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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들

이따금 사람들과 어울리고 수다를 떠는 데 물리고 마을 친구들도 다 지치게 해 버리면, 나는 평소 사는 곳보다 더 서쪽으로, 읍에서도 사람 발길이 더 뜸한 곳으로 "싱싱한 숲과 새 목장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또는 해 질 무렵 페어헤이븐 언덕에서 허클베리와 블루베리로 저녁을 때우고 며칠 먹을 것을 모아 두기도 했다. 열매는 그것을 사는 사람에게도, 시장에 내려고 기르는 사람에게도 참맛을 내주지 않는다. 그 맛을 얻는 길은 하나뿐인데, 그 길로 가는 사람은 드물다. 허클베리 맛을 알고 싶거든 소 치는 아이나 자고새에게 물어보라. 한 번도 따 보지 않고서 허클베리를 맛보았다고 여기는 것은 흔한 착각이다. 허클베리는 보스턴까지 가는 법이 없다. 보스턴의 세 언덕에 허클베리가 자라던 시절 뒤로 그곳에서는 허클베리를 아는 사람이 없다. 열매에서 신들의 음식 같은 정수는 시장 수레에서 문질러 벗겨지는 뽀얀 분과 함께 사라지고, 열매는 한낱 꼴이 되고 만다. 영원한 정의가 다스리는 한, 순진한 허클베리 한 알도 시골 언덕에서 그리로 실려 갈 수 없다.

가끔은 그날 김매기를 마친 뒤, 아침부터 호수에서 낚시하던 성마른 벗에게 갔다. 그는 오리나 물에 뜬 나뭇잎처럼 말없이 꼼짝 않고 앉아 갖가지 철학을 실천해 본 끝에, 내가 닿을 즈음이면 대개 자기가 오래된 수도사(Cænobites) 종파에 속한다는 결론을 내려 두곤 했다.1 나이 든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뛰어난 낚시꾼이자 숲에서 하는 온갖 일에 능숙한 그는 내 집을 낚시꾼들의 편의를 위해 지은 건물로 여기며 기꺼워했고, 나도 그가 내 문간에 앉아 낚싯줄을 손질하는 것이 그만큼 기꺼웠다. 이따금 우리는 함께 호수에 나가 그는 배 한쪽 끝에, 나는 다른 쪽 끝에 앉았다. 그러나 둘 사이에 오간 말은 많지 않았다. 그는 늘그막에 귀가 먹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가끔 찬송가를 흥얼거렸는데, 그 가락이 내 철학과 제법 잘 어울렸다. 그러니 우리의 사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깨지지 않은 화음이었고, 말로 나누었더라면 이만큼 즐겁게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흔히 그렇듯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면, 나는 노로 뱃전을 두드려 메아리를 일으키곤 했다. 둥글게 넓어지며 퍼져 나가는 소리로 둘레 숲을 가득 채우고, 동물원 사육사가 맹수들을 들쑤시듯 숲을 들쑤셔서, 마침내 나무 우거진 골짜기와 산비탈마다 으르렁 소리를 끌어냈다.

따뜻한 저녁이면 나는 자주 배에 앉아 피리를 불었고, 내가 홀리기라도 한 듯 농어들이 내 둘레를 맴도는 모습과, 숲의 잔해가 흩어진 골진 바닥 위로 달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전에도 나는 이따금 캄캄한 여름밤에 벗과 함께 모험 삼아 이 호수에 오곤 했다. 물가 가까이 불을 피우면 물고기가 모여든다고 여겼기에, 우리는 실에 지렁이를 한 묶음 꿰어 메기를 낚았고, 밤이 깊어 낚시를 마치면 불붙은 장작을 불꽃놀이 폭죽처럼 공중 높이 던졌다. 장작은 호수로 떨어지며 요란하게 쉬익 소리를 내고 꺼졌고, 우리는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더듬었다. 그 어둠을 뚫고 휘파람으로 노래를 불며 우리는 다시 사람 사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기슭에 집을 마련해 두었다.

때로는 마을의 어느 집 응접실에서 식구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머물다가 숲으로 돌아와서, 얼마간은 이튿날 저녁거리를 마련할 생각으로 한밤의 몇 시간을 달빛 아래 배에서 낚시하며 보냈다. 올빼미와 여우가 세레나데를 불러 주었고, 가까이서 이름 모를 새가 끼익거리는 소리가 이따금 들렸다. 이런 경험은 내게 무척 기억할 만하고 값진 것이었다. 깊이 40피트 물에, 기슭에서 20~30로드 떨어진 곳에 닻을 내리고 있으면, 때로는 달빛 비친 수면에 꼬리로 보조개를 짓는 수천 마리 작은 농어와 피라미에 둘러싸였고, 긴 삼실 낚싯줄 하나로 40피트 아래 사는 신비로운 밤 물고기들과 통했으며, 때로는 부드러운 밤바람에 배가 떠밀리는 대로 60피트 낚싯줄을 끌고 호수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이따금 줄을 타고 가느다란 떨림이 전해 오면, 줄 끝에서 어떤 생명이 어슬렁거린다는 뜻이었다. 그 생명의 뜻은 둔하고 흐릿하고 갈팡질팡해서 좀처럼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마침내 손을 번갈아 줄을 천천히 당겨 올리면, 뿔메기 한 마리가 끽끽거리고 몸부림치며 위쪽 공기 속으로 올라온다. 특히 캄캄한 밤, 생각이 다른 천체의 광대한 우주 생성의 주제로 떠돌고 있을 때 이 희미한 당김을 느끼는 것은 무척 묘한 일이었다. 그 당김이 와서 꿈을 끊고 우리를 다시 자연에 이어 주었다. 다음에는 공기보다 별로 더 짙지도 않은 이 물이라는 원소 아래로만이 아니라, 공기 속 위로도 낚싯줄을 던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이를테면 낚싯바늘 하나로 물고기 두 마리를 잡았다.


