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관세 환급에 대하여
4장 관세 환급에 대하여
상인과 제조업자는 국내 시장의 독점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제 물건이 나라 밖에서도 될 수 있는 대로 널리 팔리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들의 나라는 외국에 재판권이 없으므로 거기서 그들에게 무슨 독점을 마련해 주기는 좀처럼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흔히 수출을 북돋우는 몇 가지 조치를 청원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런 북돋움 가운데 이른바 관세 환급이 가장 사리에 닿아 보인다. 국내 산업에 매겨진 소비세나 국내 관세의 전부 또는 일부를 상인이 수출할 때 되돌려 받도록 허락하는 것은, 관세가 아예 매겨지지 않았을 때 나갔을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물건을 내보내게 하는 일이 결코 없다. 그런 북돋움은 나라의 자본 가운데 어느 한 용도로 저절로 갈 몫보다 더 큰 몫을 그 용도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관세가 그 몫의 일부를 다른 용도로 몰아내는 것을 막을 뿐이다. 그것은 사회의 온갖 용도 사이에 저절로 잡히는 그 균형을 뒤엎는 것이 아니라, 관세가 그 균형을 뒤엎지 못하게 막는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지켜 두는 것이 이로운 것, 곧 사회 안에서 노동이 저절로 갈라지고 나뉘어 있는 그 모양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지켜 준다.
들여온 외국 물건을 다시 내보낼 때 주는 관세 환급도 같다. 영국에서 이 환급은 대개 수입 관세의 가장 큰 부분에 이른다. 이제 구보조세1라 불리는 것을 매긴 의회 법에 붙은 규정 가운데 둘째 규정으로, 영국 상인이든 외국인 상인이든 모두 수출할 때 그 관세의 절반을 되돌려 받도록 허락되었다. 영국 상인은 열두 달 안에 내보내는 경우에, 외국인 상인은 아홉 달 안에 내보내는 경우에 그러했다. 포도주와 건포도와 짠 명주만이 이 규정에 들지 않았는데, 그것들에는 더 이롭게 매겨진 다른 허용액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의회 법으로 매겨진 관세가 그때에는 외국 물건을 들여올 때 매기는 관세의 전부였다. 이 환급과 그 밖의 모든 환급을 청구할 수 있는 기한은 그 뒤에 조지 1세 치세 7년의 법 제21장 제10절로2 3년으로 늘어났다.
구보조세 뒤에 매겨진 관세는 그 대부분이 수출할 때 온전히 되돌려진다. 그러나 이 일반 규정에는 예외가 아주 많아서, 관세 환급을 둘러싼 법리는 처음 세워졌을 때보다 훨씬 덜 단순한 일이 되어 버렸다.
어떤 외국 물건은 들여오는 양이 국내 소비에 필요한 것을 크게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였으므로, 그것을 내보낼 때에는 구보조세의 절반조차 남기지 않고 관세 전부를 되돌려 준다. 북아메리카 식민지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우리는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담배를 독점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여온 것은 9만 6천 호그스헤드3쯤이었고 국내 소비는 1만 4천을 넘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남은 것을 털어 내기 위해 꼭 필요했던 그 큰 수출을 쉽게 하려고, 3년 안에 내보내기만 하면 관세 전부를 되돌려 주었다.
서인도 여러 섬에서 나는 설탕은 아직도, 아주 다는 아니지만 거의 우리가 독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설탕을 한 해 안에 내보내면 수입 관세가 모두 되돌려지고, 3년 안에 내보내면 구보조세의 절반을 뺀 관세가 모두 되돌려지는데, 그 절반은 거의 모든 물건을 내보낼 때 여전히 남겨 둔다. 설탕을 들여오는 양이 국내 소비에 필요한 것을 웬만큼 넘어서기는 하지만, 그 넘치는 양은 담배에서 그러했던 것에 비하면 대단하지 않다.
어떤 물건은 우리 제조업자들이 유난히 시새우는 대상이어서 국내 소비를 위해 들여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렇더라도 일정한 관세를 물면 들여와 수출용으로 창고에 넣어 둘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내보낼 때 이 관세는 한 푼도 되돌려지지 않는다. 우리 제조업자들은 이렇게 묶어 둔 수입조차 북돋워지는 것을 꺼리는 듯하고, 그 물건의 일부가 창고에서 몰래 빠져나와 자기들 물건과 겨루게 될까 두려워한다. 짠 명주, 프랑스산 캠브릭과 론, 그림 놓거나 무늬 찍거나 물들인 캘리코 따위를 우리가 들여올 수 있는 것은 이런 규정 아래에서뿐이다.
우리는 프랑스 물건을 실어 나르는 일조차 꺼려서, 우리가 원수로 여기는 자들이 우리 손을 빌려 무슨 이윤을 얻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우리 이윤을 스스로 버리는 편을 고른다. 프랑스 물건을 내보낼 때에는 구보조세의 절반뿐 아니라 둘째 25퍼센트 관세까지 남겨 둔다.
구보조세에 붙은 규정 가운데 넷째 규정으로 모든 포도주를 내보낼 때 허락된 관세 환급은, 그때 그 포도주를 들여올 때 물던 관세의 절반보다 훨씬 많았다. 그때 입법부는 포도주 중계 무역에 여느 것보다 조금 더한 북돋움을 주려 했던 듯하다. 구보조세와 같은 때에 또는 그 뒤에 매겨진 다른 관세들, 곧 이른바 추가 관세, 신보조세, 3분의 1 보조세와 3분의 2 보조세, 1692년 부과세, 포도주 톤세도 수출할 때 온전히 되돌려 받도록 허락되었다. 그러나 추가 관세와 1692년 부과세를 뺀 이 관세들은 모두 들여올 때 현금으로 내야 했으므로, 그만큼 큰 돈에 붙는 이자가 비용이 되어 이 품목에서 남는 중계 무역을 기대하는 것은 사리에 닿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포도주 부과세라 불리는 관세의 일부만 되돌려 받도록 허락되었고, 프랑스 포도주에 매긴 톤당 25파운드4와 1745년과 1763년과 1778년에 매긴 관세는 한 푼도 되돌려 받지 못했다. 1779년과 1781년에 그 앞의 모든 관세 위에 매긴 5퍼센트 부과세 둘은 다른 모든 물건을 내보낼 때 온전히 되돌려 받도록 허락되었으므로 포도주를 내보낼 때에도 마찬가지로 허락되었다. 포도주에 따로 매긴 마지막 관세, 곧 1780년의 관세는 온전히 되돌려 받도록 허락되어 있는데, 이렇게 무거운 관세가 그토록 많이 남아 있는 판에 이런 너그러움이 포도주 한 톤을 내보내게 하는 일조차 아마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 규정들은 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를 뺀 모든 합법 수출지에 적용되었다.
무역을 북돋우기 위한 법이라 불리는 찰스 2세 치세 15년의 법 제7장은, 유럽에서 자라거나 만들어진 모든 상품을, 따라서 포도주도, 식민지에 대어 주는 독점을 영국에 주었다. 우리 북아메리카와 서인도 식민지처럼 해안이 그토록 길게 뻗은 나라에서, 우리 권위가 언제나 그토록 엉성했고 그곳 주민들이 열거되지 않은 상품을 자기들 배로 처음에는 유럽 어디로나, 그 뒤에는 피니스테레곶 남쪽의 유럽 어디로나 실어 내갈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던 곳에서, 이 독점이 크게 지켜질 수 있었으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들은 물건을 실어 내가도록 허락된 나라에서 언제라도 무슨 짐을 실어 오는 길을 찾아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유럽 포도주를 그것이 자란 곳에서 들여오는 데에는 얼마간 어려움을 겪은 듯하다. 게다가 영국에서 그것을 들여올 수도 없었는데, 거기서는 포도주에 무거운 관세가 잔뜩 얹혀 있고 그 가운데 적지 않은 몫이 수출할 때 되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데이라 포도주는 유럽 상품이 아니었으므로 아메리카와 서인도로 곧바로 들여올 수 있었는데, 그 나라들은 열거되지 않은 모든 상품에서 마데이라섬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이 아마 마데이라 포도주에 대한 그 널리 퍼진 기호를 들여놓았을 것이다. 1755년에 시작된 전쟁이 터질 때 우리 장교들은 우리 모든 식민지에 그 기호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본국으로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 포도주는 그 앞에 본국에서 그리 유행하지 않았다. 그 전쟁이 끝난 1763년에 조지 3세 치세 4년의 법 제15장 제12절로, 프랑스 포도주를 뺀 모든 포도주를 식민지로 내보낼 때 3파운드 10실링을 뺀 관세 전부를 되돌려 받도록 허락되었다. 프랑스 포도주의 거래와 소비에는 나라의 편견이 어떤 북돋움도 허락하려 하지 않았다. 이 너그러움이 주어진 때부터 북아메리카 식민지가 반란을 일으킬 때까지의 기간은 그 나라들의 관습에 이렇다 할 변화가 일어나기에는 너무 짧았을 것이다.
프랑스 포도주를 뺀 모든 포도주의 관세 환급에서 식민지를 다른 나라보다 그토록 더 두둑이 대접한 바로 그 법이, 다른 상품 대부분의 환급에서는 식민지를 훨씬 못하게 대접했다. 상품 대부분을 다른 나라로 내보낼 때에는 구보조세의 절반이 되돌려졌다. 그러나 이 법은 유럽이나 동인도에서 자라거나 만들어진 어떤 상품이든 식민지로 내보낼 때에는 포도주와 흰 캘리코와 모슬린을 빼고 그 관세를 한 푼도 되돌려 주지 말라고 정했다.
