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도시의 교역이 시골 개량에 이바지한 과정에 대하여
4장 도시의 교역이 시골 개량에 이바지한 과정에 대하여
교역과 제조업으로 이루어진 도시가 커지고 부유해진 것은 그 도시가 딸린 나라의 개량과 경작에 세 가지 다른 길로 이바지하였다.
첫째, 도시는 그 나라의 원생산물에 크고 언제든 열려 있는 장을 마련해 줌으로써 그 경작과 그 뒤의 개량을 북돋웠다. 이 이로움은 도시가 자리 잡은 나라에만 갇히지 않고 도시와 거래가 있는 모든 나라에 얼마간 미쳤다. 도시는 그 모든 나라에 원생산물이든 제조품이든 그 일부를 내놓을 장을 마련해 주었고, 따라서 그 모두의 근면과 개량을 얼마간 북돋웠다. 그러나 도시가 딸린 나라는 가까이 있는 덕으로 이 장에서 가장 큰 이로움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나라의 원생산물은 운반이 덜 물리므로, 장사꾼이 기르는 사람에게 더 나은 값을 치러 주면서도 먼 나라의 것과 같이 싸게 쓰는 사람에게 내놓을 수 있었다.
둘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얻은 부는 팔려고 나온 토지를 사들이는 데 쓰이는 일이 잦았는데, 그 토지의 큰 몫은 경작되지 않은 땅인 경우가 많았다. 상인은 대개 시골 지주가 되고자 하는 뜻을 품으며, 그리 될 때 그들은 두루 모든 개량하는 사람 가운데 으뜸이다. 상인은 제 돈을 주로 이윤이 남는 일에 굴리는 데 익어 있으나, 한갓 시골 지주는 그것을 주로 비용에 쓰는 데 익어 있다. 한쪽은 제 돈이 제 손을 떠났다가 이윤을 붙여 되돌아오는 것을 자주 보나, 다른 쪽은 한번 그것을 내놓으면 그것을 다시 볼 것을 좀처럼 바라지 않는다. 이 서로 다른 버릇은 어떤 갈래의 일에서나 그들의 마음결과 성향에 자연히 미친다. 상인은 대개 담대한 사업가이고 시골 지주는 겁 많은 사업가다. 한쪽은 제 토지의 가치를 비용에 견주어 올릴 만한 앞날이 그럴듯하게 보이면 큰 자본을 단번에 그 개량에 들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나, 다른 쪽은 자본이 있다 하여도 늘 그런 것은 아닌데 그것을 이렇게 굴리는 일에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 그가 아예 개량을 한다면 그것은 대개 자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 해마다의 수입에서 아낄 수 있는 것으로 하는 것이다. 개량되지 않은 나라에 자리 잡은 상업 도시에 살아 볼 팔자를 타고난 사람은 누구나, 이런 일에서 상인의 하는 일이 한갓 시골 지주의 하는 일보다 얼마나 더 기운차던가를 자주 보았을 것이다. 게다가 상업의 일이 상인에게 자연히 심어 주는 조리와 아낌과 꼼꼼함의 버릇은, 그를 어떤 개량의 일이든 이윤과 성과를 내며 밀고 나가기에 훨씬 알맞은 사람으로 만든다.
셋째이자 끝으로, 교역과 제조업은 차츰 질서와 좋은 다스림을 들여놓았고 그와 함께 개인의 자유와 안전을 시골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들여놓았는데, 그들은 그전에는 이웃과 거의 끊임없는 싸움의 상태에서, 그리고 제 윗사람에게 종처럼 매인 상태에서 살았다. 이것은 가장 덜 눈에 띈 것이기는 하나 그 모든 결과 가운데 단연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내가 아는 한 흄만이 여태까지 이것을 눈여겨본 글쓴이다.1
바깥과의 교역도 없고 좀 나은 제조업도 없는 나라에서 큰 임자는, 제 토지의 생산물 가운데 경작하는 사람들을 먹이고 남는 큰 몫을 맞바꿀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그 모두를 제집에서 시골스러운 손님 대접으로 써 없앤다. 이 남는 생산물이 100명이나 1000명을 먹일 만하다면, 그는 100명이나 1000명을 먹이는 것 말고는 그것을 쓸 길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수많은 가신과 딸린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들은 제가 먹는 것에 맞갖게 되돌려 줄 것이 없고 온전히 그의 베풂으로 먹고살므로 그에게 따를 수밖에 없으니, 병사가 제게 삯을 주는 군주에게 따를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까닭이다.2 유럽에서 교역과 제조업이 퍼지기 전에 부유하고 높은 사람들이 베푼 손님 대접은, 주권자에서 가장 작은 배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쉬이 그려 볼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컸다. 웨스트민스터 홀은 윌리엄 루퍼스의 식당이었고, 더러는 아마 그의 손님을 담기에 너무 크지 않았을 것이다.3 토머스 베켓이 철에 맞추어 제 큰 방 바닥에 깨끗한 건초나 골풀을 깔아, 자리를 얻지 못한 기사와 종사들이 바닥에 앉아 저녁을 먹을 때 고운 옷을 더럽히지 않게 한 것은 하나의 호사로 여겨졌다. 저 대단한 워릭 백작은 제 여러 장원에서 날마다 30,000명을 대접하였다고 한다. 여기 든 수가 부풀려진 것일 수도 있으나, 그런 부풀림이 먹힐 만하려면 그 수는 참으로 아주 컸을 수밖에 없다. 거의 같은 갈래의 손님 대접이 몇 해 전까지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여러 곳에서 베풀어졌다. 그것은 교역과 제조업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모든 민족에게 두루 있는 일인 듯하다. 포코크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떤 아라비아의 우두머리가 제 가축을 팔러 온 도시의 거리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흔한 걸인까지도 저와 함께 앉아 제 잔치를 나누자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
토지를 차지해 부친 사람들은 어느 점에서나 큰 임자의 가신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매여 있었다. 그들 가운데 예속 농민 신분이 아닌 사람들조차 임의 차지인이었으니, 그들이 무는 지대는 그 토지가 그들에게 내주는 생계에 어느 점에서도 맞갖지 않았다.4 크라운 하나, 반 크라운, 양 한 마리, 새끼 양 한 마리가 몇 해 전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에서 한 집안을 먹이는 토지의 예사로운 지대였다.5 어떤 곳에서는 오늘날에도 그러하며, 오늘날 그곳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의 양이 다른 곳보다 많은 것도 아니다. 큰 재산에서 남는 생산물을 그 재산 안에서 써 없애야 하는 나라에서는, 그것을 쓰는 사람들이 그의 가신이나 집안 하인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매여 있기만 하다면, 그 일부를 제집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쓰는 것이 임자에게 더 편한 일이 잦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너무 많은 손님도 너무 많은 식구도 거북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 면역 지대에 조금 더할 뿐인 값으로 제 집안을 먹일 만한 토지를 가진 임의 차지인은 어떤 하인이나 가신과도 다름없이 임자에게 매여 있고, 그와 마찬가지로 거리낌 없이 그에게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임자는 제 하인과 가신을 제집에서 먹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 차지인을 그들의 집에서 먹인다. 둘의 생계가 모두 그의 베풂에서 나오며, 그것이 이어지는 것은 그의 마음에 달려 있다.
그런 형편에서 큰 임자들이 제 차지인과 가신에게 반드시 가졌던 권위 위에 옛 배런들의 힘이 세워졌다. 그들은 제 재산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로울 때에는 재판관이 되고 싸울 때에는 우두머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저마다 제 직영지 안에서 질서를 지키고 법을 집행할 수 있었는데, 저마다 그곳에서 어느 한 사람의 불의에 맞서 모든 주민의 힘을 한꺼번에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사람도 이렇게 할 만한 권위를 가지지 못하였다. 특히 국왕이 그러하였다. 그 옛 시절에 국왕은 제 영토에서 가장 큰 임자보다 조금 나은 사람에 지나지 않았고, 다른 큰 임자들은 공동의 적을 함께 막기 위하여 그에게 일정한 예를 갖추었을 뿐이다. 모든 주민이 무장하고 서로 편들어 버티는 데 익은 큰 임자의 토지 안에서 조그만 빚을 물리게 하는 일은, 국왕이 제 권위로 그것을 하려 들었다면 내란을 끄는 것과 거의 같은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나라의 큰 몫에서 재판을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고, 같은 까닭으로 시골 민병의 지휘를 그 민병이 따를 사람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 토지 재판권이 봉건법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민사와 형사의 가장 높은 재판권만이 아니라 군대를 모으는 힘과 돈을 찍는 힘, 나아가 제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한 조례를 만드는 힘까지, 이 모두가 봉건법이라는 이름조차 유럽에 알려지기 여러 세기 전에 큰 토지 임자들이 자유 소유로 가지고 있던 권리였다.6 잉글랜드에서 색슨 영주들의 권위와 재판권은 정복 전에도 그 뒤 노르만 영주들의 어느 것에 못지않게 컸던 것 같다. 그러나 봉건법이 잉글랜드의 공통법이 된 것은 정복 뒤라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프랑스에서 큰 영주들이 봉건법이 그 나라에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가장 널리 미치는 권위와 재판권을 자유 소유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 권위와 그 재판권은 모두 방금 그려 놓은 재산과 풍속의 형편에서 흘러나온 것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나 잉글랜드 왕가의 먼 옛날로 거슬러 오르지 않고도, 우리는 훨씬 뒤의 시절에서 그런 결과가 그런 원인에서 언제나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는 증거를 많이 찾을 수 있다. 스코틀랜드 로카버의 신사인 로키얼의 캐머런 씨는 아무런 법적 권한도 없이, 곧 그때 레갈리티 영주라 불린 사람도 아니고 직속 차지인도 아니며 아길 공작의 봉신이었고 치안 판사조차 아니었음에도 제 사람들에게 가장 높은 형사 재판권을 휘두르는 것이 예사였는데, 그것이 30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다.7 그는 재판의 어떤 절차도 갖추지 않고 그리하였으나 아주 공평하게 그리하였다고 한다. 또 그때 그 지역의 형편이 공공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그가 이 권위를 떠맡는 것을 필요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그럴 법하지 않은 일이 아니다. 그 지대가 한 해에 500파운드를 넘은 적이 없는 그 신사는 1745년에 제 사람 800명을 이끌고 반란에 들어갔다.
