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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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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일요일 아침, 해안을 따라 늘어선 마을마다 교회 종이 울리는 동안 온 세상이 제 여자를 끼고 다시 개츠비의 집으로 몰려와, 그의 잔디밭에서 깔깔거리며 반짝거렸다.

"그 사람 밀주업자래요." 개츠비의 칵테일과 꽃 사이 어디쯤을 누비며 젊은 아가씨들이 말했다. "한번은 사람을 죽였대요. 그 사람이 폰 힌덴부르크1의 조카고 악마하고는 육촌 간이라는 걸 알아낸 남자를요. 자기야, 장미 한 송이만 집어 줘. 그리고 저기 저 크리스털 잔에다 마지막으로 한 방울만 따라 줘."

그해 여름 개츠비의 집에 드나든 사람들의 이름을 나는 언젠가 기차 시간표의 빈자리에 적어 둔 적이 있다. 이제는 낡아서 접힌 자리마다 너덜너덜 떨어져 나가는 시간표인데, 맨 위에 '1922년 7월 5일부터 이 시간표를 시행함'이라고 찍혀 있다. 그래도 흐릿해진 잿빛 이름들은 아직 읽을 수 있다. 개츠비의 환대를 받아 누리면서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그에게 은근한 경의를 바친 사람들이 어떤 이들이었는지는, 내가 뭉뚱그려 늘어놓는 말보다 이 이름들이 훨씬 잘 보여 줄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트에그에서는 체스터 베커 부부와 리치 부부2가 왔고, 내가 예일에서 알던 번슨이라는 남자와, 지난여름 메인주에서 물에 빠져 죽은 웹스터 시벳 박사가 왔다. 그리고 혼빔 부부와 윌리 볼테르 부부, 늘 한구석에 모여 있다가 누구든 가까이 오기만 하면 염소처럼 코를 치켜들던 블랙벅이라는 일족 전체. 그리고 이즈메이 부부와 크리스티 부부(아니, 정확히는 휴버트 아우어바흐와 크리스티 씨의 아내), 그리고 들리는 말로는 어느 겨울 오후 아무 까닭도 없이 머리가 목화처럼 하얗게 세어 버렸다는 에드거 비버.

내 기억으로는 클래런스 엔다이브도 이스트에그 사람이었는데, 딱 한 번, 흰 니커보커 차림으로 와서는 정원에서 에티라는 놈팡이와 주먹다짐을 벌였다. 섬에서도 더 멀리 떨어진 동네에서는 치들 부부와 O. R. P. 슈레이더 부부, 조지아주에서 온 스톤월 잭슨 에이브럼스 부부, 피시가드 부부와 리플리 스넬 부부가 왔다. 스넬은 교도소에 들어가기 사흘 전에도 와 있었는데, 자갈 깔린 진입로에 어찌나 곤드레만드레 취해 뻗어 있었던지 율리시스 스웨트 부인의 자동차가 그의 오른손을 깔고 지나갔다. 댄시 부부도 왔고, 예순이 훌쩍 넘은 S. B. 화이트베이트와 모리스 A. 플링크와 해머헤드 부부, 담배 수입업자 벨루가와 벨루가의 아가씨들도 왔다.

웨스트에그에서는 폴 부부와 멀레디 부부, 세실 로벅과 세실 쇤, 주 상원의원 굴릭, '필름스 파 엑설런스'를 쥐고 흔들던 뉴턴 오키드, 그리고 에크하우스트와 클라이드 코언과 돈 S. 슈워츠(아들 쪽)와 아서 매카티가 왔는데, 모두 이래저래 영화판에 발을 걸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캣립 부부와 벰버그 부부, 그리고 나중에 아내를 목 졸라 죽인 그 멀둔의 형제 G. 얼 멀둔. 흥행업자 다 폰타노도 왔고, 에드 르그로와 제임스 B. ('싸구려 술') 페럿과 드종 부부와 어니스트 릴리도 왔다. 이들은 도박을 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페럿이 정원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면 가진 돈을 몽땅 털렸다는 뜻이었고, 그러면 이튿날 어소시에이티드 트랙션의 주가가 그에게 쏠쏠하게 출렁거려 줘야 했다.

클립스프링어라는 남자는 어찌나 자주 와 있었던지 '하숙생'으로 통했는데, 그에게 달리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있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연극판 사람으로는 거스 웨이즈와 호러스 오도너번과 레스터 마이어와 조지 덕위드와 프랜시스 불이 있었다. 역시 뉴욕에서 온 사람으로는 크롬 부부와 백히슨 부부와 데니커 부부, 러셀 베티, 코리건 부부와 켈러허 부부와 듀어 부부와 스컬리 부부, S. W. 벨처, 스머크 부부, 지금은 이혼한 젊은 퀸 부부, 그리고 타임스스퀘어에서 지하철 열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헨리 L. 팔메토가 있었다.

베니 매클레너핸은 늘 아가씨를 넷씩 데리고 나타났는데, 얼굴이며 몸으로 치면 매번 똑같은 아가씨들은 아니었지만, 서로 어찌나 판박이였던지 전에도 왔던 아가씨들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름은 잊어버렸다. 재클린이었던 것 같고, 아니면 콘수엘라, 아니면 글로리아나 주디나 준이었다. 성은 꽃 이름이나 열두 달 이름처럼 가락이 고운 것이거나, 아니면 미국 대자본가들의 좀 더 근엄한 성이었는데, 조금만 캐물으면 아가씨들은 자기가 그 집안의 사촌이라고 털어놓곤 했다.

