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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에 관하여

1 루킬리우스, 자네는 내게 물었지. 우주가 섭리(providentia)로 다스려진다면 어째서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그토록 많이 닥치느냐고. 이 물음에는 이 저술 전체의 흐름 안에서 답하는 편이 더 알맞을 걸세. 섭리가 만물을 이끌고 신이 우리 일에 함께한다는 것을 먼저 증명하는 자리라면 말일세. 그러나 자네는 전체에서 한 조각만 떼어 내어, 본안 소송은 그대로 둔 채 반론 하나만 풀어 주기를 바라니, 어렵지 않은 일을 하겠네. 신들을 변호하겠네. 지금 굳이 보여 줄 필요가 없는 것들이 있네. 이토록 거대한 작품이 지키는 이 없이 서 있을 리 없다는 것, 별들이 무리 지어 오가는 것이 우연한 충동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 우연이 부추기는 것은 걸핏하면 엉클어지고 금세 서로 들이받지만 이 우주는 영원한 법의 명령을 따라 막힘없이 빠르게 나아가며 땅과 바다의 그 숱한 것과 정해진 자리에서 빛나는 그 숱한 찬란한 빛을 싣고 간다는 것 말일세. 이 질서가 정처 없이 떠도는 물질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 아무렇게나 엉겨 붙은 것들이라면 그토록 정교하게 매달려 있을 수 없다는 것도 그렇지. 그 솜씨 덕분에 가장 무거운 땅덩이는 꼼짝 않고 앉아 제 둘레를 서둘러 달아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골짜기마다 흘러든 바다는 땅의 기후를 누그러뜨리면서도 강물이 아무리 흘러들어도 불어나는 줄 모르며, 아주 작은 씨앗에서 거대한 것이 자라난다네. 혼란스럽고 종잡을 수 없어 보이는 일들, 그러니까 비와 구름, 구름을 찢고 내리꽂히는 벼락, 갈라진 산꼭대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 흔들리는 땅의 떨림, 그 밖에 땅 언저리에서 우주의 소란스러운 부분이 일으키는 일들조차 아무리 갑작스럽다 한들 이치 없이 일어나지는 않네. 그것들에도 저마다 원인이 있네. 낯선 곳에서 보여 경이로 여겨지는 일들, 이를테면 파도 한가운데서 솟는 뜨거운 물이나 드넓은 바다에 불쑥 솟아오르는 새 섬들에 원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일세. 또 바다가 제 쪽으로 물러나며 해안이 드러났다가 얼마 안 가 다시 덮이는 것을 지켜본 사람은, 물결이 어떤 눈먼 뒤척임에 휩쓸려 때로는 오그라들며 안으로 밀려 들어가고 때로는 터져 나와 큰 기세로 제자리를 되찾는다고 믿을 걸세. 그러나 실은 그동안에도 물결은 정해진 몫만큼씩 불어나, 달이라는 별이 끌어당기는 대로 시각과 날에 맞춰 더 크게 또 더 작게 밀려든다네. 대양은 달의 뜻에 따라 넘쳐흐르지. 이런 이야기는 제때를 위해 아껴 두세. 자네는 섭리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섭리를 원망하는 것이니 더욱 그렇지. 나는 자네를 신들과 화해시킬 걸세. 가장 선한 이들에게 가장 선한 신들과 말일세. 자연은 선한 것이 선한 것을 해치는 일을 결코 허락하지 않네. 선한 사람과 신들 사이에는 덕(virtus)이 맺어 준 우정이 있지. 우정이라고 했나? 아니, 그보다 더 가까운 혈연이요 닮음일세. 선한 사람은 오직 시간에서만 신과 다를 뿐, 신의 제자이자 신을 본받아 겨루는 자이며 신의 참된 자식이기 때문이네. 그 장엄한 아버지는 덕을 요구하는 데 조금도 무르지 않아서, 엄한 아버지들이 그러듯 자식을 더 혹독하게 기른다네. 그러니 신들의 사랑을 받는 선한 사람들이 애쓰고 땀 흘리며 가파른 길을 오르는 동안 악한 자들은 방탕하게 놀며 쾌락에 흠뻑 젖어 지내는 것을 보거든, 이렇게 생각하게. 우리도 아들에게서는 얌전함을, 집에서 난 어린 노예에게서는 방자함을 보며 흐뭇해하지 않는가. 아들은 더 엄한 규율로 다잡고, 노예 아이의 당돌함은 오히려 북돋아 주지. 신에 대해서도 똑같이 분명히 알아 두게. 신은 선한 사람을 응석받이로 기르지 않네. 시험하고, 단련하고, 자기 곁에 둘 사람으로 길러 낸다네.

