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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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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날의 남은 시간과 그날 밤과 이튿날을, 경찰과 사진사와 신문기자들이 무슨 훈련이라도 하듯 개츠비의 현관문을 끝없이 들락거리던 광경으로만 기억한다. 정문에는 밧줄이 가로질러 쳐져 있었고 그 곁에 선 경관 하나가 구경꾼들을 막았다. 하지만 꼬마들은 우리 집 마당을 거치면 들어갈 수 있다는 걸 금세 알아냈고, 수영장 둘레에는 늘 몇 녀석이 입을 헤벌린 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날 오후, 확신에 찬 태도의 누군가가, 아마 형사였을 텐데, 윌슨의 시신 위로 몸을 굽히며 '미치광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고, 그 목소리에 어쩌다 실린 권위가 이튿날 아침 신문 보도들의 논조를 정해 버렸다.

그 보도들은 대부분 악몽이었다. 괴기스럽고, 시시콜콜하고, 호들갑스럽고, 사실이 아니었다. 검시 심리에서 나온 미케일리스의 증언으로 윌슨이 아내를 의심하고 있었음이 드러나자, 나는 이제 이야기 전체가 곧 낯뜨거운 풍자 기사로 차려져 나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을 캐서린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일에서 놀라울 만큼 강단까지 보였다. 뽑았다가 다시 그려 넣은 그 눈썹 아래로 단호한 눈길을 들어 검시관을 바라보며, 언니는 개츠비를 본 적도 없고, 언니는 남편과 더없이 행복하게 살았으며, 언니는 어떤 못된 짓에도 발을 들인 적이 없다고 맹세했다. 캐서린은 스스로도 그 말을 믿어 버렸고, 그런 말이 나온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다는 듯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리하여 사건을 가장 단순한 모양으로 남겨 두기 위해 윌슨은 '슬픔으로 실성한' 사내로 치부되었다. 그리고 일은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모두 아득하고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개츠비 편에 서 있었고, 혼자였다. 웨스트에그 마을에 그 참사를 전화로 알린 순간부터 그에 관한 온갖 추측과 온갖 실무적인 물음이 하나같이 나에게로 넘어왔다. 처음에는 놀랍고 어리둥절했지만, 그가 제 집에 누워 움직이지도 숨 쉬지도 말하지도 않는 채로 한 시간 또 한 시간이 흐르자,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이 차츰 굳어졌다. 다른 누구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관심이란, 누구나 마지막에는 어렴풋하게나마 누릴 권리가 있는, 그 절실하고도 사사로운 관심이다.

우리가 그를 발견하고 30분쯤 지나 나는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능적으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나 데이지와 톰은 그날 오후 일찍 짐을 꾸려 떠나 버린 뒤였다.

"주소도 남기지 않았습니까?"

"없습니다."

"언제 돌아온다는 말은요?"

"없습니다."

"어디 계신지 짐작 가는 데라도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연락이 닿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에게 누군가를 데려다주고 싶었다. 그가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가 이렇게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누군가 데려올게요, 개츠비. 걱정 마요. 나만 믿어요. 꼭 누군가 데려올 테니까……"

마이어 울프심의 이름은 전화번호부에 없었다. 집사가 브로드웨이에 있는 그의 사무실 주소를 알려 주어서 번호 안내에 전화를 걸었지만, 번호를 알아냈을 때는 다섯 시가 한참 지나 있었고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한 번만 더 걸어 봐 주시겠어요?"

"벌써 세 번이나 걸었는데요."

"아주 중요한 일이라서요."

"죄송합니다. 아무도 안 계신 것 같네요."

응접실로 돌아간 나는 갑자기 방을 가득 메운 관청 사람들을 한순간 어쩌다 들른 방문객들로 여겼지만, 그들이 시트를 걷고 충격받은 눈으로 개츠비를 내려다보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그의 항변이 이어지고 있었다.

"저, 올드 스포트. 저한테 누구든 좀 데려다주셔야 합니다. 애를 좀 써 주셔야 해요. 이걸 저 혼자서는 견뎌 낼 수가 없어요."

