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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 대화편어머니 헬비아에게 보내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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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헬비아에게 보내는 위로

1 더없이 좋으신 어머니, 저는 벌써 여러 번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려고 나섰다가 여러 번 마음을 눌러 접었습니다. 감히 해 보라고 저를 떠미는 이유는 많았습니다. 우선, 어머니의 눈물을 그치게 해 드리지는 못하더라도 잠시나마 닦아 드릴 수 있다면 제가 겪는 괴로움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 제가 먼저 일어선다면 어머니를 일으켜 세울 힘이 더 생기리라는 것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에게 진 운이 제 식구 가운데 누군가를 대신 이기려 들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상처를 한 손으로 누른 채 어떻게든 기어가서라도 어머니와 식구들의 상처를 싸매 드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뜻을 다시 붙드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슬픔이 아직 생생하게 날뛰는 동안에는 위로의 말이 도리어 슬픔을 건드려 불을 지필 수 있으니, 섣불리 맞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저는 알았습니다. 병을 다룰 때도 때 이른 약만큼 해로운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슬픔이 제풀에 기운이 꺾이고, 시간이 흐르며 누그러져, 약을 받아들이고 손을 대어 매만져도 될 만큼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또 이름난 천재들이 슬픔을 달래고 다스리려고 써 둔 글을 모조리 펼쳐 보았지만, 자기가 식구들에게 애도를 받는 처지이면서 오히려 그 식구들을 위로한 사람의 예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처럼 전례 없는 일 앞에서 저는 머뭇거렸고, 이 글이 위로가 아니라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일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더구나 자기 화장 장작더미 위에서 고개를 들어 식구들을 위로하려는 사람이라면, 흔하고 일상적인 위로의 말에서 빌려 오지 않은 새로운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도를 넘어선 큰 슬픔은 말을 고를 여유마저 빼앗기 마련입니다. 목소리마저 막아 버릴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도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제 재주를 믿어서가 아닙니다. 위로하는 사람이 바로 저이니, 저 자신이 가장 효험 있는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무엇 하나 거절하신 적 없는 어머니시니, 모든 비탄이 고집스럽기는 하지만 이것만큼은 거절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어머니의 그리움에 제가 끝을 정해 드리는 일 말입니다.

2 보십시오, 제가 어머니의 너그러움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슬픔이야말로 불행한 사람에게 무엇보다 힘센 것이지만, 어머니께는 제가 어머니의 슬픔보다 더 힘이 있으리라는 것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슬픔과 맞붙지 않고, 먼저 슬픔 편에 서서 슬픔을 북돋울 것들을 들이밀겠습니다. 이미 아문 상처까지 모두 꺼내 다시 헤집어 놓겠습니다. 누군가는 말할 것입니다. "잊힌 불행을 다시 불러내고, 불행 하나도 겨우 견디는 마음을 제가 겪은 온갖 고난 앞에 세워 놓다니, 이것이 무슨 위로인가?" 그러나 그 사람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약을 이겨 낼 만큼 독해진 병은 대개 거꾸로 된 약으로 다스린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의 마음 앞에 어머니가 겪은 온갖 애도와 온갖 상복을 갖다 대겠습니다. 이것은 부드럽게 다독이는 치료가 아니라 지지고 째는 치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얻겠느냐고요? 그토록 많은 불행을 이겨 낸 마음이, 흉터투성이인 몸에 난 상처 하나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오랜 행운에 무르고 여린 마음이 힘을 잃은 사람들은 오래도록 울고 탄식하게 두십시오. 아주 가벼운 해가 건드려도 무너지게 두십시오. 그러나 평생을 재앙 속에 보낸 사람이라면 가장 무거운 일도 굳세고 흔들림 없는 의연함(constantia)으로 견뎌야 합니다. 끊이지 않는 불운에도 좋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늘 괴롭히는 사람을 마침내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운은 어머니께 가장 무거운 슬픔에서 쉴 틈을 한 번도 주지 않았고, 어머니가 태어나신 날조차 비켜 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태어나자마자, 아니 태어나시는 그 순간에 친어머니를 여의셨고, 말하자면 버려진 채 삶에 내놓이셨습니다. 어머니는 계모 밑에서 자라셨습니다. 딸에게서도 보기 드문 온갖 순종과 효성으로 그 계모를 기어이 어머니로 만드셨지만, 좋은 계모라도 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은 사람은 없습니다. 어머니는 더없이 다정하시고 훌륭하고 용감하셨던 외삼촌을,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던 중에 잃으셨습니다. 그리고 운은 잔인함을 나누어 덜 아프게 하지 않으려는 듯, 서른 날이 채 지나기도 전에 어머니가 세 자식을 낳아 드린 사랑하는 남편을 묻게 했습니다. 애도하시는 어머니께 또 다른 애도의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때 자식들은 하나같이 곁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슬픔이 기댈 곳이 하나도 없도록 일부러 그때에 불행을 몰아넣은 듯했습니다. 어머니를 쉴 새 없이 덮친 그 숱한 위험과 그 숱한 두려움은 넘어가겠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어머니는 손자 셋을 품에서 떠나보냈던 바로 그 품에 손자 셋의 뼈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 안에서, 어머니의 입맞춤 속에서 숨진 제 아들을 묻으신 지 스무 날이 채 안 되어, 제가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1. 어머니께 아직 없던 일이 이것이었습니다. 산 사람을 두고 애도하는 일 말입니다.

3 어머니의 몸에 내려앉은 상처 가운데 이번의 새 상처가 가장 무겁다는 것을 저도 인정합니다. 살갗 겉만 찢은 것이 아니라 가슴과 속까지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나 신병은 조금만 다쳐도 소리를 지르고 칼보다 의사의 손을 더 무서워하지만, 노련한 병사는 몸이 깊이 꿰뚫려도 남의 몸인 양 신음 한 번 없이 고름을 짜내게 두듯이, 어머니도 이제는 굳세게 치료에 몸을 맡기셔야 합니다. 울부짖음과 통곡과, 여자의 슬픔이 흔히 소란을 피우는 그 밖의 짓들은 치우십시오. 아직도 불행을 견디는 법을 배우지 못하셨다면 그 많은 불행을 헛되이 겪으신 셈입니다. 제가 어머니를 겁 없이 대한 것 같지 않습니까? 저는 어머니의 불행 가운데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쌓아 올려 어머니 앞에 내놓았습니다.

4 저는 담대하게 그리했습니다. 어머니의 슬픔을 둘러 가지 않고 이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저는 이렇게 이길 것입니다. 먼저, 제가 남에게 불행하다는 말을 들을 만한 일은 하나도 겪고 있지 않으며, 하물며 제 가까운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들 만한 일은 더욱 겪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어머니께로 넘어가, 온통 제 처지에 매달린 어머니의 처지 또한 무겁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어머니의 효심이 듣고 싶어 하시는 것부터 다루겠습니다. 저에게는 나쁜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께서 저를 짓누른다고 여기시는 바로 그 일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믿으실 수 없다 해도, 사람들을 흔히 불행하게 만드는 일들 속에서 제가 행복하다면 저는 저 자신이 더 마음에 들 것입니다. 저에 관해서는 남의 말을 믿으실 까닭이 없습니다. 불확실한 소문에 어머니가 흔들리지 않으시도록 제가 직접 말씀드립니다. 저는 불행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 더 근심 없으시도록 하나 덧붙이겠습니다. 저는 불행해질 수조차 없습니다.

