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국부론2장
차례
로그인

2장 사회의 일반 세입 곧 공공 세입의 원천에 대하여 (이어서)

여기서 내놓은 제도 바꿈으로 손해를 볼 성싶은 사람은 제집에서 쓰려고 술을 빚는 이들뿐이다. 그러나 이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가난한 일꾼과 수공업자가 내는 아주 무거운 세금에서 벗어나 있는 면제는 참으로 더할 나위 없이 옳지 못하고 고르지 못하니, 이런 바꿈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땅히 없애야 한다. 그러나 세입을 늘리면서 동시에 백성의 짐을 덜어 주기 마련인 제도 바꿈을 여태 막아 온 것은 아마 이 높은 계층의 이해였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관세와 소비세 같은 세금 말고도 물건값에 더 고르지 못하게 그리고 더 에둘러 미치는 세금이 몇 가지 더 있다. 프랑스 말로 페아주라 부르고 옛 색슨 시대에는 통행세라 부르던 세금이 이 갈래에 드는데, 그것은 본디 우리의 유료 도로 통행세나 운하와 배가 다니는 강에 물리는 통행세와 같은 뜻으로, 곧 길이나 물길을 건사하려고 세워진 듯하다. 이런 세금은 그런 데에 쓰일 때에는 물건의 부피나 무게에 따라 물리는 것이 가장 알맞다. 그것은 본디 고장과 지방의 세금으로서 고장과 지방의 일에 쓰이는 것이었으므로, 그 관리는 대개 그것을 걷는 특정한 도시나 교구나 영지에 맡겨졌고, 그런 공동체는 이러저러한 모로 그 쓰임에 책임을 진다고 여겨졌다. 아무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는 주권자가 여러 나라에서 이런 세금의 관리를 제 손에 넣었는데, 그는 대개 그 세금을 아주 크게 올리면서도 여러 곳에서 그 쓰임은 통째로 내버려 두었다. 영국의 유료 도로 통행세가 언젠가 정부의 재원 가운데 하나가 된다면 그 결과가 어떠할지는 다른 여러 나라의 본보기로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런 통행세를 끝내 치르는 이가 소비하는 사람임은 의심할 것이 없다. 그러나 소비하는 사람이 제가 소비하는 것의 가치가 아니라 그 부피나 무게에 따라 치른다면, 그는 제 씀씀이에 비례하여 과세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세금을 부피나 무게가 아니라 물건의 값어치를 어림잡아 그에 따라 물리면, 그것은 제대로 말해 내륙 관세 곧 소비세의 한 갈래가 되어 온갖 갈래의 상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곧 나라 안의 상업을 몹시 가로막는다.

어떤 작은 나라에서는 이런 통행세와 비슷한 세금을 한 외국에서 다른 외국으로 뭍길이나 물길로 제 땅을 가로질러 실어 가는 물건에 물린다. 어떤 나라에서는 이것을 통과세라 부른다. 포강과 그리로 흘러드는 강가에 자리 잡은 이탈리아의 작은 나라 몇몇은 이런 갈래의 세금에서 얼마간의 세입을 끌어내는데, 그것은 온통 외국 사람이 내는 것이며, 아마 한 나라가 제 나라의 근면이나 상업을 어느 모로도 가로막지 않고 다른 나라의 신민에게 물릴 수 있는 하나뿐인 세금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통과세는 덴마크 국왕이 외레순해협1을 지나는 모든 상선에서 걷는 것이다.

관세와 소비세의 큰 몫이 그러하듯 사치품에 물리는 세금은 온갖 갈래의 수입에 가리지 않고 떨어지고, 그것이 물려진 상품을 소비하는 이가 누구든 그가 끝내, 곧 아무 보상 없이 치른다. 그러나 그것이 늘 사람마다의 수입에 고르게 또는 비례하여 떨어지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제 기분이 제 소비의 정도를 다스리므로, 사람은 제 수입에 비례해서라기보다 제 기분에 따라 갹출하는 셈이다. 헤픈 이는 제 마땅한 몫보다 많이, 아끼는 이는 그보다 적게 낸다. 큰 재산을 가진 사람이 미성년일 동안 그는 그 보호에서 큰 수입을 끌어내는 나라를 떠받치는 데에 제 소비로 으레 아주 조금밖에 이바지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사는 이들은 제 수입의 원천이 놓여 있는 나라의 정부를 떠받치는 데에 제 소비로 아무것도 이바지하지 않는다. 아일랜드가 그러하듯 이 뒤엣것의 나라에 토지세도 없고 움직이는 재산이든 움직이지 않는 재산이든 그 넘김에 물리는 이렇다 할 세금도 없다면, 그렇게 나가 사는 이들은 한 실링도 이바지하지 않는 정부의 보호에서 큰 수입을 끌어낼 수 있다. 이 고르지 못함은 그 정부가 어떤 모로 다른 나라의 정부에 딸려 있고 매여 있는 나라에서 가장 클 법하다. 이럴 때에 딸린 나라에서 가장 넓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으레 다스리는 나라에 살기를 고른다. 아일랜드가 바로 이 자리에 놓여 있으니, 나가 사는 이에게 세금을 물리자는 제안이 그 나라에서 그토록 인기를 얻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어떤 갈래의, 또 어느 만큼의 떠나 있음이 한 사람을 나가 사는 이로 과세받게 만드는지, 또 언제부터 언제까지 그 세금을 물려야 하는지를 가려내기란 아마 조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아주 남다른 자리를 빼고 나면, 그런 세금에서 생길 수 있는 사람마다의 갹출의 고르지 못함은 바로 그 고르지 못함을 낳는 사정으로 넘치도록 메워진다. 곧 사람마다의 갹출이 온통 제 뜻에 달려 있다는 사정, 과세된 상품을 소비하든 소비하지 않든 온전히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정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세금이 알맞게 매겨지고 알맞은 상품에 물려지면 다른 어떤 세금보다 투덜거림 없이 치러진다. 그것을 상인이나 제조업자가 먼저 치러 두면, 끝내 그것을 치르는 소비하는 사람은 머잖아 그것을 상품값과 뒤섞어 여기게 되어 제가 세금을 치른다는 것을 거의 잊는다. 그런 세금은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하거나 확실할 수 있으며, 얼마를 치러야 하는지 언제 치러야 하는지, 곧 치르는 양에도 치르는 때에도 의심이 남지 않도록 매길 수 있다. 영국의 관세나 다른 나라의 같은 갈래의 세금에 이따금 어떤 아리송함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세금의 성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물리는 법이 정확하지 못하거나 서투르게 적힌 데에서 나온다.

사치품에 물리는 세금은 으레 조각조각 치러지며 늘 그럴 수 있으니, 곧 내는 이들이 그것이 물려진 물건을 살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 비례하여 치른다. 치르는 때와 치르는 길로 보면 그것은 온갖 세금 가운데 가장 편하거나 가장 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체로 그런 세금은 과세에 관한 네 가지 두루한 격률 가운데 앞의 세 가지에는 아마 다른 어떤 세금 못지않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네 번째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어긴다.

그런 세금은 나라의 국고에 들여보내는 것에 견주어 거의 다른 어느 세금보다도 백성의 주머니에서 많은 것을 빼내거나 빼내지 못하게 막아 둔다. 그것은 그리할 수 있는 네 가지 길을 모두 밟는 듯하다.

첫째, 그런 세금을 걷으려면 더할 나위 없이 슬기롭게 물린다 하더라도 수많은 세관 관리와 소비세 관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의 봉급과 부수입은 백성에게 물리는 실제 세금이면서 나라의 국고에는 아무것도 들여보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비용이 영국에서는 다른 웬만한 나라에서보다 덜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1775년 7월 5일에 끝난 해에 잉글랜드의 소비세 위원이 관리하는 여러 세금의 총생산은 550만 7,308파운드 18실링 8과 4분의 1펜스에 이르렀고, 이는 5.5퍼센트가 조금 넘는 비용으로 걷힌 것이다. 그러나 이 총생산에서는 소비세가 붙은 물건을 내보낼 때 장려금과 관세 환급으로 치러 준 것을 빼야 하니, 그러면 순생산은 500만 파운드 아래로 내려간다(그해의 순생산은 온갖 비용과 공제를 뺀 뒤에 497만 5,652파운드 19실링 6펜스에 이르렀다). 소금세를 걷는 일은 그것이 소비세이면서도 다른 관리 밑에 있어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2 관세의 순 세입은 250만 파운드에 이르지 못하는데, 이것은 관리의 봉급과 그 밖의 잡비로 10퍼센트가 넘는 비용을 들여 걷힌다. 그런데 세관 관리의 부수입은 어디서나 그 봉급보다 훨씬 크고, 어떤 항구에서는 봉급의 두세 곱절이 넘는다. 그러므로 관리의 봉급과 그 밖의 잡비가 관세의 순 세입의 10퍼센트를 넘는다면, 그 세입을 걷는 온 비용은 봉급과 부수입을 합하여 20퍼센트나 30퍼센트를 넘을 수도 있다. 소비세 관리는 부수입을 거의 또는 전혀 받지 않으며, 세입의 이 갈래를 관리하는 일은 더 나중에 자리 잡은 것이어서 오랜 세월이 여러 폐단을 끌어들이고 굳혀 놓은 관세 관리보다 대체로 덜 썩었다. 지금 엿기름과 엿기름 술에 물리는 여러 세금으로 걷는 세입을 죄다 엿기름에만 물린다면 소비세의 해마다 드는 비용에서 5만 파운드가 넘게 아껴지리라고들 본다. 관세를 몇 가지 물건에만 가두고 그 세금을 소비세 법에 따라 걷는다면, 아마 관세의 해마다 드는 비용에서 훨씬 큰 절약이 이루어질 것이다.