봉건법이 들어온 것은 큰 자유 소유 영주들의 권위를 넓히기는커녕 그것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국왕에서 가장 작은 임자에 이르기까지 오랜 줄로 이어지는 복무와 의무를 딸린 일정한 위아래 질서를 세웠다. 임자가 아직 어린 동안에는 지대와 그 토지의 관리가 그 바로 위 상전의 손에 들어갔고, 따라서 모든 큰 임자의 것은 국왕의 손에 들어갔는데, 국왕은 그 어린 사람을 먹이고 가르칠 책임을 지고 후견인의 권위로 보아 그를 혼인시켜 처분할 권리가 있다고 여겨졌으니, 다만 그 지체에 어울리지 않게 하지 않는 한에서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 제도가 국왕의 권위를 굳히고 큰 임자들의 권위를 허무는 데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하여도, 그것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질서와 좋은 다스림을 세우기에는 어느 쪽으로도 넉넉하지 못하였다. 그 어지러움이 나온 재산과 풍속의 형편을 넉넉히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스림의 권위는 그전과 마찬가지로 머리에서는 너무 약하고 아래 팔다리에서는 너무 센 채로 이어졌으며, 아래 팔다리가 지나치게 센 것이 머리가 약한 까닭이었다. 봉건의 위아래 질서가 세워진 뒤에도 국왕은 그전과 마찬가지로 큰 영주들의 폭력을 억누를 힘이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제 뜻대로 싸움을 벌였으니 거의 끊임없이 서로를 상대로 그리하였고 아주 잦게는 국왕을 상대로도 그리하였으며, 담 밖의 시골은 여전히 폭력과 노략과 어지러움의 무대로 남았다.
그러나 봉건 제도의 온갖 폭력이 결코 이루어 낼 수 없었던 것을 바깥과의 교역과 제조업이 소리 없고 느껴지지 않는 움직임으로 차츰 이루어 냈다. 이것들은 큰 임자들에게 제 토지에서 남는 생산물 전체를 맞바꿀 만한 것, 그러면서 차지인과도 가신과도 나누지 않고 제가 다 쓸 수 있는 것을 차츰 마련해 주었다.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세상의 어느 시대에나 인류의 주인들이 지녔던 못된 격언이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 지대의 값 전체를 스스로 써 없앨 길을 찾아내자마자 그것을 다른 누구와 나눌 마음이 없어졌다. 아마 다이아몬드 죔쇠 한 벌, 또는 그만큼 시시하고 쓸모없는 무엇을 얻으려고 그들은 1000명을 한 해 먹일 것, 또는 같은 말이지만 그것을 먹일 값을 맞바꾸었고, 그와 함께 그것이 그들에게 줄 수 있었던 온 무게와 권위까지 맞바꾸었다. 그러나 그 죔쇠는 다 제 것이 될 터였고 다른 어떤 사람도 그것을 나누어 가지지 못할 터였으나, 더 오래된 쓰임새로는 그들이 적어도 1000명과 나누어야 하였을 것이다. 어느 쪽이 나은지를 가릴 재판관에게 이 차이는 더할 나위 없이 결정적이었다. 그리하여 모든 허영 가운데 가장 어린애 같고 가장 낮고 가장 더러운 것을 채우기 위하여 그들은 제 힘과 권위를 다 차츰 맞바꾸어 내주었다.
바깥과의 교역도 없고 좀 나은 제조업도 없는 나라에서 한 해 10,000파운드를 얻는 사람은 제 수입을 아마 1000 집안을 먹이는 것 말고는 달리 굴릴 길이 없으며, 그 집안들은 모두 그의 분부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유럽의 형편에서 한 해 10,000파운드를 얻는 사람은 제 수입을 다 쓸 수 있고 대개 그리하는데, 스무 사람을 곧바로 먹이지도 않고 분부할 값도 없는 열 명의 하인보다 많은 사람에게 분부할 수도 없다. 에두르는 길로는 그가 아마 옛 쓰임새로 먹일 수 있었을 만큼 많은, 아니 그보다도 많은 사람을 먹인다. 그가 제 수입 전체를 맞바꾸어 얻는 값진 물건의 양은 아주 적으나, 그것을 모으고 다듬는 데 부린 일꾼의 수는 아주 많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물건의 큰 값은 대개 그들의 노동의 임금과 그들을 바로 부린 모든 사람의 이윤에서 나온다. 그는 그 값을 치름으로써 에두르는 길로 그 모든 임금과 이윤을 치르며, 그리하여 에두르는 길로 그 모든 일꾼과 그들을 부린 사람들을 먹이는 데 이바지한다. 그러나 그가 저마다를 먹이는 데 이바지하는 몫은 아주 작으니, 아주 적은 몇몇에게는 아마 10분의 1이 못 되고 많은 이에게는 100분의 1이 못 되며 어떤 이에게는 그 한 해 전체 먹거리의 1000분의 1도 되지 않고 10,000분의 1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가 그들 모두를 먹이는 데 이바지하기는 하나, 그들은 모두 그에게서 얼마간 벗어나 있으니 대개 그가 없어도 다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큰 토지 임자들이 제 지대를 제 차지인과 가신을 먹이는 데 쓸 때에는, 저마다 제 차지인 모두와 제 가신 모두를 온전히 먹인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소상인과 수공업자를 먹이는 데 쓸 때에는, 그들을 다 합치면 아마 그전과 같은 수, 또는 시골스러운 손님 대접에 따르는 허비 덕에 그전보다 많은 수의 사람을 먹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 저마다를 떼어 놓고 보면, 그 더 많은 수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을 먹이는 데 이바지하는 몫은 아주 작은 일이 잦다. 소상인이나 수공업자는 저마다 한 사람이 아니라 100명이나 1000명의 서로 다른 손님이 주는 일에서 제 생계를 얻는다. 그러므로 그는 그 모두에게 얼마간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그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에게도 아예 매여 있지는 않다.
큰 임자들의 몸에 드는 비용이 이렇게 차츰 늘었으므로, 그들의 가신 수가 그와 나란히 줄어들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내 그들을 아예 내보내는 데 이르렀다. 같은 원인이 그들로 하여금 차츰 쓸데없는 차지인을 내보내게 하였다. 농장은 커졌고, 토지를 차지해 부친 사람들은 인구가 줄어든다는 하소연이 있었음에도 그 시절의 어설픈 경작과 개량의 형편에 맞추어 그것을 경작하는 데 필요한 수로 줄었다. 쓸데없는 입을 덜고 농부에게서 농장의 온 값을 받아 냄으로써, 더 많이 남는 것 또는 같은 말이지만 더 많이 남는 것의 값이 임자에게 들어왔고, 상인과 제조업자는 머지않아 그가 그것을 나머지와 마찬가지로 제 몸에 쓸 길을 마련해 주었다. 그 원인이 계속 움직였으므로 그는 제 토지가 실제 개량된 형편에서 내놓을 수 있는 것보다 지대를 올리고 싶어 하였다. 그의 차지인은 한 가지 조건에서만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 그들이 토지를 더 개량하는 데 들이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윤과 함께 되찾을 만한 시간을 줄 만큼 여러 해 동안 제 보유를 보장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지주의 비용 드는 허영은 그로 하여금 이 조건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니, 여기에서 긴 차지 계약이 비롯되었다.
토지의 온 값을 무는 임의 차지인조차도 지주에게 아예 매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서로에게서 받는 돈의 이로움은 맞갚음이고 맞먹는 것이며, 그런 차지인은 임자를 섬기느라 제 목숨도 제 재산도 내놓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여러 해를 정한 차지 계약을 가지고 있으면 그는 아예 벗어나 있으며, 그의 지주는 차지 계약에 똑똑히 적힌 것이나 그 나라의 두루 알려진 법이 그에게 지운 것 말고는 아무리 자그마한 섬김도 그에게서 바랄 수 없다.
차지인이 이렇게 벗어나고 가신이 내보내지자, 큰 임자들은 더 이상 재판이 가지런히 집행되는 것을 막거나 시골의 평화를 흔들 수 없었다. 그들은 제 맏아들의 권리를 팔았으되 에서처럼 굶주리고 다급할 때 팥죽 한 그릇에 판 것이 아니라, 넉넉함에 겨워 노리개와 장식붙이에, 곧 어른의 진지한 일거리보다 아이의 장난감에 알맞은 것에 팔았으니, 그리하여 그들은 도시의 어느 넉넉한 도시민이나 소상인과 다름없이 대수롭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가지런한 다스림이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골에도 세워졌으니,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그것이 움직이는 것을 흔들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 지금 다루는 주제와 관계가 없겠으나, 나는 여러 대를 이어 아버지에서 아들로 꽤 큰 재산을 지녀 온 아주 오래된 집안이 상업이 이루어지는 나라에는 아주 드물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반대로 웨일스나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처럼 교역이 적은 나라에서는 그런 집안이 아주 흔하다. 아라비아의 역사서는 모두 계보로 가득한 듯하고, 어느 타타르 칸이 쓴 역사서가 있어 여러 유럽 말로 옮겨졌는데 그 안에는 거의 계보밖에 없으니, 그 민족들 사이에 오래된 집안이 아주 흔하다는 증거다. 부유한 사람이 제 수입을 그것이 먹일 수 있는 만큼 많은 사람을 먹이는 것 말고는 달리 쓸 길이 없는 나라에서는, 그는 살림을 다 흩기 쉽고 그의 어짊은 제 힘에 넘치는 수를 먹이려 들 만큼 세찬 일이 좀처럼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가 가장 큰 수입을 제 몸에 쓸 수 있는 곳에서는 그의 비용에 한이 없는 일이 잦으니, 그의 허영이나 제 몸을 아끼는 마음에 한이 없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업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는 부가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가장 모진 법의 규제가 있어도 부가 같은 집안에 오래 머무는 일이 아주 드물다. 반대로 소박한 민족 사이에서는 아무런 법의 규제가 없이도 그런 일이 잦으니, 타타르인과 아랍인 같은 목자의 민족 사이에서는 그 재산이 써 없앨 수 있는 성질이라서 그런 규제가 모두 있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공공의 행복에 가장 중요한 혁명이 이렇게 두 가지 서로 다른 무리의 사람들 손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공공을 섬길 뜻이 조금도 없었다. 가장 어린애 같은 허영을 채우는 것이 큰 임자들의 유일한 동기였다. 훨씬 덜 우스꽝스러운 상인과 수공업자는 오직 제 이익을 보아 움직였으며, 한 푼을 얻을 데가 있으면 어디서나 한 푼을 버는 저들의 행상 원리를 따랐을 뿐이다. 둘 가운데 어느 쪽도 한쪽의 어리석음과 다른 쪽의 근면이 차츰 이루어 내고 있던 그 큰 혁명을 알지도 못하였고 미리 내다보지도 못하였다.
