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 책의 글, 아니 그 대부분을 쓸 때 나는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 어느 이웃과도 1마일 떨어진 숲속에 내 손으로 지은 집에서 홀로 살며 오직 내 손의 노동으로 생계를 꾸렸다. 나는 거기서 두 해 두 달을 살았다. 지금은 다시 문명 생활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다.
읍 사람들이 내 생활을 두고 아주 꼬치꼬치 묻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 일을 이토록 독자들 눈앞에 들이밀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런 물음을 주제넘다고 하겠지만, 내게는 조금도 주제넘어 보이지 않고, 사정을 따져 보면 아주 자연스럽고 주제에 꼭 맞는 물음으로 보인다. 어떤 이는 내가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외롭지 않았는지, 무섭지 않았는지 따위를 물었다. 또 어떤 이는 내가 수입의 얼마를 자선에 썼는지 알고 싶어 했고, 식구가 많은 어떤 이는 내가 가난한 아이를 몇이나 거두었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니 내게 별 관심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내가 이 책에서 그런 물음 몇 가지에 답하려 들더라도 너그러이 보아 달라고 청한다. 대부분의 책에서는 나, 곧 일인칭이 빠진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둔다. 자기중심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것이 가장 큰 차이다. 우리는 흔히, 결국 말하는 것은 언제나 일인칭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나는 나 자신을 두고 이렇게 많이 늘어놓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 경험이 좁아서 나는 이 주제에 갇혀 있다. 더구나 나도 나대로 모든 작가에게 언젠가는, 남의 삶을 두고 들은 이야기만이 아니라 자기 삶을 소박하고 진실하게 적은 기록, 먼 땅에서 고향의 친척에게 써 보낼 법한 그런 기록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가 진실하게 살았다면 그곳은 틀림없이 나에게서 먼 땅이었을 테니까. 어쩌면 이 글은 특히 가난한 학생들을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독자들은 저마다 자기에게 맞는 부분만 받아들이면 된다.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느라 솔기를 늘이는 사람은 없으리라 믿는다. 몸에 맞는 사람에게는 쓸모 있는 옷일 테니까.
나는 중국 사람이나 샌드위치 제도 사람들보다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뉴잉글랜드에 산다는 여러분에 관해 무언가 말하고 싶다. 여러분의 처지, 특히 이 세상, 이 읍에서 여러분이 놓인 겉의 처지나 형편이 어떠한지, 지금처럼 나빠야만 하는지, 나아질 수는 없는지를. 나는 콩코드 안을 꽤 많이 여행했다. 그런데 가게에서도 사무실에서도 들판에서도, 어디서나 주민들은 천 가지 기이한 모습으로 고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브라만들이 네 불 사이에 앉아 해를 똑바로 쳐다본다거나, 불길 위에 머리를 아래로 하고 매달린다거나, 어깨 너머로 하늘을 바라보다가 "끝내 목이 본디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비틀린 목으로는 물 같은 것 말고 아무것도 뱃속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된다"거나, 평생 사슬에 묶여 나무 밑동에서 산다거나, 자벌레처럼 몸으로 재어 가며 드넓은 제국을 가로지른다거나, 기둥 꼭대기에서 한 발로 서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나는 들었지만, 스스로 알고 하는 이런 고행조차 내가 날마다 보는 광경보다 더 믿기 어렵고 놀랍지는 않다.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도 내 이웃들이 떠맡은 일에 대면 하찮았다. 그것은 열두 가지뿐이었고 끝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 사람들이 괴물을 하나라도 죽이거나 사로잡는 것도, 일을 하나라도 끝내는 것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는 히드라의 목 뿌리를 뜨거운 쇠로 지져 줄 벗 이올라오스가 없어서,1 머리 하나를 짓뭉개자마자 두 개가 돋아난다.
나는 읍의 젊은이들을 본다. 농장과 집과 헛간과 가축과 농기구를 물려받은 것이 불행인 젊은이들이다. 이런 것은 얻기는 쉬워도 떨쳐 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탁 트인 목초지에서 태어나 늑대 젖을 먹고 자랐더라면, 자기가 어떤 밭에서 일하도록 부름받았는지 더 맑은 눈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그들을 땅에 매인 농노로 만들었는가? 사람은 죽기 전에 흙 한 펙만 먹으면 된다는데, 그들은 왜 60에이커를 먹어야 하는가? 왜 태어나자마자 제 무덤을 파기 시작해야 하는가?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앞으로 밀면서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하고, 할 수 있는 만큼 꾸려 나가야 한다. 가엾은 불멸의 영혼이 짐에 깔려 거의 짓눌리고 숨이 막힌 채, 길이 75피트 너비 40피트의 헛간과 한 번도 치운 적 없는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과,2 경작지와 풀밭과 목초지와 땔감 숲을 합친 100에이커의 땅을 앞으로 밀며 삶의 길을 기어 내려가는 것을 나는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3 그런 쓸데없는 유산의 짐과 씨름하지 않아도 되는, 물려받은 것 없는 사람들은 몇 세제곱피트의 살덩이를 다스리고 가꾸는 일만으로도 힘에 넘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잘못 안 채로 수고한다. 사람의 더 나은 부분은 곧 쟁기에 갈려 흙 속의 거름이 된다. 흔히 필연이라 부르는, 운명처럼 보이는 것에 떠밀려 그들은 옛 책의 말처럼 좀과 녹이 갉아먹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갈 보물을 쌓는 데 매여 있다. 그것은 어리석은 자의 삶이다. 그 끝에 이르면, 아니 그 전에라도 그들은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데우칼리온과 피라는 어깨 너머 뒤로 돌을 던져 사람을 지었다고 한다.4
Inde genus durum sumus, experiensque laborum,
Et documenta damus qua simus origine nati.
롤리는 이것을 낭랑한 가락으로 이렇게 옮겼다.5
"그리하여 우리 족속은 마음이 굳어 고통과 근심을 견디며,
우리 몸이 돌의 본성을 지녔음을 보여 준다."
엉터리 신탁에 눈먼 채 복종해서, 돌을 어깨 너머 뒤로 던지고는 어디 떨어지는지 보지도 않은 결과가 이렇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조차 순전히 무지와 착각 때문에, 삶이 지어낸 걱정과 쓸데없이 거친 노동에 매달리느라 삶의 더 고운 열매를 따지 못한다. 지나친 고역에 손가락이 너무 굳고 너무 떨려서 그럴 수가 없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날마다 참된 온전함을 지킬 여유가 없다. 사람들과 가장 사람다운 관계를 이어 갈 형편도 못 된다. 그랬다가는 시장에서 그의 노동 값이 떨어질 것이다. 그에게는 기계 말고 다른 무엇이 될 시간이 없다. 자기 지식을 그토록 자주 써먹어야 하는 사람이, 자라려면 꼭 있어야 하는 자기의 무지를 어떻게 제대로 기억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를 판단하기 전에 이따금 값없이 먹이고 입히고, 우리의 강장 음료로 기운을 북돋워 주어야 한다. 우리 본성의 가장 고운 자질은 과일 껍질에 앉은 뽀얀 분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지킬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도 서로도 그렇게 다정하게 다루지 않는다.
여러분 가운데 몇몇은, 우리 모두 알다시피, 가난하고 살기가 힘들어서 이따금 말하자면 숨을 헐떡인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 가운데에는 실제로 먹어 치운 저녁값을 다 치르지 못했거나, 빠르게 닳아 가거나 이미 다 닳아 버린 외투와 구두 값을 다 치르지 못한 채 빌리거나 훔친 시간을 쓰려고 이 쪽을 펼쳐서 빚쟁이에게서 한 시간을 훔치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이가 얼마나 비천하고 비굴한 삶을 사는지는 아주 뻔하다. 경험으로 내 눈이 날카로워졌으니까. 늘 벼랑 끝에서 장사를 시작하려 애쓰고 빚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삶, 라틴 사람들이 남의 놋쇠(aes alienum)라고 부른 아주 오래된 수렁이다. 그들의 동전 가운데 몇은 놋쇠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 남의 놋쇠로 살고 죽고 묻히며, 늘 갚겠다고, 갚겠다고, 내일 갚겠다고 약속하다가 오늘 빚을 못 갚은 채 죽는다. 감옥에 갈 죄만 아니면 갖은 수를 다 써서 환심을 사고 단골을 얻으려 한다. 거짓말하고, 아첨하고, 표를 던지고, 예의라는 호두 껍데기 속으로 몸을 오그리거나 묽고 김 같은 너그러움의 대기로 몸을 부풀린다. 그래야 이웃을 설득해서 그의 구두나 모자나 외투나 마차를 만들게 해 달라고, 그를 위해 식료품을 들여오게 해 달라고 할 수 있으니까. 아플 날에 대비해 무언가 쌓아 두려고 스스로 병이 든다. 낡은 궤짝 속이나 회벽 뒤에 숨긴 양말 속, 더 안전하게는 벽돌 은행에 넣어 둘 무언가를. 어디든 상관없고, 많든 적든 상관없다.
나는 이따금 의아하다. 북부와 남부를 모두 노예로 부리는 날카롭고 교묘한 주인이 이토록 많은데, 우리가 흑인 노예제라는, 노골적이지만 어딘가 남의 나라 일 같은 예속에 마음을 쓸 만큼, 거의 경박하다고까지 말하고 싶을 만큼 한가할 수 있다니. 남부의 감독 밑에 있는 것은 괴롭다. 북부의 감독 밑에 있는 것은 더 나쁘다. 그러나 가장 나쁜 것은 스스로 자기를 부리는 노예 감독이 될 때다. 사람 안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들 한다! 큰길의 마부를 보라. 밤낮으로 시장을 향해 가는 그의 안에서 무슨 신성이 꿈틀거리는가? 그의 가장 높은 의무는 말에게 꼴과 물을 먹이는 일이다! 해운업의 이해관계에 비하면 그에게 자기 운명이 다 무엇인가? 그는 법석 나리를 위해 마차를 모는 게 아닌가? 그는 얼마나 신 같고, 얼마나 불멸인가? 그가 얼마나 움츠리고 살금거리는지, 하루 종일 얼마나 막연히 두려워하는지 보라. 그는 불멸도 신성도 아니고, 자기 자신을 두고 내린 자기 의견, 제 행실로 얻은 평판의 노예이자 죄수다. 여론은 우리 자신의 사사로운 의견에 비하면 약한 폭군이다.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바로 그것이 그의 운명을 정한다. 아니, 가리킨다. 공상과 상상이라는 서인도 식민지에서조차 스스로를 해방하는 일, 그 일을 이루어 줄 윌버포스가 어디 있는가? 또 이 땅의 숙녀들을 생각해 보라. 자기 운명에 너무 풋내 나는 관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마지막 날에 대비해 화장대 방석을 짜고 있다! 마치 영원을 다치게 하지 않고도 시간을 죽일 수 있다는 듯이.
대부분의 사람은 조용한 절망 속에 살아간다. 이른바 체념이란 굳어 버린 절망이다. 절망의 도시를 떠나 절망의 시골로 가서는 밍크와 사향쥐의 늠름한 차림새를 보며 스스로를 달래야 한다. 인류의 놀이니 오락이니 하는 것들 밑에도 판에 박힌, 그러나 스스로는 알아채지 못하는 절망이 숨어 있다. 거기에는 놀이가 없다. 놀이는 일을 마친 다음에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망적인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한 특징이다.
교리 문답의 말을 빌려 사람의 으뜸가는 목적이 무엇이며 삶의 참된 필수품과 수단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흔한 생활을 다른 어떤 삶보다 좋아해서 일부러 고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길이 남아 있지 않다고 정직하게 믿는다. 그러나 눈 밝고 건강한 본성은 해가 맑게 떠올랐음을 기억한다. 편견을 버리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아무리 오래된 생각이나 행동이라도 증거 없이는 믿을 수 없다. 오늘 모두가 메아리처럼 따라 하거나 말없이 참이라고 넘기는 것이 내일은 거짓으로, 어떤 이들이 제 밭에 기름진 비를 뿌려 줄 구름으로 믿었던 한낱 의견의 연기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노인들이 할 수 없다고 하는 일도 해 보면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옛일은 옛사람에게, 새 일은 새 사람에게. 옛사람들은 어쩌면 불을 계속 지피려고 새 땔감을 가져올 줄도 몰랐을지 모른다. 새 사람들은 솥 밑에 마른 나무를 조금 넣고는, 흔히 하는 말로 늙은이 숨넘어갈 만큼 빠르게, 새처럼 지구를 휘돌아 다닌다. 나이는 젊음보다 스승으로서 나을 것이 없고, 오히려 그만도 못하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도 살면서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을 무엇 하나 배웠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실제로 늙은이들은 젊은이에게 줄 대단히 중요한 충고가 없다. 그들 자신의 경험은 너무 치우쳐 있었고, 그들의 삶은 그들 스스로 믿을 수밖에 없듯 사사로운 이유로 그토록 비참한 실패였으니까. 또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 경험을 거스르는 믿음이 얼마간 남아 있고, 그들은 다만 예전보다 덜 젊을 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행성에서 서른 해 남짓 살았지만 손윗사람들에게서 값진, 아니 진지하기라도 한 충고를 아직 한 마디도 들어 보지 못했다. 그들은 내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고, 아마 쓸모 있는 말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여기 삶이 있다. 대부분 내가 아직 해 보지 않은 실험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해 보았다는 것은 내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값지다고 여기는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내 스승들이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농부는 내게 "채소만 먹고는 못 살아요. 채소에는 뼈를 만들 거리가 하나도 없으니까"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하루의 얼마를 꼬박꼬박 경건하게 바쳐 제 몸에 뼈의 원료를 대어 준다. 그렇게 말하는 내내 그는 소 뒤를 따라 걷는데, 채소로 뼈를 만든 그 소들은 온갖 장애를 무릅쓰고 그와 그의 덜컹거리는 쟁기를 홱홱 끌고 간다. 어떤 것들은 가장 무력하고 병든 어떤 무리에게는 정말로 삶의 필수품이지만, 다른 무리에게는 한낱 사치품이고, 또 다른 무리에게는 아예 알려지지도 않은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인간 삶의 땅이 높은 곳이든 골짜기든 선배들이 이미 다 밟고 지나갔고 모든 것이 이미 다 보살펴진 것처럼 보인다. 이블린에 따르면 "지혜로운 솔로몬은 나무 사이의 거리까지 법도로 정했고, 로마의 법무관들은 이웃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무단 침입이 되지 않게 주우러 몇 번이나 들어가도 되는지, 또 그 가운데 몇 몫이 그 이웃의 것인지까지 정해 두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손톱 깎는 법까지 일러두었다. 손가락 끝과 가지런하게, 더 짧지도 더 길지도 않게. 삶의 다양함과 기쁨을 다 써 버렸다고 지레 단정하는 지루함과 권태도 분명 아담만큼 오래되었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은 한 번도 재어진 적이 없다. 해 본 것이 워낙 적으니,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선례로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무엇에 실패했든 "슬퍼하지 말라, 내 아이야. 네가 하지 않고 남겨 둔 일을 누가 너에게 따지겠느냐?"
우리는 천 가지 단순한 시험으로 우리 삶을 시험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내 콩을 익히는 그 해가 동시에 우리 지구 같은 세계들의 한 체계를 비춘다는 것. 이것을 기억했더라면 몇 가지 실수는 막았을 것이다. 나는 이런 빛 아래서 콩밭을 매지 않았다. 별들은 얼마나 놀라운 삼각형의 꼭짓점인가! 우주의 여러 거처에 사는, 멀리 떨어진 저마다 다른 존재들이 같은 순간에 같은 별 하나를 바라보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삶은 우리 저마다의 체질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삶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전망을 펼쳐 보이는지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한순간이라도 서로의 눈으로 내다보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한 시간 안에 세상의 모든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 모든 시대의 모든 세계를. 역사, 시, 신화! 남의 경험을 읽는 일 가운데 이것만큼 놀랍고 많은 것을 깨우쳐 줄 읽기를 나는 알지 못한다.
내 이웃들이 좋다고 하는 것의 대부분을 나는 마음속 깊이 나쁘다고 믿는다. 내가 무언가를 뉘우친다면 그것은 아마 내 좋은 품행일 것이다. 무슨 마귀가 씌었기에 나는 그렇게 얌전히 굴었던가? 노인이여, 일흔 해를 살며 나름의 영예도 없지 않았던 노인이여,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말을 해도 좋다. 나는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불러내는 거스를 수 없는 목소리를 듣는다. 한 세대는 앞 세대의 사업을 좌초한 배처럼 버린다.
나는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믿고 맡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른 데 정직하게 쏟는 만큼은 우리 자신을 돌보는 일을 내려놓아도 된다. 자연은 우리의 강함에 맞추어진 만큼 우리의 약함에도 맞추어져 있다. 어떤 이들의 끊임없는 근심과 긴장은 거의 고칠 수 없는 병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부풀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하지 않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병이라도 났다면 어쩔 뻔했는가? 우리는 얼마나 눈을 부릅뜨고 사는가! 피할 수만 있다면 믿음으로는 살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하루 종일 바짝 경계하다가, 밤이 되면 마지못해 기도를 올리고 불확실한 것에 몸을 맡긴다. 그토록 철저하고 진지하게 우리는 우리 삶을 떠받들고 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며 살도록 내몰린다. 이 길밖에 없다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한 중심에서 그을 수 있는 반지름만큼 많은 길이 있다. 모든 변화는 생각해 보면 기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마다 일어나는 기적이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그것이 참된 앎이다"라고 말했다.6 한 사람이 상상 속의 사실을 자기 이해 속의 사실로 바꾸어 놓으면, 마침내 모든 사람이 그 바탕 위에 삶을 세우리라고 나는 내다본다.
내가 말한 걱정과 근심의 대부분이 무엇 때문인지, 우리가 얼마나 걱정해야, 아니 적어도 조심해야 하는지 잠시 생각해 보자. 겉으로는 문명 한가운데 있더라도 원시의 삶, 개척지의 삶을 살아 보는 것은 얼마간 득이 될 것이다. 삶의 가장 투박한 필수품이 무엇이고 사람들이 그것을 얻으려고 어떤 수단을 써 왔는지 배우는 것만으로도, 아니면 상인들의 오래된 거래 일지를 훑어보며 사람들이 가게에서 가장 흔히 산 것, 쟁여 둔 것, 곧 가장 투박한 식료품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그렇다. 시대가 거듭 이룬 개량도 사람의 존재를 다스리는 본질적인 법칙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뼈대가 아마 조상들의 뼈대와 구별되지 않듯이.