누군가 나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지만 나는 뿌리치고 위층으로 올라가, 그의 책상에서 잠기지 않은 칸들을 허둥지둥 뒤졌다. 부모가 죽었다는 말을 그에게서 분명히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잊힌 폭력의 증표인 댄 코디의 초상 하나만이 벽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울프심에게 보내는 편지를 들려 집사를 뉴욕으로 보냈다. 사정을 알려 달라는 말과 함께 다음 기차로 와 달라고 재촉하는 편지였다. 쓰면서도 괜한 부탁이다 싶었다. 신문을 보면 그가 당장 길을 나서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정오가 되기 전에 데이지에게서 전보가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처럼. 그러나 전보도 울프심 씨도 오지 않았고, 온 사람이라고는 더 많은 경찰과 사진사와 신문기자들뿐이었다. 집사가 울프심의 답장을 들고 돌아왔을 때, 나는 반항심 같은 것을, 그들 모두에 맞서 개츠비와 내가 함께 품은 경멸 어린 연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캐러웨이 씨. 이번 일은 내 평생에 나한테 가장 끔찍한 충격 중에 하나라서 그게 정말로 사실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도 않습니다. 그 남자가 저지른 그런 미친 짓 같은 것은 우리 모두를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아주 중요한 사업에 묶여 있어서 지금은 내려갈 수가 없고 지금 이 일에 얽힐 수가 없습니다. 조금 나중에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으면 에드거 편에 편지로 알게 해 주십시오. 이런 일을 들으면 내가 어디 있는지도 거의 모르겠고 완전히 녹다운에 녹아웃이 됐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마이어 울프심

그리고 그 밑에는 서둘러 덧붙인 말이 있었다.

장례식 등등 알려 주기 바람 그 사람 가족은 전혀 모름.

그날 오후 전화벨이 울리고 장거리 교환원이 시카고에서 온 전화라고 알려 주었을 때, 나는 이번에야말로 데이지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연결되어 들려온 것은 남자 목소리였다. 아주 가늘고, 아득히 먼 목소리.

"슬레이글입니다……"

"네?" 모르는 이름이었다.

"이거 참 꼴좋게 됐죠, 안 그래요? 내 전보 받았어요?"

"전보는 한 통도 안 왔는데요."

"파크 그 녀석이 큰일 났어요." 그가 빠르게 말했다. "창구에 채권을 내밀다가 붙잡혔대요. 딱 5분 전에 뉴욕에서 채권 번호를 적은 회람이 그쪽에 들어갔다지 뭐예요. 이게 말이 돼요, 네? 이런 촌구석에선 도무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니까요……"

"여보세요!" 나는 숨 가쁘게 말을 끊었다. "이봐요, 저는 개츠비 씨가 아닙니다. 개츠비 씨는 죽었어요."

수화기 저편에서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더니 외마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연결이 끊기며 짧게 꽥 하는 소리가 났다.

미네소타의 어느 소도시에서 헨리 C. 개츠라는 서명이 든 전보가 온 것은 사흘째 되던 날이었던 것 같다. 보낸 사람이 곧바로 떠나니 자기가 도착할 때까지 장례식을 미뤄 달라는 말뿐이었다.

개츠비의 아버지였다. 엄숙한 노인이었는데, 몹시 무력하고 넋이 나간 모습이었으며, 따뜻한 9월 날씨인데도 길고 값싼 외투로 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흥분한 탓인지 두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새어 나왔고, 내가 가방과 우산을 받아 들자 노인은 성긴 잿빛 수염을 어찌나 연신 잡아당기던지 외투를 벗겨 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아서 나는 노인을 음악실로 데려가 앉히고 먹을 것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노인은 먹으려 하지 않았고, 떨리는 손에서 우유 잔이 엎질러졌다.

"시카고 신문에서 봤소." 노인이 말했다. "시카고 신문에 다 났더구먼. 보자마자 떠났소."

"어떻게 연락을 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노인의 두 눈이 끊임없이 방 안을 헤맸다.

"미친 사람 짓이오." 노인이 말했다. "미친놈이었던 게 틀림없소."

"커피라도 좀 드시지 않겠습니까?" 내가 권했다.

"아무것도 생각 없소. 난 이제 괜찮소, 저, 선생……"

"캐러웨이입니다."

"그래요, 난 이제 괜찮소. 지미는 어디다 눕혀 놨소?"

나는 노인을 아들이 누워 있는 응접실로 데려가 그곳에 혼자 두고 나왔다. 꼬마 몇이 계단까지 올라와 현관 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누가 왔는지 일러 주자 마지못해 물러갔다.

조금 뒤 개츠 씨가 문을 열고 나왔는데, 입은 반쯤 벌어져 있었고 얼굴은 살짝 상기되었으며 두 눈에서는 눈물이 드문드문, 제때도 모르고 새어 나왔다. 노인은 죽음이 더는 소름 끼치는 놀라움으로 다가오지 않는 나이에 이르러 있었고, 그런 그가 이제야 처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천장 높고 화려한 홀과 거기서 또 다른 방들로 이어지며 열려 나가는 커다란 방들을 보자, 그 슬픔에는 경외에 찬 자부심이 섞여 들기 시작했다. 나는 노인을 부축해 위층 침실로 모셨고, 외투와 조끼를 벗는 노인에게 모든 절차를 그가 올 때까지 미뤄 두었다고 일러 주었다.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실지 몰라서요, 개츠비 씨……"

"내 이름은 개츠요."