5 우리는 좋은 조건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조건을 저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자연은 잘 사는 데 큰 채비가 필요 없도록 해 두었습니다. 누구나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바깥에서 오는 것들은 무게가 가볍고, 어느 쪽으로든 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좋은 일이 현자를 들뜨게 하지도 않고 나쁜 일이 현자를 주저앉히지도 않습니다. 현자는 늘 가장 많은 것을 자기 안에 두고, 모든 기쁨을 자기에게서 구하려고 애써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다는 말입니까? 제가 현자라는 말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세울 수 있다면 저는 제가 불행하지 않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보다 운 좋은 사람이며 신 가까이 이른 사람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지금 저는 모든 불행을 누그러뜨리기에 넉넉한 일을 했습니다. 현자들에게 저를 맡긴 것입니다. 아직 제 힘으로 저를 지킬 만큼 굳세지 못해서, 자기 자신과 자기 사람들을 쉽게 지켜 내는 이들의 진영으로, 남의 진영으로 피신한 것입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초소에 배치된 병사처럼 늘 서 있으라고, 운이 꾀하는 일과 운의 기습을 그것이 들이닥치기 훨씬 전에 내다보라고 일렀습니다. 운은 갑자기 당하는 사람에게나 무겁고, 늘 기다리는 사람은 쉽게 견딥니다. 적의 습격도 방심한 사람을 덮칠 때 쓰러뜨리는 법이고, 전쟁이 나기 전에 다가올 전쟁을 채비해 둔 사람들은 대열을 갖추고 무장한 채 가장 요란한 첫 일격을 쉽게 받아 냅니다. 저는 운이 평화를 지키는 듯 보일 때에도 운을 결코 믿지 않았습니다. 운이 더없이 너그럽게 저에게 베풀어 준 것들, 돈과 관직과 세력은 모두 운이 저를 흔들지 않고도 도로 가져갈 수 있는 자리에 놓아두었습니다. 저는 그것들과 저 사이에 넓은 틈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운은 그것들을 가져갔을 뿐 뜯어 가지는 못했습니다. 좋은 운에 속은 사람이 아니면 나쁜 운에 짓밟히지 않습니다. 운의 선물을 영원한 제 것인 양 사랑하고, 그것 때문에 우러름을 받고 싶어 한 사람들은, 헛되고 거짓된 그 노리개들이 온갖 단단한 즐거움을 모르는 헛되고 어린애 같은 마음을 저버리고 떠나갈 때 쓰러져 비탄에 잠깁니다. 그러나 좋은 일에 우쭐하지 않은 사람은 일이 바뀌어도 움츠러들지 않습니다. 이미 굳건함을 시험받은 그 사람은 두 처지 어느 쪽에서도 꺾이지 않는 마음을 지킵니다. 행운 속에 있을 때 이미 무엇이 불운에 맞서 힘을 쓰는지 겪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두가 바라는 것들에 참된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늘 생각해 왔고, 그것들을 들여다보니 속은 비고 그럴싸하게 속이는 칠만 덧바른 채 안에는 겉모습과 닮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제 나쁜 일이라고 불리는 것들 속에서도 저는 뭇사람의 생각이 을러대던 만큼 무섭고 가혹한 것을 찾지 못합니다. 하기야 그 낱말부터가 무슨 믿음과 합의 같은 것 때문에 귀에 더 거칠게 들리고, 듣는 사람을 무슨 슬프고 저주받은 것처럼 칩니다. 인민이 그렇게 정했으니까요. 그러나 인민의 결의를 현자들은 대부분 폐지합니다.

6 그러니 겉모습만 보고 그럴듯하면 믿어 버리는 뭇사람의 판단은 치워 두고, 추방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추방이란 곧 사는 곳을 바꾸는 일입니다. 제가 추방의 힘을 깎아내리고 그 안의 가장 나쁜 것을 빼놓는다고 보이지 않도록 말씀드리자면, 사는 곳을 바꾸는 이 일에는 가난과 치욕과 멸시라는 불편이 뒤따릅니다. 그것들과는 나중에 맞붙겠습니다. 우선은 사는 곳을 바꾸는 일 자체가 무엇이 그리 쓰라린지부터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조국을 잃는 것은 견딜 수 없다." 자, 이 엄청난 도시의 지붕들도 겨우 감당할 만큼 북적이는 이 무리를 보십시오. 그 무리의 대부분은 조국을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치 도시와 식민 도시에서, 아니 온 세상에서 이리로 흘러들었습니다. 누구는 야망에 끌려왔고, 누구는 공무가 불러서 왔고, 누구는 사절로 보내져서 왔고, 누구는 악덕을 채우기에 알맞고 넉넉한 곳을 찾는 사치 때문에 왔고, 누구는 학문을 배우고 싶어서 왔고, 누구는 구경거리 때문에 왔습니다. 어떤 이는 우정에 끌려왔고, 어떤 이는 덕을 펼쳐 보일 넓은 마당을 찾은 부지런함에 끌려왔습니다. 어떤 이는 팔 수 있는 미모를 들고 왔고, 어떤 이는 팔 수 있는 웅변을 들고 왔습니다. 덕에도 악덕에도 큰 값을 매기는 이 도시로 몰려들지 않은 부류의 사람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을 모두 이름으로 불러내어 저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게 하십시오. 대부분이 제 터전을 버리고, 더없이 크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자기 것은 아닌 도시로 왔다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모두의 도시라 할 만한 이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들을 두루 돌아보십시오. 낯선 땅에서 온 무리가 큰 몫을 차지하지 않은 도시는 하나도 없습니다. 자리가 아름답고 땅이 알맞아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곳들은 지나쳐, 황량한 곳과 더없이 거친 섬들, 스키아토스섬과 세리포스섬, 기아로스섬과 코수라섬2을 살펴보십시오. 누군가 제 마음이 좋아서 머물지 않는 추방지는 하나도 찾지 못하실 것입니다. 이 바위섬보다 더 헐벗고, 사방이 더 깎아지른 곳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먹을거리를 보면 이보다 더 메마른 곳이 있겠습니까? 사람을 보면 이보다 더 사나운 곳이, 땅의 생김새를 보면 이보다 더 험한 곳이, 날씨를 보면 이보다 더 고르지 못한 곳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여기에는 토박이보다 다른 데서 온 사람이 더 많이 삽니다. 사는 곳을 바꾸는 일 자체는 이곳조차 몇몇 사람을 조국에서 끌어올 만큼 그리 무겁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사는 곳을 바꾸고 거처를 옮기고 싶어 하는 타고난 들썩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정신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가만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신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흩어지며, 아는 것이든 모르는 것이든 모든 것으로 생각을 내보냅니다. 떠돌기를 좋아하고 쉬기를 못 견디며, 새로운 것을 무엇보다 반깁니다. 정신이 처음 어디서 왔는지 보시면 놀라지 않으실 것입니다. 정신은 땅에 속한 무거운 몸으로 빚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의 숨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속한 것들의 본성은 늘 움직이며, 달아나고, 더없이 빠르게 내달립니다. 우주를 비추는 별들을 보십시오. 그 가운데 멈추어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해는 쉬지 않고 미끄러져 가며 자리에서 자리로 옮기고, 우주와 함께 돌면서도 우주와는 거꾸로 움직여 황도의 모든 자리를 두루 지나며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해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닙니다. 모든 것은 늘 돌고 늘 지나가는 중입니다. 법과 자연의 필연이 정한 대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가고, 정해진 햇수 동안 제 궤도를 다 돌고 나면 왔던 길을 다시 갑니다. 그러니 이제 가서, 신적인 것들을 이루는 바로 그 씨앗으로 지어진 사람의 마음이 옮겨 가고 떠도는 것을 언짢아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신의 본성은 끊임없이 재빠르게 바뀌는 데서 즐거움을 얻거나 그렇게 해서 제 몸을 지키는데도 말입니다.