관세 환급은 아마 처음에 중계 무역을 북돋우려고 주어졌을 것이다. 배의 운임을 외국인이 돈으로 치르는 일이 흔하므로 중계 무역은 금과 은을 나라로 끌어들이기에 유난히 알맞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계 무역이 유난한 북돋움을 받을 만하지 않고 이 제도를 만든 동기가 어쩌면 넉넉히 어리석었다 해도, 제도 그 자체는 웬만큼 사리에 닿아 보인다. 그런 환급은 수입 관세가 아예 없었을 때 이 무역으로 저절로 갔을 몫보다 더 큰 몫의 나라 자본을 이 무역으로 억지로 밀어 넣지 못한다. 다만 그 관세 때문에 그 몫이 아예 밀려나는 일을 막을 뿐이다. 중계 무역은 우대를 받을 만하지는 않지만 막아서도 안 되고, 다른 모든 무역처럼 자유롭게 두어야 한다. 그것은 나라의 농업에서도 제조업에서도, 국내 무역에서도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서도 쓰일 자리를 찾지 못하는 자본에게 없어서는 안 될 밑천이다.
관세로 들어오는 세입은 그런 환급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남겨 두는 관세의 그 몫만큼 이득을 본다. 관세를 모두 남겨 두었더라면 그 관세를 물린 외국 물건은 시장이 없어 좀처럼 내보내지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들여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를 남겨 두는 그 관세는 아예 물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는 관세 환급을 넉넉히 정당화하는 듯하고, 국내 산업의 생산물에 매긴 것이든 외국 물건에 매긴 것이든 관세 전부를 수출할 때 언제나 되돌려 준다 해도 그 정당화는 여전히 넉넉하다. 이렇게 되면 소비세 세입은 조금 줄고 관세 세입은 웬만큼 더 줄겠지만, 그런 관세 때문에 늘 얼마간 흐트러지는 산업의 저절로 잡힌 균형, 곧 노동이 저절로 갈라지고 나뉘어 있는 모양은 그런 규정으로 더 가깝게 되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는 아주 남남이고 독립된 나라로 물건을 내보낼 때의 환급만 정당화하고, 우리 상인과 제조업자가 독점을 누리는 나라로 내보낼 때의 환급은 정당화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유럽 물건을 우리 아메리카 식민지로 내보낼 때 주는 환급은 그것이 없었을 때보다 더 많은 수출을 언제나 낳는 것은 아니다. 우리 상인과 제조업자가 거기서 누리는 독점 덕분에, 관세를 모두 남겨 두었더라도 어쩌면 같은 양이 흔히 거기로 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환급은 무역의 상태를 바꾸지도 못하고 무역을 어느 모로도 더 넓히지도 못한 채, 흔히 소비세와 관세 세입에 고스란히 손해가 될 수 있다. 그런 환급이 우리 식민지의 산업을 북돋우는 알맞은 수단으로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또 식민지가 나머지 모든 같은 백성이 물고 있는 세금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본국에 어디까지 이로운지는, 뒤에 식민지를 다룰 때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관세 환급이 쓸모가 있는 것은, 환급을 주고 내보내게 한 그 물건이 정말로 어느 외국으로 나가고 우리 나라로 몰래 되들어오지 않는 경우뿐이라는 것을 언제나 알아 두어야 한다. 어떤 환급, 특히 담배에 주는 환급이 이렇게 자주 악용되어 세입에도 정직한 거래자에게도 똑같이 해로운 속임수를 많이 낳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5장 장려금에 대하여
영국에서는 국내 산업의 어떤 부문이 내는 생산물에 수출 장려금을 달라는 청원이 잦고, 더러 주어지기도 한다. 그것이 있으면 우리 상인과 제조업자가 외국 시장에서 겨루는 자들만큼 싸게, 또는 그들보다 더 싸게 물건을 팔 수 있게 된다고들 내세운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양이 나가고 따라서 무역 차액이 우리 나라 쪽으로 더 기울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국내 시장에서 그랬듯이 외국 시장에서 우리 일꾼에게 독점을 줄 수 없다.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외국인에게 그들의 물건을 사라고 억지로 시킬 수도 없다. 그러니 그다음으로 좋은 수단은 물건을 사 가는 대가로 돈을 얹어 주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중상주의 체계가 무역 차액으로 나라 전체를 넉넉하게 하고 우리 모두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 주겠다고 내놓는 길이 바로 이것이다.
장려금은 그것 없이는 해 나갈 수 없는 무역 부문에만 주어야 한다고들 인정한다. 그러나 상인이 물건을 마련해 시장에 내보내는 데 들인 자본 전부를 자산의 보통 이윤과 함께 되찾아 주는 값에 팔 수 있는 무역 부문이라면 어디든 장려금 없이도 해 나갈 수 있다. 그런 부문은 장려금 없이 해 나가는 다른 모든 무역 부문과 뚜렷이 같은 자리에 있으므로 그들보다 더 장려금이 필요할 수 없다. 장려금이 필요한 무역은 오직, 상인이 제 자본을 보통 이윤과 함께 되찾아 주지 못하는 값에 물건을 팔아야 하는 무역, 또는 물건을 시장에 내보내는 데 실제로 든 것보다 적은 값에 팔아야 하는 무역뿐이다. 장려금은 이 손해를 메워 주어, 들어오는 회수보다 드는 비용이 더 크다고 여겨지는 무역, 한 번 돌 때마다 거기 들인 자본의 일부를 먹어 치우는 무역, 다른 모든 무역이 이것을 닮았다면 나라에 이내 자본이 하나도 남지 않을 만한 성질의 무역을 그가 이어 가도록, 어쩌면 시작하도록 북돋우려고 주어진다.
눈여겨볼 것은 장려금으로 해 나가는 무역만이 두 나라 사이에서 웬만큼 오랫동안, 그 가운데 한쪽이 언제나 그리고 늘 손해를 보거나 물건을 시장에 내보내는 데 실제로 든 것보다 적은 값에 파는 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장려금이 상인에게 그 물건 값에서 볼 손해를 메워 주지 않는다면, 그는 제 이익을 생각해서라도 이내 제 자산을 다른 데 쓰거나, 물건 값이 그것을 시장에 내보내는 데 들인 자본을 보통 이윤과 함께 되찾아 주는 무역을 찾아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려금의 효과는 중상주의 체계의 다른 모든 수단이 그렇듯이, 한 나라의 무역을 그것이 저절로 흘러갈 물길보다 훨씬 덜 이로운 물길로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일 수밖에 없다.
『곡물 거래론』을 쓴 재주 있고 잘 아는 지은이5는, 곡물 수출 장려금이 처음 세워진 뒤로 내보낸 곡물의 값을 웬만큼 낮추어 매기고 들여온 곡물의 값을 아주 높이 매겨 보아도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넘어서는 액수가 그 기간에 치른 장려금 전부를 훨씬 넘는다는 것을 아주 뚜렷이 보여 주었다. 그는 이것이 중상주의 체계의 참된 원리로 볼 때 이렇게 억지로 떠받친 곡물 거래가 나라에 이롭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여긴다. 수출의 가치가 수입의 가치를 넘어서는 액수가, 그것을 내보내려고 공공이 치른 별난 비용 전부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 별난 비용, 곧 장려금이 곡물을 내보내는 데 사회가 실제로 치르는 비용의 가장 작은 부분임을 생각하지 못한다. 농부가 그 곡물을 길러 내는 데 들인 자본도 셈에 넣어야 한다. 곡물이 외국 시장에서 팔릴 때 그 값이 장려금뿐 아니라 이 자본까지 자산의 보통 이윤과 함께 되찾아 주지 않는다면, 사회는 그 차액만큼 손해를 보는 쪽이고 나라의 자산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런데 장려금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 바로 그 이유가, 값이 이 일을 하기에 모자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장려금이 세워진 뒤로 곡물의 평균 값이 웬만큼 떨어졌다고들 말해 왔다. 곡물의 평균 값이 지난 세기 끝머리에 다소 떨어지기 시작해 이번 세기의 첫 64년 동안 계속 떨어졌다는 것은 내가 이미 밝혀 보려 했다. 그러나 이 일이, 내가 믿는 대로 참이라고 해도, 장려금이 있었음에도 일어난 것일 수밖에 없고 장려금 때문에 일어난 것일 수는 없다. 그것은 잉글랜드에서만이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일어났는데, 프랑스에서는 장려금이 없었을 뿐 아니라 1764년까지 곡물 수출이 전반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곡물의 평균 값이 이렇게 차츰 떨어진 것은 결국 이 규정 때문도 저 규정 때문도 아니고, 이 책 1편에서 내가 밝혀 보려 했듯이 이번 세기에 유럽의 전반적인 시장에서 일어난 은의 실질 가치의 그 차츰차츰 눈에 띄지 않게 오르는 움직임 때문일 것이다. 장려금이 곡물 값을 낮추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있을 수 없어 보인다.
이미 말했듯이 넉넉한 해에는 장려금이 유별난 수출을 일으켜 국내 시장의 곡물 값을 저절로 떨어질 자리보다 반드시 높이 떠받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제도가 내놓고 밝힌 목적이었다. 모자란 해에는 장려금이 자주 멈춰지기는 하지만, 넉넉한 해에 그것이 일으키는 그 큰 수출이 한 해의 넉넉함으로 다른 해의 모자람을 덜어 주는 일을 자주 얼마간 막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넉넉한 해에든 모자란 해에든 장려금은 국내 시장에서 곡물의 화폐 값을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얼마간 높이 올리는 쪽으로 반드시 기운다.
