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식민지에 대하여 (이어서)
그와 달리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전제 정부는 제 식민지에서도 그대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런 정부가 아래 관리들에게 으레 맡기는 재량의 권한은 거리가 아주 먼 까닭에 그곳에서 예사롭지 않은 난폭함으로 행사되기 마련이다. 모든 전제 정부 아래에서는 수도에 나라의 다른 어느 곳보다 자유가 더 많다. 주권자 자신은 재판의 질서를 뒤틀거나 사람들의 큰 몸뚱이를 짓누를 이익도 마음도 결코 지닐 수 없다. 수도에서는 그가 몸소 있다는 것만으로 아래 관리들이 얼마쯤 주눅 들지만, 사람들의 하소연이 그에게 이르기 어려운 먼 지방에서는 그 관리들이 훨씬 더 마음 놓고 제 횡포를 부릴 수 있다. 그런데 아메리카의 유럽 식민지는 이제까지 알려진 가장 큰 제국들의 가장 먼 지방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영국 식민지의 정부는 어쩌면 세상이 시작된 뒤로 그토록 먼 지방의 주민들에게 온전한 안전을 줄 수 있었던 오직 하나의 정부일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식민지의 통치는 언제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통치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알맞게 이루어져 왔다. 이렇게 나은 처신은 프랑스 국민의 성격에도 어울리고, 어느 나라에서나 그 성격을 빚어내는 것, 곧 그들 정부의 성질에도 어울리는데, 그 정부는 영국의 정부에 견주면 제멋대로이고 난폭하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부에 견주면 법에 맞고 자유롭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방침이 나은 점이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북아메리카 식민지가 나아간 걸음에서다. 프랑스의 설탕 식민지가 나아간 걸음은 잉글랜드의 설탕 식민지 대부분에 적어도 맞먹었고 어쩌면 그보다 나았는데, 잉글랜드의 설탕 식민지도 그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자리 잡은 것과 거의 같은 종류의 자유로운 정부를 누리고 있는데도 그러하다. 그러나 프랑스의 설탕 식민지는 잉글랜드의 설탕 식민지와 달리 제 설탕을 정제하는 일을 막히지 않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정부의 기질이 저절로 흑인 노예를 더 잘 다루도록 이끈다는 점이다.
유럽의 모든 식민지에서 사탕수수 농사는 흑인 노예가 짓는다. 유럽의 온화한 기후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몸은 서인도의 불타는 볕 아래에서 땅을 파는 노동을 견딜 수 없으리라고들 여긴다. 그리고 사탕수수 농사는 지금 꾸려 가는 방식으로는 온통 손일인데, 많은 이들의 생각으로는 골타기 쟁기를 들여오면 큰 이점이 있으리라고 한다. 그러나 소를 부려 짓는 경작의 이윤과 성공이 그 소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크게 달려 있듯이, 노예를 부려 짓는 경작의 이윤과 성공도 그 노예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똑같이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제 노예를 잘 다루는 일에서는 프랑스 개척지 농장주가 잉글랜드 농장주보다 낫다는 것이 두루 인정되는 바라고 나는 생각한다. 법이 주인의 난폭함에 맞서 노예에게 얼마쯤 약한 보호를 주는 한에서는, 그 법은 정부가 온전히 자유로운 식민지에서보다 정부가 크게 제멋대로인 식민지에서 더 잘 집행되기 쉽다. 노예 제도라는 불행한 법이 자리 잡은 나라에서는 어디서나 행정관이 노예를 보호할 때 주인의 사유 재산을 다루는 일에 얼마쯤 끼어드는 셈이 된다. 그리고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주인이 어쩌면 식민지 의회의 의원이거나 그런 의원을 뽑는 유권자이므로, 행정관은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가 아니면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가 주인에게 바쳐야 하는 그 존중이 그로서는 노예를 보호하기를 더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정부가 크게 제멋대로인 나라, 곧 행정관이 개인의 사유 재산을 다루는 일에까지 끼어드는 것이 예사이고 제 마음에 들게 다루지 않으면 어쩌면 르트르 드 카셰를 보내기까지 하는 나라에서는, 그가 노예에게 얼마쯤 보호를 주기가 훨씬 쉽고 여느 사람다운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하도록 그를 이끈다.1 행정관의 보호는 주인의 눈에 노예를 덜 하찮게 보이게 만들고, 그리하여 주인은 노예를 더 헤아려 보고 더 부드럽게 다루게 된다. 부드럽게 부리면 노예는 더 충실해질 뿐 아니라 더 슬기로워지고, 따라서 두 갈래로 더 쓸모 있어진다. 그는 자유로운 하인의 처지에 더 가까워지고 얼마쯤 곧은 마음과 주인의 이익에 대한 애착을 지닐 수도 있으니, 이는 자유로운 하인에게는 흔히 있는 덕이나 주인이 온전히 자유롭고 안전한 나라에서 노예가 예사로 다루어지는 대로 다루어지는 노예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덕이다.
노예의 처지가 자유로운 정부 아래에서보다 제멋대로인 정부 아래에서 더 낫다는 것은 모든 시대와 모든 나라의 역사가 뒷받침한다고 나는 믿는다. 로마의 역사에서 행정관이 주인의 난폭함으로부터 노예를 지키려고 끼어드는 것을 우리가 처음 읽는 것은 황제들 아래에서다. 비디우스 폴리오가 아우구스투스가 보는 앞에서 가벼운 잘못을 저지른 제 노예 하나를 토막 내어 제 물고기를 먹이려고 못에 던지라고 시켰을 때, 황제는 노여워하며 그 노예뿐 아니라 그에게 딸린 다른 모든 노예까지 당장 풀어 주라고 그에게 명령했다.2 공화정 아래에서는 어떤 행정관도 노예를 지킬 만한 권위를 지니지 못했을 터이고 주인을 벌할 권위는 더더욱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눈여겨볼 것은 프랑스의 설탕 식민지, 특히 생도맹그라는 큰 식민지를 개량한 자산이 거의 온통 그 식민지들을 차츰 개량하고 경작한 데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그것은 거의 온통 그 땅과 식민지 사람들의 근면이 낸 생산물이었고, 또는 같은 말이 되겠으나 잘 꾸려 나간 덕에 차츰 쌓이고 더 많은 생산물을 길러 내는 데에 쓰인 그 생산물의 값이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설탕 식민지를 개량하고 경작한 자산은 그 큰 몫이 잉글랜드에서 보내진 것이었고 결코 온통 그 땅과 식민지 사람들의 근면이 낸 생산물이 아니었다. 잉글랜드의 설탕 식민지가 번영한 것은 크게 잉글랜드의 큰 부 덕분이었으니, 그 부의 한 몫이 말하자면 이 식민지들 위로 흘러넘친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설탕 식민지가 번영한 것은 온통 식민지 사람들이 잘 처신한 덕분이었으므로 그 처신은 잉글랜드 사람들의 처신보다 얼마쯤 나았을 수밖에 없고, 이 나은 점은 제 노예를 잘 다룬 일에서만큼 뚜렷이 드러난 데가 없다.
제 식민지를 두고 유럽의 여러 나라가 편 방침의 큰 줄거리는 이러했다.
그러므로 유럽의 방침은 아메리카 식민지를 처음 세운 일에서든, 그 안의 통치에 관한 한 그 뒤에 이루어진 번영에서든 내세울 것이 거의 없다.
어리석음과 옳지 않음이 그 식민지를 세우려는 첫 기획을 이끌고 다스린 원리였던 듯하다. 금광과 은광을 좇아 쫓아다닌 어리석음이 하나요, 유럽 사람들을 해친 적이 없기는커녕 처음 온 모험가들을 온갖 친절과 후대의 표로 맞아 준 해롭지 않은 원주민들이 사는 나라를 차지하려고 탐낸 옳지 않음이 또 하나다.
참으로 뒤에 선 개척지 가운데 얼마를 이룬 모험가들은 금광과 은광을 찾겠다는 허황한 기획에 더 사리에 닿고 더 갸륵한 다른 동기를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동기들조차 유럽의 방침에 돌릴 영예는 거의 없다.
본국에서 억눌린 잉글랜드 청교도들은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로 달아나 그곳에 뉴잉글랜드의 네 정부를 세웠다. 훨씬 더 큰 옳지 않음을 겪은 잉글랜드 가톨릭 교도들은 메릴랜드의 정부를 세웠고 퀘이커 교도들은 펜실베이니아의 정부를 세웠다. 종교 재판에 쫓기고 재산을 빼앗기고 브라질로 내쫓긴 포르투갈 유대인들은 제 본보기로, 본디 그 식민지에 사람을 채운 귀양 보내진 중죄인과 창녀 들 사이에 얼마쯤 질서와 근면을 들여놓았고 그들에게 사탕수수 농사를 가르쳤다. 이 모든 서로 다른 경우에 아메리카에 사람을 채우고 그곳을 경작한 것은 유럽 정부들의 슬기와 방침이 아니라 그 무질서와 옳지 않음이었다.
이 개척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얼마를 실제로 이루는 데에서도 유럽의 여러 정부가 세운 공은 그것을 기획하는 데에서만큼이나 적었다. 멕시코를 정복한 일은 스페인 참사회의 기획이 아니라 쿠바 총독의 기획이었고, 그것을 이룬 것은 그 일을 맡은 대담한 모험가의 기개였으니, 그런 사람을 믿은 것을 곧 뉘우친 그 총독이 그것을 가로막으려고 할 수 있는 온갖 일을 다 했는데도 그러했다. 칠레와 페루를 정복한 사람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거의 모든 스페인 개척지를 정복한 사람들이 지니고 간 나라의 북돋움이란 스페인 국왕의 이름으로 개척지를 세우고 정복해도 좋다는 두루뭉술한 허락뿐이었다. 그 모험은 모두 모험가들이 제 위험과 제 비용으로 한 것이었다. 스페인 정부는 그 가운데 어느 것에도 거의 아무것도 보태지 않았다. 잉글랜드 정부도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몇몇 식민지를 세우는 일을 이루는 데에 그만큼 적게 보탰다.
그 개척지들이 이루어지고 본국의 눈길을 끌 만큼 커졌을 때, 본국이 그것을 두고 처음 만든 규정은 언제나 저 자신에게 그 상업의 독점을 확보해 주는 것을, 곧 식민지의 시장을 가두고 그들을 희생시켜 제 시장을 넓히는 것을, 따라서 그들이 번영해 가는 걸음을 재촉하고 앞당기기보다 오히려 죽이고 막는 것을 노렸다. 이 독점이 행사되어 온 여러 방식에 제 식민지를 두고 유럽의 여러 나라가 편 방침의 가장 본질에 닿는 차이 하나가 들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나은 잉글랜드의 방침도 나머지 어느 나라의 방침보다 얼마쯤 덜 옹졸하고 덜 억누를 뿐이다.