이렇게 하여 유럽의 큰 몫에서 도시의 교역과 제조업은 시골이 개량되고 경작된 것의 결과가 아니라 그 원인이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순서는 사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어긋나므로 느리고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그 부가 교역과 제조업에 크게 달려 있는 유럽 나라들의 느린 나아감을, 그 부가 온전히 농업에 터를 둔 우리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빠른 나아감과 견주어 보라. 유럽의 큰 몫에서는 주민의 수가 500년이 못 되어 두 배가 되지는 않는다고 여겨진다. 우리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여러 곳에서는 그것이 20년이나 25년에 두 배가 되는 것으로 드러난다. 유럽에서는 장자 상속법과 여러 갈래의 영구 구속이 큰 재산이 갈리는 것을 막고, 그리하여 작은 임자가 불어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제 작은 땅의 구석구석을 알고, 재산이 더구나 작은 재산이 자연히 불러일으키는 온 애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그런 까닭에 그것을 경작하는 데에서만이 아니라 꾸미는 데에서도 즐거움을 얻는 작은 임자는 두루 모든 개량하는 사람 가운데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슬기롭고 가장 성과를 잘 내는 사람이다. 게다가 같은 규제가 그토록 많은 토지를 장에 나오지 못하게 붙들어 두므로, 팔 토지보다 살 자본이 늘 더 많고 따라서 팔리는 것은 늘 독점 가격에 팔린다. 그 지대는 산 값의 이자를 결코 채우지 못하며, 게다가 돈의 이자에는 없는 수리비와 그때그때 드는 다른 비용을 짊어진다. 토지를 사는 것은 유럽의 어디서나 작은 자본을 굴리는 가장 이윤 없는 길이다. 참으로 더 나은 안전을 위하여, 넉넉함이 어중간한 사람이 일에서 물러날 때 제 작은 자본을 토지에 들이기를 더러 고르기도 한다. 또 제 수입이 다른 데서 나오는 전문 직업의 사람도 제가 모은 것을 같은 길로 안전하게 두기를 좋아하는 일이 잦다. 그러나 장사나 어떤 전문 직업에 몸을 붙이지 않고 2,000파운드나 3,000파운드의 자본을 작은 땅 한 조각을 사서 경작하는 데 굴리는 젊은이는, 참으로 아주 행복하고 아주 홀가분하게 살기를 바랄 수 있겠으나 큰 재산이나 크게 이름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모든 바람에는 영원히 작별을 말해야 하니, 제 자산을 달리 굴렸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기회를 가지고 그것을 얻었을 수도 있었다. 또 그런 사람은 임자가 되기를 바랄 수 없으면서도 농부가 되는 것을 낮잡아 보는 일이 잦다. 그러므로 장에 나오는 토지의 양이 적은 것과 거기 나온 것의 값이 높은 것이, 그렇지 않았다면 그 방향으로 갔을 많은 자본이 그 경작과 개량에 굴려지는 것을 막는다. 반대로 북아메리카에서는 50파운드나 60파운드가 개척지를 하나 벌이기에 넉넉한 자산으로 드러나는 일이 잦다. 경작되지 않은 토지를 사서 개량하는 것은 그곳에서 가장 작은 자본에게나 가장 큰 자본에게나 가장 이윤이 남는 길이며, 그 나라에서 바랄 수 있는 모든 재산과 이름을 얻는 가장 곧바른 길이다. 참으로 그런 토지는 북아메리카에서 거의 값 없이, 또는 그 자연스러운 생산물의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값으로 얻을 수 있으니, 유럽에서는 또 참으로 모든 토지가 오래전부터 사사로운 재산이 된 어느 나라에서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토지 재산이 자식이 많은 임자가 죽을 때 그 모든 자식에게 고르게 갈린다면, 대개 그 재산을 팔게 된다. 그토록 많은 토지가 장에 나와 그것이 더는 독점 가격에 팔릴 수 없을 것이다. 그 토지의 부담 없는 지대가 산 값의 이자를 채우는 데 더 가까이 갈 것이고, 작은 자본을 토지를 사는 데 굴리는 것이 다른 어느 길만큼 이윤이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8
잉글랜드는 흙이 타고나게 걸차고, 나라 전체에 견주어 바닷가가 아주 길고, 그 안을 흐르며 가장 안쪽 여러 곳까지 물길 운반의 편함을 주는 배가 다닐 수 있는 강이 많으므로, 아마 유럽의 어느 큰 나라에도 못지않게 바깥과의 교역과 먼 곳에 팔 제조업과 이것들이 낳을 수 있는 모든 개량의 자리가 되기에 자연이 알맞게 만들어 놓은 나라다. 또 엘리자베스 치세가 시작된 때부터 잉글랜드의 입법부는 교역과 제조업의 이익에 유별나게 마음을 썼으며, 참으로 유럽에서 네덜란드조차 빼놓지 않고 그 법이 두루 보아 이런 갈래의 산업에 이보다 이로운 나라는 없다. 따라서 교역과 제조업은 이 온 기간 동안 끊임없이 나아갔다. 나라의 경작과 개량도 의심할 것 없이 차츰 나아갔다. 그러나 그것은 교역과 제조업의 더 빠른 나아감을 느리게, 멀찍이 떨어져 뒤따랐던 것 같다. 나라의 큰 몫은 아마 엘리자베스 치세 전에 이미 경작되었을 것이나, 그 가운데 아주 큰 몫이 아직도 경작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훨씬 더 큰 몫의 경작이 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못하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법은 교역을 지켜 줌으로써 에두르는 길로만이 아니라 여러 곧바른 북돋움으로도 농업을 돕는다. 모자랄 때를 빼면 곡물을 내보내는 것은 자유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장려금으로 북돋워진다. 넉넉함이 어중간할 때에는 바깥 곡물을 들여오는 데 금지에 맞먹는 관세가 물린다. 살아 있는 가축을 들여오는 것은 아일랜드에서 오는 것을 빼고는 언제나 금지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오는 것이 허용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은 토지 생산물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품목인 빵과 푸줏간 고기에 대하여 제 나라 사람들에게 맞서는 독점을 쥐고 있다. 이런 북돋움은 뿌리에서 보면 아마 내가 뒤에 밝히려 하겠듯이 온전히 헛것이겠으나, 적어도 입법부가 농업을 도우려 한 좋은 뜻은 넉넉히 드러내 준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잉글랜드의 요먼층이 법이 만들어 줄 수 있는 만큼 안전하고 홀가분하고 떳떳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자 상속권이 자리 잡고 십일조를 물며 영구 구속이 법의 정신에 어긋나면서도 더러는 허용되는 나라로서 잉글랜드보다 농업을 더 북돋우는 나라는 없다. 그럼에도 그 경작의 형편은 그러하다. 법이 교역의 나아감에서 에두르는 길로 생기는 것 말고는 농업에 아무런 곧바른 북돋움도 주지 않았고 요먼층을 유럽의 다른 대부분 나라와 같은 처지에 두었더라면, 그것은 어떠하였을까? 엘리자베스 치세가 시작된 때로부터 이제 200년이 넘었으니, 사람의 번영이 흔히 이어지는 기간만큼 긴 세월이다.
프랑스는 잉글랜드가 상업 나라로 이름나기 거의 한 세기 전부터 바깥과의 교역을 꽤 많이 지녔던 것 같다. 프랑스의 해군은 샤를 8세가 나폴리로 원정하기 전에 그 시절의 생각으로 보아 꽤 컸다.9 그러나 프랑스의 경작과 개량은 두루 보아 잉글랜드의 것보다 못하다. 그 나라의 법은 농업에 같은 곧바른 북돋움을 준 적이 없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유럽의 다른 곳과 하는 바깥과의 교역은 주로 남의 배로 이루어지기는 하나 꽤 크다. 그 식민지와 하는 교역은 제 배로 이루어지며, 그 식민지가 아주 부유하고 넓은 까닭에 훨씬 크다. 그러나 그것은 두 나라 어느 쪽에도 먼 곳에 팔 만한 제조업을 꽤 크게 들여놓은 적이 없으며, 두 나라의 큰 몫은 아직도 경작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포르투갈의 바깥과의 교역은 이탈리아를 빼면 유럽의 어느 큰 나라의 것보다 오래되었다.
이탈리아는 바깥과의 교역과 먼 곳에 팔 제조업으로 구석구석까지 경작되고 개량된 듯한 유럽의 유일한 큰 나라다. 귀차르디니에 따르면 샤를 8세가 쳐들어오기 전에 이탈리아는 가장 산이 많고 메마른 곳도 가장 평평하고 가장 걸찬 곳에 못지않게 경작되었다.10 그 나라의 이로운 처지와 그때 그 안에 있던 많은 독립한 나라가 아마 이 두루 퍼진 경작에 적지 않게 이바지하였을 것이다. 또 오늘날 역사가 가운데 가장 슬기롭고 가장 말을 아끼는 사람의 이 두루뭉술한 말이 있음에도, 그때 이탈리아가 오늘날 잉글랜드보다 더 잘 경작되어 있지는 않았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교역과 제조업으로 어느 나라가 얻은 자본은, 그 가운데 얼마가 그 토지의 경작과 개량에 붙들려 실물로 되기까지는 언제나 아주 위태롭고 불확실한 소유물이다. 상인은 어느 특정한 나라의 시민일 필요가 없다고 아주 알맞게 말한 사람이 있다. 그가 어느 곳에서 제 장사를 하는지는 그에게 크게 아랑곳없는 일이며, 아주 사소한 불쾌함만으로도 그는 제 자본을, 그리고 그와 함께 그것이 떠받치는 모든 산업을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 갈 것이다. 그 가운데 어느 부분도 어느 특정한 나라에 딸린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그것이 건물로든 토지의 오래가는 개량으로든 그 나라의 얼굴에 마치 펼쳐 놓이기까지는 그렇다. 한자 도시들의 큰 몫이 지녔다고 하는 큰 부는 이제 13세기와 14세기의 흐릿한 역사 말고는 아무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11 그 가운데 몇 곳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 또 그 가운데 몇 곳에 붙은 라틴어 이름이 유럽의 어느 도시에 해당하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15세기 끝과 16세기 처음에 이탈리아에 닥친 불운이 롬바르디아와 토스카나 도시들의 교역과 제조업을 크게 줄여 놓았음에도, 그 지역은 여전히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가장 잘 경작된 곳에 든다. 플란데런의 내란과 그 뒤를 이은 스페인의 다스림은 안트베르펜과 헨트와 브뤼허의 큰 교역을 쫓아냈다. 그러나 플란데런은 여전히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잘 경작되고 인구가 가장 많은 속주의 하나로 남아 있다. 전쟁과 통치의 예사로운 격변은 교역에서만 생기는 부의 샘을 쉬이 마르게 한다. 농업의 더 단단한 개량에서 생기는 부는 훨씬 오래가며, 적대하는 야만의 민족이 한두 세기를 이어 노략하여 일으키는 저 더 모진 뒤흔들림이 아니고는 무너뜨릴 수 없으니, 유럽 서쪽 속주에서 로마제국이 무너지기 얼마 전과 그 뒤 얼마 동안 일어난 것과 같은 것들이다.
