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서 살았고, 무엇을 위해 살았나
삶의 어느 철에 이르면 우리는 어느 곳이든 집 지을 만한 자리로 여기곤 한다. 그래서 나도 내가 사는 곳에서 사방 12마일 안의 땅을 두루 살펴보았다. 나는 상상 속에서 농장을 차례로 모두 사들였다. 어느 농장이든 살 수 있었고, 나는 그 값도 알았다. 농부마다 그 땅을 걸어 보고, 그 집 야생 사과를 맛보고, 그와 농사 이야기를 나누고는, 그가 부르는 값에, 아니 어떤 값에라도 농장을 사들여 마음속으로 그에게 저당을 잡혔다. 값을 더 얹어 주기까지 했다. 증서만 빼고 모든 것을 받았으니, 증서 대신 그의 말을 받은 셈이다. 나는 이야기하기를 몹시 좋아하니까. 그러고는 그 땅을 일구었고, 감히 말하건대 농부의 마음도 얼마쯤은 일구었으며, 실컷 누렸다 싶으면 물러나 농사는 그에게 계속 맡겨 두었다. 이런 경험 덕분에 벗들은 나를 일종의 부동산 중개인으로 여기게 되었다. 내가 앉는 곳이면 어디든 내가 살 수 있는 곳이었고, 풍경은 그에 맞추어 나를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집이란 결국 앉을 자리(sedes), 곧 자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시골에 둔 자리라면 더 좋고. 나는 머지않아 개발될 것 같지 않은 집터를 여럿 찾아냈는데, 어떤 사람은 그곳이 마을에서 너무 멀다고 여겼겠지만 내 눈에는 마을이 그곳에서 너무 멀었다. 그래, 여기서 살 수 있겠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거기서 살았다. 한 시간 동안, 여름 한 철과 겨울 한 철의 삶을. 세월을 어떻게 흘려보낼지, 겨울을 어떻게 버텨 낼지, 봄이 오는 것을 어떻게 맞을지 내다보았다. 이 고장에 앞으로 살 사람들은 어디에 집을 앉히든 누군가 이미 앞질러 다녀갔다고 믿어도 좋다. 오후 한나절이면 땅을 과수원과 땔감 숲과 목초지로 나누고, 문 앞에 어떤 훌륭한 떡갈나무나 소나무를 남겨 둘지, 벼락 맞아 말라 죽은 나무 하나하나를 어디서 보아야 가장 보기 좋을지 정하기에 넉넉했다. 그러고는 그 땅을 그대로 두었다. 묵혀 두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내버려 둘 수 있는 것이 많은 만큼 부자니까.
상상은 나를 꽤 멀리까지 데려가서, 나는 몇몇 농장의 우선 매수권까지 얻었다. 내가 바란 것은 그 우선권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소유하다가 손을 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실제 소유에 가장 가까이 갔던 것은 홀로웰 농장을 샀을 때다. 나는 벌써 씨앗을 고르기 시작했고, 그 농장을 꾸려 나가거나 아예 실어 가 버리는 데 쓸 외바퀴 손수레를 만들 재료까지 모아 두었다. 그런데 주인이 증서를 넘겨주기 전에 그의 아내가 마음을 바꾸어 농장을 지키고 싶어 했다. 어느 남자에게나 그런 아내가 있다. 그래서 주인은 계약을 없던 일로 해 주면 10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때 나는 세상에 가진 것이 10센트뿐이었으니, 내가 10센트를 가진 사람인지, 농장을 가진 사람인지, 10달러를 가진 사람인지, 아니면 그 모두를 가진 사람인지 셈하는 일은 내 산수 실력을 넘어섰다. 어쨌든 나는 그에게 10달러도 농장도 그대로 갖게 했다. 그만하면 충분히 밀고 나갔으니까. 아니, 너그럽게 말하자면, 나는 농장을 산 값 그대로 그에게 되팔았고, 그가 부자가 아니었으므로 10달러를 선물로 주었으며, 그러고도 내게는 10센트와 씨앗과 손수레 재료가 고스란히 남았다. 이렇게 해서 나는 가난에 아무 흠도 내지 않고 부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풍경은 내 몫으로 남겼고, 그 뒤로 해마다 그 풍경이 내는 소출을 손수레도 없이 실어 왔다. 풍경에 관해서라면,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의 군주,
그곳에서 내 권리에 맞설 자 아무도 없다."1
나는 시인이 농장에서 가장 값진 것을 누리고 물러나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동안 무뚝뚝한 농부는 시인이 야생 사과 몇 알만 얻어 갔다고 여겼다. 아니, 시인이 농장을 운율 속에 담아 버리면 주인은 여러 해가 지나도록 그 사실을 모른다. 운율이야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 가운데 가장 훌륭한 울타리여서, 시인은 그 안에 농장을 고스란히 가두어 놓고 젖을 짜고 웃물을 걷어 크림은 다 가져가며 농부에게는 걷어 내고 남은 묽은 젖만 남겨 준다.
