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비우스에게 보내는 위로
1 〈…〉1 우리 삶에 견주면 단단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허물어 낳아 준 곳으로 도로 불러들이는 자연의 조건에 비추어 보면 덧없습니다. 죽을 손이 지은 것 가운데 죽지 않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 일곱 불가사의도, 그리고 뒷날의 야심이 그보다 훨씬 놀라운 것을 쌓아 올렸다면 그것까지도, 언젠가는 땅바닥까지 허물어진 모습으로 눈에 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고 오래가는 것도 드뭅니다. 저마다 부서지는 모양이 다르고 끝나는 길도 갖가지이지만, 시작한 것은 무엇이든 끝이 납니다. 어떤 이들은 우주에 멸망을 예고합니다. 그렇게 믿어도 불경하지 않다고 여기신다면, 신의 일과 인간의 일을 모두 품은 이 우주 전체도 어느 날 흩어져 옛 혼돈과 어둠 속으로 가라앉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누구든 나서서 목숨 하나하나를 두고 통곡해 볼 테면 해 보라지요. 카르타고와 누만티아와 코린트2의 잿더미를, 그리고 더 높은 데서 무너진 무엇이 있다면 그것까지 애도해 보라지요. 떨어질 곳조차 없는 이 우주마저 사라질 터인데 말입니다. 누구든 나서서, 언젠가 그토록 엄청난 죄악마저 저지를 운명(fatum)이 자기만은 봐주지 않았다고 불평해 보라 하십시오. 모든 것을 같은 끝으로 불러들이는 자연의 이 필연 앞에서 자기 한 사람과 제 식구만은 따로 비켜 두기를 바라고, 우주에마저 닥쳐오는 파멸에서 어느 한 집만은 빼내려 들 만큼 오만하고 방자한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그러니 가장 큰 위안은 앞서 간 모든 사람이 겪었고 뒤에 올 모든 사람이 겪을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자연은 가장 가혹하게 만든 것을 모두에게 똑같이 만들어, 운명의 잔인함을 공평함으로 달래려 한 듯합니다.
2 이것도 공께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공의 슬픔은 공께서 그리워하시는 분에게도, 공 자신에게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헤아려 보시는 일입니다. 헛된 일을 오래 끌기를 바라지는 않으실 테니까요. 슬퍼해서 무엇 하나라도 얻을 수 있다면, 저는 제 처지를 울고 남은 눈물을 모두 공의 처지를 위해 쏟기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집안의 슬픔으로 이미 말라 버린 이 두 눈에서도, 그것이 공께 보탬이 되기만 한다면 아직 흘릴 것을 찾아내겠습니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함께 하소연합시다. 아니, 이 소송을 아예 제 일로 떠맡겠습니다. "만인이 보기에 더없이 불공정한 운(fortuna)이여, 그대는 지금껏 이분만은 품에 감싸 두는 듯했소. 이분은 그대가 베푼 선물 덕에 크나큰 존경을 받으셨고, 누구에게도 드물게 주어지는 일이지만 그 행운(felicitas)은 시기를 비켜 갔소. 그런데 보시오. 그대는 황제3께서 무사하신 한 이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을 이분에게 찍어 눌렀소. 사방을 빈틈없이 에워싸고 살핀 끝에, 그대의 일격에 열려 있는 곳은 이 한 곳뿐임을 알아챈 것이오.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소? 돈을 빼앗겠소? 이분은 한 번도 돈에 매인 적이 없소. 지금도 힘닿는 대로 돈을 멀리 물리치고, 그토록 쉽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돈에서 얻으려는 가장 큰 소득은 돈을 업신여기는 일이오. 벗들을 빼앗겠소? 이분이 얼마나 사랑받는 사람인지, 잃은 벗의 자리에 다른 벗을 쉽게 들일 수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알고 있었소. 황제의 집안에서 권세를 누리는 것을 내가 본 사람들 가운데, 누구에게나 벗으로 두면 이롭지만 그보다도 벗으로 두고 싶은 사람은 이분 하나뿐이었던 듯하오. 좋은 평판을 빼앗겠소? 이분의 평판은 그대조차 흔들 수 없을 만큼 단단하오. 건강을 빼앗겠소? 이분의 마음은 교양 학문에 터를 잡아 몸의 어떤 고통보다도 높이 솟아 있다는 것을 그대는 알고 있었소. 이분은 그 학문 속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그 속에서 태어났다고 할 만한 분이오. 목숨을 빼앗겠소? 그래 봐야 얼마나 해를 끼치겠소! 명성은 이분의 재능에 더없이 긴 수명을 약속했소. 이분은 몸소 애써 자신의 더 나은 부분으로 살아남고, 빛나는 웅변의 작품들을 지어 죽음에서 스스로를 건져 냈소. 글이 조금이라도 존중받는 한, 라틴어의 힘이나 그리스어의 우아함이 버티고 서 있는 한, 이분은 가장 위대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 숨 쉴 것이오. 이분은 그들의 재능에 자신을 견주었소. 이분의 겸손이 이 말을 마다한다면, 그들 곁에 자신을 붙여 두었다고 해 두겠소. 그래서 그대는 이분을 가장 크게 해칠 길로 오직 이것 하나를 생각해 낸 것이오. 사람은 나을수록, 아무 가림 없이 날뛰고 은혜를 베푸는 순간에도 두려워해야 할 그대를 더 자주 견디는 법이니 말이오. 그대의 너그러움이 여느 때처럼 아무렇게나 떨어진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이치를 따라 찾아간 듯 보이던 이분 하나쯤, 이런 불의에서 지켜 주는 것이 그대에게 무에 그리 어려웠단 말이오!"
3 괜찮으시다면 이 하소연에 하나를 더 보탭시다. 막 자라기 시작하던 참에 꺾여 버린 그 젊은이의 타고난 바탕 말입니다. 그분은 공을 형으로 둘 만한 분이었습니다. 공께서는 설령 못난 아우를 두셨더라도 그 아우 때문에 조금도 괴로움을 겪지 않으셔야 마땅한 분이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그분을 칭송합니다. 공을 보아 그리워하고, 그분 자신을 보아 칭찬합니다. 그분에게는 공께서 기꺼이 내 아우라고 인정하지 않으실 만한 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공께서는 덜 착한 아우에게도 좋은 형이 되셨겠지만, 그분에게서는 공의 우애(pietas)가 알맞은 바탕을 만나 훨씬 거리낌 없이 펼쳐졌습니다. 그분의 권세 때문에 해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분은 공이 형이라는 것을 내세워 누구를 을러댄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공의 겸손을 본보기로 삼아 자신을 빚으셨고, 공께서 식구들에게 얼마나 큰 자랑이자 얼마나 큰 짐인지 늘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짐을 감당해 내셨습니다. 아, 가혹한 운명이여, 어떤 덕(virtus)에도 공정하지 않은 운명이여! 공의 아우님은 자신의 행운을 미처 알기도 전에 세상에서 빠져나가셨습니다. 제 분노가 모자라다는 것을 압니다. 큰 슬픔에 걸맞은 말을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으니까요. 그래도 무엇이든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다시 하소연해 봅시다. "이토록 불의하고 이토록 난폭한 운이여, 그대는 무엇을 바랐소? 그대의 너그러움을 그토록 빨리 뉘우쳤단 말이오? 형제들 한가운데로 덮쳐 들어 그토록 피비린내 나는 약탈로 더없이 화목한 무리를 줄여 놓고, 훌륭한 젊은이들로 그토록 빼곡히 찬 집, 어느 형제 하나 못난 이가 없는 집을 뒤흔들어 아무 까닭 없이 그 가운데 하나를 떼어 가다니, 이 무슨 잔인함이오! 그렇다면 모든 법도에 맞춘 결백도 소용없고, 옛사람의 검소함도 소용없고, 더없는 행운 속 더없는 권세를 쥐고도 지켜 온 절제도 소용없고, 꾸밈없고 탈 없는 학문 사랑도 소용없고, 어떤 얼룩도 묻지 않은 정신도 소용없단 말이오? 폴리비우스 공4께서 슬픔에 잠기셨소. 아우 하나를 잃고서 남은 아우들을 두고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깨우치시고는, 자기 슬픔을 달래 주는 바로 그 위안들마저 두고 떨고 계신다오. 이 무슨 몹쓸 짓이오! 폴리비우스 공께서 슬픔에 잠기셨소. 황제께서 그토록 아끼시는데도 무언가에 괴로워하신단 말이오! 고삐 풀린 운이여, 그대가 노린 것은 틀림없이 이것이었소. 황제께서도 그대에게서 누구 하나 지켜 주실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 말이오."
