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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 대화편현자의 의연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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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의 의연함에 관하여

1 세레누스, 스토아학파와 지혜를 내세우는 다른 학파들 사이에는 여자와 남자 사이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걸세. 두 무리가 삶을 함께 꾸리는 데 똑같이 몫을 하기는 하지만, 한쪽은 따르도록, 다른 쪽은 다스리도록 태어났으니 말일세. 다른 학파의 현자들은 집안에 드나드는 단골 의사가 병든 몸을 대하듯, 가장 좋고 가장 빠른 길이 아니라 허락되는 길을 골라 부드럽고 살갑게 치료하네. 스토아학파는 사내다운 길에 들어섰고, 그 길이 들어서는 사람 눈에 즐거워 보이는지에는 마음을 쓰지 않네. 그들이 마음을 쓰는 것은 그 길이 되도록 빨리 우리를 건져 내어, 어떤 화살도 닿지 않을 만큼 높이 솟아 운(fortuna) 위로 우뚝 드러난 저 높은 봉우리로 데려가는 일일세. "하지만 우리를 부르는 그 길은 가파르고 울퉁불퉁하다."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높은 곳을 평지로 걸어 오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그 길이 어떤 이들 생각만큼 깎아지르지도 않네. 바위와 벼랑이 버티고 길이 없어 보이는 것은 첫 구간뿐일세. 멀리서 바라보면 대개의 것이 깎아지른 듯하고 한데 붙어 보이게 마련이지. 거리가 눈을 속이기 때문이네. 그러다 가까이 다가가면 눈의 착각이 한 덩어리로 뭉쳐 놓았던 바로 그것들이 차츰 벌어지고, 멀리서 낭떠러지로 보이던 곳이 다시 완만한 비탈로 돌아온다네. 얼마 전 마르쿠스 카토1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부당한 일을 참지 못하는 자네는 몹시 분개했지. 카토의 시대가 카토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 같은 이들보다 높이 솟은 그를 바티니우스2 같은 자들보다 아래에 두었다고 말일세. 그가 법안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려다 포룸에서 토가를 빼앗긴 일, 반란 무리의 손에서 손으로 넘겨지며 연단에서 파비우스 개선문까지 끌려가는 동안 상스러운 욕설과 침과 그 밖에 미쳐 날뛰는 군중이 퍼붓는 온갖 모욕을 견뎌야 했던 일도 자네에게는 분하게 보였지.

2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네. 나라를 생각해서라면 자네가 마음이 흔들릴 만도 하다고. 이쪽에서는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3가, 저쪽에서는 바티니우스와 가장 못된 자들이 저마다 나라를 팔아넘기고 있었고, 눈먼 탐욕에 사로잡힌 그들은 팔아넘기는 사이에 자기들도 팔려 간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 말일세. 그러나 카토 자신을 두고는 걱정하지 말라고 일렀지. 현자는 불의(iniuria)도 모욕(contumelia)도 당할 수 없으며, 불멸의 신들이 앞선 시대에 오디세우스와 헤라클레스를 주었던 것보다 카토를 더 확실한 현자의 본보기로 우리에게 주었다고 말일세. 우리 스토아학파는 이 두 사람을 현자라고 선언했네. 노고에 꺾이지 않고, 쾌락을 업신여기고, 모든 공포를 이겨 낸 사람들이라고. 카토는 들짐승과 맞붙어 싸우지 않았네. 짐승을 쫓는 것은 사냥꾼과 시골 사람이 할 일이지. 불과 칼로 괴물을 쫓아다니지도 않았고, 한 사람의 어깨가 하늘을 떠받친다고 믿을 수 있던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네. 그가 산 시대는 옛날의 순진한 믿음을 이미 떨쳐 버리고 영리함이 끝까지 치달은 때였네. 그런 시대에 그는 갖가지 얼굴을 한 악인 관직 매수와 맞붙었고, 온 세상을 셋으로 나누어 가지고도 채울 수 없던 끝없는 권력욕과 맞붙었네. 타락해 가며 제 무게에 눌려 가라앉는 나라의 악덕에 맞서 그는 홀로 버티었고, 한 손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데까지 무너지는 나라를 붙들었네. 그러다 마침내 그 자리에서 끌려 나가자, 그토록 오래 떠받쳐 온 나라가 무너질 때 스스로 그 길동무가 되었지. 그리하여 갈라놓는 것이 죄였을 두 가지가 함께 꺼졌네. 카토는 자유를 잃고 살아남지 않았고, 자유도 카토를 잃고 살아남지 않았네. 그런 사람이 인민에게 불의를 당할 수 있었다고 자네는 생각하는가? 인민이 그에게서 법무관 자리나 토가를 빼앗았다고 해서, 그 거룩한 머리에 입에서 나온 오물을 끼얹었다고 해서? 현자는 안전하네. 어떤 불의도, 어떤 모욕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네.

3 자네 마음이 불붙어 끓어오르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네. 자네는 이렇게 소리치려는 참이지. "바로 이런 것 때문에 당신들의 가르침이 권위를 잃는다. 당신들은 큰 것을 약속한다. 바랄 수조차 없는 것, 믿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을. 그렇게 거창하게 말해 놓고, 현자는 가난하지 않다고 하면서도 그에게 종도 지붕도 먹을 것도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현자는 미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가 정신을 잃고 성치 않은 말을 내뱉고 병의 힘이 몰아붙이는 대로 무슨 짓이든 저지른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현자는 노예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같은 입으로 그가 팔려 가고 시키는 대로 하고 주인에게 노예의 시중을 들리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이렇게 당신들은 눈썹을 한껏 치켜올렸다가 사물의 이름만 바꾸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자리로 내려온다. 그러니 이 주장에도 그런 것이 숨어 있으리라고 나는 짐작한다. 현자는 불의도 모욕도 당하지 않으리라는 주장은 언뜻 보기에 아름답고 웅장하다. 그러나 현자를 분개하지 않는 자리에 두느냐, 불의가 미치지 않는 자리에 두느냐는 크게 다르다. 현자가 그것을 담담히 견디리라는 뜻으로 당신이 말한다면 그에게는 아무 특권도 없다. 그가 얻은 것은 흔한 것, 불의를 거듭 당하다 보면 저절로 배우게 되는 것, 곧 인내(patientia)일 뿐이다. 그러나 그가 불의를 당하지 않으리라는 뜻, 다시 말해 아무도 그에게 불의를 저지르려 들지 않으리라는 뜻으로 말한다면, 나는 하던 일을 모두 내던지고 스토아학파가 되겠다." 그러나 나는 말로만 꾸민 헛된 영예로 현자를 치장하려는 것이 아닐세. 어떤 불의도 허락되지 않는 자리에 그를 두기로 마음먹었네. "그러면 어떤가? 그를 건드리고 시험하려 드는 자가 아무도 없으리라는 말인가?" 자연에는 신성을 더럽히는 자를 만나지 않을 만큼 신성한 것이 없네. 그러나 자기보다 훨씬 높이 있는 위대함을 닿지도 못할 손으로 노리는 자들이 있다고 해서 신성한 것들이 덜 높은 곳에 있는 것은 아니네. 상처 입지 않는 것이란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맞아도 다치지 않는 것일세. 이 표지로 나는 자네에게 현자를 보여 주겠네. 꺾이지 않는 힘이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힘보다 더 확실하다는 것을 의심할 수 있는가? 시험받지 않은 힘은 미덥지 못하고, 모든 공격을 물리치는 굳셈이야말로 가장 확실하다고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니 알아 두게. 현자는 아무 불의도 일어나지 않을 때보다 어떤 불의도 그를 해치지 못할 때 더 뛰어난 본성을 지녔다고 해야 하네. 나는 전쟁에도 굴하지 않고 다가오는 적의 힘에도 겁먹지 않는 사람을 용감하다고 부르겠네. 게으른 민족들 사이에서 기름진 한가함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러니 내 말은 이것일세. 현자는 어떤 불의에도 걸려들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그에게 창이 몇 자루 날아드는지는 상관없네. 무엇도 그를 꿰뚫지 못하니 말일세. 어떤 돌은 쇠로도 깨뜨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해서, 금강석은 자르지도 쪼개지도 갈아 내지도 못하고 오히려 부딪쳐 오는 것을 무디게 만드네. 어떤 것은 불에 타지 않고, 불길에 휩싸여도 제 단단함과 모양을 지키네. 먼바다로 뻗어 나간 어떤 바위는 바다를 부수고, 그토록 오랜 세월 매를 맞고도 사나운 물결이 남긴 흔적 하나 드러내지 않네. 현자의 마음도 그처럼 단단하고, 불의 앞에서 내가 말한 그것들만큼 안전할 힘을 모았다네.

