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겪어 보면 신학생 학년마다 수도원에서 지내는 네 해 동안 동급생 한둘, 혹은 여럿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따금 누군가 죽어서 노랫소리 속에 땅에 묻히거나,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고향으로 옮겨진다. 이따금 누군가 억지로 뛰쳐나가거나, 남다른 죄 때문에 쫓겨난다. 드물기는 하지만, 그리고 상급반에서만, 어쩔 줄 모르는 어떤 소년이 젊은 날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짧고 어두운 출구를 총 한 방이나 물속으로 뛰어드는 데서 찾는 일도 더러 있다.
한스 기벤라트의 학년에서도 동급생 몇이 사라지게 되어 있었는데, 묘한 우연으로 그들은 모두 헬라스 방 아이들이었다.
헬라스 방 식구 가운데 힌딩거라는 얌전한 금발의 작달막한 아이가 있었다. 별명은 힌두였고, 알고이 땅의 신교도 외톨이 마을 어딘가에 사는 재단사의 아들이었다. 그는 조용한 시민이었고,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입에 오르내렸지만 그때도 그리 많이는 아니었다. 아끼기 잘하는 궁정 연주가 루치우스와 책상을 나란히 쓰는 짝이었으므로 그 아이와 다정하고 수수하게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어울렸을 뿐, 그 밖에는 친구가 없었다. 그가 없어진 뒤에야 헬라스 방 아이들은 자기들이 바라는 것 없는 착한 이웃으로, 툭하면 들끓는 방 생활 속의 한 쉼터로 그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았다.
1월의 어느 날 그는 말 연못으로 나가는 스케이트 패를 따라갔다. 스케이트는 없었고, 그저 한번 구경이나 하려 했다. 그러나 곧 추워져서 몸을 녹이려고 연못가를 쿵쿵 밟으며 돌아다니다가 그만 달리기 시작했고, 들판을 지나 한참 멀리 가다가, 더 따뜻하고 센 샘물 때문에 얼음이 얇게만 언 다른 작은 호수에 이르렀다. 그는 갈대를 헤치고 그쪽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그는 그렇게 작고 가벼운데도 물가 가까이에서 얼음이 깨져 빠졌고, 잠깐 버둥거리며 소리를 지르다가, 아무도 모르게 어둡고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오후 첫 수업이 두 시에 시작되고서야 그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힌딩거는 어디 있나?" 조교가 소리쳤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헬라스 방에 가 보게!"
그러나 거기에도 그의 흔적은 없었다.
"늦는 모양이군. 그 아이 없이 시작하세. 74쪽 7절일세. 하지만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게. 자네들은 시간을 지켜야 하네."
세 시를 쳤는데도 힌딩거가 여전히 보이지 않자 교사는 겁이 나서 원장에게 사람을 보냈다. 원장은 곧 몸소 교실에 나타나 이것저것 캐묻더니, 학생 열 명을 사환과 조교 한 명에게 딸려 찾으러 보냈다. 남은 학생들에게는 받아쓰기 과제가 주어졌다.
네 시에 조교가 노크도 없이 강의실로 들어와 원장에게 귓속말로 보고했다.
"조용히!" 원장이 명령하자, 학생들은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들 동급생 힌딩거가 못에 빠져 죽은 것 같네." 원장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자네들은 이제 그를 찾는 일을 도와야 하네. 마이어 교수가 자네들을 이끌 걸세. 교수가 시키는 대로 어김없이, 한 치도 틀림없이 따라야 하고, 멋대로 움직여서는 절대 안 되네."
아이들은 놀라서 속삭이며 길을 나섰고, 교수가 앞장섰다. 작은 도시에서 사내 몇이 밧줄과 널빤지와 장대를 들고 이 서두르는 행렬에 합류했는데, 날은 지독하게 추웠고 해는 벌써 숲 가장자리에 걸려 있었다.
마침내 소년의 작고 뻣뻣한 몸을 찾아내 눈 덮인 골풀 위에서 들것에 올렸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짙게 내려 있었다. 신학생들은 겁먹은 새들처럼 불안하게 둘러서서 시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파랗게 곱은 손가락을 비볐다. 그리고 물에 빠져 죽은 동급생이 그들 앞에서 들려 가고 그들이 말없이 눈 덮인 들판을 지나 그 뒤를 따를 때에야 비로소, 졸아든 그들의 영혼에 갑자기 소름이 스쳤고, 노루가 적의 냄새를 맡듯 그들은 무서운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처량하게 떨며 가는 그 작은 무리 속에서 한스 기벤라트는 우연히 예전 친구 하일너 곁을 걷게 되었다. 둘은 들판의 같은 둔덕에 걸려 비틀거린 바로 그 순간에 서로 곁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죽음을 본 것이 그를 압도해서 잠시나마 모든 이기심이 덧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스는 뜻밖에 친구의 창백한 얼굴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보자, 까닭 모를 깊은 아픔을 느끼고 갑작스러운 충동에 친구의 손을 잡았다. 하일너는 마뜩잖게 손을 빼고 언짢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고, 곧바로 다른 자리를 찾아 행렬의 맨 뒷줄로 사라졌다.
그러자 모범생 한스는 아픔과 부끄러움으로 가슴이 미어졌고, 얼어붙은 들판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동안 서리에 파래진 뺨 위로 눈물이 한 방울 또 한 방울 흘러내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잊을 수 없고 어떤 뉘우침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와 잘못이 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리고 앞쪽 높이 들린 들것에 누운 것이 재단사의 어린 아들이 아니라 제 친구 하일너이고, 그 친구가 자기의 배신에 대한 아픔과 분노를 멀리 다른 세상으로 가지고 건너가는 것만 같았다. 성적표와 시험과 성공으로 셈하지 않고, 오직 양심이 깨끗한지 더럽혀졌는지로만 셈하는 세상으로.
그사이 행렬은 큰길에 이르렀고, 서둘러 수도원까지 다 왔다. 수도원에서는 원장을 앞세운 교사들이 모두 나와 죽은 힌딩거를 맞았다. 살아서였다면 그런 영광을 생각만 해도 달아났을 아이였다. 교사들은 죽은 학생을 언제나 살아 있는 학생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그럴 때면 그들은 잠시나마 모든 생명과 모든 젊음이 얼마나 값지고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지를 깨닫는다. 평소에는 그토록 자주 아무렇지 않게 그 생명과 젊음에 죄를 짓는 그들이.