삶의 필수품이라는 말로 내가 뜻하는 것은, 사람이 제 힘으로 얻는 모든 것 가운데 처음부터 인간의 삶에 그토록 중요했거나 오래 써 오면서 그토록 중요해져서, 야만 때문이든 가난 때문이든 철학 때문이든 그것 없이 살아 보려는 사람이 거의, 아니 아예 없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많은 생물에게 삶의 필수품은 먹을거리 하나뿐이다. 대초원의 들소에게 그것은 맛 좋은 풀 몇 인치와 마실 물이다. 숲이나 산 그늘이라는 거처를 찾는 경우가 아니라면. 짐승 가운데 먹을거리와 거처 이상을 필요로 하는 것은 없다. 이 기후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삶의 필수품은 먹을거리, 거처, 옷, 연료라는 몇 갈래로 나누어도 꽤 정확하다. 이것들을 확보하고 나서야 우리는 삶의 참된 문제를 자유롭게, 이룰 가망을 품고 맞이할 채비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집뿐 아니라 옷과 익힌 음식도 발명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연히 불의 따뜻함을 발견하고 그 뒤로 불을 쓰게 되면서, 처음에는 사치였던 것이 지금은 불 곁에 앉아야만 하는 필요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양이와 개도 같은 제2의 본성을 얻는 것을 본다. 알맞은 거처와 옷으로 우리는 제 몸속의 열을 정당하게 붙잡아 둔다. 그러나 이것들이나 연료가 지나치면, 곧 바깥의 열이 우리 몸속의 열보다 커지면, 그때 요리가 시작된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박물학자 다윈은 티에라델푸에고 주민들을 두고, 옷을 잘 갖춰 입고 불 가까이 앉은 자기 일행은 조금도 덥지 않았는데 더 멀리 떨어져 있던 벌거벗은 야만인들이 "그렇게 구워지면서 땀을 줄줄 흘리고 있어서" 몹시 놀랐다고 쓴다. 또 듣자 하니 뉴홀랜드, 곧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은 벌거벗고 다녀도 탈이 없는데 유럽 사람은 옷을 입고도 떤다고 한다. 이 야만인들의 강인함과 문명인의 지성을 하나로 묶을 수는 없을까? 리비히에 따르면 사람의 몸은 난로이고, 음식은 허파 속의 연소를 이어 가게 하는 연료다. 추운 날에는 더 먹고 더운 날에는 덜 먹는다. 체열(animal heat)은 느린 연소의 결과이며, 이 연소가 너무 빠르면 병이 나고 죽음이 온다. 또는 연료가 모자라거나 바람길에 탈이 나면 불이 꺼진다. 물론 생명의 열을 불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비유는 이쯤 해 두자. 그러니 위의 목록으로 보아 동물의 삶이라는 말은 동물의 열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인 듯하다. 먹을거리는 우리 안의 불을 지피는 연료로 볼 수 있고, 연료는 그 먹을거리를 장만하거나 바깥에서 열을 보태 몸을 덥히는 데만 쓰이며, 거처와 옷 또한 그렇게 생기고 흡수된 열을 붙잡아 두는 데만 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몸에 가장 큰 필요는 따뜻함을 지키는 것, 우리 안의 생명의 열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먹을거리와 옷과 거처뿐 아니라 밤의 옷인 잠자리에도 얼마나 공을 들이는가! 두더지가 굴 끝에 풀과 잎으로 잠자리를 마련하듯, 거처 안의 이 거처를 장만하려고 새의 둥지와 가슴털을 빼앗는다! 가난한 사람은 세상이 차갑다고 곧잘 투덜댄다. 우리는 우리 병의 상당 부분을 곧장 추위 탓으로 돌린다. 몸의 추위 못지않게 사회의 추위 탓으로. 어떤 기후에서는 여름이 사람에게 일종의 엘리시온 같은 삶을 열어 준다. 그때는 먹을거리를 익히는 데 말고는 연료가 필요 없다. 해가 그의 불이고, 많은 열매가 햇살에 넉넉히 익는다. 먹을거리는 대개 더 다양하고 더 쉽게 얻어지며, 옷과 거처는 전혀 또는 반쯤 필요 없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내 경험으로 알게 된 바로는, 몇 가지 연장, 곧 칼, 도끼, 삽, 손수레 따위와,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등불과 문구와 책 몇 권을 볼 길이 필수품 바로 다음 자리에 오는데, 이것들은 모두 하찮은 비용으로 얻을 수 있다. 그런데도 지혜롭지 못한 어떤 이들은 지구 반대편의 야만스럽고 건강에 나쁜 땅으로 가서 열 해나 스무 해를 장사에 바친다. 살기 위해서, 곧 기분 좋게 따뜻하게 지내다가 마침내 뉴잉글랜드에서 죽기 위해서. 사치스러운 부자들은 그저 기분 좋게 따뜻한 게 아니라 부자연스럽게 뜨겁다. 앞에서도 내비쳤듯 그들은 익혀진다. 물론 최신 유행대로 푹 고아서.
사치품의 대부분과 이른바 삶의 안락 가운데 많은 것은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인류가 높이 오르는 길을 적극적으로 가로막는다. 사치와 안락에 관해서라면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보다 더 단순하고 빈약하게 살았다. 중국, 힌두, 페르시아, 그리스의 옛 철학자들은 겉의 재물로는 누구보다 가난하고 속의 재물로는 누구보다 부유한 무리였다. 우리는 그들을 많이 알지 못한다. 그만큼이라도 아는 것이 놀랍다. 더 가까운 시대에 제 겨레를 개혁하고 이롭게 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자발적 가난이라 부를 법한 유리한 자리에 서지 않고는, 누구도 인간의 삶을 치우침 없이 지혜롭게 바라볼 수 없다. 농업이든 상업이든 문학이든 예술이든, 사치스러운 삶의 열매는 사치다. 요즘에는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있어도 철학자는 없다. 그래도 철학을 가르치는 일이 훌륭한 것은, 한때 철학대로 사는 일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그저 미묘한 생각을 품는 것도, 하나의 학파를 세우는 것도 아니고, 지혜를 사랑한 나머지 지혜가 시키는 대로, 단순하고 독립적이며 너그럽고 남을 믿는 삶을 사는 것이다. 삶의 문제 몇 가지를 이론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푸는 것이다. 위대한 학자와 사상가의 성공은 대개 궁정 신하의 성공이지 왕의 성공도, 사내다운 성공도 아니다. 그들은 순전히 순응으로, 사실상 그들의 아버지들이 산 그대로 그럭저럭 살아갈 뿐이며, 어떤 뜻으로도 고귀한 인간 종족의 조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왜 언제나 퇴화하는가? 무엇이 가문을 대가 끊기게 하는가? 나라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무너뜨리는 사치란 어떤 것인가? 우리 자신의 삶에는 그런 사치가 조금도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철학자는 삶의 겉모습에서조차 자기 시대를 앞서 간다. 그는 동시대 사람들처럼 먹고, 묵고, 입고, 몸을 덥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수단으로 생명의 열을 지키지 않고서야 어떻게 철학자일 수 있겠는가?
사람이 내가 말한 여러 수단으로 몸을 덥히고 나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바라는가? 분명 같은 종류의 따뜻함을 더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더 많고 더 기름진 음식, 더 크고 더 화려한 집, 더 곱고 더 넉넉한 옷, 더 많고 쉼 없고 더 뜨거운 불 따위 말이다. 삶에 필요한 것들을 얻고 나면 남아도는 것을 얻는 일 말고 다른 길이 있다. 더 낮은 고역에서 풀려나는 방학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삶에 모험을 걸어 보는 것이다. 흙은 씨앗에 맞는 모양이다. 씨앗이 어린뿌리를 아래로 내렸으니, 이제 싹도 자신 있게 위로 올려 보낼 수 있겠다. 사람이 이토록 단단히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은 바로 그만큼 위로, 하늘로 솟아오르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더 고귀한 식물은 땅에서 멀리 떨어진 대기와 빛 속에서 마침내 맺는 열매로 값을 인정받으며, 더 낮은 먹는 채소처럼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채소는 두해살이라 해도 뿌리가 다 여물 때까지만 가꾸고, 그러려고 윗동을 자주 잘라 내기 때문에 꽃 필 철이 되어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하늘에서든 지옥에서든 제 일을 알아서 챙기고, 어쩌면 가장 부유한 사람보다 더 웅장하게 짓고 더 헤프게 쓰면서도 자기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 채 한 번도 가난해지지 않는 강하고 용감한 본성들에게 규칙을 정해 주려는 것이 아니다. 꿈꾸어 온 대로 그런 사람이 정말 있다면 말이다. 바로 지금 이대로의 세상 형편에서 용기와 영감을 얻고, 그것을 연인처럼 다정하고 뜨겁게 아끼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도 아니다. 어느 정도는 나도 그 축에 든다고 여긴다. 어떤 처지에 있든 일을 잘 해 나가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도 아니다. 자기가 일을 잘 해 나가는지 아닌지는 그들 스스로 안다. 나는 주로 불만에 차서, 제 처지나 시절을 나아지게 할 수도 있을 때에 그 고달픔만 하릴없이 투덜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말한다. 누구보다 기운차게, 누구보다 달랠 길 없이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말로는 자기 의무를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또 겉보기에는 부유하지만 모든 계층 가운데 가장 지독하게 가난한 계층을 마음에 두고 있다. 찌꺼기를 쌓아 두고도 그것을 쓸 줄도 치울 줄도 몰라서, 결국 제 손으로 금이나 은으로 된 족쇄를 벼린 사람들이다.
내가 지난 여러 해 동안 삶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 했는지 이야기하려 든다면, 내 삶의 실제 이력을 얼마간 아는 독자들은 아마 놀랄 것이고, 그것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은 분명 기겁할 것이다. 나는 내가 품어 온 계획 몇 가지만 넌지시 비추겠다.
날씨가 어떻든, 밤이든 낮이든 언제든, 나는 아슬아슬한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살려서 내 막대기에도 그 눈금을 새겨 두고 싶었다.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이 만나는 자리,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서고 싶었다. 그 선에 발끝을 딱 대고서. 여러분은 얼마간 모호한 데가 있어도 너그러이 보아 주리라. 내 일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일보다 비밀이 더 많은데, 일부러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의 본성과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일에 관해 아는 것을 기꺼이 다 말하겠고, 내 문간에 "출입 금지"라고 칠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에 사냥개 한 마리와 밤색 말 한 마리와 멧비둘기 한 마리를 잃었고, 지금도 그 자취를 쫓고 있다. 나는 많은 나그네에게 그것들 이야기를 하며 그 발자국이 어떠했는지, 어떤 부름에 대답했는지 일러 주었다. 사냥개 소리와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 비둘기가 구름 뒤로 사라지는 것까지 보았다는 사람을 한둘 만났는데, 그들은 마치 자기가 잃어버린 것처럼 그것들을 되찾고 싶어 안달하는 듯했다.
해돋이와 새벽만이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자연 그 자체를 앞질러 맞이하고 싶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어느 이웃도 아직 제 일을 보러 움직이지 않은 새벽에, 나는 얼마나 많은 아침을 내 일로 바삐 보냈던가! 틀림없이 많은 읍 사람이, 어스름 속에 보스턴으로 길을 나서는 농부들이나 일터로 가는 나무꾼들이, 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나와 마주쳤을 것이다. 사실 나는 해가 떠오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의심하지 말라.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더없이 중요했다.
가을날을, 아니 겨울날도 그 얼마나 많이 읍 밖에서 보냈던가. 바람 속에 무엇이 실려 오는지 들으려고, 듣고서 그것을 급행으로 실어 나르려고! 나는 거기에 내 밑천을 거의 다 쏟아붓고, 바람을 안고 달리느라 덤으로 내 숨까지 잃었다. 그것이 두 정당 가운데 어느 쪽과 관계된 일이었다면, 틀림없이 가장 빠른 소식으로 『가제트』에 실렸을 것이다. 또 어떤 때는 벼랑이나 나무라는 관측대에서 망을 보다가 새로 도착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전신으로 알리려 했고, 저녁이면 언덕 꼭대기에서 하늘이 무너지기를 기다렸다. 무언가 받아 내려고. 그러나 받아 낸 것은 많지 않았고, 그나마 만나처럼 해가 뜨면 다시 녹아 버렸다.
나는 오랫동안 발행 부수가 그리 많지 않은 어느 잡지의 기자였는데, 그 편집자는 내가 보낸 글의 대부분을 아직까지 실을 만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에게 너무나 흔한 일이지만, 나는 수고한 대가로 수고만 얻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수고가 그 자체로 보상이었다.
여러 해 동안 나는 스스로 눈보라와 비바람의 감독관을 맡아 충실히 의무를 다했다. 큰길까지는 아니더라도 숲길과 밭을 가로지르는 모든 지름길의 측량사로서, 사람들의 발뒤꿈치가 그 쓸모를 증언해 준 곳이면 철마다 길을 터 두고 골짜기에 다리를 놓아 건널 수 있게 해 두었다.
나는 읍의 야생 가축을 돌보았는데, 이것들은 울타리를 뛰어넘는 바람에 충실한 목동을 꽤나 애먹인다. 또 농장에서 사람 발길이 뜸한 구석구석을 눈여겨보았다. 오늘 어느 밭에서 요나스가 일하는지 솔로몬이 일하는지는 늘 알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붉은 허클베리와 모래벚나무와 팽나무, 붉은소나무와 검은물푸레나무, 흰 포도와 노란 제비꽃에 물을 주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가문 철에 시들었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나는 오랫동안 이렇게 (자랑 삼아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일을 충실히 챙겼는데, 결국 읍 사람들이 나를 읍 관리 명단에 넣어 주지도, 알맞은 수당을 붙여 내 자리를 한직으로 만들어 주지도 않으리라는 것이 점점 더 뚜렷해졌다. 충실히 적어 왔다고 맹세할 수 있는 내 장부는 사실 한 번도 감사를 받지 못했고, 하물며 승인을 받거나 지급과 결산을 받은 적은 더더욱 없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얼마 전 떠돌이 아메리카 원주민 한 사람이 우리 동네의 이름난 변호사 집에 바구니를 팔러 갔다. "바구니 좀 사시겠소?" 그가 물었다. "아니요, 필요 없어요." 대답이 돌아왔다. "뭐요!" 원주민은 대문을 나서며 외쳤다. "우리를 굶겨 죽일 작정이오?" 그는 부지런한 백인 이웃들이 그토록 잘사는 것을 보았다. 변호사는 논변만 엮으면 무슨 마법처럼 재산과 지위가 따라왔다. 그래서 그는 혼잣말을 했다. 나도 장사를 하자, 바구니를 엮자,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바구니를 만들어 놓으면 자기 몫은 다한 것이고, 그다음은 백인이 사 줄 차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사는 쪽에게 살 만한 값어치가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아니면 적어도 그렇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아니면 살 만한 값어치가 있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나도 올이 섬세한 바구니 같은 것을 엮었지만, 누구에게도 살 만한 값어치가 있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도 내 경우에는 그것을 엮는 일이 내게 할 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여겼고, 사람들에게 내 바구니를 살 만한 값어치가 있게 만드는 법을 궁리하는 대신 그것을 팔아야 할 필요를 피하는 법을 궁리했다. 사람들이 칭찬하고 성공으로 여기는 삶은 한 가지 종류일 뿐이다. 왜 다른 종류를 희생해 가며 어느 한 종류만 부풀려야 하는가?
동료 시민들이 내게 법원의 자리 하나, 어디의 부목사 자리나 성직록 하나 내줄 성싶지 않고 내가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어느 때보다도 오로지 숲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거기서는 내가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나는 흔히 마련하는 밑천을 장만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이미 가진 얼마 안 되는 수단으로 당장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월든 호수로 간 목적은 거기서 싸게 살려는 것도 비싸게 살려는 것도 아니었고, 가장 적은 방해를 받으며 어떤 사사로운 사업을 처리하는 데 있었다. 약간의 상식과 약간의 진취성과 사업 재능이 모자라서 그 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슬프다기보다 어리석은 일로 보였다.
나는 늘 엄격한 사업 습관을 몸에 붙이려고 애써 왔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없어서는 안 된다. 거래 상대가 천자의 나라 중국이라면, 세일럼 같은 항구의 바닷가에 작은 회계 사무소 하나만 차려도 터전으로는 넉넉할 것이다. 이 나라가 내는 물건, 순전히 이 땅의 산물인 얼음과 소나무 목재를 많이, 화강암을 조금, 늘 이 나라 배에 실어 내보낼 것이다. 이것은 좋은 사업이 될 것이다. 모든 세부를 몸소 감독하는 일, 수로 안내인이자 선장이고 선주이자 보험업자인 일, 사고팔고 장부를 적는 일, 받은 편지를 하나하나 읽고 보내는 편지를 하나하나 쓰거나 읽는 일, 밤낮으로 수입품 부리는 일을 감독하는 일, 해안의 여러 곳에 거의 동시에 가 있는 일(가장 값진 짐은 흔히 저지 해안에 부려지니까), 스스로 전신이 되어 지칠 줄 모르고 수평선을 훑으며 연안을 오가는 배마다 말을 거는 일, 그토록 멀고 터무니없이 탐욕스러운 시장에 대려고 상품을 꾸준히 실어 보내는 일, 시장의 형편과 곳곳의 전쟁과 평화의 전망을 늘 알고 무역과 문명의 흐름을 내다보는 일, 모든 탐험대가 거둔 결과를 활용하고 새 항로와 항해술의 모든 개량을 이용하는 일을 모두 해내야 한다. 해도를 연구해야 하고, 암초와 새 등대와 부표의 위치를 확인해야 하고, 로그표를 늘, 늘 바로잡아야 한다. 어느 계산하는 사람의 잘못 하나로, 우호적인 부두에 닿았어야 할 배가 바위에 부딪혀 쪼개지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라페루즈의 알려지지 않은 운명이 있지 않은가. 만물의 학문과 발맞추어야 하고, 한노와 페니키아 사람들부터 오늘날까지 모든 위대한 발견자와 항해자, 위대한 모험가와 상인의 생애를 공부해야 한다. 끝으로 이따금 재고를 조사해서 자기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한 사람의 능력을 다 쏟게 하는 노동이다. 이익과 손실, 이자, 포장 무게와 손실분 공제, 온갖 계량의 문제들이 거기 들어 있어서 만물에 걸친 지식이 필요하다.
나는 월든 호수가 사업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철도와 얼음 장사 때문만은 아니다. 털어놓는 것이 좋은 방책이 아닐지도 모르는 이점들이 거기 있다. 그곳은 좋은 항구이고 좋은 터전이다. 메워야 할 네바강의 늪도 없다. 물론 어디서든 제 손으로 박은 말뚝 위에 지어야 하지만. 서풍이 불 때 밀물이 들고 네바강에 얼음이 떠 있으면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땅 위에서 쓸려 나가 버릴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 사업은 흔히 갖추는 밑천 없이 시작할 참이었으므로, 그런 일에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수단을 어디서 얻을 생각이었는지 짐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곧장 문제의 실제적인 부분으로 들어가서 옷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옷을 장만할 때 참된 쓸모보다 새것을 좋아하는 마음과 남의 눈을 의식하는 마음에 끌리는 일이 더 잦은 듯하다.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옷의 목적이 첫째로 생명의 열을 지키는 것, 둘째로 지금 같은 사회에서 맨몸을 가리는 것임을 떠올려 보라. 그러면 옷장에 옷을 더 보태지 않고도 필요하거나 중요한 일을 얼마나 해낼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벌을 한 번만 입는 왕과 왕비는, 그 옷을 폐하들께 바치는 재단사나 침모가 지었다 해도, 몸에 맞는 옷을 입는 편안함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깨끗한 옷을 걸어 두는 나무 옷걸이 말보다 나을 것이 없다. 우리 옷은 날마다 우리 자신과 더 닮아 가고 입은 사람의 성격을 새겨 받아서, 마침내 우리는 그것을 벗어 두기를 망설인다. 우리 몸을 묻을 때처럼 미루고 치료를 해 보고 얼마간 엄숙한 의식까지 치르지 않고는. 옷에 기운 자리가 있다고 해서 내 눈에 낮아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대개 사람들은 건전한 양심을 지니는 것보다 유행에 맞는 옷, 아니면 적어도 깨끗하고 기운 데 없는 옷을 입는 데 더 마음을 졸이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찢어진 데를 깁지 않았다 해도, 그것이 드러내는 가장 나쁜 악덕은 아마 앞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 정도일 것이다. 나는 이따금 이런 시험으로 아는 사람들을 떠본다. 무릎 위에 기운 자리 하나, 아니 솔기 두 줄이 더 있는 바지를 누가 입을 수 있겠는가? 대부분은 그랬다가는 앞날이 망가지기라도 할 것처럼 군다. 그들에게는 바지가 찢어진 채로보다 다리가 부러진 채로 읍내까지 절뚝거리며 가는 편이 더 쉬울 것이다. 신사의 다리에 사고가 나면 흔히 고칠 수 있다. 그러나 바짓가랑이에 같은 사고가 나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는 참으로 존경할 만한 것이 아니라 존경받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사람은 몇 안 되지만, 우리가 아는 외투와 바지는 아주 많다. 여러분의 마지막 속옷까지 허수아비에게 입히고 여러분은 속옷도 대책도 없이 곁에 서 있다면, 누가 허수아비에게 먼저 인사하지 않겠는가? 며칠 전 옥수수밭을 지나다가 말뚝에 걸린 모자와 외투 바로 옆에서 나는 그 농장의 주인을 알아보았다. 그는 내가 지난번에 보았을 때보다 비바람에 조금 더 바랬을 뿐이었다. 옷을 입고 주인집에 다가오는 낯선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짖어 대면서 벌거벗은 도둑에게는 쉽게 잠잠해지는 개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이 옷을 벗고도 서로의 서열을 얼마나 지킬지는 흥미로운 물음이다. 그런 경우에 문명인의 어느 무리가 가장 존경받는 계층에 속하는지 확실히 말할 수 있겠는가? 파이퍼 부인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세계를 도는 모험 여행을 하다가 고향에 꽤 가까운 아시아 쪽 러시아까지 왔을 때, 관리들을 만나러 가면서 여행복 말고 다른 옷을 입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이제는 문명국에 와 있었고,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옷으로 판단받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주적인 뉴잉글랜드 읍에서조차 우연히 재산을 갖게 되어 그것을 옷차림과 마차와 말로 드러내기만 하면, 그 임자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존경을 바치는 사람들은,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만큼은 이교도이며 선교사를 보내 주어야 할 사람들이다. 게다가 옷은 바느질을 불러들였다. 끝이 없다고 할 만한 일이다. 적어도 여자의 옷은 끝나는 법이 없다.
