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꿈 자극과 꿈의 원천
꿈 자극과 꿈의 원천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꿈은 위장에서 나온다」는 속담을 끌어와 설명할 수 있다. 이 생각 속에는 꿈을 수면이 방해받은 결과로 보는 이론이 숨어 있다. 잠자는 동안 무언가 방해하는 것이 생기지 않았다면 우리는 꿈을 꾸지 않았을 것이고, 꿈은 이 방해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의 서술에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꿈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한 논의다. 꿈이 생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 문제가 떠오를 수 있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꿈을 신의 계시로 여긴 고대인들에게는 꿈의 자극원을 찾아 나설 까닭이 없었다. 그들에게 꿈은 신적인 힘이나 다이몬적인 힘의 뜻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꿈의 내용은 그 힘들이 알고 있거나 뜻한 바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과학은 곧 꿈을 일으키는 자극이 언제나 같은지 아니면 여러 가지일 수 있는지를 묻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꿈의 인과적 설명이 심리학의 몫인지 아니면 오히려 생리학의 몫인지를 묻는 데까지 나아갔다. 대부분의 저자는 수면을 방해하는 원인, 따라서 꿈의 원천이 여러 가지 성질의 것일 수 있으며, 신체적 자극과 정신적 자극이 모두 꿈 유발 요인의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듯하다. 어느 꿈의 원천을 더 중시하느냐, 원천들의 서열을 어떻게 매기느냐, 나아가 꿈이 생겨나는 데 그것들이 저마다 얼마나 중요하냐를 두고서는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꿈의 원천을 빠짐없이 열거한 곳에서는 결국 네 가지 형태를 만나게 되며, 이 넷은 꿈을 분류하는 데에도 쓰인다.
I. 외적(객관적) 감각 자극.
II. 내적(주관적) 감각 자극.
III. 내적(기관적) 신체 흥분.
IV. 순수하게 심리적인 자극원.
I. 외적 감각 자극. ― 아들 슈트륌펠은, 잘 알려져 있듯이, 피부 전체의 감각을 잃고 몇몇 고등 감각 기관까지 마비된 한 환자를 관찰하여 보고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 주제에 관한 저술로 꿈의 문제에서 이미 여러 번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 준 철학자다. 이 환자는 외부 세계로 통하는 얼마 남지 않은 감각 통로마저 막히면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도 잠들고 싶을 때면 슈트륌펠의 실험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려고 애쓰곤 한다. 가장 중요한 감각 통로인 눈을 감고, 나머지 감각에는 거기에 작용하는 모든 자극과 자극의 모든 변화가 닿지 않도록 힘쓴다. 그러고 나면 잠이 드는데, 이 준비가 완벽하게 성공하는 일은 결코 없다. 우리는 감각 기관에서 자극을 완전히 떼어 놓을 수도 없고, 감각 기관의 흥분성을 완전히 꺼 버릴 수도 없다. 언제라도 더 강한 자극에 잠이 깰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정신이 잠자는 동안에도 물질세계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잠자는 동안 우리에게 닿는 감각 자극은 쉽게 꿈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이런 성질의 자극은 무척 많다. 잠자는 상태가 가져오거나 적어도 이따금 잠자는 상태 때문에 생겨서 피할 수 없는 자극에서부터, 잠을 끝내기에 알맞거나 아예 잠을 끝내도록 마련된, 우연히 닥치는 깨우는 자극에 이르기까지 그 폭도 넓다. 이를테면 강한 빛이 눈으로 파고들 수도 있고, 어떤 소리가 들려올 수도 있으며, 냄새를 풍기는 어떤 물질이 코의 점막을 자극할 수도 있다. 잠결에 저절로 뒤척이다가 몸의 일부를 드러내 차가운 감각에 내맡길 수도 있고, 자세를 바꾸다가 압박 감각과 촉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파리가 물 수도 있고, 밤에 일어난 작은 사고가 한꺼번에 여러 감각을 덮칠 수도 있다. 관찰자들은 깨어나서 확인한 자극과 꿈 내용의 일부가 서로 들어맞아 그 자극을 꿈의 원천으로 알아볼 수 있었던 꿈을 줄줄이 지적해 왔다.