이들 말고도 기억나는 이름이 있다. 파우스티나 오브라이언은 적어도 한 번은 왔다. 그리고 베데커네 아가씨들, 전쟁 때 총에 맞아 코가 날아간 젊은 브루어, 앨브럭스버거 씨와 그의 약혼녀 하그 양, 아디타 피츠피터스, 한때 미국재향군인회 회장이었던 P. 주잇 씨, 운전사라는 소문이 도는 남자를 데리고 온 클로디아 힙 양, 그리고 어디의 무슨 왕자라던 사람. 우리는 그를 '공작'이라고 불렀는데, 본명은 혹시 알았다 해도 잊어버렸다.

이 사람들이 모두 그해 여름 개츠비의 집에 왔다.

7월 말의 어느 날 아침 아홉 시, 개츠비의 호화로운 차가 돌투성이 진입로를 덜컹거리며 올라와 내 집 문 앞에 서더니, 세 음짜리 경적으로 가락 한 소절을 요란하게 뽑아냈다.

나는 그의 파티에 두 번 갔고, 수상 비행기에도 올라 보았으며, 하도 간곡히 권하는 바람에 그 집 해변도 자주 드나들던 터였지만, 개츠비가 나를 찾아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올드 스포트. 오늘 저하고 점심 드시지요. 그래서 같이 차로 올라가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는 자동차 발판 위에서 균형을 잡고 서 있었다. 유난히 미국적인, 어떤 동작이든 척척 해내는 몸놀림이었다. 짐작하건대 그런 몸놀림은 어려서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는 일을 해 보지 않은 데서, 그보다도 신경질적이고 들쭉날쭉한 우리네 운동 경기가 지닌 형식 없는 우아함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 기질은 깍듯이 격식을 차리는 그의 태도를 뚫고 끊임없이 불쑥불쑥 드러났는데, 그럴 때면 가만있지 못하는 조바심이 되어 나타났다. 그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어딘가에서 늘 발 하나가 까딱거리거나, 손 하나가 조급하게 쥐었다 폈다 했다.

그는 내가 감탄하는 눈으로 차를 바라보는 것을 알아챘다.

"근사하지 않습니까, 올드 스포트?" 그는 내가 더 잘 볼 수 있게 폴짝 뛰어내렸다. "전에 한 번도 못 보셨습니까?"

본 적이야 있었다. 누구나 본 적이 있었다. 짙은 크림색 차체에 니켈 도금이 번쩍거렸고, 괴물처럼 기다란 몸체 여기저기가 의기양양한 모자 상자와 음식 상자와 공구 상자로 불룩했으며, 미로처럼 얽힌 앞 유리들이 계단을 이루며 층층이 솟아 해를 열두어 개나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초록 가죽을 댄 온실 같은 자리에 앉아 여러 겹의 유리 뒤에 숨은 채 시내로 출발했다.

지난 한 달 사이에 나는 개츠비와 대여섯 번쯤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실망스럽게도 그에게는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무언가 중요한 인물이리라던 첫인상은 차츰 흐려졌고, 이제 그는 그저 옆집에서 요란하게 꾸민 길가 술집을 하는 주인일 뿐이었다.

그러다 그날, 시내로 가는 차 안에서 당혹스러운 일이 있었다. 웨스트에그 마을에 닿기도 전에 개츠비는 우아하게 시작한 문장들을 끝맺지 못하고 흐지부지 내버려 두는가 하면, 캐러멜색 양복의 무릎을 망설이듯 손바닥으로 탁탁 치기 시작했다.

"저, 올드 스포트." 그가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대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조금 얼떨떨해서, 그런 질문이라면 마땅히 들어야 할 두루뭉술한 얼버무림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럼 제 살아온 이야기를 좀 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내 말을 끊었다. "여기저기서 들으시는 온갖 이야기 때문에 저를 잘못 아시는 건 싫습니다."

그렇다면 그도 자기 집 홀에서 오가는 대화에 양념처럼 뿌려지던 그 해괴한 험담들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하느님 앞에 맹세코 진실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의 오른손이 불쑥 올라가더니, 하늘의 벌더러 언제든 내릴 수 있게 대기하라고 명령했다. "저는 중서부 어느 부잣집의 아들입니다. 다들 돌아가셨지요. 미국에서 자랐지만 교육은 옥스퍼드에서 받았습니다. 제 선조들이 여러 대에 걸쳐 모두 거기서 교육을 받았거든요. 집안의 전통입니다."

개츠비가 나를 곁눈질했다. 그 순간 나는 조던 베이커가 왜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고 믿었는지 알았다. 개츠비는 '옥스퍼드에서 교육받았다'는 대목을 서둘러 넘기거나, 꿀꺽 삼키거나, 그 대목에서 목이 메었는데, 전에도 그 말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는 사람 같았다. 이 의심 하나로 그의 이야기 전체가 산산조각이 났고, 나는 결국 이 사람에게 뭔가 좀 음흉한 구석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중서부 어디요?" 내가 무심한 척 물었다.

"샌프란시스코입니다."

"그렇군요."

"식구들이 다 세상을 떠나고 제게 큰돈이 들어왔습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엄숙하던지, 한 일가가 한꺼번에 대가 끊긴 그 일의 기억이 아직도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것 같았다. 잠깐은 이 사람이 나를 놀리는 게 아닌가 의심도 들었지만, 흘끗 보고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 뒤로는 유럽의 수도란 수도를, 그러니까 파리며 베네치아며 로마를 돌아다니며 젊은 인도 왕족처럼 살았습니다. 보석을, 주로 루비를 모으고, 큰 짐승 사냥을 다니고, 그림도 조금 그렸지요. 그저 저 혼자 보려고요. 그러면서 오래전에 제게 일어난 몹시 슬픈 일을 잊으려고 애썼습니다."