"……개츠 씨. 혹시 시신을 서부로 모셔 가고 싶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지미는 늘 동부 쪽을 더 좋아했소. 그 애가 그만한 자리에 오른 것도 동부에서였고. 우리 애하고 친구였소, 선생……?"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 애 앞엔 큰 앞날이 있었다오.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여기, 머리가 아주 좋았지."

노인이 자못 의미심장하게 제 머리를 짚어 보였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가 살았으면 큰 인물 됐을 거요. 제임스 J. 힐1 같은 사람 말이오. 이 나라를 일으키는 데 한몫했을 거요."

"그랬을 겁니다." 내가 거북해하며 대답했다.

노인은 수놓은 침대 덮개를 걷어 내려고 더듬거리다가 그대로 뻣뻣하게 드러누웠고, 곧바로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누가 들어도 겁에 질린 게 분명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자기 이름을 대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부터 밝히라고 했다.

"캐러웨이입니다." 내가 말했다.

"아!" 그가 안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클립스프링어예요."

그 이름이 개츠비의 무덤가에 친구 하나가 더 서 주리라는 약속처럼 들려서 나도 마음이 놓였다. 나는 장례식이 신문에 나서 구경꾼들이 몰려드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몇몇 사람에게 직접 전화를 돌리던 참이었는데, 다들 좀처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장례식은 내일입니다." 내가 말했다. "세 시, 여기 이 집에서요. 관심 있을 만한 분들께 좀 알려 주시면 좋겠어요."

"아, 그럴게요." 그가 황급히 말을 쏟아 냈다. "물론 제가 누굴 만날 일이야 별로 없겠지만, 만나게 되면요."

그 말투에 의심이 들었다.

"물론 본인은 오시겠지요."

"글쎄요, 가 보도록 꼭 애는 써 볼게요. 제가 전화한 건……"

"잠깐만요." 내가 말을 끊었다. "오겠다고 말씀하시는 게 어때요?"

"저, 그게……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여기 그리니치에서 어떤 분들 댁에 묵고 있는데, 그분들이 내일은 제가 같이 있어 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라서요. 실은 소풍인지 뭔지가 있거든요. 물론 빠져나가 보려고 최선을 다하긴 할게요."

나는 참지 못하고 "허!" 하고 내뱉었는데, 그 소리를 들었는지 그는 초조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전화드린 건 거기 두고 온 신발 한 켤레 때문이에요. 번거로우시겠지만 집사한테 좀 부쳐 달라고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게 테니스화라서요, 그게 없으면 제가 좀 꼼짝을 못 하거든요. 보내실 곳은 B. F.……"

나머지 이름은 듣지 못했다. 내가 수화기를 내려놓았으니까.

내가 전화를 건 어느 신사가 개츠비는 자업자득이라는 투로 말하는 바람에, 그 뒤로 나는 개츠비를 대신해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었다. 그는 개츠비네 술기운을 빌려 누구보다 신랄하게 개츠비를 비웃던 축이었으니, 애초에 그에게 전화를 걸지 말았어야 했다.

장례식 날 아침 나는 마이어 울프심을 만나러 뉴욕으로 올라갔다. 달리는 연락이 닿을 길이 없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보이가 일러 준 대로 밀고 들어간 문에는 '스와스티카 지주회사'2라고 적혀 있었는데, 처음에는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계십니까?" 하고 몇 번이나 소리쳐 불러도 대답이 없더니 칸막이 뒤에서 말다툼이 벌어졌고, 이윽고 아름다운 유대인 아가씨 하나가 안쪽 문간에 나타나 적의 어린 검은 눈으로 나를 뜯어보았다.

"아무도 안 계세요." 여자가 말했다. "울프심 씨는 시카고에 가셨어요."

그 말의 앞부분은 누가 봐도 거짓이었다. 안에서 누군가 '묵주(The Rosary)'를 가락도 없이 휘파람으로 불기 시작했으니까.

"캐러웨이가 뵙고 싶어 한다고 전해 주십시오."

"시카고에 가 있는 사람을 내가 무슨 수로 불러와요?"

바로 그때 틀림없는 울프심의 목소리가 문 저편에서 "스텔라!" 하고 불렀다.

"책상에 성함을 적어 두고 가세요." 여자가 얼른 말했다. "돌아오시면 전해 드릴게요."

"안에 계신 거 다 압니다."

여자는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더니 분개한 듯 두 손으로 엉덩이 양옆을 쓸어내렸다 쓸어올렸다 하기 시작했다.

"젊은 양반들은 아무 때나 여기 밀고 들어와도 되는 줄 알죠." 여자가 쏘아붙였다. "우리도 이젠 진짜 지긋지긋하다구요. 내가 시카고에 있다고 하면 시카고에 있는 거예요."

