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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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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토지의 지대에 대하여

토지를 쓰는 값으로 물리는 것으로 볼 때, 지대는 그 토지가 놓인 실제 사정에서 차지인(땅을 빌려 쓰는 사람)이 물 수 있는 가장 높은 값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차지 계약의 조건을 매길 때 지주는, 차지인이 씨앗을 대고 노동에 값을 물고 가축과 그 밖의 농사 도구를 사서 건사하는 밑이 되는 자산을 지탱하기에 넉넉한 만큼과 그 근방에서 농사 자산이 예사로 얻는 이윤을 더한 것보다 더 큰 생산물의 몫은 그에게 남겨 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것은 차지인이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만족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몫임이 분명하며, 지주가 그보다 더 많이 남겨 줄 마음을 먹는 일은 좀처럼 없다. 생산물 가운데, 또는 같은 말이지만 그 값 가운데 이 몫을 넘는 부분은 무엇이든 지주가 자기 토지의 지대로 제 것으로 남겨 두려고 애쓰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것이 곧 그 토지가 놓인 실제 사정에서 차지인이 물 수 있는 가장 높은 값임이 분명하다. 물론 지주의 너그러움이, 더 잦게는 그의 무지가 이 몫보다 얼마쯤 적은 것을 더러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한다. 또 더 드물기는 하나 차지인의 무지가 그로 하여금 근방의 농사 자산이 예사로 얻는 이윤보다 얼마쯤 더 많이 물기로 하거나 얼마쯤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게 만드는 일도 있다. 그러나 이 몫은 여전히 토지의 자연 지대, 곧 토지가 대개 그 값으로 세놓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보아야 할 지대로 여길 수 있다.

토지의 지대란 지주가 그 토지를 개량하느라 들인 자산에 대한 웬만한 이윤이나 이자에 지나지 않는 일이 잦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얼마쯤 사실일 수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느 때에도 얼마쯤 사실인 정도를 넘어서는 일은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지주는 개량하지 않은 토지에도 지대를 요구하며, 개량에 든 비용에 대한 이자나 이윤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대개 이 본래의 지대에 덧붙는다. 게다가 그런 개량이 언제나 지주의 자산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더러는 차지인의 자산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도 차지 계약을 새로 맺을 때가 되면 지주는 그 개량이 모두 자기 자산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똑같은 지대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예사다.

지주는 사람의 개량이 아예 미칠 수 없는 것에도 더러 지대를 요구한다. 켈프는 바닷말의 한 가지로, 태우면 알칼리성 소금을 내놓는데 이것은 유리와 비누를 만드는 데,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쓰임새에 요긴하다. 그것은 영국의 여러 곳, 특히 스코틀랜드에서 자라는데 만조선 안쪽에 놓인 바위 위에서만 자라며, 그 바위는 날마다 두 번 바다에 덮이므로 그 생산물이 사람의 근면으로 늘어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켈프 바닷가를 자기 땅의 경계로 삼은 지주는 그것에도 자기 곡물밭에 대해서와 똑같이 지대를 요구한다.

셰틀랜드 섬들 근방의 바다는 예사보다 훨씬 고기가 많으며, 그 고기는 그곳 사람들의 생계에서 큰 몫을 이룬다. 그러나 물에서 나는 것으로 벌이를 얻으려면 그들은 근방의 땅에 살 집을 두어야 한다. 지주가 받는 지대는 농부가 그 땅으로 벌 수 있는 것에 비례하지 않고 땅과 물 양쪽으로 벌 수 있는 것에 비례한다. 그 지대는 얼마쯤 바닷고기로 물린다. 지대가 그 상품 값의 한 몫을 이루는 아주 드문 보기 가운데 하나를 그 고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토지를 쓰는 값으로 물리는 것으로 볼 때 토지의 지대는 본래 독점 가격이다. 그것은 지주가 토지를 개량하느라 들였을 것에도, 그가 받을 만한 것에도 전혀 비례하지 않고 농부가 내놓을 수 있는 것에 비례한다.

토지의 생산물 가운데 예사로운 값이 그것을 시장에 내오는 데 부려야 하는 자산과 그 예사로운 이윤을 메우기에 넉넉한 부분만이 대개 시장에 나올 수 있다. 예사로운 값이 이보다 높으면 남는 부분은 자연히 그 토지의 지대로 간다. 그보다 높지 않으면 그 상품이 시장에 나올 수는 있어도 지주에게 지대를 낳아 줄 수 없다. 값이 그보다 높은지 높지 않은지는 수요에 달려 있다.

토지의 생산물 가운데는 그것을 시장에 내오기에 넉넉한 값보다 더 높은 값을 낳아 줄 만한 수요가 언제나 붙는 것이 있고, 그런 더 높은 값을 낳아 줄 만한 수요가 붙을 때도 있고 붙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 있다. 앞의 것은 반드시 언제나 지주에게 지대를 낳아 준다. 뒤의 것은 사정이 어떠한가에 따라 지대를 낳을 때도 있고 낳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므로 지대가 상품 값을 이루는 데 들어가는 길은 임금과 이윤이 들어가는 길과 다르다는 데 눈여겨볼 바가 있다. 임금과 이윤이 높거나 낮은 것은 값이 높거나 낮은 원인이고, 지대가 높거나 낮은 것은 그 결과다. 어떤 상품을 시장에 내오려면 높거나 낮은 임금과 이윤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그 값이 높거나 낮은 것이다. 그러나 그 값이 그 임금과 이윤을 물기에 넉넉한 것보다 훨씬 높거나 아주 조금 높거나 조금도 높지 않기 때문에 높은 지대를 낳거나 낮은 지대를 낳거나 지대를 아예 낳지 못한다.

이 장은 세 절로 갈린다. 첫째로 언제나 얼마간의 지대를 낳는 토지 생산물을 따로 살피고, 둘째로 지대를 낳을 때도 있고 낳지 않을 때도 있는 생산물을 살피며, 셋째로 개량이 여러 단계를 지나는 동안 이 두 가지 원생산물이 서로 견주어서나 제조품과 견주어서나 그 상대 가치에서 자연히 겪는 변화를 살핀다.

1절 — 언제나 지대를 낳는 토지 생산물에 대하여

사람도 다른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제 생계의 밑천에 비례하여 불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우므로 먹을 것에는 언제나 얼마간의 수요가 있다. 먹을 것은 언제나 더 많거나 더 적은 양의 노동을 사거나 부릴 수 있으며, 그것을 얻으려고 무엇인가 하려는 사람을 언제나 찾을 수 있다. 물론 먹을 것이 살 수 있는 노동의 양은, 노동에 더러 높은 임금이 주어지는 까닭에 가장 아껴 쓸 때 먹여 살릴 수 있는 양과 언제나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그 근방에서 그런 종류의 노동이 예사로 먹여 살려지는 이율에 따라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의 노동은 언제나 살 수 있다.

그러나 토지는 거의 어떤 자리에 있든, 그것을 시장에 내오는 데 드는 노동을 그 노동이 먹여 살려지는 가장 넉넉한 길로 다 먹여 살리기에 넉넉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먹을 것을 낸다. 그리고 그 남는 몫은 언제나 그 노동을 부린 자산과 그 이윤을 메우기에 넉넉한 정도를 넘는다. 그러므로 지주에게 지대로 갈 것이 언제나 얼마쯤 남는다.

노르웨이와 스코틀랜드의 가장 메마른 황무지도 가축에게 얼마간의 목초를 내주며, 그 가축에서 나는 젖과 불어나는 새끼는 그것을 돌보는 데 드는 노동을 다 먹여 살리고 농부나 가축 떼 임자에게 예사로운 이윤을 물어 주기에 넉넉할 뿐 아니라 지주에게 얼마간의 작은 지대까지 낳아 주기에도 언제나 넉넉하다. 지대는 목초지가 좋은 만큼에 비례하여 늘어난다. 같은 넓이의 땅이 더 많은 수의 가축을 먹여 살릴 뿐 아니라, 그 가축이 더 좁은 자리 안에 모이므로 그것을 돌보고 그 생산물을 걷는 데 드는 노동이 적어진다. 지주는 양쪽에서 다 얻는다. 생산물이 늘어나는 데서 얻고, 그 생산물로 먹여 살려야 할 노동이 줄어드는 데서 얻는다.

토지의 지대는 그 생산물이 무엇이든 기름짐에 따라 달라질 뿐 아니라, 그 기름짐이 어떠하든 놓인 자리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도시 근방의 토지는 시골 멀리 있는 똑같이 기름진 토지보다 더 많은 지대를 낸다. 한쪽을 갈아 가꾸는 데 다른 쪽보다 더 많은 노동이 들지 않더라도, 먼 곳 토지의 생산물을 시장에 내오는 데는 반드시 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러므로 그 생산물로 더 많은 양의 노동을 먹여 살려야 하고, 농부의 이윤과 지주의 지대를 다 끌어내는 그 남는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골의 먼 곳에서는 이미 밝혀 보인 대로 이윤율이 대개 큰 도시 근방보다 높다. 그러므로 이 줄어든 남는 몫 가운데 지주에게 돌아가는 비율은 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좋은 길과 운하, 배가 다닐 수 있는 강은 운반 비용을 줄임으로써 시골의 먼 곳을 도시 근방의 곳과 더 비슷한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 때문에 그것들은 모든 개량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그것들은 먼 곳을 갈아 가꾸도록 북돋우는데, 그 먼 곳이야말로 언제나 시골에서 가장 넓은 둘레를 이룬다. 그것들은 도시 근방 시골이 쥔 독점을 깨뜨림으로써 도시에도 이롭다. 심지어 그 근방 시골에도 이롭다. 그것들이 예전 시장에 겨루는 상품을 얼마간 끌어들이기는 하나, 그 시골의 생산물에는 많은 새 시장을 열어 준다. 게다가 독점은 좋은 경영의 큰 적이며, 좋은 경영은 누구나 제 몸을 지키려고 그것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 자유롭고 두루 미치는 겨룸이 있고서야 널리 자리 잡는다. 런던 근방의 몇몇 주가 유료 도로1를 더 먼 주들로 늘리는 데 반대하여 의회에 청원한 것은 50년이 넘지 않은 일이다. 그들이 내세운 말로는, 그 먼 주들이 노동이 싼 덕에 런던 시장에서 자기들보다 풀과 곡물을 더 싸게 팔 수 있게 되어 자기들의 지대를 깎아내리고 자기들의 갈이를 망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들의 지대는 올랐고 그들의 갈이는 나아졌다.

