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무역 차액이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나라에서 들여오는 거의 모든 물건에 가한 특별한 제한
3장 무역 차액이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나라에서 들여오는 거의 모든 물건에 가한 특별한 제한
1절 — 상업 체계의 원리에 비추어 보아도 그 제한이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것
무역 차액이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특정한 나라들에서 들여오는 거의 모든 종류의 재화에 특별한 제한을 가하는 것은, 상업 체계가 금과 은의 양을 늘리려고 내놓는 두 번째 방책이다. 그리하여 영국에서는 슐레지엔 론을 일정한 관세만 물면 국내에서 쓰려고 들여올 수 있으나, 프랑스의 캠브릭과 론은 다시 내보내려고 창고에 넣어 두는 런던 항 말고는 들여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프랑스 포도주에는 포르투갈 포도주에, 아니 다른 어느 나라 포도주에 물리는 것보다 높은 관세를 물린다. 이른바 1692년 수입세1로 모든 프랑스 재화에 정해진 사정액 곧 가액의 25퍼센트에 해당하는 관세가 매겨졌는데, 다른 나라들의 재화는 그 큰 몫이 훨씬 가벼운 관세를 물었고 5퍼센트를 넘는 일이 드물었다. 프랑스의 포도주와 브랜디와 소금과 초는 정말이지 여기서 빠졌으나, 이 상품들은 다른 법으로든 같은 법의 특별한 조항으로든 다른 무거운 관세를 물고 있었다. 1696년에는 첫 번째 것이 넉넉히 억누르지 못한다고 여겨져 브랜디만 빼고 모든 프랑스 재화에 25퍼센트의 두 번째 관세가 매겨졌고, 프랑스 포도주 한 톤에 25파운드2, 프랑스 초 한 톤에 15파운드의 새 관세가 함께 매겨졌다. 관세 사정표에 오른 재화 전부 또는 그 큰 몫에 매겨 온 5퍼센트의 그 일반 보조세, 곧 관세에서 프랑스 재화가 빠진 적은 한 번도 없다. 3분의 1 보조세와 3분의 2 보조세를 둘이 합쳐 온전한 보조세 하나를 이룬다고 셈하면 이런 일반 보조세가 다섯 번 있었으니, 지금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프랑스에서 자라거나 나거나 만들어진 재화의 큰 몫이 물어야 할 가장 낮은 관세가 75퍼센트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재화의 큰 몫에는 그런 관세가 금지와 다름없다. 프랑스인들도 그들 차례로 우리 재화와 제조품을 똑같이 매섭게 다루어 왔다고 나는 믿으나, 그들이 우리 것에 안긴 낱낱의 괴로움은 그만큼 잘 알지 못한다. 서로 가한 그 제한은 두 나라 사이의 바른 교역을 거의 다 끝장내 버렸고, 이제는 영국 재화를 프랑스로 들여가는 일이든 프랑스 재화를 영국으로 들여오는 일이든 밀수꾼이 주로 하고 있다. 앞 장에서 내가 살펴본 원리들은 사사로운 이익과 독점의 심사에서 비롯되었고, 이 장에서 살펴보려는 원리들은 나라의 편견과 미움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이 원리들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듯이 더욱 이치에 닿지 않는다. 상업 체계의 원리에 비추어 보아도 그러하다.
첫째, 이를테면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자유로운 무역이 이루어질 때 차액이 프랑스에 유리하게 나오리라는 것이 확실하다 해도, 그런 무역이 영국에 불리하다거나 그리하여 영국 무역 전체의 일반 차액이 더욱 영국에 어긋나게 돌아선다는 결론이 결코 따라 나오지는 않는다. 프랑스 포도주가 포르투갈 포도주보다 낫고 싸다면, 또는 프랑스 아마포가 독일 아마포보다 낫고 싸다면, 영국으로서는 필요한 포도주와 외국 아마포를 포르투갈과 독일에서 사는 것보다 프랑스에서 사는 것이 더 이롭다. 그리하여 프랑스에서 해마다 들여오는 것의 가치가 크게 늘어난다 해도, 같은 품질의 프랑스 재화가 다른 두 나라의 재화보다 싼 그만큼 해마다 들여오는 것 전체의 가치는 줄어들 것이다. 들여온 프랑스 재화 전부를 영국에서 소비한다고 가정해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둘째로, 그 가운데 큰 몫은 다른 나라들로 다시 내보낼 수 있을 것이고, 거기서 이윤을 남겨 팔리면 어쩌면 들여온 프랑스 재화 전체의 원가와 맞먹는 가치의 회수를 되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동인도 거래를 두고 자주 하던 말이 프랑스 거래에도 맞을 법하다. 곧 동인도 재화의 큰 몫을 금과 은으로 샀더라도 그 가운데 일부를 다른 나라로 다시 내보내어, 그 거래를 이끈 나라로 전체 원가보다 더 많은 금과 은을 되돌려 왔다는 말이다. 오늘날 네덜란드 무역에서 가장 중요한 갈래 하나가 프랑스 재화를 다른 유럽 나라들로 실어 주는 일이다. 영국에서 마시는 프랑스 포도주조차 얼마는 네덜란드와 제일란트에서 몰래 들어온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자유로운 무역이 있거나, 또는 프랑스 재화를 다른 유럽 나라들의 재화와 같은 관세만 물고 들여오게 하고 그것을 내보낼 때 그 관세를 되돌려 받게 한다면, 영국도 네덜란드에 그토록 이롭다고 알려진 이 거래에서 얼마쯤 몫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또 마지막으로, 어느 두 나라 사이의 이른바 차액이 어느 쪽에 있는지, 또는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큰 가치를 내보내는지를 확실히 가려 줄 기준이 없다. 나라의 편견과 미움은 언제나 특정한 장사꾼들의 사사로운 이익에서 부추김을 받아, 이 문제를 둘러싼 모든 물음에서 우리의 판단을 이끄는 원리가 되어 있다. 그렇더라도 그런 자리에서 자주 끌어대던 기준이 둘 있는데, 세관 장부와 환 시세다. 세관 장부는 거기에 적힌 재화의 큰 몫이 얼마로 사정되었는가가 정확하지 않아 아주 못 믿을 기준이라는 것이 이제는 널리 받아들여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환 시세도 아마 거의 그와 같다.
런던과 파리처럼 두 곳 사이의 환이 평가(平價)에 있을 때는3 런던이 파리에 진 빚이 파리가 런던에 진 빚으로 맞비겨진다는 표시라고들 한다. 반대로 파리 앞으로 떼는 어음에 런던에서 웃돈을 치를 때는 런던이 파리에 진 빚이 파리가 런던에 진 빚으로 맞비겨지지 않아 그 차액을 화폐로 런던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표시라고들 하며, 그것을 내보내는 데에 드는 위험과 수고와 비용 때문에 그 웃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두 도시 사이의 빚과 채권이 보통 어떤 상태인가는 서로 거래하는 보통의 흐름이 정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둘 가운데 어느 쪽도 상대에게 내보내는 것보다 더 많은 액을 상대에게서 들여오지 않으면 저마다의 빚과 채권이 서로 맞비겨질 수 있다. 그러나 둘 가운데 한쪽이 상대에게 내보내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상대에게서 들여오면, 앞쪽은 뒤쪽이 앞쪽에 지는 액보다 더 큰 액을 뒤쪽에 지게 될 수밖에 없다. 저마다의 빚과 채권이 서로 맞비겨지지 않으니, 빚이 채권보다 무거운 쪽에서 화폐를 내보내야 한다. 그러므로 보통의 환 시세는 두 곳 사이의 빚과 채권이 보통 어떤 상태인가를 알리는 표지이니, 그 상태를 정하는 것이 그들이 내보내고 들여오는 것의 보통 흐름이므로 환 시세는 그 흐름을 알리는 표지이기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통의 환 시세가 어느 두 곳 사이의 빚과 채권이 보통 어떤 상태인가를 넉넉히 알려 준다고 인정한다 해도, 빚과 채권의 보통 상태가 제게 유리한 쪽이 무역 차액에서도 유리하다는 결론이 거기서 따라 나오지는 않는다. 어느 두 곳 사이의 빚과 채권의 보통 상태는 서로 거래하는 보통의 흐름만으로 늘 온전히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둘 가운데 어느 한쪽이 다른 여러 곳과 하는 거래의 흐름에서 영향을 받는 일이 흔하다. 이를테면 잉글랜드 상인들이 함부르크와 단치히와 리가 같은 곳에서 사들이는 재화의 값을 네덜란드 앞으로 떼는 어음으로 치르는 것이 예사라면,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사이의 빚과 채권의 보통 상태는 두 나라가 서로 거래하는 보통의 흐름만으로 온전히 정해지지 않고 잉글랜드가 그 다른 곳들과 하는 거래의 흐름에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잉글랜드가 네덜란드로 해마다 내보내는 것이 거기서 해마다 들여오는 것의 연간 가치를 크게 넘고 이른바 무역 차액이 잉글랜드에 아주 유리하다 해도, 잉글랜드는 해마다 네덜란드로 화폐를 내보내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여태 환 평가를 셈해 온 그 셈법으로는, 보통의 환 시세가 제게 유리해 보이거나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나라가 빚과 채권의 보통 상태에서도 유리하다는 것을 넉넉히 알려 줄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실제 환율이 셈으로 나온 환율과 아주 달라질 수 있고 실제로도 흔히 그러하므로, 뒤엣것의 흐름에서 앞엣것의 흐름을 두고 확실한 결론을 끌어낼 수 없는 자리가 많다.
