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주권자 곧 국가의 비용에 대하여 (이어서)
8퍼센트로 잡아 둔 배당을 치르고 나서 무엇이든 남는 나머지가, 그 결의로 말미암아 얼마쯤 사이가 틀어질 수밖에 없는 한 무리의 사람들 손에 들어가느니보다, 회사 자신의 심부름꾼과 딸린 이들이 그것을 헤프게 쓰는 즐거움이나 빼돌리는 이득을 누리는 편이 회사에게는 더 마음에 들었을 법하다. 그 심부름꾼과 딸린 이들의 이해는 임자 회의에서 어찌나 크게 판을 쳤던지, 그 회의는 더러 제 권위를 정면으로 거슬러 저질러진 노략질의 장본인을 두둔하는 쪽으로 기울기까지 하였다. 임자의 다수에게는 제 회의의 권위를 받쳐 주는 일조차, 그 권위를 대놓고 짓밟은 자들을 받쳐 주는 일보다 덜 중요한 일이었던 때가 더러 있었다.
그러므로 1773년의 규제는 인도에서 회사가 하던 통치의 어지러움을 끝내지 못하였다. 몸가짐이 반듯했던 잠깐의 발작이 이어지는 동안 그들이 한때 콜카타의 금고에 300만 파운드 스털링이 넘는 돈을 거두어들였는데도1, 그 뒤에 인도에서 가장 걸차고 가장 기름진 나라 가운데 얼마를 크게 더 보태어 제 지배나 제 노략질을 거기까지 넓혔는데도, 모두 헤프게 쓰이고 무너졌다. 그들은 하이다르 알리의 침입을 막거나 맞서기에 도무지 채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스스로 깨달았다2. 그리고 그 어지러움의 결과로 회사는 이제(1784년) 어느 때보다 더 큰 곤경에 빠져 있으며, 당장의 파산을 막으려고 다시 한 번 정부의 도움을 애걸하는 데까지 몰려 있다. 그 일을 더 낫게 꾸려 가기 위한 여러 가지 계획이 의회의 여러 당파에서 나왔는데, 그 계획들은 모두 한 가지를 미리 놓고 들어가는 듯하니, 참으로 언제나 넘치도록 뚜렷하던 것, 곧 그 회사가 제 영토를 다스리기에 도무지 알맞지 않다는 것이다. 회사 자신조차 제 무능을 그만큼은 알아차린 듯하며, 그 까닭에 영토를 정부에 넘겨줄 뜻이 있는 듯하다.
멀고 미개한 나라에 요새와 수비대를 둘 권리에는 그 나라에서 화친을 맺고 전쟁을 벌일 권리가 반드시 따라붙는다. 앞의 권리를 가졌던 합본 회사들은 늘 뒤의 권리도 휘둘렀고, 더러는 그 권리를 드러내 놓고 받기까지 하였다. 그들이 그 권리를 여느 때에 얼마나 부당하게, 얼마나 변덕스럽게, 얼마나 모질게 휘둘렀는지는 가까운 경험에서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어떤 상인 무리가 제 위험과 제 비용으로 멀고 미개한 나라와 새 거래를 트겠다고 나설 때, 그들을 합본 회사로 묶어 주고 그들이 성공할 경우에 몇 해 동안 그 거래의 독점을 내주는 것이 터무니없는 일은 아닐 수 있다. 그것은 뒷날 대중이 그 이익을 거두게 될 위험하고 비싼 시도를 무릅써 준 데 대하여 나라가 그들에게 갚아 줄 수 있는 가장 손쉽고 가장 자연스러운 길이다. 이런 종류의 한때뿐인 독점은, 새 기계의 비슷한 독점을 그 발명자에게 주고 새 책의 그것을 그 지은이에게 주는 것과 같은 원리 위에서 두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이 다하면 독점은 반드시 끝나야 하고, 요새와 수비대를 두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밝혀졌다면 그것은 정부의 손에 넘어가고 그 값은 회사에 치러 주며, 거래는 나라의 모든 신민에게 열어 주어야 한다. 독점이 영구히 이어지면 나라의 다른 모든 신민은 두 가지 다른 길로 몹시 터무니없이 세금을 물게 된다. 첫째는 물건 값이 높아서인데, 거래가 자유로웠다면 그들은 그것을 훨씬 헐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그들 가운데 많은 이에게 편하고도 이로울 수 있었을 사업의 한 갈래에서 죄다 밀려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이 이렇게 세금을 무는 것은 온갖 목적 가운데 가장 값없는 목적을 위해서다. 그것은 다만 회사가 제 심부름꾼들의 태만과 헤픔과 부정을 떠받칠 수 있게 하려는 것뿐인데, 그 심부름꾼들의 어지러운 몸가짐 탓에 회사의 배당이 아주 자유로운 거래에서 나오는 예사 이윤율을 넘는 일은 드물고, 오히려 그 비율에 한참 못 미치게 되는 일이 아주 잦다. 그러나 독점이 없으면 합본 회사는 외국 거래의 어느 갈래도 오래 이어 갈 수 없다는 것이 경험으로 드러나는 듯하다. 한 시장에서 사들여 다른 시장에서 이윤을 남기고 파는 일, 그것도 두 시장 모두에 겨루는 이가 많을 때에 그리하는 일, 수요의 이따금씩 일어나는 변동뿐 아니라 겨룸에서 일어나는 훨씬 크고 훨씬 잦은 변동, 곧 그 수요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게 될 공급에서 일어나는 변동까지 지켜보는 일, 그리고 물건 한 벌 한 벌의 양과 질을 이 온갖 사정에 솜씨 있고 사리에 맞게 맞추는 일은 일종의 싸움이어서, 그 움직임이 끊임없이 바뀌며, 합본 회사의 이사들에게서는 오래 바랄 수 없는 저 그침 없는 경계와 주의를 쏟지 않고서는 좀처럼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동인도회사는 제 기금을 되사고 제 배타적 특권이 다하고 나면, 의회의 법에 따라 자산을 한데 모은 단체로 이어 가면서 그 단체의 자격으로 다른 동료 신민과 나란히 동인도와 거래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이런 처지에서라면 사사로운 모험가의 더 나은 경계와 주의가 머지않아 그들을 그 거래에 넌더리 나게 만들 것이 거의 틀림없다.
정치경제학의 일에 아는 것이 많은 이름난 프랑스 지은이 모를레 신부는 1600년 이래 유럽 여러 곳에 세워진 외국 거래용 합본 회사 쉰다섯 곳의 목록을 내놓는데, 그에 따르면 그 회사들은 배타적 특권을 가졌으면서도 모두 잘못된 경영 탓에 무너졌다3. 그는 그 가운데 두세 곳의 내력에 대하여 잘못된 이야기를 들었으니, 그것들은 합본 회사도 아니었고 무너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에 무너진 합본 회사가 여럿 더 있었고 그는 그것들을 빠뜨렸다.
배타적 특권 없이도 합본 회사가 성공해 이어 갈 수 있을 듯한 거래는, 그 움직임이 죄다 이른바 판박이로, 곧 변화를 거의 또는 전혀 허락하지 않는 한결같은 방식으로 줄여질 수 있는 거래뿐이다. 이런 종류의 것으로는 첫째로 은행업이 있고, 둘째로 불과 바닷길의 위험과 전쟁 때의 나포에 대비하는 보험업이 있으며, 셋째로 배가 다닐 수 있는 물길이나 운하를 내고 지키는 업이 있고, 넷째로 큰 도시에 물을 대 주려고 물을 끌어 오는 그와 비슷한 업이 있다.
은행업의 원리가 얼마쯤 알기 어려워 보일지 모르나 그 실무는 엄한 규칙으로 줄여질 수 있다. 남다른 벌이가 있으리라는 솔깃한 궁리에 넘어가 어떤 경우에든 그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언제나 몹시 위험하며, 그것을 해 보는 은행 회사에게 목숨이 걸린 일이 되는 때가 잦다. 그런데 합본 회사의 짜임새는 대체로 그들을 어떤 사사로운 동업보다도 정해진 규칙에 더 끈덕지게 매달리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런 회사는 이 거래에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 듯하다. 그래서 유럽의 주요 은행 회사는 합본 회사이며, 그 가운데 많은 곳이 아무런 배타적 특권 없이도 제 거래를 아주 잘 꾸려 나간다. 잉글랜드 은행은 잉글랜드의 다른 어떤 은행 회사도 여섯 사람을 넘겨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말고는 다른 배타적 특권이 없다. 에든버러의 두 은행은 아무런 배타적 특권이 없는 합본 회사다.
불에서 오는 것이든 바다에서 잃는 것이든 나포로 잃는 것이든, 그 위험의 값어치는 아마 아주 정확히 셈할 수는 없을 것이나 그래도 대충 어림할 수는 있어서 얼마쯤은 엄한 규칙과 방법으로 줄여진다. 그러므로 보험업은 아무런 배타적 특권 없이도 합본 회사가 성공해 이어 갈 수 있다. 런던 어슈어런스도 로열 익스체인지 어슈어런스도 그런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배가 다닐 수 있는 물길이나 운하가 한번 뚫리고 나면 그것을 꾸려 가는 일은 아주 단순하고 쉬워져 엄한 규칙과 방법으로 줄여진다. 그것을 내는 일조차 그러하니, 1마일에 얼마, 갑문 하나에 얼마로 사업가와 도급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큰 도시에 물을 대 주려고 물을 끌어 오는 운하나 수로나 큰 관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업은 아무런 배타적 특권 없이도 합본 회사가 아주 잘 꾸려 갈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리하는 일이 잦다.
그러나 어떤 사업이든 합본 회사가 그것을 성공해 꾸려 갈 수 있으리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회사를 세우는 일, 또는 어떤 특정한 장수 무리가 그런 면제를 받으면 잘될 수 있으리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이웃 모두에게 두루 미치는 일반 법에서 얼마쯤 면제해 주는 일은 결코 사리에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런 설립이 온전히 사리에 맞으려면, 엄한 규칙과 방법으로 줄여질 수 있다는 사정에 더하여 다른 두 가지 사정이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로 그 사업이 여느 거래의 대부분보다 더 크고 더 널리 미치는 쓸모가 있음이 더없이 또렷한 증거로 드러나야 하고, 둘째로 그것이 사사로운 동업에 쉬이 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자본을 필요로 해야 한다. 알맞은 자본으로 넉넉하다면 그 사업의 큰 쓸모만으로는 합본 회사를 세울 넉넉한 이유가 되지 못할 것이니, 이런 경우에는 그것이 내놓을 것에 대한 수요가 사사로운 모험가들에 의해 선뜻 쉽게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 든 네 가지 거래에서는 그 두 가지 사정이 함께 갖추어진다.