나는 개츠비의 이름을 꺼냈다.

"어머나!" 여자는 나를 다시 훑어보았다. "그럼 잠깐만…… 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여자가 사라졌다. 잠시 뒤 마이어 울프심이 두 손을 내밀며 엄숙하게 문간에 섰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슬픈 때라고 경건한 목소리로 말하며 나를 사무실 안으로 이끌더니 시가를 권했다.

"내 기억이 그 사람을 처음 만난 때로 돌아가요." 그가 말했다. "군대에서 막 나온 젊은 소령이었는데, 전쟁에서 탄 훈장으로 온통 뒤덮여 있었지요. 어찌나 쪼들렸는지 보통 옷을 좀 살 수가 없어서 군복을 계속 입고 다녀야 했어요. 처음 본 게 그 사람이 43번가 와인브레너 당구장에 들어와서 일자리를 달라고 할 때였어요. 이틀인가 아무것도 못 먹었었지요. '이리 와서 나하고 점심 좀 먹읍시다.' 내가 그랬어요. 그랬더니 30분 만에 4달러어치가 넘게 먹어 치웠어요."

"울프심 씨가 그 사람을 사업에 들여놓으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들여놓다니요! 내가 그 사람을 만들었어요."

"아."

"아무것도 없는 데서, 바로 시궁창에서 건져 내 키웠지요. 보자마자 알았어요, 풍채 좋고 신사다운 젊은이라는 걸. 오그스퍼드에 있었다고 하길래 이 사람 좋게 써먹을 수 있겠다 알았지요. 미국재향군인회에 들게 했더니 거기서 높이 섰어요. 곧바로 올버니 쪽에 있는 내 고객 일을 좀 봐 줬고요. 우리는 모든 일에 이만큼 딱 붙어 있었어요." 그는 뭉툭한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언제나 같이요."

그 동업에 1919년 월드시리즈 거래도 들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잠시 뒤 내가 말했다. "그 사람과 가장 가까운 친구셨으니, 오늘 오후 장례식에는 꼭 오고 싶으시겠지요."

"가고 싶지요."

"그럼 오시지요."

그의 콧구멍 속 털이 가늘게 떨렸고, 고개를 젓는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건 못 해요. 거기 얽힐 수가 없어요." 그가 말했다.

"얽힐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다 끝났어요."

"사람이 누구 손에 죽었다 하면 나는 무슨 일로든 거기 얽히는 게 절대 싫어요. 발을 빼지요. 젊었을 땐 달랐어요. 친구가 죽으면, 어떻게 죽었든 끝까지 곁에 붙어 있었지요. 감상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진심이에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는 그가 무슨 속사정이 있어서인지 오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는 걸 알아차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학 나온 사람이에요?" 그가 불쑥 물었다.

순간 나는 그가 '거넥션'이라도 제안하려는 줄 알았지만, 그는 고개만 끄덕이고 내 손을 잡아 흔들었다.

"우리, 사람한테 우정을 보여 주는 건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하도록 배웁시다. 죽은 다음 말고요." 그가 제안하듯 말했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걸 그냥 내버려 두는 게 내 원칙이에요."

울프심의 사무실을 나섰을 때는 하늘이 어두워져 있었고, 나는 이슬비를 맞으며 웨스트에그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옆집으로 건너가 보니 개츠 씨가 흥분해서 홀을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었다. 아들을, 그리고 아들이 가진 것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노인의 마음은 그사이에도 쉬지 않고 커져 가던 참이었는데, 이번에는 나에게 보여 줄 것까지 생겼다.

"지미가 이 사진을 보내 줬소." 노인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지갑을 꺼냈다. "이것 좀 보시오."

모서리마다 금이 가고 여러 사람의 손때가 묻은, 이 집을 찍은 사진이었다. 노인은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열심히 보여 주었다. "여기 좀 보시오!" 그러고는 내 눈에서 감탄의 빛을 찾았다. 하도 여러 번 보여 준 사진이라 이제 노인에게는 이 사진이 집 그 자체보다 더 진짜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지미가 보내 준 거요. 아주 예쁜 사진이라고 생각하오. 잘 나왔지."

"아주 잘 나왔습니다. 최근에 아드님을 만나셨습니까?"

"2년 전에 날 보러 와서는, 지금 내가 사는 집을 사 줬소. 물론 그 애가 집을 뛰쳐나갔을 적엔 우리 사이가 틀어졌었지. 그런데 이제 보니 다 까닭이 있었어. 그 애는 제 앞에 큰 앞날이 있다는 걸 알았던 거요. 그러고 성공하고부터는 나한테 아주 후하게 했다오."