내게 홀로웰 농장의 참된 매력은 이런 것들이었다. 우선 완전히 외떨어져 있었다. 마을에서 2마일쯤, 가장 가까운 이웃에서 반 마일 떨어져 있었고, 넓은 들판 하나가 큰길과 사이를 갈라놓았다. 강에 닿아 있었는데, 주인 말로는 강안개가 봄 서리를 막아 준다고 했지만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집과 헛간은 잿빛으로 무너져 가고 울타리는 허물어져서, 나와 마지막으로 살던 사람 사이에 그만큼 긴 세월을 놓아 주었다. 속이 비고 이끼에 덮인 사과나무들은 토끼에게 갉아 먹혀서, 내가 어떤 이웃을 두게 될지 보여 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주 어려서 처음 강을 거슬러 배를 저어 갔을 때의 기억이 있었다. 그때 집은 빽빽한 붉은단풍나무 숲 뒤에 숨어 있었고, 나는 그 숲 너머로 집 지키는 개가 짖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주인이 바위 몇 개를 캐내고, 속 빈 사과나무를 베어 내고, 목초지에 돋아난 어린 자작나무를 뿌리째 뽑기 전에, 한마디로 무엇이든 더 개량하기 전에 서둘러 그 농장을 사고 싶었다. 이런 이점을 누리려고 나는 농장을 꾸려 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틀라스처럼 세상을 어깨에 짊어지고(그가 그 대가로 무엇을 받았는지는 들은 적이 없다), 값을 치르고 아무 방해 없이 소유하려는 것 말고는 다른 동기도 핑계도 없는 온갖 일을 다 할 각오였다. 그 땅을 그냥 내버려 둘 여유만 있다면 내가 바라는 종류의 작물을 가장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것을 나는 내내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일은 앞서 말한 대로 되고 말았다.
그러니 큰 규모의 농사에 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텃밭은 늘 가꾸어 왔다) 씨앗을 준비해 두었다는 것뿐이었다. 많은 사람이 씨앗은 묵을수록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좋은 씨앗과 나쁜 씨앗을 가려낸다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침내 씨를 뿌릴 때는 실망할 일이 덜할 것이다. 그러나 동료들에게 이 말만은 분명히 해 두고 싶다. 될 수 있는 한 오래 자유롭게, 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살라. 농장에 매이든 군 감옥에 매이든 별 차이가 없다.
늙은 카토의 『농업론』은 내게 농업 잡지 『컬티베이터』나 다름없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내가 본 단 하나뿐인 번역은 이 대목을 아주 터무니없는 말로 만들어 놓았다). "농장을 얻을 생각이 들거든 마음속으로 이렇게 궁리하라. 욕심내어 사지 말고, 수고를 아끼지 말고 둘러보며, 한 번 돌아보고 충분하다고 여기지 말라. 좋은 땅이라면 자주 갈수록 더 마음에 들 것이다." 나는 욕심내어 사지 않고 살아 있는 동안 그 땅을 돌고 또 돌다가, 먼저 그 땅에 묻히려 한다. 그래야 마침내 그 땅이 더욱 마음에 들 테니까.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이런 종류의 다음 실험이다. 이것은 좀 더 자세히 그려 보려 하는데, 편의상 두 해의 경험을 한 해로 묶는다. 앞에서 말했듯 나는 낙담의 송가를 지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홰에 올라선 수탉처럼 기운차게 큰소리를 치려는 것이다. 그것이 이웃을 깨우는 일일 뿐이라 해도.
처음 숲에 거처를 정했을 때, 곧 낮뿐 아니라 밤까지 거기서 보내기 시작한 날은 우연히도 독립기념일, 1845년 7월 4일이었다. 그때 내 집은 겨울을 날 채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회반죽도 굴뚝도 없이 그저 비를 가려 줄 뿐이었다. 벽은 비바람에 얼룩진 거친 판자였고 틈이 넓어서 밤이면 서늘했다. 똑바로 선 하얀 샛기둥과 새로 대패질한 문틀과 창틀 덕분에 집은 깨끗하고 바람이 잘 통해 보였는데, 특히 아침에 목재가 이슬에 흠뻑 젖어 있을 때면 한낮쯤에는 거기서 달콤한 진이 배어 나올 것만 같았다. 내 상상 속에서 집은 하루 내내 이 새벽 같은 기운을 얼마쯤 간직했고, 그래서 한 해 전에 찾아갔던 어느 산 위의 집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바람이 잘 통하고 회반죽을 바르지 않은 오두막으로, 길 가던 신을 묵어 가게 하기에 알맞았고 여신이 옷자락을 끌며 거닐 만한 곳이었다. 내 집 위로 지나가는 바람은 산등성이를 쓸고 가는 바람과 같아서, 땅의 음악을 토막토막, 아니 그 천상의 가락만을 실어 날랐다. 아침 바람은 영원히 불고, 창조의 시는 끊이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듣는 귀가 드물 뿐이다. 올림포스는 어디서나 땅의 바깥일 뿐이다.