4 "그래서? 현자에게 불의를 저지르려는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는 것인가?" 저지르려 들기는 하겠지. 그러나 그 불의는 그에게 닿지 못하네. 그는 아랫것들의 손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떤 해로운 힘도 그에게까지 제 힘을 실어 나르지 못한다네. 권세 있는 자들, 통치권으로 높이 오르고 섬기는 자들이 한뜻으로 받들어 힘을 얻은 자들이 해치려 들 때에도, 그들의 공격은 모두 지혜에 못 미친 채 꺾이고 말 걸세. 활시위나 투석기로 하늘 높이 쏘아 올린 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솟구치고도 결국 하늘에 못 미쳐 꺾여 내려오는 것과 같지. 어떤가? 그 어리석은 왕4이 숱한 화살로 대낮을 어둡게 했을 때 화살 하나라도 해에 꽂혔다고 자네는 생각하는가? 바다 깊이 쇠사슬을 던져 넣었을 때 그것이 넵투누스에게 닿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하늘의 것이 사람의 손을 벗어나고 신전을 허물고 신상을 녹이는 자들도 신성을 조금도 해치지 못하듯, 현자에게 뻔뻔하게, 방자하게, 오만하게 저지르는 짓도 무엇이든 헛된 시도일 뿐일세. "그래도 그런 짓을 하려는 자가 아예 없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자네는 인류에게 어려운 것을 바라는군. 해를 끼치지 않는 마음 말일세. 그런 짓이 일어나지 않아서 득을 보는 것은 그 짓을 저지를 자들이지, 일어난다 해도 그것을 당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닐세. 아니, 오히려 도발하는 것들 한가운데서 지키는 평정(tranquillitas)이 지혜의 힘을 더 잘 보여 주는지도 모르네. 무기와 병사가 넉넉한 사령관의 힘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증거가 적지에서도 든든하게 누리는 안온함(securitas)이듯이.

5 세레누스, 괜찮다면 불의와 모욕을 갈라 보세. 앞의 것은 본디 더 무겁고, 뒤의 것은 더 가벼워서 응석받이들에게나 무겁지. 모욕을 당하면 사람은 다치지는 않고 기분만 상하네. 그런데도 사람들 마음이 워낙 풀어지고 허영에 들떠 있어서, 어떤 이들은 이보다 쓰라린 것이 없다고 여기네. 그래서 따귀를 맞느니 채찍으로 맞겠다는 노예, 모욕하는 말보다는 죽음과 매질이 견디기 쉽다고 믿는 노예도 자네는 보게 될 걸세. 어리석음이 어찌나 심해졌는지 우리는 고통만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생각에도 시달리네. 아이들과 똑같지. 아이들은 그림자나 흉측한 가면이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 겁에 질리고, 귀에 거슬리는 이름이나 손가락 놀림, 그 밖에 앞뒤 가리지 않는 착각에 휩쓸려 피하는 것들 앞에서는 눈물을 쏟는다네. 불의가 노리는 것은 누군가에게 악을 입히는 일일세. 그런데 지혜는 악이 들어설 자리를 남기지 않네. 지혜에게 악은 오직 하나, 추함(turpitudo)뿐인데, 추함은 이미 덕(virtus)과 훌륭한 것(honestum)이 자리 잡은 곳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일세. 그러니 악이 없으면 불의도 없고, 추한 것이 아니면 악도 없으며, 추한 것은 훌륭한 것이 차지한 사람에게 닿을 수 없으니, 불의는 현자에게 닿지 못하네. 불의가 어떤 악을 겪는 일인데 현자는 어떤 악도 겪지 않는다면, 어떤 불의도 현자와는 상관이 없네. 모든 불의는 그것이 덮친 사람을 깎아 내네. 체면이든 몸이든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이든, 무언가를 잃지 않고 불의를 당하는 사람은 없네. 그러나 현자는 아무것도 잃을 수 없네. 그는 모든 것을 자기 안에 쌓아 두었고, 운에게는 아무것도 맡기지 않으며, 덕으로 만족하기에 자기의 좋은 것들을 단단한 땅 위에 두었네. 덕은 우연히 오는 것이 필요 없고, 그래서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네. 꼭대기에 이른 것에는 더 자랄 여지가 없고, 운은 자기가 준 것밖에 빼앗지 못하지. 그런데 운은 덕을 주지 않으니 덕을 앗아 가지도 못하네. 덕은 자유롭고, 범할 수 없고,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불행에 맞서 단단히 굳어서 꺾이기는커녕 기울지도 않네. 무시무시한 것을 늘어놓아도 눈을 똑바로 뜨고 보며, 가혹한 일을 내보이든 순탄한 일을 내보이든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지. 그러므로 현자는 잃어서 아쉬워할 것은 하나도 잃지 않을 걸세. 그가 차지한 것은 덕 하나뿐이고 거기서는 결코 쫓겨날 수 없으며, 나머지는 주인이 허락하는 동안만 빌려 쓰는 것이네. 남의 것을 잃었다고 누가 마음이 흔들리겠는가? 불의가 현자의 몫인 것을 하나도 해칠 수 없다면, 그의 덕이 온전한 한 그것들도 온전하니, 현자에게는 불의가 일어날 수 없네. 폴리오르케테스라는 별명이 붙은 데메트리오스5가 메가라를 함락했을 때 일이네. 데메트리오스가 철학자 스틸폰에게 무엇을 잃었느냐고 묻자 스틸폰은 대답했지. "아무것도 잃지 않았소. 내 것은 모두 나와 함께 있소." 그런데 그의 재산은 약탈물이 되었고, 딸들은 적에게 끌려갔고, 조국은 남의 손에 넘어갔으며, 승리한 군대의 무기에 둘러싸인 왕이 높은 자리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묻고 있었네. 그러나 스틸폰은 왕의 손에서 승리를 쳐내 버렸고, 도시가 함락되었어도 자기는 꺾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것도 잃지 않았음을 증언했네. 그에게는 참된 좋은 것들이 함께 있었고, 거기에는 누구도 손을 댈 수 없었지. 흩어지고 약탈당해 실려 가는 것들은 자기 것이 아니라 밖에서 흘러들어 와 운의 눈짓을 따라다니는 것이라고 여겼네. 그래서 그는 그것들을 제 것처럼 아끼지 않았네. 밖에서 흘러드는 것은 무엇이든 미끄럽고 미덥지 못한 소유일 뿐일세.