나는 기가 막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표현 하나하나가 어찌나 닳고 닳았던지, 떠오르는 그림이라고는 터번을 두른 '등장인물' 하나가 파리의 불로뉴 숲에서 호랑이를 쫓으며 온몸의 땀구멍마다 톱밥을 흘리는 모습뿐이었다.

"그러다 전쟁이 났습니다, 올드 스포트. 전쟁은 크나큰 위안이었지요. 저는 죽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만, 무슨 마법에 걸린 목숨인지 도무지 죽지를 않더군요. 전쟁이 시작되자 중위로 임관했습니다. 아르곤 숲에서는 기관총 대대에서 살아남은 병력을 이끌고 어찌나 멀리 치고 나갔던지, 보병이 따라오지 못해서 우리 양옆으로 반 마일씩 빈틈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이틀 낮 이틀 밤을 버텼습니다. 130명이 루이스 기관총 열여섯 정을 가지고요. 마침내 보병이 올라와 보니,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 사이에서 독일군 3개 사단의 휘장이 나왔습니다. 저는 소령으로 진급했고, 연합국 정부란 정부는 하나같이 제게 훈장을 주었습니다. 몬테네그로까지요. 저 아래 아드리아해에 있는 작은 몬테네그로까지 말입니다!"

작은 몬테네그로! 그는 그 말을 번쩍 들어 올려 보이고는,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그 말에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미소는 몬테네그로의 파란 많은 역사를 헤아렸고, 몬테네그로 사람들의 용감한 투쟁에 공감했다. 몬테네그로의 따뜻하고 조그만 가슴에서 이런 헌사를 끌어내기까지 그 나라의 사정이 사슬처럼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도 속속들이 알아주었다. 이제 내 불신은 매혹 속에 잠겨 버렸다. 잡지 열두어 권을 허겁지겁 훑어 넘기는 기분이었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리본에 매달린 쇳조각 하나가 내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게 몬테네그로에서 받은 겁니다."

놀랍게도 그 물건은 진짜처럼 보였다. 둥근 테두리를 따라 '다닐로 훈장(Orderi di Danilo)'이라는 글귀가 돌아가고, 이어서 '몬테네그로 국왕 니콜라(Montenegro, Nicolas Rex)'라고 새겨져 있었다.

"뒤집어 보십시오."

"제이 개츠비 소령." 내가 소리 내어 읽었다. "탁월한 무공을 기리며."

"이것도 제가 늘 지니고 다니는 겁니다. 옥스퍼드 시절의 기념품이지요. 트리니티 칼리지 안뜰에서 찍었는데, 제 왼쪽에 있는 사람이 지금의 동커스터 백작입니다."

블레이저 차림의 젊은이 대여섯 명이 아치형 통로에서 한가롭게 어슬렁거리는 사진이었는데, 아치 너머로 숱한 첨탑이 보였고, 거기 개츠비가 있었다. 지금보다 조금,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조금 더 젊어 보이는 얼굴로, 손에 크리켓 방망이를 들고서.

그렇다면 다 사실이었다. 대운하 가에 선 그의 궁전에서 호랑이 가죽들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모습이 눈에 선했고, 부서진 마음을 갉아 대는 아픔을 달래려고 루비 궤짝을 열어 진홍빛으로 빛나는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는 그의 모습도 눈에 선했다.

"오늘 제가 큰 부탁을 하나 드릴 참입니다." 그가 흡족한 얼굴로 기념품들을 주머니에 도로 넣으며 말했다. "그래서 저에 대해 좀 알고 계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그저 어디서 굴러온 아무개로 여기시는 건 싫었거든요. 실은 저는 대개 낯선 사람들 틈에 섞여 지냅니다. 제게 일어났던 슬픈 일들을 잊으려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니까요." 그가 머뭇거렸다. "오늘 오후에 그 이야기를 듣게 되실 겁니다."

"점심 먹으면서요?"

"아니요, 오늘 오후에요. 베이커 양을 모시고 차를 드시러 가신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베이커 양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이에요?"

"아닙니다, 올드 스포트,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베이커 양이 고맙게도 이 일에 관해 대신 말씀드려 주기로 하셨습니다."

'이 일'이 무엇인지 나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지만, 궁금하기보다는 짜증스러웠다. 제이 개츠비 씨 이야기나 하자고 조던을 차 마시러 불러낸 게 아니었다. 틀림없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부탁일 것 같았고, 나는 잠시나마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그 잔디밭에 발을 들여놓았던 일 자체를 후회했다.

그는 더는 한마디도 하려 들지 않았다. 시내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깍듯한 태도는 점점 더 굳어 갔다. 우리는 붉은 띠를 두른 원양 선박들이 언뜻 보이는 포트루스벨트(Port Roosevelt)를 지나, 금박이 바랜 1900년대풍의 어두운 술집들이, 그래도 손님만은 끊기지 않은 술집들이 늘어선 자갈 깔린 빈민가를 내달렸다. 이윽고 재의 계곡이 양옆으로 펼쳐졌고, 지나가는 길에 윌슨 부인이 헐떡이는 생기를 뿜으며 정비소 주유기를 붙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우리는 날개처럼 흙받기를 활짝 편 채 애스토리아의 절반에 빛을 흩뿌리며 달렸다. 절반뿐이었던 것은, 고가 철도의 기둥들 사이를 요리조리 누비고 있는데 귀에 익은 오토바이 소리가 '털털털 탕!' 하고 들리더니 잔뜩 흥분한 경찰 하나가 우리 옆으로 바짝 따라붙었기 때문이었다.