마침내 할 일을 찾은 사람은 그 일을 하려고 새 옷을 장만할 필요가 없다. 그에게는 다락에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헌 옷이면 된다. 헌 구두는 영웅의 시종보다 영웅을 더 오래 섬길 것이다. 영웅에게 시종이 있기라도 하다면 말이다. 맨발은 구두보다 오래되었으니 영웅은 맨발로도 해낼 수 있다. 야회와 의회 무도회에 가는 사람들만 새 외투가 있어야 한다. 그 속의 사람이 바뀌는 만큼 자주 갈아입을 외투가. 그러나 내 웃옷과 바지, 내 모자와 구두가 신을 섬기는 자리에 입고 갈 만하다면 그것으로 넉넉하다. 그렇지 않은가? 자기 헌 옷이, 자기 헌 외투가 정말로 닳아 해져 본디의 원소로 돌아가 버려서, 그것을 어느 가난한 소년에게 주는 일이 자선이 못 될 지경이 된 것을 본 사람이 있는가? 그 소년은 어쩌면 그것을 더 가난한, 아니 더 적은 것으로도 살 수 있으니 더 부유하다고 해야 할 누군가에게 또 물려줄 텐데. 내 말은 이렇다. 옷 입는 새사람이 아니라 새 옷을 요구하는 모든 사업을 조심하라. 새사람이 없다면 새 옷을 어떻게 몸에 맞출 수 있겠는가? 앞에 무슨 사업이 놓여 있다면 헌 옷을 입고 해 보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가지고 할 것이 아니라 무언가 할 것, 아니 무언가 될 것이다. 헌 옷이 아무리 해지고 더러워도, 우리가 처신하고 모험하고 어떻게든 항해해서 헌 옷 속에서 새사람이 된 느낌이 들고, 그 옷을 계속 입는 것이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아 두는 일처럼 느껴질 때까지는 아마 새 옷을 장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털갈이 철은 새들의 털갈이 철처럼 우리 삶의 고비여야 한다. 아비는 털갈이 철을 보내러 외딴 호수로 물러난다. 뱀이 허물을 벗고 애벌레가 벌레 옷을 벗는 것도 이처럼 안에서 애쓰고 부풀어서다. 옷은 우리의 가장 바깥 껍질이자 죽을 몸을 감은 허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거짓 깃발을 달고 항해하다 들킬 것이고, 마침내 인류의 판정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판정으로도 어김없이 파면될 것이다.
우리는 바깥에 덧붙여 가며 자라는 외생 식물처럼 옷 위에 옷을 껴입는다. 겉에 입는, 흔히 얇고 멋을 부린 옷은 우리의 표피, 곧 거짓 살갗이어서 우리 생명과는 상관이 없으니 여기저기 벗겨 내도 목숨에 지장이 없다. 늘 입는 두꺼운 옷은 우리의 세포 외피, 곧 겉껍질이다. 그러나 셔츠는 우리의 속껍질, 곧 참껍질이어서 나무줄기 둘레를 벗겨 내듯 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벗길 수 없다. 나는 모든 인종이 어떤 철에는 셔츠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입는다고 믿는다. 사람은 어둠 속에서도 제 몸을 손으로 더듬어 찾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하게 입고, 모든 면에서 그만큼 간소하게, 채비를 갖추고 살아서, 적이 읍을 빼앗더라도 옛 철학자처럼 아무 근심 없이 빈손으로 성문을 걸어 나갈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쓰임새에서 두꺼운 옷 한 벌은 얇은 옷 세 벌만 하고, 값싼 옷은 정말로 손님 형편에 맞는 값에 구할 수 있다. 다섯 해는 입을 두꺼운 외투가 5달러, 두꺼운 바지가 2달러, 쇠가죽 장화 한 켤레가 1달러 50센트, 여름 모자가 25센트, 겨울 모자가 62½센트면 살 수 있고, 아니면 이름뿐인 비용으로 집에서 더 좋은 것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그렇게 제 손으로 번 옷을 입은 사람에게 존경을 바칠 지혜로운 사람들이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어떤 모양의 옷을 지어 달라고 하면 바느질하는 여자는 엄숙하게 "요즘은 그렇게 안 만들어요"라고 말한다. "그들"에 조금도 힘을 주지 않고, 마치 운명의 여신들만큼이나 사사로운 얼굴이 없는 권위를 인용하듯이. 그리고 내가 원하는 옷을 지어 받기가 어렵다. 그저 내가 하는 말을 정말로 뜻하는지, 내가 그토록 무모한지 그 여자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신탁 같은 말을 들으면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그 뜻에 이르려고 낱말 하나하나에 따로 힘을 주어 혼자 되뇐다. 그들이 나와 몇 촌이나 되는 핏줄인지, 나와 이토록 가까이 걸린 일에 그들이 무슨 권위가 있는지 알아내려고. 그리고 마침내 똑같이 수수께끼처럼, "그들"에 조금도 힘을 주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진다. "맞아요, 그들이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안 만들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만들어요." 내 성격은 재지 않고, 마치 내가 외투를 걸어 둘 말뚝이라도 되는 듯 내 어깨너비만 잰다면 이렇게 나를 재서 무슨 소용인가? 우리는 우아의 여신들도, 운명의 여신 파르카이도 아닌 유행을 섬긴다. 유행이 온전한 권위를 쥐고 실을 잣고 천을 짜고 마름질을 한다. 파리의 우두머리 원숭이가 여행 모자를 쓰면 아메리카의 원숭이들이 모두 똑같이 쓴다. 나는 이따금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주 단순하고 정직한 일을 해내는 것을 단념한다. 먼저 그들을 힘센 압착기에 넣어 낡은 생각을 짜내서 금방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그 무리 가운데 누군가는 머릿속에 구더기를 품고 있을 것이다. 언제 거기 낳아 놓았는지 아무도 모르는 알에서 깬 구더기를. 이런 것은 불로도 죽지 않으니 여러분은 헛수고만 한 셈이 될 것이다. 그래도 어떤 이집트 밀은 미라가 우리에게 물려주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대체로 보아, 이 나라에서든 어느 나라에서든 옷 입는 일이 예술의 품위에 올랐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구할 수 있는 것을 그럭저럭 걸치고 산다. 난파한 뱃사람들처럼 바닷가에서 찾아낸 것을 주워 입고는, 공간이든 시간이든 조금만 떨어지면 서로의 가장무도회 차림을 비웃는다. 어느 세대나 옛 유행은 비웃지만 새 유행은 경건하게 따른다. 우리는 헨리 8세나 엘리자베스 여왕의 옷차림을 보면 식인종 섬의 왕과 왕비의 옷차림을 보듯 재미있어한다. 사람이 벗어 놓은 옷은 모두 딱하거나 괴상하다. 그 안에서 내다보는 진지한 눈과 그 안에서 보낸 진실한 삶만이 웃음을 누르고 어느 민족의 옷차림이든 거룩하게 만든다. 어릿광대가 배앓이에 걸리면 그의 화려한 차림도 그 기분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병사가 포탄에 맞으면 누더기도 자줏빛 옷만큼 어울린다.
새 무늬를 좋아하는 남녀의 유치하고 야만스러운 취향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세대가 오늘 요구하는 바로 그 무늬를 찾아내려고 만화경을 흔들며 실눈을 뜨고 들여다보는지 모른다. 제조업자들은 이 취향이 그저 변덕일 뿐임을 알게 되었다. 어떤 색실이 몇 올 많거나 적을 뿐인 두 무늬 가운데 하나는 금세 팔리고 다른 하나는 선반에 남는다. 그런데 한 철이 지나면 남았던 것이 가장 유행하는 무늬가 되는 일도 흔하다. 견주어 보면 문신은 사람들이 말하는 만큼 흉측한 풍습이 아니다. 그 무늬가 살갗 깊이 새겨져 바꿀 수 없다는 것만으로 야만스러운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의 공장 제도가 사람이 옷을 얻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믿지 않는다. 직공들의 처지는 날마다 영국 직공들의 처지를 닮아 간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내가 듣고 본 바로는 공장의 주된 목적이 인류가 잘, 정직하게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회사들이 부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은 겨냥한 것만 맞힌다. 그러니 당장은 빗나가더라도 무언가 높은 것을 겨냥하는 편이 낫다.
거처로 말하자면, 이 나라보다 추운 나라에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거처 없이 지낸 예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이제 삶의 필수품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새뮤얼 레잉은 "라플란드 사람은 가죽옷을 입고 머리와 어깨에 가죽 자루를 뒤집어쓴 채 밤마다 눈 위에서 잔다. …… 털옷을 입고 그런 추위에 나앉으면 누구든 목숨이 꺼질 만한 추위에서"라고 말한다. 그는 그들이 그렇게 자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런데도 그는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강인하지는 않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아마 사람은 땅 위에 그리 오래 살기 전에 집이 주는 편리함, 이른바 가정의 안락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 말은 본디 가족보다는 집이 주는 만족을 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이라 하면 주로 겨울이나 장마철을 떠올리고, 한 해의 삼분의 이는 양산 말고는 집이 필요 없는 기후에서는 그런 만족이 지극히 부분적이고 어쩌다 한 번일 것이다. 우리 기후에서도 예전에는 여름의 집이 거의 밤에 몸을 덮는 것일 뿐이었다. 원주민의 소식판에서 위그웜 하나는 하루의 행군을 나타내는 표시였고, 나무껍질에 새기거나 그린 위그웜 한 줄은 그만큼 여러 번 야영했다는 뜻이었다. 사람은 팔다리가 그리 크고 튼튼하게 지어지지 않았기에, 자기 세상을 좁혀 몸에 맞는 공간을 벽으로 둘러쳐야 했다. 사람은 처음에 맨몸으로 바깥에 있었다. 그러나 맑고 따뜻한 날 낮에는 그것이 꽤 즐거웠겠지만, 이글거리는 햇볕은 말할 것도 없고 장마철과 겨울이 사람의 종족을 싹부터 잘라 버렸을지 모른다. 서둘러 집이라는 거처를 옷처럼 둘러 입지 않았다면. 옛이야기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는 다른 옷보다 먼저 나무 그늘을 입었다. 사람에게는 가정이 필요했다. 따뜻한 곳, 안락한 곳이. 처음에는 몸의 따뜻함이, 다음에는 정의 따뜻함이.
인류의 어린 시절에 어느 모험심 많은 인간이 몸을 피하려고 바위 구멍으로 기어든 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아이는 누구나 어느 정도 세상을 새로 시작하고, 젖고 추운 날에도 밖에 있기를 좋아한다. 아이는 말 타기 놀이와 함께 소꿉장난도 하는데, 그런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비죽 튀어나온 바위나 동굴 비슷한 것만 보아도 얼마나 마음이 끌렸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우리 안에 아직 살아남은 우리의 가장 원시적인 조상의 그 일부, 어떤 일부가 품은 자연스러운 그리움이었다. 동굴에서 우리는 야자 잎 지붕으로, 나무껍질과 나뭇가지 지붕으로, 짜서 펼친 아마포 지붕으로, 풀과 짚 지붕으로, 널빤지와 너와 지붕으로, 돌과 기와 지붕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우리는 바깥 공기 속에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고, 우리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여러 뜻에서 집에 길들여져 있다. 화롯가에서 들판까지는 아주 멀다. 우리가 낮과 밤을 더 많이 우리와 하늘의 천체 사이에 아무 가림막 없이 보낸다면, 시인이 지붕 밑에서 그토록 많이 말하지 않고 성자가 그토록 오래 거기 머물지 않는다면, 아마 좋을 것이다. 새는 동굴 속에서 노래하지 않고, 비둘기는 비둘기장 속에서 순결을 지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살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라면 양키다운 약삭빠름을 조금 발휘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집이 아니라 구빈 작업장에, 실타래 없는 미궁에, 박물관에, 구호소에, 감옥에, 화려한 영묘에 들어앉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먼저 꼭 필요한 거처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생각해 보라. 나는 이 읍에서 페놉스콧 원주민들이 둘레에 눈이 거의 1피트나 쌓였는데도 얇은 무명 천막에서 사는 것을 보았다. 바람을 막아 주게 눈이 더 깊이 쌓이면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전에 정직하게 생계를 꾸리면서도 내가 할 일을 할 자유를 남겨 두는 방법이 지금보다 더 나를 괴롭히던 때에(안타깝게도 지금은 내가 얼마간 무디어졌다), 나는 철도 옆에서 길이 6피트에 너비 3피트쯤 되는 큰 상자를 보곤 했다. 일꾼들이 밤에 연장을 넣고 잠가 두는 상자였다. 그것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몹시 쪼들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1달러에 이런 상자 하나를 구해서, 적어도 바람이 들게 송곳 구멍을 몇 개 뚫어 놓고 비 오는 날과 밤에 그 속에 들어가 뚜껑을 걸어 잠그면, 사랑에도 자유롭고 영혼도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이것은 가장 나쁜 대안으로도, 결코 업신여길 대안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원하는 만큼 늦게까지 앉아 있을 수 있고, 언제 일어나든 땅 주인이나 집 주인이 집세를 내라고 뒤를 쫓는 일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자에서라면 얼어 죽지 않았을 많은 사람이 더 크고 더 사치스러운 상자의 집세를 내느라 죽도록 시달린다. 나는 결코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는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주제이지만, 그렇게 처리해 버릴 수는 없다. 한때 이곳에서는 대부분 바깥에서 사는 거칠고 강인한 종족이 자연이 손닿는 곳에 마련해 준 재료만으로 거의 모든 것을 지어 안락한 집을 만들었다. 매사추세츠 식민지에 복속한 원주민들의 감독관이던 구킨은 1674년에 이렇게 썼다. "그들의 가장 좋은 집은 수액이 오르는 철에 줄기에서 벗겨 내어 아직 푸를 때 무거운 통나무로 눌러 큰 판으로 만든 나무껍질로 아주 말끔하게 덮어서, 꼭 맞고 따뜻하다. …… 그보다 못한 집은 일종의 부들로 짠 거적으로 덮는데, 이것도 그런대로 꼭 맞고 따뜻하지만 앞의 것만은 못하다. …… 길이가 60피트나 100피트, 너비가 30피트인 것도 보았다. …… 나는 그들의 위그웜에서 자주 묵었는데, 영국의 가장 좋은 집만큼 따뜻했다." 그는 그 집 안에 대개 공들여 수놓은 거적을 깔고 둘렀으며 여러 가지 세간을 갖추었다고 덧붙인다. 원주민들은 지붕 구멍 위에 거적을 매달아 끈으로 움직여서 바람을 조절할 줄 알 만큼 앞서 있었다. 그런 집은 처음 지을 때 기껏해야 하루나 이틀이면 되었고, 몇 시간이면 걷었다가 다시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그런 집 한 채나 그 안의 방 한 칸을 가지고 있었다.
야만의 상태에서는 집집마다 가장 좋은 것 못지않은 거처, 더 거칠고 더 단순한 필요를 채우기에 넉넉한 거처가 있다. 그러나 하늘의 새에게 둥지가 있고 여우에게 굴이 있고 야만인에게 위그웜이 있는데도,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거처를 소유한 가정이 절반도 안 된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문명이 특히 우세한 큰 읍과 도시에서는 거처를 소유한 사람의 수가 전체의 아주 작은 몫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없어서는 안 되게 된 이 가장 바깥의 옷을 위해 해마다 세를 내는데, 그 돈이면 원주민 위그웜으로 마을 하나를 살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 돈이 그들을 평생 가난하게 묶어 두는 데 한몫한다. 여기서 소유에 견주어 세 드는 것이 얼마나 불리한지 우기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야만인은 거처에 드는 비용이 아주 적어서 그것을 소유하는 반면, 문명인은 대개 소유할 형편이 못 되어서 세를 들며, 길게 보면 세 들 형편도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가난한 문명인은 이 세만 내면 야만인의 거처에 비하면 궁전이나 다름없는 거처를 얻는다고. 한 해에 25달러에서 100달러(이것은 시골 시세다)의 집세를 내면 그는 여러 세기에 걸친 개량의 혜택을 누릴 권리를 얻는다. 넓은 방, 말끔한 칠과 벽지, 럼퍼드 벽난로, 회벽 안벽, 베네치아 블라인드, 구리 펌프, 용수철 자물쇠, 널찍한 지하실, 그 밖에 많은 것을. 그러나 이런 것을 누린다는 사람이 어째서 그토록 흔히 가난한 문명인이고, 그런 것이 없는 야만인은 야만인으로서 부유한가? 문명이 사람의 처지를 참으로 나아지게 했다고 주장한다면(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이점을 살리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뿐이다), 문명이 집을 더 비싸게 만들지 않으면서 더 나은 집을 만들어 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물건의 값은 그것과 바꾸어야 하는, 내가 삶이라 부르려는 것의 양이다. 당장 치르든 길게 두고 치르든. 이 동네의 보통 집은 아마 800달러쯤 할 텐데, 이 돈을 모으려면 딸린 식구가 없다 해도 일꾼의 삶에서 열 해에서 열다섯 해가 걸릴 것이다. 누구의 노동이든 돈으로 쳐서 하루 1달러로 잡는다면 그렇다. 더 받는 사람도 있지만 덜 받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러니 대개는 삶의 절반 이상을 보내고 나서야 제 위그웜을 벌게 된다. 그 대신 세를 낸다고 해도, 그것은 두 가지 악 가운데 무엇을 고르느냐는 미심쩍은 선택일 뿐이다. 이런 조건으로 위그웜을 궁전과 바꾸었다면 야만인이 지혜로웠다고 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내가 이 남아도는 재산을 앞날에 대비한 비축으로 쥐고 있는 이점을, 개인에 관한 한, 거의 전부 주로 장례비를 대는 데로 줄여 버린다고 짐작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마 사람이 제 손으로 저를 묻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것은 문명인과 야만인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가리킨다. 그리고 분명 문명인들의 삶을 하나의 제도로 만들어, 그 안에 개인의 삶을 대부분 빨아들여서 종족의 삶을 보존하고 완성하려는 것은 우리를 이롭게 하려는 계획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이점을 지금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고 얻고 있는지 보여 주고, 어쩌면 우리가 불리한 점은 하나도 겪지 않으면서 이점은 모두 거두며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넌지시 비추고 싶다. 가난한 사람은 늘 너희와 함께 있다고,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니 아들의 이가 시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주 하느님이 말한다.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건대, 너희가 이스라엘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보라, 모든 영혼은 내 것이다. 아버지의 영혼이 내 것이듯 아들의 영혼도 내 것이다. 죄를 짓는 영혼, 그 영혼은 죽을 것이다."