그렇다면 유럽의 방침은 아메리카 식민지를 처음 세우는 일에나 오늘날의 웅장함에 어떻게 이바지했는가? 한 가지 길로, 오직 한 가지 길로만 그것은 크게 이바지했다. 위대한 사내들의 어머니여!3 그것은 그토록 큰 일을 해내고 그토록 큰 제국의 터를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길러 내고 빚어냈다. 그리고 세상의 다른 어느 구석에도 그런 사람들을 빚어낼 수 있는 방침은 없으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빚어낸 적도 없다. 식민지는 그 활발하고 진취하는 창건자들의 교육과 큰 안목을 유럽의 방침에 빚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얼마는 그 안의 통치에 관한 한 그것 말고는 유럽의 방침에 빚진 것이 거의 없다.
제3절. 유럽이 아메리카를 발견한 일과 희망봉을 돌아 동인도로 가는 길을 발견한 일에서 얻은 이익에 대하여
아메리카 식민지가 유럽의 방침에서 얻은 이익은 이러하다.
그러면 유럽이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그곳에 식민한 일에서 얻은 이익은 무엇인가?
그 이익은 첫째로 유럽을 하나의 큰 나라로 볼 때 그 큰 사건들에서 얻은 두루 미치는 이익과, 둘째로 식민한 나라가 저마다 제게 딸린 식민지에서 그 위에 부리는 권위나 지배의 결과로 얻은 남다른 이익으로 나눌 수 있다.
유럽을 하나의 큰 나라로 볼 때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그곳에 식민한 일에서 얻은 두루 미치는 이익은 첫째로 누림이 늘어난 것이고 둘째로 산업이 커진 것이다.
아메리카의 남는 생산물이 유럽으로 들어와 이 큰 대륙의 주민들에게 달리는 지닐 수 없었을 여러 가지 상품을, 얼마는 편리하고 쓸모 있으라고 얼마는 즐거우라고 얼마는 꾸미라고 대어 주며, 그리하여 그들의 누림을 늘리는 데에 이바지한다.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그곳에 식민한 일이 첫째로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프랑스와 잉글랜드처럼 그곳과 곧바로 거래하는 모든 나라의 산업을 키우는 데에 이바지했고, 둘째로 그곳과 곧바로 거래하지는 않으나 다른 나라를 거쳐 제 생산물인 물건을 그곳으로 보내는 모든 나라, 이를테면 오스트리아령 플란데런과 독일의 몇몇 지방처럼 앞서 말한 나라들을 거쳐 적지 않은 양의 리넨과 다른 물건을 그곳으로 보내는 나라들의 산업을 키우는 데에 이바지했다는 것은 선뜻 인정될 것이다. 그런 모든 나라가 제 남는 생산물에 더 넓은 시장을 얻은 것은 뻔하고, 따라서 그 양을 늘리도록 북돋워졌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큰 사건들이 헝가리와 폴란드처럼 어쩌면 제 생산물인 상품을 아메리카로 한 가지도 보낸 적이 없을 나라의 산업까지 북돋우는 데에 이바지했으리라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뻔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사건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아메리카 생산물의 얼마는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소비되고, 그곳에서도 그 새로운 세상 구석의 설탕과 초콜릿과 담배를 얼마쯤 찾는다. 그러나 그 상품은 헝가리와 폴란드의 근면이 낸 생산물이거나 그 생산물의 얼마로 사들인 무엇으로 사야 한다. 아메리카의 그 상품은 헝가리와 폴란드로 들어와 그곳에서 이 나라들의 남는 생산물과 바뀌는 새로운 가치요 새로운 맞짝이다. 그것이 그곳으로 실려 감으로써 그 남는 생산물에 새롭고 더 넓은 시장이 생긴다. 그것은 그 가치를 올리고 그리하여 그것이 늘어나도록 북돋우는 데에 이바지한다. 그 가운데 어느 몫도 아메리카로 실려 가지 않더라도 그것은 다른 나라로 실려 갈 수 있는데, 그 나라들은 아메리카의 남는 생산물 가운데 제게 떨어진 몫으로 그것을 사들이며, 또 그것은 본디 아메리카의 남는 생산물이 움직이게 한 그 거래의 돌림을 통하여 시장을 찾을 수 있다.
그 큰 사건들은 아메리카로 상품을 보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상품을 받은 적도 없는 나라들의 누림을 늘리고 산업을 키우는 데에까지 이바지했을 수 있다. 그런 나라들조차 아메리카 거래 덕에 남는 생산물이 커진 나라들에게서 다른 상품을 더 넉넉하게 받았을 수 있다. 이렇게 더 넉넉해진 것은 그들의 누림을 늘렸을 수밖에 없듯이 그들의 산업 또한 키웠을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종류의 새로운 맞짝이 더 많이 그들 앞에 놓여 그 산업의 남는 생산물과 바뀌게 되었을 터이다. 그 남는 생산물에 더 넓은 시장이 생겨 그 가치를 올리고 그리하여 그것이 늘어나도록 북돋웠을 터이다. 해마다 유럽 상업이라는 큰 고리 안으로 던져져 그 여러 차례의 돎으로 해마다 그 안에 든 온갖 나라들 사이에 나누어지는 상품의 덩어리는 아메리카의 남는 생산물 전부만큼 커졌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더 커진 덩어리의 더 큰 몫이 그 나라들 저마다에게 떨어져 그 누림을 늘리고 그 산업을 키웠을 법하다.
본국들의 배타 거래는 그 모든 나라 일반의, 그리고 특히 아메리카 식민지의 누림과 산업을 함께 줄이거나 적어도 저절로 올랐을 자리 밑으로 눌러 두는 쪽으로 기운다. 그것은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큰 몫을 움직이게 하는 큰 용수철 하나의 움직임 위에 얹힌 죽은 짐이다. 다른 모든 나라에서 식민지 생산물을 더 값비싸게 만듦으로써 그것은 그 소비를 줄이고, 그리하여 식민지의 산업과 다른 모든 나라의 누림과 산업을 함께 옥죄는데, 그 나라들은 누리는 것에 더 많이 치를수록 덜 누리고 만들어 내는 것에 더 적게 받을수록 덜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식민지에서 다른 모든 나라의 생산물을 더 값비싸게 만듦으로써 그것은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나라의 산업과 식민지의 누림과 산업을 함께 옥죈다.4 그것은 어떤 몇몇 나라에 이로우리라 여겨지는 것을 위하여 다른 모든 나라의 즐거움을 성가시게 하고 그 산업에 짐을 지우는 차꼬이며, 식민지에는 다른 어느 나라에보다 더 그러하다. 그것은 다른 모든 나라를 어느 한 시장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내쫓을 뿐 아니라 식민지를 어느 한 시장에 될 수 있는 대로 가두어 두는데, 다른 모든 시장이 열려 있는데 어느 한 시장에서 내쫓기는 것과 다른 모든 시장이 닫혀 있는데 어느 한 시장에 갇히는 것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식민지의 남는 생산물은 유럽이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그곳에 식민한 일에서 얻는 그 모든 누림과 산업의 늘어남의 본디 샘이며, 본국들의 배타 거래는 이 샘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훨씬 덜 넉넉하게 만드는 쪽으로 기운다.
식민한 나라가 저마다 제게 딸린 식민지에서 얻는 남다른 이익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종류다. 첫째는 어느 제국이나 제 지배 아래 있는 지방에서 얻는 두루 있는 이익이고, 둘째는 아메리카의 유럽 식민지처럼 아주 별난 성질을 지닌 지방에서 나오리라 여겨지는 유별난 이익이다.
어느 제국이나 제 지배 아래 있는 지방에서 얻는 두루 있는 이익은 첫째로 그 방비를 위하여 그들이 대어 주는 군사력이고, 둘째로 그 민간 통치를 떠받치기 위하여 그들이 대어 주는 세입이다. 로마의 식민지는 때때로 이것도 저것도 대어 주었다. 그리스의 식민지는 이따금 군사력을 대어 주었으나 세입을 대어 주는 일은 드물었다. 어머니 도시의 지배 아래 있다고 그들 스스로 인정하는 일은 보기 어려웠다. 그들은 대개 전쟁에서는 그 동맹이었으나 평화로울 때 그 신민인 일은 아주 드물었다.
아메리카의 유럽 식민지는 이제까지 본국의 방비를 위하여 아무 군사력도 대어 준 적이 없다. 그 군사력은 이제까지 제 방비에도 넉넉했던 적이 없다. 그리고 본국들이 벌인 여러 전쟁에서 제 식민지를 지키는 일은 대개 그 나라들의 군사력을 아주 크게 흩뜨려 놓았다. 그러므로 이 점에서는 유럽의 모든 식민지가 하나도 빠짐없이 제 본국에 힘이 되기보다 오히려 약함이 되는 원인이었다.
본국의 방비나 그 민간 통치를 떠받치는 일에 세입을 얼마라도 보탠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뿐이다. 다른 유럽 나라들의 식민지, 특히 잉글랜드의 식민지에 매겨진 세금은 평화로운 때에 그들에게 들인 비용에 맞먹은 적이 드물었고, 전쟁 때에 그들이 일으킨 비용을 치르기에 넉넉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그런 식민지는 제 본국에 세입의 샘이 아니라 비용의 샘이었다.
그런 식민지가 제 본국에 주는 이익은 온통 아메리카의 유럽 식민지처럼 아주 별난 성질을 지닌 지방에서 나오리라 여겨지는 그 유별난 이익에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유별난 이익의 오직 하나의 샘이 배타 거래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이 배타 거래의 결과로, 이를테면 잉글랜드 식민지의 남는 생산물 가운데 이른바 열거 상품에 드는 몫은 잉글랜드 말고 다른 어느 나라로도 보낼 수 없다.5 다른 나라들은 그 뒤에 잉글랜드에게서 그것을 사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 잉글랜드에서 헐해야 하고, 다른 어느 나라의 누림보다 잉글랜드의 누림을 늘리는 데에 더 이바지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잉글랜드의 산업을 북돋우는 데에도 더 이바지해야 한다. 잉글랜드가 그 열거 상품과 바꾸는 제 남는 생산물의 모든 몫에 대하여 잉글랜드는, 다른 나라들이 제 생산물의 같은 몫을 같은 상품과 바꿀 때 받을 수 있는 값보다 더 나은 값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잉글랜드의 제조품은 다른 나라의 같은 제조품이 살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제 식민지 설탕과 담배를 살 것이다. 그러므로 잉글랜드의 제조품과 다른 나라의 제조품이 둘 다 잉글랜드 식민지의 설탕과 담배와 바뀌어야 하는 한에서, 이렇게 값이 나은 것은 앞의 것에 뒤의 것이 이런 사정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북돋움을 준다. 그러므로 식민지의 배타 거래는 그것을 지니지 못한 나라들의 누림과 산업을 줄이거나 적어도 저절로 올랐을 자리 밑으로 눌러 두는 만큼, 그것을 지닌 나라에 그 다른 나라들보다 뚜렷한 이점을 준다.