6 이제 생각해 보게. 전쟁도 적도, 도시를 부수는 빼어난 기술을 자랑하던 그 사람도 아무것도 빼앗지 못한 이 사람에게, 도둑이나 무고하는 자나 제멋대로 구는 이웃이, 아니면 자식 없는 늙음을 무기로 왕 노릇 하는 어떤 부자가 불의를 저지를 수 있겠는가? 사방에서 번득이는 칼과 약탈하는 병사들의 소란 속에서, 불길과 피와 무너진 도시의 주검 더미 속에서, 제 신들 위로 무너져 내리는 신전들의 굉음 속에서, 오직 한 사람에게는 평화가 있었네. 그러니 내 약속을 무모하다고 여길 까닭은 없네. 내 말이 미덥지 않다면 자네에게 보증인을 세워 주지. 사람에게 그토록 굳셈이, 그토록 큰 도량이 깃들 수 있다고 자네는 좀처럼 믿지 않지. 그러나 여기 한 사람이 한가운데로 나서서 이렇게 말하네. "사람으로 태어난 자가 인간사 위로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의심할 것 없소. 고통과 손실을, 곪은 상처와 벤 상처를, 제 둘레에서 으르렁대는 큰 격변을 근심 없이 바라보고, 가혹한 일은 차분하게, 순탄한 일은 절도 있게 견디며, 앞의 것에 굴하지도 뒤의 것에 기대지도 않고 서로 다른 처지 속에서도 한결같은 한 사람으로 남으며,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자신마저도 더 나은 부분만 제 것으로 여길 수 있는지 의심할 것 없소. 보시오, 그대들에게 이것을 증명하려고 내가 여기 있소. 그토록 많은 도시를 뒤엎은 이 사람 밑에서 성벽은 공성추에 맞아 흔들리고, 높은 탑은 땅굴과 숨은 갱도에 갑자기 주저앉고, 가장 높은 성채와 키를 맞추려고 흙둔덕이 솟아오르지만, 기초를 든든히 다진 마음을 뒤흔들 공성 기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소. 나는 방금 무너진 집에서 기어 나왔고, 사방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피해 피를 밟으며 달아났소. 내 딸들이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나라가 당한 것보다 더 나쁜 일을 당하는지 나는 모르오. 홀로, 늙어, 둘레의 모든 것이 적의 것이 된 것을 보면서도, 나는 내 재산이 온전하고 무사하다고 신고하오. 내 것이었던 것은 무엇이든 지금도 내 손에 있고 내 곁에 있소. 내가 졌고 그대가 이겼다고 믿을 것 없소. 그대의 운이 내 운을 이긴 것이오. 떨어져 나가고 주인을 바꾸는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오. 내 것에 관해서라면, 그것들은 나와 함께 있고 앞으로도 나와 함께 있을 것이오. 저 부자들은 물려받은 재산을 잃었고, 호색한들은 사랑하던 이들과 체면을 크게 치르며 아끼던 창부들을 잃었고, 야심가들은 원로원과 포룸과 사람들 앞에서 악덕을 부리라고 마련된 자리들을 잃었소. 고리대금업자들은 장부를 잃었소. 탐욕은 그 장부를 들여다보며 헛되이 기뻐하고 부를 꿈꾸었소.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하나도 축나지 않은 채 지니고 있소. 그러니 저들에게 물으시오. 울며 통곡하는 자들, 돈을 지키려고 뽑힌 칼 앞에 맨몸을 내미는 자들, 품에 잔뜩 챙겨 넣고 적을 피해 달아나는 자들에게." 그러니 세레누스, 이렇게 알아 두게. 인간의 덕과 신의 덕으로 가득 찬 그 완전한 사람은 아무것도 잃지 않네. 그의 좋은 것들은 단단하고 넘을 수 없는 성벽에 둘러싸여 있네. 알렉산드로스가 들어간 바빌론의 성벽도, 한 사람의 손에 함락된 카르타고나 누만티아의 성벽6도, 카피톨리움이나 그 성채도 거기에 견주지 말게. 그런 것들에는 적의 발자국이 남아 있네. 그러나 현자를 지키는 성벽은 불길에도 습격에도 안전하고, 들어갈 틈을 하나도 내주지 않으며, 드높고, 함락할 수 없고, 신들과 맞먹는다네.

7 자네가 늘 하듯, 우리가 말하는 이 현자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할 것은 없네. 우리는 인간의 재주가 지어낸 헛된 장식을 꾸며 내는 것도, 있지도 않은 것의 거대한 허상을 그려 내는 것도 아닐세. 우리가 빚어내는 그대로의 현자를 우리는 보여 주었고 앞으로도 보여 줄 걸세. 아마 드물게, 여러 세대에 한 사람씩일 테지만. 위대한 것, 흔하고 평범한 정도를 넘어서는 것은 자주 태어나지 않는 법일세. 게다가 이 논의의 실마리가 된 바로 그 마르쿠스 카토는 우리가 그리는 본보기보다 오히려 위에 있지 않을까 싶네. 요컨대 해치는 쪽은 해를 입는 쪽보다 강해야 하네. 그런데 사악함은 덕보다 강하지 않네. 그러므로 현자는 해를 입을 수 없네. 선한 사람에게 불의를 저지르려 드는 것은 악한 자들뿐일세. 선한 사람들끼리는 평화롭고, 악한 자들은 선한 사람에게 해로운 만큼 자기들끼리도 해롭지. 더 약한 쪽만 해를 입을 수 있고, 악한 자는 선한 사람보다 약하며, 선한 사람이 두려워할 불의는 자기와 같지 않은 자에게서만 온다면, 불의는 현자에게 미치지 않네. 현자 말고는 선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자네에게 새삼 일깨울 필요는 없겠지. "소크라테스가 부당하게 단죄되었다면 그는 불의를 당했다." 하고 누군가 말하네. 여기서 우리는 누가 내게 불의를 저질러도 나는 불의를 당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누가 내 시골 별장에서 훔친 물건을 내 집에 갖다 놓았다고 해 보세. 그는 도둑질을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네. 해를 끼치지 않고도 해를 끼친 죄인이 될 수 있네. 누가 제 아내와 남의 아내인 줄 알고 잠자리를 같이했다면, 아내는 간통한 것이 아니어도 그는 간통한 자가 되네. 누가 내게 독을 먹였는데 음식에 섞이는 바람에 독이 힘을 잃었다고 하세. 그는 해를 끼치지 못했어도 독을 준 것만으로 죄를 지었네. 옷자락에 막혀 칼이 빗나갔다고 해서 강도가 덜 강도인 것은 아닐세. 모든 범죄는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도, 죄를 묻기에 충분한 만큼은 이미 완성되어 있네. 어떤 것들은 서로 이렇게 짝지어져 있어서,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하나는 그 하나 없이 있을 수 없네. 내 말을 분명히 해 보겠네. 나는 달리지 않고도 발을 움직일 수 있지만, 발을 움직이지 않고는 달릴 수 없네. 물속에 있으면서 헤엄치지 않을 수는 있지만, 헤엄친다면 물속에 있지 않을 수 없지. 지금 다루는 문제도 이런 종류일세. 내가 불의를 당했다면 누군가 불의를 저지른 것이 틀림없네. 그러나 누가 불의를 저질렀다고 해서 내가 꼭 당한 것은 아닐세. 불의를 막아 내는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으니 말일세. 어떤 우연이 치켜든 손을 떨어뜨리고 날아가던 창을 비껴가게 할 수 있듯이, 어떤 것이 어떤 불의든 물리치고 중간에 가로챌 수 있어서, 불의는 저질러졌으되 당하지는 않은 것이 된다네.

