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1장
라스콜니코프는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앉았다. 그는 라주미힌이 제 어머니와 누이에게 쏟아 놓고 있던 따뜻하고 두서없는 위로의 물줄기를 끊으려고 힘없이 손을 내저었고, 두 사람의 손을 하나씩 잡고서 일이 분 동안 말없이 이 얼굴에서 저 얼굴로 눈길을 옮겼다. 어머니는 그의 표정에 놀랐다. 거기에는 견딜 수 없이 사무치는 감정이 드러나 있었고, 그와 동시에 꿈쩍도 하지 않는 무엇이, 거의 실성한 것이나 다름없는 무엇이 있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울기 시작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얼굴이 창백했다. 오라버니의 손 안에서 그녀의 손이 떨렸다.
「집으로 가세요…… 이 친구하고.」 그가 라주미힌을 가리키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까지 안녕히, 내일이면 다…… 온 지 오래됐어요?」
「오늘 저녁이란다, 로쟈야.」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대답했다. 「기차가 지독히도 늦었지 뭐냐. 그렇지만 로쟈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제 와서 너를 두고 가지는 않으련다! 여기서, 네 곁에서 밤을 새우마……」
「나를 괴롭히지 마세요!」 그가 짜증스러운 몸짓으로 말했다.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라주미힌이 외쳤다. 「한시도 이 친구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제 손님들이야 될 대로 되라지요! 실컷들 성을 내라고 하십시오! 거기는 제 삼촌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 고마움을 다 갚을까요!」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다시 라주미힌의 두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으나, 라스콜니코프가 또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건 안 돼요! 그건 안 된다니까요!」 그가 신경질적으로 되풀이했다. 「나를 들볶지 마세요! 이만하면 됐으니 가 주세요…… 나는 견딜 수가 없어요!」
「어머니, 잠깐만이라도 방에서 나가요.」 두냐가 당황하여 속삭였다. 「우리가 오라버니를 괴롭히고 있잖아요, 뻔히 보이는걸요.」
「삼 년 만인데 얼굴도 못 보느냐?」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울며 말했다.
「기다려요.」 그가 다시 두 사람을 멈춰 세웠다. 「자꾸 말을 끊으니 생각이 뒤엉키잖아요……. 루쥔은 만났어요?」
「아니다, 로쟈야. 그렇지만 그이도 우리가 온 것은 벌써 알고 있다. 로쟈야, 우리는 표트르 페트로비치가 고맙게도 오늘 너를 찾아왔다는 말을 들었단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어쩐지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그래요…… 고맙기도 하지요…… 두냐, 나는 루쥔한테 층계 아래로 내던져 버리겠다고 약속했고 지옥에나 가라고 했다…….」
「로쟈야, 그게 무슨 소리니! 설마 네가 우리한테 그런 말을……」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놀라 입을 열었다가, 두냐를 보고 말을 멈추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까 기다리며 오라버니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나스타시야에게서 그 다툼 이야기를 들은 터였으나 그녀가 알아들은 만큼만, 전할 수 있는 만큼만 들은 것이어서, 둘은 괴로운 당혹과 조바심 속에 있었다.
「두냐.」 라스콜니코프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나는 그 혼인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일 기회가 닿는 대로 루쥔을 물리쳐서, 우리가 다시는 그 이름을 듣는 일이 없게 해라.」
「맙소사!」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오라버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발끈하여 입을 열었다가 곧바로 스스로를 눌렀다. 「지금은 이야기할 형편이 아닌가 봐요. 피곤하신 거예요.」 그녀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내가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지? 아니다…… 너는 나를 위해서 루쥔과 혼인하는 거야. 그런데 나는 그 희생을 받지 않겠다. 그러니 내일이 오기 전에 편지를 써서 그를 물리쳐라…… 아침에 내가 읽어 보게 해 다오,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건 못 해요!」 처녀가 모욕을 느끼고 외쳤다. 「오라버니한테 무슨 권리가……」
「두냐, 너도 성급하구나, 좀 가만있어라, 내일…… 너도 보이지 않니……」 어머니가 당황하여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그만 나가는 게 낫겠다!」
「이 친구는 헛소리를 하는 겁니다.」 라주미힌이 취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감히 저런 소리를! 내일이면 이런 허튼소리는 다 지나갑니다…… 오늘 이 친구가 그 사람을 쫓아낸 건 사실입니다. 그건 그랬지요. 그리고 루쥔도 성이 났고요……. 여기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며 제 학식을 뽐내려 들더니 풀이 죽어서 나갔습니다…….」
