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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중개상이자 대리인인 요제프 기벤라트 씨는 이웃 시민들과 견주어 남다른 장점도 별난 구석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들처럼 떡 벌어진 건강한 체격과, 돈을 향한 진실하고 정성 어린 숭배심이 곁들여진 그럭저럭한 장사 재주를 지녔고, 그 밖에도 작은 뜰이 딸린 아담한 집 한 채, 묘지의 가족 묘, 조금은 계몽되었으나 이제는 닳아 해진 교회 신앙, 하느님과 관청에 대한 알맞은 존경, 그리고 점잖은 시민 노릇이 요구하는 철칙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지니고 있었다. 포도주를 잔깨나 기울였지만 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곁가지로 깨끗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거래에도 여러 번 손을 댔지만, 형식상 허용된 선을 넘은 적은 결코 없었다.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은 빈털터리라고, 자기보다 잘사는 사람은 거드름쟁이라고 욕했다. 시민 협회 회원이었고, 금요일마다 '독수리' 술집에서 하는 볼링에 빠지지 않았으며, 빵 굽는 날마다, 그리고 돼지를 잡고 벌이는 내장 스튜 잔치와 순대 국 잔치마다 끼었다. 일할 때는 싸구려 시가를, 식사 뒤와 일요일에는 그보다 고급인 것을 피웠다.

그의 내면은 속물의 내면이었다. 그나마 지닌 정이라는 것도 진작 먼지가 앉아, 대대로 내려온 무뚝뚝한 가족애와 제 아들에 대한 자랑, 그리고 이따금 가난한 사람에게 무언가 베풀고 싶어지는 변덕 말고는 별것이 없었다. 그의 정신은 타고난, 금이 딱 그어진 약삭빠름과 셈 솜씨를 넘어서지 못했다. 읽는 것이라곤 신문뿐이었고, 예술을 즐기고 싶은 욕구는 해마다 한 번 시민 협회가 올리는 아마추어 연극과 그 사이사이 서커스 구경 한 번으로 넉넉히 채워졌다.

그는 아무 이웃하고나 이름과 집을 맞바꾸었더라도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영혼의 가장 깊은 곳마저 이 도시의 다른 가장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자기보다 뛰어난 힘이나 인물이면 무엇이든 잠들 줄 모르고 의심하는 마음, 그리고 남다른 것, 더 자유롭고 섬세한 것, 정신에 속한 것이면 무엇에나 시기심에서 자라나 본능처럼 품는 적의가 그것이었다.

그 사람 이야기는 이쯤 해 두자. 이 얕은 삶과, 그 삶이 스스로 모르는 비극을 그려 내는 일은 깊이를 갖춘 풍자가만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고, 이야기할 것은 바로 그 아이다.

한스 기벤라트는 두말할 것 없이 재능 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 틈에서 얼마나 섬세하게, 또 얼마나 홀로 동떨어져 돌아다니는지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슈바르츠발트의 작은 시골 동네는 여느 때라면 그런 인물을 길러 내지 못했다. 좁디좁은 테두리 너머까지 눈길이 미치고 힘이 닿는 사람이 그곳에서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소년이 진지한 눈과 영리한 이마와 걸음걸이의 섬세함을 어디서 얻었는지는 하느님이나 아실 일이다. 어머니에게서였을까? 어머니는 죽은 지 여러 해가 되었고, 살아 있을 때도 늘 병약하고 근심에 잠겨 있었다는 것 말고는 사람들 눈에 띈 데가 없었다. 아버지는 따질 거리도 못 되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위에서 내린 신비로운 불꽃이, 팔구백 년 동안 착실한 시민은 그토록 많이 길러 냈으나 재주꾼이나 천재는 아직 하나도 낳지 못한 그 오래된 동네에 튀어 들어온 셈이었다.

섬세하고 현대식 교육을 받은 관찰자라면 병약한 어머니와 집안의 오랜 내력을 떠올리고는, 퇴화가 시작되는 징후로서 지능이 비대해졌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도시는 다행히도 그런 부류의 사람을 품고 있지 않았고, 관리와 훈장 가운데서도 젊고 약삭빠른 몇몇만이 잡지 기사에서 "현대인"이라는 것이 있다는 소문을 어렴풋이 주워들었을 뿐이었다. 그곳에서는 아직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몰라도 살 수 있었고 교양인 행세도 할 수 있었다. 혼인은 탄탄했고 행복할 때도 많았으며, 삶 전체가 고칠 길 없이 구식인 몸가짐을 하고 있었다. 엉덩이를 따뜻하게 붙이고 앉은 유복한 시민들은, 그 가운데 지난 스무 해 사이에 수공업자에서 공장주가 된 이도 적지 않았는데, 관리들 앞에서는 모자를 벗고 그들과 사귀려고 애쓰면서도 저희끼리는 관리들을 빈털터리니 펜대나 굴리는 머슴이니 하고 불렀다. 이상하게도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들을 되도록 대학에 보내 관리로 만드는 것보다 높은 공명심을 알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이 꿈은 거의 언제나 아름답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꿈으로 남았다. 자식들은 대개 라틴어 학교부터 몹시 끙끙대며 몇 번이고 낙제를 거듭하고서야 겨우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한스 기벤라트의 재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교사들도, 교장도, 이웃들도, 목사도, 같은 반 아이들도, 누구나 다 그 아이가 머리가 비상하고 어딘가 특별하다고 인정했다. 그것으로 그의 장래는 정해졌고 굳어졌다. 슈바벤 땅에서는 재능 있는 소년이 걸을 길이, 부모가 부자라면 모를까, 좁다란 오솔길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주 시험(Landexamen)을 거쳐 신학교(Seminar)로, 거기서 튀빙겐 신학원으로, 그리고 그다음에는 설교단 아니면 교단으로 가는 길이다. 해마다 이 땅의 아들 마흔 명 안팎이 이 조용하고 안전한 길에 들어선다. 비쩍 마르고 공부에 지친 갓 견신례를 받은 아이들은 나랏돈으로 인문학의 여러 분야를 두루 거친 뒤, 여덟 해나 아홉 해가 지나면 인생길의 두 번째 구간, 대개는 더 긴 구간에 들어서는데, 그 길에서 그들은 나라에서 입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

몇 주 뒤면 다시 "주 시험"이 치러질 참이었다. 해마다 바치는 헤카톰베1를 이렇게 부른다. 이 제사에서 "국가"는 나라의 정신이 피워 낸 꽃을 골라 뽑고, 제사가 이어지는 동안 작은 도시와 마을마다 수많은 집안의 한숨과 기도와 소원이 시험이 치러지는 수도의 품을 향해 쏠린다.

