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상품의 실질 가격과 명목 가격, 곧 노동으로 헤아린 가격과 화폐로 헤아린 가격에 대하여
5장 상품의 실질 가격과 명목 가격, 곧 노동으로 헤아린 가격과 화폐로 헤아린 가격에 대하여
사람은 누구나 인간 생활의 필수품과 편의품과 즐길 거리를 어느 정도까지 누릴 여유가 있는지에 따라 부유하거나 가난하다. 그러나 분업이 일단 널리 자리를 잡은 뒤에는 그 가운데 자기 노동으로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몫은 아주 작은 부분에 그친다. 그보다 훨씬 큰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노동에서 얻어 와야 하며,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부릴 수 있는, 곧 사서 쓸 여유가 있는 노동의 양에 따라 부유하거나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떤 상품이든 그것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쓰거나 소비할 뜻이 없고 다른 상품과 바꾸려 할 때, 그 상품이 그에게 지니는 가치는 그것으로 그가 사거나 부릴 수 있는 노동의 양과 같다. 따라서 노동은 모든 상품의 교환 가치를 재는 실질 척도다.
모든 것의 실질 가격, 곧 그것을 얻으려는 사람에게 그것이 실제로 치르게 하는 값은 그것을 얻는 데 드는 수고와 노고다. 이미 그것을 얻어서 이제 그것을 처분하거나 다른 것과 바꾸려는 사람에게 그것이 실제로 지니는 값어치는, 그것이 그 자신에게서 덜어 주고 남에게 대신 떠맡길 수 있는 수고와 노고다. 화폐로 사는 것이든 재화로 사는 것이든, 그것은 우리 몸을 수고롭게 하여 얻는 것과 똑같이 노동으로 사는 것이다. 다만 그 화폐나 그 재화가 우리에게서 이 수고를 덜어 준다. 그것들은 일정한 양의 노동이 지닌 가치를 담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그때 같은 양의 노동 가치를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과 바꾼다. 노동이야말로 최초의 가격, 곧 모든 것에 치러진 본래의 구매 대금이었다. 세상의 모든 부를 처음에 사들인 것은 금이나 은이 아니라 노동이었고, 그 부를 가진 사람들, 그것을 새로운 생산물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 부의 가치는 그것으로 그들이 사거나 부릴 수 있는 노동의 양과 정확히 같다.
홉스 씨의 말대로 부는 힘이다.1 그러나 큰 재산을 얻거나 물려받은 사람이 반드시 어떤 정치적 권력, 곧 민사상의 권력이나 군사상의 권력을 얻거나 물려받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재산이 어쩌면 그 둘을 얻을 수단을 그에게 줄 수는 있겠으나, 그 재산을 그저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둘 가운데 어느 것이 그에게 반드시 건네지지는 않는다. 그 소유가 곧바로 직접 그에게 건네주는 힘은, 그때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노동, 또는 노동의 모든 생산물에 대하여 일정한 지배력을 사들이는 힘이다. 그의 재산이 크거나 작은 것은 바로 이 힘의 크기, 곧 그 재산으로 그가 사거나 부릴 수 있는 남의 노동의 양, 또는 같은 말이지만 남의 노동이 낳은 생산물의 양에 정확히 비례한다. 무엇이든 그 교환 가치는 그것이 그 임자에게 건네주는 이 힘의 크기와 언제나 정확히 같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이 모든 상품의 교환 가치를 재는 실질 척도이기는 하되, 상품의 가치를 흔히 가늠하는 잣대는 노동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노동량 사이의 비율을 확정하기는 어려운 일이 많다. 두 가지 다른 일에 들인 시간만으로 이 비율이 언제나 정해지지는 않는다. 견뎌 낸 고됨의 정도와 부려 쓴 재주의 정도도 마찬가지로 셈에 넣어야 한다. 한 시간의 힘든 일에 두 시간의 수월한 일보다 더 많은 노동이 들어 있을 수 있고, 배우는 데 10년의 노동이 든 업종에 한 시간 매달리는 쪽이 여느 뻔한 일자리에서 한 달 부지런히 일하는 쪽보다 더 많은 노동일 수 있다. 그러나 고됨이든 재주든 그것을 정확히 재는 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물론 서로 다른 종류의 노동이 낳은 서로 다른 생산물을 맞바꿀 때에는 흔히 그 둘을 얼마쯤 감안해 준다. 그러나 그것을 맞추는 것은 어떤 정확한 척도가 아니라 시장의 흥정과 값 다툼이며, 정확하지는 않아도 여느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기에는 넉넉한 그 어림잡은 균등에 따라 이루어진다.
게다가 어떤 상품이든 노동과 바뀌는 일보다 다른 상품과 바뀌고 그리하여 다른 상품과 견주어지는 일이 더 잦다. 그러므로 그 교환 가치를 그것이 낳을 수 있는 노동2의 양으로 가늠하기보다 다른 어떤 상품의 양으로 가늠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또 사람들 대부분은 노동의 양이라는 말보다 어떤 특정 상품의 양이라는 말을 더 잘 알아듣는다. 한쪽은 눈에 뚜렷이 보이고 손에 잡히는 대상이고, 다른 쪽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게 풀어낼 수야 있으나 그만큼 자연스럽고 뻔하지는 않은 추상 관념이다.
그러나 물물교환이 그치고 화폐가 상업의 공통 수단이 되고 나면, 어떤 상품이든 다른 어떤 상품보다 화폐와 바뀌는 일이 더 잦아진다. 정육점 주인은 자기 소고기나 양고기를 빵집이나 술도가로 지고 가서 빵이나 맥주와 바꾸는 일이 드물고, 그것을 시장으로 가져가 화폐와 바꾼 다음 그 화폐를 빵과 맥주와 바꾼다. 그가 고기 값으로 받는 화폐의 양이 그 뒤에 그가 살 수 있는 빵과 맥주의 양까지 정한다. 그러므로 그로서는 자기 고기를 곧바로 바꾸어 주는 상품인 화폐의 양으로 그 값을 가늠하는 편이, 다른 상품을 한 번 거쳐야만 바꿀 수 있는 상품인 빵과 맥주의 양으로 가늠하는 편보다 더 자연스럽고 뻔하며, 자기 고기가 빵 3~4파운드(무게)의 값어치가 있다거나 약한 맥주 3~4쿼트의 값어치가 있다고 말하기보다 1파운드(무게)에 3펜스나 4펜스3의 값어치가 있다고 말하는 편이 그에게 더 낫다. 이리하여 어떤 상품이든 그 교환 가치를 노동의 양으로도, 그것과 바꾸어 가질 수 있는 다른 어떤 상품의 양으로도 가늠하기보다 화폐의 양으로 가늠하는 일이 더 잦아진다.