「그럼 정말인가요?」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내일 뵐게요, 오라버니.」 두냐가 가엾다는 듯이 말했다 ― 「가요, 어머니…… 잘 있어요, 로쟈.」
「듣고 있니, 누이야.」 그가 마지막 힘을 그러모아 그들의 등 뒤에 대고 되뇌었다. 「나는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이 혼인은 ― 추악한 짓이야. 나는 비열한 자로 굴어도 좋다만 너는 안 된다…… 하나로 족해…… 그리고 내가 비열한 자이긴 해도 그런 누이를 누이로 두지는 않겠다. 나냐 루쥔이냐다! 이제 가라…….」
「자네 정말 제정신이 아니로군! 폭군 같으니!」 라주미힌이 고함쳤다. 그러나 라스콜니코프는 대답하지 않았고, 어쩌면 대답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소파에 누워 벽 쪽으로 돌아누웠으니 기진맥진한 것이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흥미로운 눈으로 라주미힌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검은 두 눈이 번득였다. 라주미힌은 그 눈길에 정말로 흠칫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망연히 서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못 가요.」 그녀가 절망하여 라주미힌에게 속삭였다. 「어디든 여기 있겠어요…… 두냐만 데려다주세요.」
「그러시면 다 그르칩니다.」 라주미힌이 참다못해 같은 속삭임으로 대답했다 ― 「아무튼 층계로라도 나가시지요. 나스타시야, 불을 비춰라! 제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는 층계에서 반쯤 속삭이며 말을 이었다 ― 「오늘 낮에는 이 친구가 의사하고 저를 하마터면 두들겨 팰 뻔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의사를요! 그 사람조차 이 친구를 더 건드리지 않으려고 물러나서 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아래층에 남아 망을 보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그새 옷을 챙겨 입고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니 자꾸 건드리시면 이 밤중에 또 빠져나가서 제 몸에 무슨 일을 저지르고 말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리고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를 어머니도 없이 그 하숙에 두실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디 묵고 계신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몹쓸 표트르 페트로비치가 더 나은 데를 구해 드리지 못했을 리가…… 아, 그런데 제가 술을 좀 마셔서 이렇게…… 입이 험합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그렇지만 나는 여기 주인아주머니한테 가 보겠어요.」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고집했다. 「오늘 밤 두냐하고 내가 몸 누일 구석이라도 내어 달라고 사정하겠어요. 저 애를 저렇게 두고 갈 수는 없어요, 없고말고요!」
이 대화는 집주인 여자의 문 바로 앞 층계참에서 오간 것이었다. 나스타시야가 한 계단 아래에서 그들에게 불을 비추어 주었다. 라주미힌은 보통 아닌 흥분 상태에 있었다. 삼십 분 전에 라스콜니코프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그가 정말로 입을 함부로 놀린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그 자신도 알고 있었고, 엄청난 양을 들이켰는데도 머리만은 맑았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황홀경에 닿은 상태여서, 마신 것이 죄다 곱절의 힘으로 머리로 날아오르는 듯했다. 그는 두 부인과 함께 서서 양쪽의 손을 하나씩 붙들고 놀랄 만큼 거침없는 말로 설득하고 근거를 늘어놓았으며, 아마도 제 논거에 힘을 싣고 싶었던 것인지 거의 한마디 할 때마다 그들의 손을 바이스처럼 아프게 조였다. 그는 예의라고는 털끝만큼도 헤아리지 않고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이따금 그 커다랗고 뼈만 남은 손아귀에서 제 손을 빼내려 했으나,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차리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을 더 바싹 끌어당겼다. 그들이 층계에서 머리부터 뛰어내리라고 했다면 그는 그들을 위하여 생각도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이 젊은이가 정말이지 너무 별나고 제 손을 너무 세게 쥔다고 느끼면서도, 제 로쟈를 두고 애를 태우는 터라 그가 곁에 있는 것을 하늘이 내린 일로 여겨 그의 유별난 구석들을 죄다 못 본 척하려 했다. 그러나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어머니와 같은 걱정을 나누고 있었고 겁이 많은 성미도 아니었건만, 그의 눈에 타오르는 빛을 보고는 놀라움과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라버니의 그 괴상한 친구에 대하여 나스타시야가 들려준 이야기가 심어 준 그 끝없는 믿음이 아니었더라면, 그녀는 그에게서 달아나려 했을 것이고 어머니에게도 그러자고 권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제 달아나는 것조차 어쩌면 가능하지 않겠다는 것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십 분이 지나자 그녀는 적잖이 마음이 놓였다. 어떤 기분에 있든 제 본바탕을 대번에 드러내 보여서 사람들이 제가 상대하는 것이 어떤 사람인지를 금세 알아보게 만드는 것이 라주미힌의 특징이었던 것이다.
