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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행복한 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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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섬에서

무화과가 나무에서 떨어진다. 무화과는 맛이 좋고 달며, 떨어지면서 붉은 껍질이 터진다. 나는 잘 익은 무화과에 불어닥치는 북풍이다.

벗들이여, 이 가르침들도 그렇게 무화과처럼 그대들에게 떨어지니, 이제 그 즙과 달콤한 속살을 들이켜라! 주위는 가을이요, 맑은 하늘이요, 오후다.

보라, 우리 주위가 얼마나 충만한가! 이렇게 넘쳐 나는 풍요 속에서 먼 바다를 내다보는 것은 아름답다.

예전에 사람들은 먼 바다를 바라볼 때면 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위버멘쉬라고 말하도록 가르쳤다.

신은 하나의 추측이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의 추측이 그대들의 창조하는 의지보다 더 멀리 나아가지 않기를 원하노라.

그대들은 신 하나를 창조할 수 있겠는가? 그러지 못한다면 신들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다물어라! 그러나 위버멘쉬라면 그대들도 창조할 수 있으리라.

내 형제들이여, 어쩌면 그대들 자신이 그것을 해내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그대들은 자신을 고쳐 창조하여 위버멘쉬의 아버지와 조상이 될 수는 있으리라. 그리고 이것이 그대들의 가장 훌륭한 창조가 되기를!

신은 하나의 추측이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의 추측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의 테두리 안에 머물기를 원하노라.

그대들은 신 하나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대들에게 진리에의 의지란, 모든 것을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 인간이 볼 수 있는 것,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바꾼다는 뜻이어야 한다!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의 감각을 끝까지 생각해 내야 한다!

그리고 그대들이 세계라고 불러 온 것, 그것은 이제 비로소 그대들이 창조해야 하니, 그대들의 이성, 그대들의 형상, 그대들의 의지, 그대들의 사랑이 바로 그 세계가 되어야 한다! 진실로, 인식하는 자들이여, 그것은 그대들의 지복을 위해서다!

인식하는 자들이여, 이런 희망 없이 그대들이 어찌 삶을 견디려 하는가? 그대들은 파악할 수 없는 것 속에 태어나서도, 이성 없는 것 속에 태어나서도 안 되리라.

그러나 벗들이여, 그대들에게 내 마음을 남김없이 털어놓자면, 만약 신들이 있다면 내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견디겠는가! 그러므로 신들은 없다.

나는 결론을 끌어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결론이 나를 끌고 간다.

신은 하나의 추측이다. 그러나 누가 이 추측의 온갖 고통을 다 마시고도 죽지 않겠는가? 창조하는 자에게서 그의 믿음을 빼앗고, 독수리에게서 독수리만이 닿는 아득한 하늘을 떠도는 비상을 빼앗아야 하는가?

신은 곧은 것을 모두 굽게 하고, 서 있는 것을 모두 빙빙 돌게 하는 생각이다. 뭐라고? 시간은 사라져 버리고, 덧없는 것은 모두 거짓일 뿐이라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인간의 뼈에는 소용돌이요 어지럼증이며 위장에는 구역질이니, 진실로, 그런 것을 추측하는 것을 나는 빙빙 도는 병이라 부른다.

하나인 것과 가득 찬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과 배부른 것과 덧없지 않은 것에 대한 이 모든 가르침을, 나는 악하다고, 인간에게 적대적이라고 부르노라!

덧없지 않은 모든 것, 그것은 한낱 비유일 뿐이다!1 그리고 시인들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비유들은 시간과 생성에 대해 말해야 하니, 그 비유들은 덧없는 모든 것에 바치는 찬미가 되고 덧없는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창조, 그것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크나큰 구원이요, 삶을 가볍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창조하는 자가 있으려면 그 자신에게도 괴로움과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삶에는 쓰디쓴 죽음이 여러 번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모든 덧없음을 대변하고 정당화하는 자들이다.

창조하는 자 자신이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되려면, 그는 또한 아이를 낳는 여인이 되기를 원해야 하고,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이 되기를 원해야 한다.

진실로, 나는 백 개의 영혼을 거쳐, 백 개의 요람과 해산의 진통을 거쳐 내 길을 걸어왔다. 나는 이미 여러 번 작별을 했고, 가슴이 찢어지는 마지막 시간들을 안다.

그러나 내 창조하는 의지가, 내 운명이 그렇게 원한다. 아니, 그대들에게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바로 그런 운명을 내 의지는…… 원한다.

내 안에서 느끼는 것은 모두 괴로워하며 감옥에 갇혀 있으나, 나의 의욕은 언제나 나의 해방자로, 기쁨을 가져다주는 자로 내게 온다.

의욕은 해방한다. 이것이 의지와 자유에 대한 참된 가르침이니, 차라투스트라는 그대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더는 의욕하지 않음, 더는 가치를 매기지 않음, 더는 창조하지 않음! 아, 이 크나큰 피로가 언제까지나 내게서 멀리 있기를!

인식할 때에도 나는 오직 내 의지가 낳고 생성하려는 기쁨만을 느끼니, 내 인식에 순진무구함이 있다면 그것은 그 안에 낳으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의지가 나를 꾀어 신과 신들에게서 멀어지게 했으니, 신들이…… 있다면 대체 창조할 것이 무엇이 남겠는가!

그러나 불타는 나의 창조 의지는 언제나 새로이 나를 인간에게로 몰아가니, 그렇게 망치도 돌을 향해 내몰린다.

아, 인간들이여, 돌 속에 하나의 형상이 잠들어 있다. 내 형상들의 형상이! 아, 그것이 가장 단단하고 가장 추한 돌 속에서 잠들어 있어야 하다니!

이제 내 망치는 그 감옥을 향해 잔인하게 날뛴다. 돌에서 파편이 먼지처럼 흩날린다. 그것이 내게 무슨 상관이랴?

나는 그것을 완성하려 한다. 그림자 하나가 내게 왔기 때문이다.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고요하고 가장 가벼운 것이 언젠가 내게 왔다!

위버멘쉬의 아름다움이 그림자가 되어 내게 왔다. 아, 내 형제들이여! 이제 와서 신들이…… 내게 무슨 상관이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주

  1. 1. 괴테 『파우스트』 제2부를 맺는 '신비의 합창' 첫 구절 '덧없는 모든 것은 한낱 비유일 뿐'을 뒤집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