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에 관하여
1 〈…〉1 한목소리로 우리에게 악덕을 권하네. 다른 어떤 이로운 일을 꾀하지 않는다 해도, 물러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걸세. 우리는 저마다 더 나은 사람이 될 테니 말일세. 게다가 가장 훌륭한 사람들 곁으로 물러나, 우리 삶을 맞춰 나갈 본보기를 하나 고를 수도 있지 않은가? 이것은 여가(otium) 속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일세. 아직 여린 판단을 대중의 힘을 빌려 비틀어 버리는 자가 끼어들지 않을 때에야 한번 옳다고 정한 것을 지켜 낼 수 있네. 그때에야 삶이 고르고 한결같은 가락으로 나아갈 수 있지. 지금 우리는 서로 어긋나는 목표들로 그 삶을 갈가리 찢어 놓고 있네. 다른 나쁜 일 가운데서도 가장 나쁜 것은 우리가 악덕마저 바꾼다는 것일세.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악에 머무는 일조차 주어지지 않네. 이것이 마음에 들었다가 저것이 마음에 들고, 우리의 판단이 비뚤 뿐 아니라 가볍기까지 하다는 것도 우리를 괴롭히네. 우리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이것을 붙잡았다 저것을 붙잡고, 찾던 것을 버리고 버린 것을 다시 찾으며, 욕망과 후회 사이를 번갈아 오가네. 우리는 온통 남의 판단에 매달려 있어서, 칭찬하고 찾을 만한 것이 아니라 찾는 사람과 칭찬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기고, 길이 좋은지 나쁜지도 길 자체로 따지지 않고 발자국이 얼마나 많은지로 따지네. 그 발자국 가운데 돌아오는 사람의 것은 하나도 없는데도 말일세.
자네는 내게 말하겠지. "세네카, 그게 무슨 말인가? 당신은 당파를 저버리는가? 당신네 스토아학파는 분명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삶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을 놓지 않을 것이고, 모두의 이로움을 위해 애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을 돕고, 늙은 손으로나마 원수에게도 도움을 베풀 것이다. 우리는 어느 나이에도 군역을 면제해 주지 않으며, 저 더없이 말 잘하는 시인의 말처럼'"
"흰머리 위에 투구를 눌러쓴다."2
"'우리는 죽기 전에는 무엇 하나 한가하게 두지 않는 사람들이어서, 형편이 허락한다면 죽음마저 한가하지 않게 한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제논의 원칙 한복판에서 에피쿠로스3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늘어놓는가? 당파가 싫어졌다면 안에서 배신하느니 차라리 떳떳하게 저쪽으로 넘어가지 그러는가?" 지금으로서는 자네에게 이렇게 대답하겠네. "내가 내 지휘관들을 닮게 처신하는 것 말고 자네가 무엇을 더 바라는가? 그러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나는 그들이 나를 보낸 곳이 아니라 그들이 앞장서 이끌고 간 곳으로 가겠네."
2 이제 내가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자네에게 증명하겠네. 그들 자신도 자기 가르침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니 말일세. 그리고 설령 내가 그들의 가르침이 아니라 그들의 본보기를 따른다 해도 나는 넉넉히 변명이 될 걸세. 내 말을 두 부분으로 나누겠네. 첫째, 누구든 아주 젊은 나이부터 진리를 관조(contemplatio)하는 데 온몸을 바치고, 사는 이치를 찾고, 남의 눈을 피해 그것을 닦을 수 있다는 것. 둘째, 복무를 다 마치고 나이가 기운 사람은 더없이 정당하게 그렇게 할 수 있고, 마음을 다른 활동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4일세. 베스타 신녀5들처럼 말일세. 신녀들은 햇수를 나누어 맡은 일을 바꾸어 가며, 제의를 치르는 법을 배우고, 다 배우면 가르치네.
3 이것이 스토아학파의 뜻에도 맞는다는 것을 보여 주겠네. 제논이나 크리시포스의 말에 어긋나는 짓은 하나도 하지 않겠다고 내가 스스로에게 법을 정해서가 아니라, 사안 자체가 내가 그들의 의견 쪽으로 걸어가 표를 던지도록 허락하기 때문일세. 늘 한 사람만 따르는 사람은 원로원 의원이 아니라 파당의 졸개이니 말일세. 모든 것이 이미 밝혀져서 진리가 누구나 인정하도록 훤히 드러나 있고, 우리가 학설에서 아무것도 바꿀 필요가 없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금 우리는 가르치는 바로 그 사람들과 함께 진리를 찾고 있네.
