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여름밤 내내 이웃집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푸르스름한 정원에서는 남자들과 아가씨들이 속삭임과 샴페인과 별빛 사이를 나방처럼 오갔다. 오후에 물이 가득 차오르면 나는 그 집 손님들이 뗏목 위 다이빙대에서 물로 뛰어드는 모습이며 그 집 해변의 뜨거운 모래밭에서 볕을 쬐는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그사이 모터보트 두 척이 해협의 물살을 가르며 사람을 태운 널빤지를 끌고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거품 위를 내달렸다. 주말이면 그의 롤스로이스가 합승 버스가 되어 아침 아홉 시부터 자정이 한참 지날 때까지 손님들을 싣고 시내를 오갔고, 스테이션왜건은 날랜 노란 벌레처럼 쪼르르 달려 나가 들어오는 기차마다 마중을 했다. 그리고 월요일이면 임시로 부른 정원사 하나까지 더해 하인 여덟 명이 대걸레와 솔과 망치와 전지가위를 들고 온종일 땀을 흘리며 지난밤이 할퀴고 간 자리를 손보았다.
금요일마다 뉴욕의 과일 가게에서 오렌지와 레몬이 다섯 상자씩 들어왔고, 월요일마다 바로 그 오렌지와 레몬이 알맹이를 빼낸 반쪽 껍데기가 되어 피라미드처럼 쌓인 채 뒷문으로 나갔다. 부엌에는 기계가 한 대 있었는데, 집사가 엄지로 조그만 단추를 200번 누르기만 하면 오렌지 200개의 즙을 30분 만에 짜낼 수 있었다.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출장 연회 업자들이 한 부대를 이루어 내려왔다. 수백 피트나 되는 천막용 천에다, 개츠비의 거대한 정원을 통째로 크리스마스트리로 만들 만큼 넉넉한 색색의 전구까지 싣고서였다. 반짝이는 오르되브르로 꾸민 뷔페 식탁 위에서는 향신료를 발라 구운 햄이, 어릿광대 옷처럼 알록달록한 샐러드며 페이스트리로 빚은 돼지며 마법에 걸린 듯 짙은 금빛으로 구워진 칠면조와 비좁게 어깨를 부딪치고 있었다. 중앙 홀에는 진짜 놋쇠 난간을 두른 바가 차려졌다. 바에는 진과 온갖 독한 술에 까마득히 잊힌 코디얼1까지 갖추어 두었는데, 여자 손님들은 대부분 너무 어려서 그 술들을 하나하나 구별하지도 못했다.
일곱 시가 되면 악단이 와 있다. 달랑 다섯 명짜리 초라한 악단이 아니라, 오보에와 트롬본과 색소폰과 비올과 코넷과 피콜로에 낮은 북과 높은 북까지 갖추어 오케스트라석 하나를 통째로 메우는 악단이다. 마지막까지 헤엄치던 사람들도 이제는 해변에서 올라와 위층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뉴욕에서 온 차들은 진입로에 다섯 겹으로 늘어서 있고, 벌써 복도며 응접실이며 베란다가 원색의 옷차림과 기묘하게 새로 자른 단발머리와 스페인 카스티야 사람들도 꿈꾸지 못했을 숄로 울긋불긋하다. 바는 한창 흥청거리고, 쟁반에 실려 떠다니는 칵테일이 바깥 정원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마침내 공기는 수다와 웃음소리로, 무심코 흘리는 야릇한 암시와 하자마자 잊히는 소개로, 서로 이름도 모르는 여자들끼리 호들갑스럽게 반기는 인사로 살아서 들썩인다.
지구가 해로부터 휘청 멀어져 갈수록 불빛은 점점 밝아지고, 이제 악단은 노란 칵테일 음악을 연주하며, 목소리들이 빚어내는 오페라는 한 음 더 높아진다. 웃음은 시시각각 헤퍼져서 아낌없이 쏟아지고, 유쾌한 말 한마디에도 왈칵 엎질러진다. 무리는 점점 더 빠르게 바뀐다. 새로 온 사람들로 부풀었다가, 한 호흡 사이에 흩어지고 또 모인다. 벌써 떠도는 이들도 있다. 자신만만한 아가씨들이 몸집 좋고 한자리에 진득하게 붙박인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다가, 짜릿하고 즐거운 한순간 어느 무리의 한가운데가 되고, 그러고는 승리감에 들떠 쉴 새 없이 바뀌는 불빛 아래 바다처럼 일렁이며 뒤바뀌는 얼굴과 목소리와 빛깔 사이로 미끄러져 간다.
그러다 갑자기 이 떠돌이 가운데 하나가, 하늘하늘 떨리는 오팔빛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허공에 떠다니는 칵테일 한 잔을 낚아채더니 용기를 내려고 단숨에 털어 넣고는, 프리스코2처럼 두 손을 놀리며 캔버스 무대 위로 혼자 춤을 추며 나선다. 한순간 조용해진다. 악단장이 선선히 그 아가씨에게 박자를 맞춰 주고, 저 아가씨가 폴리스에 나오는 길다 그레이3의 대역이라는 잘못된 소문이 돌면서 여기저기서 수다가 와르르 터져 나온다. 파티가 시작되었다.
개츠비의 집에 처음 간 그날 밤, 정말로 초대를 받고 온 손님은 나를 포함해 몇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은 초대를 받고 가는 게 아니었다. 그냥 갔다. 자동차에 올라타면 차가 롱아일랜드까지 실어다 주었고, 그러다 보면 어찌어찌 개츠비의 집 문 앞에 닿아 있었다. 일단 거기 닿으면 개츠비를 아는 누군가가 소개를 해 주었고, 그다음부터는 놀이공원에나 어울릴 법한 행동 수칙을 따랐다. 개츠비를 아예 만나 보지도 않고 왔다 가는 때도 있었다. 순전히 파티를 즐기러 오는 그 단순한 마음 하나가 곧 입장권이었다.