4 운명은 오래 탓할 수는 있어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운명은 가혹하게, 꿈쩍도 않고 버티고 서 있습니다. 누구도 욕설로, 누구도 눈물로, 누구도 변론으로 운명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운명은 누구에게도 무엇 하나 봐주거나 덜어 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 보탬도 되지 않는 눈물을 아낍시다. 이 슬픔은 저승 사람들을 우리에게 데려오기보다 우리를 저승 사람들 곁에 보태기가 더 쉬울 테니까요. 슬픔이 우리를 괴롭힐 뿐 돕지 않는다면 되도록 빨리 내려놓아야 하고, 헛된 위안과 슬퍼하고 싶어 하는 어떤 쓰라린 욕망에서 마음을 되찾아 와야 합니다. 우리 눈물에 이성이 끝을 맺어 주지 않으면 운은 결코 끝을 맺어 주지 않습니다. 자, 죽을 인간들을 모두 둘러보십시오. 어디에나 울 거리가 넉넉하고 끊이지 않습니다. 누구는 고된 가난이 날마다 일터로 불러내고, 누구는 쉴 줄 모르는 야심이 들쑤시고, 누구는 그토록 바라던 재산을 두려워하며 제 소원 때문에 괴로워하고, 누구는 외로움이, 누구는 늘 현관을 에워싼 군중이 괴롭힙니다. 이 사람은 자식이 있어서 괴로워하고, 저 사람은 자식을 잃어서 괴로워합니다. 우리에게는 슬퍼할 까닭보다 눈물이 먼저 바닥날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며 맨 처음 하는 일이 울음이기를 바란 자연이 우리에게 어떤 삶을 약속했는지 보이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이렇게 시작하며 태어나고, 뒤따르는 세월도 모두 이 첫머리와 장단을 맞춥니다. 우리는 이렇게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니 자주 해야 하는 일은 절도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 등 뒤에 슬픈 일이 얼마나 많이 버티고 있는지 돌아보며, 눈물을 그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아껴 두어야 합니다. 이토록 자주 쓰는 것만큼 아껴야 할 것은 없습니다.
5 이것도 공께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공께서 슬픔을 바치시는 듯 보이는 바로 그분에게 그 슬픔이 누구보다도 달갑지 않다는 것을 헤아려 보시는 일입니다. 그분은 공께서 괴로워하시기를 바라지 않으시거나, 공께서 괴로워하시는 줄을 모르십니다. 그러니 이런 의무(officium)에는 아무 이치가 없습니다. 받는 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쓸데없고, 느낀다면 달갑지 않은 일이니까요. 온 세상에 공의 눈물을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누구도 공께 품지 않는 마음을 공의 아우님께서 품으셨다고 믿으십니까? 공을 괴롭혀 해치고, 공의 일에서, 곧 학문과 황제에게서 공을 떼어 놓으려 하셨다고 말입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분은 공을 형으로 여겨 다정히 따르셨고, 어버이로 여겨 공경하셨고, 윗사람으로 여겨 받드셨습니다. 그분은 공께 그리움이 되기를 바라시지, 괴로움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죽은 이에게 무슨 느낌이라도 남아 있다면 공의 아우님께서 끝나기를 바라실 그 슬픔에 몸을 녹여 버리신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속마음을 알기 어려워 보이는 다른 아우라면 저는 이 모든 것을 미심쩍은 채로 두고 이렇게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공께서 그치지 않는 눈물로 괴로워하시기를 아우가 바란다면, 그는 공의 이런 정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바라지 않는다면, 두 분 모두에게 들러붙은 슬픔을 놓아 버리십시오. 정 없는 아우라면 이토록 그리워할 까닭이 없고, 정 깊은 아우라면 이토록 그리워해 주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애가 이토록 확실히 드러난 아우님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자신의 이 불행이 공께 쓰라리고, 어떻게든 공을 괴롭히고, 이런 고통을 당해서는 안 될 공의 두 눈을 그칠 줄 모르는 눈물로 흐리고 또 말려 버린다면, 그분께는 그보다 쓰라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공의 우애를 이토록 쓸모없는 눈물에서 떼어 놓는 데는, 운이 끼친 이 불의를 꿋꿋이 견디는 본보기를 다른 아우님들께 보이셔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위대한 장군들은 형세가 기울면 일부러 쾌활한 척하고 꾸민 기쁨으로 역경을 가립니다. 장군의 꺾인 마음을 본 병사들이 저희도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공께서도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속마음과 다른 얼굴을 쓰십시오. 할 수 있다면 슬픔을 송두리째 던져 버리시고, 그렇지 못하다면 안으로 감추고 눌러 드러나지 않게 하십시오. 그리고 아우님들이 공을 본받도록 애쓰십시오. 그분들은 공께서 하시는 것을 보면 무엇이든 훌륭하다고 여기시고, 공의 얼굴에서 마음을 얻으실 것입니다. 공께서는 그분들의 위안이자 위로자가 되셔야 합니다. 그런데 공께서 자신의 비탄에 몸을 맡기신다면 그분들의 비탄을 막아 내실 수 없습니다.