잉글랜드에서 치른 화폐 액수가 잉글랜드 조폐국의 법정 기준으로 순은 몇 온스를 담고 있을 때, 그 액을 치르고 프랑스에서 치를 화폐 액수의 어음을 받되 그 액이 프랑스 조폐국의 법정 기준으로 같은 온스의 순은을 담고 있다면,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환이 평가에 있다고 한다. 더 많이 치르면 웃돈을 준 것으로 보아 환이 잉글랜드에 어긋나고 프랑스에 유리하다고 하며, 더 적게 치르면 웃돈을 받은 것으로 보아 환이 프랑스에 어긋나고 잉글랜드에 유리하다고 한다.
그러나 첫째로, 우리는 여러 나라의 통용 화폐가 가지는 가치를 저마다의 조폐국 법정 기준으로 늘 가늠할 수는 없다. 어떤 나라에서는 더 닳고 깎였으며 다른 나라에서는 덜 닳고 깎여, 그 기준에서 이리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어느 나라의 통용 주화든 다른 어느 나라의 것과 견준 그 가치는 마땅히 담고 있어야 할 순은의 양이 아니라 실제로 담고 있는 순은의 양에 비례한다. 윌리엄 국왕 때 은화를 개주하기 전에는4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사이의 환을 저마다의 조폐국 법정 기준에 따라 늘 하던 대로 셈하면 잉글랜드에 25퍼센트 어긋났다. 그러나 라운즈 씨에게서 배우는 바로는, 그때 잉글랜드 통용 주화의 가치는 그 법정 가치보다 25퍼센트가 조금 넘게 낮았다. 그러므로 셈으로 나온 환율이 그토록 잉글랜드에 어긋났어도 실제 환율은 그때조차 잉글랜드에 유리했을 수 있다. 잉글랜드에서 실제로 치른 더 적은 온스의 순은으로 네덜란드에서 치를 더 많은 온스의 순은짜리 어음을 샀을 수 있으니, 웃돈을 준다고 여겨진 사람이 실제로는 웃돈을 받았을 수 있다. 근래 잉글랜드 금화를 개주하기 전에는5 프랑스 주화가 잉글랜드 주화보다 훨씬 덜 닳아 있어 아마 2퍼센트나 3퍼센트만큼 법정 기준에 더 가까웠다. 그러므로 프랑스와의 셈한 환율이 잉글랜드에 2퍼센트나 3퍼센트를 넘지 않게 어긋났다면, 실제 환율은 잉글랜드에 유리했을 수 있다. 금화를 개주한 뒤로 환은 늘 잉글랜드에 유리하고 프랑스에 어긋나 있다.
둘째로, 어떤 나라에서는 주조 비용을 정부가 치르고 다른 나라에서는 금은괴를 조폐국으로 가져가는 개인이 치르며, 정부는 주조에서 얼마쯤 수입을 얻기도 한다. 잉글랜드에서는 정부가 치르니, 법정 품위의 은 1파운드(무게)를 조폐국으로 가져가면 같은 법정 품위의 은 1파운드(무게)를 담은 62실링을 되받는다. 프랑스에서는 주조 때문에 8퍼센트의 관세를 떼는데, 이것은 주조 비용을 치르고도 정부에 적은 수입을 안겨 준다. 잉글랜드에서는 주조에 비용이 들지 않으므로 통용 주화가 실제로 담고 있는 금은괴의 양보다 훨씬 더 값나갈 수 없다. 프랑스에서는 세공에 값을 치르므로, 그 세공이 만든 은그릇의 가치에 보태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화의 가치에도 보태진다. 그러므로 같은 무게의 순은을 담은 프랑스 화폐 액수는 같은 무게의 순은을 담은 잉글랜드 화폐 액수보다 더 값나가며, 그것을 사려면 더 많은 금은괴나 다른 상품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두 나라의 통용 주화가 저마다의 조폐국 법정 기준에 똑같이 가깝다 해도, 잉글랜드 화폐 액수로는 같은 온스의 순은을 담은 프랑스 화폐 액수를 제대로 살 수 없고 따라서 그만한 액의 프랑스 앞 어음도 살 수 없다. 그런 어음을 사려고 프랑스 주조 비용을 메우기에 넉넉한 만큼만 더 치른다면, 두 나라 사이의 실제 환율은 평가에 있을 수 있으니 저마다의 빚과 채권이 서로 맞비겨질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셈한 환율은 프랑스에 크게 유리하게 나온다. 그보다 적게 치른다면 셈한 환율이 프랑스에 유리하게 나오는 동안에도 실제 환율은 잉글랜드에 유리할 수 있다.
셋째로 또 마지막으로, 암스테르담과 함부르크와 베네치아 같은 몇몇 곳에서는 외국 환어음을 이른바 은행 화폐로 치르고, 런던과 리스본과 안트베르펜과 리보르노 같은 다른 곳에서는 그 나라의 보통 통화로 치른다. 이른바 은행 화폐는6 언제나 같은 명목 액수의 보통 통화보다 더 값나간다. 이를테면 암스테르담 은행의 1000길더는 암스테르담 통화 1000길더보다 더 값나간다. 그 둘 사이의 차이를 그 은행의 아지오라 부르는데,7 암스테르담에서는 대개 5퍼센트쯤이다. 두 나라의 통용 화폐가 저마다의 조폐국 법정 기준에 똑같이 가깝다고 하고, 한쪽은 외국 어음을 이 보통 통화로 치르고 다른 쪽은 은행 화폐로 치른다고 하면, 은행 화폐로 치르는 쪽에 셈한 환율이 유리하게 나오면서도 실제 환율은 통용 화폐로 치르는 쪽에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 뚜렷하다. 더 나은 화폐로, 곧 제 법정 기준에 더 가까운 화폐로 치르는 쪽에 셈한 환율이 유리하게 나오면서도 실제 환율은 더 못한 화폐로 치르는 쪽에 유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까닭이다. 근래 금화를 개주하기 전에는 셈한 환율이 대개 암스테르담과 함부르크와 베네치아에 대해, 또 내가 믿기로는 이른바 은행 화폐로 치르는 다른 모든 곳에 대해 런던에 어긋났다. 그러나 실제 환율도 런던에 어긋났다는 결론이 결코 따라 나오지 않는다. 금화를 개주한 뒤로는 그 곳들에 대해서까지 런던에 유리해졌다. 셈한 환율은 리스본과 안트베르펜과 리보르노에 대해, 또 프랑스를 빼면 내가 믿기로 보통 통화로 치르는 유럽의 다른 대부분 지역에 대해 대개 런던에 유리했고, 실제 환율도 그러했다는 것이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은 아니다.
예치 은행, 특히 암스테르담 은행에 관한 여담.