나는 정말로 초대를 받았다. 그 토요일 아침 일찍, 울새 알처럼 연푸른 제복을 입은 운전사가 내 잔디밭을 건너와 자기 주인이 보낸 쪽지를 전해 주었는데, 놀라울 만큼 격식을 차린 글이었다. 오늘 밤 열리는 자신의 '조촐한 파티'에 왕림해 주신다면 개츠비로서는 더없는 영광이겠다고 했다. 몇 번 나를 뵌 적이 있어 진작 찾아뵈려 했으나 묘하게 사정이 겹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어 있었다. 그리고 끝에는 위풍당당한 필체로 제이 개츠비라고 서명이 되어 있었다.
나는 흰 플란넬 양복을 차려입고 일곱 시가 조금 넘어 그 집 잔디밭으로 건너갔고, 모르는 사람들이 소용돌이치며 맴도는 틈을 적잖이 거북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그래도 통근 기차에서 눈여겨본 얼굴이 여기저기 보이기는 했다. 무엇보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젊은 영국인들이었다. 수가 무척 많았고, 다들 옷을 잘 차려입었고, 다들 조금 굶주린 기색이었으며, 다들 듬직하고 부유해 보이는 미국인들을 붙들고 낮고 간곡한 목소리로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뭔가를 팔러 온 사람들이었다. 채권이든 보험이든 자동차든. 적어도 그들은 이 근방에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돈이 널려 있다는 걸 애가 탈 만큼 잘 알았고, 딱 맞는 가락으로 몇 마디만 건네면 그 돈이 제 것이 되리라고 믿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이 집 주인부터 찾아보려 했다. 그런데 주인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본 두세 사람이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전혀 모른다고 어찌나 펄쩍 뛰며 잡아떼던지, 나는 슬그머니 칵테일 탁자 쪽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정원을 통틀어 혼자 온 남자가 할 일 없는 외톨이처럼 보이지 않고 어정거릴 수 있는 곳은 거기뿐이었다.
순전히 멋쩍은 나머지 고주망태가 되도록 퍼마실 작정으로 가던 참에, 조던 베이커가 집에서 나와 대리석 계단 맨 위에 섰다. 몸을 살짝 뒤로 젖힌 채, 깔보는 듯하면서도 흥미롭다는 눈으로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기든 말든 나는 누구에게든 들러붙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기 시작할 판이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조던 쪽으로 다가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정원 너머까지 울린 내 목소리가 이상하리만큼 크게 들렸다.
"여기 오실 줄 알았어요." 내가 다가가자 조던이 건성으로 대꾸했다. "이 집 옆에 사신다고 하셨던 게 생각나서……"
조던은 무심하게 내 손을 잡았다. 조금만 기다리면 챙겨 주겠다는 약속 같은 손길이었다. 그러면서 똑같은 노란 드레스를 입고 계단 아래 멈춰 선 두 아가씨에게 귀를 기울였다.
"안녕하세요!" 두 아가씨가 입을 모아 외쳤다. "우승 못 하셔서 아쉬워요."
골프 대회 이야기였다. 조던은 한 주 전 결승에서 졌다.
"저희가 누군지 모르시겠지만요." 노란 옷 아가씨 하나가 말했다. "한 달쯤 전에 여기서 뵌 적 있어요."
"그새 머리를 물들이셨네요." 조던이 한마디 했다. 나는 흠칫 놀랐지만 두 아가씨는 벌써 무심히 발길을 옮긴 뒤였고, 조던의 말은 때 이르게 떠오른 달에 대고 한 말이 되어 버렸다. 그 달도 저녁 식사처럼 출장 연회 업자의 바구니에서 꺼내 온 게 틀림없었다. 조던의 가늘고 볕에 그은 금빛 팔을 내 팔에 걸친 채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 정원을 느긋하게 거닐었다. 칵테일 쟁반 하나가 어스름을 헤치고 우리 쪽으로 떠내려왔고, 우리는 노란 옷의 두 아가씨, 그리고 남자 셋과 한 탁자에 앉았다. 남자들은 셋 다 '웅얼웅얼 씨(Mr. Mumble)'라고 소개받았다.
"이런 파티에 자주 오세요?" 조던이 옆자리 아가씨에게 물었다.
"지난번에 온 게 바로 뵈었던 그 파티예요." 아가씨가 또랑또랑하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너도 그렇지, 루실?"
루실도 그랬다.
"난 여기 오는 게 좋아요." 루실이 말했다. "뭘 하든 신경을 안 쓰니까 늘 재미있거든요. 지난번에 왔을 때 의자에 걸려서 드레스가 찢어졌는데, 그 사람이 내 이름이랑 주소를 묻더라고요. 그러더니 일주일도 안 돼서 크루아리에 의상실에서 소포가 왔는데, 새 이브닝드레스가 들어 있지 뭐예요."
"그래서 그 옷, 그냥 받으셨어요?" 조던이 물었다.
"그럼요. 오늘 밤 입고 오려고 했는데 가슴께가 너무 커서 고치러 보냈어요. 가스 불꽃 같은 파란색에 연보라 구슬이 달린 옷이에요. 265달러짜리요."
"그런 일을 하는 남자라니, 뭔가 좀 수상해요." 다른 아가씨가 신이 나서 말했다. "누구하고든 말썽이 나는 건 싫은 거예요."
"누가요?" 내가 물었다.