8 게다가 정의는 정의롭지 않은 것을 당할 수 없네. 서로 반대되는 것은 한데 어울리지 않는 법이지. 그런데 불의는 정의에 어긋나게만 일어나네. 그러므로 현자에게는 불의가 일어날 수 없네. 아무도 그에게 불의를 저지를 수 없다고 해서 놀랄 것 없네. 아무도 그를 이롭게 할 수조차 없으니 말일세. 현자에게는 선물로 받을 만한 것이 하나도 모자라지 않고, 악한 자는 현자에게 걸맞은 것을 하나도 줄 수 없네. 주려면 먼저 지녀야 하는데, 악한 자에게는 현자가 넘겨받고 기뻐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네. 그러므로 누구도 현자를 해칠 수도 이롭게 할 수도 없네. 신성한 것은 도움을 바라지도 않고 해를 입을 수도 없는데, 현자는 신들 바로 곁에 이웃하여 서 있고, 죽는다는 것만 빼면 신과 닮았기 때문일세. 드높고, 질서 있고, 두려움 없고, 고르고 어긋남 없는 흐름으로 흘러가고, 근심 없고, 너그럽고, 모두의 이로움을 위해 태어나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이로운 그것들을 향해 애써 나아가는 사람은, 낮은 것을 탐내지 않고 무엇에도 울지 않을 걸세. 이성에 기대어 인간사의 숱한 불행 사이를 신 같은 마음으로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불의를 당할 틈이 없네. 사람에게서만 그렇다는 말로 들리는가? 운에게서도 그렇다네. 운은 덕과 맞붙을 때마다 한 번도 비기고 물러난 적이 없지. 성난 법률과 더없이 잔인한 주인들도 그 너머로는 위협할 거리가 없는 가장 큰 것, 운이 제 지배력을 다 써 버리는 그것을 우리가 담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죽음은 악이 아니며 그러니 불의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다른 것들은 훨씬 쉽게 견딜 걸세. 손실과 고통, 치욕, 사는 곳이 바뀌는 일, 자식을 잃는 일, 헤어지는 일 말일세. 이런 것들은 한꺼번에 현자를 에워싼다 해도 그를 가라앉히지 못하네. 하나씩 덮쳐 온다고 해서 슬퍼할 리는 더더욱 없지. 운이 저지르는 불의도 절도 있게 견디는 그가, 운의 손발임을 아는 권세가들이 저지르는 불의야 얼마나 더 잘 견디겠는가!

9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겨울의 혹독한 추위나 고르지 못한 날씨처럼, 열병과 질병과 그 밖에 우연히 닥치는 일처럼 견디고, 누구를 두고도 그 사람이 무슨 일을 숙고해서 했다고 여길 만큼 좋게 판단하지 않네. 숙고는 현자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일세. 다른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숙고가 아니라 속임수와 함정과 마음의 어지러운 움직임이며, 현자는 그것들을 우연한 일 가운데 하나로 셈하네. 그런데 우연한 일은 모두 우리 둘레에서, 하찮은 것들을 상대로 날뛸 뿐일세. 이것도 생각해 보게. 불의의 거리가 가장 넓게 펼쳐지는 것은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꾸미는 일들일세. 고발자를 몰래 내세우거나, 거짓으로 죄를 뒤집어씌우거나, 권세 있는 자들이 우리를 미워하도록 부추기는 일, 그 밖에 토가를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온갖 강도질 말일세. 흔한 불의는 또 있네. 누가 이득을 빼앗기거나 오래 노려 온 보상을 놓칠 때, 큰 공을 들여 노리던 유산이 다른 데로 넘어가거나 돈벌이가 되는 집안의 총애를 빼앗길 때 말일세. 현자는 이런 것에서 벗어나 있네. 그는 희망에 매여 사는 법도, 두려움에 매여 사는 법도 모르네. 여기에 이것도 보태게. 누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채 불의를 당하지는 않네. 불의를 느끼면 동요(perturbatio)하게 마련이지. 그러나 미혹에서 벗어나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 깊고 잔잔한 고요에 잠긴 사람에게는 동요가 없네. 불의가 그를 건드린다면 그를 흔들고 떠밀 걸세. 그런데 현자에게는 분노가 없네. 분노는 불의를 당했다는 인상이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불의가 없어야 분노도 없을 수 있네. 자기에게는 불의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아네. 그래서 그는 그토록 꼿꼿하고 즐거우며, 그래서 끊임없는 기쁨에 차올라 있네. 일이나 사람에게 부딪혀도 움츠러들기는커녕 불의마저 쓸모 있게 여기네. 불의를 겪으며 자신을 시험하고 덕을 단련하는 것일세. 부탁하네, 자네들. 이 생각에 호의를 보여 주고, 현자를 불의에서 빼내는 동안 공정한 마음과 귀로 함께해 주게. 그렇다고 자네들의 방자함이나 몹시 탐욕스러운 욕망이나 눈먼 무모함과 오만에서 무엇 하나 덜어 내는 것은 아닐세. 자네들의 악덕은 그대로 둔 채 현자를 위해 이 자유를 구하는 것일세. 우리는 자네들이 불의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모든 불의를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히고 인내와 도량으로 자신을 지키게 하려는 것일세. 신성한 경기에서도 많은 선수가 때리는 상대의 손이 지치도록 끈질기게 버티어 이겼네. 현자도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게. 오랫동안 성실하게 단련해서 어떤 적대적인 힘이든 끝까지 견디어 지치게 만드는 힘을 얻은 사람들 말일세.

10 앞부분을 훑어보았으니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세. 거기서는 몇 가지는 고유한 논거로, 대부분은 앞과 같은 논거로 모욕을 물리치겠네. 모욕은 더 작은 불의일세. 소송을 걸기보다는 불평이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법률도 처벌할 거리로 여기지 않은 것이지. 이 격정(affectus)을 일으키는 것은 비굴한 마음일세. 체면을 깎는 말이나 행동 하나에 움츠러드는 마음 말이네. "그 사람이 오늘 다른 사람들은 들이면서 나는 들이지 않았다." "내 말을 거만하게 외면하거나 대놓고 비웃었다." "나를 가운데 의자가 아니라 맨 끝 의자에 앉혔다." 이런 말들, 그 밖에 이런 부류의 것들을 멀미 난 마음의 투정 말고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이런 데 빠지는 것은 대개 응석받이와 운 좋은 사람들일세. 더 나쁜 일이 닥친 사람은 이런 것을 눈여겨볼 겨를이 없지. 본디 약하고 여자 같은 성품이 지나친 한가함 속에서, 참된 불의를 겪어 보지 못해 방자해지면 이런 것들에 흔들리네. 그 대부분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이 잘못된 데서 생기지. 그러니 모욕을 느끼는 사람은 자기에게 분별도 자신감도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셈일세. 그는 틀림없이 자기가 업신여김을 당했다고 판단하고, 이 쓰라림은 스스로를 낮추고 내려앉는 비굴한 마음 없이는 생기지 않네. 그러나 현자는 누구에게도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네. 그는 자기의 위대함을 알고, 누구에게도 자기를 그렇게 대할 권리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일러두며, 마음의 불행이라기보다 성가심이라 불러야 할 이 모든 것을 이겨 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느끼지도 않네. 현자를 쓰러뜨리지는 못해도 때리기는 하는 것들은 따로 있네. 몸의 고통과 쇠약, 벗과 자식을 잃는 일, 전쟁으로 불타는 조국의 재앙 같은 것 말일세. 현자가 이런 것을 느낀다는 것은 나도 부정하지 않네. 우리는 그에게 돌이나 쇠의 단단함을 갖다 붙이지 않네. 느끼지 못하는 것을 견디는 데에는 아무 덕도 없네. 그러면 어찌 되는가? 그는 어떤 타격은 받아들이지만, 받아들인 타격을 이겨 내고 낫게 하고 가라앉히네. 그러나 이 더 작은 것들은 느끼지도 않고, 가혹한 일을 견딜 때 늘 쓰는 그 덕을 이것들에 맞서 꺼내 쓰지도 않네. 아예 눈여겨보지 않거나 웃어넘길 일로 여기지.

