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밭
그러는 동안 이미 심어 놓은 내 콩은, 이랑의 길이를 다 이으면 7마일이나 되었는데, 김을 매 주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가장 먼저 심은 것은 가장 늦게 심은 것이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꽤 자라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콩은 쉽게 미루어 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토록 꾸준하고 자존심 강한 일, 이 작은 헤라클레스의 노동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바란 것보다 훨씬 많았지만 나는 내 이랑을, 내 콩을 사랑하게 되었다. 콩은 나를 땅에 붙들어 매었고, 그래서 나는 안타이오스처럼 힘을 얻었다. 그러나 나는 왜 콩을 길러야 하는가? 하늘만이 안다. 여름 내내 나는 이 진기한 일에 매달렸다. 전에는 양지꽃이며 블랙베리며 고추나물 따위, 달콤한 야생 열매와 어여쁜 꽃밖에 내지 않던 지구 표면의 이 한 조각이 그 대신 이 콩을 내게 하는 일이었다. 나는 콩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콩은 나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나는 콩을 아끼고, 김을 매고, 아침저녁으로 눈여겨본다. 이것이 나의 하루 일이다. 보기에 넓적하고 좋은 잎이다. 나를 돕는 군대는 이 메마른 흙을 적셔 주는 이슬과 비, 그리고 흙 자체에 든 기름기인데, 흙은 대부분 메마르고 기운이 다했다. 나의 적은 벌레와 서늘한 날씨, 그리고 무엇보다 우드척이다. 우드척은 내 밭 4분의 1에이커를 말끔히 갉아 먹어 치웠다. 그러나 나에게 무슨 권리가 있어서 고추나물과 그 나머지를 쫓아내고 그들의 오래된 약초밭을 갈아엎었단 말인가? 그래도 남은 콩은 곧 우드척에게는 너무 질겨질 것이고, 앞으로 나아가 새로운 적들을 맞을 것이다.
똑똑히 기억하거니와, 네 살 때 나는 보스턴에서 이곳 내 고향 읍으로 실려 와서, 바로 이 숲과 이 밭을 지나 호수까지 왔다. 그것은 내 기억에 새겨진 가장 오래된 장면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지금 오늘 밤, 내 피리 소리가 바로 그 물 위로 메아리를 깨웠다. 소나무들은 나보다 나이를 먹은 채 아직 여기 서 있다. 더러 쓰러진 것이 있다면 나는 그 그루터기로 저녁밥을 지었고, 사방에서 새로 돋는 나무들이 새로운 어린 눈을 위해 또 다른 풍경을 마련하고 있다. 이 목초지에서는 거의 똑같은 고추나물이 똑같은 여러해살이 뿌리에서 돋아나고, 나조차 마침내 내 어린 시절 꿈속의 그 꿈같은 풍경에 옷을 입히는 일을 거들었으니, 내가 여기 있고 손을 댄 결과 가운데 하나를 이 콩잎과 옥수숫잎과 감자 덩굴에서 볼 수 있다.
나는 높은 땅 2에이커 반쯤에 씨를 뿌렸다. 그 땅은 개간한 지 열다섯 해 남짓밖에 되지 않았고 나 자신도 그루터기를 두세 코드나 캐냈으므로 거름은 주지 않았다. 그런데 여름 동안 김을 매다가 뒤집혀 나온 화살촉들을 보니, 이제는 사라진 어느 겨레가 백인이 와서 땅을 개간하기 전에 옛적부터 이곳에 살면서 옥수수와 콩을 심었고, 그래서 바로 이 작물을 기르기에는 땅의 기운을 얼마간 이미 다 써 버린 듯했다.