"개츠비 말이에요. 누가 그러는데……"
두 아가씨와 조던이 은밀한 얘기를 나누듯 머리를 맞댔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그 사람이 예전에 사람을 죽인 것 같다고."
우리 모두 오싹 소름이 돋았다. 웅얼웅얼 씨 셋이 몸을 앞으로 숙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루실이 못 미덥다는 듯 반박했다. "그보다는 전쟁 때 독일 스파이였다는 쪽이죠."
남자 하나가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한테서 들었습니다. 독일에서 그 사람하고 같이 자랐다더군요." 남자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리에게 장담했다.
"어머, 아니에요." 처음 그 아가씨가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전쟁 때 미군에 있었다던데요." 우리가 이번엔 또 그 말에 솔깃해지자 아가씨는 신이 나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무도 안 본다고 생각할 때 그 사람을 한번 보세요. 사람을 죽였다는 데 내기라도 걸 수 있어요."
아가씨는 눈을 가늘게 뜨고 몸서리를 쳤다. 루실도 몸서리를 쳤다. 우리는 모두 돌아서서 개츠비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 세상에서 굳이 소곤거려야 할 일을 별로 찾지 못한 사람들조차 그를 두고는 소곤거렸으니, 그가 불러일으키는 낭만적인 억측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했다.
첫 번째 만찬이 차려지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면 한 번 더 나올 참이었다. 조던은 정원 건너편 탁자에 둘러앉은 자기 일행에게 나를 불렀다. 부부 세 쌍에 조던을 에스코트하는 대학생 하나가 끼어 있었는데, 이 대학생은 끈덕진 데다 걸핏하면 노골적인 음담을 던졌고, 조던이 조만간 많든 적든 제 몸을 자기에게 허락하리라고 믿는 게 뻔히 보였다. 이 일행은 이리저리 흩어지지 않고 점잖게 한 덩어리를 지키며, 이 고장의 근엄한 귀족을 대표하는 역할을 스스로 떠맡고 있었다. 이스트에그가 짐짓 몸을 낮춰 웨스트에그에 와 주면서도 그 무지갯빛 흥청거림에 물들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경계하는 모양새였다.
"나가요." 어쩐지 헛되고 어울리지 않는 30분이 흐른 뒤 조던이 속삭였다. "여긴 저한테 너무 점잖아요."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조던은 우리가 이 집 주인을 찾으러 간다고 일행에게 설명했다. 내가 아직 주인을 한 번도 못 만나서 불안해한다나. 대학생은 냉소적이고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들여다본 바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개츠비는 없었다. 조던이 계단 꼭대기에서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고, 베란다에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뭔가 중요해 보이는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갔더니 천장이 높은 고딕풍 서재가 나왔다. 조각을 새긴 영국산 떡갈나무 판자로 벽을 두른 방이었는데, 아마 바다 건너 어느 폐허에서 통째로 뜯어 온 것 같았다.
부엉이 눈처럼 동그랗고 커다란 안경을 쓴 뚱뚱한 중년 남자 하나가 얼큰하게 취한 채 커다란 탁자 모서리에 걸터앉아, 흐리멍덩하면서도 골똘한 눈으로 서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남자는 흥분한 기색으로 휙 돌아앉더니 조던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어떻게 생각해요?" 남자가 다짜고짜 물었다.
"뭘요?"
남자가 서가 쪽으로 손을 휘저었다.
"저거요. 아니, 사실은 검증하느라 애쓸 필요도 없어요. 내가 검증했거든요. 진짜예요."
"책이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진짜라니까요. 페이지도 있고 뭐든 다 있어요. 나는 튼튼하고 그럴싸한 판지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완전히 진짜예요. 페이지도 있고…… 자! 내가 보여 줄게요."
우리가 안 믿으리라고 넘겨짚은 남자는 서가로 달려가더니 《스토더드 강연집》 제1권을 들고 돌아왔다.4
"봐요!" 남자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틀림없는 인쇄물이에요. 나도 깜빡 속았다니까요. 이 친구, 아주 벨라스코가 따로 없어요.5 대성공이에요. 이 철저함 좀 봐요! 이 사실감! 게다가 어디서 멈출지도 알았어요. 페이지는 안 갈라 놨거든요.6 하지만 뭘 더 바라요? 뭘 더 기대하겠어요?"
남자는 내 손에서 책을 낚아채 허둥지둥 서가에 도로 꽂고는, 벽돌 한 장만 빠져도 서재 전체가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고 중얼거렸다.
"누구랑 왔어요?" 남자가 따지듯 물었다. "아니면 그냥 왔어요? 나는 누가 데려왔어요. 다들 누가 데려왔지요."
조던은 대답 없이 초롱초롱하고 쾌활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루스벨트라는 여자가 데려왔어요." 남자가 말을 이었다. "클로드 루스벨트 부인요. 알아요? 어젯밤에 어디선가 만났어요. 벌써 일주일째 취해 있는데, 서재에 앉아 있으면 술이 좀 깰까 싶어서요."
"깼어요?"
"조금은 깬 것 같아요.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여기 온 지 한 시간밖에 안 됐거든요. 내가 책 얘기 했던가요? 진짜예요. 그게……"
"하셨어요."
