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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제3장 십자가의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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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십자가의 도둑

내 어린 시절에 대해서라면, 아버지와 어머니 곁에서 누린 아늑함에 대해서, 아이다운 사랑과 부드럽고 정답고 밝은 둘레 속에서 소박하게 놀며 지낸 나날에 대해서 들려줄 만한 아름답고 여리고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이 넉넉히 했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오직 나 자신에게 이르려고 내 삶에서 내디딘 걸음들뿐이다. 그 마법을 나도 모르지 않는 그 모든 아름다운 쉼터와 행복의 섬과 낙원을 나는 먼 데서 빛나는 그대로 놓아두고, 다시 들어가 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년 시절에 아직 머무는 동안에는, 내게 새로 다가온 것, 나를 앞으로 몰아대고 떼어 낸 것만을 이야기하겠다.

이런 떠밂은 언제나 '다른 세계'에서 왔고, 언제나 두려움과 억지와 양심의 가책을 함께 몰고 왔으며, 언제나 뒤엎는 힘이 있어서 내가 기꺼이 계속 머물고 싶던 평화를 위태롭게 했다.

내 안에 하나의 근원적 충동이, 허락된 밝은 세계에서는 기어들어 숨어 있어야 하는 그 충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새로 발견해야 하는 몇 해가 찾아왔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서서히 깨어나는 성의 감각이 원수이자 부서뜨리는 자로, 금지된 것으로, 유혹이자 죄로 나에게도 덤벼들었다. 내 호기심이 찾는 것, 내게 꿈과 쾌락과 두려움을 지어내는 것, 사춘기의 그 커다란 비밀은 울타리 쳐진 내 어린 시절 평화의 행복에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남들이 하는 대로 했다. 더는 아이가 아닌 아이의 이중생활을 했다. 내 의식은 익숙하고 허락된 것 안에서 살았고, 어렴풋이 떠오르는 새 세계를 부인했다. 그러나 그 곁에서 나는 땅 밑 같은 꿈과 충동과 소망 속에서도 살았고, 그 위로 의식의 삶은 갈수록 더 불안한 다리를 놓았다. 내 안의 어린 시절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부모가 그렇듯 내 부모도,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그 깨어나는 생명의 충동을 돕지 않았다. 부모는 그저 지칠 줄 모르는 정성으로, 현실을 부인하고 갈수록 비현실적이고 거짓스러워지는 어린아이의 세계에 계속 눌러살려는 내 가망 없는 시도를 도왔을 뿐이다. 부모가 이런 일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지 나는 모르며, 내 부모를 탓하지도 않는다. 나 자신과 결판을 내고 내 길을 찾는 것은 내 몫이었고, 좋은 가정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나는 내 몫을 서툴게 해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에게 이것은 자기 삶의 요구가 바깥 세계와 가장 거세게 다투는 지점,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장 쓰라리게 싸워서 얻어 내야 하는 지점이다. 많은 이들은 우리의 운명인 죽음과 새로 태어남을 평생 이 한 번만 겪는다. 어린 시절이 썩어 들며 천천히 무너질 때, 정든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려 하고 우리가 갑자기 우주 공간의 고독과 죽음 같은 냉기를 둘레에서 느낄 때. 그리고 아주 많은 이들은 이 암초에 영영 걸린 채, 되찾을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평생 아프게 들러붙어 산다. 그 꿈이야말로 모든 꿈 가운데 가장 고약하고 가장 사람을 죽이는 꿈이다.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린 시절의 끝을 내게 알려 온 감정들과 꿈의 영상들은 이야기할 만큼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두운 세계', '다른 세계'가 다시 와 있었다는 것이다. 한때 프란츠 크로머였던 것이 이제는 내 안에 들어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바깥에서도 '다른 세계'가 다시 나를 휘두를 힘을 얻었다.

크로머와의 일이 있은 지 몇 해가 지났다. 내 삶의 그 극적이고 죄 많던 시절은 그 무렵 내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고, 짧은 악몽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했다. 프란츠 크로머는 진작 내 삶에서 사라졌고, 어쩌다 마주쳐도 나는 거의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러나 내 비극의 다른 한 중요한 인물, 막스 데미안은 더는 내 둘레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애는 오랫동안 저 멀리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보이기는 했지만 힘을 미치지는 않았다. 차츰 그 애는 다시 가까이 다가왔고, 다시 힘과 영향을 내뿜었다.

그 무렵 데미안에 대해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떠올려 보려 한다. 한 해 넘게 그 애와 한 번도 말을 나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애를 피했고, 그 애도 결코 다가오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치면 그 애는 다정하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그럴 때 나는 이따금 그 다정함 속에 조롱이나 빈정거리는 나무람의 가는 울림이 섞여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내 상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 애와 겪은 이야기도, 그때 그 애가 내게 미친 기이한 힘도, 그 애에게나 나에게나 잊힌 듯했다.