그런데 금과 은도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그 가치가 변하여, 어떤 때는 더 싸고 어떤 때는 더 비싸며, 어떤 때는 사기가 더 쉽고 어떤 때는 더 어렵다. 금과 은 얼마가 사거나 부릴 수 있는 노동의 양, 곧 그것과 바뀔 재화의 양은 그런 교환이 이루어질 무렵에 마침 알려져 있는 광산이 기름진지 메말랐는지에 언제나 달려 있다. 아메리카의 넉넉한 광산이 발견되면서 16세기 유럽에서 금과 은의 가치는 그 전의 3분의 1쯤으로 떨어졌다. 그 금속을 광산에서 시장까지 실어 오는 데 노동이 덜 들게 되었으므로, 그것이 시장에 이르렀을 때 사거나 부릴 수 있는 노동도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이 가치의 격변은 어쩌면 가장 큰 격변이었겠으나 역사가 얼마쯤 전하는 유일한 격변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자연 그대로의 발 길이나 두 팔 너비나 한 줌처럼 저 자신의 양이 끊임없이 변하는 양의 척도는 다른 것의 양을 재는 정확한 척도가 결코 될 수 없듯이, 저 자신의 가치가 끊임없이 변하는 상품은 다른 상품의 가치를 재는 정확한 척도가 결코 될 수 없다. 같은 양의 노동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노동하는 사람에게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건강과 체력과 기력이 여느 상태에 있고 솜씨와 손재주가 여느 정도에 있는 한, 그는 언제나 자기의 편안함과 자유와 행복에서 같은 몫을 내놓아야 한다. 그가 치르는 값은, 그 대가로 받는 재화의 양이 얼마이든 언제나 같다. 물론 그 값으로 어떤 때는 더 많은 양을 사고 어떤 때는 더 적은 양을 살 수도 있으나, 변하는 것은 그 재화의 가치이고 그것을 사들이는 노동의 가치가 아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다가가기 어렵거나 얻는 데 많은 노동이 드는 것이 비싼 것이고, 쉽게 또는 아주 적은 노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싼 것이다. 그러므로 저 자신의 가치가 결코 변하지 않는 노동만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모든 상품의 가치를 가늠하고 견줄 수 있는 궁극의 실질 기준이다. 노동이 상품의 실질 가격이고, 화폐는 상품의 명목 가격일 뿐이다.
그러나 같은 양의 노동이 노동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같은 가치를 지닌다 해도, 그를 고용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때는 더 큰 가치로, 어떤 때는 더 작은 가치로 보인다. 그는 어떤 때는 더 많은 양의 재화로, 어떤 때는 더 적은 양의 재화로 노동을 사들이며, 그에게는 노동의 가격도 다른 모든 것의 가격처럼 변하는 듯이 보인다. 그에게는 한쪽 경우에 노동이 비싸 보이고 다른 쪽 경우에는 싸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쪽 경우에 재화가 싸고 다른 쪽 경우에 재화가 비싼 것이다.
그러므로 이 통속적인 뜻으로는 노동에도 상품처럼 실질 가격과 명목 가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노동의 실질 가격은 그 대가로 주어지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에 있고, 노동의 명목 가격은 화폐의 양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노동하는 사람이 부유하거나 가난한 것, 넉넉한 보수를 받거나 궁한 보수를 받는 것은 자기 노동의 명목 가격이 아니라 실질 가격에 비례한다.
상품과 노동의 실질 가격과 명목 가격을 갈라 보는 것은 한갓 사변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실제로 적잖은 쓰임새가 있다. 같은 실질 가격은 언제나 같은 가치를 지니지만, 금과 은의 가치가 변하는 탓에 같은 명목 가격은 어떤 때는 아주 다른 가치를 지닌다. 그러므로 토지를 팔면서 영구 지대를 남겨 둘 때, 이 지대가 언제나 같은 가치를 지니게 하려면, 그것이 특정한 화폐 액수로 되어 있지 않게 하는 것이 그 지대를 받게 될 집안에 중요하다. 그 가치는 이 경우 서로 다른 두 가지 변동에 놓이게 된다. 첫째는 같은 이름을 가진 주화에 때에 따라 서로 다른 양의 금과 은이 들어 있음에서 생기는 변동이고, 둘째는 같은 양의 금과 은이 때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님에서 생기는 변동이다.
군주와 주권 국가는 자기 주화에 든 순수한 금속의 양을 줄이는 것이 한때 이롭다고 여긴 일이 잦았으나, 그것을 늘리는 것이 이롭다고 여긴 일은 드물었다. 그리하여 모든 나라의 주화에 든 금속의 양은, 내가 믿기로는, 거의 끊임없이 줄어들었을 뿐 늘어난 적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그런 변동은 거의 언제나 화폐 지대의 가치를 줄이는 쪽으로 기운다.
아메리카 광산의 발견은 유럽에서 금과 은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이 하락은, 내가 보기에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나, 아직도 차츰 이어지며 앞으로도 오래 이어질 법하다고 흔히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 가정에 서면, 그런 변동은 화폐 지대의 가치를 늘리기보다 줄일 쪽이 더 크다. 이는 그 지대를 이러저러한 이름의 주화 얼마로, 예컨대 몇 파운드 스털링으로 치르기로 하지 않고, 순은 몇 온스 또는 일정한 법정 품위의 은 몇 온스로 치르기로 정해 두었을 때조차 그렇다.
곡물로 남겨 둔 지대는 주화의 이름이 바뀌지 않은 곳에서조차 화폐로 남겨 둔 지대보다 그 가치를 훨씬 잘 지켜 냈다. 엘리자베스 치세 18년의 법으로4 모든 대학 차지의 지대 가운데 3분의 1을 곡물로 남겨 두어, 현물로 치르거나 가장 가까운 공설 시장의 그때 시세에 따라 치르도록 정해졌다. 이 곡물 지대에서 나오는 돈은 처음에는 전체의 3분의 1에 그쳤으나, 블랙스톤 박사5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흔히 나머지 3분의 2에서 나오는 돈의 두 배에 가깝다. 이 셈에 따르면 대학의 옛 화폐 지대는 그 옛 가치의 4분의 1쯤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며, 곧 전에 값하던 곡물의 4분의 1보다 조금 더 값할 뿐이다. 그런데 펠리페와 메리의 치세 이래로 잉글랜드 주화의 이름은 거의 또는 전혀 바뀌지 않았고, 같은 수의 파운드와 실링과 펜스에는 거의 같은 양의 순은이 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대학의 화폐 지대가 이렇게 그 가치를 떨어뜨린 것은 온전히 은 값이 떨어진 데서 왔다.
은 가치의 하락이 같은 이름의 주화에 든 은의 양이 줄어드는 일과 겹치면, 손실은 흔히 더 커진다. 주화의 이름이 잉글랜드에서보다 훨씬 크게 바뀐 스코틀랜드에서,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보다 더 크게 바뀐 프랑스에서, 처음에는 적잖은 가치를 지녔던 옛 지대 가운데 몇몇은 이렇게 하여 거의 아무것도 아닌 데까지 줄어들었다.
먼 시대를 견주면 같은 양의 노동은 같은 양의 금과 은으로, 또 어쩌면 다른 어떤 상품으로 사들일 때보다, 노동하는 사람의 생계인 같은 양의 곡물로 사들일 때 더 가깝게 맞아떨어진다. 그러므로 먼 시대를 견주면 같은 양의 곡물은 실질 가치가 더 가깝게 같으며, 그 임자가 사거나 부릴 수 있는 남의 노동의 양도 더 가깝게 같다. 다른 거의 모든 상품의 같은 양보다 곡물이 더 가깝게 그리한다는 말이며, 같은 양의 곡물조차 그것을 꼭 들어맞게 해내지는 못한다. 노동하는 사람의 생계, 곧 노동의 실질 가격은 뒤에 밝히려 하겠으나 경우에 따라 아주 다르다. 부유함으로 나아가는 사회에서는 멈춰 서 있는 사회에서보다 더 넉넉하고, 멈춰 서 있는 사회에서는 뒤로 물러나는 사회에서보다 더 넉넉하다. 그러나 다른 어떤 상품이든 특정한 때에 사들일 수 있는 노동의 양은 그때 그것으로 살 수 있는 생계의 양에 비례하여 많거나 적다. 그러므로 곡물로 남겨 둔 지대는 일정한 양의 곡물이 살 수 있는 노동의 양이 변하는 것에만 놓인다. 그러나 다른 어떤 상품으로 남겨 둔 지대는 일정한 양의 곡물이 살 수 있는 노동의 양이 변하는 것에만 놓이지 않고, 그 상품 얼마로 살 수 있는 곡물의 양이 변하는 것에도 놓인다.