노인은 사진을 넣기가 아쉬운지 미련이 남은 손길로 한동안 더 내 눈앞에 들고 있었다. 그러고는 지갑을 도로 넣고, 주머니에서 《호팔롱 캐시디》3라는 너덜너덜한 헌책 한 권을 꺼냈다.

"이것 좀 보시오, 그 애가 어릴 때 보던 책이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지."

노인은 뒤표지 쪽을 펼치더니 내가 볼 수 있게 돌려 보였다. 마지막 면지에 '일과표'라는 말과 1906년 9월 12일이라는 날짜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기6:00오전
아령 체조와 벽 타기6:15~6:30〃
전기 등등 공부7:15~8:15〃
일하기8:30~4:30오후
야구와 운동4:30~5:00〃
웅변 연습, 의젓한 몸가짐과 그것을 갖추는 법5:00~6:00〃
필요한 발명품 연구7:00~9:00〃

일반 결심 사항

  • 섀프터스나 [이름, 알아볼 수 없음]에서 시간 낭비 금지
  • 담베 피우기나 씹기는 이제 그만.
  • 목욕은 이틀에 한 번
  • 교양 쌓는 책이나 잡지를 일주일에 한 권 읽기
  • 일주일에 5.00달러 [줄 그어 지움] 3.00달러 저축
  • 부모님께 더 잘하기

"이 책은 우연히 찾아냈소." 노인이 말했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안 그렇소?"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미는 출세하게 돼 있었소. 늘 이런 결심 같은 걸 세우곤 했지. 교양 쌓는 거에 대해 써 놓은 거 보이시오? 그 애는 늘 그런 데 열심이었다오. 한번은 나더러 돼지처럼 먹는다고 하길래 내가 그 애를 두들겨 팼지."

노인은 책을 덮기가 아쉬운지 항목 하나하나를 소리 내어 읽고는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그 목록을 베껴 가서 나도 써먹기를 은근히 바랐던 것 같다.

세 시가 조금 못 되어 플러싱에서 루터교 목사가 도착했고, 나는 무심결에 창밖을 내다보며 다른 차가 오는지 살피기 시작했는데, 개츠비의 아버지도 그랬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하인들이 들어와 홀에 서서 기다리자 노인은 불안하게 눈을 깜박이기 시작하더니 걱정스럽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비 이야기를 했다. 목사가 몇 번이나 시계를 흘끗거리기에 나는 목사를 한쪽으로 데려가 30분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섯 시쯤 차 세 대로 이루어진 우리 행렬이 묘지에 닿아, 짙은 이슬비 속에 정문 곁에 멈춰 섰다. 맨 앞은 끔찍하게 검고 젖은 영구차였고, 다음은 개츠 씨와 목사와 내가 탄 리무진이었으며, 조금 뒤에 하인 너덧 명과 웨스트에그의 우편배달부가 개츠비의 스테이션왜건을 타고 따라왔는데 다들 속옷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우리가 정문을 지나 묘지로 막 들어서는데 차 한 대가 멈추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질척한 땅을 철벅철벅 밟으며 우리를 뒤쫓아 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석 달 전 어느 밤 개츠비의 서재에서 책들을 보며 경탄하던, 부엉이 눈처럼 동그랗고 커다란 안경을 쓴 그 남자였다.

그 뒤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장례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니 이름조차 나는 모른다. 빗물이 두꺼운 안경알 위로 줄줄 흘러내리자 남자는 안경을 벗어 닦고는, 개츠비의 무덤을 덮어 두었던 방수포가 걷히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때 나는 잠시 개츠비를 생각해 보려 했지만 그는 이미 너무 멀리 가 있었고,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데이지가 전갈 한 줄도 꽃 한 송이도 보내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는데, 그것이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누군가 "비를 맞는 죽은 자는 복이 있도다"4 하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고, 이어서 부엉이 눈의 그 남자가 씩씩한 목소리로 "아멘, 그렇고말고요" 하고 받았다.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빗속을 서둘러 차 쪽으로 내려갔다. 정문 옆에서 부엉이 눈이 내게 말을 걸었다.

"집에는 못 갔어요." 그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못 왔어요."

"설마요!" 그가 흠칫 놀랐다. "아니, 맙소사! 그 집엔 수백 명씩 몰려가곤 했잖아요."

그는 안경을 벗어 다시 닦았다. 바깥쪽도, 안쪽도.

"불쌍한 자식." 그가 말했다.