4편 정치경제학의 여러 체계에 대하여
정치경제학은 정치가나 입법자의 학문의 한 갈래로 볼 때 두 가지 다른 목표를 내놓는다. 첫째는 백성에게 넉넉한 수입 곧 생계를 마련해 주는 것, 더 알맞게 말하면 그들이 스스로 그런 수입 곧 생계를 마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나라 곧 공동체에 공공의 일에 넉넉한 세입을 대어 주는 것이다. 그것은 백성과 주권자를 다 부유하게 하고자 한다.
시대와 나라에 따라 풍요가 다르게 나아간 것이,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일에 관하여 두 가지 다른 정치경제학 체계가 생길 계기를 주었다. 하나는 상업 체계라 부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농업 체계라 부를 수 있다. 나는 둘을 다 될 수 있는 대로 온전하고 또렷하게 밝히려 하며, 상업 체계에서 시작하겠다. 그것은 오늘날의 체계이며 우리 나라와 우리 시대에서 가장 잘 이해되고 있다.
1장 상업 체계 곧 중상주의 체계의 원리에 대하여
부가 돈, 곧 금과 은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두루 퍼진 생각인데, 이것은 돈이 교역의 연장이자 가치의 자라는 두 가지 노릇을 하는 데서 자연히 생긴다. 돈이 교역의 연장인 까닭에, 우리에게 돈이 있으면 우리가 필요한 다른 무엇이든 다른 어떤 상품으로보다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큰일은 언제나 돈을 얻는 것임을 우리는 늘 본다. 그것을 얻으면 그다음 무엇을 사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다. 돈이 가치의 자인 까닭에, 우리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를 그것이 맞바꿀 돈의 양으로 헤아린다. 우리는 부유한 사람을 두고 그가 많은 값어치가 있다 하고, 가난한 사람을 두고 그가 아주 적은 돈의 값어치가 있다 한다. 검약한 사람이나 부유해지기를 애타게 바라는 사람은 돈을 사랑한다 하고, 무심한 사람이나 후한 사람이나 헤픈 사람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다. 부유해지는 것은 돈을 얻는 것이며, 한마디로 부와 돈은 흔한 말씨에서 어느 점에서나 같은 말로 여겨진다.
부유한 나라는 부유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돈이 넘치는 나라로 여겨지며, 어느 나라에 금과 은을 쌓아 올리는 것이 그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가장 손쉬운 길로 여겨진다. 아메리카를 찾아낸 뒤 한동안 스페인인이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처음 묻는 것은 그 근처에서 금이나 은을 찾을 수 있는지였다. 그들은 얻은 소식에 따라 그곳에 정주지를 세울 만한지, 또는 그 나라가 정복할 값이 있는지를 가늠하였다. 프랑스 국왕이 저 이름난 칭기즈 칸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사절로 보낸 수사 플라노 카르피니는, 타타르인이 자기에게 프랑스 왕국에 양과 소가 많으냐고 자주 묻는 것이 예사였다고 말한다.12 그들의 물음은 스페인인의 물음과 같은 목적을 지녔다. 그들은 그 나라가 정복할 값이 있을 만큼 부유한지 알고자 하였다. 타타르인 사이에서는 돈의 쓰임을 두루 알지 못하는 다른 모든 목자의 민족과 마찬가지로 가축이 교역의 연장이요 가치의 자다. 그러므로 그들에 따르면 부는 가축으로 되어 있었으니, 스페인인에 따르면 그것이 금과 은으로 되어 있었던 것과 같다. 둘 가운데 타타르인의 생각이 아마 진실에 더 가까웠다.
로크는 돈과 다른 동산 사이의 구별을 지적한다.13 그의 말로는 다른 모든 동산은 써 없앨 수 있는 성질이 아주 커서 그것으로 된 부는 크게 믿을 수 없으며, 한 해에 그것이 넘치는 나라가 아무것도 내보내지 않고도 오직 제 허비와 헤픔만으로 이듬해에 그것이 크게 모자랄 수 있다. 반대로 돈은 한결같은 벗이니, 그것이 손에서 손으로 돌아다닐지라도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만 막을 수 있다면 허비되고 써 없어지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그에 따르면 금과 은은 한 나라의 옮길 수 있는 부 가운데 가장 단단하고 알찬 부분이며, 그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까닭으로 그 금속을 불리는 것이 그 나라 정치경제학의 큰 목표가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한 나라가 온 세상에서 떼어 놓일 수 있다면 그 안에 돈이 얼마나 많이 또는 적게 돌든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 돈으로 돌려진 써 없앨 수 있는 재화는 더 많거나 더 적은 낱돈과 맞바뀔 뿐이며, 그 나라의 참된 부나 가난은 그 써 없앨 수 있는 재화가 넉넉한지 모자란지에 온전히 달려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인정한다. 그러나 바깥 나라와 이어져 있고 바깥에서 전쟁을 벌여야 하며 먼 나라에 함대와 군대를 두어야 하는 나라는 다르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들의 말로는 이것은 그들에게 삯을 줄 돈을 밖으로 보내지 않고는 할 수 없으며, 한 나라는 안에 돈이 많지 않으면 밖으로 많은 돈을 보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런 나라는 모두 평화로울 때에 금과 은을 쌓아 두려고 애써야 하니, 그리하여 일이 생길 때 바깥에서 전쟁을 벌일 밑감을 갖추게 된다.
이 두루 퍼진 생각 때문에 유럽의 여러 나라는 모두 제 나라에 금과 은을 쌓아 둘 온갖 길을 파고들었으나 얻은 것은 적었다. 유럽에 그 금속을 대어 주는 주된 광산의 임자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그것을 내보내는 것을 가장 모진 벌로 금하거나 꽤 많은 관세를 물렸다. 그런 금지는 옛적에 다른 대부분 유럽 나라의 정책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하였던 것 같다. 그것은 우리가 가장 있을 법하지 않다고 여길 곳, 곧 금이나 은을 왕국 밖으로 내가는 것을 무거운 벌로 금한 스코틀랜드의 몇몇 옛 의회 법령에서도 볼 수 있다. 같은 정책이 옛적에 프랑스와 잉글랜드에서도 자리 잡았다.
그 나라들이 상업 나라가 되었을 때 상인들은 이 금지가 여러 경우에 몹시 거북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제 나라로 들여오거나 다른 바깥 나라로 실어 갈 바깥 재화를, 다른 어떤 상품으로보다 금과 은으로 더 이롭게 사는 일이 잦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금지가 장사에 해롭다고 항의하였다.
그들은 첫째로 이렇게 내세웠다. 바깥 재화를 사기 위하여 금과 은을 내보내는 것이 왕국 안에 있는 그 금속의 양을 늘 줄이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그 양을 더러는 늘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깥 재화를 그 나라에서 더 많이 쓰게 되지 않는다면 그 재화를 바깥 나라로 다시 내보낼 수 있고, 거기서 큰 이윤에 팔아 그것을 사려고 처음에 보낸 것보다 훨씬 많은 보배를 되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먼은 대외 무역의 이 움직임을 농업의 씨 뿌리는 철과 거두는 철에 견준다.14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씨 뿌리는 철에 농사꾼이 좋은 곡물을 땅에 많이 내던지는 짓만 본다면, 우리는 그를 농사꾼이라기보다 미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애쓰는 일의 끝인 거두는 철의 수고를 헤아릴 때, 우리는 그가 한 일의 값과 넉넉한 늘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둘째로 이렇게 내세웠다. 이 금지는 금과 은을 내보내는 것을 막을 수 없으니, 그것은 그 가치에 견주어 부피가 작으므로 쉬이 몰래 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보내는 것은 그들이 무역 차액이라 부른 것에 알맞게 마음을 씀으로써만 막을 수 있다. 어느 나라가 들여온 것보다 큰 값을 내보냈을 때에는 차액이 바깥 나라에서 그 나라에 갚을 것이 되고, 그것은 금과 은으로 그 나라에 갚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왕국 안에 있는 그 금속의 양을 늘린다. 그러나 내보낸 것보다 큰 값을 들여왔을 때에는 거꾸로 된 차액이 바깥 나라에 갚을 것이 되고, 그것은 같은 길로 그들에게 갚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그 양을 줄인다. 이런 경우에 그 금속을 내보내는 것을 금하는 것은 그것을 막지 못하고, 다만 그것을 더 위태롭게 만들어 더 비싸게 만든다. 그리하여 환시세가 차액을 갚아야 하는 나라에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더 불리하게 돌아가니, 바깥 나라 앞으로 뗀 어음을 산 상인은 그것을 판 은행가에게 돈을 그곳으로 보내는 데 드는 자연스러운 위험과 수고와 비용만이 아니라 그 금지에서 생기는 남다른 위험까지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시세가 어느 나라에 불리할수록 무역 차액도 그 나라에 반드시 그만큼 더 불리해지니, 그 나라의 돈이 차액을 갚아야 할 나라의 돈에 견주어 반드시 그만큼 가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보기를 들어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사이의 환시세가 잉글랜드에 100분의 5 불리하다면, 네덜란드의 은 100온스를 받을 어음을 사려고 잉글랜드에서 은 105온스가 든다. 그러므로 잉글랜드의 은 105온스는 네덜란드의 은 100온스의 값어치밖에 없을 것이고 그만한 양의 네덜란드 재화만 살 것이나, 반대로 네덜란드의 은 100온스는 잉글랜드에서 105온스의 값어치가 있을 것이고 그만한 양의 잉글랜드 재화를 살 것이다. 네덜란드에 팔리는 잉글랜드 재화는 그만큼 싸게 팔리고 잉글랜드에 팔리는 네덜란드 재화는 그만큼 비싸게 팔릴 것이니, 그 환시세의 차이만큼 그러할 것이다. 한쪽은 그 차이만큼 네덜란드 돈을 잉글랜드로 덜 끌어들일 것이고, 다른 쪽은 그만큼 잉글랜드 돈을 네덜란드로 더 끌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무역 차액은 잉글랜드에 반드시 그만큼 더 불리해질 것이고, 더 많은 금과 은의 차액을 네덜란드로 내보내게 할 것이다.