프랑스나 잉글랜드 같은 큰 나라의 통화는 대개 거의 다 제 나라 주화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 통화가 어느 때든 닳거나 깎이거나 그 밖에 법정 가치 아래로 떨어지면, 그 나라는 주화를 개주하여 통화를 실제로 다시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제노바나 함부르크 같은 작은 나라의 통화는 온통 제 나라 주화로만 이루어지는 일이 드물고, 그 주민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이웃 나라들의 주화로 큰 몫이 채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런 나라는 제 주화를 개주해도 늘 제 통화를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국 환어음을 이 통화로 치른다면, 본디 그토록 불확실한 것의 어떤 액수든 그 가치가 불확실하므로 환이 언제나 그런 나라에 아주 어긋날 수밖에 없으니, 그 통화가 모든 외국에서 실제 값어치보다도 낮게 사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불리한 환이 그 나라 상인들에게 안길 수밖에 없는 불편을 덜려고, 그런 작은 나라들은 무역의 이익에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서, 일정한 가치가 넘는 외국 환어음은 보통 통화로 치르지 말고 어느 은행 앞으로 떼는 지급 지시로 또는 그 은행 장부에 옮겨 적는 것으로 치르도록 자주 법을 세웠다. 그 은행은 나라의 신용에 기대고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세워졌고, 언제나 그 나라의 법정 기준에 정확히 맞는 좋고 참된 화폐로 치를 의무를 졌다. 베네치아와 제노바와 암스테르담과 함부르크와 뉘른베르크의 은행은 본디 다 이런 뜻으로 세워진 듯하며, 그 가운데 몇은 나중에 다른 목적에 쓰이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 은행의 화폐는 그 나라의 보통 통화보다 나으므로 아지오가 붙을 수밖에 없었고, 그 통화가 나라의 법정 기준 아래로 얼마나 떨어졌다고 여겨지는가에 따라 아지오가 크거나 작았다. 이를테면 함부르크 은행의 아지오는 대개 14퍼센트쯤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나라의 좋은 법정 화폐와 이웃 나라들에서 온통 쏟아져 들어온 깎이고 닳고 줄어든 통화 사이의 차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1609년 전에는 암스테르담의 넓은 무역이 유럽 온 곳에서 끌어들인 깎이고 닳은 외국 주화가 워낙 많아, 그 통화의 가치가 조폐국에서 갓 나온 좋은 화폐의 가치보다 9퍼센트쯤 낮아졌다. 그런 좋은 화폐는 나타나기만 하면 그런 사정에서 늘 그렇듯 녹여지거나 실려 나갔다. 상인들은 통화는 넉넉히 가지고 있었으나 환어음을 치를 좋은 화폐를 늘 넉넉히 찾을 수는 없었고, 그것을 막으려고 여러 규정을 세웠어도 그 어음의 가치가 큰 몫 불확실해졌다.
이 불편을 덜려고 1609년에 시의 보증 아래 은행 하나가 세워졌다. 이 은행은 외국 주화든 나라의 가볍고 닳은 주화든 그 나라의 좋은 법정 화폐로 셈한 실제 내재 가치대로 받되, 주조 비용과 그 밖에 관리에 드는 비용을 치르기에 필요한 만큼만 떼었다. 이 적은 떼기를 한 뒤에 남는 가치만큼 은행은 제 장부에 신용을 적어 주었다. 이 신용을 은행 화폐라 불렀으며, 이것은 조폐국 법정 기준에 정확히 맞는 화폐를 나타내므로 언제나 같은 실질 가치를 지녔고 내재로는 통용 화폐보다 더 값나갔다. 그와 함께 암스테르담 앞으로 떼거나 암스테르담에서 넘겨 파는 600길더 이상의 어음은 모두 은행 화폐로 치르도록 법으로 정하였으니, 이로써 그 어음의 가치에 있던 불확실함이 단번에 없어졌다. 이 규정 때문에 모든 상인은 외국 환어음을 치르려고 은행에 계정을 두어야 했고, 그것이 은행 화폐를 찾는 일정한 수요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은행 화폐는 통화보다 내재로 나은 것과 이 수요가 거기에 안겨 줄 수밖에 없는 덧붙는 가치 말고도 다른 이로움이 몇 가지 더 있다. 불과 도둑과 그 밖의 사고에서 안전하고, 암스테르담 시가 그것을 보증하며, 세지 않아도 되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위험을 지지 않아도 되어 옮겨 적는 것만으로 치를 수 있다. 이런 여러 이로움 때문에 처음부터 아지오가 붙은 듯하며, 본디 은행에 예치된 화폐는 다 거기 남도록 허락되었다고들 믿는데, 시장에서 웃돈을 붙여 팔 수 있는 채권을 굳이 찾아 받으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은행에 지급을 요구하면 은행 신용의 임자는 이 웃돈을 잃는다. 조폐국에서 갓 나온 1실링이 시장에서 흔히 닳은 우리 1실링보다 더 많은 재화를 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은행 금고에서 개인의 금고로 옮겨진 좋고 참된 화폐도 그 나라의 보통 통화와 섞이고 뒤엉켜 더 이상 쉽게 가려낼 수 없게 되므로 그 통화보다 더 값나가지 않을 것이다. 은행 금고에 남아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나은 줄 알려져 있고 확인되어 있다. 개인의 금고로 들어가면 그것이 낫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 드는 수고가 어쩌면 그 차이보다 클 것이다. 게다가 은행 금고에서 나오면 안전함과 쉽고 안전한 옮김과 외국 환어음을 치르는 데에 쓰이는 것 같은 은행 화폐의 다른 이로움을 다 잃는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곧 드러나겠지만 그것을 지켜 준 값을 미리 치르지 않고는 그 금고에서 꺼낼 수 없었다.
주화의 그런 예치, 곧 은행이 주화로 되돌려 줄 의무를 진 그 예치가 은행의 본디 자본, 곧 이른바 은행 화폐가 나타내는 것의 온 가치를 이루었다. 오늘날은 그것이 그 가운데 아주 작은 몫만 이룬다고 여겨진다. 금은괴 거래를 쉽게 하려고 은행은 여러 해 전부터 금괴와 은괴의 예치에 제 장부로 신용을 적어 주는 관행을 지켜 왔다. 이 신용은 대개 그런 금은괴의 조폐국 값보다 5퍼센트쯤 낮다. 그와 함께 은행은 이른바 리치피체 곧 예치증을8 내주는데, 이것은 예치한 사람이나 그것을 지닌 사람이 여섯 달 안에 언제든 그 금은괴를 다시 꺼낼 수 있는 권리를 주며, 예치할 때 장부에 적어 준 것과 같은 액의 은행 화폐를 은행에 옮겨 주고 예치가 은이면 지켜 준 값으로 4분의 1퍼센트, 금이면 2분의 1퍼센트를 치르는 것이 그 조건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그 값을 치르지 않고 이 기한이 지나면 그 예치물은 받을 때의 값 곧 대체 장부에 신용으로 적어 준 값으로 은행의 것이 된다고 밝혀 둔다. 이렇게 예치물을 지켜 준 값으로 치르는 것은 일종의 보관료로 볼 수 있는데,9 이 보관료가 왜 은보다 금에 그토록 더 비싸야 하는지를 두고 여러 가지 다른 까닭이 붙었다. 금의 순도는 은의 순도보다 확인하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가장 값비싼 금속에서는 속임수를 쓰기가 더 쉽고 손실도 더 크다. 게다가 은이 법정 기준이 되는 금속이므로 나라가 금보다 은을 예치하는 것을 더 북돋우려 한다고도 한다.
금은괴의 예치는 값이 보통보다 얼마쯤 낮을 때 하는 일이 가장 흔하고, 값이 오를 때 다시 꺼낸다. 네덜란드에서는 금은괴의 시장 가격이 대개 조폐국 값보다 높은데, 근래 금화를 개주하기 전에 잉글랜드에서 그러했던 것과 같은 까닭이다. 그 차이는 순은 열한 몫에 잡금 한 몫이 든 은 8온스, 곧 1마르크에10 대개 6스타이버에서 16스타이버쯤이라고 한다. 그런 은을 예치할 때 은행이 주는 은행 값 곧 신용은(순도가 잘 알려져 확인된 멕시코 달러 같은 외국 주화로 예치할 때다) 1마르크에 22길더이고, 조폐국 값은 23길더쯤이며, 시장 가격은 23길더 6스타이버에서 23길더 16스타이버, 곧 조폐국 값보다 2퍼센트에서 3퍼센트 높다.
암스테르담 은행이 지금(1775년 9월) 여러 가지 금은괴와 주화를 받는 값은 다음과 같다.
은
멕시코 달러 ................... 1마르크에 22길더
프랑스 크라운 ................. 22
잉글랜드 은화 ................. 22
멕시코 달러, 새 주화 .......... 21 10
두카툰 ........................ 3 0
릭스달러 ...................... 2 8
막대 은은 순은 12분의 11을 담은 것이 1마르크에 21길더이고, 이 비율에 따라 순도 4분의 1까지 내려가며 그것에는 5길더를 준다. 순은 막대 ................. 1마르크에 28길더.
금
포르투갈 주화 ................. 1마르크에 310길더
기니 금화 ..................... 310
새 루이도르 ................... 310
같은 것, 옛 주화 .............. 300
새 두카트 ..................... 두카트 하나에 4 19 8
막대나 덩이로 된 금은 위의 외국 금화와 견준 순도에 비례하여 받는다. 순금 막대에 은행은 1마르크에 340을 준다. 그렇더라도 대체로 순도가 알려진 주화에는, 녹여서 시금하지 않고는 순도를 확인할 수 없는 금괴나 은괴보다 얼마쯤 더 준다.