11 게다가 모욕은 대부분 오만하고 무례한 자들, 행운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들이 저지르니, 현자에게는 그 부풀어 오른 격정을 뱉어 낼 것이 있네. 모든 덕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덕, 도량(magnanimitas)일세. 도량은 그런 것은 무엇이든 꿈속의 헛된 형상이나 밤의 환영처럼, 단단한 것도 참된 것도 없는 것으로 보고 지나쳐 버리네. 동시에 현자는 이렇게 생각하네. 모든 사람은 그토록 높은 것을 감히 내려다보기에는 너무 낮은 곳에 있다고. 모욕이라는 말은 업신여김(contemptus)에서 나왔네. 누구든 업신여기는 사람에게만 이런 불의로 낙인을 찍기 때문일세. 그런데 자기보다 크고 나은 사람을 업신여기는 자는 없네. 업신여기는 자들이 흔히 하는 짓을 하더라도 말일세.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을 때리고, 갓난아이는 어머니의 머리칼을 헝클고 쥐어뜯고 침을 뱉고,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가려야 할 곳을 드러내고, 상스러운 말도 서슴지 않지만, 우리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모욕이라 부르지 않네. 왜인가? 그 짓을 하는 아이는 업신여길 줄 모르기 때문일세. 우리 노예들이 주인을 모욕하는 재담을 우리가 즐기는 것도 같은 까닭일세. 노예들의 뻔뻔함은 주인에게서 시작했을 때에야 손님들에게도 그럴 권리를 얻지. 그리고 노예는 업신여김을 받을수록 혀가 더 풀린다네. 어떤 이들은 바로 이 때문에 당돌한 노예 소년들을 사들여 그 뻔뻔함을 벼리고, 미리 궁리한 욕설을 쏟아 내도록 선생까지 붙여 가르치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모욕이라 하지 않고 재치라고 부르지. 같은 것에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기분 상하며, 벗이 한 말은 욕설이라 하고 하찮은 노예가 한 말은 우스운 놀림이라 하다니, 이 얼마나 미친 짓인가!

12 우리가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으로 현자는 모든 사람을 대하네. 젊은 시절이 지나고 머리가 희어져도 여전히 아이 같은 사람들 말일세. 마음에는 악이 들어앉고 미혹은 더 커지기만 한 그들이 나이를 먹어 무엇을 얻었는가? 아이들과 다른 것은 몸의 크기와 생김새뿐, 그 밖에는 아이들 못지않게 갈팡질팡하고 종잡을 수 없으며, 가리지 않고 쾌락을 탐하고, 겁에 질려 있고, 조용할 때도 성품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조용한 자들이 아닌가? 아이들은 공깃돌과 호두와 잔돈을 탐내고 이들은 금과 은과 영토를 탐낸다고 해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관직 놀이를 하며 자줏빛 단을 두른 토가와 권표와 재판석을 흉내 내고 이들은 투표장과 포룸과 원로원에서 똑같은 놀이를 진지하게 한다고 해서,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모래를 쌓아 집 모양을 세우고 이들은 무슨 큰일이나 하듯 돌과 벽과 지붕을 쌓아 올리느라 바빠 몸을 지키려고 만든 것을 위험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해서, 그들과 아이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다고 누가 말하겠는가? 아이들이나 나이를 더 먹은 이들이나 미혹은 같고, 다만 이들의 미혹은 다른 것, 더 큰 것을 향해 있을 뿐일세. 그러니 현자가 이들의 모욕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네. 그는 때로 아이들을 다루듯 이들을 고통과 벌로 타이르기도 하지. 자기가 불의를 당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불의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리고 그 짓을 그만두게 하려고. 가축도 그렇게 매로 길들이네. 말이 사람을 태우지 않으려 한다고 우리가 화를 내지는 않지. 고통이 고집을 꺾도록 억누를 뿐일세. 그러니 우리에게 던지는 이 반론도 풀렸음을 자네는 알 걸세. "현자가 불의도 모욕도 당하지 않았다면 왜 그 짓을 한 자들을 벌하는가?" 그는 자기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바로잡는 것일세.

13 다른 이들에게서도, 같은 까닭에서는 아니지만, 똑같은 것을 볼 수 있는데, 현자에게 이런 마음의 굳셈이 깃든다는 것을 자네가 믿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는가? 어느 의사가 정신 나간 환자에게 화를 내겠는가? 열에 들뜬 채 찬물을 못 마시게 막는다고 퍼붓는 환자의 욕설을 누가 나쁘게 받아들이겠는가? 현자는 의사가 자기 환자들을 대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네. 의사는 치료가 필요하면 환자의 은밀한 곳을 만지는 것도, 배설물과 토한 것을 들여다보는 것도, 광란에 빠져 날뛰는 환자의 욕설을 받아 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지. 현자는 토가를 입고 자줏빛 옷을 걸치고 활보하는 이 모든 사람, 건강하고 혈색 좋은 이 사람들이 실은 성하지 않다는 것을 아네. 그는 그들을 절제를 모르는 환자로밖에 보지 않네. 그러니 그들이 병중에 치료하는 사람에게 무례한 짓을 좀 저질러도 노여워하지조차 않고, 그들이 베푸는 영예를 하찮게 여기는 바로 그 마음으로 그들의 무례한 짓도 하찮게 여기네. 거지가 자기를 떠받든다고 우쭐하지 않고, 가장 낮은 평민이 자기 인사에 답례하지 않는다고 모욕으로 여기지 않듯이, 많은 부자가 자기를 우러러본다 해도 그는 그들을 우러러보지 않을 걸세. 그들이 거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비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세. 거지에게는 조금이 모자라고, 부자에게는 많은 것이 모자라지. 또 메디아 왕이나 아시아의 아탈로스7가 그의 인사를 받고도 말없이 거만한 얼굴로 지나쳐 가도 그는 마음이 다치지 않을 걸세. 그는 그 왕의 처지라는 것이, 큰 집안에서 병든 노예와 미친 노예를 다스리는 일을 맡은 사람의 처지보다 조금도 더 부러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아네. 카스토르 신전 앞에서 쓸모없는 노예를 사고팔며 장사하는 자들, 가게마다 가장 못된 노예들로 꽉 찬 자들 가운데 누가 내 이름을 불러 답례하지 않는다고 내가 언짢아하겠는가? 그렇지 않을 걸세. 밑에 못된 자들밖에 없는 사람에게 무슨 좋은 것이 있겠는가? 그러니 현자는 이런 자가 인정을 베풀든 인정머리 없이 굴든 개의치 않듯이, 왕이 그래도 개의치 않네. "그대는 파르티아인과 메디아인과 박트리아인을 거느렸소. 하지만 두려움으로 붙들어 둔 자들이오. 하지만 그들 때문에 그대는 활시위를 늦춰 본 적이 없소. 하지만 더없이 흉악한 적들이오. 하지만 돈에 팔리는 자들이오. 하지만 새 주인을 노리는 자들이오." 그러니 현자는 누구의 모욕에도 흔들리지 않을 걸세. 사람들이 저마다 서로 다르다 해도, 현자는 그들이 똑같이 어리석기에 모두 같다고 여기네. 한 번이라도 불의나 모욕에 흔들리는 데까지 자신을 낮추면 그는 결코 근심 없이 지낼 수 없을 걸세. 그런데 안온함이야말로 현자만의 좋은 것일세. 또 그는 자기가 모욕을 당했다고 판단해서 모욕한 자를 높여 주는 일은 하지 않을 걸세. 누구든 어떤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아 속상해한다면, 그 사람에게 우러름을 받으면 기뻐할 수밖에 없으니 말일세.