2 "어째서 선한 사람들에게 궂은일이 그토록 많이 닥치는가?" 선한 사람에게는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없네. 서로 반대되는 것은 섞이지 않는 법이지. 그 숱한 강물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그 많은 빗물이, 약효 있는 샘들이 뿜어내는 그 엄청난 물이 바다의 짠맛을 바꾸지 못하고 묽게 하지도 못하듯이, 역경이 아무리 몰아쳐도 강한 사람의 마음은 뒤집히지 않네. 그 마음은 제자리를 지키며 무슨 일이 닥치든 제 빛깔로 물들여 버리지. 바깥의 어떤 것보다도 강하기 때문일세. 그렇다고 그가 그런 일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은 아닐세. 느끼되 이겨 낸다는 말이지. 평소에는 고요하고 온화하다가도, 덮쳐 오는 것에 맞설 때는 우뚝 일어선다네. 그는 모든 역경을 단련으로 여기네. 사내답고 훌륭한 것을 향해 꼿꼿이 선 사람이라면 누군들 정당한 수고를 마다하겠으며, 위험이 따르는 의무 앞에서 머뭇거리겠는가? 부지런한 사람에게 한가함이 벌이 아닌 적이 있던가? 힘을 기르는 데 마음을 쏟는 운동선수들을 보게. 그들은 가장 센 상대만 골라 맞붙고, 시합을 앞두고 훈련을 돕는 상대들에게 자기를 상대로 온 힘을 다하라고 요구하네. 얻어맞고 시달리는 것을 기꺼이 견디며, 혼자서는 맞수가 될 사람을 찾지 못하면 여럿을 한꺼번에 상대한다네. 맞수가 없으면 덕은 시드네. 덕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힘센지는 견디는 힘으로 제 역량을 보여 줄 때에야 드러나지. 선한 사람들도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 두게. 거칠고 힘든 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운명(fatum)을 원망하지 말고, 무슨 일이 닥치든 좋게 받아들여 좋은 것으로 바꾸어야 하네. 무엇을 견디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견디느냐가 중요하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을 아끼는 마음이 얼마나 다르게 나타나는지 보지 못했나? 아버지는 아이들을 일찍 깨워 공부하러 보내고, 쉬는 날에도 빈둥거리게 두지 않으며, 땀을 짜내고 때로는 눈물까지 짜낸다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를 품에 안아 감싸고 그늘에 두려 하며, 아이가 언짢아하는 일도, 우는 일도, 애쓰는 일도 결코 없기를 바라지. 신은 선한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있으며, 그들을 엄하게 사랑한다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 "그들이 노고와 고통과 손실에 시달리게 하라. 그래야 참된 힘을 기른다." 게으름으로 살찐 것은 축 늘어져서, 일은커녕 몸을 움직이기만 해도, 제 무게만으로도 주저앉고 마네. 한 번도 다쳐 본 적 없는 행운은 어떤 일격도 견디지 못하네. 그러나 제 불운과 줄곧 다투어 온 사람은 숱한 상처를 거치며 굳은살이 박여서 어떤 불행에도 굽히지 않고, 쓰러지더라도 무릎을 꿇은 채 끝까지 싸운다네. 선한 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들이 더없이 훌륭하고 뛰어나기를 바라는 신이 그들의 훈련 상대로 운(fortuna)을 짝지어 준다고 해서 자네는 놀라는가? 나는 조금도 놀랍지 않네. 신들이 이따금 위대한 사람이 어떤 재앙과 맞붙어 씨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해도 말일세. 우리도 의연한 젊은이가 덤벼드는 짐승을 사냥창으로 받아 내거나 사자의 돌진을 겁 없이 버텨 내면 즐거워하고, 그 일을 해낸 사람이 지체 높을수록 그 구경거리를 더 반기지. 그러나 그런 것은 신들의 얼굴을 돌려세울 만한 일이 못 되네. 아이들 장난이요, 경박한 인간의 심심풀이일 뿐이지. 보게, 자기 일에 몰두한 신도 고개를 돌려 바라볼 만한 구경거리가 여기 있네. 보게, 신이 보기에 걸맞은 맞대결이 여기 있네. 강한 사람이 나쁜 운과 짝지어 맞서는 모습 말일세. 더구나 그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면 더 말할 것도 없지. 거듭 말하지만, 유피테르가 이 땅으로 눈길을 돌린다면, 자기 편이 이미 몇 번이나 꺾였는데도 나라가 무너진 폐허 한가운데 여전히 꼿꼿이 서 있는 카토1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모르겠네. 카토는 말하네.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땅은 군단이, 바다는 함대가 지키고, 카이사르의 병사들이 성문을 에워싼다 해도 카토에게는 나갈 길이 있다. 한 손으로 자유에 이르는 넓은 길을 낼 것이다. 내전 중에도 더럽혀지지 않고 죄 없이 지켜 온 이 칼이 마침내 훌륭하고 고귀한 일을 해낼 것이다. 조국에 주지 못한 자유를 카토에게는 줄 것이다. 영혼아, 오래 생각해 온 일에 손을 대라. 인간사에서 너를 빼내라. 페트레이우스와 유바2는 이미 맞붙어 서로의 손에 쓰러져 누웠다. 운명을 두고 맺은 용감하고 빛나는 약조였지만 나의 위대함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카토가 누구에게 죽음을 구걸하는 것은 목숨을 구걸하는 것만큼이나 부끄럽다." 나는 확신하네. 자기 자신에게 누구보다 단호했던 그 사람이 남의 안전을 챙기고 떠나는 이들이 달아날 길을 마련해 줄 때, 마지막 밤에도 책을 붙들고 있을 때, 거룩한 가슴에 칼을 꽂을 때, 창자를 흩뿌리며 칼에 더럽혀지기에는 너무나 거룩한 그 영혼을 제 손으로 끌어낼 때, 신들은 크나큰 기쁨으로 지켜보았을 걸세. 그래서 그 상처가 단번에 확실히 숨을 끊지 못했다고 나는 믿고 싶네. 불멸의 신들은 카토를 한 번 보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걸세. 그의 덕은 붙들려 다시 무대로 불려 나왔네. 더 어려운 배역에서 자신을 보여 주도록 말일세. 죽음에 처음 들어설 때보다 다시 찾아갈 때 더 큰 용기가 드는 법일세. 자기들이 길러 낸 제자가 그토록 빛나고 길이 기억될 퇴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신들이 어찌 기꺼이 지켜보지 않았겠는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조차 그 마지막을 칭송하는 이들, 죽음은 그런 이들을 신성하게 만든다네.

