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5장
「물론 요즘 라주미힌한테 가서 일자리를 부탁해 볼 생각이긴 했지, 가정교사 자리라도 구해 달라고 해 볼까 하고……」 라스콜니코프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가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나? 가정교사 자리를 구해 준다고 치자, 마지막 파딩1 한 닢까지 나눠 준다고 치자, 그에게 파딩이 있기나 하다면 말이지만, 그래서 내가 장화를 사 신고 남을 가르치러 다닐 만큼 말끔해진다고 치자…… 흠……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그렇게 번 동전 몇 푼으로 뭘 한다지? 지금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다. 라주미힌한테 간다는 건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짓이다…….」
어째서 지금 라주미힌에게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은 그 자신이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그를 뒤흔들었다. 그는 겉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이 행동 속에서 어떤 불길한 의미를 불안하게 자꾸만 찾고 있었다.
「라주미힌 하나로 이 모든 걸 바로잡고 빠져나갈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내가 기대했단 말인가?」 그는 당황해서 자신에게 물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며 이마를 문질렀고, 이상한 일이지만, 오랜 궁리 끝에 별안간, 마치 저절로 우연히 떠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의 기괴한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흠…… 라주미힌한테로.」 그가 최종 결심에라도 이른 듯 별안간 차분하게 말했다. 「물론 라주미힌한테 가긴 갈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에게 가는 건…… 그것 다음 날, 그것이 끝나고 모든 게 새로 시작될 때다…….」
그리고 별안간 그는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것 다음이라니.」 그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일어나기는 하는 건가? 그게 정말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벤치를 떠나 거의 뛰다시피 걸어갔다. 집 쪽으로 돌아설 작정이었으나 집에 간다는 생각이 갑자기 지독한 혐오로 그를 가득 채웠다. 그 구멍 속에서, 그 끔찍한 벽장 같은 제 방 안에서, 이 모든 것이 한 달 전부터 그의 안에서 자라 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되는대로 걸어갔다.
신경의 떨림은 오한이 느껴질 만큼의 열로 옮아가 있었다. 더위 속에서도 그는 추웠다. 그는 일종의 안간힘으로, 거의 무의식적으로, 어떤 내적인 갈망에서, 주의를 돌려 줄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듯 눈앞의 온갖 사물을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는 시시각각 다시 생각 속으로 가라앉았다. 흠칫 놀라 고개를 다시 들고 둘러볼 때면 그는 방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곧바로 잊어버렸다. 그런 식으로 그는 바실리옙스키섬을 가로질러 작은 네바강으로 나왔고, 다리를 건너 섬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를 에워싸고 짓누르던 도시의 먼지와 거대한 집들을 지나온 뒤라, 초록과 신선함은 처음에는 그의 지친 눈에 위안이 되었다. 여기에는 술집도, 숨 막히는 답답함도, 악취도 없었다. 그러나 이 새롭고 유쾌한 감각은 이내 병적인 짜증으로 옮아갔다. 이따금 그는 푸른 잎사귀들 사이에 선 밝게 칠한 여름 별장 앞에 멈춰 서서 울타리 너머를 들여다보았고, 베란다와 발코니에 나와 있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여자들과 정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멀찍이 바라보았다. 특히 그의 눈길을 붙든 것은 꽃이었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꽃을 오래 바라보았다. 