여기서 예센[36]이 모은 꿈 몇 가지를 인용하겠다(527쪽). 모두 다소간 우연한 객관적 감각 자극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꿈이다. 「흐릿하게 지각된 소리는 모두 그에 상응하는 꿈 영상을 낳는다. 천둥이 우르릉거리면 우리는 전투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고, 수탉이 우는 소리는 사람이 겁에 질려 지르는 비명으로 바뀔 수 있으며,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는 도둑이 집에 침입하는 꿈을 불러낼 수 있다. 밤중에 이불 한 장이 흘러내리면 알몸으로 돌아다니거나 물에 빠지는 꿈을 꿀 수 있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발이 가장자리 밖으로 삐져나오면, 무시무시한 낭떠러지 끝에 서 있거나 가파른 높이에서 떨어지는 꿈을 꿀 수 있다. 어쩌다 머리가 베개 밑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바위가 머리 위에 걸려 있다가 그 무게로 우리를 짓뭉개려 한다고 상상할 수도 있다. 정액이 쌓이면 관능적인 꿈을 꾸고, 국부의 통증은 학대를 당하거나, 적의 공격을 받거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몸을 다친다는 생각을 낳는다.」
「마이어(『몽유 해명 시론(Versuch einer Erklärung des Nachtwandelns)』, 할레, 1758, 33쪽)는 언젠가 여러 사람에게 습격을 당하는 꿈을 꾸었다. 그들은 그를 땅바닥에 납작하게 쓰러뜨리고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로 땅에 말뚝을 박았다. 꿈속에서 이런 일을 떠올리고 있던 그는 갑자기 잠이 깼고, 발가락 사이에 지푸라기 하나가 끼어 있는 것을 느꼈다. 헤닝스(『꿈과 몽유에 관하여(Von den Traumen und Nachtwandeln)』, 바이마르, 1784, 258쪽)에 따르면, 같은 저자는 또 한번은 셔츠가 목 둘레에 좀 꽉 조이게 여며져 있을 때 교수형을 당하는 꿈을 꾸었다. 호프바우어는 젊은 시절 높은 담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는데, 깨어 보니 침대 틀이 무너져 실제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레고리가 이야기하기로는, 언젠가 발에 뜨거운 물병을 대고 잤더니 에트나산 꼭대기로 여행하는 꿈을 꾸었고, 그곳 땅의 열기가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두 번째 사람은 머리에 발포고(發疱膏)를 붙이고 난 뒤 인디언에게 머리 가죽이 벗겨지는 꿈을 꾸었고, 셔츠가 축축했던 세 번째 사람은 개울 속으로 끌려가는 꿈을 꾸었다. 통풍 발작이 일어나자 그 환자는 자기가 종교 재판소의 손아귀에 들어가 고문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믿었다(맥니시).」
자극과 꿈 내용이 서로 닮았다는 데 근거한 논증은, 자극을 체계적으로 가해서 그 자극에 상응하는 꿈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면 한층 힘을 얻는다. 맥니시에 따르면 지롱 드 뷔자랭그가 이미 이런 실험을 했다. 「그는 무릎을 드러낸 채 잤더니 밤에 역마차를 타고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그는 이와 관련하여, 밤에 마차 안에서 무릎이 얼마나 차가워지는지는 여행자라면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번은 뒷머리를 덮지 않은 채 잤더니 야외에서 열리는 종교 의식에 참석하는 꿈을 꾸었다. 그가 살던 지방에서는 그런 때가 아니면 언제나 머리를 가리고 있는 것이 관습이었다.」
모리[48]는 자기 자신에게 일으킨 꿈에 대한 새로운 관찰을 보고한다. (다른 여러 시도는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1. 깃털로 그의 입술과 코끝을 간질였다. 그는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꿈을 꾸었다. 즉 역청으로 만든 가면이 얼굴에 붙었다가 억지로 뜯겨 나가면서 살갗까지 함께 벗겨 갔다.
2. 가위를 집게에 대고 갈았다. 그는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이어 경종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가 그를 1848년 6월의 그날들로 데려갔다.
3. 그의 코에 오드콜로뉴(쾰른 향수)를 발랐다. 그는 카이로에 있는 요한 마리아 파리나의 가게에 와 있었다. 그 뒤로 황당무계한 모험이 이어졌는데, 그는 그것을 되살려 낼 수 없었다.
4. 그의 목을 살짝 꼬집었다. 그는 몸에 발포고가 붙는 꿈을 꾸었고, 어린 시절 자기를 치료해 준 의사를 떠올렸다.