금괴의 은행 값과 조폐국 값과 시장 가격 사이의 비율은 거의 같다. 사람은 대개 금은괴의 조폐국 값과 시장 가격 사이의 차이만큼 받고 제 예치증을 팔 수 있다. 금은괴 예치증은 거의 언제나 얼마쯤 값이 나가므로, 여섯 달이 끝나기 전에 꺼내지 않거나 다시 여섯 달의 새 예치증을 얻으려고 4분의 1퍼센트나 2분의 1퍼센트를 치르기를 게을리하여 누군가 제 예치증이 기한을 넘기게 두거나 제 금은괴를 받을 때의 값으로 은행에 떨어지게 두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렇더라도 이런 일이 드물게나마 더러 있다고 하며, 은보다 금에서 더 자주 있다고 하는데, 더 값비싼 금속을 지켜 주는 데에 더 높은 보관료를 치르기 때문이다.
금은괴를 예치하여 은행 신용과 예치증을 함께 얻은 사람은 기한이 되는 대로 제 은행 신용으로 환어음을 치르고, 금은괴 값이 오를 듯한가 내릴 듯한가를 헤아려 제 예치증을 팔거나 쥐고 있는다. 예치증과 은행 신용이 오래 함께 붙어 있는 일은 드물고 그럴 까닭도 없다. 예치증을 가지고 금은괴를 꺼내려는 사람은 보통 값으로 살 은행 신용 곧 은행 화폐를 늘 넉넉히 찾아내고, 은행 화폐를 가지고 금은괴를 꺼내려는 사람도 예치증을 늘 그만큼 넉넉히 찾아낸다.
은행 신용의 임자와 예치증을 지닌 사람은 은행에 대하여 서로 다른 두 갈래의 채권자를 이룬다. 예치증을 지닌 사람은 그 금은괴를 받을 때의 값과 같은 액의 은행 화폐를 은행에 되넘겨 주지 않고는 그것을 꺼낼 수 없다. 제 은행 화폐가 없으면 가진 사람에게서 사야 한다. 은행 화폐의 임자는 제가 바라는 양에 해당하는 예치증을 은행에 내놓지 않고는 금은괴를 꺼낼 수 없다. 제 것이 없으면 가진 사람에게서 사야 한다. 예치증을 지닌 사람이 은행 화폐를 살 때는 조폐국 값이 은행 값보다 5퍼센트 높은 금은괴를 꺼낼 힘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것을 사려고 흔히 치르는 5퍼센트의 아지오는 헛된 가치가 아니라 실제 가치에 치르는 것이다. 은행 화폐의 임자가 예치증을 살 때는 시장 가격이 조폐국 값보다 흔히 2퍼센트에서 3퍼센트 높은 금은괴를 꺼낼 힘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것을 사려고 치르는 값도 마찬가지로 실제 가치에 치른다. 예치증의 값과 은행 화폐의 값이 둘이 합쳐 그 금은괴의 온 가치 곧 온 값을 이룬다.
나라에 도는 주화의 예치에도 은행은 은행 신용과 함께 예치증을 내주나, 그 예치증은 값이 없어 시장에서 아무 값도 받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이를테면 통화에서 하나에 3길더 3스타이버로 통하는 두카툰에 은행은 3길더의 신용만, 곧 그 통용 가치보다 5퍼센트 낮게 적어 준다. 은행은 예치증도 함께 내주어, 그것을 지닌 사람이 지켜 준 값으로 4분의 1퍼센트를 치르고 여섯 달 안에 언제든 예치한 두카툰의 수만큼 꺼낼 수 있게 한다. 이 예치증은 시장에서 아무 값도 받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은행 화폐 3길더는 시장에서 대개 3길더 3스타이버, 곧 두카툰을 은행에서 꺼냈을 때의 온 가치로 팔리는데, 꺼내려면 그 전에 지켜 준 값으로 4분의 1퍼센트를 치러야 하니 그것은 예치증을 지닌 사람에게 고스란히 손실이다. 그렇더라도 은행의 아지오가 어느 때든 3퍼센트로 떨어진다면 그런 예치증도 시장에서 얼마쯤 값을 받아 1과 4분의 3퍼센트로 팔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행의 아지오가 이제는 대개 5퍼센트쯤이므로 그런 예치증은 기한을 넘기도록, 그들의 말로는 은행에 떨어지도록 두는 일이 흔하다. 금 두카트의 예치에 주는 예치증은 그보다도 더 자주 그렇게 되는데, 다시 꺼내려면 그 전에 더 높은 보관료 곧 2분의 1퍼센트를 지켜 준 값으로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주화든 금은괴든 예치물이 은행에 떨어지도록 허락될 때 은행이 얻는 5퍼센트는 그런 예치물을 영구히 지켜 주는 보관료로 볼 수 있다.
예치증이 기한을 넘긴 은행 화폐의 액수는 아주 클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은행의 본디 자본 전부를 아우를 수밖에 없는데, 그 자본은 처음 예치된 때부터 거기 남도록 허락되었다고 대개 여겨지니, 이미 든 까닭으로 예치증을 새로 받는 것도 예치물을 꺼내는 것도 손실 없이는 할 수 없어 누구도 굳이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액수가 얼마이든 그것이 은행 화폐의 온 덩이에 대하여 가지는 비율은 아주 작다고 여겨진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여러 해 전부터 유럽의 큰 금은괴 창고였고, 그 예치증은 기한을 넘기도록, 그들의 말로는 은행에 떨어지도록 허락되는 일이 아주 드물다. 은행 화폐 곧 은행 장부에 적힌 신용의 훨씬 큰 몫은 여러 해 전부터 금은괴를 다루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예치하고 되찾는 그런 예치로 생겨났다고 여겨진다.
리치피체 곧 예치증이 아니고는 은행에 아무 요구도 할 수 없다. 예치증이 기한을 넘긴 더 작은 은행 화폐 덩이는 예치증이 아직 살아 있는 훨씬 큰 덩이와 섞이고 뒤엉켜 있으니, 예치증이 없는 은행 화폐의 액수가 적지 않게 있을 수 있어도 그 가운데 어느 때든 예치증으로 요구할 수 없는 특정한 액이나 몫은 없다. 은행이 같은 것을 두고 두 사람에게 채무자가 될 수는 없으므로, 예치증이 없는 은행 화폐의 임자는 예치증을 살 때까지 은행에 지급을 요구할 수 없다. 보통의 조용한 때라면 시장 가격으로 살 예치증을 찾는 데에 아무 어려움이 없으며, 그 값은 대개 그 예치증으로 은행에서 꺼낼 수 있는 주화나 금은괴를 팔 수 있는 값과 맞아떨어진다.
나라의 재앙이 닥친 때, 이를테면 1672년 프랑스인들의 침입 같은 때에는11 달라질 수 있다. 그때는 은행 화폐의 임자들이 모두 그것을 은행에서 꺼내어 제 손에 두려고 애가 타므로, 예치증을 찾는 수요가 그 값을 터무니없이 높은 데까지 올릴 수 있다. 예치증을 지닌 사람들은 엄청난 기대를 품고, 2퍼센트나 3퍼센트가 아니라 저마다의 예치증이 나온 그 예치물에 적어 준 은행 화폐의 절반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은행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아는 적은 보물이 실려 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그것을 사들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런 급한 때에 은행은 예치증을 지닌 사람에게만 지급하는 보통의 규칙을 깨뜨리리라고 여겨진다. 은행 화폐가 없는 예치증 소지자들은 저마다의 예치증이 나온 그 예치물의 가치에서 2퍼센트나 3퍼센트 안쪽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 은행은 예치증을 얻을 수 없는 은행 화폐의 임자들에게 장부에 적힌 액의 온 가치를 화폐로든 금은괴로든 거리낌 없이 치러 주고, 그와 함께 은행 화폐가 없는 예치증 소지자들에게는 2퍼센트나 3퍼센트를 치러 줄 것이라고 한다. 이런 처지에서 그들에게 마땅히 돌아갈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온 가치가 그만큼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조용한 때에도 예치증을 지닌 사람들은 아지오를 누르는 것이 제 이익이니, 그래야 은행 화폐를(그리고 따라서 그 예치증으로 그때 은행에서 꺼낼 수 있는 금은괴를) 그만큼 싸게 사거나, 은행 화폐를 가지고 금은괴를 꺼내려는 사람들에게 제 예치증을 그만큼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예치증의 값은 대개 은행 화폐의 시장 가격과 그 예치증이 나온 주화나 금은괴의 시장 가격 사이의 차이와 같다. 반대로 은행 화폐의 임자들은 아지오를 올리는 것이 제 이익이니, 그래야 제 은행 화폐를 그만큼 비싸게 팔거나 예치증을 그만큼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맞서는 이익이 더러 일으킬 수 있는, 자산을 되넘겨 값을 놀리는 농간을 막으려고, 은행은 근래에 언제나 5퍼센트의 아지오로 통화를 받고 은행 화폐를 팔며 4퍼센트의 아지오로 그것을 되사기로 정하였다. 이 결정으로 아지오는 5퍼센트 위로 오를 수도 4퍼센트 아래로 내릴 수도 결코 없게 되었고, 은행 화폐의 시장 가격과 통용 화폐의 시장 가격 사이의 비율은 언제나 그 내재 가치 사이의 비율에 아주 가깝게 지켜진다. 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맞서는 이익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대로 은행 화폐의 시장 가격이 더러 9퍼센트의 아지오까지 오르기도 하고 더러 평가까지 내리기도 하였다.