배를 빼면 내가 전에 가져 본 집이라고는 천막 하나뿐이었다. 여름에 멀리 나다닐 때 이따금 쓰던 것으로, 지금도 다락에 말아 두었다. 배는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넘어가다가 시간의 강을 따라 떠내려가 버렸다. 이보다 든든한 거처를 두르고 보니 나는 세상에 자리를 잡는 쪽으로 얼마쯤 나아간 셈이었다. 옷을 얇게 걸친 이 뼈대는 내 둘레에 맺힌 일종의 결정이어서, 지은 사람에게 되돌아와 작용했다. 윤곽만 그린 그림처럼 무언가를 넌지시 일러 주었다. 바람을 쐬러 밖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안의 공기도 신선함을 조금도 잃지 않았으니까. 비가 가장 많이 오는 날에도 내가 앉은 곳은 문 안이라기보다 문 뒤였다. 『하리방샤』2는 "새가 없는 거처는 양념하지 않은 고기와 같다"고 한다. 내 거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새들의 이웃이 되었다. 새를 가두어서가 아니라 새들 가까이에 나를 가두어서였다. 나는 정원과 과수원에 흔히 드나드는 새들뿐 아니라, 마을 사람에게는 좀처럼, 아니 결코 노래를 불러 주지 않는, 더 작고 더 가슴 떨리게 노래하는 숲의 가수들과도 가까워졌다. 숲지빠귀, 비리지빠귀, 붉은풍금새, 들참새, 쏙독새, 그 밖에 많은 새였다.
내가 자리 잡은 곳은 작은 호수의 기슭으로, 콩코드 마을에서 남쪽으로 1마일 반쯤, 마을보다 조금 높은 곳이었다. 콩코드 읍과 링컨 사이에 펼쳐진 넓은 숲 한가운데였고, 우리 고장에서 유일하게 이름난 싸움터인 콩코드 전적지에서 남쪽으로 2마일쯤 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숲속 낮은 곳에 자리했으므로, 반 마일 떨어진 맞은편 기슭이 가장 먼 지평선이었다. 그 기슭도 다른 곳처럼 숲에 덮여 있었다. 처음 한 주 동안은 호수를 내다볼 때마다 산허리 높이 걸린 산중 호수처럼 보였다. 그 바닥이 다른 호수들의 수면보다도 훨씬 높은 데 있는 듯했다. 해가 떠오르면 호수가 밤사이 걸쳤던 안개 옷을 벗어 던지는 것이 보였고, 여기저기서 차츰 부드러운 잔물결이나 매끄럽게 비치는 수면이 드러났으며, 그사이 안개는 밤의 비밀 집회가 흩어질 때처럼 유령같이 살그머니 사방의 숲으로 물러갔다. 이슬마저 산허리에서처럼 여느 때보다 늦게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이 작은 호수가 이웃으로서 가장 값졌던 때는 8월, 부드러운 비바람이 잠시 멎은 사이였다. 공기도 물도 아주 고요하고 하늘만 구름에 덮이면 한낮이 지난 오후에도 저녁의 고요함이 온전히 깃들었고, 숲지빠귀가 사방에서 노래해 이 기슭에서 저 기슭까지 들렸다. 이런 호수는 그런 때만큼 잔잔한 적이 없다. 그 위의 맑은 대기층이 얕고 구름에 가려 어두워지면, 빛과 그림자를 가득 담은 물은 그 자체로 낮은 하늘이 되어 그만큼 더 귀해진다. 가까운 언덕 꼭대기는 얼마 전 나무를 베어 낸 곳인데, 거기서 남쪽으로 호수 건너 기분 좋은 경치가 트였다. 기슭을 이루는 언덕들이 넓게 움푹 들어간 자리로, 양쪽 비탈이 서로를 향해 기울어져 있어 그쪽으로 숲 우거진 골짜기를 지나 흘러 나가는 개울이 있을 것만 같았지만 개울은 없었다. 그쪽으로 나는 가까운 푸른 언덕들 사이로, 또 그 너머로 지평선에 걸린 더 높고 먼 언덕들을 바라보았다. 언덕들은 푸른빛을 띠었다. 실제로 발끝으로 서면 북서쪽으로 더 푸르고 더 먼 산줄기의 봉우리 몇을 언뜻 볼 수 있었는데, 하늘의 조폐국에서 손수 찍어 낸 진짜 푸른 동전 같은 봉우리들이었다. 마을도 얼마쯤 보였다. 그러나 다른 쪽으로는 이 자리에서도 나를 둘러싼 숲 너머를 볼 수 없었다. 가까이에 물이 조금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물은 땅에 부력을 주어 띄워 준다. 아무리 작은 우물이라도 쓸모가 하나 있으니, 들여다보면 땅이 대륙이 아니라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우물이 버터를 차게 지켜 준다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이 봉우리에서 호수 건너 서드베리 풀밭 쪽을 바라보면, 홍수 때 그 풀밭은 끓어오르는 골짜기 안에서 신기루 때문인지 대야 속 동전처럼 떠올라 보였고, 호수 너머의 땅은 모두 이 작은 물 한 장에 갈라져 떠 있는 얇은 껍질 같아서, 나는 내가 사는 이곳도 마른 땅일 뿐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문 앞에서 보이는 경치는 더 좁았지만 나는 조금도 비좁거나 갇혔다고 느끼지 않았다. 내 상상력이 풀을 뜯을 목초지는 넉넉했다. 맞은편 기슭이 올라가 닿은 낮은 관목참나무 고원은 서부의 대초원과 타타르의 스텝까지 뻗어 있어서, 떠도는 인류의 모든 가족이 넉넉히 머물 만했다. "드넓은 지평선을 마음껏 누리는 이들 말고는 이 세상에 행복한 이가 없다." 다모다라3는 자기 소 떼에게 새롭고 더 넓은 목초지가 필요해졌을 때 이렇게 말했다.