저녁에도, 이튿날 하루 내내도, 볼품없는 그 주검이 거기 있다는 것이 마법처럼 모든 행동과 말을 누그러뜨리고 가라앉히고 베일로 감쌌다. 그래서 그 짧은 동안 다툼과 성냄과 소란과 웃음은 숨어 버렸다. 잠시 물속으로 모습을 감추어, 수면을 꼼짝 않고 죽은 듯 고요하게 남겨 두는 물의 요정들 같았다. 둘이 모여 물에 빠져 죽은 아이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별명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온전히 불렀다. 죽은 아이 앞에서는 힌두라는 별명이 점잖지 못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느 때는 눈에 띄지도 않고 불리지도 않은 채 무리 속에 묻혀 있던 조용한 힌두가, 이제는 그 크나큰 수도원을 온통 제 이름과 제 죽음으로 채웠다.
이틀째 되는 날 힌딩거의 아버지가 와서 아들이 누워 있는 작은 방에 몇 시간 동안 혼자 머물렀고, 그러고 나서 원장에게 차 초대를 받았으며, '사슴' 여관에서 묵었다.
그다음은 장례식이었다. 관은 도르멘트에 놓여 있었고, 알고이의 재단사는 그 곁에 서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지독하게 마르고 뾰족한 영락없는 재단사 꼴로,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검은 나들이 연미복에 몸에 꼭 끼는 초라한 바지를 입고, 손에는 옛 민병대 시절의 낡은 예모를 들고 있었다. 작고 여윈 그의 얼굴은 바람 앞의 한 푼짜리 양초처럼 근심스럽고 슬프고 허약해 보였고, 그는 원장과 교수 나리들 앞에서 줄곧 어쩔 줄 몰라 하며 우러렀다.
관을 멘 사람들이 관을 들어 올리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슬픈 그 작은 사내는 한 번 더 앞으로 나와 쑥스럽고 수줍은 다정한 손길로 관 뚜껑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눈물을 참으며 어쩔 줄 모르고, 크고 고요한 방 한가운데 겨울날의 메마른 어린나무처럼 너무도 버림받고 희망 없이 내던져진 채 서 있어서 차마 보기 딱했다. 목사가 그의 손을 잡고 곁에 있어 주자, 그는 기묘하게 휘어진 실크해트를 쓰고 맨 앞에 서서 관을 따라갔다. 계단을 내려가, 수도원 마당을 지나, 오래된 문을 지나, 하얀 들판을 건너 나지막한 묘지 담장 쪽으로. 무덤가에서 신학생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동안, 지휘하던 음악 교사에게는 언짢게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박자를 젓는 그의 손이 아니라 작달막한 재단사의 외롭고 바람에 날릴 듯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슬프고 얼어붙은 채 눈 속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목사와 원장과 수석 학생의 추도사를 들으며, 노래하는 학생들에게 넋 나간 듯 고개를 끄덕이고, 이따금 왼손으로 웃옷 자락 속에 감춘 손수건을 더듬어 찾았지만 끝내 꺼내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 우리 아버지가 저렇게 서 계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 나중에 오토 하르트너가 말했다. 그러자 모두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어."
나중에 원장이 힌딩거의 아버지를 데리고 헬라스 방에 왔다. "자네들 가운데 고인과 특히 가까웠던 사람이 있나?" 원장이 방 안에 대고 물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힌두의 아버지는 겁먹고 비참한 눈으로 젊은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루치우스가 앞으로 나오자, 힌딩거의 아버지는 그 손을 잡고 잠깐 꼭 쥐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곧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다시 나갔다. 그러고 나서 그는 길을 떠났다. 집에 닿아 아내에게 그들의 카를이 이제 어떤 작은 곳에 누워 있는지 이야기해 주기까지, 그는 꼬박 하루 긴 날을 환한 겨울 땅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수도원에서는 곧 그 마법이 다시 풀렸다. 교사들은 다시 꾸짖었고, 문은 다시 쾅쾅 닫혔으며, 사라진 헬라스 방 아이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몇몇은 그 슬픈 못가에 오래 서 있다가 감기에 걸려 병실에 누워 있거나, 펠트 실내화를 신고 목에 붕대를 감고 돌아다녔다. 한스 기벤라트는 목도 발도 멀쩡했지만, 그 불행한 날 이후로 더 진지하고 나이 들어 보였다.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달라졌다. 소년이 젊은이가 되었고, 그의 영혼은 말하자면 다른 나라로 옮겨져서, 거기서 불안하게, 낯설게 이리저리 날갯짓을 하며 아직 쉴 곳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만든 것은 죽음의 공포도, 착한 힌두를 잃은 슬픔도 아니었다. 오로지 하일너에게 지은 잘못을 갑자기 깨달은 탓이었다.
하일너는 다른 두 아이와 함께 병실에 누워 뜨거운 차를 삼켜야 했고, 힌딩거의 죽음에서 받은 인상들을 정리해 두었다가 나중에 시를 지을 때 쓰려고 갈무리할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일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비참하고 괴로워 보였고, 함께 앓는 아이들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다시피 했다. 감금 처분 이후 억지로 떠안은 외로움은, 예민하고 남과 마음을 나누어야 할 때가 잦은 그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그를 쓰라리게 만들었다. 교사들은 그를 불만에 찬 혁명가 머리로 여기고 엄하게 감시했고, 학생들은 그를 피했으며, 사환은 빈정거리는 선량함으로 그를 대했고, 그의 친구 셰익스피어와 실러와 레나우는 그를 짓누르고 모욕하며 둘러싼 세상보다 더 힘차고 더 웅대한 다른 세상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처음에는 은자의 우울한 가락에만 맞춰져 있던 「수도사의 노래」는 차츰 수도원과 교사들과 동급생들을 겨냥한 쓰라리고 심술궂은 시의 모음이 되었다. 그는 외로움 속에서 시큼한 순교자의 즐거움을 맛보았고, 아무도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흡족해했으며, 사정없이 불경스러운 수도사 시를 쓰면서 자기가 작은 유베날리스1가 된 것 같았다.
장례식이 있고 일주일 뒤, 두 동급생은 나아서 나가고 하일너 혼자 병실에 남아 있을 때 한스가 그를 찾아갔다. 그는 수줍게 인사하고 의자를 침대 곁으로 가져와 앉더니 환자의 손을 잡았지만, 하일너는 마뜩잖게 벽 쪽으로 돌아누워 도무지 곁을 주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예전 친구가 자기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하일너는 짜증스럽게 입술을 비죽였다.
"대체 원하는 게 뭐야?"
한스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내 말 좀 들어." 한스가 말했다. "그때 나는 비겁했고 너를 내버려 뒀어. 하지만 넌 내가 어떤지 알잖아. 신학교에서 늘 앞자리에 있고, 될 수 있으면 아예 1등이 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었어. 넌 그걸 공부벌레 노릇이라고 했지.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그냥 내 나름의 이상이었어. 그보다 나은 걸 몰랐으니까."