「주인아주머니한테 가시다니, 그건 순전히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가 외쳤다. 「남아 계시면, 아무리 어머니시라 해도 저 친구를 미쳐 날뛰게 만드실 테고,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들어 보십시오, 제가 어떻게 할지 말씀드리지요. 지금은 나스타시야가 곁에 있을 것이고, 저는 두 분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거리에 두 분만 계시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페테르부르크는 그 점에서 고약한 곳입니다……. 하지만 그건 됐고요! 그러고 나서 곧장 여기로 달려와서, 십오 분 뒤에는, 제 명예를 걸고, 저 친구가 어떤지 잠들었는지 그 밖의 모든 것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들어 보십시오! 그러고는 눈 깜짝할 새에 집으로 달려가서 ― 거기 제 친구들이 잔뜩 있는데 죄다 취해 있습니다만 ― 조시모프를 데려오겠습니다. 저 친구를 봐 주는 의사인데, 그 사람도 거기 있고 그 사람은 취하지 않았습니다. 취하지 않았고말고요, 그 사람은 결코 취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람을 로쟈한테 끌고 갔다가 두 분께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한 시간 안에 보고를 두 번 받으시는 셈이지요 ― 의사한테서, 아시겠습니까, 의사 본인한테서 말입니다. 그건 제가 전해 드리는 것과는 영 다른 것이지요! 무슨 잘못된 것이 있으면 맹세코 제가 두 분을 여기로 직접 모셔 오겠습니다. 그러나 다 괜찮으면 주무십시오. 그리고 저는 여기 통로에서 밤을 지내겠습니다. 저 친구는 제가 있는 줄도 모를 테고, 조시모프한테는 가까이 있도록 주인아주머니 방에서 자라고 이르겠습니다. 저 친구에게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두 분입니까 의사입니까? 그러니 댁으로 가시지요! 주인아주머니는 어림없는 이야기입니다. 저야 괜찮지만 두 분께는 어림없어요. 그 여자는 두 분을 들이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여자는…… 그 여자는 바보니까요…… 그 여자는 저 때문에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를 질투할 테고, 알고 싶으시다면요…… 어머니까지도 질투할 겁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야 두말할 것도 없고요. 그 여자는 정말이지,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기야 저도 바보지요!…… 됐습니다! 가시지요! 저를 믿으십니까? 자, 저를 믿으십니까, 안 믿으십니까?」
「가요, 어머니.」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말했다. 「이분은 약속한 것을 틀림없이 지킬 거예요. 벌써 로쟈를 구해 주셨고, 의사 선생이 정말로 여기서 밤을 지내 주기로 한다면 그보다 나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보십시오, 당신은…… 당신은…… 저를 알아주시는군요, 천사이시니까요!」 라주미힌이 황홀하여 외쳤다. 「가시지요! 나스타시야! 얼른 위로 올라가 불을 켜고 곁에 앉아 있어라. 나는 십오 분 안에 오마.」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온전히 납득한 것은 아니었으나 더는 버티지 않았다. 라주미힌은 두 사람에게 한쪽씩 팔을 내주고 층계 아래로 끌다시피 데려갔다. 그래도 그는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유능하고 사람이 좋기는 하다지만, 그가 과연 제 약속을 지켜 낼 수 있을까? 저런 꼴을 하고 있는데…….
「아, 제가 저런 꼴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라주미힌이 그녀의 생각을 알아맞히고 끼어들었다. 그는 보도를 성큼성큼 걸었으므로 두 부인이 따라오기가 힘들 지경이었는데, 정작 그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말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저는 바보처럼 취했습니다만, 그게 아닙니다. 저를 취하게 한 것은 술이 아닙니다. 두 분을 뵌 것이 제 머리를 돌게 한 겁니다…… 하지만 저는 개의치 마십시오! 아무것도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저는 허튼소리를 하고 있고, 저는 두 분께 걸맞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두 분께 도무지 걸맞지 않습니다! 두 분을 댁에 모셔다 드리는 그 순간에, 저는 여기 이 도랑에서 제 머리에 물을 두어 통 끼얹겠습니다. 그러면 멀쩡해질 겁니다……. 제가 두 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시기만 한다면! 웃지 마십시오, 그리고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누구한테 노여워하셔도 좋지만 저한테만은 안 됩니다! 저는 저 친구의 벗이고, 그러므로 두 분의 벗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저는 예감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한순간 그런 일이…… 하기야 그건 예감이랄 것도 아니었지요, 두 분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밤새 한숨도 못 잘 것 같습니다…… 조시모프가 조금 전에 저 친구가 미쳐 버릴까 봐 걱정하더군요…… 그래서 저 친구를 건드리면 안 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가 외쳤다.
