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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에 관하여 제3권

1 노바투스1 형님, 형님께서 가장 바라시던 일을 이제 해 보겠습니다. 마음에서 분노를 도려내거나, 적어도 고삐를 채워 그 기세를 붙드는 일입니다. 이 일은 때로는 드러내 놓고 공공연히 해야 합니다. 나쁜 기운이 아직 약해서 그렇게 해도 견딜 때입니다. 또 때로는 몰래 해야 합니다. 분노가 너무 달아올라 무엇이 가로막든 더 사나워지고 더 커질 때입니다. 분노의 힘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성한지에 따라, 맞받아쳐 뒤로 몰아내야 할지, 아니면 첫 폭풍이 잦아들 때까지 비켜서서 분노가 약까지 휩쓸어 가지 않게 해야 할지가 갈립니다. 방도는 저마다의 성미에 맞춰 정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간청에 누그러지고, 어떤 이는 굽히고 들어가면 오히려 깔보며 더 몰아붙이며, 어떤 이는 겁을 주어야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꾸지람이, 어떤 이는 잘못을 털어놓는 말이, 어떤 이는 부끄러움이 하던 짓을 그치게 했고, 어떤 이는 시간을 끄는 것이 그치게 했습니다. 시간 끌기는 이 곤두박질치는 악에 쓰기에는 느린 약이라 맨 마지막에야 손을 대야 합니다. 다른 격정(affectus)은 미루어 둘 수도 있고 천천히 고칠 수도 있지만, 이 격정은 스스로 부추기고 스스로 휩쓸려 가는 거센 힘이어서 조금씩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는 순간 이미 다 자라 있습니다. 다른 악덕처럼 마음을 꾀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째로 끌고 가, 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모두가 함께 망하더라도 해치고 싶어 하게 몰아대며, 겨냥한 것에만 날뛰는 것이 아니라 가는 길에 마주치는 것에까지 날뜁니다. 다른 악덕은 마음을 떠밀지만, 분노는 마음을 내리꽂습니다. 제 격정에 맞서 버틸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격정이 멈춰 서는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는 벼락이나 폭풍처럼, 또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는 까닭에 되돌릴 수 없는 그 밖의 것들처럼, 갈수록 더 세게 힘을 몰아붙입니다. 다른 악덕은 이성에서 벗어나지만, 이 악덕은 온전한 정신에서 벗어납니다. 다른 악덕은 슬며시 다가와 모르는 사이에 자라지만, 분노에는 마음이 곤두박질쳐 떨어집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몰아치는 것은 없습니다. 분노는 얼이 빠진 채 제 힘을 믿고 앞으로 쏠리며, 뜻을 이루면 오만해지고 뜻이 꺾이면 미쳐 날뜁니다. 퇴짜를 맞고도 지쳐 물러나지 않으며, 운이 상대를 빼돌리면 제 이빨을 제게로 돌립니다. 분노가 얼마나 큰 일에서 일어났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주 하찮은 일에서 시작해 가장 큰 일로 번지기 때문입니다.

2 분노는 어떤 나이도 비켜 가지 않고, 어떤 부류의 사람도 빼놓지 않습니다. 어떤 민족은 가난 덕분에 사치를 모르고, 어떤 민족은 늘 움직이며 떠돌아다니기에 게으름을 면했습니다. 풍습이 거칠고 시골 살림을 하는 민족은 속임수도 사기도, 포룸에서 생겨나는 온갖 악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노가 부추기지 않는 민족은 하나도 없습니다. 분노는 그리스인에게도 야만인에게도 똑같이 힘을 떨치며, 법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도 힘의 크기로 정의를 가르는 사람들 못지않게 해롭습니다. 게다가 다른 격정은 한 사람씩 사로잡지만, 이 격정만은 때때로 온 나라가 한꺼번에 품습니다. 온 백성이 한 여자를 사랑해 불타오른 적은 없고, 온 나라가 돈이나 이득에 희망을 건 적도 없습니다. 야심은 사람을 하나하나 따로 사로잡고, 제멋대로 날뛰는 마음은 온 나라의 악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 무리가 되어 분노로 내달린 일은 많습니다. 사내와 여자, 늙은이와 아이, 지도자와 군중이 한마음이 되었고, 몇 마디 말에 들끓은 온 무리가 부추긴 사람보다 앞서 내달렸습니다. 곧바로 무기와 횃불을 들고 달려 나가, 이웃 나라에 전쟁을 선포하거나 같은 시민들과 싸웠습니다. 온 집안이 씨까지 불에 타 사라졌고, 조금 전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솜씨로 크게 존경받던 사람이 제 연설을 들은 군중의 분노를 뒤집어썼습니다. 군단이 제 사령관에게 창을 던졌고, 평민 전체가 원로원 의원들과 갈라섰습니다. 나라의 최고 회의인 원로원은 징병을 기다리지도, 사령관을 지명하지도 않고 제 분노를 이끌 장수를 서둘러 뽑았고, 도시의 집집을 뒤져 귀족들을 쫓아가 제 손으로 처형했습니다. 사절이 능욕당하고 만민의 법이 짓밟혔으며, 입에 담지 못할 광란이 온 도시를 휩쓸었습니다. 들끓는 민심이 가라앉을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함대를 띄워 급히 끌어모은 병사들을 실었습니다. 백성은 관습도 새점도 따르지 않고 분노가 이끄는 대로 나아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것이나 무기로 삼았고, 그러다 크나큰 참패로 무모한 분노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것이 마구잡이로 전쟁에 뛰어드는 야만인들의 끝입니다. 변덕스러운 그들의 마음에 불의를 당했다는 인상이 박히면, 그들은 곧바로 내달려 원한이 이끄는 대로 무너지는 건물처럼 군단을 덮칩니다. 대열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조심성도 없이 제 위험을 스스로 찾아 나섭니다. 얻어맞기를 즐기고, 칼날에 몸을 밀어붙이고, 창끝을 몸으로 밀어내며, 제 상처를 지나서 빠져나가기를 즐깁니다.

3 "그 힘이 크고 해롭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니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보여 달라." 하고 형님은 말씀하시겠지요. 그러나 앞의 책들에서 말씀드렸듯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노를 변호하며 버티고 서서 분노를 우리에게서 도려내지 말라고 합니다. 분노는 덕의 박차이며, 분노를 빼앗기면 마음은 무기를 잃고 큰일을 꾀하는 데 굼뜨고 무기력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분노가 얼마나 흉하고 사나운지 밝혀내야 합니다. 사람에게 미쳐 날뛰는 사람이 얼마나 괴물 같은지, 제 몸을 망치지 않고는 남을 망치지 못하면서 얼마나 거센 기세로 덤벼드는지, 가라앉히는 사람과 함께가 아니면 가라앉힐 수 없는 것들을 얼마나 끌어내리는지 눈앞에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폭풍에 휩쓸린 듯 제 발로 가는 것이 아니라 떠밀려 가고, 미쳐 날뛰는 악의 종노릇을 하며, 복수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제가 직접 받아 내려고 마음과 손으로 한꺼번에 날뛰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머지않아 잃고서 울게 될 것들의 사형 집행인이 되는 이 사람을 누가 온전하다고 부르겠습니까? 덕이 없이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그 숙고를 어지럽히는 이 격정을, 누가 덕의 조력자요 길동무로 붙여 주겠습니까? 병과 발작이 병자를 일으켜 세운 힘은 덧없고 불길하며, 제게 해가 되는 쪽으로만 셉니다. 그러니 마치 분노를 두고 사람들의 생각이 갈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제가 분노를 헐뜯으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실 일은 아닙니다. 이름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분노에게 할 일을 맡기고, 분노를 쓸모 있는 것, 전쟁터에서도 일을 처리할 때도 뜨거운 열기가 있어야 하는 모든 일에서 기운을 북돋워 주는 것으로 여겨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분노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는 이로우리라고 누구도 속지 않도록, 고삐 풀린 채 얼이 빠진 분노의 광기를 보여 주고, 분노에게 그 장비를 돌려주어야 합니다. 고문대와 살을 조이는 밧줄, 노예 감옥과 십자가, 땅에 묻은 몸을 둘러싸고 타오르는 불, 시체까지 끌고 다니는 갈고리, 갖가지 사슬과 갖가지 형벌, 팔다리를 찢는 일, 이마에 찍는 낙인, 사나운 짐승들의 우리가 그것입니다. 이 도구들 한가운데 분노를 세워 두십시오. 무섭고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이를 가는 분노는, 그것이 날뛰며 부리는 어떤 도구보다도 흉측합니다.

4 다른 점은 의심스럽다 해도, 적어도 어떤 격정도 분노보다 흉한 얼굴을 하지는 않습니다. 앞의 책들에서 그 얼굴을 그려 보였습니다. 거칠고 사나우며, 피가 뒤로 빠져 달아나 하얗게 질렸다가, 온몸의 열기와 숨이 얼굴로 몰려 시뻘겋게 달아올라 피를 뒤집어쓴 것 같고, 핏줄은 부풀어 오르며, 눈은 이리저리 떨며 튀어나올 듯하다가 한곳에 꽂혀 박힌 채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누군가를 씹어 먹고 싶어 서로 부딪치는 이빨 소리를 더하십시오. 멧돼지가 엄니를 갈아 날을 세우는 소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또 손이 제 손을 꺾을 때 마디가 우두둑거리는 소리, 자꾸 두들기는 가슴, 가쁜 숨과 깊이 끌어올리는 신음, 휘청거리는 몸, 갑자기 외치는 소리에 섞인 알아듣지 못할 말, 떨리다가 이따금 꽉 다물리고 무언가 끔찍한 소리를 쉿쉿 내뱉는 입술을 더하십시오. 맹세코, 굶주림에 쫓기거나 창자에 쇠붙이가 박힌 짐승이라도, 반쯤 죽어 마지막으로 이빨을 박으려고 사냥꾼에게 덤벼들 때조차, 분노로 불타는 사람의 얼굴보다는 덜 흉측합니다. 자, 그가 내뱉는 소리와 위협을 들어 볼 틈이 있다면, 고문당하는 마음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지 들어 보십시오!

분노가 무엇보다 먼저 제게 해를 끼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누군들 분노에서 물러서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형님께서도 제가 그런 사람들을 일깨우기를 바라시지 않겠습니까? 가장 큰 권세를 쥐고 분노를 휘두르며, 그것을 힘의 증거로 여기고, 언제든 복수할 수 있다는 것을 큰 운이 주는 큰 혜택으로 치는 사람들 말입니다. 제 분노에 사로잡힌 포로는 권세 있는 사람은커녕 자유로운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또 저마다 더 조심하고 스스로를 살피도록, 다른 마음의 악은 가장 못된 자들에게나 붙지만 성마름(iracundia)은 배운 사람들, 다른 점에서는 건전한 사람들에게까지 스며든다는 것을 일깨우기를 바라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성마름을 순박함의 표시라고 말하고, 세상 사람들은 가장 사람 좋은 이가 가장 쉽게 성마름에 빠진다고 믿을 정도입니다.

