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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4부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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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3장

사실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이런 결말을 예상해 본 적이 없었고, 더할 나위 없이 거만하여 가진 것 없고 기댈 데 없는 두 여자가 제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확신은 그의 허영과 자만이, 그것도 어리석음에 이르는 자만이 더욱 굳혀 주었다. 보잘것없는 데서 몸을 일으켜 세운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병적으로 제 자신에게 반해 있었고 제 머리와 능력을 더없이 높이 평가했으며, 때로는 혼자 있을 때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흐뭇하게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사랑하고 값지게 여긴 것은 제가 일해서, 또 온갖 재주를 부려서 모아 놓은 돈이었다. 그 돈이 그를, 그보다 위에 있던 모든 사람과 대등하게 만들어 주었다.

두냐에게 나쁜 소문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맞기로 했다고 쓰디쓰게 일깨웠을 때,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더없이 진심으로 말한 것이었고 그 「시커먼 배은망덕」에 참으로 분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두냐에게 청혼했을 때 그는 그 소문이 죄다 근거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가는 곳마다 부인해 놓았고, 그때는 이미 온 읍내 사람이 믿지 않고 두냐를 열심히 두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두냐를 제 자리까지 끌어올리기로 한 제 결심을 여전히 대단하게 여겼고 무언가 영웅적인 일로 생각했다. 그것을 두냐에게 말하면서 그는 제가 품고 감탄해 온 속마음을 내비친 것이었고, 남들이 그것에 함께 감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제 선행의 열매를 거두고 듣기 좋은 아첨을 들으려는 은인의 심정으로 라스콜니코프를 찾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는 제가 더없이 부당하게 상처를 입었고 알아주는 이도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두냐는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으니, 그녀 없이 지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여러 해 동안 그는 혼인에 관한 음탕한 꿈을 꾸어 왔으나, 그러면서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돈을 모아 왔다. 그는 깊은 비밀 속에서 한 처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되새기곤 했으니 ― 정숙하고, 가난하고(반드시 가난해야 했다), 아주 젊고, 아주 예쁘고, 좋은 집안에 교육을 받았고, 몹시 수줍고, 고생을 많이 했고, 그의 앞에서 온전히 낮추어져 있고, 평생 그를 제 구원자로 우러르며 그를 흠모하고 오직 그만을 흠모할 처녀였다. 일이 끝난 뒤에 그는 이 매혹적이고 즐거운 주제를 두고 얼마나 많은 장면을, 얼마나 많은 사랑의 삽화를 그려 보았던가! 그런데 보라, 그 여러 해의 꿈이 거의 이루어질 참이었으니,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의 아름다움과 교양이 그를 사로잡았고, 그 무력한 처지가 크나큰 미끼가 되었으며, 그는 그녀에게서 꿈꾸던 것보다 더한 것까지 발견했다. 자존심과 성품과 덕을 갖추고 그 자신보다 나은 교육과 가문을 지닌(그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처녀가 여기 있었고, 이 여자가 그의 영웅적인 너그러움에 평생 노예처럼 고마워하며 그의 앞에서 티끌 속에 저를 낮출 것이고, 그는 그녀 위에 절대적이고 끝없는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얼마 전에 그는 오랜 궁리와 망설임 끝에 제 앞길에 중요한 변화를 주어 이제 더 넓은 사업의 세계로 들어서던 참이기도 했다. 이 변화와 더불어,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서려는 그 소중한 꿈도 이루어질 듯이 보였다……. 요컨대 그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제 운을 시험해 보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그는 여자가 대단히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력 있고 정숙하고 교양 높은 여자의 마음을 끄는 힘은 그의 길을 한결 수월하게 해 주고, 사람들을 그에게 끌어당기며 그의 둘레에 광채를 둘러 주는 놀라운 일을 해낼 수도 있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이 갑작스럽고 끔찍한 파혼은 그에게 벼락처럼 떨어졌으니, 그것은 흉측한 농담 같고 말도 안 되는 일 같았다. 그는 아주 조금 주인 행세를 했을 뿐이고, 속을 털어놓을 짬조차 없었으며, 그저 농담을 했을 뿐이고, 흥에 휩쓸렸을 뿐인데 ― 그것이 그토록 심각하게 끝나 버린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는 제 나름으로 두냐를 사랑하고 있기도 했으니, 꿈속에서는 이미 그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 그런데 별안간! 안 된다! 내일, 바로 내일 이 모든 것을 바로잡고 어루만지고 매듭지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인 그 자만심 많은 애송이를 짓뭉개 놓아야 한다. 그는 속이 뒤틀리는 느낌으로 라주미힌까지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 점에 대해서는 이내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따위 자를 제 자신과 같은 자리에 놓을 수야 있겠는가! 그가 참으로 진심으로 두려워한 사람은 스비드리가일로프였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챙겨야 할 일이 아주 많았다…….

