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장려금에 대하여 (이어서)
제조업자에게 금지된 일을 농부에게는 얼마쯤 떠맡으라고 명령했다. 곧 자본을 서로 다른 두 쓰임에 나누어, 한 몫은 시장이 그때그때 찾는 것을 대주려고 곳간과 낟가리 마당에 두고 나머지 몫은 제 땅을 갈고 가꾸는 데에 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의 몫을 농사 자산의 예사로운 이윤보다 적게 받고 쓸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앞의 몫을 상업 자산의 예사로운 이윤보다 적게 받고 쓰기도 그에게는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었다. 곡물 상인의 일을 실제로 꾸려 가는 자산이 농부라 불리는 사람의 것이든 곡물 상인이라 불리는 사람의 것이든, 그 임자가 자산을 그렇게 쓰는 값을 메워 주려면, 그의 일을 다른 거래와 나란한 자리에 놓으려면, 그리고 그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것을 다른 일로 바꾸고 싶어 하지 않게 하려면, 두 경우 모두 똑같은 이윤이 있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렇게 곡물 상인의 일까지 억지로 떠맡게 된 농부는, 자유로운 경쟁이 있을 때 다른 어떤 곡물 상인이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했을 값보다 헐하게 제 곡물을 팔 수 없었다.
제 자산을 온통 한 갈래의 일에만 쓸 수 있는 거래인은, 제 노동을 온통 한 가지 손놀림에만 쓸 수 있는 일꾼과 같은 종류의 이점을 누린다. 뒤의 사람이 손재간을 얻어 같은 두 손으로 훨씬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의 사람은 제 일을 치르고 물건을 사들이고 처분하는 데에 그토록 쉽고 손에 익은 길을 얻어 같은 자본으로 훨씬 더 많은 일을 치를 수 있게 된다. 한쪽이 대개 제 일감을 훨씬 더 헐하게 내놓을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쪽도 대개 제 물건을 얼마쯤 더 헐하게 내놓을 수 있는데, 자산과 마음을 더 여러 가지 것에 함께 쓸 때보다 그렇다. 제조업자 가운데 대부분은 물건을 도매로 사들여 소매로 되파는 것만이 제 일인 부지런하고 눈 밝은 가게 주인만큼 헐하게 제 물건을 소매로 팔 수 없었을 것이다. 농부 가운데 대부분은, 곡물을 도매로 사들여 큰 창고에 모아 두었다가 다시 소매로 파는 것만이 제 일인 부지런하고 눈 밝은 곡물 상인만큼 헐하게, 대부분의 농부에게서 어쩌면 4마일이나 5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고을의 주민들에게 제 곡물을 소매로 팔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제조업자가 가게 주인의 일을 하는 것을 금한 법은 자산의 쓰임이 이렇게 갈라지는 것을 저절로 될 것보다 더 빨리 가게 하려고 애썼다. 농부에게 곡물 상인의 일을 하라고 시킨 법은 그것이 그토록 빨리 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애썼다. 두 법은 모두 자연스러운 자유를 뻔히 어긴 것이었으므로 옳지 않았고, 둘 다 옳지 않은 만큼이나 어리석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일은 억지로 밀어붙여도 안 되고 가로막아도 안 된다는 것이 어느 사회에나 이로운 바다. 제가 놓인 처지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여러 가지 길로 제 노동이나 제 자산을 쓰는 사람은, 값을 깎아 팔아 이웃을 해치는 일이 결코 없다. 그는 제 몸을 해칠 수 있고 실제로 대개 그렇게 한다. 온갖 일에 손대는 사람은 결코 부자가 되지 못한다고 속담이 말한다. 그러나 법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제 이익을 스스로 돌보게 맡겨야 하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놓인 자리에서 입법자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대개 그것을 더 잘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부에게 곡물 상인의 일을 하라고 시킨 법은 둘 가운데 훨씬 더 해로운 것이었다.
그 법은 어느 사회에나 그토록 이로운 자산 쓰임의 갈라짐만 가로막은 것이 아니라 토지의 개량과 경작 또한 가로막았다. 농부에게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 일을 꾸려 가라고 시켰으니, 자본을 두 몫으로 나누어 그 가운데 하나만 경작에 쓰도록 억지로 밀어붙인 셈이다. 그러나 그가 타작한 곡물을 나오는 대로 곡물 상인에게 죄다 팔 수 있었다면, 그의 자본은 온통 곧바로 땅으로 돌아와 땅을 더 잘 개량하고 경작하려고 짐승을 더 사들이고 일손을 더 얻는 데에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곡물을 소매로 팔아야 했으므로 그는 자본의 큰 몫을 한 해 내내 곳간과 낟가리 마당에 두어야 했고, 따라서 같은 자본으로 달리 할 수 있었을 만큼 잘 경작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 법은 반드시 토지의 개량을 가로막았고, 곡물을 더 헐하게 만들기는커녕 반드시 곡물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더 드물게, 따라서 더 값비싸게 만들었을 것이다.
농부의 일 다음으로 곡물을 길러 내는 데에 가장 크게 이바지할 거래는, 알맞게 보호하고 북돋운다면 참으로 곡물 상인의 거래다. 그것은 도매 거래인의 거래가 제조업자의 거래를 받쳐 주는 것과 똑같이 농부의 거래를 받쳐 줄 것이다.
도매 거래인은 제조업자에게 곧 팔 수 있는 시장을 마련해 주고 그가 만들어 내는 대로 물건을 받아 가며, 더러는 그가 아직 만들지도 않았는데 값을 미리 치러 주기까지 하여, 그가 제 자본을 온통, 더러는 제 자본보다 더 많은 것을 끊임없이 제조에 쓰게 해 주고 따라서 자기가 직접 마지막 소비자에게, 또는 소매 상인에게라도 물건을 처분해야 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물건을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게다가 도매 상인의 자본은 대개 여러 제조업자의 자본을 메워 줄 만큼 넉넉하므로, 그와 제조업자들 사이의 이런 오고 감은 큰 자본의 임자가 수많은 작은 자본의 임자들을 받쳐 주는 데에, 그리고 그대로 두면 그들을 망하게 할 수도 있는 손실과 불운을 겪을 때 그들을 돕는 데에 마음을 쓰게 만든다.
농부들과 곡물 상인들 사이에 같은 종류의 오고 감이 두루 자리 잡는다면 농부들에게도 똑같이 이로운 효과가 따라올 것이다. 그들은 제 자본을 온통, 제 자본보다 더 많은 것까지도 끊임없이 경작에 쓸 수 있게 된다. 그들의 거래만큼 휘말리기 쉬운 거래가 없는 그런 우연한 일이 닥칠 때면, 그들은 제 단골 손님인 넉넉한 곡물 상인에게서 자기들을 받쳐 줄 마음과 그럴 힘을 아울러 지닌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처럼 지주의 너그러움이나 그 관리인의 자비에 온통 매달리지는 않게 될 것이다. 어쩌면 될 수 없는 일이겠으나 이 오고 감을 두루, 그리고 한꺼번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면, 왕국의 농사 자산을 온통 한꺼번에 그 본디 일인 토지의 경작으로 돌리고 지금 그 가운데 어느 몫이든 새어 들어가 있는 다른 모든 쓰임에서 빼내는 것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이 큰 자산이 하는 일을 때에 따라 받치고 돕기 위하여 그와 거의 맞먹을 만큼 큰 또 하나의 자산을 한꺼번에 마련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면, 이 사정의 바뀜만으로도 나라의 온 모습에 얼마나 큰, 얼마나 널리 미치는, 얼마나 갑작스러운 개량이 일어날지는 어쩌면 쉽게 떠올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에드워드 6세의 법령은 기르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사이에 중간 상인이 끼어드는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금하여, 자유롭게 하도록 놓아두면 흉년의 불편을 누그러뜨리는 가장 좋은 처방일 뿐 아니라 그 재앙을 막는 가장 좋은 예방이기도 한 거래를 아예 없애려고 애썼다. 농부의 거래 다음으로 곡물 상인의 거래만큼 곡물을 길러 내는 데에 크게 이바지하는 거래는 없다.
이 법의 가혹함은 그 뒤에 나온 여러 법령으로 누그러졌고, 그 법령들은 밀값이 1쿼터1에 20실링2과 24실링, 32실링과 40실링을 넘지 않을 때 곡물을 매점3하는 것을 차례로 허락했다. 마침내 「찰스 2세 치세 15년의 법 제7장」4으로, 밀값이 1쿼터에 48실링을 넘지 않고 다른 곡물의 값도 그에 비례하는 동안에는 되팔려고 곡물을 매점하거나 사들이는 일이 선매하는 사람, 곧 석 달 안에 같은 시장에서 되파는 사람이 아닌 모든 이에게 법에 맞는 일이라고 선언되었다. 나라 안 곡물 거래인의 거래가 이제까지 누려 온 모든 자유는 이 법령이 그에게 베풀어 준 것이다. 매점하는 사람과 선매하는 사람을 막는 옛 법을 거의 모두 없앤 지금 국왕 치세 12년의 법은, 이 법령이 지운 제약만은 없애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아직도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법령은 사람들 사이에 퍼진 아주 터무니없는 두 가지 편견을 얼마쯤 뒷받침해 준다.