그러나 이 이점은 어쩌면 절대의 이점이라기보다 상대의 이점이라 부를 만한 것임이 드러날 것이며, 그것을 누리는 나라를 자유로운 무역이 있을 때 저절로 올랐을 자리 위로 그 나라의 산업과 생산물을 올려 주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나라의 산업과 생산물을 눌러서 나은 자리에 놓아 주는 것임이 드러날 것이다.
이를테면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의 담배는 잉글랜드가 그것에 대하여 누리는 독점 덕에, 잉글랜드가 그 적지 않은 몫을 으레 팔아 넘기는 프랑스에 이르는 값보다 틀림없이 더 헐하게 잉글랜드에 이른다. 그러나 프랑스와 다른 모든 유럽 나라가 어느 때나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와 자유롭게 거래하도록 허락되어 있었다면, 그 식민지의 담배는 이제쯤 그 다른 모든 나라뿐 아니라 잉글랜드에도 실제 그러한 것보다 더 헐하게 이르렀을 것이다. 담배의 생산은 이제까지 누려 온 어느 시장보다 그토록 훨씬 넓은 시장이 열린 결과로, 이제쯤 담배 개척지의 이윤을 곡물 개척지의 이윤과 나란한 자연스러운 자리로 끌어내릴 만큼 크게 늘어날 수 있었을 터이고 아마 실제로 그렇게 늘어났을 터인데, 담배 개척지의 이윤은 아직 곡물 개척지의 이윤보다 얼마쯤 높다고 여겨진다. 담배의 값은 이제쯤 지금보다 얼마쯤 더 낮게 떨어질 수 있었을 터이고 아마 실제로 떨어졌으리라. 잉글랜드의 상품이든 그 다른 나라들의 상품이든 같은 양으로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에서 지금 살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담배를 살 수 있었을 터이고, 따라서 그곳에서 그만큼 더 나은 값에 팔렸을 터이다. 그러므로 그 풀이 헐하고 넉넉해져 잉글랜드의 누림이든 다른 어느 나라의 누림이든 늘리고 그 산업을 키울 수 있는 한에서, 자유로운 무역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 이 두 가지 효과를 지금 낼 수 있는 것보다 얼마쯤 더 크게 냈을 것이다. 참으로 이런 경우에 잉글랜드는 다른 나라보다 아무 이점도 얻지 못했으리라. 잉글랜드는 제 식민지의 담배를 얼마쯤 더 헐하게 샀을 터이고 따라서 제 상품의 얼마를 실제 그러한 것보다 얼마쯤 더 값비싸게 팔았을 터이나, 다른 어느 나라가 할 수 있었을 것보다 더 헐하게 앞의 것을 사거나 더 값비싸게 뒤의 것을 팔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잉글랜드는 어쩌면 절대의 이점을 얻었을 터이나 상대의 이점은 틀림없이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무역에서 이 상대의 이점을 얻으려고, 곧 다른 나라들이 그 거래에 조금이라도 끼어드는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막으려는 얄궂고 앙심 어린 기획을 이루려고, 잉글랜드는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저도 그 거래에서 얻었을 절대의 이점 가운데 한 몫을 바쳤을 뿐 아니라 거의 다른 모든 갈래의 무역에서 절대의 불리함과 상대의 불리함을 아울러 제 몸에 지웠다고 믿을 만한 아주 그럴듯한 까닭이 있다.
잉글랜드가 항해법으로 식민지 무역의 독점을 저 자신에게 돌렸을 때, 그전에 그 거래에 쓰이던 외국 자본은 어쩔 수 없이 그 거래에서 빠져나갔다.6 그전에는 그 거래의 한 몫밖에 꾸려 가지 않던 잉글랜드 자본이 이제 그 전부를 꾸려 가야 했다. 그전에는 식민지가 유럽에서 얻고자 하는 물건 가운데 한 몫밖에 대어 주지 않던 자본이 이제 그들에게 그 전부를 대어 주려고 쓰이는 것의 전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자본은 그들에게 전부를 대어 줄 수 없었고, 실제로 대어 준 물건은 어쩔 수 없이 아주 값비싸게 팔렸다. 그전에는 식민지의 남는 생산물 가운데 한 몫밖에 사들이지 않던 자본이 이제 그 전부를 사들이려고 쓰이는 것의 전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자본은 옛 값에 가까운 값으로는 전부를 사들일 수 없었고, 따라서 무엇을 사들이든 어쩔 수 없이 아주 헐하게 사들였다. 그런데 상인이 아주 값비싸게 팔고 아주 헐하게 사들이는 그런 자본의 쓰임에서는 이윤이 아주 컸을 수밖에 없고 다른 갈래 무역의 예사로운 이윤 수준을 훨씬 넘었을 수밖에 없다. 식민지 무역에서 이렇게 이윤이 나은 것은 다른 갈래의 무역에서 그전에 그 무역에 쓰이던 자본의 한 몫을 끌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자본이 이렇게 옮아간 것은 식민지 무역에서 자본들의 경쟁을 차츰 늘렸을 수밖에 없듯이 그 다른 모든 갈래의 무역에서 그 경쟁을 차츰 줄였을 수밖에 없다. 곧 한쪽의 이윤을 차츰 내렸을 수밖에 없듯이 다른 쪽의 이윤을 차츰 올렸을 수밖에 없으니, 마침내 모든 이윤이 그전에 있던 수준과는 다르고 그보다 얼마쯤 높은 새 수준에 이르렀다.
다른 모든 거래에서 자본을 끌어내고 모든 거래에서 이윤율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얼마쯤 더 높이 올린 이 두 겹의 효과는 이 독점이 처음 자리 잡을 때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뒤로 줄곧 이 독점이 낳아 온 것이다.
첫째, 이 독점은 다른 모든 거래에서 줄곧 자본을 끌어내어 식민지 거래에 쓰이게 해 왔다.
영국의 부는 항해법이 자리 잡은 뒤로 아주 많이 늘어났으나, 식민지의 부가 늘어난 것과 같은 비율로 늘어난 것은 틀림없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에서나 외국 무역은 저절로 그 부에 비례하여 늘어나고 남는 생산물은 그 온 생산물에 비례하여 늘어난다. 그리고 영국은 이른바 식민지의 외국 무역 거의 전부를 저 혼자 차지했는데 그 자본은 그 무역의 넓이와 같은 비율로 늘어나지 않았으므로, 다른 갈래의 무역에서 그전에 그 무역에 쓰이던 자본의 한 몫을 줄곧 빼내지 않고서는, 그리고 저절로 그 갈래로 갔을 훨씬 더 많은 자본을 그 갈래에 가지 못하게 붙들어 두지 않고서는 그 무역을 꾸려 갈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항해법이 자리 잡은 뒤로 식민지 무역은 줄곧 늘어나 왔고, 다른 많은 갈래의 외국 무역, 특히 유럽의 다른 곳과 하는 무역은 줄곧 시들어 왔다. 외국에 팔려고 만드는 우리 제조품은 항해법 앞선 때처럼 이웃한 유럽 시장이나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들의 더 먼 시장에 맞추어지는 대신, 그 큰 몫이 더욱 먼 식민지 시장에, 곧 경쟁하는 자가 많은 시장이 아니라 우리가 독점을 지닌 시장에 맞추어져 왔다. 매슈 데커 경과 다른 저자들이 세금이 너무 많고 걷는 방식이 옳지 못하다는 데에서, 노동의 값이 높다는 데에서, 사치가 늘었다는 데에서 찾던 다른 갈래 외국 무역의 시드는 원인은 모두 식민지 무역이 지나치게 자란 데에서 찾을 수 있다.7 영국의 상업 자본은 아주 크기는 하나 끝없지는 않고, 항해법 뒤로 크게 늘어나기는 했으나 식민지 무역과 같은 비율로 늘어나지는 않았으므로, 그 자본의 한 몫을 다른 갈래의 무역에서 빼내지 않고는, 따라서 그 다른 갈래가 얼마쯤 시드는 일이 없이는 그 무역을 도저히 꾸려 갈 수 없었다.