5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누군가 묻습니다. 누구도 분노에서 안전하다고 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분노는 본디 온화하고 차분한 사람까지 포악함과 난폭함으로 불러내기 때문입니다. 역병 앞에서는 튼튼한 몸도 부지런한 몸 관리도 소용이 없듯이(역병은 약한 몸과 튼튼한 몸을 가리지 않고 덮칩니다), 분노는 성미가 사나운 사람에게도, 차분하고 느긋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위험합니다. 오히려 차분한 사람에게는 분노가 더 많이 바꿔 놓는 만큼 더 추하고 더 위험합니다. 그런데 첫째는 화내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화를 그치는 것이며, 셋째는 남의 분노까지 고쳐 주는 것이니, 먼저 어떻게 하면 분노에 빠지지 않는지, 다음으로 어떻게 하면 분노에서 벗어나는지, 끝으로 어떻게 하면 화난 사람을 붙들고 달래어 제정신으로 돌려놓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분노의 악덕을 모두 자주 눈앞에 떠올리고 분노를 제대로 값매겨 본다면 우리는 화내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분노를 고발하고 단죄해야 합니다. 분노가 저지르는 악을 샅샅이 캐내어 한가운데로 끌어내야 합니다. 분노가 어떤 것인지 드러나도록 가장 나쁜 것들과 견주어 보아야 합니다. 탐욕은 긁어모으고 쌓아 두어 더 나은 누군가가 쓰게라도 하지만, 분노는 탕진할 뿐이고 대가 없이 끝나는 일이 드뭅니다. 성마른 주인이 얼마나 많은 노예를 달아나게 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까! 화를 내다가 화가 난 까닭보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잃었습니까! 분노는 아버지에게 애도를, 남편에게 이혼을, 정무관에게 미움을, 후보자에게 낙선을 가져왔습니다. 분노는 사치보다 나쁩니다. 사치는 제 쾌락을 누리지만, 분노는 남의 고통을 누립니다. 분노는 심술과 시기보다 더합니다. 심술과 시기는 남이 불행해지기를 바라지만, 분노는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 합니다. 심술과 시기는 우연히 닥친 불행을 즐기지만, 분노는 운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해를 입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를 입히려 합니다. 반목보다 무거운 것은 없는데, 반목을 맺어 주는 것이 분노입니다. 전쟁보다 끔찍한 것은 없는데, 권세 있는 자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는 곳이 전쟁입니다. 평민의 분노, 개인의 분노라 한들 무기도 없고 힘도 없는 전쟁일 뿐입니다. 게다가 곧 뒤따를 일들, 곧 손실과 음모와 서로 다투느라 끝없이 이어지는 불안은 제쳐 두더라도, 분노는 벌을 받아 내는 동안 스스로 벌을 받습니다. 분노는 사람의 본성을 저버립니다. 본성은 사랑을 권하지만 분노는 미움을 권하고, 본성은 이롭게 하라고 명하지만 분노는 해치라고 명합니다. 이것도 더하십시오. 분노는 자기를 지나치게 높이 치는 데서 나오는 분개라서 기세 좋아 보이지만, 실은 옹졸하고 좁습니다. 누구든 자기를 업신여겼다고 여기는 상대보다는 작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큰 마음, 자기를 참되게 값매기는 마음은 불의를 앙갚음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것에 맞은 화살은 튕겨 나오고 굳은 것을 치면 치는 사람이 아프듯이, 어떤 불의도 큰마음이 그것을 느끼게 하지 못합니다. 불의가 겨누는 큰마음보다 불의가 더 무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화살도 뚫지 못하는 것처럼 모든 불의와 모욕을 튕겨 내는 것은 얼마나 더 아름답습니까! 복수는 아팠다는 자백입니다. 불의에 허리가 굽는 마음은 큰마음이 아닙니다. 해를 끼친 사람은 해를 입은 사람보다 강하거나 약합니다. 약하다면 그 사람을 봐주시고, 강하다면 자신을 봐주십시오.

6 무슨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만큼 위대함을 확실히 보여 주는 증거는 없습니다. 우주의 위쪽, 더 질서 있고 별들에 가까운 부분은 구름으로 뭉치지도, 폭풍으로 떠밀리지도, 회오리로 휘돌지도 않습니다. 그곳에는 아무런 소란이 없습니다. 벼락이 내리치는 것은 아래쪽입니다. 마찬가지로 드높은 마음은 언제나 고요하고 평온한 자리에 자리 잡고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을 발아래 누르며, 절도 있고 존경스럽고 가지런합니다. 이 가운데 무엇 하나 화난 사람에게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원한에 몸을 내주고 미쳐 날뛰면서 맨 먼저 염치를 내던지지 않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격분에 휩싸여 누군가에게 덤벼들면서 제게 있던 존경받을 만한 것을 모조리 내팽개치지 않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흥분한 사람에게 의무의 가짓수나 차례가 제대로 남은 적이 있습니까? 누가 혀를 다스렸습니까? 누가 몸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붙들어 두었습니까? 고삐가 풀린 채 누가 자신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까? 데모크리토스의 저 이로운 가르침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사로이든 공적으로든 많은 일을, 또 우리 힘에 부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평정(tranquillitas)을 얻는다는 가르침입니다2. 많은 일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에게는, 사람이든 일이든 무언가에 걸려 마음을 분노로 몰아갈 언짢은 일이 생기지 않고 하루가 지나갈 만큼 운 좋은 날이 결코 없습니다. 북적이는 거리를 서둘러 지나가는 사람이 많은 사람과 부딪치고, 어디서는 미끄러지고 어디서는 붙잡히고 어디서는 흙탕물을 뒤집어쓰듯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정처 없는 이 삶의 행로에도 많은 걸림돌과 많은 불평거리가 생깁니다. 누구는 우리 희망을 저버리고, 누구는 미루고, 누구는 가로챕니다. 계획한 일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운은 누구에게도 이것저것 해 보는 사람의 뜻을 어디서나 들어줄 만큼 헌신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계획과 반대로 일이 풀린 사람은 사람에게도 일에도 참을성을 잃고, 아주 하찮은 까닭으로 어떤 때는 사람에게, 어떤 때는 일에, 어떤 때는 장소에, 어떤 때는 운에, 어떤 때는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이 고요하려면,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리저리 휘둘려서도, 많은 일을 하느라, 또 힘에 부치게 탐낸 큰일을 하느라 지쳐서도 안 됩니다. 가벼운 짐은 어깨에 얹기도 쉽고 이쪽저쪽으로 옮겨 메어도 미끄러지지 않지만, 남의 손이 우리에게 지운 짐은 버티기도 힘들어서 결국 못 이기고 가까운 데 쏟아 버립니다. 짐을 진 채 서 있는 동안에도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휘청거립니다.

7 나랏일에서도 집안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손쉽고 다루기 좋은 일은 하는 사람을 순순히 따라오지만, 하는 사람의 역량을 넘어서는 엄청난 일은 쉽사리 몸을 내주지 않고, 붙잡았다 해도 일을 맡은 사람을 짓누르고 끌고 가다가, 이제 손에 쥐었다 싶을 때 그 사람과 함께 무너져 버립니다. 그래서 쉬운 일에 손대지 않고 손댄 일이 쉽기를 바라는 사람의 뜻은 번번이 헛일이 됩니다. 무슨 일을 꾀하실 때마다 자신과, 준비하는 일과, 그 일을 위해 갖춘 것을 함께 재어 보십시오. 마치지 못한 일을 뉘우치다 보면 사람이 거칠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람이 뜨거운 기질인지, 차갑고 낮은 기질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기개 있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분노를 짜내고, 맥없고 게으른 사람에게는 슬픔을 짜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는 일은 너무 작아서도, 너무 대담하고 무모해서도 안 됩니다. 희망은 가까운 데까지만 내보냅시다. 이루고 나서도 이루어졌다는 것에 우리 스스로 놀랄 만한 일은 꾀하지 맙시다.

8 불의를 당하지 않도록 애씁시다. 우리는 그것을 견딜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더없이 차분하고 너그러우며 조금도 안달하지 않고 까다롭지 않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어울리는 사람들의 성품을 닮게 마련입니다. 몸의 어떤 병이 닿는 사람에게 옮아가듯이, 마음도 제 악을 가까운 사람에게 넘겨줍니다. 술꾼은 함께 사는 사람들을 물 타지 않은 포도주에 빠지게 했고, 음탕한 자들의 무리는 부싯돌에서 태어난 듯 굳센 사내까지 물러지게 했으며, 탐욕은 제 독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옮겼습니다. 덕은 거꾸로 같은 이치로 작용하여, 곁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부드럽게 만듭니다. 몸에 이로운 고장과 맑은 공기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보다, 마음이 굳세지 못한 사람에게는 더 나은 사람들 틈에서 지내는 것이 더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는 짐승들도 우리와 함께 살면 길들고, 아무리 사나운 짐승이라도 사람과 오래 한집에 살면 제 사나움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실 것입니다. 거친 성질은 모두 무디어지고, 평온한 것들 사이에서 조금씩 잊혀 갑니다. 게다가 조용한 사람들과 사는 사람은 본보기를 보고 나아질 뿐 아니라, 화낼 까닭을 찾지 못하니 제 악덕을 부릴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성마른 사람은 자기의 성마름을 건드릴 것 같은 사람은 모두 피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누구인가?" 하고 누군가 묻습니다. 갖가지 까닭으로 같은 짓을 할 사람은 많습니다. 오만한 자는 업신여김으로, 입이 건 자는 모욕으로, 버릇없는 자는 무례함으로, 시기하는 자는 심술로, 싸우기 좋아하는 자는 말다툼으로, 허풍쟁이와 거짓말쟁이는 헛소리로 비위를 건드릴 것입니다. 의심 많은 자에게 경계를 받고, 고집 센 자에게 지고, 까다로운 자에게 깔보이는 것도 참기 어려울 것입니다. 꾸밈없고 너그럽고 절도 있는 사람들, 분노를 불러내지도 않고 분노를 받아 주는 사람들을 고르십시오. 고분고분하고 인정 많고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더 도움이 되겠지만, 아첨에 이를 정도여서는 안 됩니다. 성마른 사람은 지나친 맞장구에도 비위가 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벗 가운데에도 선한 사람이지만 화를 잘 내는 이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도 욕을 하는 것만큼 위험했습니다. 웅변가 카일리우스가 더없이 성마른 사람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전하는 말로는, 남다른 참을성을 지닌 한 피호민이 그와 함께 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한 쌍으로 묶인 처지라 붙어 있는 사람과 다툼을 피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카일리우스가 무슨 말을 하든 따르며 맞장구나 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카일리우스는 맞장구치는 그를 견디지 못하고 소리쳤습니다. "뭐라도 반대 말을 좀 하게, 그래야 우리가 둘이지!" 그러나 상대가 화를 내지 않는다고 화가 났던 카일리우스도 맞설 상대가 없으니 금세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마르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면, 차라리 우리 얼굴빛과 말을 따라 주는 사람들을 고릅시다. 물론 그들은 우리를 까다롭게 만들고, 뜻에 거슬리는 말은 하나도 듣지 않는 나쁜 버릇에 들게 할 것입니다. 그래도 악덕에 쉬는 틈과 고요를 주는 것은 이롭습니다. 본디 까다롭고 길들지 않은 사람도 어루만져 주는 사람은 견딜 것입니다. 쓰다듬는 손에는 거칠고 험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토론이 길어지고 다툼이 거세질 때마다, 다툼이 힘을 얻기 전에 처음부터 버팁시다. 다툼은 스스로를 먹여 키우고, 빠져든 사람을 더 깊이 붙듭니다. 다툼에서 빠져나오기보다 처음부터 다툼을 삼가기가 더 쉽습니다.

9 성마른 사람은 너무 무거운 공부도 그만두거나, 적어도 지치지 않을 만큼만 해야 합니다. 마음을 고된 일 사이에 두지 말고 즐거운 기예에 맡겨야 합니다. 시를 읽으며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역사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마음을 붙잡아 두어야 합니다. 마음을 더 부드럽고 더 섬세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피타고라스는 리라로 마음의 동요(perturbatio)를 가라앉혔습니다. 뿔나팔과 나팔은 마음을 들쑤시고, 어떤 노래는 마음을 풀어 주는 달콤한 위안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지러운 눈에는 푸른빛이 좋고, 약한 눈은 어떤 빛깔 앞에서는 편히 쉬지만 어떤 빛깔의 광채에는 부십니다. 그와 같이 즐거운 공부는 병든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포룸과 변론과 재판처럼 악덕을 덧나게 하는 것은 모두 피해야 하고, 몸이 지치는 것도 똑같이 경계해야 합니다. 피로는 우리 안의 부드럽고 차분한 것을 모두 닳아 없애고 날카로운 것을 들쑤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가 미덥지 못한 사람들은 큰일을 처리하러 나서기 전에 먹을 것으로 담즙을 다스립니다. 담즙을 가장 많이 들쑤시는 것이 피로이기 때문입니다. 피로가 열을 몸 한가운데로 몰아넣어 피를 해치고 지친 혈관 속에서 피의 흐름을 막기 때문이든, 여위고 약해진 몸이 마음을 짓누르기 때문이든 말입니다. 어쨌든 병이나 나이에 지친 사람들이 더 성마른 것도 같은 까닭입니다. 굶주림과 목마름도 같은 까닭으로 피해야 합니다. 마음을 거칠게 하고 불붙이기 때문입니다. 지친 사람이 싸움을 건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굶주린 사람도, 목마른 사람도, 무언가에 속이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종기가 살짝 닿기만 해도, 나중에는 닿을 것 같기만 해도 아프듯이, 격정에 시달리는 마음은 아주 하찮은 일에도 언짢아집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인사 한마디, 편지 한 통, 말 한마디, 물음 하나에도 시비를 겁니다. 병든 곳은 건드리면 반드시 아프다고 아우성칩니다.