둘째, 그런 세금은 어떤 산업 부문을 가로막거나 주저앉힐 수밖에 없다. 그것은 늘 과세된 상품의 값을 올리므로 그만큼 그 소비를 주저앉히고 따라서 그 생산도 주저앉힌다. 그것이 나라 안에서 나거나 만들어진 상품이라면 그것을 기르고 만드는 데에 쓰이는 노동이 줄어든다. 세금이 이런 모로 값을 올리는 것이 외국 상품이라면, 참으로 같은 갈래의 나라 안 물건이 그 덕에 나라 안 시장에서 얼마간 이득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국내 산업이 그것을 마련하는 쪽으로 돌려질 수 있다. 그러나 외국 상품의 이런 값 오름이 국내 산업의 한 부문을 북돋울 수는 있어도, 그것은 거의 다른 모든 부문의 산업을 주저앉힐 수밖에 없다. 버밍엄의 제조업자가 제 외국 포도주를 비싸게 살수록, 그것을 사는 데에 쓰는, 또는 같은 말이지만 그 값으로 사는 제 철물의 그 몫을 그만큼 싸게 파는 셈이다. 그러므로 그의 철물의 그 몫은 그에게 값어치가 덜해지고, 그것을 만드는 데에 힘쓸 마음도 줄어든다. 한 나라의 소비하는 사람이 다른 나라의 남는 생산물에 비싸게 치를수록, 그것을 사는 데에 쓰는, 또는 같은 말이지만 그 값으로 사는 제 남는 생산물의 그 몫을 그만큼 싸게 파는 셈이다. 제 남는 생산물의 그 몫은 그들에게 값어치가 덜해지고, 그 양을 늘릴 마음도 줄어든다. 그러므로 소비재에 물리는 온갖 세금은 과세된 상품이 나라 안 물건이면 그것을 마련하는 데에 쓰이는 생산적 노동의 양을, 외국 물건이면 그것을 사들이는 데에 쓰이는 물건을 마련하는 생산적 노동의 양을, 세금이 없었더라면 되었을 것보다 줄이는 쪽으로 기운다. 그런 세금은 또 나라의 산업이 저절로 잡을 방향을 얼마쯤 늘 바꾸어, 그 산업이 제 힘으로 흘러갔을 물길과는 언제나 다르고 대개 덜 이로운 물길로 돌려놓는다.

셋째, 밀수로 그런 세금을 벗어나 보려는 바람은 자주 몰수와 그 밖의 벌을 불러 밀수꾼을 아주 망하게 만든다. 그는 제 나라의 법을 어겼으니 의심할 것 없이 크게 나무랄 만하지만, 자연의 정의가 정한 법은 어길 줄 모르는 사람인 일이 잦으며, 자연이 결코 죄로 삼으려 하지 않은 것을 제 나라의 법이 죄로 만들어 놓지만 않았더라면 어느 모로 보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시민이었을 사람이다. 쓸데없는 비용이 많고 공공 세입을 크게 잘못 쓴다는 의심이 적어도 두루 퍼져 있는 저 썩은 정부 아래에서는 그 세입을 지키는 법이 거의 존중받지 못한다. 거짓 맹세를 하지 않고도 쉽고 안전하게 밀수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밀수한 물건을 사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체하는 일은 세입법을 어기는 짓과 거의 늘 거기에 따르는 거짓 맹세를 드러내 놓고 북돋우는 짓임에도, 웬만한 나라에서는 누구에게도 믿음을 얻기는커녕 그런 체하는 사람을 제 이웃 대다수보다 더 큰 악당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내놓을 뿐인 저 고지식한 위선의 하나로 여겨질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너그러이 봐주는 통에 밀수꾼은 제 장사를 이어 갈 마음을 자주 얻고 그것을 어느 만큼 죄 없는 일로 여기도록 배우게 된다. 그러다가 세입법의 가혹함이 제게 떨어지려 할 때 그는 제 정당한 재산으로 여기는 데에 익은 것을 힘으로 지키려 드는 일이 잦다. 처음에는 아마 죄를 지었다기보다 조심성이 없었을 뿐인 사람이 끝내는 사회의 법을 어기는 가장 억세고 가장 다부진 무리의 하나가 되고 마는 일이 너무나 잦다. 밀수꾼이 망하면서 앞서 생산적 노동을 떠받치는 데에 쓰이던 그의 자본은 나라의 세입으로 아니면 세무 관리의 수입으로 빨려 들어가 비생산적 노동을 떠받치는 데에 쓰이며, 그만큼 사회의 일반 자본과 그것이 떠받칠 수 있었을 쓸모 있는 산업이 줄어든다.

넷째, 그런 세금은 적어도 과세된 상품을 다루는 장사치들을 세리의 잦은 방문과 밉살스러운 조사에 내놓음으로써 그들을 이따금 얼마쯤 억누르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고 언제나 큰 성가심과 괴로움에 빠뜨린다. 괴로움이 엄밀히 말해 비용은 아니나 사람마다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기꺼이 치를 만한 비용과 맞먹는 것임은 앞에서 이미 말한 바다. 소비세법은 그것이 세워진 목적에는 더 잘 들어맞으나 이 모로는 관세법보다 더 성가시다. 어떤 상인이 얼마간의 관세가 붙는 물건을 들여와 그 세금을 치르고 물건을 제 창고에 들여놓았다면, 그는 웬만하면 세관 관리에게 더는 성가심이나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 소비세가 붙는 물건은 그렇지 않다. 그것을 다루는 이들은 소비세 관리의 끊임없는 방문과 조사에서 숨 돌릴 겨를이 없다. 소비세가 그런 까닭에 관세보다 미움을 더 받고, 그것을 걷는 관리도 그러하다. 그 관리들이 대체로는 아마 관세 관리 못지않게 제 직무를 다하면서도, 그 직무가 저희를 이웃 몇몇에게 자주 몹시 성가신 사람이 되게 만드는 터라 관세 관리에게는 흔히 없는 어떤 모진 성품을 으레 몸에 붙이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아마 그들의 부지런함에 밀수를 막히거나 들킨 속임수 장사치들이 지어낸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소비재에 물리는 세금에서 아마 얼마쯤은 떼어 낼 수 없을 이 불편함은 영국 사람에게 다른 어느 나라, 곧 정부의 씀씀이가 그만한 나라의 사람에게 떨어지는 것만큼 가볍게 떨어진다.3 우리 나라의 살림살이가 흠 없지는 않고 고칠 데도 있겠으나, 그것은 우리 이웃 대다수의 것과 같거나 그보다 낫다.

소비재에 물리는 세금이 상인의 이윤에 물리는 세금이라는 생각 탓에, 어떤 나라에서는 그 세금을 물건이 팔릴 때마다 되풀이해 물렸다. 들여오는 상인이나 만들어 파는 상인의 이윤에 세금을 물린다면, 그들과 소비하는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온갖 중간 사는 이들의 이윤에도 똑같이 물려야 고르다고 여겨진 것이다. 스페인의 이름난 알카발라4는 이 원리 위에 세워진 듯하다. 그것은 처음에는 10퍼센트였다가 나중에 14퍼센트가 되었고 지금은 움직이는 재산이든 움직이지 않는 재산이든 온갖 갈래의 재산을 팔 때마다 6퍼센트만 물리며, 그 재산이 팔릴 때마다 되풀이된다(『유럽의 조세와 부과금에 관한 보고서』 제1권 15쪽). 이 세금을 걷으려면 물건이 한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옮겨 다니는 것뿐 아니라 한 가게에서 다른 가게로 옮겨 다니는 것까지 지킬 만큼 수많은 세무 관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몇몇 갈래의 물건을 다루는 이들만이 아니라 온갖 갈래의 물건을 다루는 이들, 곧 농부 하나하나, 제조업자 하나하나, 상인과 가게 주인 하나하나를 세리의 끊임없는 방문과 조사에 내놓는다. 이런 갈래의 세금이 자리 잡은 나라에서는 그 땅의 큰 몫에서 멀리 내다 팔 것을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나라 구석구석의 생산물은 그 이웃의 소비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우스타리스가 스페인 제조업이 망한 것을 이 알카발라 탓으로 돌린 것도 그래서다. 그는 농업이 기운 것도 그 탓으로 돌릴 수 있었을 터이니, 그것이 제조품에만이 아니라 땅의 원생산물에도 물렸기 때문이다.

나폴리 왕국에는 온갖 계약의 값어치에, 따라서 온갖 매매 계약의 값어치에 3퍼센트를 물리는 비슷한 세금이 있다. 그것은 스페인의 세금보다 가볍고, 게다가 도시와 교구의 큰 몫은 그 대신 한데 묶은 액수를 내도록 허락받는다. 그들은 이 묶음돈을 제 마음에 드는 길로, 대개 그 고장 안의 상업을 조금도 끊지 않는 길로 걷는다. 그러므로 나폴리의 세금은 스페인의 것만큼 망하게 하지는 않는다.