하일너는 눈을 감고 있었고, 한스는 아주 나직이 말을 이었다. "있지, 미안해. 네가 다시 내 친구가 되어 줄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날 용서는 해 줘야 해."
하일너는 입을 다문 채 눈을 뜨지 않았다. 그의 안에 있는 선하고 기쁜 것은 모두 친구를 향해 웃고 있었지만, 그는 이제 퉁명스럽고 외로운 사람 역할에 익숙해져 있어서 당분간은 적어도 그 가면만은 얼굴에 쓰고 있었다. 한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야 해, 하일너! 차라리 꼴찌가 될래. 이렇게 언제까지나 네 둘레를 맴도느니. 네가 좋다면 우린 다시 친구야. 다른 애들한테 우린 걔들이 필요 없다는 걸 보여 주자."
그러자 하일너가 그의 손을 마주 잡고 눈을 떴다.
며칠 뒤 하일너도 침대를 털고 병실을 나왔고, 새로 구워 낸 이 우정을 두고 수도원에서는 적지 않은 소동이 일었다. 그러나 두 아이에게는 이제 묘한 몇 주가 찾아왔다. 이렇다 할 사건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행복한 한 식구라는 느낌과 말 없는 남모를 마음의 일치로 가득한 나날이었다. 예전과는 무언가 달랐다. 몇 주 동안 떨어져 지낸 것이 둘을 바꾸어 놓았다. 한스는 더 다정하고 따뜻하고 열에 들뜨게 되었고, 하일너는 더 힘차고 사내다운 모습을 띠게 되었다. 둘 다 그동안 서로를 너무나 그리워했던 터라, 다시 하나가 된 것이 큰 사건이자 귀한 선물처럼 느껴졌다.
일찍 여문 두 소년은 우정 속에서, 예감 어린 수줍음으로, 첫사랑의 섬세한 비밀을 저도 모르게 조금 미리 맛보았다. 거기에 더해 그들의 동맹에는 무르익어 가는 사내다움의 떫은 매력이 있었고, 그에 못지않게 떫은 양념으로 동급생 전체에 맞서는 반항심이 있었다. 동급생들에게 하일너는 여전히 밉살스러웠고 한스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아이였으며, 그들이 맺은 숱한 우정은 그때만 해도 모두 아직 해롭지 않은 소년들의 장난이었다.
한스가 우정에 더 깊이, 더 행복하게 매달릴수록 학교는 그에게 낯설어졌다. 새로운 행복감이 햇포도주처럼 그의 핏속과 생각 속을 끓어오르며 지나갔고, 그 곁에서 리비우스도 호메로스도 중요성과 빛을 잃었다. 그런데 교사들은 지금까지 흠잡을 데 없던 학생 기벤라트가 문제 많은 아이로 바뀌어, 수상쩍은 하일너의 나쁜 영향에 넘어간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교사들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그러잖아도 위태로운 나이, 젊음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나이에 일찍 자란 소년들의 기질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들이다. 하일너는 예전부터 어떤 천재 기질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그들에게 섬뜩한 아이였다. 천재와 교사 동업 조합 사이에는 예로부터 깊은 골이 굳게 패어 있고, 학교에서 그런 사람의 낌새가 보이면 교수들에게는 처음부터 질색할 일이다. 그들에게 천재란 그들을 조금도 존경하지 않는 못된 아이들, 열네 살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고, 열다섯에 사랑에 빠지고, 열여섯에 술집에 드나들며, 금서를 읽고 건방진 작문을 쓰고 이따금 선생을 빈정대며 노려보고, 학적부에 반항아이자 감금실 후보로 오르는 아이들이다. 훈장은 제 반에 천재 하나를 두느니 소문난 당나귀 열을 두고 싶어 하는데, 따지고 보면 그 말도 옳다. 그의 과제는 엉뚱한 정신을 길러 내는 것이 아니라, 라틴어 잘하고 셈 잘하는 착실한 사람들을 길러 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상대에게서 더 많이, 더 무겁게 괴로움을 당하는지, 교사가 소년에게서인지 그 반대인지, 둘 가운데 누가 더 폭군이고 누가 더 사람을 들볶는 귀신인지, 둘 가운데 누가 상대의 영혼과 삶의 한 부분을 망치고 더럽히는지, 그것은 쓰라려지지 않고서는, 분노와 부끄러움 없이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지 않고서는 따져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며, 우리에게는 위안이 있다. 참된 천재들은 거의 언제나 상처가 잘 아물고, 학교에 아랑곳없이 훌륭한 작품을 지어내는 사람이 되며, 훗날 죽어서 아득한 거리가 주는 기분 좋은 후광에 둘러싸이면, 다른 세대의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의 훈장들이 자랑거리이자 고귀한 본보기로 내보이는 사람이 된다. 그리하여 학교마다 법과 정신이 싸우는 연극이 되풀이되고, 우리는 거듭거듭 국가와 학교가 해마다 나타나는, 더 깊고 더 값진 몇 안 되는 정신을 때려죽이고 뿌리째 꺾으려고 숨 가쁘게 애쓰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거듭거듭 나중에 우리 민족의 보물을 늘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훈장들에게 미움받던 아이들, 자주 벌받고 달아나고 쫓겨난 아이들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그 수가 얼마나 될지 누가 알겠는가?) 말없는 반항 속에 스스로를 태우다가 스러진다.
좋고 오래된 학교의 원칙에 따라, 이 두 별난 젊은이에게도 무언가 수상한 냄새가 나자마자 사랑이 아니라 엄격함이 곱절이 되었다. 다만 한스를 가장 부지런한 히브리어 학생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던 원장만은 서투르게나마 그를 건져 보려 했다. 원장은 그를 집무실로 불렀다. 옛 수도원장 거처의, 돌출창이 달린 그림 같은 아름다운 방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가까운 크니틀링겐에서 태어난 파우스트 박사2가 그곳에서 엘핑거 포도주를 여러 잔 즐겼다고 한다. 원장은 모난 사람이 아니었다. 통찰력과 실제적인 지혜도 모자라지 않았고, 즐겨 말을 놓던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선량한 호의까지 품고 있었다. 그의 가장 큰 결점은 지독한 허영심이었다. 그 허영심은 그를 교단에서 자주 허풍스러운 재주 부리기로 이끌었고, 제 권력과 권위가 조금이라도 의심받는 꼴을 참지 못하게 했다. 그는 어떤 반론도 견디지 못했고,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줏대 없거나 정직하지 못한 학생들은 그와 아주 잘 지냈지만, 바로 굳세고 정직한 아이들은 힘들었다. 아주 살짝 내비친 반대에도 그는 사나워지고 부당해졌기 때문이다. 격려하는 눈길과 감동한 목소리로 아버지 같은 친구 노릇을 하는 데는 그가 거장이었고, 지금도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게, 기벤라트." 쭈뼛거리며 들어온 소년의 손을 힘주어 잡아 흔든 뒤 원장이 다정하게 말했다.