한스 기벤라트는 이 작은 도시가 그 괴로운 경쟁에 내보내려는 단 하나의 응시생이었다. 영광은 컸지만 그는 그것을 결코 거저 얻지 않았다. 날마다 네 시까지 이어지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교장에게 그리스어 특별 수업을 받았고, 여섯 시에는 목사가 친절하게도 라틴어와 종교를 한 시간 복습시켜 주었으며, 일주일에 두 번은 저녁을 먹은 뒤에도 수학 교사에게 한 시간씩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스어에서는 불규칙 동사 다음으로, 불변화사로 나타내는 문장 연결의 갖가지 쓰임새에 무게를 두었고, 라틴어에서는 문체를 명료하고 간결하게 다듬고 특히 운율의 수많은 미묘한 규칙을 익히는 것이 중요했으며, 수학에서는 복잡한 비례 계산에 가장 힘을 쏟았다. 수학 교사가 자주 힘주어 말하기를, 비례 계산은 나중의 공부와 삶에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그것은 그저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했다. 실제로는 몹시 중요했고, 몇몇 주요 과목보다도 더 중요했다. 비례 계산은 논리적 능력을 길러 주고 명료하고 냉철하며 성공적인 모든 사고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신이 짐을 너무 많이 지지 않도록, 그리고 지성을 단련하느라 마음을 잊어 메마르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한스는 아침마다 수업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견신례 수업에 나가도 되었다. 거기서는 브렌츠 교리 문답서에서, 그리고 문답을 외우고 암송하는 생기 돋우는 공부에서 상쾌한 종교적 삶의 숨결이 젊은 영혼들 속으로 스며들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기운을 북돋우는 시간을 스스로 망쳐 놓았고 그 축복을 제 손으로 놓쳐 버렸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단어나 연습 문제를 적은 쪽지를 교리 문답서 속에 몰래 끼워 두고, 수업 시간 거의 내내 이 세속의 학문에 매달렸던 것이다. 그래도 양심이 아주 무디지는 않아서, 그러는 동안 내내 괴로운 불안과 은근한 두려움에 시달렸다. 교구장이 가까이 오거나 이름이라도 부르면 그때마다 움찔 놀랐고, 대답을 해야 할 때면 이마에 땀이 맺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대답은 흠잡을 데 없이 옳았고 발음까지 정확했으며, 교구장은 바로 그 점을 몹시 중요하게 여겼다.

낮 동안 수업마다 쌓여 가는 숙제들, 쓰고 외우고 복습하고 예습할 것들은 밤늦게 집에서 아늑한 등잔불 아래 해치우면 되었다. 가정의 평화가 축복처럼 감싸 주는 이 고요한 공부를 두고 담임은 특별히 깊고 유익한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이 공부는 화요일과 토요일에는 대개 열 시쯤에 끝났지만 다른 날에는 열한 시, 열두 시, 때로는 그보다 늦게까지 이어졌다. 아버지는 등잔 기름이 한없이 드는 것을 두고 조금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아들의 공부를 흐뭇한 자랑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여가가 생기면, 그리고 우리 삶의 칠분의 일을 차지하는 일요일에는, 학교에서 읽지 않는 작가 몇을 읽고 문법을 넉넉히 복습하라는 권고가 간곡히 내려져 있었다.

"물론 적당히, 적당히 해야지! 일주일에 한두 번 산책하는 건 꼭 필요하고, 놀라운 효과가 있다. 날씨가 좋으면 책을 한 권 들고 바깥에 나가도 되겠지. 맑은 바깥 공기 속에서는 공부가 얼마나 가볍고 즐겁게 되는지 알게 될 거다. 아무튼 고개를 꼿꼿이 들어라!"

그래서 한스는 힘닿는 데까지 고개를 꼿꼿이 들었고, 이제부터는 산책 시간도 공부에 썼으며, 밤을 새운 얼굴과 퍼렇게 테가 진 피곤한 눈으로 말없이, 겁먹은 채 돌아다녔다.

"기벤라트를 어떻게 보십니까? 붙기는 하겠지요?" 어느 날 담임이 교장에게 말했다.

"붙고말고, 붙고말고." 교장이 신이 나서 외쳤다. "아주 영리한 축에 드는 아이일세. 저 아이 좀 보게, 그야말로 지적인 얼굴이 되지 않았나."

지난 일주일 사이에 그 지적인 기색은 누가 보아도 뚜렷해졌다. 곱고 여린 소년의 얼굴에서는 움푹 들어간 불안한 눈이 흐릿한 불길로 타올랐고, 아름다운 이마에는 정신을 드러내는 가는 주름이 파르르 떨렸으며, 그렇잖아도 가늘고 야윈 팔과 손은 보티첼리를 떠올리게 하는 지친 우아함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 내일 아침 일찍 그는 아버지와 함께 슈투트가르트로 가서, 신학교의 좁은 수도원 문을 들어설 자격이 있는지를 주 시험에서 보여 주어야 했다. 방금 그는 교장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오늘 밤에는 더 공부하면 안 된다. 약속해라." 무서운 지배자가 끝으로 여느 때 없이 부드럽게 말했다. "내일 슈투트가르트에는 아주 생생한 몸으로 나서야 한다. 한 시간쯤 더 산책하고, 그다음엔 일찌감치 자거라. 젊은 사람은 잠을 자야 하는 법이다."

한스는 두려워하던 충고 더미 대신 그토록 큰 호의를 받자 놀랐고, 한숨을 돌리며 학교 건물을 나섰다. 교회 언덕의 커다란 보리수들이 늦은 오후의 뜨거운 햇빛 속에서 흐릿하게 빛났고, 장터 광장에서는 커다란 분수 두 개가 찰랑거리며 반짝였으며, 들쭉날쭉 이어진 지붕들 너머로 가까운 검푸른 전나무 산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년은 이 모든 것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것만 같았고, 모든 것이 유난히 아름답고 마음을 끌었다. 두통이 나기는 했지만, 오늘은 더 공부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천천히 장터 광장을 가로질러 옛 시청을 지나고, 장터 골목을 지나 칼 대장간 옆을 거쳐 옛 다리까지 걸었다. 거기서 한동안 이리저리 거닐다가 마침내 넓은 난간에 걸터앉았다. 몇 주, 몇 달 동안 날마다 네 번씩 이곳을 지나다녔으면서도 그는 다리 위의 작은 고딕식 예배당에도, 강에도, 수문과 둑과 방앗간에도, 하다못해 멱 감는 풀밭과 버드나무가 늘어선 강기슭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 기슭에는 무두질 터가 줄지어 있었고, 강물은 호수처럼 깊고 푸르고 고요하게 고여 있었으며, 휘어진 뾰족한 버들가지가 물속까지 늘어져 있었다.

이제 다시 떠올랐다. 여기서 반나절을, 온종일을 얼마나 많이 보냈던가. 여기서 얼마나 자주 헤엄치고 자맥질하고 노를 젓고 낚시를 했던가. 아, 낚시! 그것도 이제는 거의 잊어버려 할 줄도 모르게 되었다. 지난해 시험공부 때문에 낚시를 금지당했을 때 그는 그토록 서럽게 울었다. 낚시! 그 긴 학창 시절을 통틀어 그것이 가장 좋은 일이었다. 가느다란 버드나무 그늘에 서 있던 일, 가까이서 쏴 하고 울리던 방앗간 둑의 물소리, 깊고 잔잔한 물! 그리고 강물 위에 어른거리던 빛, 긴 낚싯대가 부드럽게 흔들리던 모습, 입질이 오고 줄을 끌어당길 때의 흥분, 서늘하고 통통하며 꼬리를 파닥이는 물고기를 손에 쥐었을 때의 그 야릇한 기쁨!