그러나 곡물 지대의 실질 가치는 화폐 지대의 실질 가치보다 백 년 단위로 보면 훨씬 덜 변하되 해마다로 보면 훨씬 더 변한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노동의 화폐 가격은 뒤에 밝히려 하겠으나 곡물의 화폐 가격에 따라 해마다 출렁이지 않고, 그 생활 필수품의 한때의 값이나 어쩌다 나오는 값이 아니라 평균값 또는 여느 값에 어디서나 맞추어지는 듯하다. 곡물의 평균값 또는 여느 값은 다시, 이 또한 뒤에 밝히려 하겠으나, 은의 가치로, 곧 그 금속을 시장에 내놓는 광산이 기름진지 메말랐는지로, 또는 은 얼마를 광산에서 시장까지 가져오는 데 들여야 하는 노동의 양과 그리하여 소비되어야 하는 곡물의 양으로 정해진다. 그러나 은의 가치는 백 년 단위로는 때로 크게 변하지만 해마다 크게 변하는 일은 드물고, 반세기나 백 년을 잇대어 같거나 거의 같은 채로 있는 일이 잦다. 그러므로 곡물의 여느 화폐 가격 또는 평균 화폐 가격도 그만큼 긴 기간에 걸쳐 같거나 거의 같은 채로 있을 수 있고, 적어도 사회가 다른 점에서 같거나 거의 같은 형편에 있는 한 노동의 화폐 가격도 그와 함께 그럴 수 있다. 그런 한편으로 곡물의 한때 값과 어쩌다 나오는 값은 한 해에 그 앞 해의 두 배가 되는 일이 잦고, 예컨대 1쿼터6에 25실링에서 50실링까지 출렁이기도 한다. 그러나 곡물이 뒤의 값에 있을 때에는 곡물 지대의 명목 가치뿐 아니라 실질 가치도 앞의 값에 있을 때의 두 배가 되어, 노동의 양이든 다른 대부분 상품의 양이든 두 배를 부릴 수 있다. 이 모든 출렁임 동안에도 노동의 화폐 가격은, 그리고 그와 함께 다른 대부분 것의 화폐 가격은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만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가치를 재는 유일하게 두루 통하는 척도이며 유일하게 정확한 척도, 곧 서로 다른 상품의 가치를 견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임이 뚜렷해 보인다. 서로 다른 상품의 실질 가치를 백 년 단위로 견주는 일을 그 대가로 주어진 은의 양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된 바다. 그것을 해마다 견주는 일도 곡물의 양으로는 할 수 없다. 노동의 양으로는 백 년 단위로도 해마다도 가장 정확하게 견줄 수 있다. 백 년 단위로 보면 곡물이 은보다 나은 척도다. 백 년 단위로 보면 같은 양의 곡물이 같은 양의 은보다 같은 양의 노동을 더 가깝게 부리기 때문이다. 반면 해마다로 보면 은이 곡물보다 나은 척도다. 같은 양의 은이 같은 양의 노동을 더 가깝게 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구 지대를 정할 때나 아주 긴 차지를 놓을 때에는 실질 가격과 명목 가격을 갈라 보는 것이 쓸 데가 있을지 몰라도, 사람살이에서 더 흔하고 더 예사로운 거래인 사고팔기에서는 아무 쓸 데가 없다.
같은 때 같은 곳에서는 모든 상품의 실질 가격과 명목 가격이 서로 정확히 비례한다. 예컨대 런던 시장에서 어떤 상품으로 화폐를 더 많이 받거나 더 적게 받을수록, 그때 그곳에서 그것으로 살 수 있거나 부릴 수 있는 노동도 더 많거나 더 적다. 그러므로 같은 때 같은 곳에서는 화폐가 모든 상품의 실질 교환 가치를 정확히 재는 척도다. 그러나 그것이 그러한 것은 같은 때 같은 곳에서일 뿐이다.
먼 곳끼리는 상품의 실질 가격과 화폐 가격 사이에 일정한 비례가 없으나, 재화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상인이 헤아릴 것은 화폐 가격, 곧 그것을 사들일 때 치르는 은의 양과 팔 때 받을 만한 은의 양의 차이밖에 없다. 중국 광저우에서 은 반 온스는 런던에서 은 1온스보다 더 많은 노동과 더 많은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을 부릴 수 있다. 그러므로 광저우에서 은 반 온스에 팔리는 상품은, 그곳에서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런던에서 은 1온스에 팔리는 상품이 런던에서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그런 것보다 실제로 더 비싸고 실질에서 더 중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런던의 상인이 광저우에서 은 반 온스로 어떤 상품을 사서 뒤에 런던에서 은 1온스에 팔 수 있다면, 그는 그 거래로 100퍼센트를 번다. 은 1온스가 런던에서 광저우와 꼭 같은 가치를 지녔을 때에 버는 것과 똑같이 번다. 광저우에서 은 반 온스가 런던에서 은 1온스가 부릴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노동과 더 많은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을 부리게 해 주었으리라는 것은 그에게 아무 상관이 없다. 런던에서 1온스는 거기서 반 온스가 부릴 수 있었을 것의 두 배를 언제나 그에게 부리게 해 줄 터이고, 그가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고팔기가 슬기로운지 미욱한지를 끝내 정하고 그리하여 값이 걸린 여느 살림살이의 거의 모든 일을 조절하는 것은 재화의 명목 가격, 곧 화폐 가격이니, 그것이 실질 가격보다 훨씬 더 많이 눈길을 받아 온 것은 이상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저술에서는 어떤 상품의 실질 가치가 때와 곳에 따라 어떻게 달랐는지, 곧 그것을 가진 사람들에게 경우에 따라 남의 노동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힘을 주었는지를 견주어 보는 것이 때로 쓸 데가 있다. 이 경우 우리가 견주어야 할 것은 그것이 흔히 팔린 은의 양이라기보다, 그 서로 다른 은의 양으로 살 수 있었을 노동의 양이다. 그러나 먼 시대와 먼 곳의 그때 노동 가격은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곡물의 그때 가격은 꾸준히 기록된 곳이 몇 되지 않으나 대체로 더 잘 알려져 있고 역사가와 다른 저술가들이 더 자주 적어 두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히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그것이 그때 노동 가격과 언제나 정확히 같은 비례에 있다고 보아서가 아니라, 그 비례에 흔히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어림이라고 보아서 그렇다. 나는 뒤에 이런 종류의 견주기를 여러 번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산업이 나아가는 가운데 상업하는 나라들은 여러 다른 금속을 화폐로 주조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지불에는 금, 웬만한 값의 구매에는 은, 그보다 더 작은 거래에는 구리나 그 밖의 거친 금속을 썼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그 세 금속 가운데 하나를 다른 둘보다 특히 가치의 척도로 여겼고, 이 치우침은 대체로 그들이 상업의 수단으로 처음 쓰게 된 금속에 주어진 듯하다. 다른 화폐가 없었을 때에는 그러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인데, 한번 그것을 자기들의 기준으로 쓰기 시작한 뒤에는 그래야 할 까닭이 같지 않게 된 뒤에도 대체로 그대로 이어 갔다.
로마인은 1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기 다섯 해 전까지 구리 화폐밖에 가지지 않았다고 하며(플리니우스7 33권 3장), 그때 처음 은을 주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구리가 그 공화국에서 언제나 가치의 척도로 이어진 듯하다. 로마에서는 모든 회계가 아스나 세스테르티우스로 적히고 모든 재산의 가치가 그것으로 셈된 듯하다. 아스는 언제나 구리 주화의 이름이었다. 세스테르티우스라는 말은 두 아스와 반 아스를 뜻한다. 그러므로 세스테르티우스가 본래 은 주화였다 해도 그 가치는 구리로 가늠되었다. 로마에서는 빚이 많은 사람을 남의 구리를 많이 지고 있다고 말했다.