"자네와 이야기를 좀 하고 싶네. 그런데 말을 놓아도 되겠나?"
"네, 그러십시오, 원장님."
"기벤라트, 너도 느꼈겠지만 요즘 네 성적이 좀 떨어졌다. 적어도 히브리어는 그래. 너는 지금까지 우리 학교에서 히브리어를 가장 잘하는 학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갑자기 처지는 것을 보니 안타깝구나. 혹시 히브리어에 더는 별 재미를 못 느끼는 거냐?"
"아닙니다, 재미있습니다, 원장님."
"잘 생각해 봐라! 그런 일도 있는 법이다. 혹시 다른 과목에 유난히 마음을 쏟고 있는 거냐?"
"아닙니다, 원장님."
"정말 아니냐? 그렇다면 다른 까닭을 찾아봐야겠구나. 실마리를 좀 줄 수 있겠니?"
"모르겠습니다… 숙제는 늘 다 해 왔습니다…"
"물론이지, 얘야, 물론이지. 하지만 같아 보여도 구별해야 할 것이 있는 법이야. 숙제야 당연히 했겠지. 그건 네 의무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너는 전에는 더 많이 해냈다. 아마 더 부지런했을 테고, 어쨌든 더 큰 관심을 기울여 공부했지. 그래서 네 열성이 이렇게 갑자기 식은 까닭이 어디 있는지 궁금하구나. 설마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아니면 두통이 나느냐? 하기야 혈색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구나."
"네, 이따금 두통이 납니다."
"날마다 하는 공부가 너무 많으냐?"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면 따로 책을 많이 읽느냐? 솔직하게 말해 봐라!"
"아닙니다. 거의 아무것도 읽지 않습니다, 원장님."
"그렇다면 잘 모르겠구나, 젊은 친구. 어딘가 탈이 났을 텐데. 앞으로 제대로 애써 보겠다고 약속하겠니?"
한스는 엄숙하고도 온화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권력자가 내민 오른손에 제 손을 얹었다.
"그래, 그래야지, 얘야. 그저 지치지만 마라. 지치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고 만다."
원장은 한스의 손을 꼭 쥐었고, 한스는 한숨을 돌리며 문 쪽으로 갔다. 그때 원장이 그를 다시 불렀다.
"하나 더 있다, 기벤라트. 너 하일너하고 많이 어울리지?"
"네, 꽤 많이 어울립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아니냐?"
"네, 그렇습니다. 제 친구입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느냐? 너희 둘은 사실 성질이 아주 딴판이잖니."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 친구입니다."
"알다시피 나는 네 친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아이는 불만 많고 들뜬 정신이야. 재주는 있을지 모르지만, 해내는 것이 없고 너한테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네가 그 아이를 좀 더 멀리했으면 정말 좋겠구나. 어떠냐?"
"그럴 수 없습니다, 원장님."
"그럴 수 없다고? 아니, 대체 왜?"
"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 애를 그냥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흠. 하지만 다른 아이들하고도 좀 더 어울릴 수 있지 않느냐? 이 하일너의 나쁜 영향에 그렇게 빠져 있는 건 너 하나뿐이고, 그 결과는 우리가 벌써 보고 있다. 대체 그 아이의 무엇이 그렇게 너를 붙잡는 거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서로 좋아하고, 그 애를 버리는 건 비겁한 짓일 겁니다."
"그래, 그래. 뭐, 억지로 시키지는 않으마. 하지만 차츰 그 아이한테서 떨어져 나오기를 바란다. 그러면 좋겠구나. 정말 좋겠어."
마지막 말에는 아까의 온화함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한스는 가도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다시 공부에 매달려 애를 썼다. 물론 예전처럼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너무 뒤처지지 않으려고 힘겹게 따라가는 정도였다. 그것이 얼마간 우정 탓이라는 것은 그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그 우정을 손실이나 걸림돌로 보지 않고, 오히려 놓친 모든 것을 메우고도 남는 보물로 보았다. 예전의 메마른 의무의 나날과는 견줄 수도 없는, 더 높고 더 따뜻한 삶이었다. 그는 사랑에 빠진 젊은이들과 같았다. 위대한 영웅의 행동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날마다 되풀이되는 따분하고 자잘한 공부는 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며 거듭 멍에를 졌다. 대충대충 공부하면서 꼭 필요한 것만 빠르게, 거의 억지로 서둘러 머리에 넣는 하일너를 따라 할 줄은 몰랐다. 친구가 거의 저녁마다 쉬는 시간에 그를 붙들어 두었으므로, 그는 아침에 억지로 한 시간 일찍 일어났고, 특히 히브리어 문법과는 원수와 싸우듯 씨름했다. 그가 아직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사실 호메로스와 역사 시간뿐이었다. 그는 어렴풋이 더듬는 느낌으로 호메로스의 세계를 알아 가기 시작했고, 역사 시간에는 영웅들이 차츰 이름과 숫자이기를 그치고, 가까이에서 이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 있는 붉은 입술을 지니고, 저마다 제 얼굴과 제 손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이는 붉고 두툼하고 거친 손을, 어떤 이는 고요하고 차갑고 돌 같은 손을, 또 어떤 이는 가늘고 뜨겁고 핏줄이 섬세하게 비치는 손을.
그리스어 원문으로 복음서를 읽을 때도 그는 이따금 인물들이 또렷하고 가깝게 다가오는 데 놀라고, 아니 압도당하곤 했다. 특히 한번은 마가복음 6장을 읽을 때였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배에서 내리는 대목인데,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에우튀스 에피그논테스 아우톤 페리에드라몬(εὐθὺς ἐπιγνόντες αὐτὸν περιέδραμον). "그들은 곧 그를 알아보고 달려왔다." 그러자 그도 인자(人子)가 배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고, 곧 그를 알아보았다. 모습이나 얼굴로가 아니라, 사랑 가득한 눈의 크고 빛나는 깊이와, 섬세하면서도 강한 영혼이 빚고 깃든 듯한 가늘고 아름다운 갈색 손이 나직이 손짓하는, 아니 오라고 부르며 반기는 몸짓으로 알아보았다. 물결이 이는 물가와 무거운 거룻배의 뱃머리가 잠깐 함께 떠올랐다가, 그 광경 전체가 겨울날 피어오르는 입김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따금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났다. 책 속에서 어떤 인물이나 역사의 한 토막이 말하자면 걸신들린 듯 튀어나와, 한 번 더 살고 싶어 하고 살아 있는 눈에 제 눈길을 비추고 싶어 했다. 한스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의아해했다. 언제나 벌써 다시 달아나고 있는 그 재빠른 환영들 앞에서 그는 자기가 깊고 기이하게 바뀌는 것을 느꼈다. 검은 땅을 유리처럼 꿰뚫어 본 것 같기도 했고, 하느님이 자기를 바라본 것 같기도 했다. 이 귀한 순간들은 부르지 않아도 찾아왔고,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 사이에 사라졌다. 순례자나 다정한 손님처럼. 둘레에 무언가 낯설고 신성한 기운이 서려 있어서, 감히 말을 걸지도 머물러 달라고 붙잡지도 못하는 그런 손님들처럼.