나는 그 애의 모습을 찾아본다. 그리고 이제 그 애를 떠올려 보니, 그 애가 그래도 거기 있었고 내가 그 애를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겠다. 그 애가 혼자서, 또는 다른 상급생들 사이에 섞여 학교에 가는 모습이 보이고, 낯설고 외롭고 고요하게, 별처럼 그들 사이를 거니는 모습이, 저만의 공기에 둘러싸여 저만의 법칙대로 사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도 그 애를 사랑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 애와 가깝지 않았다. 어머니만은 예외였는데, 어머니와도 그 애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처럼 지내는 것 같았다. 선생들은 되도록 그 애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 애는 좋은 학생이었지만 누구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따금 우리는 그 애가 어느 선생에게 했다는 무슨 말, 무슨 비꼼이나 말대꾸를 소문으로 들었는데, 그것은 퉁명스러운 도전으로 보나 빈정거림으로 보나 더할 나위가 없었다.

눈을 감고 떠올려 보니, 그 애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디였던가? 그래, 이제 다시 보인다. 우리 집 앞 골목이었다. 어느 날 나는 거기 서 있는 그 애를 보았다. 손에 수첩을 들고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 애는 우리 집 현관문 위에 새가 새겨진 오래된 집안 문장을 베껴 그리고 있었다. 나는 커튼 뒤에 숨어 창가에 서서 그 애를 지켜보았는데, 깊이 놀라며 바라보니 문장을 향한 그 애의 얼굴은 주의 깊고 차갑고 밝았으며, 어른 남자의, 연구자나 예술가의 얼굴, 우월하고 의지로 가득한 얼굴, 기이하게 밝고 차가운 얼굴이었고, 무언가를 아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애가 보인다. 조금 뒤의 일이었다. 길에서, 학교에서 돌아오던 우리는 모두 쓰러진 말 한 마리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말은 아직 끌채에 매인 채 농부의 수레 앞에 쓰러져, 벌름거리는 콧구멍으로 무언가 찾듯 애처롭게 허공에 콧김을 내뿜었고, 보이지 않는 상처에서 피를 흘려 말 옆의 하얀 길바닥 먼지가 천천히 검게 젖어 들었다. 속이 메슥거려 그 광경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데미안의 얼굴이 보였다. 그 애는 앞으로 비집고 나오지 않고, 그 애답게 편안하고 제법 우아한 모습으로 맨 뒤에 서 있었다. 그 애의 눈길은 말의 머리를 향해 있는 듯했고, 다시 그 깊고 고요한, 거의 광신적이면서도 열정은 없는 주의를 띠고 있었다. 나는 그 애를 오래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때 아직 의식과는 먼 곳에서 무언가 아주 묘한 것을 느꼈다. 데미안의 얼굴을 보았는데, 그것이 소년의 얼굴이 아니라 어른 남자의 얼굴이라는 것만 본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것을 보았다. 그것이 어른 남자의 얼굴도 아니고 무언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아니, 느낀 것 같았다. 그 속에 여자의 얼굴 같은 것도 조금 들어 있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그 얼굴은 한순간 남자답지도 아이답지도 않고, 늙지도 젊지도 않고, 어딘가 천 년 묵은 듯, 어딘가 시간을 벗어난 듯, 우리가 사는 것과는 다른 시대의 흐름이 찍혀 있는 듯 보였다. 짐승이 그렇게 보일 수 있었다. 아니면 나무나, 별이. 나는 그것을 몰랐다. 어른이 된 내가 지금 그것을 두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비슷한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 애는 아름다웠는지도, 어쩌면 내 마음에 들었는지도, 어쩌면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가를 수 없었다. 내가 본 것은 다만 이것이었다. 그 애는 우리와 달랐다. 짐승 같았고, 혼령 같았고, 그림 같았다. 그 애가 어땠는지 나는 모르지만, 그 애는 달랐다. 우리 모두와 상상도 못 할 만큼 달랐다.

기억이 내게 말해 주는 것은 그 이상은 없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도 일부는 이미 나중에 받은 인상에서 길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

몇 해가 더 지나 나이를 더 먹고서야 나는 마침내 다시 그 애와 가까이 닿게 되었다. 데미안은 관습이 요구하는 대로 같은 나이의 아이들과 함께 교회에서 견신례를 받지 않았고, 거기에도 곧 다시 소문이 엉겨 붙었다. 학교에서는 또다시 그 애가 사실은 유대인이라느니, 아니 이교도라느니 하는 말이 돌았고, 어떤 아이들은 그 애가 어머니와 함께 아무 종교도 없거나 무슨 터무니없고 고약한 종파에 속해 있다고 아는 체했다. 그와 관련해서 그 애가 어머니와 연인처럼 산다는 의심을 들은 기억도 나는 것 같다. 아마 그 애는 그때까지 아무 교파에도 속하지 않고 자랐는데, 이제 그것이 앞날에 무슨 불이익을 가져올까 걱정하게 된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 애의 어머니는 이제라도 또래보다 두 해 늦게 그 애를 견신례에 참여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그 애는 몇 달 동안 견신례 수업에서 내 동무가 되었다.