10 그러니 나쁜 기운을 처음 느끼자마자 스스로를 고치고, 그때는 제 말에도 되도록 자유를 주지 말고 기세를 붙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격정이 막 일어날 때 알아채기는 쉽습니다. 병에는 앞서 오는 징후가 있습니다. 폭풍과 비가 오기 전에 그 낌새가 먼저 오듯이, 분노와 사랑과 마음을 뒤흔드는 그 밖의 모든 폭풍에도 미리 알리는 조짐이 있습니다. 간질로 쓰러지곤 하는 사람들은 손발 끝에서 열기가 빠져나가고, 눈앞이 아물거리고 힘줄이 떨리며,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머리가 빙빙 돌면 발작이 다가온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늘 쓰던 약으로 발작이 시작되기 전에 막습니다. 냄새를 맡고 맛을 보아 정신을 앗아 가는 것을 물리치기도 하고, 찜질로 오한과 경련에 맞서기도 합니다. 약이 잘 듣지 않으면 사람들을 피해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데서 쓰러졌습니다. 자기 병을 알고 그 병이 기세를 펴기 전에 짓눌러 두는 것은 이롭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가장 들쑤시는지 살펴봅시다. 어떤 사람은 말로 받는 모욕에, 어떤 사람은 일로 받는 모욕에 흔들립니다. 이 사람은 제 가문을, 저 사람은 제 용모를 건드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은 가장 세련된 사람으로, 저 사람은 가장 학식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은 오만을, 저 사람은 고집을 참지 못합니다. 저 사람은 노예 따위에게 화낼 가치도 없다고 여기고, 이 사람은 집 안에서는 포악하지만 밖에서는 온화합니다. 저 사람은 부탁을 받는 것을 불의라 여기고, 이 사람은 부탁을 받지 못하는 것을 모욕이라 여깁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곳을 맞고 아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자기의 어느 곳이 약한지 알아야 그곳을 가장 잘 지킬 수 있습니다.

11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듣는 것은 이롭지 않습니다. 많은 불의는 그냥 지나가게 둡시다. 모르는 사람은 그 대부분을 당하지도 않습니다. 성마른 사람이 되기 싫으십니까? 캐묻기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자기를 두고 무슨 말이 오갔는지 캐묻는 사람, 은밀히 나눈 고약한 뒷말까지 파헤치는 사람은 스스로 제 마음을 들쑤십니다. 어떤 일은 풀이하기에 따라 불의로 보이게 됩니다. 그러니 어떤 일은 미루어 두고, 어떤 일은 웃어넘기고, 어떤 일은 너그러이 봐주어야 합니다. 분노는 갖가지로 에워싸 가두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일은 놀이와 농담으로 돌립시다. 소크라테스는 따귀를 맞고도, 사람들이 언제 투구를 쓰고 나서야 할지 모른다니 성가신 일이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불의가 어떻게 저질러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견뎠느냐가 중요합니다. 운과 방종으로 부풀어 오른 참주들조차 몸에 밴 포악함을 억눌렀다는 것을 아는 마당에, 절도를 지키기가 왜 어려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테네의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그랬다고 전합니다. 술 취한 손님이 그의 잔인함을 두고 갖은 말을 퍼부었고, 그를 위해 손을 쓰겠다는 사람들이 나서며 이쪽저쪽에서 불을 지펴 부추겼지만, 그는 차분한 마음으로 견뎠고, 부추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눈가리개를 한 사람이 와서 부딪쳤을 때 이상으로 그 사람에게 화가 나지는 않는다고 말입니다.

12 사람들 대부분은 거짓을 의심하거나 하찮은 일을 부풀려 제 손으로 불평거리를 만들어 냅니다. 분노가 우리에게 오는 일도 잦지만, 우리가 분노에게 가는 일이 더 잦습니다. 분노는 결코 불러들여서는 안 됩니다. 분노가 닥쳐오더라도 물리쳐야 합니다. 누구도 스스로에게 "내가 화내는 이 일을 나도 저질렀거나 저지를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한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한 일만 따집니다. 그러나 살펴야 할 것은 그 사람입니다. 그가 일부러 했는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억지로 했는지 속아서 했는지, 미움을 따랐는지 보상을 따랐는지, 제 뜻대로 했는지 남의 손을 거든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잘못한 사람의 나이도, 처지도 어느 정도 참작할 일이니, 견디고 참는 것이 인정이거나 이로운 일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화를 내는 상대의 자리에 우리 자신을 세워 봅시다. 지금 우리를 성마르게 만드는 것은 자기를 부당하게 높이 치는 마음, 그리고 자기는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서는 당하기 싫어하는 마음입니다. 누구도 스스로에게 말미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노에 가장 좋은 약은 미루는 것입니다. 그래야 첫 열기가 식고, 정신을 짓누르는 어둠이 가라앉거나 옅어집니다. 곤두박질치게 몰고 가던 일 가운데 어떤 것은 하루까지 갈 것도 없이 한 시간이면 누그러지고, 어떤 것은 아예 사라질 것입니다. 미루어 달라고 청해 얻은 말미가 아무 소용이 없었다면, 그때는 이미 분노가 아니라 판단이라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 참모습을 알고 싶다면 시간에 맡기십시오. 파도 속에서는 무엇 하나 똑똑히 보이지 않습니다. 플라톤은 제 노예에게 화가 났을 때 자신에게서 시간을 얻어 내지 못했습니다. 그는 노예에게 곧장 웃옷을 벗고 등을 내밀어 매를 맞으라고 명하고, 제 손으로 직접 때리려 했지만, 자기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깨닫자 들어 올린 손을 그대로 공중에 멈춘 채 막 내리칠 사람의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마침 들른 벗이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 "성난 사람을 벌하는 중일세."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얼이 빠진 듯 현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그 흉한 자세, 금방이라도 매질할 듯한 자세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벌할 사람을 따로 찾았으니 노예는 이미 잊은 것입니다. 그 뒤로 그는 집안사람들을 다스릴 권한을 스스로 내려놓았습니다. 한번은 어떤 잘못에 몹시 화가 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페우시포스3, 자네가 저 종 녀석을 매로 다스려 주게. 나는 지금 화가 나 있네." 그는 다른 사람이라면 때렸을 바로 그 까닭으로 때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화가 나 있네. 마땅한 것보다 더 하고, 더 즐기며 하게 될 걸세. 제 자신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의 손에 저 종을 맡겨서는 안 되지." 플라톤조차 자기의 권한을 스스로 빼앗았는데, 화난 사람에게 복수를 맡기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화가 나 있는 동안에는 무엇도 허락하지 마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그때는 모든 것이 허락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13 자기 자신과 싸우십시오. 분노를 이기려 들면 분노가 이길 수는 없습니다. 분노를 감추고 빠져나갈 길을 주지 않으면 이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분노의 표시를 덮어 묻고, 되도록 분노를 숨기고 감춰 둡시다. 그러자면 몹시 괴로울 것입니다(분노는 튀어나와 눈에 불을 지르고 얼굴빛을 바꾸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노가 우리 밖으로 솟구쳐 나오게 두면, 분노가 우리 위에 올라섭니다. 분노를 가슴 가장 깊은 구석에 묻어 두어, 분노가 우리를 싣고 가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분노를 짊어지고 가게 합시다. 아니, 분노의 표시를 모두 거꾸로 돌립시다. 얼굴을 펴고, 목소리를 낮추고, 걸음을 늦춥시다. 바깥을 다듬다 보면 안도 조금씩 다듬어집니다. 소크라테스에게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아끼는 것이 화가 났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때 그가 자기 자신을 막아서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들켜 지적을 받곤 했지만, 숨긴 분노를 지적받는 것을 언짢아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분노를 알아채되 아무도 그 분노를 맛보지 않았으니 어찌 기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자기가 벗들을 꾸짖을 권리를 스스로 취했듯이 벗들에게도 자기를 꾸짖을 권리를 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 분노를 맛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더 그렇게 해야 하겠습니까! 가장 가까운 벗들에게 부탁합시다. 우리가 가장 참기 어려워할 바로 그때 우리에게 가장 거리낌 없이 말해 주고, 우리 분노에 맞장구치지 말아 달라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힘을 떨치고 우리에게 환심을 사는 이 악에 맞서, 우리가 아직 정신이 멀쩡하고 제 주인일 때 도와줄 사람을 불러 둡시다. 술에 약하고 취했을 때의 무모함과 방자함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잔치에서 자기를 데리고 나가 달라고 식구들에게 일러 둡니다. 아플 때 절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겪어 본 사람들은 병이 났을 때 자기 말을 듣지 말라고 해 둡니다. 알고 있는 악덕에는 미리 걸림돌을 마련해 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잘 다스려 두어, 아주 무겁고 갑작스러운 일에 흔들리더라도 분노를 느끼지 않거나, 뜻밖의 불의가 너무 커서 분노가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깊숙이 끌어내리고 제 아픔을 드러내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수많은 본보기 가운데 몇 가지만 들어 보아도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 본보기들에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분노가 막강한 사람들의 권력을 온통 휘두를 때 얼마나 큰 악이 되는지, 그리고 더 큰 두려움에 눌렸을 때 분노가 스스로를 얼마나 다스릴 수 있는지 말입니다.

14 술에 너무 빠진 캄비세스 왕4에게, 그가 가장 아끼던 신하 가운데 하나인 프렉사스페스가 술을 줄이라고 충고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눈과 귀가 왕을 따르니 왕이 취하는 것은 추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내가 결코 정신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너도 알도록, 술을 마신 뒤에도 내 눈과 손이 제 할 일을 한다는 것을 지금 보여 주마." 그러고는 여느 때보다 더 큰 잔으로 더 실컷 마시고, 이미 술에 취해 몸이 무거워지자, 자기를 나무란 신하의 아들에게 문지방 너머로 나가 왼손을 머리 위로 들고 서 있으라고 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활을 당겨 바로 그 젊은이의 심장을 맞혔습니다. 심장을 겨누겠다고 미리 말해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가슴을 갈라 심장에 박힌 화살촉을 보여 주고, 아버지를 돌아보며 이만하면 손이 꽤 정확하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아폴론이라도 그보다 정확하게 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들이시여, 처지보다 마음이 더 노예인 저자를 벌하소서! 그런 일은 구경꾼이 된 것만으로도 지나쳤는데, 그는 그 일을 칭송했습니다. 두 쪽으로 갈라진 아들의 가슴과 상처 아래서 아직 팔딱이는 심장을 아첨할 기회로 여긴 것입니다. 그는 명예를 걸고 왕과 겨루며 한 번 더 쏘아 보라고 했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왕은 아버지의 몸에 대고 더 정확한 솜씨를 보여 주고 싶어졌을 것입니다. 오, 피에 젖은 왕이여! 모든 신하가 활을 돌려 겨누어 마땅한 자여! 잔치를 처형과 장례로 끝맺은 그 왕을 우리는 저주하겠지만, 그래도 그 화살은 쏜 것보다 칭송받은 것이 더 극악했습니다. 제 아들의 주검 앞에 서서, 자기가 지켜보았을 뿐 아니라 원인까지 되었던 그 살육 앞에서 아버지가 어떻게 처신했어야 했는지는 뒤에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다루는 문제는 분명합니다. 분노는 억누를 수 있습니다. 그는 왕을 욕하지 않았고, 아들의 심장만큼 제 심장도 꿰뚫린 것을 보면서도 불행한 사람이라면 으레 할 법한 말 한마디조차 내뱉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을 삼켰다고 해도 옳을 것입니다. 화난 사람처럼 무슨 말이라도 했다면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그는 술을 얼마나 마셔야 하는지 충고하던 때보다 그 불행 앞에서 더 지혜롭게 처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보다는 차라리 술을 마시는 편이 나은 사람, 손이 술잔에 붙들려 있어야 세상이 평화로운 사람에게 그런 충고를 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그는 왕의 벗에게 좋은 충고가 얼마나 비싼 값을 치르게 하는지 큰 참화로 보여 준 사람들의 무리에 끼게 되었습니다.