7 자, 이제 하늘의 것들에서 사람의 일로 눈을 돌려 보십시오. 민족들과 백성들이 통째로 사는 곳을 바꾼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야만인들의 땅 한가운데에 그리스 도시들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인도인과 페르시아인 사이에서 마케도니아 말이 들리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스키타이와, 사납고 길들지 않은 민족들이 사는 그 넓은 땅이 흑해 연안에 들어선 아카이아의 도시들을 내보입니다. 끝없는 겨울의 혹독함도, 제 하늘을 닮아 거친 사람들의 기질도 집을 옮겨 오는 사람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아시아에는 아테네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살고, 밀레토스는 일흔다섯 도시를 채울 만한 백성을 사방으로 쏟아 냈습니다. 아래쪽 바다에 씻기는 이탈리아 해안은 통째로 대(大)그리스였습니다. 아시아는 에트루리아인을 제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티레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카르타고인은 히스파니아에 삽니다. 그리스인은 갈리아로 밀고 들어갔고, 갈리아인은 그리스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피레네산맥도 게르만족이 넘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길 없는 곳으로, 알지 못하는 곳으로 사람의 들뜬 마음은 떠돌았습니다. 그들은 자식과 아내와 늙어 몸이 무거운 부모를 끌고 갔습니다. 어떤 이들은 오래 떠돌며 시달리다 판단해서 고른 것이 아니라 지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고, 어떤 이들은 무기로 남의 땅에 제 권리를 세웠습니다. 어떤 민족은 모르는 땅을 찾아가다 바다에 삼켜졌고, 어떤 민족은 온갖 것이 모자라 더 갈 수 없게 된 바로 그곳에 눌러앉았습니다. 조국을 떠나 새 조국을 찾은 까닭도 모두 같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는 적의 무기에 도시가 무너져 겨우 빠져나와 가진 것을 다 빼앗긴 채 남의 땅으로 쫓겨났고, 누구는 집안싸움에 밀려났고, 누구는 사람이 넘치도록 불어나 짐을 덜려고 내보내졌고, 누구는 역병이나 잦은 지진이나 그 밖에 메마른 땅의 견딜 수 없는 흠 때문에 내쫓겼고, 어떤 이들은 기름지다고 부풀려 칭찬하는 땅의 소문에 홀렸습니다. 저마다 다른 까닭이 사람들을 집에서 불러냈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태어난 자리에 그대로 머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쉬지 않고 이리저리 내닫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날마다 무언가가 바뀝니다. 새 도시의 주춧돌이 놓이고, 앞선 민족들이 사라지거나 더 강한 민족에게 흡수되면서 새 민족의 이름이 생겨납니다. 백성들이 이렇게 통째로 옮겨 가는 것이 나라 전체가 당하는 추방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어머니를 이토록 멀리 돌려 끌고 다닐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파타비움(오늘날의 파도바)을 세운 안테노르와, 테베레강 기슭에 아르카디아 사람들의 왕국을 세운 에우안드로스를 하나하나 늘어놓아 무엇 하겠습니까? 디오메데스와, 트로이 전쟁이 이긴 자도 진 자도 함께 낯선 땅으로 흩어 놓은 다른 이들을 늘어놓아 무엇 하겠습니까? 로마 제국도 그 창건자로 추방된 사람을 돌아봅니다3. 조국이 함락되자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을 이끌고 달아나, 필요와 승자에 대한 두려움에 쫓겨 먼 땅을 찾다가 이탈리아에 닿은 사람입니다. 그 뒤로 이 백성은 얼마나 많은 식민시를 모든 속주로 보냈습니까! 로마인은 이긴 곳이면 어디서든 삽니다. 사는 곳을 이렇게 바꾸는 일에 사람들은 기꺼이 이름을 올렸고, 늙은이도 제 제단을 버리고 바다 건너 정착민들을 따라갔습니다. 이 일은 더 많이 늘어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도 눈앞에 들이닥치는 것 하나만은 덧붙이겠습니다. 바로 이 섬도 벌써 여러 번 사는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세월이 덮어 버린 더 오랜 일은 넘어가더라도, 포키스를 떠나 지금 마실리아에 사는 그리스인들4이 먼저 이 섬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들을 이 섬에서 떠나게 한 것이 무거운 날씨였는지,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힘센 이탈리아였는지, 항구 하나 없는 바다의 생김새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사나워서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이 그때 더없이 거칠고 다스려지지 않던 갈리아 백성들 사이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으니까요. 그 뒤로 리구리아인이 이 섬으로 건너왔고, 히스파니아인도 건너왔습니다. 풍습이 닮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칸타브리아인과 같은 머리쓰개와 같은 신발을 쓰고, 몇몇 낱말도 같습니다. 말 전체는 그리스인과 리구리아인과 섞여 지내며 조상의 말에서 멀어졌습니다. 그 뒤에 로마 시민의 식민시 둘이 들어섰는데, 하나는 마리우스가, 하나는 술라가 세웠습니다. 이 메마르고 가시덤불 무성한 바위섬의 주민은 이토록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요컨대 지금도 토박이가 사는 땅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뒤섞였고 다른 데서 옮겨 심은 것들입니다. 한 무리가 다른 무리의 뒤를 이었습니다. 이 무리는 저 무리가 싫증 낸 것을 탐냈고, 저 무리는 남을 쫓아낸 곳에서 다시 쫓겨났습니다. 운명은 이렇게 정했습니다. 어떤 것의 운도 늘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하기로 말입니다.

8 추방에 따르는 다른 불편은 빼고 사는 곳을 바꾸는 일 자체에 맞서는 약으로는, 로마인 가운데 가장 박식한 바로는 이것이면 넉넉하다고 봅니다. 어디로 가든 같은 자연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르쿠스 브루투스5는 추방되어 떠나는 사람도 제 덕을 지니고 갈 수 있다는 것이면 넉넉하다고 봅니다. 누가 이 둘을 하나씩 떼어 보고는 추방된 사람을 위로하기에 모자란다고 판단하더라도, 둘을 하나로 모으면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우리가 잃는 것이 얼마나 하찮습니까! 가장 아름다운 두 가지는 우리가 어디로 옮겨 가든 따라올 것입니다. 모두에게 같은 자연과 저마다의 덕 말입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우주를 빚은 이가 누구든, 만물을 다스리는 신이든, 거대한 작품을 지어낸 몸 없는 이성이든, 가장 큰 것에서 가장 작은 것까지 고르게 힘을 뻗치며 모든 것에 스며든 신성한 숨이든, 운명, 곧 서로 맞물린 원인들이 바뀌지 않고 이어지는 사슬이든,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는 가장 하찮은 것들 말고는 무엇도 남의 손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 두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은 사람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어서,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습니다. 자연이 낳은 것 가운데 이보다 크고 이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는 이 우주와, 우주를 바라보고 우러르는, 우주의 가장 빛나는 부분인 마음은 우리 것이며 영원하고, 우리가 남아 있는 한 우리와 함께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기운차게 허리를 펴고, 일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든 두려움 없는 걸음으로 서둘러 가서 어느 땅이든 끝까지 밟아 봅시다. 우주 안에서는 어떤 추방지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우주 안에 있는 것 가운데 사람에게 낯선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든 하늘로 올려다보는 눈길은 똑같고, 신적인 것은 모두 사람의 것과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제 눈이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는 저 구경거리에서 떼어 놓이지만 않는다면, 해와 달을 바라보고 다른 별들에 눈을 붙박을 수 있다면, 별들이 뜨고 지는 것과 그 간격과 어떤 별은 빠르고 어떤 별은 느리게 가는 까닭을 캐물을 수 있다면, 밤새 반짝이는 그 많은 별을, 어떤 것은 움직이지 않고 어떤 것은 멀리 나가지 않고 제 발자국 안에서 맴돌며 어떤 것은 갑자기 터져 나오고 어떤 것은 불을 쏟으며 떨어지는 듯 눈을 부시게 하고 어떤 것은 긴 꼬리를 끌며 환한 빛으로 날아 지나가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면, 사람에게 허락된 만큼 그것들과 함께 있으며 하늘의 것들과 어울릴 수 있다면, 제 핏줄인 것들을 바라보려는 마음을 늘 높은 곳에 둘 수 있다면, 제가 밟는 땅이 어디인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9 "그러나 이 땅은 열매 맺는 나무도, 보기 좋은 나무도 자라지 않는다. 크고 배가 다닐 만한 강줄기가 적셔 주지도 않는다. 다른 민족들이 찾는 것은 아무것도 나지 않고, 사는 사람들 먹을 것도 겨우 낸다. 여기서는 값진 돌을 캐지도 않고 금맥이나 은맥을 파내지도 않는다." 땅의 것에 즐거워하는 마음은 좁은 마음입니다. 어디서나 똑같이 드러나고 어디서나 똑같이 빛나는 것들로 마음을 데려가야 합니다. 또 이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땅의 것들은 거짓되고 그릇되게 믿은 탓에 참된 좋은 것들을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랑을 길게 늘일수록, 탑을 높이 세울수록, 동네를 넓게 펼칠수록, 여름 피서용 동굴을 깊이 팔수록, 연회장 지붕을 더 큰 덩어리로 올릴수록, 그들에게서 하늘을 가리는 것이 그만큼 많아질 것입니다. 우연이 내던진 곳이 오두막이 가장 호사스러운 거처인 땅이라 합시다. 그런데 로물루스의 오두막6을 알기에 그 처지를 꿋꿋이 견딘다면, 그 사람은 마음이 좁고 구차하게 스스로를 달래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 초라한 움막도 덕은 맞아들이지 않는가? 정의와 절제와 분별과 효성과, 온갖 의무를 바르게 나누어 치르는 이치와, 사람의 일과 신의 일에 대한 앎이 이곳에 보인다면, 이 움막은 어떤 신전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이토록 큰 덕의 무리를 품는 곳은 결코 좁지 않다. 이런 일행과 함께 갈 수 있는 추방은 결코 무겁지 않다." 브루투스는 덕에 관해 쓴 책에서, 미틸레네에서 추방 생활을 하는 마르켈루스7를 보았는데 사람의 본성이 허락하는 한 더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고, 그때만큼 학문에 열심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마르켈루스를 추방지에 남겨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르켈루스 없이 돌아가는 자기가 추방되는 것만 같았다고 덧붙입니다. 아, 나라에서 집정관직을 인정받았을 때보다 브루투스에게 추방을 인정받았을 때 마르켈루스는 얼마나 더 운이 좋았습니까! 추방된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만으로 누군가 스스로를 추방된 사람처럼 느끼게 했으니, 그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습니까! 자기 외삼촌 카토마저 우러를 만한 사람을 자기를 우러르게 만들었으니, 그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습니까! 같은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미틸레네를 그냥 지나쳤다고 말합니다. 몰골이 망가진 그 사람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원로원은 그를 돌아오게 해 달라고 다 함께 나서서 간청해 그의 귀환을 얻어 냈습니다. 그날 원로원은 몹시 애태우고 슬퍼해서 모두가 브루투스와 같은 마음인 것처럼 보였고, 마르켈루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 빌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없이 남아 있다면 자기들이 추방된 사람이 될 것 같았으니까요. 그러나 마르켈루스는 브루투스가 추방된 그를 차마 두고 떠날 수 없었고 카이사르가 차마 그를 볼 수 없었던 그날, 훨씬 더 큰 것을 얻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의 증언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브루투스는 마르켈루스 없이 돌아가는 것을 괴로워했고, 카이사르는 얼굴을 붉혔습니다. 그토록 대단한 사람이 추방을 담담하게 견디라고 스스로를 자주 이렇게 다독였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십니까? "조국을 잃었다고 해서 비참한 것은 아니다. 너는 현자에게는 어느 곳이든 조국이라는 것을 알 만큼 학문을 몸에 익혔다. 그뿐인가? 너를 쫓아낸 이 사람도 열 해 내내 조국을 떠나 있지 않았느냐? 물론 제국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조국을 떠나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지금 보아라. 다시 일어나는 전쟁의 위협으로 가득한 아프리카가 그를 끌어당기고, 꺾이고 짓밟힌 당파를 다시 일으키는 히스파니아가 그를 끌어당기고, 믿을 수 없는 이집트가 그를 끌어당기고, 흔들리는 제국의 틈을 노리는 온 세상이 그를 끌어당긴다. 그는 무엇부터 맞서겠느냐? 어느 쪽에 먼저 버티고 서겠느냐? 그의 승리가 그를 온 땅으로 몰고 다닐 것이다. 민족들은 그를 우러르고 섬기라고 해라. 너는 브루투스가 너를 우러러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라."