3 나쁜 일로 보이는 것들이 실은 얼마나 나쁜 일이 아닌지는 이야기가 나아가는 대로 보여 주겠네. 지금은 이것만 말해 두지. 자네가 거칠다고, 고약하고 끔찍하다고 부르는 그 일들은 첫째로 그 일을 당하는 사람들 자신을 위한 것이고, 다음으로는 신들이 낱낱의 사람보다 더 마음에 두는 모두를 위한 것이네. 또 그런 일은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일어나며, 받아들이기 싫다는 사람은 나쁜 일을 당해도 싸다네. 여기에 덧붙여, 그런 일은 운명에 따라 그렇게 흘러가며 선한 사람들을 선하게 만드는 바로 그 법에 따라 그들에게 닥친다는 것도 보여 주겠네. 그런 다음 자네가 선한 사람을 결코 불쌍히 여기지 않도록 설득하겠네. 선한 사람은 비참하다는 말을 들을 수는 있어도 비참할 수는 없으니 말일세. 내가 내세운 것들 가운데 가장 어려워 보이는 것은 맨 처음에 말한 것, 곧 우리가 몸서리치고 벌벌 떠는 일들이 그 일을 당하는 사람들 자신에게 이롭다는 주장일세. "추방당하고, 가난에 떨어지고, 자식과 아내를 묻고, 치욕을 뒤집어쓰고, 몸을 못 쓰게 되는 것이 그 사람들 자신에게 이롭단 말인가?" 하고 자네는 말하겠지. 이런 일이 누군가에게 이롭다는 것이 놀랍다면, 어떤 사람들이 칼과 불로, 또 그 못지않게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병을 고친다는 것도 놀라울 걸세. 그러나 치료를 위해 어떤 사람들은 뼈를 깎아 내고 뼛조각을 추려 내고 혈관을 뽑아내며, 붙어 있으면 온몸을 망칠 팔다리를 잘라 내기도 한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이것도 내가 증명하도록 허락해 주겠지. 어떤 불편한 일은 그 일을 당하는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 말일세. 맹세코 그것은, 사람들이 칭송하고 탐내는 어떤 것들이 그것을 즐긴 사람들을 해치는 것과 꼭 같은 이치일세. 체증이나 만취, 그 밖에 쾌락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들이 다 그렇지. 우리 데메트리오스3가 남긴 훌륭한 말이 많지만, 그 가운데 내가 방금 듣고 와서 아직도 귓가에 울리며 떨리는 말이 있네. "한 번도 역경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보다 더 불행해 보이는 사람은 없다." 그 사람은 자기를 시험해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일세. 모든 일이 바라는 대로, 아니 바라기도 전에 술술 풀렸다 해도 신들은 그를 낮게 평가한 걸세. 언젠가 운을 이길 만한 그릇이 못 된다고 본 것이지. 운은 가장 비겁한 자들을 피해 가니,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네. "뭐라고? 저런 자를 내 상대로 삼으라고? 당장 무기를 내려놓을 텐데. 저런 자에게는 내 힘을 다 쏟을 것도 없다. 살짝 을러대기만 해도 달아날 테고, 내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한다. 맞붙어 볼 만한 다른 자를 둘러보자. 질 채비가 된 자와 겨루는 것은 부끄럽다." 검투사는 자기보다 못한 상대와 짝지어지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네. 위험 없이 쓰러뜨린 상대는 쓰러뜨려도 영광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운도 똑같이 하네. 가장 용감한 자들을 제 맞수로 찾고, 어떤 자들은 하찮게 여겨 지나쳐 버리지. 가장 굽힐 줄 모르고 가장 꼿꼿한 사람을 골라 덤벼들어 그에게 제 힘을 겨누네. 무키우스4에게는 불을, 파브리키우스5에게는 가난을, 루틸리우스6에게는 추방을, 레굴루스7에게는 고문을, 소크라테스에게는 독을, 카토에게는 죽음을 시험해 보지. 위대한 본보기는 나쁜 운만이 찾아낸다네. 무키우스가 적의 불을 오른손으로 짓누르며 제 실수의 벌을 스스로 받아 내고, 무기를 든 손으로는 쫓아내지 못한 왕을 불탄 손으로 쫓아냈다고 해서 불행한가? 그럼 어떤가? 그 손을 애인의 품에 넣어 덥히고 있었다면 더 행복했겠는가? 파브리키우스가 나랏일에서 틈이 날 때마다 제 밭을 일구었다고 해서 불행한가? 피로스와 싸운 만큼 재물과도 싸웠다고 해서? 개선식까지 치른 노인이 밭의 잡초를 뽑다가 캐낸 바로 그 뿌리와 풀을 화롯가에서 저녁으로 먹었다고 해서? 그럼 어떤가? 먼 바닷가의 물고기와 낯선 땅에서 잡은 새들을 제 배 속에 쌓아 넣었다면, 위쪽 바다와 아래쪽 바다의 조개로 메슥거리는 위장의 굼뜬 입맛을 깨웠다면, 사냥꾼이 숱하게 죽어 나가며 잡은 최상급 짐승들을 산더미 같은 과일로 둘러쌌다면 더 행복했겠는가? 그를 단죄한 자들이 오고 오는 모든 세대 앞에서 변론을 해야 할 판이라고 해서 루틸리우스가 불행한가? 