그 논거는 얼마는 단단하고 얼마는 궤변이었다. 장사에서 금과 은을 내보내는 것이 그 나라에 이로울 수 있는 일이 잦다고 내세운 데까지는 단단하였다. 사사로운 사람들이 그것을 내보내는 데서 이로움을 찾아낼 때 어떤 금지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고 내세운 데에서도 단단하였다. 그러나 그 금속의 양을 지키거나 늘리는 것이, 그런 마음을 쓰지 않아도 장사의 자유가 알맞은 양을 어김없이 대어 주는 다른 어떤 쓸모 있는 상품의 양을 지키거나 늘리는 것보다 정부가 더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이라고 여긴 데에서는 궤변이었다. 또 높은 환시세가 그들이 불리한 무역 차액이라 부른 것을 반드시 크게 만들거나 더 많은 금과 은을 내보내게 만든다고 내세운 데에서도 아마 궤변이었다. 참으로 그 높은 시세는 바깥 나라에 치를 돈이 있는 상인들에게 몹시 불리하였다. 그들은 제 은행가가 그 나라들 앞으로 떼어 준 어음에 그만큼 더 비싸게 치렀다. 그러나 그 금지에서 생기는 위험이 은행가에게 남다른 비용을 일으킬 수는 있었으나, 그것이 반드시 그 나라에서 더 많은 돈을 실어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비용은 대개 그 나라 안에서, 곧 그 돈을 몰래 실어 내는 데 다 쓰였을 것이고, 어음으로 뗀 그 액수를 넘어 6펜스 한 닢을 더 내보내게 하는 일도 좀처럼 없었다. 또 높은 환시세는 상인들이 제 내보내기와 들여오기를 거의 맞먹게 하려고 애쓰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그리하여 이 높은 시세를 될 수 있는 대로 작은 액수에만 치르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높은 환시세는 바깥 재화의 값을 올림으로써 반드시 세금처럼 움직여 그 쓰임을 줄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들이 불리한 무역 차액이라 부른 것을, 따라서 금과 은을 내보내는 것을 늘리기보다 줄이는 데로 기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논거는 그러한 것이었음에도 그것이 말 건네진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그것은 상인들이 의회와 군주의 참의회와 귀족과 시골 지주에게 건넨 말이었고, 장사를 안다고 여겨진 사람들이 제 자신도 그 일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고 여긴 사람들에게 건넨 말이었다. 대외 무역이 나라를 부유하게 한다는 것은 경험이 귀족과 시골 지주에게도 상인에게와 마찬가지로 밝혀 주었으나, 어떻게 또는 어떤 길로 그리하는지는 그들 가운데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상인들은 그것이 어떤 길로 저희를 부유하게 하는지 더할 나위 없이 잘 알았으니, 그것을 아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길로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지 아는 것은 그들의 일이 아니었다. 그 주제는 그들이 대외 무역에 관한 법을 얼마 바꾸어 달라고 제 나라에 매달릴 일이 있을 때가 아니면 그들의 생각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에는 대외 무역이 낳는 이로운 결과와, 그때의 법이 그 결과를 어떻게 막고 있는지에 대하여 무언가 말할 필요가 생겼다. 그 일을 판가름할 재판관들에게는, 대외 무역이 나라에 돈을 들여오는데 문제의 법이 그것이 그렇지 않았다면 들여올 만큼 많이 들여오는 것을 막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설명으로 보였다. 그러므로 그 논거는 바라던 결과를 낳았다. 금과 은을 내보내는 것을 금하는 것이 프랑스와 잉글랜드에서 그 나라들 저마다의 주화에만 한정되었다. 바깥 주화와 금은 덩이를 내보내는 것은 자유로워졌다. 네덜란드와 다른 몇몇 곳에서는 이 자유가 그 나라의 주화에까지 넓혀졌다. 정부의 마음은 금과 은을 내보내는 것을 막는 데에서 돌아서서, 그 금속이 늘거나 줄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원인인 무역 차액을 살피는 데로 옮겨 갔다. 열매 없는 한 가지 마음씀에서 돌아서서, 훨씬 얽히고 훨씬 거북하며 딱 그만큼 열매 없는 다른 마음씀으로 옮겨 간 것이다. 먼의 책 제목인 『대외 무역으로 얻는 잉글랜드의 보배』는 잉글랜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상업 나라의 정치경제학에서도 으뜸가는 격언이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나라 안의 교역 곧 국내 무역, 같은 자본으로 가장 큰 수입을 낳고 그 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그 무역은 대외 무역에 딸린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것은 나라에 돈을 들여오지도 않고 밖으로 내가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그것이 잘되고 못되는 것이 에두르는 길로 대외 무역의 형편에 미치는 한을 빼면, 그것으로 더 부유해지지도 더 가난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제 광산이 없는 나라는 제 포도밭이 없는 나라가 제 포도주를 바깥 나라에서 끌어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 금과 은을 바깥 나라에서 끌어와야 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의 마음이 다른 쪽보다 한쪽에 더 쏠려야 할 까닭은 없는 듯하다. 포도주를 살 밑감이 있는 나라는 제가 필요한 포도주를 언제나 얻을 것이며, 금과 은을 살 밑감이 있는 나라는 그 금속이 모자라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값에 살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다른 모든 상품의 값인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상품이 그 금속의 값이다. 우리는 정부가 아무 마음을 쓰지 않아도 장사의 자유가 우리에게 필요한 포도주를 언제나 대어 줄 것임을 더할 나위 없이 마음 놓고 믿는다. 그와 똑같이 마음 놓고, 그것이 우리 상품을 돌리는 데든 다른 쓰임에든 우리가 살 수 있고 굴릴 수 있는 만큼의 금과 은을 언제나 대어 줄 것임을 믿어도 된다.
사람의 근면이 살 수도 있고 만들 수도 있는 모든 상품의 양은 어느 나라에서나 유효 수요에 따라, 곧 그것을 마련하여 장에 내오기 위하여 치러야 하는 지대와 노동과 이윤의 전부를 치를 뜻이 있는 사람들의 수요에 따라 저절로 갈라 맞추어진다. 그러나 이 유효 수요에 따라 금과 은보다 더 쉽고 더 딱 맞게 저절로 갈라 맞추어지는 상품은 없으니, 그 금속은 부피가 작고 가치가 커서 어떤 상품도 그보다 쉽게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곧 그것이 싼 곳에서 비싼 곳으로, 그것이 이 유효 수요를 넘치는 곳에서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보기를 들어 잉글랜드에 금을 더 얻으려는 유효 수요가 있다면, 우편선 한 척이 리스본에서 또는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어느 곳에서 금 50톤을 실어 올 수 있고 그것으로 500만 기니가 넘는 돈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값의 곡물에 대한 유효 수요가 있다면, 그것을 들여오려면 톤당 5기니로 쳐서 100만 톤의 배, 곧 1000톤짜리 배 1000척이 든다. 잉글랜드의 온 해군으로도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나라에 들여온 금과 은의 양이 유효 수요를 넘칠 때에는 정부가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그것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피를 부르는 온갖 법도 제 금과 은을 안에 붙들어 둘 수 없다. 페루와 브라질에서 끊임없이 들여오는 것이 그 나라들의 유효 수요를 넘쳐, 그곳에서 그 금속의 값을 이웃 나라의 값 아래로 떨어뜨린다. 반대로 어느 특정한 나라에서 그 양이 유효 수요에 미치지 못하여 그 값이 이웃 나라의 값 위로 올랐다면, 정부는 그것을 들여오려고 아무런 애를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정부가 그것을 들여오지 못하게 애를 쓴다 하여도 그것을 이루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스파르타인이 그것을 살 밑감을 갖추었을 때, 그 금속은 리쿠르고스의 법이 라케다이몬 곧 스파르타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세운 온갖 울을 뚫고 들어왔다. 세관의 피를 부르는 온갖 법도 네덜란드와 예테보리 동인도회사의 차를 들여오는 것을 막지 못하니, 그것이 영국 회사의 것보다 얼마 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 한 파운드(무게)는 그것에 흔히 치르는 가장 높은 값인 16실링을 은으로 놓은 것의 100배쯤 되는 부피이고 같은 값을 금으로 놓은 것의 2,000배가 넘는 부피이니, 따라서 딱 그만큼 배로 몰래 실어 내기 어렵다.