우리는 엄숙하게 남자와 악수를 나누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제 정원의 캔버스 무대에서는 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늙은 남자들은 젊은 아가씨들을 뒤로 밀어붙이며 끝도 없이 볼품없는 원을 그렸고, 잘난 체하는 남녀들은 유행을 따라 몸을 배배 꼬며 서로 끌어안은 채 구석 자리를 지켰다. 짝 없이 혼자 춤추는 아가씨들도 수두룩했고, 악단의 밴조나 드럼을 잠시 넘겨받아 짐을 덜어 주는 아가씨들도 있었다. 자정 무렵에는 흥이 한층 달아올랐다. 이름난 테너가 이탈리아어로 노래를 불렀고, 악명 높은 콘트랄토는 재즈를 불렀으며, 노래와 노래 사이에는 정원 곳곳에서 사람들이 '묘기'를 부렸다. 그러는 동안 행복하고 공허한 웃음소리가 왈칵왈칵 여름 하늘로 솟아올랐다. 무대 쌍둥이 한 쌍이 의상까지 갖춰 입고 아기 흉내를 내는 공연을 했는데, 알고 보니 노란 옷의 그 두 아가씨였다. 샴페인은 핑거볼보다 큰 잔에 담겨 나왔다. 달은 더 높이 떠올랐고, 해협에는 은빛 비늘로 된 삼각형 하나가 떠서, 잔디밭의 밴조들이 뻣뻣하게 똑똑 떨구는 양철 같은 소리에 맞춰 가늘게 떨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조던 베이커와 함께였다. 우리는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 하나, 그리고 조금만 건드려도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시끄러운 꼬마 아가씨와 한 탁자에 앉아 있었다. 이제는 나도 즐거웠다. 핑거볼만 한 잔으로 샴페인을 두 잔 비웠더니, 눈앞의 광경이 무언가 의미심장하고 근원적이며 심오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흥이 잠시 잦아든 틈에 남자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어디서 뵌 얼굴 같습니다." 남자가 정중하게 말했다. "전쟁 때 1사단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아, 네. 28보병연대에 있었습니다."
"저는 1918년 6월까지 16연대에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뵌 적이 있다 싶었지요."
우리는 비에 젖은 프랑스의 잿빛 작은 마을 몇 군데를 두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는 이 근방에 사는 모양이었다. 수상 비행기를 막 한 대 샀는데 아침에 시험 삼아 띄워 볼 생각이라고 했으니까.
"같이 가 보시겠습니까, 올드 스포트7? 해협을 따라 물가 가까이만 돌아볼 생각입니다."
"몇 시예요?"
"언제든 가장 편하신 시간에요."
이름을 물어보려는 말이 막 혀끝까지 나왔을 때 조던이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 좀 즐거우세요?" 조던이 물었다.
"훨씬 나아요." 나는 새로 알게 된 남자에게 다시 몸을 돌렸다. "저한테는 좀 별난 파티예요. 아직 주인 얼굴도 못 봤거든요. 저는 저기 사는데……" 나는 멀리 보이지 않는 산울타리 쪽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개츠비라는 이 사람이 운전사 편에 초대장을 보냈더라고요."
남자는 잠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제가 개츠비입니다." 남자가 불쑥 말했다.
"네?" 나는 소리쳤다.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알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올드 스포트. 아무래도 제가 썩 훌륭한 주인은 못 되는 모양입니다."
그는 이해한다는 듯 미소 지었다. 아니, 이해한다는 정도를 훌쩍 넘어서는 미소였다. 살면서 네댓 번이나 마주칠까 말까 한, 영원히 안심해도 좋다고 다독이는 무언가가 깃든 드문 미소였다. 그 미소는 한순간 영원한 온 세상을 마주하는 듯하다가, 아니 마주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이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당신 편을 드는 마음으로 오로지 당신에게 쏠렸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딱 그만큼 이해해 주었고, 스스로를 믿고 싶은 만큼 믿어 주었으며, 가장 좋은 모습일 때 남에게 심어 주고 싶은 바로 그 인상을 자기도 틀림없이 받았노라고 장담해 주었다. 바로 그 대목에서 미소는 사라졌고, 내 앞에는 서른을 한두 해 넘겼을 우아한 젊은 건달 하나가 서 있었다. 공들여 격식을 차린 말씨가 하마터면 우스꽝스러울 뻔한 사내였다. 그가 제 이름을 밝히기 얼마 전부터 나는 그가 말을 신중하게 골라 쓴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개츠비 씨가 자기가 누구인지 밝힌 거의 그 순간, 집사 하나가 서둘러 다가와 시카고에서 전화가 왔다고 알렸다. 그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차례로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올드 스포트." 그가 간곡하게 권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이따가 다시 합석하겠습니다."
그가 가자마자 나는 곧장 조던을 돌아보았다. 놀랐다는 걸 알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나는 개츠비 씨가 얼굴이 불그레하고 뚱뚱한 중년 남자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저 사람 누구예요?" 내가 다그쳐 물었다. "아세요?"
"그냥 개츠비라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어디서 왔느냐는 말이에요.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는지요."
"결국 그 얘기로 넘어가시네요." 조던이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언젠가 저한테 옥스퍼드 출신이라고 하더라고요."
그의 등 뒤로 흐릿한 배경이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지만, 조던의 다음 말에 이내 스러져 버렸다.
"그렇지만 전 그 말 안 믿어요."
"왜요?"
"모르겠어요." 조던은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냥 거기 다녔을 것 같지가 않아요."
조던의 말투에 묻은 무언가가 아까 그 아가씨가 "그 사람, 사람을 죽인 것 같아요" 하던 말을 떠올리게 했고, 그 바람에 호기심이 더 동했다. 개츠비가 루이지애나의 늪지대에서 나왔다거나 뉴욕 로어이스트사이드의 빈민가에서 나왔다는 이야기였다면 나는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젊은 남자가 난데없이 어디선가 태연하게 흘러들어 와 롱아일랜드해협 가에 궁전을 사들이는 법은 없었다. 적어도 시골에서 올라와 세상 물정 모르던 나는 그런 법은 없다고 믿었다.