내게 가장 생생한 기억 가운데 하나는 크리스마스 무렵 예비학교에서, 나중에는 대학에서 서부로 돌아가던 일이다. 시카고보다 더 멀리 가는 아이들은 12월 저녁 여섯 시면 어둑한 옛 유니언 역에 모였고, 벌써 저희들 연휴의 흥겨움에 휩쓸린 시카고 친구 몇이 서둘러 작별 인사를 하러 나와 주었다. 이런저런 아무개 양 여학교에서 돌아오는 아가씨들의 모피 외투와, 얼어붙은 입김 속에 오가던 재잘거림과, 옛 친구를 알아보고 머리 위로 흔들던 손들과, 서로 받은 초대를 맞춰 보던 말들이 기억난다. "오드웨이네 가? 허시네는? 슐츠네는?" 그리고 장갑 낀 손에 꼭 쥐고 있던 기다란 초록색 차표도, 끝으로 개찰구 옆 선로에서 크리스마스 그 자체처럼 흥겨워 보이던 시카고·밀워키·세인트폴 철도의 칙칙한 노란 객차들도.

기차가 겨울밤 속으로 빠져나가고, 진짜 눈, 우리의 눈이 곁으로 펼쳐지며 차창에 부딪혀 반짝이기 시작하고, 위스콘신 작은 역들의 흐릿한 불빛이 스쳐 지나가면, 문득 공기 속으로 날카롭고 거친 기운이 스며들었다. 저녁을 먹고 차디찬 연결 통로를 지나 돌아오면서 우리는 그 기운을 깊이 들이마셨고, 그 기묘한 한 시간 동안 이 땅과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말로 다 할 수 없이 절실하게 느끼다가, 이윽고 다시 그 속으로 녹아들어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중서부다. 밀밭도 대초원도 잊힌 스웨덴 사람들의 마을도 아닌, 젊은 날 가슴을 설레게 하던 귀향 열차, 서리 내린 어둠 속의 가로등과 썰매 방울 소리, 불 켜진 창문들이 눈 위에 드리우던 호랑가시나무 화환의 그림자. 나는 그 일부다. 그 기나긴 겨울의 감촉이 몸에 배어 조금은 엄숙하고, 몇십 년이 지나도 집을 여전히 그 집안의 성으로 부르는 도시의 캐러웨이 댁에서 자란 탓에 조금은 자기만족에 젖어 있다. 이제야 알겠다. 이것은 결국 서부의 이야기였다. 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과 나는 모두 서부 사람이었고, 어쩌면 우리에게는 동부의 삶에 미묘하게 녹아들지 못하게 하는 어떤 결함이 공통으로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부가 나를 가장 들뜨게 하던 때에도, 오하이오강 너머의 따분하고 제멋대로 퍼져 나가 부풀 대로 부푼 소도시들, 아이들과 아주 늙은 사람들 말고는 누구도 봐주지 않는 끝없는 캐묻기가 이어지는 그 소도시들보다 동부가 낫다는 것을 가장 절실히 느끼던 때에도, 그때조차 동부는 나에게 늘 어딘가 일그러진 데가 있었다. 특히 웨스트에그는 지금도 내가 꾸는 더 기이한 꿈들 속에 나타난다. 나는 그곳을 엘 그레코가 그린 밤 풍경처럼 본다. 판에 박혔으면서도 괴기한 집 백 채가 음울하게 낮게 드리운 하늘과 빛을 잃은 달 아래 웅크리고 있다. 그 앞쪽으로 야회복을 입은 엄숙한 사내 넷이 들것을 들고 보도를 걸어간다. 들것 위에는 흰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취해 누워 있다. 들것 가장자리로 늘어진 여자의 손에서 보석이 차갑게 반짝인다. 사내들은 근엄하게 어느 집으로 들어선다. 엉뚱한 집이다. 그러나 아무도 여자의 이름을 모르고,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개츠비가 죽은 뒤로 동부는 내게 그렇게 귀신 들린 곳이 되었다. 내 눈의 힘으로는 바로잡을 수 없을 만큼 일그러진 채로. 그래서 바싹 마른 낙엽을 태우는 푸른 연기가 공중에 감돌고 바람이 빨랫줄에 널린 젖은 빨래를 뻣뻣하게 굳혀 놓을 무렵,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떠나기 전에 해 둘 일이 한 가지 있었는데, 어색하고 달갑지 않은 일, 어쩌면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반듯하게 정리해 두고 싶었고, 고분고분하면서도 무심한 저 바다가 내 쓰레기를 쓸어 가 주리라 믿고 그냥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조던 베이커를 만나 우리 둘에게 함께 일어났던 일과 그 뒤 나에게 일어난 일을 두고 정면으로도 에둘러서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조던은 커다란 의자에 꼼짝도 않고 기대 누운 채 듣기만 했다.

조던은 골프 칠 차림이었는데, 턱을 조금 경쾌하게 치켜든 채 머리칼은 가을 낙엽 빛깔에 얼굴은 무릎 위에 놓인 손가락 없는 장갑과 똑같은 갈색이어서, 잘 그린 삽화 같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조던은 아무 토도 달지 않고 다른 남자와 약혼했다고 말했다. 고개 한 번 끄덕이면 결혼할 수 있는 남자가 여럿 있기는 했지만 나는 그 말을 의심했고, 그래도 놀란 척은 했다. 아주 잠깐 내가 실수를 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이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빠르게 곱씹어 본 뒤 작별 인사를 하려고 일어섰다.