웬만큼 기름진 곡물밭은 같은 넓이의 가장 좋은 목초지보다 사람에게 훨씬 많은 양의 먹을 것을 낸다. 그것을 갈아 가꾸는 데 훨씬 많은 노동이 들기는 하나, 씨앗을 메우고 그 노동을 다 먹여 살린 뒤에 남는 몫도 그만큼 훨씬 크다. 그러므로 푸줏간 고기 1파운드(무게)가 빵 1파운드(무게)보다 더 값나간다고 여겨지는 일이 결코 없었다면, 이 더 큰 남는 몫이 어디서나 더 큰 가치를 지니고 농부의 이윤과 지주의 지대 양쪽을 위한 더 큰 자금을 이루었을 것이다. 농사가 거친 첫 시절에는 어디서나 그러했던 듯하다.

그러나 빵과 푸줏간 고기라는 이 두 가지 먹을 것의 상대 가치는 농사의 여러 단계에서 크게 다르다. 거친 첫 시절에는 그 무렵 나라의 훨씬 큰 몫을 차지하는 개량하지 않은 들판이 모두 가축에게 내맡겨진다. 빵보다 푸줏간 고기가 더 많으므로 빵이야말로 가장 큰 겨룸이 붙는 먹을 것이고 따라서 가장 높은 값을 받는다. 우요아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40년이나 50년 전에 레알 4개, 곧 스털링 21펜스 반2이 200마리나 300마리 떼에서 골라낸 소 한 마리의 예사로운 값이었다. 그는 빵 값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아마 그것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서 소 한 마리는 그것을 붙잡는 노동보다 조금 더 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곡물은 어디서도 많은 노동 없이 길러낼 수 없다. 그리고 그 무렵 유럽에서 포토시의 은광으로 곧장 이어지던 길목인 라플라타강에 걸친 고장에서 노동의 화폐 가격이 아주 쌌을 수는 없다.3 나라의 큰 몫에 걸쳐 갈아 가꾸는 땅이 넓어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때에는 푸줏간 고기보다 빵이 더 많다. 겨룸이 방향을 바꾸고 푸줏간 고기 값이 빵 값보다 높아진다.

게다가 갈아 가꾸는 땅이 넓어지면서 개량하지 않은 들판은 푸줏간 고기에 대한 수요를 대기에 넉넉하지 못하게 된다. 갈아 가꾼 땅의 큰 몫을 가축을 기르고 살찌우는 데 부려야 하며, 그러므로 그 가축의 값은 그것을 돌보는 데 드는 노동을 물어 주기에 넉넉할 뿐 아니라 그런 땅을 갈이에 부렸을 때 지주가 끌어낼 수 있었을 지대와 농부가 끌어낼 수 있었을 이윤까지 물어 주기에 넉넉해야 한다. 가장 갈아 가꾸지 않은 황무지에서 난 가축도 같은 시장에 나오면 그 무게나 좋기에 비례하여 가장 잘 개량한 땅에서 기른 가축과 같은 값에 팔린다. 그 황무지의 임자들은 이것으로 벌이를 얻고 자기 가축 값에 비례하여 자기 땅의 지대를 올린다.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여러 곳에서 푸줏간 고기가 오트밀로 만든 빵만큼 싸거나 그보다 더 쌌던 것은 백 년이 넘지 않은 일이다. 연합법4은 하일랜드의 가축에게 잉글랜드 시장을 열어 주었다. 그 가축의 예사로운 값은 이제 이 세기 초보다 세 배쯤 높고, 하일랜드의 여러 땅에서 지대가 같은 동안에 세 배 네 배로 올랐다. 영국의 거의 모든 곳에서 요즘 가장 좋은 푸줏간 고기 1파운드(무게)는 대개 가장 좋은 흰 빵 2파운드(무게)보다 값나가며, 넉넉한 해에는 더러 3파운드(무게)나 4파운드(무게)만큼 값나간다.

이리하여 개량이 나아가는 동안 개량하지 않은 목초지의 지대와 이윤은 얼마쯤 개량한 목초지의 지대와 이윤에 다스려지게 되고, 그것은 다시 곡물의 지대와 이윤에 다스려지게 된다. 곡물은 한 해에 거두는 작물이고 푸줏간 고기는 자라는 데 네 해나 다섯 해가 드는 작물이다. 그러므로 1에이커의 땅이 한쪽 먹을 것을 다른 쪽보다 훨씬 적은 양으로 내놓으므로, 양이 모자라는 것은 값이 높은 것으로 메워져야 한다. 그것이 넘치게 메워진다면 더 많은 곡물밭이 목초지로 바뀔 것이고, 메워지지 않는다면 목초지로 있던 땅의 얼마가 다시 곡물밭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풀의 지대와 이윤이 곡물의 지대와 이윤과 같아지는 이것, 곧 바로 나는 생산물이 가축의 먹이인 땅과 바로 나는 생산물이 사람의 먹을 것인 땅 사이에서 그 둘이 같아지는 이것은 큰 나라에서 개량한 땅의 큰 몫에 걸쳐서만 일어난다고 알아들어야 한다. 몇몇 특별한 고장에서는 사정이 아주 달라서 풀의 지대와 이윤이 곡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높다.

이리하여 큰 도시 근방에서는 젖과 말먹이에 대한 수요가 푸줏간 고기의 높은 값과 더불어 풀의 가치를 곡물 가치에 대한 이른바 자연스러운 비율보다 높이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하는 일이 잦다. 이런 고장의 이로움은 멀리 있는 땅에는 옮겨 갈 수 없음이 분명하다.

남다른 사정이 어떤 나라를 사람이 아주 많이 사는 곳으로 만들어, 그 온 땅이 큰 도시 근방의 토지처럼 그곳 사람들의 생계에 드는 풀과 곡물을 다 내기에 넉넉하지 못하게 된 일이 더러 있었다. 그래서 그 땅은 주로 부피가 더 크고 먼 곳에서 그리 쉽게 실어 올 수 없는 상품인 풀을 내는 데 부려졌고, 많은 사람의 먹을 것인 곡물은 주로 다른 나라에서 들여왔다. 네덜란드가 지금 이런 사정에 있고, 옛 이탈리아의 적지 않은 부분이 로마인이 번성하던 동안에 그러했던 듯하다. 키케로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로는, 노 카토5는 가축을 잘 먹이는 것이 사삿집 땅을 다스리는 데서 첫째로 가장 벌이가 되는 일이고, 웬만큼 먹이는 것이 둘째이며, 나쁘게 먹이는 것이 셋째라고 하였다. 밭을 가는 것은 벌이와 이로움에서 넷째 자리에나 놓았다. 실제로 옛 이탈리아에서 로마 근방에 놓인 곳의 갈이는, 백성에게 공짜로 또는 아주 낮은 값으로 자주 나누어 준 곡물 때문에 크게 꺾였을 것이 틀림없다. 이 곡물은 정복한 속주에서 실어 온 것이었고, 그 가운데 여러 곳은 세금 대신에 자기 생산물의 10분의 1을 정해진 값, 곧 한 펙에 6펜스쯤으로 공화국에 바쳐야 했다. 이 곡물이 백성에게 나누어진 낮은 값은 라티움, 곧 로마의 옛 땅에서 로마 시장에 내올 수 있었던 곡물의 값을 끌어내렸을 수밖에 없고, 그 고장에서 곡물을 갈아 가꾸는 일을 꺾었을 수밖에 없다.

또 주로 곡물이 나는 터진 고장에서는 울타리를 잘 둘러친 풀밭 한 조각이 그 근방의 어느 곡물밭보다 높은 지대를 받는 일이 잦다. 그것은 곡물을 갈아 가꾸는 데 부리는 가축을 먹이기에 편하며, 이때 그 높은 지대는 그 풀밭 자체의 생산물이 지닌 가치에서 물리는 것이라기보다 그 풀밭의 힘으로 갈아 가꾸는 곡물밭의 가치에서 물리는 것이다. 근방의 땅에 울타리가 두루 둘러지면 그 지대는 내려갈 듯하다. 스코틀랜드에서 울타리 두른 땅의 지대가 지금 높은 것은 울타리 두른 땅이 드물기 때문인 듯하며, 그것이 드물지 않게 되면 그 높은 지대도 아마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울타리의 이로움은 곡물보다 목초지에 더 크다. 그것은 가축을 지키는 노동을 덜어 주며, 가축도 지키는 사람이나 그 개에게 시달릴 일이 없을 때 더 잘 먹는다.

그러나 이런 고장의 이로움이 없는 곳에서는 곡물, 또는 그 밖에 사람들이 흔히 먹는 식물성 먹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의 지대와 이윤이 그것을 내기에 알맞은 땅에서 목초지의 지대와 이윤을 다스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심어 기르는 풀과 순무, 당근, 양배추를 쓰는 것, 그리고 같은 넓이의 땅이 저절로 난 풀로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수의 가축을 먹이게 하려고 찾아낸 그 밖의 방책은, 개량한 나라에서 푸줏간 고기 값이 빵 값에 대하여 본래 지니는 우위를 얼마쯤 줄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러했던 듯하며, 적어도 런던 시장에서는 빵 값에 견준 푸줏간 고기 값이 지난 세기 초보다 요즘 훨씬 낮다고 믿을 만한 까닭이 얼마쯤 있다.

버치 박사는 헨리 왕자6 전기의 부록에서 그 왕자가 예사로 물었던 푸줏간 고기 값을 우리에게 적어 주었다. 거기에 적힌 바로는 무게가 600파운드(무게)인 소 한 마리의 네 토막이 예사로 9파운드 10실링쯤 들었으니, 100파운드(무게)마다 31실링 8펜스인 셈이다. 헨리 왕자는 1612년 11월 6일에 나이 열아홉째 해로 죽었다.

1764년 3월에 그 무렵 식료품 값이 높은 까닭을 두고 의회 조사가 있었다. 그때 같은 것을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와 더불어 어느 버지니아 상인이 증언한 바로는, 1763년 3월에 그는 소고기 1헌드레드웨이트에 24실링이나 25실링으로 자기 배에 식량을 실었고 그것을 예사로운 값으로 여겼는데, 그 값비싼 해에는 같은 무게와 같은 종류에 27실링을 물었다. 그러나 1764년의 이 높은 값은 헨리 왕자가 물었던 예사로운 값보다 4실링 8펜스 싸며, 그런 먼 뱃길을 위하여 소금에 절이기에 알맞은 것은 가장 좋은 소고기뿐임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헨리 왕자가 물었던 값은 낮은 부위와 고급 부위를 함께 셈하여 몸통 전체로 1파운드(무게)마다 3과 5분의 4펜스에 해당하며, 그 이율이라면 고급 부위는 1파운드(무게)에 4펜스 반이나 5펜스보다 싸게 소매로 팔릴 수 없었을 것이다.