첫째, 이 법령은 밀값이 1쿼터에 48실링이나 되도록 오르고 다른 곡물의 값도 그에 비례할 때에는 곡물이 사람들을 해칠 만큼 매점되기 쉽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로 미루어 보면, 나라 안 거래인들이 어떤 값에서도 사람들을 해칠 만큼 곡물을 매점할 수는 없다는 것이 넉넉히 뚜렷해 보인다. 게다가 1쿼터에 48실링은 아주 높은 값으로 여겨질 수는 있으나, 모자란 해에는 거둔 바로 뒤에 흔히 나타나는 값인데 그때는 새로 거둔 곡물 가운데 어느 몫도 팔려 나갔을 수가 거의 없으니, 그 가운데 어느 몫이 사람들을 해칠 만큼 매점될 수 있다고 여기기는 아무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이 법령은 곡물이 선매되기 쉬운, 곧 머지않아 같은 시장에서 되팔려고 사들여져 사람들을 해치기 쉬운 어떤 값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상인이 어느 특정한 시장으로 가는 곡물이든 어느 특정한 시장에 있는 곡물이든, 머지않아 같은 시장에서 되팔려고 사들이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 시장이 그 특정한 때만큼 넉넉하게 한 철 내내 공급될 수 없다고, 따라서 값이 머지않아 올라야 한다고 그가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판단이 틀려서 값이 오르지 않으면 그는 그렇게 쓴 자산의 이윤을 온통 잃을 뿐 아니라, 곡물을 쌓아 두고 지키는 데에 반드시 따라붙는 비용과 손실로 자산 그 자체의 한 몫까지 잃는다. 그러므로 그는 그 특정한 장날에 스스로 사 두지 못하게 막힌 그 특정한 사람들을 해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근본에서 제 몸을 해치는 것인데, 그 사람들은 뒤에 다른 어느 장날에든 똑같이 헐하게 사 둘 수 있기 때문이다. 판단이 맞았다면 그는 사람들의 큰 몸뚱이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봉사를 하는 것이 된다. 그들이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얼마쯤 이르게 흉년의 불편을 느끼게 함으로써, 값이 헐한 까닭에 그들이 그 철의 실제 모자람에 맞지 않을 만큼 빠르게 먹어 치우도록 북돋워졌을 때 뒤에 틀림없이 겪게 될 만큼 심하게 그것을 겪지 않도록 막아 주는 것이다. 모자람이 실제로 있을 때 사람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그 불편을 한 해의 여러 달과 주와 날에 될 수 있는 대로 고르게 나누는 것이다. 곡물 상인의 이익은 그가 이것을 될 수 있는 대로 정확하게 하려고 애쓰게 만들며, 다른 어느 사람도 그만큼 정확하게 그것을 할 만한 이익도, 지식도, 능력도 지닐 수 없으므로, 상업에서 이 가장 중요한 일은 온전히 그에게 맡겨야 한다. 달리 말하면 곡물 거래는 적어도 국내 시장의 공급에 관한 한 온전히 자유롭게 놓아두어야 한다.
매점과 선매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마술을 두려워하고 의심하던 세간의 마음에 견줄 만하다. 뒤의 죄로 몰린 불행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씌워진 불운에 대하여 아무 죄가 없었던 것만큼이나, 앞의 죄로 몰린 사람들도 죄가 없다. 마술을 다스리는 모든 기소를 끝낸 법, 곧 누구든 이웃을 그 있지도 않은 죄로 몰아 제 악심을 채울 힘을 없애 버린 법은 그런 두려움과 의심을 북돋우고 받쳐 준 큰 원인을 없앰으로써 그것을 실제로 끝낸 듯하다. 나라 안 곡물 거래에 온전한 자유를 되돌려 줄 법도 매점과 선매에 대한 세간의 두려움을 끝내는 데에 그만큼 효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찰스 2세 치세 15년의 법 제7장」은 온갖 흠이 있음에도, 국내 시장을 넉넉하게 공급하는 일에나 갈이를 늘리는 일에나 어쩌면 법령집에 실린 다른 어떤 법보다 크게 이바지했을 것이다. 나라 안 곡물 거래가 이제까지 누려 온 모든 자유와 보호는 이 법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국내 시장의 공급이든 갈이의 이익이든, 수입 거래나 수출 거래보다 나라 안 거래로 훨씬 더 효험 있게 북돋워진다.
영국으로 들여오는 온갖 곡물의 평균 양이 소비되는 온갖 곡물의 양에 대하여 갖는 비율은 『곡물 거래론』5을 쓴 이가 셈한 바로는 570분의 1을 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내 시장을 공급하는 일에서 나라 안 거래의 중요함은 수입 거래의 중요함에 대하여 570 대 1이 되어야 한다.
영국에서 내보내는 온갖 곡물의 평균 양은 같은 사람의 말로는 연간 생산물의 31분의 1을 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내 생산물에 시장을 마련하여 갈이를 북돋우는 일에서 나라 안 거래의 중요함은 수출 거래의 중요함에 대하여 30 대 1이 되어야 한다.
나는 정치 산술을 크게 믿지 않으며, 이 두 가지 셈이 정확하다고 보증할 뜻도 없다. 가장 사리 밝고 경험 많은 사람들의 의견으로 보아 곡물의 외국 거래가 국내 거래보다 얼마나 덜 중요한지를 보이려고 그것을 들었을 뿐이다. 장려금이 자리 잡기 바로 앞선 여러 해에 곡물이 몹시 헐했던 것은, 어쩌면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 그보다 25년쯤 앞서 만들어졌고 따라서 그 효과를 낼 넉넉한 시간이 있었던 이 찰스 2세의 법령이 한 일로 얼마쯤 돌려도 될 것이다.
곡물 거래의 나머지 세 갈래에 관하여 내가 할 말은 아주 몇 마디로 넉넉히 밝힐 수 있다.
Ⅱ. 나라 안에서 쓸 외국 곡물을 들여오는 상인의 거래는 국내 시장의 당장의 공급에 뻔히 이바지하며, 그러한 만큼 사람들의 큰 몸뚱이에 곧바로 이로울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곡물의 평균 화폐 가격을 얼마쯤 내리는 쪽으로 기울기는 하나, 곡물의 실질 가치나 그것이 부양할 수 있는 노동의 양을 줄이지는 않는다. 들여오는 것이 언제나 자유로웠다면 우리 농부와 시골 양반들은 해를 이어 셈해 볼 때, 들여오는 것이 거의 언제나 사실상 금지되어 있는 지금보다 제 곡물로 받는 돈이 아마 더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받는 돈은 가치가 더 컸을 터이고 다른 온갖 종류의 물건을 더 많이 살 수 있었을 터이며 더 많은 노동을 부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실질 부와 실질 수입은 지금과 같았을 터이며, 다만 더 적은 양의 은으로 나타내어졌을 뿐이고, 그들이 지금 하는 만큼 곡물을 경작할 힘을 잃지도 그럴 마음을 잃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곡물의 화폐 가격이 내려간 결과로 은의 실질 가치가 오르면 다른 모든 상품의 화폐 가격도 얼마쯤 내려가므로, 그 일이 일어나는 나라의 산업에 모든 외국 시장에서 얼마쯤 이점을 주게 되고 따라서 그 산업을 북돋우고 늘리는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곡물의 국내 시장의 크기는 곡물이 자라는 나라의 산업 전반에 비례할 수밖에 없으니, 곧 다른 무엇을 만들어 내어 따라서 다른 무엇을, 또는 같은 말이 되는 다른 무엇의 값을 곡물과 바꾸어 내놓을 것이 있는 사람들의 수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 나라에서나 국내 시장은 가장 가깝고 가장 손쉬운 시장인 만큼 곡물에는 또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그러므로 곡물의 평균 화폐 가격이 내려간 결과인 은의 실질 가치의 그 오름은 곡물의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시장을 넓히는 쪽으로 기울며, 따라서 곡물을 기르는 것을 막기는커녕 북돋우는 쪽으로 기운다.