"어쨌든 큰 파티를 여는 사람이잖아요." 조던이 구체적인 얘기라면 질색하는 도시 사람다운 태도로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전 큰 파티가 좋아요. 아주 오붓하거든요. 작은 파티에서는 사생활이라는 게 없잖아요."
큰북이 둥 울리더니, 서로 말을 되받아 메아리치는 정원의 웅성거림 위로 악단장의 목소리가 불쑥 울려 퍼졌다.
"신사 숙녀 여러분!" 악단장이 외쳤다. "개츠비 씨의 요청으로 지금부터 블라드미르 토스토프8 씨의 최신작을 연주해 드리겠습니다. 지난 5월 카네기 홀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던 곡이지요. 신문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단한 센세이션이었습니다." 그는 쾌활하게 선심 쓰듯 웃으며 덧붙였다. "센세이션도 그런 센세이션이 없었지요!" 그러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 곡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그가 우렁차게 말을 맺었다. "'블라드미르 토스토프의 재즈 세계사'!"
토스토프 씨의 곡이 어떤 곡이었는지는 모르고 지나갔다. 곡이 막 시작될 무렵, 대리석 계단에 홀로 서서 흐뭇한 눈으로 이 무리 저 무리를 둘러보는 개츠비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볕에 그은 살갗이 얼굴 위로 보기 좋게 팽팽히 당겨져 있었고, 짧은 머리는 날마다 다듬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서 음험한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형제처럼 어우러진 흥청거림이 무르익을수록 개츠비는 점점 더 단정해지는 것 같았는데,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점이 그를 손님들과 달라 보이게 하는 데 한몫하는 걸까 싶었다. '재즈 세계사'가 끝났을 때 아가씨들은 강아지처럼 살갑게 남자들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고, 누군가 받아 주리라는 걸 알고 장난스레 뒤로 쓰러지듯 남자들 품으로, 아니 아예 여럿이 모인 무리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개츠비에게 뒤로 쓰러지는 아가씨는 아무도 없었고, 개츠비의 어깨에 닿는 프랑스식 단발머리도 없었으며, 머리를 맞대고 노래하는 사중창단 가운데 개츠비의 머리가 고리 하나를 이루는 일도 없었다.
"실례합니다."
어느새 개츠비의 집사가 우리 곁에 서 있었다.
"베이커 양이십니까?" 집사가 물었다. "실례지만 개츠비 씨께서 따로 말씀을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저하고요?" 조던이 놀라서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아가씨."
조던은 어리둥절하다는 듯 나에게 눈썹을 치켜올려 보이며 천천히 일어나서는 집사를 따라 집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보니 조던은 야회복을, 아니 어떤 드레스든 운동복처럼 입는 사람이었다. 몸놀림에 어딘가 경쾌한 멋이 있었는데, 맑고 상쾌한 아침의 골프장에서 처음 걸음마를 배운 사람 같았다.
나는 혼자 남았고, 시각은 거의 두 시였다. 테라스 위로 내민, 창이 여럿 달린 기다란 방에서 한동안 어수선하면서도 궁금증을 돋우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던의 그 대학생은 이제 코러스 걸 둘을 붙들고 해산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가 나더러 끼라고 사정했지만, 나는 그를 슬쩍 피해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방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노란 옷 아가씨 하나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고, 그 곁에는 이름난 코러스단 출신이라는 키 크고 머리가 붉은 아가씨가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샴페인을 잔뜩 마신 그 아가씨는 노래를 부르던 도중에, 얼토당토않게도 세상만사가 몹시, 몹시 슬프다고 결론을 내려 버렸다. 그래서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울기까지 했다. 노래가 잠깐 쉬는 대목마다 숨넘어가는 흐느낌으로 틈을 메웠고, 그러고는 떨리는 소프라노로 다시 가사를 이어 갔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다고 순순히 흘러내린 것은 아니었다. 마스카라를 구슬처럼 잔뜩 뭉쳐 바른 속눈썹에 닿자 눈물은 먹물 빛으로 물들었고, 남은 길은 느릿느릿 검은 실개천이 되어 내려갔다. 누군가 얼굴에 그려진 악보를 보고 부르면 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자, 아가씨는 두 손을 번쩍 쳐들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술기운에 깊은 잠으로 곯아떨어졌다.
"자기 남편이라는 남자하고 싸웠대요." 내 곁에 있던 아가씨가 설명해 주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아 있는 여자들은 이제 대부분 남편이라는 남자들과 싸우고 있었다. 조던의 일행, 그러니까 이스트에그에서 온 네 사람마저 불화로 갈라져 있었다. 그중 남자 하나가 젊은 여배우와 이상하리만큼 열을 올리며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의 아내는 처음에는 위엄 있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어넘기려 하다가 끝내 완전히 무너져서 측면 공격에 나섰다. 이따금 성난 다이아몬드처럼 남편 곁에 불쑥 나타나서는 그 귀에 대고 "약속했잖아요!" 하고 날카롭게 속삭였다.
집에 가기 싫어하는 건 제멋대로 구는 남자들만이 아니었다. 지금 현관 홀에는 딱하게도 정신이 말짱한 남자 둘과 몹시 성이 난 그 아내들이 있었다. 두 아내는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서로 맞장구를 치며 위로하고 있었다.
"내가 좀 즐겁다 싶으면 꼭 집에 가자고 한다니까요."
"세상에, 그렇게 이기적인 소리는 난생처음 들어요."
"우린 늘 제일 먼저 자리를 떠요."
"우리도 그래요."
"그래도 오늘 밤은 거의 꼴찌잖아." 남자 하나가 멋쩍게 말했다. "악단도 30분 전에 갔다고."