1764년의 의회 조사에서 증인들은 가장 좋은 소고기의 고급 부위 값이 쓰는 사람에게 1파운드(무게)에 4펜스와 4펜스 반이고, 낮은 부위는 대개 7파딩에서 2펜스 반과 2펜스 4분의 3까지라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종류의 부위가 3월에 예사로 팔리던 값보다 대개 반 펜스 비싼 것이라고 그들은 말하였다. 그러나 이 높은 값조차도 헨리 왕자 때의 예사로운 소매 값이었으리라고 우리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싸다.

지난 세기의 첫 12년 동안 윈저 시장에서 가장 좋은 밀의 평균 값은 윈체스터 부셸 9개에 해당하는 1쿼터7에 1파운드 18실링 3펜스 반이었다.

그런데 1764년까지의 12년 동안 같은 시장에서 같은 되로 잰 가장 좋은 밀의 평균 값은 2파운드 1실링 9펜스 반이었다.

그러므로 지난 세기의 첫 12년 동안에는 1764년까지의 12년 동안보다 밀이 훨씬 싸고 푸줏간 고기는 훨씬 비쌌던 듯하다.

모든 큰 나라에서 갈아 가꾼 땅의 큰 몫은 사람의 먹을 것이나 가축의 먹이를 내는 데 부려진다. 이런 땅의 지대와 이윤이 그 밖에 갈아 가꾼 모든 땅의 지대와 이윤을 다스린다. 어떤 생산물이 그보다 적게 낳으면 그 땅은 곧 곡물밭이나 목초지로 바뀔 것이고, 어떤 생산물이 그보다 많이 낳으면 곡물밭이나 목초지로 있던 땅의 얼마가 곧 그 생산물로 돌려질 것이다.

물론 땅을 그것에 맞게 만들려면 개량에 처음부터 더 많은 비용이 들거나 해마다 갈아 가꾸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생산물은, 앞의 것은 곡물이나 목초지보다 더 많은 지대를, 뒤의 것은 더 많은 이윤을 낳는 것이 예사로 보인다. 그러나 이 우위가 그 더 많은 비용에 대한 웬만한 이자나 보상을 넘는 정도에 이르는 일은 좀처럼 없다.

홉밭과 과일밭과 남새밭에서는 지주의 지대와 농부의 이윤이 대개 곡물밭이나 풀밭에서보다 많다. 그러나 땅을 이런 형편으로 만드는 데는 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래서 지주에게 더 많은 지대가 돌아가야 하게 된다. 또 더 살피고 더 솜씨 있는 경영이 든다. 그래서 농부에게 더 많은 이윤이 돌아가야 하게 된다. 게다가 적어도 홉밭과 과일밭에서는 수확이 더 미덥지 못하다. 그러므로 그 값은 이따금 나는 손실을 모두 메우고도 보험의 이윤 같은 것을 낳아 주어야 한다. 대개 낮고 언제나 대수롭지 않은 원정들의 형편은, 그들의 뛰어난 재주가 예사로 지나치게 보상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납득시켜 줄 것이다. 그 즐거운 기예를 하도 많은 부자가 소일거리로 하는 바람에, 벌이를 위하여 그것을 하는 이들이 얻을 이로움은 적다. 자연히 그들의 가장 좋은 손님이 되었어야 할 사람들이 가장 값진 생산물을 모두 제 손으로 마련하기 때문이다.

지주가 그런 개량에서 얻는 이로움이 그것을 이루는 데 처음 든 비용을 메우기에 넉넉한 것보다 더 컸던 적은 어느 때에도 없었던 듯하다. 옛 농사에서는 포도밭 다음으로 물을 잘 댄 남새밭이 가장 값진 생산물을 낸다고 여겨진 농장의 부분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2000년쯤 전에 농사에 대하여 글을 썼고 옛사람들이 그 기예의 아버지 가운데 하나로 여긴 데모크리토스8는 남새밭에 담을 두르는 이들이 슬기롭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의 말로는 그 벌이가 돌담에 드는 비용을 메우지 못할 것이며, 벽돌(내 생각으로는 햇볕에 말린 벽돌을 뜻했을 것이다)은 비와 겨울 폭풍에 부스러져 끊임없이 손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데모크리토스의 이 판단을 전하는 콜루멜라는 그것에 맞서지 않고, 가시나무와 들장미로 산울타리를 두르는 아주 아낌 있는 길을 내놓는데, 그는 그것이 오래가고 뚫리지 않는 울이라는 것을 겪어 보아 알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데모크리토스 때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듯하다. 팔라디우스는 콜루멜라의 생각을 따르는데, 그 생각은 그전에 바로가 권한 것이었다. 그 옛 개량가들의 판단으로는 남새밭의 생산물이 남다르게 가꾸는 일과 물 대는 비용을 물기에 넉넉한 정도를 조금 넘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듯하다. 해에 그처럼 가까운 고장에서는 그때도 지금처럼 밭의 모든 두둑으로 끌어 댈 수 있는 물줄기를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유럽의 큰 몫에 걸쳐 남새밭은 지금도 콜루멜라가 권한 것보다 나은 울을 받을 만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영국과 그 밖의 몇몇 북쪽 고장에서는 더 좋은 과일이 담의 도움 없이는 잘 익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런 고장에서 그 과일의 값은 그것 없이는 과일을 얻을 수 없는 그 담을 세우고 건사하는 비용을 물기에 넉넉해야 한다. 과일나무 담은 남새밭을 둘러싸는 일이 잦으며, 그래서 남새밭은 제 생산물로는 좀처럼 물 수 없는 울의 덕을 누린다.

포도밭을 제대로 심어 잘 키워 놓으면 그것이 농장에서 가장 값진 부분이라는 것은, 오늘날 포도주 나는 모든 고장에서 그렇듯이 옛 농사에서도 의심할 것 없는 금언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새 포도밭을 심는 것이 이로운가는 옛 이탈리아 농사꾼들 사이에서 다투는 문제였다는 것을 우리는 콜루멜라에게서 알게 된다. 그는 남다르게 공들이는 가꾸기라면 무엇이든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답게 포도밭 쪽으로 판을 내리고, 벌이와 비용을 견주어 그것이 가장 이로운 개량이라는 것을 밝혀 보이려 애쓴다. 그러나 새 사업의 벌이와 비용을 그렇게 견주는 것은 예사로 크게 어긋나기 쉬우며, 농사에서보다 더 그러한 데는 없다. 그런 밭을 심어 실제로 얻은 이득이 그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만큼 예사로 컸다면 그것을 두고 다툼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은 문제는 오늘날에도 포도주 나는 고장에서 자주 다투는 거리가 된다. 실제로 그 고장의 농사 저술가들, 곧 공들여 가꾸는 것을 좋아하고 북돋우는 이들은 대개 콜루멜라와 함께 포도밭 쪽으로 판을 내리려는 듯하다. 프랑스에서 오래된 포도밭 임자들이 새 포도밭이 심기는 것을 막으려고 애쓰는 것은 그들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듯하며, 겪어 보아 알 만한 이들이 이 갈래의 가꾸기가 지금 그 나라에서 다른 어느 것보다 벌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보여 주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또 다른 생각, 곧 이 남다른 벌이가 지금 포도를 자유로이 가꾸는 것을 묶어 두는 법보다 오래 이어질 수 없다는 생각도 보여 주는 듯하다. 1731년에 그들은 국왕 참사회의 명령9을 얻어 냈는데, 그것은 새 포도밭을 심는 것과 두 해 동안 가꾸기가 끊겼던 오래된 포도밭을 되살리는 것을 함께 금하되, 그 주의 앵탕당이 그 땅을 살펴보았고 그것이 다른 어떤 가꾸기에도 맞지 않는다고 확인하여 알려 온 뒤에야 내려지는 왕의 특별한 허락이 있으면 풀어 주는 것이었다. 이 명령이 내세운 구실은 곡물과 목초지가 모자라고 포도주가 남쳐 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남쳐 도는 것이 참이었다면, 참사회의 어떤 명령도 없이 이 갈래 가꾸기의 이윤을 곡물과 목초지의 이윤에 대한 자연스러운 비율 밑으로 끌어내려 새 포도밭이 심기는 것을 제대로 막았을 것이다. 포도밭이 늘어난 탓에 곡물이 모자란다고 여겨지는 것을 두고 말하자면, 프랑스에서 곡물이 땅이 그것을 내기에 알맞은 포도주 주들, 곧 부르고뉴와 기옌과 상 랑그도크에서보다 더 정성껏 가꾸어지는 곳은 없다. 한 갈래 가꾸기에 부려지는 많은 일손은 다른 갈래의 생산물에 곧바로 팔릴 시장을 열어 줌으로써 그 다른 갈래를 북돋우지 않을 수 없다. 곡물 값을 물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줄이는 것은 곡물 가꾸기를 북돋우는 방책으로는 참으로 가장 가망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제조업을 꺾어서 농사를 북돋우려는 정책과 같다.

그러므로 땅을 그것에 맞게 만들려면 개량에 처음부터 더 많은 비용이 들거나 해마다 갈아 가꾸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생산물의 지대와 이윤은, 곡물과 목초지의 지대와 이윤보다 훨씬 높은 일이 잦더라도 그 남다른 비용을 메우는 데 그치는 한 실제로는 그 흔한 작물의 지대와 이윤에 다스려진다.

물론 어떤 생산물에 맞게 만들 수 있는 땅의 넓이가 너무 작아서 유효 수요를 채울 수 없는 일이 더러 있다. 그럴 때에는 그 생산물 전부를, 그것을 길러 시장에 내오는 데 드는 지대와 임금과 이윤 전부를 그 자연율로, 또는 그 밖에 갈아 가꾼 땅의 큰 몫에서 물리는 이율로 물기에 넉넉한 것보다 얼마쯤 더 내려는 이들에게 넘길 수 있다. 개량과 가꾸기에 든 비용 전부를 물고 남는 값의 몫은, 이럴 때에만, 그리고 이럴 때에는 예사로 곡물이나 목초지에서 남는 같은 몫과 아무 고른 비율도 이루지 않고 거의 어떤 정도까지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넘치는 것의 큰 몫은 자연히 지주의 지대로 간다.