조국에서 떼어지는 일은 추방을 빼앗기는 일보다 담담하게 견뎠다고 해서? 독재관 술라에게 무언가를 거절한 사람이 그 하나뿐이었고,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자 뒷걸음질 치다시피 더 멀리 달아났다고 해서? 그는 말했네. "그건 그대의 행운이 로마에서 붙잡아 둔 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오. 포룸에 흥건한 피도, 세르빌리우스 연못8 위에 놓인 원로원 의원들의 머리도(술라 살생부의 시체 벗기는 방이 바로 그곳이오), 온 도시를 떼 지어 누비는 자객들도, 살려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 아니 바로 그 약속에 속아 한곳에서 도륙당한 로마 시민 수천 명도 그들이나 보라 하시오. 그런 것은 추방살이도 할 줄 모르는 자들이나 볼 일이오." 그러면 루키우스 술라는 행복한가? 포룸으로 내려올 때 칼로 사람들을 밀어내며 길을 트고, 집정관을 지낸 사람들의 머리를 제 앞에 내보이게 하고, 그 살육의 값을 재무관을 시켜 나라 장부에서 셈해 내주었다고 해서? 그런데 이 모든 일을 한 자가 바로 그 사람, 코르넬리우스 법9을 만든 그 사람일세. 레굴루스에게로 가 보세. 운이 그를 신의의 본보기로, 인내의 본보기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에게 무슨 해를 끼쳤는가? 못이 살갗을 꿰뚫어, 지친 몸을 어디로 기대든 상처 위에 눕게 되네. 두 눈은 끝없이 깨어 있도록 억지로 치켜 열려 있네. 고통이 클수록 영광도 클 걸세. 덕에 이런 값을 매긴 것을 그가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싶은가? 그를 못에서 떼어 내 원로원으로 보내 보게. 같은 의견을 말할 걸세. 그렇다면 자네는 마이케나스10가 더 행복했다고 생각하는가? 사랑 때문에 애를 태우고, 까다로운 아내와 날마다 갈라서는 일을 눈물로 한탄하다가, 멀리서 은은하게 울려 오는 악단의 노랫소리로 잠을 청하던 그 사람 말일세. 독한 술로 제 정신을 잠재우고, 물 쏟아지는 소리로 마음을 딴 데로 돌리고, 천 가지 쾌락으로 불안한 정신을 속여 본들, 그는 깃털 침상에서도 레굴루스가 형틀 위에서 그랬듯 깨어 있을 걸세. 그러나 레굴루스에게는 훌륭한 것을 위해 가혹한 일을 견딘다는 위안이 있고, 그는 고통에서 눈을 돌려 그 까닭을 바라보네. 반면 쾌락에 흐물흐물해지고 지나친 행운에 시달리는 마이케나스는 겪는 일 그 자체보다 그 일을 겪는 까닭에 더 괴로워한다네. 악덕이 아무리 인류를 차지했다 해도, 운명을 고르게 해 준다면 마이케나스보다 레굴루스로 태어나려는 사람이 더 많으리라는 것을 의심할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네. 레굴루스보다 마이케나스로 태어나는 편이 나았으리라고 감히 말할 사람이 있다면, 그자는 입 밖에 내지 않더라도 테렌티아로 태어나기를 더 바랐던 셈일세. 소크라테스가 나라에서 섞어 준 그 독배를 불사의 약을 마시듯 들이켜고 숨이 다할 때까지 죽음을 논했다고 해서, 자네는 그가 모진 대접을 받았다고 보는가? 피가 얼어붙고 냉기가 차츰 번져 혈관의 힘이 멎었다고 해서 그가 몹쓸 일을 당했단 말인가? 보석 잔으로 시중을 받는 자들보다, 온갖 짓을 다 받아 주도록 길들여진 사내종이, 거세당했거나 사내인지 아닌지 모를 그 종이 금 그릇에 담긴 눈을 녹여 술을 식혀 주는 자들보다,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더 부러운가! 이자들은 마신 것을 무엇이든 시무룩하게 토해 내며 제 쓸개즙을 다시 맛볼 걸세.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독을 기쁘게, 기꺼이 들이켤 걸세. 카토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했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가 더없는 행복을 누렸다고 인정할 걸세. 자연은 두려운 것들과 맞부딪쳐 볼 상대로 그를 골랐으니 말일세. "권세가들의 적의는 무겁다. 그러니 그를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와 크라수스에게 한꺼번에 맞서게 하라. 못난 자들에게 관직에서 밀리는 것은 무겁다. 그러니 바티니우스11보다 뒤로 밀리게 하라. 내전에 휘말리는 것은 무겁다. 그러니 온 세상을 누비며 옳은 대의를 위해 끈질기게, 그만큼 불운하게 싸우게 하라. 제 손으로 목숨을 끊는 것은 무겁다. 그러니 그렇게 하게 하라. 이것으로 나는 무엇을 얻는가? 내가 카토에게 걸맞다고 여긴 이런 일들이 악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된다."