"알았어요, 올드 스포트!" 개츠비가 소리쳐 대답했다. 우리는 속도를 늦췄다. 개츠비는 지갑에서 흰 카드 한 장을 꺼내 경찰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아, 그러시군요." 경찰이 모자챙에 손을 대며 수긍했다. "다음번엔 알아뵙겠습니다, 개츠비 씨. 실례했습니다!"

"그게 뭐였어요?" 내가 물었다. "옥스퍼드 사진이요?"

"예전에 경찰국장에게 편의를 좀 봐 드린 적이 있어서, 해마다 제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옵니다."

거대한 다리를 건너는 동안, 철골 사이로 비쳐 드는 햇빛은 달리는 차들 위에서 쉴 새 없이 깜박였고, 강 건너편에서는 도시가 하얀 무더기로, 각설탕 덩어리로 솟아올랐다. 모두 냄새 없는 돈으로, 소망 하나를 담아 지어 올린 것들이었다. 퀸즈버러 다리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언제나 처음 보는 도시다. 세상의 온갖 신비와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걷잡을 수 없이 약속하는 도시.

죽은 사람 하나가 꽃을 수북이 실은 영구차를 타고 우리 곁을 지나갔고, 그 뒤를 차양을 내린 마차 두 대와 친구들을 태운 좀 더 명랑한 마차들이 따랐다. 친구들은 동남유럽 사람 특유의 비극적인 눈과 짧은 윗입술을 하고 우리를 내다보았는데, 나는 개츠비의 근사한 차를 구경한 일이 그들의 침울한 휴일에 한 자락 끼게 되어 기뻤다. 블랙웰스섬을 지날 때는 백인 운전사가 모는 리무진 한 대가 우리를 앞질러 갔는데, 안에는 한껏 멋을 부린 흑인 셋, 사내놈 둘에 아가씨 하나가 타고 있었다. 그들이 거만하게 우리와 겨루기라도 하듯 노른자 같은 눈알을 우리 쪽으로 굴려 대는 것을 보고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이 다리를 미끄러지듯 넘어왔으니 이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나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든……'

개츠비조차 별로 놀라울 것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요란한 한낮. 선풍기가 시원하게 돌아가는 42번가의 어느 지하 식당에서 나는 점심을 먹으려고 개츠비를 만났다. 바깥 거리의 눈부신 빛에 끔벅거리던 눈이 어둑한 실내에 익고 나서야, 대기실에서 다른 남자와 이야기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캐러웨이 씨, 제 친구 울프심 씨입니다."

코가 납작하고 몸집이 작은 유대인 하나가 커다란 머리를 쳐들더니, 양쪽 콧구멍에 무성하게 우거진 털 두 덤불로 나를 쳐다보았다. 잠시 뒤에야 나는 어둑한 데서 그의 조그만 눈을 찾아냈다.

"……그래서 내가 그놈을 딱 한 번 쳐다봤지요." 울프심 씨가 내 손을 열심히 흔들며 말했다. "그러고 내가 뭘 했다고 생각해요?"

"뭘 하셨는데요?" 내가 예의 바르게 물었다.

하지만 나한테 한 말이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그는 내 손을 놓더니 표정이 풍부한 그 코로 개츠비를 겨누었다.

"내가 캐츠포한테 돈을 건네면서 말했어요. '좋아, 캐츠포. 그놈이 입 다물 때까지는 한 푼도 주지 마.' 그랬더니 그놈이 그 자리에서 바로 입을 다물었지요."

개츠비가 우리 두 사람의 팔을 하나씩 끼고 식당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울프심 씨는 막 꺼내던 새 문장을 꿀꺽 삼키고 몽유병자처럼 멍하니 딴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이볼로 하시겠습니까?" 수석 웨이터가 물었다.

"여기 이 식당 참 좋은 식당이에요." 울프심 씨가 천장에 그려진, 장로교 신자처럼 얌전한 님프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나는 길 건너가 더 좋아요!"

"네, 하이볼로 주세요." 개츠비가 웨이터에게 대답하고는 울프심 씨에게 말했다. "거긴 너무 덥잖아요."

"덥고 좁지요. 그래요." 울프심 씨가 말했다. "그래도 추억이 가득해요."

"거기가 어딘데요?" 내가 물었다.

"옛날 메트로폴 말입니다."

"옛날 메트로폴." 울프심 씨가 침울하게 곱씹었다. "죽고 없는 얼굴들로 가득하지요. 이제 영영 가 버린 친구들로 가득하고요. 놈들이 거기서 로지 로젠탈3을 쏜 그 밤은 내가 살아 있는 한 못 잊어요. 그 식탁에 우리가 여섯 사람이었는데, 로지는 저녁 내내 먹기를 많이 먹고 마시기를 많이 마셨어요. 거의 아침이 됐을 때 웨이터가 묘한 얼굴을 하고 로지한테 오더니 말해요, 밖에서 누가 좀 보자고 한다고. '알았어.' 로지가 그러고는 일어나려고 해요. 그래서 내가 로지를 의자에 도로 끌어 앉혔지요.

"'그 개자식들이 너를 원하면 이리로 들어오라고 해, 로지. 하지만 너는, 하느님께 맹세코, 이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면 안 돼.'

"그게 새벽 네 시였어요. 블라인드만 걷었어도 날이 밝은 게 보였을 거예요."