「찰스 2세 치세 22년의 법 제13장」으로, 국내 시장의 값이 1쿼터에 53실링 4펜스를 넘지 않을 때에는 밀을 들여오는 데에 1쿼터마다 16실링의 관세가 매겨졌고, 값이 4파운드를 넘지 않을 때에는 8실링의 관세가 매겨졌다. 이 두 값 가운데 앞의 것은 지난 백 년이 넘는 동안 몹시 크게 모자란 때에만 나타났고, 뒤의 것은 내가 아는 한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밀이 이 뒤의 값 위로 오르기까지는 이 법령으로 아주 높은 관세가 매겨졌고, 앞의 값 위로 오르기까지는 금지나 마찬가지인 관세가 매겨졌다. 다른 종류의 곡물을 들여오는 것도 곡물의 가치에 비례하여 거의 똑같이 높은 값과 관세로 제약되었다. 지금 국왕 치세 13년의 법 앞에는 여러 종류의 곡물을 들여올 때 내야 하는 관세가 다음과 같았다.
곡물. 관세. 관세 관세.
콩 28실링까지 1쿼터마다 19실링 10펜스, 그 뒤 40실링까지 16실링 8펜스, 그다음 12펜스.
보리 28실링까지 - 19실링 10펜스 - 32실링 16실링 - 12펜스.
엿기름은 해마다 나오는 엿기름세 법안으로 금지된다.
귀리 16실링까지 - 5실링 10펜스, 그 뒤 - 9½펜스.
완두 40실링까지 - 16실링 0펜스, 그 뒤 - 9¾펜스.
호밀 36실링까지 - 19실링 10펜스, 40실링까지 16실링 8펜스 - 12펜스.
밀 44실링까지 - 21실링 9펜스, 53실링 4펜스까지 17실링 - 8실링.
4파운드까지, 그리고 그 뒤에는 1실링 4펜스쯤.
메밀 1쿼터에 32실링까지 16실링을 낸다.
이 여러 관세는 얼마쯤은 옛 보조세6 대신에 「찰스 2세 치세 22년의 법」으로, 얼마쯤은 새 보조세로, 3분의 1 보조세와 3분의 2 보조세로, 그리고 1747년 보조세로 매겨졌다. 뒤에 나온 법들이 그 관세를 더욱 올렸다.
모자란 해에 그 법들을 엄하게 집행했더라면 사람들에게 가져왔을 괴로움은 아마 몹시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때에는 대개 한동안 외국 곡물을 들여오도록 허락하는 한시 법령으로 그 집행이 멈추어졌다. 이런 한시 법령이 있어야 했다는 것만으로도 저 일반 법령이 옳지 않았음이 넉넉히 드러난다.
들여오는 것에 씌운 이 제약은 장려금이 자리 잡기에 앞선 것이었으나, 뒤에 그 규정을 만들게 한 것과 똑같은 정신, 똑같은 원리가 부른 것이었다. 이 제약이나 들여오는 것에 씌운 다른 어떤 제약이 그 자체로 아무리 해롭다 하더라도, 그 규정의 결과로 그것들은 있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밀이 1쿼터에 48실링 아래이거나 그보다 크게 높지 않을 때에 외국 곡물을 관세 없이, 또는 작은 관세만 내고 들여올 수 있었다면, 그것이 장려금의 혜택을 받아 다시 내보내져 나라의 세입에 큰 손실을 입히고 그 제도를 온통 뒤집어 놓을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 제도의 목적은 국내에서 기른 것의 시장을 넓히는 것이었고 외국에서 기른 것의 시장을 넓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Ⅲ. 외국에서 쓸 곡물을 내보내는 상인의 거래는 국내 시장을 넉넉하게 공급하는 데에 곧바로 이바지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에둘러서는 이바지한다. 이 공급이 국내에서 기른 것에서 나오든 외국에서 들여온 것에서 나오든 그 근원이 어디든, 나라 안에서 대개 소비되는 것보다 더 많은 곡물이 대개 길러지거나 대개 들여오지 않는다면 국내 시장의 공급은 결코 몹시 넉넉할 수 없다. 그런데 남은 것을 여느 경우에 모두 내보낼 수 없다면 기르는 사람은 국내 시장의 맨 소비가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이 기르지 않으려고, 들여오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이 들여오지 않으려고 조심할 것이다. 그 시장은 넘치게 차는 일이 몹시 드물고 대개는 모자라게 찰 것인데, 그것을 공급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제 물건이 손에 남을까 대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내보내는 것을 금하면 나라의 개량과 경작이 나라 안 주민의 공급에 필요한 만큼으로 한정된다. 내보내는 것이 자유로우면 외국 사람들의 공급을 위해서까지 경작을 넓힐 수 있다.
「찰스 2세 치세 12년의 법 제4장」으로 밀값이 1쿼터에 40실링을 넘지 않고 다른 곡물의 값도 그에 비례할 때에는 곡물을 내보내는 것이 허락되었다. 같은 국왕 치세 15년의 법으로 이 자유는 밀값이 1쿼터에 48실링을 넘을 때까지로 늘어났고, 치세 22년의 법으로 그보다 높은 모든 값으로까지 늘어났다. 참으로 그렇게 내보낼 때에는 국왕에게 파운드세를 내야 했다. 그러나 관세 평가표에 모든 곡물이 그토록 낮게 매겨져 있었으므로 이 파운드세는 1쿼터에 밀은 1실링, 귀리는 4펜스, 그 밖의 모든 곡물은 6펜스에 그쳤다. 이 장려금을 세운 법인 「윌리엄과 메리 치세 1년의 법」으로 이 작은 관세는 밀값이 1쿼터에 48실링을 넘지 않을 때에는 사실상 벗겨졌고, 「윌리엄 3세 치세 11년과 12년의 법 제20장」으로는 그보다 높은 모든 값에서도 분명하게 벗겨졌다.
이리하여 내보내는 상인의 거래는 장려금으로 북돋워졌을 뿐 아니라 나라 안 거래인의 거래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되었다. 이 법령 가운데 마지막 것으로 곡물은 내보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값에서도 매점될 수 있었으나, 나라 안에서 팔기 위해서는 값이 1쿼터에 48실링을 넘지 않을 때가 아니면 매점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라 안 거래인의 이익은 사람들의 큰 몸뚱이의 이익과 결코 맞설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보였다. 내보내는 상인의 이익은 그럴 수 있고 실제로 더러 그러하다. 제 나라가 흉년에 시달리는 동안에 이웃 나라가 기근에 짓눌린다면, 그로서는 흉년의 재앙을 몹시 크게 키울 만한 양의 곡물을 그 뒤의 나라로 실어 가는 것이 이익일 수 있다. 국내 시장을 넉넉하게 공급하는 것은 그 법령들의 곧바른 목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농업을 북돋운다는 구실 아래 곡물의 화폐 가격을 될 수 있는 대로 높이 올리고, 그리하여 국내 시장에 될 수 있는 대로 흉년이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들여오는 것을 막음으로써 그 시장의 공급은 크게 모자란 때에도 국내에서 기른 것에 한정되었고, 값이 1쿼터에 48실링이나 되도록 높을 때 내보내는 것을 북돋움으로써 그 시장은 꽤 크게 모자란 때에도 국내에서 기른 것 전부를 누리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한동안 곡물을 내보내는 것을 금하고 한동안 그것을 들여오는 데 붙는 관세를 벗기는 한시 법들, 영국이 그토록 잦게 붙들어야 했던 그 임시 방편들이야말로 영국의 일반 체계가 옳지 않았음을 넉넉히 드러낸다. 그 체계가 좋았다면 영국이 그것을 그토록 잦게 벗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나라가 자유로운 수출과 자유로운 수입이라는 너그러운 체계를 따른다면, 하나의 큰 대륙이 갈라져 있는 여러 나라는 그러한 만큼 하나의 큰 제국을 이루는 여러 속주와 닮아진다. 하나의 큰 제국을 이루는 여러 속주 사이에서 나라 안 거래의 자유가 이치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흉년을 누그러뜨리는 가장 좋은 처방일 뿐 아니라 기근을 막는 가장 효험 있는 예방으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큰 대륙이 갈라져 있는 여러 나라 사이에서도 수출과 수입 거래의 자유가 그러할 것이다. 대륙이 클수록, 그리고 땅으로나 물로나 그 여러 부분을 오가는 길이 쉬울수록, 그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이 이 두 재앙 가운데 어느 것에도 덜 드러나게 될 터인데, 어느 한 나라의 모자람이 다른 어느 나라의 넉넉함으로 덜어질 가망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너그러운 체계를 온전히 받아들인 나라는 아주 드물다. 곡물 거래의 자유는 거의 어디서나 이럭저럭 제약되어 있고, 많은 나라에서는 흉년의 피할 수 없는 불행을 기근이라는 무서운 재앙으로 잦게 키워 놓는 그런 터무니없는 규정에 갇혀 있다. 그런 나라들의 곡물 수요는 잦게 그토록 크고 그토록 다급해질 수 있어서, 이웃에 있는 작은 나라가 마침 그와 함께 얼마쯤 흉년에 시달리고 있을 때 저 자신을 그와 같은 무서운 재앙에 내놓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대주는 일을 감히 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한 나라의 몹시 나쁜 행정이 다른 나라에서는 저절로 가장 좋은 행정이 되었을 것을 세우는 일을 얼마쯤 위험하고 조심성 없는 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내보내는 것을 아무 한정 없이 자유롭게 하는 것은 큰 나라에서는 훨씬 덜 위험할 터인데, 기르는 양이 훨씬 더 커서 내보내질 만한 어떤 양의 곡물로도 공급이 크게 흔들릴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어느 주에서나 이탈리아의 작은 나라 몇몇에서는 어쩌면 더러 곡물을 내보내는 것을 제약해야 할지도 모른다. 프랑스나 잉글랜드 같은 큰 나라에서는 좀처럼 그럴 수 없다. 게다가 농부가 언제든 가장 좋은 시장으로 제 물건을 보내지 못하게 막는 것은, 정의의 예사로운 법을 공공의 유익이라는 생각에, 곧 일종의 국가 이유에 뻔히 내던지는 것이다. 이는 가장 다급한 필요가 있을 때에만 휘둘러야 하고 그때에만 용서받을 수 있는 입법 권한의 행사다. 곡물을 내보내는 것을 금하는 값은, 그것을 굳이 금해야 한다면 언제나 아주 높은 값이어야 한다.