은행업이 슬기롭게 꾸려질 때 지니는 크고 널리 미치는 쓸모는 이 탐구의 둘째 편에서 낱낱이 밝혔다. 그러나 공공 신용을 떠받치고 특별한 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어떤 세금의 생산물 전부를, 아마 여러 백만에 이르는 액수를 그것이 들어오기 한두 해 앞서 정부에 꾸어 주어야 하는 공공 은행은, 어떤 사사로운 동업에도 쉬이 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자본을 필요로 한다.
보험업은 사사로운 사람들의 재산에 큰 안전을 주며, 한 개인을 결딴낼 손실을 아주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지움으로써 그것이 사회 전체에 가볍고 수월하게 내려앉게 만든다. 그러나 이 안전을 주려면 보험을 드는 쪽이 아주 큰 자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런던에 보험을 위한 두 합본 회사가 서기 전에, 몇 해 사이에 무너진 사사로운 보험업자 백쉰 명의 목록이 법무장관 앞에 놓였다고 한다4.
배가 다닐 수 있는 물길과 운하, 그리고 큰 도시에 물을 대 주는 데에 더러 필요한 공사가 크고 널리 미치는 쓸모를 지니면서도 동시에 사사로운 사람들의 재산에 걸맞지 않을 만큼 큰 비용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잦다는 것은 넉넉히 뚜렷하다.
위에 든 네 가지 거래 말고는, 합본 회사를 세우는 일을 사리에 맞게 만드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사정이 다 갖추어지는 다른 거래를 나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 런던의 영국 구리 회사, 납 제련 회사, 유리 연마 회사는 저희가 좇는 목적에 크거나 남다른 쓸모가 있다는 핑계조차 대지 못하며, 그 목적을 좇는 데에 사사로운 사람 여럿의 재산에 걸맞지 않을 비용이 든다고도 보이지 않는다. 그 회사들이 이어 가는 거래가 합본 회사의 경영에 알맞을 만큼 엄한 규칙과 방법으로 줄여지는지, 또는 그들이 남다른 이윤을 자랑할 까닭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나는 안다고 내세우지 않는다. 광산 모험가 회사는 이미 오래전에 파산하였다. 에든버러의 영국 아마포 회사의 자산 한 몫은 지금 평가보다 훨씬 아래로 팔리는데, 다만 몇 해 전보다는 덜 그러하다5. 어떤 특정한 제조업을 북돋운다는 공공심 어린 목적으로 세워진 합본 회사들은 제 일을 잘못 꾸려 사회의 총자산을 줄이는 데에 더하여, 다른 모로도 이로움보다 해로움을 더 끼치지 않는 일이 좀처럼 없다. 더없이 올곧은 뜻을 품었다 하더라도, 그 이사들이 제조업의 어떤 특정한 갈래에 어쩔 수 없이 치우치게 되고 그 갈래의 사업가들이 그들을 그릇 이끌고 속여 먹는 탓에, 그것은 나머지 갈래에게 참된 주눅이 되며, 그러지 않았더라면 사리에 맞는 근면과 이윤 사이에 저절로 자리 잡았을 저 자연스러운 비례를 얼마쯤 반드시 깨뜨리는데, 그 비례야말로 나라의 근면 전체에 온갖 북돋움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힘 있는 것이다.
2항 — 젊은이를 가르치는 기관의 비용에 대하여
젊은이를 가르치는 기관도 마찬가지로 제 비용을 치르기에 넉넉한 수입을 마련할 수 있다. 학생이 스승에게 치르는 수업료 곧 사례금이 저절로 이런 종류의 수입을 이룬다.
스승이 받는 갚음이 죄다 이 자연스러운 수입에서 나오지 않는 곳에서도, 그것이 사회의 저 일반 수입에서 나와야 할 까닭은 여전히 없으니, 그 일반 수입을 걷고 쓰는 일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집행 권력에 맡겨져 있다. 그래서 유럽의 대부분에서 학교와 칼리지의 기부 재산은 그 일반 수입에 아무런 짐도 지우지 않거나 지워도 아주 적게 지운다. 그것은 어디서나 주로 어떤 고장이나 지방의 수입에서, 어떤 토지 재산의 지대에서, 또는 얼마간의 돈에서 나오는 이자에서 생겨나는데, 그 돈은 더러는 주권자 자신이 더러는 어떤 사사로운 기부자가 이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떼어 놓고 수탁자의 손에 맡겨 둔 것이다.
그 공공 기부 재산은 대체로 그것을 세운 목적을 이루는 데에 이바지하였는가? 그것은 가르치는 이들의 부지런함을 북돋우고 그들의 능력을 키우는 데에 이바지하였는가? 그것은 교육의 진로를, 저절로 나아갔을 방향보다 개인에게나 대중에게나 더 쓸모 있는 목표 쪽으로 이끌었는가? 이 물음 하나하나에 적어도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는 일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어떤 직업에서나 그것을 하는 이들 대부분이 쏟는 힘은 언제나 그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절박함에 비례한다. 이 절박함은 제 직업에서 나오는 보수가 제 재산은 물론이고 제 예사 수입과 생계까지 바라볼 유일한 원천인 이들에게 가장 크다. 이 재산을 얻으려면, 아니 이 생계라도 얻으려면 그들은 한 해 동안에 값이 알려진 일감을 일정한 양만큼 해내야 하며, 겨룸이 자유로운 곳에서는 서로를 일자리에서 밀어내려고 애쓰는 겨루는 이들의 맞겨룸이 사람마다 제 일을 얼마쯤 정확하게 해내려 애쓰게 만든다. 어떤 특정한 직업에서 성공하여 얻을 목표가 크다는 것이 남다른 기개와 야심을 지닌 몇몇 사람의 힘씀을 더러 북돋우는 일이 있음은 물론 틀림없다. 그러나 가장 큰 힘씀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큰 목표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님이 뚜렷하다. 맞겨룸과 서로 앞지르려는 마음은 하찮은 직업에서조차 뛰어남을 야심의 목표로 만들고, 더없이 큰 힘씀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잦다. 이와 달리 큰 목표는 홀로 있고 꾸준히 매달릴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받쳐 주지 않으면 이렇다 할 힘씀을 불러일으키기에 넉넉했던 적이 드물다. 잉글랜드에서 법률가라는 직업에서 성공하면 야심의 아주 큰 목표에 이르게 되는데,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 넉넉한 재산을 타고난 사람 가운데 그 직업에서 이름을 떨친 이가 얼마나 적었던가?
학교와 칼리지의 기부 재산은 가르치는 이들이 꾸준히 매달릴 수밖에 없는 절박함을 얼마쯤 반드시 줄여 왔다. 그들의 생계는 봉급에서 나오는 한, 제 특정한 직업에서 거두는 성공이나 평판과는 아주 무관한 기금에서 나옴이 뚜렷하다.
어떤 대학에서는 봉급이 가르치는 이가 받는 보수의 한 부분, 더러는 아주 작은 부분밖에 되지 않고, 그 보수의 더 큰 몫은 제자들이 내는 사례금이나 수업료에서 나온다6. 이 경우에 꾸준히 매달릴 절박함은 늘 얼마쯤 줄어들기는 하나 아주 없어지지는 않는다. 제 직업에서 얻는 평판이 그에게 그래도 얼마쯤 중요하고, 그는 제 가르침을 들은 이들의 애정과 고마움과 좋은 평판에 그래도 얼마쯤 기대고 있다. 그리고 이 좋은 마음을 얻는 데에 그것을 받을 만하게 되는 것보다, 곧 제 의무의 어느 한 부분도 빠뜨리지 않고 해내는 능력과 부지런함으로 그리하는 것보다 나은 길은 없을 것이다.
다른 대학에서는 가르치는 이가 제자에게서 어떤 사례금이나 수업료도 받지 못하게 금지되어 있고, 봉급이 그가 제 자리에서 얻는 수입의 전부를 이룬다. 이 경우에 그의 이해는 제 의무와 맞세울 수 있는 데까지 곧바로 맞세워져 있다. 될 수 있는 대로 편히 사는 것이 누구에게나 제 이익이며, 아주 고된 어떤 의무를 하든 하지 않든 제 보수가 꼭 같을 것이라면, 그것을 아주 저버리거나, 그리하도록 두지 않는 어떤 권위 아래에 있다면 그 권위가 허락하는 데까지 되는대로 어설프게 해치우는 것이 적어도 이익이라는 말을 흔히 알아듣는 뜻으로 보자면 틀림없이 그의 이익이다. 그가 천성으로 부지런하고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부지런함을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제 의무를 해내는 데에 쓰기보다 얼마간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아무 쪽으로나 쓰는 것이 그의 이익이다.
그가 매여 있는 권위가 그 자신이 한 구성원으로 있는 단체, 곧 칼리지나 대학 안에 있고, 그 구성원의 대부분이 그와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이이거나 가르치는 이여야 할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한통속이 되어 서로에게 아주 너그러워지기 쉽고, 저마다 제가 제 의무를 저버리도록 허락받는 한 제 이웃이 제 의무를 저버려도 좋다고 여기기 쉽다.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공공 교수의 대부분이 여러 해 전부터 가르친다는 시늉마저 아주 그만두었다.