예를 들어 포도주의 지대와 이윤이 곡물과 목초지의 지대와 이윤에 대하여 지니는 예사롭고 자연스러운 비율은, 거의 어디서나 가볍고 자갈이 섞이거나 모래가 섞인 흙에서 길러낼 수 있고 도수와 몸에 좋은 것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는 좋은 보통 포도주만을 내는 포도밭에 대해서만 일어난다고 알아들어야 한다. 나라의 흔한 땅이 겨룸에 끌려 들어갈 수 있는 것은 그런 포도밭에 대해서뿐이다. 남다른 품질을 지닌 포도밭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음이 분명하다.

포도나무는 어느 과일나무보다 흙의 다름에 더 영향을 받는다. 어떤 흙에서는 다른 어떤 흙에서도 어떤 가꾸기나 다스림으로도 견줄 수 없다고 여겨지는 맛을 얻는다. 이 맛은 참된 것이든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든, 더러는 몇 포도밭의 생산물에만 있고 더러는 작은 고을의 큰 몫에 걸치며 더러는 큰 주의 적지 않은 부분에 걸친다. 시장에 나오는 그런 포도주의 양 전부는 유효 수요, 곧 그것을 손질하여 시장에 내오는 데 드는 지대와 이윤과 임금 전부를 예사로운 이율로, 또는 흔한 포도밭에서 물리는 이율로 물려는 이들의 수요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양 전부를 더 많이 물려는 이들에게 넘길 수 있으며, 그것이 그 값을 흔한 포도주 값보다 높이 끌어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차이는 그 포도주가 유행을 타고 드문 덕에 사는 이들의 겨룸이 더 달아오르는가 덜 달아오르는가에 따라 커지거나 작아진다. 그것이 어떠하든 그 큰 몫은 지주의 지대로 간다. 그런 포도밭이 대개 다른 대부분의 포도밭보다 정성껏 가꾸어지기는 하나, 그 포도주의 높은 값은 이 정성스러운 가꾸기의 결과라기보다 그 원인인 듯하기 때문이다. 그처럼 값진 생산물에서는 소홀함이 낳는 손실이 하도 커서 가장 무심한 사람까지 마음을 쓰게 만든다. 그러므로 이 높은 값의 작은 몫만으로도 그 가꾸기에 들인 남다른 노동의 임금과 그 노동을 움직이는 남다른 자산의 이윤을 물기에 넉넉하다.

유럽 여러 나라가 서인도에 거느린 설탕 식민지는 그 값진 포도밭에 견줄 만하다. 그 생산물 전부는 유럽의 유효 수요에 미치지 못하며, 그것을 손질하여 시장에 내오는 데 드는 지대와 이윤과 임금 전부를 다른 어느 생산물에서 예사로 물리는 이율로 물기에 넉넉한 것보다 더 내려는 이들에게 넘길 수 있다. 그 고장의 농사를 아주 꼼꼼히 살핀 푸아브르 씨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로는{『어느 철학자의 여행기』}, 코친차이나(오늘날 베트남 남부)에서 가장 좋은 흰 설탕은 대개 1퀸탈에 피아스터 3개, 곧 우리 돈으로 13실링 6펜스쯤에 팔린다. 그곳에서 퀸탈이라 부르는 것은 파리 파운드(무게)로 150에서 200, 고르게 잡아 175에 해당하므로, 영국 헌드레드웨이트로 셈하면 그 값이 스털링 8실링쯤으로 내려간다. 이것은 우리 식민지에서 들여오는 황설탕, 곧 무스코바도에 예사로 물리는 값의 4분의 1도 되지 않고 가장 좋은 흰 설탕에 물리는 값의 6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코친차이나에서 갈아 가꾼 땅의 큰 몫은 많은 사람의 먹을 것인 곡물과 벼를 내는 데 부려진다. 그곳에서 곡물과 벼와 설탕의 값은 아마 자연스러운 비율, 곧 갈아 가꾼 땅의 큰 몫에서 여러 작물 사이에 자연히 일어나는 비율에 있을 것이며, 그 비율은 개량에 처음 드는 비용과 해마다 갈아 가꾸는 비용에 따라 셈할 수 있는 만큼 가깝게 지주와 농부에게 되돌려 준다. 그러나 우리 설탕 식민지에서는 설탕 값이 유럽에서나 아메리카에서나 논이나 곡물밭의 생산물 값에 대하여 그런 비율을 지니지 않는다. 설탕 농장주는 럼과 당밀로 자기 가꾸기의 비용 전부를 물고 설탕은 모두 고스란히 이윤이 되기를 바란다고 흔히 말한다. 이것이 참이라면, 나는 그것을 참이라고 내세우지는 않으나, 그것은 곡물 농부가 쭉정이와 짚으로 자기 가꾸기의 비용을 물고 낟알은 모두 고스란히 이윤이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런던과 그 밖의 거래 도시에 있는 상인 모임이 우리 설탕 식민지의 버려진 땅을 사들여, 먼 거리와 그 고장의 재판이 허술한 탓에 되돌아오는 것이 미덥지 못함에도 대리인과 거래 대행인을 두어 벌이를 얻으며 개량하고 갈아 가꾸기를 바라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본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또는 북아메리카의 곡물 주에서 가장 기름진 땅을 그렇게 개량하고 갈아 가꾸려 드는 이는 아무도 없을 터인데, 이 고장에서는 재판이 더 꼼꼼한 덕에 되돌아오는 것이 더 고르리라고 기대할 수 있음에도 그러하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에서는 담배 가꾸기가 곡물 가꾸기보다 벌이가 가장 된다고 하여 더 낫게 여겨진다. 담배는 유럽의 큰 몫에 걸쳐 이롭게 가꿀 수 있을 터이나, 유럽의 거의 모든 곳에서 그것은 세금을 매기는 주된 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 풀을 가꾸게 될 나라의 농장마다에서 세금을 걷는 것은 세관에서 그것을 들여올 때 세금을 매기는 것보다 더 어려우리라고 여겨졌다. 이 때문에 담배 가꾸기는 유럽의 큰 몫에 걸쳐 아주 터무니없이 금지되었고, 그것은 담배를 가꾸도록 허락된 고장에 한 가지 독점을 안겨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버지니아와 메릴랜드가 담배를 가장 많이 내므로 그 두 곳은 겨루는 이가 얼마쯤 있기는 하나 이 독점의 이로움을 크게 나누어 갖는다. 그러나 담배 가꾸기는 설탕 가꾸기만큼 이롭지는 않은 듯하다. 영국에 사는 상인의 자본으로 개량하고 갈아 가꾼 담배 농장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조차 없으며, 우리 담배 식민지는 우리 설탕 섬에서 자주 건너오는 것을 보는 만큼 부유한 농장주를 본국으로 보내 주지 않는다. 그 식민지에서 담배 가꾸기를 곡물 가꾸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으로 보아 담배에 대한 유럽의 유효 수요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은 듯하기는 하나, 그것은 설탕에 대한 수요보다 아마 더 가깝게 채워져 있을 것이다. 또 담배의 지금 값이 그것을 손질하여 시장에 내오는 데 드는 지대와 임금과 이윤 전부를 곡물 땅에서 예사로 물리는 이율로 물기에 넉넉한 정도를 넘는다 하더라도, 설탕의 지금 값만큼 많이 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담배 농장주들은 프랑스에서 오래된 포도밭 임자들이 포도주가 남쳐 도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담배가 남쳐 도는 것에 대하여 보여 왔다. 그들은 식민지 의회의 법으로 담배 가꾸기를 열여섯 살에서 예순 살 사이의 흑인 노예10 한 사람마다 6000그루로 묶었는데, 그만큼이면 담배 1000파운드(무게)를 낸다고 본다. 그런 사람 하나가 이만큼의 담배에 더하여 강냉이11 4에이커를 감당할 수 있다고 그들은 셈한다. 또 시장에 물건이 넘치는 것을 막으려고, 더글러스 박사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로는{더글러스, 『개요』 제2권 379쪽, 373쪽.}(나는 그가 잘못 들었으리라고 짐작한다), 그들은 넉넉한 해에 더러 네덜란드 사람들이 향료를 두고 그렇게 한다고 하는 것처럼 흑인 한 사람마다 얼마간의 담배를 태워 버렸다. 담배의 지금 값을 지탱하는 데 그런 거친 수가 필요하다면, 담배 가꾸기가 곡물 가꾸기보다 지니는 남다른 이로움은 아직 얼마쯤 남아 있다 하더라도 아마 오래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 생산물이 사람의 먹을 것인 갈아 가꾼 땅의 지대가 그 밖에 갈아 가꾼 땅의 큰 몫의 지대를 다스린다. 어떤 생산물도 그보다 적게 낳는 것을 오래 이어 갈 수 없는데, 그 땅이 곧 다른 쓰임새로 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생산물이 예사로 그보다 많이 낳는다면, 그것에 맞게 만들 수 있는 땅의 넓이가 너무 작아서 유효 수요를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곡물이 사람의 먹을 것으로 곧바로 쓰이는 주된 토지 생산물이다. 그러므로 남다른 자리를 빼면 유럽에서는 곡물 땅의 지대가 그 밖에 갈아 가꾼 모든 땅의 지대를 다스린다. 영국은 프랑스의 포도밭도 이탈리아의 올리브밭도 부러워할 것이 없다. 남다른 자리를 빼면 이런 것들의 가치는 곡물의 가치에 다스려지며, 곡물에서 영국의 기름짐은 그 두 나라 어느 쪽에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어느 나라에서 사람들이 흔히 먹고 좋아하는 식물성 먹을 것을, 가장 흔한 땅이 같은 가꾸기나 거의 같은 가꾸기로 가장 기름진 땅이 곡물을 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내는 풀에서 얻게 된다면, 지주의 지대, 곧 노동을 물어 주고 농부의 자산과 그 예사로운 이윤을 메운 뒤에 그에게 남을 먹을 것의 남는 양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나라에서 노동이 예사로 먹여 살려지는 이율이 어떠하든, 이 더 큰 남는 몫은 언제나 더 많은 양의 노동을 먹여 살릴 수 있고 따라서 지주가 더 많은 양의 노동을 사거나 부릴 수 있게 해 준다. 그의 지대가 지닌 실질 가치, 그의 실질 힘과 권위, 남의 노동이 그에게 대 줄 수 있는 살림에 없어서는 안 될 것과 편하게 해 주는 것에 대한 그의 부림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논은 가장 기름진 곡물밭보다 훨씬 많은 양의 먹을 것을 낸다. 한 해에 두 번 거두며 그때마다 30부셸에서 60부셸이 나는 것이 1에이커의 예사로운 생산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벼를 가꾸는 데 더 많은 노동이 들기는 하나, 그 노동을 다 먹여 살린 뒤에 훨씬 큰 남는 몫이 남는다. 그러므로 벼가 사람들이 흔히 먹고 좋아하는 식물성 먹을 것이고 갈아 가꾸는 이들이 주로 그것으로 먹여 살려지는 벼 나는 고장에서는, 이 더 큰 남는 몫 가운데 지주에게 돌아가는 몫이 곡물 나는 고장에서보다 커야 한다. 캐롤라이나에서는 다른 영국 식민지와 마찬가지로 농장주가 대개 농부이면서 지주이고 따라서 지대가 이윤과 뒤섞여 있는데, 그곳 밭이 한 해에 한 번만 거두고 유럽의 관습이 널리 퍼진 탓에 벼가 거기서 사람들이 흔히 먹고 좋아하는 식물성 먹을 것이 아님에도 벼 가꾸기가 곡물 가꾸기보다 벌이가 된다고 한다.