5. 뜨겁게 달군 쇠를 그의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그는 chauffeurs〔불 때는 자들〕1 무리가 집에 쳐들어와, 집 안 사람들의 발을 이글거리는 숯불 속에 밀어 넣으며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꿈을 꾸었다. 이어 아브랑테스 공작 부인이 들어왔는데, 꿈속에서 그는 자신이 그 부인의 비서라고 상상하고 있었다.
6. 그의 이마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는 자신이 이탈리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비에토산 백포도주를 마시고 있다고 상상했다.
7. 불붙은 초의 빛을 붉은 종이 너머로 그에게 거듭 모아 비추자, 그는 날씨와 더위, 그리고 언젠가 영국 해협에서 겪은 바다의 폭풍을 꿈꾸었다.
에르베[34], 바이간트[75] 등도 실험으로 꿈을 일으키려는 다른 시도를 했다.
꿈이 외부 세계에서 갑자기 들어온 인상을 제 구조 속에 짜 넣어, 서서히 준비되고 도입된 파국처럼 보여 주는 놀라운 솜씨는 많은 사람이 눈여겨보았다(힐데브란트[35]). 이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예전에 나는 아침 일정한 시각에 어김없이 일어나려고 이따금 자명종을 썼다. 이 기계의 소리가 겉보기에 무척 길고 줄거리가 이어진 꿈에 꼭 들어맞은 일이 아마 수백 번은 있었을 것이다. 마치 꿈 전체가 오로지 그 소리를 위해 특별히 짜인 것처럼, 꿈이 그 소리에서 제게 걸맞고 논리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정점을, 피할 수 없는 결말을 찾아낸 것처럼 말이다.」
이 자명종 꿈 가운데 세 편을 다른 목적을 위해 인용하겠다.
폴켈트는 이렇게 전한다(68쪽). 「어떤 작곡가가 꿈에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었는데, 마침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중이었다. 설명을 거의 마쳤을 때 그는 한 소년에게 돌아서서 물었다. 『알아들었니?』 소년은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Ya』〔예〕 하고 소리쳤다. 이에 화가 난 그는 소리를 지른다고 소년을 꾸짖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 전체가 『Orya』, 이어서 『Euryo』, 마침내 『Feueryo』〔불이야〕 하고 외쳐 댔다. 그때 그는 거리에서 실제로 울린 화재 경보에 잠이 깼다.」
라데슈토크[54]가 전하는 바로는, 가르니에(『영혼의 능력에 관한 논고(Traité des Facultés de l’Âme)』, 1865)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폴레옹 1세는 마차 안에서 잠을 자다가 폭발 때문에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 폭발이 그에게 탈리아멘토강 도하와 오스트리아군의 포격을 되살려 놓아서, 그는 「우리 밑에 지뢰가 묻혔다!」 하고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모리[48]의 다음 꿈은 유명해졌다. 그는 병이 나서 자리에 누워 있었고, 어머니가 곁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그는 대혁명 시대의 공포 정치를 꿈꾸었다. 끔찍한 살육 장면에 가담했고, 마침내 그 자신이 재판소에 불려 나갔다. 거기서 그는 로베스피에르, 마라, 푸키에탱빌을 비롯해 그 잔혹한 시대의 한심한 영웅들을 모두 보았다. 자신에 대해 해명해야 했고, 기억에 남지 않은 온갖 일을 겪은 끝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엄청난 군중이 뒤따르는 가운데 그는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그는 처형대에 올랐고, 사형 집행인은 그를 판자에 묶었으며, 판자가 기울고,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졌다. 그는 머리가 몸통에서 잘려 나가는 것을 느꼈고, 끔찍한 불안에 휩싸여 깨어났다. 깨어 보니 침대 윗부분이 떨어져 내려, 정말로 단두대의 칼날처럼 그의 경추를 내리친 것이었다.
이 꿈을 계기로 르 로랭[45]과 에게르[20]가 『철학 평론』(Revue philosophique)에서 시작한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졌다. 문제는, 깨우는 자극을 지각한 순간부터 깨어나기까지의 짧은 시간 안에 꿈꾼 사람이 겉보기에 그토록 많은 꿈 내용을 몰아넣는 일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었다.