로마 제국의 폐허 위에 자리를 잡은 북방 민족들은 정착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은화를 가졌고, 그 뒤 여러 세대에 걸쳐 금화도 구리화도 알지 못한 듯하다. 색슨족 시절 잉글랜드에는 은화가 있었으나, 에드워드 3세 때까지 주조된 금은 적었고 영국의 제임스 1세 때까지 구리는 하나도 주조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잉글랜드에서는, 그리고 같은 까닭으로 내가 믿기로는 유럽의 다른 모든 근대 나라에서도, 모든 회계가 은으로 적히고 모든 재화와 모든 재산의 가치가 대체로 은으로 셈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재산이 얼마인지 말할 때 우리는 기니8가 몇 개인지 말하는 일이 드물고 그 값으로 주어질 만한 파운드 스털링이 몇인지를 말한다.
본래 모든 나라에서, 내가 믿기로는, 법으로 인정되는 지불은 특히 기준 또는 가치의 척도로 여겨진 금속의 주화로만 할 수 있었다. 잉글랜드에서 금은 화폐로 주조된 뒤로도 오랫동안 법정 지불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금화와 은화의 가치 사이의 비율은 어떤 공법이나 포고로 정해지지 않고 시장이 정하도록 맡겨져 있었다. 채무자가 금으로 지불하겠다고 하면, 채권자는 그 지불을 아예 물리치거나, 자기와 채무자가 합의할 수 있는 금 값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구리는 오늘날 더 작은 은화를 거슬러 주는 데 말고는 법정 지불 수단이 아니다.
이런 형편에서는 기준인 금속과 기준이 아닌 금속을 갈라 보는 것이 이름만의 구별에 그치지 않고 그보다 무언가 더한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주화에 쓰인 여러 금속을 차츰 더 익숙하게 다루게 되고 그리하여 각각의 가치 사이의 비율을 더 잘 알게 되면서, 대부분 나라에서는, 내가 믿기로는, 이 비율을 확정하여 공법으로 선포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예컨대 이러저러한 무게와 품위의 기니 하나가 21실링과 바뀌어야 한다거나 그만한 액수의 빚에 법정 지불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런 형편에서, 그리고 이런 종류의 규정된 비율 하나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기준인 금속과 기준이 아닌 금속을 갈라 보는 것이 이름만의 구별보다 조금 더한 것에 그친다.
그러나 이 규정된 비율에 무슨 변화가 생기면, 이 구별은 이름만의 것보다 무언가 더한 것이 되거나 적어도 그렇게 되는 듯이 보인다. 예컨대 기니의 규정된 가치가 20실링으로 내려가거나 22실링으로 올라간다면, 모든 회계가 은화로 적히고 빚에 대한 거의 모든 채무가 은화로 표시되어 있으므로, 지불의 대부분은 어느 경우에든 전과 같은 양의 은화로 할 수 있겠으나 금화로는 아주 다른 양이 들 터이니, 한쪽 경우에는 더 많이 들고 다른 쪽 경우에는 더 적게 들 것이다. 은이 금보다 그 가치가 덜 변하는 듯이 보일 것이다. 은이 금의 가치를 재는 듯이 보이고 금이 은의 가치를 재는 듯이 보이지 않으리라. 금의 가치는 그것과 바뀔 은의 양에 달려 있는 듯이 보이고, 은의 가치는 그것과 바뀔 금의 양에 달려 있는 듯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온전히 회계를 적는 관행, 그리고 크고 작은 모든 액수를 금화보다 은화로 나타내는 관행에서 오는 것이다. 드러먼드 씨9의 25기니나 50기니짜리 어음은 이런 종류의 변경이 있은 뒤에도 전과 똑같이 25기니나 50기니로 지불되리라. 그런 변경이 있은 뒤에도 그것은 전과 같은 양의 금으로 지불되겠으나 은으로는 아주 다른 양이 들 것이다. 그런 어음의 지불에서는 금이 은보다 그 가치가 덜 변하는 듯이 보일 것이다. 금이 은의 가치를 재는 듯이 보이고 은이 금의 가치를 재는 듯이 보이지 않으리라. 회계를 적고 약속어음과 그 밖의 금전 채무를 이렇게 나타내는 관행이 언젠가 두루 퍼진다면, 은이 아니라 금이 특히 기준 또는 가치의 척도인 금속으로 여겨질 것이다.
실제로 주화에 쓰인 여러 금속의 가치 사이에 규정된 비율 하나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가장 값진 금속의 가치가 주화 전체의 가치를 정한다. 구리 페니 12개에는 가장 좋다고 할 수 없는 품질의 구리가 상형 반 파운드(무게)쯤 들어 있는데, 이것은 주조되기 전에는 은으로 7펜스 값이 되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규정으로 그런 페니 12개가 1실링과 바뀌도록 정해져 있으므로, 시장에서 그것은 1실링 값으로 여겨지고 언제든 그것으로 1실링을 받을 수 있다. 영국의 요즈음 금화 개주10 전에도 금화는, 적어도 런던과 그 근처에서 돌던 부분은 대체로 은화의 대부분보다 법정 무게 아래로 덜 깎여 있었다. 그러나 닳고 찌그러진 실링 21개가 기니 하나와 맞먹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 기니도 어쩌면 닳고 찌그러져 있었겠으나 그만큼 심한 일은 드물었다. 요즈음의 규정은 금화를 어느 나라의 통용 주화든 데려갈 수 있는 만큼 법정 무게에 가깝게 데려다 놓았고, 공공 관청에서 금을 무게로만 받으라는 명령은 그 명령이 지켜지는 한 금화를 그대로 지켜 낼 듯하다. 은화는 금화 개주 전과 똑같이 닳고 떨어진 채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렇게 떨어진 은화 21실링이 여전히 이 훌륭한 금화 1기니 값으로 여겨진다.
금화 개주는 그것과 바꿀 수 있는 은화의 가치를 뚜렷이 올렸다.
잉글랜드 조폐국에서는 금 1파운드(무게)가 44기니 반으로 주조되며, 이는 1기니를 21실링으로 셈하면 46파운드 14실링 6펜스와 같다. 그러므로 그런 금화 1온스는 은으로 3파운드 17실링 10펜스 반의 값어치가 있다. 잉글랜드에서는 주조에 아무 세나 주조 수수료를 물리지 않으므로, 법정 품위의 금 지금 1파운드(무게)나 1온스를 조폐국에 가져가는 사람은 아무 떼임 없이 금화 1파운드(무게)나 1온스를 돌려받는다. 그러므로 1온스에 3파운드 17실링 10펜스 반이 잉글랜드에서 금의 조폐국 가격, 곧 조폐국이 법정 품위의 금 지금에 내주는 금화의 양이라고 한다.