암스테르담 은행은 제게 예치된 것의 어느 몫도 빌려주지 않고, 제 장부에 신용으로 적어 준 1길더마다 화폐로든 금은괴로든 1길더의 가치를 제 창고에 지킨다고 내세운다. 살아 있는 예치증이 나와 있어 어느 때든 요구를 받을 수 있고 실제로 끊임없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화폐와 금은괴를 은행이 모두 제 창고에 지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나 예치증이 오래전에 기한을 넘겨 보통의 조용한 때에는 요구를 받을 수 없고 실제로 언제까지나, 또는 네덜란드 연방이 버티는 동안은 은행에 남아 있을 법한 그 자본의 몫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는가는 어쩌면 더 불확실해 보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암스테르담에서는 은행 화폐로 도는 1길더마다 그에 맞먹는 1길더가 금이나 은으로 은행의 보물 가운데 있다는 것보다 더 굳게 선 믿음의 조목이 없다. 시가 그러하도록 보증한다. 은행은 해마다 바뀌는 네 시장(市長)의12 지휘 아래 있다. 새로 앉은 시장들은 저마다 그 보물을 찾아가 장부와 맞추어 보고 맹세로 넘겨받으며, 뒤를 잇는 이들에게 같은 엄숙한 절차로 넘겨준다. 그리고 그 진중하고 신심 깊은 나라에서는 맹세가 아직 가볍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런 돌림만으로도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관행을 넉넉히 막는 것으로 보인다. 당파가 암스테르담 정부에 일으킨 온갖 변란 가운데에서도 이긴 쪽이 은행을 다스린 일로 앞사람들을 부정하다고 나무란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떤 고발도 밀려난 쪽의 명성과 재산에 이보다 더 깊이 닿을 수 없었을 것이니, 그런 고발을 떠받칠 수 있었다면 반드시 나왔으리라고 우리는 믿어도 된다. 1672년 프랑스 국왕이 위트레흐트에 있을 때 암스테르담 은행은 워낙 선선히 치러 주어, 제 약속을 얼마나 충실히 지켜 왔는지에 아무 의심도 남기지 않았다. 그때 그 창고에서 나온 몇몇 조각은 은행이 세워진 뒤 얼마 되지 않아 시청에서 난 불에 그슬린 듯이 보였다. 그러므로 그 조각들은 그때부터 거기 놓여 있었을 것이다.
은행에 든 보물이 얼마나 되는지는 오랫동안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의 헤아림을 붙잡아 온 물음이다. 그것을 두고는 억측밖에 내놓을 수 없다. 은행에 계정을 둔 사람이 2000명쯤이라고 대개 셈하는데, 저마다의 계정에 이 사람 저 사람 어울러 1500파운드 스털링의 가치가 놓여 있다고 넉넉히 잡으면(아주 넉넉히 잡은 것이다) 은행 화폐의 온 양, 따라서 은행에 든 보물은 300만 파운드 스털링쯤, 곧 1파운드 스털링에 11길더로 셈하여 3300만 길더가 될 것이다. 큰 액수이고 아주 넓은 돌림을 이끌기에 넉넉하나, 어떤 사람들이 이 보물을 두고 품은 터무니없는 생각에는 한참 못 미친다.
암스테르담 시는 은행에서 적지 않은 수입을 얻는다. 위에서 말한 보관료라 부를 만한 것 말고도, 은행에 처음 계정을 여는 사람은 누구나 10길더의 수수료를 치르고, 계정을 새로 열 때마다 3길더 3스타이버를, 옮겨 적을 때마다 2스타이버를 치르며, 옮겨 적는 액이 300길더보다 적으면 작은 거래가 많아지는 것을 억누르려고 6스타이버를 치른다. 한 해에 두 번 제 계정을 맞추기를 게을리하는 사람은 25길더를 물린다. 제 계정에 있는 것보다 많은 액을 옮겨 적으라고 지시하는 사람은 넘겨 뗀 액의 3퍼센트를 치를 의무를 지고, 그 지시는 덤으로 물리쳐진다. 은행은 예치증이 기한을 넘겨 더러 제게 떨어지는 외국 주화나 금은괴를 파는 데에서도 적지 않은 이윤을 낸다고 여겨지는데, 그것은 늘 이롭게 팔 수 있을 때까지 지켜 둔다. 5퍼센트의 아지오로 은행 화폐를 팔고 4퍼센트로 되사는 데에서도 이윤을 낸다. 이런 여러 가지 벌이는 관리들의 봉급을 치르고 관리 비용을 메우기에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다. 예치증으로 금은괴를 지켜 주는 값으로 치르는 것만으로도 한 해 15만 길더에서 20만 길더 사이의 순수입이 된다고 여겨진다. 그렇더라도 이 기관을 세운 본디 목적은 공공의 편익이었고 수입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상인들을 불리한 환의 불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거기서 생겨난 수입은 미리 헤아린 것이 아니었고 우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 긴 여담에서 돌아올 때다. 이른바 은행 화폐로 치르는 나라들과 보통 통화로 치르는 나라들 사이의 환이 왜 대개 앞쪽에 유리하고 뒤쪽에 어긋나게 보이는지를 밝히려 하다가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끌려 들어왔다. 앞쪽은 내재 가치가 언제나 같고 저마다의 조폐국 법정 기준에 정확히 맞는 갈래의 화폐로 치르고, 뒤쪽은 내재 가치가 끊임없이 달라지며 거의 언제나 그 기준보다 얼마쯤 낮은 갈래의 화폐로 치른다.
2절 — 다른 원리에 비추어 보아도 그 특별한 제한이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것
이 장의 앞부분에서 나는 상업 체계의 원리에 비추어 보아도 무역 차액이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나라들에서 들여오는 재화에 특별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지를 보이려고 애썼다.
그렇더라도 이 제한만이 아니라 교역에 관한 다른 거의 모든 규제가 바탕으로 삼고 있는 무역 차액의 이 교설 전체보다 더 터무니없는 것은 없다. 두 곳이 서로 무역할 때 차액이 고르면 어느 쪽도 잃지도 얻지도 않으나, 차액이 어느 정도든 한쪽으로 기울면 정확한 균형에서 벗어난 그만큼 한쪽은 잃고 다른 쪽은 얻는다고 이 교설은 본다. 두 가정이 다 틀렸다. 장려금과 독점으로 억지로 이끄는 무역은 그것을 세워 주려던 나라에 불리할 수 있고 흔히 불리한데, 이는 뒤에서 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억지나 얽매임 없이 어느 두 곳 사이에서 자연스럽고 규칙 바르게 이루어지는 무역은 늘 두 곳에 다 이로우며, 다만 언제나 똑같이 이로운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이로움이나 이득은 금과 은의 양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이 가지는 교환 가치가 늘어나는 것, 곧 그 주민들의 연간 수입이 늘어나는 것이다.
차액이 고르고 두 곳 사이의 무역이 온통 저마다의 제 나라 상품을 맞바꾸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면, 대개의 자리에서 둘이 다 얻을 뿐 아니라 똑같이, 또는 거의 똑같이 얻을 것이다. 이때 저마다 상대의 남는 생산물 가운데 얼마에 시장을 마련해 줄 것이고, 저마다 상대의 그 남는 생산물을 길러 내고 시장에 낼 수 있게 손질하는 데에 쓰였던, 그리고 일정한 수의 주민들에게 나누어져 그들에게 수입과 부양을 주었던 자본을 메워 줄 것이다. 그러므로 저마다의 주민 가운데 얼마는 상대에게서 곧바로 제 수입과 부양을 얻는다. 또 맞바꾸는 상품이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하였으므로 그 무역에 쓰이는 두 자본도 대개의 자리에서 같거나 거의 같을 것이고, 둘이 다 두 나라의 제 나라 상품을 길러 내는 데에 쓰이므로 그것을 나누어 줌으로써 저마다의 주민에게 돌아가는 수입과 부양도 같거나 거의 같을 것이다. 이렇게 서로 마련해 주는 이 수입과 부양은 그들이 거래하는 크기에 비례하여 커지거나 작아진다. 이를테면 그 거래가 저마다 해마다 10만 파운드나 100만 파운드에 이른다면, 저마다 상대의 주민들에게 앞의 경우에는 10만 파운드, 뒤의 경우에는 100만 파운드의 연간 수입을 마련해 줄 것이다.