15 하르파고스5도 틀림없이 그와 비슷한 충고를 제 왕이자 페르시아인들의 왕에게 했을 것입니다. 왕은 그 말에 기분이 상해 하르파고스에게 그의 자식들을 요리해 차려 내놓고, 양념이 입에 맞느냐고 거듭 묻더니, 그가 제 불행으로 배를 가득 채운 것을 보자 자식들의 머리를 가져오게 하고 대접이 어떠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가련한 그 사람은 말이 막히지도, 입이 다물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전하의 식탁에서는 어떤 음식이든 맛있습니다." 이 아첨으로 그는 무엇을 얻었습니까? 남은 음식을 먹으라는 초대를 받지 않은 것뿐입니다. 아버지가 제 왕이 한 짓을 단죄하지 말라는 것도, 그토록 끔찍한 괴물에게 걸맞은 벌을 찾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이것을 얻어 내려는 것입니다. 엄청난 불행에서 생겨나는 분노조차 감출 수 있고, 제 마음과 반대되는 말을 하도록 억누를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이렇게 슬픔을 억누르는 것은 이런 삶을 제비로 뽑아 왕의 식탁에 불려 간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들 곁에서는 그렇게 먹고, 그렇게 마시고, 그렇게 대답합니다. 제 식구의 죽음 앞에서도 웃어야 합니다. 그런 목숨이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지는 뒤에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토록 비참한 노예 감옥을 위로하지도, 사형 집행인들의 명령을 견디라고 부추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어떤 종살이에서든 자유로 가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입니다. 제 목숨과 함께 불행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이 비참하다면, 그는 마음이 병들었고 제 잘못으로 비참한 것입니다. 벗들의 가슴을 화살로 겨누는 왕을 만난 사람에게도, 아비들에게 자식의 내장을 배불리 먹이는 주인을 둔 사람에게도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왜 신음하느냐? 어느 적이 네 민족을 멸망시켜 너의 원수를 갚아 주기를, 아니면 멀리 있는 힘센 왕이 날아와 주기를 왜 기다리느냐? 어디로 눈을 돌리든 거기에 불행의 끝이 있다. 저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보이느냐? 그리로 내려가면 자유다. 저 바다, 저 강, 저 우물이 보이느냐? 자유가 그 밑바닥에 앉아 있다. 저 작고 바싹 마른 불길한 나무가 보이느냐? 거기에 자유가 매달려 있다. 네 목줄기, 네 목구멍, 네 심장이 보이느냐? 모두 종살이에서 빠져나갈 문이다. 내가 보여 주는 출구가 너무 힘들고 마음과 기운이 너무 많이 드느냐? 자유로 가는 길이 어디 있느냐고 묻느냐? 네 몸의 핏줄이라면 어느 것이든 그 길이다."

16 우리를 삶에서 내몰 만큼 견딜 수 없는 일이 없어 보이는 동안에는, 어떤 처지에 놓이든 분노를 멀리합시다. 종살이하는 사람에게 분노는 해롭습니다. 분개는 모두 제 고통을 키울 뿐이고, 고집스럽게 버틸수록 명령은 더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올가미를 몸부림쳐 떨칠수록 더 조이고, 새는 끈끈이를 놀라 털어 낼수록 깃털마다 더 묻힙니다. 아무리 꽉 조이는 멍에라도 순순히 끄는 소보다 버티는 소를 더 아프게 합니다. 엄청난 불행을 덜 방도는 하나뿐입니다. 견디고, 제게 닥친 필연에 따르는 것입니다. 종살이하는 사람에게도 자기 격정을,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 미쳐 날뛰고 고삐 풀린 격정을 억누르는 것이 이롭지만, 왕들에게는 더 이롭습니다. 분노가 시키는 만큼 운이 허락하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망했고, 많은 사람을 해치며 휘두르는 권력은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따로따로 신음하던 사람들을 같은 두려움이 하나로 묶으면 그 권력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왕이 어떤 때는 한 사람의 손에, 어떤 때는 모두의 손에 죽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겪는 고통이 그들의 분노를 한데 모으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왕이 분노를 왕의 표장처럼 휘둘렀습니다. 마고스에게서 왕권을 빼앗은 뒤 처음으로 페르시아와 동방의 넓은 땅을 차지한 다레이오스(다리우스)6가 그랬습니다. 그가 동방을 에워싼 스키타이인들에게 전쟁을 선포했을 때, 이름 높은 노인 오이오바조스가 세 아들 가운데 하나만은 아버지를 위로하도록 남겨 두고 나머지 둘만 데려가 달라고 청했습니다. 다레이오스는 청한 것보다 더 많이 해 주겠다며 셋 모두 돌려보내 주겠다고 하고는, 아들들을 죽여 아버지 눈앞에 내던졌습니다. 셋을 모두 데려갔다면 잔인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듯이 말입니다. 크세르크세스7는 그보다 얼마나 너그러웠습니까! 다섯 아들의 아버지인 피티오스가 하나만 군역에서 빼 달라고 청하자, 원하는 아들을 고르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고른 아들을 두 동강 내어 길 양쪽에 하나씩 놓고, 이 제물로 군대를 정결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크세르크세스는 마땅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는 싸움에 지고 멀리 넓게 흩어져, 사방에 깔린 자기의 패망을 보며 제 병사들의 주검 사이를 걸어갔습니다.

17 이것은 학문도 문예도 몸에 배지 않은 야만인 왕들이 분노할 때 보인 사나움입니다. 이제 형님께 아리스토텔레스의 품에서 자란 알렉산드로스 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는 더없이 아끼던 벗이자 함께 자란 클레이토스8를 잔치 자리에서 제 손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아첨이 모자라고, 자유로운 마케도니아인에서 페르시아식 종살이로 옮겨 가는 데 굼뜨다는 까닭이었습니다. 그는 마찬가지로 가까운 벗이던 리시마코스9를 사자에게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다 운 좋게 사자의 이빨을 벗어난 이 리시마코스는 그 일을 겪었으니 스스로 왕이 되었을 때 더 온화했습니까? 그는 로도스 사람인 벗 텔레스포로스의 몸을 사방으로 잘라 내어 귀와 코를 베어 버리고, 보기 드문 새 짐승처럼 우리에 가두어 오랫동안 먹였습니다. 잘리고 뭉개진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흉해졌습니다. 거기에 굶주림과 더러움, 제 똥오줌 속에 버려진 몸의 오물까지 더해졌습니다. 게다가 좁은 우리 때문에 발 대신 써야 했던 무릎과 손에는 굳은살이 박이고, 옆구리는 벽에 쓸려 짓물러서, 찾아와 보는 사람들에게 그의 모습은 끔찍한 만큼이나 역겨웠습니다. 형벌로 괴물이 되어 버린 그는 연민마저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당하는 사람이 사람과 아무리 닮지 않았다 해도, 그 일을 저지른 자는 사람과 더 닮지 않았습니다.

18 이런 포악함이 이방의 본보기에만 머물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밖에서 들어온 다른 악덕들과 함께 형벌과 분노의 야만까지 로마의 풍속으로 건너오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백성이 거리마다 조각상을 세워 주고 향과 포도주를 바치며 빌던 마르쿠스 마리우스10에게, 루키우스 술라는 다리를 꺾고, 눈을 파내고, 혀와 손을 자르라고 명했습니다. 그러고는 상처를 낼 때마다 한 번씩 죽이는 것처럼 팔다리를 하나씩 천천히 찢어발겼습니다. 이 명령을 집행한 자는 누구였습니까? 이미 온갖 악행에 손을 익히고 있던 카틸리나 말고 누구였겠습니까? 그는 더없이 온화했던 퀸투스 카툴루스의 무덤 앞에서 마리우스를 조각조각 찢었으니, 그 온화한 사람의 유골에게 이보다 더 견디기 힘든 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나쁜 본보기가 된 사람이지만 인민의 사랑을 받았고, 부당하게라기보다 지나치게 사랑받았던 그 사람이 그 유골 위로 한 방울씩 피를 흘렸습니다. 마리우스는 그런 일을 당해도 마땅했고, 술라는 그런 명령을 내려도 마땅했으며, 카틸리나는 그런 짓을 해도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적의 칼과 복수자의 칼을 똑같이 제 몸에 받아들인 국가는 그런 일을 겪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옛일을 무엇 하러 뒤지겠습니까? 얼마 전 칼리굴라11는 아버지가 집정관을 지낸 섹스투스 파피니우스, 자기 재무관이자 자기 재산 관리인의 아들인 베틸리에누스 바수스, 그 밖에 원로원 의원과 로마 기사 여럿을 하루 동안 채찍으로 때리고 고문했습니다. 자백을 받아 내려는 것이 아니라 제 기분을 풀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그의 잔인함이 지체 없이 요구하는 그 엄청난 쾌락을 미루는 것을 견디지 못해, 어머니의 정원에서 주랑과 강둑을 가르는 산책로를 거닐며, 등불 아래서 그들 가운데 몇을 부인들과 다른 원로원 의원들과 함께 목 베었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했습니까? 하룻밤이 어떤 사사로운 위험이나 나라의 위험을 몰고 왔단 말입니까?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것쯤이야 얼마나 사소한 일이었겠습니까? 그랬다면 적어도 실내 신발 차림으로 로마 인민의 원로원 의원들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을!

19 그의 잔인함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아는 것도 지금 다루는 문제와 관계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곁길로 빠져 엉뚱한 데로 간다고 볼지도 모르지만, 이것 또한 여느 때보다 더 날뛰는 분노의 한 부분일 것입니다. 그는 원로원 의원들을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흔히 있는 일"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든 것도 그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온갖 것으로, 살을 조이는 밧줄과 발목 족쇄와 고문대와 불과 자기 얼굴로 그들을 고문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대꾸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 원로원 전체를 도륙할 궁리를 하고, 로마 인민에게 목이 하나뿐이어서 그토록 여러 곳 여러 때에 흩어진 제 범죄를 한 번의 칼질, 하루 만에 끝낼 수 있기를 바라던 자가 원로원 의원 셋을 못된 노예처럼 매와 불길 사이에 나누어 놓았다는 것이." 밤에 하는 처형만큼 들어 보지 못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강도질은 어둠 속에 숨기게 마련이지만, 처벌은 널리 알려질수록 본보기가 되고 사람을 바로잡는 데 더 쓸모가 있습니다. 여기서 또 이렇게 대꾸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토록 놀랄 그 일이 저 짐승에게는 날마다 하는 일이다. 그는 그러려고 살고, 그러려고 깨어 있고, 그러려고 밤을 새운다." 적어도 처형을 명한 모든 사람의 입에 해면을 쑤셔 넣어 막아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라고 명한 사람은 그 말고는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신음할 틈조차 남겨 주지 않은 일이 언제 있었습니까? 그는 마지막 고통이 무슨 거리낌 없는 말을 내뱉을까, 듣기 싫은 말을 들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죽을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감히 그에게 들이댈 수 없는 죄목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해면이 떨어지자 그는 가련한 사람들의 옷을 찢어 그 헝겊을 입에 쑤셔 넣으라고 명했습니다. 이 무슨 포악함입니까? 마지막 숨만은 쉬게 하라. 떠나가는 목숨에 빠져나갈 자리는 내주어라. 상처로 내보내지 않아도 되게 하라. 같은 날 밤 백인대장들을 집집이 보내 처형당한 사람들의 아버지들까지 죽인 일, 말하자면 인정 많은 사람이라 아버지들을 애도에서 풀어 준 일까지 덧붙이자면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제가 그리려는 것은 칼리굴라의 포악함이 아니라 분노이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날뛸 뿐 아니라 민족 전체를 찢어발기고, 도시와 강과 고통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것들까지 두들겨 팹니다.