크게 대수롭지 않은 몇 가지 예외만 빼고 영국 연합 왕국의 여러 지역에 한결같이 놓여 있는 과세 제도는 나라 안의 상업, 곧 내륙 거래와 연안 거래를 거의 온전히 자유로이 놓아둔다. 내륙 거래는 거의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워서, 물건의 큰 몫이 아무 허가증이나 통행증도 요구받지 않고 세무 관리의 심문이나 방문이나 조사도 받지 않고 왕국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실려 갈 수 있다. 몇 가지 예외가 있으나 그것은 나라 안 상업의 중요한 부문을 끊을 만한 것이 아니다. 참으로 연안으로 실어 가는 물건에는 증명서 곧 연안 통관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석탄만 빼면 나머지는 거의 다 세금이 없다. 과세 제도가 한결같은 데에서 비롯한 나라 안 상업의 이 자유야말로 아마 영국이 번영하는 으뜸가는 까닭의 하나일 터이니, 큰 나라는 모두 제 산업이 낸 생산물의 큰 몫에 가장 좋고 가장 넓은 시장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같은 한결같음에 따라 같은 자유가 아일랜드와 식민지에까지 뻗칠 수 있다면, 나라의 위엄도 제국 구석구석의 번영도 아마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지방마다 다른 세입법이 놓여 있어, 어떤 물건이 들어오는 것을 막거나 거기에 얼마간의 세금을 물리려고 왕국의 국경뿐 아니라 거의 지방 하나하나의 경계까지 에워쌀 수많은 세무 관리가 있어야 하며, 그 탓에 나라 안의 상업이 적잖이 끊긴다. 어떤 지방은 가벨 곧 소금세를 묶음돈으로 갈음하도록 허락받고, 어떤 지방은 아예 면제받는다.5 어떤 지방은 총괄 징세 청부인이 왕국의 큰 몫에서 누리는 담배 독점 판매에서 벗어나 있다. 잉글랜드의 소비세에 맞먹는 에드는 지방마다 아주 다르다. 어떤 지방은 그것을 면제받고 묶음돈 곧 그에 맞먹는 것을 낸다. 그것이 놓여 있고 청부로 내준 지방에는 어떤 도시나 지역 너머로는 미치지 않는 고장 세금이 많다. 우리의 관세에 맞먹는 트레트는 왕국을 세 큰 부분으로 가른다. 첫째는 1664년 관세율표에 매인 지방으로 다섯 큰 청부의 지방이라 불리며 피카르디와 노르망디와 왕국 안쪽 지방의 큰 몫이 여기에 든다. 둘째는 1667년 관세율표에 매인 지방으로 외국으로 치는 지방이라 불리며 국경 지방의 큰 몫이 여기에 든다. 셋째는 외국처럼 다룬다고 하는 지방으로, 외국과 자유로이 상업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까닭에 프랑스의 다른 지방과 상업할 때에는 다른 외국과 똑같은 세금에 매인다. 알자스와 마인츠·툴·베르됭의 세 주교구와 됭케르크·바욘·마르세유의 세 도시가 그러하다. 다섯 큰 청부의 지방에서도(관세를 다섯 큰 갈래로 나누던 옛 구분에서 그 이름이 왔는데, 그 하나하나가 본디 따로 청부에 부쳐졌으나 지금은 죄다 하나로 합쳐졌다) 외국으로 친다고 하는 지방에서도, 어떤 도시나 지역 너머로는 미치지 않는 고장 세금이 많다. 외국처럼 다룬다고 하는 지방에도, 특히 마르세유 시에 그런 것이 얼마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과세 제도에 매인 여러 지방과 지역의 경계를 지키려면 나라 안의 상업에 놓이는 굴레도 세무 관리의 수도 얼마나 불어날 수밖에 없는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이 뒤얽힌 세입법 제도에서 나오는 두루한 굴레 말고도, 포도주 거래는(아마 곡물 다음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물이다) 지방의 큰 몫에서 어떤 지방과 지역의 포도밭을 다른 곳의 것보다 두둔해 온 데에서 나오는 남다른 굴레에 매여 있다. 포도주로 가장 이름난 지방은 내가 믿기로 바로 그 물건의 거래가 이런 갈래의 굴레를 가장 적게 받는 곳임이 드러날 것이다. 그런 지방이 누리는 넓은 시장이 포도밭을 가꾸는 데에도 그 뒤에 포도주를 빚는 데에도 좋은 살림살이를 북돋운다.

이렇게 갖가지로 뒤얽힌 세입법은 프랑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밀라노 공국은 여섯 지방으로 갈리는데, 그 하나하나에 여러 갈래의 소비재를 두고 서로 다른 과세 제도가 놓여 있다. 파르마 공작의 더 작은 영지는 서넛으로 갈리고, 그 하나하나가 같은 모로 제 나름의 제도를 지닌다. 이런 터무니없는 살림살이 아래에서 그런 나라를 머잖아 가장 낮은 가난과 야만으로 되떨어지지 않게 지켜 준 것은 오직 땅의 큰 걸기와 기후의 복뿐이다.

소비재에 물리는 세금은 정부가 임명하고 정부에 곧바로 책임을 지는 관리를 둔 행정으로 걷을 수도 있으니, 이럴 때에는 세금의 생산이 그때그때 달라짐에 따라 세입도 해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니면 일정한 세를 받기로 하고 청부를 내줄 수도 있으니, 이럴 때에 청부인은 제 관리를 제가 임명하도록 허락받고, 그 관리는 법이 시킨 길로 세금을 걷어야 하지만 그의 곧바른 감독 아래 있으며 그에게 곧바로 책임을 진다. 세금을 걷는 가장 좋고 가장 아껴 쓰는 길이 청부일 수는 결코 없다. 정해진 세를 내고 관리의 봉급을 주고 온 행정 비용을 치르는 데에 드는 것 말고도, 청부인은 그가 대는 먼돈과 그가 무릅쓰는 위험과 그가 겪는 수고와 그토록 뒤얽힌 일을 꾸리는 데에 필요한 지식과 솜씨에 적어도 걸맞은 얼마간의 이윤을 반드시 세금의 생산에서 끌어내야 한다. 정부가 청부인이 세우는 것과 같은 갈래의 행정을 제 곧바른 감독 아래 세운다면, 적어도 거의 늘 터무니없이 큰 이 이윤만은 아낄 수 있을 것이다. 공공 세입의 이렇다 할 갈래를 청부 맡으려면 큰 자본이나 큰 신용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정만으로도 그런 사업을 겨루는 이가 아주 적은 수로 좁혀진다. 이 자본이나 신용을 가진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필요한 지식이나 경험까지 갖춘 이는 더욱 적으니, 이것이 겨룸을 한층 더 좁히는 또 하나의 사정이다. 겨룰 만한 자리에 있는 그 아주 적은 사람들은 서로 손잡는 것이, 곧 겨루는 이가 아니라 동업자가 되는 것이, 그리고 청부가 경매에 부쳐지면 참값에 훨씬 못 미치는 세만 부르는 것이 제 이익에 더 맞는다고 본다. 공공 세입을 청부로 내주는 나라에서는 대개 그 청부인이 가장 넉넉한 사람이다. 그 부만으로도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터인데, 그렇게 벼락부자가 된 이에게 거의 늘 따라붙는 허영과 그들이 으레 그 부를 드러내 보이는 어리석은 겉치레가 그 분노를 한층 더 부추긴다.

공공 세입의 청부인은 세금 내기를 벗어나려는 짓을 벌하는 법이 너무 가혹하다고 여기는 일이 결코 없다. 그들은 제 신민도 아니고 청부가 끝난 이튿날에 죄다 거덜이 난다 한들 제 이익에 그리 큰 일이 아닐 내는 이들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 나라가 가장 다급하여 주권자가 제 세입이 꼭꼭 들어오기를 애타게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클 수밖에 없을 때, 그들은 실제로 놓인 법보다 더 모진 법이 없이는 늘 내던 세조차 낼 수 없으리라고 하소연하기를 거의 거르지 않는다. 나라가 그렇게 괴로운 때에는 그들의 요구를 물리칠 수 없다. 그리하여 세입법은 차츰 더 가혹해진다. 가장 피비린내 나는 법은 늘 공공 세입의 큰 몫을 청부로 내주는 나라에서 볼 수 있고, 가장 너그러운 법은 주권자의 곧바른 감독 아래 그것을 걷는 나라에서 볼 수 있다. 나쁜 주권자조차 제 세입의 청부인에게서는 결코 바랄 수 없는 연민을 제 백성에게 더 느낀다. 그는 제 집안의 오래갈 위엄이 제 백성의 번영에 달려 있음을 알기에, 제 한때의 이익을 위하여 그 번영을 알면서 망쳐 놓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제 세입의 청부인은 그렇지 않으니, 그들의 위세는 백성의 번영이 아니라 백성이 망하는 데에서 나오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세금은 더러 일정한 세를 받고 청부로 내주어질 뿐 아니라, 청부인이 그 위에 과세된 상품의 독점까지 쥐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담배와 소금에 물리는 세금이 이런 모로 걷힌다. 이럴 때에 청부인은 백성에게서 터무니없는 이윤을 하나가 아니라 둘, 곧 청부인의 이윤과 그보다 더 터무니없는 독점하는 이의 이윤을 걷는다. 담배는 사치품이므로 사람마다 사든 사지 않든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소금은 없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사람마다 얼마씩을 반드시 청부인에게서 사야 하니, 그 양을 청부인에게서 사지 않으면 어느 밀수꾼에게서 살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두 물건에 물리는 세금은 터무니없이 높다. 그리하여 밀수의 꾐은 많은 사람에게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 되는데, 그러면서도 법의 모짐과 청부인이 둔 관리의 매서운 눈길은 그 꾐에 넘어가는 것을 거의 틀림없이 망하는 길로 만들어 놓는다. 소금과 담배의 밀수는 해마다 수백 사람을 갤리선으로 보내고, 그 위에 아주 많은 수를 교수대로 보낸다. 이런 모로 걷힌 그 세금은 정부에 아주 많은 세입을 낸다. 1767년에 담배 청부는 해마다 2,254만 1,278리브르에, 소금 청부는 3,649만 2,404리브르에 내주어졌다.6 청부는 두 경우 다 1768년에 시작하여 여섯 해 동안 이어지기로 되어 있었다. 백성의 피를 군주의 세입에 견주어 아무것도 아니라 여기는 이들이라면 아마 이렇게 세금을 걷는 길을 좋다 할 것이다. 소금과 담배에 물리는 비슷한 세금과 독점이 다른 여러 나라에도, 특히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영지와 이탈리아 여러 나라의 큰 몫에 세워져 있다.

프랑스에서 왕실이 실제로 얻는 세입의 큰 몫은 여덟 가지 서로 다른 원천에서 나온다. 타유, 카피타시옹, 두 가지 뱅티엠, 가벨, 에드, 트레트, 도멘, 그리고 담배 청부가 그것이다. 뒤의 다섯은 지방의 큰 몫에서 청부로 내주어져 있다. 앞의 셋은 어디서나 정부의 곧바른 감독과 지휘 아래 있는 행정이 걷으며, 백성의 주머니에서 빼내는 것에 견주어 군주의 국고에 더 많이 들여보내는 것이 이 셋이고 나머지 다섯은 그 행정이 훨씬 헤프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은 두루 인정되고 있다.

프랑스의 재정은 지금 놓인 자리로 보아 아주 뻔한 세 가지 손질을 받아들일 만하다. 첫째, 타유와 카피타시옹을 없애고 뱅티엠의 수를 늘려 그 두 세금의 액수만큼 세입을 더 내게 한다면, 왕실의 세입은 지켜지고 걷는 비용은 크게 줄고 타유와 카피타시옹이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안기는 괴로움은 온통 막히며, 높은 계층도 그들 대다수가 지금 지고 있는 것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지는 않을 것이다. 뱅티엠은 잉글랜드에서 토지세라 부르는 것과 거의 같은 갈래의 세금임을 나는 이미 밝혔다. 타유의 짐은 끝내 토지의 임자에게 떨어짐이 인정되고 있으며, 카피타시옹의 큰 몫이 타유를 내는 이들에게 그 다른 세금 1파운드마다 얼마씩으로 매겨지므로 그 큰 몫을 끝내 치르는 짐도 마찬가지로 같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뱅티엠의 수를 늘려 그 두 세금의 액수만큼 세입을 더 내게 하더라도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더 무거워지는 이도 적지 않을 터이니, 타유가 사람마다의 땅과 차지인에게 으레 몹시 고르지 못하게 매겨지는 까닭이다. 이런 두둔을 받는 신민의 이해와 반대야말로 이 손질이나 같은 갈래의 다른 손질을 막을 성싶은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둘째, 가벨과 에드와 트레트와 담배에 물리는 세금과 온갖 관세와 소비세를 왕국의 여러 지역에서 한결같게 만든다면, 그 세금을 훨씬 적은 비용으로 걷을 수 있고 왕국 안의 상업을 잉글랜드의 것만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이자 마지막으로, 그 모든 세금을 정부의 곧바른 감독과 지휘 아래 있는 행정에 맡긴다면, 총괄 징세 청부인의 터무니없는 이윤이 나라의 세입에 보태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의 사사로운 이해에서 나오는 반대는 먼저 말한 손질에서와 마찬가지로 뒤의 두 가지를 막는 데에도 힘을 쓸 성싶다.