월든의 풍경은 규모가 소박해서, 무척 아름답기는 하지만 웅장함에 이르지는 못하고, 오래 드나들었거나 그 기슭에 살아 본 사람이 아니면 그리 마음 쓸 만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호수는 깊이와 맑기가 남달라서 따로 자세히 그려 볼 만하다. 월든은 맑고 깊은 초록 우물이다. 길이 ½마일, 둘레 1¾마일에 넓이는 61½에이커쯤 되며, 소나무와 떡갈나무 숲 한가운데서 마르지 않는 샘으로, 구름과 증발 말고는 눈에 보이는 들목도 날목도 없다. 둘레 언덕들은 물가에서 가파르게 솟아 높이가 40피트에서 80피트에 이르고, 남동쪽과 동쪽에서는 ¼마일과 ⅓마일 안에서 저마다 100피트와 150피트쯤까지 올라간다. 언덕은 온통 숲이다. 우리 콩코드의 물은 모두 적어도 두 가지 빛깔을 띤다. 하나는 멀리서 볼 때의 빛깔이고, 다른 하나는 가까이서 볼 때의 더 제 것다운 빛깔이다. 앞의 것은 빛에 더 많이 달려 있어서 하늘을 따른다. 맑은 날씨에, 여름이면 조금 떨어져서 볼 때, 특히 물결이 일 때 푸르게 보이고, 아주 멀리서는 모두 똑같아 보인다. 날이 사나우면 때로 짙은 석판 빛을 띤다. 그런데 바다는 대기에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데도 어느 날은 푸르고 어느 날은 초록이라고 한다. 나는 온 풍경이 눈에 덮였을 때 우리 강의 물과 얼음이 둘 다 거의 풀처럼 초록인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이들은 푸른색을 "액체든 고체든 맑은 물의 빛깔"로 여긴다. 그러나 배에서 우리 물을 곧바로 내려다보면 사뭇 다른 빛깔들이 보인다. 월든은 같은 자리에서 보아도 어느 때는 푸르고 어느 때는 초록이다. 땅과 하늘 사이에 놓여 있어 둘의 빛깔을 함께 나누어 가진다. 언덕 꼭대기에서 보면 하늘빛을 비추지만, 가까이서 보면 모래가 보이는 물가 쪽은 누르스름하고, 그다음은 연초록이며, 그 초록이 차츰 짙어져 호수 몸통에서는 고르게 짙은 초록이 된다. 빛에 따라서는 언덕 꼭대기에서 보아도 물가 쪽이 선명한 초록이다. 이것을 둘레 푸나무가 비친 탓으로 돌린 사람들도 있지만, 철둑의 모래 비탈을 마주한 곳도 똑같이 초록이고 잎이 펴지기 전인 봄에도 그러니, 이것은 그저 주된 푸른색에 모래의 노란색이 섞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월든의 홍채 빛깔이다. 또 이곳은 봄이 되면 바닥에서 되비친 햇볕과 땅을 타고 전해 온 열에 데워진 얼음이 맨 먼저 녹아, 아직 얼어 있는 한가운데를 둘러 좁은 물길을 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의 다른 물과 마찬가지로, 맑은 날 물결이 크게 일면 물결의 겉면이 알맞은 각도로 하늘을 비추기 때문인지, 아니면 빛이 더 많이 섞이기 때문인지, 월든은 조금 떨어져서 보면 하늘보다 더 짙은 푸른색으로 보인다. 그런 때 물 위에 떠서 비친 모습을 보려고 시선을 둘로 나누어 바라보면, 나는 비할 데 없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연푸른 빛을 알아보았다. 물결무늬 비단이나 보는 각도에 따라 빛이 바뀌는 비단, 칼날을 떠올리게 하는, 하늘보다 더 하늘빛인 그 빛은 물결 맞은편 비탈의 본디 짙은 초록과 번갈아 나타났는데, 그 초록은 견주어 보면 흙탕물 같기만 했다. 내 기억으로 그것은 유리 같은 초록빛 푸른색이고, 해 지기 전 서쪽 구름 틈으로 보이는 겨울 하늘 조각들과 같다. 그런데도 그 물을 한 잔 떠서 빛에 비추어 보면 같은 양의 공기처럼 아무 빛깔이 없다. 큰 판유리에는 초록빛이 돌지만 같은 유리의 작은 조각은 빛깔이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유리 만드는 사람들은 그 까닭을 유리의 "몸통"에 돌린다. 월든의 물이 얼마나 큰 몸통이 되어야 초록빛을 비추는지 나는 끝내 밝혀 보지 못했다. 우리 강의 물은 곧바로 내려다보는 사람에게 검거나 아주 짙은 갈색이고, 대부분의 호수 물처럼 그 안에서 멱 감는 사람의 몸에 누르스름한 빛을 입힌다. 그러나 이 물은 수정처럼 맑아서 멱 감는 사람의 몸이 설화석고처럼 하얗게 보이는데, 그것이 더욱 부자연스러운 데다 팔다리가 크게 비치고 일그러지기까지 해서 기괴한 효과를 내니, 미켈란젤로가 습작으로 삼기에 알맞다.

물이 하도 투명해서 깊이 25피트나 30피트의 바닥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 위로 노를 저어 가면 수면 몇 피트 아래로 길이가 겨우 1인치쯤 되는 농어와 피라미 떼가 보이는데, 농어는 가로 줄무늬로 쉽게 가려낼 수 있다. 저런 곳에서 먹고사는 물고기라면 금욕하는 수도자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해 전 어느 겨울, 강꼬치고기를 잡으려고 얼음에 구멍을 뚫다가 물가로 올라서면서 도끼를 얼음 위로 도로 던졌는데, 무슨 심술궂은 정령이 이끌기라도 한 듯 도끼가 4~5로드를 곧장 미끄러져 구멍 하나로 빠져 버렸다. 그곳의 물 깊이는 25피트였다. 궁금해서 얼음 위에 엎드려 구멍으로 들여다보니, 마침내 조금 비켜난 자리에 도끼가 머리를 바닥에 박고 거꾸로 서서, 곧추세운 자루를 호수의 맥박에 맞추어 이리저리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도끼는 세월이 흘러 자루가 썩어 떨어질 때까지 그렇게 곧추서서 흔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지고 있던 얼음끌로 바로 그 위에 구멍을 하나 더 내고, 근처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긴 자작나무를 칼로 베어 그 끝에 올가미를 매단 다음, 그것을 조심조심 내려 자루 끝의 손잡이에 걸고 자작나무를 따라 늘인 줄로 당겨서 도끼를 다시 끌어냈다.

기슭은 포석 같은 매끄럽고 둥근 흰 돌이 띠를 이루고 있으며, 짧은 모래톱이 한두 곳 있을 뿐이다. 기슭이 하도 가팔라서 여러 곳에서 한 번만 뛰어들어도 머리 위까지 물에 잠긴다. 물이 남달리 투명하지 않았더라면 바닥은 거기서 마지막으로 보이고는 맞은편에 가서야 다시 솟아오를 것이다. 바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디에도 진흙이 없고, 대충 보는 사람은 물풀이 전혀 없다고 말할 것이다. 눈에 띄는 식물로 말하면, 이 호수에 본디 딸린 곳이 아니라 최근에 물에 잠긴 작은 풀밭들을 빼면, 더 꼼꼼히 살펴도 붓꽃이나 골풀 하나, 노랗거나 흰 수련 하나 없고, 심장 모양 잎을 단 작은 물풀 몇 포기와 가래 몇 포기, 어쩌면 순채 한두 포기가 있을 뿐이다. 그나마 멱 감는 사람은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식물들은 그것이 자라는 물처럼 깨끗하고 맑다. 돌은 물속으로 1~2로드 뻗어 있고, 그다음부터 바닥은 순전한 모래인데, 가장 깊은 곳에는 대개 앙금이 조금 깔려 있다. 아마도 수없는 가을 동안 바람에 실려 와 쌓인 낙엽이 썩은 것이리라. 한겨울에도 닻에 선명한 초록 물풀이 걸려 올라온다.

우리에게는 이것과 꼭 닮은 호수가 하나 더 있다. 서쪽으로 2½마일쯤 떨어진 나인에이커 코너의 화이트 호수다. 이곳을 중심으로 12마일 안에 있는 호수는 거의 다 알지만, 이렇게 맑고 우물 같은 호수를 셋째로는 알지 못한다. 여러 민족이 차례로 이 물을 마시고 우러러보고 깊이를 재고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 물은 여전히 예전처럼 초록이고 맑다. 때때로 끊기는 샘이 아니다! 어쩌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던 그 봄날 아침에도 월든 호수는 이미 있었고, 그때도 안개와 남풍을 거느린 부드러운 봄비 속에 얼음이 풀리고 있었으며, 아직 타락 소식을 듣지 못한 무수한 오리와 기러기에 덮여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이런 맑은 호수로 그들에게 넉넉했다. 그때 이미 물이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물을 맑게 걸러 지금 띤 빛깔로 물들였으며, 이 세상에 하나뿐인 월든 호수이자 하늘 이슬을 거르는 증류기가 되라는 하늘의 특허를 받았다. 기억되지 못한 얼마나 많은 민족의 문학에서 이 호수가 카스탈리아 샘이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황금시대에 어떤 님프들이 이 호수를 다스렸는지 누가 알겠는가? 이 호수는 콩코드가 왕관에 박은, 물빛이 으뜸인 보석이다.