다른 계층 못지않게 잘산다는 내 이웃, 콩코드의 농부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대부분 스물, 서른, 마흔 해를 고생하며 일했다. 대개 빚이 딸린 채 물려받았거나 빌린 돈으로 산 농장의 진짜 주인이 되려고. 그 고생의 삼분의 일은 그들 집의 값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대개 그들은 아직 그 값을 다 치르지 못했다. 사실 빚이 농장의 가치보다 무거워서 농장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빚 덩어리가 되는 일도 있는데, 그래도 그 농장을 물려받겠다는 사람이 나선다. 그 사람 말로는 농장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세금 사정관들에게 물어보고, 나는 그들이 이 읍에서 농장을 빚 한 푼 없이 깨끗이 소유한 사람을 열두 명도 당장 꼽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이 농가들의 내력을 알고 싶다면 그것을 저당 잡은 은행에 물어보라. 농장에서 일해서 실제로 그 값을 다 치른 사람은 너무 드물어서 이웃마다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다. 콩코드에 그런 사람이 세 사람이나 있을지 의심스럽다. 상인들을 두고, 아주 큰 다수가, 백에 아흔일곱이나 반드시 망한다고 하는 말은 농부들에게도 똑같이 들어맞는다. 그런데 상인들에 관해서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한다. 그들의 파산은 대부분 진짜 돈이 모자라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불편하다는 이유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 곧 무너지는 것은 도덕적 품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태를 한없이 더 나쁘게 보이게 할 뿐 아니라, 나머지 셋조차 아마 제 영혼을 구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어쩌면 정직하게 망한 사람들보다 더 나쁜 뜻에서 파산했으리라는 것을 내비친다. 파산과 빚 떼어먹기는 우리 문명의 상당 부분이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넘는 발판이지만, 야만인은 굶주림이라는 탄력 없는 널빤지 위에 서 있다. 그런데도 이곳에서는 해마다 미들섹스 가축 품평회가 화려하게 열린다.7 마치 농업이라는 기계의 마디마디가 매끄럽게 잘 돌아가기라도 하는 듯이.
농부는 생계라는 문제를 그 문제 자체보다 더 복잡한 공식으로 풀려고 애쓴다. 구두끈 하나 얻으려고 소 떼에 투기한다. 그는 더없이 능숙한 솜씨로 안락과 독립을 잡으려고 머리카락처럼 예민한 용수철을 단 덫을 놓았는데, 돌아서다가 제 다리가 거기 걸리고 말았다. 그가 가난한 까닭이 이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까닭으로 우리 모두는 사치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야만인이 누리는 천 가지 안락에서는 가난하다. 채프먼이 노래하듯이.
"사람들의 거짓된 사회는
땅 위의 위대함을 얻으려고
하늘의 모든 안락을 묽은 공기로 흩어 버린다."
그리고 농부가 집을 얻었을 때, 그는 그 때문에 더 부유해지기는커녕 더 가난해질지도 모르고, 집을 얻은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알기로 모모스가 미네르바가 지은 집을 두고 내세운 반론, 곧 미네르바가 "그 집을 옮길 수 있게 짓지 않아서 나쁜 이웃을 피할 길이 없다"는 반론은 타당한 것이었다. 그 반론은 지금도 내세울 수 있다. 우리 집은 너무나 다루기 어려운 재산이어서 우리는 그 안에 깃들어 산다기보다 갇혀 사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해야 할 나쁜 이웃은 비루한 우리 자신이다. 나는 적어도 이 읍에서 한두 집을 아는데, 그들은 거의 한 세대 동안 변두리의 집을 팔고 마을로 옮겨 가고 싶어 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고, 죽음만이 그들을 풀어 줄 것이다.
다수가 마침내 온갖 개량을 갖춘 현대식 집을 소유하거나 세 들 수 있게 된다고 치자. 문명은 우리 집을 개량해 왔지만, 그 집에 살 사람들은 그만큼 개량하지 못했다. 문명은 궁전을 지어 냈지만 귀족과 왕을 지어 내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그리고 문명인이 추구하는 것이 야만인이 추구하는 것보다 더 값지지 않다면, 그가 삶의 대부분을 그저 투박한 필수품과 안락을 얻는 데 쓴다면, 그가 왜 야만인보다 더 나은 집을 가져야 하는가?
그러면 가난한 소수는 어떻게 지내는가? 어쩌면 어떤 사람들이 겉의 처지에서 야만인보다 높이 올라선 바로 그만큼, 다른 사람들은 야만인보다 낮게 떨어졌다는 것이 드러날지 모른다. 한 계층의 사치는 다른 계층의 궁핍으로 균형이 맞추어진다. 한쪽에는 궁전이 있고, 다른 쪽에는 구호소와 "말 없는 가난한 이들"이 있다. 파라오의 무덤이 될 피라미드를 쌓은 수많은 사람은 마늘을 먹고 살았고, 아마 그들 자신은 제대로 묻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궁전의 처마 돌림띠를 마무리하는 석공은 밤이면 어쩌면 위그웜만도 못한 움막으로 돌아간다. 문명의 흔한 증거가 갖추어진 나라에서는 주민 가운데 아주 많은 사람의 처지가 야만인만큼 비참할 리 없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지금 나는 타락한 부자가 아니라 비참한 가난한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이것을 알려고 멀리 볼 필요도 없다. 문명의 가장 최근 개량인 철도 가장자리마다 늘어선 판잣집들만 보면 된다. 나는 날마다 걷다가 거기서 돼지우리 같은 데 사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빛을 들이려고 겨우내 문을 열어 두고, 눈에 보이는 장작더미는커녕 상상할 수 있는 장작더미조차 없는 일이 많으며, 늙은이고 젊은이고 추위와 비참함에 오래 움츠려 온 버릇 때문에 몸이 영영 오그라들었고, 팔다리와 온갖 능력이 자라다 말았다. 이 세대를 돋보이게 하는 사업들을 제 노동으로 이루어 내는 계층을 살펴보는 것은 분명 공정한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의 거대한 구빈 작업장인 영국에서 온갖 부류의 직공들이 놓인 처지도 이와 같다. 아니면 지도에 하얗게, 곧 개화된 곳으로 표시된 아일랜드를 보라고 할 수도 있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몸의 형편을, 문명인과 접촉해서 타락하기 전의 북아메리카 원주민이나 남태평양 섬사람이나 다른 어느 야만 종족의 몸의 형편과 견주어 보라. 그래도 나는 그 나라의 통치자들이 문명국 통치자들의 평균만큼은 지혜롭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의 처지는 문명과 함께 얼마나 지독한 불결함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 줄 뿐이다. 이 나라의 주요 수출품을 생산하면서 그들 자신이 남부의 주요 생산품인 우리 남부 여러 주의 일꾼들은 지금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른바 웬만한 형편에 있다는 사람들로만 이야기를 좁히자.
대부분의 사람은 집이란 무엇인가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하고, 이웃이 가진 것과 같은 집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 평생, 그럴 필요도 없이 가난하다. 마치 재단사가 마름질해 주는 대로 아무 외투나 입어야 한다거나, 야자 잎 모자나 우드척 가죽 모자를 차츰 버리고 나서 왕관을 살 형편이 못 된다고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투덜대는 격이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보다 더 편리하고 더 사치스러운 집을 발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집은 사람이 값을 치를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런 것을 더 많이 얻으려고만 궁리하고, 이따금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인가? 점잖은 시민이 젊은이에게, 죽기 전에 남아도는 덧신 몇 켤레와 우산 몇 개와, 빈 손님을 위한 빈 손님방 몇 칸쯤은 갖추어야 한다고 말과 본보기로 이처럼 엄숙하게 가르쳐야 하겠는가? 우리 가구는 왜 아랍인이나 원주민의 가구만큼 단순하면 안 되는가? 우리가 하늘에서 온 사자로, 사람에게 신의 선물을 가져다준 이들로 떠받드는 인류의 은인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들의 뒤를 따르는 시종 행렬도, 유행하는 가구를 실은 수레도 떠올리지 못한다. 아니면 우리가 도덕과 지성에서 아랍인보다 뛰어난 만큼 우리 가구도 아랍인의 것보다 더 복잡해야 한다고 내가 인정한다면 어떨까. 그것은 기묘한 인정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 집은 가구로 어수선하고 더럽혀져 있어서, 솜씨 좋은 주부라면 그 대부분을 쓰레기 구덩이에 쓸어 넣고도 아침 일을 다 해낼 것이다. 아침 일이라! 아우로라의 홍조와 멤논의 음악에 걸고 묻건대, 이 세상에서 사람이 해야 할 아침 일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내 책상에는 석회석 세 덩이가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의 가구는 아직 먼지 하나 털지 못했는데 그 돌들은 날마다 먼지를 털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질겁해서, 넌더리를 내며 창밖으로 내던졌다. 그런 내가 어떻게 가구를 갖춘 집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나는 차라리 바깥 공기 속에 앉아 있겠다. 사람이 땅을 갈아엎은 곳이 아니라면 풀 위에는 먼지가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무리가 그토록 부지런히 따르는 유행을 정하는 것은 사치하고 방탕한 사람들이다. 이른바 최고급 여관에 묵는 나그네는 곧 이것을 알게 된다. 여관 주인들은 그를 사르다나팔루스쯤으로 여기고, 그들의 다정한 자비에 몸을 맡겼다가는 금세 사내다움을 송두리째 잃을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는 기차 객차에서도 안전과 편의보다 사치에 더 많이 쓰려는 경향이 있고, 객차는 안전도 편의도 이루지 못한 채 현대식 응접실과 다를 바 없게 될 판이다. 긴 의자와 쿠션 의자와 차양과 그 밖에 백 가지 동양 물건을 갖춘 응접실 말이다. 하렘의 여인들과 천자의 나라 중국의 나약한 사람들을 위해 발명된 그 물건들을 우리는 서쪽으로 실어 가고 있는데, 조너선이라면 그 이름을 아는 것조차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이다.8 나는 벨벳 방석 위에 끼어 앉느니 차라리 호박 위에 혼자 앉겠다. 유람 열차의 화려한 객차를 타고 가는 내내 말라리아, 곧 나쁜 공기를 마시며 하늘나라에 가느니,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소달구지를 타고 땅 위를 가겠다.
원시 시대 사람의 삶이 그토록 단순하고 헐벗었다는 사실은 적어도 이런 이점을 뜻한다. 그 삶은 사람을 여전히 자연 속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로 남겨 두었다. 먹고 자서 기운을 되찾으면 그는 다시 제 길을 생각했다. 그는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천막에 살면서 골짜기를 누비거나 들판을 가로지르거나 산꼭대기를 올랐다. 그러나 보라! 사람은 자기 도구의 도구가 되었다. 배고플 때 제 마음대로 열매를 따 먹던 사람은 농부가 되었고, 비를 피하려고 나무 밑에 서 있던 사람은 집지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하룻밤을 묵듯 야영하지 않고, 땅 위에 눌러앉아 하늘을 잊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그저 개량된 땅 가꾸기 기술(agri-culture)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이 세상을 위해 가문의 저택을, 저세상을 위해 가문의 무덤을 지었다. 가장 훌륭한 예술 작품은 이런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의 몸부림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예술이 하는 일은 이 낮은 처지를 편안하게 하고 저 높은 처지를 잊게 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이 마을에는 순수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다 해도 세워 둘 자리가 없다. 우리 삶도, 우리 집과 거리도 그것을 올려놓을 알맞은 받침대가 되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림 한 점 걸 못 하나, 영웅이나 성자의 흉상을 올려놓을 선반 하나 없다. 우리 집이 어떻게 지어지고 어떻게 값이 치러지는지, 또는 치러지지 않는지, 그 안의 살림살이가 어떻게 꾸려지고 유지되는지 생각하면, 손님이 벽난로 선반 위의 자질구레한 장식품에 감탄하는 사이에 마룻바닥이 꺼져서 그를 지하실로, 흙투성이일지언정 단단하고 정직한 토대로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이른바 부유하고 세련된 이 삶은 껑충 뛰어서 잡아챈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고, 나는 그 삶을 꾸미는 순수 예술을 즐기는 데로 나아가지 못한다. 내 주의가 온통 그 도약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 남은, 오로지 사람의 근육만으로 해낸 가장 큰 진짜 도약은 어느 떠돌이 아랍인들의 것인데, 그들은 평지에서 25피트를 뛰었다고 한다. 인위적인 받침이 없다면 사람은 그 거리 너머에서 반드시 땅으로 떨어진다.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것을 소유한 주인에게 내가 맨 먼저 던지고 싶은 물음은 이것이다. 누가 받쳐 주고 있소? 망하는 아흔일곱 가운데 하나요, 성공하는 셋 가운데 하나요? 이 물음에 대답해 보시오. 그러면 어쩌면 나도 그 장신구들을 보고 장식이 된다고 여길지 모르오. 말 앞에 매단 수레는 아름답지도 쓸모 있지도 않다. 아름다운 물건으로 집을 꾸미기 전에 벽을 벗겨 내야 하고, 우리 삶을 벗겨 내야 하며, 아름다운 살림살이와 아름다운 삶을 토대로 깔아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아름다움을 즐기는 취향은 집도 집지기도 없는 바깥에서 가장 잘 길러진다.
옛사람 존슨은 『기적을 행하는 섭리』에서 자기와 같은 시대를 산 이 읍의 첫 정착민들을 두고 이렇게 전한다. "그들은 첫 거처로 어느 언덕 비탈 아래 땅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파낸 흙을 통나무 위에 높이 덮고, 가장 높은 쪽의 흙벽에 기대어 연기 나는 불을 피운다." 그는 그들이 "주님의 축복으로 땅이 그들을 먹일 빵을 내기까지는 집을 장만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첫해의 수확이 너무 적어서 "오랫동안 빵을 아주 얇게 썰어 먹어야 했다"고 한다. 1650년에 그곳 땅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네덜란드어로 글을 쓴 뉴네덜란드 주의 서기는 더 자세히 이렇게 적는다. "뉴네덜란드에서, 특히 뉴잉글랜드에서 처음에 바라는 대로 농가를 지을 수단이 없는 사람들은 땅에 지하실처럼 네모난 구덩이를 6피트나 7피트 깊이로, 길이와 너비는 알맞다고 여기는 만큼 판다. 안쪽 흙벽을 빙 둘러 나무로 대고, 흙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그 나무에 나무껍질이나 다른 것을 덧댄다. 이 지하실 바닥에 널빤지를 깔고 머리 위에는 판자를 대어 천장으로 삼으며, 서까래로 지붕을 높이 올리고 그 서까래를 나무껍질이나 푸른 뗏장으로 덮는다. 그러면 온 식구가 이런 집에서 두 해, 세 해, 네 해를 마르고 따뜻하게 살 수 있다. 물론 이 지하실은 식구 수에 맞게 칸막이로 나눈다. 식민지 초기에 뉴잉글랜드의 부유한 유력자들은 두 가지 까닭으로 첫 살림집을 이렇게 지었다. 첫째로는 집 짓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다음 철에 먹을 것이 모자라지 않게 하려고, 둘째로는 모국에서 무리 지어 데려온 가난한 일꾼들의 기를 꺾지 않으려고. 서너 해가 지나 땅이 농사에 알맞게 되자 그들은 수천을 들여 번듯한 집을 지었다."
우리 조상들이 걸은 이 길에는 적어도 신중함의 모양새가 있었다. 마치 더 급한 필요부터 채우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지금 더 급한 필요는 채워져 있는가? 우리의 사치스러운 집 한 채를 장만할 생각을 하면 나는 망설여진다. 말하자면 이 땅은 아직 사람을 가꾸기에 알맞게 되지 않았고, 우리는 여전히 조상들이 밀가루 빵을 썬 것보다 훨씬 더 얇게 우리의 영혼의 빵을 썰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거친 시대에도 건축의 장식을 모두 소홀히 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 집은 먼저 우리 삶과 맞닿는 안쪽부터 조개의 집처럼 아름다움으로 안을 대야지, 겉에 아름다움을 덧씌워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 나는 그런 집 한두 채 안에 들어가 보았고, 그 안을 무엇으로 대었는지 안다.
우리가 오늘 동굴이나 위그웜에 살거나 가죽옷을 입지 못할 만큼 퇴화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비싸게 얻은 것이라도 인류의 발명과 근면이 내놓는 이점을 받아들이는 편이 분명 낫다. 이런 동네에서는 널빤지와 너와, 석회와 벽돌이, 알맞은 동굴이나 통나무나 넉넉한 양의 나무껍질보다, 아니 잘 이긴 진흙이나 납작한 돌보다도 값싸고 구하기 쉽다. 나는 이 주제를 알고서 말한다. 이론으로도 실제로도 이것을 익혔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지혜를 쓰면 우리는 이 재료들을 써서 지금 가장 부유한 사람보다 더 부유해지고, 우리 문명을 하나의 축복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인은 경험이 더 많고 더 지혜로운 야만인이다. 그러나 서둘러 내 실험으로 넘어가자.
1845년 3월 말 무렵, 나는 도끼 한 자루를 빌려 월든 호숫가의 숲, 집을 지으려던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내려가서 목재로 쓸, 아직 어리고 화살처럼 곧게 뻗은 키 큰 스트로브잣나무 몇 그루를 베기 시작했다. 빌리지 않고 시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마 이것이 이웃들에게 내 사업에 관심을 가질 기회를 주는 가장 너그러운 길일 것이다. 도끼 임자는 도끼를 내주면서 그것이 자기 눈동자처럼 아끼는 물건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받은 것보다 더 날을 세워 돌려주었다. 내가 일한 곳은 소나무 숲이 덮인 기분 좋은 언덕 비탈이었고, 나무 사이로 호수가 내다보였으며, 숲속의 작은 빈터에서는 소나무와 히코리가 돋아나고 있었다. 호수의 얼음은 군데군데 트인 곳이 있었지만 아직 녹지 않았고, 온통 거무스름하게 물에 젖어 있었다. 내가 거기서 일하는 동안 이따금 눈발이 가볍게 날렸다. 그러나 대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철로로 나서면 노란 모래 둑이 아지랑이 낀 공기 속에 반짝이며 멀리 뻗어 있었고, 레일은 봄 햇살에 빛났으며, 종다리와 딱새와 다른 새들이 벌써 와서 우리와 함께 또 한 해를 시작하려는 소리가 들렸다. 땅과 함께 사람의 불만의 겨울도 녹아내리고, 잠들어 있던 생명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기분 좋은 봄날들이었다. 어느 날 도낏자루가 빠져서 푸른 히코리를 잘라 쐐기를 만들어 돌로 박아 넣고는, 나무가 붇도록 통째로 호수의 물웅덩이에 담가 두었는데, 줄무늬뱀 한 마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뱀은 내가 거기 있는 동안, 그러니까 십오 분 넘게 바닥에 가만히 누워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아마 아직 겨울잠에서 제대로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지금의 낮고 원시적인 처지에 머물러 있는 것도 비슷한 까닭에서인 듯했다. 그러나 봄 중의 봄이 그들을 깨우는 힘을 느낀다면, 그들은 반드시 더 높고 더 정묘한 삶으로 일어설 것이다. 나는 그전에도 서리 내린 아침이면 길에서 몸의 일부가 아직 마비되어 굳은 채 해가 녹여 주기를 기다리는 뱀들을 본 적이 있었다. 4월 1일에는 비가 와서 얼음이 녹았고, 안개가 몹시 짙던 그날 이른 시간에 길 잃은 기러기 한 마리가 호수 위를 더듬어 다니며 길을 잃은 듯, 아니면 안개의 정령처럼 끼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나는 며칠 동안 내 좁은 도끼 하나로 목재를 베고 다듬고, 샛기둥과 서까래도 다듬었다. 남에게 전할 만하거나 학자다운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혼자 이런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람들은 많은 것을 안다고 하지만,
보라! 그것들은 날개를 달고 날아가 버렸다.