장소도 시간도 바뀌어서, 나는 우주에서 나를 가장 끌어당겼던 곳들과 역사에서 가장 끌렸던 시대들에 더 가까이 살았다. 내가 산 곳은 천문학자들이 밤마다 바라보는 여러 영역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흔히 드물고 즐거운 곳이 저 멀리, 더 천상에 가까운 우주의 어느 구석, 카시오페이아의 의자 별자리 너머 소음과 소란에서 먼 곳에 있으리라고 상상한다. 나는 내 집이 실제로 그처럼 외떨어졌지만 영원히 새롭고 더럽혀지지 않은 우주의 한 부분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았다. 플레이아데스나 히아데스, 알데바란이나 알타이르 가까이에 자리 잡는 것이 해 볼 만한 일이라면, 나는 정말로 거기 있었던 셈이다. 아니면 내가 두고 온 삶에서 그만큼 멀리 떨어져서,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는 그만큼 가늘게 줄어들어 반짝이며 달 없는 밤에나 그의 눈에 띄는 별이 되어 있었다. 내가 무단으로 눌러앉은 창조의 한 구석은 그런 곳이었다.
"옛날에 한 목동이 살았는데,
그의 생각은 높기가
그의 양 떼가 때마다 곁에서
풀을 뜯는 산만큼이었다."
목동의 양 떼가 언제나 그의 생각보다 더 높은 목초지로 떠돌아다닌다면, 우리는 그 목동의 삶을 어떻게 여겨야 할까?
아침마다 나는 내 삶을 자연만큼 단순하게, 감히 말하자면 자연만큼 천진하게 만들라는 즐거운 초대를 받았다. 나는 그리스 사람들만큼이나 진실하게 아우로라를 섬겨 왔다. 일찍 일어나 호수에서 몸을 씻었다. 그것은 종교적인 수행이었고,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의 하나였다. 탕왕의 목욕통에 이런 뜻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날마다 너 자신을 온전히 새롭게 하라. 또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고, 영원히 또 새롭게 하라."4 나는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아침은 영웅시대를 다시 불러온다. 이른 새벽 문과 창을 열어 놓고 앉아 있으면, 모기 한 마리가 보이지도 않고 짐작할 수도 없는 길을 따라 내 방을 돌며 내는 희미한 앵앵 소리가, 명성을 노래한 어떤 나팔 소리 못지않게 내 마음을 울렸다. 그것은 호메로스의 진혼곡이었다. 그 자체로 허공에 울리는 『일리아스』이자 『오디세이아』로서, 제 분노와 방랑을 노래했다. 거기에는 무언가 우주적인 것이 있었다. 금지당할 때까지 내걸린 광고처럼, 세상의 영원한 활력과 풍요를 알렸다. 하루 가운데 가장 기억할 만한 철인 아침은 깨어나는 시간이다. 그때 우리 안에는 졸음이 가장 적다. 그리고 적어도 한 시간 동안은, 하루의 나머지 낮과 밤 내내 잠들어 있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이 깨어난다. 우리를 깨우는 것이 우리의 정령이 아니라 어떤 하인이 기계적으로 쿡쿡 찌르는 손길이라면, 공장 종소리 대신 천상의 음악이 물결치고 향기가 공기를 채우는 가운데 안에서 새로 얻은 힘과 열망으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잠들 때보다 더 높은 삶으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날에는, 그날을 하루라고 부를 수 있다면,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 그렇게 깨어나야 어둠도 열매를 맺고, 빛 못지않게 어둠 또한 좋은 것임을 스스로 보여 준다. 하루하루가 자기가 아직 더럽히지 않은, 더 이르고 더 거룩한 새벽의 시간을 품고 있다고 믿지 않는 사람은 삶에 절망한 사람이며, 내리막의 어두워지는 길을 걷고 있다. 감각의 삶이 얼마쯤 멈춘 뒤에 사람의 영혼은, 아니 그 기관들은 날마다 새 힘을 얻고, 그의 정령은 어떤 고귀한 삶을 지을 수 있는지 다시 시도한다. 기억할 만한 일은 모두 아침 시간에, 아침의 공기 속에서 일어난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베다』는 말한다. "모든 지성은 아침과 함께 깨어난다." 시와 예술, 그리고 사람이 한 일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기억할 만한 일은 그런 시간에서 비롯한다. 모든 시인과 영웅은 멤논처럼 아우로라의 자식이며, 해 뜰 때 음악을 울린다. 탄력 있고 힘찬 생각으로 해와 발을 맞추는 사람에게 하루는 끝없는 아침이다. 시계가 무엇이라 하든, 사람들이 어떤 몸짓으로 무슨 수고를 하든 상관없다. 아침은 내가 깨어 있고 내 안에 새벽이 있을 때다. 도덕의 개혁이란 잠을 떨쳐 내려는 노력이다. 사람들이 잠들어 있지 않았다면 어째서 자기 하루를 그토록 보잘것없이 셈하겠는가? 그들은 그렇게 서툰 셈꾼이 아니다. 졸음에 지지 않았다면 무언가를 해냈을 것이다. 수백만이 몸 쓰는 일을 할 만큼은 깨어 있다. 그러나 지적인 노력을 제대로 할 만큼 깨어 있는 사람은 백만에 하나, 시적이거나 신성한 삶에 이를 만큼 깨어 있는 사람은 일억에 하나뿐이다. 깨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완전히 깨어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만났다면 내가 어떻게 그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기계의 도움이 아니라, 가장 깊은 잠 속에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는 새벽에 대한 끝없는 기대로 다시 깨어나고 깨어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이 의식적인 노력으로 자기 삶을 높일 수 있다는, 의심할 여지 없는 그 능력보다 더 힘이 되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한다. 