그래도 이 우물에 처음 온 이들은 어쩌면 발자국을 조금 남겼을 것이다. 나는 호수를 빙 둘러, 기슭의 울창한 숲을 막 베어 낸 곳에서도, 가파른 산비탈에 선반처럼 좁은 길이 나 있는 것을 알아보고 놀랐다. 그 길은 오르락내리락하며 물가에 다가갔다 멀어졌다 하는데, 아마 이곳에 사람이 산 만큼 오래되었을 것이다. 원주민 사냥꾼들의 발에 닳은 길이고, 지금 이 땅을 차지한 사람들도 저도 모르게 이따금 그 길을 밟는다. 겨울에 가벼운 눈이 막 내린 뒤 호수 한가운데 서서 보면 그 길이 특히 또렷하다. 물풀이나 잔가지에 가리지 않은 맑은 흰 물결선으로 드러나서, 여름이면 가까이서도 거의 알아볼 수 없던 많은 곳이 ¼마일 밖에서도 뚜렷하다. 눈이 이를테면 맑은 흰 활자의 돋을새김으로 그 길을 다시 찍어 내는 셈이다. 언젠가 이곳에 지어질 별장들의 꾸민 뜰에도 그 자취가 얼마간 남을지 모른다.

호수는 물이 오르내리지만, 그것이 규칙적인지 아닌지, 얼마를 주기로 그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여느 때처럼 안다고 우기는 사람은 많다. 대개 겨울에 높고 여름에 낮지만, 날씨가 전반적으로 궂거나 가문 것과는 들어맞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이 호숫가에 살 때보다 물이 1~2피트 낮았던 때도, 적어도 5피트 높았던 때도 기억한다. 호수 안으로 좁은 모래톱이 하나 뻗어 있는데 한쪽은 물이 아주 깊다. 1824년 무렵 나는 본디 기슭에서 6로드쯤 나간 그 모래톱에서 차우더 한 솥을 끓이는 일을 거든 적이 있는데, 지난 스물다섯 해 동안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한편, 그 몇 해 뒤 내가 숲속 외진 후미에서 배를 띄우고 낚시하곤 했으며 그곳이 그들이 아는 유일한 기슭에서 15로드나 떨어져 있었다고 말하면, 벗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듣곤 했다. 그곳은 오래전에 풀밭이 되었다. 그러나 호수는 두 해 동안 줄곧 차올라, 지금 1852년 여름에는 내가 그곳에 살 때보다 꼭 5피트 높고 서른 해 전만큼 높아서, 그 풀밭에서 다시 낚시를 한다. 그러니 수위 차는 많아야 6~7피트다. 그런데 둘레 언덕에서 흘러드는 물은 양이 보잘것없으니, 이 넘침은 깊은 샘에 미치는 원인에서 찾아야 한다. 바로 올여름 호수는 다시 낮아지기 시작했다. 이 오르내림이 주기적이든 아니든 한 번 이루어지는 데 여러 해가 걸리는 듯하다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나는 한 번 오르는 것과 두 번 내리는 것의 일부를 지켜보았는데, 지금부터 열두 해나 열다섯 해 뒤에는 물이 다시 내가 알던 가장 낮은 수위만큼 내려가리라고 본다. 동쪽으로 1마일 떨어진 플린트 호수도, 들목과 날목 때문에 생기는 흔들림을 감안하면,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작은 호수들도 월든과 함께 오르내리며, 최근에 월든과 같은 때 가장 높은 수위에 이르렀다. 내가 살펴본 바로는 화이트 호수도 마찬가지다.

월든이 긴 간격을 두고 이렇게 오르내리는 데는 적어도 쓸모가 하나 있다. 물이 한 해나 그 이상 이렇게 높이 차 있으면 호수를 걸어서 돌기는 어렵지만, 지난번 물이 찬 뒤로 물가에 돋아난 관목과 나무들, 곧 리기다소나무, 자작나무, 오리나무, 사시나무 같은 것들이 죽고, 물이 다시 빠지면 막힘 없는 기슭이 남는다. 다른 많은 호수나 날마다 조수가 드나드는 모든 물과 달리, 월든의 기슭은 물이 가장 낮을 때 가장 깨끗하기 때문이다. 내 집 쪽 호숫가에는 높이 15피트의 리기다소나무가 한 줄로 죽어 지렛대로 밀어 넘긴 듯 쓰러져 있고, 그렇게 해서 나무들의 침범이 멈추었다. 그 크기를 보면 지난번에 물이 이 높이까지 오른 지 몇 해가 지났는지 알 수 있다. 이 오르내림으로 호수는 기슭에 대한 제 권리를 주장한다. 그렇게 기슭은 깎이고(shore, shorn), 나무들은 점유를 내세워 기슭을 차지하지 못한다. 이것이 호수의 입술이고, 거기에는 수염이 자라지 않는다. 호수는 이따금 제 입가를 핥는다. 물이 가장 높을 때면 오리나무, 버드나무, 단풍나무는 버티려고 애쓰며 물에 잠긴 줄기 사방에서, 땅에서 3~4피트 높이까지, 길이가 몇 피트나 되는 붉은 실뿌리를 한 무더기씩 내민다. 또 나는 여느 때는 열매를 맺지 않는 호숫가의 키 큰 블루베리 덤불이 이럴 때 열매를 푸짐하게 맺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기슭이 어떻게 이토록 고르게 포장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해 어리둥절해한 사람들이 있다. 읍 사람들은 모두 옛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 가장 나이 많은 이들은 젊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내게 말한다. 옛날 원주민들이 이곳 언덕 위에서 주술 모임을 열고 있었는데, 그 언덕은 지금 호수가 땅속 깊이 꺼져 있는 만큼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들은 불경한 말을 많이 했다. 원주민이 한 번도 저지른 적 없는 악덕인데도 그렇다고 한다. 그들이 그러고 있는 사이 언덕이 흔들리더니 갑자기 꺼져 버렸고, 월든이라는 원주민 노파 하나만 살아남았고, 호수 이름은 그 노파에게서 따왔다. 언덕이 흔들릴 때 이 돌들이 비탈로 굴러 내려 지금의 기슭이 되었다고들 짐작해 왔다. 어쨌든 한때 여기에 호수가 없었고 지금은 있다는 것만은 아주 확실하다. 이 원주민 설화는 내가 앞서 말한 옛 정착민의 이야기와도 어느 모로 보나 어긋나지 않는다. 그는 점지팡이를 들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잔디에서 엷은 김이 피어오르고 개암나무 가지가 줄곧 아래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이곳에 우물을 파기로 한 일을 아주 잘 기억한다. 돌로 말하면, 이 언덕들에 부딪는 물결의 작용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그러나 내가 보니 둘레 언덕들에는 같은 종류의 돌이 유난히 많아서, 사람들은 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철로의 깎은 땅 양쪽에 그 돌로 담을 쌓아 올려야 했다. 게다가 기슭이 가장 가파른 곳에 돌이 가장 많다. 그러니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니다. 나는 포장한 장인을 알아보았다. 그 이름이 영국의 어느 고장, 이를테면 새프런월든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본디 월드인(Walled-in), 곧 담을 두른 호수라고 불렸으리라고 짐작해 볼 수도 있겠다.