좋은 논은 어느 철에나 진펄이고 한 철에는 물에 덮인 진펄이다. 그것은 곡물에도 목초지에도 포도밭에도, 그리고 실은 사람에게 아주 요긴한 다른 어떤 식물성 생산물에도 맞지 않으며, 그런 쓰임새에 맞는 땅은 벼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벼 나는 고장에서도 논의 지대가, 결코 그 생산물로 돌려질 수 없는 그 밖에 갈아 가꾼 땅의 지대를 다스릴 수는 없다.

감자밭이 내는 먹을 것은 양에서 논이 내는 것에 뒤지지 않고 밀밭이 내는 것보다 훨씬 많다. 1에이커의 땅에서 감자 1만 2000파운드(무게)가 나는 것은 밀 2000파운드(무게)가 나는 것보다 더 많은 생산물이 아니다. 물론 그 두 가지 풀에서 각각 끌어낼 수 있는 먹을 것, 곧 단단한 자양분은 감자가 물기가 많은 까닭에 그 무게에 아주 비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뿌리의 무게 절반이 물이라고 아주 넉넉히 잡아 주더라도, 그런 1에이커의 감자밭은 여전히 단단한 자양분 6000파운드(무게)를 내니 1에이커의 밀밭이 내는 양의 세 배다. 1에이커의 감자밭은 1에이커의 밀밭보다 적은 비용으로 갈아 가꾸어진다. 밀을 뿌리기 전에 흔히 하는 묵히기가, 감자에 언제나 들이는 김매기와 그 밖의 남다른 가꾸기를 메우고도 남기 때문이다. 이 뿌리가 유럽의 어느 곳에서든 몇몇 벼 나는 고장의 벼처럼 사람들이 흔히 먹고 좋아하는 식물성 먹을 것이 되어, 밀과 그 밖에 사람이 먹는 낟알이 지금 차지하는 만큼의 비율로 갈이 땅을 차지하게 된다면, 같은 넓이의 갈아 가꾼 땅이 훨씬 많은 수의 사람을 먹여 살릴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대개 감자를 먹게 되므로 자산을 모두 메우고 가꾸기에 부려진 노동을 모두 먹여 살린 뒤에 더 큰 남는 몫이 남을 것이다. 또 이 남는 몫 가운데 지주에게 돌아가는 몫도 함께 커진다. 사람의 수가 늘고 지대는 지금보다 훨씬 높이 오를 것이다.

감자에 맞는 땅은 그 밖의 거의 모든 요긴한 식물에도 맞다. 감자가 지금 곡물이 차지하는 만큼의 비율로 갈아 가꾼 땅을 차지한다면, 그것이 똑같이 그 밖에 갈아 가꾼 땅의 큰 몫의 지대를 다스릴 것이다.

내가 들은 바로는 랭커셔의 몇몇 곳에서 오트밀로 만든 빵이 일하는 사람에게 밀빵보다 더 실한 먹을 것이라고 내세운다고 하며, 스코틀랜드에서도 같은 주장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참인지 얼마쯤 의심스럽다. 오트밀을 먹는 스코틀랜드의 흔한 사람들은 대개 밀빵을 먹는 잉글랜드의 같은 층 사람들만큼 튼튼하지도 잘나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일도 그만큼 잘하지 못하고 보기에도 그만큼 좋지 않다. 그리고 두 나라의 상류 사람들 사이에는 같은 차이가 없으므로, 스코틀랜드에서 흔한 사람들의 먹을 것이 잉글랜드에서 같은 층에 있는 이웃의 먹을 것만큼 사람의 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겪어 보아 알 수 있는 듯하다. 그러나 감자는 사정이 다른 듯하다. 런던의 가마꾼과 짐꾼과 석탄 부리는 일꾼, 그리고 몸을 팔아 살아가는 불행한 여인들은 어쩌면 영국 땅에서 가장 튼튼한 남자와 가장 아름다운 여자일 터인데, 그들의 큰 몫이 대개 이 뿌리를 먹는 아일랜드의 가장 낮은 층 사람들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어떤 먹을 것도 제 자양분과 사람의 몸에 유별나게 잘 맞는다는 것을 이보다 더 또렷하게 입증할 수 없다.

감자를 한 해 내내 두는 것은 어렵고, 곡물처럼 두 해나 세 해씩 이어 쌓아 두는 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썩기 전에 팔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감자 가꾸기를 꺾으며, 어느 큰 나라에서든 감자가 빵처럼 모든 층 사람들의 주된 식물성 먹을 것이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도 어쩌면 이 두려움일 것이다.

2절 — 지대를 낳을 때도 있고 낳지 않을 때도 있는 토지 생산물에 대하여

사람의 먹을 것은 언제나 반드시 지주에게 얼마간의 지대를 낳아 주는 유일한 토지 생산물인 듯하다. 그 밖의 생산물은 사정이 어떠한가에 따라 지대를 낳을 때도 있고 낳지 않을 때도 있다.

먹을 것 다음으로 입을 것과 살 곳이 사람의 두 가지 큰 필요다.

토지는 본래의 거친 상태에서 먹여 살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에게 입을 것과 살 곳의 재료를 내줄 수 있다. 개량된 상태에서는 그 재료를 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일이 더러 있다. 적어도 사람들이 그 재료를 바라고 그 값을 물려 하는 만큼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므로 앞의 상태에서는 이 재료가 언제나 남쳐 돌고, 그 때문에 값어치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일이 잦다. 뒤의 상태에서는 그것이 모자란 일이 잦아서 그 가치가 늘어나지 않을 수 없다. 앞의 상태에서는 그 재료의 큰 몫이 쓸모없다고 버려지고, 쓰이는 것의 값은 그것을 쓸 수 있게 손질하는 노동과 비용에만 맞먹는다고 여겨지므로 지주에게 지대를 낳아 줄 수 없다. 뒤의 상태에서는 그것이 모두 쓰이고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에 수요가 붙는 일이 잦다. 그 재료의 어느 부분에 대해서든 그것을 시장에 내오는 비용을 물기에 넉넉한 것보다 더 내려는 사람이 언제나 있다. 그러므로 그 값은 언제나 지주에게 얼마간의 지대를 낳아 줄 수 있다.

더 큰 동물의 가죽이 입을 것의 본래 재료였다. 그러므로 먹을 것이 주로 그런 동물의 고기로 이루어진 사냥꾼과 목자의 나라에서는 누구나 제 먹을 것을 마련하면서 제가 입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옷의 재료를 마련한다. 다른 나라와의 거래가 없다면 그 큰 몫은 값어치 없는 것으로 버려질 것이다. 북아메리카의 사냥하는 나라들이 그 고장을 유럽인이 찾아내기 전에는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남는 모피를 유럽인과 담요와 총과 브랜디로 바꾸며, 그것이 모피에 얼마간의 값어치를 안겨 준다. 알려진 세계가 지금처럼 거래로 이어진 상태에서는, 토지 소유가 자리 잡은 가장 미개한 나라에서도 이런 종류의 나라 밖 거래가 얼마쯤 있어서, 자기 땅이 내는 것이지만 집에서 손질할 수도 쓸 수도 없는 옷 재료 전부에 대하여 더 부유한 이웃 사이에서 그 값을 그 이웃에게 보내는 데 드는 비용보다 높이 끌어올릴 만한 수요를 찾는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지주에게 얼마간의 지대를 낳아 준다. 하일랜드의 가축 큰 몫이 그 고장 언덕에서 먹혀 없어지던 때에는 그 가죽을 내보내는 것이 그 고장 거래에서 가장 큰 품목을 이루었고, 그 가죽과 바꾼 것이 하일랜드 땅의 지대에 얼마쯤 보탬이 되었다. 옛 시절에 집에서 쓸 수도 손질할 수도 없었던 잉글랜드의 양모는 그 무렵 더 부유하고 더 부지런하던 플란데런에서 시장을 찾았고, 그 값은 그것을 낸 땅의 지대에 얼마쯤을 안겨 주었다. 그때의 잉글랜드나 지금의 스코틀랜드 하일랜드보다 잘 갈아 가꾸지 못하였고 나라 밖 거래도 없던 고장에서는 옷 재료가 하도 남쳐 돌아 그 큰 몫이 쓸모없다고 버려졌을 것이며 어느 부분도 지주에게 지대를 낳아 줄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살 곳의 재료는 옷 재료만큼 먼 거리로 언제나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라 밖 거래의 거리가 그리 쉽게 되지도 않는다. 그것을 내는 고장에서 그것이 남쳐 돌 때에는, 세계가 지금처럼 거래로 이어진 상태에서도 그것이 지주에게 아무 값어치가 없는 일이 잦다. 런던 근방의 좋은 채석장은 적지 않은 지대를 낳아 줄 것이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여러 곳에서는 아무 지대도 낳지 못한다. 집 지을 재목나무12는 사람이 많고 잘 갈아 가꾼 고장에서 큰 값어치를 지니며, 그것을 내는 땅은 적지 않은 지대를 낳아 준다. 그러나 북아메리카의 여러 곳에서는 지주가 제 큰 나무의 큰 몫을 실어 가 줄 사람에게 크게 고마워할 것이다.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몇몇 곳에서는 길과 물길 운반이 없어 나무 가운데 껍질만이 시장에 보내질 수 있고 재목은 땅에서 썩도록 내버려진다. 살 곳의 재료가 그처럼 남쳐 돌 때에는 쓰이는 부분이 그 쓰임새에 맞게 손질하는 노동과 비용만큼만 값나간다. 그것은 지주에게 지대를 낳아 주지 못하며, 지주는 대개 그것을 쓰겠다고 청하는 수고를 하는 누구에게든 쓰도록 내준다. 그러나 더 부유한 나라의 수요가 더러 그에게 그것으로 지대를 얻게 해 준다. 런던 거리에 돌을 깐 일은 스코틀랜드 바닷가의 헐벗은 바위 임자들이 전에는 아무 지대도 낳지 못했던 것에서 지대를 끌어내게 해 주었다. 노르웨이와 발트해 바닷가의 숲은 제 고장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시장을 영국의 여러 곳에서 찾으며, 그리하여 그 임자들에게 얼마간의 지대를 낳아 준다.