우드척이나 다람쥐가 아직 길을 건너가기 전에, 해가 떡갈나무 덤불 위로 솟기도 전에, 이슬이 아직 다 맺혀 있는 동안, 농부들이 그러지 말라고 일렀는데도 (나는 여러분에게 될 수 있으면 모든 일을 이슬이 맺혀 있는 동안에 하라고 권하겠다) 나는 콩밭의 오만한 잡초들의 대열을 쓰러뜨리고 그 머리 위에 흙먼지를 끼얹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는 맨발로 일하며 이슬에 젖어 부슬부슬한 모래를 조각가처럼 주물렀지만, 한낮이 지나면 햇볕에 발에 물집이 잡혔다. 거기서 해는 내가 콩밭을 매도록 비추었고, 나는 그 누런 자갈투성이 높은 땅 위에서 15로드나 되는 긴 초록 이랑 사이를 천천히 오갔다. 이랑 한쪽 끝은 그늘에서 쉴 수 있는 떡갈나무 덤불숲에 닿았고, 다른 쪽 끝은 블랙베리 밭에 닿았는데, 내가 한 바퀴 더 돌고 오면 그곳의 푸른 열매는 그새 빛깔이 짙어져 있었다. 잡초를 뽑고, 콩 줄기 둘레에 새 흙을 북돋우고, 내가 뿌린 이 풀을 북돋워 주는 것, 누런 흙이 여름의 생각을 쑥이나 피리풀이나 기장풀이 아니라 콩잎과 콩꽃으로 나타내게 하고, 땅이 풀 대신 콩을 말하게 하는 것, 이것이 나의 하루 일이었다. 말이나 소, 품팔이 일꾼이나 소년, 개량된 농기구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했으므로 나는 훨씬 더뎠고, 그만큼 내 콩과 여느 때보다 훨씬 가까워졌다. 그러나 손으로 하는 노동은 고역에 가까울 만큼 밀어붙인다 해도 아마 결코 가장 나쁜 꼴의 게으름은 아닐 것이다. 그것에는 변함없고 사라지지 않는 교훈이 있고, 학자에게는 고전과 같은 결실을 안겨 준다. 링컨과 웨이랜드를 지나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서쪽을 향해 가는 나그네들에게 나는 그야말로 agricola laboriosus, 부지런한 농사꾼이었다. 그들은 두 바퀴 마차에 편히 앉아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고삐를 꽃줄처럼 느슨히 늘어뜨렸고, 나는 집에 머물며 땅을 일구는 부지런한 토박이였다. 그러나 내 집터는 곧 그들의 눈과 생각에서 사라졌다. 길 양쪽으로 한참 동안 트이고 일군 밭은 내 밭 하나뿐이었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한껏 구경거리로 삼았고, 밭에 있는 사람은 이따금 나그네들의 수다와 촌평을 자기 귀에 들리라고 한 것보다 더 많이 들었다. "콩을 이렇게 늦게! 완두를 이렇게 늦게!" 다른 사람들이 김매기를 시작했을 때도 나는 계속 씨를 뿌렸기 때문인데, 목사 같은 그 농사꾼은 그런 줄을 짐작도 못 했다. "옥수수야, 얘야, 사료로는 옥수수지. 사료로는 옥수수." "저 사람이 저기 산다고?" 검은 보닛이 회색 외투에게 묻는다. 그리고 험상궂은 얼굴의 농부는 고마운 늙은 말의 고삐를 당겨 세우고는, 고랑에 거름이 보이지 않는데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고 묻고, 나무 부스러기 거름을 조금, 아니면 무엇이든 하찮은 찌꺼기를, 그도 아니면 재나 석고를 주라고 권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2에이커 반의 고랑이 있었고, 수레라고는 괭이 하나, 그것을 끄는 것은 두 손뿐이었다. 다른 수레와 말은 내키지 않았고, 나무 부스러기 거름은 멀리 있었다.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길동무들은 내 밭을 자기들이 지나온 밭들과 큰 소리로 견주었으므로, 나는 농업계에서 내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것은 콜먼 씨의 보고서에 들지 않은 밭이었다.1 그런데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사람이 손대지 않은 더 야생의 들판에서 자연이 내는 작물의 가치는 누가 매기는가? 영국 건초의 수확량은 꼼꼼히 무게를 달고 수분과 규산염과 칼리까지 계산하지만, 숲과 목초지와 늪의 모든 골짜기와 웅덩이에는 다만 사람이 거두지 않을 뿐인 풍성하고 갖가지인 작물이 자란다. 내 밭은 말하자면 야생의 들판과 일군 밭을 잇는 고리였다. 어떤 나라는 문명화되었고 어떤 나라는 반쯤 문명화되었으며 또 어떤 나라는 야만스럽거나 미개하듯이, 내 밭은 나쁜 뜻에서가 아니라 반쯤 일군 밭이었다. 내가 기른 것은 기꺼이 야생의 원시 상태로 돌아가는 콩이었고, 내 괭이는 그들을 위해 스위스 목동이 소를 부르는 노래를 연주했다.