「아니에요, 제가, 제가 누구보다 잘못했어요!」 두냐가 어머니에게 입 맞추고 끌어안으며 말했다. 「저는 그 사람 돈에 마음이 끌렸어요. 하지만 맹세코, 오라버니, 저는 그 사람이 그렇게 비열한 사람인 줄은 몰랐어요. 미리 그 속을 꿰뚫어 보았더라면 무엇에도 마음이 끌리지 않았을 거예요! 저를 탓하지 마세요, 오라버니!」

「하느님께서 우리를 건지셨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건지셨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중얼거렸으나 반쯤은 정신이 나간 채였으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모두가 마음을 놓았고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웃고 있었다. 다만 이따금 두냐가 지나간 일을 떠올리고 얼굴이 하얘지며 이맛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저 역시 기쁘다는 것을 알고 놀랐으니, 바로 그날 아침만 해도 그녀는 루쥔과 갈라서는 것을 끔찍한 불행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라주미힌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아직 감히 그 기쁨을 다 드러내지는 못했으나, 가슴에서 천근 무게가 떨어져 나가기라도 한 듯 흥분으로 열이 올라 있었다. 이제 그에게는 제 삶을 그들에게 바치고 그들을 섬길 권리가 생긴 것이다……. 이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다음의 가능성을 생각하기가 두려워 감히 상상을 내달리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라스콜니코프는 같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으니, 거의 뚱하고 무심한 얼굴이었다. 루쥔을 치워 버려야 한다고 누구보다 우겨 온 사람이 이제 와서는 일어난 일에 가장 관심이 없어 보였다. 두냐는 그가 아직도 제게 화가 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고,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조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오라버니한테 뭐라고 했어요?」 두냐가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그래, 그래!」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라스콜니코프가 고개를 들었다.

「너한테 만 루블을 선물로 주고 싶다더군. 그리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너를 한 번 만나기를 바라고 있어.」

「그 애를 만나다니! 어림도 없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그리고 무슨 낯으로 그 애한테 돈을 주겠다는 거냐!」

이어 라스콜니코프는 (꽤 건조하게) 스비드리가일로프와 나눈 이야기를 되풀이했는데, 마르파 페트로브나의 유령이 찾아왔다는 대목은 쓸데없는 말을 다 피하고 싶어 빼놓았다.

「오라버니는 뭐라고 대답했어요?」 두냐가 물었다.

「처음에는 너에게 아무 말도 전하지 않겠다고 했어. 그랬더니 그자는 내 도움 없이도 너를 만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하더군. 너에게 품었던 정열은 지나가는 들뜬 마음이었을 뿐이고 이제는 아무 감정도 없다고 장담했어. 네가 루쥔과 혼인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더라……. 그자의 말은 대체로 꽤 뒤죽박죽이었어.」

「오라버니는 그 사람을 어떻게 보세요, 로쟈? 어떤 인상을 받았어요?」

「고백하자면 나도 그자를 잘 모르겠어. 너한테 만 루블을 내놓으면서도 저는 넉넉하지 못하다고 하고, 떠나겠다고 해 놓고는 십 분 만에 그 말을 했다는 것을 잊어버려. 그러더니 혼인을 하겠다고, 상대까지 이미 정해 놓았다고 해……. 틀림없이 속셈이 있을 테고 아마 나쁜 속셈일 거야. 그런데 너를 노리는 무슨 계획이 있다면 그토록 서툴게 굴 까닭이 없으니 그것이 이상해……. 물론 나는 너를 대신해서 그 돈을 단번에 거절했어. 아무튼 그자는 아주 이상해 보였어……. 미쳤다고 해도 될 정도야. 하지만 내가 잘못 보았을 수도 있어. 그저 그자가 꾸며 쓰는 역할일 수도 있고. 마르파 페트로브나의 죽음이 그자에게 큰 인상을 남긴 모양이야.」