「의사 선생이 정말로 그렇게 말했나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놀라 물었다.
「말은 그랬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도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람이 약을, 가루약을 주었고 제가 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두 분이 오신 거지요……. 아! 내일 오셨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우리가 나와 버린 건 잘한 일입니다. 그리고 한 시간 안에 조시모프가 직접 두 분께 모든 것을 알려 드릴 겁니다. 그 사람은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취해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렇게 곤드레가 됐느냐 하면, 그자들이 저를 논쟁에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빌어먹을! 다시는 논쟁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는데! 그자들이 하는 소리란 게 죄다 허섭스레기예요! 하마터면 주먹다짐까지 갈 뻔했습니다! 자리는 삼촌한테 맡겨 두고 나왔고요. 믿으시겠습니까, 그자들은 개성이 완전히 없어야 한다고 우겨 대는데, 바로 그것에 신이 나 있습니다! 제 자신이 되지 않는 것, 제 자신과 될 수 있는 한 닮지 않는 것. 그것을 그자들은 진보의 가장 높은 자리로 여깁니다. 그 허튼소리나마 제 것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실상은……」
「저기요!」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머뭇거리며 말을 끊었으나, 그것은 불에 기름을 부었을 뿐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주미힌이 전보다도 더 크게 소리쳤다. 「제가 그자들이 허튼소리를 한다고 몰아세우는 줄 아십니까? 천만에요! 저는 그자들이 허튼소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건 사람이 만물 가운데서 누리는 단 하나의 특권이니까요. 잘못을 거쳐야 진리에 이릅니다! 저는 잘못을 저지르기에 사람입니다! 열네 번 잘못하지 않고서, 어쩌면 백열네 번 잘못하지 않고서 무슨 진리에 가 닿겠습니까. 그것도 그 나름으로는 훌륭한 일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제 몫의 잘못조차 저지르지 못합니다! 허튼소리를 하되 제 허튼소리를 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그 값으로 입을 맞춰 드리겠습니다. 제 식으로 그르치는 편이 남의 식으로 옳은 것보다 낫습니다. 앞의 경우에는 사람이고, 뒤의 경우에는 새나 다를 바 없습니다. 진리는 달아나지 않지만 삶은 옹색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학문에서, 발전에서, 사상에서, 발명에서, 이상에서, 목적에서, 자유주의에서, 판단에서, 경험에서, 그 모든 것에서, 모든 것에서, 모든 것에서 우리는 아직도 학교의 예비반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생각으로 사는 편을 좋아하고, 그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제 말이 옳지요, 옳지요?」 라주미힌이 두 부인의 손을 쥐고 흔들며 외쳤다.
「아이고, 저는 모르겠어요.」 가엾은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그래요, 그래요……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진지하게 덧붙이고는 이내 비명을 질렀으니, 그가 그녀의 손을 어찌나 아프게 쥐었던지.
「그렇지요, 그렇다고 하시는군요…… 아니 그러면 당신은…… 당신은……」 그가 넋을 잃고 외쳤다. 「당신은 선함과 순결함과 분별의…… 그리고 완전함의 샘입니다. 손을 주십시오…… 당신도 손을 주십시오! 여기서 당장, 무릎을 꿇고 두 분의 손에 입 맞추고 싶습니다……」 그러고는 보도 위에 무릎을 꿇었는데, 다행히도 그 시각에 거리에는 인적이 없었다.
「그만두세요, 제발이지, 이게 무슨 짓이에요?」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몹시 난처해하며 외쳤다.
「일어나요, 일어나요!」 두냐가 웃으며 말했으나 그녀 역시 마음이 어지러웠다.