갈이의 지금 상태에서 장려금이 반드시 이렇게 기운다는 것은 사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다투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갈이를 북돋우는 쪽으로 기울며 그 길이 둘이라고 여긴 사람이 많았다. 첫째로 농부의 곡물에 더 넓은 외국 시장을 열어 주므로 그 상품에 대한 수요를, 따라서 그 생산을 늘리는 쪽으로 기운다고 그들은 여긴다. 둘째로 갈이의 지금 상태에서 그가 바랄 수 있는 것보다 나은 값을 그에게 보장해 주므로 갈이를 북돋우는 쪽으로 기운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 겹친 북돋움이 여러 해에 걸쳐 곡물 생산을 그만큼 늘려 놓아, 그 기간 끝에 갈이가 어떤 상태에 있게 되든 그 상태에서 장려금이 값을 올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국내 시장의 값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그들은 여긴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장려금이 외국 시장을 얼마만큼 넓힐 수 있다 해도 그것은 해마다 반드시 고스란히 국내 시장을 희생시켜 이루어진다. 장려금 덕분에 나가는, 그리고 장려금이 없었다면 나가지 않았을 곡물은 한 부셸 한 부셸이 국내 시장에 남아 소비를 늘리고 그 상품의 값을 낮추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것은 곡물 장려금이 다른 모든 수출 장려금과 마찬가지로 백성에게 두 가지 다른 세금을 물린다는 점이다. 첫째는 장려금을 치르기 위해 그들이 내야 하는 세금이고, 둘째는 국내 시장에서 그 상품 값이 올라 생기는 세금인데, 백성 전체가 곡물을 사는 사람이므로 이 상품에서는 이 세금을 백성 전체가 물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상품에서는 이 둘째 세금이 두 가지 가운데 훨씬 무겁다. 해를 서로 견주어 보아, 밀 1쿼터6를 내보낼 때 주는 5실링의 장려금이 국내 시장에서 그 상품의 값을 그 작물의 지금 상태에서 저절로 되었을 것보다 1부셸에 6펜스, 곧 1쿼터에 4실링만 올린다고 해 보자. 이 아주 너그러운 가정 위에서도 백성 대다수는 내보내는 밀 1쿼터마다 5실링의 장려금을 치르는 그 세금을 내는 데 더해, 자기들이 먹는 1쿼터마다 4실링의 또 다른 세금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곡물 거래론』을 쓴 그 잘 아는 지은이에 따르면 내보내는 곡물이 국내에서 먹는 곡물에 대해 갖는 평균 비율은 31에 1을 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이 첫째 세금을 내는 데 5실링을 낼 때마다 둘째 세금을 내는 데 6파운드 4실링을 내야 한다. 목숨을 잇는 첫째 필수품에 이토록 무거운 세금을 물리면 노동하는 빈민의 생계를 줄이거나, 그들이 생계를 얻는 데 드는 돈의 값이 오른 만큼 그들이 돈으로 받는 임금을 얼마간 올려 놓게 될 수밖에 없다. 앞쪽으로 작용하는 만큼 그것은 노동하는 빈민이 자식을 가르치고 길러 낼 힘을 줄이고, 그만큼 나라의 인구를 억누르는 쪽으로 기운다. 뒤쪽으로 작용하는 만큼 그것은 빈민을 부리는 이들이 그러지 않았을 때만큼 많은 수를 부릴 힘을 줄이고, 그만큼 나라의 산업을 억누르는 쪽으로 기운다. 그러므로 장려금이 일으키는 그 유별난 곡물 수출은 해마다 외국 시장과 소비를 넓히는 만큼 그대로 국내 시장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나라의 인구와 산업을 억눌러 마침내는 국내 시장이 차츰 넓어지는 것을 움츠러들게 하고 막는 쪽으로 기울며, 그리하여 길게 보면 곡물의 시장과 소비 전체를 늘리기보다 줄이는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곡물의 화폐 값이 이렇게 올라가면 그 상품이 농부에게 더 남는 것이 되므로 반드시 그 생산을 북돋울 것이라고들 여겨 왔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장려금의 효과가 곡물의 실질 가격을 올리는 것이거나, 같은 양의 곡물로 농부가 그 이웃에서 노동자들이 흔히 부양되는 그대로, 곧 넉넉하게든 웬만하게든 빠듯하게든 더 많은 수의 노동자를 부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장려금도, 사람이 세운 그 어떤 제도도 그런 효과를 낼 수 없음은 뚜렷하다. 장려금이 웬만큼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곡물의 실질 가격이 아니라 명목 가격이다. 그리고 그 제도가 백성 전체에게 물리는 세금이 그것을 내는 사람들에게는 몹시 무거울 수 있어도, 그것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이로움이 아주 적다.
장려금의 참된 효과는 곡물의 실질 가치를 올리는 것이라기보다 은의 실질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 곧 같은 양의 은이 곡물만 아니라 국내에서 만든 다른 모든 상품과도 더 적은 양으로 바뀌게 하는 것이다. 곡물의 화폐 값이 국내에서 만든 다른 모든 상품의 화폐 값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동의 화폐 값을 다스린다. 노동의 화폐 값은 노동자가 자기와 제 식구를 먹여 살릴 만한 양의 곡물을 살 수 있게 하는 값이어야 하고, 그 살림이 넉넉하냐 웬만하냐 빠듯하냐는 사회가 나아가고 있느냐 멈춰 있느냐 물러나고 있느냐에 따라 그를 부리는 이들이 그를 어떻게 먹여 살리게 되느냐로 정해진다.
그것은 땅에서 나는 원생산물의 다른 모든 부분의 화폐 값을 다스린다. 그 값은 개량의 어느 시기에나 곡물 값에 대해 일정한 비율을 지켜야 하는데, 이 비율은 시기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그것은 풀과 건초, 푸줏간 고기, 말, 말을 먹이는 데 드는 것의 화폐 값을 다스리고, 따라서 땅으로 실어 나르는 값을, 곧 나라 안 상업의 대부분을 다스린다.
땅에서 나는 원생산물의 다른 모든 부분의 화폐 값을 다스림으로써 그것은 거의 모든 제조업의 재료 값을 다스린다. 노동의 화폐 값을 다스림으로써 제조하는 솜씨와 근면의 값도 거기에 따라 정해진다. 그리고 이 둘을 다 다스림으로써 그것은 다 만들어진 제조품의 값을 다스린다. 노동의 화폐 값, 그리고 땅에서 나거나 노동에서 나는 모든 것의 화폐 값은 곡물의 화폐 값에 비례해 오르거나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장려금 덕분에 농부가 제 곡물을 1부셸에 3실링 6펜스 대신 4실링에 팔 수 있게 되고, 제 생산물의 화폐 값이 이렇게 오른 만큼에 비례해 지주에게 화폐로 매긴 지대를 더 내게 된다 해도, 곡물 값이 이렇게 오른 결과로 4실링으로 살 수 있는 국내산 물건이 그 앞에 3실링 6펜스로 살 수 있던 것보다 많지 않다면, 농부의 형편도 지주의 형편도 이 변화로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농부는 훨씬 잘 갈 수 있게 되지 않을 것이고 지주는 훨씬 잘 살 수 있게 되지 않을 것이다. 외국 상품을 살 때에는 곡물 값이 이렇게 오른 것이 그들에게 얼마쯤 이로울 수 있다. 국내산 상품을 살 때에는 전혀 이롭지 않다. 그런데 농부의 비용 거의 전부와 지주의 비용 가운데서도 훨씬 큰 부분이 국내산 상품에 들어간다.
광산이 기름진 데서 나오는 은 가치의 떨어짐, 곧 상업 세계의 대부분에 똑같이 또는 아주 비슷하게 작용하는 그 떨어짐은 어느 한 나라에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에 따라 모든 화폐 값이 오르더라도 그것을 받는 사람들이 실제로 더 넉넉해지지는 않지만 실제로 더 가난해지지도 않는다. 은그릇 한 벌이 정말로 싸지고, 다른 모든 것은 그 앞과 똑같은 실질 가치를 그대로 지킨다.
그러나 어느 한 나라의 유별난 처지나 그 나라의 정치 제도에서 나와 그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은 가치의 떨어짐은 아주 크게 상관이 있는 일이어서, 누구를 실제로 더 넉넉하게 하기는커녕 모두를 실제로 더 가난하게 하는 쪽으로 기운다. 이 경우 그 나라에만 일어나는 모든 상품의 화폐 값 오름은 그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산업을 얼마간 주춤하게 하고, 외국이 거의 온갖 물건을 그 나라 일꾼이 할 수 있는 것보다 적은 양의 은으로 내놓아 외국 시장에서만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까지 그들보다 싸게 파는 것을 할 수 있게 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광산의 임자로서 유럽의 다른 모든 나라에 금과 은을 나누어 주는 유별난 처지에 있다. 그러므로 이 금속들은 유럽의 다른 어느 곳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얼마간 더 싸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차이는 운임과 보험료를 더한 것을 넘지 않아야 한다. 이 금속들은 값이 아주 크고 부피는 작으므로 그 운임이 대단할 것이 없고 그 보험료는 같은 가치의 다른 물건과 같다. 그러므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정치 제도로 제 유별난 처지의 불리함을 더 키우지 않았다면 그 처지에서 볼 손해는 아주 적었을 것이다.