「그분의 영혼에 안식을 주시기를.」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나는 늘, 늘 그분을 위해 기도하마! 두냐야, 이 삼천 루블이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되었겠니! 하늘에서 떨어진 것만 같구나! 로쟈야, 오늘 아침만 해도 우리 주머니에는 삼 루블밖에 없어서, 두냐하고 나는 저 사람이 도와주겠다고 할 때까지 남에게 꾸지 않으려고 저 애 시계를 잡히려던 참이었다.」

두냐는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제안에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움직인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생각에 잠겨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무언가 무서운 계획을 품고 있어.」 그녀가 거의 몸을 떨며 반쯤 속삭이듯 혼잣말을 했다.

라스콜니코프는 그 어울리지 않게 큰 두려움을 알아챘다.

「아무래도 그자를 앞으로도 여러 번 만나게 될 것 같아.」 그가 두냐에게 말했다.

「우리가 그자를 지켜보겠습니다! 제가 그자를 찾아내겠습니다!」 라주미힌이 힘차게 외쳤다. 「그자한테서 눈을 떼지 않겠습니다. 로쟈가 저한테 그래도 좋다고 했습니다. 방금 저한테 직접 그러더군요. 『내 누이를 돌봐 주게.』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께서도 저한테 그래도 좋다고 해 주시겠습니까?」

두냐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으나 근심스러운 빛은 얼굴에서 가시지 않았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조심스럽게 딸을 바라보았으나, 삼천 루블이 그녀의 마음을 눈에 띄게 가라앉혀 준 것만은 분명했다.

십오 분 뒤에 그들은 모두 활기찬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라스콜니코프까지도 말은 하지 않았으나 한동안 귀를 기울여 들었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라주미힌이었다.

「그런데 왜, 왜 떠나신다는 겁니까?」 그가 황홀해져서 술술 말을 쏟아 냈다. 「그리고 작은 읍에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모두 여기 함께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정말로 서로가 필요합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적어도 얼마 동안은요……. 저를 동업자로 받아 주시면 우리가 근사한 일을 꾸밀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들어 보십시오! 제가 전부, 계획 전체를 자세히 말씀드리지요! 오늘 아침에, 아무 일도 일어나기 전에 문득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이런 겁니다. 저한테 삼촌이 한 분 계신데 여러분께 소개해 드려야겠습니다(더없이 너그럽고 점잖은 어른이십니다). 그 삼촌에게는 천 루블의 밑천이 있는데, 그분은 연금으로 살아가시니 그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난 두 해 동안 저더러 그 돈을 꾸어 가고 이자로 육 퍼센트만 내라고 조르셨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야 저도 압니다. 그저 저를 도와주고 싶으신 겁니다. 작년에는 그 돈이 필요 없었지만 올해는 그분이 오시는 대로 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 삼천에서 천 루블을 더 빌려주시면 시작할 밑천이 되니, 우리가 동업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하겠느냐고요?」