그는 실한 잉어를 여러 마리 낚아 올렸고, 황어와 누치, 맛 좋은 텐치와 작고 드물며 빛깔 고운 연준모치도 낚았다. 그는 오래도록 물을 바라보았다. 초록빛 강굽이 전체를 바라보고 있자니 생각에 잠기며 슬퍼졌고, 아름답고 자유롭고 거칠던 소년 시절의 즐거움이 아득히 뒤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무심코 주머니에서 빵 한 조각을 꺼내 크고 작은 공을 빚어 물에 던지고, 그것이 가라앉다가 물고기들에게 낚아채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맨 먼저 아주 작은 금빛 피라미와 피라미가 몰려와 작은 조각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큰 조각은 배고픈 주둥이로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밀고 다녔다. 그다음에는 더 큰 황어 한 마리가 천천히 조심스레 다가왔다. 검고 넓은 등이 바닥에서 희미하게 떠올라 보였는데, 황어는 빵 공 둘레를 신중하게 한 바퀴 돌더니 갑자기 둥근 입을 벌려 그것을 삼켜 버렸다. 느릿느릿 흐르는 물에서 축축하고 따뜻한 냄새가 올라왔고, 밝은 구름 몇 조각이 초록빛 수면에 흐릿하게 비쳤으며, 방앗간에서는 둥근톱이 끼익거렸고, 두 둑은 서늘하고 낮은 소리로 쏴아 하고 서로 섞이며 울렸다. 소년은 얼마 전에 지나간 견신례 주일을 떠올렸다. 그날 그는 엄숙하고 감동적인 예식 한가운데서 속으로 그리스어 동사를 외우고 있는 자신을 붙잡았다. 요즘 들어 다른 때에도 그런 일이 잦았다. 생각이 뒤죽박죽 섞였고, 학교에서도 눈앞에 놓인 과제가 아니라 늘 앞서 한 과제나 나중에 할 과제를 생각했다. 이래서야 시험이 퍽이나 잘되겠다!

그는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로 갈지 망설였다. 그때 억센 손이 어깨를 붙잡고 다정한 사내 목소리가 말을 걸어와서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잘 있었니, 한스. 나랑 좀 같이 걷겠니?"

구두장이 플라이크였다. 예전에는 이따금 그의 집에서 저녁 한때를 보내곤 했지만, 그런 지도 벌써 오래였다. 한스는 따라 걸으며 이 신앙심 깊은 경건주의자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플라이크는 시험 이야기를 하며 소년에게 행운을 빌어 주고 용기를 북돋웠지만, 그 말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런 시험이란 결국 겉치레이고 우연한 일일 뿐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데 있었다. 떨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만일 그렇게 되더라도 하느님은 영혼마다 특별한 뜻을 품고 저마다 고유한 길로 이끄신다는 것을 생각하라고 했다.

한스는 이 사람 앞에서 양심이 아주 떳떳하지는 않았다. 그는 플라이크와 그의 굳건하고 위엄 있는 사람됨을 우러러보았지만, 경건회 형제들을 두고 하는 우스개를 수없이 들었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속으로 알면서도 함께 웃을 때가 많았다. 게다가 제 비겁함도 부끄러워해야 했다. 얼마 전부터 구두장이의 날카로운 질문이 무서워서 그를 거의 겁먹은 듯 피해 다녔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저 자신도 조금 거만해진 뒤로, 구두장이 플라이크는 그를 이따금 묘한 눈길로 바라보며 기를 꺾어 놓으려 했다. 그러다 보니 이 선의의 길잡이에게서 소년의 영혼은 차츰 빠져나가 버렸다. 한스는 소년다운 반항심이 한창 피어나는 나이였고, 제 자존심을 언짢게 건드리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예민하게 알아채는 더듬이를 지니고 있었다. 이제 그는 말하는 사람 곁에서 걸으면서도, 그 사람이 얼마나 근심스럽고 자애로운 눈으로 위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지 알지 못했다.

왕관 골목에서 그들은 목사를 만났다. 구두장이는 절도 있게, 차갑게 인사하고는 갑자기 바빠졌다. 목사는 신식 사람이었고, 부활조차 믿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목사는 소년을 데리고 함께 걸었다.

"어떠냐?" 목사가 물었다. "이제 때가 되어서 홀가분하겠구나."

"네, 뭐 괜찮아요."

"그래, 잘해 내라! 우리가 다 너한테 희망을 걸고 있다는 거 알지. 라틴어에서는 특별히 좋은 성적을 기대하마."

"하지만 떨어지면요." 한스가 수줍게 말했다.

"떨어진다고?!" 목사는 깜짝 놀라 우뚝 멈춰 섰다. "떨어지는 건 그냥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냥 있을 수 없어. 무슨 그런 생각을 하니!"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럴 리 없다, 한스, 그럴 리 없어. 그건 마음 푹 놓아라. 자, 아버지께 안부 전하고, 용기를 내라!"

한스는 목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구두장이 쪽을 돌아보았다. 그 사람이 뭐라고 했더라? 마음만 바른 자리에 두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면 라틴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말이야 쉽지. 게다가 목사까지 있다. 떨어지면 목사 앞에는 다시는 얼굴을 내밀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풀이 죽어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가 비탈진 작은 뜰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오래전부터 쓰지 않아 썩어 가는 정원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그는 예전에 그 안에 판잣집 우리를 짜 놓고 세 해 동안 토끼를 길렀다. 지난가을에 시험 때문에 토끼를 빼앗겼다. 그에게는 이제 기분을 풀 시간이 없었다.

뜰에도 와 보지 않은 지 오래였다. 빈 우리는 곧 무너질 것 같았고, 담 모퉁이의 종유석 무더기는 허물어졌으며, 작은 나무 물레바퀴는 수도관 옆에 휘고 부서진 채 뒹굴고 있었다. 그는 이것들을 다 짓고 깎으며 즐거워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것도 벌써 두 해 전이었다.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그는 작은 바퀴를 주워 이리저리 비틀다가 아예 부숴 버리고는 울타리 너머로 던졌다. 이런 건 치워 버려야지, 다 오래전에 끝나고 지나간 일이니까. 그러다 학교 친구 아우구스트가 생각났다. 아우구스트는 그가 물레바퀴를 만들고 토끼장을 고칠 때 거들어 주었다. 둘은 오후 내내 여기서 놀았다. 새총을 쏘고, 고양이를 쫓아다니고, 천막을 치고, 새참으로 날 당근을 먹었다. 그러다 공부벌레 노릇이 시작되었고, 아우구스트는 한 해 전에 학교를 그만두고 기계공 견습이 되었다. 그 뒤로 아우구스트는 두 번밖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하긴 그 아이도 이제는 시간이 없겠지.