"그래서 그분이 나갔어요?" 내가 순진하게 물었다.

"나갔지요, 물론." 울프심 씨의 코가 분개한 듯 나를 향해 번뜩였다. "문간에서 돌아서더니 말해요. '저 웨이터가 내 커피 못 치우게 해!' 그러고는 보도로 나갔는데, 놈들이 잔뜩 부른 그 배에다 총을 세 방 쏘고 차를 몰고 가 버렸어요."

"그중 네 명이 전기의자에서 처형됐지요." 내가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베커까지 치면 다섯이지요." 그의 콧구멍이 흥미롭다는 듯 내 쪽을 향했다. "사업 거넥션4을 찾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두 마디가 나란히 붙어 나오니 섬뜩했다. 개츠비가 나 대신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그가 소리쳤다. "이분이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울프심 씨는 실망한 눈치였다.

"그냥 친구예요. 그 얘기는 다음에 하자고 말씀드렸잖아요."

"실례했습니다." 울프심 씨가 말했다. "내가 사람을 틀렸네요."

먹음직스러운 다진 고기 요리가 나오자, 울프심 씨는 옛 메트로폴의 감상적인 분위기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사납도록 얌전하게 먹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눈은 아주 천천히 식당 안을 빙 둘러 훑었는데, 마지막에는 몸을 돌려 바로 뒤에 앉은 사람들까지 살펴보고서야 반원을 마저 그렸다. 내가 없었다면 그는 우리 식탁 밑까지 한 번 짧게 들여다보았으리라 싶다.

"저, 올드 스포트." 개츠비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아침에 차 안에서 제가 기분을 좀 상하게 해 드린 것 같습니다."

또 그 미소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넘어가지 않고 버텼다.

"저는 수수께끼 같은 건 질색이에요."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원하시는 게 있으면 왜 터놓고 솔직하게 말씀하지 않으시는지 모르겠어요. 왜 모든 걸 꼭 베이커 양을 거쳐야 하죠?"

"아, 떳떳하지 못한 일은 아닙니다." 그가 나를 안심시켰다. "아시다시피 베이커 양은 대단한 운동선수입니다. 옳지 않은 일에는 절대 손대지 않을 사람이지요."

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시계를 보고 벌떡 일어나 서둘러 자리를 떴고, 식탁에는 나와 울프심 씨만 남았다.

"전화를 해야 해서요." 울프심 씨가 눈으로 그를 좇으며 말했다. "좋은 친구지요, 안 그래요? 보기에 잘생겼고 완벽한 신사고요."

"그렇네요."

"오그스퍼드5 사람이에요."

"아!"

"영국에 있는 오그스퍼드 대학을 다녔어요. 오그스퍼드 대학 알아요?"

"들어 봤어요."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대학 중 하나지요."

"개츠비 씨하고는 오래 알고 지내셨어요?" 내가 물었다.

"몇 년 됐지요." 그가 흐뭇한 투로 대답했다. "전쟁 끝나고 바로 그 사람하고 알게 되는 기쁨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한 시간 얘기해 보고 알았지요, 내가 혈통 좋은 사람을 하나 찾아냈구나 하고. 그래서 속으로 그랬어요. '이 사람은 집에 데려가서 어머니하고 누이한테 소개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다.'"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내 커프스단추를 보고 계시는군요."

보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 말에 비로소 보았다. 묘하게 낯익은 상아 조각들로 만든 단추였다.

"사람 어금니로는 최상품이에요." 그가 일러 주었다.

"이런!" 나는 단추를 살펴보았다. "아주 흥미로운 발상이네요."

"그렇죠." 그는 셔츠 소맷부리를 윗옷 소매 속으로 휙 밀어 넣었다. "그래요, 개츠비는 여자 문제에는 아주 조심해요. 친구 마누라는 쳐다보지도 않을 사람이에요."

이 본능적인 신뢰의 대상이 식탁으로 돌아와 앉자, 울프심 씨는 커피를 홱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 잘 먹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너무 눌러앉아서 눈총받기 전에 두 젊은 양반한테서 이만 도망가야겠어요."

"서두르실 거 없어요, 마이어." 개츠비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울프심 씨가 손을 들어 올렸다. 축복을 내리는 것 같은 손짓이었다.

"참 예의 바르시네요. 하지만 나는 다른 세대 사람이에요." 그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두 분은 여기 앉아서 운동 얘기도 하고, 아가씨들 얘기도 하고, 또 그……" 그는 다시 손을 한 번 휘저어 상상 속의 명사를 채워 넣었다. "나로 말하자면 쉰 살이에요. 더는 두 분께 폐를 끼치지 않겠어요."

악수를 하고 돌아서는 그의 비극적인 코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서 기분을 상하게 했나 싶었다.

"그분은 가끔 몹시 감상적이 되십니다." 개츠비가 설명했다. "오늘이 그 감상적인 날 가운데 하루고요. 뉴욕 바닥에선 꽤 이름난 인물이에요. 브로드웨이의 터줏대감이지요."

"대체 뭐 하는 분인데요? 배우예요?"

"아닙니다."

"치과 의사요?"

"마이어 울프심이요? 아니요, 그분은 도박사입니다." 개츠비는 머뭇거리다가 태연하게 덧붙였다. "1919년에 월드시리즈6를 조작한 사람이 바로 그분이에요."

"월드시리즈를 조작했다고요?" 내가 되뇌었다.