14 어떤 이들은 얼마나 정신이 나갔는지 여자에게서도 모욕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그들이 상대하는 여자가 얼마나 부유하든, 가마꾼을 몇이나 거느리든, 귀에 얼마나 무거운 귀걸이를 달았든, 가마가 얼마나 넓든 무슨 상관인가? 분별없는 동물이기는 마찬가지이고, 지식과 많은 교양이 보태지지 않으면 사납고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네. 어떤 이들은 머리 지지는 노예에게 떠밀렸다고 언짢아하고, 문지기가 까다롭게 구는 것, 이름 알리는 노예가 거만하게 구는 것, 침실 시종이 눈썹을 치켜드는 것을 모욕이라 부르네. 아, 이런 것들 사이에서 얼마나 크게 웃어야 하는가! 남들의 미혹이 일으키는 소란을 바라보며 제 고요를 돌아보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큰 즐거움으로 채워져야 하는가! "그러면 어떤가? 현자는 고약한 문지기가 지키는 문 앞에는 가지 않겠다는 말인가?" 아니, 그는 꼭 필요한 일이 부르면 가 볼 걸세. 그리고 그 문지기가 누구든 사나운 개를 먹이로 달래듯 달래고, 문지방을 넘으려고 얼마쯤 쓰는 것을 분하게 여기지 않을 걸세. 어떤 다리에서는 건너려면 통행료를 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일세. 그러니 아침 문안8의 통행료를 거두는 자가 누구든 그에게도 무언가를 쥐여 줄 걸세. 팔려고 내놓은 것은 돈으로 산다는 것을 그는 아네. 문지기에게 거침없이 대꾸했다고, 그 지팡이를 부러뜨렸다고, 주인에게 찾아가 그놈을 매질하라고 요구했다고 흐뭇해하는 사람은 마음이 좁은 사람일세. 다투는 사람은 스스로 상대의 맞수가 되고, 이긴다 해도 그와 대등했던 셈이지. "하지만 현자가 따귀를 맞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카토가 얼굴을 맞았을 때 한 대로 하겠지. 카토는 성내지 않았고, 불의를 갚지 않았고, 용서하지조차 않았네.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지. 용서하는 것보다 아예 알은체하지 않는 편이 더 큰마음이었네. 여기에 오래 머물지는 않겠네. 사람들이 나쁘다거나 좋다고 믿는 것 가운데 어느 것도 현자에게는 모든 사람에게 보이는 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추하다거나 비참하다고 판단하는지 돌아보지 않고, 대중이 가는 길로 가지 않네. 별들이 우주의 회전을 거슬러 제 길을 가듯, 그는 모든 사람의 통념을 거슬러 나아가네.

15 그러니 자네들은 이런 말을 그만두게. "그러면 현자는 매를 맞아도, 눈알이 뽑혀도 불의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상스러운 자들의 더러운 고함을 들으며 포룸을 끌려다녀도 모욕을 당하지 않는가? 왕의 잔치에서 식탁 아래 자리에 눕고 천한 일을 맡은 노예들과 함께 먹으라는 명을 받아도? 자유인의 염치를 괴롭히려고 생각해 낼 만한 그 밖의 무슨 일을 억지로 견뎌야 해도?" 그런 것들이 수로나 크기로나 아무리 불어나도 그 본성은 같을 걸세. 작은 것이 그를 건드리지 못한다면 더 큰 것도 못 건드리고, 몇 안 되는 것이 건드리지 못한다면 더 많은 것도 못 건드리네. 그런데 자네들은 자네들의 나약함을 잣대로 거대한 마음을 짐작해서, 자네들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헤아려 보고는 현자의 인내에는 거기서 조금 더 나간 곳에 경계를 긋지. 그러나 그의 덕은 그를 세상의 전혀 다른 경계 안에, 자네들과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곳에 데려다 놓았네. 거칠고 견디기 힘든 것, 듣기만 해도 보기만 해도 뒷걸음질할 것을 다 찾아보게. 그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와도 그는 파묻히지 않고, 하나씩 올 때 맞섰던 그대로 다 같이 몰려와도 맞설 걸세. 이것은 현자가 견딜 수 있고 저것은 견딜 수 없다고 말하며 도량을 일정한 경계 안에 가두는 사람은 잘못하는 것일세. 운을 통째로 이기지 못하면 운이 우리를 이기네. 이것을 스토아학파의 완고함이라고 여기지 말게. 자네들이 자네들 게으름의 변호인으로 모시고, 무르고 나태하고 쾌락으로 이끄는 것을 가르친다고 여기는 에피쿠로스9도 이렇게 말하네. "현자에게 운이 끼어드는 일은 드물다." 사내다운 말을 거의 내뱉을 뻔하지 않았는가! 자네는 더 힘차게 말해서 운을 아예 몰아내 보겠는가? 현자의 이 집은 좁고, 꾸밈도 소란도 차림새도 없으며, 돈에 팔리는 까다로움으로 손님 무리를 가려 들이는 문지기도 지키지 않네. 그러나 이 텅 비고 문지기 없는 문지방을 운은 넘지 못하네. 제 것이 하나도 없는 곳에는 자기 자리가 없다는 것을 운은 알지.