이어 라주미힌은 제 계획을 펼쳐 놓기 시작했고, 우리 출판업자와 책장수가 거의 다 제가 파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도 모르며 그래서 대개 형편없는 출판업자인 반면, 웬만큼 괜찮은 출판물은 대체로 밑지지 않고 이익을 내며 더러는 적지 않은 이익을 낸다는 것을 길게 설명했다. 라주미힌은 정말로 출판업자로 나설 꿈을 꾸어 온 터였다. 지난 두 해 동안 그는 출판사에서 일해 왔고 유럽의 세 나라 말을 잘 알고 있었으나, 엿새 전에 라스콜니코프에게는 제가 독일어에 「schwach」1하다고 말했으니 번역의 절반과 그 삯의 절반을 맡기려고 꾀한 것이었다. 그때 그는 거짓말을 한 것이었고 라스콜니코프도 그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왜 우리가 성공의 가장 중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를, 우리 손에 든 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기회를 놓쳐야 합니까!」 라주미힌이 뜨겁게 외쳤다. 「물론 일이 많겠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일하는 겁니다. 당신이,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 제가, 로지온이……. 요즘은 책에 따라 아주 훌륭한 이익이 납니다! 그리고 이 사업의 큰 강점은 무엇을 번역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정확히 안다는 것이고, 우리가 번역하고 출판하고 배우는 일을 한꺼번에 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저는 경험이 있으니 쓸모가 있을 겁니다. 이 년 가까이 출판업자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으니 이제 그 일의 속속들이를 압니다. 그릇을 굽는 데 성인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그런데 왜, 왜 우리가 기회를 놓쳐야 합니까! 저는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 비밀을 지켜 왔습니다 ― 번역해서 내놓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백 루블은 받을 만한 책이 두세 권 있다는 것을요. 아니, 그중 한 권은 그 착상만으로도 오백 루블을 준대도 내놓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제가 출판업자한테 말한다면 그자는 망설이겠지요 ― 그런 멍청이들이니까요! 그리고 사업 쪽, 인쇄며 종이며 파는 일은 저한테 맡기십시오, 제가 그 길을 압니다. 작게 시작해서 크게 키워 나가는 겁니다. 어떻든 그것으로 먹고살게 되고 밑천도 되찾게 될 겁니다.」

두냐의 눈이 빛났다.

「말씀하시는 것이 마음에 들어요,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그녀가 말했다.

「저야 물론 그런 건 아무것도 모르지요.」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끼어들었다. 「좋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또 누가 알겠어요. 새롭고 해 보지 않은 일이니까요. 물론 우리는 적어도 얼마 동안은 여기 머물러야겠지요.」 그녀는 로쟈를 보았다.

「오라버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두냐가 말했다.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아.」 그가 대답했다. 「물론 출판사를 꿈꾸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대여섯 권쯤은 틀림없이 성공하게 낼 수 있을 거야. 나도 틀림없이 잘될 책을 한 권 알고 있어. 그리고 저 친구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의심할 것 없어. 저 친구는 그 일을 아니까……. 그렇지만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도 되겠지…….」

「만세!」 라주미힌이 외쳤다. 「자, 잠깐만요, 이 집에 셋집이 하나 있는데 주인이 같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 셋집이라 이 하숙과는 통하지 않습니다. 가구도 들어 있고 세도 알맞고 방이 셋입니다. 우선 그 집을 얻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내일 시계를 잡히고 돈을 가져다드리면 그때 다 마련할 수 있습니다. 세 분이 함께 지내시면 되고 로쟈도 여러분과 함께 있게 되지요. 그런데 로쟈, 어디 가는 거야?」

「아니, 로쟈, 벌써 가는 거니?」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당황하여 물었다.

「이런 참에요?」 라주미힌이 외쳤다.

두냐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라서 오라버니를 바라보았다. 그는 모자를 손에 들고 그들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를 묻기라도 하는 것 같군요, 아니면 영영 작별이라도 하는 것 같든지.」 그가 어딘가 이상하게 말했다. 그는 미소를 지어 보려 했으나 미소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누가 알겠어요, 어쩌면 이게 우리가 서로 보는 마지막일지도……」 그가 무심코 말을 흘렸다. 그것은 그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소리가 되어 나와 버린 것이다.

「너 왜 그러니?」 어머니가 외쳤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로쟈?」 두냐가 어쩐지 이상한 투로 물었다.

「아, 꼭 가야 할 데가 있어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망설이기라도 하듯 흐릿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창백한 얼굴에는 날카로운 결심의 빛이 있었다.