호화로운 마차들과 말을 탄 남녀들도 그와 마주쳤는데,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으나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잊어버렸다. 한번은 걸음을 멈추고 돈을 세어 보았다. 삼십 코페이카가 있었다. 「순경에게 이십, 편지 값으로 나스타시야에게 삼, 그러니 어제 마르멜라도프네에는 사십칠이나 오십을 준 셈이군.」 그는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채로 그렇게 셈을 맞춰 보며 생각했으나, 무슨 목적으로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는지는 이내 잊어버렸다. 밥집인지 술집인지를 지나면서 그는 그것을 떠올렸고, 자기가 배고프다는 것을 느꼈다……. 술집에 들어가 그는 보드카 한 잔을 마시고 무슨 만두 같은 것을 하나 먹었다. 나머지는 걸어 나오면서 먹어 치웠다. 보드카를 입에 댄 지 오래되었던 터라, 한 잔밖에 마시지 않았는데도 술은 당장 그에게 작용했다. 다리가 갑자기 무거워졌고 큰 졸음이 몰려왔다. 그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으나, 페트롭스키 섬에 이르러 완전히 기진해 멈춰 섰고, 길에서 벗어나 덤불 속으로 들어가 풀밭에 주저앉더니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뇌가 병적인 상태에 있을 때, 꿈은 흔히 유별난 실감과 선명함을, 그리고 현실과의 비상한 닮음을 띤다. 때로는 괴물 같은 형상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배경과 그림 전체가 어찌나 진실에 가깝고 어찌나 섬세한 세부로 가득 차 있는지, 게다가 그 세부들이 어찌나 뜻밖이면서도 어찌나 예술적으로 일관되는지, 꿈꾸는 자가 설령 푸시킨이나 투르게네프 같은 예술가라 하더라도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결코 그것들을 지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병든 꿈은 언제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과로하고 착란에 빠진 신경 조직에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라스콜니코프는 무서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어린 시절로, 자기가 태어난 작은 읍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일곱 살쯤 된 아이였고, 축일 저녁에 아버지와 함께 교외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잿빛의 무거운 날이었고, 그 일대는 그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깨어 있을 때의 기억보다 꿈속에서 훨씬 더 생생하게 떠올랐다. 작은 읍은 손바닥처럼 휑한 평지 위에 서 있었고 버드나무 한 그루 가까이에 없었으며, 다만 저 멀리 지평선 맨 끝에 잡목숲 하나가 검은 얼룩처럼 누워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채마밭에서 몇 걸음 더 간 자리에 술집이 하나, 큰 술집이 하나 서 있었는데, 아버지와 함께 그 앞을 지날 때면 그 집은 언제나 그에게 혐오를, 심지어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거기에는 늘 사람이 북적였고, 늘 고함과 웃음과 욕설이, 흉측하게 쉰 노랫소리가, 그리고 자주 싸움이 있었다. 술에 취한 끔찍한 몰골의 사내들이 술집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런 자들과 마주치면 그는 온몸을 떨며 아버지에게 바짝 매달리곤 했다. 술집 근처에서 길은 먼지투성이 소로가 되었고, 그 먼지는 언제나 검었다. 구불구불한 길이었고, 백 걸음쯤 더 가면 오른쪽으로 꺾여 묘지로 이어졌다. 묘지 한가운데에는 초록색 둥근 지붕을 인 석조 교회가 서 있었는데, 그는 오래전에 죽어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머니를 기리는 추도 예배가 있을 때면 일 년에 두세 번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그곳으로 미사2를 보러 가곤 했다. 그럴 때면 식탁보로 싸맨 흰 접시에, 건포도를 십자 모양으로 박은 특별한 쌀 푸딩3을 담아 가지고 갔다. 그는 그 교회를, 예스럽고 장식 없는 이콘들을, 그리고 머리를 떠는 늙은 사제를 사랑했다. 돌을 얹어 표시해 둔 할머니의 무덤 옆에는 생후 여섯 달에 죽은 남동생의 작은 무덤이 있었다. 