스페인은 금과 은의 수출에 세금을 물려서, 포르투갈은 그것을 금지해서, 그 수출에 밀무역 비용을 얹어 놓고, 그 비용 전부만큼 다른 나라에서 이 금속들의 가치를 제 나라에서보다 그만큼 더 높이 올려 놓는다. 물줄기를 막아 보를 쌓아 두면 보가 차는 대로 보가 아예 없었을 때만큼 많은 물이 보 마루를 넘어 흘러야 한다. 수출을 금지한다고 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금과 은을 자기들이 화폐와 은그릇과 금박과 그 밖의 금은붙이 장식에 쓸 수 있는 양보다, 곧 자기들 땅과 노동의 해마다 생산물이 쓰도록 허락하는 양보다 더 많이 붙들어 둘 수는 없다. 그 양을 얻으면 보가 찬 것이니 그 뒤에 흘러드는 물줄기는 모두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금과 은이 해마다 나가는 양은, 모든 보고에 따르면 이런 제약이 있음에도 해마다 들어오는 양 전부에 아주 가깝다. 그러나 물이 보 마루 뒤에서 그 앞보다 반드시 더 깊듯이, 이 제약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붙들어 두는 금과 은의 양은 그 땅과 노동의 해마다 생산물에 대한 비율로 볼 때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클 수밖에 없다. 보 마루가 높고 튼튼할수록 그 뒤와 앞의 물 깊이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세금이 무거울수록, 금지를 지키게 하는 벌이 무거울수록, 법이 집행되는지 살피는 행정이 촘촘하고 엄할수록,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땅과 노동의 해마다 생산물에 대한 금과 은의 비율과 다른 나라의 그 비율 사이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차이가 아주 크다고 하며, 다른 나라에서라면 그런 호사에 어울리거나 걸맞다고 여겨질 것이 아무것도 없는 집에 은그릇이 흔하게 널려 있는 것을 거기서 자주 본다고 한다. 금과 은이 싸다는 것, 곧 같은 말로 모든 상품이 비싸다는 것은 귀금속이 이렇게 남아도는 데서 반드시 나오는 결과인데, 이것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농업과 제조업을 다 주춤하게 하고, 외국이 여러 가지 원생산물과 거의 온갖 제조품을 그 나라 사람들이 집에서 길러 내거나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보다 적은 양의 금과 은으로 그들에게 대어 줄 수 있게 한다. 세금과 금지는 두 가지 다른 길로 작용한다. 그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귀금속의 가치를 몹시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지 않았으면 다른 나라로 넘어갔을 얼마만큼의 금속을 거기 붙들어 둠으로써 다른 나라에서 그 가치를 그러지 않았을 것보다 얼마간 높게 떠받치고, 그리하여 그 나라들에게 스페인과 포르투갈과의 거래에서 겹친 이로움을 준다. 수문을 열어 보라. 그러면 곧 보 마루 위의 물이 줄고 아래의 물이 늘어 두 곳이 이내 같은 높이에 이를 것이다. 세금과 금지를 없애 보라. 그러면 금과 은의 양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웬만큼 줄고 다른 나라에서 얼마간 늘 것이며, 이 금속들의 가치, 곧 땅과 노동의 해마다 생산물에 대한 그 비율은 모든 나라에서 이내 같은 높이에 또는 아주 가까운 높이에 이를 것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제 금과 은을 이렇게 내보내어 볼 손해는 고스란히 명목에 그치는 헛것일 것이다. 그들 물건의, 그리고 그들 땅과 노동의 해마다 생산물의 명목 가치는 떨어져 그 앞보다 적은 양의 은으로 나타내어지겠지만, 그 실질 가치는 그 앞과 같아서 같은 양의 노동을 먹여 살리고 부리고 쓰기에 여전히 넉넉하다. 그들 물건의 명목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남아 있는 금과 은의 실질 가치가 올라, 그 앞에 더 많은 양이 하던 상업과 돌림의 모든 구실을 더 적은 양이 해낼 것이다. 나라 밖으로 나가는 금과 은은 헛되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가치의 이런저런 물건을 실어 올 것이다. 그 물건도 다 놀고먹는 사람들이 제 소비에 아무것도 되돌려 주지 않고 써 없앨 한갓 사치와 씀씀이의 물건만은 아니리라. 놀고먹는 사람들의 실질 부와 수입이 이 유별난 금은 수출로 늘지 않을 터이니 그들의 소비도 그것으로 크게 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물건은 아마 그 대부분이, 그리고 어느 부분은 반드시, 부지런한 사람들을 부리고 먹여 살리는 데 드는 재료와 연장과 식료품일 것이고,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써 없앤 것의 값어치 전부를 이윤과 함께 되살려 낼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의 죽은 자산 가운데 일부가 살아 움직이는 자산으로 바뀌어, 그 앞에 부려지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산업을 움직이게 하리라. 그들 땅과 노동의 해마다 생산물은 당장 조금 늘고 몇 해 안에 아마 크게 늘 것이니, 그들 산업이 지금 짓눌려 있는 가장 무거운 짐 가운데 하나에서 이렇게 풀려나기 때문이다.
곡물 수출 장려금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 어이없는 정책과 똑같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갈이가 실제로 어떤 상태에 있든 그것은 국내 시장에서 우리 곡물을 그 상태에서 저절로 되었을 것보다 얼마간 비싸게 하고 외국 시장에서는 얼마간 싸게 하며, 곡물의 평균 화폐 값이 다른 모든 상품의 화폐 값을 얼마간 다스리므로 한쪽에서는 은의 가치를 웬만큼 낮추고 다른 쪽에서는 조금 올리는 쪽으로 기운다. 그것은 외국인, 특히 네덜란드인이 우리 곡물을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싸게 먹을 수 있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러는 같은 자리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보다도 싸게 먹을 수 있게 하는데, 이는 매슈 데커7라는 훌륭한 권위가 우리에게 일러 주는 바다. 그것은 우리 일꾼이 제 물건을 그러지 않았을 때만큼 적은 양의 은으로 내놓지 못하게 하고, 네덜란드인은 제 물건을 더 적은 양으로 내놓을 수 있게 한다. 그것은 어느 시장에서나 우리 제조품을 얼마간 비싸게 하고 그들 제조품을 얼마간 싸게 하는 쪽으로 기울며, 따라서 그들 산업에 우리 산업보다 겹친 이로움을 주는 쪽으로 기운다.
장려금은 국내 시장에서 우리 곡물의 실질 가격이 아니라 명목 가격을 올리므로, 또 얼마만큼의 곡물이 먹여 살리고 부릴 수 있는 노동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그 곡물이 바뀔 은의 양만 늘리므로, 우리 농부에게도 시골 지주에게도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우리 제조업을 주춤하게 한다. 그것이 양쪽 주머니에 돈을 조금 더 넣어 주기는 하고, 이것이 그들에게 아주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그들 대부분을 설득하기는 어쩌면 얼마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돈이 살 수 있는 노동과 식료품과 온갖 국내산 상품의 양으로 볼 때 그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그 양이 늘어나는 데 그친다면, 그 도움은 명목에 그치는 헛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라 전체에서 장려금이 정말로 도움이 되었거나 될 수 있었던 사람은 어쩌면 한 무리뿐이리라. 곡물 상인, 곧 곡물을 내보내고 들여오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넉넉한 해에는 장려금이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많은 수출을 반드시 일으켰고, 한 해의 넉넉함으로 다른 해의 모자람을 덜어 주는 일을 막아 모자란 해에는 그러지 않았을 때 필요했을 것보다 많은 수입을 일으켰다. 그것은 두 경우 다 곡물 상인의 일거리를 늘렸다. 그리고 모자란 해에는 그가 더 많은 양을 들여올 수 있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해의 넉넉함으로 다른 해의 모자람을 덜어 주는 일이 얼마간 막히지 않았더라면 얻었을 것보다 나은 값에, 따라서 더 큰 이윤과 함께 팔 수 있게 했다. 그러므로 장려금을 이어 가거나 되살리자는 열의가 가장 뜨거운 것을 내가 본 것은 바로 이 무리에서다.
우리 시골 지주들이 외국 곡물을 들여오는 데8 높은 관세를 물렸을 때, 곧 웬만큼 넉넉한 때에는 금지에 맞먹는 그 관세를 물리고 장려금을 세웠을 때, 그들은 우리 제조업자들의 행동을 본뜬 듯하다. 한 제도로 그들은 국내 시장의 독점을 제 손에 넣었고, 다른 제도로 그 시장이 제 상품으로 넘치는 일이 결코 없도록 막으려 했다. 두 제도로 그들은 그 실질 가치를 올리려 했는데, 우리 제조업자들이 그와 같은 제도로 여러 가지 제조품의 실질 가치를 올린 것과 똑같았다. 그들은 어쩌면 자연이 곡물과 거의 다른 모든 물건 사이에 세워 둔 그 크고 본질적인 차이에 마음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 시장의 독점으로든 수출 장려금으로든 우리 모직이나 아마 제조업자가 제 물건을 그러지 않았을 때 받을 수 있는 것보다 얼마간 나은 값에 팔 수 있게 해 주면, 당신은 그 물건의 명목 가격만 아니라 실질 가격까지 올리는 것이다. 당신은 그 물건을 더 많은 양의 노동과 생계에 맞먹게 만든다. 당신은 그 제조업자들의 명목 이윤만 아니라 실질 이윤, 실질 부와 실질 수입까지 늘리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들이 스스로 더 잘 살거나 그 제조업에 더 많은 양의 노동을 부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당신은 정말로 그 제조업을 북돋우고, 나라의 산업 가운데 저절로 거기로 갈 것보다 많은 양을 거기로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제도로 당신이 곡물의 명목 값, 곧 화폐 값을 올릴 때에는 그 실질 가치를 올리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우리 농부나 시골 지주의 실질 부, 실질 수입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곡물을 기르는 일을 북돋우는 것이 아닌데, 그들이 곡물을 길러 내는 데 더 많은 노동자를 먹여 살리고 부릴 수 있게 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의 본성이 곡물에 실질 가치를 찍어 두었고, 그것은 한갓 화폐 값을 바꾸는 것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어떤 수출 장려금도, 어떤 국내 시장 독점도 그 가치를 올릴 수 없다. 가장 자유로운 경쟁도 그것을 낮출 수 없다. 세상 전체로 보면 그 가치는 곡물이 먹여 살릴 수 있는 노동의 양과 같고, 각 고장에서는 그 고장에서 노동이 흔히 부양되는 대로 넉넉하게든 웬만하게든 빠듯하게든 먹여 살릴 수 있는 노동의 양과 같다. 모직이나 아마 천은 다른 모든 상품의 실질 가치를 마지막으로 재고 정하는 그 다스리는 상품이 아니다. 곡물이 그것이다. 다른 모든 상품의 실질 가치는 그 평균 화폐 값이 곡물의 평균 화폐 값에 대해 갖는 비율로 마지막에 재어지고 정해진다. 곡물의 실질 가치는 한 세기와 다른 세기 사이에 더러 일어나는 그 평균 화폐 값의 변동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그 변동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은의 실질 가치다.