구름 그림자가 골짜기 위를 서둘러 지나갔고, 해는 벌써 산등성이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한순간 소년은 땅바닥에 몸을 내던지고 울부짖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는 대신 그는 헛간에서 손도끼를 꺼내 와 가냘픈 두 팔로 허공에 휘두르더니 토끼장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널빤지가 사방으로 튀었고 못이 끼익 소리를 내며 휘었으며, 지난여름부터 남아 있던 썩은 토끼 먹이가 조금 드러났다. 그는 그 모든 것에 마구 도끼질을 했다. 그렇게 하면 토끼와 아우구스트와 그 모든 옛 어린 장난을 그리는 마음을 때려죽일 수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어이쿠, 이게 무슨 짓이냐?" 아버지가 창가에서 소리쳤다. "거기서 뭐 하는 거냐?"

"땔감이요."

그는 더 대답하지 않고 도끼를 내던진 뒤 마당을 지나 골목으로 뛰쳐나가, 강기슭을 따라 상류 쪽으로 달렸다. 바깥 양조장 근처에 뗏목 두 개가 매여 있었다. 예전에 그는 따뜻한 여름날 오후면 이런 뗏목을 타고 몇 시간이고 강을 따라 내려가곤 했다. 통나무 사이에서 철썩이는 물 위를 떠가다 보면 마음이 들뜨면서도 졸음이 왔다. 그는 물에 뜬 헐거운 통나무 위로 건너뛰어 버들가지 더미 위에 누웠다. 그리고 상상해 보려 했다. 뗏목이 길을 떠나 빠르게 혹은 머뭇머뭇 풀밭과 밭과 마을과 서늘한 숲 가장자리를 지나고 다리 밑과 열어 둔 수문 아래를 빠져나가며, 자기는 그 위에 누워 있고, 모든 것이 다시 예전과 같다고. 카프 산에서 토끼 먹이를 뜯어 오고, 강기슭 무두장이네 뜰에서 낚시를 하고, 두통도 걱정도 아직 없던 그 시절처럼.

그는 피곤하고 뿌루퉁한 채 저녁을 먹으러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코앞에 닥친 슈투트가르트 시험 여행 때문에 지독히 들떠서, 책은 다 쌌는지, 검은 양복은 꺼내 두었는지, 가는 길에 문법책을 좀 더 읽지 않겠는지, 몸은 괜찮은지 열두 번도 더 물었다. 한스는 짧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조금 먹다가 이내 잘 자라는 인사를 했다.

"잘 자라, 한스. 푹 자거라! 그럼 내일 아침 여섯 시에 깨우마. 그 사전은 안 잊었겠지?" "네, '그' 사전 안 잊었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그는 제 작은 방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오래 깨어 앉아 있었다. 시험 소동이 지금까지 그에게 가져다준 축복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그가 주인이 되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저만의 작은 방이었다. 여기서 그는 피로와 졸음과 두통과 싸우며 기나긴 저녁 시간을 카이사르와 크세노폰과 문법책과 사전과 수학 문제를 붙들고 끈질기게, 고집스럽게, 공명심에 차서, 때로는 절망의 문턱까지 가며 골똘히 보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잃어버린 소년 시절의 온갖 즐거움보다 그에게 더 값진 몇 시간도 보냈다. 자부심과 도취와 승리의 확신으로 가득 찬, 꿈결처럼 기이한 그 몇 시간 동안 그는 학교도 시험도 모든 것도 뛰어넘어 더 높은 존재들의 무리 속으로 꿈꾸듯 그리워하며 건너갔다. 그럴 때면 자기가 볼 통통하고 순한 친구들과는 참으로 다른, 더 나은 존재이고, 언젠가는 아득한 높이에서 그들을 내려다보아도 되리라는 뻔뻔하고도 황홀한 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지금도 그는 이 작은 방에 더 자유롭고 서늘한 공기가 있기라도 한 듯 한숨을 돌리고, 침대에 걸터앉아 꿈과 소원과 예감 속에서 몇 시간을 아련하게 보냈다. 밝은 눈꺼풀이 공부에 지친 커다란 눈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가 한 번 더 열리고, 깜박이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창백한 소년의 머리가 야윈 어깨 위로 기울었고, 가는 두 팔이 지친 듯 늘어졌다. 그는 옷을 입은 채 잠들었고, 잠의 부드럽고 어머니 같은 손이 그의 불안한 어린 가슴속 물결을 잔잔히 다독이고 고운 이마의 작은 주름을 지워 주었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른 시각인데도 교장이 몸소 역까지 나왔다. 기벤라트 씨는 검은 프록코트를 입고서 흥분과 기쁨과 자랑을 못 이겨 가만히 서 있지를 못했다. 그는 교장과 한스 둘레를 초조하게 종종걸음으로 맴돌았고, 역장과 역무원이라는 역무원에게서 빠짐없이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아들의 시험에 행운을 비는 말을 받았으며, 작고 딱딱한 가방을 왼손에 들었다가 오른손에 들었다가 했다. 우산은 겨드랑이에 끼었다가 다시 무릎 사이에 끼웠다가 하다가 몇 번이나 떨어뜨렸고, 그때마다 우산을 주우려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누가 보았다면 왕복표를 끊어 슈투트가르트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로 떠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아들은 아주 침착해 보였지만, 남모르는 두려움이 목을 조르고 있었다.

기차가 들어와 멈추자 사람들이 올라탔고, 교장은 손을 흔들었으며, 아버지는 시가에 불을 붙였고, 아래쪽 골짜기로 도시와 강이 사라져 갔다. 여행은 두 사람 모두에게 고역이었다.