가까운 자작나무 꼭대기 잔가지에서는 갈색지빠귀가, 더러는 붉은 개똥지빠귀라고 부르기를 좋아하는 그 새가 아침 내내 노래한다. 여러분과 함께 있어서 기쁜 것인데, 여러분의 밭이 여기 없었다면 다른 농부의 밭을 찾아냈을 것이다. 여러분이 씨를 심는 동안 그 새는 이렇게 외친다. "떨궈, 떨궈, 덮어, 덮어, 뽑아, 뽑아, 뽑아." 그러나 이것은 옥수수가 아니었으므로 그런 적에게서 안전했다. 줄 하나로 또는 스무 개로 하는 그 아마추어 파가니니의 연주, 그 장황한 넋두리가 여러분의 씨뿌리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여러분은 의아할 것이다. 그래도 여러분은 그것을 우려낸 재나 석고보다 낫게 여길 것이다. 그것은 내가 전적으로 믿은 값싼 웃거름이었다.
괭이로 이랑 둘레에 더 새로운 흙을 끌어모으다가 나는 태곳적에 이 하늘 아래 살았던, 기록되지 않은 겨레들의 재를 휘저었고, 그들의 자그마한 전쟁 도구와 사냥 도구가 이 근대의 햇빛 속으로 드러났다. 그것들은 다른 자연석과 섞여 있었는데, 그 돌들 가운데 어떤 것에는 원주민의 불에 그을린 자국이, 어떤 것에는 햇볕에 탄 자국이 있었고, 최근에 이 땅을 일군 사람들이 가져온 질그릇과 유리 조각도 섞여 있었다. 내 괭이가 돌에 부딪혀 쨍그랑거리면 그 음악이 숲과 하늘로 메아리쳐 내 노동의 반주가 되었고, 그 노동은 당장에 헤아릴 수 없는 수확을 거두었다. 내가 김매는 것은 이제 콩이 아니었고, 콩을 매는 것도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오라토리오를 들으러 도시로 간 지인들을, 혹시라도 떠올린다면, 자랑만큼이나 딱한 마음으로 떠올렸다. 해가 쨍한 오후면 (나는 이따금 하루를 꼬박 밭에서 보냈다) 밤매(nighthawk)가 눈 속의 티끌처럼, 아니 하늘의 눈 속의 티끌처럼 머리 위를 맴돌다가, 이따금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휙 내리꽂혔다. 하늘은 마침내 갈가리 넝마가 되도록 찢기는데도 솔기 없는 망토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작은 요정들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언덕 꼭대기 맨모래나 바위 위 땅바닥에 알을 낳는데, 그 알을 찾아낸 사람은 드물다. 바람에 들려 하늘에 떠도는 나뭇잎처럼 호수에서 건져 올린 잔물결처럼 우아하고 날씬하니, 자연에는 그러한 핏줄이 있다. 매는 그가 날아 건너며 굽어보는 물결의 하늘 형제이고, 공기를 머금은 그 완벽한 날개는 바다의 깃털 없는 원초의 날개에 화답한다. 또 이따금 나는 닭매 한 쌍이 하늘 높이 맴돌며 번갈아 솟구쳤다 내려앉고, 서로 다가갔다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그들은 마치 내 생각이 몸을 입은 것 같았다. 또 나는 이 숲에서 저 숲으로 날아가는 야생 비둘기들이 가볍게 떨리는 키질 소리를 내며 편지 나르는 비둘기처럼 서둘러 지나가는 데에 마음이 끌렸다. 또는 내 괭이가 썩은 그루터기 밑에서, 굼뜨고 불길해 보이고 낯선 점박이 도롱뇽을 뒤집어 냈다. 이집트와 나일강의 흔적이면서도 우리와 한 시대를 사는 놈이었다. 괭이에 기대어 쉴 때면 나는 이랑 어디에서나 이런 소리를 듣고 이런 광경을 보았는데, 시골이 내놓는 끝없는 즐거움의 한 자락이었다.