그는 이런 체험을 혼자 간직했고 하일너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일너에게서는 예전의 우울이 들뜨고 날카로운 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정신은 수도원과 교사와 동급생, 날씨와 인생과 하느님의 존재를 두고 비판을 늘어놓았고, 이따금 싸움 거는 버릇이나 갑작스럽고 멍청한 장난으로 번지기도 했다. 어차피 따로 떨어져 다른 아이들과 맞서 있는 처지였으므로, 그는 앞뒤 가리지 않는 자존심으로 이 맞섬을 고집스럽고 적대적인 관계로 아예 날카롭게 벼리려 했다. 기벤라트도 그것을 막으려 하지 않은 채 그 관계에 함께 휘말려 들었고, 그리하여 두 친구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눈에 띄고 미움 섞인 눈총을 받는 섬처럼 놓이게 되었다. 한스는 그러는 동안 차츰 덜 불편해졌다. 원장만 없었으면 좋으련만. 원장 앞에서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예전에는 원장이 가장 아끼던 학생이었는데, 이제는 차갑게 대접받고 뚜렷한 의도로 무시당했다. 그리고 하필이면 원장의 전공 과목인 히브리어에 그는 차츰 흥미를 몽땅 잃었다.
몇 안 되는 제자리걸음을 빼면, 신학생 마흔 명이 불과 몇 달 만에 몸도 마음도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는 것은 재미있었다. 많은 아이가 옆으로는 살이 붙지 못한 채 위로만 부쩍 자랐고, 따라 자라지 못한 옷 밖으로 팔목과 발목을 희망차게 내밀었다. 얼굴들은 사그라지는 어린 티와 머뭇머뭇 뽐내기 시작한 사내다움 사이의 온갖 빛깔을 다 보여 주었다. 아직 몸에 성장기의 모난 꼴이 없는 아이도, 모세의 책들을 공부한 덕에 적어도 매끈한 이마에는 임시로나마 사내다운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 볼 통통한 아이는 그야말로 희귀해졌다.
한스도 달라졌다. 키와 여윈 정도는 이제 하일너와 맞먹었고, 아니 오히려 하일너보다 나이 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예전에는 여리게 비쳐 보이던 이마의 모서리가 두드러졌고, 눈은 더 깊이 들어갔으며, 얼굴빛은 건강하지 못했고, 팔다리와 어깨는 뼈가 앙상하게 말랐다.
학교 성적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수록, 그는 하일너의 영향을 받아 더 모질게 동급생들과 담을 쌓았다. 모범생이자 앞날의 수석으로서 그들을 내려다볼 까닭이 이제 없었으므로, 그 거만함은 그에게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다들 그것을 그에게 내비친다는 것, 그리고 그 자신도 속으로 그것을 아프게 느낀다는 것을 그는 그들에게 용서하지 않았다. 특히 흠잡을 데 없는 하르트너와 건방진 오토 벵거와는 여러 번 다툼이 있었다. 벵거가 어느 날 또 그를 비웃고 약을 올리자, 한스는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대꾸했다. 심한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벵거는 겁쟁이였지만 허약한 상대쯤은 쉽게 해치울 수 있었으므로 사정없이 두들겼다. 하일너는 그 자리에 없었고, 다른 아이들은 한가하게 구경하며 한스가 혼나는 것을 고소해했다. 한스는 그야말로 흠씬 두들겨 맞아 코피가 나고 갈비뼈가 모조리 아팠다. 그는 부끄럽고 아프고 분해서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이 일을 친구에게 숨겼지만, 이제부터 엄하게 담을 쌓고 같은 방 친구들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다시피 했다.
봄이 가까워지자, 비 오는 한낮과 비 오는 일요일과 긴 땅거미의 영향으로 수도원 생활에 새로운 모임과 움직임이 나타났다. 솜씨 좋은 피아노 연주자 하나와 플루트 부는 아이 둘이 사는 아크로폴리스 방은 정기 음악의 밤을 두 가지 열었고, 게르마니아 방에서는 희곡 낭독회가 문을 열었으며, 젊은 경건주의자 몇은 성경 모임을 차려 저녁마다 성경 한 장을 칼프 성경의 주해와 함께 읽었다.
하일너는 게르마니아 방의 낭독회에 회원으로 들겠다고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는 분해서 펄펄 끓었다. 앙갚음으로 그는 이번에는 성경 모임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그를 원하지 않았지만 그는 억지로 끼어들었고, 대담한 말과 불경한 빗댐으로 그 수수한 작은 형제단의 경건한 대화에 다툼과 불화를 몰고 왔다. 그는 곧 이 장난에도 싫증이 났지만, 성경을 비꼬는 말투만은 한동안 더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학년 전체가 이제 일을 벌이고 무언가를 세우려는 기운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입에 오르내린 것은 재능 있고 재치 있는 스파르타 방 아이 하나였다. 그 아이에게는 제 이름을 날리는 것 다음으로는 오로지 이 소굴에 생기를 좀 불어넣고, 갖가지 재치 있는 장난으로 단조로운 공부 생활에서 자주 숨을 돌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의 별명은 둔스탄이었고, 그는 소동을 일으켜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리는 기발한 길을 찾아냈다.
어느 날 아침 학생들이 침실에서 나오다가 세면실 문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스파르타에서 온 경구시 여섯 편」이라는 제목 아래, 눈에 띄는 동급생 몇을 골라 그들의 어리석은 짓과 장난과 우정을 이행시로 재치 있게 비웃은 글이었다. 기벤라트와 하일너 짝도 한 방 먹었다. 이 작은 나라에 엄청난 소동이 일었다. 아이들은 극장 입구에 몰리듯 그 문 앞에 몰려들었고, 온 무리가 여왕벌이 날아오를 채비를 하는 벌 떼처럼 웅웅거리고 밀치고 수군거렸다.