프랑스의 과세 제도는 어느 모로 보나 영국의 것보다 못해 보인다. 영국에서는 해마다 1,000만 파운드 스털링이 800만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서 걷히는데, 어느 특정한 계층이 억눌린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엑스피이 신부의 『모음집』과 『곡물의 입법과 거래에 관한 논고』를 쓴 이의 살핌으로 미루어 보면, 프랑스는 로렌과 바르 지방까지 넣어 2,300만이나 2,400만쯤의 사람을 지녔으리라고 보이니, 아마 영국의 세 곱절일 것이다. 프랑스의 땅과 기후는 영국의 것보다 낫다. 그 나라는 훨씬 오래 개량되고 경작되어 온 터라 그런 까닭에 기르고 쌓는 데에 오랜 세월이 드는 온갖 것을, 이를테면 큰 도시와 도시에도 시골에도 있는 편하고 잘 지은 집을 더 잘 갖추고 있다. 이런 이로움을 지녔으니, 프랑스에서는 나라를 떠받치는 데에 3,000만의 세입을 영국에서 1,000만의 세입을 걷는 것만큼이나 적은 불편으로 걷을 수 있으리라고 바랄 만하다. 1765년과 1766년에 프랑스의 국고로 들어간 온 세입은 내가 얻을 수 있었던, 나도 인정하거니와 아주 흠 있는 것이기는 하나 가장 나은 셈에 따르면 으레 3억 800만에서 3억 2,500만 리브르 사이를 오갔다. 곧 1,500만 파운드 스털링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프랑스 사람이 영국 사람과 같은 비로 그 수에 맞추어 갹출하였더라면 바랄 수 있었을 것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프랑스 사람이 영국 사람보다 세금에 훨씬 더 시달린다는 것은 두루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영국 다음으로 유럽에서 가장 너그럽고 가장 관대한 정부를 누리는 큰 제국임에 틀림없다.

네덜란드에서는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에 물리는 무거운 세금이 으뜸가는 제조업을 망쳐 놓았다고 하며, 어업과 배 짓는 일까지도 차츰 주저앉힐 성싶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에 물리는 세금이 대수롭지 않고, 그것 때문에 망한 제조업은 여태 하나도 없다. 영국의 세금 가운데 제조업을 가장 모질게 누르는 것은 원료를 들여오는 데에, 특히 생사를 들여오는 데에 물리는 몇 가지 세금이다. 그런데 연방 의회7와 여러 도시의 세입은 525만 파운드 스털링이 넘는다고 하며, 네덜란드 연방의 주민은 영국의 3분의 1보다 많다고 보기 어려우니, 그들은 그 수에 견주어 훨씬 무겁게 과세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과세하기에 알맞은 대상이 죄다 바닥나고도 나라의 다급함이 여전히 새 세금을 요구한다면, 알맞지 않은 대상에 물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에 물리는 세금이라 하여, 제 독립을 얻고 지키려고 그 큰 검약에도 큰 빚을 질 수밖에 없게 만든 값비싼 전쟁에 휘말려 온 저 공화국의 슬기를 탓할 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네덜란드와 제일란트라는 남다른 땅은 제 있음을 지키는 데에도, 곧 바다에 삼켜지지 않으려는 데에도 적잖은 비용이 드니, 그것이 그 두 지방의 세금 짐을 크게 무겁게 하는 데에 한몫하였음에 틀림없다. 지금 네덜란드가 누리는 위세를 떠받치는 으뜸가는 기둥은 공화정이라는 정체로 보인다. 큰 자본을 가진 이들, 곧 큰 상인 집안은 대개 그 정부의 행정에 얼마쯤 곧바로 끼거나 얼마쯤 에둘러 입김을 넣는다. 그 자리에서 얻는 존경과 권위를 위하여 그들은 제 자본을 손수 굴리면 이윤이 덜하고 남에게 빌려 주면 이자가 덜하며 거기서 끌어낼 수 있는 아주 어지간한 수입으로 유럽 어디에서보다도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과 편하게 해 주는 것을 적게 살 수 있는 나라에 기꺼이 산다. 이렇게 넉넉한 이들이 머물러 사는 것이 온갖 불리함에도 그 나라에 어느 만큼의 산업을 살려 두는 것임에 틀림없다. 공화정이라는 정체를 무너뜨리고 온 행정을 귀족과 군인의 손에 넘기며 그 넉넉한 상인들의 무게를 아주 없애 버릴 어떤 나라의 재앙이 닥친다면, 그들은 머잖아 제가 더는 크게 존경받을 성싶지 않은 나라에 사는 것이 싫어질 것이다. 그들은 제 사는 곳도 제 자본도 다른 나라로 옮길 터이고, 네덜란드의 산업과 상업은 머잖아 그것을 떠받치던 자본을 따라갈 것이다.

3장 공채에 대하여

상업이 뻗어 나가고 제조업이 나아지기에 앞선 저 거친 사회 상태에서는, 상업과 제조업만이 들여올 수 있는 저 값비싼 사치품이 아예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큰 수입을 가진 사람은 그 수입으로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의 사람을 먹여 살리는 길 말고는 그것을 쓰거나 누릴 길이 없다는 것을 나는 이 『탐구』의 3편에서 밝혀 보려 하였다. 큰 수입이란 언제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을 많이 부릴 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저 거친 상태에서 그것은 으레 그런 없어서는 안 될 것을 많이 받는 꼴로, 곧 수수한 먹을거리와 거친 옷감의 재료로, 곡물과 가축으로, 양모와 날가죽으로 치러진다. 상업도 제조업도 제 소비를 넘고 남는 그 재료의 큰 몫을 임자가 맞바꿀 만한 것을 아무것도 내놓지 못할 때, 그는 그 남는 것으로 그것이 먹이고 입힐 수 있는 만큼의 사람을 먹이고 입히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치가 없는 손님 대접과 겉치레가 없는 너그러움이 이런 사정에서 넉넉하고 높은 이들의 으뜸가는 비용을 이룬다. 그러나 이런 것은 사람이 그것으로 제 몸을 망치기 쉬운 비용이 아니라는 것도 나는 같은 편에서 밝혀 보려 하였다. 아무리 하찮은 제 잇속의 즐거움이라도 그것을 좇다가 슬기로운 사람조차 망한 일이 없는 것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닭싸움에 빠져 망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런 갈래의 손님 대접이나 너그러움 때문에 망한 사람의 보기는 내가 믿기로 그리 많지 않다. 사치의 손님 대접과 겉치레의 너그러움이 망하게 한 사람은 많지만 말이다. 우리의 봉건 조상들 사이에서 땅이 한 집안에 머물러 있던 긴 세월은 사람들이 제 수입 안에서 살려는 마음을 두루 지녔음을 넉넉히 보여 준다. 큰 지주가 늘 베풀던 시골식 손님 대접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좋은 살림살이와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여기기 쉬운 저 질서와 어울리지 않아 보일지 모르나, 적어도 제 수입을 죄다 써 버리는 일이 예사롭지 않았던 만큼은 그들이 검약하였다고 우리는 틀림없이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대개 제 양모와 날가죽의 얼마를 돈을 받고 팔 기회를 지녔다. 이 돈의 얼마는 아마 그때의 사정이 마련해 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허영과 사치의 물건을 사는 데에 썼을 터이나, 얼마는 으레 쟁여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그들은 제가 아낀 돈이 무엇이든 그것을 쟁여 두는 일 말고는 달리 할 것이 없었다. 장사는 신사에게 부끄러운 일이었고, 그때에 고리대로 여겨져 법으로 금지되었던 돈놀이는 더욱 부끄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저 사나움과 어지러움의 시대에는 제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생길 때 값어치가 알려진 무엇인가를 안전한 곳으로 들고 갈 수 있도록 돈을 쟁여 두는 것이 편하였다. 쟁여 두는 것을 편하게 만든 그 사나움이 쟁여 둔 것을 숨기는 일도 똑같이 편하게 만들었다. 땅에 묻힌 보물, 곧 임자를 알 수 없이 발견되는 보물이 잦았다는 것은 그때에 쟁여 두는 일도 쟁여 둔 것을 숨기는 일도 잦았음을 넉넉히 보여 준다. 그때에 땅에 묻힌 보물은 주권자의 세입에서 중요한 갈래로 여겨졌다. 오늘날에는 왕국 안의 땅에 묻힌 보물을 죄다 모아도 좋은 땅을 지닌 여느 신사의 수입에서조차 중요한 갈래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아끼고 쟁여 두려는 같은 마음이 신민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주권자에게서도 널리 퍼져 있었다. 상업과 제조업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서 주권자는 쌓기에 필요한 절약으로 저절로 기울게 하는 자리에 놓여 있음을 나는 4편에서 이미 말하였다. 그 자리에서는 주권자의 씀씀이조차 궁정의 번쩍이는 화려함을 즐기는 저 허영이 이끌 수 없다. 그 시대의 무지는 그 화려함을 이루는 노리개를 거의 마련해 주지 못한다. 그때에는 상비군도 필요하지 않으니, 주권자의 씀씀이조차 다른 어느 큰 영주의 것과 마찬가지로 제 차지인에게 베푸는 은혜와 제 딸린 이들에게 베푸는 손님 대접 말고는 거의 어디에도 쓰일 데가 없다. 그런데 은혜와 손님 대접은 헤픔으로 이어지는 일이 아주 드물지만 허영은 거의 늘 그리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앞에서 이미 말한 대로 유럽의 옛 주권자는 모두 재물을 쌓아 두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타타르의 족장은 저마다 하나씩 지녔다고들 한다.