20 페르시아의 한 왕은 이렇게 시리아에서 한 민족 전체의 코를 베었습니다. 그곳이 리노콜루라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12. 머리를 통째로 베지 않았으니 그가 자비를 베풀었다고 보십니까? 그는 새로운 형벌을 즐긴 것입니다. 수명이 아주 길어서 장수족(마크로비오이)이라 불리는 에티오피아인들도 그런 일을 당할 뻔했습니다. 그들은 종살이를 두 손 들고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절을 보내와 거리낌 없이 대답했습니다. 왕들은 그런 대답을 모욕이라 부릅니다. 캄비세스는 그들에게 분을 품고 군량도 마련하지 않고 길도 알아보지 않은 채, 길 없는 곳과 메마른 땅으로 싸울 만한 무리를 모조리 끌고 갔습니다. 첫 행군 구간도 지나기 전에 필요한 것이 떨어졌는데, 메마르고 거칠며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땅은 아무것도 대 주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장 연한 잎사귀와 나무 끝눈으로, 다음에는 불에 그슬려 무르게 한 가죽과 필요에 쫓겨 먹을거리가 된 온갖 것으로 굶주림을 견뎠습니다. 모래벌판에서 뿌리와 풀마저 떨어지고 짐승조차 없는 텅 빈 황야가 나타나자, 그들은 제비를 뽑아 열 명에 하나씩 굶주림보다 더 참혹한 먹을거리로 삼았습니다. 군대의 일부를 잃고 일부를 먹어 치우고 나서도 분노는 여전히 왕을 앞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다 자기도 제비뽑기에 불려 나갈까 두려워지자 그제야 물러나라는 신호를 내렸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 귀한 새들은 고이 간직되었고, 잔치 도구들은 낙타에 실려 갔습니다. 그의 병사들이 누가 비참하게 죽고 누가 더 비참하게 살아남을지 제비를 뽑던 바로 그때에 말입니다.

21 캄비세스는 알지도 못하고 잘못도 없지만 그래도 느낄 줄은 아는 민족에게 화를 냈습니다. 키로스는 강에게 화를 냈습니다. 바빌론을 치러 가던 키로스는, 전쟁에서는 기회가 무엇보다 중요하니 서둘러 진군하다가, 넓게 퍼져 흐르는 긴데스강을 걸어서 건너려 했습니다. 여름 볕에 물이 줄어 가장 얕아졌을 때조차 안전하게 건너기 어려운 강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늘 왕의 수레를 끌던 흰 말 가운데 한 마리가 물살에 휩쓸려 가자 왕은 몹시 노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행렬을 앗아 간 그 강을 여자들도 걸어서 밟고 건널 수 있을 만큼 만들어 놓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고는 전쟁 채비를 모두 그리로 옮겨, 강바닥을 180개의 물길로 나누어 360개의 시내로 흩어 놓고, 물이 여러 갈래로 흘러가 강바닥이 말라붙을 때까지 그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큰일에서는 큰 손실인 시간을 잃었고, 쓸데없는 일에 꺾인 병사들의 투지를 잃었으며, 채비가 안 된 적을 칠 기회를 잃었습니다. 적에게 선포한 전쟁을 강과 치르는 동안에 말입니다. 이 광란은, 달리 무어라 부르겠습니까, 로마인들에게도 닥쳤습니다. 칼리굴라는 헤르쿨라네움 땅에 있던 더없이 아름다운 별장을, 언젠가 제 어머니가 그곳에 갇혀 지냈다는 까닭으로 허물어 버렸고13, 그 일로 도리어 그 별장을 이름나게 만들었습니다. 별장이 서 있을 때 우리는 그 앞을 배로 그냥 지나쳐 갔지만, 이제는 왜 허물었는지 사람들이 묻기 때문입니다.

22 피해야 할 이런 본보기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거꾸로 따라야 할 본보기, 절도 있고 온화한 본보기도 생각해야 합니다. 화낼 까닭도 모자라지 않았고 앙갚음할 힘도 모자라지 않았던 사람들의 본보기 말입니다. 안티고노스14가 두 병사를 끌어내라고 명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들은 왕의 막사에 기대어, 사람들이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즐겨 하는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왕을 헐뜯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들과 듣는 사람 사이에 천막 휘장 하나뿐이었으니 안티고노스는 모든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휘장을 살짝 흔들고 말했습니다. "좀 더 멀리 가라. 왕이 듣겠다." 또 어느 날 밤에는 자기 병사 몇이 자기들을 이런 행군과 헤어날 수 없는 진창으로 끌고 왔다며 왕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가장 고생하는 병사들에게 다가가, 누가 돕는 줄도 모르는 그들을 진창에서 끌어낸 뒤 말했습니다. "이제 너희를 이 비참한 꼴에 빠뜨린 안티고노스를 실컷 욕해라. 하지만 너희를 이 수렁에서 끌어낸 사람에게는 복을 빌어 주어라." 그는 같은 백성의 욕만큼이나 적의 욕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견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이 작은 요새에 포위되어 있으면서 지형만 믿고 적을 깔보아 안티고노스의 못생긴 모습을 두고 갖은 농담을 하며, 어떤 때는 작은 키를, 어떤 때는 납작한 코를 비웃자 그는 말했습니다. "내 진영에 실레노스15가 있다니 기쁘구나.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 그는 이 입이 건 자들을 굶주림으로 굴복시킨 뒤 포로들을 이렇게 다루었습니다. 군대에 쓸모 있는 자들은 보병대에 나누어 넣고, 나머지는 경매인에게 넘겼습니다. 그러고는 그렇게 혀가 고약한 자들에게는 주인을 두는 편이 이롭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3 그의 손자가 알렉산드로스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잔치 손님들에게 창을 던졌고, 앞서 말씀드린 두 벗 가운데 하나는 짐승에게, 하나는 자기에게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 둘 가운데 사자에게 던져진 쪽이 살아남았습니다. 그의 이 악덕은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필리포스에게 다른 덕이 무엇이 있었든, 모욕을 참는 덕이 있었고, 그것은 왕국을 지키는 큰 도구였습니다. 지나치고 무례한 혀 때문에 "거침없이 말하는 자"라는 별명이 붙은 데모카레스16가 다른 아테네 사절들과 함께 필리포스를 찾아왔습니다. 필리포스는 사절단의 말을 너그럽게 들은 뒤 말했습니다. "아테네인들이 기뻐할 일로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말해 보시오." 데모카레스가 말을 받았습니다. "왕이 목을 매는 것이오." 그토록 인정머리 없는 대답에 둘러선 사람들이 분노했지만, 필리포스는 그들을 조용히 하게 하고는 저 테르시테스를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돌려보내라고 명했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나머지 사절들은 아테네인들에게 전하시오.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이, 그런 말을 듣고도 벌하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오만하다고 말이오."

신격 아우구스투스도 기억할 만한 일을 많이 하고 기억할 만한 말을 많이 남겼는데, 거기서 분노가 그를 다스리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역사가 티마게네스17는 황제를 두고, 그의 아내와 온 집안을 두고 이런저런 말을 했고, 그 말들은 헛되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무모한 재담일수록 더 널리 퍼지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때문입니다. 황제는 여러 번 그에게 혀를 좀 더 조심해서 쓰라고 일렀지만, 그래도 그가 그치지 않자 자기 집 출입을 금했습니다. 그 뒤로 티마게네스는 아시니우스 폴리오의 집에 얹혀 늙어 갔고, 온 도시가 그를 서로 데려가려고 다투었으니, 황제의 집 문이 닫혔다고 다른 어떤 집 문도 그에게 닫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뒤에 쓴 역사책을 낭독했고,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업적을 담은 책들은 불 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는 황제와 원수로 지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와 벗으로 지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누구도 벼락 맞은 사람을 피하듯 그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높은 데서 떨어진 그를 품어 줄 사람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황제는 이것을 참을성 있게 견뎠고, 그가 자기를 기리는 글과 자기 업적에 손을 댄 일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원수를 손님으로 맞아들인 사람에게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니우스 폴리오에게 한 말이라고는 "자네는 맹수를 기르는군." 이 한마디뿐이었습니다. 그러고는 폴리오가 변명하려 하자 그것을 막으며 말했습니다. "즐기게, 폴리오, 마음껏 즐기게!" 폴리오가 "명하시면, 폐하, 당장 그자를 제 집에 들이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자 황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하리라 생각하나? 자네들 둘을 화해시킨 사람이 바로 나인데?" 폴리오는 한때 티마게네스에게 화가 나 있었는데, 그 화를 그친 까닭은 다름 아니라 황제가 그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4 그러니 누구든 누가 건드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내가 필리포스보다 힘이 센가? 그런데도 필리포스는 욕을 먹고도 벌하지 않았다. 내가 내 집 안에서 휘두르는 힘이 신격 아우구스투스가 온 세상에서 휘두른 힘보다 더 큰가? 그런데도 그는 자기를 헐뜯은 자에게서 물러나는 것으로 만족했다." 제 노예가 조금 큰 소리로 대꾸하고, 조금 고집스러운 얼굴을 하고, 제게까지 들리지도 않는 투덜거림을 했다고 해서 제가 채찍과 족쇄로 그 값을 치르게 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제가 무엇이기에 제 귀를 거스르는 것이 죄가 된단 말입니까? 많은 사람이 적도 용서했는데, 저는 게으르고 소홀하고 수다스러운 자들을 용서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아이는 나이로, 여자는 여자라는 까닭으로, 남은 자유인이라는 까닭으로, 집안사람은 허물없는 사이라는 까닭으로 너그럽게 봐줍시다. 이번에 처음 잘못했다면, 그동안 얼마나 오래 마음에 들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전에도 자주 잘못했다면, 오래 참아 온 것을 계속 참읍시다. 벗이라면 원치 않은 일을 한 것이고, 원수라면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더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을 믿어 주고, 더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봐줍시다. 상대가 누구든 스스로에게 이렇게 대답해 줍시다. 더없이 지혜로운 사람들도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아무리 신중한 사람도 그 조심성이 어느 순간 제풀에 빠져나가며, 아무리 원숙한 사람도 어쩌다 그 무게를 잃고 성급한 짓에 내몰리고, 아무리 남의 비위를 거스를까 조심하는 사람도 피하려다 도리어 거기에 빠진다고 말입니다.

25 보잘것없는 사람에게는 위대한 사람들의 운도 휘청거린다는 것이 불행 속의 위안이 되었고, 왕궁에서도 때 이른 장례 행렬이 나가는 것을 본 사람은 구석진 집에서 아들을 잃고 우는 것을 좀 더 담담하게 견뎠습니다. 그와 같이 어떤 권세도 불의를 피해 갈 만큼 크지는 않다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 해를 입고 누구에게 업신여김을 받더라도 좀 더 담담하게 견딥니다. 더없이 분별 있는 사람들조차 잘못을 저지른다면, 누구의 잘못인들 그럴 만한 까닭이 없겠습니까? 우리가 젊을 때 의무에 얼마나 소홀했는지, 말에 얼마나 조심성이 없었는지, 술자리에서 얼마나 절제하지 못했는지 돌아봅시다. 그가 화가 나 있다면, 자기가 한 일을 돌아볼 말미를 줍시다. 그러면 스스로를 꾸짖을 것입니다. 끝내 그가 벌을 받아야 한다 해도, 우리가 그와 똑같이 앙갚음할 까닭은 없습니다. 자기를 건드리는 자들을 내려다보는 사람은 무리에서 벗어나 더 높이 선 사람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얻어맞고도 느끼지 않는 것이 참된 위대함의 본모습입니다. 사나운 짐승은 개들이 짖어도 느긋하게 돌아볼 뿐이고, 파도는 거대한 바위에 부딪쳐도 헛되이 덤벼들 뿐입니다. 화내지 않는 사람은 불의에도 흔들림 없이 버텨 낸 것이고, 화내는 사람은 이미 흔들린 것입니다. 방금 모든 불편함보다 높은 데 세워 둔 저 사람은 최고선(summum bonum)을 품에 꼭 안고서, 사람에게뿐 아니라 운에게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너는 내 맑은 마음에 구름을 드리우기에는 너무 작다. 내 삶을 맡겨 다스리게 한 이성이 그것을 막는다. 불의보다 분노가 나를 더 해칠 것이다. 왜 더 해치지 않겠느냐? 불의에는 정해진 한도가 있지만, 분노가 나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는 알 수 없다."