"그래도 날 찬 건 너야." 조던이 불쑥 말했다. "전화로 날 찼잖아. 이제 너 같은 건 눈곱만큼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한테는 처음 겪는 일이라, 한동안 좀 어질어질하더라."

우리는 악수를 했다.

"아, 그리고 기억나?" 조던이 덧붙였다. "언젠가 우리가 운전을 두고 나눴던 얘기."

"글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운전 형편없는 사람도 또 다른 운전 형편없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고 했지? 그런데 나, 또 다른 운전 형편없는 사람을 만났네, 그렇지? 내 말은, 그렇게 엉뚱하게 짚다니 내가 무신경했다는 거야. 난 네가 꽤 정직하고 곧은 사람인 줄 알았어. 그게 너의 은근한 자부심인 줄 알았지."

"난 서른이야." 내가 말했다. "나 자신을 속여 놓고 그걸 명예라고 부르기엔, 다섯 살은 나이를 너무 먹었어."

조던은 대답하지 않았다. 화가 나고, 반쯤은 조던을 사랑하고, 한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나는 돌아섰다.

10월 말 어느 오후 나는 톰 뷰캐넌을 보았다. 톰은 5번가를 따라 내 앞에서 방심하는 기색 없이 공격적인 그 특유의 걸음걸이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누가 끼어들면 쳐 내려는 듯 두 손을 몸에서 조금 벌리고 있었고,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는 눈을 따라 고개가 이리저리 홱홱 돌아갔다. 앞지르지 않으려고 내가 걸음을 늦춘 바로 그때 톰이 멈춰 서더니, 보석 가게 진열창을 찌푸린 얼굴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불쑥 나를 알아보고는 손을 내밀며 되돌아왔다.

"왜 그래, 닉? 나하고는 악수도 하기 싫다는 거야?"

"그래.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잖아."

"너 미쳤구나, 닉." 톰이 재빨리 말했다. "단단히 미쳤어.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톰." 내가 물었다. "그날 오후에 윌슨한테 뭐라고 했어?"

톰은 말없이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윌슨의 행방이 묘연했던 그 몇 시간에 대해 내 짐작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돌아서려는데 톰이 한 걸음 따라와 내 팔을 붙잡았다.

"사실대로 말해 줬지." 톰이 말했다. "우리가 떠날 채비를 하는데 그자가 문간에 왔어. 우리 없다고 아래층에 일러 보냈더니 억지로 위층까지 밀고 올라오려고 하더군. 그 차 임자가 누군지 말해 주지 않았으면 나를 죽이고도 남을 만큼 돌아 있었어. 우리 집에 있는 내내 주머니 속 권총에 손을 대고 있었다고……" 톰은 대들 듯이 말을 끊었다. "내가 말해 줬으면 어쩔 건데? 그 작자는 당해도 쌌어. 데이지 눈에 그랬던 것처럼 네 눈에도 먼지를 뿌려 댔지만, 그놈은 독한 놈이었다고. 머틀을 개 치듯 치어 놓고 차 한 번 안 세웠잖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입 밖에 낼 수 없는 단 한 가지 사실 말고는.

"그리고 내가 내 몫의 고통을 안 겪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봐, 그 아파트를 정리하러 갔다가 찬장 위에 그 빌어먹을 개 비스킷 통이 그대로 놓여 있는 걸 보고, 난 주저앉아서 애처럼 울었어. 정말이지 끔찍했다고……"

나는 톰을 용서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었지만, 그가 한 일이 그 자신에게는 더없이 정당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모든 게 몹시 무신경하고 뒤죽박죽이었다. 그들은 무신경한 사람들이었다, 톰과 데이지는. 물건이든 생명이든 마구 부숴 놓고는 자기들의 돈 속으로, 아니면 그 거대한 무신경함 속으로, 아니면 무엇이 되었든 두 사람을 한데 묶어 두는 그것 속으로 도로 물러나 버렸고, 자기들이 벌여 놓은 난장판은 남들이 치우게 내버려 두었다……

나는 톰과 악수를 했다. 갑자기 어린애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악수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어리석어 보였다. 그러고 나서 톰은 진주 목걸이를 사러, 아니 어쩌면 커프스단추 한 쌍이나 사러 보석 가게로 들어갔다. 내 촌스러운 결벽에서는 영영 풀려난 채로.