그는 그 아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으나 동생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고, 묘지에 갈 때마다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성호를 긋고 몸을 굽혀 그 작은 무덤에 입을 맞추곤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아버지와 함께 묘지로 가는 길에 술집 앞을 지나는 꿈을 꾸고 있었고, 아버지의 손을 잡은 채 겁에 질린 눈으로 술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가지 별난 정황이 그의 눈길을 끌었으니, 무슨 잔치라도 벌어진 듯 알록달록하게 차려입은 읍내 사람들과 농사꾼 아낙들과 그 남편들과 온갖 잡배들이 떼를 지어 있었으며, 하나같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하나같이 어느 정도씩은 취해 있었다. 술집 입구 가까이에 짐마차가 한 대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짐마차였다. 그것은 보통 무거운 짐말들이 끌고 포도주 통이나 그 밖의 무거운 짐을 싣는 그런 큰 짐마차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그 큰 짐말들을, 긴 갈기와 굵은 다리와 느리고 고른 걸음으로, 힘들이는 기색이라고는 없이, 마치 짐이 없을 때보다 있을 때가 오히려 수월하다는 듯이 산더미 같은 짐을 끌고 가는 그 말들을 바라보는 것을 언제나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 이상하게도, 그런 짐마차의 채 사이에 여윈 작은 적갈색 짐승이, 농민들이 부리는 그 비루먹은 말들 가운데 하나가 매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런 말들이 장작이나 건초를 잔뜩 실은 짐 아래서, 특히 바퀴가 진창이나 바퀴 자국에 빠졌을 때 젖 먹던 힘까지 짜내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러면 농민들은 그 말들을 어찌나 모질게 때리는지, 때로는 코와 눈까지 때렸고, 그는 그것들이 하도 가엾고 하도 가여워서 울음이 터질 지경이었으며, 그럴 때면 어머니가 언제나 그를 창가에서 데려가곤 했다. 별안간 고함과 노래와 발랄라이카 소리가 크게 일더니, 술집에서 몸집이 크고 잔뜩 취한 농민들이 붉고 푸른 셔츠를 입고 겉옷을 어깨에 걸친 채 우르르 몰려나왔다.
「타라, 타!」 그중 하나가 소리쳤다. 목이 굵고 얼굴이 당근처럼 벌건 젊은 농민이었다. 「죄다 태워 주마, 타라니까!」
그러나 당장 군중 속에서 웃음과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저따위 짐승으로 우릴 죄다 태운다고!」
「미콜카, 너 미쳤냐, 그런 짐마차에 저따위 비루먹은 말을 매다니?」
「저 암말은 아무리 봐줘도 스무 살은 됐다, 이 사람들아!」
「타라, 죄다 태워 주마.」 미콜카가 맨 먼저 짐마차로 뛰어올라 고삐를 잡고 앞쪽에 똑바로 선 채 다시 소리쳤다. 「밤색 말은 마트베이가 끌고 나갔어.」 그가 마차 위에서 외쳤다 ― 「그런데 이 짐승이, 이 사람들아, 내 속을 아주 뒤집어 놓는단 말이다. 죽여 버리고 싶을 지경이야. 그저 사료만 축내지. 타라니까! 내가 저년을 내달리게 해 주마! 내달릴 거다!」 그러고는 채찍을 집어 들고 흥이 나서 그 작은 암말을 후려칠 채비를 했다.
「타라! 어서!」 군중이 웃었다. 「들었냐, 저년이 내달린단다!」
「내닫긴 뭘 내달려! 저년은 십 년째 내달려 본 적이 없다!」
「종종걸음이나 치겠지!」
「저년 걱정할 것 없다, 이 사람들아, 하나씩 채찍을 들어라, 채비해!」
「좋다! 갈겨라!」
그들은 웃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모두 미콜카의 짐마차로 기어올랐다. 여섯이 탔는데도 자리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들은 살이 찌고 뺨이 불그레한 여자 하나를 끌어 올렸다. 붉은 무명옷을 입고 구슬을 단 뾰족한 머리쓰개를 쓰고 두꺼운 가죽신을 신은 여자였는데, 호두를 까면서 웃고 있었다. 둘러선 군중도 웃고 있었다. 사실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저 비루먹은 말이 저 마차 가득한 사람들을 싣고 내달려야 한다니! 마차에 탄 젊은 녀석 둘이 미콜카를 거들려고 막 채찍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 하는 고함과 함께 암말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당겼으나, 내닫기는커녕 앞으로 거의 움직이지도 못했다. 말은 다리를 버둥거렸고 헐떡였고, 우박처럼 쏟아지는 세 개의 채찍 아래 몸을 움츠렸다. 마차 위와 군중 속의 웃음이 배가되었지만, 미콜카는 노발대발하여 암말이 정말로 내달릴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미친 듯이 후려쳤다.