「말하려던 것은…… 여기 오면서…… 어머니와 두냐 너에게 말하려던 것은, 우리가 얼마 동안 떨어져 지내는 편이 낫겠다는 거예요. 저는 몸이 좋지 않고 마음이 편치 않아요……. 나중에 갈게요, 제 발로 갈게요…… 그럴 수 있게 되면요. 저는 두 분을 기억하고 사랑해요……. 저를 두세요, 저를 혼자 있게 해 주세요. 이건 전부터 정해 둔 일이에요…… 아주 굳게 마음먹었어요. 저에게 무슨 일이 닥치든, 제가 망하든 망하지 않든 저는 혼자 있고 싶어요. 저를 아주 잊어 주세요, 그편이 나아요. 저에 대해 묻지 마세요. 그럴 수 있게 되면 제 발로 오거나…… 사람을 보낼게요. 어쩌면 다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저를 사랑하신다면 저를 놓아 주세요…… 그러지 않으면 저는 두 분을 미워하게 될 거예요, 그게 느껴져요……. 안녕히 계세요!」

「하느님 맙소사!」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어머니도 누이도 몹시 놀랐다. 라주미힌도 그랬다.

「로쟈야, 로쟈야, 우리하고 화해하자꾸나! 전처럼 지내자꾸나!」 가엾은 어머니가 외쳤다.

그는 천천히 문 쪽으로 돌아서서 천천히 방을 나갔다. 두냐가 그를 따라붙었다.

「오라버니, 어머니께 무슨 짓을 하시는 거예요?」 그녀가 분노로 눈을 번득이며 속삭였다.

그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갈 거야……. 갈게.」 그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방을 나갔다.

「못되고 매정한 이기주의자!」 두냐가 외쳤다.

「저 사람은 실성한 거지 매정한 게 아닙니다. 미친 겁니다! 그게 안 보이십니까? 그러고도 그러시면 매정한 건 당신입니다!」 라주미힌이 그녀의 손을 꽉 쥐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겁에 질려 있는 어머니에게 소리치고는 방에서 뛰어나갔다.

라스콜니코프는 복도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쫓아올 줄 알았어.」 그가 말했다. 「돌아가 ― 그분들 곁에 있어 줘…… 내일도 언제까지나 그분들 곁에 있어 줘……. 나는…… 어쩌면 갈지도 몰라…… 갈 수 있으면. 잘 있어.」

그리고 그는 손도 내밀지 않고 걸어가 버렸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야? 무엇을 하려는 거야? 도대체 왜 그래? 이런 식으로 어떻게 계속할 수 있어?」 라주미힌이 어찌할 바를 몰라 중얼거렸다.

라스콜니코프가 다시 한번 걸음을 멈추었다.

「단번에 말해 두는데,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마. 너한테 할 말이 없어. 나를 보러 오지 마. 내가 여기로 올지도 모르지……. 나는 내버려 둬, 하지만 그분들은 내버려 두지 마. 내 말 알아듣겠어?」

복도는 어두웠고 두 사람은 등잔 가까이에 서 있었다. 한동안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라주미힌은 그 순간을 평생 기억했다. 라스콜니코프의 타는 듯한, 뚫어질 듯한 눈이 순간순간 더 날카로워지며 그의 영혼 속으로, 그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별안간 라주미힌이 움찔했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간 듯했다……. 무슨 생각이, 무슨 암시 같은 것이 미끄러져 나왔고, 그것은 무섭고 흉측한 것이었으며 별안간 양쪽 모두에게 이해되었다……. 라주미힌은 얼굴이 하얘졌다.

「이제 알겠어?」 라스콜니코프가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씰룩이며 말했다. 「돌아가, 그분들한테 가.」 그가 별안간 그렇게 말하고는 홱 돌아서서 집을 나섰다.

나는 라주미힌이 어떻게 부인들에게 돌아갔는지, 어떻게 그들을 달랬는지, 로쟈는 앓고 있으니 쉬어야 한다고, 로쟈는 틀림없이 올 것이고 날마다 올 것이라고, 그가 몹시, 몹시 심란해져 있으니 자극해서는 안 된다고, 그가, 라주미힌이 그를 지켜보고 의사를, 가장 좋은 의사를 데려다 진찰을 받게 하겠다고 어떻게 다짐했는지를 그려 보려 하지 않겠다……. 요컨대 그날 저녁부터 라주미힌은 아들이자 오라버니로서 그들 곁에 자리를 잡았다.

주

  1. 1. schwach ― 독일어로 「약하다」. 라주미힌은 제 독일어 실력이 시원치 않다는 뜻으로 이 낱말을 썼다. 저본이 독일어 철자를 그대로 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