국내산 상품을 내보낼 때 주는 장려금은 첫째로 중상주의 체계의 온갖 수단에 다 할 수 있는 그 일반적인 반론에 걸린다. 곧 나라의 산업 가운데 일부를 저절로 흘러갈 물길보다 덜 이로운 물길로 억지로 밀어 넣는다는 반론이다. 둘째로 그것은 산업을 덜 이로운 물길로 밀어 넣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해로운 물길로 밀어 넣는다는 그 유별난 반론에 걸린다. 장려금이 없으면 해 나갈 수 없는 무역은 반드시 손해를 보는 무역이기 때문이다. 곡물 수출 장려금은 여기에 더해, 그것이 북돋우려 한 바로 그 상품을 길러 내는 일을 어느 모로도 밀어 주지 못한다는 반론에 걸린다. 그러므로 우리 시골 지주들이 장려금을 세우자고 요구했을 때, 그들은 우리 상인과 제조업자를 본떠 움직였으면서도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일을 흔히 이끄는 그 온전한 제 이익 파악은 하지 못했다. 그들은 공공의 세입에 아주 큰 비용을 지웠다. 그들은 백성 전체에게 아주 무거운 세금을 물렸다. 그러나 그들은 제 상품의 실질 가치를 이렇다 할 만큼 늘리지 못했다. 그리고 은의 실질 가치를 얼마간 낮춤으로써 나라의 전반적인 산업을 얼마간 주춤하게 했고, 나라의 전반적인 산업에 반드시 매여 있는 제 땅의 개량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는커녕 얼마간 뒤로 끌었다.
어떤 상품의 생산을 북돋우려면 수출에 주는 장려금보다 생산에 주는 장려금이 더 곧바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게다가 그것은 백성에게 세금을 하나만, 곧 장려금을 치르기 위해 내야 하는 세금만 물릴 것이다. 그것은 국내 시장에서 그 상품 값을 올리기보다 낮추는 쪽으로 기울 것이고, 그리하여 백성에게 둘째 세금을 물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첫째 세금에 낸 것을 적어도 일부는 되돌려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생산에 주는 장려금은 아주 드물게 주어졌다. 상업 체계가 세워 놓은 편견은 나라의 부가 생산보다 수출에서 더 곧바로 나온다고 우리가 믿게 가르쳤다. 그래서 수출이 돈을 나라로 끌어들이는 더 곧바른 길이라 하여 더 많은 은혜를 받았다. 또 생산에 주는 장려금이 수출에 주는 것보다 속임수에 더 잘 걸린다는 것이 경험으로 드러났다고도 했다. 이것이 어디까지 참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수출 장려금이 온갖 속임수에 악용되어 왔다는 것은 아주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수단을 지어낸 그 큰 지은이들인 상인과 제조업자에게는 국내 시장이 제 물건으로 넘치는 것이 이익이 아니고, 생산에 주는 장려금은 더러 그런 일을 일으킬 수 있다. 수출 장려금은 그들이 남는 몫을 나라 밖으로 보내고 국내 시장에 남은 것의 값을 떠받칠 수 있게 하여 이런 일을 톡톡히 막아 준다. 그래서 중상주의 체계의 온갖 수단 가운데 그들이 가장 아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어떤 물건을 만드는 여러 사업가가 자기들끼리 몰래 어울려 제 주머니에서 돈을 내어, 자기들이 다루는 물건의 얼마만큼을 내보낼 때 장려금을 주기로 한 일을 알고 있다. 이 수단은 어찌나 잘 들어맞았던지, 생산이 웬만큼 늘었음에도 국내 시장에서 그들 물건 값이 두 배가 넘게 올랐다. 곡물 장려금이 그 상품의 화폐 값을 낮추었다면 그 작용은 놀랍도록 달랐던 셈이다.
그렇더라도 생산에 주는 장려금과 비슷한 것이 몇몇 자리에서 주어졌다. 흰청어잡이와 고래잡이에 준 톤수 장려금9을 어쩌면 얼마간 이런 성질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국내 시장에서 그 물건을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싸게 만드는 쪽으로 곧바로 기운다고 볼 만하다. 다른 점에서는 그 효과가 수출 장려금의 효과와 같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있기에 나라 자본의 일부가, 그 값이 자산의 보통 이윤과 함께 든 비용을 되찾아 주지 못하는 물건을 시장에 내오는 데 쓰인다.
그러나 이 어업들에 준 톤수 장려금이 나라의 풍요에 이바지하지 않더라도, 뱃사람과 배의 수를 늘려 나라의 방어에 이바지한다고 어쩌면 여길 수 있다. 이런 장려금으로 그 일을 더러 할 수 있고, 상비 육군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큰 상비 해군을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다고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좋은 말이 있음에도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하면 나는 이 장려금 가운데 적어도 하나를 줄 때 입법부가 아주 심하게 속아 넘어갔다고 믿게 된다.
첫째, 청어잡이 버스선10 장려금은 너무 큰 듯하다.
1771년 겨울 어기가 시작될 때부터 1781년 겨울 어기가 끝날 때까지 청어잡이 버스선 어업에 준 톤수 장려금은 톤당 30실링이었다. 이 열한 해 동안 스코틀랜드의 청어잡이 버스선 어업이 잡은 배럴 수는 모두 378,347에 이르렀다. 바다에서 잡아 절인 청어를 바닷절임 청어라 부른다11. 그것을 이른바 상품 청어로 만들려면 소금을 더 넣어 다시 담아야 하는데, 이때 바닷절임 청어 3배럴이 흔히 상품 청어 2배럴로 다시 담긴다고 셈한다. 그러므로 이 셈에 따르면 이 열한 해 동안 잡은 상품 청어의 배럴 수는 252,231¼에 이를 뿐이다. 이 열한 해 동안 치른 톤수 장려금은 155,463파운드 11실링에 이르렀으니, 바닷절임 청어 1배럴마다 8실링 2¼펜스이고 상품 청어 1배럴마다 12실링 3¾펜스다.
이 청어를 절이는 데 쓰는 소금은 더러 스코틀랜드 소금이고 더러 외국 소금인데, 둘 다 소비세를 한 푼도 물리지 않고 생선 절이는 이들에게 내준다. 스코틀랜드 소금의 소비세는 지금 1부셸에 1실링 6펜스이고 외국 소금의 소비세는 10실링이다. 청어 1배럴에는 외국 소금 1부셸과 4분의 1부셸쯤이 든다고 여긴다. 스코틀랜드 소금은 2부셸이 평균으로 여겨진다. 청어를 수출로 신고하면 이 소비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국내 소비로 신고하면 외국 소금으로 절였든 스코틀랜드 소금으로 절였든 1배럴에 1실링만 낸다. 그것은 소금 1부셸에 물던 옛 스코틀랜드 소비세였는데, 1부셸은 낮추어 잡아 청어 1배럴을 절이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진 양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외국 소금은 생선 절이는 일 말고 다른 데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1771년 4월 5일부터 1782년 4월 5일까지 들여온 외국 소금의 양은 936,974부셸에 이르렀고 1부셸은 84파운드(무게)였다. 소금 가마에서 생선 절이는 이들에게 내준 스코틀랜드 소금의 양은 168,226에 그쳤고 1부셸은 56파운드(무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업에 주로 쓰이는 것은 외국 소금인 듯하다. 게다가 내보내는 청어 1배럴마다 2실링 8펜스의 장려금이 있고, 버스선이 잡은 청어의 3분의 2가 넘는 양이 나라 밖으로 나간다. 이 모든 것을 한데 놓아 보면, 이 열한 해 동안 스코틀랜드 소금으로 절인 버스선 청어 1배럴이 나라에 치르게 한 돈은 내보낼 때 17실링 11¾펜스이고 국내 소비로 신고할 때 14실링 3¾펜스이며, 외국 소금으로 절인 1배럴은 내보낼 때 1파운드 7실링 5¾펜스이고 국내 소비로 신고할 때 1파운드 3실링 9¾펜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좋은 상품 청어 1배럴의 값은 17실링, 18실링에서 24실링, 25실링까지 오가고 평균으로는 1기니쯤이다12. {이 편 끝에 붙인 계산표를 보라.}
둘째, 흰청어잡이에 주는 장려금은 톤수 장려금이어서 배의 적재량에 비례하고, 어업에서 부린 부지런함이나 거둔 성과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래서 배들이 고기가 아니라 장려금을 잡을 목적만으로 채비를 갖추고 나가는 일이 너무 흔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걱정한다. 장려금이 톤당 50실링이던 1759년에 스코틀랜드의 버스선 어업 전체가 들여온 것은 바닷절임 청어 4배럴뿐이었다. 그해에 바닷절임 청어 1배럴은 장려금만으로 나라에 113파운드 15실링을 치르게 했고, 상품 청어 1배럴은 159파운드 7실링 6펜스를 치르게 했다.