온갖 갈래의 값비싼 사치가 넘쳐나는 상업 나라에서 주권자는 제 영지 안의 거의 모든 큰 임자와 마찬가지로 제 세입의 큰 몫을 저절로 그런 사치품을 사는 데에 쓴다. 제 나라와 이웃 나라가 궁정의 번쩍이되 하찮은 겉치레를 이루는 온갖 값비싼 노리개를 그에게 넉넉히 대 준다. 그의 귀족들은 같은 갈래의 더 낮은 겉치레를 위하여 제 딸린 이들을 내보내고 제 차지인을 제 힘으로 서게 만들며, 그리하여 차츰 제 영지 안 넉넉한 시민의 큰 몫만큼이나 하찮은 존재가 된다. 그들의 몸가짐을 움직이는 그 하찮은 욕망이 그의 몸가짐도 움직인다. 그가 제 영지 안에서 이런 갈래의 즐거움에 무딘 하나뿐인 넉넉한 사람이리라고 어찌 여길 수 있겠는가? 그가 나라의 지킬 힘을 몹시 허물어뜨릴 만큼 제 세입의 큰 몫을 그런 즐거움에 쓰지 않는다면, 그러기도 아주 쉬운 일이지만, 그 지킬 힘을 떠받치는 데에 필요한 것을 넘고 남는 몫을 죄다 거기에 쓰지 않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의 예사로운 씀씀이는 그의 예사로운 세입과 맞먹게 되고, 그것을 자주 넘어서지 않으면 다행이다. 재물을 쌓는 일은 더는 바랄 수 없게 되고, 남다른 다급함이 남다른 비용을 요구할 때 그는 제 신민에게 남다른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1610년에 프랑스의 앙리 4세가 죽은 뒤로 이렇다 할 재물을 쌓았다고 여겨지는 유럽의 큰 군주는 지금의 프로이센 국왕과 그 앞의 국왕뿐이다. 쌓기로 이어지는 절약은 군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공화정에서도 거의 드문 일이 되었다. 이탈리아의 공화국도 네덜란드 연방도 죄다 빚을 지고 있다. 유럽에서 이렇다 할 재물을 쌓은 하나뿐인 공화국은 베른 주다. 다른 스위스 공화국은 그러지 못하였다. 어떤 갈래의 겉치레, 적어도 으리으리한 건물과 그 밖의 공공 장식을 즐기는 취향은 작은 공화국의 겉보기에 점잖은 의사당에서도 가장 큰 국왕의 흥청거리는 궁정에서만큼이나 널리 퍼져 있는 일이 잦다.

평화로울 때에 절약하지 않으면 전쟁 때에 빚을 질 수밖에 없다. 전쟁이 닥쳐도 국고에는 평시 살림의 예사로운 비용을 치를 만한 돈밖에 없다. 전쟁 때에는 나라를 지키려면 그 비용의 서너 곱절이 되는 살림이 필요해지고, 따라서 평시 세입의 서너 곱절이 되는 세입이 필요해진다. 주권자가 제 비용이 늘어나는 만큼 제 세입을 늘릴 길을 당장 지녔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이 세입의 늘어남을 끌어낼 세금의 생산은 그것을 물린 뒤 아마 열 달이나 열두 달이 지나서야 국고로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는 그 순간, 아니 차라리 터질 성싶어 보이는 그 순간에 군대를 늘리고 함대를 꾸리고 수비대를 둔 도시를 지킬 태세로 만들어야 하며, 그 군대와 그 함대와 그 도시에 무기와 탄약과 식료품을 대 주어야 한다. 눈앞의 위험이 닥친 그 순간에 당장 큰 비용을 써야 하는데, 그것은 새 세금이 더디고 느리게 회수되기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렇게 다급할 때에 정부에는 빌리는 것 말고는 달리 손쓸 길이 없다.

도덕적인 까닭이 움직여 정부를 이런 모로 빌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상업 사회 상태가 신민에게는 빌려 줄 힘과 빌려 줄 마음을 함께 낳는다. 그것이 으레 빌릴 수밖에 없음을 함께 가져온다면, 빌리기 쉬움도 함께 가져오는 것이다.

상인과 제조업자가 넘치는 나라에는 제 자본만이 아니라 제게 돈을 빌려 주거나 물건을 맡기는 모든 이의 자본까지 제 손을 거쳐 가는 사람들이 넘칠 수밖에 없는데, 그 잦기는 장사도 사업도 없이 제 수입으로 사는 여느 사람의 수입이 그의 손을 거쳐 가는 것과 같거나 그보다 잦다. 그런 사람의 수입은 한 해에 한 번밖에 규칙적으로 그의 손을 거쳐 갈 수 없다. 그러나 회수가 아주 빠른 장사를 하는 상인의 자본과 신용을 합한 액수는 더러 한 해에 두 번이나 세 번이나 네 번 그의 손을 거쳐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상인과 제조업자가 넘치는 나라에는 마음만 먹으면 아주 많은 돈을 언제든 정부에 먼저 대 줄 힘을 지닌 사람들이 넘칠 수밖에 없다. 상업 나라의 신민이 빌려 줄 힘은 여기서 나온다.

상업과 제조업은 사법이 규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 사람들이 제 재산을 쥐고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나라, 계약의 신의가 법으로 떠받쳐지지 않는 나라, 치를 힘이 있는 모든 이에게서 빚을 받아 내는 데에 나라의 권위가 규칙적으로 쓰인다고 여겨지지 않는 나라에서는 오래 번성하는 일이 드물다. 한마디로 상업과 제조업은 정부의 정의에 어느 만큼의 믿음이 없는 나라에서 오래 번성하는 일이 드물다. 큰 상인과 제조업자가 예사로운 때에 제 재산을 어떤 정부의 보호에 맡기게 만드는 그 믿음이, 남다른 때에는 그 정부에 제 재산을 쓰라고 맡기게 만든다. 정부에 돈을 빌려 준다고 하여 그들은 제 장사와 제조업을 해 나갈 힘을 한순간도 줄이지 않으며, 도리어 으레 그 힘을 키운다. 나라의 다급함은 대개 정부로 하여금 빌려 주는 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이로운 조건으로 기꺼이 빌리게 만든다. 정부가 처음 빌려 준 이에게 내주는 증서는 다른 어떤 빚쟁이에게든 넘길 수 있게 되어 있고, 나라의 정의에 대한 두루한 믿음 덕분에 대개 처음 치른 값보다 비싸게 시장에서 팔린다. 상인이나 돈을 굴리는 이는 정부에 돈을 빌려 주어 돈을 벌고 제 장사 자본을 줄이기는커녕 늘린다. 그러므로 그는 정부가 새로 빌리는 돈의 첫 응모에 한몫 끼워 주면 으레 그것을 은혜로 여긴다. 상업 나라의 신민이 빌려 줄 마음 곧 뜻은 여기서 나온다.

그런 나라의 정부는 남다른 때에 제게 돈을 빌려 줄 신민의 이 힘과 뜻에 기대어 눌러앉기 아주 쉽다. 그것은 빌리기 쉬움을 내다보고 그리하여 아끼는 의무에서 스스로를 놓아 준다.

거친 사회 상태에는 큰 상업 자본도 제조업 자본도 없다. 아낄 수 있는 돈이면 무엇이든 쟁여 두고 그 쟁여 둔 것을 숨기는 사람들이 그러는 까닭은 정부의 정의를 믿지 못하는 데에, 곧 제게 쟁여 둔 것이 있고 그것이 어디 있는지가 알려지면 이내 털리리라는 두려움에 있다. 그런 사정에서는 남다르게 다급할 때 정부에 돈을 빌려 줄 힘이 있는 사람도 적을 터이고 빌려 줄 마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주권자는 빌리기가 아주 불가능함을 내다보기에 아껴서 그런 다급함에 대비해야 함을 느낀다. 이 내다봄이 아끼려는 그의 타고난 마음을 한층 더 키운다.

오늘날 유럽의 모든 큰 나라를 짓누르고 길게 보아 아마 망하게 할 저 어마어마한 빚이 불어난 길은 어디서나 꽤 한결같았다. 나라도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개 이른바 개인 신용으로, 곧 빚을 갚을 어떤 기금도 떼어 주거나 저당 잡히지 않고 빌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길이 막히면 특정한 기금을 떼어 주거나 저당 잡히고 빌리는 데로 나아갔다.

영국에서 공채로 발행되지 않은 빚이라 부르는 것은 그 두 길 가운데 앞엣것으로 진 것이다. 그것은 얼마는 이자가 붙지 않거나 붙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빚, 곧 여느 사람이 외상으로 지는 빚을 닮은 것으로 이루어지고, 얼마는 이자가 붙는 빚, 곧 여느 사람이 제 어음이나 약속 어음으로 지는 빚을 닮은 것으로 이루어진다. 남다른 일을 시키고 치러야 할 빚이나, 미리 마련해 두지 않았거나 일을 시킨 그때에 치르지 않아 생긴 빚, 곧 육군과 해군과 병기창의 임시 비용의 얼마, 외국 군주에게 주기로 한 보조금의 밀린 몫, 선원의 밀린 임금 따위가 으레 첫째 갈래의 빚을 이룬다. 그런 빚의 얼마를 치르느라 더러 발행하고 더러 다른 일로도 발행하는 해군 증권과 재무부 증권8이 둘째 갈래의 빚을 이루는데, 재무부 증권은 발행한 날부터 이자가 붙고 해군 증권은 발행하고 여섯 달 뒤부터 이자가 붙는다. 잉글랜드 은행은 그런 증권을 그때그때의 값으로 제 뜻에 따라 할인해 주거나, 얼마간의 대가를 받고 재무부 증권을 돌리기로 곧 그것을 평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붙은 이자를 치러 주기로 정부와 합의함으로써 그 값을 떠받치고 그 돌림을 쉽게 하며, 그리하여 자주 정부가 이런 갈래의 아주 큰 빚을 질 수 있게 만든다. 은행이 없는 프랑스에서는 국가 증권 곧 빌레 데타(『재정에 관한 정치적 고찰의 검토』를 보라)가 더러 60퍼센트나 70퍼센트 할인된 값에 팔렸다. 윌리엄 국왕 때의 큰 개주 동안 잉글랜드 은행이 여느 거래를 멈추는 것이 좋겠다고 여겼을 때, 재무부 증권과 탤리 막대는 25퍼센트에서 60퍼센트까지 할인된 값에 팔렸다고 한다. 그것은 의심할 것 없이 얼마는 명예혁명으로 세워진 새 정부가 흔들린다고 여겨진 탓이지만, 얼마는 또 잉글랜드 은행이 떠받쳐 주지 않은 탓이기도 하였다.