6 공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무엇 하나 남의 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되새기시면, 그것도 공을 지나친 애도에서 막아 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가 공께 큰 배역을 씌웠습니다. 공께서는 그 배역을 지키셔야 합니다. 공을 둘러싼 저 위로객 무리는 모두 공의 마음을 캐묻고 꿰뚫어 봅니다. 그 마음이 슬픔에 맞설 힘이 얼마나 되는지, 공께서 순경을 솜씨 있게 누릴 줄만 아시는지 아니면 역경도 사내답게 견디실 수 있는지 말입니다. 사람들은 공의 눈을 지켜봅니다. 격정을 감출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더 자유롭습니다. 공께는 마음 놓고 숨을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운은 공을 환한 빛 한가운데 세워 두었습니다. 공께서 이 상처를 입고 어떻게 처신하셨는지, 맞자마자 무기를 내려놓으셨는지 아니면 제자리를 지키셨는지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 황제의 총애가 공을 높은 지위로 들어 올렸고, 공의 학문이 공을 그리로 이끌었습니다. 이미 오래전 일입니다. 천한 일도, 비굴한 일도 공께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슬픔에 자신을 내맡겨 갉아먹히는 것만큼 비굴하고 아녀자 같은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똑같은 애도 속에서도 아우님들께 허락되는 것이 공께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공의 학문과 인품을 두고 굳어진 평판이 공께 많은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공께 많은 것을 요구하고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 무엇이든 허락되기를 바라셨다면 모든 사람의 얼굴을 공께로 돌려세우지 마셨어야 합니다. 이제는 약속하신 만큼 해내셔야 합니다. 공의 재능이 낳은 작품을 칭찬하고 베껴 쓰는 사람들, 공의 처지는 필요 없어도 공의 재능은 필요한 그 모든 사람이 공의 마음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완숙하고 학식 있는 사람이라는 이름에 어긋나는 일을 하시면, 그것이 무엇이든 공께 감탄하던 많은 사람이 그 감탄을 뉘우치게 될 것입니다. 공께는 한없이 우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허락되지 않는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낮까지 잠을 늘이는 것도, 일의 소란을 피해 고요한 시골의 여가로 달아나는 것도, 고된 소임의 자리를 쉼 없이 지키느라 지친 몸을 즐거운 여행으로 추스르는 것도, 갖가지 구경거리에 마음을 붙들어 두는 것도, 하루를 마음대로 짜는 것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가장 비천한 사람, 구석에 처박혀 사는 사람에게도 허락되는 많은 것이 공께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높은 처지란 무거운 예속입니다. 공께는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수천수만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고, 그 많은 청원서를 정리해야 합니다. 온 세상에서 몰려드는 산더미 같은 일을 차례대로 가려, 더없이 위대한 군주의 마음에 올릴 수 있게 처리해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공께는 우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우는 많은 사람의 말을, 위태로운 처지에서 더없이 온화하신 황제의 연민(misericordia)에 닿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주시려면 공의 눈물부터 말리셔야 합니다.
7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직 가벼운 약으로 공을 도울 뿐입니다. 모든 것을 잊고 싶어지시거든 황제를 생각하십시오. 황제께서 공께 베푸시는 총애에 공께서 얼마나 큰 충성과 얼마나 큰 근면을 빚지셨는지 보십시오. 그러면 이야기가 전하는 대로 정말 그런 이가 있다면, 어깨로 우주를 떠받친다는 그 거인과 마찬가지로 공께도 허리를 굽히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모든 것이 허락되신 황제께도 바로 그 때문에 허락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그분이 깨어 계시기에 만인이 편히 잠들고, 그분이 수고하시기에 만인이 여가를 누리고, 그분이 애쓰시기에 만인이 즐거움을 맛보고, 그분이 분주하시기에 만인이 한가롭습니다. 황제께서는 온 세상에 자신을 바치신 날부터 자신을 자신에게서 빼앗으셨습니다. 쉼 없이 제 궤도를 펼쳐 가는 별들처럼, 그분께는 멈추어 서는 것도, 무엇 하나 자기 일을 하는 것도 결코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공께도 같은 필연이 지워져 있습니다. 공께는 자신의 이익이나 자신의 학문을 돌아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황제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동안 공께서는 쾌락에도, 슬픔에도, 다른 무엇에도 자신을 나누어 주실 수 없습니다. 공께서는 자신을 송두리째 황제께 빚지고 계십니다. 여기에 이것도 보태십시오. 공께서는 황제께서 공의 목숨보다 소중하시다고 늘 공언하시니, 황제께서 무사하신 한 운을 탓하시는 것은 도리에 어긋납니다. 이분이 무사하시면 공의 식구도 무사하고, 공께서는 아무것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공의 눈은 말라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기쁨에 차 있어야 합니다. 공께는 이분 안에 모든 것이 있고, 이분이 모든 것을 대신하십니다. 더없이 염치 있고 더없이 정 깊은 공의 마음씨와는 거리가 먼 일이겠습니다만, 이분이 무사하신데도 무엇 하나 울어도 된다고 스스로 허락하신다면 공께서는 자신의 행운에 감사할 줄 모르시는 셈입니다.
8 이제 더 강하지는 않지만 더 친숙한 약을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슬픔을 두려워하셔야 할 때는 댁으로 물러나 계실 때입니다. 공께서 섬기시는 신을 바라보고 계시는 동안에는 슬픔이 공께 다가갈 길을 하나도 찾지 못합니다. 황제께서 공 안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계실 테니까요. 그러나 그분 곁을 떠나시면 슬픔은 때를 만난 듯 공의 외로움을 노리고 숨어 있다가, 쉬고 있는 공의 마음으로 조금씩 기어들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한때도 학문에서 비워 두지 마십시오. 그럴 때야말로 그토록 오래 그토록 충실하게 사랑해 오신 문학이 공께 은혜를 갚게 하시고, 그럴 때야말로 문학이 공을 자기의 사제이자 숭배자로 되찾아 가게 하십시오. 그럴 때야말로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가 공 곁에 오래 머물게 하십시오. 그들이 인류에게 공을 세운 만큼, 공께서도 그들이 글을 지어 바친 독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들을 알기를 바라시어 그들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공을 세우셨습니다5. 그들에게 지켜 달라고 맡기신 시간은 모두 안전할 것입니다. 그럴 때 공의 황제께서 이루신 업적을 힘닿는 대로 엮으십시오. 그 업적이 황실 안 사람의 입으로 대대로 전해지도록 말입니다. 역사를 다듬고 엮는 일에서 그분 자신이 공께 재료도 주시고 본보기도 되어 주실 것입니다. 로마의 재능들이 아직 손대 본 적 없는 일, 곧 짧은 이야기와 이솝 우화6까지 공 특유의 맵시로 엮어 보시라고 권할 엄두는 감히 나지 않습니다. 그토록 세차게 얻어맞은 마음이 그토록 빨리 이런 가벼운 학문으로 다가가기는 어렵겠지요. 그래도 마음이 무거운 글에서 이런 느슨한 글로 나아갈 수 있다면, 마음이 이미 굳세어져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증거로 여기십시오. 무거운 글에서는 마음이 아직 앓고 저 자신과 씨름하고 있더라도, 다루는 일 자체의 엄숙함이 마음을 슬픔에서 불러낼 것입니다. 그러나 이마를 펴고 궁리해야 하는 가벼운 글은 마음이 이미 모든 면에서 제자리를 잡기 전에는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무거운 소재로 마음을 단련하시고, 그다음에 가벼운 소재로 누그러뜨리셔야 합니다.