이런 예들을 보면 잠자는 동안의 객관적 자극이야말로 모든 꿈의 원천 가운데 가장 확실하게 입증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일반인의 지식에서 조금이라도 역할을 하는 자극은 이것 하나뿐이다. 교양은 있지만 꿈에 관한 문헌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꿈이 어떻게 생기느냐고 물어보라. 그는 틀림없이 자기가 아는 사례, 곧 깨어난 뒤에 알아낸 객관적 자극으로 꿈이 설명된 사례를 들어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잠자는 동안 감각에 작용하는 자극은 꿈에서 결코 제 참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그것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된 다른 표상(presentation)으로 대체된다. 이 관찰이 연구를 더 밀고 나가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그런데 모리[47]에 따르면 자극과 꿈의 결과 사이의 관계는 「une affinité quelconque mais qui n’est pas unique et exclusive」〔이런저런 친연성, 그러나 유일하지도 배타적이지도 않은 친연성〕이다(72쪽). 이를테면 힐데브란트의 「자명종 꿈」 세 편을 읽어 보면, 같은 자극이 어째서 그토록 여러 가지 결과를 낳았는지, 그리고 왜 하필 이 결과들이고 다른 결과는 아닌지를 물을 수밖에 없다.
(37쪽). 「아름다운 봄날 아침, 나는 산책을 하고 있다. 푸른 들판을 지나 이웃 마을까지 한가로이 걸어가는데, 마을 사람들이 나들이옷을 차려입고 찬송가 책을 옆구리에 낀 채 떼 지어 교회로 가는 것이 보인다. 오늘이 일요일이고 곧 아침 예배가 시작된다는 것이 떠오른다. 나도 예배에 가기로 하지만, 몸이 좀 달아올라 있어서 교회를 둘러싼 묘지에서 먼저 땀을 식히기로 한다. 이런저런 묘비명을 읽고 있는데, 교회지기가 탑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고, 이제 곧 예배 시작을 알릴 작은 마을 종이 둥근 지붕 안에 보인다. 종은 잠시 더 꼼짝 않고 매달려 있다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갑자기 그 소리가 너무도 맑고 날카롭게 울려서 내 잠은 거기서 끝나 버린다. 그런데 그 종소리는 자명종에서 나고 있다.」
「두 번째 조합. 맑게 갠 날이고, 거리는 깊은 눈에 덮여 있다. 나는 썰매 타기에 함께하기로 약속했는데, 썰매가 우리 집 앞에 와 있다는 전갈이 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이제 썰매에 오를 채비를 한다. 모피를 걸치고 토시를 매만진 뒤, 마침내 내 자리에 앉는다. 그러나 출발은 여전히 미뤄지다가, 드디어 고삐가 조바심 내는 말들에게 알아챌 만한 신호를 준다. 말들이 달리기 시작하자, 이제 세차게 흔들리는 썰매 방울이 귀에 익은 예니체리 군악을 울리기 시작하는데, 그 기세가 어찌나 센지 내 꿈의 거미줄이 단번에 찢어지고 만다. 이번에도 그것은 내 자명종의 날카로운 소리일 뿐이다.」
세 번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자. 「부엌 하녀가 접시 수십 개를 쌓아 들고 복도를 따라 식당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녀가 안고 가는 도자기 기둥은 금방이라도 균형을 잃을 것만 같다. 나는 소리친다. 『조심하게, 그러다 몽땅 떨어뜨리겠네.』 으레 돌아오는 말대꾸가 물론 빠지지 않는다. 이런 일에는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계속 좇는다. 아니나 다를까! 문턱에서 깨지기 쉬운 그릇들이 떨어지고, 넘어지고, 수백 조각이 나서 바닥을 굴러간다. 그러나 나는 곧 끝없이 이어지는 그 소리가 실은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따르릉 울리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 따르릉 소리와 함께 꿈꾼 사람은 이제 자명종이 제 할 일을 다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꿈꾸는 정신은 왜 객관적 감각 자극의 성질을 잘못 판단하는가. 이 물음에 슈트륌펠[66]은, 그리고 거의 같은 식으로 분트[76]도, 잠자는 동안 덮쳐 오는 자극에 대한 정신의 반응은 착각의 형성으로 결정된다고 답했다. 감각 인상이 충분히 강하고 뚜렷하고 오래 지속되며 우리에게 이렇게 따져 볼 시간이 넉넉하다면, 우리는 그 인상을 알아보고 올바르게 해석한다. 즉 이전의 모든 경험에 비추어 그 인상이 속하는 기억 무리에 그것을 넣는다. 