26 "참을 수가 없다. 불의를 견디기란 괴롭다." 하고 누군가 말합니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분노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어찌 불의를 견디지 못하겠습니까? 게다가 그렇게 하면 분노와 불의를 둘 다 견디게 됩니다. 병자의 광포함과 정신 나간 사람의 헛소리, 아이들의 버릇없는 손찌검은 왜 견딥니까? 그들이 제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것 같기 때문이 아닙니까? 사람이 어떤 결함 때문에 분별을 잃었든 무슨 상관입니까? 분별없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변호가 됩니다. "그러면 어떤가? 그자는 벌을 받지 않는단 말인가?" 하고 누군가 묻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해도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불의를 저지른 사람에게 가장 큰 벌은 그것을 저질렀다는 것이고, 뉘우침이라는 형벌에 넘겨진 사람만큼 무거운 벌을 받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닥치는 모든 일을 공정하게 판단하려면 인간사의 처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모두에게 있는 결함을 한 사람에게 들씌우는 사람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에티오피아인의 피부색은 제 동족 사이에서는 눈에 띄지 않고, 붉은 머리를 틀어 묶은 것도 게르만족 사이에서는 사내에게 흉이 되지 않으니, 한 민족 모두에게 흔한 것을 한 사람에게서만 눈에 띄거나 흉하다고 판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방금 든 것들은 한 지방, 한 귀퉁이의 풍습이 감싸 줍니다. 그렇다면 온 인류에게 퍼져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용서가 얼마나 더 정당한지 보십시오. 우리는 모두 경솔하고 앞을 내다보지 못하며, 모두 갈팡질팡하고 불평 많고 야심에 차 있습니다. 어째서 더 부드러운 말로 온 세상의 종기를 감추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악합니다. 그러니 남에게서 나무라는 것은 무엇이든 저마다 제 품에서 찾아낼 것입니다. 왜 이 사람의 창백함, 저 사람의 여윔을 꼬집습니까? 역병이 돈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에게 더 너그러워집시다. 우리는 악인들 사이에서 사는 악인입니다. 우리를 평온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서로 너그럽게 봐주자는 약속입니다. "그자는 벌써 나를 해쳤는데, 나는 아직 그자를 해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벌써 누군가를 해쳤을 것이고, 앞으로도 해칠 것입니다. 이 시간이나 이날만 헤아리지 말고, 자기 정신의 상태 전체를 살펴보십시오. 아직 아무 악도 저지르지 않았다 해도 저지를 수는 있습니다.

27 불의를 앙갚음하기보다 낫게 하는 편이 얼마나 더 낫습니까! 복수는 많은 시간을 잡아먹고, 불의 하나에 아파하는 동안 숱한 불의에 몸을 내놓습니다. 우리는 모두 해를 입은 시간보다 더 오래 화를 냅니다. 엉뚱한 쪽으로 비켜 가고 악덕에 악덕으로 맞서지 않는 편이 얼마나 더 낫습니까! 노새를 발로 걷어차고 개를 이빨로 물어 앙갚음하는 사람을 두고 누가 제정신이라고 하겠습니까? "그것들은 자기가 잘못하는 줄도 모른다." 하고 누군가 말합니다. 우선, 사람이라는 것이 용서받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그 판관은 얼마나 불공정합니까! 다음으로, 다른 짐승들이 분별이 없다는 까닭으로 분노를 피해 간다면, 분별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같은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다른 점에서 말 못 하는 짐승과 다르다 한들, 짐승의 모든 잘못을 변호해 주는 바로 그것, 곧 정신의 어둠이 똑같다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처음입니까? 이것이 마지막입니까? 그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한다 해도 믿을 까닭은 없습니다. 그는 또 잘못할 것이고, 다른 누가 그에게 잘못할 것이며, 평생을 잘못 속에서 뒹굴 것입니다. 사나운 것은 온화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애도할 때 흔히 하는 말, 가장 잘 듣는 그 말을 분노할 때에도 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그칠 것입니까, 아니면 영영 그치지 않을 것입니까? 언젠가는 그칠 것이라면, 분노에게 버림받기보다 분노를 버리는 편이 얼마나 더 낫습니까! 이 들끓음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입니까?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얼마나 평화 없는 삶을 선고하는지 보이지 않습니까? 늘 부어올라 있는 사람의 삶이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실컷 스스로 불을 지르고 자기를 들쑤실 까닭을 거듭 새로 찾아낸다 해도, 분노는 결국 저절로 물러가고 세월이 분노의 힘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분노가 제풀에 꺾이기보다 우리 손에 꺾이는 편이 얼마나 더 낫습니까!

28 이 사람에게 화를 내고, 다음에는 저 사람에게 화를 내십니다. 노예에게, 다음에는 해방 노예에게, 부모에게, 다음에는 자식에게, 아는 사람에게, 다음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화를 내십니다. 마음이 나서서 말리지 않는 한, 화낼 까닭은 어디에나 넘쳐 나기 때문입니다. 광란은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또 다른 데로 휩쓸어 갈 것이고, 새로운 자극이 잇달아 생겨나면서 미쳐 날뛰는 일은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자, 불행한 사람이여, 대체 언제 사랑하시렵니까? 아, 그 좋은 시간을 나쁜 일에 얼마나 허비하십니까! 누구에게 어떤 해를 입힐 수 있을지, 그의 지위나 재산이나 몸에 어떤 상처를 낼 수 있을지 두리번거리기보다, 벗을 사귀고, 원수를 달래고, 나랏일을 돌보고, 집안일에 힘을 쏟는 편이 지금 얼마나 더 낫겠습니까? 더구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맞붙는다 해도 다툼과 위험 없이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상대를 꽁꽁 묶어 받아 놓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견디게 할 수 있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리는 사람이 힘을 너무 쓰다가 제 관절을 삐거나, 부러뜨린 이에 제 힘줄이 박히는 일이 잦습니다. 성마름은 아무 저항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조차 많은 사람의 손을 못 쓰게 하고 많은 사람의 몸을 상하게 했습니다. 게다가 짓밟는 사람에게 아무 위험도 주지 않고 죽을 만큼 약하게 태어난 것은 없습니다. 고통이 어떤 때는, 우연이 어떤 때는 약한 자를 가장 강한 자와 똑같이 만들어 놓습니다. 또 우리가 화내는 일 대부분은 우리를 해친다기보다 언짢게 할 뿐이라면 어떻습니까? 누가 제 뜻을 가로막는 것과 제 뜻을 거들지 않는 것, 빼앗는 것과 주지 않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가 가져가든 거절하든, 우리 희망을 끊어 버리든 미루든, 우리에게 맞서 하든 자기를 위해 하든, 남을 사랑해서 하든 우리를 미워해서 하든 똑같이 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에게 맞설 정당한 까닭뿐 아니라 훌륭한 까닭까지 있습니다. 누구는 아버지를, 누구는 형제를, 누구는 조국을, 누구는 벗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나무랐을 일을 했다고 그들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아니,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한 일은 좋게 보면서 한 사람은 나쁘게 보는 일이 잦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위대하고 정의로운 사람은 적 가운데서도 가장 용감한 사람, 조국의 자유와 안전을 위해 가장 끈질기게 버티는 사람을 우러러보며, 그런 시민, 그런 병사를 얻기를 바랍니다.

29 칭찬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추한 일입니다. 그러니 연민을 받아 마땅한 바로 그 일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얼마나 더 추합니까! 갑자기 종살이로 떨어진 포로가 자유의 찌꺼기를 아직 붙들고 있어 더럽고 고된 일에 날래게 나서지 않는다고, 한가하게 지내다 굼떠져서 주인의 말과 수레를 뛰어서 따라가지 못한다고, 날마다 밤을 새우다 지쳐서 잠이 들고 말았다고, 도시의 한가한 종살이에서 고된 일로 옮겨 와 농사일을 마다하거나 힘껏 하지 않는다고 미워한다면 말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인지 하기 싫은 것인지 가려 봅시다. 화내기 전에 판단하기 시작한다면 많은 사람을 놓아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첫 충동(impetus)을 따르고, 하찮은 일에 들쑤셨더라도 까닭 없이 시작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고집을 부립니다. 무엇보다 부당하게도, 분노가 부당할수록 우리는 더 고집스러워집니다. 크게 화내는 것이 정당하게 화낸다는 증거인 것처럼 분노를 붙들고 키우기 때문입니다.

30 일의 첫머리부터 그것이 얼마나 가볍고 해롭지 않은지 꿰뚫어 보는 편이 얼마나 더 낫습니까! 말 못 하는 짐승에게 일어나는 일을 사람에게서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찮고 헛된 일에 흔들립니다. 붉은빛은 황소를 성나게 하고, 독사는 그림자에도 고개를 쳐들며, 곰과 사자는 천 조각 하나에도 덤벼듭니다. 본디 사납고 미쳐 날뛰는 것들은 모두 헛것에 놀라 날뜁니다. 들뜨고 미련한 사람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의심만으로도 상처를 입어서, 때로는 조촐한 은혜를 불의라고 부르기까지 합니다. 그런 은혜야말로 성마름의 가장 흔한, 적어도 가장 쓰라린 불씨입니다. 우리는 가장 아끼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우리가 마음속에 그렸던 것보다, 또 남들이 받은 것보다 적게 주었다고 화를 내지만, 두 가지 모두 약이 가까이 있습니다. 남에게 더 많이 베풀었다면, 남과 견주지 말고 우리 몫을 즐깁시다. 더 행복한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바랐던 것보다 적게 받았다면, 어쩌면 마땅한 것보다 더 많이 바랐던 것입니다. 이 대목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곳입니다. 가장 해로운 분노, 가장 신성한 것까지 덮치는 분노가 여기서 생겨납니다. 신격 율리우스는 원수보다 벗들의 손에 더 많이 찔렸습니다. 채울 수 없는 그들의 희망을 채워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채워 주고 싶어 했습니다. 승리를 그보다 너그럽게 쓴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승리에서 나누어 줄 권한 말고는 아무것도 제 몫으로 챙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을 탐내는데, 그토록 염치없는 욕망을 어떻게 다 채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제 의자 둘레에서 칼을 빼 든 전우들을 보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그의 편을 누구보다 열렬히 지키던 틸리우스 킴베르18, 그리고 폼페이우스가 죽고 나서야 폼페이우스파가 된 다른 사람들을 말입니다. 이런 일이 왕들의 무기를 왕들에게로 돌렸고,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들까지 몰아붙여, 그들을 위해, 그들 앞에서 죽기로 맹세했던 바로 그 사람들의 죽음을 꾀하게 만들었습니다.

31 남의 것을 돌아보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 몇 사람을 시기하는 사람의 등 뒤로 얼마나 엄청난 시기가 뒤따르는지 잊은 채, 누가 우리를 앞질렀다고 신들에게까지 화를 냅니다. 그런데도 사람이란 몹시 염치가 없어서, 많이 받고도 더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불의로 여깁니다. "그는 내게 법무관직을 주었지만, 나는 집정관직을 바랐다. 12개의 권표를 주었지만, 정규 집정관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내 이름으로 해를 세게 해 주었지만, 사제직에는 미치지 못했다. 사제단에 뽑혀 들어갔지만, 왜 하나뿐인가? 내 지위는 다 채워 주었지만, 재산에는 아무것도 보태 주지 않았다. 그가 내게 준 것은 누군가에게는 주어야 했던 것들이고, 자기 것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19 차라리 받은 것에 감사하십시오. 나머지는 기다리고, 아직 다 채워지지 않은 것을 기뻐하십시오. 아직 바랄 것이 남아 있다는 것도 즐거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두를 앞질렀다면, 벗의 마음속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했음을 기뻐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앞서 있다면, 뒤따르는 사람보다 앞서는 사람이 얼마나 더 많은지 헤아려 보십시오. 자기에게 가장 큰 악덕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까? 셈을 틀리게 하는 것입니다. 준 것은 크게, 받은 것은 작게 칩니다.

32 사람마다 다른 까닭으로 우리를 말리게 합시다. 어떤 사람에게는 두려워서, 어떤 사람에게는 존경해서, 어떤 사람에게는 상대할 가치가 없어서 화내지 맙시다. 가련한 종 녀석을 노예 감옥에 보낸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대단한 일을 해낸 셈이겠지요! 무엇 하러 서둘러 당장 매질하고 그 자리에서 다리를 부러뜨립니까? 미룬다고 그 권한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명령할 수 있는 때가 오게 합시다. 지금은 분노의 명령에 따라 말할 것입니다. 분노가 떠나간 뒤에야 이 다툼이 얼마짜리인지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못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칼과 사형까지 들먹이고, 가벼운 채찍질로 다스려야 할 일을 사슬과 감옥과 굶주림으로 벌합니다. "우리를 해치는 듯 보이는 것들이 모두 얼마나 하찮고 비루하고 유치한지 들여다보라니!" 하고 누군가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크나큰 마음을 품으라고, 그리고 우리가 다투고 뛰어다니고 헐떡이는 까닭이 되는 이것들이 얼마나 낮고 천한지, 높고 장대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돌아볼 가치가 없는 것임을 보라고 권하겠습니다.