그가 매여 있는 권위가 그가 한 구성원으로 있는 단체보다도 바깥의 어떤 사람들, 이를테면 교구의 주교나 지방의 총독이나 어쩌면 어떤 대신에게 있다면, 이 경우에는 참으로 그가 제 의무를 아주 저버리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윗사람들이 그에게 억지로 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일정한 시간만큼 제자들 앞에 나오는 일, 곧 한 주에 또는 한 해에 일정한 수의 강의를 하는 일뿐이다. 그 강의가 어떤 것이 될지는 여전히 가르치는 이의 부지런함에 달려 있고, 그 부지런함은 그가 그것을 쏟을 동기에 비례하기 쉽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바깥에서 오는 관할은 무지하게도 변덕스럽게도 휘둘리기 쉽다. 그 성질로 보아 그것은 제멋대로이고 마음 내키는 대로인 것이며,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가르치는 이의 강의를 스스로 듣지도 않고 어쩌면 그가 가르쳐야 할 학문을 알지도 못하므로, 그것을 사리에 맞게 휘두를 만한 이가 드물다. 게다가 자리에서 오는 거만함 탓에 그것을 어떻게 휘두르든 아랑곳하지 않는 일이 잦고, 아무런 옳은 까닭 없이 함부로 그를 나무라거나 자리에서 떼어 내기가 아주 쉽다. 그런 관할 아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것 때문에 깎아내려지며,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을 만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기는커녕 가장 하찮고 가장 업신여김받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가 언제나 놓여 있는 그 나쁜 대우에서 스스로를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길은 오직 힘 있는 비호뿐이며, 이 비호를 얻는 길은 제 직업에서 보이는 능력이나 부지런함이 아니라 윗사람의 뜻에 굽실거리는 것, 그리고 그가 한 구성원으로 있는 단체의 권리와 이익과 명예를 언제라도 그 뜻에 바칠 채비가 되어 있는 것이기 쉽다. 프랑스 대학의 운영을 얼마간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종류의 제멋대로이고 바깥에서 오는 관할에서 저절로 따라 나오는 결과를 알아차릴 일이 있었을 것이다.
가르치는 이들의 공적과 평판과 상관없이 일정한 수의 학생을 어떤 칼리지나 대학으로 몰아넣는 것은 무엇이든 그 공적과 평판이 있어야 할 까닭을 얼마쯤 줄인다.
문학과 법학과 의학과 신학에서 학위를 받은 이들이 누리는 특권은, 일정한 대학에서 일정한 햇수를 지내야만 얻을 수 있을 때에 가르치는 이들의 공적이나 평판과 상관없이 일정한 수의 학생을 그런 대학으로 반드시 몰아넣는다. 학위를 받은 이들의 특권은 일종의 도제법이며, 다른 도제법이 기예와 제조업을 나아지게 한 것과 꼭 같은 만큼 교육을 나아지게 하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장학금과 급비와 보조금 따위의 자선 기금은 그 특정한 칼리지의 공적과는 아주 상관없이 일정한 수의 학생을 일정한 칼리지에 반드시 붙들어 맨다7. 그런 자선 기금을 받는 학생이 제가 가장 좋다고 여기는 칼리지를 고를 자유를 누린다면, 그 자유는 아마 여러 칼리지 사이에 서로 앞지르려는 마음을 얼마쯤 불러일으키는 데에 이바지할 것이다. 이와 달리 어느 특정한 칼리지의 얽매이지 않은 구성원조차, 떠나려는 곳의 허락을 먼저 얻지 않고는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는 규정은 그 마음을 끄는 데에 아주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칼리지마다 학생 하나하나에게 온갖 기예와 학문을 가르쳐야 할 지도 교사 곧 가르치는 이를 학생이 제 뜻으로 고르지 못하고 칼리지의 우두머리가 정해 준다면, 그리고 그가 저버리거나 모자라거나 학생을 나쁘게 대하더라도 학생이 허락을 먼저 얻지 않고는 다른 이로 바꾸지 못한다면, 그런 규정은 같은 칼리지의 여러 지도 교사 사이에 서로 앞지르려는 마음을 죄다 끄는 데에 아주 크게 이바지할 뿐 아니라, 그들 모두에게서 제자들에 대한 부지런함과 주의가 있어야 할 까닭을 아주 크게 줄일 것이다. 그런 가르치는 이들은 학생에게서 삯을 아주 넉넉히 받더라도, 학생에게서 삯을 전혀 받지 않는 이들이나 봉급 말고는 다른 갚음이 없는 이들만큼이나 학생을 저버리기 쉬울 것이다.
가르치는 이가 마침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동안 제가 말하거나 읽고 있는 것이 헛소리이거나 헛소리보다 나을 것이 거의 없는 것임을 스스로 아는 일이 그에게 언짢을 수밖에 없다. 또한 제 학생의 대부분이 제 강의를 저버리는 것, 또는 어쩌면 저버림과 업신여김과 비웃음의 표가 넉넉히 드러나는 낯빛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는 일도 그에게 언짢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가 일정한 수의 강의를 해야만 한다면, 다른 아무런 이해가 없더라도 이 동기만으로 그럭저럭 좋은 강의를 하려고 얼마쯤 애쓰는 마음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부지런함을 부추기는 이 모든 것의 날을 감쪽같이 무디게 만들 여러 가지 방편을 찾아낼 수 있다. 가르치는 이는 제가 가르치겠다고 내세운 학문을 스스로 제자들에게 풀어 주는 대신, 그것에 관한 어떤 책을 읽어 줄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이 낯설고 죽은 말로 쓰여 있다면, 그것을 제자들의 말로 옮겨 주거나, 또는 제 수고를 더욱 덜자면 제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제게 옮기게 하고 이따금 거기에 한마디씩 얹음으로써, 제가 강의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 뻐기게 된다. 앎과 애씀이 아주 조금만 있어도 그는 참으로 어리석거나 터무니없거나 우스운 말을 하여 업신여김이나 비웃음을 사는 일 없이 이만큼은 해내고도 남는다. 동시에 칼리지의 규율 덕분에 그는 제 제자들을 죄다 그 헛강의에 더없이 어김없이 나오게 만들고, 그 공연이 이어지는 내내 더없이 얌전하고 공손한 몸가짐을 지키게 만들 수 있다.
칼리지와 대학의 규율은 대체로 학생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승의 이해, 더 바로 말하자면 스승의 편함을 위해서 꾸며져 있다. 그 목적은 어느 경우에나 스승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며, 스승이 제 의무를 저버리든 해내든 어느 경우에나 학생으로 하여금 그가 제 의무를 더없는 부지런함과 능력으로 해내고 있기라도 한 듯이 그를 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한쪽 무리에게는 온전한 슬기와 덕을, 다른 쪽 무리에게는 더없는 약함과 어리석음을 미리 놓고 들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스승이 참으로 제 의무를 해내는 곳에서 학생의 대부분이 제 의무를 저버린 본보기는 내가 알기로 하나도 없다. 참으로 들을 만한 강의에 나오게 하려고 규율을 쓸 일은 결코 없으니, 그런 강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이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아이나 아주 어린 소년에게 삶의 그 이른 시기에 익혀 두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배우게 하려면 힘과 얽맴이 얼마쯤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열두세 살이 지나고 나면, 스승이 제 의무를 해내기만 한다면 교육의 어느 부분을 이어 가는 데에도 힘이나 얽맴이 필요한 일은 좀처럼 없다. 젊은이 대부분의 너그러움이 어찌나 큰지, 스승이 제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는 진지한 뜻을 얼마간 보여 주기만 하면 그들은 그 가르침을 저버리거나 업신여기기는커녕, 대개 그가 제 의무를 해내는 데에 서투른 구석이 많아도 너그러이 보아 넘기고, 더러는 꽤 심한 태만조차 세상에 감추어 주기까지 한다.
눈여겨볼 것은, 그것을 가르칠 공공 기관이 없는 교육의 부분이 대개 가장 잘 가르쳐진다는 점이다. 젊은이가 검술 학교나 춤 학교에 가면 참으로 늘 검술이나 춤을 아주 잘 배우게 되지는 않으나, 검술이나 춤을 배우지 못하고 마는 일은 드물다. 승마 학교의 좋은 효과는 대개 그만큼 뚜렷하지 않다. 승마 학교의 비용이 어찌나 큰지 대부분의 곳에서 그것은 공공 기관이다. 글 배움의 세 가지 가장 요긴한 부분, 곧 읽기와 쓰기와 셈하기는 여전히 공공 학교보다 사사로운 학교에서 익히는 편이 더 흔하며, 그것을 익혀야 할 만큼 익히지 못하고 마는 일은 누구에게든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잉글랜드에서 공공 학교는 대학보다 훨씬 덜 썩었다. 학교에서 젊은이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곧 스승이 가르치겠다고 내세우는 모든 것이자 가르치리라 기대되는 모든 것을 배우거나 적어도 배울 수는 있다. 대학에서 젊은이는 그 법인으로 세워진 단체들이 가르치도록 되어 있는 학문을 배우지도 못하고, 그것을 배울 마땅한 길을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 스승이 받는 갚음은 대부분의 경우에 주로, 더러는 거의 죄다 제 학생이 내는 수업료나 사례금에 달려 있다. 학교에는 배타적 특권이 없다. 학위의 영예를 얻는 데에 공공 학교에서 몇 해를 공부했다는 증서를 내놓아야 할 까닭은 없다. 시험을 쳐서 거기서 가르치는 것을 알아듣는다고 드러나면, 어디서 그것을 배웠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대학에서 흔히 가르치는 교육의 부분이 그리 잘 가르쳐지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관이 없었더라면 그것은 아예 흔히 가르쳐지지 않았을 것이고, 개인도 대중도 교육의 그 중요한 부분이 없어 적잖이 해를 입었을 것이다.
오늘날 유럽의 대학은 본디 그 대부분이 성직자를 기르려고 세운 교회 단체였다. 그것은 교황의 권위로 세워졌고 그의 직접 비호 아래 어찌나 깊이 놓여 있었던지, 그 구성원은 스승이든 학생이든 모두 그때 성직자 특전이라 불리던 것을 누렸으니8, 곧 그 대학이 자리 잡은 나라의 세속 관할에서 벗어나 오직 교회 법정에만 매여 있었다. 그런 대학의 대부분에서 가르치던 것은 그 기관을 세운 목적에 걸맞은 것, 곧 신학이거나 신학으로 가는 채비에 지나지 않는 무엇이었다.