예술과 학문도,
천 가지 기계 장치도.
불어 가는 바람,
누구든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나는 큰 목재는 6인치 네모로 다듬고, 샛기둥은 대부분 두 면만, 서까래와 마루 장선은 한 면만 다듬고 나머지는 껍질을 그대로 두었다. 그래서 톱으로 켠 것만큼 곧으면서도 훨씬 더 튼튼했다. 그때쯤에는 다른 연장도 빌려 왔으므로, 나무마다 그루터기 곁에서 장부 구멍과 장부를 꼼꼼히 깎아 냈다. 숲에서 보낸 내 하루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대개 버터 바른 빵을 점심으로 싸 가서, 한낮이면 내가 쳐낸 푸른 솔가지 사이에 앉아 빵을 싼 신문을 읽었다. 내 손이 송진으로 두껍게 덮여 있어서 빵에도 솔 향이 얼마간 배었다. 일을 마치기 전에 나는 소나무 몇 그루를 베기는 했어도 소나무와 더 잘 알게 되어 원수라기보다 벗이 되었다. 이따금 숲을 거닐던 사람이 내 도끼 소리에 끌려 왔고, 우리는 내가 만든 나뭇조각들을 사이에 두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4월 중순 무렵, 나는 일을 서두르지 않고 오히려 한껏 즐겼으므로, 그때쯤 내 집은 뼈대가 다 짜여 세워 올릴 채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널빤지를 얻으려고 피치버그 철도에서 일하는 아일랜드 사람 제임스 콜린스의 판잣집을 이미 사 두었다.9 제임스 콜린스의 판잣집은 보기 드물게 훌륭한 판잣집으로 꼽혔다. 내가 보러 갔을 때 그는 집에 없었다. 나는 바깥을 한 바퀴 돌았는데, 창이 워낙 깊고 높아서 처음에는 안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집은 작았고 뾰족한 오두막 지붕이 얹혀 있었으며, 그 밖에는 별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 둘레에 흙이 퇴비 더미처럼 5피트나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붕이 가장 멀쩡한 부분이었지만 그것도 햇볕에 꽤 뒤틀리고 삭아 있었다. 문지방은 없고, 문짝 밑으로 닭들이 사철 드나드는 통로가 나 있었다. C 부인이 문간으로 나와 안에서 보라고 권했다. 내가 다가가자 닭들이 안으로 쫓겨 들어갔다. 안은 어두웠고 바닥은 대부분 흙바닥이었으며 축축하고 끈적하고 학질이라도 옮을 것 같았다. 여기 한 장 저기 한 장 깔린 널빤지는 들어내면 견디지 못할 것들이었다. 부인은 등불을 켜서 지붕 안쪽과 벽을 보여 주고, 널빤지 바닥이 침대 밑까지 깔려 있다는 것도 보여 주면서, 깊이 2피트쯤 되는 일종의 쓰레기 구덩이인 지하실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일렀다. 부인의 말로는 "머리 위도 좋은 널빤지, 사방도 좋은 널빤지, 좋은 창문"이었다. 창은 본디 온전한 유리 두 장이었는데, 요즘 고양이가 그리로 드나들었을 뿐이라고. 난로 하나, 침대 하나, 앉을 자리 하나, 그 집에서 태어난 갓난아기 하나, 비단 양산 하나, 금박 테 거울 하나, 어린 떡갈나무에 못 박아 둔 새 특허 커피 분쇄기 하나, 그게 다였다. 그사이 제임스가 돌아와서 흥정은 곧 끝났다. 나는 오늘 밤 4달러 25센트를 치르고, 그는 내일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비우되 그사이 아무에게도 팔지 않으며, 나는 여섯 시에 집을 넘겨받기로 했다. 그는 땅세와 땔감을 두고 어렴풋하지만 전혀 부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일찍 와서 선수를 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는 그것이 유일한 빚 문제라고 장담했다. 여섯 시에 나는 길에서 그와 그 식구를 지나쳤다. 커다란 보따리 하나에 그들의 전부가 들어 있었다. 침대, 커피 분쇄기, 거울, 닭까지. 고양이만 빼고. 고양이는 숲으로 들어가 들고양이가 되었다가, 나중에 들으니 우드척을 잡으려고 놓은 덫을 밟아서 마침내 죽은 고양이가 되었다.
나는 그날 아침 못을 뽑으며 이 집을 헐어서, 작은 수레로 몇 번에 나누어 호숫가로 옮기고, 거기 풀밭에 널빤지를 펼쳐 놓아 햇볕에 바래고 뒤틀린 것이 다시 펴지게 했다. 내가 수레를 끌고 숲길을 가는데 이른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한두 가락 노래를 들려주었다. 패트릭이라는 젊은이 하나가 귀띔하기를, 이웃 실리라는 아일랜드 사람이 내가 수레로 나르는 틈틈이 아직 쓸 만하고 곧고 박을 수 있는 못이며 꺾쇠며 대못을 제 주머니로 옮겼다고 했다. 그는 내가 돌아오면 서서 인사를 건네고, 봄날의 생각에 잠긴 듯 아무렇지 않게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 폐허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말로는 일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구경꾼 나라를 대표해 그 자리에 있었고, 겉보기에 하찮은 이 사건을 트로이의 신들을 옮겨 간 일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데 한몫했다.
나는 남쪽으로 기운 언덕 비탈, 예전에 우드척이 굴을 팠던 자리에 지하실을 팠다. 옻나무와 블랙베리 뿌리와 가장 밑바닥의 식물 흔적을 뚫고 사방 6피트, 깊이 7피트로, 어느 겨울에도 감자가 얼지 않을 고운 모래층까지. 옆면은 비스듬히 남겨 두고 돌을 쌓지 않았다. 그러나 해가 한 번도 비친 적이 없어서 모래는 지금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 시간짜리 일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렇게 땅을 파는 데서 남다른 즐거움을 느꼈다. 거의 모든 위도에서 사람들은 고른 온도를 얻으려고 땅을 파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가장 화려한 집 밑에도 여전히 옛날처럼 뿌리채소를 저장하는 지하실이 있고, 윗부분의 건물이 사라지고 오랜 뒤에도 후손들은 땅에 남은 그 움푹한 자국을 알아본다. 집은 여전히 굴 입구에 붙은 일종의 현관일 뿐이다.
마침내 5월 초에 나는 아는 사람 몇의 도움을 받아 집의 뼈대를 세웠다. 꼭 필요해서라기보다 이웃끼리 정을 나눌 좋은 기회를 살리려는 뜻이었다. 나만큼 집 세우는 일꾼들의 인품으로 영예를 누린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들이 언젠가 더 높은 건물을 세우는 일을 돕게 되리라 믿는다. 나는 7월 4일, 판자를 대고 지붕을 얹자마자 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판자는 가장자리를 얇게 깎아 꼼꼼히 겹쳐 대었으므로 비가 조금도 새지 않았다. 판자를 대기 전에 나는 한쪽 끝에 굴뚝의 기초를 놓았는데, 그러느라 돌을 두 수레분이나 호수에서 언덕 위로 두 팔에 안아 날랐다. 굴뚝은 가을에 콩밭 김매기를 마친 뒤, 몸을 덥히려고 불을 피워야 할 때가 오기 전에 쌓았고, 그동안에는 이른 아침에 바깥 땅바닥에서 밥을 지었다. 나는 지금도 이렇게 하는 편이 어떤 점에서는 흔한 부엌살림보다 더 편하고 즐겁다고 생각한다. 빵이 다 구워지기 전에 비바람이 불면 불 위에 널빤지 몇 장을 얹어 두고 그 밑에 앉아 빵 덩이를 지켜보았는데,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손이 몹시 바쁘던 그 무렵에는 책을 거의 읽지 못했지만, 땅바닥에 떨어진 아주 작은 종잇조각, 냄비 잡이나 식탁보로 쓰던 종이 한 장도 『일리아스』만큼 재미를 주었고, 사실상 『일리아스』와 같은 구실을 했다.
나보다 더 찬찬히 집을 짓는다면 보람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문, 창, 지하실, 다락이 사람의 본성에 어떤 바탕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어쩌면 우리의 일시적인 필요보다 더 나은 이유를 찾을 때까지는 아무 윗건물도 올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제 집을 짓는 데에는 새가 제 둥지를 짓는 데 있는 것과 같은 어울림이 얼마간 있다. 사람들이 제 손으로 집을 짓고 자기와 식구들이 먹을 것을 단순하고 정직하게 마련한다면, 새들이 그런 일을 할 때 어디서나 노래하듯 시를 짓는 능력이 어디서나 자라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아! 우리는 다른 새가 지은 둥지에 알을 낳고 재잘거리는 노래답지 않은 소리로는 어떤 나그네의 기운도 북돋아 주지 못하는 찌르레기사촌이나 뻐꾸기처럼 군다. 우리는 집 짓는 즐거움을 언제까지나 목수에게 넘겨줄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이 겪는 일에서 건축이란 무엇에 이르는가? 나는 그 많은 걸음을 걸으면서 제 집을 짓는 일처럼 그토록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공동체에 속한다. 사람의 구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은 재단사만이 아니다. 설교자도, 상인도, 농부도 마찬가지다. 이 분업은 어디서 끝날 것인가? 그리고 결국 무슨 목적에 이바지하는가? 물론 다른 사람이 나 대신 생각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렇게 하느라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일을 밀어내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물론 이 나라에도 이른바 건축가들이 있고, 나는 그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이 건축 장식에 진리의 알맹이, 필연성, 그리고 그로써 아름다움을 지니게 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그것이 자기에게 내린 계시라도 되는 듯이. 그의 관점에서는 아마 다 좋은 말일 테지만, 흔한 호사가 취미보다 조금 나을 뿐이다. 건축의 감상적인 개혁가인 그는 기초가 아니라 처마 돌림띠에서 시작했다. 그가 궁리한 것은 장식 속에 어떻게 진리의 알맹이를 넣느냐, 그러니까 사탕마다 아몬드나 캐러웨이 씨를 하나씩 넣느냐였을 뿐이다. 나는 아몬드가 설탕 없이 먹을 때 가장 몸에 좋다고 생각하지만. 거주자,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안팎으로 참되게 지어서 장식은 장식대로 알아서 되게 하느냐를 궁리한 것이 아니었다. 이성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장식이 그저 바깥에, 살갗에만 있는 것이라고 여겼겠는가? 거북이 얼룩무늬 등딱지를, 조개가 진줏빛 껍데기를, 브로드웨이 주민들이 트리니티 교회를 얻듯 도급 계약으로 얻었다고 여겼겠는가? 그러나 사람은 거북이 제 등딱지의 양식과 상관이 없듯 제 집의 건축 양식과 상관이 없다. 병사도 제 덕의 빛깔을 그대로 깃발에 칠하려 할 만큼 한가할 필요가 없다. 적이 알아낼 것이다. 시험이 닥치면 그는 하얗게 질릴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처마 돌림띠 위로 몸을 기울여, 사실은 그보다 그것을 더 잘 아는 투박한 거주자들에게 자기의 반쪽 진리를 쭈뼛쭈뼛 속삭이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보는 건축의 아름다움은, 유일한 건축가인 거주자의 필요와 성격에서, 어떤 무의식적인 진실함과 고귀함에서, 겉모습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안에서 밖으로 차츰 자라난 것임을 나는 안다. 그리고 앞으로 생겨날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은 무엇이든 그와 같은 무의식적인 삶의 아름다움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화가가 알다시피 이 나라에서 가장 흥미로운 집은 대개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꾸밈없고 소박한 통나무 움막과 오두막이다. 그것을 그림 같게 만드는 것은 그 표면의 어떤 특이함이 아니라 그것을 껍데기로 삼아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시민의 교외 상자 집도 그의 삶이 그만큼 단순하고 상상에 즐거워지며 집의 양식에 효과를 노린 억지가 그만큼 적어진다면 똑같이 흥미로워질 것이다. 건축 장식의 상당 부분은 글자 그대로 속이 비어 있어서, 9월의 강풍 한 번이면 알맹이는 다치지 않은 채 빌린 깃털처럼 벗겨져 나갈 것이다. 지하실에 올리브도 포도주도 없는 사람은 건축 없이도 지낼 수 있다. 문학에서 문체의 장식을 두고 똑같이 법석을 떤다면, 우리 성경의 건축가들이 우리 교회의 건축가들만큼 처마 돌림띠에 시간을 쓴다면 어떻겠는가? 이른바 아름다운 글과 아름다운 예술과 그 교수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막대기 몇 개가 제 머리 위나 발아래로 어떻게 비스듬히 놓이는지, 제 상자에 무슨 색이 처발라지는지가 사람에게 참으로 중요하기도 하겠다! 그가 어떤 진지한 뜻으로든 손수 그 막대기를 비스듬히 놓고 그 색을 칠한다면 얼마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이 그 세입자를 떠나 버렸다면, 그것은 제 관을 짜는 일, 무덤의 건축과 다를 바 없고, "목수"는 "관 짜는 사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삶에 절망해서인지 무관심해서인지, 발밑의 흙을 한 줌 집어 그 색으로 집을 칠하라고 말한다. 그는 자기의 마지막 좁은 집을 생각하는 것인가? 그럴 바에야 동전이라도 던져 정하라. 그는 틀림없이 여가가 넘쳐나는 사람이다! 왜 흙 한 줌을 집어 드는가? 차라리 제 얼굴빛으로 집을 칠하라. 집이 대신 하얗게 질리거나 붉어지게 하라. 오두막 건축 양식을 개량하겠다는 사업이라니! 내 장식을 마련해 놓으면 내가 걸치겠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는 굴뚝을 쌓고, 이미 비가 새지 않던 집의 옆면에 너와를 댔다. 통나무를 처음 켜 낸 조각으로 만든, 흠 있고 진이 밴 너와였는데, 그 가장자리는 대패로 곧게 밀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너비 10피트, 길이 15피트, 기둥 높이 8피트에, 다락과 벽장, 양쪽 벽에 큰 창 하나씩, 들창 둘, 한쪽 끝에 문 하나, 그 맞은편에 벽돌 벽난로를 갖춘, 너와를 대고 회반죽을 바른 꼭 짜인 집을 갖게 되었다. 내가 쓴 재료에 흔한 값을 치르고, 내가 몸소 다 한 품은 셈에 넣지 않은 내 집의 정확한 비용은 다음과 같다. 자세히 적는 까닭은 자기 집에 정확히 얼마가 들었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드물고, 집을 이루는 여러 재료 하나하나의 비용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기, 아니 아예 없기 때문이다.
| 널빤지 | $8.03½ | 대부분 판잣집 널빤지. |
| 지붕과 옆면에 댄 허드레 너와 | 4.00 | |
| 욋가지 | 1.25 | |
| 유리 끼운 중고 창 두 개 | 2.43 | |
| 헌 벽돌 천 장 | 4.00 | |
| 석회 두 통 | 2.40 | 비쌌다. |
| 털 | 0.31 | 필요보다 많았다. |
| 벽난로 선반 쇠 | 0.15 | |
| 못 | 3.90 | |
| 경첩과 나사 | 0.14 | |
| 걸쇠 | 0.10 | |
| 분필 | 0.01 | |
| 운반 | 1.40 | 상당 부분은 내가 등에 지고 날랐다. |
| 합계 | $28.12½ |
이것이 재료의 전부다. 무단 정착민의 권리로 차지한 목재와 돌과 모래는 빼고. 집 짓고 남은 재료로 주로 만든 작은 장작 헛간도 집에 붙여 두었다.
나는 콩코드 큰길의 어느 집보다 웅장하고 사치스러운 집을 지을 생각이다. 그 집이 지금 집만큼 내 마음에 들고 지금 집보다 돈이 더 들지 않게 되는 대로 곧.
그래서 나는 거처를 바라는 학생이 지금 해마다 내는 집세보다 많지 않은 비용으로 평생 살 거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분수에 넘치게 자랑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를 위해 뽐내는 것이라고 변명하겠다. 그리고 내 모자람과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내 말의 진실을 해치지는 않는다. 말뿐인 위선, 내 밀알에서 골라내기 어려운 쭉정이가 많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것을 누구 못지않게 안타깝게 여기지만, 나는 이 점에서는 마음껏 숨 쉬고 기지개를 켜겠다. 그것이 도덕의 몸에도 육신의 몸에도 그토록 큰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겸손하다는 핑계로 악마의 변호인이 되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진실을 위해 좋은 말을 해 보려고 애쓰겠다. 케임브리지의 대학에서는 내 방보다 조금 클 뿐인 학생 방 하나의 세만 해도 한 해에 30달러다. 대학 법인은 한 지붕 아래 서른두 칸을 나란히 짓는 이점을 누렸고, 방에 사는 사람은 시끄러운 이웃이 많고 어쩌면 4층에 살아야 하는 불편을 겪는데도 그렇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참된 지혜가 더 있다면 교육이 덜 필요할 뿐 아니라(그야 물론 이미 더 많은 것을 깨쳤을 테니까) 교육을 받는 데 드는 돈도 상당 부분 사라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케임브리지에서든 다른 데서든 학생에게 필요한 편의 시설은, 양쪽이 제대로 관리한다면 들었을 것보다 열 배나 큰 삶의 희생을 그 학생이나 다른 누군가에게 치르게 한다. 가장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수업료는 학기 청구서의 중요한 항목이지만, 동시대의 가장 교양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얻는 훨씬 값진 교육에는 한 푼도 매기지 않는다. 대학을 세우는 일은 대개 이렇게 진행된다. 달러와 센트로 기부금을 모으고, 그다음에는 분업의 원리를 끝까지 맹목적으로 따라서(이 원리는 늘 조심스럽게만 따라야 하는데도) 이 일을 투기 거리로 삼는 도급업자를 불러들인다. 그러면 그는 아일랜드 사람이나 다른 직공들을 부려 실제로 기초를 놓게 하고, 그동안 장차 학생이 될 사람들은 거기 들어갈 채비를 한다고들 한다. 그리고 이런 소홀함의 값은 대대로 치러야 한다. 학생들이, 아니면 대학의 덕을 보려는 사람들이 차라리 손수 기초를 놓는 편이 이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에게 필요한 노동을 체계적으로 모두 피해서 바라던 여가와 은둔을 얻는 학생은 비천하고 쓸모없는 여가를 얻을 뿐이며, 여가를 열매 맺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을 스스로 빼앗는다. 누군가 말한다. "그러면 학생들이 머리 대신 손으로 일해야 한다는 말이오?" 꼭 그런 뜻은 아니지만, 그가 그것과 꽤 비슷하다고 여길 만한 것을 뜻하기는 한다. 내 말은 공동체가 이 값비싼 놀이의 비용을 대 주는 동안 그들이 삶을 그저 놀이로 하거나 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젊은이들이 당장 사는 실험을 해 보는 것보다 사는 법을 더 잘 배울 길이 어디 있겠는가? 내 생각에 그것은 수학만큼 그들의 머리를 단련시킬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어떤 소년에게 예술과 학문을 얼마간 알게 하고 싶다면, 나는 흔한 길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흔한 길이란 그저 어느 교수 곁으로 보내는 것인데, 거기서는 삶의 기술 말고는 무엇이든 가르친다고 내세우고 실습한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상을 살펴보게 하되 맨눈으로는 결코 보지 않게 하고, 화학을 공부하게 하되 자기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배우지 않게 하고, 역학을 공부하게 하되 그 빵을 어떻게 버는지는 배우지 않게 하고, 해왕성의 새 위성을 발견하게 하되 제 눈의 티끌도, 자기가 어느 떠돌이의 위성인지도 알아채지 못하게 하고, 식초 한 방울 속의 괴물들을 들여다보는 사이 제 둘레에 우글거리는 괴물들에게 잡아먹히게 하는 길이다. 한 달 뒤에 누가 더 나아갔겠는가? 손수 캐내고 녹인 광석으로 제 주머니칼을 만들면서 그 일에 필요한 만큼 책을 읽은 소년인가, 아니면 그사이 학회에서 야금학 강의를 듣고 아버지에게서 로저스 주머니칼을 받은 소년인가? 누가 손가락을 벨 가능성이 더 클까? …… 놀랍게도 나는 대학을 떠날 때 내가 항해술을 공부했다는 말을 들었다! 아니, 항구에 한 바퀴만 나가 보았어도 그것을 더 많이 알았을 것이다. 가난한 학생조차 정치경제학만 공부하고 배우며, 철학과 같은 뜻인 삶의 경제는 우리 대학에서 진지하게 가르치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는 애덤 스미스와 리카도와 세를 읽는 동안 아버지를 돌이킬 수 없는 빚에 빠뜨린다.