이 문제에서 가장 크게 갈라서는 두 학파가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일세. 그러나 둘 다 서로 다른 길로 우리를 여가로 보내네. 에피쿠로스는 말하네. "현자는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나랏일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제논은 말하네. "현자는 무엇이 막지 않는 한 나랏일에 나설 것이다."6 한쪽은 원칙으로 여가를 구하고, 다른 쪽은 까닭이 있을 때 구하네. 그런데 그 까닭이라는 것은 범위가 넓네. 나라가 너무 썩어서 도울 수 없을 때, 악한 자들에게 장악되었을 때, 현자는 쓸데없는 데 힘을 쓰지 않고 아무 보탬도 되지 못할 일에 자신을 바치지 않을 걸세. 그에게 권위나 힘이 모자라서 나라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건강이 그를 가로막을 때, 그는 금 간 배를 바다에 띄우지 않듯, 몸이 약한 사람이 군대에 이름을 올리지 않듯,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고 아는 길에는 들어서지 않을 걸세. 그러니 아직 모든 것이 온전한 사람도 어떤 폭풍을 겪기 전에 안전한 곳에 머물러, 곧바로 훌륭한 학문에 몸을 맡기고 흠 없는 여가를 누릴 수 있네. 더없이 조용히 사는 사람도 닦을 수 있는 덕을 가꾸면서 말일세.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일세. 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에게, 그렇지 못하면 몇 사람에게, 그렇지 못하면 가까운 이들에게, 그렇지 못하면 자기 자신에게. 남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면 그는 모두의 일을 하는 것이네. 자신을 더 나쁘게 만드는 사람은 자기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더 나아졌다면 이롭게 할 수 있었을 모든 사람을 해치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은 남들에게 이로울 것을 마련한다는 바로 그 일로 남들을 이롭게 하네.
4 두 나라를 마음에 품어 보세. 하나는 크고 참으로 모두의 것인 나라, 신들과 사람들을 아우르는 나라일세. 거기서 우리는 이 구석이나 저 구석을 돌아보지 않고 우리 나라의 경계를 해가 지나는 길로 잰다네. 다른 하나는 태어난 처지가 우리를 그 명부에 올린 나라일세. 이것은 아테네인의 나라이거나 카르타고인의 나라이거나 그 밖의 어떤 도시일 텐데, 모든 사람이 아니라 정해진 사람들만의 나라일세. 어떤 이들은 두 나라에, 큰 나라와 작은 나라에 동시에 힘을 쏟고, 어떤 이들은 작은 나라에만, 어떤 이들은 큰 나라에만 힘을 쏟네. 이 큰 나라에는 여가 속에서도 이바지할 수 있네. 아니, 오히려 덕이란 무엇인가, 덕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것은 본성인가 기술인가를 탐구하면서 여가 속에서 더 잘 이바지할 수 있는지도 모르네. 바다와 땅과 바다와 땅 사이에 깃든 것을 아우르는 이것은 하나뿐인가, 아니면 신이 이런 몸체를 여럿 흩뿌려 놓았는가. 만물이 생겨나는 물질은 빈틈없이 이어지고 꽉 차 있는가, 아니면 낱낱이 떨어져 있고 단단한 것들 사이에 빈 곳이 섞여 있는가. 신의 자리는 어디인가. 신은 자기 작품을 바라보기만 하는가, 아니면 손수 다루는가. 신은 바깥에서 작품을 감싸고 있는가, 아니면 그 전체에 깃들어 있는가. 우주는 불멸하는가, 아니면 무너지게 마련이고 한때를 위해 생겨난 것들 가운데 하나로 셈해야 하는가. 이런 것을 관조하는 사람이 신에게 무슨 이바지를 하느냐고? 신의 그 위대한 작품들이 증인 없이 남지 않게 하네.