그리스도교가 법으로 처음 자리 잡았을 때에는 썩은 라틴어가 유럽 서쪽 모든 지방의 공통된 말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교회의 예배도, 교회에서 읽던 성경의 번역도 둘 다 그 썩은 라틴어, 곧 그 나라의 공통된 말로 되어 있었다. 로마 제국을 뒤엎은 미개한 민족이 밀려든 뒤로 라틴어는 유럽 어느 곳의 말도 아니게 차츰 바뀌어 갔다. 그러나 백성의 경외는 종교의 자리 잡은 꼴과 의식을, 그것을 처음 들여오고 사리에 맞게 만들었던 사정이 사라진 뒤로도 오래 저절로 지켜 준다. 그러므로 라틴어를 백성의 큰 무리가 어디서도 더는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는데도, 교회의 예배는 죄다 그 말로 치러지기를 이어 갔다. 이렇게 하여 유럽에는 옛 이집트에서와 꼭 같이 두 가지 다른 말이 자리 잡았으니, 사제의 말과 백성의 말, 거룩한 말과 속된 말, 배운 말과 배우지 않은 말이었다. 그러나 사제는 제가 예배를 치를 그 거룩하고 배운 말을 얼마쯤은 알아들어야 했으므로, 라틴어 공부가 처음부터 대학 교육의 요긴한 한 부분을 이루었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두고는 사정이 달랐다. 교회의 그르칠 수 없는 결정이 흔히 라틴어 불가타라 불리는 성경의 라틴어 번역을 두고 그것이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원문과 똑같이 신의 영감으로 받아쓴 것이며 따라서 똑같은 권위를 지닌다고 선언해 놓았던 것이다9. 그러므로 그 두 말의 앎이 성직자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 공부는 오랫동안 대학 교육의 여느 과정에 꼭 들어야 할 부분으로 들지 못하였다. 내가 듣기로 스페인의 어떤 대학에서는 그리스어 공부가 아직까지도 그 과정의 한 부분이 된 적이 없다고 한다. 첫 종교 개혁자들은 신약의 그리스어 본문과 구약의 히브리어 본문까지도 불가타 번역보다 제 의견에 더 이롭다는 것을 알아냈으니, 그 번역은 저절로 그러리라 여겨지듯이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받쳐 주는 쪽으로 차츰 맞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번역의 숱한 잘못을 들추어내는 일에 나섰고, 로마 가톨릭 성직자는 그리하여 그것을 감싸거나 풀이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이 일은 원어를 얼마쯤 알지 않고는 제대로 해낼 수 없었으므로, 그 공부가 종교 개혁의 교리를 받아들인 대학에서나 물리친 대학에서나 대부분의 대학에 차츰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스어는 저 고전 학문의 모든 부분과 이어져 있었는데, 그 학문은 처음에는 주로 가톨릭 신자와 이탈리아 사람이 가꾸었으나 마침 종교 개혁의 교리가 일어난 것과 거의 같은 무렵에 유행을 타게 되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대학에서 그 말은 철학 공부에 앞서, 그리고 학생이 라틴어에서 얼마쯤 나아가자마자 가르쳐졌다. 히브리어는 고전 학문과 이어진 데가 없고 성경 말고는 이렇다 할 책이 한 권도 쓰이지 않은 말이었으므로, 그 공부는 철학 공부를 마치고 학생이 신학 공부에 들어선 뒤에야 대개 시작되었다.
본디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첫걸음은 둘 다 대학에서 가르쳤고, 어떤 대학에서는 아직도 그리하고 있다. 다른 대학에서는 학생이 그 두 말 가운데 하나 또는 둘의 첫걸음만이라도 미리 익혀 오기를 바라는데, 그 공부는 어디서나 대학 교육의 아주 큰 부분을 이루기를 이어 가고 있다.
옛 그리스 철학은 세 개의 큰 갈래로 나뉘었으니, 자연학 곧 자연철학과 윤리학 곧 도덕철학과 논리학이다. 이 큰 나눔은 사물의 본성에 더없이 걸맞아 보인다.
자연의 큰 현상, 곧 하늘에 있는 것들의 돎과 일식과 혜성, 천둥과 번개와 그 밖의 남다른 대기 현상, 풀과 짐승이 생겨나고 살고 자라고 스러지는 일은 사람의 놀라움을 반드시 불러일으키는 만큼 그 까닭을 캐물으려는 궁금함도 저절로 불러낸다. 미신이 먼저 이 궁금함을 채워 보려고 그 모든 놀라운 나타남을 신들이 곧바로 부린 일로 돌렸다. 그 뒤에 철학이 그것을 더 낯익은 원인에서, 또는 신들이 부린 일보다 사람이 더 잘 아는 원인에서 설명해 보려 하였다. 그 큰 현상이 사람의 궁금함이 맨 먼저 향하는 목표인 만큼, 그것을 설명하겠다고 내세우는 학문이 저절로 가장 먼저 가꾸어진 철학의 갈래였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가 그 자취를 남겨 준 첫 철학자들은 자연철학자였던 듯하다.
세상의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사람은 서로의 성품과 뜻과 행동을 눈여겨보았을 수밖에 없고, 사람 사는 길을 이끄는 여러 훌륭한 규칙과 격률이 세워지고 다 함께 받아들여졌을 수밖에 없다. 글이 유행하자마자 슬기로운 이, 또는 스스로 그렇다고 여긴 이들은 저절로 그 자리 잡고 받들어진 격률의 수를 늘리려 애쓰고, 무엇이 옳은 몸가짐이고 무엇이 그른 몸가짐인지에 대한 제 생각을 나타내려 애썼을 터인데, 더러는 이솝의 우화라 불리는 것처럼 더 꾸민 우화의 꼴로, 더러는 솔로몬의 잠언이나 테오그니스와 포킬리데스의 시구나 헤시오도스가 쓴 것의 얼마처럼 더 단순한 경구나 슬기로운 말의 꼴로 그리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그저 신중함과 도덕의 격률을 수만 늘려 갔을 뿐, 그것을 뚜렷하거나 짜임새 있는 차례로 벌여 놓으려 해 보지도 않았고, 자연의 원인에서 결과가 나오듯 그 모두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하나 또는 몇 개의 일반 원리로 그것을 이어 매는 일은 더더욱 해 보지 않았다. 몇 개의 공통된 원리로 이어 맨 여러 관찰을 짜임새 있게 벌여 놓는 데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자연철학의 체계를 향하여 나아간 저 옛 시대의 거친 시도에서 처음 드러났다. 그 뒤에 도덕에서도 같은 종류의 무엇이 시도되었다. 여느 삶의 격률이 짜임새 있는 차례로 벌여지고 몇 개의 공통된 원리로 이어 매어졌으니, 자연의 현상을 벌여 놓고 이어 매려 했던 것과 꼭 같은 식이었다. 그 이어 매는 원리를 캐내고 설명하겠다고 내세우는 학문이 바로 도덕철학이라 제대로 불리는 것이다.
지은이마다 자연철학과 도덕철학의 체계를 저마다 달리 내놓았다. 그러나 그들이 그 여러 체계를 받쳐 주려고 든 논거는 언제나 논증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잘해야 아주 얄팍한 그럴듯함에 지나지 않는 때가 잦았으며, 더러는 여느 말의 부정확함과 애매함 말고는 다른 바탕이 없는 한낱 궤변이었다. 사변의 체계는 세상의 어느 시대에나, 돈이 아주 조금이라도 걸린 일에서라면 분별 있는 사람 누구의 판단도 움직이지 못했을 만큼 하찮은 이유로 받아들여져 왔다. 거친 궤변이 사람의 의견에 힘을 미친 적은 철학과 사변의 일에서 말고는 거의 없으나, 이 일에서는 가장 큰 힘을 미친 적이 잦았다. 자연철학과 도덕철학의 체계마다 그 편을 드는 이들은 제 것과 맞서는 체계를 받쳐 주려고 든 논거의 약함을 들추어내려고 저절로 애썼다. 그 논거를 살피다 보니 그들은 그럴듯한 논거와 논증하는 논거 사이, 그릇된 논거와 결론을 내는 논거 사이의 차이를 헤아리게 될 수밖에 없었고, 논리학 곧 옳은 추론과 그른 추론의 일반 원리를 다루는 학문이 이런 종류의 살핌에서 나온 관찰로부터 반드시 생겨났다. 그것은 그 시작으로 보면 자연학보다도 윤리학보다도 뒤였으나, 옛 철학 학파 모두에서는 아닐지라도 그 대부분에서 그 두 학문에 앞서 가르쳐지는 것이 여느 일이었다. 학생은 그토록 중요한 주제를 놓고 추론하기에 앞서 옳은 추론과 그른 추론의 차이를 잘 알아야 한다고 여겨졌던 듯하다.
철학을 세 부분으로 나눈 이 옛 나눔은 유럽 대부분의 대학에서 다섯 부분으로 나누는 다른 나눔으로 바뀌었다.
옛 철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본성에 관한 것이든 신의 본성에 관한 것이든 가르치는 바가 모두 자연학 체계의 한 부분을 이루었다. 그 존재들은 그 본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다고 여겨지든 우주라는 큰 체계의 부분이었고, 더구나 더없이 중요한 결과를 낳는 부분이었다. 사람의 이성이 그것에 관하여 결론지을 수 있거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바는 무엇이든, 우주라는 큰 체계의 기원과 돎을 밝히겠다고 내세우는 학문의 이를테면 두 장을 이루었으니, 물론 아주 중요한 두 장이었다. 그러나 철학을 오직 신학의 시녀로만 가르치던 유럽의 대학에서는 그 학문의 다른 어느 장보다 이 두 장에 더 오래 머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것은 차츰 더욱더 늘어나고 더 작은 여러 장으로 나뉘어, 마침내 알 수 있는 것이 그토록 적은 영에 관한 교설이 알 수 있는 것이 그토록 많은 물체에 관한 교설만큼이나 철학 체계에서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 두 주제에 관한 교설은 서로 다른 두 학문을 이루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른바 형이상학 곧 영혼학이 자연학과 맞세워졌고, 더 드높을 뿐 아니라 어떤 특정한 직업의 목적으로 보아 둘 가운데 더 쓸모 있는 학문으로서 가꾸어졌다. 실험과 관찰의 마땅한 주제, 곧 꼼꼼히 살피면 그토록 쓸모 있는 발견을 그토록 많이 해낼 수 있는 주제는 거의 죄다 버려졌다. 아주 적고 거의 뻔한 몇 가지 진리를 넘어서면 아무리 꼼꼼히 살펴도 어둠과 불확실함밖에 찾아낼 수 없고 따라서 자잘한 말재주와 궤변밖에 낳을 수 없는 주제가 크게 가꾸어졌다.