곡물에 관한 법은 어디서나 종교에 관한 법에 견줄 만하다. 사람들은 이승에서 제 생계에 걸린 일이나 다음 생에서 제 행복에 걸린 일에 저 자신이 그토록 깊이 얽혀 있다고 느끼므로, 정부는 그들의 편견에 굽히고 공공의 평온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이 좋다고 여기는 체계를 세워야 한다. 그 두 가지 으뜸되는 일에 관하여 사리에 맞는 체계가 세워진 것을 우리가 그토록 드물게 보는 것은 어쩌면 이 까닭일 것이다.
Ⅳ. 중계 상인의 거래, 곧 다시 내보내려고 외국 곡물을 들여오는 사람의 거래는 국내 시장을 넉넉하게 공급하는 데에 이바지한다. 참으로 그의 곡물을 그곳에서 파는 것이 그 거래의 곧바른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대개 그렇게 하기를 마다하지 않을 터이며, 외국 시장에서 바랄 만한 것보다 꽤 적은 돈을 받고도 그러할 것인데, 이렇게 하여 싣고 내리는 비용과 뱃삯과 보험료를 아끼기 때문이다. 중계 무역 덕분에 다른 나라들에 대주는 창고와 저장고가 된 나라의 주민들은 저희가 모자라게 되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러므로 중계 무역은 이렇게 국내 시장에서 곡물의 평균 화폐 가격을 낮추는 데에 이바지할 터이나, 그럼으로써 곡물의 실질 가치를 내리지는 않을 것이며 다만 은의 실질 가치를 얼마쯤 올릴 뿐이다.
중계 무역은 영국에서 여느 때에는 외국 곡물을 들여오는 데 붙는 높은 관세로 사실상 금지되었는데, 그 관세는 큰 몫에 관세 환급이 없었다. 그리고 모자람 때문에 한시 법령으로 그 관세를 멈추어야 했던 남다른 때에는 내보내는 것이 언제나 금지되었다. 그러므로 이 법의 체계로 중계 무역은 사실상 금지되었다.
그러므로 장려금이 자리 잡은 일과 이어져 있는 그 법의 체계는 그것에 베풀어진 찬사를 어느 몫도 받을 만하지 않아 보인다. 그 법들에 그토록 잦게 돌려진 영국의 개량과 번영은 다른 원인으로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사람마다 제 노동의 열매를 누리게 하리라고 영국의 법이 모든 사람에게 주는 그 안전만으로도, 이런 것들과 그 밖의 스무 가지 터무니없는 상업 규정이 있음에도 어느 나라든 번성하게 하기에 넉넉하다. 그리고 이 안전은 장려금이 자리 잡은 것과 거의 같은 때에 명예혁명7으로 온전해졌다. 사람마다 제 처지를 낫게 하려는 자연스러운 애씀은, 자유와 안전 속에서 저 스스로 펼쳐지도록 놓아두면 그토록 힘센 원리여서, 그것만으로 아무 도움 없이도 사회를 부와 번영으로 이끌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이 만든 법의 어리석음이 그 일을 너무나 잦게 짓눌러 놓는 백 가지 되지못한 가로막음을 넘어설 수 있다. 물론 그 가로막음의 효과는 언제나 이럭저럭 그 자유를 침범하거나 그 안전을 줄이는 것이다. 영국에서 근면은 온전히 안전하다. 그리고 온전히 자유롭기에는 아직 멀지만, 유럽의 다른 어느 곳에서와 견주어도 그만큼 자유롭거나 더 자유롭다.
영국의 가장 큰 번영과 개량의 시기가 장려금과 이어져 있는 그 법의 체계보다 뒤에 왔다고 하여, 그 까닭으로 그것을 그 법들에 돌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나라의 빚보다도 뒤에 왔으나, 나라의 빚이 그 원인이 아니었음은 아주 틀림없다.
장려금과 이어져 있는 그 법의 체계가 그것이 행해지는 나라에서 귀금속의 가치를 얼마쯤 내린다는 점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관행과 똑같은 쪽으로 기운다 하더라도,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넉넉한 나라의 하나임이 틀림없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어쩌면 가장 헐벗은 나라에 든다. 그러나 이 처지의 다름은 서로 다른 두 원인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금과 은을 내보내는 데에 스페인이 매긴 세와 포르투갈이 내린 금지, 그리고 그 법을 집행하는 것을 살피는 눈 밝은 행정은, 두 나라가 합하여 해마다 600만 스털링이 넘게 들여오는 몹시 가난한 두 나라에서 곡물법이 영국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곧바로, 그리고 훨씬 더 세게 그 금속의 가치를 그곳에서 내리는 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둘째로 이 나쁜 행정은 그 나라들에서 사람들의 두루 누리는 자유와 안전으로 맞받쳐지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근면이 자유롭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그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의 세속 정부와 교회 정부는, 그 상업 규정이 지금 그 대부분이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것과는 반대로 아주 어진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그 나라들의 지금 같은 가난한 상태를 길이 이어 가게 하기에 넉넉할 만한 것이다.
「지금 국왕 치세 13년의 법 제43장」은 곡물법에 관하여 여러 점에서 옛것보다 나은, 그러나 한두 점에서는 어쩌면 그만큼 좋지 않은 새 체계를 세운 듯하다.
이 법령으로 중등품 밀값이 1쿼터에 48실링까지, 중등품 호밀과 완두와 콩의 값이 32실링까지, 보리 값이 24실링까지, 귀리 값이 16실링까지 오르는 대로 나라 안에서 쓸 것을 들여오는 데 붙는 높은 관세가 벗겨지고, 그 대신 밀 1쿼터에 6펜스, 그 밖의 곡물에도 그에 비례하는 작은 관세만 매겨진다. 그 여러 종류의 곡물 모두에 관하여, 특히 밀에 관하여 국내 시장이 이렇게 앞서보다 꽤 낮은 값에서 외국의 공급에 열린다.
같은 법령으로 밀을 내보내는 데에 주던 5실링의 옛 장려금은 값이 1쿼터에 44실링까지 오르는 대로 그치는데, 앞서 그것이 그쳤던 값은 48실링이었다. 보리를 내보내는 데에 주던 2실링 6펜스의 장려금은 값이 22실링까지 오르는 대로 그치는데, 앞서는 24실링에서 그쳤다. 오트밀을 내보내는 데에 주던 2실링 6펜스의 장려금은 값이 14실링까지 오르는 대로 그치는데, 앞서 그것이 그쳤던 값은 15실링이었다. 호밀에 주는 장려금은 3실링 6펜스에서 3실링으로 줄고, 값이 28실링까지 오르는 대로 그치는데 앞서는 32실링에서 그쳤다. 내가 애써 밝히려 한 대로 장려금이 옳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이 빨리 그칠수록, 그리고 낮을수록 그만큼 더 좋다.
같은 법령은 가장 낮은 값에서도 다시 내보내려고 곡물을 들여오는 것을 관세 없이 허락하는데, 그동안 국왕과 수입업자가 함께 채운 자물쇠 아래 창고에 넣어 두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8 참으로 이 자유는 영국의 여러 항구 가운데 25곳에만 미친다. 그러나 그 항구들은 으뜸되는 것들이며, 나머지 대부분에는 어쩌면 이 일에 알맞은 창고가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이 법은 옛 체계보다 나아진 것이 뚜렷해 보인다.
그러나 같은 법으로 귀리를 내보내는 데에 값이 14실링을 넘지 않을 때면 1쿼터에 2실링의 장려금이 주어진다. 이 곡물을 내보내는 데에는 그 앞에 아무 장려금도 주어진 적이 없었고, 완두나 콩을 내보내는 데에도 마찬가지였다.