슈투트가르트에 오자 아버지는 갑자기 생기가 돌아 쾌활하고 붙임성 있고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처럼 굴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왕도에 올라온 작은 도시 사람의 기쁨이 그를 들뜨게 했다. 그러나 한스는 더 말이 없어지고 더 겁을 먹었다. 도시를 보자 그는 가슴이 꽉 막혀 왔다. 낯선 얼굴들, 거드름 피우듯 높고 요란하게 꾸민 집들, 길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길들, 철도 마차와 거리의 소음이 그를 주눅 들게 하고 아프게 했다. 그들은 고모 집에 묵었는데, 그곳에서는 낯선 방들, 고모의 친절과 수다, 하릴없이 오래 앉아 있는 일, 그리고 기운 내라고 끝없이 다그치는 아버지의 말이 소년을 아예 바닥까지 짓눌렀다. 그는 낯설고 길 잃은 사람처럼 방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익숙지 않은 주변을, 고모와 고모의 도시풍 차림새를, 큼직한 무늬의 벽지와 탁상시계와 벽에 걸린 그림을, 혹은 창밖의 시끄러운 거리를 바라보노라면, 그는 완전히 버림받은 것만 같았고, 집을 떠난 지 벌써 까마득한 세월이 흘러 애써 배운 모든 것을 당분간 깡그리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오후에는 그리스어 불변화사를 한 번 더 훑어볼 생각이었지만, 고모가 산책을 하자고 했다. 한순간 한스의 마음속 눈앞에 초록 풀밭과 숲의 웅성거림 같은 것이 떠올라서 그는 기꺼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이 큰 도시에서는 산책도 고향에서와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그는 곧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시내에 사람들을 찾아다니느라 나가 있었으므로 그는 고모와 단둘이 나섰다. 계단에서부터 고난이 시작되었다. 2층에서 뚱뚱하고 거만해 보이는 부인을 만났는데, 고모는 그 부인에게 무릎을 굽혀 인사했고, 부인은 곧바로 청산유수로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멈춰 선 것이 15분도 넘었다. 한스는 계단 난간에 몸을 붙인 채 그 옆에 서 있었고, 부인의 강아지가 그의 냄새를 맡으며 으르렁거렸다. 낯선 뚱보 부인이 코안경 너머로 그를 위아래로 몇 번이나 훑어보았으므로, 그는 자기 이야기도 오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거리로 나서자마자 고모는 가게에 들어갔고, 다시 나올 때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동안 한스는 쭈뼛거리며 길가에 서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떠밀리고 골목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가게에서 나온 고모는 그에게 초콜릿 한 판을 내밀었고, 그는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공손히 고맙다고 했다. 다음 모퉁이에서 철도 마차를 탔고, 쉴 새 없이 땡땡거리는 만원 마차에 실려 거리를 지나고 또 거리를 지나 마침내 큰 가로수 길과 공원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분수가 솟고, 울타리를 두른 꽃밭에 꽃이 피고, 작은 인공 연못에서 금붕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산책객 무리에 섞여 이리저리 오가고 빙빙 돌며 거닐었고, 수많은 얼굴과 멋진 옷과 그렇지 않은 옷, 자전거와 환자용 의자차와 유모차를 보았으며, 웅성웅성 뒤엉킨 목소리를 들으며 따뜻하고 먼지 낀 공기를 들이마셨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 곁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고모는 거의 내내 쉬지 않고 떠들었는데, 이제 한숨을 쉬더니 소년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웃고는 이제 그 초콜릿을 먹으라고 했다. 그는 먹기 싫었다.

"세상에, 설마 부끄러워서 그러니? 어서 먹어, 먹어!"

그래서 그는 초콜릿을 꺼내 한동안 은박지를 잡아 뜯다가 마침내 아주 조그만 조각을 깨물었다. 초콜릿이라면 그는 죽어도 싫었지만, 고모에게 그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가 아직 그 한 조각을 빨며 꾸역꾸역 삼키고 있는 사이, 고모는 사람들 틈에서 아는 사람을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여기 앉아 있어. 금방 올게."

한스는 한숨을 돌리며 이 틈을 타 초콜릿을 잔디밭 저 멀리로 내던졌다. 그러고는 박자에 맞춰 다리를 흔들며 수많은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자기가 불행하다고 느꼈다. 마침내 그는 또 불규칙 동사를 외워 보기 시작했지만, 죽을 만큼 놀랍게도 거의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몽땅 잊어버렸다! 그런데 내일이 주 시험이었다.

돌아온 고모는 그사이 올해 주 시험 응시생이 백열여덟 명이라는 것을 알아 왔다. 그러나 붙을 수 있는 것은 서른여섯 명뿐이었다. 그러자 소년은 간이 콩알만 해져서 집에 가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에 와서는 두통이 났고, 또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으며, 어찌나 자포자기한 꼴이었던지 아버지가 호되게 꾸짖었고 고모마저 그를 못 견뎌 했다. 밤에 그는 무겁고 깊게 잠들었고, 끔찍한 꿈 장면들에 쫓겼다. 꿈에서 그는 다른 응시생 백열일곱 명과 함께 시험장에 앉아 있었는데, 시험관은 고향의 목사를 닮았다가 고모를 닮았다가 하더니 그의 앞에 초콜릿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그것을 먹으라고 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먹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하나씩 하나씩 일어나 작은 문으로 사라졌다. 모두 제 몫의 산을 다 먹었지만, 그의 산은 눈앞에서 점점 더 커져 책상과 걸상 위로 넘쳐흘렀고, 그를 숨 막히게 하려는 것만 같았다.

이튿날 아침, 한스가 커피를 마시며 시험에 늦지 않으려고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동안, 고향의 작은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를 생각했다. 맨 먼저 구두장이 플라이크가 그랬다. 그는 아침 수프를 앞에 두고 기도를 올렸는데, 가족과 직인들과 견습공 둘이 식탁 둘레에 빙 둘러서 있었고, 구두장이는 여느 아침 기도에 오늘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주여, 오늘 시험을 치르는 학생 한스 기벤라트 위에도 주의 손을 얹으시어, 그에게 복을 내리시고 힘을 주시며, 언젠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바르고 굳세게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목사는 그를 위해 기도하지는 않았지만, 아침을 먹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기벤라트네 꼬마가 시험을 보는군. 저 아이는 앞으로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될 거야. 사람들 눈에도 띄게 될 테고, 그러면 내가 라틴어 공부를 거들어 준 것도 손해 볼 일은 아니지."

담임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슈투트가르트에서 주 시험이 시작된다. 기벤라트에게 행운을 빌어 주자. 그 녀석한테야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너희 같은 게으름뱅이라면 열 명쯤은 주머니에 넣고 다닐 녀석이니까." 그러자 학생들도 거의 모두가 자리에 없는 그 아이를 생각했다. 특히 그가 붙을지 떨어질지를 두고 저희끼리 내기를 건 아이가 많았다.

그리고 진심 어린 중보 기도와 다정한 마음은 먼 거리도 손쉽게 넘어 멀리까지 미치는 법이므로, 한스 역시 고향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아버지를 따라 시험장에 들어갔고, 겁먹고 놀란 채 사환이 이르는 대로 따랐으며, 창백한 소년들로 가득 찬 커다란 방을 고문실에 끌려온 죄인처럼 둘러보았다. 그러나 교수가 들어와 조용히 하라고 이르고 라틴어 작문 문제를 불러 주자, 한스는 문제가 우스울 만큼 쉬운 것을 알고 한숨을 돌렸다. 그는 재빨리, 거의 즐겁게 초안을 쓴 다음 차분하고 깔끔하게 정서했고, 가장 먼저 답안을 낸 몇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 뒤에 고모 집으로 가는 길을 잃고 뜨거운 시내 거리를 두 시간이나 헤맸지만, 되찾은 마음의 평정은 그 때문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고모와 아버지에게서 한동안 더 벗어나 있는 것이 기뻤고, 낯설고 시끄러운 왕도의 거리를 걸으며 자신이 대담한 모험가라도 된 것 같았다. 마침내 간신히 길을 물어물어 집을 찾아 들어가자 그는 질문 공세를 받았다.