호수는 이미 파 놓은 내 우물이었다. 한 해 가운데 넉 달 동안 그 물은 늘 맑은 만큼 차갑기도 하다. 그때는 읍에서 가장 좋다고까지는 못 해도 어느 물 못지않게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겨울에는 공기에 드러난 물이 모두 공기를 피해 있는 샘이나 우물보다 차갑다. 오후 다섯 시부터 이튿날인 1846년 3월 6일 낮 열두 시까지 내가 앉아 있던 방에 놓아둔 호수 물의 온도는, 지붕에 내리쬔 햇볕 탓도 있어 온도계가 한동안 화씨 65도나 70도까지 올라갔는데도,2 화씨 42도로 마을에서 가장 차가운 우물 가운데 하나에서 막 길어 올린 물보다 1도 낮았다. 같은 날 보일링 샘의 온도는 화씨 45도로 재 본 물 가운데 가장 따뜻했지만, 그 샘은 내가 아는 한 여름에 가장 차가운 물이다. 여름에는 게다가 얕게 고인 지표의 물이 그 샘에 섞이지 않는다. 또 여름에도 월든은 깊어서 햇볕에 드러난 대부분의 물만큼 따뜻해지는 일이 없다. 가장 더운 날씨에 나는 대개 한 들통을 지하 저장고에 두었는데, 그 물은 밤사이 시원해져 낮 동안 내내 시원했다. 근처의 샘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 물은 한 주가 지나도 떠 온 날만큼 좋았고 펌프 맛이 나지 않았다. 여름에 호숫가에서 한 주 야영하는 사람은 야영지 그늘에 물 한 들통을 몇 피트 깊이로 묻어 두기만 하면 얼음이라는 사치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

월든에서는 7파운드짜리 강꼬치고기가 잡혔고, 엄청난 속도로 릴을 끌고 달아난 놈도 하나 있었는데 낚시꾼은 그놈을 보지 못했으니 안심하고 8파운드로 쳤다. 그 밖에 저마다 2파운드가 넘는 것도 있는 농어와 메기, 피라미, 치빈이나 로치라고도 부르는 황어(Leuciscus pulchellus), 아주 드문 브림 몇 마리, 장어 두어 마리가 잡혔는데, 장어 하나는 4파운드였다. 내가 이렇게 꼼꼼히 적는 것은 물고기의 무게가 대개 그 물고기가 이름을 떨칠 유일한 자격이기 때문이고, 이곳에서 내가 들어 본 장어는 이것들뿐이기 때문이다. 또 길이 5인치쯤에 옆구리는 은빛이고 등은 초록빛이 도는, 생김새가 황어 비슷한 작은 물고기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이것을 여기 적는 것은 주로 내 사실을 전설에 잇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이 호수에는 물고기가 그리 많지 않다. 강꼬치고기는 많지는 않아도 이 호수의 으뜸 자랑거리다. 나는 얼음 위에 적어도 세 종류의 강꼬치고기가 한꺼번에 놓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나는 길고 납작하며 강철빛으로 강에서 잡히는 것과 가장 닮았고, 하나는 초록빛이 어리는 밝은 금빛에 몸이 유난히 높아 이곳에서 가장 흔하며, 또 하나는 금빛에 생김새는 앞의 것과 같지만 옆구리에 작은 짙은 갈색이나 검은 점이 흩뿌려져 있고 희미한 핏빛 점이 몇 개 섞여 있어 송어와 무척 닮았다. 이것에는 reticulatus(그물무늬)라는 종명이 맞지 않는다. 오히려 guttatus(점박이)라야 한다. 이것들은 모두 살이 무척 단단한 물고기여서 크기로 보아 짐작하는 것보다 무게가 더 나간다. 피라미와 메기와 농어도, 아니 이 호수에 사는 모든 물고기가 물이 더 맑은 만큼 강이나 다른 대부분의 호수에 사는 것들보다 훨씬 깨끗하고 잘생기고 살이 단단해서 쉽게 가려낼 수 있다. 아마 많은 어류학자가 이 가운데 몇몇을 새 변종으로 삼을 것이다. 또 깨끗한 개구리와 거북 무리와 민물조개 몇이 산다. 사향쥐와 밍크가 호숫가에 자취를 남기고, 이따금 떠돌이 늪거북이 찾아온다. 때로 아침에 배를 밀어 띄우다가 밤새 배 밑에 숨어 있던 큰 늪거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봄과 가을에는 오리와 기러기가 자주 찾아오고, 흰배제비(Hirundo bicolor)가 수면을 스치며 날고, 점박이도요(Totanus macularius)가 여름 내내 돌 많은 기슭을 따라 "까딱까딱" 걷는다. 나는 물 위로 뻗은 스트로브잣나무에 앉은 물수리를 놀라게 해 날려 보낸 적도 있다. 그러나 이 호수가 페어헤이븐처럼 갈매기의 날갯바람에 더럽혀진 적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기껏해야 해마다 아비 한 마리를 참아 줄 뿐이다. 지금 이곳을 드나드는 웬만한 짐승은 이것이 전부다.

잔잔한 날 배에서 보면, 물 깊이가 8~10피트인 모래 많은 동쪽 기슭 가까이와 호수의 다른 몇 곳에, 지름 6피트쯤에 높이 1피트쯤 되는 둥근 무더기들이 보인다. 달걀보다 작은 돌로 쌓은 것인데 둘레는 온통 맨모래다. 처음에는 원주민들이 무슨 목적으로 얼음 위에 그것을 쌓았고 얼음이 녹자 바닥으로 가라앉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고르고, 몇몇은 누가 봐도 너무 새것이다. 강에서 보는 것과 비슷하지만, 이곳에는 서커도 칠성장어도 없으니 어떤 물고기가 그것을 만들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황어의 둥지일지도 모른다. 이 무더기들은 바닥에 기분 좋은 신비를 더해 준다.

기슭은 단조롭지 않을 만큼 들쭉날쭉하다. 내 마음의 눈에는 깊은 만이 파고든 서쪽 기슭과, 더 우뚝한 북쪽 기슭과, 아름답게 물결무늬를 그린 남쪽 기슭이 선하다. 남쪽 기슭에서는 곶들이 잇달아 서로 겹쳐서 그 사이에 아직 아무도 탐험하지 않은 후미가 있을 듯하다. 물가에서 바로 솟아오르는 언덕들에 둘러싸인 작은 호수 한가운데서 볼 때만큼 숲이 좋은 테두리를 갖추고 또렷이 아름다운 때는 없다. 숲이 비치는 물은 그럴 때 가장 좋은 앞경치가 될 뿐 아니라, 굽이진 기슭으로 숲에 가장 자연스럽고 보기 좋은 경계를 지어 주기 때문이다. 도끼로 한 자락을 베어 냈거나 경작지가 맞닿은 곳과 달리, 그곳 숲 가장자리에는 날것도 모자람도 없다. 나무들은 물 쪽으로 넉넉히 뻗을 자리가 있어서 저마다 가장 힘찬 가지를 그쪽으로 내뻗는다. 거기서 자연은 천 가장자리처럼 올이 풀리지 않는 가두리를 짜 놓았고, 눈은 물가의 낮은 관목에서 가장 높은 나무까지 알맞은 층계를 밟아 올라간다. 사람 손이 간 자취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은 천 년 전에 그랬듯이 기슭을 씻는다.

호수는 풍경의 이목구비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표정이 풍부한 것이다. 그것은 대지의 눈이다. 그 눈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자기 본성의 깊이를 잰다. 물가에 자라는 물가 나무들은 그 눈을 두른 가느다란 속눈썹이고, 둘레의 숲 우거진 언덕과 절벽은 그 위로 드리운 눈썹이다.