10 마르켈루스는 이렇게 추방을 잘 견뎠고, 사는 곳이 바뀌어도 그의 마음에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가난이 뒤따랐는데도 말입니다. 모든 것을 뒤엎는 탐욕과 사치의 광기에 아직 빠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난에는 나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얼마나 적습니까! 덕을 조금이라도 지닌 사람에게 그것이 모자랄 수 있겠습니까? 저로 말하자면, 제가 잃은 것은 재산이 아니라 분주함이라는 것을 압니다. 몸이 바라는 것은 보잘것없습니다. 추위를 막고, 먹고 마셔 배고픔과 목마름을 달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밖에 탐내는 것은 쓸모가 아니라 악덕을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깊은 바다를 샅샅이 뒤질 필요도, 짐승을 떼로 잡아 배를 채울 필요도, 가장 먼 바다의 알지 못하는 해안에서 조개를 캐낼 필요도 없습니다. 이토록 미움 살 만큼 넓은 제국의 경계를 사치로 넘어서는 자들은 신들과 여신들이 멸하시기를! 그들은 허세 부리는 식탁을 차리려고 파시스강 너머에서 잡아 오기를 바라고, 아직 원수도 갚지 못한 파르티아인에게서 새를 구해 오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물릴 대로 물린 목구멍을 위해 아는 것이란 아는 것은 사방에서 실어 오고, 쾌락에 늘어진 위장이 겨우 받아들일 것을 가장 먼 대양에서 날라 옵니다. 그들은 먹으려고 게우고, 게우려고 먹습니다. 온 세상을 뒤져 구한 요리를 소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업신여기는 사람에게 가난이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 이런 것을 탐내는 사람에게는 가난이 오히려 이롭습니다. 원치 않아도 병이 낫기 때문입니다. 억지로도 약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할 수 없는 동안에는 원하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자연이 가장 높은 처지에서 가장 큰 악덕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려고 낳은 듯한 칼리굴라8는 하루 저녁 식사에 1,00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썼습니다. 이 일에 모든 사람의 재주를 빌렸는데도 속주 세 곳의 공물을 한 끼 식사로 만들 방도를 겨우 찾아냈습니다. 아, 값비싼 음식이 아니면 입맛이 돋지 않는 가엾은 사람들이여! 음식을 값비싸게 만드는 것은 뛰어난 맛도 목구멍을 녹이는 달콤함도 아니고, 귀하고 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건전한 정신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배를 섬기는 그 많은 기술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장사는 무슨 소용이며, 숲을 망가뜨리는 것은, 바다 밑을 뒤지는 것은 무슨 소용입니까? 자연이 곳곳에 마련해 둔 먹을거리가 어디에나 널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먼 사람처럼 그것을 지나쳐 온 땅을 헤매고 바다를 건너며, 적은 것으로 허기를 달랠 수 있는데도 많은 것으로 허기를 부추깁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여러분은 어찌하여 배를 띄웁니까? 어찌하여 짐승에게도 사람에게도 손에 무기를 듭니까? 어찌하여 그토록 요란하게 이리저리 내닫습니까? 어찌하여 재산에 재산을 쌓습니까? 여러분의 몸이 얼마나 작은지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토록 적은 것밖에 담지 못하면서 많은 것을 탐내는 것은 광기요 정신의 마지막 착란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재산을 늘리고 경계를 넓혀도 여러분의 몸을 늘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장사가 잘되고, 군 복무가 큰 이득을 가져다주고, 사방에서 찾아낸 음식이 모여들어도, 여러분은 그 차려 놓은 것들을 넣어 둘 곳이 없을 것입니다. 무엇하러 그토록 많은 것을 그러모읍니까? 그 덕이 지금도 우리의 악덕을 떠받치고 있는 우리 조상들은 불행했단 말입니까? 그들은 제 손으로 먹을 것을 마련했고, 땅바닥이 잠자리였으며, 그들의 지붕은 아직 금으로 번쩍이지 않았고 그들의 신전은 아직 보석으로 빛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흙으로 빚은 신들을 걸고 경건하게 맹세했고, 그 신들을 부르며 맹세한 사람들은 맹세를 어기지 않으려고 죽을 줄 알면서도 적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삼니움인 사절들을 맞으면서 화롯가에서 더없이 값싼 음식을 제 손으로 뒤집던 우리 독재관9이, 이미 여러 번 적을 쳤고 카피톨리움 유피테르의 무릎에 월계관을 올려놓은 바로 그 손으로 음식을 뒤집던 그 사람이, 우리 시대에 살았던 아피키우스10보다 덜 행복하게 살았단 말입니까? 아피키우스는 한때 철학자들이 젊은이를 타락시킨다며 쫓겨난 바로 그 도시에서 요리의 학문을 가르친다고 나서서 제 가르침으로 한 시대를 물들였습니다." 그의 최후는 알아 둘 만합니다. 그는 1억 세스테르티우스를 부엌에 쏟아붓고, 군주들이 내린 그 많은 하사금과 카피톨리움의 막대한 세입을 술판 한 번에 하나씩 다 들이켠 끝에 빚에 짓눌리자, 그때 처음으로 억지로 장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1,000만 세스테르티우스가 남으리라고 셈하고는, 1,000만 세스테르티우스로 사는 것은 마지막 굶주림 속에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듯이 독약으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1,00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궁핍으로 여겼다니 얼마나 대단한 사치입니까! 그러니 이제 가서, 중요한 것은 마음의 크기가 아니라 돈의 크기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1,00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무서워했고, 남들은 소원으로 빌어 구하는 것을 독약을 마셔 피해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비뚤어진 정신을 지닌 사람에게는 그 마지막 한 모금이 가장 몸에 좋은 약이었습니다. 엄청난 잔치를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자랑하고, 제 악덕을 뽐내고, 나라를 제 사치로 끌어들이고, 나쁜 본보기가 없어도 제 발로 잘 배우는 젊은이들을 꾀어 흉내 내게 하던 그때야말로 그는 독을 먹고 독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재산을 정해진 한도가 있는 이성(ratio)에 맞추지 않고, 헤아릴 수 없이 한없이 제멋대로인 나쁜 버릇에 맞추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탐욕에게는 무엇도 넉넉하지 않고, 자연에게는 적은 것도 넉넉합니다. 그러니 추방된 사람의 가난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아무리 궁한 추방지라도 사람 하나 먹여 살리기에는 넉넉히 기름지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나 추방된 사람은 옷과 집을 그리워할 것이다." 이것도 쓸 만큼만 그리워할 것입니다. 지붕도 옷도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몸은 먹이는 데와 마찬가지로 덮는 데에도 적은 것이면 됩니다. 자연은 사람에게 꼭 필요하게 만든 것을 어느 하나도 힘들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줏빛 조개 물감에 흠뻑 물들이고 금실을 엮어 넣고 갖가지 빛깔과 솜씨로 수놓은 옷을 그리워합니다. 이런 사람은 운의 잘못이 아니라 제 잘못으로 가난합니다. 그가 잃은 것을 모두 되돌려 주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되돌려 받은 그 사람이 탐내는 것에서 모자라는 몫이, 추방된 사람이 가졌던 것에서 모자라는 몫보다 클 테니까요. 그러나 그는 금 그릇으로 번쩍이는 세간을, 옛 장인들의 이름 덕에 이름난 은그릇을, 몇몇 사람의 광기 덕에 값비싸진 청동 그릇을, 아무리 큰 집이라도 비좁게 만들 만큼 많은 노예를, 억지로 먹여 살찌운 짐승들을, 온갖 민족의 돌을 그리워합니다. 이런 것을 아무리 쌓아 올려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결코 채우지 못할 것입니다. 모자라서가 아니라 속이 타서 생긴 갈증은 어떤 물로도 달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목마름이 아니라 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돈이나 먹을 것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모자라서가 아니라 악덕에서 생겨나는 바람은 모두 같은 성질을 지닙니다. 거기에 무엇을 쌓아 주든 욕망의 끝이 아니라 한 계단이 될 뿐입니다. 그러니 자연의 한도 안에 머무는 사람은 가난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자연의 한도를 넘는 사람은 아무리 큰 부를 누려도 가난이 따라다닐 것입니다. 꼭 필요한 것에는 추방지로도 넉넉하고, 쓸데없는 것에는 왕국으로도 모자랍니다.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추방지까지 따라오고, 더없이 거친 황야에서도 몸을 지탱할 만큼만 찾아내면 제 좋은 것을 넘치도록 누립니다. 돈은 마음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불멸의 신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지 못하고 제 몸에 너무 매인 사람들이 우러르는 이 모든 것, 돌과 금과 은과 크고 반들반들한 둥근 식탁은 땅의 무게일 뿐입니다. 순수하고 제 본성을 잊지 않은 영혼은 이런 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영혼은 그 자체로 가볍고 거칠 것이 없으며, 언젠가 풀려나면 가장 높은 곳으로 솟구쳐 오를 것입니다. 그동안에도 영혼은 굼뜬 팔다리와 둘레를 감싼 이 무거운 짐이 허락하는 만큼 빠르고 날랜 생각으로 신적인 것들을 두루 살핍니다. 그러니 영혼은 결코 추방될 수 없습니다. 자유롭고, 신들과 핏줄이 닿으며, 온 우주와 모든 시대에 맞먹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생각은 온 하늘을 두루 돌고, 지나간 모든 때와 다가올 모든 때로 뻗어 나갑니다.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요 사슬인 이 하찮은 몸은 이리저리 내던져집니다. 형벌도, 강도질도, 병도 이 몸에 가해집니다. 그러나 영혼 자체는 거룩하고 영원하며, 아무도 손을 댈 수 없습니다.