"어떻게 됐니? 어땠어? 문제는 잘 풀었냐?"

"쉬웠어요." 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정도는 5학년 때도 번역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는 허기진 배로 듬뿍 먹었다.

오후는 자유였다. 아버지는 그를 끌고 친척과 친구 몇 집을 돌아다녔다. 그 가운데 한 집에서 그들은 검은 옷을 입은 수줍은 소년을 만났는데, 그 아이도 주 시험을 치르려고 괴핑겐에서 올라와 있었다. 두 소년만 남겨지자 둘은 쭈뼛거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라틴어 시험 어땠어? 쉬웠지?" 한스가 물었다.

"엄청 쉬웠어. 그런데 그게 바로 함정이야. 쉬운 문제에서 제일 많이 틀리거든. 방심하니까. 숨겨 놓은 덫도 분명히 들어 있었을걸."

"그럴까?"

"당연하지. 그 양반들이 그렇게 바보는 아니거든."

한스는 조금 놀라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머뭇머뭇 물었다. "그 문제 아직 갖고 있어?"

괴핑겐 소년이 공책을 가져왔고, 두 아이는 함께 답안 전체를 한 낱말 한 낱말 훑어 나갔다. 괴핑겐 소년은 라틴어에 빠삭한 아이 같았다. 적어도 한스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문법 용어를 두 번이나 썼다.

"그럼 내일은 뭐가 나올까?"

"그리스어하고 작문."

그러자 괴핑겐 소년은 한스네 학교에서 응시생이 몇 명이나 왔느냐고 물었다.

"아무도 없어." 한스가 말했다. "나 혼자야."

"아이고, 우리 괴핑겐에서는 열두 명이나 왔어! 그중에 아주 똑똑한 애 셋이 끼어 있는데, 다들 걔들이 상위권에 들 거라고 기대해. 작년 수석도 괴핑겐 애였어. 그런데 너, 떨어지면 김나지움에 갈 거야?"

그런 이야기는 아직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모르겠어… 아니, 안 갈 것 같아."

"그래? 나는 어떻게든 공부할 거야. 이번에 떨어져도 말이야. 그러면 어머니가 울름에 보내 주실 거야."

그 말에 한스는 엄청나게 기가 눌렸다. 열두 명의 괴핑겐 아이들과 그중의 아주 똑똑한 세 아이도 그를 겁나게 했다. 그렇다면 그는 이제 고향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도 없을 것이다.

집에 와서 그는 자리에 앉아 미(mi) 동사를 한 번 더 훑었다. 라틴어는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그 과목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어는 사정이 묘했다. 그는 그리스어를 좋아했고 거의 열광하다시피 했지만, 그것은 읽을 때만 그랬다. 특히 크세노폰은 아름답고 생동하며 싱싱하게 쓰여 있어서, 모든 것이 밝고 곱고 힘차게 울렸고, 거침없고 자유로운 기상이 깃들어 있었으며, 이해하기도 쉬웠다. 그러나 문법으로 넘어가거나 독일어를 그리스어로 옮겨야 할 때면, 그는 서로 어긋나는 규칙과 형태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것만 같았고, 아직 그리스어 알파벳도 읽지 못하던 첫 시간 때와 거의 똑같은 불안한 두려움을 이 낯선 언어 앞에서 느꼈다.

이튿날에는 과연 그리스어가 나왔고, 그다음에 독일어 작문이 이어졌다. 그리스어 문제는 꽤 길었고 조금도 쉽지 않았으며, 작문 주제는 까다로워서 잘못 이해하기 쉬웠다. 열 시부터는 시험장이 후텁지근하고 더워졌다. 한스는 펜이 좋지 않아서 그리스어 답안을 정서할 때까지 종이를 두 장이나 버렸다. 작문 시간에는 옆자리의 뻔뻔한 아이 때문에 몹시 곤란해졌다. 그 아이가 질문을 적은 종이쪽지를 슬쩍 밀어 주며 옆구리를 쿡쿡 찔러 대답하라고 졸랐던 것이다. 옆자리 아이와 주고받는 일은 더없이 엄하게 금지되어 있었고, 걸리면 가차 없이 시험에서 쫓겨났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쪽지에 "날 내버려 둬"라고 적고는 그 아이에게 등을 돌렸다. 게다가 너무 더웠다. 쉬지 않고 한결같은 걸음으로 시험장을 오가며 한순간도 멈추지 않던 감독 교수조차 손수건으로 몇 번이나 얼굴을 훔쳤다. 한스는 두꺼운 견신례 양복을 입은 채 땀을 흘렸고, 두통이 났으며, 마침내 답안지가 틀린 데투성이이고 이제 시험은 끝장났다는 느낌에 몹시 비참한 기분으로 답안지를 냈다.

식탁에서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무슨 질문을 받든 어깨만 으쓱하며 죄인 같은 얼굴을 했다. 고모는 달랬지만, 아버지는 흥분해서 언짢아했다. 식사가 끝나자 아버지는 아들을 옆방으로 데려가 다시 한번 캐물으려 했다.

"잘 못 봤어요." 한스가 말했다.

"왜 정신을 똑바로 안 차렸냐? 마음만 먹으면 정신 차릴 수 있잖냐, 제기랄."

한스는 잠자코 있다가, 아버지가 욕을 퍼붓기 시작하자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다. "아버지는 그리스어를 하나도 모르시잖아요!"

무엇보다 나쁘게도 두 시에는 구술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는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이글이글 달아오른 시내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속이 몹시 메스꺼워졌고, 괴로움과 두려움과 현기증 때문에 눈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는 10분 동안 커다란 초록색 탁자 앞에서 신사 셋을 마주하고 앉아 라틴어 문장 몇 개를 옮기고 묻는 말에 대답했다. 그다음 10분 동안은 다른 신사 셋 앞에 앉아 그리스어를 옮기고 또 이것저것 질문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불규칙하게 만들어지는 부정과거 하나를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가도 되네. 저기, 오른쪽 문."

그는 나갔지만, 문간에 이르자 그 부정과거가 그제야 떠올랐다. 그는 멈춰 섰다.

"나가게." 누군가 그에게 소리쳤다. "나가게! 아니면 어디 아픈가?"

"아닙니다. 부정과거가 이제 생각나서요."

그는 방 안에 대고 그것을 외쳤고, 신사 하나가 웃는 것을 보고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채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질문들과 자기 대답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눈앞에는 그저 커다란 초록색 탁자와, 프록코트를 입은 늙고 엄숙한 신사 셋과, 펼쳐진 책과, 그 위에 떨며 올려놓은 자기 손만 자꾸 떠올랐다. 맙소사, 대체 무슨 대답들을 했을까!