그 말에 나는 휘청거릴 만큼 놀랐다. 1919년에 월드시리즈가 조작되었다는 건 물론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일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았다면 그저 어쩌다 벌어진 일, 피할 수 없이 이어진 어떤 사슬의 끝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한 사람이 오천만 명의 믿음을 갖고 놀기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는, 그것도 금고를 폭파하는 강도처럼 오로지 그 일 하나에 골몰해서 그럴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다 그런 일을 하게 됐대요?" 잠시 뒤 내가 물었다.

"그냥 기회를 알아본 거지요."

"그런데 왜 감옥에 안 가 있어요?"

"못 잡아넣습니다, 올드 스포트. 워낙 영리한 분이라서요."

계산은 내가 하겠다고 우겼는데, 웨이터가 거스름돈을 가져왔을 때 붐비는 식당 저편으로 톰 뷰캐넌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같이 가요." 내가 말했다. "인사할 사람이 있어서요."

톰은 우리를 보자 벌떡 일어나 우리 쪽으로 대여섯 걸음 다가왔다.

"어디 처박혀 있었던 거야?" 톰이 반색을 하며 다그쳤다. "네가 전화 한 통 없다고 데이지가 잔뜩 화났어."

"이쪽은 개츠비 씨, 이쪽은 뷰캐넌 씨."

두 사람은 짧게 악수를 나눴고, 개츠비의 얼굴에 처음 보는 굳고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래, 어떻게 지냈어?" 톰이 나에게 물었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올라와서 밥을 먹어?"

"개츠비 씨하고 점심 먹었어."

나는 개츠비 씨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그는 이미 거기 없었다.

1917년 10월의 어느 날……

(그날 오후, 플라자 호텔 찻집에서 등받이가 꼿꼿한 의자에 꼿꼿이 앉은 채 조던 베이커가 말했다)

……나는 이리저리 볼일을 보러 걸어 다니고 있었어. 반은 보도로, 반은 잔디밭으로. 잔디밭을 걷는 게 더 좋았어. 밑창에 고무 돌기가 박힌 영국제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그게 말랑한 땅을 꽉꽉 물어 줬거든. 새로 산 체크무늬 치마도 입고 있었는데, 그게 바람에 조금씩 날릴 때마다 집집마다 앞에 내건 빨갛고 하얗고 파란 깃발들이 빳빳하게 펴지면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쯧쯧쯧쯧 혀를 찼지.

깃발 중에 제일 큰 깃발, 잔디밭 중에 제일 넓은 잔디밭은 데이지 페이네 집 거였어. 데이지는 막 열여덟 살이었으니까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루이빌의 젊은 아가씨들 가운데 인기가 단연 으뜸이었어. 늘 흰옷을 입고 다녔고, 조그만 흰색 로드스터도 한 대 있었지. 그 집에서는 하루 종일 전화벨이 울렸고, 캠프 테일러의 들뜬 젊은 장교들이 그날 밤 데이지를 독차지할 특권을 달라고 졸라 댔어. "그럼 한 시간만이라도요!"

그날 아침 내가 그 집 맞은편에 이르렀을 때, 데이지의 흰 로드스터가 연석 옆에 서 있었고, 데이지는 처음 보는 중위 하나하고 그 안에 앉아 있었어. 둘이 서로한테 어찌나 푹 빠져 있었던지, 내가 5피트 앞에 이를 때까지 데이지는 나를 못 봤어.

"안녕, 조던." 데이지가 뜻밖에 나를 불렀어. "이리 좀 와 봐."

데이지가 나한테 말을 걸고 싶어 한다는 게 우쭐했어. 언니들 가운데 내가 제일 동경하던 사람이 데이지였거든. 데이지는 나더러 붕대 만들러 적십자에 가는 길이냐고 물었어. 그렇다고 했지. 그럼 오늘은 자기가 못 간다고 거기 좀 전해 줄래? 데이지가 말하는 동안 그 장교는 데이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여자애라면 누구나 언젠가 한 번은 누가 자기를 그렇게 봐 줬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눈빛이었어. 그게 나한테는 낭만적으로 보여서 그 일을 여태 기억하고 있는 거야. 그 사람 이름이 제이 개츠비였어. 그 뒤로 4년 넘게 다시는 그 사람을 못 봤지. 롱아일랜드에서 만나고 나서도 같은 사람인 줄은 몰랐어.

그게 1917년이었어. 이듬해쯤에는 나한테도 따라다니는 남자가 몇 생겼고 시합에도 나가기 시작해서 데이지를 자주 보지는 못했어. 데이지는 자기보다 조금 나이 많은 무리하고 어울렸어. 누구하고든 어울리기라도 할 때 얘기지만. 데이지를 두고 별별 소문이 다 돌았어. 어느 겨울밤에 데이지가 해외로 떠나는 군인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뉴욕에 가겠다고 가방을 싸다가 엄마한테 들켰다는 거야. 결국 못 가게 막혔지만, 그 뒤로 몇 주 동안 식구들하고 말도 안 하고 지냈대. 그다음부터는 군인들하고는 더 어울리지 않고, 평발에 근시라서 아예 군대에 들어가지도 못한 동네 청년 몇 명하고만 놀았지.

그다음 해 가을에는 데이지가 다시 명랑해졌어. 예전만큼 명랑했지. 휴전이 되고 나서 사교계에 데뷔했고, 2월에는 뉴올리언스에서 온 남자하고 약혼했다나 봐. 그런데 6월에는 시카고의 톰 뷰캐넌하고 결혼했어. 루이빌이 생기고 나서 그렇게 요란하고 성대한 결혼식은 처음이었을 거야. 톰은 전용 객차 네 량에 사람을 백 명이나 싣고 내려와서 뮐바흐 호텔 한 층을 통째로 빌렸고, 결혼식 전날에는 데이지한테 350,000달러짜리 진주 목걸이를 선물했어.