눈여겨볼 것은 잉글랜드가 항해법이 식민지 무역의 독점을 세우기 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무역이 아주 크지도 않았을 때에 이미 큰 무역국이었고 그 상업 자본이 아주 컸으며 나날이 더욱더 커질 참이었다는 점이다.8 크롬웰이 다스릴 때에 벌인 네덜란드 전쟁에서 잉글랜드의 해군은 네덜란드의 해군보다 나았고, 찰스 2세 치세가 시작될 무렵에 터진 전쟁에서는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해군을 합친 것에 적어도 맞먹었으며 어쩌면 그보다 나았다. 오늘날에는 그 나은 점이 더 커 보이기 어려울 터인데, 적어도 네덜란드 해군이 지금 네덜란드 상업에 대하여 그때와 같은 비율을 지닌다면 그렇다. 그러나 이 큰 해군력은 그 어느 전쟁에서도 항해법 덕일 수 없었다. 앞의 전쟁 때에는 그 법의 안이 겨우 짜였을 뿐이고, 뒤의 전쟁이 터지기 전에 법의 권위로 온전히 제정되기는 했으나 그 어느 몫도 이렇다 할 효과를 낼 시간이 없었으며, 식민지와 하는 배타 거래를 세운 그 몫은 더욱 그러했다. 식민지도 그 무역도 그때는 오늘날에 견주어 대수롭지 않았다. 자메이카섬은 몸에 해로운 벌판이어서 사람이 적게 살았고 경작은 더 적었다. 뉴욕과 뉴저지는 네덜란드 사람이 지니고 있었고 세인트크리스토퍼섬의 절반은 프랑스 사람이 지니고 있었다. 앤티가섬과 두 캐롤라이나와 펜실베이니아와 조지아와 노바스코샤는 아직 개척되지 않았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와 뉴잉글랜드는 개척되었고 아주 잘되어 가는 식민지였으나, 그때는 유럽에든 아메리카에든 그들이 그 뒤에 부와 인구와 개량에서 이룬 빠른 걸음을 미리 내다보거나 짐작이라도 한 사람이 어쩌면 한 명도 없었다. 요컨대 바베이도스섬만이 그때의 처지가 오늘날의 처지와 얼마쯤 닮은, 이렇다 할 만한 유일한 영국 식민지였다. 항해법 뒤로도 얼마 동안은 잉글랜드가 그 한 몫밖에 누리지 못한 식민지 무역은, 항해법이 제정된 뒤 몇 해가 지나도록 아주 엄하게 집행되지 않았으므로, 그때 잉글랜드의 큰 무역의 원인일 수도 없었고 그 무역이 떠받친 큰 해군력의 원인일 수도 없었다. 그때 그 큰 해군력을 떠받친 무역은 유럽과 하는 무역, 그리고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들과 하는 무역이었다. 그런데 영국이 오늘날 그 무역에서 누리는 몫은 그런 큰 해군력을 떠받칠 수 없다. 자라나는 식민지 무역이 모든 나라에 자유롭게 열려 있었다면, 그 가운데 영국에 떨어진 몫이 얼마든, 그리고 아주 적지 않은 몫이 아마 영국에 떨어졌을 터인데, 그것은 모두 영국이 그전에 지니고 있던 이 큰 무역에 보태진 것이었을 수밖에 없다. 독점의 결과로 식민지 무역이 늘어난 것은 영국이 그전에 지녔던 무역에 보태짐을 일으킨 것이라기보다 그 방향을 온통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둘째, 이 독점은 어쩔 수 없이 영국 무역의 모든 갈래에서 이윤율을 모든 나라가 영국 식민지와 자유롭게 거래하도록 허락되었을 때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높이 붙들어 두는 데에 이바지했다.
식민지 무역의 독점은 영국 자본 가운데 저절로 그 무역으로 갔을 것보다 더 큰 몫을 어쩔 수 없이 그 무역으로 끌어당겼듯이, 모든 외국 자본을 내쫓음으로써 그 무역에 쓰이는 자본의 온 양을 자유로운 무역이 있을 때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어쩔 수 없이 줄였다. 그러나 그 갈래의 무역에서 자본들의 경쟁을 줄임으로써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그 갈래의 이윤율을 올렸다. 또 다른 모든 갈래의 무역에서 영국 자본들의 경쟁을 줄임으로써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다른 갈래에서 영국 이윤의 율을 올렸다. 항해법이 자리 잡은 뒤 어느 특정한 때에 영국 상업 자본의 상태나 넓이가 어떠했든, 식민지 무역의 독점은 그 상태가 이어지는 동안 그 갈래에서든 영국 무역의 다른 모든 갈래에서든 영국 이윤의 예사로운 율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높이 올렸을 수밖에 없다. 항해법이 자리 잡은 뒤로 영국 이윤의 예사로운 율이 크게 떨어졌다면, 그리고 틀림없이 그렇게 떨어졌는데, 그 법이 세운 독점이 그것을 붙들어 두는 데에 이바지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더욱 낮게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든 예사로운 이윤율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높이 올리는 것은 무엇이든, 그 나라가 독점을 지니지 못한 모든 갈래의 무역에서 그 나라에 절대의 불리함과 상대의 불리함을 아울러 어쩔 수 없이 지운다.
그것은 그 나라에 절대의 불리함을 지운다. 그런 갈래의 무역에서는 그 나라 상인들이 제 나라로 들여오는 외국 물건도 외국으로 내보내는 제 나라 물건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더 값비싸게 팔지 않고서는 이 더 큰 이윤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 나라는 더 값비싸게 사고 더 값비싸게 팔 수밖에 없고, 더 적게 사고 더 적게 팔 수밖에 없으며,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더 적게 누리고 더 적게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 나라에 상대의 불리함을 지운다. 그런 갈래의 무역에서는 같은 절대의 불리함을 지지 않은 다른 나라들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그 나라 위로 더 높이 올려놓거나 그 나라 아래로 덜 내려놓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나라가 누리고 만들어 내는 것에 견주어 그들이 더 많이 누리고 더 많이 만들어 내게 해 준다. 그것은 그들이 나은 정도를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더 크게 만들거나 그들이 못한 정도를 더 작게 만든다. 그 나라 생산물의 값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높이 올림으로써 그것은 다른 나라 상인들이 외국 시장에서 그 나라보다 값을 깎아 팔게 해 주고, 그리하여 그 나라가 독점을 지니지 못한 거의 모든 갈래의 무역에서 그 나라를 밀어내게 해 준다.
우리 상인들은 우리 제조품이 외국 시장에서 남들에게 값이 깎여 팔리는 원인이라며 영국 노동의 높은 임금을 자주 하소연하지만, 자산의 높은 이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들은 남들이 지나친 이익을 얻는다고 하소연하면서 제 이익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국 자산의 높은 이윤은 많은 경우에 영국 노동의 높은 임금만큼, 그리고 더러는 어쩌면 그보다 더 크게 영국 제조품의 값을 올리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다.
영국의 자본이 그 나라가 독점을 지니지 못한 여러 갈래 무역의 큰 몫에서, 특히 유럽과 하는 무역과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들과 하는 무역에서 한편으로는 끌려 나오고 한편으로는 밀려 나왔다고 말해도 옳을 터인데, 그렇게 된 사정은 이러하다.
그것은 한편으로 식민지 무역에서 이윤이 나은 데에 끌려 그 갈래의 무역에서 끌려 나왔는데, 그 무역이 줄곧 늘어나고 한 해에 그것을 꾸려 가던 자본이 이듬해에 그것을 꾸려 가기에 줄곧 모자란 결과다.
그것은 한편으로 영국에 자리 잡은 높은 이윤율이 영국이 독점을 지니지 못한 여러 갈래의 무역에서 다른 나라들에게 주는 이점에 밀려 그 갈래에서 밀려 나왔다.
식민지 무역의 독점이 그 다른 갈래에서 저절로 그 갈래에 쓰였을 영국 자본의 한 몫을 끌어냈듯이, 그것은 식민지 무역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결코 그 갈래로 가지 않았을 많은 외국 자본을 그 갈래로 밀어 넣었다. 그 다른 갈래의 무역에서 그것은 영국 자본들의 경쟁을 줄였고 그리하여 영국 이윤의 율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높이 올렸다. 거꾸로 그것은 외국 자본들의 경쟁을 늘렸고 그리하여 외국 이윤의 율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낮게 떨어뜨렸다. 이 길로든 저 길로든 그것은 그 다른 모든 갈래의 무역에서 영국에 상대의 불리함을 지웠음이 뻔하다.
그러나 어쩌면 식민지 무역이 영국에 다른 어느 무역보다 이롭다고, 그리고 그 독점은 저절로 그 무역으로 갔을 것보다 더 큰 몫의 영국 자본을 그 무역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그 자본을 그것이 찾을 수 있었을 다른 어느 쓰임보다 나라에 더 이로운 쓰임으로 돌려놓았다고 말할지 모른다.
어느 자본이든 그것이 딸린 나라에 가장 이로운 쓰임은 그 나라에서 가장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떠받치고 그 나라 토지와 노동의 연간 생산물을 가장 많이 늘리는 쓰임이다. 그런데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 쓰인 자본이 떠받칠 수 있는 생산적 노동의 양은 2편에서 보인 대로 그 회수가 얼마나 잦은가에 꼭 비례한다. 이를테면 1천 파운드의 자본이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 쓰여 그 회수가 한 해에 한 번씩 꼬박꼬박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그 자본이 딸린 나라에서 1천 파운드가 한 해 동안 떠받칠 수 있는 만큼의 생산적 노동을 끊임없이 쓰이게 할 수 있다. 회수가 한 해에 두 번이나 세 번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2천 파운드나 3천 파운드가 그곳에서 한 해 동안 떠받칠 수 있는 만큼의 생산적 노동을 끊임없이 쓰이게 할 수 있다.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은 그런 까닭에 먼 나라와 하는 것보다 이웃한 나라와 하는 것이 대개 더 이롭다. 그리고 같은 까닭으로 소비를 위한 곧바른 외국 무역은 2편에서 마찬가지로 보인 대로 에두르는 외국 무역보다 대개 더 이롭다.
그러나 식민지 무역의 독점은 영국 자본의 쓰임에 작용한 한에서 모든 경우에 그 자본의 한 몫을 이웃한 나라와 하는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서 더 먼 나라와 하는 무역으로 밀어 넣었고, 많은 경우에 소비를 위한 곧바른 외국 무역에서 에두르는 무역으로 밀어 넣었다.
첫째, 식민지 무역의 독점은 모든 경우에 영국 자본의 한 몫을 이웃한 나라와 하는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서 더 먼 나라와 하는 무역으로 밀어 넣었다.