거리를 걸어가노라니 벌써 몇 주째 여기 있는 것만 같았고 다시는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버지 집의 뜰과 전나무 빛으로 푸른 산들과 강가의 낚시터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오래전에 한 번 보았던 것처럼 떠올랐다. 아, 오늘이라도 집에 돌아갈 수 있다면! 더 머물러 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시험은 어차피 망쳤으니까.

그는 우유 빵 하나를 사 들고, 아버지에게 해명하지 않으려고 그 긴 오후 내내 거리를 쏘다녔다. 마침내 집에 돌아가 보니 다들 그를 걱정하고 있었고, 그가 녹초가 되어 비참한 꼴이었으므로 달걀 수프를 먹이고 잠자리에 들게 했다. 내일은 산수와 종교가 남아 있었고, 그것만 끝나면 다시 집에 갈 수 있었다.

이튿날 오전 시험은 꽤 잘되었다. 어제 주요 과목에서 그토록 운이 나빴는데 오늘은 모든 것이 잘 풀리니, 한스에게는 그것이 쓰라린 조롱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제 그저 떠나는 거다, 집으로!

"시험이 끝났으니 이제 집에 갈 수 있어요." 그가 고모에게 알렸다.

아버지는 오늘 하루 더 머물고 싶어 했다. 칸슈타트에 가서 요양 정원에서 커피를 마실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스가 하도 간절히 조르자, 아버지는 그가 오늘 혼자 먼저 떠나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는 기차까지 배웅을 받고 차표를 받았으며, 고모에게서 입맞춤과 먹을 것을 받고서, 지친 채 아무 생각 없이 초록빛 구릉지를 지나 집으로 향했다. 검푸른 전나무 산이 나타나서야 기쁨과 해방감이 소년을 덮쳤다. 그는 늙은 하녀와 제 작은 방과 교장과 익숙한 낮은 교실과, 그 모든 것을 생각하며 마음이 설렜다.

다행히 역에는 호기심 많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는 작은 꾸러미를 들고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서둘러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슈투트가르트는 좋았어요?" 늙은 안나가 물었다.

"좋았냐고? 시험이 무슨 좋은 거라고 생각해? 다시 와서 기쁠 뿐이야. 아버지는 내일에야 오셔."

그는 갓 짠 우유를 한 사발 마시고, 창밖에 걸어 둔 수영복을 걷어 들고는 뛰어나갔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다 멱을 감는 풀밭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그는 도시 밖으로 멀리, 물이 높은 덤불 사이로 깊고 느릿하게 흘러가는 '저울터'까지 나갔다. 거기서 그는 옷을 벗고, 손을, 이어서 발을 더듬듯 차가운 물에 담가 보고는 조금 몸을 떨더니, 재빠르게 몸을 날려 강물에 뛰어들었다. 약한 물살을 거슬러 천천히 헤엄치는 동안 그는 지난 며칠의 땀과 두려움이 몸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것을 느꼈고, 강물이 그의 가냘픈 몸을 서늘하게 끌어안는 사이 그의 영혼은 새로운 기쁨으로 아름다운 고향을 다시 차지했다. 그는 더 빨리 헤엄치다가 쉬고, 다시 헤엄치며, 기분 좋은 서늘함과 피로에 감싸였다. 반듯이 누워 다시 하류로 떠내려가면서, 그는 금빛 원을 그리며 떼 지어 나는 저녁 날벌레들의 가느다란 윙윙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작고 날랜 제비들이 늦은 하늘을 가르는 것과, 벌써 넘어간 해가 산 뒤에서 그 하늘을 장밋빛으로 물들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다시 옷을 입고 꿈꾸듯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갈 때, 골짜기에는 벌써 그늘이 가득했다.

그는 상인 자크만의 뜰 앞을 지나갔다. 아주 어린 꼬마였을 때 다른 아이 몇과 덜 익은 자두를 훔친 적이 있는 뜰이었다. 키르히너네 목재 하치장도 지나갔다. 하얀 전나무 각목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그는 예전에 늘 그 밑에서 낚시 미끼로 쓸 지렁이를 찾곤 했다. 게슬러 감독관의 작은 집 앞도 지나갔다. 두 해 전 얼음판에서 그는 그 집 딸 에마 게슬러에게 그토록 구애해 보고 싶었다. 에마 게슬러는 이 도시에서 가장 앙증맞고 맵시 있는 여학생이었고, 그와 동갑이었다. 그는 그때 한동안 그 아이와 한 번 말을 해 보거나 손을 잡아 보는 것만큼 간절히 바란 것이 없었다. 끝내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가 너무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에마 게슬러는 기숙 학교에 보내졌고, 그는 이제 그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소년 시절의 이야기들이 지금 아득히 먼 곳에서 오는 것처럼 다시 떠올랐고, 그 이야기들은 그 뒤에 겪은 어떤 일보다도 짙은 빛깔과, 이상하리만큼 무언가를 예감하게 하는 향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때야말로 좋은 시절이었다. 저녁이면 나숄트네 리제의 대문간에 앉아 감자를 깎으며 이야기를 들었고, 일요일이면 꼭두새벽에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찜찜한 양심을 안은 채 아래쪽 둑으로 가재를 잡으러, 금빛 피라미를 잡으러 갔다가, 흠뻑 젖은 나들이옷 때문에 나중에 아버지에게 매를 맞던 시절! 그때는 수수께끼 같고 기이한 것들과 사람들이 그토록 많았는데, 이제는 그들을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다! 목이 굽은 꼬마 구두장이, 아내를 독살한 게 틀림없다고 다들 알고 있던 슈트로마이어,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배낭을 멘 채 군 전체를 떠돌아다니던 별난 '베크 나리'가 있었다. 베크 나리는 예전에 부자여서 말 네 필에 마차까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리라고 불렀다. 한스는 이제 그들에 대해 이름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이 어둑하고 작은 골목의 세계를 잃어버렸으며, 그 대신 살아 있고 겪어 볼 만한 무엇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다음 날도 학교를 쉬어도 되었으므로 그는 아침에 늦잠을 자며 자유를 누렸다. 점심때 그는 아버지를 마중 나갔는데, 아버지는 아직도 슈투트가르트의 온갖 즐거움으로 흐뭇하게 들떠 있었다.

"붙으면 갖고 싶은 걸 하나 말해도 된다." 아버지가 기분 좋게 말했다. "잘 생각해 봐라!"

"아뇨, 아니에요." 소년이 한숨을 쉬었다. "분명히 떨어졌어요."

"쓸데없는 소리, 떨어지긴 뭘 떨어져! 내 맘 변하기 전에 얼른 소원이나 말해라."

"방학 때 다시 낚시하고 싶어요. 해도 돼요?"

"좋다, 해라. 시험에 붙으면."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뇌우와 함께 장대비가 쏟아졌고, 한스는 몇 시간이고 방에 앉아 책을 읽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치른 시험을 다시 꼼꼼히 되짚어 보았고, 그때마다 지독하게 운이 나빴으며 훨씬 더 잘 쓸 수 있었으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 붙기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 멍청한 두통! 차츰 커져 가는 불안이 그를 짓눌렀고, 마침내 그는 무거운 근심에 떠밀려 아버지에게 건너갔다.