4 순조로운 일은 평민에게도, 비천한 재주를 지닌 자들에게도 찾아가네. 그러나 재앙과 인간의 두려움을 굴복시켜 멍에 밑으로 지나가게 하는 것은 위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세. 늘 운이 좋기만 하고 마음을 물어뜯기는 일 없이 삶을 지나가는 것은 자연의 나머지 반쪽을 모르는 것이지. 자네는 위대한 사람일세. 그러나 운이 자네에게 덕을 드러내 보일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나? 자네는 올림피아 제전에 나갔지만 자네 말고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네. 관은 얻었어도 승리는 얻지 못했지. 나는 자네를 용감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집정관이나 법무관 자리를 얻은 사람으로서 축하하네. 자네는 명예가 하나 늘었을 뿐일세. 선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말할 수 있네. 더 모진 불행이 그에게 마음의 힘을 보여 줄 기회를 한 번도 주지 않았다면 말일세. "자네는 한 번도 비참해 본 적이 없으니 나는 자네를 비참하다고 보네. 자네는 맞수 없이 삶을 지나왔네. 자네가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걸세. 자네 자신조차." 자기를 알려면 시험해 보아야 하네. 누구든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해 보지 않고서는 알지 못했지.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나쁜 일이 꾸물거리자 스스로 나서서 그 앞에 몸을 내밀었고, 그대로 두면 어둠 속에 묻혀 갈 덕에 빛을 낼 기회를 찾아 나섰다네. 거듭 말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은 이따금 역경을 반기네. 용감한 병사가 전쟁을 반기는 것과 다르지 않지.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무르밀로 검투사 트리움푸스12가 검투 경기가 드물다고 불평하는 것을 나는 들은 적이 있네. "좋은 한창때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더군. 덕은 위험을 탐하네. 무엇을 겪게 될지가 아니라 어디로 나아가는지를 생각하지. 겪게 될 일도 영광의 일부이기 때문일세. 군인들은 상처를 뽐내고, 남보다 나은 운을 만나 흘린 피를 기쁘게 내보이네. 싸움터에서 멀쩡히 돌아온 이들이 똑같이 싸웠다 해도, 사람들은 다쳐서 돌아온 이를 더 눈여겨보지. 거듭 말하지만, 신은 더없이 훌륭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담대하고 용감하게 무언가를 해낼 거리를 줄 때마다 바로 그들을 위하는 걸세. 그러자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야 하네. 키잡이는 폭풍 속에서, 병사는 싸움터에서 알아보는 법이지. 자네가 재물 속에 흐물흐물 녹아 있다면, 가난에 맞설 기개가 자네에게 얼마나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나? 자네가 박수갈채 속에서 늙어 가고, 무너뜨릴 수 없는 인기가, 사람들 마음이 저절로 쏠려 기우는 인기가 자네를 따라다닌다면, 치욕과 오명과 대중의 미움에 맞설 의연함이 자네에게 얼마나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나? 낳아 기른 자식을 하나도 잃지 않고 다 보고 있다면, 자식 잃는 일을 자네가 얼마나 담담하게 견딜지 내가 어찌 알겠나? 자네가 남을 위로하는 말은 들었네. 그때 자네가 자기 자신을 위로했다면, 자기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면, 나는 자네를 제대로 보았을 걸세. 부탁하네, 자네들은 불멸의 신들이 마음에 박차처럼 갖다 대는 이런 일들에 질겁하지 말게. 재앙은 덕의 기회일세. 지나친 행운에 마비된 자들, 잔잔한 바다에 갇힌 배처럼 맥 빠진 고요에 붙들린 자들이야말로 비참하다고 해야 마땅하니,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닥치든 낯선 일로 다가올 걸세. 모진 일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을 더 세게 짓누르네. 여린 목에는 멍에가 무겁지. 신병은 다칠 낌새만 보여도 낯빛이 하얘지지만, 피를 흘리고 나서 이긴 적이 많다는 것을 아는 노병은 제 피를 대담하게 바라보네. 그래서 신은 자기가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단련하고, 살피고, 훈련시키네. 반면 신이 너그럽게 봐주고 아껴 주는 듯한 자들은 무른 채로 두었다가 닥쳐올 나쁜 일에 내맡기지. 누군가가 예외가 되었다고 판단한다면 자네들은 잘못 생각하는 걸세. 오래도록 운이 좋았던 그 사람에게도 제 몫이 찾아올 걸세. 면제된 듯 보이는 사람은 누구든 미뤄졌을 뿐일세. 신은 어째서 가장 훌륭한 사람마다 병이나 사별의 슬픔이나 그 밖의 불편한 일로 괴롭히는가? 군영에서도 위험한 일은 가장 용감한 자들에게 맡기기 때문일세. 장군은 가장 뛰어난 정예를 뽑아 보내 밤에 매복했다가 적을 치게 하거나, 길을 정탐하게 하거나, 적의 수비대를 진지에서 몰아내게 하지. 그렇게 나가는 자들 가운데 "사령관이 나를 홀대했다"고 말하는 자는 아무도 없네. "나를 제대로 알아보았다"고 하지. 겁 많고 비겁한 자들이라면 울고불고할 일을 견디라는 명을 받은 사람은 누구든 똑같이 말하게. "신은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에 우리가 걸맞다고 보았다." 자네들은 사치를 피하게. 사람을 무르게 만드는 행운을 피하게. 그런 행운에 마음은 흠뻑 젖어 들고, 인간의 처지를 일깨워 줄 무언가가 끼어들지 않으면 끝없이 취해 잠든 사람처럼 시들어 버리네. 창유리가 늘 바람을 막아 주고, 수시로 갈아 대는 찜질 속에서 발이 늘 따뜻했고, 바닥 밑과 벽 둘레로 도는 열기가 식당을 덥혀 준 사람이라면, 가벼운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위태롭다네. 도를 넘은 것은 모두 해롭지만, 그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은 행운의 무절제일세. 그것은 머리를 어지럽히고, 정신을 헛된 환영 속으로 불러내며, 거짓과 참 사이에 짙은 안개를 잔뜩 퍼뜨리네. 그러니 덕을 불러 곁에 두고 끝없는 불운을 견디는 편이, 끝도 한도 없는 좋은 것들에 배가 터지는 것보다 어찌 낫지 않겠는가? 굶어서 맞는 죽음은 차라리 순하네. 과식한 자들은 터져 죽지. 신들은 선한 사람들을 대할 때, 기대가 더 확실한 제자일수록 더 많은 수고를 요구하는 스승들과 같은 이치를 따르네. 스파르타인들이 공개적으로 매질을 해서 자식들의 됨됨이를 시험한다고 해서, 자네는 그들이 자식을 미워한다고 믿는가? 아버지들이 몸소 나서서 아이들에게 채찍질을 꿋꿋이 견디라고 다그치고, 살갗이 찢겨 반쯤 죽은 아이들에게도 상처 위에 계속 상처를 내밀어 달라고 청하네. 신이 고귀한 기백을 지닌 이들을 모질게 시험한다 해서 무엇이 놀라운가? 덕을 보여 주는 증거는 결코 무르지 않네. 운이 우리를 때리고 찢는다면 견디세. 그것은 포악함이 아니라 시합일세. 자주 나설수록 우리는 더 강해질 걸세. 몸에서 가장 단단한 곳은 자주 써서 단련된 곳이지. 우리는 운에게 자신을 내맡겨야 하네. 바로 그 운에게 단련되어 운에 맞설 수 있도록 말일세. 운은 차츰 우리를 제 맞수로 만들 것이고, 쉼 없이 위험을 겪다 보면 위험을 업신여기게 될 걸세. 그래서 뱃사람의 몸은 바다를 견디느라 단단하고, 농부의 손은 닳아 굳었으며, 군인의 팔뚝은 창을 던질 만큼 힘차고, 달리기 선수의 팔다리는 날래다네. 누구든 단련한 곳이 가장 단단하지. 마음은 인내로써 나쁜 일을 견디는 수고쯤은 업신여기는 데 이르네. 인내가 우리 안에서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는, 헐벗고 가난 덕에 오히려 더 강해진 민족들에게 고된 삶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면 알게 될 걸세. 로마의 평화가 끝나는 곳의 민족들을 모두 생각해 보게. 게르만족과 히스테르강 언저리를 떠도는 숱한 부족들 말일세. 끝없는 겨울과 음울한 하늘이 그들을 짓누르고, 메마른 땅은 인색하게 그들을 먹여 살리네. 그들은 짚이나 나뭇잎으로 비를 막고, 꽁꽁 언 늪 위를 뛰어다니며, 먹을거리로 짐승을 사냥하지. 그들이 비참해 보이는가? 습관이 본성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무엇도 비참하지 않네. 필요해서 시작한 일도 차츰 쾌락이 되기 때문일세. 그들에게는 지친 몸이 그날그날 정해 주는 곳 말고는 집도 거처도 없네. 먹을 것은 변변찮은 데다 그나마 제 손으로 구해야 하고, 날씨는 끔찍하게 사나우며, 몸은 가릴 것이 없네. 자네에게 재앙으로 보이는 이것이 그 숱한 민족의 삶일세. 선한 사람들이 굳건해지려고 흔들리는 것이 어찌 놀라운가? 바람이 자주 들이치지 않는 나무는 단단하지도 튼튼하지도 않네. 시달리면서 바로 그 시달림에 몸이 조여지고 뿌리를 더 깊이 박기 때문이지. 볕 잘 드는 골짜기에서 자란 나무는 잘 부러지네. 그러므로 선한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지낼 수 있으려면 두려운 것들 사이에서 많이 지내며, 나쁘게 견디는 사람에게만 나쁜 그런 일들을 담담하게 견디는 편이 바로 그들 자신에게 이롭다네.