9 스스로에게 자주 이렇게 물어보시는 것도 공께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 "나는 나 때문에 슬퍼하는가, 떠난 사람 때문에 슬퍼하는가? 나 때문이라면 애정을 내세우던 말은 무너진다. 훌륭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변명이 되던 슬픔이 제 이익을 돌아보는 순간 우애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우를 애도하면서 이해득실의 셈을 따지는 것만큼 선한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은 없다. 그 사람 때문에 슬퍼한다면 이 둘 가운데 하나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죽은 이에게 아무 느낌도 남지 않는다면, 내 아우는 삶의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 태어나기 전에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어떤 악도 겪지 않으니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겪지 않는다. 다시는 괴로워할 일 없는 사람을 두고 내가 괴로워하기를 그치지 못하다니, 이 무슨 광기인가? 죽은 이에게 무슨 느낌이라도 남는다면, 지금 내 아우의 영혼은 오랜 감옥에서 풀려난 듯 마침내 제 주인이 되어 기뻐 뛰놀며 자연의 장관을 누리고, 인간의 일은 모두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그토록 오래 헛되이 그 이치를 찾던 신의 일은 더 가까이에서 바라본다. 그렇다면 행복하거나 아예 없거나 둘 중 하나인 사람을 그리워하며 나는 왜 이리 여위어 가는가? 행복한 사람을 두고 우는 것은 시샘이요, 없는 사람을 두고 우는 것은 미친 짓이다." 아니면 아우님이 막 쏟아져 내리던 그 엄청난 복을 누리지 못하게 된 듯 보여서 마음이 흔들리십니까? 아우님이 잃은 것이 많다고 생각하시거든, 이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십시오. 분노가 그분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고, 병이 그분을 짓누르지 않을 것이고, 의심이 그분을 들쑤시지 않을 것이고, 남이 잘되는 것을 늘 적대하며 갉아먹는 시기가 그분을 뒤쫓지 않을 것이고, 두려움이 그분을 애태우지 않을 것이고, 제 선물을 금세 남에게 옮겨 주는 운의 변덕이 그분을 불안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잘 셈해 보시면 그분은 빼앗긴 것보다 면제받은 것이 더 많습니다. 그분은 재물도, 공의 위세와 자신의 위세도 누리지 못하시고, 은혜를 받지도 베풀지도 못하십니다. 그것을 잃었으니 불행하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으니 행복하다고 보십니까? 제 말을 믿으십시오. 운이 넉넉히 마련된 사람보다 운이 필요 없는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 돈, 지위, 권세, 그 밖에 인류의 눈먼 욕망이 넋을 잃고 바라보는 숱한 것들, 그럴듯하지만 속이는 쾌락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그 모든 좋은 것은 애써야 지닐 수 있고 시기 속에서 남의 눈에 띕니다. 결국 그것들은 자기가 꾸며 주는 사람마저 짓누릅니다. 이롭기보다 위협이 되고, 미끄럽고 불확실해서 결코 단단히 붙잡히지 않습니다. 앞날을 두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도, 큰 행운을 지키는 일 자체가 근심입니다. 진리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믿고자 하신다면, 삶이란 모두 형벌입니다. 우리는 깊고 잠잠할 날 없는 이 바다에 내던져졌습니다. 바다는 밀물과 썰물로 오가며, 갑자기 불어나 우리를 들어 올렸다가 더 크게 덜어 내며 끌어내리고 쉴 새 없이 뒤흔듭니다. 우리는 단단한 자리에 한 번도 서지 못하고, 매달려 출렁이다가 서로 부딪치고, 때로는 난파하며, 언제나 두려워합니다. 이토록 폭풍이 잦고 온갖 풍랑에 드러난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에게 죽음 말고는 항구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우님을 시샘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쉬고 계십니다. 마침내 자유롭고, 마침내 안전하며, 마침내 영원하십니다. 그분이 떠나신 뒤에도 황제께서는 온 자손과 함께 살아 계시고, 공께서도 다른 형제분들과 함께 살아 계십니다. 운이 그분에게 베풀던 호의를 조금이라도 바꾸기 전에, 운이 아직 꼿꼿이 서서 두 손 가득 선물을 쌓아 주고 있을 때 그분은 떠나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탁 트인 자유로운 하늘을 누리십니다. 낮고 움푹한 곳에서 솟구쳐, 사슬에서 풀린 영혼들을 복된 품에 받아들이는 곳, 그곳이 어디든 그곳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곳을 자유로이 거닐며 자연의 온갖 좋은 것을 더없는 즐거움으로 두루 바라보십니다. 공께서는 잘못 생각하고 계십니다. 아우님은 빛을 잃은 것이 아니라 더 맑은 빛을 얻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길을 함께 갑니다. 그런데 왜 운명을 두고 웁니까? 그분은 우리를 버리고 떠나신 것이 아니라 앞서 가셨을 뿐입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죽어야 한다는 필연 그 자체에 큰 행운이 있습니다. 하루 앞도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진실이 이토록 어둡고 감추어져 있는데, 죽음이 공의 아우님을 시샘한 것인지 보살핀 것인지 누가 알아맞히겠습니까?
10 모든 일에 공정하신 공이시니, 그런 아우를 잃으신 것은 공께 불의가 가해진 것이 아니라 그토록 오래 그분의 우애를 누리고 즐기도록 허락받은 은혜였다고 생각하시면 그 생각이 공께 도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물에 대한 결정을 준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 사람은 불공정하고, 받은 것을 이득으로 치지 않고 돌려준 것을 손해로 치는 사람은 탐욕스럽습니다. 즐거움이 끝난 것을 불의라 부르는 사람은 은혜를 모르고, 지금 곁에 있는 좋은 것만 열매로 치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나간 것에서 안식을 얻을 줄 모르고, 떠나간 것이 오히려 더 확실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떠나간 것은 끝날까 봐 두려워할 일이 없으니까요. 모든 즐거움은 흐르고 지나가며 오기도 전에 거의 다 빼앗겨 금세 우리를 떠나는데, 지금 지니고 눈앞에 보는 것만 누린다고 여기고 같은 것을 지녔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는 사람은 자기 기쁨을 너무 좁게 가둡니다. 그러니 마음을 지나간 때로 보내, 언젠가 우리를 즐겁게 했던 것을 무엇이든 되불러 와 자주 생각하며 어루만져야 합니다. 즐거움은 곁에 있을 때보다 기억 속에서 더 오래, 더 충실하게 머뭅니다. 그러니 더없이 훌륭한 아우를 두셨던 일을 가장 큰 복으로 꼽으십시오! 얼마나 더 오래 둘 수 있었을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두셨는지를 생각하십시오. 자연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형제를 그리했듯이 공께도 그분을 아주 넘겨준 것이 아니라 빌려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때가 되었다 싶을 때 도로 찾아갔고, 공께서 흡족하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기 법을 따랐습니다. 누가 빌린 돈을 갚았다고 언짢아한다면, 그것도 이자 없이 쓰라고 받은 돈을 갚았다고 언짢아한다면, 불의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자연은 공의 아우님께 삶을 주었고 공께도 주었습니다. 