나라에 사람이 많은 것은 그 생산물이 옷을 입히고 살 곳을 줄 수 있는 사람의 수에 비례하지 않고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의 수에 비례한다. 먹을 것이 마련되면 필요한 옷과 살 곳을 찾기는 쉽다. 그러나 이것들이 손닿는 곳에 있어도 먹을 것을 찾기가 어려운 일은 잦을 수 있다. 영국 땅의 몇몇 곳에서는 집이라 부르는 것을 한 사람이 하루 노동으로 지을 수 있다. 가장 단순한 갈래의 옷인 동물 가죽은 그것을 다루어 쓸 수 있게 마련하는 데 얼마쯤 더 많은 노동이 든다. 그러나 많이 들지는 않는다. 야만스럽거나 미개한 나라에서는 한 해 노동의 100분의 1, 또는 100분의 1을 조금 넘는 것으로도 사람들의 큰 몫을 만족시킬 만한 옷과 살 곳을 마련하기에 넉넉할 것이다. 나머지 99분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기에 겨우 넉넉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 일이 잦다.

그러나 토지를 개량하고 갈아 가꾸어 한 집의 노동이 두 집의 먹을 것을 마련할 수 있게 되면, 사회 절반의 노동으로 온 사회의 먹을 것을 마련하기에 넉넉해진다. 그러므로 다른 절반, 또는 적어도 그 큰 몫은 다른 것을 마련하거나 사람의 다른 필요와 바람을 채우는 데 부려질 수 있다. 옷과 살 곳, 집안 살림살이, 그리고 이른바 마차 살림13이 그 필요와 바람의 큰 몫이 향하는 주된 거리다. 부자는 가난한 이웃보다 더 많은 먹을 것을 쓰지 않는다. 품질에서는 크게 다를 수 있고 그것을 골라 마련하는 데 더 많은 노동과 기예가 들 수 있으나, 양에서는 거의 같다. 그러나 한쪽의 널찍한 궁궐과 큰 옷장을 다른 쪽의 오막살이와 몇 조각 누더기와 견주어 보면, 그 둘의 옷과 살 곳과 집안 살림살이의 차이가 품질에서 그러한 만큼 양에서도 거의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먹을 것을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사람 위의 좁은 그릇으로 한이 그어져 있으나, 집과 옷과 마차 살림과 집안 살림살이에서 편함과 꾸밈을 바라는 마음에는 한이나 뚜렷한 경계가 없는 듯하다. 그러므로 제가 쓸 수 있는 것보다 많은 먹을 것을 부리는 이들은 그 남는 것, 또는 같은 말이지만 그 값을 언제나 이 다른 종류의 즐거움과 바꾸려 한다. 한이 그어진 바람을 채우고 남는 것은 채워질 수 없고 아주 끝이 없는 듯한 그 바람들을 달래는 데 주어진다. 가난한 이들은 먹을 것을 얻으려고 부자의 그런 바람을 채워 주려 힘쓰며, 그것을 더 틀림없이 얻으려고 자기 일이 싸고 나무랄 데 없도록 서로 겨룬다. 일꾼의 수는 먹을 것의 양이 늘어남에 따라, 곧 토지의 개량과 갈아 가꾸기가 나아감에 따라 늘어난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의 성질이 노동을 가장 잘게 갈라 나누는 것을 받아들이므로 그들이 손질할 수 있는 재료의 양은 그 수보다 훨씬 큰 비율로 늘어난다. 여기서 사람의 재주가 집과 옷과 마차 살림과 집안 살림살이에 요긴하게든 꾸밈으로든 쓸 수 있는 온갖 재료에 대한 수요가 생겨난다. 곧 땅속에 든 화석과 광물, 귀금속, 그리고 보석에 대한 수요다.

이리하여 먹을 것은 지대의 본래 샘일 뿐 아니라, 뒤에 지대를 낳게 되는 토지 생산물의 다른 모든 부분도 그 가치의 그 몫을 토지의 개량과 갈아 가꾸기로 먹을 것을 내는 노동의 힘이 커진 데서 얻는다.

그러나 뒤에 지대를 낳게 되는 토지 생산물의 그 다른 부분이 언제나 지대를 낳는 것은 아니다. 개량하고 갈아 가꾼 고장에서도 그것에 붙는 수요가, 노동을 물어 주고 그것을 시장에 내오는 데 부려야 하는 자산과 그 예사로운 이윤을 메우기에 넉넉한 것보다 더 높은 값을 낳아 줄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런 수요인지 아닌지는 여러 사정에 따라 갈린다.

예를 들어 탄광이 지대를 얼마간 낳을 수 있는지는 얼마쯤 그 기름짐에, 얼마쯤 그 놓인 자리에 달려 있다.

어떤 종류의 광산이든, 일정한 양의 노동으로 그 광산에서 캐낼 수 있는 광물의 양이 같은 양의 노동으로 같은 종류의 다른 광산 큰 몫에서 캐낼 수 있는 것보다 많은가 적은가에 따라 기름지다고도 메말랐다고도 할 수 있다.

좋은 자리에 놓인 탄광 가운데도 메마른 탓에 파낼 수 없는 것이 있다. 그 생산물이 비용을 물어 주지 못한다. 그런 탄광은 이윤도 지대도 낳아 줄 수 없다.

그 생산물이 노동을 물어 주고 그것을 파는 데 부린 자산과 그 예사로운 이윤을 메우기에 겨우 넉넉한 탄광도 있다. 그런 탄광은 그 일을 벌인 사업가에게 얼마간의 이윤은 낳아 주지만 지주에게 지대는 낳아 주지 못한다. 그런 탄광은 지주 말고는 아무도 이롭게 팔 수 없으며, 지주는 스스로 그 일을 벌인 사업가가 되어 거기 부리는 자본의 예사로운 이윤을 얻는다. 스코틀랜드의 많은 탄광이 이렇게 파이며 다르게는 파일 수 없다. 지주는 얼마간의 지대를 물지 않고 다른 누가 그것을 파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터인데, 아무도 지대를 물 수 없다.

같은 고장의 다른 탄광은 넉넉히 기름지면서도 놓인 자리 탓에 파낼 수 없다. 파는 비용을 물기에 넉넉한 양의 광물을 예사로운 양의 노동으로, 또는 예사로운 양보다 적은 노동으로도 그 광산에서 캐낼 수 있을 터이나, 사람이 드물게 살고 좋은 길도 물길 운반도 없는 내륙 고장에서는 이만큼의 양을 팔 수 없을 것이다.

석탄은 나무보다 덜 마음에 드는 땔감이고 몸에도 덜 좋다고 한다. 그러므로 석탄이 쓰이는 곳에서 그 비용은 대개 나무의 비용보다 얼마쯤 적어야 한다.

한편 나무 값은 가축 값과 거의 같은 길로, 그리고 바로 같은 까닭으로 농사의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농사가 거친 첫 시절에는 어느 나라든 그 큰 몫이 나무로 덮여 있고, 그때 나무는 한낱 거리적거리는 것이어서 지주에게 아무 값어치가 없으므로 지주는 베어 가겠다는 누구에게든 그것을 기꺼이 내줄 것이다. 농사가 나아가면서 숲은 얼마쯤 갈이가 퍼지는 데 밀려 걷히고 얼마쯤 가축의 수가 늘어난 탓에 삭아 간다. 가축은 온전히 사람의 근면으로 얻는 곡물과 같은 비율로 늘어나지는 않으나, 사람의 돌봄과 보살핌 아래 불어난다. 사람은 넉넉한 철에 모자란 철을 버티게 해 줄 것을 쌓아 두고, 한 해 내내 가꾸지 않은 자연이 가축에게 내주는 것보다 많은 양의 먹이를 대 주며, 가축의 적을 없애고 뿌리 뽑아 자연이 내주는 모든 것을 가축이 마음껏 누리도록 지켜 준다. 많은 가축 떼가 숲을 헤매고 다니도록 놓아두면, 그것이 늙은 나무를 망치지는 않아도 어린 나무가 올라오는 것을 막으므로 한두 세기가 지나는 동안 숲 전체가 망가진다. 그러면 나무가 모자라 그 값이 오른다. 나무는 좋은 지대를 낳으며, 지주는 자기 가장 좋은 땅을 재목나무 키우는 것보다 더 이롭게 부릴 길이 좀처럼 없다는 것을 더러 알게 된다. 재목나무에서는 이윤이 큰 것이 되돌아오는 것이 늦은 것을 메워 주는 일이 잦다. 요즘 영국의 여러 곳에서 형편이 거의 이러한 듯하며, 그곳에서는 나무 심는 이윤이 곡물이나 목초지의 이윤과 같다고 한다. 지주가 나무 심기에서 얻는 이로움은 적어도 오랜 동안으로 보면 곡물이나 목초지가 그에게 낳아 줄 수 있는 지대를 어디서도 넘어설 수 없으며, 잘 갈아 가꾼 내륙 고장에서는 그 지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지 않는 일이 잦을 것이다. 물론 잘 개량한 고장의 바닷가에서 땔감으로 석탄을 편히 얻을 수 있다면, 집 지을 재목나무를 덜 갈아 가꾼 다른 나라에서 실어 오는 것이 집에서 키우는 것보다 싼 일이 더러 있을 수 있다. 근래 몇 해 사이에 지은 에든버러의 새 시가에는 스코틀랜드 재목이 한 토막도 없을 것이다.

나무 값이 어떠하든, 석탄 값이 석탄 불에 드는 비용을 나무 불에 드는 비용과 거의 같게 만드는 수준이라면, 그곳에서 그런 사정 아래 석탄 값은 오를 수 있는 만큼 다 올랐다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잉글랜드 내륙의 몇몇 곳, 특히 옥스퍼드셔에서 그런 듯하다. 그곳에서는 흔한 사람들의 불에서도 석탄과 나무를 섞는 것이 예사이며, 그러므로 그 두 갈래 땔감의 비용 차이가 아주 클 수는 없다. 석탄이 나는 고장에서는 석탄 값이 어디서나 이 가장 높은 값보다 훨씬 낮다. 그렇지 않다면 석탄은 물길로든 땅길로든 먼 운반의 비용을 짊어질 수 없을 것이다. 적은 양만 팔릴 것이고, 탄광 경영주와 탄광 임자는 적은 양을 가장 높은 값에 파는 것보다 많은 양을 가장 낮은 값보다 얼마쯤 높은 값에 파는 것이 자기 이익에 더 맞는다고 본다. 또 가장 기름진 탄광이 그 근방 다른 모든 탄광의 석탄 값을 다스린다. 그 광산의 임자와 그 일을 벌인 사업가는 근방의 모든 이보다 얼마쯤 싸게 팔아서, 앞의 사람은 더 많은 지대를 얻을 수 있고 뒤의 사람은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근방의 이들은 그 값을 감당하기 어렵고 그 값이 자기들의 지대와 이윤을 언제나 줄이고 더러는 아예 없애 버리는데도 곧 같은 값에 팔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떤 광산은 아예 버려지고, 어떤 광산은 지대를 낳지 못하여 그 임자만이 팔 수 있게 된다.