금화 개주 전에는 법정 품위의 금 지금의 시장 가격이 여러 해 동안 1온스에 3파운드 18실링을 웃돌았고, 때로는 3파운드 19실링이었으며, 아주 흔히 4파운드였다. 닳고 떨어진 금화로 그만한 액수에는 법정 품위의 금이 1온스를 넘게 들어 있는 일이 드물었을 것이다. 금화 개주 뒤로는 법정 품위의 금 지금의 시장 가격이 1온스에 3파운드 17실링 7펜스를 넘는 일이 드물다. 금화 개주 전에는 시장 가격이 언제나 조폐국 가격보다 다소 높았다. 그 개주 뒤로는 시장 가격이 줄곧 조폐국 가격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그 시장 가격은 금화로 치르든 은화로 치르든 같다. 그러므로 요즈음의 금화 개주는 금화의 가치만 올린 것이 아니라 은화의 가치도 금 지금에 대한 비례에서, 그리고 어쩌면 다른 모든 상품에 대한 비례에서도 올렸다. 다만 다른 상품 대부분의 가격은 그 밖의 수많은 원인에 흔들리므로, 그것에 대한 금화나 은화의 가치가 오른 것은 그만큼 또렷하고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
잉글랜드 조폐국에서는 법정 품위의 은 지금 1파운드(무게)가 62실링으로 주조되며, 그 62실링에는 마찬가지로 법정 품위의 은 1파운드(무게)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1온스에 5실링 2펜스가 잉글랜드에서 은의 조폐국 가격, 곧 조폐국이 법정 품위의 은 지금에 내주는 은화의 양이라고 한다. 금화 개주 전에는 법정 품위의 은 지금의 시장 가격이 경우에 따라 1온스에 5실링 4펜스, 5실링 5펜스, 5실링 6펜스, 5실링 7펜스였고, 아주 흔히 5실링 8펜스였다. 그러나 5실링 7펜스가 가장 흔한 값이었던 듯하다. 금화 개주 뒤로는 법정 품위의 은 지금의 시장 가격이 이따금 1온스에 5실링 3펜스, 5실링 4펜스, 5실링 5펜스까지 떨어졌고, 마지막 값을 넘은 일은 거의 없다. 은 지금의 시장 가격은 금화 개주 뒤로 적잖이 떨어졌으나 조폐국 가격만큼 낮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잉글랜드 주화에서 여러 금속 사이의 비율을 보면, 구리는 그 실질 가치보다 훨씬 높게 값이 매겨져 있고 은은 얼마쯤 낮게 매겨져 있다. 유럽 시장에서, 또 프랑스 주화와 네덜란드 주화에서 순금 1온스는 순은 14온스쯤과 바뀐다. 잉글랜드 주화에서는 15온스쯤과 바뀌니, 유럽의 흔한 셈에 따르면 그 값어치보다 더 많은 은과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잉글랜드에서조차 잉글랜드 주화 속 구리의 높은 값 때문에 막대 구리의 값이 올라가지 않듯이, 잉글랜드 주화 속 은의 낮은 값 때문에 은 지금의 값이 내려가지도 않는다. 막대 구리가 은에 대한 제 비례를 지키는 것과 같은 까닭으로 은 지금도 금에 대한 제 비례를 그대로 지킨다.
윌리엄 3세 치세에 은화를 개주한 뒤에도 은 지금의 값은 여전히 조폐국 가격보다 얼마쯤 높은 채로 이어졌다. 로크 씨11는 이 높은 값을 은 지금의 수출이 허용되고 은화의 수출이 금지된 데 돌렸다. 그는 이 수출 허용이 은화에 대한 수요보다 은 지금에 대한 수요를 더 크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라 안에서 사고파는 여느 용도에 은화를 원하는 사람의 수가 수출하려는 용도로든 다른 어떤 용도로든 은 지금을 원하는 사람의 수보다 확실히 훨씬 많다. 오늘날에도 금 지금의 수출이 그와 같이 허용되고 금화의 수출이 그와 같이 금지되어 있는데, 그런데도 금 지금의 값은 조폐국 가격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잉글랜드 주화에서 은은 그때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금에 대한 비례에서 낮게 매겨져 있었고, 금화는 그때 또한 아무 개주가 필요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는데도 그때나 오늘날이나 주화 전체의 실질 가치를 정했다. 그때 은화 개주가 은 지금의 값을 조폐국 가격까지 끌어내리지 못했으니, 그와 같은 개주가 이제 그리하리라고 보기는 그리 그럴 법하지 않다.
은화를 금화만큼 법정 무게에 가깝게 되돌려 놓는다면, 기니 하나는 오늘날의 비례에 따라 지금으로 살 수 있는 은보다 더 많은 은을 주화로 받아 낼 법하다. 은화가 법정 무게를 온전히 담고 있으면 이 경우 그것을 녹여, 먼저 그 지금을 금화에 팔고 뒤에 그 금화를 은화와 바꾸어 다시 그와 같이 녹이는 데 이윤이 생길 것이다. 오늘날의 비례를 얼마쯤 바꾸는 것만이 이 불편을 막는 길인 듯하다.
주화에서 은이 금에 대한 제 비례보다 오늘날 낮게 매겨져 있는 만큼 높게 매겨진다면, 그리고 그와 함께 구리가 1실링을 거슬러 주는 것 이상으로는 법정 지불 수단이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은도 1기니를 거슬러 주는 것 이상으로는 법정 지불 수단이 되지 못한다고 정해 둔다면, 그 불편은 어쩌면 덜할 것이다. 이 경우 어떤 채권자도 주화에서 은을 높게 매긴 탓에 속임을 당할 수 없으니, 오늘날 어떤 채권자도 구리를 높게 매긴 탓에 속임을 당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규정으로 손해를 볼 사람은 은행가뿐일 것이다. 예금 인출이 밀려들면 그들은 때로 6펜스 은화로 지불하여 시간을 벌려 하는데, 이 규정은 그들이 당장의 지불을 이렇게 떳떳하지 못하게 미루는 길을 막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언제나 금고에 오늘날보다 더 많은 현금을 두어야 할 터인데, 이것이 그들에게 적잖은 불편이 될 것은 틀림없으나 그와 함께 그들의 채권자에게는 적잖은 담보가 될 것이다.
금의 조폐국 가격인 3파운드 17실링 10펜스 반에는 오늘날의 훌륭한 금화로도 법정 품위의 금이 1온스를 넘게 들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니, 그러므로 그것이 법정 품위의 지금을 그보다 더 많이 사서는 안 된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주화로 된 금은 지금으로 된 금보다 편하며, 잉글랜드에서는 주조가 무료이기는 하나 지금으로 조폐국에 가져간 금이 몇 주가 지나서야 주화로 임자에게 돌아오는 일이 잦다. 요즈음처럼 조폐국이 바쁠 때에는 몇 달이 지나서야 돌아올 수도 있다. 이 지체는 작은 세나 마찬가지여서, 주화로 된 금을 같은 양의 지금으로 된 금보다 얼마쯤 값지게 만든다. 잉글랜드 주화에서 은이 금에 대한 제 비례에 맞게 매겨진다면, 은화를 개주하지 않고도 은 지금의 값이 조폐국 가격 아래로 떨어질 법하다. 오늘날 닳고 찌그러진 은화조차 그 가치가 그것과 바꿀 수 있는 훌륭한 금화의 가치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금과 은 둘 다 주조에 작은 주조 수수료12나 세를 물린다면, 주화로 된 그 금속이 같은 양의 지금보다 나은 점이 아마 더 커질 것이다. 이 경우 주조는 이 작은 세의 크기에 비례하여 주조된 금속의 가치를 늘릴 터인데, 세공이 그 세공 값에 비례하여 은그릇의 가치를 늘리는 것과 같은 까닭이다. 주화가 지금보다 나은 점은 주화를 녹이는 일을 막고 그 수출을 꺼리게 하리라. 나라에 무슨 급한 일이 생겨 주화를 수출해야 하게 된다면, 그 대부분은 머지않아 저절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나라 밖에서는 그것이 지금으로서의 무게만큼만 팔릴 수 있다. 나라 안에서는 그 무게보다 더 많이 살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시 집으로 들여오는 데 이윤이 생길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주조에 8퍼센트쯤의 주조 수수료를 물리는데, 프랑스 주화는 수출되어도 저절로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금 지금과 은 지금의 시장 가격에 어쩌다 일어나는 출렁임은 다른 모든 상품의 값에 일어나는 그런 출렁임과 같은 원인에서 온다. 바다와 땅에서 온갖 사고로 그 금속을 자주 잃는 일, 도금과 은도금에, 레이스와 자수에, 주화의 닳음과 은그릇의 닳음에 그것이 끊임없이 닳아 없어지는 일 때문에, 자기 광산을 가지지 못한 모든 나라에서는 이 손실과 이 닳음을 메우려고 끊임없이 수입해야 한다. 수입하는 상인들도 다른 모든 상인과 마찬가지로 그때그때의 수입을 당장의 수요가 될 만하다고 판단한 것에 되도록 맞추려 애쓴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써도 그들은 때로 지나치게 하고 때로 모자라게 한다. 필요한 것보다 많은 지금을 수입했을 때에는, 그것을 다시 수출하는 위험과 수고를 무릅쓰기보다 그 일부를 여느 값이나 평균값보다 얼마쯤 싸게 팔 뜻이 있을 때가 있다. 반대로 필요한 것보다 적게 수입했을 때에는 이 값보다 얼마쯤 더 받는다. 그러나 그런 그때그때의 출렁임 속에서도 금 지금이나 은 지금의 시장 가격이 여러 해를 잇대어 꾸준히 그리고 줄곧 조폐국 가격보다 다소 높거나 다소 낮은 채로 이어진다면, 이 꾸준하고 줄기찬 값의 높음이나 낮음은 주화의 형편에 있는 무언가가 그때 주화 얼마를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할 지금의 정확한 양보다 더 값지거나 덜 값지게 만드는 데서 온 결과라고 보아도 좋다. 결과가 줄기차고 꾸준하다는 것은 원인에도 그에 비례하는 줄기참과 꾸준함이 있음을 뜻한다.