12 아무도 무겁게 느끼지 않는 가난, 무겁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무겁게 느끼는 가난의 불편을 덜어 보이려고 제가 현자들의 가르침만 빌린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도록, 먼저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얼마나 더 많은지 보십시오. 그들이 부자들보다 조금도 더 슬퍼하거나 근심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아니, 마음이 흩어질 데가 적은 만큼 오히려 더 즐겁지 않은가 싶습니다. 이제 부자들에게로 넘어가 봅시다. 그들이 가난한 사람과 다름없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행하는 사람은 짐을 덜어 내고, 길이 급할 때마다 따르는 무리를 돌려보냅니다. 군 복무를 하는 사람은 가진 것의 몇 분의 일이나 지니고 다닙니까? 군영의 규율이 온갖 짐을 치워 버리니 말입니다. 때와 장소가 궁해서만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과 같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부에 물리면 며칠씩 날을 잡아 땅바닥에서 저녁을 먹고, 금그릇 은그릇을 치우고 질그릇을 씁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 이따금 탐내는 것을 늘 두려워하다니. 아, 얼마나 짙은 안개가 그들의 정신을 덮고, 진리를 모르는 무지가 얼마나 깊이 그들을 〈…〉11 들볶습니까! 그들이 즐거움 삼아 흉내 내는 그것을 말입니다. 저로 말하자면 옛 본보기들을 돌아볼 때마다 가난을 두고 위안을 찾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시대의 사치가 얼마나 내리막을 굴렀는지, 이제는 추방된 사람의 노잣돈이 옛날 군주의 재산보다 많으니까요. 호메로스에게는 노예가 하나, 플라톤에게는 셋 있었고, 스토아학파의 엄격하고 사내다운 지혜를 처음 연 제논에게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비참하게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말 때문에 그가 모든 사람에게 가장 비참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 나라의 화합을 중재한 메네니우스 아그리파12는 사람들이 돈을 걷어 장사를 치러 주었습니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는 아프리카에서 카르타고인들을 무찌르던 때 원로원에 편지를 보내, 자기 품팔이꾼이 떠나 버려 농장이 버려졌다고 알렸습니다. 원로원은 레굴루스가 없는 동안 나라가 그 농장을 돌보기로 결의했습니다. 노예 하나 없는 대가로 로마 인민을 소작인으로 두었으니 그만한 값어치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스키피오13의 딸들은 아버지가 남긴 것이 하나도 없어서 국고에서 지참금을 받았습니다. 맹세코, 로마 인민이 카르타고에게서는 늘 공물을 거두었으니 스키피오에게 한 번쯤 공물을 바치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아, 로마 인민을 장인으로 둔 그 처녀들의 남편들은 얼마나 운이 좋았습니까! 무언극 배우인 딸들이 10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지참금으로 들고 시집가는 자들이, 후견인인 원로원에게서 지참금으로 묵직한 옛 청동 돈을 받은 스키피오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토록 빛나는 조상의 초상을 거느린 가난을 누가 업신여기겠습니까? 스키피오에게는 지참금이, 레굴루스에게는 품팔이꾼이, 메네니우스에게는 장례비가 모자랐고, 모자랐기에 오히려 더 명예롭게 채워졌는데, 추방된 사람이 무엇이 모자란다고 분해하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을 변호인으로 세우면 가난은 안전할 뿐 아니라 환영받기까지 합니다.

