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꿈의 재료 ― 꿈속의 기억
꿈 내용을 이루는 재료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체험에서 비롯하며 꿈속에서 재생되거나 기억된다는 것, 적어도 이것만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도 좋다. 그러나 꿈 내용과 현실 사이의 이런 연관이, 비교를 해 보기만 하면 뻔한 결과로 쉽사리 드러나리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오히려 그 연관은 공들여 찾아야 하며, 많은 경우 오랫동안 용케 발견을 피해 간다. 그 까닭은 꿈속 기억이 드러내는 여러 특성에 있다. 이 특성들은 누구나 아는 것이면서도 지금까지 설명을 완전히 피해 왔다. 이것들을 샅샅이 살펴볼 만하다.
꿈 내용에 어떤 것이 나타났는데, 나중에 깨어 있을 때 그것이 자기 지식이나 체험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흔히 있다. 문제의 그 일에 대해 꿈꾼 것은 잘 기억하면서도, 그것을 체험한 사실이나 그 시기는 떠올리지 못한다. 그래서 꿈꾼 사람은 꿈이 어떤 원천에서 길어 왔는지 알지 못한 채 어둠 속에 있고, 꿈 쪽에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활동이 있다고 믿고 싶은 유혹마저 느낀다. 그러다가 흔히 한참 뒤에야 새로운 일이 일어나, 잃어버린 줄 알았던 예전 체험을 기억 속에 불러오고 그렇게 꿈의 원천을 드러낸다. 그러니 깨어 있는 동안에는 기억에서 빠져나가 있던 무언가를 꿈속에서는 알고 기억하고 있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델뵈프[16]는 자기 체험에서 이런 종류의 특히 인상적인 예를 들려준다. 그는 꿈에서 눈에 덮인 자기 집 안뜰을 보았고, 눈 속에 파묻혀 반쯤 얼어붙은 작은 도마뱀 두 마리를 발견했다. 동물을 아끼는 그는 도마뱀들을 집어 들어 몸을 녹여 준 다음, 담벼락에 그것들의 자리로 마련해 둔 틈새에 도로 넣어 주었다. 담에 자라던 작은 고사리 잎도 몇 장 주었는데, 도마뱀들이 그 잎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꿈속에서 그는 그 식물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Asplenium ruta muralis였다. 꿈은 이어졌고, 한동안 딴 데로 흘렀다가 다시 도마뱀에게로 돌아왔다. 그러자 놀랍게도 델뵈프의 눈에 다른 작은 짐승 두 마리가 남은 고사리에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탁 트인 들판 쪽으로 눈을 돌리자 다섯째, 여섯째 도마뱀이 담의 구멍으로 달려 들어가고 있었고, 마침내 거리는 도마뱀 행렬로 뒤덮였는데, 모두 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등등.
깨어 있을 때 델뵈프가 아는 식물의 라틴어 이름은 몇 개 되지 않았고, Asplenium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그는 이런 이름의 고사리가 실제로 있으며, 올바른 이름은 Asplenium ruta muraria이고 꿈이 그것을 조금 왜곡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크게 놀랐다. 우연의 일치라고는 거의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Asplenium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는 델뵈프에게 수수께끼로 남았다.
꿈을 꾼 것은 1862년이었다. 열여섯 해 뒤, 이 철학자는 한 친구의 집에 머무르다가 말린 식물을 담은 작은 앨범 하나를 보게 되었다. 스위스 여러 곳에서 관광객에게 기념품으로 파는 앨범과 비슷한 것이었다. 불현듯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식물 표본첩을 펼쳐 보니 꿈에 나왔던 Asplenium이 거기 있었고, 곁들여 적힌 라틴어 이름에서 자기 필적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제 연관을 더듬어 갈 수 있었다. 1860년, 그러니까 도마뱀 꿈을 꾸기 두 해 전에 이 친구의 누이가 신혼여행 중에 델뵈프를 찾아왔다. 그때 그녀는 그 친구에게 주려던 이 앨범을 가지고 있었고, 델뵈프는 식물학자 한 사람이 불러 주는 대로 말린 식물마다 그 아래에 라틴어 이름을 적어 주는 수고를 했다.