석탄이 오랜 동안 팔릴 수 있는 가장 낮은 값은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시장에 내오는 데 부려야 하는 자산과 그 예사로운 이윤을 메우기에 겨우 넉넉한 값이다. 지주가 지대를 얻을 수 없어 스스로 파거나 아예 내버려 두어야 하는 탄광에서 석탄 값은 대개 이 값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석탄이 지대를 낳는 곳에서도 지대가 그 값에서 차지하는 몫은 대개 토지의 원생산물 가운데 다른 대부분의 값에서 차지하는 몫보다 작다. 땅 위의 토지에서 나는 지대는 예사로 총생산물의 3분의 1이라고 여겨지는 데 이르며, 그것은 대개 정해진 지대여서 수확이 이따금 오르내리는 것과 무관하다. 탄광에서는 총생산물의 5분의 1이면 아주 큰 지대이고 10분의 1이 흔한 지대이며, 그것이 정해진 지대인 일은 좀처럼 없고 생산물이 이따금 오르내리는 데 달려 있다. 그 오르내림이 하도 커서, 토지의 소유권을 30년치 값14으로 사는 것이 웬만한 값으로 여겨지는 고장에서 탄광의 소유권은 10년치 값이면 좋은 값으로 여겨진다.

탄광이 그 임자에게 지니는 가치는 그 기름짐만큼이나 놓인 자리에 달려 있는 일이 잦다. 금속 광산의 가치는 그 기름짐에 더 많이, 놓인 자리에 더 적게 달려 있다. 거친 금속15은, 그리고 귀금속은 더욱이 광석에서 갈라내면 하도 값나가서 대개 아주 먼 땅길 운반과 가장 먼 바닷길 운반의 비용을 짊어질 수 있다. 그 시장은 광산 근방의 고장에 갇히지 않고 온 세계에 걸친다. 일본의 구리는 유럽의 거래에서 한 품목을 이루고, 스페인의 철은 칠레와 페루의 거래에서 한 품목을 이룬다. 페루의 은은 유럽으로만 흘러가지 않고 유럽에서 중국으로도 흘러간다.

웨스트모얼랜드나 슈롭셔의 석탄 값은 뉴캐슬의 석탄 값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하고, 리오네(리옹 지방)의 석탄 값은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처럼 멀리 떨어진 탄광의 생산물은 결코 서로 겨룸에 끌려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가장 멀리 떨어진 금속 광산의 생산물은 그럴 수 있는 일이 잦고 실제로 예사로 그렇게 된다.

그러므로 세계에서 가장 기름진 광산의 거친 금속 값, 그리고 더욱이 귀금속 값은 세계의 다른 모든 광산에서 그 값에 얼마쯤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구리 값은 유럽의 구리 광산에서 그 값에 얼마간의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페루의 은 값, 곧 그 은이 거기서 살 수 있는 노동이나 다른 재화의 양은 유럽의 은광에서뿐 아니라 중국의 은광에서도 그 값에 얼마간의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페루의 광산이 발견된 뒤에 유럽의 은광은 그 큰 몫이 버려졌다. 은의 가치가 하도 많이 떨어져서 그 생산물이 더는 그 광산을 파는 비용을 물어 주지도, 그 일에 쓰인 먹을 것과 옷과 살 곳과 그 밖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이윤과 함께 메우지도 못하였다. 쿠바와 산토도밍고의 광산도 그러했고, 포토시의 광산이 발견된 뒤에는 페루의 오래된 광산까지 그러했다. 그러므로 모든 광산에서 모든 금속의 값은 세계에서 실제로 파이고 있는 가장 기름진 광산의 값에 얼마쯤 다스려지므로, 광산의 큰 몫에서 그 값은 파는 비용을 물어 주는 것을 조금 넘는 데 지나지 않으며 지주에게 아주 높은 지대를 낳아 주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래서 광산의 큰 몫에서 지대는 거친 금속의 값에서 작은 몫만을 차지하고 귀금속의 값에서는 더 작은 몫을 차지하는 듯하다. 노동과 이윤이 둘 다의 큰 몫을 이룬다.

주석 광산 관할(스태너리)의 부감독관인 볼레이스 목사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로는, 세계에 알려진 가장 기름진 주석 광산인 콘월의 주석 광산에서 평균 지대는 총생산물의 6분의 1로 셈할 수 있다. 그의 말로는 어떤 광산은 그보다 많이 낳고 어떤 광산은 그만큼 낳지 못한다. 스코틀랜드의 아주 기름진 여러 납 광산의 지대도 총생산물의 6분의 1이다.

프레지에와 우요아가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로는, 페루의 은광에서 임자는 그 광산을 벌인 사업가에게서 광석을 자기 방아에서 갈고 예사로운 방앗세, 곧 가는 값을 물겠다는 것 말고는 다른 사례를 요구하지 않는 일이 잦다. 실제로 1736년까지 스페인 왕의 세금은 법정 품질의 은 5분의 1에 이르렀고, 그때까지 그것은 세계에 알려진 가장 풍족한 은광인 페루 은광의 큰 몫에서 실질 지대로 여길 만한 것이었다. 그 세금이 없었다면 이 5분의 1은 자연히 지주에게 돌아갔을 것이고, 그 세금을 물 수 없어서 그때 팔 수 없었던 많은 광산이 파였을 것이다. 콘월 공이 주석에 매기는 세금은 5퍼센트를 넘는 것, 곧 그 가치의 20분의 1에 이른다고 여겨지며, 그 몫이 얼마이든 주석에 세금이 없다면 그것도 자연히 그 광산의 임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20분의 1을 6분의 1에 더해 보면, 콘월 주석 광산의 평균 지대 전체가 페루 은광의 평균 지대 전체에 대하여 13 대 12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페루의 은광은 이제 이 낮은 지대조차 물 수 없으며, 은에 매기는 세금은 1736년에 5분의 1에서 10분의 1로 내려갔다. 또 은에 매기는 이 세금조차 주석에 매기는 20분의 1 세금보다 밀수를 더 꾀며, 밀수는 부피 큰 상품보다 값진 상품에서 훨씬 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페인 왕의 세금은 아주 잘 걷히지 않고 콘월 공의 세금은 아주 잘 걷힌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기름진 은광의 은 값에서보다 가장 기름진 주석 광산의 주석 값에서 더 큰 몫을 이룰 것이다. 그 여러 광산을 파는 데 부린 자산과 그 예사로운 이윤을 메운 뒤에 임자에게 남는 나머지는 귀금속에서보다 거친 금속에서 더 큰 듯하다.

페루에서 은광을 벌인 사업가들의 이윤도 예사로 아주 크지는 않다. 아주 미더우면서 잘 아는 그 같은 저술가들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바로는, 페루에서 누가 새 광산을 파기로 나서면 그는 누구에게나 파산과 몰락이 정해진 사람으로 보이며 그 때문에 모두가 그를 꺼리고 피한다. 광산 일은 거기서도 여기서와 마찬가지로 복권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 복권에서 당첨 제비는 빈 제비를 메워 주지 못하는데도, 몇몇 당첨이 큰 것이 많은 모험가를 꾀어 그런 가망 없는 사업에 자기 재산을 던져 버리게 만든다.

그러나 주권자가 자기 세입의 적지 않은 몫을 은광의 생산물에서 끌어내므로, 페루의 법은 새 은광을 찾아내고 파는 일을 될 수 있는 대로 다 북돋운다. 새 광산을 찾아낸 사람은 누구든 광맥이 뻗은 방향이라고 짐작하는 쪽으로 길이 246피트, 너비로 그 절반을 재어 떼어 낼 권리를 얻는다. 그는 그 광산의 이 몫의 임자가 되고, 지주에게 아무 사례도 물지 않고 그것을 팔 수 있다. 콘월 공의 이익이 그 오래된 공국에서 거의 같은 종류의 규정을 낳는 계기가 되었다. 버려지고 울타리를 두르지 않은 땅에서는 주석 광산을 찾아낸 사람이 누구든 일정한 범위까지 그 경계를 그어 표시할 수 있는데, 이것을 광산의 경계 잡기라 부른다. 경계를 잡은 사람은 그 광산의 실질 임자가 되어, 땅 주인의 동의 없이 스스로 그것을 파거나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 있다. 다만 그것을 팔 때에는 땅 주인에게 아주 작은 사례를 물어야 한다. 두 규정에서 모두 사유 재산의 거룩한 권리가 나라 세입의 이익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바쳐진다.

페루에서는 새 금광을 찾아내고 파는 일에도 같은 북돋움이 주어지며, 금에서는 왕의 세금이 법정 품질 금속의 20분의 1에만 이른다. 그것은 한때 은에서처럼 5분의 1이었고 그 뒤에 10분의 1이었으나, 그 일이 이 두 세금 가운데 낮은 것조차 짊어질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프레지에와 우요아라는 그 같은 저술가들이 말하는 바로는, 은광으로 재산을 모은 사람을 찾기가 드물다면 금광으로 그렇게 한 사람을 찾기는 훨씬 더 드물다. 이 20분의 1이 칠레와 페루의 금광 큰 몫에서 물리는 지대 전부인 듯하다. 또 금은 은보다도 밀수되기 훨씬 쉬운데, 그 금속이 부피에 견주어 값어치가 더 높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연이 그것을 내놓는 남다른 꼴 때문이기도 하다. 은은 다른 것과 섞이지 않은 채로 발견되는 일이 아주 드물고, 다른 대부분의 금속처럼 대개 어떤 다른 물질과 섞여 광석이 되어 있다. 비용을 물어 줄 만한 양으로 그것을 갈라내는 일은 아주 힘들고 지루한 작업 없이는 될 수 없는데, 그 작업은 그것을 위하여 세운 작업장에서가 아니면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왕의 관리가 살펴보는 눈에 드러난다. 반대로 금은 거의 언제나 다른 것과 섞이지 않은 채로 발견된다. 그것은 더러 얼마간 부피가 있는 덩이로 발견되며, 모래와 흙과 그 밖의 딴 물질에 작고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알갱이로 섞여 있을 때에도 아주 짧고 단순한 작업으로 갈라낼 수 있다. 그 작업은 수은을 조금 가진 누구든 어느 사삿집에서나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왕의 세금이 은에서 잘 걷히지 않는다면 금에서는 훨씬 더 잘 걷히지 않을 것이며, 지대는 은 값에서보다 금 값에서 훨씬 작은 몫을 이룰 수밖에 없다.