자연이 제 권리를 써서 마음에 둔 사람에게서 빌려준 것을 조금 일찍 거두어 갔다 해도, 조건을 다 알려 둔 자연에게는 허물이 없습니다. 허물은 자연이 무엇인지 걸핏하면 잊고 누가 일깨워 주지 않으면 제 몫을 결코 기억하지 못하는, 죽을 인간 마음의 탐욕스러운 희망에 있습니다. 그러니 그토록 좋은 아우를 두셨던 일을 기뻐하시고, 비록 바라시던 것보다 짧았더라도 그분과 함께 지내며 누린 날들을 고맙게 여기십시오. 그런 아우를 두셨던 것은 더없이 기쁜 일이고, 잃으신 것은 사람의 일임을 생각하십시오. 그런 아우가 너무 짧게 주어졌다고 마음 아파하면서, 그래도 주어졌다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만큼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11 "그러나 아우는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때에 빼앗겼다." 누구나 쉽게 믿는 제 마음에 속고, 아끼는 것을 두고는 그것이 죽는다는 것을 일부러 잊는 마음에 속습니다. 자연은 누구에게도 자기 필연을 면제해 주지 않겠다고 미리 밝혀 두었습니다. 날마다 아는 이와 모르는 이의 장례 행렬이 우리 눈앞을 지나갑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딴 데 정신을 팔고 있다가, 평생 닥쳐온다고 일러 준 일을 느닷없는 일로 여깁니다. 그러니 그것은 운명의 불공정이 아니라 무엇에도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 정신의 비뚤어짐입니다. 정신은 주인의 호의로 잠시 들어와 있던 곳에서 밀려나면 분개합니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위대한 사람다운 말을 한 사람은 얼마나 더 공정했습니까. "나는 그 애를 낳았을 때 이미 그 애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다."7 이런 사람에게서 용감하게 죽을 수 있는 아들이 태어난 것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새로운 소식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삶 전체가 죽음으로 가는 길일 뿐인 인간이 죽는 것이 무엇이 새롭겠습니까? "나는 그 애를 낳았을 때 이미 그 애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는 더 큰 분별과 더 큰 기개가 담긴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 일을 위해 그 애를 안아 들어 길렀다." 우리는 모두 그 일을 위해 안아 들려 길러집니다. 삶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죽음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주어질 것을 기뻐하고, 돌려 달라고 하면 돌려줍시다. 운명은 누구는 이때, 누구는 저때 붙잡아 갈 뿐 아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마음은 늘 무장한 채 서 있어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은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언제 올지 모르는 일은 늘 기다려야 합니다. 장군들과 장군의 자손들, 여러 번 집정관을 지내거나 개선식을 올려 이름을 떨쳤던 사람들이 가차 없는 운명의 몫을 다하고 떠난 일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왕국은 왕들과 함께 통째로, 백성은 겨레와 함께 저마다 운명을 맞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 모든 것이 마지막 날을 바라봅니다. 모두에게 같은 끝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삶은 누구는 한창 달리는 도중에 버리고, 누구는 막 들어서는 문턱에서 내버리고, 누구는 늙을 대로 늙어 이미 지쳐서 나가기를 바라는데도 좀처럼 놓아 주지 않습니다. 때는 저마다 달라도 우리는 모두 같은 곳으로 갑니다. 죽음의 법을 모르는 것이 더 어리석은지, 그 법을 거부하는 것이 더 뻔뻔한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자, 공께서 재능을 다해 애쓰신 덕에 널리 알려진 그 시들을, 두 시인 가운데 어느 쪽 것이든 손에 들어 보십시오. 공께서는 그 시들을 풀어 옮기셨는데, 운율의 짜임은 물러났어도 그 아름다움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시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지만, 원작의 모든 미덕이 낯선 말 속으로 공을 따라오게 하셨으니까요. 그 글에서 어느 권을 펼치든, 인간사의 변화무쌍함과 알 수 없는 불행과 이런저런 까닭으로 흐르는 눈물의 본보기를 숱하게 보여 주지 않는 권은 없을 것입니다. 공께서 얼마나 큰 기세로 웅장한 말을 우레처럼 울리셨는지 읽어 보십시오. 갑자기 기운을 잃고 그토록 장대한 글에서 벗어나시는 것이 부끄러워지실 것입니다. 공의 글을 본보기 삼아 감탄하던 사람이 누구든, 그토록 연약한 마음이 어떻게 그토록 웅대하고 단단한 글을 품어 냈는지 묻게 만드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12 차라리 공을 괴롭히는 그런 것들에서 눈을 돌려 공을 위로하는 이 많고 큰 것들로 향하십시오. 훌륭한 아우님들을 돌아보십시오. 부인을 돌아보십시오. 아드님을 돌아보십시오. 운은 이 모든 이의 무사함을 대가로 이만큼만 떼어 가기로 공과 합의를 보았습니다. 공께서 기대어 쉬실 분이 많습니다. 슬픔 하나가 이토록 많은 위안보다 공께 더 무겁다는 소리를 모두에게 듣는 오명에서 벗어나십시오. 공께서는 그분들이 모두 공과 함께 충격을 받으신 것을 보시고, 그분들이 공을 도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공께서 일으켜 주시기를 기다린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니 그분들에게 학식과 재능이 모자랄수록 공께서 이 공동의 불행에 더 굳게 맞서셔야 합니다. 슬픔을 여럿이 나누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됩니다. 슬픔이 여러 사람에게 나뉘니 공께는 작은 몫만 남아야 마땅합니다. 저는 몇 번이고 공 앞에 황제를 모셔 오기를 그치지 않겠습니다. 그분이 온 땅을 다스리시며 제국은 무기보다 은혜로 얼마나 더 잘 지켜지는지 보여 주시는 동안, 그분이 인간사를 보살피시는 동안에는 공께서 무엇을 잃었다고 느끼실 염려가 없습니다. 이분 한 분 안에 공을 지켜 줄 것도, 위로해 줄 것도 넉넉합니다. 일어서십시오. 그리고 눈물이 눈에 차오를 때마다 그 눈을 황제께로 돌리십시오. 더없이 위대하고 더없이 빛나는 신성을 바라보면 눈물이 마를 것입니다. 그분의 광채가 공의 눈을 부시게 하여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하고, 그분께 붙박인 채 떨어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밤낮으로 바라보시며 한 번도 마음을 떼신 적 없는 이분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분을 운에 맞설 변호인으로 부르셔야 합니다. 그분은 자기 사람들 모두에게 그토록 온화하고 그토록 자애로우시니, 벌써 많은 위안으로 공의 그 상처를 덮어 주시고, 공의 슬픔을 막아 줄 많은 것을 쌓아 주셨으리라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뿐입니까? 그분이 이런 일을 하나도 하지 않으셨다 해도, 황제께서는 바라보기만 해도, 생각하기만 해도 그 자체로 공께 가장 큰 위안이 되시지 않습니까? 남신과 여신들께서 이분을 오래도록 이 땅에 빌려주시기를! 이분이 신격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에 이르시고, 그 햇수는 넘어서시기를! 죽을 인간들 사이에 계시는 동안 자기 집안의 누구도 죽을 운명임을 느끼지 않으시기를! 아드님이 로마 제국을 다스릴 사람임을 오랜 세월에 걸쳐 확인하시고, 아드님이 아버지의 뒤를 잇기에 앞서 아버지와 나란히 다스리는 것을 보시기를! 그분의 집안이 그분을 하늘로 모셔 가는 날은 더디 오고, 우리 손자 대에 가서야 알려지기를!