내가 떠날 때까지도 개츠비의 집은 비어 있었고, 그 집 잔디밭의 풀도 이제 우리 집 풀만큼이나 길게 자라 있었다. 마을의 택시 운전사 하나는 손님을 태우고 그 집 정문 앞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잠깐 차를 세우고 안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어쩌면 사고가 난 날 밤 데이지와 개츠비를 태우고 이스트에그로 건너간 사람이 그였는지도 모르고, 그 일을 두고 저만의 이야기를 지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기차에서 내릴 때면 그를 피했다.

번쩍이고 눈부시던 그 집의 파티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정원에서 희미하게, 그치지 않고 흘러나오는 음악과 웃음소리가, 진입로를 오르내리는 차들의 소리가 아직도 들렸으므로 토요일 밤이면 나는 뉴욕에서 지냈다. 어느 밤에는 정말로, 상상이 아닌 진짜 차 한 대가 거기 오는 소리를 들었고, 그 전조등이 현관 계단 앞에 멈추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알아보러 가지 않았다. 아마도 세상 끝 어딘가에 가 있다가 파티가 끝난 줄도 모르고 찾아온 마지막 손님이었던 모양이다.

마지막 날 밤, 트렁크를 다 꾸리고 차는 식료품 가게 주인에게 팔아 치운 뒤, 나는 건너가서 그 거대하고 두서없는 실패작 같은 집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흰 계단 위에 어느 아이가 벽돌 조각으로 휘갈겨 쓴 외설스러운 낱말 하나가 달빛 속에 또렷이 드러나 있었고, 나는 구두 바닥으로 돌을 버석버석 문질러 그것을 지웠다. 그러고는 어슬렁어슬렁 해변으로 내려가 모래 위에 큰대자로 드러누웠다.

물가의 큰 저택들은 이제 대부분 문을 닫았고, 해협 건너에서 어른어른 움직이는 연락선의 흐릿한 불빛 말고는 불빛이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달이 높이 떠오를수록 군더더기 같은 집들은 녹아 사라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나는 한때 네덜란드 뱃사람들의 눈앞에 꽃처럼 피어났던 이곳의 옛 섬을 서서히 알아보게 되었다. 신세계의 싱그러운 초록 젖가슴을. 이제는 사라진 그 나무들, 개츠비의 집이 들어서도록 자리를 비켜 준 그 나무들은 한때 인간의 모든 꿈 가운데 마지막이자 가장 위대한 꿈에 속삭이며 영합했다. 덧없이 스쳐 간 마법 같은 한순간, 인간은 이 대륙 앞에서 숨을 죽였으리라. 이해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미적 관조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 역사상 마지막으로, 경이를 담을 수 있는 제 그릇에 걸맞은 무언가와 얼굴을 마주한 채.

나는 그렇게 거기 앉아 오래된 미지의 세계를 곱씹다가, 개츠비가 데이지네 선착장 끝의 초록 불빛을 처음 알아보았을 때 느꼈을 경이를 떠올렸다. 그는 이 푸르스름한 잔디밭까지 먼 길을 왔고, 그의 꿈은 손만 뻗으면 잡힐 만큼 가까워 보였으리라. 그는 몰랐다. 그 꿈이 이미 자기 뒤에 있다는 것을. 도시 너머 저 광막한 어둠 속 어딘가, 공화국의 어두운 들판이 밤 아래 끝없이 굽이쳐 가는 그곳에.

개츠비는 초록 불빛을 믿었다. 해마다 우리 앞에서 물러나는 황홀한 미래를. 그때는 그것이 우리 손을 빠져나갔지만, 상관없다. 내일은 더 빨리 달리고, 두 팔을 더 멀리 뻗을 테니까…… 그리고 어느 맑은 아침……

그렇게 우리는 노를 저어 나아간다. 물살을 거스르는 배가 되어,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며.

주

  1. 1. 제임스 J. 힐(James J. Hill, 1838~1916).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을 근거지로 그레이트노던 철도를 일군 철도 재벌. 가난하게 태어나 자수성가한 인물로 이름났다.

  2. 2. 원문은 The Swastika Holding Company. 스와스티카(卍 모양의 갈고리 십자)는 예부터 여러 문화권에서 행운을 비는 표지로 쓰였고, 1920년대 미국에서도 상호나 상표에 흔히 붙었다. 나치당이 1920년에 이 문양을 당의 상징으로 삼았지만, 이 표지가 곧 나치를 뜻하게 된 것은 1930년대 들어서다.

  3. 3. 클래런스 E. 멀퍼드(Clarence E. Mulford)가 1904년에 처음 선보인 서부 소설의 카우보이 주인공. 이 이름을 제목으로 단 소설은 1910년에 나왔다.

  4. 4. '햇볕 드는 날의 신부는 행복하고, 비를 맞는 죽은 자는 복이 있다'는 옛 속담의 뒤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