그 두 학문이 이렇게 서로 맞세워지자, 그 둘을 견주는 일이 저절로 셋째 학문을 낳았으니, 이른바 존재론, 곧 다른 두 학문이 다루는 주제 둘 다에 공통된 성질과 속성을 다루는 학문이 그것이다. 그러나 자잘한 말재주와 궤변이 학교에서 가르치던 형이상학 곧 영혼학의 대부분을 이루었다면, 그것은 이 거미줄 같은 학문인 존재론의 전부를 이루었으니, 이것 또한 더러 형이상학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사람의 행복과 완성이, 그것도 한 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한 집안의, 한 나라의, 그리고 사람이라는 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행복과 완성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옛 도덕철학이 캐내려 한 목표다. 그 철학에서 사람 사는 길의 의무는 사람 사는 길의 행복과 완성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도덕철학도 자연철학과 마찬가지로 오직 신학의 시녀로만 가르쳐지게 되자, 사람 사는 길의 의무는 주로 다가올 삶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다루어졌다. 옛 철학에서 덕의 완성은 그것을 지닌 사람에게 이 삶에서 더없이 온전한 행복을 반드시 낳아 주는 것으로 그려졌다. 근대 철학에서 그것은 대체로, 아니 차라리 거의 언제나 이 삶에서 누릴 어떤 행복과도 어긋나는 것으로 그려지는 일이 잦았고, 하늘은 사람다운 너그럽고 시원스럽고 기개 있는 몸가짐이 아니라 오직 고행과 극기로, 수도사의 모진 삼감과 낮춤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결의론과 금욕의 도덕이 대부분의 경우에 학교에서 가르치던 도덕철학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철학의 여러 갈래 가운데 더없이 중요한 갈래가 이런 식으로 더없이 썩은 갈래가 되었다.
그러므로 유럽 대부분의 대학에서 철학 교육이 지나온 여느 과정은 이러하였다. 논리학을 먼저 가르치고, 존재론이 둘째 자리에 오고, 사람의 영혼과 신의 본성에 관한 교설을 아우르는 영혼학이 셋째에 오며, 넷째로는 깎아내려진 도덕철학 체계가 뒤따르는데 이것은 영혼학의 교리와, 사람의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것과, 신의 정의에서 나와 다가올 삶에서 바라야 할 상과 벌에 곧바로 이어진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짧고 겉핥기인 자연학 체계가 그 과정을 마무리하는 것이 예사였다.
유럽의 대학이 이렇게 옛 철학 과정에 들여놓은 바뀜은 모두 성직자를 기르기 위한 것이었고, 그 과정을 신학 공부로 들어가는 더 마땅한 길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바뀜이 그 과정에 들여놓은 자잘한 말재주와 궤변, 결의론과 금욕의 도덕이 더해진 만큼, 그 과정이 신사나 세상 사람을 기르기에 더 알맞게 되거나 깨달음을 키우거나 마음을 고치는 데에 더 이바지하게 되지 않았음은 틀림없다10.
이 철학 과정은 유럽 대부분의 대학에서 아직도 가르쳐지기를 이어 가고 있는 것인데, 대학마다 그 짜임새가 가르치는 이들에게 부지런함을 얼마나 더 또는 덜 있어야 할 것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부지런함의 정도가 달라진다. 가장 가멸고 기부 재산이 가장 넉넉한 어떤 대학에서는 지도 교사들이 이 썩은 과정의 이어지지 않은 몇 조각을 가르치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그것조차 대개 아주 소홀하고 겉핥기로 가르친다.
근대에 철학의 여러 갈래에서 이루어진 나아짐은 그 대부분이 대학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물론 얼마는 거기서 이루어졌다. 대학의 대부분은 그 나아짐이 이루어진 뒤에조차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그리 앞서 나서지도 않았고, 그 배운 단체 가운데 여럿은 낡아 터진 체계와 한물간 편견이 세상 다른 모든 구석에서 쫓겨난 뒤에 숨어들어 비호를 받는 성소로 오래 남아 있기를 스스로 골랐다. 대체로 가장 가멸고 기부 재산이 가장 넉넉한 대학이 그 나아짐을 받아들이는 데에 가장 더뎠고, 자리 잡은 교육 계획에 이렇다 할 바뀜이 오는 것을 가장 꺼렸다. 그 나아짐은 더 가난한 어떤 대학에 더 쉽게 들어갔으니, 거기서는 가르치는 이들이 제 생계의 대부분을 제 평판에 기대고 있어 세상의 오늘날 의견에 더 마음을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의 공공 학교와 대학이 본디 오직 한 특정한 직업, 곧 성직자를 기르기 위해서만 마련되었고, 그 직업에 꼭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던 학문에서조차 제자를 가르치는 데에 늘 그리 부지런하지는 않았는데도, 그것은 거의 모든 다른 사람, 특히 거의 모든 신사와 재산 있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차츰 제게로 끌어들였다. 어린 시절과 사람이 세상의 참된 일, 곧 남은 날 동안 그를 붙들어 둘 일에 참으로 매달리기 시작하는 시기 사이의 긴 틈을 얼마간이라도 이롭게 보내는 데에 이보다 나은 길을 찾아낼 수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의 대부분은 그 일을 위한 가장 마땅한 채비로 보이지 않는다.
잉글랜드에서는 젊은이를 학교에서 내보내자마자 어느 대학에도 보내지 않고 곧바로 외국으로 여행 보내는 것이 나날이 더욱더 관습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 젊은이는 대체로 그 여행으로 크게 나아져 집에 돌아온다고들 한다. 열일곱이나 열여덟에 나가서 스물하나에 돌아오는 젊은이는 나갈 때보다 서너 살을 더 먹고 돌아오는데, 그 나이에 서너 해 동안 꽤 많이 나아지지 않기란 아주 어렵다. 여행하는 동안 그는 대개 한두 가지 외국 말을 얼마쯤 알게 되나, 그 앎은 그 말을 제대로 하거나 쓸 수 있을 만큼인 경우가 드물다. 다른 모로 보면 그는 대개 집에 머물렀더라면 그토록 짧은 사이에 도저히 되지 못했을 만큼 더 우쭐하고 더 줏대 없고 더 방탕하고 공부에도 사업에도 진지하게 매달릴 힘이 더 없어져 돌아온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여행하면서, 부모와 친척의 살핌과 다스림에서 멀리 떨어진 채 제 삶의 가장 값진 해를 더없이 하찮은 방탕으로 보내는 탓에, 교육의 앞선 부분이 그에게 얼마쯤 길러 주었을 온갖 쓸모 있는 버릇은 단단히 박히고 굳어지기는커녕 거의 반드시 약해지거나 지워진다. 대학이 스스로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 그 평판의 실추가 아니었더라면, 삶의 이토록 이른 시기에 여행한다는 이토록 터무니없는 관행이 이토록 평판을 얻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아들을 외국으로 보냄으로써 아버지는 적어도 얼마 동안은 제 눈앞에서 일자리도 없이 팽개쳐진 채 결딴나 가는 아들이라는 그토록 거북한 것에서 스스로를 풀어 준다.
근대의 교육 기관 가운데 얼마가 낸 결과는 이러하였다.
다른 시대와 다른 민족에서는 교육을 위한 다른 계획과 다른 기관이 자리 잡았던 듯하다.
그리스의 옛 공화국에서는 자유로운 시민이면 누구나 나라 행정관의 지휘 아래 체조와 음악을 배웠다. 체조로는 그의 몸을 단단하게 하고 그의 용기를 날카롭게 하며 그를 전쟁의 고단함과 위험에 채비시키려 하였는데, 그리스의 민병은 어느 이야기로 보나 세상에 있었던 가운데 가장 나은 것에 들었으므로, 그들 공공 교육의 이 부분은 그것이 노린 목적을 온전히 이루었음이 틀림없다. 다른 부분인 음악으로는, 적어도 그 제도를 우리에게 전해 준 철학자와 역사가의 말로는 마음을 사람답게 하고 기질을 부드럽게 하며 공적인 삶과 사사로운 삶의 온갖 사회적 의무와 도덕적 의무를 해내도록 마음을 다잡으려 하였다.
옛 로마에서는 마르스 들판의 훈련이 옛 그리스의 김나시온이 하던 것과 같은 목적을 이루었고, 그 목적을 똑같이 잘 이루었던 듯하다. 그러나 로마인에게는 그리스인의 음악 교육에 맞먹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로마인의 도덕은 사사로운 삶에서나 공적인 삶에서나 그리스인의 그것과 맞먹을 뿐 아니라 대체로 꽤 나았던 듯하다. 사사로운 삶에서 나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두 민족을 잘 알던 두 지은이 폴리비오스와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의 뚜렷한 증언이 있으며, 그리스와 로마 역사의 흐름 전체가 로마인의 공적 도덕이 나았음을 증언한다. 서로 다투는 당파의 좋은 기질과 삼감이 자유로운 백성의 공적 도덕에서 가장 요긴한 사정인 듯하다. 그런데 그리스인의 당파 싸움은 거의 언제나 사납고 피비린내 났으나, 로마에서는 그라쿠스 형제의 때까지 어느 당파 싸움에서도 피가 흘려진 적이 없었고11, 그라쿠스 형제의 때부터는 로마 공화국이 사실상 무너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폴리비오스의 아주 존경할 만한 권위에도, 그리고 몽테스키외 씨가 그 권위를 받쳐 주려고 든 아주 기발한 이유에도 아랑곳없이, 그리스인의 음악 교육이 그들의 도덕을 고치는 데에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으리라는 것이 그럴듯해 보이니, 그런 교육이 전혀 없었는데도 로마인의 도덕이 대체로 더 나았기 때문이다. 그 옛 현인들이 제 조상의 제도에 품은 존경이 아마 그들로 하여금, 어쩌면 한낱 옛 관습에 지나지 않고 저 사회의 가장 이른 시기부터 그들이 꽤 다듬어진 데까지 이른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것일 뿐인 것에서 많은 정치적 슬기를 찾아내게 만들었을 것이다. 음악과 춤은 거의 모든 미개한 민족의 큰 즐길거리이며, 누구든 제 무리를 즐겁게 해 주기에 알맞게 만들어 준다고 여겨지는 큰 재주다. 아프리카 바닷가의 흑인들 사이에서 오늘날에도 그러하다. 옛 켈트인 사이에서도, 옛 스칸디나비아인 사이에서도, 그리고 호메로스에게서 배울 수 있듯이 트로이 전쟁에 앞선 시절의 옛 그리스인 사이에서도 그러하였다. 그리스 부족들이 작은 공화국을 이루고 나자, 그 재주를 익히는 일이 오랫동안 백성의 공적이고 공통된 교육의 한 부분을 이룬 것이 자연스러웠다.