어떤 나라의 화폐든 어떤 특정한 때와 곳에서 가치를 재는 척도로서 더 정확하거나 덜 정확한 것은, 그때 통용되는 주화가 그 법정 기준에 더 꼭 맞거나 덜 맞는지, 곧 그 안에 들어 있어야 할 순금이나 순은의 정확한 양을 더 꼭 담고 있거나 덜 담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예컨대 잉글랜드에서 44기니 반에 법정 품위의 금 1파운드(무게), 곧 순금 11온스와 합금 1온스가 꼭 들어 있다면, 잉글랜드의 금화는 어떤 특정한 때와 곳에서 재화의 실제 가치를 사물의 본성이 허락하는 만큼 정확하게 재는 척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문지르고 닳아서 44기니 반에 법정 품위의 금 1파운드(무게)보다 적게 들어 있는 것이 예사가 되고, 그 줄어든 정도가 어떤 조각에서는 다른 조각에서보다 더 크다면, 가치의 척도도 다른 모든 저울과 자가 흔히 놓이는 것과 같은 종류의 불확실함에 놓이게 된다. 그것들이 법정 기준에 꼭 맞는 일이 드물므로, 상인은 자기 재화의 값을 그 저울과 자가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지에 맞추지 않고 평균으로 볼 때 실제로 어떠한지를 경험으로 알아내어 되도록 그것에 맞춘다. 주화에 그와 같은 어지러움이 있으면, 재화의 값도 마찬가지로 주화가 마땅히 담고 있어야 할 순금이나 순은의 양에 맞추어지지 않고 평균으로 볼 때 실제로 담고 있다고 경험으로 알아낸 양에 맞추어진다.
재화의 화폐 가격이라고 할 때 내가 늘 뜻하는 것은 주화의 이름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은, 재화가 팔린 순금이나 순은의 양임을 알아 두어야 한다. 예컨대 에드워드 1세 때의 6실링 8펜스를 나는 오늘날의 1파운드 스털링과 같은 화폐 가격으로 본다.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한 그 안에 같은 양의 순은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6장 상품 가격의 구성 부분에 대하여
자산이 쌓이는 일과 토지를 제 것으로 차지하는 일이 둘 다 있기 전의 저 이르고 거친 사회 형편에서는, 서로 다른 물건을 얻는 데 드는 노동의 양 사이의 비율이 그것들을 서로 바꾸는 데 어떤 규칙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정인 듯하다. 예컨대 사냥하는 민족에서 비버 한 마리를 잡는 데 사슴 한 마리를 잡는 것의 두 배 노동이 흔히 든다면, 비버 한 마리는 자연히 사슴 두 마리와 바뀌거나 그만한 값어치가 있어야 한다. 이틀이나 두 시간 노동의 생산물이 흔히 하루나 한 시간 노동의 생산물의 두 배 값어치가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쪽 노동이 다른 쪽보다 더 고되다면, 이 더한 고됨을 자연히 얼마쯤 감안해 줄 터이고, 한쪽에서 한 시간 노동의 생산물이 다른 쪽에서 두 시간 노동의 생산물과 바뀌는 일도 잦을 것이다.
또 한쪽 노동이 남다른 정도의 손재주와 재간을 요구한다면, 사람들이 그런 재능에 두는 존중이 자연히 그 생산물에 거기 들인 시간에 마땅한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줄 것이다. 그런 재능은 오래 매달린 끝에 얻는 것 말고는 얻어지는 일이 드물며, 그 생산물의 더 높은 가치는 그것을 얻는 데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동에 대한 온당한 보상에 지나지 않는 일이 잦으리라. 나아간 사회 형편에서는 더한 고됨과 더한 솜씨에 대한 이런 종류의 감안이 흔히 노동의 임금에서 이루어지며, 그와 같은 것이 사회의 가장 이르고 가장 거친 시기에도 아마 얼마쯤 있었을 것이다.
이런 형편에서는 노동의 생산물 전체가 노동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며, 어떤 상품을 얻거나 만드는 데 흔히 들이는 노동의 양이 그 상품이 흔히 사거나 부리거나 바꿀 수 있어야 할 노동의 양을 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정으로 남는다.
자산이 특정한 사람들의 손에 쌓이자마자, 그들 가운데 몇몇은 자연히 그것을 부지런한 사람들을 일하게 하는 데 쓰면서 그들에게 재료와 생계를 대어 주고, 그 일의 판매로, 곧 그들의 노동이 재료의 가치에 더해 주는 것으로 이윤을 얻으려 할 것이다. 완성된 제조품을 화폐로든 노동으로든 다른 재화로든 바꿀 때, 재료의 값과 일꾼의 임금을 치르기에 넉넉한 것을 넘어, 이 일에 자기 자산을 걸고 나선 사업가의 이윤을 위해 무언가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일꾼이 재료에 더해 주는 가치는 이 경우 두 부분으로 갈라지는데, 하나는 그들의 임금을 치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미리 내놓은 재료와 임금 전체의 자산에 대한 그 고용주의 이윤을 치른다. 그가 그들의 일을 팔아 자기 자산을 되메우기에 넉넉한 것보다 무언가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들을 고용할 마음이 있을 수 없고, 자기 이윤이 자기 자산의 크기에 얼마쯤 비례하지 않는다면 작은 자산보다 큰 자산을 쓸 마음이 있을 수 없다.
자산의 이윤은 어쩌면 특정한 종류의 노동, 곧 감독하고 지휘하는 노동의 임금을 달리 부르는 이름일 뿐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둘은 아주 다르며, 서로 딴 원리로 정해지고, 이 감독하고 지휘하는 노동이라는 것의 양이나 고됨이나 재간에 조금도 비례하지 않는다. 그것은 온전히 쓰인 자산의 가치로 정해지며, 이 자산의 크기에 비례하여 크거나 작다. 예컨대 어떤 특정한 곳에서 제조 자산의 여느 연간 이윤이 10퍼센트라 하고, 그곳에 서로 다른 두 제조업이 있어 각각 일꾼 스무 명을 한 사람에 한 해 15파운드로, 곧 한 공장에서 한 해 300파운드를 들여 쓴다고 해 보자. 또 한쪽에서 한 해에 써 들이는 거친 재료는 700파운드밖에 들지 않는데 다른 쪽의 고운 재료는 7,000파운드가 든다고 해 보자. 이 경우 한쪽에서 한 해에 쓰이는 자본은 1,000파운드에 그치겠으나 다른 쪽에서 쓰이는 자본은 7,300파운드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10퍼센트로 셈하면 한쪽의 사업가는 한 해 이윤을 100파운드쯤만 바라겠으나 다른 쪽의 사업가는 730파운드쯤을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윤이 그렇게 크게 다르되 감독하고 지휘하는 노동은 아예 같거나 거의 같을 수 있다. 큰 일터가 많은 곳에서는 이런 종류의 노동이 거의 모두 어느 수석 서기에게 맡겨진다. 그의 임금이 이 감독하고 지휘하는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나타낸다. 그의 임금을 정할 때 흔히 그의 노동과 솜씨뿐 아니라 그에게 맡긴 신임까지 얼마쯤 헤아리기는 하나, 그의 임금은 그가 관리를 살피는 자본에 결코 일정하게 비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자본의 임자는 이렇게 거의 모든 노동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자기 이윤이 자기 자본에 일정하게 비례해야 한다고 여전히 바란다. 그러므로 상품의 가격에서 자산의 이윤은 노동의 임금과 아주 다르고 서로 딴 원리로 정해지는 구성 부분을 이룬다.