「두 분의 손에 입 맞추게 해 주시기 전에는 죽어도 못 일어납니다! 옳지! 됐습니다! 일어나서 갑니다! 저는 운도 없는 바보이고, 두 분께 걸맞지 않고 취했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두 분을 사랑할 자격은 없습니다만, 두 분께 경의를 바치는 것은 완전한 짐승이 아닌 사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그리고 저는 경의를 바쳤습니다……. 여기가 두 분 숙소군요. 그 하나만으로도 로쟈가 두 분의 그 표트르 페트로비치를 쫓아낸 것은 옳았습니다……. 어떻게 감히! 어떻게 감히 두 분을 이런 데 모셔 놓는단 말입니까! 이건 추문입니다! 여기 어떤 자들을 받아들이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당신은 그 사람의 약혼자이시고! 약혼자시지요? 예? 그렇다면 제가 말씀드리지요, 당신의 신랑감은 비열한 자입니다.」
「실례지만, 라주미힌 씨, 잊고 계신 것이……」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요, 그렇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제가 제 자신을 잊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라주미힌이 서둘러 사과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제가 그렇게 말했다고 저한테 노여워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지 결코…… 흠, 흠! 그건 수치스러운 일일 테니까요. 사실 제가 어떻다고 해서…… 흠! 아무튼 왜 그런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감히 못 하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 사람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다들 저 사람이 우리와 같은 부류가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지지고 와서도 아니고, 제 재치를 서둘러 내보이려 해서도 아니라, 그가 염탐꾼이고 투기꾼이고 노랑이고 어릿광대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뻔합니다. 그 사람이 똑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은 바보입니다, 바보예요. 그런 자가 당신의 짝이 되겠습니까? 맙소사! 보십시오, 두 분.」 그가 두 사람의 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별안간 걸음을 멈추었다. 「거기 제 친구들이 죄다 취해 있기는 해도 하나같이 정직한 사람들이고, 우리가 허섭스레기를 잔뜩 떠들어 대기는 해도, 저 역시 그렇지만, 우리는 끝내 이야기를 헤쳐 진리에 가 닿을 것입니다, 우리가 옳은 길 위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옳은 길 위에 있지 않습니다. 방금 제가 그자들을 온갖 말로 욕하기는 했지만 저는 그들을 다 존경합니다…… 자묘토프는 존경하지 않습니다만 좋아합니다, 그자는 강아지니까요. 그리고 그 황소 같은 조시모프도, 그 사람은 정직하고 제 일을 아는 사람이니까요. 아무튼 됐습니다, 다 말했고 다 용서됐습니다. 용서하시는 겁니까? 그럼 갑시다. 저는 이 복도를 압니다, 와 본 적이 있어요, 여기 3호실에서 추문이 있었지요……. 두 분은 여기 어디십니까? 몇 호실입니까? 8호? 그럼 밤에는 문을 잠가 두십시오. 아무도 들이지 마시고요. 십오 분 안에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겠고, 그 반 시간 뒤에는 조시모프를 데려오겠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저는 달려가겠습니다.」
「맙소사, 두냐야, 앞으로 어떻게 되려는 거냐?」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걱정과 당황에 차서 딸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어머니.」 두냐가 모자와 망토를 벗으며 말했다. 「하느님이 저분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거예요, 술자리에서 오시기는 했지만요. 저분은 믿어도 돼요, 정말이에요. 게다가 로쟈를 위해 해 주신 일들을 생각하면…….」
「아아, 두냐야, 저이가 올지 안 올지 누가 알겠느냐! 내가 어떻게 로쟈를 두고 나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날을 얼마나 다르게, 얼마나 다르게 그려 보았는데! 그 애는 어찌 그리 뚱하던지, 우리를 보고도 반갑지 않다는 듯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어머니. 어머니는 보지 못하셨어요, 내내 울고만 계셨으니까요. 오라버니는 심한 병으로 넋이 아주 흔들려 있어요 ― 그 때문이에요.」