5 이제 여기에,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말하자면 군 복무를 하고 부역을 치르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도 덧붙이게. 신이 뜻하는 바는 현자가 뜻하는 바와 같으니, 뭇사람이 탐내는 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선도 악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일일세. 그런데 신이 그것들을 선한 사람에게만 나누어 준다면 그것들은 선으로 보일 것이고, 악한 사람에게만 지운다면 악으로 보일 걸세. 눈을 뽑혀 마땅한 자만 눈을 잃는다면 눈먼 것은 저주스러운 일이 될 걸세. 그래서 아피우스와 메텔루스13도 빛을 잃는 것이네. 재물은 선이 아니네. 그래서 사람들이 신전에 바쳐 거룩하게 모신 돈을 사창가에서도 보도록 뚜쟁이 엘리우스도 재물을 갖는 걸세. 사람들이 탐내는 것들을 망신 주는 데에는, 그것들을 가장 추한 자들에게 건네주고 가장 훌륭한 이들에게서는 쫓아 버리는 것보다 나은 길이 신에게 없네. "그러나 선한 사람은 불구가 되거나 찔리거나 묶이는데, 악한 자들은 성한 몸으로 풀려나 호사를 누리며 활보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뿐인가? 용감한 사람들은 무기를 들고 군영에서 밤을 지새우며 상처를 동여맨 채 방벽 앞을 지키는데, 그동안 도성 안에서는 거세한 자들과 음란을 드러내 놓고 일삼는 자들이 근심 없이 지내는 것은 부당하지 않은가? 또 어떤가? 더없이 고귀한 처녀들은 제사를 올리려고 밤중에 일어나야 하는데, 몸을 더럽힌 여자들은 깊디깊은 잠을 즐기는 것은 부당하지 않은가? 수고는 가장 훌륭한 사람들을 부르네. 원로원은 온종일 회의를 여는 일이 잦은데, 그 시각에 가장 하찮은 자들은 들판에서 한가롭게 놀거나 술집에 숨어 있거나 어느 패거리에 끼어 시간을 죽이지. 이 거대한 나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네. 선한 사람들은 애쓰고, 아낌없이 쓰고, 자신도 아낌없이 쓰이며, 그것도 기꺼이 그렇게 하네. 그들은 운에게 끌려가지 않네. 운을 따라가며 걸음을 맞추지. 미리 알았더라면 앞서 나갔을 걸세. 더없이 용감한 사람 데메트리오스가 한 이 패기 있는 말도 들은 기억이 나네. "불멸의 신들이여, 제가 신들께 불평할 것은 단 하나, 신들의 뜻을 제게 미리 알려 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알았더라면 지금 부름을 받고서야 나선 이 자리에 제가 먼저 나왔을 것입니다. 제 자식들을 데려가시렵니까? 그 아이들은 신들을 위해 길렀습니다. 제 몸의 어느 부분을 원하십니까? 가져가소서. 대단한 것을 드리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곧 몸 전체를 두고 떠날 터입니다. 제 숨을 원하십니까? 주신 것을 돌려받으시는 데 제가 어찌 조금이라도 지체하겠습니까? 무엇을 청하시든 기꺼이 내어 드리는 자에게서 받아 가실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넘겨 드리기보다 먼저 바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빼앗아 가실 까닭이 어디 있었습니까? 그냥 받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빼앗아 가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사람에게서가 아니면 아무것도 빼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엇에도 억지로 끌려가지 않고, 무엇도 마지못해 겪지 않네. 나는 신을 섬기는 종이 아니라 신에게 동의하는 사람이며, 모든 것이 확고하게, 영원토록 선포된 법에 따라 흘러간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네. 운명이 우리를 이끌고, 저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태어나는 첫 시각이 정해 놓았네. 원인은 원인에 매달려 있고, 사사로운 일이든 공적인 일이든 기나긴 사슬이 끌고 가지. 모든 일은 우리 생각처럼 우연히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대로 찾아오는 것이니, 무슨 일이든 용감하게 견뎌야 하네. 자네가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울지는 오래전에 정해졌고, 저마다의 삶이 아무리 크게 달라 보여도 합쳐 보면 결국 하나로 모이네. 사라질 우리가 사라질 것을 받을 뿐일세. 그런데 우리는 무엇에 분개하는가? 무엇을 불평하는가? 우리는 바로 이것을 위해 마련된 존재일세. 자연이 제 몸들을 뜻대로 쓰게 두세. 우리는 무슨 일에든 기쁘고 용감하게 맞서며, 우리 것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세. 선한 사람의 할 일은 무엇인가?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일세. 우주와 함께 휩쓸려 간다는 것은 큰 위안이지. 무엇이 우리에게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으라고 명했든, 그것은 같은 필연으로 신들도 묶어 두네.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인간의 일과 신의 일을 똑같이 싣고 가네. 만물을 지은 이요 다스리는 이인 그 자신도 운명을 써 놓기는 했으나 그것을 따르네. 늘 따르되, 명한 것은 한 번뿐일세. "그래도 신은 어째서 운명을 나누어 주는 데 그토록 불공평해서, 선한 사람들에게 가난과 상처와 때 이른 초상을 정해 주었는가?" 장인은 재료를 바꿀 수 없네. 재료가 본디 그렇게 생겼네14. 어떤 것들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지. 서로 붙어 있어 나눌 수가 없네. 무기력하고 잠으로, 혹은 잠과 다를 바 없는 깨어 있음으로 빠져들 성품들은 굼뜬 원소들로 엮여 있으니, 진지하게 사람이라 일컬을 만한 사람을 빚어내려면 더 굳센 운명이 있어야 하지. 그에게는 평탄한 길이 없을 걸세. 오르락내리락하고, 파도에 흔들리며, 거친 물결 속에서 배를 몰아야 하네. 운을 거슬러 항로를 지켜야 하지. 가혹하고 거친 일이 많이 닥치겠지만, 그것을 누그러뜨리고 고르게 펴는 것은 그 자신의 몫일세. 불은 금을 시험하고, 불행은 강한 사람을 시험하네. 덕이 얼마나 높이 올라가야 하는지 보게. 덕이 안전한 길로만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걸세.