또 같은 법으로 밀을 내보내는 것은 값이 1쿼터에 44실링까지 오르는 대로 금지되고, 호밀은 28실링까지 오르는 대로, 보리는 22실링까지 오르는 대로, 귀리는 14실링까지 오르는 대로 금지된다. 이 여러 값은 모두 꽤 많이 낮아 보인다. 게다가 내보내는 것을 억지로 밀어붙이려고 주었던 그 장려금이 거두어지는 바로 그 값에서 내보내는 것을 아예 금하는 데에도 옳지 않은 점이 있어 보인다. 장려금은 틀림없이 훨씬 더 낮은 값에서 거두어졌어야 했거나, 아니면 내보내는 것이 훨씬 더 높은 값에서 허락되었어야 했다.
그러므로 여기까지 이 법은 옛 체계보다 못해 보인다. 그러나 온갖 흠이 있음에도 우리는 어쩌면 솔론의 법9에 대하여 이야기된 것을 이 법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그 자체로 가장 좋은 것은 아니나 그 시대의 이익과 편견과 기질이 허락할 만한 가장 좋은 것이라고. 그것은 어쩌면 때가 되면 더 나은 것으로 가는 길을 닦아 줄지도 모른다.
6장 통상 조약에 대하여
어느 나라가 조약으로 저를 얽어매어, 다른 모든 나라에는 금하는 어떤 물건을 한 외국에서만 들어오게 허락하거나 다른 모든 나라의 물건에는 매기는 관세를 한 나라의 물건에만 면해 주면, 그렇게 그 상업이 우대받는 나라, 적어도 그 나라의 상인과 제조업자는 반드시 그 조약에서 큰 이득을 얻는다. 그 상인과 제조업자는 그렇게 저희에게 너그러운 나라에서 일종의 독점을 누린다. 그 나라는 그들의 물건에 더 넓고 더 이로운 시장이 된다. 더 넓다는 것은 다른 나라들의 물건이 쫓겨나거나 더 무거운 관세를 지게 되니 그들의 물건을 더 많이 받아 가기 때문이고, 더 이롭다는 것은 우대받는 나라의 상인이 그곳에서 일종의 독점을 누리니 다른 모든 나라의 자유로운 경쟁에 드러나 있을 때보다 잦게 제 물건을 더 좋은 값에 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약은 우대받는 나라의 상인과 제조업자에게는 이로울 수 있으나, 우대하는 나라의 상인과 제조업자에게는 반드시 해롭다. 이리하여 그들을 거스르는 독점이 한 외국에 주어지며, 그들은 제게 필요한 외국 물건을 다른 나라들의 자유로운 경쟁이 허락되었을 때보다 잦게 더 값비싸게 사야 한다. 그러한 나라가 외국 물건을 사는 데에 내놓는 제 생산물의 몫은 따라서 더 헐하게 팔려야 하는데, 두 가지가 서로 바뀔 때 한쪽이 헐한 것은 다른 쪽이 값비싼 것의 반드시 따르는 결과이거나 차라리 그와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연간 생산물의 교환 가치는 그러한 조약 하나하나로 줄어들기 쉽다. 그러나 이 줄어듦이 확실한 손실이 되기는 어렵고, 저절로 얻었을 이득이 적어지는 것에 그칠 뿐이다. 제 물건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헐하게 팔더라도, 아마 그것이 든 값보다 적게 받고 팔지는 않을 터이며, 장려금의 경우처럼 그것을 시장으로 가져오는 데 쓴 자본과 자산의 예사로운 이윤을 함께 메우지 못할 값에 팔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그 거래는 오래 이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대하는 나라라 해도 자유로운 경쟁이 있을 때보다는 적으나 그 거래로 여전히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통상 조약은 이와는 아주 다른 원리에서 이롭다고 여겨져 왔다. 어떤 상업 국가가 한 외국의 어떤 물건에 이런 종류의 독점을 저를 거스르며 허락해 준 일이 더러 있었는데, 두 나라 사이의 상업 전체에서 저희가 해마다 사는 것보다 더 많이 팔게 되고 따라서 금과 은의 차액이 해마다 저희에게 돌아오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1703년에 메수엔 씨가 맺은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사이의 통상 조약10이 그토록 크게 기려져 온 것은 이 원리에서다. 다음은 세 조항으로만 된 그 조약을 낱말대로 옮긴 것이다.
제1조. 포르투갈의 신성한 국왕 폐하는 저 자신의 이름으로도 그 뒤를 잇는 이들의 이름으로도, 영국의 모직 옷감과 그 밖의 모직 제조품이 법으로 금지되기 전까지 그러했던 대로 앞으로 언제까지나 포르투갈로 들어오게 허락하기를 약속한다. 다만 다음 조건 아래에서 그러하다.
제2조. 곧 영국의 신성한 여왕 폐하는 저 자신의 이름으로도 그 뒤를 잇는 이들의 이름으로도, 포르투갈에서 자란 포도주가 영국으로 들어오게 허락할 의무를 앞으로 언제까지나 진다. 그리하여 영국과 프랑스 두 왕국 사이에 평화가 있든 전쟁이 있든 어느 때에도, 그 포도주가 영국으로 파이프통이나 호그즈헤드통이나 그 밖의 통에 담겨 들어오든, 관세나 세라는 이름으로든 그 밖의 어떤 명목으로든, 곧바로든 에둘러서든, 같은 양이나 같은 되의 프랑스 포도주에 요구되는 것에서 관세나 세의 3분의 1을 덜어 내거나 깎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 포도주에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해야 하는 이 관세의 덜어 냄이나 깎음이 어느 때에든 어떻게든 흔들리고 해쳐진다면, 포르투갈의 신성한 국왕 폐하가 영국의 모직 옷감과 그 밖의 모직 제조품을 다시 금하는 것이 옳고 법에 맞는 일이 된다.
제3조. 가장 뛰어난 전권 대사 어른들은 위에 이름을 적은 저희 주인들이 이 조약을 비준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일을 제 몫으로 떠맡으며, 두 달 안에 비준서를 주고받기로 한다.
이 조약으로 포르투갈의 왕실은 잉글랜드 모직물을 금지 이전과 같은 조건으로, 곧 그전에 내던 관세를 올리지 않고 들어오게 할 의무를 지게 된다. 그러나 이를테면 프랑스나 네덜란드 같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나은 조건으로 그것을 들어오게 할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영국의 왕실은 포르투갈의 포도주를, 그와 경쟁하게 될 가망이 가장 큰 프랑스 포도주에 매겨지는 관세의 3분의 2만 받고 들어오게 할 의무를 지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까지 이 조약은 포르투갈에는 이롭고 영국에는 해로운 것이 뻔하다.
그러나 그것은 잉글랜드의 상업 행정이 낸 걸작으로 기려져 왔다. 포르투갈은 브라질에서 해마다 제 나라 안의 상업에 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금을 받아들이는데, 주화의 꼴로든 금은 그릇의 꼴로든 그러하다. 남은 것은 값진 것이라 놀려 두고 금고에 잠가 둘 수 없으며, 나라 안에서 이로운 시장을 찾을 수 없으므로 어떤 금지가 있더라도 밖으로 보내져 나라 안에서 더 이로운 시장이 있는 무엇과 바뀔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큰 몫이 해마다 잉글랜드로 오는데, 잉글랜드의 물건 값으로든 잉글랜드를 거쳐 회수를 받는 다른 유럽 나라들의 물건 값으로든 그러하다. 바레티 씨11는 리스본에서 오는 주마다의 우편선이 주를 이어 셈해 볼 때 5만 파운드가 넘는 금을 잉글랜드로 실어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액수는 아마 부풀려진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해에 260만 파운드가 넘을 터인데, 이는 브라질이 내준다고 여겨지는 것보다 많다.