이 귀중한 사례를 보고할 수 있게 해 준 운 좋은 우연은, 델뵈프가 이 꿈의 또 다른 부분을 잊혔던 원천까지 거슬러 추적할 수 있게도 해 주었다. 1877년 어느 날 그는 어느 삽화 잡지의 묵은 합본 한 권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1862년에 꿈에서 본 그대로 도마뱀 행렬 전체가 그려져 있었다. 그 합본에는 1861년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었고, 델뵈프는 자기가 창간호부터 그 잡지를 구독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꿈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닿을 수 없는 기억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고 이론적으로도 중요한 사실이어서, 다른 「기억 과잉 꿈(Hypermnesic Dreams)」을 몇 가지 더 보고하여 이 사실에 더 큰 주의를 촉구하고 싶다. 모리[48]의 이야기에 따르면, 한동안 낮에 뮈시당이라는 낱말이 곧잘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그것이 프랑스의 한 도시 이름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느 날 밤 그는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꾸었는데, 그 여자는 자기가 뮈시당에서 왔다고 하면서 그 도시가 어디 있느냐는 그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뮈시당은 도르도뉴 도(道)의 군청 소재지예요.」 깨어난 모리는 꿈에서 얻은 이 정보를 조금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리 사전을 찾아보니 그 정보는 완벽하게 옳았다. 이 경우 꿈이 더 뛰어난 지식을 지녔다는 것은 확인되지만, 그 지식의 잊힌 원천은 찾아내지 못했다.
예센[36]은 더 먼 옛날에 있었던 아주 비슷한 꿈 이야기를 전한다(55쪽). 그 밖에 여기서 아버지 스칼리제르의 꿈을 들 수 있다(헤닝스, 앞의 책, 300쪽). 그는 베로나의 이름난 사람들을 기리는 시를 지었는데, 꿈에 브루그놀루스라는 사람이 나타나 자기가 빠졌다고 불평했다. 스칼리제르는 그런 사람에 대해 들어 본 기억이 없었지만 그를 기리는 시구 몇 줄을 지었고, 나중에 그의 아들이 베로나에서, 예전에 브루그놀루스라는 사람이 그곳에서 비평가로 이름을 떨쳤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이어스는 이런 기억 과잉 꿈을 한가득 모아 『심령연구학회 회보』에 발표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나는 그것을 구해 볼 수 없다. 꿈을 다루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이 깨어 있는 사람은 모르는 일을 알고 기억한다는 증거를 보여 주는 것이 아주 흔한 현상임을 인정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뒤에서 이야기할 신경증 환자들에 대한 정신분석적 연구에서, 나는 매주 한 번이 넘게 환자들의 꿈을 근거로 삼아, 그들이 인용구나 음란한 표현 따위를 잘 알고 있으며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잊어버렸는데도 꿈속에서 그것을 쓴다는 것을 본인에게 납득시킬 수 있다. 여기서는 꿈에 그 지식을 가져다준 원천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던 까닭에, 기억 과잉 꿈의 간단한 사례 하나를 들겠다.
한 환자가 길게 이어지는 꿈을 꾸었는데, 그 속에서 그는 카페에서 「콘투슈프카(Kontuszówka)」를 주문했다. 그는 이 꿈을 이야기한 뒤, 그런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나는 콘투슈프카가 폴란드 술이며, 그 이름은 오래전부터 광고에서 보아 나도 익히 알고 있으니 그가 꿈에서 지어냈을 리 없다고 대답해 줄 수 있었다. 환자는 처음에는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뒤 꿈에서 본 카페 일을 실제로 해 보고 나서, 그는 길모퉁이의 간판에서 그 이름을 발견했다. 몇 달 동안 적어도 하루 두 번은 지나다녀야 했던 길모퉁이였다.
꿈 요소 몇몇의 출처를 알아내는 일이 얼마나 우연에 크게 달려 있는지, 나는 내 꿈에서 배웠다. 이를테면 이 책을 쓰기 전 여러 해 동안, 본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단순한 모양의 교회 탑 영상이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잘츠부르크와 라이헨할 사이의 작은 역에서 불현듯 그 탑을 틀림없이 알아보았다. 1890년대 후반의 일이었는데, 나는 1886년에 처음으로 그 길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 뒤 여러 해가 지나 이미 꿈 연구에 한창 몰두해 있을 무렵, 어느 독특한 장소의 꿈 영상이 자꾸 되풀이되는 바람에 나는 꽤 성가셨다. 나는 그것을 내 몸을 기준으로 한 일정한 위치 관계 속에서 보았다 ― 내 왼쪽으로, 어두운 공간이 있고 거기서 기괴한 사암 조각상 여럿이 두드러져 나와 있었다. 썩 믿음이 가지 않는 어렴풋한 기억이 그것은 지하 맥줏집 입구라고 일러 주었지만, 이 꿈 영상의 의미도 출처도 나는 설명할 수 없었다. 1907년에 나는 아쉽게도 1895년 이후로 다시 가 보지 못했던 파도바에 우연히 가게 되었다. 이 아름다운 대학 도시를 처음 찾았을 때는 흡족하지 못했다. 마돈나 델라레나 성당에 있는 조토의 프레스코화를 보지 못했으니, 그리로 가던 길에 그 작은 성당이 그날은 문을 닫는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열두 해 뒤 두 번째로 찾아갔을 때 나는 그때 놓친 것을 벌충하리라 마음먹고, 무엇보다 먼저 마돈나 델라레나로 길을 나섰다. 그리로 이어지는 거리의 내 왼쪽에서, 아마도 1895년에 내가 발길을 돌렸던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꿈에서 그토록 자주 보았던 그 장소를 사암 조각상들과 함께 발견했다. 그것은 실제로 어느 음식점 정원의 입구였다.