13 운이여, 이분에게서만은 손을 거두소서. 이분에게는 이롭게 하실 때 말고는 힘을 드러내지 마소서! 오래도록 병들고 시달린 인류를 이분이 고치게 해 주시고, 앞선 군주의 광기가 뒤흔들어 놓은 것을 모두 이분이 제자리로 되돌려 바로 세우게 해 주소서! 나락으로 곤두박질쳐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세상에 빛을 비춘 이 별이 영원히 빛나게 하소서! 이분이 게르마니아를 평정하시고 브리타니아를 열어젖히시며, 선대의 개선식을 다시 올리시고 새 개선식도 올리시게 하소서! 그 개선식을 저도 구경하게 되리라고, 그분의 여러 덕 가운데 으뜸 자리를 차지하는 관용(clementia)이 약속해 줍니다. 그분은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마음도 없이 내던지신 것이 아닙니다. 아니, 내던지신 적조차 없습니다. 운에 떠밀려 쓰러지는 저를 붙들어 주셨고, 곤두박질치는 저를 신성한 손길로 부드럽게 가누어 내려놓으셨습니다. 저를 위해 원로원에 탄원하셨고, 제게 목숨을 주셨을 뿐 아니라 제 목숨을 청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8. 그 일은 그분께서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제 사건을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정의가 제 사건이 옳음을 꿰뚫어 보시든, 그분의 관용이 제 사건을 옳게 만들어 주시든 말입니다. 제가 죄 없음을 아시든 죄 없기를 바라시든, 제게는 똑같이 그분의 은혜가 될 것입니다. 그사이 제 비참함을 크게 위로해 주는 것은 그분의 연민이 온 세상을 두루 찾아다니는 모습입니다. 그 연민은 제가 박혀 있는 바로 이 구석에서도 여러 해 동안 폐허에 묻혀 있던 많은 사람을 파내어 빛 속으로 데려갔으니, 저 하나만 지나쳐 가리라고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누구를 언제 도와야 할지는 그분께서 가장 잘 아십니다. 저는 그분께서 제게 오시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폐하, 폐하의 관용은 얼마나 복된지요! 폐하의 치하에서 추방된 사람들이, 얼마 전 칼리굴라9 치하에서 나라의 으뜸가는 사람들이 살던 것보다 더 평온한 삶을 누립니다. 그들은 떨지 않고, 시시각각 칼을 기다리지 않으며, 배가 보일 때마다 겁에 질리지도 않습니다. 폐하 덕분에 그들은 날뛰는 운에도 한계가 있음을 알고, 그 운이 나아지리라는 희망과 지금의 평온을 함께 얻었습니다. 벼락 맞은 사람마저 우러러 받드는 벼락이야말로 가장 정의로운 벼락임을 폐하께서는 아셔도 좋습니다.
14 그러니 만인의 위안이신 이 군주께서는, 제 생각이 다 틀린 것이 아니라면, 벌써 공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토록 큰 상처에 더 큰 약을 발라 주셨을 것입니다. 벌써 온갖 길로 공을 북돋아 주셨고, 공을 마음의 평온으로 이끌 본보기를 그 놀라운 기억력으로 모두 들려주셨고, 모든 현자의 가르침을 몸에 밴 그 언변으로 풀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이 위로하는 역할을 그분보다 잘 맡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분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은 신탁에서 내려온 듯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닐 것입니다. 그분의 신성한 권위가 공의 슬픔이 지닌 힘을 모두 짓눌러 꺾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분께서 공께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운이 그토록 무거운 불의를 안기려고 골라낸 사람이 자네 하나만은 아닐세. 온 세상 어느 집도 통곡 소리 없이 지금 있거나 예전에 있었던 적은 없네. 흔한 본보기는 건너뛰겠네. 그런 본보기는 더 작다 해도 셀 수 없이 많지. 자네를 나라의 연표와 연대기로 데려가겠네. 황제 집안의 안채를 가득 채운 이 조상들의 얼굴상이 모두 보이는가? 이 가운데 집안의 불행으로 이름이 나지 않은 얼굴은 하나도 없네. 시대의 자랑으로 빛나는 이 사람들 가운데 식구를 그리워하며 괴로워하지 않은 이도, 식구들이 마음을 찢으며 그리워하지 않은 이도 하나도 없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10의 이야기를 해 무엇 하겠나? 그는 추방지에서 형제의 죽음을 전해 들었네. 형제를 감옥에서 빼내 준 그 형제도 운명에서는 빼낼 수 없었지. 아프리카누스의 우애가 공정한 법마저 얼마나 참지 못했는지는 모두가 보았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관리의 손에서 형제를 낚아챈 바로 그날, 한낱 사인의 몸으로 호민관에게까지 맞서 그 조치를 가로막았으니 말일세. 그래도 그는 형제를 지켜 냈을 때와 똑같이 큰마음으로 형제를 그리워했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11의 이야기를 해 무엇 하겠나? 그는 거의 같은 때에 아버지의 개선식과 두 아우의 장례를 지켜보았네. 아직 앳된 젊은이, 거의 소년이었는데도, 그는 파울루스의 개선식 바로 그 위로 집안이 무너져 내린 그 갑작스러운 황폐를 견뎠네. 로마에 스키피오가 끊이지 않고 카르타고는 살아남지 못하게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했을 만큼 큰 기개로 말일세."
15 "두 루쿨루스12의 우애가 죽음으로 갈라진 이야기를 해 무엇 하겠나? 폼페이우스 집안13 이야기는 또 무엇 하겠나? 날뛰는 운은 그들에게 한꺼번에 같은 파멸로 쓰러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는 먼저 누이를 떠나보냈네. 그 누이가 죽자 그토록 단단히 묶여 있던 로마의 평화가 풀려 버렸지. 그는 또 훌륭한 형도 떠나보냈네. 운이 그 형을 높이 들어 올린 것은 아버지를 내던진 만큼 높은 데서 그를 내던지려는 것이었지. 그런데도 이 불행을 겪은 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는 슬픔을 감당해 냈을 뿐 아니라 전쟁까지 감당해 냈네. 죽음으로 갈라진 형제의 본보기는 사방에서 셀 수 없이 떠오르네. 아니, 오히려 형제 한 쌍이 함께 늙어 가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지. 그러나 나는 우리 집안의 본보기로 만족하겠네. 운이 황제들의 눈물마저 탐냈다는 것을 안다면, 운이 누구에게 슬픔을 안겼다고 불평할 만큼 분별없고 정신 나간 사람은 없을 걸세. 신격 아우구스투스는 더없이 아끼던 누이 옥타비아를 잃었네. 자연은 하늘을 마련해 둔 그 사람에게서조차 애도해야 하는 필연을 거두어 주지 않았지. 아니, 그는 온갖 사별에 시달렸네. 자기 뒤를 잇도록 준비해 둔 누이의 아들14도 잃었지. 그의 슬픔을 하나하나 세지 않더라도, 그는 사위들도 자식들도 손자들도 잃었네. 사람들 사이에 있는 동안 자기가 사람임을 그만큼 뼈저리게 느낀 이는 죽을 인간 가운데 아무도 없었네. 그래도 무엇이든 품을 수 있던 그의 가슴은 그 많고 큰 슬픔을 다 받아들였고, 신격 아우구스투스는 바깥 민족들뿐 아니라 슬픔까지 이긴 승리자가 되었네. 내 어머니의 외삼촌 신격 아우구스투스의 손자 가이우스 카이사르15는 갓 청년이 되었을 무렵 파르티아 전쟁을 준비하던 중에 더없이 아끼던 아우 루키우스를 잃었네. 청년의 제일인자가 같은 청년의 제일인자를 잃은 것이지. 그는 뒷날 몸에 입은 상처보다 훨씬 무거운 상처를 그때 마음에 입었지만, 그 둘을 모두 더없이 정 깊게, 또 더없이 용감하게 견뎠네. 내 숙부인 황제16는 자기 아우이자 내 아버지인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를 품에 안고 입 맞추며 잃었네. 내 아버지는 게르마니아의 깊숙한 곳을 열어젖히고 더없이 사나운 민족들을 로마의 통치 아래 굴복시키던 참이었지. 그래도 숙부는 자신뿐 아니라 남들의 애도에도 절도를 지키게 했네. 슬퍼할 뿐 아니라 넋이 나가서 저희 드루수스의 시신은 저희가 모셔야 한다고 나선 온 군대를 로마의 애도 법도로 되돌려 놓았지. 군대에서 지켜야 할 것은 싸우는 규율만이 아니라 슬퍼하는 규율이기도 하다고 판단한 걸세. 자기 눈물을 먼저 누르지 않았다면 남의 눈물을 다스리지 못했을 걸세."