난 신부 들러리였어. 결혼 전날 만찬 30분 전에 데이지 방에 들어갔더니, 데이지가 꽃무늬 드레스를 입고 침대에 누워 있더라. 6월의 밤처럼 사랑스러웠어. 그리고 원숭이처럼 곤드레만드레 취해 있었지. 한 손에는 소테른 포도주 병을, 다른 손에는 편지 한 통을 쥐고 있었어.

"추카해 줘어." 데이지가 웅얼거렸어. "술은 한 번도 안 마셔 봤는데, 아, 이거 얼마나 좋은지 몰라."

"왜 그래, 데이지?"

정말이지 무서웠어. 여자애가 그러는 건 처음 봤거든.

"자, 얘들아." 데이지는 침대 위에 끌어다 놓은 휴지통을 더듬더니 진주 목걸이를 끄집어냈어. "이거 아래층에 갖고 가서 주인이 누구든 돌려줘. 다들한테 데이지가 맘 바꼈다고 해. 이렇게 말해. '데이지가 맘 바꼈대!'"

그러더니 데이지가 울기 시작했어. 울고 또 울었지. 나는 뛰쳐나가서 데이지 엄마의 하녀를 찾아왔고, 우리는 문을 잠그고 데이지를 찬물 욕조에 집어넣었어. 데이지는 그 편지를 끝내 놓지 않았어. 욕조까지 들고 들어가서 젖은 채로 공처럼 꽉 뭉쳐 쥐고 있다가, 편지가 눈송이처럼 부슬부슬 부서지는 걸 보고서야 비누 접시에 놓아두게 해 주더라.

그런데 데이지는 더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우리는 각성제로 암모니아수를 먹이고, 이마에 얼음을 대 주고, 드레스를 다시 입혀 등 뒤의 훅을 채워 줬어. 30분 뒤 우리가 방을 나설 때는 진주 목걸이가 데이지 목에 걸려 있었고, 그 일은 그걸로 끝이었어. 이튿날 다섯 시에 데이지는 몸 한 번 떨지 않고 톰 뷰캐넌하고 결혼해서 남태평양으로 석 달짜리 여행을 떠났어.

둘이 돌아왔을 때 샌타바버라에서 봤는데, 남편한테 저렇게 푹 빠진 여자는 처음 본다 싶었어. 톰이 잠깐만 방을 비워도 데이지는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면서 "톰 어디 갔어?" 하고 물었고, 톰이 문으로 들어오는 게 보일 때까지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어. 모래밭에 앉아 톰의 머리를 무릎에 누이고 몇 시간이고 그러고 있곤 했지. 손가락으로 톰의 눈두덩을 쓸어 주면서, 헤아릴 길 없이 기쁜 얼굴로 톰을 내려다보면서. 둘이 같이 있는 걸 보면 마음이 뭉클했어. 넋을 잃고 보다가 소리 죽여 웃게 되는 그런 광경이었지. 그게 8월이었어. 내가 샌타바버라를 떠나고 일주일 뒤에 톰이 어느 날 밤 벤투라 도로에서 짐마차를 들이받아 차 앞바퀴 하나가 뜯겨 나갔어. 같이 타고 있던 여자도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덩달아 신문에 났는데, 샌타바버라 호텔의 객실 하녀였어.

이듬해 4월에 데이지가 딸을 낳았고, 둘은 일 년 동안 프랑스에 가 있었어. 어느 봄에는 칸에서, 나중에는 도빌에서 그 사람들을 봤는데, 그러고는 시카고로 돌아와 자리를 잡았지. 데이지가 시카고에서 인기가 좋았던 건 너도 알 거야. 둘은 노는 물이 빠른 사람들, 하나같이 젊고 돈 많고 막 나가는 사람들하고 어울려 다녔는데, 데이지는 그 속에서도 흠 하나 없는 평판을 지키고 나왔어. 술을 안 마셔서 그런지도 몰라. 술꾼들 틈에서 술을 안 마시면 아주 유리하거든. 입조심을 할 수 있고, 게다가 자기가 벌이는 자잘한 일탈도 딴 사람들이 다 눈이 멀도록 취해서 보지도 못하고 신경도 안 쓸 때로 골라 맞출 수 있으니까. 어쩌면 데이지는 연애 놀음 같은 건 아예 해 본 적이 없는지도 몰라. 그런데 그 목소리에는 뭔가가 있단 말이지……

그런데 한 6주 전에, 데이지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개츠비라는 이름을 들은 거야. 내가 너한테, 기억나? 웨스트에그에 사는 개츠비를 아느냐고 물었을 때 말이야. 네가 집에 가고 나서 데이지가 내 방에 들어와 나를 깨우더니 "무슨 개츠비?" 하고 물었어. 내가 비몽사몽간에 그 사람 생김새를 설명해 줬더니, 데이지가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목소리로 예전에 알던 그 사람이 틀림없다고 하더라. 그제야 나도 이 개츠비와 데이지의 흰 차에 앉아 있던 그 장교를 연결 지었어.

조던 베이커가 이 이야기를 다 마쳤을 때, 우리는 플라자를 나선 지 30분이 지나 마차를 타고 센트럴 파크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해는 웨스트사이드 50번대 거리에 늘어선 영화배우들의 높은 아파트 뒤로 넘어갔고, 벌써 귀뚜라미처럼 풀밭에 모여든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무더운 어스름 속으로 피어올랐다.