경축일이면 읍에서는 큰 대포를 쏘는데, 그 소리가 이 숲에는 장난감 딱총처럼 메아리치고, 군악의 몇 가락이 이따금 이렇게 멀리까지 흘러들기도 한다. 읍의 다른 쪽 끝 멀리 콩밭에 있는 나에게는 큰 대포 소리가 말불버섯 하나가 터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내가 모르는 군대 사열이 있는 날이면 나는 이따금 하루 종일, 지평선에 무슨 가려움증이나 병이 돌아서 곧 성홍열이든 궤양성 발진이든 무엇이 거기서 돋아날 것 같은 막연한 느낌에 시달렸는데, 마침내 더 고마운 바람 한 줄기가 들판을 서둘러 건너고 웨이랜드 길을 따라 올라와서 "훈련병들"의 소식을 전해 주곤 했다. 멀리서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누군가의 벌들이 분봉을 해서, 이웃들이 베르길리우스의 가르침대로 집에서 가장 잘 울리는 세간을 두드려 희미한 tintinnabulum, 방울 소리를 내며 벌들을 다시 벌통으로 불러들이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소리가 아주 잦아들고 웅웅거림이 그치고 가장 고마운 산들바람도 아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나는 그들이 마지막 수벌 한 마리까지 무사히 미들섹스 벌통에 들여보냈으며 이제는 벌통에 발라 둔 꿀에 마음을 쏟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매사추세츠와 우리 조국의 자유가 그토록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음을 알자 나는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다시 김매기로 돌아섰을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확신으로 가득 찼고, 미래를 차분히 믿으며 기꺼이 일을 계속했다.
악대가 여럿 나오는 날이면 온 마을이 거대한 풀무가 되어 모든 건물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번갈아 부풀었다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따금 정말로 고결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가락이 이 숲에 닿기도 했고, 명예를 노래하는 나팔 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면 나는 멕시코 사람 하나쯤은 신나게 꼬챙이에 꿸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언제까지 사소한 것만 지키고 있어야 하겠는가?) 내 기사도를 시험해 볼 우드척이나 스컹크가 없나 둘레를 살폈다. 이 군가 가락은 팔레스타인만큼이나 멀리 들렸고, 마을 위로 드리운 느릅나무 우듬지가 사냥 나팔 소리에 맞추어 가볍게 떨리는 모습은 지평선을 행진하는 십자군을 떠올리게 했다. 이날은 대단한 날 가운데 하루였다. 하지만 내 개간지에서 보는 하늘은 날마다 짓는 그 영원히 대단한 얼굴 그대로였고, 나는 거기서 아무런 차이도 보지 못했다.