한동안 나는 그 애를 완전히 멀리했다. 그 애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 애는 너무 많은 소문과 비밀에 싸여 있었고, 무엇보다 크로머 사건 이후 내 안에 남아 있던 빚진 느낌이 거슬렸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나는 내 비밀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내게 견신례 수업은 성에 관한 결정적인 깨우침을 얻는 시기와 겹쳤고, 그래서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경건한 가르침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어들었다. 목사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고요하고 거룩한 비현실 속에 나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고, 아마 아름답고 값진 것이었겠지만 조금도 절박하거나 가슴 뛰는 것이 아니었는데, 저 다른 것들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이런 상태 때문에 수업에 무심해질수록 내 관심은 다시 막스 데미안에게로 다가갔다. 무언가가 우리를 이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실을 되도록 정확히 따라가 보아야 한다. 기억하는 한, 그것은 아직 교실에 불이 켜져 있던 이른 아침의 어느 수업 시간에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종교를 가르치던 목사가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졸려서 거의 귀 기울이지 않았고 거의 듣지 않았다. 그때 목사가 목소리를 높여 카인의 표에 대해 힘주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 닿는 듯한, 일깨우는 듯한 것을 느꼈고, 고개를 들어 보니 앞쪽 줄에서 데미안의 얼굴이 내 쪽으로 돌아와 있었다. 무언가 말하는 듯한 밝은 눈이었는데, 그 표정은 조롱일 수도 진지함일 수도 있었다. 그 애는 한순간 나를 보았을 뿐인데, 나는 갑자기 목사의 말에 귀를 바짝 기울였고, 목사가 카인과 그 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으며, 내 깊은 곳에서 그것이 목사가 가르치는 대로가 아니라는 것, 다르게도 볼 수 있다는 것, 거기에 비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앎이 느껴졌다!

이 순간부터 데미안과 나 사이에 다시 이어짐이 생겼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처럼 서로 한데 속한다는 느낌이 영혼 속에 생기자마자 그것이 마법처럼 공간으로도 옮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 애가 스스로 그렇게 꾸밀 수 있었는지, 아니면 순전한 우연이었는지 나는 몰랐다. 나는 그때만 해도 우연을 굳게 믿었다. 며칠 뒤 데미안이 갑자기 종교 시간에 자리를 바꾸어 바로 내 앞에 앉았고(아침이면 꽉 들어찬 교실의 비참한 구빈원 같은 공기 한가운데서, 그 애의 목덜미에서 풍기는 여리고 산뜻한 비누 냄새를 내가 얼마나 즐겨 들이마셨는지 아직도 기억한다!), 다시 며칠 뒤 그 애는 또 자리를 바꾸어 이제 내 옆에 앉았으며, 거기 그대로 앉아 겨울 내내, 봄 내내 지냈다.

아침 수업은 완전히 달라졌다. 더는 졸리고 따분하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때로 우리 둘은 더없이 주의 깊게 목사의 말을 들었고, 옆자리 동무의 눈짓 하나면 기이한 이야기나 묘한 구절에 내 주의를 돌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애의 다른 눈짓 하나, 아주 분명한 눈짓 하나면 나를 일깨워 내 안에 비판과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아주 자주 우리는 나쁜 학생이었고 수업을 하나도 듣지 않았다. 데미안은 선생에게나 학생들에게나 늘 예의 발랐고, 학생다운 바보짓을 하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으며, 그 애가 크게 웃거나 떠드는 소리를 들은 사람도 없었고, 그 애는 한 번도 선생에게 꾸지람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조용히, 속삭이는 말보다는 손짓과 눈짓으로 그 애는 나를 자기 일에 끼워 줄 줄 알았다. 그 일들은 더러 기이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 애는 학생들 가운데 누가 자기 관심을 끄는지, 그리고 그 아이들을 어떻게 연구하는지 내게 말해 주었다. 몇몇은 아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수업 전에 그 애는 내게 말했다. "내가 엄지로 신호를 보내면, 아무개가 우리 쪽을 돌아보거나 목덜미를 긁거나 할 거야." 그러다 수업 중에 내가 그 일을 거의 잊어버리고 있을 때쯤이면, 막스는 갑자기 눈에 띄는 몸짓으로 엄지를 내 쪽으로 돌렸고, 나는 얼른 그 아이를 바라보았는데, 그 아이는 매번 줄에 끌려가는 인형처럼 그 몸짓을 해 보였다. 나는 선생님한테도 한번 해 보라고 막스를 졸랐지만, 그 애는 그러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번은 내가 교실에 들어가면서 오늘 숙제를 못 해 왔으니 목사가 오늘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 애가 나를 도와주었다. 목사는 교리문답 한 대목을 외우게 할 학생을 찾고 있었는데, 두리번거리던 눈길이 죄지은 기색이 역력한 내 얼굴에 멈췄다. 목사는 천천히 다가와 나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고, 내 이름이 이미 입술에 걸려 있었다. 그때 목사는 갑자기 정신이 흐트러진 듯, 혹은 불안한 듯 칼라를 매만지더니, 자기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데미안에게로 다가가 무언가 물으려는 것 같다가, 뜻밖에도 다시 몸을 돌려 한동안 기침을 하고는 다른 학생을 불러냈다.

이런 장난이 무척 재미있었지만, 내 벗이 나에게도 자주 같은 놀이를 한다는 것을 나는 차츰 알아챘다. 학교 가는 길에 갑자기 데미안이 조금 뒤에서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돌아보면, 정말로 그 애가 거기 있곤 했다.

"너 정말로 다른 사람이 네가 원하는 걸 생각하게 만들 수 있어?" 내가 물었다.

데미안은 기꺼이,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 애다운 어른스러운 태도로 알려 주었다.