이런 형편에서는 노동의 생산물 전체가 언제나 노동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는 대부분 경우에 자기를 고용하는 자산의 임자와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 또 어떤 상품을 얻거나 만드는 데 흔히 들이는 노동의 양이 그 상품이 흔히 사거나 부리거나 바꿀 수 있어야 할 양을 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정도 아니다. 그 노동의 임금을 미리 내놓고 재료를 마련해 준 자산의 이윤을 위하여 얼마가 더 돌아가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어떤 나라의 토지가 모두 사유 재산이 되자마자 지주들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제가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두기를 좋아하여, 토지의 자연 생산물에까지 지대를 요구한다. 숲의 나무, 들의 풀, 땅의 모든 자연 열매는 토지가 공유였을 때에는 노동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거두는 수고밖에 들지 않았으나, 이제 그에게까지 값이 더 붙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그것을 거둘 허락에 값을 치러야 하고, 자기 노동이 모으거나 만들어 내는 것의 일부를 지주에게 내주어야 한다. 이 일부, 또는 같은 말이지만 이 일부의 값이 토지의 지대를 이루며, 대부분 상품의 가격에서 세 번째 구성 부분이 된다.
가격의 서로 다른 모든 구성 부분의 실질 가치는 그 각각이 사거나 부릴 수 있는 노동의 양으로 재어진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노동은 가격 가운데 노동으로 갈라지는 부분의 가치만 재는 것이 아니라 지대로 갈라지는 부분의 가치와 이윤으로 갈라지는 부분의 가치도 잰다.
어느 사회에서나 모든 상품의 가격은 끝내 그 세 부분 가운데 어느 하나로, 또는 그 셋 모두로 갈라진다. 그리고 발전한 사회에서는 그 셋이 모두 구성 부분으로서 훨씬 대부분 상품의 가격에 다소간 들어간다.
예컨대 곡물의 가격에서 한 부분은 지주의 지대를 치르고, 다른 부분은 그것을 길러 내는 데 쓰인 노동자와 일하는 가축의 임금이나 부양을 치르며, 세 번째 부분은 농부의 이윤을 치른다. 이 세 부분이 곧바로든 끝내든 곡물의 값 전체를 이루는 듯하다. 네 번째 부분이 농부의 자산을 되메우거나 일하는 가축과 그 밖의 농기구의 닳음을 메우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하는 말 같은 농기구의 값 자체가 같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헤아려야 한다. 곧 그 말을 기른 토지의 지대, 그것을 돌보고 기른 노동, 그리고 이 토지의 지대와 이 노동의 임금을 둘 다 미리 내놓은 농부의 이윤이다. 그러므로 곡물의 값이 말의 부양뿐 아니라 말의 값까지 치를 수 있다 해도, 그 값 전체는 곧바로든 끝내든 여전히 지대와 노동과 이윤이라는 같은 세 부분으로 갈라진다.
밀가루나 거친 가루의 값에는 곡물의 값에 방앗간 주인의 이윤과 그 일꾼들의 임금을 더해야 하고, 빵의 값에는 빵 굽는 사람의 이윤과 그 일꾼들의 임금을 더해야 하며, 둘 다에는 곡물을 농부의 집에서 방앗간 주인의 집으로, 방앗간 주인의 집에서 빵 굽는 사람의 집으로 옮기는 노동과 그 노동의 임금을 미리 내놓는 사람들의 이윤을 더해야 한다.
아마의 값도 곡물의 값과 같은 세 부분으로 갈라진다. 아마포의 값에는 이 값에 아마 다듬는 사람과 실 잣는 사람과 베 짜는 사람과 바래는 사람 등의 임금, 그리고 그들 각각의 고용주의 이윤을 더해야 한다.
어떤 상품이 더 많이 손질을 거칠수록, 가격 가운데 임금과 이윤으로 갈라지는 부분이 지대로 갈라지는 부분에 비하여 커진다. 제조가 나아가는 가운데 이윤의 수가 늘어날 뿐 아니라 뒤따르는 이윤이 저마다 앞선 이윤보다 크다. 그것이 나오는 자본이 언제나 더 커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베 짜는 사람을 쓰는 자본은 실 잣는 사람을 쓰는 자본보다 커야 한다. 그 자본은 뒤의 자본을 그 이윤과 함께 되메울 뿐 아니라 그 밖에 베 짜는 사람의 임금까지 치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윤은 언제나 자본에 얼마쯤 비례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발전한 사회에서도 가격이 노동의 임금과 자산의 이윤이라는 두 부분으로만 갈라지는 상품이 늘 몇 가지 있고, 온전히 노동의 임금으로만 이루어지는 상품은 그보다 더 적게 있다. 예컨대 바닷물고기의 값에서 한 부분은 어부의 노동을 치르고 다른 부분은 그 어장에 쓰인 자본의 이윤을 치른다. 지대가 그 값의 어떤 부분을 이루는 일은 아주 드물되, 뒤에 밝히려 하겠으나 때로는 그러기도 한다. 적어도 유럽의 대부분에서 강 어장은 사정이 다르다. 연어 어장은 지대를 치르며, 그 지대를 토지의 지대라고 하기는 어렵되 임금과 이윤과 마찬가지로 연어 값의 한 부분을 이룬다. 스코틀랜드의 어떤 곳에서는 가난한 사람 몇이 바닷가를 따라 흔히 스코틀랜드 조약돌13이라 부르는 그 얼룩진 작은 돌을 주워 모으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다. 돌 깎는 사람이 그들에게 치르는 값은 온전히 그들 노동의 임금이며, 지대도 이윤도 그 값의 어떤 부분을 이루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상품이든 그 값 전체는 여전히 끝내 그 세 부분 가운데 어느 하나로, 또는 그 셋 모두로 갈라질 수밖에 없다. 토지의 지대와 그것을 길러 내고 만들고 시장으로 가져오는 데 쓰인 노동 전체의 값을 치른 뒤에 남는 부분은 무엇이든 누군가의 이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품 하나하나를 따로 놓고 볼 때 그 가격 또는 교환 가치가 그 세 부분 가운데 어느 하나로, 또는 그 셋 모두로 갈라지듯이, 어느 나라든 그 나라 노동의 연간 생산물 전체를 이루는 모든 상품의 가격도 뭉쳐 놓고 볼 때 같은 세 부분으로 갈라져, 그 나라의 서로 다른 주민들에게 그들 노동의 임금으로든, 그들 자산의 이윤으로든, 그들 토지의 지대로든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한 해에 모아지거나 만들어지는 것 전체, 또는 같은 말이지만 그 값 전체는 이렇게 하여 처음에 그 사회의 서로 다른 구성원 몇에게 나뉜다. 임금과 이윤과 지대는 모든 교환 가치의 세 본래 원천이면서 모든 수입의 세 본래 원천이다. 다른 모든 수입은 끝내 이 셋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 나온다.