그런 몹쓸 심술은 믿을 수가 없다고 두 아내가 입을 모았지만, 말다툼은 짧은 몸싸움으로 끝났고, 두 아내는 발버둥을 치며 번쩍 들린 채 밤 속으로 실려 나갔다.
홀에서 모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서재 문이 열리더니 조던 베이커와 개츠비가 함께 나왔다. 개츠비는 조던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는데, 몇 사람이 작별 인사를 하러 다가오자 열띠던 태도가 갑자기 딱딱하게 굳으며 격식을 차렸다.
조던의 일행이 현관 앞에서 조바심을 내며 조던을 불렀지만, 조던은 나와 악수를 하느라 잠깐 꾸물거렸다.
"방금 정말 놀라운 얘기를 들었어요." 조던이 속삭였다. "우리 거기 얼마나 있었어요?"
"글쎄요, 한 시간쯤요."
"그건…… 정말이지 놀라웠어요." 조던은 딴생각에 잠긴 얼굴로 되뇌었다. "그런데 아무한테도 말 안 하겠다고 맹세해 놓고 이렇게 애만 태우고 있네요." 조던은 내 얼굴에 대고 우아하게 하품을 했다. "꼭 한번 찾아오세요…… 전화번호부에…… 시거니 하워드 부인 이름으로요…… 제 고모예요……" 조던은 말하면서 벌써 서둘러 가고 있었다. 볕에 그은 손을 경쾌하게 흔들어 인사를 보내더니, 문간의 일행 속으로 녹아들듯 사라졌다.
처음 온 자리에서 이렇게 늦게까지 남아 있었던 게 좀 부끄러워서, 나는 개츠비를 둘러싸고 모여 있는 마지막 손님들 틈에 끼었다. 초저녁에 그를 찾아 헤맸다는 걸 해명하고, 정원에서 그를 몰라본 걸 사과하고 싶었다.
"별말씀을요." 그가 열띤 목소리로 나를 말렸다. "그런 건 조금도 마음에 두지 마세요, 올드 스포트." 스스럼없는 호칭이었지만, 괜찮다는 듯 내 어깨를 가볍게 스치고 간 손길 이상의 스스럼없음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수상 비행기 타러 가는 것, 잊지 마십시오."
그때 그의 어깨 뒤에서 집사가 말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주인님."
"알겠어요, 곧 가지요. 바로 간다고 전해 주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그가 미소 지었다. 그러자 갑자기, 마지막까지 남은 몇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는 게 무언가 기분 좋은 의미가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가 처음부터 줄곧 그러기를 바랐다는 듯이. "안녕히 가십시오, 올드 스포트…… 안녕히."
그런데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그날 밤은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었다. 문에서 50피트 떨어진 곳에서 전조등 열두어 개가 괴상하고 소란스러운 광경을 비추고 있었다. 길가 도랑에 새 쿠페 한 대가 처박혀 있었는데, 뒤집히지는 않았지만 바퀴 하나가 사정없이 뜯겨 나가 있었다. 개츠비의 진입로를 빠져나간 지 채 2분도 안 된 차였다. 바퀴가 빠진 것은 날카롭게 튀어나온 담 모서리 탓이었고, 지금은 호기심 많은 운전사 대여섯 명이 그 바퀴를 꽤나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저마다 차를 길에 세워 둔 채 내리는 바람에 길이 막혀서 뒤에 선 차들이 한참 전부터 귀에 거슬리게 빵빵거렸고, 그 소리가 가뜩이나 난장판인 현장을 더 어지럽혔다.
기다란 먼지막이 외투를 입은 남자 하나가 부서진 차에서 내려 길 한복판에 서서는, 기분 좋게 어리둥절한 얼굴로 차를 보았다가 타이어를 보았다가, 다시 타이어를 보았다가 구경꾼들을 보았다가 했다.
"보세요!" 남자가 설명했다. "도랑에 빠졌어요."
남자에게는 그 사실이 한없이 놀라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 남다른 경탄의 빛을 먼저 알아보았고, 이어서 그 사람을 알아보았다. 조금 전까지 개츠비의 서재를 애용하던 바로 그 손님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기계라면 아무것도 몰라요." 남자가 딱 잘라 말했다.
"그래도 어쩌다 이렇게 된 거예요? 담을 들이받으셨어요?"
"나한테 묻지 마요." 부엉이 눈은 이 일에서 아예 손을 떼겠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운전은 잘 몰라요. 거의 모른다고 봐야지요. 일이 이렇게 됐다는 것밖에는 나도 몰라요."
"운전이 서투르시면 밤에는 운전할 생각을 마셔야죠."
"하지만 나는 할 생각도 안 했어요." 남자가 발끈해서 해명했다. "할 생각도 안 했다니까요."
구경꾼들 사이에 숙연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자살이라도 하고 싶었어요?"
"바퀴 하나로 끝났으니 운 좋은 줄 알아요! 운전도 서툰 사람이 제대로 할 생각조차 없었다니!"
"뭘 모르시는군요." 범인이 해명했다. "운전한 건 내가 아니에요. 차에 사람이 하나 더 있어요."
이 선언이 불러온 충격은 쿠페 문이 천천히 열리는 동안 길게 이어지는 "아아아!" 소리로 터져 나왔다. 군중은(이제는 정말 군중이었다)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고, 문이 활짝 열리자 귀신이 나올 것만 같은 정적이 흘렀다. 그러더니 아주 느릿느릿, 한 부분씩, 창백하고 흐느적거리는 사람 하나가 부서진 차에서 걸어 나왔다. 커다란 무도화 한 짝으로 땅바닥을 미심쩍게 더듬으면서.
전조등 불빛에 눈이 부시고 끊임없이 울어 대는 경적에 정신이 없는지, 그 유령 같은 사내는 한동안 비틀거리며 서 있다가 그제야 먼지막이 외투를 입은 남자를 알아보았다.