콩을 심고, 김매고, 거두고, 타작하고, 고르고, 내다 팔면서 (파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내가 콩과 맺은 오랜 사귐은 남다른 경험이었다. 먹는 일도 덧붙일 수 있겠다. 나는 맛을 보았으니까. 나는 콩을 제대로 알기로, 하다못해 콩인지 팥인지는 가릴 줄 알게 되기로 작정했다. 콩이 자라는 동안 나는 아침 다섯 시부터 정오까지 김을 매곤 했고, 하루의 나머지는 대개 다른 일로 보냈다. 갖가지 잡초와 맺게 되는 친밀하고 진기한 사귐을 생각해 보라. 노동에 되풀이가 적지 않았으니 이야기에도 되풀이가 얼마간 허락될 것이다. 그들의 섬세한 조직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흩뜨리고, 괭이로 그토록 얄궂게 차별을 두어, 한 종은 대열째 쓰러뜨리고 다른 종은 부지런히 길러 낸다. 저건 돼지풀이고, 저건 명아주고, 저건 수영이고, 저건 피리풀이다. 달려들라, 잘게 찍으라, 뿌리를 해 쪽으로 뒤집으라, 실뿌리 하나라도 그늘에 두지 말라, 그랬다가는 이틀 만에 몸을 뒤집어 대파처럼 시퍼렇게 살아날 테니. 두루미가 아니라 잡초와 벌이는 긴 전쟁, 해와 비와 이슬을 제 편에 둔 저 트로이 사람들과 벌이는 전쟁이었다. 날마다 콩들은 내가 괭이로 무장하고 구하러 와서 적의 대열을 솎아 내고 참호를 잡초의 주검으로 메우는 것을 보았다. 북적이는 동료들보다 1피트나 우뚝 솟아 투구 깃을 흔들던 헥토르 같은 억센 놈들이 수없이 내 무기 앞에 쓰러져 흙먼지 속을 굴렀다.
내 동시대인들 가운데 어떤 이는 보스턴이나 로마에서 미술에, 어떤 이는 인도에서 명상에, 또 어떤 이는 런던이나 뉴욕에서 장사에 바친 그 여름날들을, 나는 이렇게 뉴잉글랜드의 다른 농부들과 함께 농사에 바쳤다. 콩을 먹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콩에 관한 한 나는 타고난 피타고라스학파여서, 콩이 죽을 뜻하든 투표를 뜻하든 콩을 멀리했고,2 거둔 콩은 쌀과 바꾸었다. 그러나 비유와 표현을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밭에서 일해야 하듯, 어쩌면 언젠가 우화를 짓는 이에게 쓸모가 있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그것은 대체로 드문 놀이였고, 너무 오래 계속했다면 방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거름을 주지 않았고 콩밭 전체를 한 번씩 다 매지도 못했지만, 손이 간 데까지는 남달리 잘 맸고 결국 그 보답을 받았다. 이블린의 말처럼 "사실 삽으로 흙을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이고 다시 갈고 뒤집는 것에 견줄 만한 퇴비나 비료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데서 이렇게 덧붙인다. "흙은, 특히 새 흙이라면, 그 안에 일종의 자력이 있어서, 그것으로 흙에 생명을 주는 소금이나 힘이나 덕(어느 이름으로 부르든)을 끌어당긴다. 우리가 우리를 먹여 살리려고 흙에 들이는 모든 노동과 법석의 이치가 바로 그것이다. 온갖 거름 주기와 그 밖의 지저분한 손질은 이 개량을 대신하는 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 밭은 "안식일을 누리는, 낡고 기운이 다한 묵정밭" 가운데 하나였으므로, 케넬름 딕비 경이 그럴 법하다고 여기듯 어쩌면 공기에서 "생명의 기운"을 끌어당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콩 12부셸을 거두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말하자면, 콜먼 씨가 주로 신사 농부들의 돈 많이 드는 실험만 보고했다는 불평이 있으니 말인데, 내 지출은 다음과 같았다.
| 괭이 | $0.54 | |
| 쟁기질, 써레질, 고랑 내기 | 7.50 | 너무 많다. |
| 씨콩 | 3.12½ | |
| 씨감자 | 1.33 | |
| 씨완두 | 0.40 | |
| 순무 씨 | 0.06 | |
| 까마귀 막이 울타리용 흰 줄 | 0.02 | |
| 말 경운기와 소년 세 시간 | 1.00 | |
| 수확물을 실어 올 말과 수레 | 0.75 | |
| 합계 | $14.72½ |
내 수입은 (patrem familias vendacem, non emacem esse oportet)3 다음에서 나왔다.