어떤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상을 새겨 몇몇 대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내다보는 바로 그 대기와 매질을 새기고 칠하는 것은 훨씬 더 영광스러운 일이며, 도덕적으로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있다. 하루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것이 가장 높은 예술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삶을, 그 세세한 부분까지, 자기의 가장 고양되고 가장 엄정한 시간에 돌아보아도 부끄럽지 않게 만들 과제가 지워져 있다. 우리가 얻는 하찮은 정보를 거절한다면, 아니 남김없이 다 써 버린다면, 신탁은 이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 똑똑히 일러 줄 것이다.
내가 숲으로 간 것은 깨어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삶의 본질적인 사실들만 마주하고, 삶이 가르쳐야 하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었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살지 않았음을 깨닫는 일은 없기를 바랐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그토록 귀하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체념을 익히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깊이 살면서 삶의 골수를 남김없이 빨아들이고 싶었고, 스파르타 사람처럼 굳세게 살아서 삶이 아닌 것은 모조리 몰아내고 싶었으며, 낫질을 넓게 하고 풀을 바싹 깎아 삶을 구석으로 몰아넣고는 분수를 약분하듯 가장 간단한 꼴로 줄여 보고 싶었다. 그래서 삶이 비천한 것으로 드러나면 그 비천함을 고스란히 다 맛보고 세상에 알리고, 숭고한 것이라면 몸소 겪어서 알고 다음 글에서 참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대부분 삶이 악마의 것인지 신의 것인지 묘하게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사람의 으뜸가는 목적은 "신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조금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 버렸기 때문이다.5
옛이야기는 우리가 오래전에 개미에서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개미처럼 비천하게 산다. 피그미족처럼 두루미와 싸우고, 잘못에 잘못을 덧대고 누더기에 누더기를 기우며, 우리의 가장 훌륭한 덕조차 없어도 될 비참함, 피할 수도 있었던 비참함을 계기로 삼는다. 우리의 삶은 자질구레한 일에 조금씩 닳아 없어진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열 손가락보다 많이 셀 일이 거의 없고, 아주 드물게 열 발가락을 보태면 나머지는 한데 뭉뚱그려도 된다. 단순하게, 단순하게, 단순하게! 내 말은 이렇다. 할 일은 백 가지나 천 가지가 아니라 두세 가지로 두라. 백만 대신 여섯까지만 세고, 장부는 엄지손톱에 적으라. 문명 생활이라는 이 거친 파도 한가운데에서는 헤아려 두어야 할 구름과 폭풍과 모래 수렁과 천한 가지 항목이 너무 많아서, 사람은 난파해 바닥으로 가라앉아 끝내 항구에 닿지 못하는 꼴을 면하려면 추측 항법으로 살아야 하며, 그렇게 해서 살아남는 사람은 참으로 대단한 셈꾼임에 틀림없다. 단순하게 하라, 단순하게. 필요하다면 하루 세 끼 대신 한 끼만 먹고, 백 가지 요리 대신 다섯 가지만 먹고, 다른 것들도 그만큼 줄이라. 우리의 삶은 독일 연방과 같다. 작은 나라들로 이루어졌고 국경이 끝없이 오락가락해서, 독일 사람조차 어느 때든 그 경계가 어떻게 그어져 있는지 말하지 못한다. 나라 자체도 이른바 국내 개량 사업이라는 것을 다 갖추었지만(말이 났으니 말이지 그것은 모두 안이 아니라 겉을 손보는 일이고 피상적이다), 이 땅의 백만 가구와 똑같이 다루기 힘들게 웃자란 살림이어서, 가구로 어수선하고 제가 놓은 덫에 걸려 넘어지며, 사치와 무분별한 씀씀이로, 셈이 모자라고 값진 목표가 없어서 망가져 있다. 그러니 그 집들에나 나라에나 유일한 처방은 엄격한 경제, 곧 스파르타 사람보다 더 엄한 삶의 단순함과 목적의 고양에 있다. 나라는 너무 빨리 산다. 사람들은 나라가 상업을 하고, 얼음을 수출하고, 전신으로 말을 주고받고, 한 시간에 30마일을 달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의심 없이 생각한다. 자기들이 그렇게 하든 말든. 그러나 우리가 비비원숭이처럼 살아야 하는지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지는 조금 불확실하다. 우리가 침목을 내고 레일을 벼리고 밤낮을 그 일에 바치지 않고, 우리의 삶을 손보아 그것을 개량하는 데 매달린다면 누가 철도를 놓겠는가? 그리고 철도가 놓이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제때 천국에 가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집에 머물며 제 일에 마음을 쓴다면 누가 철도를 원하겠는가? 우리가 철도를 타는 것이 아니다. 