이튿날 아침에는 문 전체가 경구시와 풍자 이행시로 뒤덮여 있었다. 응수하는 시, 맞장구치는 시, 새로 공격하는 시였다. 그러나 이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은 거기에 다시 끼어들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헛간에 불씨를 던져 넣겠다는 목적을 이루었으니 그는 손을 비비며 흐뭇해했다. 이제 며칠 동안 거의 모든 학생이 풍자시 싸움에 뛰어들었다. 저마다 이행시 한 수를 궁리하며 생각에 잠겨 돌아다녔고, 아마 루치우스만이 여느 때처럼 아랑곳없이 제 공부를 했을 것이다. 마침내 한 교사가 이것을 알아차리고 이 들뜬 놀이를 더는 하지 못하게 막았다.
꾀 많은 둔스탄은 얻은 명성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사이에 그는 큰 한 방을 준비해 두었다. 이제 그는 신문 창간호를 냈다. 초안 용지에 아주 작은 판형으로 등사한 것으로, 몇 주 전부터 거기에 실을 거리를 모아 두었다. 제목은 『호저』였고, 주로 우스개 신문이었다. 여호수아서를 쓴 사람과 마울브론 신학생이 주고받는 유쾌한 대화가 창간호의 백미였다. 신문은 방마다 두 부씩 공짜로 돌렸고, 앞으로는 한 주에 두 번 나오며 값은 5페니히라고 했다. 수익금은 놀이 기금으로 쓰기로 했다.
성공은 대단했다. 이제 바쁜 편집자이자 발행인의 표정과 몸가짐을 갖춘 둔스탄은, 수도원에서 한때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저 이름난 아레티노3가 누렸던 것과 거의 같은 아슬아슬한 평판을 누렸다.
헤르만 하일너가 열정적으로 편집에 끼어들어 둔스탄과 함께 날카로운 풍자 검열관 노릇을 하자 모두가 놀랐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재치도 독기도 모자라지 않았다. 네 주쯤 이 작은 신문은 온 수도원을 숨죽이게 했다.
기벤라트는 친구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 자신은 거기 끼어들 마음도 재주도 없었다. 처음에는 하일너가 요즘 들어 저녁을 그렇게 자주 스파르타 방에서 보낸다는 것조차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얼마 전부터 다른 일들이 그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낮이면 그는 굼뜨고 멍하니 돌아다녔고, 느릿느릿 마지못해 공부했으며, 한번은 리비우스 시간에 묘한 일을 겪었다.
교수가 그를 불러 번역을 시켰다. 그는 앉은 채로 있었다.
"무슨 짓인가? 왜 일어서지 않나?" 교수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한스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 꼿꼿이 앉아 고개를 조금 숙이고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부르는 소리에 꿈에서 반쯤 깨어나기는 했지만, 교사의 목소리는 아주 먼 데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옆자리 아이가 그를 세게 쿡쿡 찌르는 것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그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다른 손들이 그를 만지고 다른 목소리들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가깝고 나직하고 깊은 목소리들이었는데, 그 목소리들은 낱말을 말하지 않고 샘물 소리처럼 깊고 부드럽게 웅얼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많은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낯설고 무언가를 예감하는 듯한, 크고 빛나는 눈들이었다. 어쩌면 방금 리비우스에서 읽은 로마 군중의 눈일지도 몰랐고, 어쩌면 꿈에서 보았거나 언젠가 그림에서 본 낯모르는 사람들의 눈일지도 몰랐다.
"기벤라트!" 교수가 소리를 질렀다. "자고 있는 건가?"
학생은 천천히 눈을 뜨고 놀란 듯 교사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자고 있었군! 아니면 우리가 어느 문장을 하고 있는지 말해 보겠나? 어서?"
한스는 손가락으로 책을 가리켰다. 어디를 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이제 일어서 주시기라도 하겠나?" 교수가 비웃듯 물었다. 그러자 한스는 일어섰다.
"대체 무슨 짓인가? 나를 보게!"
한스는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교수는 그 눈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의아한 듯 고개를 저었다.
"어디 몸이 안 좋은가, 기벤라트?"
"아닙니다, 교수님."
"도로 앉게. 수업 끝나고 내 방으로 오게."
한스는 앉아서 리비우스 책 위로 몸을 구부렸다. 그는 완전히 깨어 있어서 모든 것을 알아들었지만, 동시에 마음의 눈은 그 많은 낯선 형상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형상들은 천천히 아득한 곳으로 멀어지면서도 빛나는 눈을 줄곧 그에게로 향하고 있다가, 마침내 저 멀리 안개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와 함께 교사의 목소리와 번역하는 학생의 목소리, 교실의 온갖 자잘한 소리가 점점 다가오더니, 마침내 여느 때처럼 다시 생생하게 눈앞에 있었다. 의자와 교단과 칠판이 늘 그렇듯 거기 있었고, 벽에는 커다란 나무 컴퍼스와 삼각자가 걸려 있었으며, 둘레에는 동급생들이 모두 앉아 있었는데, 그 가운데 많은 아이가 호기심 어린 뻔뻔한 눈으로 그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그러자 한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수업 끝나고 내 방으로 오게."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맙소사,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업이 끝나자 교수는 그에게 손짓을 하고, 눈을 휘둥그레 뜬 동급생들 사이로 그를 데리고 나갔다.
"자, 말해 보게. 대체 무슨 일이었나? 그러니까 잔 건 아니라는 건가?"
"아닙니다."
"내가 불렀을 때 왜 일어서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내 말을 못 들었나? 귀가 어두운가?"
"아닙니다.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일어서지 않았다? 그 뒤에도 눈빛이 아주 이상하더군. 대체 무슨 생각을 했나?"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 일어서려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일어서지 않았나? 그러니까 역시 몸이 안 좋았던 건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통이 났나?"
"아닙니다."
"됐네. 가 보게."
점심 전에 그는 다시 불려 나가 침실로 끌려갔다. 거기서 원장이 군청 의사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진찰을 받고 이것저것 질문을 받았지만,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는 사람 좋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신경이 좀 탈이 난 겁니다, 원장님." 의사가 부드럽게 킬킬거렸다. "잠깐 기력이 떨어진 상태지요. 가벼운 어지럼증 같은 겁니다. 이 젊은이가 날마다 바깥바람을 쐬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 두통에는 물약을 몇 방울 처방해 드리지요."
그때부터 한스는 날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한 시간씩 바깥에 나가야 했다. 그는 싫지 않았다. 더 고약하게도 원장은 이 산책에 하일너가 따라가는 것을 딱 잘라 금했다. 하일너는 펄펄 뛰며 욕을 했지만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스는 늘 혼자 산책을 나갔고, 거기서 얼마간 즐거움을 찾았다.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둥글고 아름답게 솟은 언덕들 위로 움트는 초록이 엷고 밝은 물결처럼 번져 갔고, 나무들은 날카로운 윤곽의 갈색 그물 같은 겨울 모습을 벗어 버리고, 어린잎의 아롱거림으로 서로 어우러지고 풍경의 빛깔 속으로 녹아들어, 끝없이 흘러가는 살아 있는 초록의 큰 물결이 되었다.