그들의 무역이 한쪽은 제 나라 상품만 상대에게 내보내고 그 상대가 보내오는 회수는 온통 외국 재화로 이루어지는 성질이라면, 이때도 상품을 상품으로 치른 것이니 차액은 여전히 고르다고 여겨질 것이다. 이때도 둘이 다 얻겠으나 똑같이 얻지는 못하며, 제 나라 상품만 내보낸 나라의 주민들이 그 무역에서 가장 큰 수입을 얻는다. 이를테면 잉글랜드가 프랑스에서 그 나라의 제 나라 상품만 들여오고, 거기서 찾는 그런 상품을 제 나라에 가지고 있지 않아 해마다 담배와 이를테면 동인도 재화 같은 외국 재화를 많이 보내어 그 값을 갚는다면, 이 무역은 두 나라 주민에게 다 얼마쯤 수입을 주겠으나 잉글랜드 주민보다 프랑스 주민에게 더 많이 줄 것이다. 여기에 해마다 쓰인 프랑스 자본 전체는 해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나누어질 것이나, 잉글랜드 자본 가운데에서는 그 외국 재화를 사들인 잉글랜드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 쓰인 몫만 해마다 잉글랜드 사람들에게 나누어질 것이다. 그 큰 몫은 버지니아와 힌두스탄과 중국에 쓰였던, 그리고 그 먼 나라 주민들에게 수입과 부양을 주었던 자본을 메우는 데로 간다. 그러므로 자본이 같거나 거의 같다면, 이렇게 쓰인 프랑스 자본이 프랑스 사람들의 수입을 늘리는 것이 잉글랜드 자본이 잉글랜드 사람들의 수입을 늘리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이때 프랑스는 잉글랜드와 곧바로 가는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을 하는 것이고, 잉글랜드는 프랑스와 같은 갈래의 멀리 돌아가는 무역을 하는 것이다. 곧바로 가는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 쓰이는 자본과 멀리 돌아가는 그것에 쓰이는 자본이 내는 서로 다른 효과는 이미 낱낱이 밝혔다.
어느 두 나라 사이에도 양쪽이 다 제 나라 상품을 내는 것으로만, 또는 한쪽은 제 나라 상품을 내고 다른 쪽은 외국 재화를 내는 것으로만 온통 이루어지는 무역은 아마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서로 얼마는 제 나라 재화로 얼마는 외국 재화로 맞바꾼다. 그렇더라도 제 실은 짐에 제 나라 재화의 비율이 가장 크고 외국 재화의 비율이 가장 작은 나라가 늘 주로 얻는 쪽이 될 것이다.
잉글랜드가 프랑스에서 해마다 들여오는 상품의 값을 담배와 동인도 재화가 아니라 금과 은으로 치른다면, 상품을 상품으로 치른 것이 아니라 금과 은으로 치른 것이니 이때는 차액이 고르지 않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무역은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두 나라 주민에게 다 얼마쯤 수입을 주겠으나 잉글랜드 주민보다 프랑스 주민에게 더 많이 줄 것이다. 이것은 잉글랜드 주민에게도 얼마쯤 수입을 준다. 이 금과 은을 사들인 잉글랜드 재화를 생산하는 데에 쓰였던, 그리고 잉글랜드의 일정한 주민들에게 나누어져 그들에게 수입을 주었던 자본이 그로써 메워지고 그 쓰임을 이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잉글랜드의 자본 전체가 이 금과 은을 내보내는 것으로 줄어드는 정도는 같은 가치의 다른 어떤 재화를 내보내는 것으로 줄어드는 정도보다 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대개의 경우에 늘어날 것이다. 나라 밖에서 찾는 수요가 나라 안에서 찾는 수요보다 크다고 여겨지는 재화, 따라서 그 회수가 내보낸 상품보다 나라 안에서 더 값나갈 것이라고 기대되는 재화가 아니면 밖으로 보내지 않는다. 잉글랜드에서 10만 파운드밖에 값나가지 않는 담배를 프랑스로 보내어 잉글랜드에서 11만 파운드 값나가는 포도주를 산다면, 이 맞바꿈은 잉글랜드의 자본을 1만 파운드 늘릴 것이다. 같은 모양으로 잉글랜드 금 10만 파운드가 잉글랜드에서 11만 파운드 값나가는 프랑스 포도주를 산다면, 이 맞바꿈도 마찬가지로 잉글랜드의 자본을 1만 파운드 늘릴 것이다. 제 지하실에 11만 파운드 값어치의 포도주를 가진 상인이 10만 파운드 값어치의 담배만 제 창고에 가진 사람보다 더 넉넉한 사람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또 10만 파운드 값어치의 금만 제 금고에 가진 사람보다 더 넉넉한 사람이다. 그는 다른 두 사람 어느 쪽보다 더 많은 양의 산업을 움직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에게 수입과 부양과 일자리를 줄 수 있다. 그런데 한 나라의 자본은 그 여러 주민이 가진 자본을 모두 합친 것과 같고, 그 나라에서 해마다 부양할 수 있는 산업의 양은 그 여러 자본이 부양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자본도, 그 나라에서 해마다 부양할 수 있는 산업의 양도 이 맞바꿈으로 대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잉글랜드로서는 프랑스 포도주를 버지니아의 담배로도 브라질과 페루의 금은으로도 아니라 제 나라의 철물과 두꺼운 나사로 살 수 있다면 더 이로울 것이다. 곧바로 가는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이 늘 멀리 돌아가는 것보다 더 이롭다. 그러나 금과 은으로 이루어지는 멀리 돌아가는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이 똑같이 멀리 돌아가는 다른 어떤 무역보다 덜 이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또 광산이 없는 나라가 그 금속을 해마다 내보내는 것으로 금과 은이 바닥날 법하기로는, 담배를 기르지 않는 나라가 그 풀을 해마다 내보내는 것으로 담배가 바닥날 법한 것보다 더하지 않다. 담배를 살 밑천이 있는 나라가 담배가 없어 오래 시달리는 일이 결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금속을 살 밑천이 있는 나라도 금과 은이 없어 오래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일꾼이 술집과 벌이는 거래는 밑지는 거래라고 하며, 제조하는 나라가 포도주 나는 나라와 자연스럽게 벌일 거래도 같은 성질의 거래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술집과 벌이는 거래가 반드시 밑지는 거래는 아니다. 그 본디 성질로는 다른 어떤 거래와 똑같이 이로우며, 다만 어쩌면 그릇되게 쓰이기가 얼마쯤 더 쉬울 뿐이다. 술 빚는 사람의 생업도, 발효한 술을 소매로 파는 사람의 생업조차도 다른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꼭 있어야 할 노동의 갈래다. 일꾼으로서는 필요한 양을 제가 빚는 것보다 술 빚는 사람에게서 사는 것이 대개 더 이롭고, 가난한 일꾼이라면 술 빚는 사람에게서 많은 양을 사는 것보다 소매 상인에게서 조금씩 사는 것이 대개 더 이롭다. 그가 어느 쪽에서든 너무 많이 살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니, 제 이웃의 다른 어떤 장사꾼에게서도, 먹보라면 푸줏간에서도, 벗들 사이에서 멋쟁이인 척하려 한다면 옷감 장수에게서도 그럴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렇더라도 이 모든 생업이 자유로운 것이 일꾼 전체에게 이로우며, 이 자유가 그 모든 생업에서 그릇되게 쓰일 수 있고 어쩌면 어떤 것에서 다른 것보다 더 그러기 쉽다 해도 그러하다. 게다가 개인이 더러 발효한 술을 지나치게 마셔 제 재산을 망칠 수는 있으나, 나라가 그러할 위험은 없어 보인다. 어느 나라에나 그런 술에 제 힘에 넘치게 쓰는 사람이 많으나, 덜 쓰는 사람은 언제나 훨씬 더 많다. 또 눈여겨볼 값이 있는 것은, 경험에 물어보면 포도주가 싼 것이 술 취함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술 조심의 원인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포도주 나는 나라의 주민들은 대체로 유럽에서 가장 술을 조심하는 사람들이니, 스페인인과 이탈리아인과 프랑스 남부 여러 주의 주민들이 그 증거다. 사람들은 제 나날의 끼니가 되는 것에서 지나침을 저지르는 일이 드물다. 묽은 맥주만큼13 싼 술을 헤프게 쓴다고 해서 너그럽고 사귐성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이는 없다. 이와 달리 지나친 더위나 추위로 포도가 나지 않아 포도주가 비싸고 드문 나라에서는 술 취함이 흔한 악덕이니, 북쪽 나라들과 남북 회귀선 사이에 사는 모든 사람들, 이를테면 기니 해안의 흑인들이 그렇다. 프랑스 연대가 포도주가 얼마쯤 비싼 프랑스 북부 여러 주에서 아주 싼 남부로 옮겨 주둔하면, 병사들은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가 싸고 낯설어 흐트러지나 몇 달 지내고 나면 그 큰 몫이 다른 주민들만큼 술을 조심하게 된다는 말을 나는 자주 들었다. 외국 포도주에 물리는 관세와 맥아와 맥주와 에일에 물리는 소비세를 단번에 없앤다면, 같은 모양으로 영국에서도 중간 계층과 아래 계층 사람들 사이에 꽤 널리 한동안 술 취함이 일어날 수 있겠으나, 그 뒤로는 아마 오래가는, 거의 두루 미치는 술 조심이 곧 따라올 것이다. 오늘날 술 취함은 멋을 아는 사람들이나 가장 값비싼 술을 쉽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악덕이 결코 아니다. 에일에 취한 신사를 우리 사이에서 본 적이 거의 없다. 게다가 영국에서 포도주 거래에 가한 제한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술집에 가는 것을 막으려고 헤아린 것이라기보다 가장 좋고 가장 싼 술을 살 수 있는 데로 가는 것을 막으려고 헤아린 것으로 보인다. 그 제한은 포르투갈의 포도주 거래를 도와주고 프랑스의 것을 억누른다. 정말이지 포르투갈인이 프랑스인보다 우리 제조품을 더 잘 사 가는 손님이니 그들을 프랑스인보다 먼저 북돋워야 한다고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단골이 되어 주니 우리도 그들에게 그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좀스러운 장사꾼이 몰래 쓰는 술수가 큰 제국을 이끄는 정치의 격언으로 떠받들려 있으니, 제 단골에게서 주로 사기를 규칙으로 삼는 것은 가장 좀스러운 장사꾼뿐이기 때문이다. 큰 장사꾼은 이런 자잘한 이익에 마음 쓰지 않고 늘 가장 싸고 가장 좋은 데에서 제 재화를 산다.