이 길이 바닥나고 돈을 마련하려면 빚을 갚을 공공 세입의 어떤 특정한 갈래를 떼어 주거나 저당 잡히지 않을 수 없게 되면, 정부는 때에 따라 이것을 두 가지 다른 길로 해 왔다. 더러는 이 떼어 줌이나 저당 잡힘을 짧은 동안만, 이를테면 한 해나 몇 해 동안만 하였고, 더러는 영구히 하였다. 앞의 경우에 그 기금은 정해진 동안 안에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를 다 치르기에 넉넉하다고 여겨졌다. 뒤의 경우에 그것은 이자만, 곧 이자에 맞먹는 영구 연금만 치르기에 넉넉하다고 여겨졌고, 정부는 빌린 원금을 되갚으면 언제든 이 연금을 되살 수 있었다. 앞의 길로 돈을 마련하는 것을 앞당겨 쓰기로 마련한다 하였고, 뒤의 길로 마련하는 것을 영구 공채 발행으로, 더 줄여서 공채 발행으로 마련한다 하였다.9

영국에서는 해마다 걷는 토지세와 엿기름세를 그것을 물리는 법에 늘 끼워 넣는 차입 조항 덕분에 해마다 꼬박꼬박 앞당겨 쓴다. 잉글랜드 은행은 명예혁명 뒤로 8퍼센트에서 3퍼센트 사이를 오가는 이자를 받고 그 세금으로 걷기로 한 액수를 대개 먼저 대 주며, 그 생산이 차츰 들어오는 대로 갚음을 받는다. 모자라는 것이 있으면, 늘 있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이듬해의 공급으로 메운다. 아직 저당 잡히지 않고 남은 하나뿐인 이렇다 할 공공 세입의 갈래가 이렇게 들어오기도 전에 꼬박꼬박 써 버려진다. 앞뒤 가리지 않는 헤픈 사람이 제 급한 사정 때문에 제 수입이 제때 들어오기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처럼, 나라는 제 대리인과 심부름꾼에게서 빌리고 제 돈을 쓴 값으로 이자를 치르는 짓을 늘 되풀이한다.

윌리엄 국왕의 치세와 앤 여왕 치세의 큰 몫 동안, 곧 우리가 오늘날처럼 영구 공채 발행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새 세금의 큰 몫이 짧은 동안만(네 해나 다섯 해나 여섯 해나 일곱 해만) 물려졌고, 해마다 걷는 돈의 큰 몫은 그 세금의 생산을 앞당겨 쓰는 차입으로 이루어졌다. 그 생산이 정해진 기한 안에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를 치르기에 모자라는 일이 잦아 모자람이 생겼고, 그것을 메우려면 기한을 늘일 수밖에 없었다.

1697년에 「윌리엄 3세 치세 8년의 법 제20장」10으로 여러 세금의 모자람이 그때 첫째 일반 저당 곧 기금이라 부르던 것에 얹혔다. 그것은 더 짧은 기한 안에 끝났을 여러 가지 세금을 1706년 8월 1일까지 늘여 잡고 그 생산을 하나의 일반 기금으로 모은 것이었다. 이렇게 늘인 기한에 얹힌 모자람은 516만 459파운드 14실링 9와 2분의 1펜스에 이르렀다.

1701년에 그 세금은 몇 가지를 더하여 같은 일로 1710년 8월 1일까지 한층 더 늘여 잡혔고 둘째 일반 저당 곧 기금이라 불렸다. 거기에 얹힌 모자람은 205만 5,999파운드 7실링 11과 2분의 1펜스에 이르렀다.

1707년에 그 세금은 새로 빌리는 돈의 기금으로 1712년 8월 1일까지 한층 더 늘여 잡혔고 셋째 일반 저당 곧 기금이라 불렸다. 그것을 밑천으로 빌린 액수는 98만 3,254파운드 11실링 9와 4분의 1펜스였다.

1708년에 그 세금은 죄다(톤세와 파운드세라는 구보조세11는 그 절반만 이 기금의 한몫이 되었고, 합병 조약으로 없어진 스코틀랜드 아마포 수입에 물리던 관세는 빠졌다) 새로 빌리는 돈의 기금으로 1714년 8월 1일까지 한층 더 이어졌고 넷째 일반 저당 곧 기금이라 불렸다. 그것을 밑천으로 빌린 액수는 92만 5,176파운드 9실링 2와 4분의 1펜스였다.

1709년에 그 세금은 죄다(톤세와 파운드세라는 구보조세는 이제 이 기금에서 아예 빠졌다) 같은 일로 1716년 8월 1일까지 한층 더 이어졌고 다섯째 일반 저당 곧 기금이라 불렸다. 그것을 밑천으로 빌린 액수는 92만 2,029파운드 6실링이었다.

1710년에 그 세금은 1720년 8월 1일까지 다시 늘여 잡혔고 여섯째 일반 저당 곧 기금이라 불렸다. 그것을 밑천으로 빌린 액수는 129만 6,552파운드 9실링 11과 4분의 3펜스였다.

1711년에 그 같은 세금은(이때 이미 네 번이나 앞당겨 쓰이고 있었다) 몇 가지를 더하여 영구히 이어졌고, 남해 회사12가 그해에 빚을 갚고 모자람을 메우라고 정부에 먼저 대 준 917만 7,967파운드 15실링 4펜스, 곧 그때까지 이루어진 가장 큰 차입의 자본에 붙는 이자를 치를 기금이 되었다.

이때보다 앞서 빚의 이자를 치르려고 영구히 물린 세금은 내가 살필 수 있었던 한 주로, 아니 오직 잉글랜드 은행과 동인도회사가 정부에 먼저 대 준 돈과 어떤 토지 은행을 세워 대 주기로 기대하였으나 끝내 대 주지 못한 돈의 이자를 치르는 것뿐이었다. 이때 은행 기금은 337만 5,027파운드 17실링 10과 2분의 1펜스에 이르렀고 그에 대하여 20만 6,501파운드 15실링 5펜스의 연금 곧 이자가 치러졌다. 동인도 기금은 320만 파운드에 이르렀고 그에 대하여 16만 파운드의 연금 곧 이자가 치러졌다. 은행 기금은 6퍼센트, 동인도 기금은 5퍼센트 이자였다.

1715년에 「조지 1세 치세 1년의 법 제12장」으로 은행 연금을 치르려고 저당 잡혔던 여러 세금이, 이 법으로 마찬가지로 영구하게 된 몇 가지 다른 세금과 함께 총괄 기금이라 부르는 하나의 공동 기금으로 모였는데, 그 기금은 은행 연금을 치르는 일뿐 아니라 여러 다른 연금과 갖가지 짐도 떠맡았다. 이 기금은 그 뒤에 「조지 1세 치세 3년의 법 제8장」과 「조지 1세 치세 5년의 법 제3장」으로 불어났고, 그때 거기에 더해진 여러 세금도 마찬가지로 영구하게 되었다.

1717년에 「조지 1세 치세 3년의 법 제7장」으로 다른 몇 가지 세금이 영구하게 되어 일반 기금이라 부르는 또 하나의 공동 기금으로 모였고, 모두 합하여 72만 4,849파운드 6실링 10과 2분의 1펜스에 이르는 얼마간의 연금을 치르는 데에 쓰였다.

이 여러 법의 결과로, 앞서 짧은 햇수 동안만 앞당겨 쓰이던 세금의 큰 몫이 영구하게 되어, 잇따라 여러 번 앞당겨 쓰며 그것을 밑천으로 빌린 돈의 원금이 아니라 이자만을 치르는 기금이 되었다.

앞당겨 쓰기 말고는 결코 돈을 마련하지 않았더라면, 정부가 기금에 정해진 기한 안에 갚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빚을 얹어 그것을 너무 무겁게 만들지 않는 것과 첫 번째 앞당겨 쓰기가 끝나기 전에 두 번째로 앞당겨 쓰지 않는 것 말고는 달리 마음 쓸 것 없이 몇 해 안에 공공 세입이 풀려났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 정부의 큰 몫은 그만큼도 마음 쓸 줄 몰랐다. 그들은 첫 번째 앞당겨 쓰기에서부터 기금을 너무 무겁게 만드는 일이 잦았고, 어쩌다 그러지 않았을 때에는 대개 첫 번째 앞당겨 쓰기가 끝나기 전에 두 번째, 세 번째로 앞당겨 써서 기어이 그것을 너무 무겁게 만들었다. 이런 모로 기금이 그것을 밑천으로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를 다 치르기에 아주 모자라게 되자, 그 기금에 이자만을, 곧 이자에 맞먹는 영구 연금만을 얹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앞당겨 쓴 일이 영구 공채 발행이라는 더 망하게 하는 짓을 낳고 말았다. 그런데 이 짓은 공공 세입이 풀려날 때를 정해진 시점에서 언제 올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아마 영영 오지 않을 성싶은 시점으로 미루어 놓으면서도, 어떤 경우에나 옛 앞당겨 쓰기보다 더 많은 돈을 마련해 줄 수 있으므로, 사람들이 한번 그것에 익숙해지자 나라가 크게 다급할 때마다 어디서나 옛 길보다 이 새 길을 더 좋아하였다. 눈앞의 다급함을 더는 것이야말로 늘 나라 살림을 곧바로 맡은 이들이 무엇보다 마음을 쓰는 일이다. 공공 세입이 앞으로 풀려나는 일은 그들이 뒷사람의 몫으로 남겨 둔다.