우리 상인들은 몇 해 전에 포르투갈 왕실에 언짢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조약으로가 아니라 그 왕실이 스스로 은혜를 베풀어 그들에게 주었던 어떤 특권이, 참으로 아마 그들이 청하였고 영국 왕실이 베푼 훨씬 더 큰 은혜, 곧 방어와 보호에 대한 보답으로 주어졌던 그 특권이 침범되거나 거두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대개 포르투갈 거래를 기리는 데에 누구보다 이해가 걸려 있던 사람들이 그때는 그것을 여느 때 여겨져 온 것보다 덜 이롭다고 말하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들의 주장으로는 해마다 들어오는 이 금 가운데 훨씬 더 큰 몫, 거의 그 전부가 영국 몫이 아니라 다른 유럽 나라들의 몫이며, 포르투갈에서 해마다 영국으로 들여오는 과일과 포도주가 그곳으로 보내는 영국 물건의 가치를 거의 메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전부가 영국 몫이었고 그 액수가 바레티 씨가 여긴 듯한 것보다도 컸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더라도 이 거래는 그 까닭으로, 같은 가치를 내보내어 같은 가치의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을 받아 오는 다른 어느 거래보다 더 이롭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들여오는 것 가운데 왕국의 금은 그릇에든 주화에든 해마다 보태지는 데에 쓰인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몫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밖으로 보내져 이런저런 종류의 소비할 수 있는 물건과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을 잉글랜드 산업이 낸 생산물로 곧바로 샀더라면, 그 생산물로 먼저 포르투갈의 금을 사고 그 금으로 뒤에 그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을 사는 것보다 잉글랜드에 더 이로웠을 것이다. 소비를 위한 곧바른 외국 거래는 언제나 에두르는 것보다 더 이로우며, 같은 가치의 외국 물건을 국내 시장으로 가져오는 데에 앞의 길로는 뒤의 길로보다 훨씬 더 적은 자본이 든다. 그러므로 그 산업 가운데 더 작은 몫이 포르투갈 시장에 알맞은 물건을 만드는 데에 쓰이고 더 큰 몫이, 영국에서 수요가 있는 그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시장에 알맞은 물건을 만드는 데에 쓰였더라면 잉글랜드에 더 이로웠을 것이다. 제 나라에서 쓰려고 하는 금과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을 아울러 마련하는 데에 이 길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은 자본이 든다. 그러므로 남는 자본이 생겨 다른 목적에, 곧 산업을 더 많이 일으키고 더 큰 연간 생산물을 길러 내는 데에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이 포르투갈 거래에서 온통 쫓겨난다 하더라도, 금은 그릇에 쓰려는 것이든 주화에 쓰려는 것이든 외국 거래에 쓰려는 것이든 제게 필요한 해마다의 금 공급을 모두 마련하는 데에 거의 아무 어려움도 찾지 못할 것이다. 금은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그것에 내놓을 값어치를 지닌 사람에게는 언제나 어디서든 그 값어치로 얻어질 수 있다. 게다가 포르투갈에 해마다 남는 금은 여전히 밖으로 보내질 터이며, 영국이 실어 가지 않는다 해도 다른 어느 나라가 실어 갈 터인데, 그 나라는 영국이 지금 하는 것과 똑같이 그것을 제 값에 되팔기를 반가워할 것이다. 참으로 포르투갈에서 금을 살 때 우리는 그것을 첫 손에서 산다. 그에 비하여 스페인을 뺀 다른 어느 나라에서 산다면 두 번째 손에서 사는 것이 되어 얼마쯤 더 값비싸게 치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차이는 나라가 눈여겨볼 만하기에는 틀림없이 너무 하찮을 것이다.
우리 금은 거의 모두 포르투갈에서 온다고 이야기된다. 다른 나라들과는 무역 차액이 우리에게 거스르거나 우리에게 크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나라에서 금을 더 많이 들여올수록 다른 모든 나라에서 반드시 더 적게 들여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금에 대한 유효 수요는 다른 모든 상품에 대한 수요와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에서나 일정한 양에 한정되어 있다. 이 양의 10분의 9를 한 나라에서 들여온다면 다른 모든 나라에서 들여올 것은 10분의 1만 남는다. 게다가 어떤 특정한 나라들에서 금은 그릇과 주화에 필요한 것 위로 해마다 더 많은 금을 들여올수록, 다른 어떤 나라들로 반드시 더 많은 금을 내보내야 한다. 그리고 요즘 행정의 그 가장 하찮은 목표인 무역 차액이 어떤 특정한 나라들에 대하여 우리에게 유리해 보일수록, 다른 많은 나라들에 대하여 반드시 우리에게 거스르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포르투갈 거래 없이는 지탱할 수 없다는 이 어리석은 생각에서, 지난 전쟁이 끝날 무렵에 프랑스와 스페인은 모욕이나 도발이 있었다고 내세우지도 않고서 포르투갈 국왕에게 영국의 모든 배를 그 항구에서 내쫓으라고, 그리고 그 내쫓음을 지키기 위하여 프랑스나 스페인의 수비대를 그 항구에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12 포르투갈 국왕이 그의 처남인 스페인 국왕이 내놓은 그 부끄러운 조건에 굽혔더라면, 영국은 포르투갈 거래를 잃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불편, 곧 몹시 약한 동맹을 떠받치는 짐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그 동맹은 제 몸을 지킬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여, 잉글랜드의 온 힘을 그 한 가지 목적에만 돌렸다 하더라도 한 번 더 싸움을 치르는 동안 그를 지켜 내기가 어쩌면 어려웠다. 포르투갈 거래를 잃는 것은 그때 그 거래에 몸담고 있던 상인들에게 틀림없이 꽤 큰 낭패를 안겼을 터이고, 그들은 어쩌면 한두 해 동안 제 자본을 쓸 다른 어떤 똑같이 이로운 길도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잉글랜드가 저 이름난 상업 행정으로 겪을 수 있었던 불편이란 아마 이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금과 은을 해마다 크게 들여오는 것은 금은 그릇을 위한 것도 주화를 위한 것도 아니고 외국 거래를 위한 것이다. 소비를 위하여 에두르는 외국 거래는 다른 거의 어떤 물건보다 이 금속으로 더 이롭게 꾸려 갈 수 있다. 그것은 두루 쓰이는 상업의 도구이므로 다른 어떤 물건보다 모든 상품의 값으로 더 선선히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부피가 작고 가치가 큰 까닭으로 다른 거의 어떤 종류의 상품보다 그것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오가며 옮기는 데 값이 덜 들고, 그렇게 옮겨져도 가치를 덜 잃는다. 그러므로 한 외국에서 사서 다른 나라에서 다른 물건으로 되팔거나 바꾸기 위한 것 말고는 다른 아무 목적이 없는 모든 상품 가운데 금과 은만큼 손쉬운 것은 없다. 영국에서 꾸려 가는 소비를 위한 온갖 에두르는 외국 거래를 쉽게 해 주는 데에 포르투갈 거래의 으뜸되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으뜸으로 꼽을 이점은 아니나 틀림없이 꽤 큰 이점이다.
왕국의 금은 그릇에든 주화에든 해마다 보태진다고 사리에 맞게 여길 수 있는 어떤 것도 금과 은을 해마다 아주 조금만 들여오면 되게 한다는 것은 넉넉히 뚜렷해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포르투갈과 곧바른 거래를 하지 않았더라도 이 작은 양은 늘 어디서든 아주 쉽게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국에서 금장이의 일이 꽤 크다 하더라도, 그들이 해마다 파는 새 금은 그릇 가운데 훨씬 더 큰 몫은 다른 낡은 그릇을 녹여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왕국의 금은 그릇 전체에 해마다 보태지는 것은 크지 않을 터이며, 해마다 아주 조금만 들여오면 되었을 것이다.
주화도 사정이 같다. 지난번 금화 개조 앞에 열 해를 이어 금으로 한 해에 80만 파운드가 넘었던 해마다의 주조 가운데 큰 몫이라도 왕국에 이미 돌던 화폐에 해마다 보태진 것이었다고 여기는 사람은 내가 믿기로는 아무도 없다. 주조 비용을 정부가 대는 나라에서는 주화가 금과 은의 법정 무게를 온전히 갖추었을 때에도 그 가치가 주조되지 않은 같은 양의 그 금속의 가치보다 크게 더할 수 없는데, 어떤 양의 주조되지 않은 금과 은에 대하여 그와 같은 양의 주화를 얻으려면 조폐국까지 가는 수고와 어쩌면 몇 주일의 기다림만 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나 돌고 있는 주화의 큰 몫은 거의 언제나 이럭저럭 닳아 있거나 달리 법정 품위에서 떨어져 있다. 영국에서도 지난번 개조 앞에는 꽤 그러하여, 금은 법정 무게보다 2퍼센트가 넘게, 은은 8퍼센트가 넘게 모자랐다. 그런데 법정 무게를 온전히 갖추어 금 1파운드(무게)가 되는 44기니13 반이 주조되지 않은 금 1파운드(무게)보다 아주 조금밖에 더 살 수 없었다면, 무게의 한 몫이 모자라는 44기니 반으로는 1파운드(무게)를 살 수 없었을 터이고 그 모자람을 메우려고 무엇을 보태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장에서 금덩이의 그때 값은 조폐국 가격인 46파운드 14실링 6펜스와 같지 않고 47파운드 14실링쯤이었으며 더러는 48파운드쯤이었다. 그러나 주화의 큰 몫이 이렇게 떨어진 상태에 있을 때에는 조폐국에서 갓 나온 44기니 반도 다른 여느 기니보다 시장에서 물건을 더 살 수 없었는데, 그것이 상인의 금고에 들어가면 다른 돈과 섞여서 그 뒤로는 그 차이가 값어치 있을 만큼의 수고를 더 들이지 않고서는 가려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기니와 마찬가지로 그것도 46파운드 14실링 6펜스밖에 값하지 않았다. 그러나 녹이는 가마에 던져 넣으면 그것은 느낄 만한 손실 없이 법정 품위의 금 1파운드(무게)를 냈고, 그것은 언제든 47파운드 14실링에서 48파운드 사이의 값으로 금으로든 은으로든 팔릴 수 있었으며 녹여 버린 그것과 마찬가지로 주화의 모든 쓰임에 알맞았다. 그러므로 갓 주조된 돈을 녹이는 데에 뻔한 이윤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토록 한순간에 이루어져 정부의 어떤 조심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 까닭으로 조폐국이 하는 일은 페넬로페의 베와 얼마쯤 닮아서, 낮에 해 놓은 일이 밤에 풀어졌다. 조폐국은 주화에 날마다 보태는 일을 하기보다는 날마다 녹아 없어지는 그 가장 좋은 몫을 메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금과 은을 조폐국으로 가져가는 개인들이 주조 비용을 제 손으로 치른다면, 그것은 세공이 금은 그릇의 가치에 보태는 것과 똑같이 그 금속의 가치에 보탤 것이다. 주조된 금과 은은 주조되지 않은 것보다 더 값지게 된다. 주조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높지만 않다면 그것은 그 세의 온 가치를 금덩이에 보탤 터인데, 정부가 어디서나 주조하는 독차지 권리를 지니고 있으므로 어떤 주화도 정부가 알맞다고 여겨 내주는 것보다 헐하게 시장에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 세가 터무니없이 높다면, 곧 주조에 필요한 노동과 비용의 실질 가치보다 몹시 크게 높다면, 안에서든 밖에서든 위조하는 자들이 금덩이의 가치와 주화의 가치 사이의 큰 차이에 마음이 끌려 정부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릴 만큼 많은 양의 가짜 돈을 쏟아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주조 수수료가 8퍼센트인데도 이런 종류의 느낄 만한 불편이 그것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위조하는 자가 제가 주화를 위조하는 나라에 산다면 그 자신이, 외국에 산다면 그 대리인이나 연락하는 사람들이 어디서나 마주하게 되는 위험은 6퍼센트나 7퍼센트의 이윤을 노려 무릅쓰기에는 훨씬 너무 크다.