셋째, 흰청어잡이에 이 톤수 장려금을 준 그 고기잡이 방법, 곧 적재량 20톤에서 80톤에 이르는 버스선이나 갑판 있는 배로 하는 방법은 스코틀랜드의 처지보다 네덜란드의 처지에 더 잘 맞는 듯하고, 그 방법은 네덜란드의 관행에서 빌려 온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는 청어가 주로 모여든다고 알려진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먼 바다로 가는 뱃길에 넉넉할 만큼 물과 식료품을 실을 수 있는 갑판 있는 배로만 그 어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헤브리디스제도, 곧 서쪽 섬들과 셰틀랜드제도,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북쪽과 북서쪽 해안, 곧 청어잡이가 주로 이루어지는 그 이웃의 고장들은 어디에나 바다의 팔이 뻗어 들어와 땅속으로 웬만큼 깊이 파고들어 있는데, 그 고장 말로 그것을 시로크라 부른다. 청어가 이 바다를 찾아오는 철에 주로 모여드는 곳이 바로 이런 시로크다. 이 고기와, 내가 듣기로는 다른 여러 고기의 찾아옴도 아주 규칙 바르고 한결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코틀랜드의 유별난 처지에 가장 잘 맞는 고기잡이 방법은 쪽배 어업으로 보이며, 이 어업에서는 고기잡이들이 잡는 대로 곧바로 청어를 뭍으로 실어 와 절이거나 날로 먹게 한다. 그런데 톤당 30실링의 장려금이 버스선 어업에 주는 그 큰 북돋움은 쪽배 어업에게는 반드시 주춤거림이 되는데, 쪽배 어업은 그런 장려금이 없으므로 절인 고기를 버스선 어업과 같은 조건으로 시장에 내올 수 없다. 그래서 버스선 장려금이 세워지기 전에는 아주 컸고 지금 버스선 어업이 부리는 것에 못하지 않은 수의 뱃사람을 부렸다고 하는 쪽배 어업이 이제는 거의 다 무너져 버렸다. 그러나 이제 망하여 버려진 이 어업이 옛날에 얼마나 컸는지는 내가 아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고 내세울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한다. 쪽배 어업의 채비에는 장려금이 치러지지 않았으므로 관세나 소금세 관리들이 그것을 셈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넷째, 스코틀랜드의 여러 고장에서는 해의 어떤 철에 청어가 보통 사람들의 먹을거리에서 적지 않은 몫을 이룬다. 국내 시장에서 그 값을 낮추는 쪽으로 기우는 장려금이라면 형편이 결코 넉넉하지 않은 우리 동포 여러 사람의 살림을 덜어 주는 데 웬만큼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어잡이 버스선 장려금은 그런 좋은 목적에 조금도 이바지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내 시장에 대어 주기에 훨씬 잘 맞는 쪽배 어업을 망쳐 놓았고, 내보낼 때 1배럴에 2실링 8펜스를 더 주는 장려금이 버스선 어업 생산물의 큰 몫, 곧 3분의 2가 넘는 몫을 나라 밖으로 실어 간다. 30년에서 40년쯤 전, 버스선 장려금이 세워지기 전에는 흰청어의 보통 값이 1배럴에 16실링이었다고 나는 들었다. 10년에서 15년쯤 전, 쪽배 어업이 아주 망하기 전에는 값이 1배럴에 17실링에서 20실링을 오갔다고 한다. 지난 다섯 해 동안은 평균으로 1배럴에 25실링이었다. 그러나 이 높은 값은 스코틀랜드 해안에 청어가 정말로 모자란 데서 온 것일 수도 있다. 또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청어와 함께 팔리는 것이 보통이고 그 값이 앞의 모든 값에 들어 있는 통, 곧 배럴이 아메리카 전쟁이 시작된 뒤로 그 앞 값의 두 배쯤, 곧 3실링쯤에서 6실링쯤으로 올랐다는 점이다. 또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옛날 값에 대해 내가 받은 보고가 결코 아주 한결같고 앞뒤가 맞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주 꼼꼼하고 경험 많은 한 노인이 나에게 일러 준 바로는, 50년도 더 전에는 좋은 상품 청어 1배럴의 보통 값이 1기니였다고 하며, 이것을 아직도 평균 값으로 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버스선 장려금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 값이 낮아지지는 않았다는 점에서는 모든 보고가 맞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업 사업가들이 그런 두둑한 장려금을 받은 뒤에도 그 앞에 하던 것과 같은 값에, 또는 더 높은 값에 제 물건을 계속 파는 것을 보면 그들의 이윤이 아주 클 것으로 짐작할 만하고, 몇몇 사람의 이윤이 그러했을 법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체로 그것이 아주 달랐다고 믿을 온갖 이유가 나에게 있다. 그런 장려금이 흔히 내는 효과는 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무른 사업가들이 덤벼들도록 북돋우는 것이니, 그들이 제 게으름과 무지로 잃는 것이 나라의 가장 두둑한 너그러움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넘고도 남는다. 1750년에 흰청어잡이를 북돋우기 위해 톤당 30실링의 장려금을 처음 준 바로 그 법으로, 곧 조지 2세 치세 23년의 법 제24장으로 자본 500,000파운드의 합본 회사가 세워졌는데, 그 주주들은 다른 온갖 북돋움, 곧 방금 말한 톤수 장려금과 1배럴에 2실링 8펜스인 수출 장려금과 영국 소금이든 외국 소금이든 소금세를 물리지 않고 내주는 것에 더해, 열네 해 동안 회사 자산에 청약하여 들여놓은 100파운드마다 해마다 3파운드를 받을 권리를 얻었으며, 이 돈은 관세 수입 총괄관이 반년마다 같은 액수로 치르게 되어 있었다. 총재와 이사들이 런던에 머물게 되어 있던 이 큰 회사 말고도, 왕국의 여러 지방 항구마다 저마다의 위험을 스스로 지고 저마다의 이익과 손실을 스스로 맡아 꾸리는 어업 회소를 세우는 것이 합법이라고 선포되었는데, 다만 그 자본에 10,000파운드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액수가 청약되어야 했다. 이 작은 회소들의 거래에도 큰 회사의 거래와 똑같은 연금과 똑같은 온갖 북돋움이 주어졌다. 큰 회사의 청약은 이내 다 채워졌고 왕국의 여러 지방 항구에 여러 어업 회소가 세워졌다. 이 모든 북돋움이 있었음에도 크고 작은 그 여러 회사가 거의 다 제 자본의 전부나 대부분을 잃었다. 이제 그 어느 것의 흔적도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흰청어잡이는 이제 고스란히 또는 거의 고스란히 사사로운 모험가들이 해 나간다.
어떤 제조업이 사회의 방어에 정말로 필요하다면 그것을 대어 주는 일을 이웃에게 기대는 것이 언제나 슬기롭지는 않을 것이고, 그런 제조업을 국내에서 달리 떠받칠 수 없다면 그것을 떠받치기 위해 다른 모든 산업 부문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 사리에 닿지 않는 일은 아닐 것이다. 영국에서 만든 돛베와 영국에서 만든 화약을 내보낼 때 주는 장려금은 어쩌면 둘 다 이 원리로 옹호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제조업자 계층의 산업을 떠받치려고 백성 대다수의 산업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 사리에 닿는 일은 아주 드물겠지만, 큰 번영에 들뜬 판에, 공공이 어떻게 써야 할지 잘 알지도 못할 만큼 큰 세입을 누릴 때에는 좋아하는 제조업에 그런 장려금을 주는 것이 다른 어떤 헛된 씀씀이를 하는 것만큼이나 어쩌면 자연스러우리라. 공공의 씀씀이에서나 사사로운 씀씀이에서나 큰 부가 큰 어리석음의 핑계로 자주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루 어렵고 고달픈 때에 그런 헤픔을 이어 가는 데에는 여느 것을 넘어서는 어이없음이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른바 장려금이 더러는 관세 환급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제대로 된 장려금에 하는 것과 같은 반론에 걸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제당을 내보낼 때 주는 장려금은 그것을 만드는 데 쓰인 흑당과 조당에 물린 관세의 환급으로 볼 수 있고, 짠 명주를 내보낼 때 주는 장려금은 들여온 생사와 꼰 명주실에 물린 관세의 환급으로, 화약을 내보낼 때 주는 장려금은 들여온 유황과 초석에 물린 관세의 환급으로 볼 수 있다. 관세청의 말로는 들여올 때와 같은 꼴로 내보내는 물건에 주는 허용액만 관세 환급이라 부른다. 그 꼴이 무슨 제조를 거쳐 달라져 새 이름 아래로 들어오면 그것을 장려금이라 부른다.
저마다의 일에서 뛰어난 기술자와 제조업자에게 공공이 주는 포상금은 장려금에 하는 것과 같은 반론에 걸리지 않는다. 그것은 남다른 솜씨와 재주를 북돋움으로써 그 여러 일에 실제로 몸담고 있는 일꾼들의 겨루는 마음을 떠받치는 데 이바지하고, 나라 자본 가운데 저절로 어느 한 일로 갈 것보다 더 큰 몫을 그 일로 돌릴 만큼 크지 않다. 그것이 기우는 쪽은 여러 일 사이의 저절로 잡힌 균형을 뒤엎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될 수 있는 대로 훌륭하고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포상금에 드는 비용은 아주 작고 장려금에 드는 비용은 아주 크다. 곡물 장려금만으로도 한 해에 공공에게 300,000파운드가 넘는 돈을 치르게 한 때가 더러 있었다.
장려금이 더러 포상금이라 불리고, 관세 환급이 더러 장려금이라 불린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경우에나 낱말에 마음을 두지 말고 그 일의 성질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곡물 거래와 곡물법에 관한 여담.
곡물 수출 장려금을 세운 그 법과 그에 이어진 규정 체계에 쏟아진 칭찬이 고스란히 받을 만한 것이 아님을 짚어 두지 않고서는 장려금을 다룬 이 장을 끝맺을 수 없다. 곡물 거래의 성질과 그에 관한 영국의 주요 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주장이 참임을 넉넉히 보여 줄 것이다. 주제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 이 여담의 길이를 정당화해 줄 것이다.
곡물 상인의 거래는 네 가지 다른 부문으로 이루어지는데, 더러 같은 사람이 이 넷을 다 해 나갈 수도 있지만 그 성질로 보면 서로 따로 떨어진 네 가지 거래다. 첫째는 국내 거래상의 거래, 둘째는 국내 소비를 위해 들여오는 수입 상인의 거래, 셋째는 외국 소비를 위해 국내 생산물을 내보내는 수출 상인의 거래, 넷째는 중계 상인, 곧 다시 내보내기 위해 곡물을 들여오는 사람의 거래다.