5 우리는 흔히 최고선은 자연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말하네. 자연은 우리를 두 가지를 위해, 곧 사물을 관조하기 위해서도 행동(actio)하기 위해서도 낳았네. 이제 앞에서 말한 것을 증명해 보세. 또 어떤가? 누구든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고 싶은 욕망이 자기에게 얼마나 큰지, 온갖 이야기에 얼마나 들뜨는지 스스로 돌아본다면 이것은 증명된 셈이 아니겠는가? 어떤 이들은 숨겨지고 먼 무언가를 알게 된다는 단 하나의 보수를 바라고 바다를 건너며 머나먼 여행의 고생을 견디네. 이것이 사람들을 구경거리로 모여들게 하고, 이것이 닫힌 것을 파헤치고 감춰진 것을 캐내고 옛일을 들추고 야만족의 풍습을 귀동냥하게 만드네. 자연은 우리에게 호기심 많은 성품을 주었고, 자기 솜씨와 아름다움을 잘 알기에 우리를 이 거대한 구경거리들의 구경꾼으로 낳았네. 그토록 크고, 그토록 빛나고, 그토록 섬세하게 그려지고, 그토록 반짝이며 갖가지로 아름다운 것들을 아무도 없는 곳에 내보인다면 자연은 자기 열매를 잃어버릴 테니 말일세. 자연이 그저 눈에 띄는 데 그치지 않고 찬찬히 구경되기를 바랐다는 것을 알려면, 자연이 우리에게 어떤 자리를 주었는지 보게. 자연은 우리를 자기 한가운데에 세우고 모든 것을 둘러볼 수 있게 해 주었네. 자연은 사람을 똑바로 세웠을 뿐 아니라, 관조에 알맞게 만들려고, 떠오르는 데서 지는 데로 미끄러지는 별들을 눈으로 따라가며 온 하늘과 함께 얼굴을 돌릴 수 있도록 머리를 높이 두고 잘 돌아가는 목 위에 얹었네. 그런 다음 낮에 여섯, 밤에 여섯 별자리를 꺼내 보이며 자기 몸 어느 한 곳도 펼쳐 보이지 않은 데가 없게 했네. 눈앞에 내놓은 이것들로 나머지 것들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고. 우리는 모든 것을 보지도, 있는 그대로의 크기로 보지도 못하네. 그러나 우리의 눈길은 탐구할 길을 스스로 열고 참된 것의 주춧돌을 놓아, 탐구가 드러난 것에서 어두운 것으로 건너가 우주 자체보다 더 오래된 무언가를 찾아내게 하네. 저 별들은 어디서 나왔는가. 낱낱의 것들이 저마다 제 몫으로 갈라지기 전에 우주 전체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가라앉고 뒤섞인 것을 어떤 이치가 갈라놓았는가. 누가 사물에 자리를 정해 주었는가. 무거운 것은 제 본성대로 내려가고 가벼운 것은 날아올랐는가, 아니면 물체의 무게와 쏠림 말고 더 높은 어떤 힘이 하나하나에 법을 정해 주었는가. 사람이 신성한 숨(spiritus)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잘 증명하는 그 말, 곧 별들의 한 조각, 말하자면 불꽃 몇 점이 땅으로 뛰어내려 낯선 곳에 붙들려 있다는 말은 참인가. 우리의 생각은 하늘의 성벽을 뚫고 나가며, 보여 주는 것을 아는 데 만족하지 않네. 생각은 이렇게 말하지. "나는 우주 너머에 있는 것을 캐묻는다. 그것은 끝없이 깊은 허공인가, 아니면 그것 또한 제 경계에 갇혀 있는가. 바깥에 놓인 것들은 어떤 모습인가. 모양 없이 뒤섞여 사방으로 똑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들도 어떤 질서에 따라 나뉘어 있는가. 그것들은 이 우주에 붙어 있는가, 아니면 멀리 떨어져 있고 이 우주는 빈 곳에서 굴러가는가. 생겨난 것과 생겨날 모든 것을 짓는 재료는 쪼갤 수 없는 알갱이인가, 아니면 그 물질은 이어져 있고 전체에 걸쳐 바뀔 수 있는가. 원소들은 서로 반대되는가, 아니면 다투지 않고 서로 다른 길로 한데 어울리는가." 이런 것을 탐구하도록 태어난 사람이, 시간을 몽땅 제 것으로 차지한다 해도 받은 시간이 얼마나 적은지 헤아려 보게. 그가 마음이 물러서 무엇 하나 빼앗기지 않고 소홀해서 무엇 하나 흘려보내지 않는다 해도, 자기 시간을 더없이 인색하게 지키며 인간 수명의 마지막 끝까지 나아가고, 자연이 정해 준 몫에서 운이 아무것도 흔들어 떨어뜨리지 않는다 해도, 불멸하는 것을 알기에는 사람은 너무도 죽게 마련인 존재일세. 그러니 내가 나를 통째로 자연에 바치고 자연을 우러르고 섬긴다면, 나는 자연을 따라 사는 것일세. 그런데 자연은 내가 두 가지를 다 하기를, 행동도 하고 관조에도 힘쓰기를 바랐네. 나는 둘 다 하네. 관조조차 행동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으니 말일세.