「아아, 그 병! 어떻게 되려는지, 어떻게 되려는지! 그리고 그 애가 너한테 그런 말투로 말하다니, 두냐야!」 어머니가 딸의 생각을 읽어 보려는 듯 머뭇머뭇 딸을 바라보며 말했는데, 두냐가 오라버니를 감싸는 것을 보고 ― 그것은 이미 용서했다는 뜻이었다 ― 벌써 반쯤은 마음이 놓인 뒤였다. 「내일이면 그 애도 다시 생각해 보겠지.」 그녀가 딸의 속을 더 떠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저는 오라버니가 내일도 같은 말을 하리라고 믿어요…… 그 일에 대해서는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잘라 말했다. 그러니 물론 그보다 더 나아갈 수는 없었으니, 그것은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꺼내기를 두려워하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두냐는 다가가 어머니에게 입을 맞추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딸을 꼭 껴안았다. 그러고는 앉아서 라주미힌이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긴 채 방 안을 오르내리는 딸을 조심스레 지켜보았다. 생각할 때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의 버릇이었고, 그럴 때 딸의 기분을 깨뜨리는 것을 어머니는 늘 두려워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를 향한 라주미힌의 저 느닷없는 취중 연정이 우스꽝스러웠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괴상한 상태를 빼놓고 보더라도,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를, 특히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 서글픈 얼굴로 오락가락하던 그 순간의 그녀를 보았다면 많은 사람이 그럴 만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키가 크고 몸매가 놀랍도록 고르며 힘 있고 당찼는데, 당차다는 것은 몸짓 하나하나에 드러났으면서도 그 몸놀림의 우아함과 부드러움을 조금도 덜어 내지 않았다. 얼굴은 오라버니를 닮았으나 그녀는 정말 아름답다고 할 만했다. 머리칼은 짙은 밤빛으로 오라버니보다 조금 밝았고, 거의 검은 두 눈에는 자존의 빛이 있으면서도 이따금 보기 드문 다정함이 어렸다. 얼굴은 창백했으나 그것은 건강한 창백함이었고, 신선함과 생기로 환했다. 입은 오히려 작은 편이었고 도톰하고 붉은 아랫입술이 턱과 함께 조금 앞으로 나와 있었는데, 그 아름다운 얼굴에서 고르지 않은 곳이라고는 그것 하나뿐이었으나 바로 그것이 얼굴에 유난히 저만의, 거의 오만하다 할 표정을 주었다. 그녀의 얼굴은 즐겁기보다 언제나 더 진지하고 생각이 깊었다. 그러나 미소가, 젊고 가볍고 거리낌 없는 웃음이 그 얼굴에 얼마나 잘 어울렸던지! 라주미힌처럼 따뜻하고 솔직하고 마음이 단순하고 정직한 거인이, 그런 여자를 여태 본 적도 없는 데다 그때 온전히 맨정신도 아니었던 터에, 대번에 넋을 잃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그는 두냐를 처음 보는 자리에서, 오라버니에 대한 사랑과 그를 만나는 기쁨으로 환히 달라진 그녀를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오라버니의 무례하고 모질고 배은망덕한 말에 그녀의 아랫입술이 분노로 떨리는 것을 보았고 ― 그것으로 그의 운명은 정해졌다.
게다가 그가 층계에서 취중에 내뱉은 말, 곧 라스콜니코프의 별난 집주인 프라스코비야 파블로브나가 저 때문에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뿐 아니라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까지 질투하리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마흔셋이었지만 얼굴에는 아직 지난날 아름다움의 자취가 남아 있었고, 실제로 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는데, 그것은 늙도록 마음의 평온과 섬세함과 순수하고 진실한 따뜻함을 잃지 않는 여자에게 거의 언제나 있는 일이다. 덧붙여 말해 두자면, 그 모든 것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늙도록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단 하나의 길이다. 머리칼은 세기 시작하고 숱이 줄었으며, 눈가에는 잔주름이 잡힌 지 오래였고, 두 볼은 근심과 슬픔으로 움푹 꺼져 있었으나 그래도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이십 년 나이를 더 먹은 두냐 그대로였고, 다만 앞으로 나온 아랫입술이 없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감정이 여린 사람이었으나 감상적이지는 않았고, 겁이 많고 잘 굽히는 사람이었으나 어느 선까지만 그러했다. 그녀는 제 신념에 어긋나는 것까지도 많이 양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으나, 정직함과 원칙과 가장 깊은 신념이 세워 놓은 어떤 울타리가 있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넘지 않았다.
라주미힌이 떠난 지 꼭 이십 분 만에 문에서 나직하지만 다급한 노크 소리가 두 번 났다. 그가 돌아온 것이었다.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시간이 없어서요.」 문이 열리자 그가 서둘러 말했다. 「돌처럼 잘 잡니다, 깊이, 조용히. 열 시간은 자기를 하느님께 빌 따름이지요. 나스타시야가 곁에 있고, 제가 올 때까지 떠나지 말라고 일러 두었습니다. 이제 조시모프를 데리러 갑니다. 그 사람이 두 분께 말씀드릴 것이고, 그러면 두 분은 자리에 드시는 게 좋겠습니다. 보아하니 너무 지치셔서 아무것도 못 하시겠어요…….」
그러고는 복도를 달려 내려갔다.
「참으로 유능하고…… 그리고 헌신적인 젊은이로구나!」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며 외쳤다.