16 몸에 누구보다 너그러웠던 에피쿠로스마저 불의에 맞서 일어선다면, 우리 쪽에서 하는 말 가운데 무엇이 믿기지 않거나 인간 본성의 한도를 넘어선다고 보일 수 있겠는가? 그는 현자가 불의를 견딜 수 있다고 하고, 우리는 현자에게 불의란 없다고 하네. 이것이 본성에 어긋난다고 말할 것도 없네. 매 맞고 떠밀리고 팔다리 하나를 잃는 것이 괴로운 일이라는 것은 우리도 부정하지 않네. 다만 그 모든 것이 불의라는 것을 부정할 뿐이지. 우리는 그것들에서 고통의 감각을 빼는 것이 아니라 불의라는 이름을 빼는 것일세. 덕이 온전한 한 받아들일 수 없는 이름 말일세. 누구 말이 더 참된지는 두고 보세. 불의를 업신여기자는 데에는 양쪽이 다 동의하네. 둘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가? 가장 용감한 두 검투사의 차이와 같네. 한 사람은 상처를 손으로 누르고 제자리를 지키며 서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소리치는 관중을 돌아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몸짓을 하고 싸움을 말리게 두지 않지. 우리가 갈라지는 지점이 크다고 생각할 것은 없네. 지금 다루는 문제, 자네들과 상관있는 단 하나의 문제에서는 두 본보기가 똑같이 권하네. 불의를 업신여기라고, 그리고 내가 불의의 그림자요 낌새라고 부를 만한 모욕을 업신여기라고. 모욕을 깔보는 데에는 현자까지 필요 없고, 그저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면 되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말일세. "이런 일이 내게 닥친 것은 마땅한가, 부당한가? 마땅하다면 모욕이 아니라 판결이다. 부당하다면 부당한 짓을 한 자가 얼굴을 붉힐 일이다." 그리고 모욕이라 불리는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누가 내 대머리를, 내 눈병을, 내 가는 다리를, 내 키를 두고 농담을 했다고 하세. 눈에 빤히 보이는 것을 귀로 듣는 것이 무슨 모욕인가? 한 사람 앞에서 들으면 웃어넘길 말을 여러 사람 앞에서 들으면 분개하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늘 하는 말을 남들이 우리에게 할 자유는 남겨 두지 않네. 적당한 농담은 즐기고, 지나친 농담에는 화를 내지.

17 크리시포스10의 말로는, 누가 자기를 바다 숫양이라고 불렀다고 분개한 사람이 있었다네. 우리는 오비디우스 나소의 사위 코르넬리우스 피두스가 원로원에서 우는 것을 보았네. 코르불로가 그를 털 뽑힌 타조라고 불렀을 때였지11. 그는 자기 품행과 삶을 난도질하는 다른 욕설에는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버티었는데, 이 터무니없는 말에는 눈물을 쏟았네. 이성이 떠나면 마음은 이토록 약해지네. 누가 우리 말투를, 걸음걸이를, 몸이나 혀의 어떤 결함을 흉내 내면 기분이 상하는 것은 또 어떤가? 마치 우리가 할 때보다 남이 흉내 낼 때 그것이 더 잘 알려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떤 이들은 늙음이나 흰머리, 그 밖에 빌고 빌어서야 이르는 것들 이야기를 들으면 싫어하네. 가난하다는 욕이 몹시 쓰라렸던 사람들도 있지. 그러나 가난을 감추는 사람은 누구든 스스로 가난을 들추어 탓하는 셈일세. 그러니 자네가 먼저 나서서 그것을 꺼내 버리면, 방자한 자들과 모욕으로 재치를 부리는 자들은 거리를 빼앗기네. 자기를 두고 먼저 웃은 사람은 남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았네. 웃음거리로도 미움거리로도 타고난 바티니우스는 익살꾼이었고, 재치 있고 입담 좋은 사람이었다고 전하네. 그는 자기 발과 상처투성이 목을 두고 스스로 숱한 농담을 했네. 그렇게 해서 그는 앓던 병보다도 많았던 원수들의 재담을, 무엇보다 키케로의 재담을 피해 갔지. 끊임없는 욕설에 시달리다 부끄러워할 줄을 잊어버린 그 사람도 뻔뻔한 낯가죽으로 이렇게 할 수 있었다면, 자유인의 학문과 지혜를 닦아 얼마쯤 나아간 사람이 왜 못 하겠는가? 게다가 모욕한 자에게서 모욕하는 쾌락을 빼앗는 것도 일종의 복수일세. 그런 자들은 흔히 이렇게 말하지. "아, 내 신세야! 저 사람이 못 알아들은 모양이다." 모욕의 열매는 당하는 사람이 그것을 느끼고 분개하는 데 달려 있네. 또 그런 자에게도 언젠가는 맞수가 나타날 걸세. 자네 원수까지 갚아 줄 사람이 나타날 걸세.

18 칼리굴라12는 넘쳐 나던 다른 악덕에 더해 남을 모욕하기를 즐겨서, 누구에게든 무슨 낙인을 찍어 대고 싶은 이상한 욕망에 휘둘렸는데, 그 자신이야말로 더없이 푸짐한 웃음거리였네. 광기를 드러내는 창백한 얼굴은 그토록 흉했고, 노파 같은 이마 밑에 숨은 눈은 그토록 사나웠으며, 얻어 붙인 듯 몇 올 남은 머리카락이 흩어진 벗어진 머리는 그토록 볼썽사나웠지13. 거기에 거친 털로 뒤덮인 목, 가느다란 다리, 엄청나게 큰 발을 보태 보게. 그가 부모와 조상들을 모욕한 일, 모든 신분을 모욕한 일을 하나하나 늘어놓자면 끝이 없을 걸세. 그를 파멸로 몰아넣은 일만 이야기하겠네. 그는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14를 으뜸가는 벗으로 여겼는데, 아시아티쿠스는 기개가 사나워 남의 모욕을 좀처럼 참아 넘기지 못할 사람이었네. 그런데 칼리굴라는 잔치 자리에서, 아니 민회나 다름없는 자리에서, 그의 아내가 잠자리에서 어떻더라는 이야기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에게 들이댔네. 신들이시여! 남편이 이런 말을 듣고, 군주가 이런 것을 알고, 방종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러, 군주라는 자가 집정관을 지낸 사람에게, 벗에게라고는 하지 않겠네, 그저 한 남편에게 자기의 간통과 그 여자가 마음에 차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늘어놓다니! 한편 천부장 카이레아15는 말이 그 솜씨에 걸맞지 않았네. 목소리에 힘이 없어서, 그의 행적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수상쩍게 들렸지. 그가 암호를 청하면 칼리굴라는 어떤 때는 베누스를, 어떤 때는 프리아포스를 암호로 내주며, 무장한 사내에게 이렇게 저렇게 사내답지 못하다고 조롱했네. 그런 짓을 하는 그 자신은 속이 비치는 옷에 샌들을 신고 금붙이를 두르고 있었으면서 말일세. 그렇게 칼리굴라는 카이레아가 더는 암호를 청하지 않아도 되도록 칼을 쓰게 몰아붙였네. 공모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손을 든 것도 그였고, 단칼에 목 한가운데를 벤 것도 그였네. 그 뒤로 나라의 원한과 저마다의 원한을 갚으려는 칼이 사방에서 숱하게 꽂혔지만, 가장 사내답지 않아 보이던 그가 첫째가는 사내였네. 그런데 바로 그 칼리굴라는 모든 것을 모욕으로 여겼네. 모욕을 하는 데 가장 열심인 자들이 모욕을 견디는 데는 가장 서툰 법이지. 그는 헤렌니우스 마케르가 자기에게 인사하며 가이우스라고 불렀다고 화를 냈고, 어느 수석 백인대장은 그를 칼리굴라라고 불렀다가 무사하지 못했네16. 군영에서 태어나 군단의 손에 자란 그는 그렇게 불리곤 했고, 병사들에게는 어떤 이름보다도 그 이름으로 친숙했네. 그러나 비극 배우의 높은 장화를 신게 된 그는 이제 칼리굴라라는 이름을 욕설이요 치욕으로 여겼지. 그러니 우리가 너그러워 복수를 거른다 해도, 방자하고 오만하고 불의한 자에게 대가를 받아 낼 누군가가 나타나리라는 것, 바로 그것이 위안이 될 걸세. 이런 악덕은 한 사람에게서, 한 번의 모욕으로 다 쓰이고 끝나는 일이 결코 없네. 우리가 그 참을성을 칭송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를 돌아보세. 이를테면 소크라테스는 희극들이 자기를 두고 퍼뜨리고 구경거리로 삼은 재담17을 좋게 받아들였고, 아내 크산티페가 더러운 물을 뒤집어씌웠을 때 못지않게 웃었네. 안티스테네스18는 어머니가 야만인이요 트라키아 여자라는 조롱을 받자, 신들의 어머니도 이다산의 여신이라고 대답했네.