우리 대학이 그렇듯 백 가지 "현대적 개량"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환상이 있다. 늘 확실한 진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악마는 그 개량에 일찍 넣은 제 몫과 그 뒤로 거듭 넣은 투자에 대해 끝까지 복리 이자를 물린다. 우리의 발명품은 흔히 진지한 일에서 우리의 주의를 흩뜨리는 예쁜 장난감이다. 그것은 개량되지 않은 목적을 위한 개량된 수단일 뿐이며, 그 목적에는 이미 너무나 쉽게 이를 수 있었다. 철도가 보스턴이나 뉴욕으로 이어지듯이. 우리는 메인주에서 텍사스까지 전신을 놓으려고 몹시 서두른다. 그러나 메인과 텍사스는 어쩌면 서로 전할 중요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둘 다 귀가 먹은 이름난 부인에게 소개받고 싶어 안달하던 사람의 처지와 같다. 막상 소개를 받고 부인의 보청 나팔 한쪽 끝을 손에 쥐자 그는 할 말이 없었다. 마치 분별 있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말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도 되는 듯이. 우리는 대서양 밑에 굴을 뚫어 구세계를 신세계에 몇 주 더 가깝게 끌어오려고 안달한다. 그러나 어쩌면 넓적하게 펄럭이는 미국의 귀로 처음 새어 들어올 소식은 애들레이드 공주가 백일해에 걸렸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1분에 1마일을 달리는 말을 탄 사람이 가장 중요한 소식을 나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복음 전도자가 아니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플라잉 칠더스가 옥수수 한 펙이라도 방앗간에 날라 준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누군가 내게 말한다. "자네가 돈을 모으지 않는 게 이상하군. 여행을 좋아하잖나. 오늘 기차를 타고 피치버그에 가서 구경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러나 나는 그보다는 지혜롭다. 나는 가장 빠른 나그네는 걸어서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는 내 벗에게 말한다. 누가 먼저 닿나 해 보세. 거리는 30마일이고 찻삯은 90센트야. 그건 거의 하루 품삯이지. 바로 이 철로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품삯이 하루 60센트이던 때를 나는 기억하네. 자, 나는 지금 걸어서 떠나 밤이 되기 전에 거기 닿을 걸세. 나는 그 속도로 몇 주씩 내리 여행한 적이 있네. 자네는 그동안 찻삯을 벌어서 내일 언젠가, 아니면 운 좋게 제때 일거리를 얻으면 오늘 저녁에 닿겠지. 자네는 피치버그에 가는 대신 하루의 대부분을 여기서 일하고 있을 걸세. 그러니 철도가 세계를 한 바퀴 두른다 해도 나는 자네를 앞서 갈 것 같네. 그리고 구경을 하고 그런 경험을 쌓는 일이라면, 나는 자네와 아예 사귐을 끊어야 할 걸세.
이것이 누구도 꾀로 이길 수 없는 보편 법칙이다. 철도에 관해서도 넓이나 길이나 매한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철도를 세계에 두르고 온 인류가 그것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은 이 행성의 겉면 전체를 고르는 일과 같다. 사람들은 합자 회사와 삽질이라는 이 활동을 충분히 오래 이어 가면 마침내 모두가 어딘가로, 거의 순식간에, 공짜로 타고 가게 되리라는 어렴풋한 생각을 품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거장으로 몰려가고 차장이 "모두 타시오!" 하고 외쳐도, 연기가 걷히고 김이 엉기고 나면 몇 사람은 타고 가지만 나머지는 깔려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참담한 사고"라고 불릴 것이고, 실제로 그럴 것이다. 물론 찻삯을 번 사람은 마침내 탈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면. 그러나 그때쯤이면 아마 몸의 탄력도 여행하고 싶은 마음도 잃었을 것이다. 삶에서 가장 값어치 없는 부분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려고 삶의 가장 좋은 부분을 돈 버는 데 쓰는 것을 보면, 먼저 한밑천 잡은 다음 영국으로 돌아와 시인의 삶을 살겠다고 인도로 간 영국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당장 다락으로 올라갔어야 했다. "뭐요!" 이 땅의 판잣집이란 판잣집에서 백만 아일랜드 사람이 벌떡 일어나 외친다. "우리가 놓은 이 철도가 좋은 게 아니란 말이오?" 그렇다, 하고 나는 대답한다. 비교적 좋다고. 곧 여러분이 그보다 더 나쁜 일을 할 수도 있었다고. 그러나 여러분은 내 형제이니, 이 흙을 파는 것보다 더 나은 데 시간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집을 다 짓기 전에, 나는 뜻밖의 지출을 메우려고 정직하고 기분 좋은 일로 10달러나 12달러쯤 벌고 싶어서 집 근처의 가볍고 모래가 많은 땅 2½에이커쯤에 주로 콩을 심고, 일부에는 감자와 옥수수와 완두와 순무를 조금 심었다. 그 땅은 모두 11에이커로 대부분 소나무와 히코리가 자라 올라오는 곳이었는데, 그 전해에 에이커당 8달러 8센트에 팔렸다. 어느 농부는 그 땅이 "찍찍거리는 다람쥐나 키우는 데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했다. 나는 이 땅에 거름을 전혀 주지 않았다. 땅 임자가 아니라 그저 무단 정착민이었고 다시 그렇게 많이 경작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도 밭 전체를 한 차례 다 매지는 못했다. 갈아엎으면서 그루터기를 여러 코드나 캐냈는데,10 그것으로 오랫동안 땔감을 댈 수 있었고, 그 자리에는 손대지 않은 흙이 작은 동그라미로 남아서 여름 내내 그곳 콩이 더 무성한 것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나머지 땔감은 집 뒤의 죽은 나무, 대부분 팔 수도 없는 나무와 호수에서 떠밀려 온 나무로 댔다. 쟁기는 내가 잡았지만 밭을 갈려고 소 한 겨리와 일꾼 한 사람을 사야 했다. 첫해 농사 지출은 농기구, 씨앗, 품삯 따위로 14달러 72½센트였다. 씨옥수수는 얻은 것이다. 이것은 넉넉한 양보다 더 심지만 않으면 말할 만한 비용이 들지 않는다. 나는 콩 12부셸과 감자 18부셸, 그 밖에 완두와 단옥수수를 얼마간 거두었다. 노란 옥수수와 순무는 너무 늦어서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농장에서 거둔 수입은 모두 다음과 같다.
| $23.44 | ||
| 지출을 빼면 | 14.72½ | |
| 남는 돈 | $8.71½ |
여기에 더해 이 셈을 할 때까지 먹어 치운 것과 남아 있던 농산물이 4달러 50센트어치였다. 남아 있던 양이 내가 기르지 않은 약간의 풀값을 넉넉히 메우고도 남았다.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곧 사람의 영혼과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면, 내 실험에 든 시간이 짧았는데도, 아니 어느 정도는 바로 그것이 잠깐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해 콩코드의 어느 농부보다 내가 더 잘했다고 나는 믿는다.
이듬해에는 더 잘했다. 필요한 땅 3분의 1에이커쯤을 모두 삽으로 일구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서 영을 비롯한 농사에 관한 이름난 책들에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두 해의 경험으로 이런 것을 배웠다. 단순하게 살면서 제가 기른 곡식만 먹고, 먹을 만큼만 기르고, 그것을 더 사치스럽고 비싼 물건 얼마 안 되는 양과 바꾸지 않는다면, 땅은 몇 로드만 경작하면 된다.11 그만한 땅은 소로 가는 것보다 삽으로 일구는 편이 싸게 먹히고, 묵은 땅에 거름을 주는 것보다 이따금 새 자리를 고르는 편이 싸게 먹히며, 필요한 농사일은 모두 여름날 짬짬이 말하자면 왼손으로 해낼 수 있다. 그러면 지금처럼 소나 말이나 젖소나 돼지에 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점에 관해 치우침 없이, 지금의 경제적·사회적 질서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다. 나는 콩코드의 어느 농부보다 독립적이었다. 집이나 농장에 닻을 내리고 묶여 있지 않아서, 언제든 내 정령이 이끄는 굽은 길을, 그것도 몹시 굽은 길을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보다 형편이 나았을 뿐 아니라, 내 집이 불타거나 농사를 망쳤더라도 나는 그전과 거의 다름없이 지냈을 것이다.
나는 사람이 가축 떼를 지킨다기보다 가축 떼가 사람을 지킨다고 생각하곤 한다. 가축 떼가 그만큼 더 자유롭다. 사람과 소는 일을 맞바꾼다. 그러나 꼭 필요한 일만 따져 보면 소가 훨씬 이득을 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소의 농장이 그만큼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사람은 여섯 주 동안의 건초 만들기로 맞바꾼 일에서 제 몫의 일부를 하는데, 그것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 분명 모든 면에서 단순하게 사는 민족, 곧 철학자들의 민족이라면 짐승의 노동을 부리는 그토록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철학자들의 민족은 지금까지 없었고 곧 생길 것 같지도 않으며, 그런 민족이 생기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라면 말이나 황소를 길들여서 나를 위해 해 줄 일을 바라고 먹여 주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말 부리는 사람이나 소 치는 사람이 되어 버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사회가 이득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한 사람의 이득이 다른 사람의 손해가 아니라고, 마구간지기 소년도 주인과 똑같이 만족할 까닭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이런 도움 없이는 세우지 못했을 공공사업도 있다고 치고, 그런 일의 영광을 사람이 소와 말과 나누게 하자. 그렇다고 해서 그 경우에 사람이 자기에게 더 걸맞은 일을 이루지 못했으리라는 결론이 나오는가? 사람들이 짐승의 도움을 받아 그저 필요 없는 일이나 예술적인 일이 아니라 사치스럽고 하릴없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 몇 사람이 소와 맞바꾸는 일을 도맡아 하게 되는 것, 곧 가장 힘센 자의 노예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제 안의 짐승을 위해 일할 뿐 아니라, 그것을 상징하듯 제 밖의 짐승을 위해서도 일한다. 우리에게는 벽돌이나 돌로 지은 튼튼한 집이 많지만, 농부의 번영은 여전히 헛간이 집을 얼마나 내리누르느냐로 잰다. 이 읍에는 이 근방에서 가장 큰 소와 젖소와 말의 집이 있다고 하며, 공공건물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군에는 자유로운 예배나 자유로운 말을 위한 회관이 거의 없다. 민족이 스스로를 기념하려 한다면 건축으로가 아니라, 왜 추상적인 사고의 힘으로라도 하지 않는가? 『바가바드기타』는 동방의 모든 폐허보다 얼마나 더 경탄할 만한가!12 탑과 신전은 군주의 사치다. 단순하고 독립적인 정신은 어느 군주의 명령에도 애써 일하지 않는다. 천재는 어느 황제의 가신도 아니며, 그 재료는 은도 금도 대리석도 아니다. 아주 하찮은 정도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은 돌을 쪼는가? 내가 아르카디아에 있을 때 나는 돌 쪼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민족들은 저마다 남기는 쪼아 낸 돌의 양으로 제 기억을 영원히 남기겠다는 미친 야망에 사로잡혀 있다. 똑같은 공을 들여 제 품행을 다듬고 닦는다면 어떻겠는가? 분별 있는 생각 하나가 달만큼 높은 기념비보다 더 기억할 만할 것이다. 나는 돌이 제자리에 있는 것을 보는 편이 더 좋다. 테베의 웅장함은 천박한 웅장함이었다. 삶의 참된 목적에서 더 멀리 떠나 헤매는, 백 개의 문이 있는 테베보다 정직한 사람의 밭을 두른 1로드의 돌담이 더 분별 있다. 야만스럽고 이교적인 종교와 문명은 화려한 신전을 짓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라 부를 만한 것은 그러지 않는다. 한 민족이 쪼는 돌은 대부분 그 무덤으로만 간다. 민족은 스스로를 산 채로 묻는다. 피라미드로 말하자면, 거기서 놀라운 것은 어떤 야심 많은 얼간이의 무덤을 짓는 데 평생을 바칠 만큼 타락한 사람을 그토록 많이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 한 것이 없다. 그 얼간이는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고 그 몸을 개들에게 던져 주는 편이 더 지혜롭고 사내다웠을 것이다. 그들과 그를 위해 어떤 변명을 지어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 건축하는 이들의 종교와 예술 사랑으로 말하자면, 그 건물이 이집트 신전이든 합중국 은행이든 온 세상 어디서나 거의 같다. 그것은 값어치보다 비용이 더 든다. 태엽은 허영이고, 마늘과 버터 바른 빵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것을 거든다. 앞날이 촉망되는 젊은 건축가 볼컴 씨가 단단한 연필과 자로 비트루비우스 책 뒷면에 설계도를 그리면, 그 일은 석재상 돕슨 부자 상회에 도급으로 넘어간다. 서른 세기가 그것을 내려다보기 시작할 때 인류는 그것을 올려다보기 시작한다. 높은 탑과 기념비로 말하자면, 예전에 이 읍에는 땅을 파서 중국까지 뚫겠다고 나선 미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말로는 중국 사람들의 냄비와 솥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릴 만큼 깊이 팠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판 구멍을 보며 감탄하려고 굳이 길을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서양과 동양의 기념물에 마음을 쓰며 누가 그것을 지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나로서는 그 시절에 누가 그것을 짓지 않았는지, 누가 그런 하찮은 일보다 높은 곳에 있었는지 알고 싶다. 그러나 내 통계로 넘어가자.
그사이 나는 마을에서 측량과 목수 일과 다른 여러 날품을 팔아 13달러 34센트를 벌었다. 나는 손가락 수만큼 많은 기술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 셈을 낸 때인 3월 1일까지, 곧 7월 4일부터 여덟 달 동안의 먹을거리 비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거기서 두 해 넘게 살았지만, 내가 기른 감자와 풋옥수수 조금과 완두 얼마는 셈에 넣지 않았고, 마지막 날에 남아 있던 것의 값도 따지지 않았다.
| 쌀 | $1.73½ | |
| 당밀 | 1.73 | 가장 값싼 당분. |
| 호밀 가루 | 1.04¾ | |
| 옥수수 가루 | 0.99¾ | 호밀보다 싸다. |
| 돼지고기 | 0.22 | |
| 모두 실패한 실험: | ||
| 밀가루 | 0.88 | 옥수수 가루보다 돈도 품도 더 든다. |
| 설탕 | 0.80 | |
| 돼지기름 | 0.65 | |
| 사과 | 0.25 | |
| 말린 사과 | 0.22 | |
| 고구마 | 0.10 | |
| 호박 한 개 | 0.06 | |
| 수박 한 개 | 0.02 | |
| 소금 | 0.03 |
그렇다, 나는 모두 합쳐 8달러 74센트어치를 먹었다. 그러나 독자 대부분이 나 못지않게 죄가 있고 그들의 행실도 활자로 찍어 놓으면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나는 이렇게 낯 뜨거운 줄도 모르고 내 죄를 공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듬해에는 이따금 저녁거리로 물고기를 한 접시 잡았고, 한번은 내 콩밭을 망쳐 놓은 우드척 한 마리를 잡아, 타타르 사람 말로 하자면 그의 윤회를 거들어 주고, 얼마간은 실험 삼아 먹어 치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사향 냄새가 나는데도 잠깐은 즐거웠지만, 아무리 오래 해 본들 좋은 습관이 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마을 푸줏간이 미리 손질해 준 우드척을 먹는 일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일지라도.
같은 기간의 옷값과 이런저런 부수 비용은, 이 항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다음과 같다.
| $8.40¾ | ||
| 등잔 기름과 살림 도구 몇 가지 | 2.00 |
그러므로 돈으로 나간 지출은 모두 다음과 같다. 빨래와 바느질은 대부분 집 밖에 맡겼고 그 청구서는 아직 받지 못했으니 빼고, 이것이 세상의 이쪽에서 돈이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길의 전부이자 전부보다 많은 것이다.
| 집 | $28.12½ | |
| 농장 한 해 | 14.72½ | |
| 먹을거리 여덟 달 | 8.74 | |
| 옷 따위 여덟 달 | 8.40¾ | |
| 기름 따위 여덟 달 | 2.00 | |
| 합계 | $61.99¾ |
이제 나는 독자 가운데 생계를 꾸려야 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이것을 메우려고 내가 판 농산물과 번 돈은 다음과 같다.
| $23.44 | ||
| 날품으로 번 돈 | 13.34 | |
| 합계 | $36.78 |
이것을 지출 총액에서 빼면 한쪽에는 25달러 21¾센트가 남는다. 이것은 내가 처음 시작할 때 가진 밑천과 거의 같고, 앞으로 들 비용의 잣대이기도 하다. 다른 쪽에는 그렇게 얻은 여가와 독립과 건강 말고도,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래 살 수 있는 안락한 집이 남는다.
이 통계는 아무리 우연하고 그래서 배울 것이 없어 보일지라도 어느 정도 완결된 것이니 어느 정도 가치도 있다. 내가 받은 것 가운데 셈을 밝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위의 셈으로 보면 먹을거리에만 든 돈은 한 주에 27센트쯤이었다. 그 뒤로 두 해 가까이 그것은 효모를 넣지 않은 호밀과 옥수수 가루, 감자, 쌀, 아주 조금의 소금 절인 돼지고기, 당밀, 소금이었고, 마실 것은 물이었다. 인도 철학을 그토록 좋아하는 내가 주로 쌀을 먹고 산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몇몇 고질적인 트집쟁이의 반론을 막으려고 밝혀 두자면, 나는 늘 그래 왔듯 이따금 밖에서 저녁을 먹었고 앞으로도 그럴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데, 그것은 흔히 내 집안 살림에 해가 되었다. 그러나 밖에서 먹는 저녁은, 말했듯이 늘 있는 요소이므로, 이런 비교 셈에는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나는 두 해의 경험으로, 이 위도에서도 꼭 필요한 먹을거리를 얻는 데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수고가 든다는 것, 사람이 짐승만큼 단순하게 먹고도 건강과 힘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옥수수밭에서 뜯어 삶아서 소금을 친 쇠비름(Portulaca oleracea) 한 접시만으로, 여러 가지 점에서 흡족한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라틴어 학명을 적는 것은 그 종명이 입맛을 돋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체 평화로운 시절의 여느 한낮에, 이성 있는 사람이 소금을 쳐서 삶은 풋 단옥수수 넉넉한 몇 자루보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내가 즐긴 얼마 안 되는 변화조차 건강이 아니라 식욕의 요구에 굴복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필수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치품이 모자라서 굶주리는 일이 잦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아들이 물만 마시기 시작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어느 착한 부인을 안다.