예전 라틴어 학교 시절에 한스는 봄을 이번과 다르게 바라보았다. 더 생기 있고 더 호기심에 차서, 더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돌아오는 새들을 한 종류 한 종류 지켜보았고, 나무에 꽃이 피는 차례를 보았으며, 그러다 5월이 되자마자 낚시를 시작했다. 이제 그는 새의 종류를 가려내거나 꽃눈으로 덤불을 알아보려 애쓰지 않았다. 그저 온통 피어나는 움직임과 곳곳에서 돋아나는 빛깔을 보고, 어린잎의 냄새를 들이마시고, 더 부드럽고 들끓는 공기를 느끼며, 의아한 마음으로 들판을 걸어갈 뿐이었다. 그는 곧 피곤해졌고, 늘 눕고 싶고 잠들고 싶었으며, 거의 끊임없이 실제로 자기를 둘러싼 것과는 다른 온갖 것들을 보았다.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는 그 자신도 몰랐고, 그것을 곰곰이 따져 보지도 않았다. 그것은 밝고 여리고 낯선 꿈들이었다. 그 꿈들은 초상화처럼, 혹은 낯선 나무들이 늘어선 가로수 길처럼 그를 둘러싸고 서 있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순수한 그림들이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것 또한 하나의 체험이었다. 그것은 다른 고장과 다른 사람들에게로 데려가지는 일이었다. 낯선 땅, 부드럽고 밟기 좋은 땅 위를 거니는 일이었고, 낯선 공기, 가볍고 섬세한 꿈의 향신료가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일이었다. 그 그림들 대신 이따금 어떤 느낌이 찾아오기도 했다. 어둡고 따뜻하고 설레는 느낌, 가벼운 손 하나가 부드럽게 그의 몸을 쓸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책을 읽고 공부할 때 한스는 정신을 모으기가 몹시 힘들었다. 관심 없는 것은 그림자처럼 그의 손 밑에서 빠져나갔고, 히브리어 낱말은 수업 시간에 기억하고 있으려면 마지막 반 시간에야 외워야 했다. 그러나 읽는 동안 묘사된 모든 것이 갑자기 눈앞에 서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 몸으로 만져질 듯한 그 환영의 순간들은 자주 찾아왔다. 그 환영은 바로 곁에 있는 것들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실제 같았다. 그리고 기억력이 더는 아무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거의 날마다 더 굼뜨고 불안해진다는 것을 절망 속에 알아차리는 동안, 이따금 오래된 기억들이 섬뜩할 만큼 또렷하게 그를 덮쳤고, 그것이 그에게는 기묘하고 두려웠다. 수업 도중이나 책을 읽다가 이따금 아버지나 늙은 안나, 또는 예전 선생이나 옛 동급생 가운데 누군가가 떠올라, 눈앞에 보이듯 서서 한동안 그의 주의를 송두리째 사로잡았다. 슈투트가르트에 머물던 때와 주 시험과 방학의 장면들도 몇 번이고 다시 겪었고, 낚싯대를 들고 강가에 앉아 햇볕 받은 물에서 피어오르는 냄새를 맡는 자기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꿈꾸는 그 시절이 까마득히 긴 세월 저편에 있는 것만 같았다.
미지근하고 축축하고 캄캄한 어느 저녁, 그는 하일너와 함께 도르멘트를 이리저리 거닐며 집 이야기, 아버지 이야기, 낚시 이야기, 학교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눈에 띄게 말이 없었다. 그는 한스가 말하게 내버려 두고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루 온종일 손에서 놓지 못하던 작은 자로 생각에 잠겨 허공을 몇 번 내리쳤다. 차츰 한스도 말이 없어졌다. 밤이 되었고, 둘은 창턱에 걸터앉았다.
"있지, 한스?" 마침내 하일너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들떠 있었다.
"왜?"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 말해 봐!"
"그냥 생각했는데… 네가 이것저것 얘기하길래…"
"뭘?"
"말해 봐, 한스. 너 여자애 꽁무니 따라다녀 본 적 한 번도 없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이야기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한스는 그것이 두려웠지만, 그래도 그 수수께끼 같은 땅은 동화 속 정원처럼 그를 끌어당겼다. 그는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고, 손가락이 떨렸다.
"딱 한 번." 그가 속삭였다. "그땐 아직 멍청한 꼬마였어."
다시 침묵.
"…그럼 너는, 하일너?"
하일너는 한숨을 쉬었다.
"아, 그만둬! 있지, 그런 얘긴 아예 안 하는 게 좋아. 해 봤자 아무 소용 없거든."
"아니야, 해 봐."
"…나, 애인 있어."
"네가? 정말이야?"
"고향에. 이웃집 애야. 그리고 이번 겨울에 그 애한테 입맞춤을 해 줬어."
"입맞춤을…?"
"응. 있지, 벌써 어두웠어. 저녁에, 얼음판에서 말이야. 그 애가 스케이트 벗는 걸 내가 도와줘도 됐거든. 그때 입맞춤을 해 줬어."
"그 애가 아무 말도 안 했어?"
"말은 안 했어. 그냥 달아나 버렸지."
"그래서?"
"그래서라니! …아무 일도 없었어."
그는 다시 한숨을 쉬었고, 한스는 금지된 정원에서 돌아온 영웅을 보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종이 울렸다. 잘 시간이었다. 등불이 꺼지고 모두가 잠잠해진 뒤에도 한스는 침대에 누워 한 시간 넘게 잠들지 못하고, 하일너가 애인에게 해 준 입맞춤을 생각했다.
이튿날 그는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부끄러웠고, 하일너는 한스가 묻지 않으니 제 쪽에서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기가 쑥스러웠다.
학교에서 한스의 처지는 점점 나빠졌다. 교사들은 언짢은 얼굴을 짓고 이상한 눈길을 쏘아 보내기 시작했고, 원장은 어둡고 성난 얼굴이었으며, 동급생들도 기벤라트가 높은 자리에서 내려앉아 수석을 노리기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진작 알아차렸다. 하일너만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자신에게 학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스 자신은 모든 것이 일어나고 바뀌는 것을 보면서도 거기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사이 하일너는 신문 편집에 싫증이 나서 온전히 친구에게로 돌아왔다. 금지령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몇 번이나 한스의 날마다의 산책에 따라나서서, 함께 햇볕 아래 누워 꿈꾸고, 시를 읽어 주거나 원장을 두고 농담을 했다. 한스는 하일너가 연애 모험담을 계속 털어놓아 주기를 날마다 바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것을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동급생들 사이에서 둘은 여느 때 못지않게 인기가 없었다. 하일너가 『호저』에 실은 심술궂은 우스개 때문에 아무에게서도 믿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문은 어차피 이 무렵 문을 닫았다. 한물간 데다, 애초에 겨울과 봄 사이의 따분한 몇 주만 내다보고 꾸린 신문이었다. 이제는 시작된 좋은 계절이 식물 채집과 산책과 바깥 놀이로 즐길 거리를 넉넉히 주었다. 날마다 점심때면 체조하는 아이, 씨름하는 아이, 달리기 하는 아이, 공 치는 아이들이 수도원 앞마당을 고함과 생기로 채웠다.