앤 여왕의 치세 동안 시장 이자율은 6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내렸고, 그 치세 12년에 5퍼센트가 사사로운 담보로 빌린 돈에 법으로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이율로 선포되었다. 영국의 한때뿐인 세금의 큰 몫이 영구하게 되어 총괄 기금과 남해 기금과 일반 기금으로 나뉘어 들어간 얼마 뒤, 나라의 빚쟁이들은 여느 사람의 빚쟁이들과 마찬가지로 제 돈의 이자로 5퍼센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영구 공채로 발행된 빚의 큰 몫의 자본에서 1퍼센트가, 곧 앞에서 말한 세 큰 기금에서 치르던 연금의 큰 몫에서 6분의 1이 아껴졌다. 이 절약으로 그 기금에 모아 두었던 여러 세금의 생산에서, 이제 거기에 얹힌 연금을 치르는 데에 필요한 것을 넘고 남는 것이 적잖이 생겼고, 그것이 그 뒤로 감채 기금이라 불려 온 것의 바탕을 놓았다. 1717년에 그것은 52만 3,454파운드 7실링 7과 2분의 1펜스에 이르렀다. 1727년에 공채의 큰 몫에 붙는 이자가 4퍼센트로 한층 더 내렸고, 1753년과 1757년에 3.5퍼센트와 3퍼센트로 내려, 이 내림이 감채 기금을 한층 더 키웠다.

감채 기금은 옛 빚을 갚으려고 세워진 것이건만 새 빚을 지는 일을 몹시 쉽게 만든다. 그것은 나라가 다급할 때 돈을 마련하겠다고 내놓은 미덥지 못한 다른 어떤 기금을 거들도록 저당 잡히려고 늘 옆에 놓여 있는 딸림 기금이다. 영국의 감채 기금이 그 두 가지 쓰임 가운데 어느 쪽에 더 자주 쓰였는지는 곧 넉넉히 드러날 것이다.

앞당겨 쓰기와 영구 공채 발행이라는 이 두 가지 빌리는 길 말고도 그 사이 어디쯤에 놓이는 다른 두 가지 길이 있으니, 곧 정해진 햇수 동안의 연금을 밑천으로 빌리는 길과 종신 연금을 밑천으로 빌리는 길이다.

윌리엄 국왕과 앤 여왕의 치세 동안 더러는 길고 더러는 짧은 정해진 햇수 동안의 연금을 밑천으로 큰돈을 빌리는 일이 잦았다. 1695년에 14퍼센트의 연금, 곧 해마다 14만 파운드를 열여섯 해 동안 치르기로 하고 100만 파운드를 빌리는 법이 통과되었다. 1691년에는 오늘날 보면 아주 이로워 보일 조건으로 종신 연금을 밑천으로 100만 파운드를 빌리는 법이 통과되었으나 응모가 다 차지 않았다. 이듬해에 그 모자람은 14퍼센트, 곧 일곱 해 값이 조금 넘는 값으로 종신 연금을 밑천으로 빌려 메웠다. 1695년에 그 연금을 샀던 이들은 재무부에 100에 63파운드를 치르면 그것을 아흔여섯 해짜리 연금으로 바꿀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곧 종신 14퍼센트와 아흔여섯 해 동안의 14퍼센트의 차이가 63파운드, 곧 네 해 반 값에 팔린 것이다. 정부가 그만큼 흔들린다고 여겨진 터라 이런 조건으로도 사는 이가 얼마 없었다. 앤 여왕의 치세에는 때에 따라 종신 연금을 밑천으로도, 서른두 해와 여든아홉 해와 아흔여덟 해와 아흔아홉 해 동안의 연금을 밑천으로도 돈을 빌렸다. 1719년에 서른두 해짜리 연금의 임자들은 그 대신 그 연금의 열한 해 반 값에 이르는 남해 회사 자산과, 그때 그 연금에 밀려 있던 몫에 맞먹는 자산을 더 받아들이게 되었다. 1720년에 길든 짧든 정해진 햇수 동안의 다른 연금의 큰 몫이 같은 기금으로 응모되어 들어갔다. 그때 긴 연금은 해마다 66만 6,821파운드 8실링 3과 2분의 1펜스에 이르렀다. 1775년 1월 5일에 그 나머지, 곧 그때 응모되지 않은 것은 13만 6,453파운드 12실링 8펜스밖에 되지 않았다.

1739년과 1755년에 시작된 두 전쟁 동안에는 정해진 햇수 동안의 연금을 밑천으로도 종신 연금을 밑천으로도 돈을 거의 빌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흔여덟 해나 아흔아홉 해짜리 연금은 영구 연금과 거의 맞먹는 값어치가 있으니, 그렇다면 거의 그만큼을 빌릴 기금이 될 법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집안의 재산을 물려줄 자리를 잡고 먼 뒷날을 대비하려고 공채 자산을 사들이는 이들은 그 값어치가 끊임없이 줄어드는 것을 사려 들지 않을 터인데, 그런 사람들이 자산을 가진 이와 사는 이 가운데 아주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오랜 햇수 동안의 연금은 그 속값어치가 영구 연금의 것과 거의 같다 하더라도 그만큼 많은 사는 이를 찾지 못할 것이다. 대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제 응모분을 팔려고 하는, 새로 빌리는 돈의 응모자들은 같은 액수라면 오랜 햇수 동안의 되살 수 없는 연금보다 의회가 되살 수 있는 영구 연금을 훨씬 좋아한다. 앞엣것의 값어치는 늘 같거나 거의 같다고 여길 수 있으므로, 그것이 뒤엣것보다 넘기기 편한 자산이 된다.

앞에서 말한 두 전쟁 동안 정해진 햇수 동안의 연금이든 종신 연금이든 그것을 내준 일은 드물었고, 내주더라도 그것을 밑천으로 빌렸다고 여겨지는 되살 수 있는 연금 곧 이자 위에 새로 빌리는 돈의 응모자들에게 얹어 주는 포상금으로만 내주었다. 그것은 돈을 빌리는 본디 기금으로 내준 것이 아니라 빌려 주는 이를 북돋우려고 덧붙인 것이었다.

종신 연금은 때에 따라 두 가지 다른 길로 내주어졌으니, 하나하나의 목숨을 밑천으로 삼거나 프랑스 말로 그것을 지어낸 이의 이름을 따 톤틴13이라 부르는 목숨의 묶음을 밑천으로 삼았다. 하나하나의 목숨을 밑천으로 연금을 내주면 연금 받는 이가 하나하나 죽을 때마다 그의 연금이 지우던 만큼 공공 세입의 짐이 벗겨진다. 톤틴으로 연금을 내주면 한 묶음에 든 연금 받는 이가 모두 죽기 전에는 공공 세입이 풀려나기 시작하지 않는데, 그 묶음은 더러 스무 사람이나 서른 사람으로 이루어지고 살아남은 이들이 저보다 먼저 죽은 이들의 연금을 이어받으며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가 온 묶음의 연금을 이어받는다. 같은 세입으로 언제나 하나하나의 목숨을 밑천으로 한 연금보다 톤틴으로 더 많은 돈을 마련할 수 있다. 먼저 죽은 이의 몫을 이어받을 권리가 딸린 연금은 참으로 같은 액수의 하나뿐인 목숨을 밑천으로 한 연금보다 값어치가 크며, 온갖 복권의 성공이 걸려 있는 저 원리, 곧 사람마다 제 운이 좋으리라고 저절로 믿는 마음 덕분에 그런 연금은 대개 제 값어치보다 얼마쯤 비싸게 팔린다. 정부가 연금을 내주어 돈을 마련하는 것이 예사인 나라에서는 그래서 대개 하나하나의 목숨을 밑천으로 한 연금보다 톤틴을 더 좋아한다. 가장 많은 돈을 마련해 줄 방편이 거의 언제나 공공 세입을 가장 빨리 풀려나게 해 줄 성싶은 방편보다 더 사랑받는다.

프랑스에서는 잉글랜드에서보다 공채 가운데 종신 연금이 차지하는 몫이 훨씬 크다. 1764년에 보르도 고등법원14이 국왕에게 올린 건의서에 따르면 프랑스의 온 공채는 24억 리브르로 어림되며, 그 가운데 종신 연금을 내주고 받은 자본은 3억 리브르, 곧 온 공채의 8분의 1에 이른다고 한다. 그 연금 자체는 해마다 3,000만 리브르, 곧 그 온 빚의 이자로 어림되는 1억 2,000만 리브르의 4분의 1에 이른다고 셈한다. 이 어림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을 올린 것이 그토록 존경할 만한 단체이고 참에 가까운 어림으로 내놓은 것이니, 내 생각에는 그런 것으로 여겨도 좋을 듯하다. 빌리는 길이 이렇게 서로 다른 까닭은 프랑스와 잉글랜드 두 정부가 공공 세입을 풀려나게 하려고 애쓰는 정도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온통 빌려 주는 이들의 보는 눈과 이해가 다른 데에서 나온다.

잉글랜드에서는 정부가 앉은 곳이 세상에서 가장 큰 상업 도시인 까닭에 정부에 돈을 먼저 대 주는 사람은 대개 상인이다. 그것을 대 줌으로써 그들은 제 상업 자본을 줄이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늘리려는 것이며, 새로 빌리는 돈에 응모한 제 몫을 얼마간의 이윤을 남기고 팔 수 있으리라고 바라지 않는다면 결코 응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제 돈을 대 주고 영구 연금이 아니라 제 목숨이든 남의 목숨이든 종신 연금을 산다면, 그들이 그것을 늘 이윤을 남기고 팔 수 있을 성싶지는 않다. 제 목숨을 밑천으로 한 연금은 늘 손해를 보고 팔 터이니, 제 나이와 건강 상태가 저와 거의 같은 남의 목숨을 밑천으로 한 연금에 제 목숨을 밑천으로 한 것과 같은 값을 치를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참으로 제삼자의 목숨을 밑천으로 한 연금은 의심할 것 없이 사는 이에게도 파는 이에게도 값어치가 같다. 그러나 그 참값어치는 그것을 내준 순간부터 줄어들기 시작하고 그것이 이어지는 동안 내내 더욱더 줄어든다. 그러므로 그것은 참값어치가 늘 같거나 거의 같다고 여길 수 있는 영구 연금만큼 넘기기 편한 자산이 결코 될 수 없다.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앉은 곳이 큰 상업 도시가 아닌 까닭에 정부에 돈을 먼저 대 주는 사람 가운데 상인이 차지하는 몫이 그리 크지 않다. 재정에 관여하는 이들, 곧 총괄 징세 청부인과 청부로 내주지 않은 세금을 거두는 이들과 궁정 은행가 따위가 나라가 다급할 때마다 제 돈을 대 주는 이들의 큰 몫을 이룬다. 그런 사람들은 으레 미천한 집안에서 났으나 큰 부를 지녔고 더러 큰 자만도 지녔다. 그들은 너무 도도하여 제 또래와 혼인하려 하지 않고, 지체 있는 집안의 여자는 그들과 혼인하기를 업신여긴다. 그리하여 그들은 홀로 살기로 마음먹는 일이 잦으며, 제 집안도 없고 그리 기꺼이 아는 체하지도 않는 제 친척의 집안도 그리 마음에 두지 않는 터라, 그저 제 한세상 동안 으리으리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제 재산이 제 몸과 함께 끝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혼인하기를 꺼리거나 그 사는 처지가 혼인을 마땅치 않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넉넉한 사람의 수가 잉글랜드에서보다 프랑스에 훨씬 많다. 뒷사람을 거의 또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제 자본을 저희가 바라는 동안 꼭 그만큼만 이어지고 더는 이어지지 않는 수입으로 바꾸는 것보다 더 편한 일이 있을 수 없다.