13 이렇게 대꾸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씩은 견딜 수 있어도 한데 모으면 견딜 수 없는 것들을 어찌하여 그토록 교묘하게 떼어 놓는가? 사는 곳을 바꾸기만 한다면 그것은 견딜 만하다. 가난도 치욕만 없다면 견딜 만하다. 그러나 치욕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을 짓눌러 버리곤 한다." 불행을 떼로 몰고 와 저를 겁주려는 사람이 누구든, 그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운의 어느 한 부분에 맞설 힘이 넉넉하다면 모든 부분에 맞설 힘도 넉넉할 것입니다. 덕이 한번 마음을 단단하게 하면 어느 쪽에서도 다치지 않게 지켜 줍니다. 인류의 가장 지독한 역병인 탐욕이 놓아주었다면 야망도 붙들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 날을 형벌이 아니라 자연의 법으로 바라본다면, 죽음의 두려움을 몰아낸 그 가슴에는 어떤 두려움도 감히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성욕이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종족을 잇기 위해 사람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한다면, 몸속 깊이 박힌 이 은밀한 파멸에 짓밟히지 않은 사람은 다른 모든 욕망도 건드리지 못하고 지나칠 것입니다. 이성은 악덕을 하나씩 쓰러뜨리지 않고 한꺼번에 모두 쓰러뜨립니다. 악덕은 한 번 꺾이면 통째로 꺾입니다." 모든 것을 제 안에 두고 뭇사람의 생각에서 물러난 현자가 치욕에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치욕스러운 죽음은 치욕보다 더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소크라테스는 한때 홀로 서른 참주를 꾸짖어 제자리에 앉혔던 바로 그 얼굴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치욕을 걷어 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있는 곳은 감옥으로 보일 수 없었으니까요. 마르쿠스 카토가 법무관과 집정관에 나섰다가 두 번 떨어진 것을 카토의 치욕이라고 생각할 만큼 진리를 보는 눈이 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카토를 맞아들였다면 영예를 얻었을 법무관직과 집정관직의 치욕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먼저 업신여긴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비굴하고 땅바닥에 내던져진 마음이 그런 모욕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가장 사나운 불행에 맞서 우뚝 서고, 남들을 짓누르는 불행을 거꾸로 뒤엎는 사람은 불행 자체를 거룩한 머리띠처럼 두릅니다. 우리는 꿋꿋하게 불행을 견디는 사람만큼 크게 우러러보는 것이 없으니까요. 아테네에서 아리스테이데스14가 처형장으로 끌려갈 때, 마주치는 사람마다 눈을 내리깔고 신음했습니다.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정의 자체가 벌을 받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 자가 있었습니다. 입이 깨끗한 사람이라면 아무도 감히 그런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언짢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굴을 닦고 미소 지으며 자기를 데려가는 관리에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에게 다음부터는 그렇게 버릇없이 하품하지 말라고 일러 주시오." 이것이야말로 모욕을 모욕한 일이었습니다. 업신여김보다 무거운 것은 없으며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에게 저는 추방도 대개 업신여김과는 거리가 멀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쓰러져도 위대하게 누워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무너진 신전의 잔해를 서 있는 신전 못지않게 섬기며 짓밟지 않듯, 그 사람도 업신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14 사랑하는 어머니, 제 일로는 어머니를 끝없는 눈물로 몰아넣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이제 어머니를 찌르는 것은 어머니 자신의 사정일 것입니다. 그 사정은 둘입니다. 무언가 버팀목을 잃으셨다는 생각이 어머니를 흔들거나, 그리움 자체를 견딜 수 없으시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앞의 것은 가볍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마음이 식구들에게서 식구들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일은 이런 어머니들이나 신경 쓰라고 하십시오. 자식의 권세를 여자의 무절제로 휘두르는 어머니들, 여자는 관직에 오를 수 없으니 자식을 통해 야심을 채우는 어머니들, 아들의 재산을 탕진하면서도 그 재산을 노리는 어머니들, 아들의 웅변을 남에게 빌려주어 지치게 하는 어머니들 말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자식들이 잘되는 것을 누구보다 기뻐하셨지만 누구보다 덜 누리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희의 씀씀이에는 늘 한도를 정하셨지만 어머니 자신의 씀씀이에는 한도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직 아버님 슬하에 계신 몸이면서도 넉넉한 아들들에게 오히려 먼저 보태 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희 재산을 돌보시되 어머니 것인 양 애쓰시고 남의 것인 양 손대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희의 세력을 남의 것 쓰듯 아끼셨고, 저희가 오른 관직에서 어머니께 돌아간 것은 기쁨과 비용뿐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한 번도 이득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무사할 때 한 번도 어머니 몫으로 여기지 않으셨던 것을, 아들을 빼앗기셨다고 이제 와서 아쉬워하실 수는 없습니다.

15 어머니의 슬픔이 지닌 참된 힘이 솟아나는 곳으로 제 위로를 모두 돌려야 하겠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아들을 안아 볼 수 없다. 그 얼굴을 볼 수도,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다. 그 아이를 보면 시름에 잠긴 얼굴이 풀리고 모든 걱정을 내려놓던 그 아이는 어디 있는가? 아무리 해도 물리지 않던 이야기는 어디 있는가? 여자로서보다 기꺼이, 어머니로서보다 허물없이 함께하던 그 공부는 어디 있는가? 반갑게 마주치던 그 일은 어디 있는가? 어머니를 보면 늘 어린아이처럼 반기던 그 얼굴은 어디 있는가?" 여기에 어머니께서는 함께 기뻐하고 함께 지내던 장소들을, 그리고 얼마 전까지 함께 지낸 흔적들, 마음을 들쑤시기에 더없이 효험 있는 그 흔적들을 덧붙이십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요. 운은 이 일에서도 어머니께 잔인한 꾀를 부렸습니다. 제가 쓰러지기 겨우 사흘 전에, 아무 근심 없이 이런 일은 꿈에도 두려워하지 않으시던 어머니를 떠나시게 했으니까요. 다행히 먼 거리가 우리를 떼어 놓았었고, 다행히 몇 해 떨어져 지낸 것이 이 불행에 대비하게 해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돌아오셨습니다. 아들에게서 기쁨을 얻으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에 길든 버릇을 잃으시려고 돌아오신 셈입니다. 훨씬 전에 떠나 계셨다면 거리가 그리움을 누그러뜨려 더 굳세게 견디셨을 것입니다. 떠나지 않으셨다면 적어도 아들을 이틀 더 보는 마지막 열매는 얻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잔인한 운명은 어머니께서 제 불행을 곁에서 함께하지도 못하시고 떨어져 지내는 데 길드시지도 못하게 일을 짜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혹할수록 어머니는 더 큰 덕을 불러내셔야 하고, 이미 잘 알고 이미 여러 번 이긴 적과 맞붙듯 더 매섭게 맞서셔야 합니다. 이 피는 상처 없던 몸에서 흐른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맞으신 곳은 바로 그 흉터 자리입니다.

16 여자라는 이름을 핑계로 삼으실 까닭이 없습니다. 여자에게는 눈물에 대해 거의 끝 모를 권리가 허락되어 있지만, 그래도 한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조상들은 남편을 잃고 슬퍼하는 여인들에게 열 달의 기한을 주어, 여인들의 끈질긴 비탄과 나라의 규정으로 타협을 보았습니다. 애도를 금하지 않고 끝을 정한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하나를 잃었을 때 끝없는 고통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응석이고, 아무 고통도 느끼지 않는 것은 사람답지 않은 냉혹함입니다. 정과 이성 사이에서 가장 좋은 조화는 그리움을 느끼되 눌러 두는 것입니다. 한번 받아들인 슬픔을 죽어서야 끝낸 몇몇 여인들을 보실 까닭은 없습니다(아들을 잃고 입은 상복을 끝내 벗지 않은 여인들을 어머니도 아시지요). 처음부터 더 굳세게 살아오신 어머니께는 삶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여자의 온갖 악덕과 거리가 멀었던 분에게 여자라는 핑계가 통할 리 없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악인 부정(不貞)도 어머니를 뭇 여인의 무리로 끌어들이지 못했습니다. 보석도 진주도 어머니를 꺾지 못했습니다. 부는 인류의 가장 큰 좋은 것인 양 어머니 눈앞에서 번쩍이지 않았습니다. 옛 법도를 지키는 엄한 집안에서 잘 자라신 어머니를, 착한 사람에게도 위험한 못된 자들의 흉내가 엇나가게 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많이 낳은 것을 나이를 들추는 일인 양 부끄러워하신 적이 없습니다. 아름다움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다른 여인들처럼 부른 배를 무슨 볼썽사나운 짐인 양 감추신 적도 없고, 배 속에 품은 아이의 희망을 짓눌러 없애신 적도 없습니다. 얼굴을 분과 꾸밈으로 더럽히신 적도 없습니다. 벗으나 입으나 더 드러낼 것도 없는 옷은 한 번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께는 오직 하나의 장식, 어느 나이에도 시들지 않는 가장 아름다운 아름다움, 가장 큰 자랑이 정숙함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는 슬픔을 붙들어 두려고 여자라는 이름을 내세우실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덕이 그 이름에서 어머니를 데려가 버렸으니까요. 어머니는 여자의 악덕에서 멀리 떨어져 계신 만큼 여자의 눈물에서도 떨어져 계셔야 합니다. 여자들조차 어머니가 상처에 몸이 녹아들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빛나는 덕으로 위대한 남자들 사이에 자리를 얻은 여인들을 보려 하신다면, 그 여인들은 꼭 필요한 비탄만 서둘러 마치고 일어나라고 어머니께 말할 것입니다. 운은 코르넬리아의 열두 자식을 둘로 줄여 놓았습니다. 코르넬리아의 장례를 세어 보면 열을 잃었고, 무게를 달아 보면 그라쿠스 형제를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코르넬리아는 곁에서 울며 그 운명을 저주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에게 그라쿠스 형제를 아들로 준 운을 탓하지 말라고 일렀습니다. 민회에서 "나를 낳은 내 어머니를 그대가 욕한단 말이오?" 하고 말한 아들15은 마땅히 이런 여인에게서 태어나야 했습니다. 제게는 어머니의 말이 훨씬 더 담대하게 들립니다. 아들은 그라쿠스 형제가 태어난 것을 귀하게 여겼고, 어머니는 그들의 죽음까지 귀하게 여겼으니까요. 루틸리아는 아들 코타16를 따라 추방지로 갔습니다. 아들을 그리워하기보다 추방을 견디는 편을 택할 만큼 정에 묶여 있었고, 아들과 함께가 아니면 조국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돌아와 나라에서 활짝 피어난 뒤에 아들을 잃었을 때, 루틸리아는 아들을 따라갈 때만큼 굳세게 견뎠습니다. 아들을 묻은 뒤로 루틸리아가 우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들이 쫓겨났을 때는 덕을, 아들을 잃었을 때는 분별을 보여 주었습니다. 무엇도 그 여인을 정에서 떼어 놓지 못했고, 무엇도 그 여인을 쓸데없고 어리석은 슬픔에 붙들어 두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이런 여인들 축에 드시기를 바랍니다. 늘 이 여인들의 삶을 본받아 오셨으니, 슬픔을 다잡고 억누르는 데서도 그들의 본보기를 따르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17 이 일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어떤 격정(affectus)도 우리를 섬기지 않으며, 슬픔에서 생겨난 격정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 격정은 사납고 어떤 약에도 고집을 부립니다. 우리는 이따금 그것을 눌러 묻고 신음을 삼키려 하지만, 애써 꾸민 얼굴 위로 눈물이 쏟아집니다. 이따금 경기나 검투사 구경으로 마음을 붙들어 두려 하지만, 마음을 딴 데로 돌리려는 그 구경거리 한가운데서도 그리움의 작은 흔적 하나가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니 슬픔은 속이기보다 이기는 편이 낫습니다. 속아서 쾌락이나 분주함에 끌려간 슬픔은 다시 일어나고, 쉬는 동안 오히려 날뛸 기세를 모읍니다. 그러나 이성에 굴복한 슬픔은 영원히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사람이 썼다고 알고 있는 방도를 어머니께 일러 드리지 않겠습니다. 먼 여행으로 마음을 붙들어 두시거나 아름다운 곳을 다니며 기분을 푸시라거나, 장부를 꼼꼼히 받아 보시고 재산을 관리하시는 데 시간을 많이 쓰시라거나, 늘 새 일에 몸을 얽어매시라는 것 말입니다. 그런 것은 모두 잠깐 도움이 될 뿐 슬픔을 고치는 약이 아니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저는 슬픔이 속기보다 그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운을 피해 달아나는 모든 사람이 피신해야 할 곳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렵니다. 학문입니다. 학문이 어머니의 상처를 낫게 할 것이고, 학문이 어머니에게서 모든 슬픔을 뽑아낼 것입니다. 학문에 한 번도 익숙해지지 않으셨더라도 지금은 학문에 기대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제 아버님의 옛 법도가 허락한 만큼, 온갖 좋은 학문을 다 익히지는 못하셨어도 맛은 보셨습니다. 더없이 훌륭한 분인 제 아버님께서 조상들의 관습에 덜 매이셔서, 어머니가 지혜의 가르침에 살짝 물드시기보다 깊이 배우시기를 바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랬다면 지금 운에 맞설 도움을 새로 마련하실 필요 없이 꺼내 쓰시기만 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글을 지혜가 아니라 사치를 위해 갖추는 여인들 때문에 아버님은 어머니가 학문에 깊이 빠지시도록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무엇이든 잘 빨아들이는 재능 덕분에 그 짧은 시간에 견주어 많은 것을 흡수하셨고, 온갖 학문의 주춧돌을 놓으셨습니다. 이제 그 학문으로 돌아가십시오. 학문이 어머니를 안전하게 지켜 드릴 것입니다. 학문이 위로해 드릴 것이고, 학문이 즐겁게 해 드릴 것입니다. 학문이 진정으로 어머니 마음에 들어오면 다시는 슬픔이 들어오지 못할 것이고, 근심도, 헛된 괴로움이 주는 쓸데없는 시달림도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어머니의 가슴은 이런 것들에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악덕들에는 이미 오래전에 닫혔으니까요.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방패이며, 이것만이 어머니를 운에게서 건져 낼 수 있습니다.