그렇더라도 이런 격언으로 나라들은 제 이익이 이웃을 모두 거지로 만드는 데에 있다고 배워 왔다. 나라마다 제가 무역하는 모든 나라의 번영을 샘 많은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이득을 제 손실로 여기게 되었다. 나라들 사이에서도 개인들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고 벗이 되게 하는 끈이어야 할 교역이 불화와 미움을 가장 걸차게 낳는 샘이 되었다. 국왕과 대신들의 변덕스러운 야심도 이 세기와 앞 세기 동안 상인과 제조업자의 주제넘은 시샘보다 유럽의 안식에 더 해롭지는 않았다. 인류를 다스리는 이들의 난폭함과 부정함은 오래된 해악이고 사람 일의 성질로는 거기에 고칠 길을 좀처럼 내줄 수 없을까 두려우나, 인류를 다스리는 이가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 될 상인과 제조업자의 천박한 탐욕과 독점하려는 심사는 어쩌면 고칠 수 없다 해도 그들 자신 말고 누구의 평온도 흔들지 못하게 아주 쉽게 막을 수 있다.
본디 이 교설을 지어내고 퍼뜨린 것이 독점의 심사였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으며, 그것을 처음 가르친 사람들은 그것을 믿은 사람들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어느 나라에서나 사람들 전체의 이익은 제가 바라는 것을 가장 싸게 파는 이에게서 사는 데에 늘 있고 또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명제는 워낙 뚜렷하여 굳이 애써 증명하려는 것이 우스워 보이며, 상인과 제조업자의 제 잇속을 챈 궤변이 인류의 상식을 어지럽히지 않았다면 이것이 의심받은 적도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 점에서 그들의 이익은 사람들 전체의 이익과 곧바로 맞선다. 동업조합의 자유민이14 나머지 주민들이 저희 말고 다른 일꾼을 쓰지 못하게 막는 것이 저희 이익인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마다 상인과 제조업자가 국내 시장의 독점을 저희 것으로 굳히는 것이 저희 이익이다. 그래서 영국에서, 또 다른 대부분 유럽 나라에서 외국 상인이 들여오는 거의 모든 재화에 특별한 관세가 붙는다. 그래서 우리 것과 겨룰 수 있는 모든 외국 제조품에 높은 관세와 금지가 붙는다. 그래서 또 무역 차액이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나라들, 곧 나라의 미움이 가장 거세게 타오른 나라들에서 들여오는 거의 모든 종류의 재화에 특별한 제한이 붙는다.
그렇더라도 이웃 나라들의 부는 전쟁과 정치에서는 위험하지만 무역에서는 확실히 이롭다. 서로 맞선 처지에서는 그 부가 우리 것보다 나은 함대와 군대를 적이 지탱하게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평화와 교역의 처지에서는 그 부가 또한 그들이 우리와 더 큰 가치를 맞바꾸게 하고, 우리 산업이 곧바로 낸 생산물에든 그 생산물로 사들인 무엇에든 더 좋은 시장을 마련해 줄 수밖에 없다. 넉넉한 사람이 제 이웃의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가난한 사람보다 더 좋은 손님이 될 법한 것과 마찬가지로 넉넉한 나라도 그러하다. 정말이지 제 스스로 제조업자인 넉넉한 사람은 같은 길로 벌이하는 모든 이에게 아주 위험한 이웃이다. 그렇더라도 그 이웃의 나머지 사람들, 곧 훨씬 더 많은 수는 그가 쓰는 돈이 마련해 주는 좋은 시장으로 이익을 본다. 그들은 그가 같은 길로 벌이하는 더 가난한 일꾼들보다 싸게 파는 것에서까지 이익을 본다. 같은 모양으로 넉넉한 나라의 제조업자도 물론 이웃 나라의 제조업자에게 아주 위험한 맞수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바로 이 겨룸이 사람들 전체에게 이로우며, 그들은 그 밖에도 그런 나라가 크게 쓰는 돈이 다른 모든 길로 마련해 주는 좋은 시장으로 크게 이익을 본다. 재산을 모으려는 개인은 그 나라의 멀고 가난한 지방으로 물러갈 생각은 결코 하지 않고, 수도나 큰 상업 도시 가운데 하나로 몰려간다. 부가 조금 도는 데에서는 얻을 것이 적으나 많이 움직이는 데에서는 그 가운데 얼마가 제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이렇게 한 사람이나 열 사람이나 스무 사람의 상식을 이끌 이 같은 격언이 백만 명이나 천만 명이나 이천만 명의 판단도 다스려야 하며, 한 나라 전체가 이웃의 넉넉함을 제가 넉넉해질 수 있는 원인이자 기회로 여기게 해야 한다. 외국 무역으로 넉넉해지려는 나라는 그 이웃이 다 넉넉하고 근면하며 교역하는 나라일 때 확실히 그러할 법이 가장 크다. 온 사방이 떠도는 미개인과 가난한 야만인으로 둘러싸인 큰 나라도 제 땅을 경작하고 제 안에서 교역하여 넉넉함을 얻을 수는 물론 있겠으나, 외국 무역으로는 그럴 수 없다. 옛 이집트인과 오늘날 중국인이 큰 부를 얻은 것이 이런 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옛 이집트인은 외국 교역을 소홀히 하였다고 하며, 오늘날 중국인은 그것을 몹시 업신여겨 법으로 알맞게 지켜 주려고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오늘날 외국 교역의 격언들은 우리 이웃을 모두 가난하게 만들려 하니, 그것이 노리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그만큼 바로 그 교역을 하찮고 업신여길 만한 것으로 만드는 쪽으로 기운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교역이 두 나라에서 그토록 많은 억누름과 제한을 받게 된 것이 이런 격언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그 두 나라가 장사꾼의 시샘도 나라의 미움도 없이 제 참된 이익을 헤아린다면, 프랑스의 교역이 다른 어느 나라의 교역보다 영국에 더 이로울 수 있고, 같은 까닭으로 영국의 교역이 프랑스에 더 이로울 수 있다. 프랑스는 영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잉글랜드 남쪽 해안과 프랑스 북쪽과 북서쪽 해안 사이의 거래에서는 국내 거래와 마찬가지로 한 해에 네 번이나 다섯 번이나 여섯 번의 회수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거래에 쓰이는 자본은 두 나라 저마다에서, 같은 자본이 외국 무역의 다른 대부분 갈래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네 배나 다섯 배나 여섯 배의 산업을 움직이고 네 배나 다섯 배나 여섯 배의 사람에게 일자리와 생계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와 영국의 서로 가장 먼 지역들 사이에서도 적어도 한 해에 한 번의 회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이 거래마저 적어도 우리 유럽 외국 무역의 다른 대부분 갈래만큼은 이로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자랑하는 북아메리카 식민지와의 거래보다 적어도 세 배 더 이로울 것인데, 그 거래에서는 회수가 세 해 안에 이루어지는 일이 드물고 네 해나 다섯 해 안에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흔하였다. 게다가 프랑스는 주민이 2400만 명이라고 여겨진다. 우리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주민이 300만 명을 넘는다고 여겨진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리고 프랑스는 북아메리카보다 훨씬 넉넉한 나라이나, 부가 더 고르지 않게 나누어져 있어 한쪽 나라에 다른 쪽보다 가난과 구걸이 훨씬 많다. 그러므로 프랑스는 우리 북아메리카 식민지가 마련해 준 적이 있는 시장보다 적어도 여덟 배 넓고, 회수가 더 자주 이루어지므로 스물네 배 더 이로운 시장을 마련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영국의 거래도 프랑스에 그만큼 이로울 것이며, 저마다의 부와 인구와 가까움에 비례하여 프랑스가 제 식민지와 벌이는 거래보다 같은 정도로 나을 것이다. 두 나라의 지혜가 억누르는 것이 옳다고 여긴 거래와 가장 도와준 거래 사이의 차이가 이토록 크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의 열리고 자유로운 교역을 그토록 두 나라에 이롭게 만들었을 바로 그 사정이 그 교역에 가장 큰 막힘을 일으켰다. 이웃이므로 그들은 원수가 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저마다의 부와 힘이 상대에게 더욱 두렵게 되며, 나라끼리 벗이 되었다면 이로움을 키웠을 것이 나라끼리의 미움을 더 거세게 타오르게 하는 데에만 쓰인다. 둘이 다 넉넉하고 근면한 나라이며, 저마다의 상인과 제조업자는 상대 쪽의 솜씨와 활기와 겨루는 것을 두려워한다. 장사꾼의 시샘이 돋우어지고, 그것이 나라의 미움의 거센 기운을 타오르게 하며 또 스스로 그것에 타오르니, 두 나라의 장사꾼들은 상대와 얽매이지 않은 교역을 하면 반드시 불리한 무역 차액이 따라온다고 내세우며 그 때문에 저마다 확실히 망한다고 제 잇속에서 나온 거짓의 뜨거운 자신으로 알려 왔다.