「나도 좀 타자, 이 사람들아.」 군중 속의 젊은 사내 하나가 구미가 동해 소리쳤다.
「타라, 죄다 타라.」 미콜카가 외쳤다. 「저년이 다 끌 거다. 때려죽여 버리겠다!」 그러고는 분에 못 이겨 제정신이 아닌 채로 암말을 치고 또 쳤다.
「아버지, 아버지.」 그가 외쳤다. 「아버지, 저 사람들이 뭘 하는 거예요? 아버지, 저 사람들이 불쌍한 말을 때려요!」
「가자, 어서 가자!」 아버지가 말했다. 「취해서 어리석은 짓들을 하는 거다, 장난을 치는 거야. 이리 오너라, 보지 마라!」 그러면서 그를 끌어당기려 했으나 그는 그 손을 뿌리치고 공포에 제정신을 잃은 채 말에게로 달려갔다. 가엾은 짐승은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헐떡이며 멈춰 섰다가 다시 당기고는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때려죽이는 거다.」 미콜카가 외쳤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끝장을 내 주마!」
「지금 무슨 짓이냐, 네가 그리스도교인이냐, 이 악마 같은 놈아?」 군중 속의 한 노인이 소리쳤다.
「저런 걸 본 사람이 있나? 저따위 비루먹은 말이 저만한 짐을 끌다니.」 또 다른 자가 말했다.
「저년을 죽이겠구나.」 세 번째 사람이 소리쳤다.
「참견 마라! 내 물건이다, 내 마음대로 한다. 더 타라! 죄다 타라! 내 기어이 저년을 내달리게 하고야 말겠다!……」
돌연 웃음이 폭소로 터져 모든 것을 덮어 버렸다. 매질 세례에 성이 난 암말이 힘없이 뒷발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인조차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저따위 비참한 작은 짐승이 뒷발질을 해 보겠다고 하다니!
군중 속의 젊은 녀석 둘이 채찍을 집어 들고 암말에게 달려가 옆구리를 때렸다. 하나는 이쪽으로, 하나는 저쪽으로 달려갔다.
「낯짝을 때려라, 눈을, 눈을 때려!」 미콜카가 외쳤다.
「노래나 한 자락 뽑아라, 이 사람들아.」 마차 위에서 누군가 소리쳤고, 마차에 탄 사람들이 모두 방탕한 노래에 목청을 합치며 탬버린을 울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여자는 계속 호두를 까며 웃고 있었다.
…… 그는 암말 옆을 달렸고, 앞질러 달렸고, 말이 눈을 가로질러, 바로 눈을 맞고 채찍질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울고 있었고, 숨이 막혔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사내들 가운데 하나가 채찍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쳤으나 그는 느끼지 못했다. 그는 두 손을 쥐어짜며 비명을 지르고는,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젓고 있던, 머리가 세고 수염이 센 노인에게로 달려갔다. 한 여자가 그의 손을 붙들어 데려가려 했으나 그는 그 손을 뿌리치고 암말에게로 도로 달려갔다. 말은 거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나 다시 한번 뒷발질을 하기 시작했다.
「뒷발질이냐? 내가 버릇을 고쳐 주마.」 미콜카가 사납게 소리쳤다. 그는 채찍을 내던지고 몸을 숙여 마차 바닥에서 길고 굵은 채를 집어 들더니, 한쪽 끝을 두 손으로 붙잡고 안간힘을 써서 암말 위로 휘둘렀다.
「깔아뭉개겠다.」 그의 주위에서 고함이 터졌다. 「죽이겠구나!」
「내 물건이다.」 미콜카가 소리치며 채를 휘둘러 내리쳤다. 묵직하게 퍽 하는 소리가 났다.
「패라, 패! 왜 멈췄냐?」 군중 속에서 여러 목소리가 외쳤다.