꿈이 재생할 재료, 그것도 일부는 깨어 있을 때의 생각 속에서 떠오르지도 쓰이지도 않는 재료를 길어 오는 원천 가운데 하나는 어린 시절에 있다. 이 점을 관찰하고 강조한 저자 몇 사람만 인용하겠다.
힐데브란트[35](23쪽): 「꿈이 때로 놀라운 재생 능력으로 아주 이른 시기의 먼 체험, 심지어 잊힌 체험까지 정신에 되살려 놓는다는 것은 이미 분명하게 인정된 바 있다.」
슈트륌펠[66](40쪽): 「꿈이 때로, 아주 어린 시절의 체험 위에 훗날의 세월이 쌓아 올린 가장 깊고 무거운 지층 사이에서, 말하자면 어떤 장소와 사물과 인물의 영상을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처음의 싱싱함 그대로 끌어낸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 문제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이것은 생겨날 때 생생하게 의식되었거나 강한 심리적 타당성을 띠고 새겨졌다가, 나중에 꿈에서 진짜 회상으로 돌아와 깨어난 의식에 기쁨을 주는 인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꿈 기억의 깊은 곳에는 인물, 사물, 장소, 어린 시절 체험의 영상 가운데, 의식된 정도가 미미하고 심리적 가치는 전혀 없었거나, 아니면 그 둘을 오래전에 잃어버린 영상들도 들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은 예전의 출처가 밝혀질 때까지는 꿈에서나 깨어 있는 상태에서나 전혀 낯설고 알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폴켈트[72](119쪽): 「유년기와 청년기의 회상이 얼마나 쉽게 꿈속에 들어오는지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우리가 오래전에 생각하기를 그만둔 것, 오래전에 우리에게 아무 중요성도 없게 된 것을 꿈은 끊임없이 다시 불러낸다.」
주지하다시피 유년기의 재료는 대개 의식적 기억의 빈틈을 차지하고 있는데, 꿈이 이 재료를 마음대로 부리는 덕분에 흥미로운 기억 과잉 꿈들이 생겨난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여기 보고하겠다.
모리[48]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92쪽), 그는 어린 시절 고향 도시 모에서 이웃한 트릴포르로 자주 갔는데, 그곳에서 아버지가 다리 공사를 감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꿈이 그를 트릴포르로 데려갔고, 그는 다시 그 도시의 거리에서 놀고 있었다. 무슨 제복 같은 것을 입은 남자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모리가 이름을 묻자 그 남자는 자기 이름이 C——이며 다리 경비원이라고 소개했다. 잠에서 깬 모리는 그 회상이 진짜인지 여전히 의심스러워서, 어린 시절부터 곁에 있던 늙은 하녀에게 그런 이름의 남자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그럼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사람은 그때 아버님께서 놓고 계시던 다리의 파수꾼이었지요.」
모리는 꿈에 나타나는 유년기 회상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를 그에 못지않게 멋지게 보여 주는 예를 하나 더 전한다. 어린 시절 몽브리종에서 살았던 F—— 씨는 스물다섯 해 만에 고향과 집안의 옛 벗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떠나기 전날 밤 그는 꿈에서 목적지에 이르러 몽브리종 근처에서 얼굴을 모르는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 남자는 자기가 F. 씨이며 그의 아버지의 친구라고 했다. 꿈꾼 사람은 어렸을 때 그런 이름의 신사를 알았다는 것은 기억했지만, 깨어나서는 그 얼굴을 더는 떠올릴 수 없었다. 며칠 뒤 정말로 몽브리종에 도착한 그는 모르는 곳이라 여겼던 꿈속의 장소를 찾아냈고, 거기서 한 남자를 만났는데 곧바로 꿈에 나온 그 F. 씨임을 알아보았다. 실제 인물은 꿈 영상 속의 사람보다 나이가 더 들었을 뿐이었다.