제 것인 기금에서 수입을 얻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자기 노동에서든 자기 자산에서든 자기 토지에서든 끌어내야 한다. 노동에서 나오는 수입을 임금이라 하고, 자산에서 그것을 관리하거나 쓰는 사람이 얻는 수입을 이윤이라 하며, 자산을 제가 쓰지 않고 남에게 빌려 주는 사람이 그것에서 얻는 수입을 이자 또는 화폐 사용료라 한다. 그것은 빌리는 사람이 그 화폐를 써서 얻을 기회가 있는 이윤에 대하여 빌려 주는 사람에게 치르는 보상이다. 그 이윤의 일부는 위험을 지고 그것을 쓰는 수고를 하는 빌리는 사람에게 자연히 돌아가고, 일부는 그에게 이 이윤을 얻을 기회를 주는 빌려 주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화폐의 이자는 언제나 파생된 수입이니, 그 화폐를 써서 얻은 이윤에서 치러지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수입 원천에서 치러져야 한다. 다만 빌리는 사람이 첫 빚의 이자를 치르려고 둘째 빚을 지는 낭비꾼이라면 어쩌면 이야기가 다를지도 모른다. 온전히 토지에서 나오는 수입을 지대라 하며, 그것은 지주에게 돌아간다. 농부의 수입은 얼마쯤은 자기 노동에서 나오고 얼마쯤은 자기 자산에서 나온다. 그에게 토지는 이 노동의 임금을 벌고 이 자산의 이윤을 얻게 해 주는 수단일 뿐이다. 모든 세와 그 위에 세워진 모든 세입, 온갖 종류의 모든 봉급과 연금과 연부금은 끝내 이 세 본래 수입 원천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 나오며, 노동의 임금에서든 자산의 이윤에서든 토지의 지대에서든 곧바로 또는 건너서 치러진다.
그 서로 다른 세 가지 수입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때에는 쉽게 갈라 보지만, 같은 사람에게 돌아갈 때에는 적어도 여느 말씨에서 서로 뒤섞이는 일이 있다.
제 땅의 일부를 스스로 부치는 신사는 경작 비용을 치른 뒤에 지주의 지대와 농부의 이윤을 둘 다 얻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얻은 것 전체를 이윤이라 부르기 쉬우니, 이렇게 하여 적어도 여느 말씨에서 지대를 이윤과 뒤섞는다. 북아메리카와 서인도의 농장주 대부분이 이런 처지에 있다. 그들 대부분은 제 땅을 스스로 부치며, 그러므로 우리는 농장의 지대에 대하여 듣는 일이 드물고 그 이윤에 대하여 듣는 일이 잦다.
여느 농부들은 농장의 전반 운영을 지휘할 감독을 두는 일이 드물다. 또 그들은 대체로 쟁기잡이로든 써레질꾼으로든 제 손으로 꽤 많이 일한다. 그러므로 지대를 치른 뒤에 남는 수확은 경작에 쓴 그들의 자산을 그 여느 이윤과 함께 되메워 줄 뿐 아니라, 노동자로서도 감독으로서도 그들에게 마땅한 임금까지 치러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대를 치르고 자산을 그대로 지킨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이든 이윤이라 부른다. 그런데 임금이 그 가운데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이 분명하다. 농부는 이 임금을 아낌으로써 그것을 반드시 얻는다. 그러므로 임금이 이 경우 이윤과 뒤섞인다.
재료를 사들이고 제 일을 시장에 내놓을 때까지 스스로를 부양할 만큼 자산을 갖춘 독립 제조업자는, 주인 밑에서 일하는 직인14의 임금과 그 주인이 그 직인의 일을 팔아 얻는 이윤을 둘 다 얻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 전체는 흔히 이윤이라 부르며, 이 경우에도 임금이 이윤과 뒤섞인다.
제 손으로 제 밭을 일구는 정원사는 지주와 농부와 노동자라는 서로 다른 세 인물을 한 몸에 아우른다. 그러므로 그의 생산물은 그에게 첫째의 지대와 둘째의 이윤과 셋째의 임금을 치러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체는 흔히 그의 노동이 벌어들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경우 지대와 이윤이 둘 다 임금과 뒤섞인다.
문명한 나라에서는 교환 가치가 노동에서만 나오는 상품이 몇 가지밖에 없고 훨씬 대부분 상품의 교환 가치에는 지대와 이윤이 크게 보태지므로, 그 나라 노동의 연간 생산물은 그 생산물을 길러 내고 손질하여 시장으로 가져오는 데 쓰인 노동보다 훨씬 많은 노동을 언제나 사거나 부릴 수 있다. 사회가 한 해에 사들일 수 있는 노동을 한 해에 모두 쓴다면, 노동의 양이 해마다 크게 늘어날 터이므로 뒤따르는 해의 생산물은 앞선 해의 생산물보다 아주 크게 값질 것이다. 그러나 연간 생산물 전체를 부지런한 사람들을 부양하는 데 쓰는 나라는 없다. 놀고 지내는 사람들이 어디서나 그 가운데 큰 부분을 소비하며, 그것이 해마다 그 서로 다른 두 부류 사람들에게 나뉘는 비율이 어떠한지에 따라 그 여느 가치 또는 평균 가치가 해마다 늘거나 줄거나, 아니면 한 해에서 다음 해로 그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주
1. 옮긴이 — 토머스 홉스(1588–1679). 영국의 정치철학자. 《리바이어던》을 썼다.
2. 옮긴이 — 저본은 이 자리를 「그것이 낳을 수 있는 노동」(the labour which it can produce)으로 적는다. 다른 판본은 마지막 낱말을 purchase 로 읽어 「그것이 사들일 수 있는 노동」이 된다.
3. 옮긴이 — 1파운드는 20실링,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반 페니는 하프페니라 부른다. 무게 단위 파운드는 화폐 단위 파운드와 다르므로, 이 번역에서는 두 단위가 함께 나오는 자리에서 「파운드(무게)」로 갈라 적는다. 구리처럼 여느 물건을 다는 상형(常衡) 파운드는 16온스로 약 453그램이고, 금과 은의 무게에는 이보다 가벼운 12온스의 금형(金衡) 파운드를 썼다.
4. 옮긴이 — 1576년에 제정된 엘리자베스 18년 법 6장이다. 대학과 학교가 놓는 차지의 지대 가운데 3분의 1을 곡물로, 또는 그때 시세에 따라 받도록 정했다.
5. 옮긴이 — 윌리엄 블랙스톤(1723–1780). 《잉글랜드법 주해》를 쓴 잉글랜드 법학자.
6. 옮긴이 — 쿼터는 곡물을 되는 단위로 약 291리터, 밀로는 약 8부셸에 해당한다. 「4분의 1」이라는 뜻이 아니다.
7. 옮긴이 — 대(大) 플리니우스(23–79). 《박물지》를 남긴 로마의 저술가. 1차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64년에 시작되었다.
8. 옮긴이 — 기니는 1663년부터 주조된 잉글랜드 금화로, 1717년 이후 21실링으로 셈되었다. 이름은 금을 실어 온 아프리카의 기니 해안에서 왔다.
9. 옮긴이 — 드러먼드 은행은 1717년 런던 채링 크로스에 문을 연 개인 은행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음은 그 은행이 발행한 약속어음이다.
10. 옮긴이 — 영국은 1774년에 닳은 금화를 거두어 다시 주조했다. 스미스가 「요즈음의 금화 개주」라 부르는 일이 그것이다.
11. 옮긴이 — 존 로크(1632–1704). 1695년에 낸 화폐론에서 은화 개주와 은의 값을 논했다.
12. 옮긴이 — 원문의 seignorage는 주권자가 주조를 해 주는 대가로 떼는 몫이다. 잉글랜드는 이를 물리지 않았고 프랑스는 물렸다.
13. 옮긴이 — 스코틀랜드 해안에서 주운 마노와 벽옥 조각을 갈아 브로치나 반지에 박았다. 18세기에 성했던 일이다.
14. 옮긴이 — 직인은 도제살이를 마치고 하루나 한 해 단위로 삯을 받으며 주인의 일터에서 일하는 기능공이다. 동업조합의 규약이 도제와 직인과 주인의 단계를 정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