음악에서든 군사 훈련에서든 젊은이를 가르친 스승들은 로마에서나, 또는 우리가 그 법과 관습을 가장 잘 아는 그리스 공화국인 아테네에서조차 나라에서 삯을 받은 것 같지도 않고 나라가 세운 것 같지도 않다. 나라는 자유로운 시민이면 누구나 전쟁에서 나라를 지킬 채비를 갖추어야 하고 그 까닭에 제 군사 훈련을 익혀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나라는 그가 찾아낼 수 있는 스승에게서 그것을 배우도록 내버려 두었고, 이 목적을 위하여 그가 그것을 익히고 해 보일 공공의 벌판이나 훈련장 말고는 아무것도 대 주지 않았던 듯하다.
그리스 공화국과 로마 공화국의 이른 시대에 교육의 다른 부분은 읽기와 쓰기와 그때의 셈법에 따른 셈하기를 배우는 것으로 이루어졌던 듯하다. 더 가멸진 시민은 이 재주를 대개 집에서 어떤 집안 선생의 도움으로 익힌 일이 잦았던 듯한데, 그 선생은 대개 노예이거나 해방된 노예였다. 그리고 더 가난한 시민은 삯을 받고 가르치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스승들의 학교에서 익혔다. 그러나 교육의 그런 부분은 죄다 저마다의 부모나 보호자가 돌볼 일로 내맡겨져 있었다. 나라가 그것을 살피거나 지휘하는 일을 맡았던 것 같지는 않다. 참으로 솔론의 법에 따르면, 아이에게 돈벌이가 되는 생업이나 사업을 가르치기를 저버린 부모는 그 아이가 봉양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듬어짐이 나아가 철학과 수사학이 유행하게 되자, 나은 축의 사람들은 이 유행하는 학문을 배우게 하려고 제 아이를 철학자와 수사학자의 학교로 보내곤 하였다. 그러나 그 학교는 공공이 떠받쳐 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공공에게서 겨우 눈감아 주는 대접을 받았을 뿐이다. 철학과 수사학에 대한 수요는 오랫동안 어찌나 적었던지, 둘 가운데 어느 것이든 그것을 가르친다고 처음 내세운 이들은 어느 한 도시에서도 꾸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녀야 하였다. 엘레아의 제논과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와 히피아스를 비롯한 여럿이 이렇게 살아갔다12. 수요가 늘어나자 철학 학교도 수사학 학교도 한곳에 자리를 잡았으니, 먼저 아테네에, 그 뒤에 다른 여러 도시에 그러하였다. 그러나 나라는 그 가운데 얼마에게 가르칠 자리를 따로 내주는 것 말고는 결코 더 북돋운 것 같지 않은데, 이 일조차 더러는 사사로운 기부자가 하였다. 나라는 아카데메이아를 플라톤에게, 리케이온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스토아를 스토아 학파를 세운 키티온의 제논에게 내준 듯하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제 정원을 제 학파에 물려주었다. 그러나 마르쿠스 안토니누스의 때에 이르기까지는 어느 가르치는 이도 공공에게서 봉급을 받았다거나 제 학생이 내는 사례금이나 수업료에서 나온 것 말고 다른 보수를 받았던 것 같지 않다13. 우리가 루키아노스에게서 배우듯이 저 철학하는 황제가 철학을 가르치는 어떤 이에게 베푼 은혜도 아마 그 자신의 목숨보다 오래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학위의 특권에 맞먹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어떤 특정한 생업이나 직업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 데에 그런 학교에 다녔어야 할 까닭도 없었다. 그 학교가 쓸모 있다는 의견이 학생을 그리로 끌어들일 수 없다면, 법은 누구에게도 그리로 가라고 억지로 시키지도 않았고 다녀왔다고 상을 주지도 않았다. 가르치는 이들은 제자에게 아무런 관할권도 없었고, 뛰어난 덕과 능력이 제 교육의 어느 한 부분을 맡은 이들에게 젊은이에게서 반드시 얻어 내는 저 자연스러운 권위 말고는 다른 권위가 없었다.
로마에서 시민법 공부는 시민 대부분이 아니라 몇몇 특정한 집안의 교육에 드는 한 부분을 이루었다. 그러나 법을 알고자 한 젊은이에게는 갈 공공 학교가 없었고, 그것을 안다고 여겨지는 친척과 벗의 무리에 드나드는 것 말고는 그것을 공부할 다른 길이 없었다. 아마 눈여겨볼 만한 것은, 열두 표의 법 가운데 많은 것이 그리스의 어떤 옛 공화국의 법을 본떠 온 것인데도14, 그리스의 어느 옛 공화국에서도 법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라난 적은 없었던 듯하다는 점이다. 로마에서 그것은 아주 일찍 학문이 되었고, 그것을 안다는 평판을 얻은 시민에게 적잖은 빛을 내려 주었다. 그리스의 옛 공화국에서, 특히 아테네에서 여느 법정은 수가 많고 따라서 어지러운 사람들의 무리로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거의 되는대로, 또는 떠들썩한 소리와 당파와 편 가르는 마음이 정해 주는 대로 판결하는 일이 잦았다. 부당한 판결이 남기는 부끄러움이 오백 명이나 천 명이나 천오백 명에게 나뉠 때에는(그들의 법정 가운데 얼마는 그토록 수가 많았다) 어느 한 사람에게 그리 무겁게 내려앉을 수 없었다. 이와 달리 로마에서 주요 법정은 한 사람의 재판관이나 적은 수의 재판관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평판은 특히 그들이 늘 공개로 의논하였으므로 섣부르거나 부당한 판결에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헷갈리는 사건에서 그런 법정은 나무람을 사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같은 법정이든 다른 법정이든 앞서 앉았던 재판관의 본보기나 선례 아래로 스스로 몸을 숨기려고 저절로 애썼을 것이다. 관행과 선례에 쏟은 이 마음이 로마법을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온 저 가지런하고 질서 있는 체계로 반드시 빚어냈고, 그와 같은 마음이 쏟아진 다른 모든 나라의 법에도 그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 폴리비오스와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가 그토록 자주 짚은 저 로마인의 성품이 그리스인의 그것보다 나았다는 것은, 아마 그 지은이들이 그 까닭으로 든 어떤 사정보다도 그들 법정의 더 나은 짜임새에서 온 것이었을 터이다. 로마인은 특히 맹세를 남달리 존중한 것으로 이름났다고 한다. 그러나 부지런하고 잘 아는 법정 앞에서만 맹세하는 데에 익은 백성은 떠들썩하고 어지러운 모임 앞에서 같은 일을 하는 데에 익은 백성보다 제가 무엇을 맹세하는지에 저절로 훨씬 더 마음을 쓸 것이다.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시민적 능력과 군사적 능력이 어느 근대 민족의 그것에 적어도 맞먹었음은 선뜻 받아들여질 것이다. 우리의 선입견은 아마 그것을 지나치게 높이 매기는 쪽에 가깝다. 그러나 군사 훈련에 걸린 것 말고는 나라가 그 큰 능력을 빚어내는 데에 아무런 애도 쓰지 않았던 듯하니, 그리스인의 음악 교육이 그것을 빚어내는 데에 이렇다 할 몫을 했으리라고는 나로서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 민족들 사이에서 나은 축의 사람들을 가르칠 스승은 그들 사회의 사정이 그들에게 배워 둘 것을 꼭 있어야 하거나 편하게 만드는 온갖 기예와 학문마다 찾아낼 수 있었던 듯하다. 그런 가르침에 대한 수요가 언제나 낳는 것, 곧 그것을 줄 재주를 낳았고, 얽매이지 않은 겨룸이 반드시 불러일으키는 서로 앞지르려는 마음이 그 재주를 아주 높은 완성의 자리까지 끌어올렸던 듯하다. 옛 철학자들이 불러일으킨 주의에서, 그들이 듣는 이들의 의견과 원리 위에 얻은 지배에서, 그리고 듣는 이들의 몸가짐과 이야기에 일정한 가락과 성품을 입히던 그들의 재능에서, 그들은 어느 근대의 가르치는 이보다 훨씬 나았던 듯하다. 근대에 와서 공공의 가르치는 이들의 부지런함은 그들을 제 특정한 직업에서 거두는 성공과 평판에 얼마쯤 기대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사정 탓에 얼마쯤 썩어 있다. 게다가 그들의 봉급은 그들과 겨루어 보겠다고 나서는 사사로운 가르치는 이를, 장려금을 받지 않고 거래하려 들면서 꽤 큰 장려금을 받고 거래하는 이들과 겨루는 상인과 같은 처지에 놓는다. 그가 제 물건을 거의 같은 값에 팔면 같은 이윤을 얻을 수 없으며, 파산과 결딴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가난과 거지 신세가 어김없이 그의 몫이 될 것이다. 그가 물건을 훨씬 비싸게 팔려 들면 손님이 어찌나 적어질 듯한지 그의 형편은 그리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학위의 특권은 많은 나라에서 배운 직업에 든 사람 대부분에게, 곧 배운 교육을 받아야 할 이들의 훨씬 큰 몫에게 꼭 있어야 하거나 적어도 더없이 편한 것이다. 그런데 그 특권은 공공의 가르치는 이의 강의에 나가야만 얻을 수 있다. 어떤 사사로운 가르치는 이의 더없이 뛰어난 가르침에 더없이 꼼꼼히 나간다 해도 그것을 요구할 자격이 늘 주어지지는 않는다. 대학에서 흔히 가르치는 학문 가운데 어느 것이든 그것을 가르치는 사사로운 이가 근대에 와서 대체로 글하는 사람 가운데 가장 낮은 축으로 여겨지는 것은 이 여러 까닭에서다. 참된 능력을 지닌 사람이 그것을 쏟을 자리로 이보다 더 낯 깎이거나 더 벌이가 되지 않는 일자리를 찾아내기란 어렵다. 학교와 칼리지의 기부 재산은 이런 식으로 공공의 가르치는 이들의 부지런함을 썩혔을 뿐 아니라, 좋은 사사로운 가르치는 이를 두기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교육을 위한 공공 기관이 없다면, 얼마쯤 수요가 있지 않은 체계나 학문, 또는 그때의 사정이 배워 두기를 꼭 있어야 하거나 편하거나 적어도 유행하는 일로 만들지 않은 체계나 학문은 하나도 가르쳐지지 않을 것이다. 사사로운 가르치는 이는 쓸모 있다고 인정되는 학문의 낡아 터지고 케케묵은 체계를 가르치거나, 한낱 쓸모없고 현학적인 궤변과 헛소리 더미라고 다들 믿는 학문을 가르쳐서는 결코 제 셈이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런 체계, 그런 학문은 교육을 위하여 단체로 세워진 저 무리, 곧 제 번창과 제 수입이 제 근면과 크게 상관없는 무리 말고는 어디서도 살아남을 수 없다. 교육을 위한 공공 기관이 없다면, 신사가 애쓰고 능력을 기울여 그때 사정이 줄 수 있다고 여겨지는 가장 온전한 교육 과정을 마치고 나서, 신사와 세상 사람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을 죄다 모른 채 세상에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자를 가르치기 위한 공공 기관은 없으며, 그래서 그들이 지나는 여느 교육 과정에는 쓸모없거나 터무니없거나 허황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제 부모나 보호자가 그들이 배워 두는 것이 꼭 있어야 하거나 쓸모 있다고 판단하는 것을 배우며, 그 밖의 것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 그들 교육의 어느 부분이나 얼마쯤 쓸모 있는 목적으로 뚜렷이 기울어져 있으니, 그 몸의 타고난 끌림을 돋우는 것이거나, 그 마음을 삼감과 조심과 정숙함과 알뜰함 쪽으로 빚는 것이거나, 그들을 한 집안의 안주인이 될 만하게 만들고 그리되었을 때에 제대로 처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자는 제 삶의 어느 부분에서나 제 교육의 어느 부분에서든 얼마간의 편함이나 이로움을 느낀다. 남자가 제 삶의 어느 부분에서든 제 교육 가운데 더없이 고되고 더없이 성가신 부분에서 얼마간의 편함이나 이로움을 얻는 일은 드물다.