그 금속의 값이 다른 대부분 상품의 값처럼 끊임없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것이 넘치는 곳에서 그것이 필요한 곳으로 쉽게 옮겨 갈 수 있는 데에 얼마쯤 힘입은 것인데, 다른 상품은 부피 때문에 장에 그것이 넘치거나 모자랄 때 자리를 옮기지 못한다. 참으로 그 금속의 값도 달라짐에서 아예 벗어나 있지는 않으나, 그것이 겪는 바뀜은 대개 느리고 차츰 일어나며 고르다. 보기를 들어 유럽에서는 아마 터가 그리 단단하지 않은 채로, 스페인령 서인도에서 끊임없이 들여오는 것 때문에 이 세기와 앞 세기 동안 그것의 가치가 꾸준히 그러나 차츰 떨어져 왔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금과 은의 값에 갑작스러운 바뀜을 일으켜 다른 모든 상품의 돈 값을 단번에 느낄 만큼 눈에 띄게 올리거나 내리려면, 아메리카를 찾아낸 일이 일으킨 것과 같은 교역의 격변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에도 금과 은이 어느 때든 그것을 살 밑감이 있는 나라에서 모자라게 된다면, 그 자리를 메울 방편이 다른 거의 어떤 상품보다 많다. 제조업의 밑감이 모자라면 산업이 멈출 수밖에 없다. 식료품이 모자라면 사람들이 굶주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돈이 모자라면 물물 교환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이니, 다만 꽤 거북할 것이다. 외상으로 사고팔면서 여러 거래하는 사람들이 달마다 또는 해마다 서로 제 외상을 맞셈하면, 그것이 덜 거북하게 그 자리를 메울 것이다. 잘 갈라 맞춘 지폐는 아무런 거북함도 없이, 나아가 어떤 경우에는 얼마간 이로움까지 주면서 그 자리를 메울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점에서 보아도 정부의 마음이 어느 나라 안의 돈의 양을 지키거나 늘리는 것을 살피는 데로 향할 때보다 더 쓸데없이 쓰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돈이 모자란다는 하소연보다 흔한 것은 없다. 돈은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살 밑감도 없고 그것을 빌릴 신용도 없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모자랄 수밖에 없다. 그 둘 가운데 하나라도 있는 사람은 제가 필요한 돈이든 포도주든 모자라는 일이 좀처럼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모자란다는 이 하소연이 앞뒤 가리지 않고 헤프게 쓰는 사람들에게만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더러 한 상업 도시와 그 근처 시골 전체에 두루 퍼진다. 거래를 지나치게 벌이는 것이 그 흔한 원인이다. 벌인 일이 제 자본에 걸맞지 않았던 착실한 사람들도, 비용이 제 수입에 걸맞지 않았던 낭비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살 밑감도 그것을 빌릴 신용도 없게 되기 쉽다. 벌인 일이 열매를 맺기 전에 그들의 자산이 사라지고 그와 함께 신용도 사라진다. 그들은 돈을 빌리려고 곳곳을 뛰어다니고, 누구나 그들에게 빌려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두루 퍼진, 돈이 모자란다는 하소연조차도 예사로운 수의 금은 낱돈이 그 나라에 돌지 않고 있음을 늘 밝혀 주는 것은 아니며, 다만 그 낱돈을 얻으려 하는 많은 사람이 그것에 내줄 것이 없음을 밝혀 줄 뿐이다. 장사의 이윤이 예사보다 클 때에는 거래를 지나치게 벌이는 것이 크게 거래하는 사람과 작게 거래하는 사람 모두에게 두루 퍼진 잘못이 된다. 그들은 늘 예사보다 많은 돈을 바깥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도 밖에서도 예사롭지 않게 많은 재화를 외상으로 사서 그것을 어느 먼 장으로 보내며 갚으라는 요구가 오기 전에 회수가 들어오기를 바란다. 그 요구가 회수보다 먼저 오고, 그들에게는 돈을 살 것도 빌릴 단단한 담보로 내놓을 것도 손에 없다. 돈이 모자란다는 두루 퍼진 하소연을 일으키는 것은 금과 은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빌리기 어렵고 그들의 빚쟁이가 갚음을 받기 어려운 데 있다.
부가 돈이나 금과 은으로 되어 있지 않고 돈이 사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돈은 사는 데에만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굳이 진지하게 밝히려 드는 것은 너무 우스꽝스러운 일일 것이다. 돈이 언제나 나라의 자본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은 의심할 것 없으나, 그것이 대개 그 가운데 작은 부분만을 이루고 언제나 가장 이윤 없는 부분을 이룬다는 것은 이미 밝혀 놓았다.
상인이 돈으로 재화를 사는 것이 재화로 돈을 사는 것보다 대개 더 쉽다고 여기는 것은, 부가 재화보다 돈에 더 본디부터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돈이 교역의 알려지고 자리 잡은 연장이어서 무엇이든 그것과 맞바꾸어 선선히 주어지지만 그것은 무엇과 맞바꾸어서든 그만큼 선선히 얻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화의 큰 몫은 돈보다 쉬이 상하므로 그가 그것을 지니고 있다가 훨씬 큰 손실을 입는 일이 잦을 수 있다. 또 제 재화를 손에 쥐고 있을 때에는, 그 값을 제 금고에 넣어 두었을 때보다 제가 대지 못할 돈 요구를 받기 쉽다. 이 모든 것 위에 더하여 그의 이윤은 사는 데에서보다 파는 데에서 더 곧바로 생긴다. 이 모든 까닭으로 그는 대개 제 돈을 재화와 맞바꾸기보다 제 재화를 돈과 맞바꾸기를 훨씬 애타게 바란다. 그러나 제 창고에 재화가 넘치는 어떤 상인 한 사람은 더러 그것을 때맞추어 팔지 못하여 망할 수 있어도, 한 민족이나 한 나라는 같은 일을 겪지 않는다. 상인 한 사람의 온 자본은 돈을 사려고 마련된 상하기 쉬운 재화로 되어 있는 일이 잦다. 그러나 어느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한 해 생산물 가운데 이웃에게서 금과 은을 사려고 마련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몫에 지나지 않는다. 훨씬 큰 몫은 저희끼리 돌려지고 써 없어지며, 바깥으로 보내는 남은 것 가운데에서도 큰 몫은 대개 다른 바깥 재화를 사려고 마련된 것이다. 그러므로 금과 은을 그것을 사려고 마련된 재화와 맞바꾸어 얻을 수 없다 하여도 그 민족이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참으로 얼마간 손실과 거북함을 입고, 돈의 자리를 메우는 데 필요한 방편 가운데 얼마를 어쩔 수 없이 쓰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토지와 노동의 한 해 생산물은 예사와 같거나 아주 비슷할 것이니, 같거나 아주 비슷하게 써 없앨 자본이 그것을 떠받치는 데 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재화가 돈이 재화를 끌어오는 것만큼 언제나 선선히 돈을 끌어오지는 않는다 하여도, 길게 보면 재화가 돈을 끌어오는 것이 돈이 재화를 끌어오는 것보다 더 어김없다. 재화는 돈을 사는 것 말고도 다른 여러 목적에 쓰일 수 있으나, 돈은 재화를 사는 것 말고 다른 아무 목적에도 쓰일 수 없다. 그러므로 돈은 반드시 재화를 뒤따라 달리나, 재화는 늘 또는 반드시 돈을 뒤따라 달리지는 않는다. 사는 사람은 늘 다시 팔려는 뜻을 품는 것이 아니라 쓰거나 써 없애려는 뜻을 품는 일이 잦으나, 파는 사람은 늘 다시 사려는 뜻을 품는다. 한쪽은 제 일을 다 마친 일이 잦을 수 있으나, 다른 쪽은 제 일의 절반보다 많이 마친 적이 결코 없다. 사람이 돈을 바라는 것은 그것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위해서다.
써 없앨 수 있는 상품은 머지않아 없어지지만 금과 은은 더 오래가는 성질이며, 이렇게 끊임없이 내보내는 일이 없었다면 여러 세대에 걸쳐 쌓여 그 나라의 참된 부를 믿기 어려울 만큼 늘려 놓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렇게 오래가는 상품을 그렇게 상하기 쉬운 상품과 맞바꾸는 장사보다 어느 나라에 더 불리한 것은 없다고 내세운다. 그러나 우리는 잉글랜드의 철물을 프랑스의 포도주와 맞바꾸는 장사를 불리하다고 여기지 않는데, 철물은 아주 오래가는 상품이며 이렇게 끊임없이 내보내는 일이 없었다면 그것도 여러 세대에 걸쳐 쌓여 그 나라의 솥과 냄비를 믿기 어려울 만큼 늘려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간의 수는 어느 나라에서나 그것에 대한 쓰임에 따라 한이 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곳에서 흔히 먹는 먹을 것을 익히는 데 필요한 것보다 많은 솥과 냄비를 두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는 것, 먹을 것의 양이 늘어난다면 솥과 냄비의 수도 그와 함께 선선히 늘어날 것이며 늘어난 먹을 것의 일부가 그것을 사는 데 또는 그것을 만드는 일을 하는 일꾼을 더 먹이는 데 쓰일 것이라는 것은 곧바로 떠오른다. 그와 마찬가지로 곧바로 떠올라야 할 것이 있다. 금과 은의 양도 어느 나라에서나 그 금속에 대한 쓰임에 따라 한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그 쓰임은 주화로서 상품을 돌리는 데 있고 은그릇으로서 일종의 집안 세간 노릇을 하는 데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주화의 양은 그것으로 돌릴 상품의 가치에 따라 갈라 맞추어진다. 그 가치를 늘려 보라, 그러면 곧 그 일부가 바깥으로 보내져 그 상품을 돌리는 데 필요한 주화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더 얻어 올 것이다. 은그릇의 양은 그런 갈래의 호사를 저에게 허락하기로 고른 사사로운 집안의 수와 부에 따라 갈라 맞추어진다. 그런 집안의 수와 부를 늘려 보라, 그러면 이 늘어난 부의 일부가 은그릇을 찾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그것을 더 사는 데 쓰일 것이 아주 그럴듯하다. 어느 나라의 부를 필요 없는 양의 금과 은을 들여오거나 그 안에 붙들어 둠으로써 늘리려 드는 것은, 사사로운 집안에 필요 없는 수의 부엌 세간을 두게 하여 그 집안이 잘 먹고 지내는 것을 늘리려 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이없다. 그 필요 없는 세간을 사는 비용은 그 집안 식료품의 양이나 좋음을 늘리기는커녕 줄일 것이니, 그와 마찬가지로 필요 없는 양의 금과 은을 사는 비용은 어느 나라에서나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그들을 부양하고 부리는 부를 반드시 그만큼 줄일 것이다. 금과 은은 주화의 모습이든 은그릇의 모습이든 부엌의 세간과 다름없는 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의 쓰임을 늘려 보라, 그것으로 돌리고 다루고 마련할 써 없앨 수 있는 상품을 늘려 보라, 그러면 그대는 어김없이 그 양을 늘릴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남다른 수단으로 그 양을 늘리려 든다면, 그대는 그만큼 어김없이 그 쓰임을 줄일 것이고 그 양마저 줄일 것이니, 그 금속의 양은 그 쓰임이 요구하는 것보다 결코 클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느 때든 이 양을 넘어 쌓인다면, 그것을 실어 옮기는 것이 그토록 쉽고 그것이 놀며 쓰이지 않는 데서 오는 손실이 그토록 크므로, 어떤 법도 그것이 곧바로 나라 밖으로 보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나라가 바깥에서 전쟁을 벌이고 먼 나라에 함대와 군대를 두려면 금과 은을 쌓아 두어야 하는 것이 늘 필요한 일은 아니다. 함대와 군대는 금과 은으로 부양되는 것이 아니라 써 없앨 수 있는 재화로 부양된다. 제 국내 산업의 한 해 생산물에서, 곧 제 토지와 노동과 써 없앨 수 있는 자산에서 해마다 생기는 수입에서 그 써 없앨 수 있는 재화를 먼 나라에서 살 밑감이 있는 민족은 그곳에서 바깥 전쟁을 벌일 수 있다.