이 체계를 내세우는 박사들이 불리한 무역 차액 때문에 망할 날이 가깝다고 자주 예언하지 않은 상업 나라는 유럽에 없다. 그렇더라도 그들이 이것을 두고 일으킨 온갖 걱정에도, 또 거의 모든 무역하는 나라가 그 차액을 제게 유리하고 이웃에게 어긋나게 돌리려고 벌인 온갖 헛된 애씀에도, 유럽의 어느 나라도 이 원인으로 어떤 점에서든 가난해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도시와 나라가 제 항구를 모든 나라에 열어 준 그만큼, 상업 체계의 원리가 우리에게 기대하게 하는 대로 이 자유로운 무역에 망하기는커녕 그것으로 넉넉해졌다. 정말이지 유럽에는 어떤 점에서 자유 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도시가 몇 있으나, 그런 나라는 없다. 어쩌면 네덜란드가 어느 나라보다 이 성격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나 그래도 거기서 아주 멀며, 네덜란드가 제 부 전체만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할 생계의 큰 몫까지 외국 무역에서 얻는다는 것은 널리 인정된다.
정말이지 이미 밝힌 또 하나의 차액이 있는데, 그것은 무역 차액과 아주 다르며 유리하게 나오는가 불리하게 나오는가에 따라 나라마다의 번영이나 쇠함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것은 연간 생산과 소비의 차액이다. 이미 말한 대로 연간 생산물의 교환 가치가 연간 소비의 교환 가치를 넘으면, 그 사회의 자본은 이 넘치는 만큼에 비례하여 해마다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때 그 사회는 제 수입 안에서 살며, 제 수입에서 해마다 아낀 것은 자연스럽게 제 자본에 보태어져 연간 생산물을 더욱 늘리도록 쓰인다. 이와 달리 연간 생산물의 교환 가치가 연간 소비에 못 미치면, 그 사회의 자본은 이 모자란 만큼에 비례하여 해마다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때 그 사회의 비용이 제 수입을 넘어 제 자본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자본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와 함께 그 산업이 낸 연간 생산물의 교환 가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생산과 소비의 이 차액은 이른바 무역 차액과 온통 다르다. 그것은 외국 무역이 없고 온 세상에서 온통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부와 인구와 개량이 차츰 늘거나 차츰 쇠할 수 있는 이 땅덩이 전체에서도 일어난다.
생산과 소비의 차액은 이른바 무역 차액이 대개 어느 나라에 어긋나더라도 그 나라에 늘 유리할 수 있다. 어떤 나라가 어쩌면 반 세기 동안 내보내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들여올 수 있고, 그동안 그 나라로 들어온 금과 은이 다 곧바로 나라 밖으로 실려 나갈 수 있으며, 도는 주화가 차츰 줄어들면서 그 자리에 여러 가지 지폐가 들어설 수 있고, 거래하는 주요한 나라들에서 지는 빚까지 차츰 늘어날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그 나라의 실질 부, 곧 그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이 가지는 교환 가치는 같은 기간에 훨씬 큰 비율로 늘어나고 있었을 수 있다. 지금의 분란이15 시작되기 전 우리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처지와 그들이 영국과 벌인 거래의 처지는(이 문단은 1775년에 썼다) 이것이 결코 있을 수 없는 가정이 아님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주
1. 옮긴이 — 1692년 수입세는 그해 의회가 프랑스 재화에 따로 매긴 25퍼센트의 관세다. 여기서 「보조세」는 국왕에게 내주기로 의회가 승인한 관세를 가리키며, 관세 사정표는 재화마다 관세를 매기는 바탕이 되는 가액을 적어 둔 공식 표다.
2. 옮긴이 — 영국 화폐는 1파운드가 20실링, 1실링이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이 책은 화폐 액수를 오늘날 값으로 환산하지 않는다.
3. 옮긴이 — 평가(平價)는 두 나라 화폐에 든 순금속의 무게가 꼭 맞아떨어져 웃돈도 깎음도 없이 맞바꾸어지는 자리를 말한다. 「셈한 환율」은 조폐국이 정한 법정 기준대로 셈한 것이고, 「실제 환율」은 실제로 돌아다니는 주화에 든 금속의 양대로 셈한 것이다.
4. 옮긴이 — 윌리엄 3세 치세에 잉글랜드는 1696년부터 닳고 깎인 은화를 모두 거두어 다시 주조하였다. 윌리엄 라운즈(1652~1724)는 그때 재무부 서기로서 주화의 실제 상태를 조사해 밝힌 사람이다.
5. 옮긴이 — 잉글랜드는 1774년에 무게가 모자라는 금화를 거두어 다시 주조하였다. 스미스가 「근래의 개주」라 부르는 것이 이것이다.
6. 옮긴이 — 은행 화폐는 예치 은행의 장부에 적힌 신용으로, 법정 품위에 꼭 맞는 화폐를 나타내므로 닳고 깎인 주화가 섞인 시중 통화보다 값이 나갔다. 장부에 옮겨 적는 것만으로 치러졌고 주화로 들고 다니지 않았다.
7. 옮긴이 — 아지오는 은행 화폐가 같은 명목 액수의 시중 통화보다 더 값나가는 그 웃돈을 가리킨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대개 5퍼센트쯤이었다.
8. 옮긴이 — 리치피체는 예치를 적어 준 증서로, 이것을 지닌 사람만 맡긴 금은괴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은행 신용과 따로 사고팔렸으므로 두 가지가 각기 다른 값으로 시장에 나돌았다.
9. 옮긴이 — 원문의 rent 는 이 책의 다른 곳에서는 토지에서 나오는 지대를 뜻한다. 그러나 이 대목은 은행이 금은괴를 맡아 지켜 주는 값으로 받는 수수료를 말하므로 보관료로 갈라 적었다.
10. 옮긴이 — 마르크는 귀금속을 되는 무게 단위로 8온스, 곧 약 246그램이다. 길더는 네덜란드 화폐 단위이고 1길더는 20스타이버였다.
11. 옮긴이 — 1672년 루이 14세가 네덜란드를 침공하여 위트레흐트까지 들어왔다. 네덜란드인은 이 해를 재난의 해라 부른다.
12. 옮긴이 — 원문의 버고마스터는 네덜란드 도시의 최고 행정관으로, 암스테르담에서는 네 사람이 함께 자리를 맡고 해마다 바뀌었다.
13. 옮긴이 — 묽은 맥주는 맥아를 두 번째로 우려내어 빚은 도수가 아주 낮은 맥주로, 18세기 잉글랜드에서 물 대신 마시던 가장 값싼 음료였다.
14. 옮긴이 — 동업조합의 자유민은 그 도시의 조합에 들어 그 생업을 할 자격을 얻은 사람이다. 조합에 들지 않은 사람은 같은 생업에서 일꾼을 쓸 수 없었다.
15. 옮긴이 — 「지금의 분란」은 1775년에 시작된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무장 저항, 곧 뒤에 미국 독립 전쟁이 된 사태를 말한다. 스미스는 이 책을 1776년에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