그리고 미콜카는 두 번째로 채를 휘둘렀고, 그것은 두 번째로 재수 없는 암말의 등뼈 위에 떨어졌다. 말은 뒷다리를 꺾고 주저앉았다가 앞으로 비틀거리며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당겼고, 이쪽으로 한 번 저쪽으로 한 번 당기며 짐마차를 움직여 보려 했다. 그러나 여섯 개의 채찍이 사방에서 말을 덮치고 있었고, 채는 다시 들려 세 번째로, 이어 네 번째로 묵직하고 고른 타격이 되어 말 위에 떨어졌다. 미콜카는 한 번에 죽이지 못하는 것에 미쳐 날뛰었다.
「질긴 년이다.」 군중 속에서 고함이 터졌다.
「금방 쓰러진다, 이 사람들아, 이제 곧 끝장이야.」 군중 속의 한 구경꾼이 감탄하며 말했다.
「도끼를 가져와라! 끝장을 내!」 세 번째 사람이 소리쳤다.
「내가 보여 주마! 다들 물러서라.」 미콜카가 미친 듯이 악을 썼다. 그는 채를 내던지고 마차 안에서 몸을 굽혀 쇠지렛대를 집어 들었다. 「비켜!」 그가 소리치고는 온 힘을 다해 가엾은 암말에게 정신이 아득해지는 일격을 내리쳤다. 타격이 떨어졌고, 암말은 휘청이다가 주저앉았고, 끌어 보려 했으나 지렛대가 다시 휘둘려 등에 떨어지자 통나무처럼 땅바닥에 쓰러졌다.
「끝장을 내라.」 미콜카가 소리치며 제정신이 아닌 채로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역시 술기운에 얼굴이 벌게진 젊은 사내 몇이 채찍이든 막대기든 장대든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움켜쥐고 죽어 가는 암말에게로 달려갔다. 미콜카는 한쪽에 서서 쇠지렛대로 아무 데나 내리치기 시작했다. 암말은 고개를 길게 뻗고 긴 숨을 한 번 내쉬더니 죽었다.
「네가 도살해 버렸구나.」 군중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그럼 왜 내닫질 않아?」
「내 물건이다!」 미콜카가 핏발 선 눈으로 지렛대를 손에 휘두르며 소리쳤다. 그는 더 때릴 것이 없다는 게 아쉽다는 듯이 서 있었다.
「틀림없다, 네놈은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다.」 군중 속에서 많은 목소리가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가엾은 아이는 제정신이 아닌 채로 비명을 지르며 군중을 헤치고 그 적갈색 비루먹은 말에게로 나아가, 피투성이가 된 죽은 머리를 두 팔로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눈에 입을 맞추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작은 주먹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미콜카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아이를 뒤쫓아 달려온 아버지가 아이를 낚아채어 군중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가자, 어서! 집으로 가자꾸나.」 그가 아이에게 말했다.
「아버지! 왜 저 사람들이…… 죽였어요…… 불쌍한 말을!」 아이가 흐느꼈으나 목소리가 갈라졌고, 말은 헐떡이는 가슴에서 비명이 되어 터져 나왔다.
「술에 취한 거다……. 짐승 같은 것들이야……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아버지를 끌어안았으나 숨이 막히고, 또 막혔다. 숨을 들이쉬려고, 소리를 지르려고 애쓰다가 ― 잠에서 깼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깨어났고, 머리카락은 땀에 절어 있었으며, 공포에 질려 몸을 일으켰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저 꿈이었구나.」 그가 나무 아래 앉아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하지만 이게 뭔가? 열병이라도 나려는 건가? 이렇게 흉측한 꿈이라니!」
그는 완전히 부서진 기분이었다. 영혼 속에는 어둠과 혼란이 들어 있었다. 그는 두 팔꿈치를 무릎에 얹고 두 손에 머리를 묻었다.