"저, 아버지!"

"뭐냐?"

"여쭤볼 게 있어요. 소원 말인데요. 낚시는 그만둘래요."

"그래? 이번엔 또 왜?"

"왜냐하면 제가… 아, 여쭤보고 싶었던 건, 혹시 제가…"

"얼른 말해 봐라, 무슨 연극이냐! 그래, 뭔데?"

"떨어지면 김나지움에 가도 되는지요."

기벤라트 씨는 말문이 막혔다.

"뭐? 김나지움?" 그러다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김나지움에? 누가 그런 걸 네 머리에 집어넣었냐?"

"아무도요. 그냥 해 본 말이에요."

얼굴에는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뚜렷이 쓰여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가라, 가." 아버지가 언짢은 듯 웃으며 말했다. "다 허황한 소리다. 김나지움이라니! 내가 무슨 상업 고문관이라도 되는 줄 아냐?"

아버지가 어찌나 세차게 손을 내젓는지, 한스는 단념하고 절망에 빠져 밖으로 나갔다.

"저런 녀석 봤나!" 아버지가 등 뒤에서 투덜거렸다. "원, 세상에! 이제는 김나지움까지 가겠다고! 그래, 어디 잘해 봐라, 꿈도 야무지지."

한스는 반 시간 동안 창턱에 앉아, 막 걸레질한 마룻바닥을 멍하니 쳐다보며, 신학교도 김나지움도 대학 공부도 끝내 다 틀어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려 했다. 사람들은 그를 치즈 가게나 사무실에 견습으로 들여보낼 것이고, 그는 평생 그가 경멸하고 기어코 넘어서고 싶었던 평범하고 초라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곱고 영리한 학생다운 얼굴이 분노와 괴로움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 침을 뱉고는, 거기 놓여 있던 라틴어 독본을 집어 온 힘을 다해 가까운 벽에 내던졌다. 그러고는 빗속으로 뛰쳐나갔다.

월요일 아침 그는 다시 학교에 갔다.

"어떠냐?" 교장이 손을 내밀며 물었다. "어제쯤 나를 찾아올 줄 알았다. 시험은 어땠느냐?"

한스는 고개를 숙였다.

"응, 왜 그러느냐? 잘 못 본 게냐?"

"그런 것 같습니다."

"자, 참고 기다려라!" 늙은 신사가 달랬다. "아마 오늘 오전에 슈투트가르트에서 통지가 올 게다."

오전은 끔찍하게 길었다. 통지는 오지 않았고, 점심을 먹을 때 한스는 속으로 흐느끼느라 음식을 거의 삼킬 수 없었다.

오후 두 시에 교실에 들어가 보니 담임이 벌써 와 있었다.

"한스 기벤라트." 담임이 큰 소리로 불렀다.

한스가 앞으로 나갔다. 담임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축하한다, 기벤라트. 주 시험에 2등으로 합격했다."

엄숙한 정적이 흘렀다. 문이 열리고 교장이 들어왔다.

"축하한다. 그래, 이제 무슨 말을 하겠느냐?"

소년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온몸이 굳어 버렸다.

"아니, 아무 말도 안 하는 게냐?"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아예 수석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자, 이제 집에 가거라." 교장이 말했다. "가서 아버지께 말씀드려라. 이제 학교에는 안 나와도 된다. 일주일 있으면 어차피 방학이니까."

소년은 어지러운 머리로 거리에 나섰고, 보리수들이 서 있고 장터 광장이 햇빛 속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았지만, 모든 것이 더 아름답고 더 뜻깊고 더 즐거워 보였다. 그는 합격했다! 그것도 2등이었다! 첫 기쁨의 폭풍이 지나가자 뜨거운 감사의 마음이 그를 가득 채웠다. 이제 목사를 피해 다닐 필요가 없었다. 이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이제 치즈 가게도 사무실도 더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낚시도 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마침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별일 아니에요. 학교에서 내보냈어요."

"뭐? 아니, 왜?"

"제가 이제 신학생이거든요."

"아니, 이런, 그럼 붙었다는 거냐?"

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붙었냐?"

"2등 했어요."

그것은 아버지도 미처 기대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들의 어깨를 연신 두드리며 웃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다시 고개만 저었다.

"허, 이거 참!" 마침내 그가 외쳤다. 그리고 한 번 더 외쳤다. "허, 이거 참!"

한스는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 계단을 올라 다락으로 갔고, 비어 있는 지붕 밑 방의 벽장을 활짝 열어젖히고 뒤적거리더니 상자며 실 뭉치며 코르크 조각을 이것저것 끄집어냈다. 그의 낚시 도구였다. 이제 무엇보다도 거기에 맞는 멋진 낚싯대를 베어 와야 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내려갔다.

"아버지, 주머니칼 좀 빌려주세요!"

"뭐 하게?"

"회초리를 하나 베어야 해요. 낚싯대 하려고요."

아버지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옜다." 아버지가 활짝 웃으며 통 크게 말했다. "2마르크다. 네 칼을 하나 사라. 하지만 한프리트네 말고 건너편 칼 대장간에 가서 사라."

그다음은 쏜살같았다. 칼 대장장이는 시험 이야기를 묻더니, 기쁜 소식을 듣고는 각별히 멋진 칼을 내주었다. 강 하류 쪽 브뤼엘 다리 아래에는 날씬하고 보기 좋은 오리나무와 개암나무 덤불이 서 있었는데, 그는 거기서 오래 고르고 고른 끝에 흠 하나 없이 질기고 탄력 있는 낚싯대 감을 베어 들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볼이 붉게 달아오르고 눈을 반짝이며 그는 낚시 채비라는 즐거운 일에 달려들었다. 그에게는 그 일이 낚시 자체만큼이나 좋았다. 오후 내내, 저녁 내내 그는 거기에 매달려 앉아 있었다. 하얀 줄, 갈색 줄, 초록색 줄을 가려 놓고 꼼꼼히 살피며 손질했고, 묵은 매듭과 엉킨 데를 하나하나 풀어냈다. 온갖 모양과 크기의 코르크와 깃대를 대어 보거나 새로 깎았고, 무게가 저마다 다른 작은 납 조각을 두드려 동그랗게 만들고 칼집을 내어 줄을 가라앉힐 봉돌로 삼았다. 그다음은 낚싯바늘이었는데, 아직 조금 남아 있었다. 바늘은 더러는 네 겹으로 꼰 검은 바느질 실에, 더러는 남은 창자 현에, 더러는 꼬아 만든 말총 줄에 매었다. 저녁 무렵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고, 한스는 이제 일곱 주나 되는 긴 방학 동안 심심할 일은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낚싯대만 있으면 온종일이라도 혼자 물가에서 보낼 수 있을 테니까.

주

  1. 1. 헤카톰베는 고대 그리스의 큰 제사로, 본디 소 백 마리를 제물로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