1. 국내 거래상의 이익과 백성 대다수의 이익은 처음에 아무리 어긋나 보여도 가장 심하게 모자란 해에조차 똑같다. 제 곡물 값을 그 철의 실제 모자람이 요구하는 만큼 높이 올리는 것이 그의 이익이고, 그보다 더 높이 올리는 것은 결코 그의 이익일 수 없다. 값을 올려 그는 소비를 주춤하게 하고, 모두를, 특히 아랫자리 사람들을 얼마간 아끼고 잘 꾸리게 만든다. 값을 너무 높이 올려 소비를 지나치게 주춤하게 하여 그 철에 들어온 것이 그 철의 소비를 넘어서고 다음 작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뒤로도 얼마 동안 남을 듯하게 되면, 그는 제 곡물의 적지 않은 몫을 저절로 썩혀 잃을 위험만 아니라 남은 것을 몇 달 전에 받을 수 있었을 것보다 훨씬 싸게 팔아야 할 위험까지 안는다. 값을 넉넉히 높이 올리지 않아 소비를 너무 조금 주춤하게 하여 그 철에 들어온 것이 그 철의 소비에 못 미칠 듯하게 되면, 그는 그러지 않았으면 얻었을 이윤의 일부를 잃는 데 그치지 않고 백성이 그 철이 끝나기 전에 궁핍의 고달픔이 아니라 기근의 끔찍한 참상을 겪게 만든다.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 하는 소비가 그 철에 들어온 것에 될 수 있는 대로 꼭 맞게 비례하는 것이 백성의 이익이다. 국내 곡물 거래상의 이익도 같다. 그가 판단할 수 있는 한 이 비율대로 그들에게 대어 주면 제 곡물을 다 가장 높은 값에 가장 큰 이윤과 함께 팔 수 있고, 작물의 상태와 날마다 주마다 달마다 팔린 것에 대한 그의 아는 바가 그들에게 정말로 이렇게 대어지고 있는지를 얼마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해 준다. 백성의 이익을 뜻하지 않고도 그는 제 이익을 살피는 마음에 이끌려, 모자란 해에조차 배의 신중한 선장이 더러 제 선원들을 다루어야 하는 것과 거의 똑같이 그들을 다루게 된다. 식량이 모자랄 듯하다고 미리 보면 선장은 그들에게 배급을 줄인다. 지나친 조심에서 실제로 그럴 필요가 없을 때에도 더러 그렇게 한다 해도, 그로써 선원들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편은 덜 앞을 내다보는 처사로 그들이 더러 놓일 수 있는 위험과 비참과 파멸에 비하면 대단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지나친 욕심에서 국내 곡물 상인이 더러 제 곡물 값을 그 철의 모자람이 요구하는 것보다 얼마간 높이 올린다 해도, 그 철 끝에 백성이 기근을 겪지 않도록 톡톡히 막아 주는 그 처사로 백성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편은, 그 철 첫머리에 더 너그럽게 다루었을 때 그들이 놓일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대단하지 않다. 이 지나친 욕심으로 가장 크게 손해를 보는 사람은 곡물 상인 자신일 것이다. 그것이 대개 그에게 분노를 일으키기 때문만 아니라, 그가 그 분노의 결과를 면한다 해도 그 때문에 그 철 끝에 제 손에 반드시 남게 되는 곡물의 양 때문이며, 다음 철이 좋게 나오면 그는 그 곡물을 그러지 않았으면 받을 수 있었을 것보다 훨씬 싼 값에 언제나 팔아야 한다.
정말로 상인들의 큰 회사 하나가 넓은 나라의 작물 전체를 제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네덜란드인이 말루쿠제도의 향료를 그렇게 한다는 말처럼 남은 것의 값을 떠받치려고 그 적지 않은 몫을 없애거나 내버리는 것이 어쩌면 그들의 이익일 것이다. 그러나 곡물에 대해 그런 넓은 독점을 세우는 것은 법의 힘으로도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법이 거래를 자유롭게 두는 곳에서는 곡물이 온갖 상품 가운데 몇몇 큰 자본의 힘으로 사재이거나 독점되기에 가장 어려운 것이니, 그 자본이 곡물의 대부분을 사들이는 것이다. 그 가치가 몇몇 사삿사람의 자본으로 살 수 있는 것을 한참 넘어설 뿐 아니라, 그들이 살 수 있다고 해도 곡물이 길러지는 모양이 그런 사들임을 아예 할 수 없게 만든다. 문명한 나라라면 어디에서나 곡물이 해마다 먹는 양이 가장 많은 상품이므로, 곡물을 길러 내는 데 해마다 쓰이는 산업의 양이 다른 어떤 상품을 길러 내는 데 쓰이는 것보다 많다. 또 곡물이 땅에서 처음 나올 때에는 다른 어떤 상품보다 반드시 더 많은 임자에게 갈라져 있고, 이 임자들은 서로 딴 제조업자 여럿처럼 한곳에 모일 수 없으며 반드시 나라의 온갖 구석에 흩어져 있다. 이 첫 임자들은 곧바로 제 이웃의 먹는 이들에게 대어 주거나, 그 먹는 이들에게 대어 주는 다른 국내 거래상에게 대어 준다. 그러므로 농부와 빵장수를 다 넣어 곡물의 국내 거래상은 다른 어떤 상품의 거래상보다 반드시 수가 많고, 그들이 흩어져 있는 처지는 그들이 어떤 전반적인 단합에 들어가는 것을 아예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모자란 해에 그들 가운데 누가 지금 값으로는 그 철이 끝나기 전에 팔아 치울 수 있으리라고 바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곡물을 제 손에 쥐고 있음을 알게 되면, 그는 제 손해를 무릅쓰고 겨루는 이들만 이롭게 하려고 이 값을 떠받칠 생각은 결코 하지 않고, 새 작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기 전에 제 곡물을 털어 내려고 당장 값을 낮출 것이다. 이렇게 어느 한 거래상의 행동을 다스릴 그 같은 동기, 그 같은 이익이 다른 모든 거래상의 행동도 다스려, 그들 모두가 대체로 저마다의 판단으로 그 철의 모자람이나 넉넉함에 가장 맞는다고 본 값에 제 곡물을 팔게 만들 것이다.
이번 세기나 그 앞 두 세기에 유럽의 어느 곳을 괴롭힌 궁핍과 기근의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는 사람은, 그 가운데 여럿에 대해 우리에게 꽤 정확한 기록이 있는데, 궁핍이 곡물의 국내 거래상들 사이의 어떤 단합에서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고 실제로 모자란 것 말고 다른 어떤 원인에서 일어난 적도 없음을, 그리고 그 모자람은 어쩌면 어떤 고장에서 더러 전쟁의 헐어 없암에서 왔을지 몰라도 훨씬 많은 경우에는 철의 탓이었음을 알게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또 기근이 궁핍의 불편을 그른 수단으로 바로잡으려 한 정부의 폭력 말고 다른 어떤 원인에서 일어난 적도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넓은 곡물 나라에서 그 여러 고장 사이에 거래와 오고 감이 자유롭다면, 가장 나쁜 철이 일으키는 모자람이 기근을 낳을 만큼 클 수는 결코 없다. 그리고 가장 빈약한 작물도 검약과 아낌으로 꾸리면 웬만큼 넉넉한 작물이 더 넉넉하게 먹이는 것과 같은 수의 사람을 한 해 동안 먹여 살릴 것이다. 작물에 가장 나쁜 철은 몹시 마르거나 몹시 비가 많은 철이다. 그러나 곡물은 높은 땅에서나 낮은 땅에서나, 너무 젖기 쉬운 땅에서나 너무 마르기 쉬운 땅에서나 똑같이 자라므로, 나라의 한 고장에 해로운 마름이나 비가 다른 고장에는 이롭다. 그리고 젖은 철에나 마른 철에나 작물이 더 알맞게 고른 철보다 웬만큼 적기는 하지만, 두 철 다 나라의 한 고장에서 잃은 것이 다른 고장에서 얻은 것으로 얼마간 메워진다. 쌀 나라에서는 작물이 아주 축축한 흙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라는 어느 시기에는 물에 잠겨 있어야 하므로 마름의 결과가 훨씬 참혹하다. 그러나 그런 나라에서도 정부가 자유로운 거래를 허락한다면 마름이 기근을 반드시 일으킬 만큼 두루 미치는 일은 어쩌면 거의 없을 것이다. 몇 해 전 벵골의 마름은 아마 아주 큰 궁핍을 일으켰을 것이다. 동인도회사의 부하들이 쌀 거래에 물린 몇 가지 그른 규정과 슬기롭지 못한 제약이 어쩌면 그 궁핍을 기근으로 바꾸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정부가 궁핍의 불편을 바로잡으려고 모든 거래상에게 알맞다고 저 여기는 값에 곡물을 팔라고 명하면, 그것은 그들이 곡물을 시장에 내오는 것을 막아 더러 그 철 첫머리에조차 기근을 낳거나, 그들이 곡물을 거기 내온다 해도 백성이 그것을 빨리 먹어 없앨 수 있게 하고 그리하여 그렇게 하도록 북돋워 그 철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기근을 낳게 한다. 곡물 거래의 끝없고 걸림 없는 자유는 기근의 비참을 막는 유일하게 톡톡한 길이면서 궁핍의 불편을 덜어 주는 가장 좋은 길이다. 실제로 모자란 것은 바로잡을 수 없고 덜어 줄 수만 있기 때문이다. 어떤 거래도 이 거래보다 법의 온전한 보호를 받을 만하지 않고, 어떤 거래도 이 거래만큼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떤 거래도 이 거래만큼 사람들의 미움에 내놓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자란 해에는 아랫자리 사람들이 제 고달픔을 곡물 상인의 욕심 탓으로 돌리고, 그가 그들의 미움과 분노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그런 자리에서 이윤을 얻기는커녕 아주 망해 버리고 제 곡물 창고가 그들의 폭력으로 털리고 부서질 위험에 자주 놓인다. 그러나 곡물 상인이 제 주된 이윤을 얻으려고 바라는 때는 값이 높은 모자란 해다. 그는 흔히 몇몇 농부와 계약을 맺어 몇 해 동안 일정한 양의 곡물을 일정한 값에 대어 받는다. 이 계약 값은 웬만하고 알맞다고 여겨지는 값, 곧 보통 값 또는 평균 값에 따라 정해지는데, 그 값은 요 몇 해 모자란 해가 오기 전에는 밀 1쿼터에 흔히 28실링쯤이었고 다른 곡물은 그에 비례했다. 그러므로 모자란 해에는 곡물 상인이 제 곡물의 큰 몫을 보통 값에 사서 훨씬 높은 값에 판다. 그러나 이 남다른 이윤이 그의 거래를 다른 거래와 공평하게 같은 자리에 놓고, 그 상품 자체가 썩기 쉬운 성질과 그 값이 자주 예기치 못하게 오르내리는 데서 다른 자리에 그가 겪는 많은 손해를 메우기에 넉넉할 뿐임은, 이 거래에서 큰 재산이 만들어지는 일이 다른 어떤 거래에서만큼이나 드물다는 그 한 가지 사정만으로도 넉넉히 뚜렷해 보인다. 그러나 모자란 해, 곧 이 거래가 크게 남을 수 있는 유일한 해에 그것에 따라붙는 사람들의 미움 때문에 인품과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이 거래에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것은 아랫자리 거래상들에게 내버려져 있다. 그리하여 물방앗간 주인과 빵장수와 가루 장수와 가루 중개인, 그리고 여러 딱한 떠돌이 장사꾼들이 국내 시장에서 기르는 이와 먹는 이 사이에 드는 거의 유일한 중간 사람들이다.