그것은 모든 경우에 그 자본의 한 몫을 유럽과 하는 무역과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들과 하는 무역에서 더 먼 아메리카와 서인도 지역과 하는 무역으로 밀어 넣었는데, 그곳에서 오는 회수는 거리가 더 먼 까닭으로만이 아니라 그 나라들의 남다른 사정 때문에도 어쩔 수 없이 덜 잦다. 이미 말한 대로 새 식민지는 언제나 자산이 모자란다. 그 자본은 제 땅을 개량하고 경작하는 데에 큰 이윤과 이익을 보며 쓸 수 있는 것보다 언제나 훨씬 적다. 그러므로 그들은 제가 지닌 것보다 더 많은 자본을 끊임없이 찾으며, 제 자본의 모자람을 메우려고 본국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꾸어 오려 애쓰고 따라서 본국에 언제나 빚을 지고 있다. 식민지가 이 빚을 지는 가장 흔한 길은 본국의 부유한 사람들에게 증서를 써 주고 꾸는 것이 아니라, 더러 그렇게 하기도 하지만, 유럽에서 물건을 대어 주는 제 거래처가 밀린 값을 얼마까지 봐주느냐에 맞추어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밀려 두는 것이다. 그들의 연간 회수는 흔히 그들이 진 빚의 3분의 1을 넘지 않고 더러는 그만한 비율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거래처가 그들에게 미리 대어 준 온 자본이 3년 안에 영국으로 돌아오는 일은 드물고 더러는 4년이나 5년 안에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를테면 1천 파운드의 영국 자본이 5년에 한 번만 영국으로 돌아온다면, 그것은 온통 한 해에 한 번씩 돌아올 때 떠받칠 수 있는 영국 산업의 5분의 1밖에 끊임없이 쓰이게 할 수 없고, 1천 파운드가 한 해 동안 떠받칠 수 있는 양의 산업 대신 200파운드가 한 해 동안 떠받칠 수 있는 양만을 끊임없이 쓰이게 할 수 있다. 개척지 농장주는 틀림없이 유럽에서 오는 물건에 치르는 높은 값으로, 먼 날짜로 끊어 주는 어음의 이자로, 그리고 가까운 날짜로 끊어 준 어음을 다시 끊을 때의 구전으로 거래처가 이 늦어짐에서 입을 수 있는 모든 손실을 메워 주고 아마 넘치게 메워 준다. 그러나 그는 제 거래처의 손실을 메워 주더라도 영국의 손실은 메워 줄 수 없다. 회수가 아주 먼 무역에서 상인의 이윤은 회수가 아주 잦고 가까운 무역에서만큼 크거나 그보다 클 수 있으나, 그가 사는 나라의 이익, 곧 그곳에서 끊임없이 떠받쳐지는 생산적 노동의 양과 토지와 노동의 연간 생산물은 언제나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아메리카와 하는 무역의 회수가, 그리고 서인도와 하는 무역의 회수는 더욱, 유럽의 어느 곳과 하는 무역이나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들과 하는 무역의 회수보다 대개 더 멀 뿐 아니라 더 고르지 않고 더 미덥지 않기도 하다는 것은 그 여러 갈래 무역을 겪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선뜻 인정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둘째, 식민지 무역의 독점은 많은 경우에 영국 자본의 한 몫을 소비를 위한 곧바른 외국 무역에서 에두르는 무역으로 밀어 넣었다.
영국 말고 다른 어느 시장으로도 보낼 수 없는 열거 상품 가운데에는 그 양이 영국의 소비를 훨씬 넘어서고 따라서 그 한 몫을 다른 나라로 내보내야 하는 것이 여럿 있다. 그런데 이것은 영국 자본의 한 몫을 소비를 위한 에두르는 외국 무역으로 밀어 넣지 않고서는 될 수 없다. 이를테면 메릴랜드와 버지니아는 해마다 영국으로 9만 6천 호그셰드가 넘는 담배를 보내는데 영국의 소비는 1만 4천 호그셰드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9 그러므로 8만 2천 호그셰드가 넘는 담배를 다른 나라로, 곧 프랑스와 네덜란드와 발트해와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들로 내보내야 한다. 그런데 그 8만 2천 호그셰드를 영국으로 가져오고 그곳에서 그 다른 나라들로 다시 내보내며 그 다른 나라들에서 영국으로 물건이든 돈이든 되받아 오는 영국 자본의 그 몫은 소비를 위한 에두르는 외국 무역에 쓰이는 것이며, 이 큰 나머지를 처분하려고 어쩔 수 없이 그 쓰임으로 밀려 들어간 것이다. 이 자본 전부가 몇 해 만에 영국으로 돌아올 법한지 셈하려면 아메리카에서 오는 회수의 멂에 그 다른 나라들에서 오는 회수의 멂을 더해야 한다. 우리가 아메리카와 하는 소비를 위한 곧바른 외국 무역에서 쓰인 온 자본이 흔히 3년이나 4년 안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 에두르는 무역에 쓰인 온 자본은 4년이나 5년 안에 돌아오지 않을 법하다. 앞의 것이 한 해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자본으로 떠받칠 수 있는 국내 산업의 3분의 1이나 4분의 1밖에 끊임없이 쓰이게 할 수 없다면, 뒤의 것은 그 산업의 4분의 1이나 5분의 1밖에 끊임없이 쓰이게 할 수 없다. 몇몇 바깥 항구에서는 담배를 내보내는 외국 거래처에 으레 외상을 준다. 참으로 런던 항구에서는 담배가 으레 맞돈으로 팔리니 그 규칙은 달아 주고 값 치르기다. 그러므로 런던 항구에서는 에두르는 무역 전체의 마지막 회수가 아메리카에서 오는 회수보다 물건이 창고에 팔리지 않고 놓여 있을 그 시간만큼만 더 멀지만, 그래도 더러는 꽤 오래 놓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식민지가 제 담배를 파는 데에 영국 시장에 갇혀 있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에게 오는 담배는 국내 소비에 필요한 것보다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이 다른 나라로 내보내는 담배의 큰 나머지로 지금 제가 소비할 물건을 사들이는데, 이런 경우라면 아마 제 산업이 곧바로 낸 생산물로, 또는 제 제조품의 한 몫으로 그것을 사들였을 것이다. 그 생산물과 그 제조품은 지금처럼 거의 온통 하나의 큰 시장에 맞추어지는 대신 아마 수많은 더 작은 시장에 맞추어졌으리라. 소비를 위한 하나의 큰 에두르는 외국 무역 대신 영국은 아마 같은 종류의 수많은 작은 곧바른 외국 무역을 꾸려 갔을 것이다. 회수가 잦은 덕에, 지금 이 큰 에두르는 무역을 꾸려 가는 자본의 한 몫, 그것도 아마 작은 몫, 어쩌면 3분의 1이나 4분의 1을 넘지 않는 몫으로도 그 모든 작은 곧바른 무역을 꾸려 가기에 넉넉했을 터이고, 같은 양의 영국 산업을 끊임없이 쓰이게 했을 터이며, 영국 토지와 노동의 연간 생산물을 똑같이 떠받쳤을 것이다. 이 무역의 모든 목적이 이렇게 훨씬 적은 자본으로 이루어졌다면 다른 목적에 쓸 큰 여유 자본이 있었을 터이니, 영국의 토지를 개량하고 제조업을 늘리고 상업을 넓히는 데에, 적어도 그 여러 길에 쓰이는 다른 영국 자본들과 경쟁에 들어가 그 모든 길에서 이윤율을 낮추고 그리하여 그 모든 길에서 영국에 지금 누리는 것보다 더욱 큰, 다른 나라보다 나은 자리를 주는 데에 쓸 자본이 있었을 것이다.
식민지 무역의 독점은 또한 영국 자본의 한 몫을 소비를 위한 온갖 외국 무역에서 중계 무역으로 밀어 넣었고, 따라서 영국의 산업을 얼마쯤이라도 떠받치는 데에서 한편으로 식민지의 산업을, 한편으로 다른 몇몇 나라의 산업을 떠받치는 데에만 온통 쓰이도록 밀어 넣었다.
이를테면 영국에서 해마다 다시 내보내는 8만 2천 호그셰드라는 큰 나머지 담배로 해마다 사들이는 물건이 모두 영국에서 소비되는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 얼마, 이를테면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오는 리넨은 식민지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소비된다. 그런데 이 리넨을 나중에 사들이는 데에 쓸 담배를 사들이는 영국 자본의 그 몫은 영국의 산업을 떠받치는 데에서 어쩔 수 없이 빠져나와, 한편으로 식민지의 산업을, 한편으로 제 산업이 낸 생산물로 이 담배 값을 치르는 그 몇몇 나라의 산업을 떠받치는 데에만 온통 쓰인다.
게다가 식민지 무역의 독점은 저절로 그 무역으로 갔을 것보다 훨씬 큰 몫의 영국 자본을 그리로 밀어 넣음으로써, 저절로 그러했다면 영국 산업의 여러 갈래 사이에 자리 잡았을 그 자연스러운 균형을 온통 깨뜨려 놓은 듯하다. 영국의 산업은 수많은 작은 시장에 맞추어지는 대신 주로 하나의 큰 시장에 맞추어져 왔다. 그 상업은 수많은 작은 물길로 흐르는 대신 주로 하나의 큰 물길로 흐르도록 길들여졌다. 그러나 그리하여 그 산업과 상업의 온 체계는 덜 안전해졌고 나라라는 몸의 온 상태는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덜 튼튼해졌다. 오늘날의 처지에서 영국은 요긴한 부위 가운데 얼마가 지나치게 자라 버린, 그런 까닭에 모든 부위가 더 알맞게 어우러진 몸에는 좀처럼 닥치지 않는 많은 위험한 탈에 걸리기 쉬운 성치 못한 몸뚱이를 닮았다. 제 자연스러운 크기를 넘어 억지로 부풀려졌고 그 나라 산업과 상업의 자연스럽지 못한 몫이 그리로 돌도록 떠밀린 그 큰 핏줄이 조금이라도 막히면, 나라라는 몸 전체에 가장 위험한 탈을 불러오기 아주 쉽다. 그런 까닭에 식민지와 사이가 갈라지리라는 예상은 영국 사람들에게 스페인 무적함대나 프랑스의 침입에 대하여 느낀 적이 있는 것보다 더 큰 두려움을 안겼다. 인지세법을 거두어들인 일을 적어도 상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조치로 만든 것은, 근거가 있든 없든 바로 이 두려움이었다.10 식민지 시장에서 온통 쫓겨나는 것이 몇 해 동안만 이어진다 하더라도, 우리 상인의 큰 몫은 제 거래가 아주 멈추어 버리는 것을, 우리 제조업 고용주의 큰 몫은 제 사업이 온통 망하는 것을, 우리 일꾼의 큰 몫은 제 일자리가 끝나는 것을 눈앞에 본다고 여기곤 했다. 대륙의 이웃 가운데 누구와 사이가 갈라지는 것도 이 여러 부류 사람들 가운데 얼마의 일자리에 얼마쯤 멈춤이나 끊김을 일으키기 쉽기는 하나, 그런 두루 퍼진 마음의 흔들림 없이 내다보인다. 더 작은 핏줄 가운데 얼마에서 돌던 피가 멈추면 그 피는 더 큰 핏줄로 쉽게 쏟아져 들어가 아무 위험한 탈도 일으키지 않지만, 더 큰 핏줄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 멈추면 경련이나 졸중이나 죽음이 곧바로 피할 수 없이 따라온다. 장려금으로든 국내 시장과 식민지 시장의 독점으로든 억지로 자연스럽지 못한 높이까지 키워진 그 지나치게 자란 제조업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제 일에 조금만 멈춤이나 끊김을 만나면, 그것은 흔히 정부를 놀라게 하고 입법부의 의논까지 성가시게 할 만한 소요와 무질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우리 주요 제조업자 가운데 그토록 큰 몫의 일자리가 갑자기 온통 멈추면 어떤 무질서와 어지러움이 반드시 일어날 것인가 하고들 생각했던 것이다.