18 그러나 학문이 어머니께 약속하는 그 항구에 닿으실 때까지는 기댈 버팀목이 필요하시니, 그동안 어머니께 있는 위안들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제 형제들17을 돌아보십시오. 그 둘이 무사한 동안에는 어머니께서 운을 탓하셔서는 안 됩니다. 두 아들에게서 어머니는 저마다 다른 덕을 보시며 기뻐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부지런히 애써 관직에 올랐고, 하나는 지혜롭게 관직을 업신여겼습니다. 한 아들의 높은 지위에서, 다른 아들의 고요한 삶에서, 두 아들의 효성에서 마음을 놓으십시오. 저는 제 형제들의 속 깊은 마음을 압니다. 하나는 어머니께 자랑이 되어 드리려고 지위를 닦고, 하나는 어머니 곁에 있어 드리려고 고요하고 한가한 삶으로 물러났습니다. 운은 어머니의 자식들을 도움도 되고 즐거움도 되도록 잘 배치해 두었습니다. 어머니는 한 아들의 지위로 보호받으실 수 있고, 다른 아들의 여가를 누리실 수 있습니다. 두 아들은 어머니께 도리를 다하려고 서로 다툴 것이고, 아들 하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두 아들의 효성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저는 자신 있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어머니께는 머릿수 말고는 모자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이들에게서 손주들에게로도 눈을 돌리십시오. 더없이 귀여운 아이 마르쿠스가 있습니다. 그 아이를 보면 어떤 슬픔도 버티지 못합니다. 누구의 가슴에서 날뛰든, 아무리 크고 아무리 생생한 슬픔이라도 그 아이가 안겨 들면 다 누그러집니다. 그 아이의 명랑함이 누구의 눈물인들 그치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그 아이의 재치가 근심으로 오그라든 마음인들 풀어 주지 못하겠습니까? 그 장난기가 누구인들 웃음으로 불러내지 못하겠습니까?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을 그 재잘거림이, 생각에 붙박인 사람인들 제게로 돌려 끌어내지 못하겠습니까? 신들께 비오니, 이 아이가 우리 뒤에 오래 남게 하소서! 운명의 잔인함이 모두 저에게서 지쳐 멈추기를. 어머니로서 슬퍼하셔야 할 것은 모두 저에게로, 할머니로서 슬퍼하셔야 할 것도 모두 저에게로 옮겨 오기를. 나머지 식구들은 지금 그대로 꽃피기를. 다만 이 집안이 더는 슬퍼하지 않도록 제가 대신 바쳐진 제물이 될 수만 있다면, 저는 자식 잃은 것도, 제 처지도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머지않아 증손주를 안겨 드릴 노바틸라를 무릎에 안아 주십시오. 저는 그 아이를 제게로 데려오다시피 해서 제 아이로 삼았기에, 저를 잃은 지금 그 아이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도 고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저 대신으로도 이 아이를 사랑해 주십시오. 운은 얼마 전 그 아이에게서 어머니를 앗아 갔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면 그 아이가 어머니를 잃은 것을 슬퍼할 뿐 그 빈자리를 느끼지는 않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지금 그 아이의 품행을 바로잡아 주시고, 지금 그 아이를 빚어 주십시오. 여린 나이에 새겨진 가르침이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 아이가 어머니의 말씀에 익숙해지고 어머니의 뜻대로 빚어지게 하십시오. 본보기 말고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시더라도 많은 것을 주시는 셈입니다. 이 거룩한 소임이 어머니께 약이 될 것입니다. 효성스럽게 슬퍼하는 마음을 근심에서 돌려세울 수 있는 것은 이성이나 훌륭한 일거리뿐이니까요.