잔잔한 9월 오후, 엷은 안개로 맞은편 기슭선이 흐릿할 때 호수 동쪽 끝의 매끄러운 모래톱에 서 보고서, 나는 "유리 같은 호수의 수면"이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다. 고개를 거꾸로 하고 보면 수면은 골짜기를 가로질러 팽팽히 걸린 가장 고운 거미줄 한 가닥 같고, 먼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반짝이며 대기의 한 켜를 다른 켜와 갈라놓는다. 그 밑으로 걸어서 맞은편 언덕까지 젖지 않고 건너갈 수 있을 것 같고, 그 위를 스치는 제비들이 거기 내려앉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제비들은 이따금 실수라도 한 듯 이 선 아래로 뛰어들었다가 착각에서 깨어난다. 호수 너머 서쪽을 바라볼 때는 두 손을 다 써서 진짜 해와 물에 비친 해로부터 눈을 가려야 한다. 둘이 똑같이 밝기 때문이다. 그 둘 사이로 수면을 꼼꼼히 살펴보면 수면은 말 그대로 유리처럼 매끄럽다. 다만 온 수면에 고르게 흩어진 소금쟁이들이 햇빛 속에서 움직이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운 반짝임을 일으키는 곳이나, 어쩌다 오리가 깃을 다듬는 곳이나, 앞서 말했듯이 제비가 수면에 닿을 만큼 낮게 스치는 곳은 예외다. 멀리서 물고기 한 마리가 공중에 3~4피트 활을 그리면 솟아오른 자리에서 한 번, 물에 떨어진 자리에서 또 한 번 번쩍인다. 때로는 은빛 활 전체가 드러난다. 또는 여기저기 엉겅퀴 솜털이 수면에 떠 있다가 물고기가 그것을 덮치면 다시 보조개가 진다. 수면은 식었으나 아직 굳지 않은 녹은 유리 같고, 그 안의 몇 안 되는 티끌은 유리 속의 흠처럼 깨끗하고 아름답다. 보이지 않는 거미줄로, 물의 님프들이 친 방책으로 나머지와 갈라놓은 듯이 한결 더 매끄럽고 짙은 물이 그 위에 머문 것도 흔히 알아볼 수 있다. 언덕 꼭대기에서 보면 거의 어느 곳에서나 물고기가 뛰는 것이 보인다. 강꼬치고기나 피라미 한 마리라도 이 매끄러운 수면에서 벌레를 낚아채면 반드시 호수 전체의 평형이 눈에 띄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공들여 널리 알려지는지 놀랍다. 물고기 살인도 드러나게 마련이어서, 멀리 떨어진 내 횃대에서도 지름이 6로드나 되는 둥근 물결을 가려볼 수 있다. ¼마일 밖에서 쉬지 않고 매끄러운 수면을 나아가는 물매암이(Gyrinus)도 알아볼 수 있다. 물매암이는 물을 살짝 갈아엎어, 벌어지는 두 선으로 둘러싸인 눈에 띄는 잔물결을 일으키지만, 소금쟁이는 눈에 띄는 잔물결 하나 없이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수면이 꽤 일렁일 때는 소금쟁이도 물매암이도 없지만, 잔잔한 날에는 저마다 항구를 떠나 짧게 툭툭 밀어 가며 모험하듯 기슭에서 미끄러져 나와 마침내 수면을 온통 덮는 듯하다. 햇볕의 따스함이 한껏 고마운 가을의 맑은 날, 이런 높은 곳의 그루터기에 앉아 호수를 내려다보며, 비친 하늘과 나무들 사이로 그렇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수면에 쉼 없이 새겨지는 보조개 동그라미를 살피는 것은 마음을 달래 주는 일이다. 이 드넓은 수면에서는 무슨 흔들림이 일어나도 곧 이렇게 부드럽게 다독여져 가라앉는다. 물 담긴 꽃병을 흔들면 떨리는 동그라미들이 가장자리로 밀려가고 다시 모든 것이 잔잔해지는 것과 같다. 물고기 한 마리가 뛰거나 벌레 한 마리가 호수에 떨어져도 그 소식은 이렇게 동그라미 보조개로, 아름다운 선으로 전해지니, 마치 샘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것 같고, 호수의 생명이 부드럽게 맥박 치는 것 같고, 그 가슴이 들먹이는 것 같다. 기쁨의 떨림과 아픔의 떨림을 가려낼 수 없다. 호수의 현상들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사람이 지은 것들도 다시 봄날처럼 빛난다. 그렇다, 한낮이 기운 지금도 잎새 하나, 잔가지 하나, 돌 하나, 거미줄 하나까지 봄날 아침 이슬에 덮였을 때처럼 반짝인다. 노나 벌레가 움직일 때마다 빛이 번쩍이고, 노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 메아리는 얼마나 감미로운가!

9월이나 10월의 이런 날, 월든은 완벽한 숲의 거울이다. 둘레에 박힌 돌들은 더 적고 더 드문 것이기라도 한 듯 내 눈에 귀하다. 땅 위에 호수만큼 아름답고 맑으면서 그토록 큰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늘 물. 울타리가 필요 없다. 민족들이 오고 가도 호수를 더럽히지 못한다. 그것은 돌로도 깰 수 없는 거울이고, 수은이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는 거울이며, 자연이 늘 금박을 손보아 주는 거울이다. 어떤 폭풍도 어떤 먼지도 늘 새로운 그 면을 흐리게 하지 못한다. 그것은 앞에 놓인 모든 더러움이 가라앉는 거울이고, 해가 뽀얀 솔, 곧 이 가벼운 먼지떨이로 쓸고 털어 주는 거울이며, 거기에 내쉰 입김을 남겨 두지 않고 제 입김을 구름으로 띄워 수면 위 높이 떠다니게 하고는 다시 그 품에 비추는 거울이다.

너른 물은 공기 속에 있는 기운을 드러낸다. 물은 끊임없이 위에서 새 생명과 움직임을 받는다. 그 본성은 땅과 하늘 사이에 있다. 땅에서는 풀과 나무만 일렁이지만, 물은 그 자체가 바람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나는 빛줄기나 빛 조각을 보고 산들바람이 어디로 물을 가로질러 달려가는지 안다. 우리가 물의 표면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마침내 이렇게 공기의 표면을 내려다보며, 그보다 더 미묘한 기운이 어디로 그 위를 쓸고 지나가는지 알아보게 될 것이다.