6 "그러나 쾌락 때문에 관조에 나섰는지, 끝없이 관조만 이어 가는 것 말고는 관조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지가 중요하다. 관조는 달콤하고 저만의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하고 자네는 말하네. 이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네. 자네가 어떤 마음으로 시민의 삶을 사는지도, 늘 들떠 있어서 인간사에서 신의 일로 눈을 돌릴 시간을 한 번도 내지 않는지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덕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고 재능을 가꾸지도 않은 채 일만 좇으며 앙상한 노동만 내놓는 것이 조금도 칭찬할 만하지 않듯이(이 둘은 서로 섞이고 엮여야 하네), 행동 없이 여가 속에 내던져져 배운 것을 한 번도 보여 주지 않는 덕도 불완전하고 힘없는 선일세. 덕이 자기가 얼마나 나아갔는지를 일에서 시험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손도 써서 궁리한 것을 현실로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현자 자신이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라면, 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이 없는 것이라면, 그가 자기 자신과 함께 지내는 것쯤은 허락해 주지 않겠는가? 현자는 어떤 마음으로 여가에 물러나는가? 그때에도 뒷사람들에게 이로울 일을 하리라는 것을 알고서 물러나네. 제논과 크리시포스가 군대를 이끌고 관직을 지내고 법률을 제안했더라면 했을 일보다 더 큰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우리일세. 그들은 법률을 한 도시가 아니라 온 인류에게 주었네. 그러니 이런 여가가 선한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을 까닭이 무엇인가? 그 여가로 그는 다가올 세대를 바로 세우고, 몇 사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모든 사람, 지금 있는 사람과 앞으로 있을 사람 앞에서 연설하는데 말일세. 요컨대 묻겠네. 클레안테스와 크리시포스와 제논은 자기들의 가르침대로 살았는가? 자네는 서슴없이 대답하겠지. 그들은 살아야 한다고 말한 그대로 살았다고. 그런데 그들 가운데 누구도 나랏일을 맡지 않았네. "그들에게는 나랏일을 맡는 사람이 흔히 갖추는 처지도 지위도 없었다." 하고 자네는 말하네. 그래도 그들은 게으른 삶을 살지 않았네. 자기들의 고요가 남들의 분주한 뜀박질과 땀보다 사람들에게 더 이롭게 할 길을 찾아냈네. 그러니 그들은 공적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도 많은 일을 한 사람들로 보였네.