독자는 내가 이 주제를 식이요법의 관점보다는 경제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음을 알아챌 것이다. 그러니 먹을거리를 넉넉히 쟁여 둔 찬장이 없다면 내 절제를 감히 시험해 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빵은 처음에는 순 옥수수 가루와 소금으로, 진짜 괭이 빵으로 만들었는데, 바깥 불 앞에서 너와 조각이나 집 지을 때 켜고 남은 목재 끄트머리에 올려 구웠다. 그러나 연기가 배고 솔 냄새가 나기 일쑤였다. 밀가루로도 해 보았다. 그러나 마침내 호밀과 옥수수 가루를 섞는 것이 가장 편하고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운 날 이것으로 작은 빵 덩이를 여러 개 잇달아 구우며 이집트 사람이 부화하는 알을 돌보듯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뒤집는 것은 적잖은 즐거움이었다. 그것은 내가 익힌 진짜 곡식 열매였고, 내 감각에는 다른 고귀한 열매 같은 향기가 났는데, 나는 그것을 천에 싸서 될 수 있는 한 오래 그 향을 가두어 두었다. 나는 오래되고 없어서는 안 될 빵 만드는 기술을 연구했다. 구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책을 뒤져, 사람들이 처음으로 견과와 고기의 야생에서 이 음식의 온화함과 세련됨에 이른 원시 시대, 효모 없는 빵을 처음 발명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반죽이 우연히 시큼해지면서 발효법을 가르쳐 주었으리라고 여겨지는 대목과 그 뒤의 여러 발효를 거쳐 차츰 내려오다가 마침내 삶의 지팡이인 "좋고 달고 몸에 좋은 빵"에 이르렀다. 어떤 이들이 빵의 영혼으로 여기는 효모, 빵의 세포 조직을 채우는 숨결(spiritus), 베스타의 성화처럼 경건하게 지켜 온 효모(아마 처음 메이플라워호에 실려 온 귀한 한 병이 아메리카에서 제 몫을 다했고, 그 영향은 지금도 곡식의 물결이 되어 이 땅 위로 부풀고 일고 퍼져 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 씨를 나는 마을에서 꼬박꼬박 충실히 구해 왔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규칙을 잊고 효모를 뜨거운 물에 데어 버렸는데, 이 사고로 이것마저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아님을 발견했다. 내 발견은 종합이 아니라 분석의 길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는 기꺼이 효모를 빼 왔다. 주부들은 대부분 효모 없이는 안전하고 몸에 좋은 빵이 될 수 없다고 진지하게 장담했고, 나이 든 이들은 생명력이 곧 쇠하리라고 예언했지만. 그러나 나는 효모가 꼭 있어야 하는 재료가 아님을 알았고, 한 해 동안 그것 없이 지내고도 여전히 산 사람의 땅에 있다. 그리고 주머니에 효모 한 병을 넣고 다니다가 이따금 그것이 펑 터져 쏟아지는 바람에 낭패를 보는 하찮은 일에서 벗어나 기쁘다. 빼는 편이 더 단순하고 더 점잖다. 사람은 어떤 동물보다도 모든 기후와 처지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다. 나는 빵에 탄산소다나 다른 산이나 알칼리도 넣지 않았다. 나는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가 그리스도보다 두 세기쯤 앞서 일러 준 조리법대로 빵을 만든 듯하다(Panem depsticium sic facito. Manus mortariumque bene lavato. Farinam in mortarium indito, aquae paulatim addito, subigitoque pulchre. Ubi bene subegeris, defingito, coquitoque sub testu.). 내가 풀이하기로는 이런 뜻이다. "반죽 빵은 이렇게 만들라. 손과 반죽 통을 잘 씻으라. 가루를 반죽 통에 넣고 물을 조금씩 부어 가며 꼼꼼히 치대라. 잘 치댔으면 모양을 빚어 뚜껑을 덮고 구우라." 곧 빵 굽는 솥에 넣어 구우라는 말이다. 효모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삶의 지팡이를 늘 쓰지는 않았다. 한때는 지갑이 비어서 한 달 넘게 빵 구경도 하지 못했다.
뉴잉글랜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호밀과 옥수수의 땅에서 자기가 먹을 곡식을 손쉽게 모두 길러, 멀리 있고 값이 오르내리는 시장에 기대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단순함과 독립에서 너무 멀어서, 콩코드에서는 신선하고 단 곡식 가루를 가게에서 거의 팔지 않고, 굵게 탄 옥수수나 그보다 더 거친 옥수수는 거의 아무도 쓰지 않는다. 농부는 대개 제가 거둔 곡식을 소와 돼지에게 먹이고, 적어도 더 몸에 좋을 것도 없는 밀가루를 더 비싼 값에 가게에서 산다. 나는 호밀과 옥수수 한두 부셸쯤은 쉽게 기를 수 있음을 알았다. 호밀은 가장 메마른 땅에서도 자라고 옥수수도 가장 좋은 땅을 바라지 않으니, 그것을 손맷돌에 갈면 쌀과 돼지고기 없이도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진한 단것이 꼭 있어야 한다면, 호박이나 사탕무로 아주 좋은 당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알아냈고, 단풍나무 몇 그루만 심으면 더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도 알았으며, 나무가 자라는 동안에는 앞에 든 것 말고도 여러 대용품을 쓸 수 있었다. 조상들이 노래했듯이.
"입술을 달게 할 술은 우리가 빚을 수 있지,
호박이며 파스닙이며 호두나무 부스러기로."
끝으로 가장 투박한 식료품인 소금으로 말하자면, 그것을 구하는 일은 바닷가에 한번 가 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니면 아예 소금 없이 지낸다면 아마 물을 덜 마시게 될 것이다. 원주민들이 소금을 구하러 애써 다녔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먹을거리에 관한 한 모든 거래와 물물교환을 피할 수 있었고, 거처는 이미 있었으니 남은 것은 옷과 연료를 얻는 일뿐이었다. 내가 지금 입은 바지는 어느 농부의 집에서 짠 것이다. 사람에게 아직 그만한 덕이 남아 있으니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농부에서 공장 직공으로 떨어지는 것은 사람에서 농부로 떨어지는 것만큼 크고 기억할 만한 추락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 연 땅에서는 연료가 오히려 짐이다. 살 터로 말하자면, 계속 무단으로 눌러살게 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경작한 땅이 팔린 것과 같은 값, 곧 8달러 8센트에 1에이커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이러하니, 나는 그 땅에 눌러삶으로써 땅값을 올려 주었다고 여겼다.
어떤 부류의 불신자들은 이따금 내게 채소만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따위를 묻는다. 나는 곧장 문제의 뿌리를 치려고(뿌리는 믿음이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판자 못을 먹고도 살 수 있다고 대답하곤 한다. 그것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을 대부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나로서는 이런 실험을 해 본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반갑다. 이를테면 어떤 젊은이가 이 주일 동안 딱딱한 날옥수수를 이삭째 이로만 빻아 먹으며 살아 보았다는 이야기 같은 것. 다람쥐 족속도 같은 실험을 해서 성공했다. 인류는 이런 실험에 관심이 있다. 그런 실험을 할 수 없는 몇몇 노부인이나 방앗간에 과부 몫 삼분의 일을 가진 노부인들은 기겁할지 모르지만.
내 가구는 일부는 내가 만들었고, 나머지도 셈을 밝히지 않은 비용은 하나도 들지 않았는데, 침대 하나, 식탁 하나, 책상 하나, 의자 셋, 지름 3인치짜리 거울 하나, 부젓가락 한 벌과 장작 받침쇠, 주전자 하나,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 국자 하나, 세숫대야 하나, 나이프와 포크 두 벌, 접시 셋, 잔 하나, 숟가락 하나, 기름 단지 하나, 당밀 단지 하나, 옻칠한 등잔 하나였다. 호박 위에 앉아야 할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 그건 주변머리가 없는 것이다. 마을의 다락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런 의자가 가져가기만 하면 되게 널려 있다. 가구라니! 고맙게도 나는 가구 창고의 도움 없이도 앉을 수 있고 설 수 있다. 철학자가 아니고서야 누가 자기 가구가 수레에 실려 하늘의 빛과 사람들의 눈앞에 드러난 채 시골로 실려 가는 것을, 빈 상자들의 초라한 목록을 보며 부끄러워하지 않겠는가? 저것이 스폴딩네 가구로군. 그런 짐을 살펴보고 그것이 이른바 부자의 것인지 가난한 사람의 것인지 나는 한 번도 가려낼 수 없었다. 임자는 언제나 가난에 찌든 사람처럼 보였다. 사실 그런 것을 많이 가질수록 더 가난하다. 짐마다 판잣집 열두 채의 살림을 담은 것처럼 보인다. 판잣집 한 채가 가난하다면 이것은 열두 배나 가난하다. 대체 우리가 이사하는 것은 가구를, 우리의 허물을 떨쳐 버리려는 것 말고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을 떠나 새로 가구를 갖춘 다른 세상으로 가면서 이것은 불태우라고 남겨 두려는 것 말고? 그것은 마치 이 모든 덫이 사람의 허리띠에 채워져서, 우리 몫으로 떨어진 거친 땅을 지나려면 그것들을, 제 덫을 질질 끌고 가야 하는 것과 같다. 덫에 꼬리를 남겨 두고 달아난 여우는 운이 좋았다. 사향쥐는 자유로워지려고 세 번째 다리를 물어뜯어 끊는다. 사람이 탄력을 잃은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는 얼마나 자주 꼼짝없이 덫에 걸려 있는가! "선생, 실례지만 꼼짝없이 덫에 걸렸다는 게 무슨 뜻이오?" 앞일을 내다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만나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아니 그가 갖지 않은 체하는 많은 것까지, 부엌세간이며 불태우지 않고 쟁여 두는 온갖 잡동사니까지 그의 뒤에서 보게 될 것이고, 그는 거기에 마구로 매여서 힘닿는 대로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옹이구멍이나 문을 빠져나갔는데 썰매에 실은 가구가 뒤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이 꼼짝없이 덫에 걸린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겉보기에 자유롭고 허리띠를 졸라매 채비를 다 갖춘 듯한 말쑥하고 다부진 사람이 자기 "가구"를 두고 보험에 들었느니 안 들었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딱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내 가구는 어떻게 하지?" 그렇다면 나의 화사한 나비가 거미줄에 걸린 셈이다. 오랫동안 가구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도 더 꼼꼼히 캐 보면 누군가의 헛간에 얼마간 쟁여 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의 영국을 짐을 잔뜩 지고 여행하는 늙은 신사로 본다. 오랜 살림살이에서 쌓인, 불태울 용기가 없는 잡동사니들, 큰 트렁크, 작은 트렁크, 모자 상자, 보따리. 적어도 앞의 셋은 내던지라. 요즘은 건강한 사람도 자리를 들고 걸어가기는 힘에 부칠 것이고, 나라면 아픈 사람에게 분명 자리를 내려놓고 뛰라고 권하겠다. 전 재산을 담은 보따리를 지고, 마치 목덜미에서 거대한 혹이 자라난 듯한 모습으로 비틀거리는 이민자를 만났을 때 나는 그를 딱하게 여겼다. 그것이 그의 전부여서가 아니라 그것을 다 지고 가야 해서였다. 내가 덫을 끌고 가야 한다면, 그것이 가볍고 급소를 물지 않는 덫이 되도록 조심하겠다. 그러나 어쩌면 아예 덫에 발을 들이밀지 않는 것이 가장 지혜로울 것이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자면, 나는 커튼에 한 푼도 들지 않는다. 해와 달 말고는 막아야 할 구경꾼이 없고, 해와 달이라면 들여다보아도 좋기 때문이다. 달은 내 우유를 시게 하거나 고기를 상하게 하지 않을 것이고, 해도 내 가구를 해치거나 깔개를 바래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해가 이따금 너무 뜨거운 벗이 되더라도, 나는 살림살이 목록에 한 가지라도 보태느니 자연이 마련해 준 어떤 커튼 뒤로 물러나는 편이 여전히 더 나은 절약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부인이 한번은 내게 깔개를 주겠다고 했지만, 집 안에는 남는 자리가 없었고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것을 털 시간도 없었으므로 사양하고 문 앞 뗏장에 발을 닦는 쪽을 택했다. 악은 그 시작부터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얼마 전 나는 어느 교회 집사의 유품 경매에 갔다. 그의 삶은 남긴 것이 없지 않았으니까.
"사람이 저지른 악은 죽은 뒤에도 살아남는다."13
여느 때처럼 상당 부분은 그의 아버지 시절부터 쌓이기 시작한 잡동사니였다. 그 가운데에는 말린 촌충도 하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반세기 동안 그의 다락과 다른 쓰레기 구덩이에 처박혀 있던 이 물건들은 불태워지지 않았다. 모닥불, 곧 그것들을 정화하는 파괴 대신 경매, 곧 그것들을 불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웃들은 그것을 구경하려고 앞다투어 모여들어 모조리 사서는 조심스럽게 자기네 다락과 쓰레기 구덩이로 옮겨 갔다. 그들의 유산이 정리될 때까지 거기 처박혀 있다가 그때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 먼지를 걷어찬다.
어떤 야만 민족의 풍습은 어쩌면 우리가 본받으면 이로울 것이다. 그들은 적어도 해마다 허물을 벗는 시늉은 한다. 실제로 그렇게 하든 않든 그 일의 관념은 지니고 있다. 바트럼이 머클래시 원주민의 풍습이었다고 전하는 "버스크", 곧 "첫 열매의 잔치"를 우리도 치른다면 좋지 않겠는가?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 마을이 버스크를 치를 때에는 미리 새 옷과 새 냄비와 솥과 다른 살림 도구와 가구를 장만해 두고서, 해진 옷과 그 밖의 하찮은 물건을 모두 모으고, 집과 광장과 온 마을을 쓸고 닦아 더러운 것을 치운 다음, 남은 곡식과 다른 묵은 양식을 모두 한 무더기로 쌓아 불로 태워 버린다. 약을 먹고 사흘 동안 단식한 뒤에는 마을의 불을 모두 끈다. 이 단식 동안 그들은 어떤 욕구와 정념도 채우지 않는다. 전면 사면이 선포되고, 죄인들은 모두 마을로 돌아올 수 있다."
"나흘째 아침, 대사제가 마른 나무를 비벼 광장에 새 불을 일으키면, 거기서 마을의 모든 집이 새롭고 깨끗한 불길을 얻어 간다."
그런 다음 그들은 사흘 동안 햇옥수수와 햇과일로 잔치를 벌이고 춤추고 노래하며, "그다음 나흘 동안은 똑같이 몸을 깨끗이 하고 채비를 갖춘 이웃 마을 벗들의 방문을 받으며 함께 즐긴다."
멕시코 사람들도 쉰두 해가 끝날 때마다 세상이 끝날 때가 되었다고 믿고 이와 비슷한 정화 의식을 치렀다.
사전이 정의하듯 "안의 영적인 은총이 겉으로 드러나 눈에 보이는 표징"을 성사라 한다면, 나는 이보다 더 참된 성사를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 계시를 적은 성경 기록이 없지만, 그들이 처음에 하늘에서 곧바로 영감을 받아 그렇게 했으리라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다섯 해 넘게 이렇게 오직 내 손의 노동으로 먹고살았고, 한 해에 여섯 주쯤 일하면 생활비를 모두 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겨울 내내, 그리고 여름의 대부분을 나는 공부하는 데 고스란히 쓸 수 있었다. 나는 학교 선생 노릇도 철저히 해 보았는데, 지출이 수입에 비례한다는 것, 아니 비례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하고 믿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옷차림과 몸가짐도 그에 걸맞게 갖추어야 했고, 덤으로 시간까지 잃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웃을 이롭게 하려고가 아니라 그저 생계를 위해 가르쳤으므로 이것은 실패였다. 장사도 해 보았지만, 거기서 자리를 잡으려면 열 해는 걸릴 것이고 그때쯤이면 아마 악마에게 가는 길 위에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쯤이면 이른바 장사가 잘되는 짓을 하고 있을까 봐 정말로 두려웠다. 예전에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둘러보던 때, 벗들의 바람에 맞추려다 겪은 서글픈 경험이 아직 마음에 생생해서 꾀를 짜내던 때, 나는 허클베리를 따는 일을 자주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 일이라면 분명 할 수 있고, 그 적은 이익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내 가장 큰 재주는 바라는 것이 적은 것이었으니까. 밑천도 거의 들지 않고 늘 지니던 기분을 흩뜨리는 일도 거의 없으리라고 나는 어리석게 생각했다. 아는 사람들이 망설임 없이 장사나 전문직으로 나아가는 동안, 나는 이 일이 그들의 일과 가장 비슷하다고 여겼다. 여름 내내 언덕을 쏘다니며 눈에 띄는 열매를 따고, 그다음에는 무심히 처분하는 일. 그렇게 아드메토스의 양 떼를 치는 일. 들풀을 모으거나, 숲을 떠올리기를 좋아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아니 도시에까지 상록수를 건초 수레로 실어 나르는 꿈도 꾸었다. 그러나 그 뒤로 나는 장사가 손대는 것마다 저주를 내린다는 것을 배웠다. 하늘에서 온 소식을 사고판다 해도 장사의 저주는 고스란히 그 일에 들러붙는다.
나는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좋아했고 특히 내 자유를 소중히 여겼으며, 거칠게 먹고 지내면서도 잘 해낼 수 있었으므로, 화려한 양탄자나 다른 고급 가구나 섬세한 요리나 그리스 양식이나 고딕 양식의 집을 버느라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이런 것을 얻는 일이 아무 방해도 되지 않고, 얻은 뒤에 그것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일을 그들에게 넘기겠다. 어떤 사람들은 "부지런해서" 일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일이 더 나쁜 장난을 막아 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지금으로서는 할 말이 없다. 지금 누리는 것보다 여가가 더 많으면 무엇을 할지 모를 사람들에게는 지금보다 두 배로 열심히 일하라고, 제 몸값을 다 치르고 해방 증서를 받을 때까지 일하라고 권할 수도 있겠다. 나로서는 날품팔이가 무엇보다도 독립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특히 한 사람이 먹고살려면 한 해에 삼사십 일만 일하면 되었으니까. 날품팔이의 하루는 해가 지면 끝나고, 그다음에는 자유롭게 제 노동과 상관없이 자기가 고른 일에 몸을 바칠 수 있다. 그러나 다달이 투기를 하는 그의 고용주는 한 해 내내 쉴 틈이 없다.
요컨대 나는 믿음으로도 경험으로도 확신한다. 우리가 단순하고 지혜롭게 살려고만 한다면, 이 땅에서 제 몸을 건사하는 일은 고역이 아니라 놀이다. 더 단순한 민족들이 하는 일이 더 인위적인 민족들에게는 여전히 운동 경기인 것처럼. 사람이 이마에 땀을 흘려야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나보다 땀을 쉽게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아는 한 젊은이는 땅 몇 에이커를 물려받았는데, 그럴 수단만 있다면 나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어떤 이유로도 누구에게 내 사는 법을 따르게 하고 싶지 않다. 그가 그것을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나는 나를 위해 또 다른 길을 찾아냈을지도 모를 뿐 아니라, 나는 세상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저마다 다른 사람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이웃의 길이 아니라 자기만의 길을 아주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따라가기를 바란다. 젊은이는 집을 지어도 좋고 씨를 뿌려도 좋고 배를 타도 좋다. 다만 내게 하고 싶다고 말한 그 일을 하는 데 방해만 받지 않으면 된다. 우리가 지혜로운 것은 뱃사람이나 도망 노예가 북극성을 눈에서 놓치지 않듯 오직 수학적인 한 점 덕분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평생을 이끌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셈할 수 있는 기간 안에 항구에 닿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참된 항로는 지킬 것이다.