소금쟁이와 물매암이는 매서운 서리가 내린 10월 하순에 마침내 사라진다. 그때부터 11월까지는 대개 잔잔한 날이면 수면에 잔물결을 일으킬 것이 하나도 없다. 며칠 이어진 폭풍우가 끝나 잠잠해진 어느 11월 오후, 하늘은 아직 온통 구름에 덮이고 공기에는 안개가 가득했는데, 나는 호수가 유난히 매끄러워 수면을 가려보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호수는 이제 10월의 밝은 빛깔이 아니라 둘레 언덕의 칙칙한 11월 빛깔을 비추고 있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살며시 지나갔는데도 내 배가 일으킨 가느다란 물결은 거의 눈길이 닿는 데까지 퍼져서 비친 그림자들에 이랑 진 무늬를 입혔다. 그런데 수면을 바라보다가 나는 멀리 여기저기서 희미한 반짝임을 보았다. 서리를 피한 소금쟁이들이 거기 모였는지, 아니면 수면이 하도 매끄러워서 바닥에서 샘이 솟는 곳이 드러났는지 싶었다. 그런 곳 하나로 살며시 노를 저어 가 보니, 놀랍게도 나는 길이 5인치쯤 되는 작은 농어 무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초록 물속에서 짙은 청동빛을 띤 농어들은 그곳에서 장난치며 끊임없이 수면으로 올라와 보조개를 짓고, 때로는 수면에 물방울을 남겼다. 구름을 비추는, 그렇게 투명하고 바닥 없는 듯한 물에서 나는 기구를 타고 공중을 떠가는 듯했고, 농어들이 헤엄치는 모습은 일종의 비행이나 날개를 펴고 떠 있는 모습처럼 느껴졌다. 마치 촘촘한 새 떼가 돛 같은 지느러미를 사방에 펼치고 내 높이 바로 아래 오른쪽과 왼쪽으로 지나가는 것 같았다. 호수에는 이런 무리가 많았는데, 겨울이 넓은 천창에 얼음 덧문을 닫기 전 짧은 철을 한껏 살리는 듯했고, 때로는 수면을 산들바람이 스치거나 빗방울이 몇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내가 무심코 다가가 놀라게 하면, 누가 잎 무성한 가지로 물을 내리친 듯 꼬리로 갑자기 첨벙 물결을 일으키고는 순식간에 깊은 곳으로 숨었다. 마침내 바람이 일고 안개가 짙어지고 물결이 달리기 시작하자, 농어들은 전보다 훨씬 높이, 몸을 반쯤 물 밖으로 내밀며 뛰어올라, 길이 3인치의 검은 점 백 개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솟았다. 어느 해에는 12월 5일까지도 수면에 보조개가 지는 것을 보았는데, 공기에 안개가 가득해서 곧 비가 세차게 쏟아지겠거니 싶어 서둘러 노를 잡고 집으로 저어 갔다. 뺨에는 한 방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빗줄기가 벌써 빠르게 굵어지는 듯해서 흠뻑 젖을 각오를 했다. 그런데 보조개가 갑자기 멎었다. 보조개는 농어들이 낸 것이었고, 농어들은 내 노 소리에 놀라 깊은 곳으로 달아났다. 농어 무리가 흐릿하게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끝내 젖지 않은 오후를 보냈다.

거의 예순 해 전, 호수가 둘레 숲으로 어둑하던 시절에 이곳을 자주 찾던 한 노인은, 그때는 이따금 호수 전체가 오리와 다른 물새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았고 둘레에 독수리도 많았다고 내게 말한다. 그는 이곳에 낚시하러 왔고, 기슭에서 찾은 낡은 통나무배를 썼다. 그 배는 스트로브잣나무 통나무 두 개를 파내어 나무못으로 이어 붙이고 양 끝을 반듯하게 잘라 낸 것이었다. 무척 투박했지만 여러 해를 버티다가 물을 먹고 아마 바닥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는 그 배가 누구 것인지 몰랐다. 배는 호수의 것이었다. 그는 히코리 껍질 오리를 엮어 닻줄을 만들곤 했다. 독립 혁명 전에 호숫가에 살던 늙은 옹기장이가 언젠가 그에게, 바닥에 쇠 궤짝이 하나 있는데 자기가 그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궤짝은 때로 기슭까지 떠올라 오지만, 다가가면 다시 깊은 물로 물러나 사라진다고 했다. 나는 그 낡은 통나무배 이야기를 듣고 기뻤다. 그 배는 같은 재료로 만들었지만 더 우아하게 지은 원주민의 배를 대신한 것이었다. 원주민의 배는 처음에는 물가에 선 나무였다가 이를테면 물에 쓰러져 한 세대 동안 거기 떠 있었을 테니, 호수에 가장 알맞은 배였다. 처음 이 깊은 물속을 들여다보았을 때 바닥에 큰 통나무가 많이 흐릿하게 누워 있던 것이 기억난다. 예전에 바람에 쓰러졌거나, 나무가 더 쌌던 시절 마지막으로 벌목할 때 얼음 위에 버려진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내가 처음 월든에서 배를 저었을 때, 호수는 빽빽하고 높은 소나무와 떡갈나무 숲에 온통 둘러싸여 있었고, 몇몇 후미에서는 포도덩굴이 물가의 나무들을 타고 올라 배가 그 밑으로 지나갈 수 있는 정자를 이루었다. 기슭을 이루는 언덕들은 무척 가파르고 그 위의 숲은 그때 무척 높아서, 서쪽 끝에서 내려다보면 호수는 숲에서 벌어지는 어떤 구경거리를 위한 원형 극장처럼 보였다. 젊은 시절 나는 여름날 오전이면 배를 한가운데로 저어 가서 의자 위에 가로로 드러누워, 서풍이 이끄는 대로 수면을 떠다니며 눈을 뜬 채 꿈꾸다가, 배가 모래에 닿는 기척에 정신이 들면 내 운명이 나를 어느 기슭으로 떠밀었나 보려고 몸을 일으키곤 하면서 여러 시간을 보냈다. 빈둥거리는 것이 가장 매력 있고 가장 생산적인 일이던 날들이었다. 하루에서 가장 값진 때를 그렇게 보내고 싶어서 나는 많은 오전을 몰래 빠져나왔다. 나는 돈으로는 아니어도 햇빛 비치는 시간과 여름날로는 부자였고, 그것을 아낌없이 썼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일터나 교사의 책상에서 더 허비하지 않은 것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 기슭을 떠난 뒤로 나무꾼들은 기슭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었고, 이제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숲의 회랑을 거닐며 이따금 트인 틈으로 물을 바라보는 일은 더는 없을 것이다. 나의 무사 여신이 이제부터 입을 다문다 해도 용서받을 만하다. 숲을 베어 버렸는데 어떻게 새들이 노래하기를 바라겠는가?

이제 바닥의 나무줄기도, 낡은 통나무배도, 둘레의 어두운 숲도 사라졌다. 그리고 호수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호수에 가서 멱을 감거나 물을 마시기는커녕, 적어도 갠지스강만큼은 신성해야 할 그 물을 관으로 마을까지 끌어다 설거지를 할 궁리를 하고 있다! 꼭지를 돌리거나 마개를 뽑아 그들의 월든을 얻겠다는 것이다! 귀를 찢는 울음소리가 온 읍에 들리는 저 악마 같은 철마는 발굽으로 보일링 샘을 흐려 놓았고, 월든 기슭의 숲을 모조리 뜯어 먹어 치운 것도 바로 그놈이다. 돈에 팔린 그리스인들이 들여온, 뱃속에 천 명을 품은 저 트로이 목마! 깊은 절개지에서 그놈을 맞아 그 부어오른 역병 덩어리의 갈비뼈 사이로 복수의 창을 찔러 넣을 이 나라의 투사, 무어 언덕의 무어는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내가 알아 온 모든 인물 가운데 아마 월든이 가장 오래 낡지 않고 그 순수를 가장 잘 지킨다. 많은 사람이 월든에 견주어졌지만 그 영예를 누릴 만한 사람은 드물다. 나무꾼들이 이 기슭을 헐벗기고 저 기슭을 헐벗겼고, 아일랜드 사람들이 그 곁에 돼지우리를 지었으며, 철도가 그 가장자리를 침범했고, 얼음 장수들이 한 번 그 거죽을 걷어 갔지만, 월든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내 젊은 눈이 처음 닿았던 그 물이다. 변한 것은 모두 내 쪽이다. 그토록 잔물결이 일었어도 주름 하나 영영 남지 않았다. 월든은 늘 젊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제비가 옛날처럼 수면에서 벌레를 낚으려는 듯 물을 스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 밤 다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스무 해 넘게 거의 날마다 보아 오지 않았다는 듯이. 아니, 여기 월든이 있구나, 여러 해 전 내가 찾아낸 바로 그 숲속 호수가. 지난겨울 숲을 베어 낸 기슭에 또 다른 숲이 여느 때처럼 힘차게 돋아나고, 그때 수면으로 솟아오르던 그 생각이 지금도 똑같이 솟아오른다. 월든은 그 자신과 그것을 지은 창조주에게, 그리고 어쩌면 내게도, 여전히 똑같은 물의 기쁨이고 행복이다. 이것은 분명 간사함이라고는 없는 어느 용감한 사람이 한 일이다! 그는 이 물을 손으로 둥글게 빚고, 생각 속에서 깊게 파고 맑게 거르고, 유언으로 콩코드에 물려주었다. 그 얼굴을 보니 월든에도 같은 생각이 비친다. 나는 이렇게 말할 뻔한다. 월든, 너냐?