"첫길은 가파르다. 아침에 갓 기운을 차린 말들도
간신히 기어오르는 길이다. 하늘 한가운데서 길은 가장 높아,
거기서 바다와 땅을 내려다보면 나조차
두려움이 일고 가슴이 겁에 질려 떨린다.
마지막 길은 내리막이라 흔들림 없는 손이 있어야 한다.
그때는 저 아래 물결로 나를 맞아들이는
테티스마저 내가 곤두박질칠까 늘 두려워한다."15

그 고귀한 젊은이는 이 말을 듣고 말했네. "그 길이 마음에 듭니다. 오르겠습니다. 떨어지더라도 그런 길을 지나 볼 값어치가 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 불같은 마음을 두려움으로 을러대기를 그치지 않네.

"네가 길을 지키고 어떤 실수로도 빗나가지 않는다 해도
너는 맞서 오는 황소의 뿔 사이로,
하이모니아의 활과 사나운 사자의 아가리 사이로 지나가야 한다."16

이 말을 듣고 젊은이가 말하네. "약속하신 수레에 말을 매어 주십시오. 저를 겁주어 물러서게 하리라 여기시는 바로 그것들이 저를 부추깁니다. 태양신께서 몸소 떠시는 그 자리에 서 보고 싶습니다." 안전한 것만 좇는 것은 비천하고 게으른 자나 하는 일일세. 덕은 높은 곳으로 간다네.

6 "그래도 신은 어째서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는가?" 아니, 신은 결코 내버려 두지 않네. 신은 범죄와 파렴치한 짓, 사악한 생각, 탐욕스러운 꾀, 눈먼 정욕, 남의 것을 노리는 욕심 같은 모든 악을 그들에게서 치워 두었네. 신은 그들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네. 그런데 누가 신에게 선한 사람들의 짐 보따리까지 지켜 달라고 요구하겠는가? 그들 스스로 신에게서 그런 걱정을 덜어 주네. 그들은 바깥의 것을 업신여기지. 데모크리토스17는 재물을 내던졌네. 재물을 건전한 정신의 짐으로 여겼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선한 사람이 이따금 스스로 바라는 일이 선한 사람에게 일어나도록 신이 내버려 둔다고 해서 자네는 무엇이 놀라운가? 선한 사람들은 자식을 잃네. 왜 아니겠는가, 그들은 때로 제 손으로 자식을 죽이기도 하는데. 그들은 추방당하네. 왜 아니겠는가, 그들은 때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스스로 조국을 떠나기도 하는데. 그들은 죽임을 당하네. 왜 아니겠는가, 그들은 때로 제 손으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데. 그들은 왜 가혹한 일을 겪는가? 남들에게 견디는 법을 가르치려는 걸세. 그들은 본보기가 되려고 태어났지. 그러니 신이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게. "올바른 것을 좋아해 온 너희여, 너희가 나를 두고 무슨 불평을 할 수 있느냐? 다른 자들에게는 거짓된 좋은 것들을 둘러 주고, 그 텅 빈 마음을 길고 거짓된 꿈으로 놀려 주었다. 그들을 금과 은과 상아로 꾸며 주었지만 그 속에는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네가 행복하다고 여기는 저자들은, 겉으로 드러난 쪽이 아니라 숨은 쪽을 보면 비참하고 더럽고 추하며, 제 집 벽처럼 겉만 번드르르하게 꾸몄을 뿐이다. 그것은 단단하고 순수한 행복이 아니다. 겉에 붙인 껍데기, 그것도 얇은 껍데기다. 그래서 그들은 버티고 서서 제 뜻대로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동안에는 번쩍거리며 사람을 속인다. 그러나 무언가가 닥쳐 그들을 흔들고 껍데기를 벗기면, 그제야 빌려 온 광채가 얼마나 깊고 참된 추함을 감추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너희에게는 확실하고 오래가는 좋은 것, 누구든 이리저리 돌려 보고 구석구석 살펴볼수록 더 좋고 더 커 보이는 것들을 주었다. 너희에게는 두려운 것을 업신여기고 욕망을 하찮게 여길 수 있게 해 주었다. 너희는 겉으로 번쩍이지 않는다. 너희의 좋은 것은 안쪽을 향해 있다. 우주도 그렇게 바깥의 것을 업신여기고 제 모습을 바라보며 기뻐한다. 나는 모든 선을 안에 두었다. 행운이 필요 없다는 것, 그것이 너희의 행복이다. '그러나 슬프고 끔찍하고 견디기 힘든 일이 많이 닥친다.' 너희를 그런 일에서 빼낼 수 없었기에 나는 너희 마음을 모든 것에 맞서도록 무장시켰다. 용감하게 견뎌라. 이 점에서 너희는 신을 앞설 수 있다. 신은 나쁜 일을 견딜 일 바깥에 있고, 너희는 견딤 위에 있다. 가난을 업신여겨라. 누구도 태어날 때만큼 가난하게 살지는 않는다. 고통을 업신여겨라. 고통은 풀리거나 너희를 풀어 준다. 죽음을 업신여겨라. 죽음은 너희를 끝내거나 옮겨 놓는다. 운을 업신여겨라. 나는 운에게 마음을 찌를 무기를 하나도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누구도 너희 뜻을 거슬러 너희를 붙잡아 두지 못하게 해 두었다. 나가는 문은 열려 있다. 싸우기 싫으면 달아나도 된다. 그래서 너희에게 꼭 있어야 한다고 정한 모든 것 가운데 죽는 일만큼 쉽게 만든 것이 없다. 나는 목숨을 내리막에 두었다. 목숨은 저절로 끌려 내려간다18. 눈여겨보기만 하면 자유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짧고 얼마나 거침없는지 알게 될 것이다. 들어올 때만큼 나갈 때 오래 지체하게 하지도 않았으니, 그렇지 않아서 사람이 태어나는 만큼 더디게 죽는다면 운이 너희 위에 큰 권세를 휘둘렀을 것이다. 모든 때와 모든 곳이 너희에게, 자연과 인연을 끊고 자연이 준 선물을 그 얼굴에 되던지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가르쳐 주게 하라. 제단 바로 곁에서, 제물을 바치는 이들의 엄숙한 의식 한가운데서, 사람들이 목숨을 빌고 있을 때 죽음을 배워라. 살진 황소의 몸뚱이도 작은 상처 하나에 쓰러지고, 힘센 짐승도 사람 손이 한 번 내리치면 넘어진다. 가는 칼날 하나에 목덜미의 이음매가 끊어지고, 머리와 목을 잇는 그 마디가 잘리면 그 커다란 덩치가 무너져 내린다. 숨은 깊은 곳에 숨어 있지 않아서 굳이 칼로 파낼 것도 없고, 상처를 깊숙이 찔러 넣어 가슴속을 헤집을 필요도 없다. 죽음은 바로 곁에 있다. 나는 이런 일격을 위해 정해 둔 자리를 두지 않았다.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길이 뚫려 있다. 죽는다고 부르는 바로 그 일, 영혼이 몸을 떠나는 일은 그 빠르기를 느낄 수도 없을 만큼 짧다. 올가미가 목구멍을 조였든, 물이 숨구멍을 막았든, 거꾸로 떨어진 머리를 아래 놓인 단단한 땅이 부수었든, 들이마신 불이 되돌아 나오는 숨길을 끊었든, 무엇이든 서둘러 끝난다. 너희는 부끄럽지도 않으냐? 그토록 빨리 끝나는 일을 그토록 오래 두려워하다니!"