어머니의 아버님이 멀리 계시지만 않았다면 그분도 큰 위안으로 꼽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 어머니께서 그분을 아끼시는 마음으로 그분이 어머니를 아끼시는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어머니께서 저를 위해 몸을 상하시기보다 그분을 위해 몸을 지키시는 것이 얼마나 더 옳은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덮쳐 와 어머니께 따라오라고 할 때마다 아버님을 생각하십시오. 어머니께서는 그분께 그토록 많은 손주와 증손주를 안겨 드려 그분의 하나뿐인 핏줄이 아니게 되셨지만, 운 좋게 살아오신 그분 생애의 마무리는 어머니께 달려 있습니다. 그분이 살아 계신 동안 어머니께서 살아오신 것을 불평하시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19 어머니께 가장 큰 위안은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언니, 어머니께 더없이 미더운 그 가슴, 어머니의 모든 근심을 나누지 않고 고스란히 함께 짊어지시는 분,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 같은 그 마음 말입니다. 어머니는 그분과 눈물을 섞으셨고, 그분 품에서 처음으로 숨을 돌리셨습니다. 그분은 늘 어머니의 마음을 따라 함께 느끼시지만, 제 일에서만큼은 어머니 때문에만 슬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분의 품에 안겨 로마로 왔고, 오래 앓는 동안 그분이 어머니처럼 정성껏 보살펴 주신 덕에 나았습니다. 그분은 제가 재무관에 나설 때 당신의 영향력을 아낌없이 쓰셨습니다. 남과 이야기하는 것도, 큰 소리로 인사하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워하실 만큼 수줍은 분이었는데, 저를 위해서는 사랑이 수줍음을 이겼습니다. 세상과 떨어져 사시는 삶도, 그토록 방자한 여인들 사이에서 촌스러워 보일 만한 그 겸손도, 고요함도, 한가함을 위해 감추어 둔 은둔의 몸가짐도 그분이 저를 위해 표를 구하러 나서시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이것이 어머니께서 기운을 되찾으실 위안입니다. 할 수 있는 한 그분과 하나가 되시고, 그분의 품에 꼭 안기십시오. 슬퍼하는 사람은 흔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피해 제 슬픔을 마음껏 풀어놓을 자유를 찾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무엇을 생각하시든 그분께로 가십시오. 지금 그 모습을 지키고 싶으시든 벗어 던지고 싶으시든, 그분 곁에서 슬픔의 끝을 찾으시거나 슬픔의 길동무를 찾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 더없이 훌륭한 여인의 분별을 안다면, 그분은 어머니께서 아무 쓸모 없는 비탄에 몸을 상하시도록 두지 않으실 것이고, 제가 몸소 지켜본 그분 자신의 본보기를 들려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처녀로 시집간 사랑하는 남편, 우리 이모부18를 바로 뱃길 위에서 잃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슬픔과 두려움을 한꺼번에 견디시며 폭풍을 이겨 내시고, 난파를 당한 몸으로 남편의 시신을 뭍으로 모셔 오셨습니다. 아, 얼마나 많은 여인의 빼어난 행실이 어둠 속에 묻혀 있습니까! 놀라운 덕을 그대로 우러르던 그 소박한 옛 시대에 이분이 사셨다면, 자기 연약함도 잊고 가장 굳센 사람도 무서워하는 바다도 잊은 채 남편의 장례를 위해 제 목숨을 위험에 내던지고, 남편의 장례를 생각하느라 자기 장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은 이 아내를 기리려고 재주꾼들이 얼마나 다투어 나섰겠습니까! 남편 대신 죽겠다고 나선 여인은 모든 시인의 노래로 이름을 떨칩니다. 목숨을 걸고 남편에게 무덤을 찾아 주는 일은 그보다 더한 일입니다. 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더 적은 것을 되찾는 사랑이 더 큰 사랑입니다.

이러고 보면, 남편이 열여섯 해 동안 이집트를 다스리시는 사이 그분이 한 번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고, 속주 사람은 누구도 집에 들이지 않으셨으며, 남편에게 아무것도 청하지 않으셨고, 누가 자기에게 무엇을 청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것에 아무도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다스럽고 장관들을 헐뜯는 데 재주가 넘치는 그 속주, 허물을 피한 사람조차 추문은 피하지 못하던 그 속주가 그분을 둘도 없는 정숙함의 본보기로 우러러보았습니다. 위험한 농담마저 즐기는 그 속주로서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도, 그분에 관해서는 말을 함부로 하는 버릇을 모두 삼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그분 같은 사람이 오기를, 결코 바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늘 소원합니다. 속주가 열여섯 해 동안 그분을 인정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속주가 그분을 아예 몰랐다는 것은 그보다 더 대단한 일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분을 기리는 말을 다 늘어놓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짧게 훑고 지나가는 것은 오히려 그분의 칭송을 깎아내리는 일입니다. 모든 권세에 따라붙는 동무이자 역병인 야망과 탐욕도 이기지 못한 여인, 배가 이미 부서져 제 난파를 눈앞에 보면서도 죽음의 두려움에 꺾이지 않고 숨진 남편에게 매달린 채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갈지가 아니라 어떻게 남편을 모셔 갈지를 궁리한 여인이 얼마나 큰마음(magnus animus)을 지녔는지 아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도 그분과 맞먹는 덕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마음을 애도에서 거두어들이시고, 누구도 어머니께서 아이를 낳으신 것을 후회하신다고 여기지 않게 하셔야 합니다.

20 그런데 어머니께서 무엇을 다 하셔도 어머니의 생각은 자꾸 제게로 달려올 수밖에 없고, 지금은 다른 자식들보다 제가 더 자주 어머니 눈앞에 어른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자식들이 덜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아픈 곳으로 손이 더 자주 가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를 어떻게 생각하셔야 할지 들어 보십시오. 더없이 좋은 일 속에 있는 사람처럼 기쁘고 기운찬 모습으로 생각하십시오. 제 처지는 정말로 더없이 좋습니다. 제 영혼은 온갖 분주함에서 벗어나 제 일에 몰두하며, 어떤 때는 가벼운 공부로 즐거워하고, 어떤 때는 진리에 목말라 자신의 본성과 우주의 본성을 살피러 일어섭니다. 영혼은 먼저 땅과 땅의 자리를 캐묻고, 그다음에 땅을 둘러싼 바다의 형편과 그 밀물과 썰물을 캐묻습니다. 그런 다음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 두려움 가득한 모든 것, 천둥과 번개와 바람과 비구름과 눈과 우박이 휘몰아치는 이 소란한 공간을 꿰뚫어 봅니다. 그러고는 낮은 곳들을 두루 거친 뒤 가장 높은 곳으로 뚫고 올라가 신적인 것들의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누리며, 자신의 영원함을 기억하면서 지나간 모든 것과 다가올 모든 것 속으로, 모든 세대를 가로질러 나아갑니다.

주

  1. 1. 기원후 41년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칼리굴라의 누이 율리아 리빌라와 간통했다는 혐의로 세네카를 코르시카섬에 추방했다. 이 글은 그곳에서 썼다.

  2. 2. 스키아토스섬과 세리포스섬과 기아로스섬은 에게해의 작은 섬이고, 코수라섬은 시칠리아와 아프리카 사이에 있다. 로마는 이런 섬들로 사람들을 추방했다.

  3. 3. 아이네이아스. 트로이가 함락되자 살아남은 이들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건너왔다는 로마의 전설적 시조다.

  4. 4. 마실리아(오늘날의 마르세유)를 세운 것은 이오니아의 포카이아 사람들이다. 세네카는 그리스 본토의 포키스로 적었다.

  5. 5.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기원전 116~기원전 27)는 로마 제일의 박식가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기원전 85~기원전 42)는 카이사르를 암살한 사람으로, 철학 저술도 남겼으나 전하지 않는다.

  6. 6. 로물루스가 살았다고 전하는 초가집. 로마 사람들은 이 오두막을 팔라티누스 언덕에 보존하며 손질해 왔다.

  7. 7.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기원전 51년 집정관). 내전에서 폼페이우스 편에 섰다가 레스보스섬의 미틸레네에 물러나 살았고, 기원전 46년 원로원의 간청으로 카이사르의 사면을 받았으나 돌아오는 길에 살해되었다. 브루투스의 책 『덕에 관하여』는 전하지 않는다.

  8. 8. 황제 칼리굴라(재위 37~41). 원문은 「가이우스 카이사르」.

  9. 9. 마니우스 쿠리우스 덴타투스(기원전 3세기). 삼니움인과 피로스를 무찌른 장군으로, 소박한 삶의 본보기로 꼽힌다.

  10. 10. 마르쿠스 가비우스 아피키우스.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 시대의 이름난 미식가다. 로마는 기원전 161년 철학자와 수사학자들을 도시에서 내보낸 적이 있다.

  11. 11. 원문 결락. 뒤의 「그것」은 문맥으로 보아 가난이다.

  12. 12. 기원전 494년 평민이 로마를 떠나 성산으로 물러났을 때, 배와 팔다리의 우화로 그들을 달래 돌아오게 했다고 전한다.

  13. 13.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 대(大)스키피오의 큰아버지로, 기원전 211년 히스파니아에서 전사했다.

  14. 14. 아테네의 정치가로 「정의로운 사람」이라 불렸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다 침 뱉음을 당한 이 일화는 다른 전승에서는 포키온의 것으로 나온다.

  15. 15. 코르넬리아의 아들 가이우스 그라쿠스. 호민관으로 개혁을 밀다 기원전 121년에 죽임을 당했다.

  16. 16.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기원전 90년 추방되었다가 82년 술라의 승리로 돌아와 75년 집정관이 되었다.

  17. 17. 맏형 노바투스(뒷날 양자로 들어가 갈리오가 되었다)는 관직에 나아갔고, 아우 멜라는 관직을 마다하고 로마 기사로 살았다. 멜라는 시인 루카누스의 아버지다.

  18. 18.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기원후 16년부터 31년까지 이집트 장관을 지냈고, 임지를 떠나 돌아오는 뱃길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