한 줄 시를 꾸미려고
내가 지어낸 꿈이 아니다.
나는 월든에 사는 것보다
신과 하늘에 더 가까이 갈 수 없다.
나는 그 돌 많은 기슭이고,
그 위를 지나는 산들바람이다.
내 손바닥 우묵한 곳에
그 물과 모래가 있고,
그 가장 깊은 곳은
내 생각 속 높이 놓여 있다.

기차는 한 번도 멈추어 월든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기관사와 화부와 제동수, 그리고 정기권을 끊어 월든을 자주 보는 승객들이 그 광경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상상한다. 기관사는 밤에도, 아니 그의 본성은, 낮 동안 적어도 한 번은 고요와 순수의 이 광경을 보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단 한 번 보더라도 그 광경은 스테이트 거리와 기관차의 검댕을 씻어 내는 데 도움이 된다. 어떤 이는 이 호수를 "신의 물방울"이라고 부르자고 한다.

나는 월든에 눈에 보이는 들목도 날목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쪽으로는 그보다 높은 플린트 호수와, 그쪽에서 이어지는 작은 호수 사슬로 멀리 간접으로 이어져 있고, 다른 쪽으로는 그보다 낮은 콩코드강과 비슷한 호수 사슬로 곧바로 뚜렷이 이어져 있다. 어느 다른 지질 시대에는 월든이 그 사슬을 거쳐 흘렀을지도 모르고, 그럴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조금만 파내면 다시 그리로 흐르게 만들 수도 있다. 숲속의 은자처럼 그토록 오래 삼가고 엄격하게 살아서 그토록 놀라운 순수를 얻었다면, 비교적 맑지 않은 플린트 호수의 물이 월든에 섞이거나 월든이 바다 물결에 그 단맛을 허비하러 간다면 누가 아쉬워하지 않겠는가?


링컨에 있는 플린트 호수, 또는 샌디 호수는 우리의 가장 큰 호수이자 내해로, 월든에서 동쪽으로 1마일쯤 떨어져 있다. 넓이가 197에이커라고 하니 월든보다 훨씬 크고 물고기도 더 많지만, 비교적 얕고 그리 맑지도 않다. 숲을 지나 그리로 걸어가는 것이 종종 내 휴식이었다. 바람이 뺨에 마음껏 부는 것을 느끼고, 물결이 달리는 것을 보고, 뱃사람의 삶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갈 만했다. 가을이면 바람 부는 날 그곳에 밤을 주우러 갔는데, 밤이 물에 떨어져 내 발치로 밀려왔다. 어느 날은 사초 우거진 기슭을 따라 살금살금 걷다가, 싱싱한 물보라를 얼굴에 맞으며 썩어 가는 배의 잔해와 마주쳤다. 옆판은 사라지고 골풀 사이에 납작한 바닥의 자국만 겨우 남아 있었는데도, 배의 꼴은 잎맥까지 남은 큰 수련 잎이 썩은 것처럼 또렷했다. 바닷가에서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난파선만큼이나 인상 깊은 잔해였고, 그만큼 좋은 교훈을 담고 있었다. 지금쯤은 한낱 썩은 풀 흙이 되어 호숫가와 구별할 수도 없을 것이고, 그 사이로 골풀과 붓꽃이 솟아났을 것이다. 나는 이 호수 북쪽 끝의 모래 바닥에 진 물결 자국을 즐겨 바라보곤 했다. 물에 눌려 다져진 그 자국은 물을 건너는 사람의 발에 단단하고 딱딱했다. 그 자국을 따라 물결치는 선으로 한 줄씩 늘어서 자란 골풀도 즐겨 바라보았는데, 마치 물결이 심어 놓은 듯 줄 뒤에 줄을 이루었다. 그곳에서 나는 또 고운 풀이나 뿌리, 아마도 곡정초로 된 듯한 진기한 공을 꽤 많이 보았다. 지름이 ½인치에서 4인치까지였고 완전한 구형이었다. 이 공들은 모래 바닥 얕은 물에서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가 때로 기슭으로 밀려 올라온다. 속까지 풀로 되어 있거나 한가운데에 모래가 조금 들어 있다. 처음 보면 조약돌처럼 물결의 작용으로 생겼다고 말하겠지만, 가장 작은 것도 ½인치 길이의 똑같이 거친 재료로 되어 있고, 한 해 가운데 한 철에만 생긴다. 게다가 물결은 이미 단단해진 재료를 짓기보다는 닳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공들은 마르면 언제까지나 꼴을 지킨다.

플린트 호수라니! 우리의 이름 짓기가 이토록 가난하다. 하늘 물에 맞닿은 농장을 가지고서 그 기슭을 무자비하게 헐벗긴, 더럽고 어리석은 농부가 무슨 권리로 이 호수에 제 이름을 붙였단 말인가? 부싯돌(flint)에서도 껍질을 벗겨 낼 구두쇠, 제 뻔뻔한 놋쇠 낯짝을 비추어 볼 수 있는 1달러짜리 은화나 반짝이는 1센트짜리 동전의 번들거리는 면을 더 사랑한 자, 호수에 내려앉은 야생 오리조차 무단 침입자로 여긴 자, 하르피이아처럼 움켜쥐는 버릇이 오래되어 손가락이 굽고 뼈만 남은 발톱이 된 자. 그러니 이 이름은 나를 위해 붙인 것이 아니다. 나는 그를 보거나 그의 소식을 들으러 그곳에 가지 않는다. 그는 호수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고, 거기서 멱을 감은 적도, 그것을 사랑한 적도, 지켜 준 적도, 좋은 말 한마디 해 준 적도, 신이 그것을 지어 준 데 감사한 적도 없다. 차라리 그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나, 그곳을 드나드는 들새나 네발짐승이나, 그 기슭에 자라는 들꽃이나, 그 호수의 내력에 제 내력의 실이 엮여 든 어느 야생의 사람이나 아이의 이름을 따서 짓게 하라. 같은 생각을 하는 이웃이나 주 의회가 건네준 증서 말고는 호수에 대한 아무 권리도 내세울 수 없는 자, 호수의 돈 가치만 생각한 자, 그가 있어서 어쩌면 온 기슭이 저주를 받았을 자, 둘레의 땅을 메마르게 했고 할 수만 있으면 안의 물까지 말려 버렸을 자, 그곳이 영국 건초 밭이나 크랜베리 풀밭이 아닌 것만 아쉬워한 자, 그의 눈에는 참으로 호수를 구해 줄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바닥의 진흙을 팔려고 물을 빼 버렸을 자, 그런 자의 이름을 따서는 짓지 말라. 호수는 그의 방앗간을 돌려 주지 않았고, 호수를 바라보는 것은 그에게 아무 특권도 아니었다. 나는 그의 노동을, 모든 것에 값이 매겨진 그의 농장을 존경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이든 받을 수만 있으면 풍경도, 제 신도 시장에 내다 팔 사람이고, 지금도 제 신을 찾아 시장에 간다. 그의 농장에서는 아무것도 거저 자라지 않고, 밭은 곡식을, 풀밭은 꽃을,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고 달러만 맺는다. 그는 제 열매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지 않고, 그의 열매는 달러로 바뀌기 전에는 그에게 익은 것이 아니다. 참된 부를 누리는 가난을 내게 달라. 농부들은 가난할수록, 곧 가난한 농부일수록 내게는 존경스럽고 흥미롭다. 모범 농장이라니! 집은 거름 더미 위의 버섯처럼 서 있고, 사람과 말과 소와 돼지의 방이 치운 것이든 안 치운 것이든 모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사람으로 가득 채운 농장! 거름과 버터밀크 냄새가 진동하는 커다란 기름얼룩! 사람의 심장과 뇌를 거름으로 주어 아주 잘 가꾼 곳! 교회 묘지에 감자를 기르기라도 하는 듯이! 모범 농장이란 그런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풍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들에 사람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가장 고귀하고 가장 훌륭한 사람의 이름만 붙이게 하라. 우리의 호수들이 적어도 이카로스 바다만큼은 참된 이름을 얻게 하라. 그 바다에서는 "아직도 기슭이" "용감한 시도를 메아리친다".