「훌륭한 분 같아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얼마쯤 열을 담아 대답하고는 다시 방 안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다 되어서야 복도에서 발소리가 나고 또 한 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두 여자는 이번에는 라주미힌의 약속을 온전히 믿고 기다렸으니, 그는 정말로 조시모프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조시모프는 술자리를 버리고 라스콜니코프의 집으로 가는 데는 대번에 응했으나, 두 부인을 보러 가는 데는 마지못해, 더없이 미심쩍어하며 따라나섰으니 들뜬 상태의 라주미힌을 믿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의 자존심은 곧 달래지고 우쭐해졌다. 그들이 정말로 그를 신탁이라도 되는 양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꼭 십 분을 머물렀고,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를 완전히 납득시키고 안심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눈에 띄게 다정한 태도로 말했으나, 중요한 진찰 자리에 앉은 젊은 의사다운 절제와 극도의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고, 두 부인과 사사로이 가까워지려는 기색은 털끝만큼도 내비치지 않았다. 들어서자마자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알아보았으면서도 그는 머무는 동안 내내 그녀를 아예 보지 않으려 애썼고 오직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만 말을 건넸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 보통 아닌 속만족을 주었다. 그는 환자가 지금으로서는 아주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환자의 병은 한편으로는 지난 몇 달 동안의 불행한 물질적 환경에서 비롯한 것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인 기원도 있어서 「말하자면 여러 가지 물질적·정신적 영향과 불안과 우려와 걱정과 어떤 생각들…… 따위의 산물」이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제 말을 유심히 좇고 있는 것을 몰래 알아차린 조시모프는 이 주제를 좀 더 늘어놓아도 되겠다고 여겼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걱정스럽게, 머뭇거리며 「혹시 실성한 것은 아닌지」 묻자 그는 차분하고 숨김없는 미소를 띠고 대답하기를, 제 말이 과장되었다고, 환자에게 어떤 고정된 관념이, 편집광에 가까운 무엇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 그, 조시모프는 요즈음 의학의 이 흥미로운 갈래를 특히 연구하고 있노라고 ― 그러나 환자가 오늘까지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그리고 물론 식구들이 곁에 있는 것이 그의 회복에 좋은 영향을 주고 마음을 딴 데로 돌려줄 것이라고, 「새로운 충격만 다 피할 수 있다면」 하고 그는 뜻을 담아 덧붙였다. 그러고는 일어나 위엄 있고 상냥하게 인사하고 물러났는데, 그러는 동안 축복과 따뜻한 감사와 간청이 그에게 쏟아졌고,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제 편에서 먼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제 방문에 매우 흡족해하며, 그보다도 제 자신에게 더 흡족해하며 나갔다.
「내일 이야기하시지요, 지금은 당장 주무십시오!」 라주미힌이 조시모프를 따라 나가며 마무리 삼아 말했다. 「내일 아침에는 되도록 일찍 와서 말씀 올리겠습니다.」
「탐스러운 아가씨더군,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 말이야.」 둘이 함께 거리로 나서자 조시모프가 거의 입맛을 다시듯 말했다.
「탐스럽다고? 자네 지금 탐스럽다고 했나?」 라주미힌이 고함을 지르며 조시모프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한 번만 더 감히……. 알아듣겠나? 알아듣겠어?」 그가 옷깃을 잡아 흔들며 벽에 밀어붙이고 소리쳤다. 「듣고 있나?」
「놓게, 이 술주정뱅이야.」 조시모프가 몸부림치며 말했고, 상대가 손을 놓아주자 그를 빤히 보더니 별안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라주미힌은 그를 마주 보고 선 채 음울하고 진지한 생각에 잠겼다.
「물론 나야 멍청이지.」 그가 먹구름처럼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자네도 마찬가지야.」
「아니야, 이 사람아, 전혀 마찬가지가 아니지. 나는 어리석은 짓은 꿈도 꾸지 않으니까.」
둘은 말없이 걸었고, 라스콜니코프의 하숙 가까이에 이르러서야 라주미힌이 적잖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침묵을 깼다.
「들어 보게.」 그가 말했다. 「자네는 일류지만, 다른 흠들은 접어 두고, 자네는 행실이 헤픈 사람이야, 그건 내가 알지, 그것도 더러운 쪽이고. 자네는 물러 터지고 신경이 곤두선 위인이고 변덕덩어리이고, 살이 오르고 게을러지고 제 자신한테 무엇 하나 참지 못해 ― 그리고 나는 그걸 더럽다고 하는 거야, 그게 사람을 곧장 진창으로 끌고 가니까. 자네는 스스로를 어찌나 풀어 놓았는지, 그러고도 아직 어떻게 좋은 의사, 아니 헌신적인 의사로 남아 있는지 나는 모르겠어. 자네가 ― 의사라는 사람이 ― 깃털 요 위에서 자다가 밤중에 환자를 보러 일어나다니! 삼사 년만 더 지나면 자네는 환자를 보러 일어나지 않을 거야…… 아니, 젠장, 그게 요점이 아니지!…… 자네는 오늘 밤 여기 주인아주머니 방에서 자게 되어 있어. (그이를 설득하느라 애깨나 먹었지!) 그리고 나는 부엌에 있을 거고. 그러니 자네한테는 그이를 좀 더 알아볼 기회인 셈이지…….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그런 것 비슷한 기미조차 없어, 이 사람아……!」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하는데!」
「거기엔 얌전함이 있어, 이 사람아, 말수 적음, 수줍음, 사나울 만큼 굳은 정절…… 그런데도 밀랍처럼 한숨을 쉬며 녹아내리지, 그냥 녹아내려! 나 좀 그이한테서 구해 주게, 부정한 모든 것에 걸고 부탁하네! 그이는 여간 마음을 끄는 사람이 아니야…… 내 반드시 갚음세, 무엇이든 하겠네…….」
조시모프가 전보다 더 요란하게 웃었다.