여기서, 기억된 인상이 연상으로 대체된 내 꿈 하나를 이야기해도 좋겠다. 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을 보았는데, 꿈을 꾸는 동안 그가 내 고향 마을의 의사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얼굴은 흐릿했고, 지금도 이따금 만나는 학창 시절 선생님 한 분의 영상과 뒤섞여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연상 관계가 있는지는 깨어나서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그 의사에 관해 물어보고서, 그가 외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꿈속에서 그 의사의 모습을 가리고 있던 내 선생님도 외눈이었다. 나는 서른여덟 해 동안 그 의사를 보지 못했고, 턱에 난 흉터를 보면 그의 도움이 떠오를 법도 했건만 내가 아는 한 깨어 있을 때 그를 생각한 적도 없다.
꿈속에서 유년기 인상이 맡는다고 하는 막대한 역할과 균형을 맞추려는 듯이, 많은 저자는 대다수의 꿈이 가장 최근의 요소를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로베르트[55]는 정상적인 꿈은 대개 최근 며칠의 인상만을 다룬다고 단언한다(46쪽). 하기야 알고 보면 로베르트가 내세운 꿈 이론은 오래된 인상은 뒤로 밀어내고 최근의 인상은 앞으로 끌어낼 것을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그렇지만 로베르트가 주장하는 사실은 실제로 있다. 나 자신의 연구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저자 넬슨[50]은 꿈에서 가장 자주 발견되는 인상은 이삼일 전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꿈 바로 전날의 인상은 아직 충분히 약해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꿈 내용과 깨어 있는 상태가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고 확신하는 많은 저자는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한다. 깨어 있는 정신을 강하게 사로잡았던 인상은 깨어 있을 때의 사고 작업에서 어느 정도 밀려난 뒤에야 꿈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아직 슬픔에 짓눌려 있는 동안에는 그 사람의 꿈을 꾸지 않는다. 그런데 가장 최근의 관찰자 가운데 한 사람인 핼럼 양[33]은 바로 그 반대의 양상을 보여 주는 예들을 모았고, 이 점에 관해 개인 심리학의 권리를 주장한다.
꿈속 기억의 셋째 특성이자 가장 주목할 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특성은 재생되는 재료를 고르는 데서 드러나니, 가장 의미 있는 회상뿐 아니라 가장 사소하고 피상적인 회상에도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가장 강한 어조로 놀라움을 표현한 저자들을 인용하겠다.
힐데브란트[35](11쪽): 「왜냐하면 꿈이 대개 전날의 크고 뿌리 깊은 사건이나 강력하고 절박한 관심사에서가 아니라 하찮은 일에서, 곧 최근의 체험이나 더 먼 과거에서 나온 가장 쓸모없는 조각에서 그 요소를 가져온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집안에 더없이 충격적인 죽음이 닥치면 그 인상 때문에 우리는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죽음은 우리 기억에서 지워져 있다가, 잠에서 깨는 첫 순간에야 우리를 짓누르는 힘으로 되돌아온다. 반면에 지나가던 낯선 사람의 이마에 난 사마귀는, 그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로 우리가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우리 꿈에서 제 몫을 한다.」
슈트륌펠[66](39쪽): 「……꿈을 분석해 보면, 전날이나 그 전날의 사건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너무도 하찮고 쓸모없어서 드러나자마자 곧 망각 속으로 녹아드는 요소들이 밝혀지는 그런 경우들. 그런 것들은 우연히 들은 남의 말이나 건성으로 본 행동일 수도 있고, 사물이나 사람을 스치듯 지각한 것이나 책에서 본 한 구절 따위일 수도 있다.」
해블록 엘리스[23](727쪽): 「깨어 있는 생활의 깊은 감정, 우리가 의지적인 정신 에너지를 주로 쏟는 물음과 문제는 대개 꿈 의식에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가까운 과거에 관한 한, 꿈에 다시 나타나는 것은 대부분 일상생활의 하찮고 우연하고 『잊힌』 인상들이다. 가장 강렬하게 깨어 있는 심리 활동이 가장 깊이 잠드는 활동이다.」
빈츠[4](45쪽)는 앞에서 말한 꿈속 기억의 특성들을 계기로, 자신도 찬동했던 꿈 설명들에 불만을 드러낸다. 「그리고 정상적인 꿈도 비슷한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왜 뚜렷한 까닭도 없이 까마득히 뒤에 놓인 거의 잊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신, 늘 지난 며칠의 기억 인상을 꿈꾸지 않는가? 꿈속에서 의식은 왜 그토록 자주 사소한 기억 이미지의 인상을 되살리는 반면, 체험의 가장 예민한 기록을 간직한 뇌세포들은 깨어 있는 동안 바로 얼마 전에 급격히 되살아나 흥분하지 않은 한 대부분 꼼짝 않고 마비된 채로 있는가?」