33 가장 큰 아우성은 돈을 둘러싸고 일어납니다. 돈은 포룸을 지치게 하고, 아버지와 자식을 싸움 붙이고, 독을 타고, 자객에게도 군단에게도 칼을 쥐여 줍니다. 돈은 우리 피로 흠뻑 젖어 있습니다. 돈 때문에 아내와 남편의 밤은 다툼으로 시끄럽고, 정무관의 재판석에는 사람들이 몰려들며, 왕들은 날뛰며 약탈하고, 오랜 세월 애써 세운 도시들을 무너뜨려 그 잿더미에서 금과 은을 뒤집니다. 구석에 놓인 돈 자루들을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바로 이것들 때문에 사람들은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소리를 지르고, 재판정마다 송사의 웅성거림이 울리며, 먼 지방에서 불려 온 재판관들이 둘 가운데 누구의 탐욕이 더 정당한지 판결하려고 자리에 앉습니다. 돈 자루도 아니고 동전 한 줌이나 노예가 장부에 올린 데나리우스 한 닢 때문에, 상속자 없이 죽을 노인이 속이 터진다면 어떻습니까? 손발이 뒤틀려 셈할 손가락 하나 남지 않은 병든 고리대금업자가 천분의 일 이자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병이 발작하는 와중에도 보증을 들먹이며 제 동전 몇 닢을 받아 내려 한다면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가 한창 파 들어가는 온갖 광산의 돈을 몽땅 제 앞에 가져다 놓고, 보물 창고에 감춰진 것을 모두 한가운데 쏟아 놓는다 해도, 그것도 탐욕이 잘못 파낸 것을 다시 땅속에 묻어 버린 그 보물까지 쏟아 놓는다 해도, 저는 그 엄청난 더미가 선한 사람의 이마를 찌푸리게 할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눈물을 자아내는 것들을 얼마나 크게 웃어넘겨야 하겠습니까!

34 자, 이제 나머지도 하나하나 짚어 보십시오. 음식과 마실 것, 그것 때문에 허영으로 꾸민 사치스러운 차림, 모욕적인 말, 그다지 공손하지 않은 몸짓, 말 안 듣는 짐승과 게으른 노예, 남의 말을 두고 품는 의심과 고약한 풀이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에게 주어진 말까지 자연이 우리에게 저지른 불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게 됩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가볍지 않게 불같이 화를 내는 일들은 가볍기 짝이 없고, 아이들을 싸움과 말다툼으로 몰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심각한 얼굴로 하는 일 가운데 진지한 것은 하나도 없고, 큰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여러분이 분노하고 미쳐 날뛰는 것은 하찮은 것을 크게 치기 때문입니다. "이자는 내 유산을 빼앗으려 했다. 이자는 내가 오래 유언을 바라고 비위를 맞추던 사람에게 나를 헐뜯었다. 이자는 내 정부를 탐냈다." 사랑의 끈이 되어야 할 것, 곧 같은 것을 바라는 마음이 다툼과 미움의 원인이 됩니다. 좁은 길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끼리 다툼이 일지만, 넓게 트인 큰길에서는 온 백성이 지나가도 부딪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탐내는 것들은 작아서, 하나가 빼앗기지 않고는 다른 하나에게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같은 것을 노리는 사람들 사이에 싸움과 말다툼을 일으킵니다.

35 노예가, 해방 노예가, 아내가, 피호민이 말대꾸를 했다고 분개하십니다. 그러고는 집 안에서 없애 버린 자유를 나라에서 빼앗겼다고 불평하십니다. 또 물어보았는데 입을 다물면 고집을 부린다고 하십니다. 말하게도 하고, 입 다물게도 하고, 웃게도 내버려 두십시오! "주인 앞에서?" 하고 누군가 묻습니다. 아니, 한 집안의 아버지 앞에서입니다. 왜 소리를 지르십니까? 왜 고함을 치십니까? 노예들이 떠든다고, 민회의 군중이 모인 자리에 외딴곳의 고요가 함께 있지 않다고, 왜 식사 도중에 채찍을 찾으십니까? 귀가 있는 것은 가락 맞고 부드럽고 달콤하게 다듬어진 소리만 받아들이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웃음소리도 울음소리도, 달래는 소리도 다투는 소리도, 기쁜 소식도 슬픈 소식도, 사람의 목소리도 짐승이 으르렁대고 짖는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가련한 사람이여, 노예가 지르는 소리에, 놋그릇 부딪는 소리나 문 닫히는 소리에 왜 소스라치게 놀라십니까? 그토록 예민하더라도 천둥소리는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귀를 두고 한 이 말을 눈에도 옮겨 보십시오. 눈도 잘못 길들면 그에 못지않게 까다로워집니다. 얼룩 하나, 때 한 점, 덜 반짝이는 은그릇, 바닥까지 비치지 않는 연못물에도 언짢아합니다. 그런데 얼룩덜룩하고 갓 닦아 반짝이는 대리석이 아니면 못 견디고, 결이 촘촘하게 박힌 탁자가 아니면 못 견디며, 집 안에서는 황금보다 값진 것이 아니면 밟으려 하지 않는 바로 이 눈이, 밖에서는 울퉁불퉁하고 질척한 골목길과 마주치는 사람 대부분의 꾀죄죄한 모습과 공동 주택의 갉아 먹히고 갈라지고 기울어진 벽을 더없이 태연하게 바라봅니다. 그렇다면 밖에서는 눈을 언짢게 하지 않는 것이 집 안에서는 눈을 들쑤시는 까닭이, 밖에서는 너그럽고 참을성 있는 생각이 집 안에서는 까다롭고 불평 많은 생각이 된다는 것 말고 무엇이겠습니까?

36 모든 감각을 굳건하게 길러야 합니다. 감각은 본디 참을성이 있습니다. 날마다 불러내 셈을 치르게 해야 할 마음이 감각을 망가뜨리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섹스티우스20는 이렇게 했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밤에 쉬려고 물러나면 자기 마음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너는 네 악을 무엇 하나 고쳤느냐? 어떤 악덕에 맞섰느냐? 어느 점에서 나아졌느냐?" 날마다 재판관 앞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아는 분노는 그치거나 누그러질 것입니다. 하루를 통째로 털어 보는 이 습관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겠습니까? 자기를 돌아본 뒤에 찾아오는 잠은 얼마나 평온하고, 얼마나 깊고 거침이 없습니까! 마음이 칭찬을 받든 꾸지람을 받든, 자기를 살피는 파수꾼이자 남몰래 자기를 심사하는 감찰관이 되어 제 행실을 따져 본 뒤라면 말입니다. 저도 이 권한을 쓰며 날마다 제 앞에서 제 소송을 변론합니다. 등불이 치워지고, 제 버릇을 이미 아는 아내가 잠잠해지면, 저는 하루를 샅샅이 되짚고 제가 한 일과 한 말을 다시 재어 보며, 저 자신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아무것도 건너뛰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무엇 하러 제 잘못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다시는 그러지 마라. 이번엔 너를 용서한다. 그 토론에서 너는 너무 싸우듯이 말했다. 앞으로는 배우지 못한 자들과 맞붙지 마라.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자들은 배우려 하지 않는다. 저 사람에게는 마땅한 것보다 거리낌 없이 충고했다. 그래서 고쳐 주지 못하고 언짢게만 했다. 앞으로는 네 말이 옳은지만 보지 말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옳은 말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도 살펴라. 선한 사람은 충고받기를 기뻐하지만, 못된 자일수록 바로잡아 주는 사람을 가장 사납게 대한다."

37 "어떤 사람들의 잔치에서 네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던진 농담과 말들이 너를 건드렸다. 아무하고나 어울리는 술자리는 피하라는 것을 잊지 마라. 술이 들어가면 방자함이 더 풀린다. 맨정신일 때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너는 네 벗이 어느 변호사나 부자의 문지기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보았다. 들어가려는 그를 문지기가 밀어냈기 때문이다. 그러자 너도 그를 위해 그 하찮은 노예에게 화를 냈다. 그렇다면 너는 사슬에 매인 개에게도 화를 내겠느냐? 개도 실컷 짖다가 먹을 것을 던져 주면 순해진다. 멀찍이 물러나서 웃어라! 저 문지기는 송사꾼 무리가 에워싼 문턱을 지킨다고 자기가 대단한 인물인 줄 안다. 안에 누워 있는 저 사람도 자기가 행운아이고 복 받은 사람이라 여기며, 들어가기 어려운 문을 행복하고 힘 있는 사람의 표시로 여긴다.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문이 감옥 문이라는 것을 모른다. 견뎌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미리 마음에 새겨 두어라. 겨울에 춥다고, 바다에서 뱃멀미가 난다고, 길에서 덜컹거린다고 놀라는 사람이 있느냐? 마음은 미리 채비하고 맞이하는 일에는 굳세다. 덜 영예로운 자리에 앉았다고 너는 잔치를 연 주인에게, 손님을 부른 하인에게, 너보다 윗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자여, 긴 의자의 어느 쪽을 깔고 앉든 무슨 상관이냐? 방석 하나가 너를 더 훌륭하게 또는 더 추하게 만들 수 있느냐? 어떤 사람이 네 재능을 헐뜯었다고 너는 그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았다. 너는 이런 법을 받아들이겠느냐? 그렇다면 네가 즐겨 읽지 않는 엔니우스는 너를 미워했어야 하고, 호르텐시우스는 너와 원수가 되었어야 하며, 키케로는 네가 그의 시를 비웃었다면 네 적이 되었어야 한다. 선거에 나선 후보라면 표가 어떻게 나오든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

38 누군가 모욕을 주었습니까? 스토아 철학자 디오게네스21가 받은 모욕보다 더 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가 마침 분노를 두고 강론하고 있을 때, 버릇없는 젊은이가 그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그는 그 일을 부드럽고 지혜롭게 견디며 말했습니다. "화가 나지는 않네. 하지만 화를 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우리 카토는 얼마나 더 잘했습니까! 그가 법정에서 변론하고 있을 때, 우리 아버지 세대가 기억하는 저 당파적이고 제멋대로인 렌툴루스가 걸쭉한 침을 잔뜩 모아 그의 이마 한가운데 뱉었습니다. 카토는 얼굴을 닦고 말했습니다. "렌툴루스, 그대에게 입(os)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은 틀렸다고 내가 모두에게 장담하겠소."22

39 노바투스 형님, 이제 우리는 마음을 잘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성마름을 느끼지 않거나, 성마름보다 위에 섭니다. 이제 남의 분노를 어떻게 누그러뜨릴지 살펴봅시다. 우리는 스스로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남을 낫게 하기도 바라기 때문입니다.

막 일어난 분노는 말로 달래려 들지 맙시다. 분노는 귀가 먹었고 제정신이 아닙니다. 분노에게 말미를 줍시다. 약은 병이 누그러졌을 때 듣습니다. 부어오른 눈은 굳은 것을 움직여 더 성나게 할까 봐 건드리지 않고, 다른 병도 한창 들끓을 때는 손대지 않습니다. 병의 첫머리는 안정이 고칩니다. "저절로 그치려는 분노를 달래는 것이라면 그런 약이 무슨 소용인가!" 하고 누군가 말합니다. 첫째, 그 약은 분노를 더 빨리 그치게 합니다. 다음으로, 분노가 도지지 않게 지켜 줍니다. 감히 달래지 못하는 그 기세마저 슬쩍 속여 넘길 것입니다. 복수에 쓸 만한 도구는 모두 치우고, 화가 난 척하여 함께 원통해하는 조력자로서 조언에 더 무게를 싣고, 핑계를 엮어 시간을 끌며, 더 큰 벌을 찾는다는 구실로 당장의 벌을 미룰 것입니다. 갖은 수를 다 써서 광란에 쉴 틈을 줄 것입니다. 분노가 아주 거세면 거스를 수 없는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을 불어넣고, 약하면 반가운 이야기나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 알고 싶은 마음으로 딴 데로 이끌 것입니다. 들리는 말로는, 어떤 의사가 왕의 딸을 고쳐야 했는데 칼을 쓰지 않고는 고칠 수 없자, 부어오른 젖가슴을 부드럽게 찜질하는 척하면서 해면에 감춘 메스를 들이밀었다고 합니다. 소녀는 약을 드러내 놓고 갖다 댔다면 마다했을 테지만, 미리 알지 못했기에 아픔을 견뎠습니다. 어떤 병은 속여야만 낫습니다.