프랑스의 주조 수수료는 주화의 가치를 그 안에 든 순금의 양에 비례하는 것보다 더 높이 올린다. 그리하여 1726년 1월의 칙령으로 24캐럿 순금의 조폐국 가격은 파리 온스로 8온스가 되는 마르크마다 740리브르 9수 1드니에와 11분의 1로 정해졌다.14 {『화폐 사전』 제2권 「주조 수수료」 항목 439쪽 81항을 보라. 아보 드 바징겐, 파리 화폐 법원의 참사관 겸 위원.} 프랑스의 금화는 조폐국의 허용 오차를 헤아려 주면 21캐럿과 4분의 3의 순금과 2캐럿 4분의 1의 섞임쇠를 지닌다. 그러므로 법정 품위의 금 1마르크는 671리브르 10드니에쯤밖에 값하지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이 법정 품위의 금 1마르크는 24리브르짜리 루이도르 30개, 곧 720리브르로 주조된다. 그러므로 주조는 법정 품위의 금덩이 1마르크의 가치를 671리브르 10드니에와 720리브르의 차이만큼, 곧 48리브르 19수 2드니에만큼 늘린다.
주조 수수료는 많은 경우에 새 주화를 녹이는 이윤을 아예 없애고, 모든 경우에 그것을 줄인다. 이 이윤은 언제나 흔히 도는 돈이 지녀야 하는 금덩이의 양과 실제로 지니고 있는 양의 차이에서 나온다. 이 차이가 주조 수수료보다 적으면 이윤이 아니라 손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주조 수수료와 같으면 이윤도 손실도 없어진다. 그것이 주조 수수료보다 크면 참으로 얼마쯤 이윤이 있을 터이나 주조 수수료가 없을 때보다는 적을 것이다. 이를테면 지난번 금화 개조 앞에 주조에 5퍼센트의 주조 수수료가 있었다면 금화를 녹이는 데에 3퍼센트의 손실이 있었을 것이다. 주조 수수료가 2퍼센트였다면 이윤도 손실도 생기지 않았다. 주조 수수료가 1퍼센트였다면 2퍼센트가 아니라 1퍼센트의 이윤만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돈을 무게로 달지 않고 낱개로 세어 받는 곳에서는 주조 수수료가 주화를 녹이는 것을, 그리고 같은 까닭으로 그것을 내보내는 것을 막는 가장 효험 있는 예방이다. 녹여지거나 내보내지는 것은 대개 가장 좋고 가장 무거운 조각들인데, 그런 것에서 가장 큰 이윤이 나기 때문이다.
주조를 관세 없이 하게 하여 그것을 북돋우려는 법은 찰스 2세 치세에 한동안만 두기로 처음 만들어졌고, 뒤에 여러 번 늘어나며 이어져 1769년에 영구한 것이 되었다. 영국 은행은 제 금고를 돈으로 다시 채우려고 잦게 금덩이를 조폐국으로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 주조가 저희 비용으로 되기보다 정부의 비용으로 되는 것이 저희에게 더 이롭다고 그들은 아마 여겼을 것이다. 정부가 이 법을 영구한 것으로 만들기로 한 것은 아마 이 큰 회사에 마음을 맞추어 준 데서 나온 일이었다. 그러나 금을 무게로 다는 관행이 그 번거로움 때문에 아주 그러할 듯이 쓰이지 않게 된다면, 그리고 잉글랜드의 금화가 지난번 재주조 앞에 그러했던 대로 낱개로 세어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이 큰 회사는 어쩌면 이 일에서도 다른 몇몇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제 이익을 적잖이 잘못 알았음을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지난번 재주조 앞에 잉글랜드의 금 돈이 법정 무게보다 2퍼센트 모자랐을 때, 주조 수수료가 없었으므로 그것은 저것이 지녀야 했던 그 양의 법정 품위 금덩이의 가치보다 2퍼센트 모자랐다. 그러므로 이 큰 회사가 주조하려고 금덩이를 살 때에는 주조한 뒤의 값어치보다 2퍼센트 더 치러야 했다. 그러나 주조에 2퍼센트의 주조 수수료가 있었다면, 흔히 도는 금 돈이 법정 무게보다 2퍼센트 모자랐더라도 그것이 지녀야 했던 그 양의 법정 품위 금의 가치와 맞먹었을 터인데, 이 경우에는 세공의 가치가 무게의 줄어듦을 메워 주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들은 주조 수수료를 치러야 했을 터이고 그것이 2퍼센트이므로 이 거래 전체에서 그들이 본 손실은 2퍼센트가 되어 실제와 똑같았을 터이며 그보다 크지도 않았다.
주조 수수료가 5퍼센트이고 금 돈이 법정 무게보다 2퍼센트만 모자랐다면, 이 경우에 은행은 금덩이 값에서 3퍼센트를 얻는 셈이 된다. 그러나 주조에 5퍼센트의 주조 수수료를 치러야 했을 터이므로 이 거래 전체에서 그들이 본 손실은 앞과 똑같이 바로 2퍼센트였을 것이다.
주조 수수료가 1퍼센트뿐이고 금 돈이 법정 무게보다 2퍼센트 모자랐다면, 이 경우에 은행은 금덩이 값에서 1퍼센트만 잃는 셈이 된다. 그러나 1퍼센트의 주조 수수료도 치러야 했을 터이므로 이 거래 전체에서 그들이 본 손실은 다른 모든 경우와 똑같이 바로 2퍼센트였을 것이다.
알맞은 주조 수수료가 있으면서 그와 함께 주화가 지난번 재주조 뒤로 거의 그러했던 대로 법정 무게를 온전히 지니고 있다면, 은행이 주조 수수료로 잃을 것은 무엇이든 금덩이 값에서 얻을 터이고, 금덩이 값에서 얻을 것은 무엇이든 주조 수수료로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거래 전체에서 잃지도 얻지도 않을 터이며, 이 경우에도 앞서 말한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조 수수료가 없을 때와 바로 같은 처지에 놓일 것이다.