귀금속이 오랜 동안 팔릴 수 있는 가장 낮은 값, 곧 그것과 바꿀 수 있는 다른 재화의 가장 작은 양은 다른 모든 재화의 가장 낮은 예사 값을 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에 다스려진다. 그것을 광산에서 시장으로 내오는 데 예사로 부려야 하는 자산과 예사로 쓰여야 하는 먹을 것과 옷과 살 곳이 그 값을 정한다. 그 값은 적어도 그 자산을 예사로운 이윤과 함께 메우기에 넉넉해야 한다.

그러나 그 가장 높은 값은 이 금속 자체가 실제로 드문가 넉넉한가 말고는 어떤 것으로도 반드시 정해지지 않는 듯하다. 그것은 석탄 값이 나무 값에 정해지고 어떤 모자람도 그 값을 그 위로 끌어올릴 수 없는 것과 같이 다른 어떤 상품의 값에 정해지지 않는다. 금이 드문 것을 어느 정도까지 키워 보라. 그러면 그 가장 작은 조각이 금강석보다 값진 것이 되어 더 많은 양의 다른 재화와 바뀔 수 있다.

그 금속에 대한 수요는 얼마쯤 그 요긴함에서, 얼마쯤 그 아름다움에서 생겨난다. 철을 빼면 그것은 어쩌면 다른 어느 금속보다 요긴하다. 그것은 녹과 더러움을 덜 입으므로 깨끗하게 두기가 더 쉽고, 그 때문에 밥상이나 부엌의 그릇은 그것으로 만들었을 때 더 마음에 드는 일이 잦다. 은 솥은 납이나 구리나 주석 솥보다 깨끗하며, 같은 성질이 금 솥을 은 솥보다 더 좋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 주된 값어치는 아름다움에서 생겨나며, 그 아름다움이 그것을 옷과 살림살이의 꾸밈에 유별나게 알맞게 만든다. 어떤 물감이나 물들임도 도금만큼 빛나는 빛깔을 낼 수 없다. 그 아름다움의 값어치는 그것이 드문 덕에 크게 높아진다. 부자의 큰 몫에게 부의 주된 즐거움은 부를 내보이는 데 있으며, 그것은 그들 눈에 자기들 말고는 아무도 가질 수 없는 그 또렷한 넉넉함의 표시를 가진 듯이 보일 때만큼 온전한 적이 없다. 그들 눈에는 얼마쯤이라도 요긴하거나 아름다운 물건의 값어치가, 그것이 드문 덕에, 또는 그것을 적지 않은 양으로 모으는 데 드는 큰 노동, 곧 자기들 말고는 아무도 물어 줄 수 없는 노동 덕에 크게 높아진다. 그런 물건을 그들은 훨씬 더 아름답고 요긴하지만 더 흔한 것보다 높은 값으로 사려 한다. 요긴함과 아름다움과 드묾이라는 이 성질이 그 금속의 높은 값, 곧 그것이 어디서나 바뀔 수 있는 다른 재화의 많은 양의 본래 바탕이다. 이 가치는 그것이 돈으로 쓰이기에 앞서 있었고 그 쓰임과 무관하였으며, 그것을 그 쓰임에 알맞게 만든 성질이었다. 그러나 그 쓰임은 새 수요를 낳고 다른 쓰임새로 부릴 수 있는 양을 줄임으로써 뒤에 그 가치를 지탱하거나 키우는 데 이바지했을 수 있다.

보석에 대한 수요는 온전히 그 아름다움에서 생겨난다. 그것은 꾸밈으로 쓰이는 것 말고는 쓸모가 없으며, 그 아름다움의 값어치는 그것이 드문 덕에, 또는 그것을 광산에서 얻는 어려움과 비용 덕에 크게 높아진다. 그래서 임금과 이윤이 대부분의 경우에 그 높은 값의 거의 전부를 이룬다. 지대는 아주 작은 몫으로만 들어오고 아무 몫도 차지하지 못하는 일이 잦으며, 가장 기름진 광산만이 얼마간 적지 않은 지대를 낳아 준다. 보석 장인 타베르니에가 골콘다와 비자푸르의 금강석 광산을 찾아갔을 때, 그는 그 광산을 파서 이득을 얻던 그 고장의 주권자가 가장 크고 가장 좋은 돌을 내는 광산만 남기고 모두 닫으라고 명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나머지는 그 임자에게 팔 만한 값어치가 없었던 듯하다.

귀금속과 보석의 값은 온 세계에서 세계의 가장 기름진 광산의 값에 다스려지므로, 그 어느 쪽 광산이든 그 임자에게 낳아 줄 수 있는 지대는 그 절대적인 기름짐에 비례하지 않고 이른바 상대적인 기름짐, 곧 같은 종류의 다른 광산에 대한 우위에 비례한다. 포토시의 광산이 유럽의 광산보다 나았던 만큼 포토시의 광산보다 나은 새 광산이 발견된다면, 은의 가치가 하도 떨어져서 포토시의 광산까지 팔 만한 값어치가 없게 될 수 있다. 스페인령 서인도가 발견되기 전에는 유럽에서 가장 기름진 광산이 그 임자들에게 지금 페루의 가장 풍족한 광산이 낳아 주는 만큼 큰 지대를 낳아 주었을 수 있다. 은의 양이 훨씬 적었더라도 그것이 같은 양의 다른 재화와 바뀌었을 수 있고, 임자의 몫이 그에게 같은 양의 노동이나 상품을 사거나 부릴 수 있게 해 주었을 수 있다.

주

  1. 1. 옮긴이 — 유료 도로(turnpike road)는 통행세를 받아 그 돈으로 길을 닦고 건사하던 길이다. 잉글랜드에서는 17세기 중엽부터 의회가 법으로 도로 관리 조합을 세워 주었고, 18세기에 그 수가 빠르게 늘었다. 19세기 후반에 철도가 퍼지면서 사라졌다.

  2. 2. 옮긴이 — 이 책의 화폐는 파운드·실링·펜스다. 1파운드는 20실링이고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파딩은 4분의 1펜스다. 오늘날 값으로는 환산하지 않는다. 스미스의 논증은 절대액이 아니라 비율에 걸려 있다. 레알은 스페인의 은화이고, 스털링은 영국 화폐를 가리킨다.

  3. 3. 옮긴이 — 저본에 오식으로 보이는 자리가 이 장에 두 군데 있다. 첫째, 라플라타강 대목의 저본은 「the money-price of labour could be very cheap」인데 앞뒤 논지로 보면 「could not be very cheap」이어야 하므로 그 뜻으로 옮겼다. 둘째, 페루의 금세 대목에서 저본은 「standard rental」로 적고 있으나 은을 다룬 앞 문단의 「standard silver」와 짝을 맞추면 「법정 품질의 금속」이다.

  4. 4. 옮긴이 — 연합법은 1707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한 왕국으로 합친 법이다. 이로써 두 나라 사이의 관세가 없어지고 스코틀랜드의 가축과 물건이 잉글랜드 시장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5. 5. 옮긴이 — 노 카토(기원전 234~149)는 로마의 정치가로 『농사에 대하여』를 남겼다. 키케로(기원전 106~43)는 로마의 정치가이자 변론가다.

  6. 6. 옮긴이 — 여기 나오는 헨리 왕자는 제임스 1세의 맏아들 헨리 프레더릭(1594~1612)이다. 아버지보다 먼저 죽어 왕위에 오르지 못하였고, 아우가 찰스 1세가 되었다. 토머스 버치(1705~1766)는 그의 전기를 쓴 영국의 저술가다.

  7. 7. 옮긴이 — 쿼터는 곡물을 되는 단위로 약 291리터이며 밀로는 8부셸쯤이다. 네 분의 일이라는 뜻이 아니다. 윈체스터 부셸은 1696년에 법으로 정해진 영국의 부셸로 약 35리터다. 여기서 저본이 1쿼터를 9부셸로 적은 것은 윈저 시장에서 쓰던 되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8. 8. 옮긴이 —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년쯤~370년쯤)는 그리스의 철학자로, 옛사람들은 그가 농사에 대하여 쓴 글을 남겼다고 보았다. 콜루멜라는 1세기 로마의 농학자로 『농사에 대하여』를 남겼고, 바로(기원전 116~27)와 팔라디우스(4세기)도 로마의 농서 저자다.

  9. 9. 옮긴이 — 국왕 참사회의 명령은 프랑스에서 왕이 참사회를 거쳐 내리던 행정 명령이다. 앵탕당은 왕이 각 주에 보내 재정과 치안과 재판을 살피게 한 지방 행정관으로, 18세기 프랑스 지방 통치의 중심이었다.

  10. 10. 옮긴이 — 저본의 낱말은 negro이며,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의 담배 농장에서 노예로 부려진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문단의 「6000그루」와 「4에이커」는 그들 한 사람에게 지워진 일의 양을 적은 것이다.

  11. 11. 옮긴이 — 저본의 Indian corn 은 아메리카 원산의 낟알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 corn 은 모두 곡물, 특히 밀을 뜻하므로 이 자리만 갈라 적었다.

  12. 12. 옮긴이 — 저본의 barren timber 는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에서 얻는 재목을 말한다. 과일나무와 맞세운 말이며, 집을 짓고 배를 만드는 데 쓰였다.

  13. 13. 옮긴이 — equipage 는 마차와 그것을 끄는 말, 거기 딸린 마부와 하인까지 아우르는 것을 가리킨다. 18세기에 신분과 넉넉함을 드러내는 가장 눈에 띄는 살림이었다.

  14. 14. 옮긴이 — 「몇 년치 값」(years purchase)은 한 해 지대의 몇 배로 땅값을 셈하던 당대의 방식이다. 30년치 값이면 한 해 지대의 30배를 내고 그 땅을 산다는 뜻이다.

  15. 15. 옮긴이 — 「거친 금속」은 구리와 납과 주석과 철처럼 값이 낮은 금속을 가리키며, 금과 은 같은 귀금속과 맞세운 스미스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