"아니." 데미안이 말했다. "그건 안 돼. 목사님은 그런 척하지만, 사람한테는 자유 의지라는 게 없거든. 다른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걸 생각할 수도 없고, 내가 그 사람한테 내가 원하는 걸 생각하게 만들 수도 없어. 하지만 누군가를 잘 관찰할 수는 있어. 그러면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꽤 정확히 말할 수 있을 때가 많고, 그러면 대개 그 사람이 다음 순간 무엇을 할지도 내다볼 수 있지. 아주 간단한 일인데, 사람들이 모를 뿐이야. 물론 연습이 필요하지."

"이를테면 나비 가운데 어떤 나방들은 암컷이 수컷보다 훨씬 드물어. 나방도 다른 모든 동물과 똑같이 번식해서, 수컷이 암컷을 수정시키면 암컷이 알을 낳지. 그런데 네가 이 나방의 암컷 한 마리를 가지고 있으면(박물학자들이 여러 번 해 본 실험이야) 밤에 이 암컷한테로 수컷 나방들이 날아와. 그것도 몇 시간 거리에서! 몇 시간 거리라니, 생각해 봐! 몇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수컷들이 모두 그 일대에 단 한 마리 있는 암컷을 알아채는 거야! 사람들은 그걸 설명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아. 좋은 사냥개가 알아챌 수도 없는 흔적을 찾아내 쫓아갈 수 있듯이, 일종의 후각 같은 거겠지. 알겠어? 그런 것들이 있어. 자연은 그런 걸로 가득하고, 아무도 그걸 설명하지 못해. 그런데 내 말은 이거야. 이 나비들의 암컷이 수컷만큼 흔했다면, 수컷들한테 그런 예민한 코는 없었을 거야! 그쪽으로 스스로를 길들였기 때문에 그런 코가 생긴 거지. 짐승이든 사람이든 어떤 일에 온 주의와 온 의지를 쏟으면 그걸 이루게 돼. 그게 다야. 네가 말하는 것도 바로 그래. 한 사람을 충분히 자세히 들여다봐.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해 그 사람 자신보다 더 많이 알게 돼."

'독심술'이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와서, 하마터면 그 말로 그 애에게 그토록 오래전 크로머와 있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할 뻔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우리 둘 사이의 이상한 일이었다. 그 애가 몇 해 전 한 번 그토록 진지하게 내 삶에 끼어들었다는 것을, 그 애도 나도 결코, 단 한 번도 아주 희미하게라도 넌지시 비친 적이 없었다. 마치 우리 사이에 예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고, 아니면 우리 둘 다 상대가 그 일을 잊었으리라 굳게 믿는 것 같았다. 한두 번은 함께 길을 걷다가 프란츠 크로머와 마주친 일도 있었지만, 우리는 눈길 한 번 주고받지 않았고, 그 애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지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내가 물었다. "너는 사람한테 자유 의지가 없다고 하잖아. 그런데 또 의지를 어떤 일에 단단히 쏟기만 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하고. 그건 말이 안 되잖아! 내가 내 의지의 주인이 아니라면, 그걸 마음대로 여기로든 저기로든 쏟을 수도 없잖아."

데미안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그 애를 기쁘게 할 때면 늘 그렇게 했다.

"잘 물었어!" 데미안이 웃으며 말했다. "늘 물어야지. 늘 의심하고. 그런데 그건 아주 간단해. 이를테면 그런 나방이 별이나 다른 어디에 의지를 쏟으려 한다면 그렇게는 못 할 거야. 다만, 나방은 그런 건 아예 해 보지도 않아. 자기에게 뜻과 값어치가 있는 것, 자기에게 필요한 것, 꼭 가져야만 하는 것만 찾지. 그런데 바로 거기서 믿을 수 없는 일도 해내는 거야. 다른 어떤 짐승에게도 없는 마법 같은 여섯째 감각을 키워 내거든! 우리 같은 사람은 물론 짐승보다 운신의 폭이 넓고 관심도 더 많아. 하지만 우리도 비교적 꽤 좁은 테두리에 묶여 있어서 그 밖으로는 나가지 못해. 이런저런 걸 공상할 수는 있지. 이를테면 꼭 북극에 가고 싶다고 상상할 수는 있어. 하지만 그걸 해내고 충분히 강하게 원할 수 있는 건 그 소망이 온전히 내 안에 있을 때, 정말로 내 존재가 온통 그 소망으로 차 있을 때뿐이야. 그렇게만 되면, 네 안에서 너한테 명령하는 걸 해 보기만 하면, 그때는 돼. 그때는 네 의지를 좋은 말처럼 수레에 매어 부릴 수 있지. 이를테면 내가 지금 우리 목사님이 앞으로 안경을 안 쓰시게 만들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건 안 돼. 그건 그냥 장난이니까. 하지만 지난가을 내가 저 앞자리에서 옮겨 앉겠다는 단단한 의지를 품었을 때는 아주 잘됐어. 그때 갑자기 알파벳 순서로 나보다 앞서는 아이가 하나 나타났지. 그동안 앓아누워 있던 아이였는데, 누군가 그 아이한테 자리를 내줘야 했으니 당연히 내가 그렇게 했어. 바로 내 의지가 그 기회를 당장 붙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래." 내가 말했다. "그때 나도 아주 묘했어. 우리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 그 순간부터 넌 자꾸만 나한테 가까이 다가왔지. 그런데 그건 어떻게 된 거야? 처음엔 곧바로 내 옆에 와서 앉지 않았잖아. 처음 몇 번은 내 앞자리에 앉았지, 그렇지? 그건 어떻게 된 거야?"