물론 이 경우 한 사람에게 맞는 것은 천 사람에게 더 잘 맞는다. 큰 집이 작은 집보다 비례해서 더 비싸지는 않은 것과 같다. 지붕 하나가 여러 집을 덮고, 지하실 하나가 그 밑에 깔리고, 벽 하나가 그 사이를 가를 수 있으니까. 그러나 나로서는 혼자 사는 집이 더 좋았다. 게다가 대개는 공동의 벽이 이롭다고 남을 설득하는 것보다 혼자 집을 통째로 짓는 편이 더 싸게 먹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설득하고 나면, 공동 칸막이는 훨씬 싸게 하려면 얇아야 하고, 그 다른 사람은 나쁜 이웃으로 드러나 제 쪽을 손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개 가능한 유일한 협력은 지극히 부분적이고 피상적이다. 참된 협력은 얼마 안 되지만, 그것은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화음이어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디서나 같은 믿음으로 협력할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느 무리에 끼든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처럼 살아갈 것이다. 가장 높은 뜻에서나 가장 낮은 뜻에서나 협력한다는 것은 함께 생계를 꾸리는 것이다. 얼마 전 나는 두 젊은이가 함께 세계를 여행하자는 제안을 들었다. 한 사람은 돈 없이 가면서 돛대 앞에서 뱃일을 하고 쟁기 뒤에서 밭일을 해 그때그때 경비를 벌고, 다른 한 사람은 주머니에 환어음을 넣고 가기로 했다. 그들이 오래 길동무가 되거나 함께 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아예 일하지 않을 테니까. 그들은 모험 중에 처음 맞닥뜨리는 흥미로운 고비에서 갈라설 것이다. 무엇보다 앞에서 내비쳤듯 혼자 가는 사람은 오늘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남과 함께 여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채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들이 길을 나서기까지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아주 이기적이라고 몇몇 읍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지금까지 박애 사업에 거의 빠져 본 적이 없다. 나는 의무감에 몇 가지를 희생했고, 그 가운데 이 즐거움도 희생했다. 갖은 수를 다 써서 나를 설득해 읍의 어느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게 하려던 사람들이 있다. 내가 할 일이 없었다면(악마는 게으른 자에게 일거리를 찾아 주니까) 그런 소일거리에 손을 대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점에서 나 자신을 한번 즐겁게 해 주려고, 어떤 가난한 사람들을 모든 면에서 나만큼 안락하게 부양해서 그들의 하늘에 빚을 지워 볼까 생각하고, 실제로 그들에게 제안까지 해 보았을 때, 그들은 하나같이 망설임 없이 가난하게 남는 쪽을 택했다. 읍의 남녀가 그토록 여러 모양으로 이웃의 이익에 몸을 바치고 있으니, 적어도 한 사람쯤은 다른, 덜 인도적인 일에 남겨 두어도 되리라 믿는다. 자선에도 다른 모든 일처럼 재능이 있어야 한다. 선행이라면 이미 자리가 꽉 찬 직업 가운데 하나다. 게다가 나는 공정하게 그것을 해 보았는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것이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아마 나는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선을 행하려고, 우주를 멸망에서 구하려고, 알면서 일부러 내 고유한 소명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주를 지키는 것은 다른 어딘가에 있는, 이와 같지만 한없이 더 큰 꿋꿋함뿐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누구와 그의 정령 사이에도 끼어들지 않겠다. 내가 사양하는 이 일을 온 마음과 영혼과 삶을 다해 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끝까지 하라. 세상이 그것을 악행이라 부르더라도. 그리고 세상은 아마 그렇게 부를 것이다.
나는 내 경우가 별나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틀림없이 많은 독자가 비슷한 변론을 할 것이다. 무언가를 하는 일이라면(이웃들이 그것을 좋다고 말하리라고 장담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고용하기에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겠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를 고용하는 사람이 알아낼 일이다. 그 말의 흔한 뜻으로 내가 행하는 선은 내 주된 길에서 벗어난 곳에 있을 수밖에 없고, 대부분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사실상 이렇게 말한다. 더 값진 사람이 되는 것을 주로 노리지 말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지금 모습 그대로 시작하라. 그리고 미리 마음먹은 친절로 선을 행하며 돌아다니라. 내가 이런 투로 설교라도 한다면 오히려 이렇게 말하겠다. 선한 사람이 되는 일에 착수하라. 마치 해가 제 불을 달이나 6등성만큼 밝게 지핀 다음에 멈추어서, 로빈 굿펠로처럼 오두막 창문마다 기웃거리고 미치광이를 부추기고 고기를 상하게 하고 어둠을 보이게 하며 돌아다녀야 하는 것처럼. 해는 그 대신 다정한 열과 은혜를 꾸준히 더해서 어떤 인간도 그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 밝아진 다음, 그리고 그동안에도, 제 궤도를 따라 세상을 돌며 세상에 선을 행한다. 아니, 더 참된 철학이 밝혀냈듯 세상이 해의 둘레를 돌며 선을 얻는다. 파에톤은 제 은혜로 하늘의 혈통임을 증명하려고 단 하루 해의 수레를 몰았다가 늘 다니던 길에서 벗어나는 바람에, 하늘 아랫동네의 집 몇 구역을 태우고 땅의 겉면을 그슬리고 샘이란 샘을 모두 말리고 거대한 사하라사막을 만들었다. 마침내 유피테르가 벼락으로 그를 땅으로 거꾸로 내던졌고, 해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한 해 동안 빛나지 않았다.
썩은 선에서 피어오르는 냄새만큼 고약한 냄새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아니 신의 썩은 고기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선을 베풀겠다는 뚜렷한 계획을 품고 내 집에 오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날 것이다. 숨이 막힐 때까지 입과 코와 귀와 눈을 먼지로 채우는, 시뭄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사막의 바싹 마른 열풍에서 달아나듯이. 그의 선이 조금이라도 나에게 베풀어질까 봐, 그 독이 조금이라도 내 피에 섞일까 봐. 아니다. 이런 경우라면 나는 차라리 자연스러운 길로 악을 겪겠다. 내가 굶주릴 때 먹여 주고, 얼어 갈 때 덥혀 주고, 언젠가 도랑에 빠지면 끌어내 준다고 해서 어떤 사람이 내게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만한 일을 하는 뉴펀들랜드 개라면 얼마든지 찾아 줄 수 있다. 박애는 가장 넓은 뜻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하워드는 분명 나름대로 더없이 친절하고 훌륭한 사람이었고 그에 맞는 보답도 받았다.14 그러나 견주어 말하자면, 박애가 우리의 가장 좋은 처지에서, 우리가 가장 도움받을 만할 때 우리를 돕지 못한다면 하워드 백 사람이 우리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나나 나 같은 사람에게 무슨 선이라도 베풀자고 진지하게 제안한 박애 모임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예수회 수사들은 화형대에서 불타면서 자기를 고문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고문법을 일러 준 원주민들 앞에서 완전히 낭패를 보았다. 그들은 육체의 고통을 넘어서 있었기에, 선교사들이 줄 수 있는 어떤 위로도 넘어서 있는 일이 이따금 있었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율법도, 자기가 남에게 어떻게 대접받든 상관하지 않고 원수를 새로운 모양으로 사랑하며 원수가 저지른 모든 것을 거의 기꺼이 용서하려던 사람들의 귀에는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을 주도록 하라. 그것이 그들을 멀리 뒤처지게 하는 여러분의 본보기일지라도. 돈을 준다면 돈과 함께 여러분 자신을 쓰고, 그저 돈을 그들에게 내버리지 말라. 우리는 이따금 진기한 실수를 저지른다. 가난한 사람은 춥고 배고프다기보다 더럽고 누더기를 걸치고 상스러운 경우가 흔하다. 그것은 얼마간 그의 취향이지 그저 그의 불행만은 아니다. 그에게 돈을 주면 그는 아마 그 돈으로 누더기를 더 살 것이다. 나는 호수에서 얼음을 자르는 어설픈 아일랜드 일꾼들이 그토록 초라하고 해진 옷을 입은 것을 딱하게 여기곤 했다. 나는 그보다 말쑥하고 조금 더 유행에 맞는 옷을 입고도 떨고 있었는데. 그러다 몹시 추운 어느 날, 물에 미끄러져 빠진 한 사람이 몸을 녹이러 내 집에 왔다. 나는 그가 맨살이 드러날 때까지 바지 세 벌과 양말 두 켤레를 벗는 것을 보았다. 사실 그 옷들은 꽤 더럽고 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내준 덧옷을 사양할 수 있었다. 속옷이 그만큼 많았으니까.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은 바로 그렇게 물에 빠지는 일이었다. 그러자 나는 나 자신이 딱해지기 시작했고, 그에게 싸구려 기성복 가게를 통째로 주는 것보다 나에게 플란넬 셔츠 한 벌을 주는 것이 더 큰 자선이리라는 것을 알았다. 악의 뿌리를 치는 사람 하나에 악의 가지를 쳐 대는 사람이 천이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베푸는 사람이, 바로 그 사는 모양으로, 헛되이 덜어 주려 애쓰는 그 비참함을 가장 많이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노예 열 명째마다 그 몫을 떼어 나머지 노예들에게 일요일 하루의 자유를 사 주는 경건한 노예 사육자와 같다. 어떤 이들은 가난한 사람을 제 부엌에 부려서 그들에게 친절을 보인다. 차라리 자기 자신을 거기 부린다면 더 친절하지 않을까? 여러분은 수입의 십분의 일을 자선에 쓴다고 자랑한다. 어쩌면 나머지 십분의 구도 그렇게 쓰고 끝을 내야 할지 모른다. 그러면 사회는 그 재산의 십분의 일만 되찾는 셈이다. 이것은 그 재산을 지닌 사람이 너그러워서인가, 아니면 정의를 맡은 관리들이 게을러서인가?
박애는 인류가 충분히 알아주는 거의 유일한 덕이다. 아니, 그것은 크게 과대평가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우리의 이기심이다. 어느 화창한 날 여기 콩코드에서 건장한 가난뱅이 하나가 내게 같은 읍 사람 하나를 칭찬했다. 그 사람이 가난한 이들에게 친절하다는 이유였다. 자기 자신을 두고 한 말이다. 인류의 친절한 삼촌과 이모들이 인류의 참된 영적 아버지와 어머니보다 더 존경받는다. 나는 한번은 학식과 지성을 갖춘 어느 목사가 영국에 관해 강연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는 셰익스피어, 베이컨, 크롬웰, 밀턴, 뉴턴 같은 영국의 과학과 문학과 정치의 위인들을 꼽은 다음 그 나라의 그리스도교 영웅들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그의 직업이 그렇게 하라고 요구하기라도 하듯 그들을 위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다른 모든 사람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들은 펜과 하워드와 프라이 부인이었다. 누구나 이 말의 거짓과 위선을 느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영국 최고의 남녀가 아니었다. 어쩌면 최고의 박애가였을 뿐이다.
나는 박애가 받아야 할 칭찬에서 무엇 하나 덜어 내고 싶지 않다. 다만 삶과 일로 인류에게 축복이 되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기를 요구할 뿐이다. 나는 사람의 올곧음과 자비를 가장 높이 치지 않는다. 그것은 말하자면 그의 줄기와 잎이다. 푸른빛이 시들면 우리가 앓는 사람에게 약초 차로 달여 주는 식물은 하찮은 쓰임에만 쓰이고, 대개 돌팔이들이 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사람의 꽃과 열매다. 그에게서 내게로 어떤 향기가 풍겨 오고, 어떤 무르익음이 우리의 사귐에 맛을 들이기를 바란다. 그의 선은 부분적이고 덧없는 행위가 아니라 늘 넘쳐흐르는 것, 그에게 아무 대가도 치르게 하지 않고 그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수많은 죄를 덮어 주는 사랑이다. 박애가는 너무나 자주 자기가 벗어 던진 슬픔의 기억으로 대기처럼 인류를 감싸고는 그것을 동정이라 부른다. 우리는 절망이 아니라 용기를, 병이 아니라 건강과 편안함을 나누어 주어야 하고, 병이 옮아 퍼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어느 남쪽 들판에서 통곡 소리가 올라오는가? 우리가 빛을 보내 주려는 이교도는 어느 위도에 사는가? 우리가 구원하려는 그 무절제하고 잔인한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무슨 탈이 나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배앓이만 해도(배는 동정이 깃드는 자리이니까), 그는 곧장 개혁에 착수한다. 세상을. 그 자신이 하나의 소우주이므로 그는 세상이 풋사과를 먹어 왔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참된 발견이며, 그는 그것을 발견할 만한 사람이다. 사실 그의 눈에는 지구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풋사과여서, 사람의 자식들이 그것이 익기도 전에 갉아먹을지 모른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위험이 있다. 그래서 그의 설사약처럼 독한 박애는 당장 에스키모와 파타고니아 사람을 찾아 나서고, 사람이 북적이는 인도와 중국의 마을들을 끌어안는다. 그렇게 몇 해 동안 박애 활동을 하고 나면, 그동안 높은 권세들은 틀림없이 그를 제 목적에 써먹었을 텐데, 그는 제 소화불량을 고치고, 지구는 이제 막 익기 시작하는 듯 한쪽이나 양쪽 뺨에 엷은 홍조를 띠며, 삶은 날것의 떫은맛을 잃고 다시 한번 달고 몸에 좋은 것이 된다. 나는 내가 저지른 것보다 더 큰 극악무도함을 꿈꾸어 본 적이 없다. 나보다 더 나쁜 사람을 알았던 적도 없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개혁가를 그토록 슬프게 하는 것이 곤경에 처한 이웃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그가 아무리 거룩한 하느님의 아들이라 해도, 그의 사사로운 탈이라고 믿는다. 그것을 바로잡아 주라. 그에게 봄이 오고 그의 잠자리 위로 아침이 떠오르게 하라. 그러면 그는 사과 한마디 없이 너그러운 동료들을 저버릴 것이다. 내가 담배 씹는 버릇을 반대하는 강연을 하지 않는 핑계는 담배를 씹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담배를 끊은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벌이다. 물론 내가 씹어 본 것 가운데에도 반대하는 강연을 할 만한 것은 넉넉히 있지만. 혹시라도 이런 박애에 빠져들게 되거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알 만한 가치가 없으니까.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고 구두끈을 매라. 서두르지 말고, 무언가 자유로운 노동에 착수하라.
우리의 품행은 성자들과 사귀다가 타락했다. 우리 찬송가에는 신을 저주하고 영원히 그를 견디는 노래가 아름다운 가락으로 울려 퍼진다. 예언자와 구원자들조차 사람의 희망을 굳혀 주었다기보다 두려움을 달래 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삶이라는 선물에 대한 단순하고 억누를 수 없는 만족, 기억할 만한 신에 대한 찬미는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모든 건강과 성공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물러나 있는 듯 보여도 내게 이롭다. 모든 병과 실패는 그것이 아무리 나를 동정하고 내가 그것을 동정해도 나를 슬프게 하고 내게 해를 끼친다. 그러니 우리가 참으로 원주민의 요법으로든 약초 요법으로든 자기 요법으로든 자연 요법으로든 인류를 되살리려 한다면, 먼저 우리 자신이 자연만큼 단순하고 건강해져서 우리 이마에 드리운 구름을 걷어 내고 땀구멍으로 조금이라도 생명을 빨아들이자. 가난한 이들의 감독관 노릇에 머물지 말고 세상의 훌륭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려고 애쓰라.
나는 시라즈의 셰이크 사디가 쓴 『굴리스탄』, 곧 『꽃동산』에서 이런 글을 읽는다.15 "사람들이 한 현자에게 물었다. 지고하신 신이 높고 그늘 짙게 지은 이름난 나무가 많은데, 열매를 맺지 않는 삼나무 말고는 어느 나무도 아자드, 곧 자유롭다고 부르지 않습니다. 여기에 무슨 신비가 있습니까? 현자가 대답했다. 나무마다 제게 맞는 소출과 정해진 철이 있어서, 그 철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싱싱하게 꽃피고 그 철이 가고 나면 메마르고 시든다. 삼나무는 늘 무성하므로 그 어느 쪽 처지에도 놓이지 않는다. 아자드, 곧 신앙의 독립자들이 이런 본성을 지녔다. 덧없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라. 칼리프의 혈통이 끊어진 뒤에도 디즐라, 곧 티그리스강은 바그다드를 지나 흐를 것이다. 네 손에 가진 것이 넉넉하거든 대추야자처럼 아낌없이 베풀라. 그러나 내줄 것이 아무것도 없거든 삼나무처럼 아자드, 곧 자유로운 사람이 되라."
덧붙이는 시
가난의 허세16
가난하고 궁핍한 가련한 자여, 그대는 너무 주제넘다,
하늘에 한자리를 달라고 하다니.
그대의 초라한 오두막이나 그대의 통이
값싼 햇볕 속에서나 그늘진 샘가에서
뿌리와 나물로 게으르거나 현학적인 덕을 기른다고 해서.
그대의 오른손은 거기서
아름답게 꽃피는 덕이 그 줄기에 접붙어 무성하는
사람다운 정념을 마음에서 뜯어내며
자연을 떨어뜨리고 감각을 마비시키며,
고르곤처럼 활동하는 사람들을 돌로 바꾼다.
우리는 그대가 어쩔 수 없어 지키는 절제의
따분한 벗을 바라지 않는다.
기쁨도 슬픔도 모르는
그 부자연스러운 우둔함도, 억지로
능동적인 것보다 거짓되게 높인
수동적인 꿋꿋함도 바라지 않는다. 범속함에
제자리를 붙박은 이 비천하고 천한 족속은
그대들의 비굴한 마음에나 어울린다. 그러나 우리는
넘침을 허락하는 덕만을 내세운다.
용감하고 너그러운 행위, 왕다운 장엄함,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신중함, 끝을 모르는
너그러움, 그리고 옛날이
이름은 남기지 않고 본보기만 남긴
영웅의 덕을. 이를테면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테세우스 같은. 그대의 지긋지긋한 골방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새로 빛을 받은 천구를 보거든
그 훌륭한 이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기에 힘쓰라.
T. 커루
주
1. 이올라오스: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의 목을 벨 때마다 그 자리를 불로 지져 다시 돋지 못하게 한 조카.
2.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 서른 해 동안 치우지 않았다는 외양간. 헤라클레스가 강물을 끌어들여 하루 만에 치웠다.
3. 에이커: 넓이 단위, 약 4,047제곱미터. 펙: 곡식 부피 단위, 약 8.8리터.
4. 데우칼리온과 피라: 대홍수 뒤 어깨 너머로 돌을 던져 사람을 다시 지었다는 그리스 신화의 부부.
5. 앞의 라틴어 두 행은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제1권. 다음 두 행의 영역은 월터 롤리의 『세계사』에서 따왔다.
6. 『논어』 「위정」 편.
7. 미들섹스 가축 품평회: 미들섹스 농업 협회가 해마다 콩코드에서 연 가을 품평회.
8. 조너선: 브라더 조너선. 미국 사람을 사람처럼 부르는 별칭.
9. 피치버그 철도: 보스턴에서 콩코드를 거쳐 피치버그로 가는 철도. 1844년 월든 호수 서쪽 기슭을 따라 놓였다.
10. 코드: 장작 더미를 재는 단위, 가로 8피트·높이 4피트·너비 4피트. 부셸: 곡식 부피 단위, 약 35리터.
11. 로드: 길이 단위, 16.5피트(약 5미터).
12. 『바가바드기타』: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 속의 철학시. 크리슈나가 전사 아르주나에게 행위와 해탈의 길을 가르친다.
13.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3막 2장. 안토니우스의 연설.
14. 존 하워드(1726~1790): 감옥 개혁에 평생을 바친 영국의 박애가.
15. 사디(1210?~1291?): 페르시아의 시인. 『굴리스탄』은 1258년에 지은 교훈집.
16. 토머스 커루(1595?~1640)의 가면극 『영국의 하늘』(1634)에서 따온 시행. 제목은 소로가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