| 판 콩 9부셸 12쿼트 | $16.94 | |
| 큰 감자 5부셸 | 2.50 | |
| 작은 감자 9부셸 | 2.25 | |
| 풀 | 1.00 | |
| 줄기 | 0.75 | |
| 합계 | $23.44 | |
| 다른 데서 말했듯이 남는 돈 | $8.71½ |
콩을 기른 내 경험의 결과는 이렇다. 흔한 작은 흰 덤불콩을 6월 1일 무렵, 이랑 사이는 3피트, 포기 사이는 18인치로 심으라. 싱싱하고 둥글고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씨를 고르도록 조심하라. 먼저 벌레를 살피고, 빈자리는 다시 심어 메우라. 다음으로 드러난 곳이라면 우드척을 살피라. 우드척은 가장 먼저 돋은 여린 잎을 지나가면서 거의 말끔히 갉아 먹고, 또 어린 덩굴손이 나오면 그것을 알아채고는 다람쥐처럼 똑바로 앉아서 꽃눈과 어린 꼬투리째 깎아 먹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리를 피하고 보기 좋고 팔 만한 작물을 얻고 싶다면 될 수 있는 대로 일찍 거두라. 그러면 손해를 많이 줄일 수 있다.
나는 이런 경험도 얻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다음 여름에는 콩과 옥수수를 이렇게 부지런히 심지 않고, 씨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면 성실, 진리, 단순함, 믿음, 순진함 같은 씨를 심어서, 그것들이 더 적은 수고와 거름으로도 이 흙에서 자라 나를 먹여 살리지 않는지 보리라. 이 흙은 분명 그런 작물로 기운이 다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아!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제 또 한 여름이 가고, 또 한 여름이, 또 한 여름이 갔으며, 독자 여러분에게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심은 씨는, 그것이 정말로 그 덕목들의 씨였다면, 벌레 먹었거나 생명력을 잃어서 싹이 트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대개 자기 아버지들이 용감했던 만큼만 용감하거나, 그만큼 겁이 많을 뿐이다. 이 세대는 해마다 새해가 오면 마치 거기에 운명이라도 있는 듯이, 몇 세기 전 원주민이 하던 그대로, 원주민이 처음 정착한 이들에게 가르쳐 준 그대로 어김없이 옥수수와 콩을 심는다. 요전 날 나는 한 노인이 적어도 일흔 번째로 괭이로 구덩이를 파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것도 자기가 들어가 누울 구덩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뉴잉글랜드 사람은 왜 새로운 모험을 해 보지 않고, 자기 곡식과 감자와 꼴과 과수원에만 그토록 힘을 쏟는가? 왜 이것들과 다른 작물을 기르지 않는가? 우리는 왜 씨콩에는 그토록 마음을 쓰면서 새로운 세대의 사람에게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는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꼽은 자질들 가운데 몇 가지가, 우리 모두 저 다른 산물보다 더 귀히 여기지만 대개는 공중에 흩뿌려져 떠다니는 그 자질들이 그 사람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자랐음을 틀림없이 보게 된다면, 우리는 정말로 배부르고 기운이 날 것이다. 이를테면 진리나 정의 같은 미묘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자질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혹은 새로운 품종이라도, 길을 따라 이리로 온다고 하자. 우리 대사들은 이런 씨를 고국으로 보내라는 훈령을 받아야 하고, 연방 의회는 그것을 온 나라에 나누어 주는 일을 도와야 한다. 성실 앞에서 우리는 결코 격식을 따져서는 안 된다. 가치와 우정의 알맹이가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비천함으로 서로를 속이고 모욕하고 내쫓는 일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바삐 만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을 아예 만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콩 일로 바쁘다. 늘 이렇게 터벅터벅 일하며, 일하는 틈틈이 괭이나 삽을 지팡이 삼아 기대어 선 사람, 버섯처럼이 아니라 땅에서 반쯤 일어선 사람, 땅에 내려앉아 걷는 제비처럼 똑바로 선 것 이상인 사람과는, 우리는 이렇게 사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할 때 그의 날개는 이따금
날아오르려는 듯 펼쳐졌다가 다시 접히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천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빵이 늘 우리를 먹여 살리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나 자연에게서 어떤 너그러움을 알아보는 일, 섞인 것 없는 영웅적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일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아픈지도 모를 때 언제나 우리에게 이롭고, 관절의 뻣뻣함까지 풀어 주며, 우리를 나긋하고 가볍게 해 준다.