7 게다가 삶에는 세 가지가 있어서, 그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나은지를 두고 흔히 따지네. 하나는 쾌락에, 하나는 관조에, 하나는 행동에 바치는 삶일세. 먼저 서로 다른 길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선포한 다툼과 화해 없는 미움을 내려놓고, 이 모든 삶이 저마다 다른 이름을 달고서도 같은 곳에 이른다는 것을 보세. 쾌락을 옹호하는 사람도 관조 없이 살지 않고, 관조에 몸 바친 사람도 쾌락 없이 살지 않으며, 행동에 삶을 바친 사람도 관조 없이 살지 않네. "어떤 것이 목적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에 덧붙은 것인지는 크게 다르다." 하고 자네는 말하네. 크게 다르다고 해 두세. 그래도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 있지 않네. 앞사람은 행동 없이 관조하지 않고, 이 사람은 관조 없이 행동하지 않으며, 우리가 다 함께 나쁘게 보기로 한 저 셋째 사람도 게으른 쾌락이 아니라 이성으로 자기에게 단단히 다져 놓은 쾌락을 옹호하네. 그러니 이 쾌락의 학파조차 행동하는 것일세. 왜 행동하지 않겠는가? 에피쿠로스 자신도, 쾌락 뒤에 후회가 닥치려 하거나 더 큰 고통 대신 더 작은 고통을 택할 수 있다면, 때로는 쾌락에서 물러나 고통마저 찾아가겠다고 말하지 않는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관조가 모두의 마음에 든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일세. 다른 이들은 관조를 목적으로 찾지만, 우리에게 관조는 잠시 닻을 내리는 곳이지 항구가 아닐세.
8 여기에 이것도 보태게. 크리시포스의 법칙에 따르면 여가 속에 사는 것이 허락된다는 것일세. 여가를 참고 견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르라는 말이네. 우리 학파는 현자가 아무 나라에나 나서지는 않으리라고 말하네. 그런데 누구에게나 나라가 없게 될 것이라면, 나라가 현자를 저버려서든 현자가 나라를 저버려서든 현자가 어떤 길로 여가에 이르는지가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까다롭게 찾는 사람에게는 나라가 늘 없을 걸세. 현자가 어느 나라에 나서야 하는지 묻겠네. 소크라테스가 단죄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단죄를 피하려고 달아난7 아테네인의 나라인가? 시기가 덕을 짓누르는 나라인가? 현자가 이런 나라에는 나서지 않으리라고 자네는 말하겠지. 그러면 현자는 카르타고인의 나라로 나서겠는가? 끊임없이 내분이 일고, 자유가 가장 훌륭한 사람들에게 해가 되고, 공정한 것과 선한 것이 더없이 값싸고, 적에게는 사람의 것이 아닌 잔인함을, 제 백성에게마저 적에게 하듯 잔인함을 보이는 나라에? 이 나라도 그는 피할 걸세. 나라를 하나하나 살펴보려 해도, 현자를 견딜 수 있는 나라도, 현자가 견딜 수 있는 나라도 하나도 찾지 못할 걸세. 우리가 그려 보는 나라를 찾을 수 없다면 모든 사람에게 여가가 꼭 필요해지기 시작하네. 여가보다 앞세울 수 있었던 단 하나가 어디에도 없으니 말일세. 누가 항해가 가장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는, 난파가 잦고 키잡이를 엉뚱한 쪽으로 몰아가는 갑작스러운 폭풍이 자주 이는 바다에서는 배를 몰지 말라고 한다면, 나는 그가 항해를 칭찬하면서도 내게 닻줄을 풀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8
주
1. 앞부분이 전하지 않는다. 수신인의 이름도 남아 있지 않으나 세레누스로 본다.
2.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9.612. 이탈리아 토박이 누마누스가 트로이 사람들 앞에서 제 겨레의 굳셈을 자랑하는 대목이다.
3. 에피쿠로스(기원전 341~기원전 270)는 쾌락을 최고선으로 본 학파를, 키티온의 제논(기원전 334 무렵~기원전 262 무렵)은 스토아학파를 세웠다. 뒤에 나오는 클레안테스와 크리시포스는 제논의 뒤를 이은 스토아학파의 수장들이다.
4. 원문 손상. 「마음을 다른 활동으로 돌린다」는 뜻으로 읽었다.
5. 로마의 화덕 여신 베스타를 섬기던 여사제들. 서른 해를 섬기며 처음 열 해는 배우고, 다음 열 해는 제의를 치르고, 마지막 열 해는 가르쳤다.
6. 현자는 정치에 나서지 않는다는 에피쿠로스의 말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 10.119에, 현자는 무엇이 막지 않는 한 정치에 나선다는 말은 같은 책 7.121에 크리시포스의 말로 전한다.
7.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아테네에서 불경죄로 고발당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인이 철학에 두 번 죄를 짓지 않게 하겠다며 칼키스로 떠났다고 전한다.
8. 이 뒤로 원문이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