"그건 이랬어. 처음 자리에서 옮기고 싶어 했을 때 나 자신도 어디로 가고 싶은지 잘 몰랐어. 그저 더 뒤에 앉고 싶다는 것만 알았지. 너한테 가고 싶다는 게 내 의지였는데, 그게 아직 의식되지 않았던 거야. 그와 동시에 네 의지도 함께 끌어당겨서 나를 도왔어. 그러다 네 앞에 앉고 나서야 내 소원이 반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 사실 나는 네 옆에 앉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거야."

"그런데 그때는 새로 들어온 애가 없었잖아."

"없었지. 그때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 대뜸 네 옆에 앉아 버렸어. 나랑 자리를 바꾼 녀석은 그저 어리둥절해하면서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뒀고. 그리고 목사님도 한번은 거기 무슨 변화가 있었다는 걸 알아채긴 했어. 사실 목사님은 나를 대할 때마다 남모르게 뭔가에 시달려. 내 이름이 데미안이라는 걸, 이름이 D로 시작하는 내가 저 뒤 S 줄에 앉아 있는 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거든! 하지만 그게 목사님 의식에까지는 닿지 않아. 내 의지가 거기 맞서고, 내가 계속 그걸 막으니까. 목사님은 이따금 뭔가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아채고는 나를 쳐다보면서 궁리를 시작해, 그 착한 양반이. 그런데 나한테는 간단한 수가 있어. 그럴 때마다 그 눈을 아주, 아주 똑바로 들여다보는 거야. 거의 모든 사람이 그걸 잘 견디지 못해. 다들 불안해하지. 누군가한테서 뭘 얻어 내고 싶은데, 뜻밖에 그 사람 눈을 아주 똑바로 들여다봤는데도 그 사람이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으면, 그만둬! 그 사람한테서는 아무것도 얻어 내지 못해, 절대로!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어. 사실 그게 통하지 않는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몰라."

"누군데?" 내가 얼른 물었다.

데미안은 생각에 잠길 때면 짓는 조금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다 눈길을 돌리고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몹시 궁금했지만 다시 묻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애가 그때 자기 어머니를 두고 한 말이라고 믿는다. 그 애는 어머니와 아주 가깝게 지내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 어머니 이야기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나를 자기 집에 데려간 적도 없었다. 나는 그 애 어머니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거의 몰랐다.


그 무렵 나는 이따금 그 애를 흉내 내어, 무언가를 꼭 이루어야만 하도록 내 의지를 거기에 모아 보려고 해 보았다. 충분히 절박해 보이는 소망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데미안에게 그 이야기를 꺼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것을 그 애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애도 묻지 않았다.

종교 문제에서 내 믿음에는 그사이 군데군데 구멍이 났다. 그래도 철저히 데미안의 영향을 받은 내 생각은, 완전한 불신앙을 내보이는 학교 동무들과는 크게 달랐다. 그런 아이들이 몇 있었는데, 그들은 이따금 신을 믿는 것은 우스꽝스럽고 인간의 품위에 맞지 않는다느니, 삼위일체나 예수의 동정녀 탄생 같은 이야기는 그냥 웃음거리라느니, 오늘날에도 그런 잡동사니를 팔러 다니는 것은 수치라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의심이 드는 자리에서도, 나는 어린 시절의 온 경험으로 경건한 삶이, 이를테면 내 부모가 사는 그런 삶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품위 없는 것도 위선도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오히려 나는 종교적인 것 앞에서 여전히 가장 깊은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다만 데미안 덕분에 나는 성경 이야기와 교리를 더 자유롭고 개인적으로, 더 놀이하듯, 더 상상력을 펼쳐 바라보고 풀이하는 데 익숙해졌다. 적어도 그 애가 넌지시 일러 주는 풀이를 나는 늘 기꺼이, 즐겨 따랐다. 물론 많은 것은 내게 너무 퉁명스러웠고, 카인 이야기도 그랬다. 그리고 한번은 견신례 수업 중에 그 애가 어쩌면 그보다 더 대담한 견해로 나를 놀라게 했다. 선생이 골고다 이야기를 했다. 구세주의 고난과 죽음을 전하는 성경 이야기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어린 소년이던 시절, 이를테면 성금요일에 아버지가 수난 이야기를 읽어 주고 나면, 나는 겟세마네와 골고다에서, 고통스럽게 아름답고 창백하고 유령 같으면서도 엄청나게 생생한 그 세계 속에서 가슴 깊이 감동하며 살았고,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들을 때면 이 비밀스러운 세계의 음울하고 힘찬 고난의 광채가 온갖 신비로운 전율과 함께 나를 덮쳐 왔다. 나는 오늘도 이 음악에서, 그리고 〈악투스 트라기쿠스〉에서 모든 시와 모든 예술적 표현의 정수를 찾는다.