거기에 이제 새로운 큰 소동이 더해졌는데, 그 장본인이자 한복판에 선 것은 이번에도 모두의 눈엣가시인 헤르만 하일너였다.
원장은 사랑 많은 동급생들에게서, 하일너가 자기 금지령을 비웃으며 거의 날마다 산책하는 기벤라트를 따라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는 한스를 내버려 두고 주범이자 오랜 적수인 하일너만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원장은 그에게 말을 놓았고, 하일너는 그러지 말라고 당장 잘라 말했다. 원장은 그의 불복종을 나무랐다. 하일너는 자기는 기벤라트의 친구이며, 아무도 둘이 어울리는 것을 금할 권리는 없다고 했다. 고약한 장면이 벌어졌고, 그 결과 하일너는 몇 시간 감금과 함께 당분간 기벤라트와 함께 외출하지 말라는 엄한 금지를 받았다.
그래서 이튿날 한스는 공식 산책을 다시 혼자 나갔다. 그는 두 시에 돌아와 다른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들어갔는데, 수업이 시작되자 하일너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모든 것이 힌두가 사라졌을 때와 똑같았다. 다만 이번에는 아무도 늦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세 시에 학년 전체가 교사 셋과 함께 사라진 아이를 찾아 나섰다. 아이들은 흩어져 숲속을 뛰어다니며 소리쳐 불렀고, 몇몇은, 교사 둘까지도, 그가 제 몸을 해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섯 시에 그 일대의 모든 경찰서에 전보가 갔고, 저녁에는 하일너의 아버지에게 속달 편지가 부쳐졌다. 밤늦도록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고, 밤이 깊도록 모든 침실에서 소곤소곤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가 물에 뛰어들었으리라는 짐작을 가장 많이 믿었다. 그냥 집으로 가 버렸을 거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달아난 아이가 돈을 거의 지니고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일이었다.
다들 한스가 그 일을 알고 있을 거라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누구보다 놀라고 근심했다. 밤에 침실에서 다른 아이들이 묻고 짐작하고 지어내고 농담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이불 속 깊숙이 파고들어 친구 걱정으로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며 오랫동안 고약한 시간을 보냈다. 친구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졸아든 그의 가슴을 사로잡아 겁먹은 아픔으로 그를 채웠고, 그러다 그는 지치고 근심에 싸인 채 잠이 들었다.
같은 시각, 하일너는 몇 마일 떨어진 어느 덤불숲에 누워 있었다. 추워서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깊은 해방감 속에 크게 숨을 들이쉬고 팔다리를 쭉 폈다. 좁은 우리에서 빠져나온 것 같았다. 그는 한낮부터 걸었고, 크니틀링겐에서 빵을 샀으며, 이제 이따금 한 입씩 뜯어 먹으며, 아직 봄빛으로 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새카만 밤과 별과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결국 어디에 닿든 그는 상관없었다. 적어도 이제 그 지긋지긋한 수도원에서 빠져나왔고, 원장에게 제 의지가 명령과 금지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튿날 하루 내내 사람들은 그를 찾았지만 헛일이었다. 그는 두 번째 밤을 어느 마을 근처 들판의 짚단 사이에서 보내고, 아침에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가 저녁 무렵 다시 마을에 들르려다가 순경에게 붙잡혔다. 순경은 다정하게 놀리며 그를 맞아 시청으로 데려갔고, 거기서 그는 재치와 아첨으로 촌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촌장은 그를 제 집으로 데려가 재워 주었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햄과 달걀을 배불리 먹였다. 이튿날 그사이 달려온 아버지가 그를 데려갔다.
달아났던 아이가 끌려오자 수도원은 크게 술렁였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었고, 저의 작은 천재 여행을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용서를 빌라고 했지만 그는 거부했고, 교사 회의라는 비밀 재판 앞에서도 결코 머뭇거리거나 공손하지 않았다. 그를 붙들어 두려고들 했지만, 이제는 더 참아 줄 수 없었다. 그는 불명예스럽게 퇴학당했고, 저녁에 아버지와 함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났다. 친구 기벤라트와는 악수 한 번으로밖에 작별하지 못했다.
이 유례없는 반항과 타락의 사태를 두고 원장이 한 거창한 연설은 아름답고 힘찼다. 슈투트가르트의 상급 관청에 보낸 보고서는 그보다 훨씬 얌전하고 사무적이고 맥이 없었다. 신학생들에게는 떠나간 괴물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금지되었는데, 한스 기벤라트는 물론 그 말에 그저 웃기만 했다. 몇 주 동안이나 하일너와 그의 도주만큼 많이 입에 오르내린 이야기는 없었다. 거리가 멀어지고 시간이 흘러가자 모두의 평가가 바뀌었고, 그때는 겁을 내며 피했던 그 도망자를 나중에는 날아가 버린 독수리를 바라보듯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헬라스 방에는 이제 빈 책상이 둘이었다. 나중에 잃은 친구는 앞의 친구처럼 빨리 잊히지 않았다. 원장만은 두 번째 아이 역시 조용히, 뒤탈 없이 정리되었다고 알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일너는 수도원의 평화를 어지럽힐 만한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친구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그에게서는 편지 한 장 오지 않았다. 그는 떠났고 소식이 끊겼다. 그의 모습과 그의 도주는 차츰 옛이야기가 되었고, 마침내 전설이 되었다. 이 열정적인 소년은 그 뒤로도 천재다운 장난과 방황을 여러 번 더 겪은 끝에 삶의 고통 속에서 엄한 단련을 받았고, 영웅까지는 아니더라도 꼿꼿하고 당당한 사내가 되었다.
남은 한스에게는 하일너의 도주를 미리 알고 있었으리라는 의심이 따라붙었고, 그 의심 때문에 그는 교사들의 호의를 남김없이 잃었다. 한 교사는 수업 중에 그가 여러 물음에 연달아 대답을 못 하자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어째서 그 잘난 친구 하일너를 따라가지 않았나?"
원장은 그를 본체만체했고, 바리새인이 세리를 보듯 경멸 섞인 연민을 담아 그를 곁눈질했다. 이 기벤라트는 이제 셈에 들지 않았다. 그는 나병 환자 축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