40 어떤 사람에게는 "그대의 성마름이 원수들에게 즐거움이 되지 않게 조심하시오."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의 큰마음과 많은 사람이 믿는 그대의 굳셈이 무너지지 않게 조심하시오. 맹세코 나도 분하고, 이 원통함을 어디까지 품어야 할지 모르겠소. 그러나 때를 기다려야 하오. 그자는 벌을 받을 것이오. 이 일을 마음에 담아 두시오. 할 수 있게 되면 기다린 값까지 쳐서 갚아 주게 될 것이오." 화난 사람을 꾸짖는 것은 맞서 화를 내는 것이니 도리어 부추기는 일입니다. 이리저리 부드럽게 다가가야 합니다. 다만 분노를 꺾어 버릴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인물이라면 다릅니다. 신격 아우구스투스가 베디우스 폴리오의 집에서 식사할 때 그렇게 했습니다. 베디우스의 노예 하나가 수정 잔을 깨뜨렸습니다. 베디우스는 그를 끌어내라고 명했는데, 흔한 죽음을 맞게 하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연못에 기르는 커다란 곰치들에게 던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가 사치를 부리려고 곰치를 기른다고 누가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포악함이었습니다. 소년은 붙잡은 손을 빠져나와 황제의 발아래로 달아났습니다. 그가 청한 것은 다른 방도로 죽게 해 달라는 것, 물고기 밥만은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황제는 듣도 보도 못한 잔인함에 마음이 움직여, 소년을 풀어 주라고 명하고, 수정 잔은 모두 자기 앞에서 깨뜨리고 연못은 메워 버리라고 명했습니다. 황제라면 벗을 그렇게 꾸짖어야 했습니다. 그는 자기 힘을 잘 썼습니다. "잔치 자리에서 사람을 끌어내 새로운 형벌로 찢어발기라고 명하는 겐가? 자네 잔이 깨졌다고 사람의 창자를 찢어야 하나? 황제가 있는 자리에서 누군가를 끌어내라고 명할 만큼 자네가 그리도 대단한가?" 이처럼 분노를 윗자리에서 다룰 수 있을 만큼 권세가 있는 사람이라면 분노를 호되게 다루어도 좋습니다. 다만 방금 말씀드린 것과 같은 분노, 더 큰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고는 이제 고칠 수 없는 사납고 피에 굶주린 짐승 같은 분노에만 그렇게 하십시오.

41 마음에 평화를 줍시다. 이로운 가르침을 꾸준히 되새기고, 좋은 일을 하고, 오직 훌륭한 것(honestum) 하나만을 바라도록 정신을 기울이면 그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양심을 만족시키고 평판을 얻으려 애쓰지 맙시다. 평판이 나쁘게 따라온다 해도, 우리가 잘한 일 때문에 그렇다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대중은 기세 좋은 사람을 우러르고, 대담한 사람이 존경을 받으며, 차분한 사람은 무기력하다고 여겨진다." 처음 볼 때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결같은 삶이 그것이 마음의 게으름이 아니라 평화라는 것을 믿게 해 주면, 바로 그 대중이 그들을 존경하고 떠받듭니다. 그러니 이 흉측하고 적의에 찬 격정에는 쓸모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거꾸로 온갖 악, 칼과 불만 있습니다. 분노는 부끄러움을 짓밟고 살육으로 손을 더럽혔으며, 자식들의 팔다리를 흩어 놓았고, 범죄가 닿지 않은 곳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영광을 생각하지도 않고 오명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분노가 굳어 미움이 되면 더는 고칠 수도 없습니다.

42 이 악을 떨쳐 버립시다. 정신을 깨끗이 하고, 아무리 가늘어도 어디든 붙어 있으면 다시 돋아날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냅시다. 분노는 누그러뜨릴 것이 아니라 아예 없애야 합니다. 나쁜 것에 무슨 알맞은 정도가 있겠습니까? 애쓰기만 하면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죽게 마련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누구든 스스로에게, 또 남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영원히 살도록 태어난 것처럼 분노를 선포하고 더없이 짧은 생애를 흩어 버린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훌륭한 즐거움에 쓸 수 있는 날들을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에 돌린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우리 삶은 그런 낭비를 감당할 수 없고, 허비할 시간도 없다. 왜 싸움판에 뛰어드느냐? 왜 다툼을 불러들이느냐? 왜 제 나약함을 잊고 엄청난 미움을 떠맡으며, 깨지기 쉬운 몸으로 남을 깨뜨리겠다고 일어서느냐? 머지않아 열병이나 다른 몸의 병이, 우리가 누그러질 줄 모르는 마음으로 벌이는 그 원한을 더는 벌이지 못하게 막을 것이고, 머지않아 죽음이 끼어들어 가장 맹렬하게 맞붙은 한 쌍을 떼어 놓을 것이다. 왜 소란을 피우며 반란을 일으키듯 삶을 어지럽히느냐? 운명(fatum)이 머리 위에 서서 지나가는 날들을 셈하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네가 남의 죽음에 정해 둔 그때가 어쩌면 네 죽음 언저리일지도 모른다."

43 "차라리 짧은 삶을 거두어들여 너에게도 남들에게도 평온하게 만들지 그러느냐? 차라리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떠난 뒤에는 그리움을 받는 사람이 되지 그러느냐? 너를 너무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대하는 저 사람을 왜 끌어내리려 하느냐? 너를 향해 짖어 대는 저 사람, 낮고 업신여김받는 처지이지만 윗사람들에게는 신랄하고 성가신 저 사람을 왜 네 힘으로 짓밟으려 하느냐? 왜 노예에게, 주인에게, 왕에게, 피호민에게 화를 내느냐? 조금만 참아라. 보라, 너희를 똑같이 만들어 줄 죽음이 오고 있다. 우리는 아침 원형 경기장의 구경거리로 황소와 곰이 서로 묶여 싸우는 것을 흔히 보는데, 둘이 서로를 실컷 괴롭히고 나면 그들을 끝장낼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똑같은 짓을 한다. 우리와 함께 묶인 누군가를 괴롭히지만, 이긴 자에게도 진 자에게도 끝은 다가오고 있고, 그것도 머지않았다. 차라리 얼마 남았든 남은 삶을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내자. 우리 주검이 누구에게도 미움받으며 누워 있지 않게 하자. 이웃에서 불이야 하는 외침이 싸움을 말리는 일이 잦고, 들짐승이 나타나면 강도와 나그네가 갈라선다. 더 큰 두려움이 나타나면 작은 악과 씨름할 틈이 없다. 우리에게 싸움과 음모가 무슨 소용이냐? 네가 화를 내는 그 사람에게 죽음보다 더 바라는 것이 있느냐? 네가 가만히 있어도 그는 죽을 것이다. 어차피 일어날 일을 하려고 든다면 헛수고다. 너는 말한다. '꼭 죽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추방이나 치욕이나 손해를 안겨 주고 싶을 뿐이다.' 원수에게 상처 입히기를 바라는 사람보다 뾰루지 하나 나기를 바라는 사람을 나는 덜 용서한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악할 뿐 아니라 옹졸하기까지 하다. 가장 무거운 형벌을 생각하든 가벼운 형벌을 생각하든, 그가 벌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시간이나, 네가 남의 불행에서 못된 기쁨을 맛보는 시간이 얼마나 짧으냐! 머지않아 우리는 이 숨을 뱉어 낼 것이다. 그때까지, 숨을 쉬는 동안, 사람들 사이에 있는 동안 인정을 가꾸자. 누구에게도 두려움이 되지 말고 위험이 되지 말자. 손실과 불의, 욕설과 빈정거림을 업신여기고, 잠깐의 불편은 큰마음으로 견디자. 흔히 말하듯 우리가 뒤돌아보고 몸을 돌리는 사이에 죽음은 벌써 와 있을 것이다."

주

  1. 1. 세네카의 형 마르쿠스 안나이우스 노바투스(뒷날의 갈리오).

  2. 2. 데모크리토스 단편 B3(딜스-크란츠). 그의 책 『평정에 관하여』의 첫머리로 전한다.

  3. 3. 플라톤의 조카. 플라톤이 죽은 뒤 아카데메이아를 이끌었다.

  4. 4.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 2세(재위 기원전 530~기원전 522). 프렉사스페스 이야기는 헤로도토스 『역사』 3.34~35에 나온다.

  5. 5. 메디아 왕 아스티아게스의 신하. 왕의 명을 어기고 아기 키로스를 살려 둔 벌로 제 아들의 살을 먹었다(헤로도토스 『역사』 1.119). 아스티아게스는 페르시아가 아니라 메디아의 왕이었다.

  6. 6. 다레이오스 1세(재위 기원전 522~기원전 486). 캄비세스가 죽은 뒤 왕위를 가로챈 마고스(사제) 가우마타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오이오바조스 이야기는 헤로도토스 『역사』 4.84에 나온다.

  7. 7. 다레이오스의 아들(재위 기원전 486~기원전 465). 기원전 480년 그리스 원정에 나섰다가 살라미스에서 크게 졌다. 피티오스 이야기는 헤로도토스 『역사』 7.38~39에 나온다.

  8. 8. 알렉산드로스의 장군.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왕의 목숨을 구했으나, 기원전 328년 술자리에서 말다툼 끝에 왕의 창에 찔려 죽었다.

  9. 9. 알렉산드로스의 장군으로, 뒤에 트라키아의 왕이 되었다. 아래의 텔레스포로스를 그렇게 다룬 것이 리시마코스다.

  10. 10. 마르쿠스 마리우스 그라티디아누스. 대(大)마리우스의 조카로, 법무관 시절 화폐 개혁으로 인기를 얻었다. 기원전 82년 술라의 살생부에 올라, 마리우스에게 몰려 자결한 퀸투스 카툴루스의 무덤 앞에서 카틸리나에게 죽었다.

  11. 11. 황제 칼리굴라(재위 37~41). 원문은 「가이우스 카이사르」.

  12. 12. 이집트와 시리아 경계에 있던 도시. 이름은 그리스어로 「코를 자른」이라는 뜻이다.

  13. 13. 칼리굴라의 어머니 대(大)아그리피나. 티베리우스의 미움을 사서 감금되었다가 추방지에서 죽었다.

  14. 14. 안티고노스 1세(외눈박이, 기원전 382 무렵~기원전 301). 알렉산드로스의 장군으로, 그가 죽은 뒤 왕을 칭했다. 다음 장에서 알렉산드로스를 그의 손자라고 한 것은 세네카의 착오다.

  15. 15.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늙은 정령. 들창코에 배불뚝이로 그려졌다.

  16. 16. 아테네의 웅변가로 데모스테네스의 조카다. 테르시테스는 호메로스 『일리아스』 2권에서 왕들에게 함부로 대들다 오디세우스에게 얻어맞은 못생긴 병사다.

  17. 17. 알렉산드리아 출신 역사가. 포로로 로마에 끌려왔다가 풀려났다. 아래 아우구스투스의 말 「맹수를 기르는군」은 원문에 그리스어 한 낱말로 적혀 있다.

  18. 18.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3월 원로원에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등에게 살해되었다. 틸리우스 킴베르는 카이사르의 편이었다가 음모에 가담해 맨 먼저 그를 붙잡았다.

  19. 19. 황제가 내리는 관직과 영예를 두고 하는 불평이다. 12개의 권표는 집정관의 표지이고, 정규 집정관은 한 해의 첫머리에 취임해 그해에 자기 이름을 붙였다. 해 도중에 갈마들어 들어서는 보궐 집정관은 그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20. 20. 퀸투스 섹스티우스. 아우구스투스 때 로마에서 학파를 연 철학자.

  21. 21. 바빌론의 디오게네스(기원전 230 무렵~기원전 150 무렵). 스토아 철학자로, 견유학파 디오게네스와는 다른 사람이다.

  22. 22. 카토는 소(小)카토(기원전 95~기원전 46). 라틴어 os는 「입」과 함께 「얼굴, 낯(뻔뻔함)」을 뜻해서, 렌툴루스를 두고 하던 말을 침 뱉은 일에 빗대어 비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