주

  1. 1. 소(小)카토(기원전 95~기원전 46). 공화정을 지키려 카이사르에 맞섰고, 북아프리카 우티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첫 칼에 죽지 못하자 꿰맨 상처를 제 손으로 다시 찢었다고 전한다.

  2. 2. 폼페이우스파의 장군 마르쿠스 페트레이우스와 누미디아 왕 유바 1세. 기원전 46년 탑수스에서 카이사르에게 진 뒤 서로 찔러 죽기로 하고 맞붙었다.

  3. 3. 견유학파 철학자. 1세기 로마에서 가난하게 살며 가르쳤고, 세네카의 벗이었다. 칼리굴라부터 베스파시아누스 시대까지 활동했다.

  4. 4. 가이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로마를 에워싼 에트루리아 왕 포르센나를 죽이려다 엉뚱한 사람을 찔렀다. 붙잡히자 오른손을 제단 불에 넣어 태우며 태연한 모습을 보였고, 이에 놀란 왕이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고 전한다(기원전 6세기 말).

  5. 5.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 루스키누스. 기원전 3세기 로마의 장군·집정관. 에페이로스 왕 피로스와 싸웠고, 피로스의 뇌물을 물리친 청렴과 가난으로 이름났다.

  6. 6.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아시아 속주에서 징세업자들의 횡포를 막다가 그들의 모함으로 기원전 92년 부당한 유죄 판결을 받고 스미르나로 물러났다. 뒤에 술라가 불러들였으나 돌아가지 않았다.

  7. 7.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1차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에 사로잡혔다. 포로 교환을 협상하러 로마에 보내지자 원로원에서 교환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고, 맹세대로 카르타고로 돌아가 고문 끝에 죽었다고 전한다.

  8. 8. 포룸 가까이 있던 연못. 술라는 살생부에 오른 원로원 의원들의 머리를 이곳에 내걸었다. 「시체 벗기는 방」은 원형 경기장에서 죽은 검투사의 무구와 옷을 벗기던 방(spoliarium)에 빗댄 말이다.

  9. 9. 술라가 기원전 81년에 만든, 자객과 독살범을 처벌하는 법.

  10. 10. 가이우스 킬니우스 마이케나스(기원전 70 무렵~기원전 8). 아우구스투스의 측근이자 시인들의 후원자. 성미 까다로운 아내 테렌티아와 여러 번 갈라섰다가 다시 합쳤고,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전한다.

  11. 11.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카이사르파 정치가. 기원전 55년 법무관 선거에서 카토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12. 12. 무르밀로는 물고기 장식이 달린 투구를 쓰고 큰 방패와 짧은 칼로 싸운 검투사다. 트리움푸스는 그 검투사의 이름이다.

  13. 13.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기원전 4~3세기)는 늘그막에 눈이 멀었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241년 불타는 베스타 신전에서 성물을 구해 내다가 눈이 멀었다고 전한다.

  14. 14. 원문 손상. 재료가 본디 그렇게 생겼다는 뜻으로 읽었다.

  15. 15.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2.63~69. 태양신이 아들 파에톤에게 태양 수레를 모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 일러 주는 말이다. 테티스는 바다의 여신이다.

  16. 16. 같은 책 2.79~81. 황소와 하이모니아(테살리아)의 활과 사자는 하늘의 황소자리·궁수자리·사자자리를 가리킨다.

  17. 17. 그리스의 원자론 철학자(기원전 460 무렵~기원전 370 무렵). 학문에 몰두하려고 물려받은 재산을 내놓았다고 전한다.

  18. 18. 원문 손상. 목숨이 내리막을 따라 저절로 끌려 나간다는 뜻으로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