철도가 우리를 타고 달린다. 철도 밑에 깔린 침목(sleeper), 그 잠자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하나하나가 사람이다. 아일랜드 사람이거나 양키다. 그 위에 레일이 깔리고 모래가 덮이고, 기차는 그 위를 부드럽게 달린다. 장담하건대 그들은 곤히 잠들어 있다. 그리고 몇 해마다 새 무리가 깔리고 그 위로 기차가 지나간다. 그러니 누군가 레일을 타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다른 누군가는 깔리는 불운을 겪는다. 그런데 기차가 잠결에 걷는 사람, 엉뚱한 자리에 놓인 여분의 침목을 치고 지나가 그를 깨우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갑자기 기차를 세우고 마치 이것이 예외라는 듯 떠들썩하게 소리친다. 침목들이 지금처럼 제자리에 반듯이 누워 있게 하려면 5마일마다 인부 한 무리가 붙어야 한다니 나는 기쁘다. 언젠가 그들이 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표시이니까.
우리는 왜 이토록 서두르며 삶을 낭비하며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기로 작정했다. 사람들은 제때 한 땀이 아홉 땀을 던다면서 내일 아홉 땀을 덜려고 오늘 천 땀을 꿰맨다. 일로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대단한 일이 하나도 없다. 우리는 성 비토의 춤이라는 무도병에 걸려 머리를 가만히 두지 못한다. 내가 교구 종 줄을 몇 번만 잡아당겨도, 불이 났을 때처럼, 그러니까 종을 제대로 세워 놓지 않고 울리기만 해도, 콩코드 변두리 농장에 있는 남자는 오늘 아침에만 몇 번이나 핑계로 댄 그 바쁜 일거리가 있는데도 거의 하나 빠짐없이, 사내아이도, 감히 말하자면 여자도, 모든 것을 내던지고 그 소리를 따라올 것이다. 불길에서 재산을 건지려는 마음이 앞서서가 아니라, 솔직히 털어놓자면 불이 타는 것을 보려는 마음이 훨씬 커서다. 어차피 탈 수밖에 없고, 알다시피 불을 지른 것은 우리가 아니니까. 아니면 불을 끄는 것을 구경하고 한 손 거들려는 것이다. 그쪽이 그만큼 멋지게 끝난다면. 그렇다, 그것이 교구 교회 자체라 해도 그렇다. 점심을 먹고 반 시간 낮잠을 잔 사람도 거의 예외 없이, 깨어나면 고개를 들고 "무슨 소식 있나?" 하고 묻는다. 마치 나머지 인류가 그를 위해 보초라도 서 준 듯이. 어떤 사람은 반 시간마다 깨워 달라고 일러 두는데, 틀림없이 그 밖의 목적은 없다. 그러고는 그 값을 치르려고 꿈 이야기를 한다. 밤잠을 자고 나면 소식은 아침밥만큼이나 없어서는 안 된다. "이 지구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일어난 새로운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 주시오." 그러고는 커피와 롤빵을 앞에 놓고, 오늘 아침 와치토강에서 어떤 사람이 눈알을 도려냈다는 기사를 읽는다. 그동안 자기가 이 세상이라는, 어둡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매머드 동굴에 살면서 자기 자신도 눈이라고는 흔적만 남았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나로 말하면 우체국 없이도 거뜬히 살 수 있다. 우체국을 거쳐 오가는 중요한 소식은 아주 드물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해 내가 평생 받은 편지 가운데 우편 요금만큼 값어치가 있었던 것은 한두 통뿐이다. 이 글은 몇 해 전에 썼다. 1페니 우편이란 대개, 농담으로는 흔히 아무 탈 없이 건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해 주면 1페니 주지" 하는 그 1페니를 진지하게 건네는 장치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신문에서 기억할 만한 소식을 읽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자신한다. 한 사람이 강도를 당하거나 살해되거나 사고로 죽었다는 기사, 집 한 채가 불탔다거나 배 한 척이 난파했다거나 증기선 한 척이 폭발했다는 기사, 소 한 마리가 웨스턴 철도에서 치였다거나 미친개 한 마리를 잡았다거나 겨울에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는 기사를 한 번 읽었다면, 다른 기사는 읽을 필요가 없다. 하나면 충분하다. 원리를 안다면 무수한 사례와 응용이 무슨 상관인가? 철학자에게 이른바 소식이라는 것은 모두 잡담이며, 그것을 엮고 읽는 사람들은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늙은 아낙네들이다. 그런데도 이 잡담을 탐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들리는 말로는 며칠 전 어느 신문사에 마지막 배편으로 들어온 외국 소식을 알려는 사람이 어찌나 몰려들었는지 그 사무실의 커다란 판유리 몇 장이 밀려서 깨졌다고 한다. 내가 진지하게 생각하기로, 그런 소식은 재치 있는 사람이라면 열두 달 전에, 아니 열두 해 전에 미리 써 두어도 충분히 정확할 것이다. 이를테면 스페인이라면, 돈 카를로스와 왕녀, 돈 페드로와 세비야와 그라나다를 때때로 알맞은 비율로 버무려 넣을 줄 알고(내가 신문을 본 뒤로 이름이 조금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볼거리가 떨어지면 투우 한 판을 내놓으면, 그 기사는 한 글자도 틀리지 않을 것이고, 신문에 이 제목으로 실리는 가장 간결하고 명쾌한 보도만큼이나 스페인의 정확한 형편이나 몰락상을 잘 알려 줄 것이다. 영국으로 말하자면, 그쪽에서 온 의미 있는 소식 쪼가리로는 1649년의 혁명이 거의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보통 해의 그 나라 작황 내력을 한 번 익혔다면, 셈속이 순전히 돈에 관한 것이 아닌 한 다시는 그 일에 마음 쓸 필요가 없다. 신문을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이 판단해도 된다면, 외국에서는 새로운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도 예외가 아니다.