어느 민족은 먼 나라에서 군대의 삯과 식료품을 세 가지 다른 길로 살 수 있다. 첫째로 제가 쌓아 둔 금과 은의 일부를 바깥으로 보내는 것, 둘째로 제 제조품의 한 해 생산물의 일부를 보내는 것, 끝으로 제 원생산물의 한 해 생산물의 일부를 보내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 쌓이거나 저장되어 있다고 제대로 볼 수 있는 금과 은은 세 부분으로 갈라 볼 수 있다. 첫째는 돌고 있는 돈이고, 둘째는 사사로운 집안의 은그릇이며, 끝으로 여러 해의 절약으로 모아 군주의 국고에 넣어 둔 돈이다.
그 나라에 돌고 있는 돈에서 많이 덜어 낼 수 있는 일은 좀처럼 있을 수 없으니, 그 안에 넘치는 것이 많은 일이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 해마다 사고파는 재화의 가치는 그것을 돌리고 그것을 제 쓰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위하여 일정한 양의 돈을 요구하며, 그보다 많은 돈에는 일자리를 줄 수 없다. 돌림의 물길은 그것을 채울 만한 액수를 반드시 제게로 끌어들이며, 그보다 많은 것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깥 전쟁이 있을 때에는 이 물길에서 얼마가 대개 빠져나간다. 많은 사람이 바깥에서 부양되므로 안에서 부양되는 사람이 줄어든다. 그곳에서 돌려지는 재화가 줄고, 그것을 돌리는 데 필요한 돈이 적어진다. 또 그런 때에는 잉글랜드에서 재무부 증권과 해군 어음과 은행권 같은 어떤 갈래의 지폐가 예사롭지 않게 많이 발행되는 것이 대개의 일이며, 돌고 있는 금과 은의 자리를 메움으로써 그것을 더 많이 바깥으로 보낼 기회를 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비용이 크고 여러 해 이어지는 바깥 전쟁을 치르는 데 보잘것없는 밑감밖에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사로운 집안의 은그릇을 녹이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그보다도 대수롭지 않은 밑감임이 드러났다. 프랑스인은 지난 전쟁이 시작될 때 이 방편에서 그 세공을 잃은 손실을 메울 만한 이로움도 얻지 못하였다.
군주가 쌓아 둔 보배는 예전 시절에 훨씬 크고 훨씬 오래가는 밑감이 되어 주었다. 오늘날에는 프로이센 국왕을 빼면 보배를 쌓아 두는 것이 유럽 군주들의 정책에 든 일이 아닌 듯하다.
이 세기의 바깥 전쟁, 아마 역사가 적어 놓은 가장 비용이 큰 전쟁을 떠받친 자금은 돌고 있는 돈이나 사사로운 집안의 은그릇이나 군주의 보배를 내보내는 데 거의 기대지 않았던 것 같다.15 지난 프랑스 전쟁은 영국에 90,000,000파운드가 넘는 비용을 들게 하였는데, 여기에는 새로 진 빚 75,000,000파운드만이 아니라 파운드당 2실링이 더 붙은 토지세와 감채 기금에서 해마다 빌린 것까지 들어 있다. 이 비용의 3분의 2가 넘는 몫이 먼 나라에서, 곧 독일과 포르투갈과 아메리카와 지중해의 항구와 동인도와 서인도에서 쓰였다. 잉글랜드의 국왕들에게는 쌓아 둔 보배가 없었다. 우리는 은그릇을 예사롭지 않게 많이 녹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 나라에 돌고 있는 금과 은은 18,000,000파운드를 넘지 않는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근래에 금화를 다시 찍은 뒤로 그것이 꽤 낮게 매겨졌던 것으로 믿어진다. 그러므로 내가 보거나 들은 기억이 있는 가장 부풀린 셈을 따라서, 금과 은을 합쳐 그것이 30,000,000파운드에 이르렀다고 하여 보자. 그 전쟁을 우리 돈으로 치렀다면, 이 셈을 따르더라도 그 전부가 여섯 해에서 일곱 해 사이의 기간에 적어도 두 번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어야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여긴다면, 정부가 돈을 지키는 것을 살피는 일이 얼마나 쓸데없는지를 밝혀 주는 가장 결정적인 논거가 될 것이다. 이 가정에 따르면 그 나라의 온 돈이 그토록 짧은 기간에 두 번이나 그 나라에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는데도, 아무도 그 일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림의 물길은 이 기간 어느 때에도 예사보다 비어 보인 적이 없었다. 돈에 치를 밑감이 있는 사람으로서 돈이 모자란 사람은 적었다. 참으로 대외 무역의 이윤은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내내, 더구나 그 끝으로 갈수록 예사보다 컸다. 이것이 언제나 일으키는 것을 일으켰으니, 곧 영국의 모든 항구에서 두루 거래를 지나치게 벌이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거래를 지나치게 벌이는 뒤에 언제나 따라오는 돈이 모자란다는 예사로운 하소연을 일으켰다. 그것을 살 밑감도 빌릴 신용도 없는 많은 사람이 그것을 얻으려 하였고, 빚진 사람이 빌리기 어려웠으므로 빚쟁이가 갚음을 받기 어려웠다. 그러나 금과 은은 대개 그 값을 내놓을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값에 얻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지난 전쟁의 엄청난 비용은 주로 금과 은을 내보내어 치른 것이 아니라 어떤 갈래의 영국 상품을 내보내어 치른 것일 수밖에 없다. 정부나 그 아래에서 일한 사람들이 어느 바깥 나라로 돈을 보내는 일을 상인과 맺었을 때, 그는 제가 어음을 떼어 준 바깥 거래 상대에게 금과 은보다 상품을 바깥으로 보내어 갚으려고 애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영국의 상품이 그 나라에서 수요가 없으면, 그는 그 나라 앞으로 뗀 어음을 살 수 있는 다른 어느 나라로 그것을 보내려고 애썼을 것이다. 상품을 실어 옮기는 것은 그 장에 알맞게 맞춘 것이라면 언제나 꽤 큰 이윤을 낳으나, 금과 은을 실어 옮기는 것은 이윤을 낳는 일이 거의 없다. 그 금속을 바깥 상품을 사려고 바깥으로 보낼 때, 상인의 이윤은 사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회수된 것을 파는 데에서 생긴다. 그러나 그것을 오직 빚을 갚으려고 바깥으로 보낼 때에는 그에게 회수되는 것이 없고 따라서 이윤도 없다. 그러므로 그가 제 바깥 빚을 금과 은을 내보내는 것보다 상품을 내보내는 것으로 갚을 길을 찾아내려고 제 재주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지난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영국 재화가 아무 회수도 되가져오지 않으면서 많이 내보내진 것을 『나라의 오늘 형편』의 글쓴이가 지적하고 있다.
위에 말한 세 갈래의 금과 은 말고도, 모든 큰 상업 나라에는 대외 무역을 위하여 번갈아 들여오고 내보내는 금은 덩이가 꽤 많다. 이 금은 덩이는 나라의 주화가 어느 나라에서나 도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상업 나라 사이를 도므로, 저 큰 상업 공화국의 돈으로 볼 수 있다. 나라의 주화는 그 특정한 나라의 경계 안에서 돌려지는 상품에서 그 움직임과 방향을 받고, 상업 공화국의 돈은 여러 나라 사이에서 돌려지는 상품에서 그것을 받는다. 둘 다 맞바꿈을 손쉽게 하는 데 쓰이니, 하나는 같은 나라의 여러 사람 사이의 맞바꿈에 쓰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민족의 사람들 사이의 맞바꿈에 쓰인다. 이 큰 상업 공화국의 돈 가운데 일부가 지난 전쟁을 치르는 데 쓰였을 수 있고 아마 쓰였을 것이다. 두루 퍼진 전쟁이 있을 때에는 그것이 깊은 평화 속에서 흔히 따르는 것과 다른 움직임과 방향을 받아, 전쟁터 근처에서 더 많이 돌고 그곳과 이웃 나라에서 여러 군대의 삯과 식료품을 사는 데 더 많이 쓰인다고 여기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상업 공화국의 돈 가운데 영국이 해마다 이렇게 굴린 부분이 얼마이든, 그것은 영국 상품으로든 그 상품으로 산 다른 무엇으로든 해마다 사들인 것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를 다시 상품으로, 곧 우리가 전쟁을 치를 수 있게 해 준 마지막 밑감인 그 나라의 토지와 노동의 한 해 생산물로 데려간다. 참으로 그토록 큰 한 해 비용이 큰 한 해 생산물에서 치러졌을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것이 자연스럽다. 보기를 들어 1761년의 비용은 19,000,000파운드가 넘었다. 어떤 쌓아 둔 것도 그토록 큰 한 해의 헤픔을 떠받칠 수 없었을 것이다. 금과 은조차 그것을 떠받칠 만한 한 해 생산물이 없다. 가장 나은 셈에 따르면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에 해마다 들여오는 금과 은 전부가 흔히 6,000,000파운드 스털링을 크게 넘지 않는데, 이것은 어떤 해에는 지난 전쟁의 넉 달 비용도 채 치르지 못하였을 것이다.
먼 나라로 실어 보내어 거기서 군대의 삯과 식료품을 사거나, 그것을 사는 데 쓸 상업 공화국의 돈 얼마를 사기에 가장 알맞은 상품은 좀 곱고 좀 잘 다듬은 제조품인 듯한데, 그것은 작은 부피에 큰 가치를 담고 있어 적은 비용으로 먼 곳까지 내보낼 수 있다. 그 산업이 그런 제조품을 해마다 크게 남기고 그것을 흔히 바깥 나라로 내보내는 나라는, 금과 은을 꽤 많이 내보내지 않고도, 아니 내보낼 만한 양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비용이 아주 큰 바깥 전쟁을 여러 해 치를 수 있다. 참으로 이런 경우에 그 제조품의 한 해 남는 것 가운데 꽤 큰 몫은 그 나라에 아무 회수도 되가져오지 않고 내보내질 수밖에 없으나, 상인에게는 회수를 가져다준다. 정부가 군대의 삯과 식료품을 그곳에서 사려고 상인에게서 바깥 나라 앞으로 뗀 어음을 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남는 것의 일부는 여전히 회수를 되가져올 수 있다. 제조업자들은 전쟁 동안 두 갈래의 수요를 받아, 첫째로 군대의 삯과 식료품을 위하여 바깥 나라 앞으로 뗀 어음을 갚으려고 바깥으로 보낼 재화를 만들도록, 둘째로 그 나라에서 흔히 써 온 예사로운 회수 물품을 사기 위하여 필요한 재화를 만들도록 불림을 받는다. 그러므로 가장 헐어 내는 바깥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제조업의 큰 몫이 크게 흥하는 일이 잦을 수 있고, 반대로 평화가 돌아오면 그것이 기울 수 있다. 그것은 제 나라가 허물어지는 가운데에서 흥하고 제 나라의 번영이 돌아올 때 삭기 시작할 수 있다. 지난 전쟁 동안과 평화가 온 뒤 얼마 동안 영국 제조업의 여러 갈래가 처한 서로 다른 형편이, 방금 말한 것을 보여 주는 보기가 될 수 있다.