「자네 단단히 홀렸군! 그런데 내가 그이를 어쩌라는 건가?」
「별 수고랄 것도 없어, 정말이야. 무슨 허튼소리든 좋으니 그저 곁에 앉아서 이야기만 해 주게. 자네도 의사니까 무엇이든 하나 고쳐 주는 시늉을 해 보든지. 맹세컨대 후회하지 않을 걸세. 그이한테 피아노가 있는데,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조금 뚱길 줄 알지. 거기서 부르는 노래가 하나 있는데 진짜배기 러시아 노래야.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네』. 그이는 진짜배기를 좋아하거든 ― 그래, 다 그 노래에서 시작된 걸세. 그런데 자네는 어엿한 연주가요 maître1요 루빈시테인2이 아닌가……. 정말이지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자네 그이한테 무슨 약속이라도 한 건가? 문서로 쓴 것이라도? 혹시 혼인 약속?」
「없어, 없어, 그런 건 도무지 아무것도 없어! 게다가 그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체바로프가 그걸 해 보려다가…….」
「그럼 손을 떼게!」
「그런데 그게 그렇게 떼어지질 않아!」
「왜 안 된다는 건가?」
「글쎄 안 된다니까, 그뿐이야! 여기엔 사람을 끌어당기는 구석이 있어, 이 사람아.」
「그럼 자네는 왜 그이를 홀렸나?」
「나는 홀린 적 없어. 어쩌면 어리석게도 내가 홀렸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이한테는 자네든 나든 터럭만큼도 상관없어, 누구든 곁에 앉아 한숨만 쉬어 주면 되니까……. 이 형편을 설명할 수가 없군, 이 사람아…… 여보게, 자네 수학을 잘하고 지금도 붙들고 있잖나…… 그이한테 적분학을 가르치기 시작하게. 맹세코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야, 그이한테는 그게 그거일 테니까. 그이는 꼬박 한 해라도 자네를 바라보며 한숨을 쉴 걸세. 나는 언젠가 그이한테 이틀을 내리 프로이센 상원 이야기를 했는데(무슨 이야기든 해야 하니까) ― 그이는 그저 한숨을 쉬며 땀을 흘리더군! 그리고 사랑 이야기는 하면 안 되네 ― 부끄러워서 발작을 일으킬 지경이니까 ― 그저 자네가 그이한테서 떠나지 못하겠다는 것만 보여 주게, 그거면 충분해. 여간 편한 게 아니야. 제 집처럼 지내면서 읽고 앉고 드러눕고 쓰고 할 수 있어. 조심만 하면 입맞춤까지 해 볼 만하지.」
「그런데 내가 그이를 어디다 쓴다는 건가?」
「아, 자네한테는 알아듣게 할 수가 없군! 보라니까, 자네들은 서로를 위해 지어진 사이야! 나는 자네 생각이 여러 번 났어!…… 자네도 끝내는 거기로 가게 될 걸세! 그러니 그게 이르든 늦든 무슨 상관인가? 여기엔 깃털 요라는 것이 있어, 이 사람아 ― 아! 그것만이 아니야! 여기엔 끌어당기는 것이 있어 ― 여기엔 세상의 끝이, 닻자리가, 고요한 항구가, 땅의 배꼽이, 세상을 떠받친다는 세 마리 물고기3가, 팬케이크와 고소한 생선 파이와 저녁나절 사모바르와 부드러운 한숨과 따뜻한 숄과 잠자기 좋은 뜨듯한 페치카의 정수가 있어 ― 죽은 것처럼 아늑하면서도 살아 있으니 ― 양쪽의 좋은 점을 한꺼번에 누리는 셈이지! 아무튼, 젠장, 이 사람아, 내가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나, 잘 시간이야! 들어 보게. 나는 이따금 밤중에 깨거든. 그러면 들어가서 저 친구를 들여다보겠네. 하기야 그럴 것도 없어, 괜찮으니까. 자네도 너무 걱정 말게. 그래도 원한다면 한 번쯤은 들여다봐도 좋고. 그런데 무슨 낌새가 보이면 ― 헛소리든 열이든 ― 나를 당장 깨우게. 하기야 그럴 리야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