어떤 상품에 매긴 세가 밀매를 북돋우지 않을 만큼 알맞을 때에는, 그것을 거래하는 상인이 그 세를 먼저 내놓기는 하나 상품 값으로 되받으므로 참으로 그것을 치르는 것은 아니다. 그 세는 마지막 구매자나 소비자가 끝내 치른다. 그러나 돈은 사람마다 누구나 상인이 되는 상품이다. 되팔려는 것이 아니면 아무도 그것을 사지 않으며, 그것에 관하여는 여느 경우에 마지막 구매자도 소비자도 없다. 그러므로 주조에 매긴 세가 화폐 위조를 북돋우지 않을 만큼 알맞을 때에는, 누구나 그 세를 먼저 내놓기는 하나 아무도 끝내 그것을 치르지 않는데, 누구나 주화의 올라간 가치로 그것을 되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알맞은 주조 수수료는 어떤 경우에도 은행의 비용이나 주조하려고 금덩이를 조폐국으로 가져가는 다른 어떤 개인의 비용을 늘리지 않을 터이며, 알맞은 주조 수수료가 없다고 하여 그것이 어떤 경우에도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주조 수수료가 있든 없든, 도는 돈이 법정 무게를 온전히 지니고 있다면 주조는 누구에게도 값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무게에 못 미친다면 주조는 언제나 그것이 지녀야 하는 금덩이의 양과 실제로 지니고 있는 양의 차이만큼 값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정부가 주조 비용을 댈 때에는 얼마쯤 작은 비용을 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알맞은 관세로 얻을 수 있었을 얼마쯤 작은 세입까지 잃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은행도 다른 어떤 개인도 이 쓸모없는 나라의 너그러움으로 조금도 이득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은행의 이사들은 아무 이득도 약속해 주지 않고 손실에서 지켜 주겠다고만 내세우는 어떤 추론을 믿고 주조 수수료를 매기는 데에 동의하기를 아마 마다할 것이다. 금화가 지금 같은 상태에 있고 그것이 계속 무게로 달아 받아들여지는 동안에는 그들이 그러한 바뀜으로 얻을 것이 틀림없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금화를 무게로 다는 관행이 아주 그럴 듯이 언제든 쓰이지 않게 되고, 금화가 지난번 재주조 앞에 놓여 있던 것과 같은 떨어진 상태로 언제든 빠진다면, 주조 수수료를 매김으로써 은행이 얻는 것, 더 바르게 말하여 아끼게 되는 것은 아마 꽤 클 것이다. 영국 은행은 꽤 많은 양의 금덩이를 조폐국으로 보내는 유일한 회사이며, 해마다의 주조가 지우는 짐은 온통, 또는 거의 온통 그것에 떨어진다. 이 해마다의 주조가 주화의 피할 수 없는 손실과 어쩔 수 없는 닳음을 메우는 일만 하면 된다면 그것이 5만 파운드, 아무리 많아도 10만 파운드를 넘는 일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주화가 법정 무게 아래로 떨어져 있을 때에는 해마다의 주조가 이것 말고도, 내보내는 것과 녹이는 가마가 도는 주화에 끊임없이 만들어 놓는 큰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지난번 금화 개조 바로 앞의 열 해나 열두 해 동안 해마다의 주조가 평균 85만 파운드가 넘었던 것은 이 까닭이었다. 그러나 금화에 4퍼센트나 5퍼센트의 주조 수수료가 있었다면, 그것은 그때 사정이 그러했던 상태에서도 내보내는 일과 녹이는 가마의 일을 아마 효험 있게 멈추어 세웠을 것이다. 은행은 85만 파운드가 넘는 주화로 주조될 금덩이에 해마다 2.5퍼센트쯤을 잃어 2만 1250파운드가 넘는 손실을 해마다 입는 대신에, 아마 그 손실의 10분의 1도 입지 않았을 것이다.
주조 비용을 대라고 의회가 배정해 둔 세입은 한 해 1만 4천 파운드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부에 들게 하는 실제 비용, 곧 조폐국 관리들의 수수료는 여느 때에는 그 액수의 반을 넘지 않는다고 나는 전해 들었다. 그토록 아주 작은 액수를 아끼는 것, 또는 그보다 크게 많을 수도 없을 다른 액수를 얻는 것은 정부가 심각하게 눈여겨볼 만하기에는 너무 하찮은 일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있을 법하지 않은 일도 아니고 앞서도 잦게 일어났으며 다시 일어날 듯도 한 어떤 일이 닥칠 경우에 한 해 1만 8천이나 2만 파운드를 아끼는 것은, 영국 은행처럼 큰 회사에게조차 틀림없이 심각하게 눈여겨볼 만한 일이다.
앞서 말한 추론과 살핌 가운데 어떤 것은 어쩌면 돈의 기원과 쓰임을 다루는 1편의 장들에, 그리고 상품의 실질 가격과 명목 가격의 차이를 다루는 장에 놓는 것이 더 알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조를 북돋우려는 법은 중상주의 체계가 들여놓은 그 상스러운 편견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나는 그것을 이 장에 남겨 두는 것이 더 알맞다고 판단했다. 나라마다의 부를 이룬다고 그 체계가 여기는 바로 그것, 곧 돈을 만들어 내는 데에 일종의 장려금을 주는 것만큼 그 체계의 정신에 맞갖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나라를 넉넉하게 만들려는 그 체계의 많은 놀라운 방편 가운데 하나다.
주
1. 옮긴이 — 쿼터는 곡물을 되는 단위로 8부셸, 약 291리터다. 「4분의 1」이라는 뜻이 아니다. 1부셸은 약 36리터다.
2. 옮긴이 — 이 책의 화폐는 파운드·실링·펜스다. 1파운드는 20실링이고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저본이 53s:4d. 꼴로 적은 것은 53실링 4펜스다. 오늘날 값으로는 환산하지 않는다. 스미스의 논증은 절대액이 아니라 비율에 걸려 있다.
3. 옮긴이 — 매점은 되팔려고 곡물을 사들여 쥐고 있는 것이고, 선매는 곡물이 장에 이르기 전에 사들여 같은 장에서 머지않아 되파는 것이다. 잉글랜드는 오랫동안 이 둘을 죄로 다루었다.
4. 옮긴이 — 영국의 법령은 국왕이 왕위에 오른 뒤 몇 해째에 만들어졌는지와 그 회기의 몇째 장인지로 가리킨다. 찰스 2세는 1660년에 왕위에 올랐으므로 그 치세 12년은 1660년, 치세 15년은 1663년, 치세 22년은 1670년에 걸친다. 에드워드 6세는 1547년에,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는 1689년에 올랐다. 스미스가 「지금 국왕」이라 할 때는 1760년에 오른 조지 3세를 말하므로 그 치세 12년은 1772년, 치세 13년은 1773년에 걸친다.
5. 옮긴이 — 『곡물 거래론』은 찰스 스미스(1713~1777)가 1758년부터 낸 글 모음이다. 애덤 스미스와는 다른 사람이다.
6. 옮긴이 — 보조세는 의회가 국왕에게 걷도록 허락한 관세를 말한다. 1660년의 옛 보조세는 관세 평가표에 매긴 값의 100분의 5였고, 그 뒤 새 보조세와 3분의 1 보조세, 3분의 2 보조세, 1747년 보조세가 잇달아 그 위에 얹혔다.
7. 옮긴이 — 명예혁명은 1688년에 제임스 2세가 물러나고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가 왕위에 오른 일이다. 곡물 수출 장려금은 그 이듬해의 법으로 자리 잡았다.
8. 옮긴이 — 자물쇠 둘을 국왕 쪽과 수입업자 쪽이 따로 채워, 양쪽이 함께 있어야 창고를 열 수 있게 한 방식이다. 관세를 물지 않은 물건을 다시 내보낼 때까지 맡아 두는 데 쓰였다.
9. 옮긴이 — 솔론은 기원전 6세기 초 아테네의 입법자다. 제 법이 가장 좋은 법이냐는 물음에 아테네 사람들이 받아들일 만한 가장 좋은 법이라고 답했다고 전한다.
10. 옮긴이 — 메수엔 조약은 1703년에 영국 사절 존 메수엔(1650~1706)이 리스본에서 맺은 통상 조약이다. 포르투갈은 영국 모직물을 받아들이고 영국은 포르투갈 포도주에 프랑스 포도주보다 3분의 1 낮은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이 조약 뒤로 영국에서는 포르투갈 포도주가 프랑스 포도주를 밀어냈다.
11. 옮긴이 — 주세페 바레티(1719~1789)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런던에서 글을 썼고, 1770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다닌 기록을 냈다.
12. 옮긴이 — 지난 전쟁은 1756년부터 1763년까지의 7년 전쟁이다. 1762년에 프랑스와 스페인이 포르투갈에 이 요구를 했고, 포르투갈이 거절하자 스페인 군대가 쳐들어왔다.
13. 옮긴이 — 기니는 21실링에 해당하는 금화다. 조폐국 가격은 조폐국이 금덩이를 받아들일 때 매기는 값으로, 이때 금 1파운드(무게)에 46파운드 14실링 6펜스였다. 스미스가 말하는 지난번 개조는 1774년까지 이어진 금화 재주조로, 닳은 금화를 거두어 다시 찍은 일이다.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의 아내로, 남편을 기다리며 낮에 짠 베를 밤에 풀어 구혼자들을 물렸다.
14. 옮긴이 — 프랑스 화폐는 리브르·수·드니에다. 1리브르는 20수이고 1수는 12드니에다. 루이도르는 금화이고, 마르크는 금은을 다는 무게 단위로 파리 온스 8온스다. 캐럿은 금의 순도를 24로 나누어 나타낸 것이므로 24캐럿이 순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