"나는야 아라비아의 족장, 그대 사랑은 나의 것. 그대 잠든 밤이면 그대 천막으로 살금살금 숨어들리라……"

"묘한 우연이네." 내가 말했다.

"근데 우연이 아니었어. 전혀."

"왜?"

"개츠비는 데이지를 물길 바로 건너편에 두려고 그 집을 산 거야."

그렇다면 그 6월의 밤, 그가 우러러 바라던 것은 그저 별만이 아니었다. 그는 목적 없는 화려함이라는 자궁에서 느닷없이 태어나, 비로소 내게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

"개츠비가 알고 싶어 하는 건 말이야." 조던이 말을 이었다. "네가 언제 오후에 데이지를 너희 집에 초대하고 나서 자기를 건너오게 해 줄 수 있느냐는 거야."

그 부탁이 너무도 소박해서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5년을 기다렸고, 지나가는 나방들에게 별빛을 나누어 주는 대저택까지 샀는데, 그게 다 어느 날 오후 남의 집 정원으로 '건너오기' 위해서였다니.

"그렇게 사소한 부탁 하나 하려고 내가 이걸 다 알아야 했던 거야?"

"겁이 나는 거지. 너무 오래 기다렸으니까. 네가 기분 나빠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대. 있잖아, 그 모든 걸 걷어 내고 보면 그 사람 영락없는 건달이거든."

뭔가 마음에 걸렸다.

"그럼 왜 너한테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자기 집을 데이지한테 보여 주고 싶은 거야." 조던이 설명했다. "그런데 네 집이 바로 옆이잖아."

"아!"

"내 생각엔 개츠비는 어느 날 밤 데이지가 자기 파티에 어쩌다 흘러들어 오지 않을까 반쯤은 기대했던 것 같아." 조던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데이지는 끝내 오지 않았지. 그러자 사람들한테 데이지를 아느냐고 슬쩍슬쩍 묻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처음 걸려든 게 나였어. 그 사람이 파티에서 나를 따로 불러낸 게 바로 그날 밤이야. 본론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공들여 뜸을 들였는지 네가 들었어야 했는데. 물론 나는 당장 뉴욕에서 점심을 같이 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지. 그랬더니 그 사람이 미치는 줄 알았어.

"'격에 어긋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자꾸 그러더라. '바로 옆집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네가 톰하고 각별한 친구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아예 그 계획을 통째로 접으려고 하더라고. 톰에 대해서는 잘 몰라. 혹시 데이지 이름이라도 한번 볼까 싶어서 몇 년 동안 시카고 신문을 읽었다고는 하지만."

이제 날이 어두웠다. 작은 다리 밑으로 마차가 쑥 내려갈 때 나는 조던의 금빛 어깨에 팔을 둘러 끌어당기며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갑자기 나는 더는 데이지와 개츠비를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만사에 대한 회의를 밑천 삼아 살면서, 내 팔이 두른 테두리 안에 딱 들어오게 경쾌하게 몸을 기댄 이 깨끗하고 단단하고 한계가 뚜렷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가 어찔해지는 흥분 같은 것과 함께 어떤 구절 하나가 내 귓속에서 고동치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쫓기는 자와 쫓는 자, 바쁜 자와 지친 자밖에 없다.'

"그리고 데이지한테도 인생에 뭔가 있어야지." 조던이 나에게 중얼거렸다.

"데이지도 개츠비를 만나고 싶어 해?"

"데이지는 몰라야 돼. 개츠비는 데이지가 아는 걸 원하지 않아. 너는 그냥 데이지를 차 마시러 오라고 초대하기만 하면 돼."

우리는 어두운 나무들이 울타리처럼 늘어선 곳을 지났다. 그러자 여리고 창백한 빛이 한 블록을 가득 채운 59번가의 건물들이 공원 안으로 환한 빛을 내리비추었다. 개츠비나 톰 뷰캐넌과 달리 나에게는 어두운 처마 끝과 눈부신 간판들을 따라 몸 없는 얼굴이 떠다니는 여자가 없었고, 그래서 나는 두 팔에 힘을 주며 곁의 여자를 끌어당겼다. 핏기 없는, 비웃는 듯한 입이 미소를 지었고, 그래서 나는 그 여자를 다시, 더 가까이, 이번에는 내 얼굴까지 끌어당겼다.

주

  1. 1.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1847~1934). 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을 지휘한 원수로, 당시 미국 사람들에게는 적국 독일을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2. 2. 이 명단에 나오는 이름 상당수는 동물·식물·물고기 이름을 비튼 것이다.

  3. 3. 실존 도박업자 허먼 로젠탈(Herman Rosenthal)을 가리킨다. 경찰과 도박판의 뒷거래를 폭로하려다가 1912년 7월 뉴욕 호텔 메트로폴 앞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살인을 사주한 혐의로 뉴욕 경찰 간부 찰스 베커와 총잡이 네 명이 전기의자에서 처형되었다.

  4. 4. 커넥션(connection), 곧 사업상의 연줄을 울프심은 억양이 섞인 발음으로 gonnegtion이라고 한다.

  5. 5. 옥스퍼드(Oxford)를 울프심은 Oggsford라고 발음한다.

  6. 6.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 여덟 명이 도박꾼들에게 돈을 받고 신시내티 레즈에 일부러 져 준 사건. '블랙삭스 스캔들'이라고 불린다. 뒤에서 판을 짜고 돈을 댄 인물로 뉴욕의 거물 도박사 아널드 로스스틴(Arnold Rothstein, 1882~1928)이 지목되었으나 끝내 기소되지 않았다. 울프심은 로스스틴을 본뜬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