옛 시와 신화는 적어도 농사가 한때 거룩한 기술이었음을 일러 준다. 그러나 우리는 불경하게 서두르며 아무 생각 없이 농사를 짓는다. 우리의 목적은 그저 큰 농장과 큰 수확을 얻는 데 있다. 우리에게는 농부가 자기 소명의 거룩함을 드러내거나 그 거룩한 기원을 되새길 축제도 행렬도 의식도 없다. 가축 품평회와 이른바 추수 감사절도 예외가 아니다. 농부를 꾀는 것은 상금과 잔치다. 그는 케레스와 땅의 유피테르에게가 아니라 오히려 저승의 플루토스에게 제물을 바친다.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우리 가운데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 비굴한 버릇, 곧 땅을 재산으로, 아니면 주로 재산을 얻는 수단으로 여기는 버릇 때문에 풍경은 일그러지고, 우리 사이에서 농사는 타락하며, 농부는 가장 비천한 삶을 산다. 그는 자연을 도둑으로서만 안다. 카토는 농사로 얻는 이익이 특히 경건하거나 의롭다(maximeque pius quaestus)고 말하고, 바로에 따르면 옛 로마 사람들은 "같은 땅을 어머니라고도 케레스라고도 불렀으며, 땅을 일구는 사람들은 경건하고 쓸모 있는 삶을 살고, 그들만이 사투르누스 왕의 겨레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이라고 여겼다."
해가 우리가 일군 밭과 초원과 숲을 가리지 않고 굽어본다는 것을 우리는 곧잘 잊는다. 그것들은 모두 똑같이 햇살을 되비추고 빨아들이며, 일군 밭은 해가 날마다 길을 가며 바라보는 찬란한 그림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해가 보기에 땅은 모두 똑같이 정원처럼 일구어져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해의 빛과 열이 주는 혜택을 그에 걸맞은 믿음과 너그러움으로 받아야 한다. 내가 이 콩의 씨를 귀히 여기고 가을에 그것을 거둔다 한들 무엇이 대수인가? 내가 그토록 오래 바라본 이 넓은 밭은 나를 으뜸가는 경작자로 바라보지 않고, 나를 지나쳐 더 다정한 힘들, 그것을 적시고 푸르게 하는 힘들을 바라본다. 이 콩에는 내가 거두지 않는 결실이 있다. 콩은 얼마간 우드척을 위해서도 자라지 않는가? 밀 이삭(라틴어로 spica, 옛말로 speca, 「희망」을 뜻하는 spe에서 왔다)이 농부의 유일한 희망이어서는 안 된다. 그 알맹이 곧 낟알(「맺는다」는 gerendo에서 온 granum)이 그것이 맺는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수확이 실패할 수 있겠는가? 씨앗이 새들의 곳간인 잡초가 넘쳐나는 것도 나는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밭이 농부의 곳간을 채우느냐 마느냐는 견주어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참된 농부는 근심을 그칠 것이다. 다람쥐가 올해 숲에 밤이 열릴지 말지 아무 걱정도 내보이지 않듯이, 참된 농부는 날마다 그날의 일을 마치고 밭의 산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내려놓으며, 마음속으로 첫 열매뿐 아니라 마지막 열매까지도 바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