그렇다면 대중은 백성의 교육에 아무런 마음도 쓰지 말아야 하는가 하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얼마간 마음을 써야 한다면, 백성의 여러 층에서 대중이 마음 써야 할 교육의 여러 부분은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마음을 써야 하는가?
어떤 경우에 사회의 형편은 대부분의 개인을, 정부가 아무런 마음을 쓰지 않아도 그 형편이 요구하거나 어쩌면 받아들일 수 있는 거의 모든 능력과 덕을 그들 안에 저절로 빚어내는 그런 자리에 반드시 놓아 준다. 다른 경우에 사회의 형편은 대부분의 개인을 그런 자리에 놓아 주지 않으며, 백성의 큰 무리가 거의 온통 썩고 못쓰게 되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가 얼마쯤 마음을 써야 한다.
분업이 나아감에 따라 노동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훨씬 큰 몫, 곧 백성의 큰 무리가 하는 일자리는 아주 단순한 몇 가지 움직임에, 더러는 한두 가지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사람 대부분의 깨달음은 그들이 여느 때 하는 일자리로 반드시 빚어진다. 온 삶을 몇 가지 단순한 움직임을 해내는 데에 보내고 그 결과마저 어쩌면 언제나 같거나 거의 같은 사람은, 제 깨달음을 쏟거나 제 궁리를 부려 결코 일어나지 않는 어려움을 풀 방편을 찾아낼 일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그렇게 힘쓰는 버릇을 저절로 잃고, 대체로 사람이라는 피조물이 될 수 있는 데까지 아둔하고 무지해진다. 그 마음의 무디어짐은 그를 사리에 맞는 어떤 이야기도 맛보거나 거들지 못하게 만들 뿐 아니라, 너그럽거나 고결하거나 부드러운 어떤 마음도 품지 못하게 만들고, 따라서 사사로운 삶의 여느 의무 가운데 많은 것에 대해서조차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만든다. 제 나라의 크고 널리 걸친 이해에 대해서는 그는 아주 판단할 힘이 없으며, 그러지 않게 만들려고 남다른 애를 쏟지 않는 한 전쟁에서 제 나라를 지킬 힘도 마찬가지로 없다. 한자리에 붙박인 그의 삶이 한결같다 보니 저절로 그 마음의 용기가 썩고, 군인의 들쑥날쑥하고 앞이 뻔하지 않고 모험이 따르는 삶을 몸서리치며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그 몸의 놀림마저 썩혀서, 그가 길러진 일자리 말고 다른 어떤 일자리에서도 제 힘을 기운차고 끈기 있게 쏟지 못하게 만든다. 제 특정한 생업에서 보이는 그의 솜씨는 이런 식으로 그의 지적이고 사회적이고 무인다운 덕을 값으로 치르고 얻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개량되고 문명화된 어느 사회에서나 노동하는 빈민, 곧 백성의 큰 무리는 정부가 그것을 막으려고 얼마간 애쓰지 않는 한 반드시 이런 처지에 빠지고 만다.
흔히 미개하다 불리는 사회, 곧 사냥하는 이들과 양 치는 이들의 사회, 그리고 제조업의 나아짐과 외국 상업의 뻗침에 앞선 저 거친 농사 상태에 있는 농사꾼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람마다 하는 일자리가 여러 가지여서 저마다 제 힘을 쏟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어려움을 풀 방편을 지어내지 않을 수 없다. 궁리는 살아 있고, 마음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거의 모든 낮은 층의 깨달음을 마비시키는 듯한 저 졸린 아둔함에 빠지도록 내버려지지 않는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른바 저 미개한 사회에서는 사람마다 전사다. 사람마다 또한 얼마쯤 정치가여서, 사회의 이해와 그것을 다스리는 이들의 몸가짐에 대하여 그럭저럭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제 우두머리가 평화로울 때에 얼마나 잘 판단하는지, 전쟁에서 얼마나 잘 이끄는지는 그들 가운데 거의 어느 한 사람의 살핌에도 뻔히 보인다. 참으로 그런 사회에서는 누구도 더 문명화된 상태에서 몇몇 사람이 더러 지니는 저 나아지고 다듬어진 깨달음을 제대로 얻을 수 없다. 거친 사회에서는 개인마다 하는 일자리에 여러 가지가 꽤 있으나 사회 전체가 하는 일자리에는 그리 여러 가지가 없다. 사람마다 다른 어느 사람이 하거나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하거나 할 수 있다. 사람마다 꽤 많은 앎과 재간과 궁리를 지니고 있으나 크게 지닌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흔히 지니고 있는 정도만으로도 대체로 그 사회의 단순한 일 전체를 꾸려 가기에 넉넉하다. 이와 달리 문명화된 상태에서는 대부분의 개인이 하는 일자리에 여러 가지가 적으나 사회 전체가 하는 일자리에는 거의 끝없이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여러 가지 일자리는 스스로 어느 특정한 일자리에도 매여 있지 않아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살필 겨를과 마음이 있는 저 몇몇 사람의 헤아림 앞에 거의 끝없이 여러 가지 것을 내놓는다. 그토록 여러 가지 것을 헤아리다 보면 그들의 마음은 끝없는 견줌과 엮음으로 반드시 단련되고, 그들의 깨달음은 남다르게 날카로워지고 널리 미치게 된다. 그러나 그 몇몇 사람이 마침 아주 남다른 자리에 놓이지 않는 한, 그들의 큰 능력은 그들 자신에게 명예롭기는 해도 그 사회의 좋은 통치나 행복에는 아주 조금밖에 이바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 몇몇 사람의 큰 능력에도 아랑곳없이 사람다운 성품의 더 고결한 부분은 죄다 백성의 큰 무리에서 크게 지워지고 꺼져 버릴 수 있다.
문명화되고 상업이 도는 사회에서 여느 백성의 교육은 아마 얼마간의 신분과 재산이 있는 이들의 교육보다 대중의 마음 씀을 더 필요로 할 것이다. 얼마간의 신분과 재산이 있는 이들은 세상에서 이름을 떨치려고 마음먹은 저 특정한 사업이나 직업이나 생업에 들어서기 전에 대개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이 된다. 그 전에 그들은 저를 대중의 존경에 걸맞게 만들어 주거나 그럴 만하게 만들어 주는 온갖 재주를 익히거나, 적어도 뒷날 익히도록 채비할 넉넉한 시간이 있다. 그들의 부모나 보호자는 대개 그들이 그런 재주를 갖추기를 넉넉히 마음 졸이며 바라고, 대부분의 경우에 그 목적에 필요한 비용을 기꺼이 들이려 한다. 그들이 언제나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교육에 들인 비용이 모자라서인 경우가 드물고 그 비용을 잘못 쓴 탓이다. 그것은 스승이 모자라서인 경우가 드물고, 구할 수 있는 스승의 태만과 무능 탓이며, 지금 형편으로 더 나은 이를 찾기 어려운, 아니 차라리 찾기 불가능한 탓이다. 게다가 얼마간의 신분과 재산이 있는 이들이 제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자리는 여느 백성의 일자리처럼 단순하고 한결같지 않다. 그것은 거의 다 몹시 얽혀 있어 손보다 머리를 더 쓰게 한다. 그런 일자리에 매인 이들의 깨달음은 쓰지 않아 무디어지는 일이 드물다. 게다가 얼마간의 신분과 재산이 있는 이들의 일자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그들을 들볶는 그런 것인 경우가 드물다. 그들은 대개 꽤 많은 겨를이 있어, 그동안 쓸모 있는 앎이든 꾸미는 앎이든 삶의 이른 부분에서 그 바탕을 닦아 두었거나 얼마쯤 맛을 들여 둔 갈래마다 스스로를 갈고닦을 수 있다.
여느 백성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는 교육에 쓸 시간이 거의 없다. 그 부모는 어린 시절에조차 그들을 먹여 살리기에도 벅차다. 일할 수 있게 되자마자 그들은 제 생계를 벌 수 있는 어떤 생업에 매달려야 한다. 게다가 그 생업은 대개 어찌나 단순하고 한결같은지 깨달음을 거의 단련시키지 않으며, 동시에 그들의 노동은 어찌나 끊임없고 어찌나 모진지 다른 무엇에 매달릴, 아니 그것을 생각해 볼 겨를조차 거의 남겨 주지 않고 마음은 더욱 남겨 주지 않는다.
그러나 문명화된 어느 사회에서든 여느 백성이 얼마간의 신분과 재산이 있는 이들만큼 잘 가르쳐질 수는 없다 하더라도, 교육의 더없이 요긴한 부분인 읽기와 쓰기와 셈하기는 삶의 아주 이른 시기에 익힐 수 있어서, 가장 낮은 일자리로 길러질 이들조차 그 대부분은 그 일자리에 매이기 전에 그것을 익힐 시간이 있다. 아주 적은 비용으로 대중은 거의 온 백성에게 교육의 그 더없이 요긴한 부분을 익힐 일을 쉽게 해 주고 북돋우고 지울 수조차 있다.