비용이 크거나 오래 이어지는 바깥 전쟁은 흙의 원생산물을 내보내는 것으로는 편하게 치를 수 없을 것이다. 군대의 삯과 식료품을 살 만한 양의 원생산물을 바깥 나라로 보내는 비용이 너무 클 것이다. 또 제 주민의 생계에 넉넉한 것보다 훨씬 많은 원생산물을 내는 나라는 적다. 그러므로 그것을 꽤 많이 바깥으로 보내는 것은 백성에게 필요한 생계의 일부를 바깥으로 보내는 것이 될 것이다. 제조품을 내보내는 것은 다르다. 그것에 부린 사람들을 먹이는 것은 안에 남고, 그들의 일에서 남는 부분만 내보내진다. 흄은 잉글랜드의 옛 국왕들이 오래 이어지는 바깥 전쟁을 끊김 없이 치를 힘이 없었다는 것을 자주 눈여겨본다. 그 시절 잉글랜드 사람들에게는 바깥 나라에서 제 군대의 삯과 식료품을 살 밑감으로, 안에서 쓰는 것에서 꽤 많이 덜어 낼 수 없는 흙의 원생산물 말고는, 또는 원생산물과 마찬가지로 실어 옮기는 비용이 너무 큰 가장 거친 갈래의 제조품 몇 가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힘없음은 돈이 모자라서 생긴 것이 아니라 좀 곱고 좀 잘 다듬은 제조품이 모자라서 생긴 것이다. 사고파는 일은 그때 잉글랜드에서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돈으로 이루어졌다. 돌고 있는 돈의 양은 그때 흔히 이루어진 사고팖의 수와 가치에 대하여, 오늘날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것과 같은 비를 지녔을 수밖에 없다. 아니 그보다 큰 비를 지녔을 수밖에 없으니, 그때에는 오늘날 금과 은이 하는 일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종이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역과 제조업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민족 사이에서 주권자는 남다른 일이 있을 때 제 백성에게서 꽤 큰 도움을 끌어낼 수 있는 일이 좀처럼 없으니, 그 까닭은 뒤에 밝히겠다. 그러므로 그런 나라에서 그는 그런 급한 일에 맞설 유일한 밑감으로 보배를 쌓아 두려고 대개 애쓴다. 이 필요와 따로 보아도, 그는 그런 처지에서 쌓아 두기에 필요한 절약으로 자연히 기울어진다. 그 소박한 형편에서는 주권자의 비용조차 궁정의 번드르르한 치장을 즐기는 허영에 이끌리지 않고, 제 차지인에게 베푸는 은혜와 제 가신에게 베푸는 손님 대접에 쓰인다. 그러나 은혜와 손님 대접은 헤픔으로 이어지는 일이 아주 드물지만, 허영은 거의 언제나 그리로 이어진다. 따라서 타타르의 우두머리는 누구나 보배를 지니고 있다. 카를 12세의 이름난 동맹이었던 우크라이나 코자크의 우두머리 마제파의 보배는 아주 컸다고 한다. 메로빙거 혈통의 프랑스 국왕들은 모두 보배를 지녔다. 그들이 제 왕국을 여러 자식에게 갈라 줄 때 제 보배도 갈라 주었다. 색슨의 군주들과 정복 뒤의 첫 국왕들도 마찬가지로 보배를 쌓아 두었던 것 같다. 새 치세가 시작될 때마다 첫 공적은 대개 앞선 국왕의 보배를 차지하는 것이었으니, 왕위를 잇는 것을 굳히는 가장 요긴한 조치였기 때문이다. 개량되고 상업이 이루어진 나라의 주권자는 보배를 쌓아 둘 같은 필요 아래 있지 않으니, 대개 남다른 일이 있을 때 제 백성에게서 남다른 도움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그리할 마음도 덜하다. 그들은 자연히, 아마 반드시 그 시대의 흐름을 따르며, 그들의 비용은 제 영토 안 다른 모든 큰 임자의 비용을 이끄는 것과 같은 헤픈 허영에 갈라 맞추어지게 된다. 그 궁정의 대수롭지 않은 겉치레는 날마다 더 번드르르해지고, 그 비용은 쌓아 두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더 요긴한 비용에 마련된 자금까지 잠식하는 일이 잦다. 데르킬리다스가 페르시아 궁정에 대하여 한 말, 곧 자기는 그곳에서 화려함은 많고 힘은 적으며 하인은 많고 병사는 적은 것을 보았다는 말은, 유럽의 여러 군주의 궁정에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주
1. 옮긴이 — 데이비드 흄(1711~1776)은 스미스와 가까이 지낸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역사가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의 『잉글랜드사』와 「교역에 대하여」 같은 글이다.
2. 옮긴이 — 가신은 영주의 집에 딸려 그 보호와 먹거리를 받고 무력과 시봉으로 섬긴 사람들이다. 하인처럼 집안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싸울 때 영주의 무리를 이루었다. 딸린 사람은 그보다 넓게 영주에게 매여 사는 사람 모두를 가리킨다.
3. 옮긴이 — 웨스트민스터 홀은 1097년에 짓기 시작한 잉글랜드 왕궁의 큰 방이다. 윌리엄 루퍼스는 윌리엄 2세(재위 1087~1100)의 별명이고, 토머스 베켓(1120?~1170)은 헨리 2세의 대법관을 지내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사람이며, 여기 말하는 워릭 백작은 리처드 네빌(1428~1471)이다. 포코크 박사는 동방을 돌아본 기록을 남긴 리처드 포코크(1704~1765)다.
4. 옮긴이 — 임의 차지인은 기한을 정하지 않고 땅을 부치는 사람으로, 지주가 마음먹으면 언제든 내보낼 수 있었다. 예속 농민 신분은 몸이 영주의 땅에 얽매여 그 허락 없이 떠날 수 없는 처지를 말한다. 면역 지대는 부역을 면하는 대신 무는 아주 적은 액수의 지대로, 땅에 대한 보유를 확인해 주는 표시 구실을 하였다.
5. 옮긴이 — 1파운드는 20실링,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크라운은 5실링짜리 은돈이고 기니는 21실링짜리 금돈이다. 오늘날 값으로 환산하지 않는다. 스미스의 논증은 절대액이 아니라 액수 사이의 비율에 걸려 있다.
6. 옮긴이 — 자유 소유는 라틴어 알로디움을 옮긴 것으로, 위에 아무 상전도 없이 제 것으로 온전히 가지는 토지 보유를 말한다. 봉신이 상전에게서 받아 복무의 의무를 지고 가지는 봉토 보유와 맞선다.
7. 옮긴이 — 레갈리티 영주는 스코틀랜드에서 국왕의 재판권까지 넘겨받아 제 영지에서 중죄를 다스린 영주이고, 직속 차지인은 국왕에게서 곧바로 토지를 받은 사람이며, 봉신은 다시 그 아래에서 토지를 받아 복무의 의무를 진 사람이다. 치안 판사는 주 단위에서 경범을 다스리고 치안을 맡은 직함으로, 이 책의 「행정관」과는 다른 자리다. 스코틀랜드의 이런 세습 재판권은 1747년에 없어졌다.
8. 옮긴이 — 저본은 이 자리를 「더 가까이 가지 않을 것이고」로 적었다. 그러나 토지가 독점 가격에 팔리지 않게 되면 지대가 산 값의 이자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이 이 문단의 논증이므로, 다른 판본이 적은 대로 「더 가까이 갈 것이고」로 옮겼다.
9. 옮긴이 — 샤를 8세(1470~1498)는 프랑스 국왕으로, 1494년에 나폴리 왕위를 주장하며 이탈리아로 쳐들어가 이탈리아 전쟁의 첫머리를 열었다. 신성로마 황제 카를 5세와는 다른 사람이다.
10. 옮긴이 —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1483~1540)는 피렌체의 정치가이자 역사가로, 『이탈리아사』를 남겼다. 스미스가 「가장 슬기롭고 가장 말을 아끼는 역사가」라 부르는 사람이 이 사람이다.
11. 옮긴이 — 한자 도시는 13세기부터 북해와 발트해의 교역을 함께 쥐려고 동맹을 맺은 독일 북부의 도시들이다. 뤼베크와 함부르크와 브레멘이 그 가운데 크게 자란 곳이고, 17세기에 이르러 동맹은 흩어졌다.
12. 옮긴이 — 조반니 다 피안 델 카르피네(1180?~1252)는 프란치스코회 수사로, 1245년에 교황 인노첸티우스 4세가 몽골에 보낸 사절이다. 저본은 프랑스 국왕이 보냈다고 적었다. 칭기즈 칸(1162?~1227)은 몽골 제국을 세운 사람이다.
13. 옮긴이 — 존 로크(1632~1704)는 잉글랜드의 철학자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가 1692년에 낸 『이자와 화폐 가치 인하에 관한 몇 가지 고찰』이다.
14. 옮긴이 — 토머스 먼(1571~1641)은 동인도회사의 이사를 지낸 상인으로, 무역 차액을 내세운 중상주의 저술가 가운데 가장 이름난 사람이다. 그의 『대외 무역으로 얻는 잉글랜드의 보배』는 1630년 무렵에 써서 1664년에 나왔다.
15. 옮긴이 — 「지난 프랑스 전쟁」은 7년 전쟁(1756~1763)을 말한다. 감채 기금은 1717년에 나라의 빚을 갚으려고 세운 기금이고, 재무부 증권은 나라가 짧은 기간 돈을 빌리려고 떼어 준 증서이며, 해군 어음은 해군이 물자와 품값을 뒤에 갚기로 하고 떼어 준 어음이다. 「파운드당 2실링」은 토지에서 나오는 값 1파운드마다 2실링, 곧 10분의 1을 걷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