16 "내 할아버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자신을 이긴 사람 말고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네. 그가 국가를 바로 세우던 때, 삼두의 권력을 쥐고 자기 위에는 아무것도 없고 두 동료를 빼면 모든 것이 자기 아래에 있다고 보던 바로 그때, 아우가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네17. 고삐 풀린 운아, 너는 인간의 불행을 가지고 혼자 무슨 놀음을 벌이느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자기 시민들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자리에 앉아 있던 바로 그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아우는 처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었다니! 그래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다른 모든 역경을 견딜 때와 같은 도량으로 이 비통한 상처를 견뎠네. 그에게 애도란 스무 개 군단의 피로 아우의 넋을 기리는 것이었지. 그러나 다른 본보기는 모두 건너뛰고, 나 자신이 겪은 다른 장례도 입에 올리지 않겠네. 운은 두 번이나 형제를 잃는 슬픔으로 나를 덮쳤고, 두 번 다 내가 상처는 입어도 꺾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네. 나는 형 게르마니쿠스를 잃었네. 정 깊은 형제가 제 형제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생각해 보는 사람이라면, 내가 형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틀림없이 알 걸세. 그래도 나는 내 정을 다스려, 좋은 아우에게 마땅히 요구될 일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군주로서 비난받을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네."
그러니 만백성의 아버지께서 공께 이런 본보기를 들려주시며, 운에게는 신성한 것도 손대지 못할 것도 하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고 생각하십시오. 운은 장차 신들을 찾아 데려갈 바로 그 집안에서 감히 장례 행렬을 내보냈습니다. 그러니 운이 무엇을 잔인하게 하든 불공정하게 하든 누구도 놀라지 마십시오. 달랠 길 없는 포악함으로 신들의 자리마저 그토록 자주 장례로 더럽힌 운이, 평범한 집안을 상대로 무슨 공평함이나 절제를 알겠습니까? 우리 입으로만이 아니라 온 나라의 입으로 운을 꾸짖는다 해도 운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기도와 모든 하소연을 물리치고 제 뜻대로 밀고 나갈 것입니다. 운은 인간사에서 늘 이러했고 앞으로도 이러할 것입니다. 감히 하지 못한 일을 남긴 적이 없고, 손대지 않은 것을 남겨 두지도 않을 것입니다. 늘 그래 왔듯 더욱 난폭하게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갈 것입니다. 신전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집에도 감히 해를 끼치러 들어가, 월계수로 꾸민 문에 검은 상복을 입힐 것입니다. 운이 아직 인류를 없애 버리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아직 로마의 이름을 너그러이 돌아보고 있다면, 나라의 기원과 기도로 이것 하나만은 얻어 냅시다. 무너진 인간사에 내려 주신 이 군주께서 모든 인간에게 그러하듯 운에게도 신성한 분이 되시기를! 운이 그분에게서 관용을 배우고, 모든 군주 가운데 가장 온화하신 그분께만은 온화해지기를!
17 그러니 조금 전 제가 말씀드린 분들, 하늘에 받아들여졌거나 하늘에 가장 가까운 분들을 모두 바라보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그분들에게서도 손을 거두지 않는 운이 공께도 손을 뻗을 때 평온한 마음으로 견디셔야 합니다. 슬픔을 견디고 이겨 내는 그분들의 굳건함을 본받으셔야 합니다. 인간에게 신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이 허락되는 데까지 말입니다. 다른 일에서는 지위와 가문의 차이가 크다 해도, 덕은 모두의 한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덕은 자신을 덕에 걸맞다고 여기는 사람이면 누구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공께서는 그분들을 가장 잘 본받으실 것입니다. 그분들은 자신이 이 불행을 비켜 가지 못한 것에 분개할 수도 있었지만, 이 한 가지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지는 것을 불의가 아니라 죽을 존재의 법으로 판단했고, 닥친 일을 너무 쓰라리고 거칠게도, 나약하고 아녀자처럼도 견디지 않았습니다. 자기 불행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견디지 못하는 것은 사내가 아닙니다. 그런데 운이 형제와 누이를 빼앗아 간 황제들을 두루 살펴본 마당에, 이 사람만은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황제의 반열에서 도려내야 마땅한 사람, 자연이 인류를 파멸시키고 욕보이려고 내놓은 사람, 그가 불태우고 송두리째 뒤엎은 제국을 지금 더없이 온화하신 군주의 관용이 되살리고 있는 바로 그 사람 말입니다. 누이 드루실라18를 잃었을 때, 기뻐하는 것만큼이나 슬퍼하는 것도 군주답게 할 줄 몰랐던 그 인간 칼리굴라는 시민들의 눈길과 만남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누이의 장례에 오지도 않았고, 누이에게 마땅한 예를 갖추지도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알바의 별장에서 주사위와 놀이판과 그런 흔해 빠진 소일거리로 그 쓰라린 죽음의 아픔을 덜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수치여! 누이를 애도하는 로마 군주의 위안이 주사위 노름이었다니! 바로 그 칼리굴라는 미친 듯이 변덕을 부려, 수염과 머리를 길렀다 깎았다 하며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의 해안을 정처 없이 떠돌았습니다. 누이를 애도받게 하고 싶은지 숭배받게 하고 싶은지 끝내 정하지 못했고, 누이에게 신전과 신의 자리를 세워 주던 바로 그 무렵 내내 충분히 슬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없이 잔혹한 벌을 내렸습니다. 순조로운 일에 우쭐해 인간의 분수를 넘어 부풀어 오를 때와 똑같이 절제 없는 마음으로 불행의 타격을 견뎠기 때문입니다. 로마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런 본보기를 멀리해야 합니다. 때에 맞지 않는 놀이로 슬픔을 딴 데로 돌리거나,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몰골로 슬픔을 부추기거나, 남의 불행을 즐기는 더없이 비인간적인 위안으로 슬픔을 달래는 짓 말입니다.