「오 하느님!」 그가 외쳤다. 「그럴 수가, 그럴 수가 있나, 내가 정말로 도끼를 들고, 머리를 내리치고, 두개골을 쪼개 열고…… 끈적하고 따뜻한 피를 밟고 서서, 자물쇠를 부수고, 훔치고 떨고, 온통 피를 뒤집어쓴 채 숨는다니…… 도끼를 들고……. 오 하느님, 그럴 수가 있나?」
이 말을 하면서 그는 잎사귀처럼 떨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이러고 있는 건가?」 그가 다시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면 깊은 경악 속에서 말을 이었다. 「나는 결코 그 일을 해낼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나 자신을 괴롭혀 온 건가? 어제, 어제 그…… 시험을 하러 갔을 때, 어제 나는 내가 결코 그것을 견뎌 내지 못하리라는 걸 완전히 깨달았다……. 그런데 왜 또다시 곱씹고 있는가? 왜 망설이는가? 어제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건 비열하고 역겹고 더럽다, 더럽다고…… 그 생각만으로도 속이 메스껍고 공포로 가득 찼다.
「아니, 나는 못 한다, 나는 못 해! 인정하자, 그 모든 추론에 결함이 하나도 없다고 인정하자, 이 한 달 동안 내가 내린 결론이 전부 대낮처럼 명백하고 산술처럼 참이라고 인정하자……. 맙소사! 어쨌든 나는 그 일에 나 자신을 밀어 넣을 수 없다! 나는 못 한다, 나는 못 해! 그런데 왜, 대체 왜 나는 아직도……?」
그는 일어서서, 자기가 이런 곳에 와 있는 것이 놀랍기라도 한 듯 어리둥절하게 둘러보고는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창백했고 두 눈은 이글거렸으며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 있었으나, 갑자기 숨쉬기가 한결 수월해진 것 같았다. 그토록 오래 그를 짓눌러 온 그 무서운 짐을 벗어던졌다고 느꼈고, 영혼 속에 별안간 안도와 평화의 감각이 찾아들었다. 「주여.」 그가 기도했다. 「제게 길을 보여 주소서 ― 저 저주받은…… 제 꿈을 버리나이다.」
다리를 건너면서 그는 네바강을, 이글거리는 하늘 속으로 지는 이글거리는 붉은 해를 고요하고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몸이 약해져 있었는데도 피로가 느껴지지 않았다. 한 달 동안 그의 가슴속에서 곪아 오던 종기가 별안간 터져 버린 것만 같았다. 자유다, 자유! 그는 그 주문에서, 그 마법에서, 그 망집에서 풀려났다!
훗날 그 시절을, 그리고 그 며칠 동안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분 단위로, 낱낱이 되짚어 볼 때면, 그는 한 가지 정황에 미신적인 충격을 받곤 했다. 그 자체로는 그다지 별날 것도 없었지만 나중까지 늘 제 운명의 예정된 전환점으로 여겨지던 정황이었다. 그는 자기가 어째서, 지치고 기진한 상태였고 가장 짧고 곧은 길로 집에 가는 편이 훨씬 편했을 그때, 갈 이유라고는 없는 건초 시장을 거쳐 돌아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리 크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가 보아도 그것은 아무 필요 없는 우회였다. 어느 거리를 지나왔는지도 모르는 채 집에 돌아온 일이 수십 번이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째서, 하고 그는 늘 자신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토록 중대하고 그토록 결정적이면서 동시에 그토록 완전히 우연한 만남이 하필 건초 시장에서(게다가 그가 갈 이유도 없던 곳에서), 그 만남이 그의 운명 전체에 가장 무겁고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바로 그런 심경과 바로 그런 정황 속에 그가 놓여 있던 생애의 바로 그 시각,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났단 말인가? 마치 일부러 그를 노리고 숨어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가 건초 시장을 가로지른 것은 아홉 시쯤이었다. 좌판과 수레 앞에서, 노점과 가게 앞에서 시장 사람들은 모두 제 가게를 닫거나 물건을 치워 싸 넣고 있었고,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넝마주이와 온갖 종류의 행상들이 건초 시장의 더럽고 악취 나는 안뜰마다 있는 술집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라스콜니코프는 거리를 정처 없이 쏘다닐 때면 이곳과 그 언저리의 골목들을 특히 좋아했다. 