소식이라니! 결코 낡은 적이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일이 얼마나 더 중요한가! "위(衛)나라의 높은 대부 거백옥(蘧伯玉)이 공자에게 사람을 보내 소식을 물었다. 공자는 심부름꾼을 곁에 앉히고 이렇게 물었다. 주인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신가? 심부름꾼이 공손히 대답했다. 제 주인께서는 허물을 줄이려 하시지만 아직 끝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심부름꾼이 떠나자 철학자가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심부름꾼이구나! 참으로 훌륭한 심부름꾼이구나!"6 설교자는 한 주의 끝 쉬는 날에 꾸벅꾸벅 조는 농부들의 귀를 또 한 편의 질질 끄는 설교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일요일은 잘못 보낸 한 주에 걸맞은 끝맺음이지 새 주를 여는 신선하고 씩씩한 시작이 아니니까) 우레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외쳐야 한다. "멈추라! 거기 서라! 어째서 겉으로는 그리 빠른 듯하면서 실은 죽도록 느린가?"
거짓과 망상은 가장 확실한 진리로 떠받들어지는데, 실재는 꾸며 낸 이야기로 여겨진다. 사람들이 꾸준히 실재만을 바라보고 스스로 속지 않는다면, 삶은, 우리가 아는 것에 견주자면, 동화나 『아라비안나이트』 같을 것이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 있을 권리가 있는 것만 존중한다면 음악과 시가 거리마다 울려 퍼질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지혜로울 때 우리는 크고 값진 것만이 영원하고 절대적으로 존재하며, 하찮은 두려움과 하찮은 즐거움은 실재의 그림자일 뿐임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언제나 우리를 들뜨게 하고 숭고하다.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잠들어 겉모습에 속기로 동의함으로써 어디서나 판에 박힌 일상과 습관의 삶을 세우고 굳히는데, 그 삶은 여전히 순전한 환상 위에 지어져 있다. 삶을 놀이로 하는 아이들이, 삶을 값지게 살지 못하면서도 경험으로, 곧 실패로 더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하는 어른들보다 삶의 참된 법칙과 관계를 더 또렷이 알아본다. 나는 어느 힌두의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한 왕자가 있었는데, 어려서 태어난 도성에서 쫓겨나 어느 숲지기의 손에 자랐다. 그런 처지에서 어른이 되자 그는 자기가 함께 살던 야만족에 속한다고 여겼다. 그러다 아버지의 대신 하나가 그를 찾아내 그가 누구인지 알려 주자, 자기를 잘못 알던 생각이 걷히고 그는 자기가 왕자임을 알았다." 힌두 철학자는 이어서 말한다. "영혼도 이와 같아서, 자기가 놓인 처지 때문에 제 본성을 잘못 알다가 어느 거룩한 스승이 진리를 드러내 주면 그때 자기가 브라흐만임을 안다." 우리 뉴잉글랜드 사람들이 지금처럼 비천한 삶을 사는 것은 우리의 눈이 사물의 겉을 꿰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우리는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을 있는 것이라 여긴다. 어떤 사람이 이 읍을 걸어 지나가며 실재만을 본다면 "밀댐"은 어디로 가 버리겠는가? 그가 거기서 본 실재를 우리에게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그의 묘사에서 그곳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예배당이나 법원이나 감옥이나 가게나 살림집을 보고, 참된 눈길 앞에서 그것이 정말로 무엇인지 말해 보라. 이야기하는 사이에 그것들은 모두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사람들은 진리가 먼 곳, 우주의 변두리, 가장 먼 별 너머, 아담보다 앞서고 마지막 사람보다 뒤에 있다고 여긴다. 영원 속에는 참으로 참되고 숭고한 무엇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때와 곳과 기회는 지금 여기에 있다. 신 자신도 지금 이 순간에 절정에 이르며,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이보다 더 신성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숭고하고 고귀한 것을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실재가 끊임없이 스며들고 흠뻑 적셔 주기 때문이다. 우주는 우리의 구상에 언제나 고분고분 응답한다. 우리가 빨리 가든 느리게 가든 길은 우리를 위해 놓여 있다. 그러니 구상하는 데 삶을 쓰자. 시인이나 예술가가 아무리 아름답고 고귀한 구상을 품었더라도, 그의 후손 가운데 적어도 누군가가 그것을 이루어 내지 못한 적은 아직 없었다.