꿈 기억은 일상 체험 가운데 사소한, 그래서 눈여겨보지 않은 세부를 묘하게 편애한다. 그 탓에 우리가 보통은 꿈이 깨어 있는 상태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아예 간과하거나, 적어도 개별 사례에서 그것을 증명하기 어려워지리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휘턴 콜킨스 양[12]은 자신과 친구의 꿈을 통계적으로 다루면서, 전체의 11퍼센트가 깨어 있는 상태와 아무 관계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기원을 추적하는 데 시간과 재료를 충분히 들이기만 하면 우리의 꿈 영상은 모두 발생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힐데브란트의 주장은 분명 옳았다. 물론 그는 이것을 「더없이 지루하고 보람 없는 일」이라고 부른다. 그 일은 기껏해야 기억의 방 가장 외진 구석에서 온갖 쓸모없는 심리적 재료를 들추어내고, 아마 나타난 지 한 시간 만에 묻혀 버렸을 먼 과거의 아주 사소한 순간들을 밝혀내는 데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통찰력 있는 저자가, 첫머리가 그토록 가망 없어 보였던 그 길을 따라가기를 삼간 것은 아쉽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길은 그를 곧장 꿈 문제의 한복판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꿈속에서 기억이 보이는 행태는 기억 일반에 관한 모든 이론에 틀림없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우리가 한번 심리적으로 소유했던 것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숄츠[59])는 것을 가르쳐 준다. 또는 델뵈프의 표현을 빌리면 「que toute impression même la plus insignifiante, laisse une trace inaltérable, indéfiniment susceptible de reparaître au jour,」〔아무리 하찮은 인상이라도 모든 인상은 변하지 않는 흔적을 남기며, 그 흔적은 언제까지고 다시 햇빛 아래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생활의 다른 수많은 병리적 현상도 우리를 이 결론으로 몰아간다. 그러면 이제 꿈속 기억의 이 비상한 능력을 마음에 새겨 두자. 그래야 뒤에서 언급할 몇몇 꿈 이론이 꿈의 부조리와 두서없음을 우리가 낮에 알던 것의 부분적 망각으로 설명하려 애쓸 때 떠안을 수밖에 없는 모순들을 생생하게 알아볼 수 있다.
꿈꾸는 현상을 아예 기억 현상으로 환원하여, 꿈을 밤에도 쉬지 않으며 그 자체가 목적인 재생 활동이 드러난 것으로 보자는 생각까지 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필츠[51]가 내놓은 것 같은 견해가 이를 뒷받침할 것이다. 그 견해에 따르면, 깊은 잠 속에서 꿈이 재생하는 인상은 가장 먼 과거에 속하는 반면 아침 무렵에 재생되는 인상은 최근에 생긴 것이라는 사실로 보아, 꿈꾸는 시각과 꿈 내용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기억해야 할 재료를 꿈이 다루는 방식 때문에 처음부터 그럴듯하지 않다. 슈트륌펠[66]은 꿈속에서는 체험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정당하게 우리의 주의를 돌린다. 물론 꿈은 그쪽으로 애를 쓰기는 한다. 그러나 다음 고리가 빠져 있거나, 바뀐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전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꿈은 재생의 조각만을 보여 준다. 이것이 규칙이라 할 만큼 흔해서 이론에 적용해도 될 정도다. 그래도 꿈이 깨어 있을 때의 기억만큼이나 빠짐없이 한 사건을 되풀이하는 예외가 있다. 델뵈프는 자기 대학 동료 한 사람이 기적처럼 사고를 면했던 위험한 마차 여행을 꿈속에서 세세한 데까지 모두 되풀이했다고 전한다. 콜킨스 양[12]은 내용이 전날의 일을 정확히 재생한 꿈 두 개를 언급한다. 그리고 나도 뒤에서 기회를 보아, 내가 알게 된 사례 하나를 보고하겠다. 어린 시절의 체험이 바뀌지 않은 채 꿈에 돌아온 사례다.1
주
1. 그 뒤의 경험으로 말할 수 있거니와, 짐 꾸리기나 음식 장만, 부엌일 따위처럼 깨어 있을 때 하는 무해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 꿈에서 되풀이되는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다. 그러나 그런 꿈에서 꿈꾼 사람 자신이 강조하는 것은 기억의 성격이 아니라 그 현실성이다. 「이건 다 제가 낮에 정말로 한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