영국에 식민지와 하는 배타 거래를 주는 법을 얼마쯤 알맞게 차츰 늦추어 마침내 크게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앞으로 어느 때에나 영국을 이 위험에서 건져 낼 수 있는, 그리고 이 지나치게 자란 쓰임에서 제 자본의 한 몫을 빼내어 이윤은 덜 남더라도 다른 쓰임으로 돌리도록 영국이 할 수 있게, 아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그리고 제 산업의 한 갈래를 차츰 줄이고 나머지 모두를 차츰 늘림으로써 그 여러 갈래를 온전한 자유가 반드시 세우고 온전한 자유만이 지킬 수 있는 그 자연스럽고 튼튼하고 알맞은 어우러짐으로 차츰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오직 하나의 방편인 듯하다. 식민지 무역을 한꺼번에 모든 나라에 열어 주는 것은 지금 그 무역에 제 산업이나 자본을 걸고 있는 이들의 큰 몫에 얼마쯤 지나가는 불편만이 아니라 크고 오래가는 손실까지 일으킬 수 있다. 영국의 소비를 넘어서는 8만 2천 호그셰드의 담배를 실어 오는 배들만 해도 그 일자리가 갑자기 사라지면 아주 뼈저리게 느껴질 수 있다. 중상주의 체계의 모든 규정이 낳는 불행한 효과란 이러하다. 그것은 나라라는 몸의 상태에 아주 위험한 탈을 들여놓을 뿐 아니라, 적어도 한동안은 더욱 큰 탈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고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탈을 들여놓는다. 그러므로 식민지 무역을 어떤 차례로 차츰 열어야 하는지, 어떤 제약을 먼저 걷어 내고 어떤 제약을 나중에 걷어 내야 하는지, 또는 온전한 자유와 정의라는 자연스러운 체계를 어떻게 차츰 되돌려 놓아야 하는지는 앞날의 정치가와 입법자의 슬기에 맡겨 정하게 할 수밖에 없다.
미리 내다보지도 생각지도 못한 다섯 가지 사건이 아주 다행스럽게 함께 일어나, 1774년 12월 1일부터 한 해가 넘도록 이어져 온 식민지 무역의 아주 중요한 한 갈래, 곧 북아메리카의 연합한 열두 지방과 하는 무역에서 온통 쫓겨난 일을 영국이 두루 예상된 만큼 뼈저리게 느끼지 않도록 막아 주었다.11 첫째, 그 식민지들은 물건을 들여오지 않기로 한 약정에 대비하면서 제 시장에 맞는 온갖 상품을 영국에서 남김없이 쓸어 갔다. 둘째, 스페인 선단의 예사롭지 않은 수요가 올해에 독일과 북쪽 지방에서 많은 상품, 특히 영국 시장에서까지 영국 제조품과 경쟁하곤 하던 리넨을 쓸어 갔다.12 셋째, 러시아와 튀르크 사이의 평화는 튀르크 시장에서 예사롭지 않은 수요를 일으켰는데, 그 시장은 그 나라가 곤경에 있는 동안, 그리고 러시아 함대가 에게해 섬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동안 아주 빈약하게 공급되어 왔다. 넷째, 영국 제조품에 대한 북유럽의 수요가 얼마 전부터 해마다 늘어 왔다. 다섯째, 얼마 전 폴란드가 나뉘고 그 결과로 그곳이 평정된 일은 그 큰 나라의 시장을 열어 올해에 북쪽의 늘어나는 수요에 예사롭지 않은 수요를 더해 주었다.13 이 사건들은 넷째 것을 빼면 모두 그 성질이 한때의 것이고 우연한 것이다. 그리고 식민지 무역의 그토록 중요한 한 갈래에서 쫓겨난 일이 불행히도 훨씬 더 오래 이어진다면 그것은 아직도 얼마쯤 괴로움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 괴로움은 차츰 닥쳐올 것이므로 한꺼번에 닥쳤을 때보다 훨씬 덜 모질게 느껴질 것이며, 그동안 이 나라의 산업과 자본은 새 쓰임과 새 방향을 찾아 이 괴로움이 이렇다 할 높이까지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식민지 무역의 독점은 저절로 그 무역으로 갔을 것보다 더 큰 몫의 영국 자본을 그 무역으로 돌려놓은 한에서, 모든 경우에 그것을 이웃한 나라와 하는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서 더 먼 나라와 하는 무역으로, 많은 경우에 소비를 위한 곧바른 외국 무역에서 에두르는 무역으로, 더러는 소비를 위한 온갖 외국 무역에서 중계 무역으로 돌려놓았다. 그러므로 모든 경우에 그것은 그 자본을 더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떠받쳤을 방향에서 훨씬 적은 양밖에 떠받칠 수 없는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게다가 영국 산업과 상업의 그토록 큰 몫을 오직 한 시장에만 맞춤으로써, 그 생산물이 더 여러 가지 시장에 맞추어졌을 때보다 그 산업과 상업의 온 상태를 더 위태롭고 덜 안전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식민지 무역의 효과와 그 무역을 독점하는 것의 효과를 조심스럽게 갈라 보아야 한다. 앞의 것은 언제나 반드시 이롭고 뒤의 것은 언제나 반드시 해롭다. 그러나 앞의 것이 어찌나 이로운지, 식민지 무역은 독점 아래 놓여 있고 그 독점의 해로운 효과가 있는데도 온통 따져 보면 여전히 이로우며 크게 이로우니, 다만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훨씬 덜 이로울 뿐이다.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식민지 무역의 효과는 영국 산업이 낸 생산물 가운데 더 가까운 유럽 시장과 지중해를 둘러싼 나라들의 시장이 찾는 것을 넘어서는 몫에 크고도 먼 시장을 열어 주는 것이다.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식민지 무역은 그 시장들에 이제까지 보내지던 생산물의 어느 몫도 빼내지 않으면서, 그 남는 생산물과 바뀔 새로운 맞짝을 끊임없이 내놓음으로써 영국이 그 남는 생산물을 끊임없이 늘리도록 북돋운다.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식민지 무역은 영국에서 생산적 노동의 양을 늘리는 쪽으로 기울되, 그전에 그곳에 쓰이던 노동의 방향은 어느 모로도 바꾸지 않는다. 식민지 무역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상태에서는 다른 모든 나라의 경쟁이 새 시장에서든 새 쓰임에서든 이윤율이 여느 수준 위로 오르는 것을 막을 것이다. 새 시장은 옛 시장에서 아무것도 빼내지 않으면서 말하자면 제 공급을 위한 새 생산물을 만들어 낼 터이고, 그 새 생산물이 새 쓰임을 꾸려 갈 새 자본을 이룰 터이니 그 자본 또한 마찬가지로 옛 쓰임에서 아무것도 빼내지 않을 것이다.
거꾸로 식민지 무역의 독점은 다른 나라들의 경쟁을 막아 내고 그리하여 새 시장에서든 새 쓰임에서든 이윤율을 올림으로써, 옛 시장에서 생산물을 빼내고 옛 쓰임에서 자본을 빼낸다. 식민지 무역에서 우리 몫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크게 하는 것이 독점이 내세우는 목적이다. 그 무역에서 우리 몫이 독점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면 독점을 세울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든 그 회수가 다른 대부분의 거래보다 더디고 더 먼 갈래의 무역으로 저절로 그 갈래에 갔을 것보다 더 큰 몫의 자본을 밀어 넣는 것은 무엇이든, 그곳에서 해마다 떠받쳐지는 생산적 노동의 온 양과 그 나라 토지와 노동의 온 연간 생산물을 어쩔 수 없이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적게 만든다. 그것은 그 나라 주민들의 수입을 저절로 올랐을 자리 밑으로 눌러 두고 그리하여 그들이 쌓아 올릴 힘을 줄인다. 그것은 어느 때에나 그들의 자본이 저절로 떠받쳤을 만큼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떠받치지 못하게 막을 뿐 아니라, 그 자본이 저절로 늘었을 만큼 빨리 늘지 못하게, 따라서 더욱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떠받치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나 식민지 무역의 자연스럽고 좋은 효과는 영국에 독점의 나쁜 효과를 메우고도 남으므로, 독점까지 온통 아울러 보더라도 그 무역은 지금 꾸려 가는 모습대로도 이로울 뿐 아니라 크게 이롭다. 식민지 무역이 열어 주는 새 시장과 새 쓰임은 독점 때문에 잃는 옛 시장의 몫과 옛 쓰임의 몫보다 훨씬 넓다. 말하자면 식민지 무역이 만들어 낸 새 생산물과 새 자본은, 회수가 더 잦은 다른 거래에서 자본이 옮아간 탓에 일자리를 잃었을 노동보다 더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영국에서 떠받친다. 그러나 식민지 무역이 지금 꾸려 가는 모습대로도 영국에 이롭다면, 그것은 독점 덕분이 아니라 독점이 있는데도 그러한 것이다.
식민지 무역이 새 시장을 열어 주는 것은 유럽의 원생산물보다는 제조품 쪽이다. 농업은 모든 새 식민지의 마땅한 일이며 땅이 헐한 덕에 다른 어느 일보다 이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땅의 원생산물이 넘쳐나고, 그것을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기는커녕 대개 내보낼 큰 나머지를 지닌다. 새 식민지에서 농업은 다른 모든 일에서 일손을 끌어내거나 일손이 다른 어느 일로도 가지 못하게 붙들어 둔다. 없어서는 안 될 제조업에 돌릴 일손은 적고 꾸미는 제조업에 돌릴 일손은 없다. 그 두 종류의 제조품 가운데 큰 몫은 스스로 만드는 것보다 다른 나라에서 사들이는 것이 더 헐하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식민지 무역이 그 농업을 에둘러 북돋우는 것은 주로 유럽의 제조업을 북돋움으로써다. 그 무역이 일자리를 주는 유럽의 제조업자들이 땅의 생산물에 새 시장, 그것도 모든 시장 가운데 가장 이로운 시장을 이룬다. 유럽의 곡물과 소, 빵과 푸줏간 고기의 국내 시장은 이렇게 아메리카와 하는 무역 덕에 크게 넓어진다.