오늘날 정부의 큰 몫은 평화로울 때의 예사로운 씀씀이가 그 예사로운 세입과 맞먹거나 거의 맞먹으므로, 전쟁이 닥치면 제 비용이 늘어나는 만큼 제 세입을 늘리려 하지도 않고 늘릴 수도 없다. 그러려 하지 않는 것은 세금이 그토록 크게 또 그토록 갑자기 오르면 머잖아 백성이 전쟁에 정나미가 떨어질 터라 그들의 비위를 거스를까 두려워서이고, 그럴 수 없는 것은 어떤 세금이 바라는 세입을 낼 만한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빌리기가 쉬운 덕분에 그들은 이 두려움과 이 못함이 없었더라면 겪었을 난처함에서 벗어난다. 빌림 덕분에 그들은 세금을 아주 어지간히 올리는 것만으로 전쟁을 해 나가기에 넉넉한 돈을 해마다 마련할 수 있고, 영구 공채 발행이라는 짓 덕분에 세금을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적게 올리면서 해마다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많은 돈을 마련할 수 있다. 큰 제국에서 수도에 사는 사람과 싸움터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 사는 사람은 그 가운데 많은 이가 전쟁에서 오는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않고, 제 함대와 군대의 공훈을 신문에서 읽는 재미를 느긋이 누린다. 그들에게는 이 재미가 전쟁 때문에 내는 세금과 평화로울 때에 내던 세금 사이의 작은 차이를 메워 준다. 그들은 평화가 돌아와 제 재미와 전쟁이 더 이어지면 이루어지리라던 천 가지 헛된 정복과 나라의 영광의 꿈이 끝나 버리는 것을 으레 마뜩잖아한다.

참으로 평화가 돌아온다고 하여 전쟁 동안 물린 세금의 큰 몫이 벗겨지는 일은 드물다. 그 세금은 전쟁을 해 나가려고 진 빚의 이자를 치르도록 저당 잡혀 있다. 이 빚의 이자를 치르고 정부의 예사로운 씀씀이를 대고도 옛 세입에 새 세금을 더한 것이 얼마간의 세입을 남긴다면, 그것은 아마 빚을 갚을 감채 기금으로 돌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첫째로 이 감채 기금은 설령 다른 데에 쓰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평화가 이어지리라고 이치에 맞게 바랄 만한 어느 기간 안에 전쟁 동안 진 온 빚을 갚기에는 대개 아주 턱없이 모자란다. 그리고 둘째로 이 기금은 거의 늘 다른 데에 쓰인다.

새 세금은 오로지 그것을 밑천으로 빌린 돈의 이자를 치르려고 물린 것이다. 그것이 더 많이 난다면 그것은 대개 뜻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것이고, 따라서 그리 많은 일이 드물다. 감채 기금은 대개 세금이 본디 거기에 얹힌 이자나 연금을 치르는 데에 필요한 것보다 남아서라기보다 그 뒤에 그 이자를 내린 데에서 생겼다. 1655년 네덜란드의 감채 기금과 1685년 교황령의 감채 기금이 둘 다 이런 모로 만들어졌다. 그런 기금이 으레 모자라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더할 나위 없이 깊은 평화 속에서도 남다른 비용을 요구하는 온갖 일이 생기는데, 정부는 늘 새 세금을 물리는 것보다 감채 기금을 딴 데에 돌려 쓰는 것이 이 비용을 대기에 더 편하다고 여긴다. 새 세금은 무엇이든 백성이 곧바로 얼마쯤 느낀다. 그것은 늘 얼마간의 투덜거림을 낳고 얼마간의 반대를 만난다. 세금이 여러 가지로 불어나 있을수록, 과세할 대상 하나하나에 세금이 높이 매겨져 있을수록, 백성은 새 세금마다 더 크게 하소연하고, 새로 과세할 대상을 찾아내기도 이미 옛 대상에 물린 세금을 훨씬 더 올리기도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빚 갚기를 잠깐 멈추는 것은 백성이 곧바로 느끼지 못하며 투덜거림도 하소연도 낳지 않는다. 감채 기금에서 빌리는 것은 눈앞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늘 뻔하고 손쉬운 방편이다. 공채가 쌓여 있을수록, 그것을 줄일 길을 궁리하는 일이 그만큼 더 절실해질수록, 감채 기금의 어느 몫이라도 딴 데에 돌려 쓰는 것이 그만큼 더 위험하고 그만큼 더 망하게 하는 짓이 될수록, 공채가 이렇다 하게 줄어들 성싶음은 그만큼 적어지고 감채 기금이 평화로울 때에 생기는 온갖 남다른 비용을 대는 데로 돌려 쓰일 성싶음은, 아니 돌려 쓰이고야 말 것임은 그만큼 커진다. 한 나라가 이미 세금에 짓눌려 있을 때, 오직 새 전쟁의 다급함만이, 오직 나라의 원수를 갚으려는 앙심이나 나라의 안전을 바라는 애탐만이 백성으로 하여금 새 세금을 그런대로 참고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다. 감채 기금이 으레 딴 데에 돌려 쓰이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주

  1. 1. 옮긴이 — 외레순(the Sound)은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좁은 물길로 발트해와 북해를 잇는다. 덴마크 국왕은 15세기부터 1857년까지 이곳을 지나는 배에 해협 통행세를 물렸다.

  2. 2. 옮긴이 — 저본은 「소금세와 소비세」(the salt duty, and excise duty)라 적었으나, 소금세 자체가 소비세이면서 다른 관리 밑에 있다는 뜻이므로 「an excise duty」의 오식으로 보고 옮겼다.

  3. 3. 옮긴이 — 저본은 이 자리에 「소비되는 공동체」(consumable communities)라 적었으나 앞뒤 문단이 모두 소비재(consumable commodities)를 말하므로 그렇게 옮겼다.

  4. 4. 옮긴이 — 알카발라는 카스티야에서 걷던 매매세로 14세기에 자리 잡아 19세기까지 이어졌다. 헤로니모 데 우스타리스(1670~1732)는 스페인의 관료이자 저술가로 『상업과 항해론』(1724)을 썼다.

  5. 5. 옮긴이 — 타유는 직접세, 카피타시옹은 사람마다 매기던 인두세, 뱅티엠은 수입의 20분의 1을 매기던 세금, 가벨은 소금세, 에드는 술 따위에 물리던 소비세, 트레트는 관세, 도멘은 왕실 영지에서 나오던 수입이다. 총괄 징세 청부인(fermiers generaux)은 이 가운데 여러 세금을 청부로 걷던 금융가 집단이다. 다섯 큰 청부의 지방은 1664년에 콜베르가 만든 관세율표가 미치는 곳이고, 외국으로 치는 지방은 1667년 관세율표가 미치는 곳이다.

  6. 6. 옮긴이 — 리브르는 프랑스 혁명 전의 화폐 단위로 20수 곧 240드니에에 해당한다. 스미스 무렵에 1파운드 스털링은 대략 23리브르였다.

  7. 7. 옮긴이 — 연방 의회(States-General)는 네덜란드 연방을 이루던 일곱 주의 대표가 모이던 의회로 연방 전체의 일을 맡았다.

  8. 8. 옮긴이 — 재무부 증권(exchequer bills)과 해군 증권(navy bills)은 영국 정부가 돈이 모자랄 때 발행하던 단기 채무 증서다. 탤리 막대(tally)는 재무부가 금액만큼 눈금을 새겨 둘로 쪼갠 나무 막대로, 그 반쪽이 채권 증서 노릇을 하였다. 큰 개주는 1696년에 닳고 깎인 은화를 죄다 거두어 다시 찍은 일을 말한다.

  9. 9. 옮긴이 — 앞당겨 쓰기(anticipation)는 앞으로 들어올 세금의 생산을 담보로 미리 빌려 쓰는 것이고, 공채 발행(funding)은 세금을 영구히 매어 두고 그 이자만 치르기로 하고 빌리는 것이다. 앞엣것은 갚을 기한이 정해져 있고 뒤엣것은 없다.

  10. 10. 옮긴이 — 영국의 법령은 국왕이 왕위에 오른 뒤 몇 해째 회기에 만들어졌는지와 그 회기의 몇 번째 법인지로 가리킨다. 윌리엄 3세는 1689년에 올랐으므로 그 치세 8년은 1696~1697년 회기다.

  11. 11. 옮긴이 — 톤세와 파운드세(tonnage and poundage)는 배에 실린 포도주에 톤마다, 그 밖의 물건에 값 1파운드마다 물리던 관세로, 의회가 국왕에게 걷도록 허락한 가장 오래된 보조세다.

  12. 12. 옮긴이 — 남해 회사(South Sea Company)는 1711년에 세워져 정부의 빚을 떠안는 대신 스페인령 아메리카와의 무역 독점을 받기로 한 회사다. 1720년에 그 자산값이 부풀었다가 무너진 일을 남해 거품이라 부른다.

  13. 13. 옮긴이 — 톤틴은 나폴리 사람 로렌초 톤티(1602~1684)가 1653년에 프랑스 정부에 내놓은 방식이다. 여럿을 한 묶음으로 묶어 연금을 내주고 살아남은 이가 먼저 죽은 이의 몫을 이어받게 한다.

  14. 14. 옮긴이 — 프랑스의 파를망(parlement)은 오늘날의 의회가 아니라 국왕의 법령을 등록하고 재판을 맡던 최고 법원이다. 보르도의 것은 그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