여기서는 그의 누더기가 경멸의 눈길을 끌지 않았고, 어떤 차림으로 돌아다녀도 남의 눈을 어지럽히지 않았다. 골목 모퉁이에서 한 행상과 그 아내가 좌판 두 개를 펴 놓고 끈이며 실이며 무명 손수건 따위를 팔고 있었다. 그들 역시 집에 가려고 일어선 참이었으나, 방금 다가온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꾸물거리고 있었다. 그 지인은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혹은 다들 그렇게 부르듯이 리자베타였고, 전당포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의 동생, 곧 라스콜니코프가 바로 전날 시계를 잡히고 자기 시험을 해 보려고 찾아갔던 그 노파의 동생이었다……. 그는 이미 리자베타에 관해 다 알고 있었고 그녀도 그를 조금은 알고 있었다. 서른다섯쯤 된 독신 여자로, 키가 크고 굼뜨고 겁이 많고 고분고분했으며 거의 얼뜨기에 가까웠다. 그녀는 완전한 노예였고, 밤낮으로 자기를 부려 먹고 때리기까지 하는 언니 앞에서 벌벌 떨며 지냈다. 그녀는 보퉁이를 든 채 행상 부부 앞에 서서 진지하게, 그러나 미심쩍은 얼굴로 듣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유난히 열을 올려 이야기하고 있었다. 라스콜니코프는 그녀를 알아본 순간, 이 만남에 놀랄 구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격심한 경악 같은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직접 마음을 정하면 되잖아요.」 행상이 소리 높여 말하고 있었다. 「내일 일곱 시쯤 들르세요. 그 사람들도 와 있을 거고요.」
「내일요?」 리자베타가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듯 느리고 생각에 잠긴 투로 말했다.
「어쩌면 그렇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무서워해요.」 행상의 아내가, 자그맣고 활달한 여자가 재잘거렸다. 「내가 보기엔 꼭 젖먹이 같아요. 게다가 친언니도 아니잖아요 ― 의붓언니일 뿐인데, 사람을 저렇게 쥐고 흔들다니!」
「하지만 이번엔 알료나 이바노브나한테 한마디도 하지 말아요.」 남편이 끼어들었다. 「내 충고는 그래요, 묻지 말고 그냥 우리한테 오세요. 손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나중에는 언니도 제풀에 생각이 들지 모르지요.」
「가야 하나요?」
「내일 일곱 시쯤요. 그 사람들도 와 있을 겁니다. 직접 정할 수 있을 거예요.」
「차도 한잔 하고요.」 아내가 덧붙였다.
「그래요, 갈게요.」 리자베타가 여전히 생각에 잠긴 채 말하고는 천천히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라스콜니코프는 막 지나친 참이어서 그 이상은 듣지 못했다. 그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지나갔다. 처음의 경악에 뒤이어 공포의 전율이, 등골을 타고 내리는 오한 같은 것이 왔다. 그는 알아 버린 것이다, 그는 갑자기, 전혀 뜻하지 않게 알아 버린 것이다, 다음 날 일곱 시에 노파의 동생이자 유일한 동거인인 리자베타가 집에 없으리라는 것을, 그러므로 정확히 일곱 시에 노파가 혼자 남게 되리라는 것을.
하숙집까지는 몇 걸음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는 자기에게 더 이상 사유의 자유도 의지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것이 별안간 돌이킬 수 없게 결정되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분명히, 적당한 기회를 몇 해나 기다려야 했다 하더라도, 방금 제 앞에 나타난 것보다 계획의 성공을 향한 더 확실한 걸음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아도, 다음 날 어느 시각에 목숨을 노리는 계획의 대상인 노파가 집에 있으며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더 정확하게, 더 적은 위험으로, 위태로운 탐문이나 조사도 없이 미리 확실하게 알아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