그 수업이 끝날 무렵 데미안이 생각에 잠겨 내게 말했다. "여기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어, 싱클레어. 그 이야기를 한번 다시 읽고 혀끝으로 맛을 봐. 싱거운 맛이 나는 데가 있어. 바로 십자가의 두 도둑1 이야기 말이야. 언덕 위에 세 십자가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장엄하지! 그런데 그 고분고분한 도둑 이야기는 전도지에나 나올 감상적인 이야기야! 처음엔 범죄자로 온갖 몹쓸 짓을, 무슨 짓을 했는지 누가 알겠어,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서, 이제 와서는 녹아내리듯 눈물을 짜며 개과천선과 뉘우침의 잔치를 벌이잖아! 무덤에서 두 걸음 떨어진 데서 그런 뉘우침이 무슨 뜻이 있겠어, 응? 이것도 또 순 성직자 나부랭이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야. 달짝지근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감동의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더없이 교훈적인 배경을 깔고 있지. 네가 오늘 두 도둑 가운데 하나를 친구로 골라야 한다면, 아니면 둘 중 누구를 더 믿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이 눈물 짜는 회개자는 아닐 거야. 아니, 다른 쪽이야. 그쪽은 사내답고 기개가 있어. 그 처지에서는 그저 그럴싸한 빈말일 수밖에 없는 회개 따위에는 콧방귀를 뀌고, 자기 길을 끝까지 가고, 그때까지 자기를 도와준 악마를 마지막 순간에 비겁하게 저버리지 않아. 그 사람은 기개가 있는 사람이고, 기개 있는 사람들은 성경 이야기에서 손해를 보기 일쑤야. 어쩌면 그 사람도 카인의 후손인지 몰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몹시 당황했다. 십자가 이야기라면 아주 잘 안다고 믿었는데, 이제야 내가 그 이야기를 얼마나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마나 상상력도 공상도 없이 듣고 읽었는지 깨달았다. 그런데도 데미안의 새 생각은 불길하게 들렸고,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내 안의 개념들을 뒤엎으려 했다. 아니, 모든 것을, 가장 거룩한 것까지 그렇게 함부로 다룰 수는 없었다.

그 애는 늘 그렇듯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곧바로 내 반발을 알아챘다.

"알아." 데미안이 체념한 듯 말했다. "늘 듣던 얘기지. 진지하게 따지지만 말라는 거. 그래도 하나 말해 둘게. 여기가 이 종교의 결함이 아주 똑똑히 보이는 지점 가운데 하나야. 문제는 이거야.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이 신이라는 존재는 훌륭한 인물이긴 한데, 원래 나타내야 할 것을 나타내지는 못한다는 거지. 신은 선한 것, 고귀한 것, 아버지다운 것, 아름답고 또 높은 것, 감상적인 것이야. 그건 맞아! 하지만 세상은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그건 몽땅 그냥 악마에게 떠넘겨지고, 세상의 이 부분 전체, 이 절반 전체가 슬쩍 빼돌려져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게 되지. 사람들이 신을 모든 생명의 아버지로 찬양하면서, 생명이 바탕을 두고 있는 성생활 전체는 그냥 입에 올리지 않고, 될 수만 있으면 악마의 짓이자 죄라고 하는 것과 꼭 같아! 나는 사람들이 이 여호와 신을 섬기는 데 반대하지 않아. 조금도. 하지만 내 생각에 우리는 모든 것을 섬기고 거룩하게 여겨야 해. 온 세상을, 인위적으로 떼어 낸 이 공식적인 절반만이 아니라! 그렇다면 신을 섬기는 예배 곁에 악마를 섬기는 예배도 있어야 하지. 나는 그게 옳다고 봐. 아니면 악마까지 자기 안에 품는 신을,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날 때 눈을 감지 않아도 되는 신을 지어내든지."

그 애는 평소답지 않게 거의 격해져 있었지만, 곧 다시 미소를 지었고 더는 나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내 안에서 이 말들은 소년 시절 내내 매시간 품고 다니면서도 누구에게도 한마디 하지 않았던 수수께끼에 가 닿았다. 데미안이 신과 악마에 대해, 신적이고 공식적인 세계와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악마적인 세계에 대해 한 말은 바로 내 생각, 나만의 신화, 두 세계 또는 세계의 두 반쪽, 곧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에 대한 생각이었다. 내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이고, 모든 삶과 생각의 문제라는 깨달음이 갑자기 거룩한 그림자처럼 내 위를 스쳐 지나갔고, 나만의 가장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위대한 이념들의 영원한 흐름에 얼마나 깊이 참여하고 있는지 보고 갑자기 느꼈을 때 두려움과 경외가 나를 덮쳤다. 그 깨달음은 어딘지 나를 확인해 주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그것은 단단했고 거친 맛이 났다. 그 안에 책임의 울림이, 더는 아이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울림이, 홀로 서야 한다는 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그토록 깊은 비밀을 털어놓으며, 아주 어린 시절부터 품어 온 '두 세계'에 대한 생각을 내 동무에게 이야기했다. 그 애는 그로써 내 가장 깊은 느낌이 자기에게 동의하고 자기가 옳다고 인정한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이용하는 것은 그 애답지 않았다. 그 애는 어느 때보다도 깊은 주의를 기울여 내 말을 들었고, 내가 눈을 돌릴 수밖에 없을 때까지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애의 눈길에서 다시 그 묘한, 짐승 같은 시간 없음을, 상상할 수 없는 나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얘긴 다음에 더 하자." 데미안이 나를 아끼듯 말했다. "보니까 넌 남한테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생각하는구나. 그렇다면 넌 네가 생각한 것을 한 번도 온전히 살아 본 적이 없다는 것도 알 거야. 그건 좋지 않아. 우리가 살아 내는 생각만이 값어치가 있거든. 넌 네 '허락된 세계'가 세계의 절반일 뿐이라는 걸 알았어. 그런데도 목사들이나 선생들이 하듯이 나머지 절반을 슬쩍 감추려고 했지. 그건 잘 안 될 거야! 한번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한테는 아무도 그게 잘되지 않아."