"뭔 일이래요?" 사내가 태연하게 물었다. "기름 떨어졌나요?"
"저거 봐요!"
손가락 대여섯 개가 잘려 나간 바퀴를 가리켰다. 사내는 한동안 바퀴를 멀뚱히 바라보더니,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듯 위를 올려다보았다.
"바퀴가 빠졌어요." 누군가 설명해 주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첨엔 차가 선 줄도 몰랐네요."
잠시 말이 끊겼다. 그러더니 사내는 숨을 길게 들이쉬고 어깨를 쫙 펴고는, 굳게 마음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주유소 어딨는지 누가 좀 알려 줄래요?"
적어도 열두어 명이, 개중에는 그보다 조금 덜 취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바퀴와 차가 이제는 어떤 물리적인 끈으로도 이어져 있지 않다고 사내에게 설명했다.
"뒤로 빼 봐요." 잠시 뒤 사내가 제안했다. "후진 기어를 넣고요."
"바퀴가 빠졌다니까요!"
사내는 머뭇거렸다.
"해 봐서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사내가 말했다.
고양이 울음 같은 경적 소리가 절정에 이르자 나는 돌아서서 잔디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웨이퍼처럼 얇은 달이 개츠비의 집 위에서 빛나며 밤을 아까처럼 곱게 밝히고 있었다. 아직 불빛이 환한 그의 정원에서 웃음과 소리가 잦아든 뒤에도 달은 살아남아 거기 떠 있었다. 갑작스러운 공허가 이제 창마다, 커다란 문마다 흘러나오는 것 같았고, 그 공허는 현관에 서서 격식을 갖추어 작별의 손을 들어 보이는 주인의 모습을 완전한 고립 속에 남겨 두었다.
지금까지 쓴 것을 다시 읽어 보니, 몇 주씩 떨어진 사흘 밤의 일만이 나를 온통 사로잡았던 것처럼 써 놓았다. 실은 그 반대였다. 그 일들은 분주한 여름에 우연히 끼어든 일들일 뿐이었고, 한참 뒤까지도 나를 사로잡은 정도로 치면 내 개인적인 일들에 한없이 못 미쳤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보냈다. 이른 아침이면 뉴욕 남쪽 끝의 하얀 협곡 같은 거리를 바삐 걸어 프로비티 신탁회사9로 가는 동안 아침 해가 내 그림자를 서쪽으로 길게 던졌다. 다른 사무원들이며 젊은 채권 판매원들과는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였고, 어둡고 붐비는 식당에서 그들과 함께 조그만 돼지고기 소시지와 으깬 감자와 커피로 점심을 먹었다. 저지시티에 살면서 회계부에서 일하던 아가씨와 잠깐 연애를 하기도 했는데, 그 아가씨의 오빠가 나를 험악한 눈으로 노려보기 시작하는 바람에, 7월에 아가씨가 휴가를 떠났을 때 나는 그 관계가 조용히 흐지부지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저녁은 대개 예일 클럽에서 먹었다. 어째서인지 그게 하루 중 가장 우울한 일과였다. 저녁을 먹고 나면 위층 도서실로 올라가 한 시간 동안 성실하게 투자와 증권을 공부했다. 대개 떠들썩한 패거리가 몇 있었지만 도서실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공부하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그러고 나서 밤공기가 푸근하면 매디슨가를 따라 오래된 머리힐 호텔을 지나 걸어 내려갔고, 33번가로 접어들어 펜실베이니아 역까지 갔다.
나는 뉴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밤이면 풍기는 그 짜릿하고 모험 가득한 기운이 좋았고, 남자와 여자와 기계들이 쉴 새 없이 깜박이며 오가는 모습이 가만있지 못하는 눈에 안겨 주는 만족감이 좋았다. 나는 5번가를 걸어 올라가며 인파 속에서 낭만적인 여자들을 골라내고는, 몇 분 뒤면 내가 그 여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 테고 아무도 그걸 알거나 나무라지 않으리라 상상하기를 좋아했다. 때로는 마음속으로 그 여자들을 따라 숨은 거리 모퉁이의 아파트까지 갔고, 여자들은 문 안의 따뜻한 어둠 속으로 스러지기 전에 뒤돌아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대도시의 마법 같은 황혼 녘이면 나는 이따금 떨쳐지지 않는 외로움을 느꼈고, 남들에게서도 그걸 느꼈다. 혼자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될 때까지 진열창 앞을 서성이는 가난한 젊은 사무원들, 땅거미 속의 젊은 사무원들은 밤과 인생에서 가장 가슴 저미는 순간들을 그렇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또 여덟 시, 40번대 거리의 어두운 골목마다 극장가로 향하는 택시들이 부르릉거리며 다섯 겹으로 늘어설 때면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기다리는 동안 택시 안에서는 사람의 형체들이 서로에게 기대고, 노랫소리가 흐르고, 들리지 않는 농담에 웃음이 터졌으며, 불붙은 담배가 알아볼 수 없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나도 저들처럼 즐거움을 향해 서둘러 가며 그 은밀한 설렘을 함께 나누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나는 그들이 잘되기를 빌었다.