그러나 사람이 많고 잘되어 가는 식민지와 하는 무역의 독점만으로는 어느 나라에서나 제조업을 세우기는커녕 지켜 가기에도 넉넉하지 않다는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본보기가 넉넉히 보여 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렇다 할 식민지를 지니기 전에 제조업 나라였다. 세상에서 가장 넉넉하고 가장 기름진 식민지를 지닌 뒤로 두 나라는 다 제조업 나라이기를 그쳤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독점의 나쁜 효과가 다른 원인들로 더 심해져 어쩌면 식민지 무역의 자연스럽고 좋은 효과를 거의 덮어 버렸다. 그 원인은 다른 여러 종류의 독점, 금과 은의 가치가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보다 낮게 깎여 있는 것, 수출에 매긴 옳지 못한 세금으로 외국 시장에서 쫓겨나는 것, 그리고 나라 안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물건을 옮기는 데에 매긴 더욱 옳지 못한 세금으로 국내 시장이 좁아지는 것인 듯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르지 못하고 치우친 재판의 시행이니, 그것은 넉넉하고 힘 있는 빚진 이를 해를 입은 빚쟁이의 추궁에서 지켜 주는 일이 잦고, 그리하여 그 나라의 부지런한 사람들이 외상으로 팔기를 감히 마다하지 못하면서도 값을 돌려받을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거만하고 지체 높은 이들이 소비할 물건을 마련하기를 두려워하게 만든다.
거꾸로 잉글랜드에서는 식민지 무역의 자연스럽고 좋은 효과가 다른 원인들의 도움을 받아 독점의 나쁜 효과를 크게 이겨 냈다. 그 원인은 얼마쯤 제약이 있기는 하나 적어도 다른 어느 나라에 맞먹고 어쩌면 그보다 나은 무역의 두루 미치는 자유, 국내 산업이 낸 생산물인 거의 온갖 종류의 물건을 관세 없이 거의 어느 외국으로나 내보낼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으로 그것을 우리 나라 안 한 곳에서 다른 어느 곳으로나 어느 관청에도 아무 신고를 할 필요 없이, 어떤 종류의 추궁이나 조사도 받지 않고 옮길 수 있는 끝없는 자유인 듯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르고 치우치지 않은 재판의 시행이니, 그것은 가장 보잘것없는 영국 신민의 권리를 가장 지체 높은 이에게도 존중받게 만들고, 사람마다 제 근면의 열매를 지켜 줌으로써 온갖 종류의 산업에 가장 크고 가장 효험 있는 북돋움을 준다.
그러나 영국의 제조업이 식민지 무역으로 나아갔다면, 그리고 틀림없이 그렇게 나아갔는데, 그것은 그 무역의 독점 덕분이 아니라 독점이 있는데도 그러한 것이다. 독점의 효과는 영국 제조품의 한 몫의 양을 늘린 것이 아니라 그 질과 꼴을 바꾼 것이었고, 저절로 그러했다면 회수가 잦고 가까운 시장에 맞추어졌을 것을 회수가 더디고 먼 시장에 맞춘 것이었다. 따라서 그 효과는 영국 자본의 한 몫을 더 많은 양의 제조업 산업을 떠받쳤을 쓰임에서 훨씬 적은 양밖에 떠받치지 못하는 쓰임으로 돌려놓은 것이었고, 그리하여 영국에서 떠받쳐지는 제조업 산업의 온 양을 늘리기는커녕 줄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식민지 무역의 독점은 중상주의 체계의 다른 모든 치사하고 앙심 어린 방편과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나라의 산업을, 그리고 무엇보다 식민지의 산업을 눌러 놓으면서, 그것이 세워진 나라의 산업을 조금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줄인다.
독점은 그 나라의 자본이 어느 특정한 때에 얼마나 넓든, 그 자본이 저절로 떠받쳤을 만큼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떠받치지 못하게 막고 부지런한 주민들에게 저절로 주었을 만큼 큰 수입을 주지 못하게 막는다. 그런데 자본은 수입에서 아낀 것으로만 늘어날 수 있으므로, 독점은 그 자본이 저절로 주었을 만큼 큰 수입을 주지 못하게 막음으로써 어쩔 수 없이 그것이 저절로 늘었을 만큼 빨리 늘지 못하게 막고, 따라서 더욱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떠받치지 못하게, 그 나라의 부지런한 주민들에게 더욱 큰 수입을 주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므로 수입의 큰 본디 샘 하나인 노동의 임금을 독점은 어느 때에나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덜 넉넉하게 만들었을 수밖에 없다.
상업 이윤의 율을 올림으로써 독점은 토지의 개량을 막는다. 개량의 이윤은 그 땅이 실제로 내는 것과 얼마쯤의 자본을 들여 내게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차이에 달려 있다. 이 차이가 어느 상업의 쓰임에서 같은 자본으로 뽑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이윤을 준다면 토지의 개량이 모든 상업의 쓰임에서 자본을 끌어낼 것이다. 그 이윤이 더 적다면 상업의 쓰임이 토지의 개량에서 자본을 끌어낼 것이다. 그러므로 상업 이윤의 율을 올리는 것은 무엇이든 개량의 이윤이 나은 정도를 줄이거나 못한 정도를 키우며, 앞의 경우에는 자본이 개량으로 가지 못하게 막고 뒤의 경우에는 개량에서 자본을 끌어낸다. 그런데 개량을 막음으로써 독점은 수입의 또 하나의 큰 본디 샘인 토지의 지대가 저절로 늘어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더디게 만든다. 또한 이윤율을 올림으로써 독점은 어쩔 수 없이 시장 이자율을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높이 붙들어 둔다. 그런데 땅값은 그 땅이 내는 지대에 견주어, 곧 그 땅을 사려고 으레 치르는 지대의 몇 해치로 셈하면, 이자율이 오르는 대로 어쩔 수 없이 떨어지고 이자율이 떨어지는 대로 오른다. 그러므로 독점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길로 지주의 이익을 해치니, 첫째로 그 지대가 저절로 늘어나는 것을 더디게 하고, 둘째로 그 땅이 내는 지대에 견주어 그가 땅을 팔 때 받을 값이 저절로 늘어나는 것을 더디게 한다.
참으로 독점은 상업 이윤의 율을 올리고 그리하여 우리 상인의 이익을 얼마쯤 키운다. 그러나 그것이 자본의 자연스러운 늘어남을 가로막으므로, 그 나라 주민들이 자산의 이윤에서 얻는 수입의 온 액수를 늘리기보다 오히려 줄이는 쪽으로 기우니, 큰 자본에서 나오는 작은 이윤이 작은 자본에서 나오는 큰 이윤보다 대개 더 큰 수입을 주기 때문이다. 독점은 이윤의 율을 올리지만 이윤의 총액이 저절로 오를 만큼 높이 오르지 못하게 막는다.
수입의 온갖 본디 샘, 곧 노동의 임금과 토지의 지대와 자산의 이윤을 모두 독점은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훨씬 덜 넉넉하게 만든다. 한 나라에서 한 작은 부류 사람들의 작은 이익을 북돋우려고 그것은 그 나라의 다른 모든 부류 사람들의 이익과 다른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의 이익을 해친다.
독점이 어느 한 부류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으로 드러났거나 드러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예사로운 이윤율을 올림으로써다. 그러나 더 높은 이윤율에서 반드시 따라 나온다고 이미 말한 나라 전체에 대한 온갖 나쁜 효과 말고도, 어쩌면 그것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치명적이면서 겪어 온 바로 미루어 보면 그것과 떼어 놓을 수 없이 이어진 나쁜 효과가 하나 더 있다. 높은 이윤율은 어디서나 다른 사정에서라면 상인의 성격에 저절로 붙어 있는 그 절약을 무너뜨리는 듯하다. 이윤이 높을 때에는 그 차분한 덕이 쓸데없어 보이고 값비싼 사치가 그 넉넉한 처지에 더 어울려 보인다. 그러나 큰 상업 자본의 임자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그 온 산업을 이끌고 부리는 이들일 수밖에 없고, 그 본보기는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 전체의 몸가짐에 다른 어느 부류 사람들의 본보기보다 훨씬 큰 힘을 미친다. 고용주가 꼼꼼하고 아끼면 일꾼도 그러기 쉽다. 그러나 주인이 헤프고 어지러우면 주인이 정해 주는 본에 맞추어 제 일을 다듬는 하인은 주인이 보여 주는 본보기에 맞추어 제 삶 또한 다듬을 것이다. 이리하여 본디 가장 쌓아 올리기 쉬운 이들의 손에서 쌓임이 막히고, 생산적 노동을 떠받치도록 정해진 밑천은 본디 그것을 가장 많이 키워야 할 이들의 수입에서 아무 보탬도 받지 못한다. 그 나라의 자본은 늘어나기는커녕 차츰 줄어들고, 그곳에서 떠받쳐지는 생산적 노동의 양은 나날이 더 적어진다. 카디스와 리스본 상인들의 터무니없는 이윤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자본을 키웠는가? 그것이 그 두 거지꼴 나라의 가난을 덜어 주었는가, 그 산업을 북돋웠는가? 그 두 상업 도시에서 상인들이 돈을 쓰는 품이 어찌나 대단한지, 그 터무니없는 이윤은 그 나라의 두루 미치는 자본을 키우기는커녕 그 이윤이 나온 바로 그 자본을 지켜 내기에도 거의 넉넉하지 않았던 듯하다. 말하자면 외국 자본이 나날이 더욱더 카디스와 리스본의 거래로 밀고 들어온다. 제 자본이 나날이 더욱더 꾸려 가기에 모자라게 되는 그 거래에서 그 외국 자본을 몰아내려고 스페인 사람과 포르투갈 사람은 나날이 제 터무니없는 독점의 쓰라린 끈을 더욱더 조이려 애쓴다. 카디스와 리스본 상인들의 몸가짐을 암스테르담 상인들의 몸가짐과 견주어 보라. 그러면 자산의 이윤이 높으냐 낮으냐에 따라 상인의 처신과 성격이 얼마나 다르게 물드는지 느낄 것이다. 참으로 런던의 상인들은 아직 두루 카디스와 리스본 상인들처럼 으리으리한 나리가 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암스테르담 상인들처럼 두루 꼼꼼하고 아끼는 시민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많은 이가 앞의 사람들 대부분보다 꽤 넉넉하고 뒤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만큼은 넉넉하지 않다고들 여긴다. 다만 그들의 이윤율은 앞의 사람들의 것보다 대개 훨씬 낮고 뒤의 사람들의 것보다 꽤 높다. 쉽게 들어온 것은 쉽게 나간다고 속담은 말한다. 그리고 돈을 쓰는 예사로운 품은 어디서나 실제로 쓸 수 있는 힘보다 쓸 돈을 얻기가 쉬우리라는 짐작에 따라 정해지는 듯하다.
독점이 한 부류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는 그 하나의 이점이 여러 다른 길로 나라 전체의 이익을 해치는 것은 이러하다.