19 말다툼과 몸싸움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네. 멀찍이 발을 빼야 하네. 이런 일이 분별없는 자들에게서 생기면(분별없는 자들에게서밖에 생길 수 없지만) 무시해야 하고, 대중이 주는 영예와 불의를 똑같은 것으로 여겨야 하네. 불의에 괴로워해서도, 영예에 기뻐해서도 안 되네. 그러지 않으면 모욕이 두렵거나 지겨워서 꼭 해야 할 일을 많이 빠뜨리고, 공적·사적 의무에, 때로는 우리를 살릴 의무에도 나서지 않게 될 걸세. 마음에 거슬리는 말을 들을까 하는 여자 같은 걱정에 시달리는 동안 말일세. 때로는 권세가들에게 화가 나서 절제 없이 거침없는 말로 이 격정을 드러내기도 할 걸세. 그러나 아무것도 당하지 않는 것이 자유는 아닐세. 우리가 잘못 아는 것이지. 자유란 마음을 불의보다 높이 두는 것, 기뻐할 것이 오직 자기 안에서만 솟아나는 사람이 되는 것, 바깥 것들을 자기에게서 떼어 놓는 것일세. 그래야 모든 사람의 웃음과 모든 사람의 혀를 두려워하며 불안하게 살지 않게 되네. 누구라도 모욕할 수 있다면, 모욕하지 못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현자와 지혜를 좇는 사람은 서로 다른 약을 쓸 걸세. 아직 완성되지 않아 여전히 세상의 판단에 맞춰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일러 주어야 하네. 그들은 불의와 모욕 한가운데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든 가볍게 닥치네. 집안과 명성과 재산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 용감하게 처신해야 하네. 맨 앞 대열에는 키 큰 병사들이 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모욕과 욕설과 치욕과 그 밖의 망신거리는 적의 함성처럼, 멀리서 날아와 상처 하나 내지 못하고 투구에 부딪혀 딸그락거리는 창과 돌처럼 견뎌야 하네. 그러나 불의는 상처처럼, 어떤 것은 방패에 박히고 어떤 것은 가슴에 박힌 상처처럼, 쓰러지지 않고 발 한 걸음 물러서지 않은 채 버텨야 하네. 적이 밀어붙이고 사나운 힘으로 몰아쳐도 물러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세. 자연이 정해 준 자리를 지키게.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고 묻는가? 사내의 자리일세. 현자에게는 이와 반대되는 다른 도움이 있네. 자네들은 아직 싸우는 중이지만, 그는 이미 승리를 거두었네. 자네들 자신의 좋은 것을 거스르지 말게. 참된 것에 이를 때까지 이 희망을 마음속에 품어 기르고, 더 나은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믿음과 바람으로 그것을 북돋아 주게. 꺾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운이 어찌할 수 없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이 인류라는 나라에 이롭네.

주

  1. 1. 소(小)카토(기원전 95~기원전 46). 공화정을 지키려 카이사르에 맞서다 북아프리카 우티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원전 55년 무렵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 일파의 법안에 맞서다 포룸에서 폭도에게 봉변을 당했다. 연단(로스트라)과 파비우스 개선문은 포룸의 서로 다른 끝에 있었으니, 포룸을 가로질러 끌려갔다는 말이다.

  2. 2.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카이사르파의 정치가로, 기원전 55년 법무관 선거에서 카토를 이겼다. 생김새가 흉하고 병이 많아 키케로의 조롱을 받았다.

  3. 3.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 기원전 58년 호민관을 지냈고, 폭력배를 거느리고 로마 정계를 휘저었다. 기원전 52년 정적 밀로의 무리에게 살해되었다.

  4. 4.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그리스 원정 때 페르시아군의 화살이 해를 가릴 만큼 많았다는 이야기와, 다리를 부순 헬레스폰토스 해협에 족쇄를 던져 넣게 했다는 이야기가 헤로도토스 『역사』 7.35와 7.226에 전한다.

  5. 5. 마케도니아의 왕 데메트리오스 1세(기원전 337~기원전 283). 폴리오르케테스는 「도시 공략자」라는 뜻이다. 기원전 307년 메가라를 함락했다. 스틸폰은 메가라학파의 철학자다.

  6. 6. 카르타고(기원전 146년)와 누만티아(기원전 133년)는 둘 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함락했다.

  7. 7. 메디아 왕은 동방의 대왕, 여기서는 파르티아 왕을 일컫는다. 아탈로스는 소아시아 페르가몬의 왕들이 대대로 쓴 이름이다.

  8. 8. 아침 문안(salutatio). 피호민과 아랫사람들이 아침마다 권세가의 집에 찾아가 문안하던 로마의 관습. 문지기에게 돈을 쥐여 주어야 문을 들어설 수 있었다.

  9. 9. 에피쿠로스(기원전 341~기원전 270). 쾌락을 최고선으로 본 학파를 세웠다. 인용은 『주요 교설』 16.

  10. 10. 크리시포스(기원전 280 무렵~기원전 207 무렵). 스토아학파의 세 번째 수장으로, 학파의 이론을 집대성했다.

  11. 11. 코르넬리우스 피두스는 시인 오비디우스의 사위로 원로원 의원이었다. 코르불로는 뒷날 네로 시대에 파르티아 원정을 이끈 장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다.

  12. 12. 황제 칼리굴라(재위 37~41). 원문은 「가이우스 카이사르」. 세네카는 그를 늘 본명 가이우스로 부르는데, 이 번역에서는 널리 알려진 별명 칼리굴라로 적는다.

  13. 13. 원문 손상. 「얻어 붙인 듯 몇 올 남은 머리카락」의 뜻으로 읽었다.

  14. 14. 갈리아 출신의 원로원 의원으로 집정관을 지냈다. 칼리굴라가 살해되자 그 일을 자기가 했더라면 좋았겠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15. 15. 카시우스 카이레아. 근위대의 천부장으로, 41년 1월 칼리굴라를 살해한 음모를 이끌었다. 근위대 천부장은 날마다 황제에게서 그날의 암호를 받았다.

  16. 16. 여기서만 원문의 이름을 그대로 살렸다. 가이우스는 황제의 개인 이름이라 신하가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허물없는 호칭이었다. 칼리굴라는 「작은 군화」라는 뜻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 게르마니쿠스의 군영에서 병사용 군화(caliga)를 신고 자라 얻은 별명이다. 뒤의 「비극 배우의 높은 장화」는 이 군화와 맞세워 제왕 행세를 비꼰 말이다. 수석 백인대장은 군단의 백인대장 가운데 으뜸이다.

  17. 17.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기원전 423년)이 소크라테스를 웃음거리로 삼았다.

  18. 18. 안티스테네스(기원전 445 무렵~기원전 365 무렵).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견유학파의 선구자다. 이다산의 어머니 여신은 프리기아에서 섬기던 키벨레로, 그리스인에게는 이방의 여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