18 공께서는 평소의 습관을 하나도 바꾸실 필요가 없습니다. 공께서 사랑하기로 정하신 학문은 행운을 가장 훌륭하게 드높이고 재앙을 가장 쉽게 덜어 주며, 사람에게 가장 큰 꾸밈이자 가장 큰 위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학문 속으로 더 깊이 잠기십시오. 이제 학문을 마음의 성벽처럼 두르시어, 슬픔이 공의 어느 쪽에서도 들어올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십시오. 아우님에 대한 기억도 공의 글로 기념비를 세워 길이 남기십시오. 인간사에서 어떤 폭풍도 해칠 수 없고 어떤 세월도 갉아먹을 수 없는 작품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그 밖에 돌을 쌓아 올리고 대리석을 무더기로 세우거나 흙무덤을 높다랗게 쌓아 이루어진 것들은 오래 이어 가지 못합니다. 그것들 자체도 사라지니까요. 죽지 않는 것은 재능이 남긴 기억입니다. 그 기억을 아우님께 아낌없이 베푸시고, 그 안에 아우님을 모셔 두십시오. 헛된 슬픔으로 애도하시기보다 영원히 남을 재능으로 기리시는 편이 아우님께 더 낫습니다. 운에 대해 말하자면, 운이 무언가를 빼앗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운이 우리에게 준 것까지 모두 미워 보이니 지금은 공 앞에서 운을 변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공을 운에게 좀 더 공정한 재판관으로 만들어 드리면 그때는 변호해야 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공께서도 운과 화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운은 이 불의를 바로잡을 많은 것을 미리 마련해 두었고, 이를 갚을 많은 것을 앞으로도 줄 것입니다. 무엇보다 운이 빼앗아 간 바로 그것도 애초에 운이 공께 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공의 재능을 공 자신에게 맞서 쓰지 마십시오. 공의 슬픔을 변호하지 마십시오. 공의 웅변은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믿게 할 수도, 거꾸로 큰 것을 깎아 아주 작은 것으로 끌어내릴 수도 있지만, 그 힘은 다른 데 쓰도록 아껴 두시고 지금은 웅변이 온 힘을 다해 공을 위로하게 하십시오. 그렇지만 이것마저 이미 쓸데없는 일이 아닌지 살펴보십시오. 자연은 우리에게 얼마간을 요구하지만, 허영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끌어모읍니다. 그렇다고 공께 조금도 슬퍼하지 마시라고 요구할 생각은 제게 결코 없습니다. 현자는 슬퍼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 분별이 굳세다기보다 딱딱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은 이런 불행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겪어 보았다면 운이 그들의 오만한 지혜를 털어 내고, 싫어도 진실을 털어놓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성은 슬픔 가운데 남아돌고 넘치는 것만 잘라 내도 할 몫을 충분히 한 것입니다. 이성이 슬픔을 아예 없애 주리라는 것은 누구도 바랄 수 없고 바라서도 안 됩니다. 이성은 차라리 이런 절도를 지켜야 합니다. 정 없는 것을 흉내 내지도 미친 것을 흉내 내지도 않으며, 정 깊되 흔들리지 않는 정신의 자세로 우리를 붙들어 주는 절도 말입니다. 눈물은 흐르되 그치기도 하고, 신음은 가슴 깊은 데서 끌려 나오되 끝나기도 해야 합니다. 현자들에게도 아우님들에게도 인정받으실 수 있게 공의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아우님에 대한 기억이 자주 떠오르기를 스스로 바라시게 하고, 이야기 속에서 아우님을 기리시고 끊임없는 회상으로 눈앞에 되살리십시오. 아우님에 대한 기억을 눈물겨운 것보다 즐거운 것으로 만드셔야만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마음은 돌아갈 때마다 슬퍼지는 곳에서 늘 달아나기 마련이니까요. 아우님의 겸손을 생각하십시오. 일을 꾀할 때의 슬기, 일을 해낼 때의 근면, 약속을 지킬 때의 한결같음을 생각하십시오. 아우님이 하신 말씀과 하신 일을 모두 남들에게도 들려주시고 공 자신에게도 되새기십시오. 아우님이 어떤 분이었는지, 또 어떤 분이 되리라 기대할 수 있었는지 생각하십시오. 그런 아우님이라면 무엇인들 안심하고 장담할 수 없었겠습니까?
이 글은 오랜 방치로 이미 녹슬고 무디어진 마음으로 제 힘닿는 데까지 겨우 엮은 것입니다. 이 글이 공의 재능에 미치지 못하거나 공의 슬픔을 제대로 낫게 해 드리지 못하는 듯 보이거든, 감히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 불행에 사로잡힌 사람은 남을 위로할 겨를을 내기 어렵고, 야만인들의 거칠고 어지러운 소음, 조금 나은 야만인들조차 듣기 괴로워할 그 소음에 사방으로 둘러싸인 사람에게는 라틴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주
1. 앞부분이 전하지 않는다. 남은 첫 문장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들이 우리 삶에 견주면 단단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2. 카르타고와 코린트는 기원전 146년, 누만티아는 기원전 133년에 로마군에게 함락되어 허물어졌다.
3. 이 글에서 「황제」는 클라우디우스(재위 41~54)다. 원문은 「카이사르」.
4.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해방 노예. 황제의 학문 담당 비서로 큰 권세를 누렸다. 41년부터 코르시카에 추방되어 있던 세네카가 그의 아우가 죽자 이 위로문을 써 보냈다.
5. 폴리비우스는 호메로스를 라틴어로, 베르길리우스를 그리스어로 풀어 옮겼다고 한다(11장).
6. 세네카는 로마인이 이솝 우화에 아직 손대지 않았다고 하지만, 아우구스투스의 해방 노예 파이드루스가 이미 라틴어 운문 우화집을 냈다. 세네카가 몰랐거나 셈에 넣지 않은 것으로 본다.
7. 엔니우스의 비극에서 아이아스의 아버지 텔라몬이 하는 말이다(키케로 『투스쿨룸 대화』 3.28). 키케로는 아들의 죽음을 전해 듣고 비슷한 말을 한 사람으로 아낙사고라스도 든다(3.30). 「안아 들어 길렀다」(sustuli)는 아버지가 갓난아이를 땅에서 들어 올려 제 자식으로 받아들이던 로마의 관습에서 나온 말이다.
8. 세네카는 41년 칼리굴라의 누이 율리아 리빌라와 간통했다는 죄로 원로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클라우디우스가 나서서 코르시카 추방으로 그쳤다.
9. 황제 칼리굴라(재위 37~41). 원문은 「가이우스」. 바로 앞 문단의 「앞선 군주의 광기」도 그를 가리킨다.
10. 대(大)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기원전 236~기원전 183). 형제 루키우스 스키피오가 공금 문제로 벌금을 물고 끌려가게 되자 관리의 손에서 그를 빼냈다고 전한다. 만년에는 정적들에게 밀려 리테르눔으로 물러나 살았다.
11.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기원전 185~기원전 129).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의 아들로 스키피오 집안에 양자로 들었다. 기원전 167년 아버지가 마케도니아 왕 페르세우스를 꺾고 개선식을 올릴 무렵, 집에 남은 두 아우가 개선식 닷새 전과 사흘 뒤에 잇따라 죽었다. 뒷날 카르타고를 무너뜨렸다.
12.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기원전 118 무렵~기원전 56)와 그 아우 마르쿠스. 우애가 깊기로 이름났다.
13. 폼페이우스의 아들들. 큰아들 그나이우스는 기원전 45년 문다에서 카이사르에게 지고 죽었고, 작은아들 섹스투스는 시칠리아를 근거로 버티다 기원전 35년 죽었다. 「누이」라 했지만, 그 죽음으로 로마의 평화가 깨진 사람은 카이사르의 딸이자 폼페이우스의 아내 율리아(기원전 54년 사망)다. 세네카의 착오이거나 원문이 잘못 전한 것으로 본다.
14. 옥타비아의 아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리아와 혼인해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기원전 23년 스무 살이 못 되어 죽었다.
15. 아우구스투스의 외손자이자 양자인 가이우스 카이사르(기원전 20~기원후 4). 칼리굴라와 다른 사람이다. 아우 루키우스는 2년 마실리아에서 병으로 죽었고, 가이우스는 아르메니아에서 입은 상처로 4년에 죽었다. 「청년의 제일인자」는 아우구스투스가 두 손자에게 준 칭호다.
16. 티베리우스. 기원전 9년 아우 드루수스가 게르마니아에서 말에서 떨어져 죽어 갈 때 서둘러 달려가 임종을 지켰고, 로마까지 시신 앞을 걸어서 운구했다.
17. 클라우디우스의 어머니 안토니아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의 딸이다. 안토니우스의 아우 가이우스 안토니우스는 마케도니아에서 브루투스에게 사로잡혔다가 기원전 42년 처형되었고, 안토니우스는 같은 해 필리피에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꺾었다.
18. 칼리굴라의 누이(16~38). 드루실라가 죽자 칼리굴라는 그를 신으로 모시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