한동안 조던 베이커를 보지 못하다가 한여름에 다시 만났다. 처음에는 조던과 함께 여기저기 다니는 게 우쭐했다. 조던은 골프 챔피언이었고, 모두가 그 이름을 알았으니까. 그러다 그 이상이 되었다. 정말로 사랑에 빠진 건 아니었지만, 애틋한 호기심 같은 것이 생겼다. 조던이 세상에 내보이는 권태롭고 오만한 얼굴 뒤에는 무언가가 숨어 있었다. 꾸민 태도란 처음에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대개 무언가를 감추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아냈다. 워릭의 어느 저택에서 열린 주말 모임에 함께 갔을 때, 조던은 빌린 차를 지붕을 젖힌 채 빗속에 세워 두고는 그 일로 거짓말을 했다. 그 순간 데이지네 집에서 보낸 그날 밤 끝내 생각나지 않던 조던에 관한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조던이 처음 나간 큰 골프 대회에서 하마터면 신문에까지 날 뻔한 소동이 있었다. 준결승에서 치기 나쁜 자리에 떨어진 공을 조던이 슬쩍 옮겼다는 말이 돌았다. 일은 추문이라 할 만큼 커질 뻔하다가 잠잠해졌다. 캐디 하나가 진술을 뒤집었고, 유일한 다른 목격자도 자기가 잘못 보았을지 모른다고 인정했다. 그 일과 그 이름은 내 머릿속에 나란히 붙어 남아 있었다.
조던 베이커는 영리하고 약삭빠른 남자들을 본능적으로 피했는데, 이제 보니 규범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일은 아예 있을 수 없다고 여기는 세계에 있어야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었다. 조던은 구제 불능으로 정직하지 못했다.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걸 견디지 못했고, 그렇게 지기 싫어하는 성미였으니, 세상을 향해 그 서늘하고 오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도 단단하고 경쾌한 제 몸이 요구하는 것을 채우려고 아주 어릴 때부터 둘러대고 속이는 수를 쓰기 시작했으리라고 나는 짐작한다.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여자의 부정직함은 깊이 탓할 일이 못 된다. 나는 가볍게 유감스러워하다가 이내 잊어버렸다. 운전을 두고 묘한 대화를 나눈 것도 바로 그 주말 모임에서였다. 조던이 인부 몇 사람 곁을 너무 바짝 스쳐 가는 바람에 우리 차 흙받기가 한 사람의 외투 단추를 툭 치고 지나간 게 발단이었다.
"운전 정말 형편없네요." 내가 항의했다. "좀 더 조심하든지, 아니면 아예 운전을 하지 말든지 하세요."
"조심하고 있어요."
"아니, 안 그래요."
"그럼 다른 사람들이 조심하겠죠." 조던이 가볍게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 사람들이 알아서 비켜 줄 테니까요." 조던은 고집을 부렸다. "사고가 나려면 두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요."
"조던 씨만큼 무신경한 사람을 만나면요?"
"그런 사람은 영영 안 만났으면 좋겠네요." 조던이 대답했다. "전 무신경한 사람이 싫어요. 그래서 닉 씨가 좋은 거예요."
볕에 시달린 조던의 잿빛 눈은 앞만 똑바로 보고 있었지만, 조던은 일부러 우리 사이를 한 걸음 옮겨 놓았고, 나는 한순간 조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굼뜨고, 욕망에 제동을 거는 내면의 규칙들로 가득한 사람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고향에 두고 온 그 얽힌 관계에서 확실히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써서 끝에 '사랑을 담아, 닉'이라고 서명해 왔지만, 떠오르는 거라고는 그 아가씨가 테니스를 칠 때면 윗입술에 땀방울이 콧수염처럼 희미하게 맺히던 모습뿐이었다. 그래도 둘 사이에는 어렴풋한 언약 같은 것이 있었고, 내가 자유로워지려면 그것부터 눈치 있게 끊어 내야 했다.
누구나 으뜸가는 덕목 가운데 적어도 하나쯤은 자기에게 있으리라고 은근히 혐의를 두기 마련인데, 내 경우는 이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정직한 사람 가운데 하나다.
주
1. 코디얼(cordial)은 과일이나 약초로 맛과 향을 낸 달콤한 리큐어. 미국에서는 1920년부터 1933년까지 금주법으로 술의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어 있었다.
2. 조 프리스코(Joe Frisco, 1889~1958). 중산모를 쓰고 시가를 문 채 추는 재즈 춤으로 인기를 끈 보드빌 무용수이자 희극 배우.
3. 길다 그레이(Gilda Gray, 1901~1959)는 '시미'라는 춤을 유행시킨 무용수. 폴리스(Follies)는 해마다 브로드웨이에 오르던 화려한 레뷔 '지그펠드 폴리스'를 말하며, 그레이는 1922년에 이 무대에 섰다.
4. 여행 강연가 존 L. 스토더드(John L. Stoddard, 1850~1931)의 강연을 엮은 여러 권짜리 여행기 전집. 당시 가정용 전집으로 널리 팔렸다.
5. 데이비드 벨라스코(David Belasco, 1853~1931). 브로드웨이의 연출가이자 제작자. 진짜 가구와 소품을 무대에 그대로 옮겨 놓는 사실주의 연출로 이름났다.
6. 당시 책은 인쇄한 종이를 접어 묶은 채 가장자리를 잘라 내지 않고 파는 경우가 많아서, 읽는 사람이 칼로 페이지를 갈라 가며 읽어야 했다. 페이지가 붙어 있다면 아무도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7. 올드 스포트(old sport). 영국 상류층 신사들의 말투를 흉내 낸 친근한 호칭으로 '여보게, 이 친구' 정도의 뜻이다. 개츠비의 입버릇인데, 미국인의 입에서 나오면 어딘가 꾸민 티가 나고 어색하게 들린다. 이 번역은 그 어색함을 살리려고 뜻을 옮기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었다.
8. 토스토프(Tostoff)는 '대충 해치우다, 뚝딱 만들어 내다'라는 뜻의 영어 toss off를 러시아 사람 이름처럼 비튼 것이다.
9. probity는 '정직, 청렴'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