그 말이 깊이 가슴에 꽂혔다.

"하지만." 나는 거의 소리치다시피 했다. "그래도 정말로, 실제로 금지된 추한 것들이 있잖아. 그건 너도 부정할 수 없잖아! 그리고 그런 건 어쨌든 금지된 거고, 우리는 그걸 단념해야 해. 살인이니 온갖 악덕이니 하는 게 있다는 건 나도 알아. 그렇다고 그런 게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가서 범죄자가 돼야 한다는 거야?"

"그건 오늘 결판이 나지 않을 거야." 막스가 달래듯 말했다. "물론 넌 사람을 때려죽이거나 여자애를 욕보이고 죽이면 안 되지. 그래, 그건 안 돼. 하지만 넌 아직 '허락된'과 '금지된'이 사실 무슨 뜻인지 깨달을 수 있는 데까지 오지 않았어. 넌 이제 겨우 진실의 한 조각을 느꼈을 뿐이야. 나머지도 곧 올 테니, 두고 봐! 이를테면 지금 네 안에는 한 해쯤 전부터 다른 모든 충동보다 센 충동이 하나 있고, 그건 '금지된' 것으로 여겨지지. 그런데 그리스 사람들이나 다른 많은 민족은 거꾸로 이 충동을 신으로 모시고 큰 축제를 열어 섬겼어. 그러니까 '금지된'이라는 건 영원한 게 아니야. 바뀔 수 있어. 오늘날에도 누구든 어떤 여자와 함께 목사한테 가서 결혼만 하면 같이 잘 수 있잖아. 다른 민족들한테서는 그게 달라, 오늘날에도. 그러니까 우리 하나하나가 무엇이 허락되고 무엇이 금지되었는지, 자기에게 금지되었는지를 스스로 찾아내야 해. 금지된 일은 한 번도 하지 않으면서도 큰 불한당일 수 있어. 거꾸로도 마찬가지고. 사실 그건 편하냐 마냐의 문제일 뿐이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기 재판관이 되기에는 너무 편한 걸 좋아하는 사람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금지에 몸을 맞추지. 그런 사람은 편해. 다른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스스로 계명을 느끼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점잖은 신사라면 누구나 날마다 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기도 하고, 다른 데서는 손가락질받는 일이 허락되어 있기도 해. 누구나 자기 자신을 책임져야 해."

그 애는 갑자기 그렇게 많은 말을 한 것을 후회하는 듯 말을 끊었다. 그때도 나는 그 애가 무엇을 느꼈는지 느낌으로 얼마쯤 알 수 있었다. 그 애는 자기 생각을 늘 기분 좋게, 겉보기에는 가볍게 늘어놓곤 했지만, 언젠가 그 애가 말했듯이 '그저 말하기 위한' 대화만큼은 죽어도 견디지 못했다. 그런데 내게서 그 애는 진짜 관심 말고도 너무 많은 장난을, 영리한 수다에서 얻는 너무 많은 즐거움 같은 것을, 한마디로 완전한 진지함의 결여를 느꼈다.


방금 쓴 마지막 말, '완전한 진지함'을 다시 읽으니, 아직 반쯤 아이였던 그 시절에 막스 데미안과 겪은 가장 강렬한 다른 장면 하나가 갑자기 다시 떠오른다.

우리의 견신례가 다가왔고, 종교 수업의 마지막 시간들은 성찬을 다루었다. 목사는 그 일을 중요하게 여겨 애를 썼고, 그 시간들에서는 거룩함과 경건한 분위기 같은 것이 제법 느껴졌다. 그러나 바로 이 마지막 몇 시간의 가르침 동안 내 생각은 다른 것에, 바로 내 벗이라는 사람에게 묶여 있었다. 교회 공동체에 엄숙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이라고 배운 견신례를 앞두고, 나는 반년쯤 받은 이 종교 수업의 값어치가 여기서 배운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데미안이 곁에 있으며 내게 미친 힘에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가 이제 받아들여질 준비가 된 곳은 교회가 아니라 전혀 다른 것, 이 땅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생각과 인격의 결사였고, 나는 내 벗을 그 결사의 대리인이나 전령으로 느꼈다.

나는 이 생각을 밀어내려 애썼다. 그래도 견신례 의식만큼은 어느 정도 품위를 갖추어 치르고 싶은 진심이 있었는데, 그것이 내 새 생각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엇을 해도 그 생각은 거기 있었고, 차츰 가까이 다가온 교회 의식에 대한 생각과 이어져서, 나는 그 의식을 남들과는 다르게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것은 내게 데미안에게서 알게 된 그런 생각의 세계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어야 했다.

그 무렵 나는 다시 한 번 그 애와 열띠게 논쟁했다. 바로 수업 시간 직전이었다. 내 벗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아마 꽤 애늙은이처럼 잘난 체하는 내 말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우린 말이 너무 많아." 데미안이 여느 때 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영리한 말은 아무 값어치도 없어, 전혀.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질 뿐이야.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건 죄야. 거북이처럼 자기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어 갈 수 있어야 해."