하루만이라도 자연처럼 찬찬히 보내자. 레일 위에 떨어지는 견과 껍데기 하나, 모기 날개 하나에 궤도에서 튕겨 나가지 말자. 일찍 일어나 아침을 굶든, 굶기를 깨뜨려 아침을 먹든, 부드럽게 흔들림 없이 보내자. 손님이 오면 오게 하고 가면 가게 하고, 종이 울리면 울리게 하고 아이들이 울면 울게 두자. 하루를 온전히 하루답게 보내기로 마음먹고. 우리가 왜 굴복하고 물결에 휩쓸려 가야 하는가? 정오의 얕은 여울에 자리 잡은, 점심이라는 무시무시한 급류와 소용돌이에 뒤집히거나 휩쓸리지 말자. 이 위험만 헤쳐 나가면 안전하다. 나머지 길은 내리막이니까. 신경을 늦추지 말고 아침의 기운으로, 오디세우스처럼 돛대에 몸을 묶고 딴 데를 바라보며 그 곁을 지나가라. 기관차가 기적을 울리면 수고한 값으로 목이 쉬도록 울리게 두라. 종이 울린다고 우리가 왜 달려가야 하는가? 그것들이 어떤 음악을 닮았는지나 생각해 보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론과 편견과 전통과 망상과 겉모습이라는 진흙과 진창, 지구를 뒤덮은 그 충적토를 뚫고, 파리와 런던을 지나, 뉴욕과 보스턴과 콩코드를 지나, 교회와 국가를 지나, 시와 철학과 종교를 지나, 우리가 실재라고 부를 수 있는 단단한 바닥과 제자리에 박힌 바위에 닿을 때까지 두 발을 쐐기처럼 박으며 밀고 내려가자. 그리고 "이것이다, 틀림없다" 하고 말하자. 그런 다음 홍수와 서리와 불이 미치지 않는 그 받침점에서 시작하자. 거기는 성벽이나 국가의 터를 닦거나, 가로등 기둥을 안전하게 세우거나, 어쩌면 눈금 기둥을, 나일강 수위계가 아니라 실재 수위계를 세워서, 거짓과 겉모습의 홍수가 때때로 얼마나 깊이 불어났는지 뒷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할 만한 자리다. 어떤 사실과 똑바로 얼굴을 마주하고 서면, 그 사실의 양면에 언월도처럼 햇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그 달콤한 날이 심장과 골수까지 우리를 가르는 것을 느끼며, 그렇게 기꺼이 이승의 길을 마치게 될 것이다. 삶이든 죽음이든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오직 실재뿐이다. 우리가 정말로 죽어 가고 있다면 목에서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손발 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자. 살아 있다면 제 할 일을 하러 가자.
시간은 내가 낚시하러 가는 개울일 뿐이다. 나는 그 물을 마신다. 그러나 마시는 동안 모래 바닥이 보이고, 그것이 얼마나 얕은지 알아챈다. 그 가는 물줄기는 미끄러져 흘러가 버리지만 영원은 남는다. 나는 더 깊이 마시고 싶다. 바닥에 별들이 조약돌처럼 깔린 하늘에서 낚시하고 싶다. 나는 별 하나도 세지 못한다. 알파벳 첫 글자도 모른다. 태어나던 날만큼 지혜롭지 못한 것을 나는 늘 아쉬워해 왔다. 지성은 고기를 가르는 큰 칼이다. 그것은 사물의 비밀을 가려내고 쪼개며 길을 낸다. 나는 필요한 것 이상으로 손을 바삐 놀리고 싶지 않다. 내 머리가 손이고 발이다. 내 가장 좋은 능력이 모두 거기 모여 있는 것을 느낀다. 어떤 짐승들이 주둥이와 앞발을 쓰듯 내 머리는 땅을 파는 기관이라고 본능이 일러 주니, 나는 그것으로 이 언덕들을 파 들어가며 길을 내고 싶다. 가장 풍부한 광맥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점치는 막대와 엷게 피어오르는 김을 보고 그렇게 판단한다. 그러니 여기서부터 파 들어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