오로지 손님이 될 백성을 길러 낼 셈으로 큰 제국을 세우는 것은 언뜻 보면 가게 주인들의 나라에나 어울리는 기획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가게 주인들의 나라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고, 정부가 가게 주인들에게 휘둘리는 나라에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기획이다. 그런 정치가들, 오직 그런 정치가들만이 그런 제국을 세우고 지키는 데에 제 동포 시민의 피와 재물을 쓰는 것에서 무슨 이익을 보리라고 헛되이 그려 볼 수 있다. 가게 주인에게, 나에게 좋은 땅을 하나 사서 주면 다른 가게에서 살 수 있는 것보다 얼마쯤 더 치르더라도 내 옷은 언제나 당신 가게에서 사겠소 하고 말해 보라. 그러면 그가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가 당신에게 그런 땅을 사서 준다면, 그 가게 주인은 그 은인이 당신의 옷을 모두 제 가게에서 사라고 당신에게 이르기만 한다면 그에게 크게 고마워할 것이다. 잉글랜드는 본국에서 마음 편치 못하던 제 신민 얼마를 위하여 먼 나라에 큰 땅을 사서 주었다. 참으로 그 값은 아주 적었으니, 오늘날 땅값이 으레 지대의 30년치인 데에 견주어 그것은 처음 발견을 이루고 해안을 살피고 그 나라를 지닌 척 꾸민 여러 차례 채비에 든 비용에 조금 더 보탠 것에 지나지 않았다.14 그 땅은 좋고 아주 넓었으며, 경작하는 이들은 일굴 좋은 땅을 넉넉히 지녔고 한동안은 제 생산물을 마음에 드는 곳에 팔 자유를 누렸으므로, 30년이나 40년 남짓 동안에, 곧 1620년과 1660년 사이에 어찌나 수가 늘고 잘되어 갔던지 잉글랜드의 가게 주인과 다른 거래인들이 그 단골을 독차지하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처음 땅을 산 돈도 그 뒤 개량에 든 비용도 제가 한 푼이라도 치렀다고 내세우지 않은 채, 앞으로는 아메리카의 경작자들이 제 가게에 갇히도록 의회에 청원했다. 첫째로 유럽에서 얻고자 하는 물건을 모두 사는 데에서, 둘째로 제 생산물 가운데 그 거래인들이 사기에 알맞다고 여기는 몫을 모두 파는 데에서 그러했다. 그들은 그 생산물의 모든 몫을 사는 것이 알맞다고 여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얼마가 잉글랜드로 들어오면 그들 자신이 본국에서 꾸려 가는 거래 가운데 얼마와 부딪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몇몇 몫은 식민지 사람들이 팔 수 있는 곳에 팔기를 그들도 바랐으니, 멀면 멀수록 좋았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그 시장을 피니스테레곶 남쪽 나라들로 가두자고 내놓았다. 저 이름난 항해법의 한 조항이 이 참으로 가게 주인다운 제안을 법으로 세웠다.
이 독점을 지키는 것이 이제까지 영국이 제 식민지 위에 부리는 지배의 주된, 아니 더 제대로 말하면 어쩌면 오직 하나의 목적이었다. 민간 통치를 떠받치는 데에든 본국을 지키는 데에든 이제까지 세입도 군사력도 대어 준 적이 없는 그 지방들의 큰 이익이 배타 거래에 들어 있다고들 여긴다. 독점은 그들이 매여 있음을 보여 주는 주된 표이며, 이제까지 그 매임에서 거두어들인 오직 하나의 열매다. 영국이 이제까지 이 매임을 지키는 데에 들인 비용이 무엇이든 그것은 참으로 이 독점을 떠받치려고 들인 것이다. 지금의 소동이 시작되기 전에 식민지의 예사로운 평시 주둔에 든 비용은 스무 개 보병 연대의 급료와, 그들에게 대어 주어야 했던 대포와 군수품과 별도 식료품의 비용과, 다른 나라의 밀수선으로부터 북아메리카의 드넓은 해안과 우리 서인도 섬들의 해안을 지키려고 늘 유지하던 아주 적지 않은 해군력의 비용을 합한 것이었다. 이 평시 주둔의 온 비용은 영국 세입에 지운 짐이었고, 동시에 식민지의 지배가 본국에 치르게 한 것 가운데 가장 작은 몫이었다. 그 전부의 액수를 알려면 우리는 이 평시 주둔의 연간 비용에, 영국이 제 식민지를 제 지배 아래 있는 지방으로 여긴 결과로 여러 차례 그들을 지키는 데에 들인 돈의 이자를 더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거기에 지난 전쟁의 온 비용과 그 앞선 전쟁 비용의 큰 몫을 더해야 한다. 지난 전쟁은 온통 식민지를 두고 벌인 다툼이었고, 그 온 비용은 그것이 독일에서 쓰였든 동인도에서 쓰였든 세상 어느 곳에서 쓰였든 마땅히 식민지의 셈으로 적어야 한다. 그 액수는 새로 진 빚뿐 아니라 파운드마다 2실링씩 더 매긴 토지세와 해마다 감채 기금에서 꾸어 낸 돈까지 넣으면 9천만 파운드 스털링이 넘었다. 1739년에 시작된 스페인 전쟁도 주로 식민지를 두고 벌인 다툼이었다. 그 주된 목적은 스페인령 아메리카 본토와 밀무역을 하던 식민지 배들을 뒤지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15 이 온 비용은 실상 독점을 떠받치려고 준 장려금이다. 그것이 내세운 목적은 영국의 제조업을 북돋우고 상업을 늘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실제 효과는 상업 이윤의 율을 올리는 것, 그리고 우리 상인들이 그 회수가 다른 대부분의 거래보다 더디고 먼 한 갈래의 무역으로 저절로 그러했을 것보다 더 큰 몫의 제 자본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장려금이 이 두 가지 일을 막을 수 있었다면 어쩌면 그런 장려금을 줄 만도 했을 것이다.
주
1. 옮긴이 — 르트르 드 카셰는 프랑스 국왕이 재판을 거치지 않고 봉인한 편지 한 장으로 사람을 가두거나 귀양 보내도록 내린 명령이다. 18세기에는 대신이나 지방 장관이 그 봉인장을 받아 쓰는 일이 흔했고 1790년에 없어졌다.
2. 옮긴이 —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첫 황제로 기원전 63년에 나서 서기 14년에 죽었다. 이 사람은 그와 가까이 지낸 부유한 기사로 오늘날에는 베디우스 폴리오로 적는 것이 보통이나, 저본은 스미스가 쓴 대로 비디우스로 적었으므로 본문도 그 꼴을 따랐다. 이 일화는 세네카와 대 플리니우스가 전한다.
3. 옮긴이 — 베르길리우스 『농경시』 2권의 「위대한 사내들의 어머니」(magna virum mater)를 딴 말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이탈리아 땅을 그렇게 불렀고, 스미스는 유럽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4. 옮긴이 — 저본은 이 자리를 「다른 모든 식민지(all other colonies)의 산업」이라 적었다. 바로 앞 문장과 짝을 이루는 자리이고 뒤에 식민지가 따로 나오므로 「다른 모든 나라」로 옮겼다.
5. 옮긴이 — 열거 상품은 항해법에 따라 식민지가 본국 말고 다른 곳으로는 내보낼 수 없도록 법에 이름을 적어 둔 상품이다. 설탕과 담배와 쪽과 목화 따위가 먼저 올랐고 뒤에 품목이 늘어났다.
6. 옮긴이 — 항해법은 1651년에 처음 만들어지고 1660년에 「찰스 2세 치세 12년의 법 제18장」으로 다시 세워진 법으로, 영국 식민지와 하는 무역을 영국 배와 영국 선원에게만 허락했다. 영국의 법령은 국왕이 왕위에 오른 뒤 몇 해째에 만들어졌는지와 그 회기의 몇째 장인지로 가리킨다.
7. 옮긴이 — 매슈 데커(1679~1749)는 네덜란드에서 잉글랜드로 건너온 상인으로 동인도회사 이사와 하원 의원을 지냈다. 1744년에 영국의 외국 무역이 시드는 까닭을 논한 글을 냈다.
8. 옮긴이 — 저본은 이 자리를 「곡물 무역(corn trade)의 독점」이라 적었다. 앞뒤가 온통 식민지 무역의 독점을 논하는 자리이고 바로 다음 문장의 「그 무역」이 식민지 무역을 가리키므로 「식민지 무역」으로 옮겼다.
9. 옮긴이 — 호그셰드는 담배와 술을 담는 큰 통으로, 담배를 담을 때 한 통은 대개 1천 파운드(무게) 안팎이었다. 통의 크기가 물건과 때에 따라 달라 하나로 못 박힌 값은 없다.
10. 옮긴이 — 인지세법은 1765년에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인쇄물과 증서에 인지를 붙이게 한 법으로, 식민지의 거센 반발과 영국 상인들의 청원에 밀려 이듬해에 거두어들여졌다.
11. 옮긴이 — 1774년에 필라델피아에 모인 대륙 회의는 영국 물건을 그해 12월 1일부터 들여오지 않기로 약정했다. 스미스가 「연합한 열두 지방」이라 한 것은 그 약정에 든 북아메리카 식민지들이다. 이 책의 초판은 1776년 3월에 나왔다.
12. 옮긴이 — 스페인 선단은 스페인이 해마다 아메리카 식민지로 보낸 호송 선단으로, 카디스에서 떠나 물건을 실어 가고 금은을 실어 왔다.
13. 옮긴이 — 1772년에 러시아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폴란드 땅의 얼마를 저마다 갈라 가진 일을 말한다. 러시아와 튀르크 사이의 평화는 1774년의 퀴췩카이나르자 조약으로 이루어졌다.
14. 옮긴이 — 땅값을 지대의 몇 해치로 셈하는 것이 당대의 관행이었다. 「30년치」는 해마다 나오는 지대의 30배를 값으로 치른다는 뜻이며, 이자율이 낮을수록 이 해수가 늘어난다.
15. 옮긴이 — 「지난 전쟁」은 1756년부터 1763년까지의 7년 전쟁이고 「그 앞선 전쟁」은 1740년부터 1748년까지의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다. 1739년에 시작된 스페인 전쟁은 영국 배를 뒤지는 문제로 터졌다. 토지세는 셈한 땅값 1파운드마다 얼마씩 매기는 세금이어서 전쟁 때에는 평시의 2실링에 2실링을 더 매겼다. 감채 기금은 나라의 빚을 갚으려고 따로 떼어 둔 돈이다. 「스페인령 아메리카 본토」는 오늘날의 베네수엘라에서 파나마에 이르는 카리브해 남쪽 해안을 가리키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