대중은 교구나 구역마다 작은 학교를 세워 여느 날품팔이조차 낼 만한 아주 알맞은 갚음으로 아이를 가르칠 수 있게 함으로써 이 익힘을 쉽게 해 줄 수 있으니, 스승의 삯은 얼마쯤은 대중이 내되 죄다 내지는 않아야 한다. 죄다 내거나 주로 낸다면 그는 머지않아 제 일을 저버리는 것을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그런 교구 학교를 세운 덕분에 여느 백성이 거의 다 읽기를 배웠고 그 가운데 아주 큰 몫이 쓰기와 셈하기를 배웠다. 잉글랜드에서는 자선 학교를 세운 것이 같은 종류의 효과를 냈으나 그만큼 두루 미치지는 않았으니15, 그 설립이 그만큼 두루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작은 학교에서 아이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데 쓰는 책이 흔히 그러한 것보다 조금 더 가르침이 될 만한 것이라면, 그리고 여느 백성의 아이가 더러 거기서 배우는 라틴어 나부랭이, 그들에게 쓸모 있는 일이라고는 좀처럼 있을 수 없는 그것 대신에 기하학과 역학의 첫걸음을 배운다면, 이 층의 백성이 받는 글 배움은 아마 될 수 있는 데까지 온전해질 것이다. 기하학과 역학의 원리를 갖다 쓸 기회를 얼마쯤 주지 않는 여느 생업은 거의 없으며, 따라서 여느 백성을 그 원리에 차츰 단련시키고 나아지게 하지 않을 생업도 거의 없는데, 그 원리야말로 더없이 드높은 학문으로 가는, 또한 더없이 쓸모 있는 학문으로 가는 반드시 거쳐야 할 들머리다.
대중은 교육의 그 더없이 요긴한 부분에서 뛰어난 여느 백성의 아이에게 조그마한 포상금과 남다름을 나타내는 작은 표를 줌으로써 그것을 익히도록 북돋울 수 있다.
대중은 어떤 동업조합에서든 자유민 자격을 얻거나 시골 마을에서든 특허 받은 읍에서든 어떤 생업을 차리도록 허락받기 전에 누구나 그 부분에서 시험이나 검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거의 온 백성에게 교육의 더없이 요긴한 부분을 익힐 일을 지울 수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국이 저마다 제 시민의 무인다운 기개를 지켜 낸 것은 바로 이런 식으로, 곧 군사 훈련과 체조를 익힐 일을 쉽게 해 주고 북돋우고 온 백성에게 그 훈련을 배울 일을 지우기까지 함으로써였다. 그들은 그 훈련을 배우고 해 볼 자리를 정해 주고 일정한 스승에게 그 자리에서 가르칠 특권을 내줌으로써 그 익힘을 쉽게 해 주었다. 그 스승들은 봉급도 어떤 종류의 배타적 특권도 가졌던 것 같지 않다. 그들이 받는 갚음은 죄다 제 학생에게서 얻는 것으로 이루어졌고, 공공 김나시온에서 제 훈련을 배운 시민은 사사로이 배운 시민이 그것을 똑같이 잘 배우기만 했다면 그에 견주어 아무런 법적 이로움도 누리지 못하였다. 저 공화국들은 그 훈련에서 뛰어난 이에게 조그마한 포상금과 남다름을 나타내는 표를 내려 줌으로써 그 익힘을 북돋웠다. 올림피아나 이스트미아나 네메아 경기에서 상을 탄 것은 그것을 탄 사람뿐 아니라 그의 온 집안과 겨레붙이에게 빛을 내려 주었다. 시민이면 누구나 부름을 받으면 공화국의 군대에서 몇 해 동안 복무해야 한다는 의무가, 그것 없이는 그 복무에 알맞을 수 없는 그 훈련을 배울 일을 넉넉히 지웠다.
나아짐이 이어지는 가운데 군사 훈련의 관행이 정부가 그것을 떠받치려고 제대로 애쓰지 않으면 차츰 스러지고 그와 함께 백성의 큰 무리의 무인다운 기개도 스러진다는 것은 근대 유럽의 보기가 넉넉히 보여 준다. 그러나 어느 사회의 안전이나 언제나 백성의 큰 무리의 무인다운 기개에 얼마쯤 기댈 수밖에 없다. 참으로 오늘날에는 그 무인다운 기개만으로, 잘 단련된 상비군이 받쳐 주지 않는 채로는 어느 사회를 지키고 안전하게 하기에 아마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마다 군인의 기개를 지녔다면 더 작은 상비군으로도 넉넉할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그 기개는 참된 것이든 지어낸 것이든 상비군에서 온다고 흔히 걱정하는 자유에 미치는 위험을 아주 크게 줄여 줄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그 군대가 밖에서 쳐들어오는 이를 맞아 움직이는 일을 아주 쉽게 해 주는 만큼, 불행히도 그 움직임이 나라의 국제로 향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만큼 그것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옛 제도는 백성의 큰 무리의 무인다운 기개를 지키는 데에 이른바 근대의 민병 제도보다 훨씬 더 힘이 있었던 듯하다. 그것은 훨씬 더 단순하였다. 한번 자리 잡히고 나면 그것은 스스로 굴러갔고, 그것을 더없이 온전한 기운으로 지켜 가는 데에 정부가 마음 쓸 일이 거의 또는 전혀 없었다. 이와 달리 어느 근대 민병의 얽힌 규정이든 그것을 그럭저럭 굴러가게라도 지키려면 정부가 끊임없이 괴롭게 마음을 써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그것은 노상 아주 버려지고 쓰이지 않게 된다. 게다가 옛 제도가 미치는 힘은 훨씬 더 두루 미쳤다. 그것을 거쳐 백성의 온 무리가 무기 쓰는 법을 온전히 배웠으나, 어느 근대 민병의 규정으로든 그렇게 배울 수 있는 이는 어쩌면 스위스의 것 말고는 그 아주 작은 몫뿐이다. 그런데 겁쟁이, 곧 스스로를 지킬 수도 스스로의 원수를 갚을 수도 없는 사람은 사람다운 성품의 더없이 요긴한 부분 하나가 없음이 뚜렷하다. 그는 몸의 더없이 요긴한 지체 가운데 얼마를 잃었거나 그것을 쓸 수 없게 된 사람이 제 몸에서 그러한 만큼이나 제 마음에서 잘리고 일그러져 있다. 그가 둘 가운데 더 딱하고 더 가엾음이 뚜렷하니, 죄다 마음에 자리 잡은 행복과 불행은 몸이 성한지 성하지 않은지, 잘렸는지 온전한지보다 마음이 그러한지에 반드시 더 기대기 때문이다. 백성의 무인다운 기개가 사회를 지키는 데에 아무런 쓸모가 없다 하더라도, 겁 많음이 반드시 안고 있는 저 마음의 잘림과 일그러짐과 딱함이 백성의 큰 무리에 퍼지는 것을 막는 일은 그래도 정부가 더없이 진지하게 마음 쓸 만한 일일 터이니, 죽을병도 위험한 병도 아니지만 문둥병이나 그 밖의 역겹고 거슬리는 병이 그들 사이에 퍼지는 것을 막는 일이 정부가 더없이 진지하게 마음 쓸 만한 일인 것과 꼭 같으며, 어쩌면 그토록 큰 공공의 해악을 막는 것 말고는 그 마음 씀에서 다른 공공의 이로움이 나오지 않을지라도 그러하다.
주
1. 옮긴이 — 스털링은 영국 화폐를 말한다. 1파운드는 20실링이고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2. 옮긴이 — 하이다르 알리(1720?~1782)는 인도 남부 마이소르의 통치자로, 1780년에 동인도회사의 영토를 쳐들어갔다.
3. 옮긴이 — 앙드레 모를레(1727~1819)는 프랑스의 성직자이자 저술가다.
4. 옮긴이 — 저본에는 이 자리가 usurers 곧 고리대금업자로 찍혀 있으나, 앞뒤 논증으로 보아 insurers 곧 보험업자다.
5. 옮긴이 — 평가는 액면에 적힌 값을 말한다. 「평가보다 아래로 팔린다」는 것은 시세가 액면값에 못 미친다는 뜻이다.
6. 옮긴이 — 1편에서는 university를 라틴어 본뜻을 살려 「우니베르시타스」로 옮겼으나, 그 대목은 대장장이 조합까지 그 이름으로 불리던 것을 따지는 자리였다. 이 장의 university는 오늘날의 대학을 가리키므로 「대학」으로 옮긴다.
7. 옮긴이 — 장학금과 급비와 보조금은 원어가 각각 scholarship, exhibition, bursary이며, 셋 다 특정한 칼리지에 딸린 기부 재산에서 나와 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대 주던 것이다.
8. 옮긴이 — 성직자 특전은 성직자가 세속 법정이 아니라 교회 법정에서만 재판받던 중세의 제도로, 잉글랜드에서는 1827년에 없어졌다.
9. 옮긴이 — 불가타는 4세기 말에 히에로니무스가 옮긴 라틴어 성경이며, 트리엔트 공의회가 1546년에 그것을 공인 본문으로 선언하였다.
10. 옮긴이 — 저본에는 이 자리가 more for the education으로 찍혀 낱말이 하나 빠져 있으나, 앞뒤로 보아 more fit for the education 곧 「기르기에 더 알맞게」다.
11. 옮긴이 —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기원전 163?~133)와 가이우스 그라쿠스(기원전 154?~121) 형제를 말한다.
12. 옮긴이 — 앞의 제논은 엘레아의 제논(기원전 490?~430?)이고 뒤의 제논은 스토아 학파를 세운 키티온의 제논(기원전 334?~262?)으로 서로 다른 사람이다. 저본은 키티온을 Citta로 적었다.
13. 옮긴이 — 마르쿠스 안토니누스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이며, 『명상록』을 남겼다.
14. 옮긴이 — 열두 표의 법은 기원전 451년 무렵 로마에서 청동판에 새겨 공포한 최초의 성문법이다.
15. 옮긴이 — 자선 학교는 17세기 말부터 잉글랜드에서 기부금으로 세워 가난한 집 아이에게 읽기와 쓰기와 교리를 가르치던 학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