곧이어 우리는 교실로 들어갔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나는 집중하려고 애썼으며, 데미안은 거기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얼마쯤 지나자 그 애가 앉아 있는 옆쪽에서 무언가 묘한 것이, 공허함이나 서늘함 같은 것이, 마치 그 자리가 어느새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느낌이 숨 막히기 시작하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거기 내 벗이 여느 때처럼 꼿꼿하고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그 애는 여느 때와 전혀 달라 보였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그 애에게서 뿜어져 나와 그 애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눈을 감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보니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보고 있지 않았다. 굳어서 안으로, 또는 아득히 먼 곳으로 향해 있었다. 그 애는 완전히 꼼짝 않고 앉아 있었고,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입은 나무나 돌로 깎아 놓은 것 같았다. 얼굴은 창백했다. 돌처럼 고르게 핏기가 없었고, 그 애에게서 가장 살아 있어 보이는 것은 갈색 머리카락이었다. 두 손은 앞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는데, 물건처럼, 돌이나 과일처럼 생기 없고 고요하고 창백하고 움직임이 없었지만, 축 늘어진 것이 아니라 숨겨진 강한 생명을 감싼 단단하고 좋은 껍데기 같았다.

그 광경에 나는 몸이 떨렸다. 죽었어! 하고 생각했고, 하마터면 소리 내어 말할 뻔했다. 그러나 그 애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넋이 나간 눈길로 그 얼굴에, 그 창백한 돌 가면에 매달렸고, 이것이 데미안이라고 느꼈다! 나와 함께 걷고 이야기할 때의 그 애는 반쪽짜리 데미안, 한동안 역할을 하며 남에게 맞춰 주고 호의로 장단을 맞춰 주는 데미안일 뿐이었다. 그러나 진짜 데미안은 이렇게, 이 모습처럼 보였다. 이렇게 돌 같고, 태곳적부터 있었던 듯하고, 짐승 같고, 바위 같고, 아름답고 차갑고, 죽은 듯하면서도 남몰래 듣도 보도 못한 생명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둘레에는 이 고요한 공허, 이 에테르와 별의 공간, 이 고독한 죽음!

'이제 저 애는 완전히 자기 안으로 들어갔구나.' 나는 전율하며 그렇게 느꼈다. 그토록 외로웠던 적은 없었다. 나는 그 애에게 끼어들 수 없었다. 그 애는 내게 닿을 수 없었고, 세상에서 가장 먼 섬에 있을 때보다도 더 멀리 있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모두가 이쪽을 보아야 했고, 모두가 전율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애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애는 그림처럼, 그리고 내 생각에는 이상하게도 우상처럼 뻣뻣하게 앉아 있었고, 파리 한 마리가 그 애 이마에 앉더니 천천히 코와 입술 위를 기어갔지만 그 애는 주름 하나 움찔하지 않았다.

어디, 그 애는 지금 어디 있는 걸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천국에 있을까, 지옥에 있을까?

그것을 그 애에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그 애가 다시 살아서 숨 쉬는 것이 보이고 그 애의 눈길이 내 눈길과 마주쳤을 때, 그 애는 예전 그대로였다. 어디서 온 걸까? 어디 갔다 온 걸까? 그 애는 지쳐 보였다. 얼굴에 다시 핏기가 돌았고 손도 다시 움직였지만, 갈색 머리카락은 이제 윤기를 잃고 지친 듯했다.

그 뒤 며칠 동안 나는 내 침실에서 여러 번 새로운 연습에 몰두했다. 의자에 꼿꼿이 앉아 눈을 고정하고 완전히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그러는 동안 무엇을 느끼게 될지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그저 피곤해졌고 눈꺼풀이 몹시 가려웠을 뿐이었다.

곧이어 견신례가 있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중요한 기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린 시절이 내 둘레에서 무너져 폐허가 되었다. 부모는 어딘지 난처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누이들은 내게 완전히 낯설어졌다. 환멸이 익숙했던 감정과 기쁨을 비틀고 빛바래게 했다. 정원에는 향기가 없었고, 숲은 나를 부르지 않았고, 세상은 낡은 물건을 떨이로 파는 가게처럼 싱겁고 재미없이 내 둘레에 서 있었으며, 책은 종이였고, 음악은 소음이었다. 가을 나무 둘레에서 그렇게 잎이 진다.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비가 나무를 타고 흘러내리고, 햇빛이나 서리가 내리고, 그 안에서 생명은 천천히 가장 좁고 가장 깊은 곳으로 물러난다. 나무는 죽지 않는다. 기다린다.

방학이 끝나면 내가 다른 학교로 가고 처음으로 집을 떠나기로 정해졌다. 이따금 어머니가 유난히 다정하게 다가왔다. 미리 작별하면서, 사랑과 그리움과 잊지 못할 것을 내 가슴에 마법처럼 불어넣으려 애썼다. 데미안은 여행을 떠나고 없었다. 나는 혼자였다.

주

  1. 1. 누가복음 23장 39~43절. 예수와 함께 못 박힌 두 죄인 가운데 하나는 예수를 조롱하고 하나는 뉘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