유럽의 옛 정책은 공공에 그토록 이로운 거래에 대한 이 사람들의 미움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허락하고 북돋운 듯하다.
에드워드 6세 치세 5년과 6년의 법 제14장으로, 누구든 다시 팔 뜻으로 곡물이나 그 밖의 낟알을 사면 불법 매점꾼으로 여겨져 첫 잘못에는 두 달 옥에 갇히고 그 곡물의 값어치를 빼앗기며, 두 번째에는 여섯 달 옥에 갇히고 그 값어치의 두 배를 빼앗기고, 세 번째에는 차꼬에 세워지고 국왕이 뜻하는 동안 옥에 갇히며 제 물건과 가재를 모두 빼앗긴다고 정해졌다. 유럽 다른 대부분 고장의 옛 정책도 잉글랜드의 것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우리 조상들은 백성이 곡물 상인에게서보다 농부에게서 곡물을 더 싸게 살 것이라고 여긴 듯한데, 곡물 상인은 제가 농부에게 치른 값에 더해 터무니없는 이윤을 제 몫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그들은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의 거래를 아예 없애려 했다. 그들은 기르는 이와 먹는 이 사이에 어떤 종류의 중간 사람이 드는 것도 될 수 있는 대로 막으려고까지 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이 이른바 키더, 곧 곡물 운반상의 거래에 물린 여러 제약의 뜻이었다. 이 거래는 정직하고 올바르게 거래하는 사람이라는 자격을 확인해 주는 면허 없이는 아무도 할 수 없었다. 에드워드 6세의 법령으로는 이 면허를 주는 데 치안 판사 세 사람의 권위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제약조차 뒤에 넉넉하지 않다고 여겨져, 엘리자베스의 법령으로 그것을 줄 권한이 4분기 재판으로만 좁혀졌다13.
유럽의 옛 정책은 이렇게 나라의 큰 거래인 농업을, 도시의 큰 거래인 제조업에 대해 세워 둔 것과 아주 다른 원칙으로 다스리려 했다. 농부에게 먹는 이나 그 바로 아래 중개인, 곧 키더와 곡물 운반상 말고는 다른 손님을 남겨 주지 않음으로써, 그 정책은 그가 농부의 거래만 아니라 곡물 상인 또는 곡물 소매상의 거래까지 하도록 몰아붙이려 했다. 그와 달리 그 정책은 여러 경우에 제조업자가 가게 주인의 거래를 하는 것, 곧 제 물건을 소매로 파는 것을 금지했다. 한 법으로 그 정책은 나라의 전반적인 이익을 밀어 주려 했고 곡물을 싸게 만들려 했는데, 이 일을 어떻게 이룰지는 어쩌면 잘 헤아려지지 않았다. 다른 법으로 그 정책은 어느 한 계층의 이익, 곧 가게 주인들의 이익을 밀어 주려 했는데, 제조업자가 소매를 하도록 허락되면 가게 주인들이 그에게 너무 싸게 밀려 그 거래가 망할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조업자가 가게를 두고 제 물건을 소매로 팔도록 허락되었다 해도 여느 가게 주인보다 싸게 팔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 자본 가운데 얼마를 가게에 놓았다면 그만큼을 제조업에서 빼내야 했으리라. 제 일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서 해 나가려면 한쪽에서 제조업자의 이윤을 얻어야 했듯이 다른 쪽에서 가게 주인의 이윤도 얻어야 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사는 그 도시에서 제조업 자산과 가게 자산의 보통 이윤이 다 10퍼센트였다고 해 보자. 이 경우 그는 제 가게에서 파는 제 물건 하나하나에 20퍼센트의 이윤을 얹어야 했을 것이다. 물건을 제 작업장14에서 제 가게로 옮길 때 그는 그것을 도매로 사들일 거래상이나 가게 주인에게 팔 수 있었을 값으로 매겨야 했을 것이다. 그보다 낮게 매겼다면 그는 제 제조업 자본의 이윤 가운데 일부를 잃었으리라. 또 제 가게에서 그것을 팔 때 가게 주인이 팔았을 것과 같은 값을 받지 못했다면 그는 제 가게 자본의 이윤 가운데 일부를 잃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같은 물건 하나에서 이윤을 두 번 얻는 듯이 보일 수 있어도, 이 물건이 서로 딴 두 자본의 일부를 차례로 이루었으므로 그는 그것에 쓰인 자본 전체에서 이윤을 한 번만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만 못하게 얻었다면 그는 손해를 본 쪽이고, 제 자본 전체를 이웃 대부분과 같은 이로움으로 쓰지 못한 것이다.
주
1. 옮긴이 — 구보조세는 1660년에 매긴 관세로, 들여오거나 내보내는 물건의 값어치 1파운드마다 1실링, 곧 5퍼센트를 물렸다. 뒤에 매긴 여러 관세와 갈라 부르려고 「구」를 붙였다.
2. 옮긴이 — 영국의 법령은 국왕이 왕위에 오른 뒤 몇 해째에 만들어졌는지로 가리킨다. 조지 1세는 1714년에 왕위에 올랐으므로 그 치세 7년은 1720년에서 1721년에 걸친다. 이 장에 나오는 다른 국왕들은 에드워드 6세가 1547년, 찰스 2세가 1660년, 조지 2세가 1727년, 조지 3세가 1760년에 왕위에 올랐다.
3. 옮긴이 — 호그스헤드는 큰 나무통을 세는 단위다. 담배는 한 통에 500파운드(무게)에서 1,000파운드(무게)쯤 들어갔다.
4. 옮긴이 — 이 책의 화폐는 파운드·실링·펜스다. 1파운드는 20실링이고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오늘날 값으로는 환산하지 않는다. 스미스의 논증은 절대액이 아니라 비율에 걸려 있다.
5. 옮긴이 — 『곡물 거래론』(1766)을 쓴 사람은 찰스 스미스(1713~1777)로, 이 책을 쓴 애덤 스미스와 다른 사람이다. 스미스는 이 장에서 그의 이름을 대지 않는다.
6. 옮긴이 — 쿼터는 곡물을 되는 단위로 8부셸, 약 291리터다. 「4분의 1」이라는 뜻이 아니다. 1부셸은 약 36리터다.
7. 옮긴이 — 매슈 데커(1679~1749)는 네덜란드에서 잉글랜드로 건너간 상인이자 하원 의원으로, 무역과 세금을 다룬 글을 남겼다.
8. 옮긴이 — 저본은 이 자리를 「외국 곡물의 수출에 물린 높은 관세」로 적었다. 그러나 그 관세가 금지에 맞먹고 국내 시장의 독점을 지주에게 안겨 준다는 앞뒤 논증으로 보면 들여올 때 물리는 관세이며, 다른 판본도 그렇게 적는다.
9. 옮긴이 — 톤수 장려금은 배의 적재량 1톤마다 얼마씩 나라가 주던 돈으로, 잡아 온 고기의 양과는 상관이 없었다.
10. 옮긴이 — 버스선은 그물을 싣고 먼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절이기까지 하는 갑판 있는 배다. 네덜란드의 청어잡이에서 온 배꼴이다.
11. 옮긴이 — 바닷절임 청어는 배에서 바로 소금에 절여 통에 담은 것이고, 상품 청어는 뭍에서 소금을 더 넣어 다시 담아 팔 수 있게 만든 것이다.
12. 옮긴이 — 기니는 21실링에 해당하는 금화다.
13. 옮긴이 — 키더는 곡물을 사서 장으로 나르며 팔던 중간 상인이다. 4분기 재판은 한 주의 치안 판사들이 해마다 네 번 모여 열던 재판이므로, 치안 판사 세 사람이 처리하던 때보다 면허를 얻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14. 옮긴이 — 여기서 말하는 작업장은 제조업자가 물건을 만드는 일터이며, 같은 낱말이 구빈원을 가리키는 자리와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