 벗어난 무리 — 원문은 osculant or aberrant groups. 앞엣것은 두 무리 사이에 걸쳐 있어 어느 쪽에도 온전히 들지 않는 무리를, 뒤엣것은 제가 든 무리의 보통 형질에서 크게 벗어난 무리를 가리키던 당대의 말이다.
24. 워터하우스 씨 — 조지 로버트 워터하우스(George Robert Waterhouse, 1809~1888). 영국의 박물학자로 비글호가 싣고 온 포유류와 딱정벌레 표본을 맡아 기재했다.
25. 비스카차 — 원문은 bizcacha. 남아메리카 팜파스에 사는 굴 파는 설치류(Lagostomus)로, 다윈이 비글호 항해 중에 직접 보았다.
26. 손위 드 캉돌 — 오귀스탱 피람 드 캉돌(Augustin Pyramus de Candolle, 1778~1841). 스위스의 식물학자. 앞 장들에 자주 나오는 알퐁스 드 캉돌의 아버지다.
27. 조프루아 생틸레르 — 에티엔 조프루아 생틸레르(Étienne Geoffroy Saint-Hilaire, 1772~1844). 프랑스의 박물학자로 서로 다른 동물의 기관이 자리의 이어짐에서 들어맞는다는 「이어짐의 원리」를 내세워 퀴비에와 오래 맞섰다.
28. 헉슬리 교수 — 토머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 영국의 비교해부학자로, 이 책이 나온 뒤 다윈의 이론을 가장 앞장서 변호했다.
29. 아카시아 — 저본에는 phyllodineous acaceas로 적혀 있다. acacias의 오식으로 보인다. 잎자루가 넓적해져 잎 노릇을 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Acacia를 가리킨다.
30. 퀴비에 —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1769~1832). 프랑스의 비교해부학자이자 고생물학자로 동물계를 네 개의 큰 갈래로 나누었고, 종이 달라진다는 생각에는 끝까지 반대했다.
31. 보완 수컷 — 원문은 complemental males. 다윈이 만각류를 연구하며 붙인 이름이다. 자웅동체인 개체에 달라붙어 사는 아주 작은 수컷으로, 번식 기관 말고는 이렇다 할 기관이 없다.
32. 덧날개 — 원문은 bastard-wing. 새의 날개 앞쪽 가장자리에 붙은 작은 깃 다발로, 오늘날에는 소익(小翼)이라 부른다.
33. 쾰로이터 — 요제프 고틀리프 쾰로이터(Joseph Gottlieb Kölreuter, 1733~1806). 독일의 식물학자로 식물의 교배 실험을 처음으로 널리 행했다. 8장에서 다윈이 거듭 끌어오는 사람이다.
34. 유엇 — 윌리엄 유엇(William Youatt, 1776~1847). 영국의 수의사로 소·말·양·개를 다룬 사육 지침서를 여럿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