크지 않은 구스 호수는 플린트 호수로 가는 길에 있다. 콩코드강이 넓어진 페어헤이븐은 넓이가 70에이커쯤 된다고 하며 남서쪽으로 1마일 거리에 있다. 넓이 40에이커쯤 되는 화이트 호수는 페어헤이븐 너머 1½마일에 있다. 이것이 나의 호수 지방이다. 이 호수들이 콩코드강과 함께 나의 물 이용 특권이고, 밤이나 낮이나 해마다 해마다 내가 가져가는 곡식을 빻아 준다.

나무꾼들과 철도와 나 자신이 월든을 더럽힌 뒤로, 우리의 모든 호수 가운데 가장 아름답지는 않을지라도 가장 마음을 끄는 호수, 숲의 보석은 아마 화이트 호수일 것이다. 물이 남달리 맑아서 붙었든 모래 빛깔에서 왔든, 흔해 빠져서 초라한 이름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다른 점에서도 화이트 호수는 월든의 작은 쌍둥이다. 둘이 하도 닮아서 땅 밑으로 이어져 있음에 틀림없다고 말할 정도다. 똑같이 돌 많은 기슭이 있고 물빛도 같다. 월든에서처럼, 찌는 듯한 삼복더위에 숲 사이로 바닥의 반사가 물들일 만큼 얕은 만을 내려다보면, 그 물은 안개 낀 듯한 푸르스름한 초록, 곧 청회색을 띤다. 여러 해 전 나는 사포를 만들 모래를 수레로 실어 오려고 그곳에 다니곤 했고, 그 뒤로도 줄곧 찾아가고 있다. 그곳을 자주 찾는 어떤 이는 '초록 호수'라고 부르자고 한다. 아마 다음과 같은 일 때문에 '노란소나무 호수'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열다섯 해쯤 전에는 기슭에서 여러 로드 떨어진 깊은 물 위로 리기다소나무 한 그루의 꼭대기가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근방에서는 노란소나무라고 부르는 종류였지만 따로 갈라진 종은 아니다. 호수가 내려앉았고 이 나무는 예전에 그곳에 서 있던 원시림의 한 그루라고 여기는 사람까지 있었다. 알아보니 1792년에 이미, 매사추세츠 역사 협회의 『논집』에 실린 「콩코드 읍 지지(地誌)」에서 콩코드 시민인 지은이는 월든과 화이트 호수를 이야기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뒤의 호수 한가운데에서는 물이 아주 낮을 때 지금 선 자리에서 자란 듯이 보이는 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는데, 뿌리는 수면 아래 50피트에 있다. 이 나무의 꼭대기는 부러져 나갔고, 그 자리의 지름은 14인치다." 1849년 봄 나는 서드베리에서 이 호수에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열 해나 열다섯 해 전에 이 나무를 끌어낸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나무는 기슭에서 12~15로드 떨어진, 물 깊이 30~40피트 되는 곳에 서 있었다. 겨울이었고, 그는 오전에 얼음을 떠내다가 오후에는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그 오래된 노란소나무를 끌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얼음에 기슭 쪽으로 물길을 톱질해 내고, 소를 부려 나무를 넘기고 끌어 얼음 위로 올렸다. 그런데 일을 얼마 하지도 않아서 나무가 거꾸로 서 있었음을 알고 놀랐다. 가지 그루터기는 아래를 향했고 가는 끝은 모래 바닥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굵은 쪽 지름이 1피트쯤이어서 그는 좋은 통나무감을 얻으리라 기대했지만, 나무는 하도 썩어서 땔감으로나, 그것도 겨우 쓸 만했다. 그때 그의 헛간에는 그 나무가 조금 남아 있었다. 밑동에는 도끼 자국과 딱따구리 자국이 있었다. 그는 그것이 기슭에 서 있던 죽은 나무였는데 마침내 바람에 호수로 쓰러졌고, 우듬지가 물을 먹은 뒤에도 밑동은 아직 마르고 가벼워서 떠내려가다가 거꾸로 가라앉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여든 살인 그의 아버지도 그 나무가 거기 없던 때를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도 꽤 큰 통나무 몇 개가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수면이 일렁여서 거대한 물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호수는 배에 더럽혀진 일이 드물다. 낚시꾼을 꾈 만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진흙이 있어야 자라는 흰 수련이나 흔한 창포 대신, 맑은 물에 푸른붓꽃(Iris versicolor)이 드문드문 자라서 기슭 둘레 돌 바닥에서 솟아오르고, 6월이면 벌새가 찾아온다. 푸르스름한 잎과 꽃의 빛깔, 특히 물에 비친 그 그림자의 빛깔은 청회색 물과 남달리 잘 어울린다.

화이트 호수와 월든은 땅 위의 큰 수정이고 빛의 호수다. 이 호수들이 영원히 얼어붙고 움켜쥘 만큼 작다면, 어쩌면 노예들이 보석처럼 날라 가서 황제의 머리를 꾸몄을 것이다. 그러나 액체이고 넓으며 우리와 우리 뒤를 이을 사람들에게 영원히 맡겨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호수들을 하찮게 여기고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를 쫓아다닌다. 이 호수들은 시장 가치를 지니기에는 너무 맑다. 거름 한 점 담고 있지 않다. 우리의 삶보다 얼마나 더 아름답고, 우리의 성품보다 얼마나 더 투명한가! 우리는 이 호수들에게서 비천함을 배운 적이 없다. 농부의 집 앞, 그의 오리들이 헤엄치는 웅덩이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운가! 이곳에는 깨끗한 야생 오리들이 온다. 자연에는 그 값을 알아주는 사람 주민이 하나도 없다. 새들은 깃털과 노랫소리로 꽃들과 어우러지는데, 어느 젊은이나 처녀가 자연의 무성한 야생의 아름다움과 어우러지는가? 자연은 사람들이 사는 읍에서 멀리 떨어져 홀로일 때 가장 번성한다. 하늘을 말하다니! 너희는 땅을 욕되게 한다.

주

  1. 1. Cænobites(함께 모여 사는 수도사)는 「See, no bites(봐, 입질이 없어)」와 소리가 같다.

  2. 2. 이 책의 온도는 모두 화씨다. 물은 화씨 32도에서 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