이 조건들이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인상을 일으킨 대상을 잘못 알아보고, 그 인상을 바탕으로 착각을 만든다. 「탁 트인 들판을 걷다가 멀리 있는 물체를 흐릿하게 지각하면, 처음에는 그것을 말로 여기는 일이 있을 수 있다.」 더 가까이서 보면 쉬고 있는 소의 이미지가 비집고 들어올 수도 있고, 마침내 그 표상은 앉아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로 확실히 판명될 수도 있다. 잠자는 동안 정신이 외부 자극을 통해 받는 인상도 이처럼 흐릿하다. 그런 인상이 착각을 낳는 것은, 인상이 많든 적든 기억 이미지를 불러내고 그 기억 이미지를 통해 심리적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고려할 수 있는 수많은 기억 영역 가운데 어느 영역에서 그에 상응하는 이미지가 깨어나는지, 그리고 가능한 연상 연결 가운데 어느 것이 그때 작동하는지는 슈트륌펠에 따르더라도 확정할 수 없으며, 말하자면 정신생활의 변덕에 맡겨져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다. 꿈 형성의 법칙은 사실 더는 추적할 수 없다고 인정하고, 감각 인상이 불러일으킨 착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또 다른 조건에 달려 있는지 아닌지는 묻지 않기로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잠을 파고드는 객관적 감각 자극은 꿈의 원천으로서 보잘것없는 역할만 하며, 불러낼 기억 이미지를 고르는 것은 다른 요인들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다. 사실 내가 일부러 자세히 소개한 모리의 실험 꿈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 실험이 실제로 설명하는 것은 꿈 요소 하나의 기원뿐이고, 나머지 꿈 내용은 실험으로 끌어들인 요소와 들어맞아야 한다는 단 하나의 요구로 설명하기에는 사실 너무 독자적이고 너무 세세하게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잠자는 동안 객관적 인상이 때로는 더없이 기묘하고 억지스러운 해석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착각 이론은 물론이고 꿈을 형성하는 이 인상의 힘마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M. 시몽[63]은 거인 같은 체구의 사람들이2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이 음식을 씹으며 턱을 맞부딪쳐 내는 끔찍한 딱딱 소리를 똑똑히 들은 꿈을 이야기한다. 깨어나 보니 그의 창밖으로 말 한 마리가 달려 지나가며 말굽이 따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말굽 소리가 『걸리버 여행기』라는 기억 영역에서, 곧 브롭딩낵의 거인들 곁에 머문 이야기와 덕성스러운 말 종족 이야기에서 표상을 불러낸 것이라면 ― 저자의 도움 없이 내가 해석한다면 아마 그렇게 되겠지만 ― 자극에 비해 그토록 흔치 않은 기억 영역을 고른 데에는 다른 동기에서 나오는 설명이 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II. 내적(주관적) 감각 자극. ― 온갖 반론이 있지만, 꿈을 만들어 내는 객관적 감각 자극의 역할은 반박할 수 없이 확립되었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자극들이 성질로 보나 빈도로 보나 모든 꿈 영상을 설명하기에는 아마 모자라 보인다면,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다른 꿈의 원천을 찾아보아야 한다. 외부 감각 자극과 더불어 내부(주관적) 자극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사실 최근의 꿈 원인론 서술은 모두, 얼마나 충실하냐는 차이가 있을 뿐 이 일을 하고 있다. 분트[76]는 이렇게 말한다(363쪽). 「꿈 착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주관적인 시각 감각과 청각 감각이다. 우리는 깨어 있을 때 이것을 어두운 시야 속의 빛나는 혼돈으로, 귀 울림이나 윙윙거림 따위로, 특히 망막의 자극으로 익히 알고 있다. 꿈이 비슷하거나 똑같은 대상을 여럿 늘어놓아 눈을 속이는 두드러진 경향도 이것으로 설명된다. 그래서 우리 눈앞에는 수없이 많은 새, 나비, 물고기, 색색의 구슬, 꽃 따위가 펼쳐진다. 여기서는 어두운 시야 속의 빛나는 먼지가 환상적인 형상을 띠었고, 꿈은 그 먼지를 이루는 수많은 빛나는 점을 그만큼 많은 낱낱의 영상으로 구체화하며, 빛나는 혼돈이 움직이기 때문에 이 영상들은 움직이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꿈이 더없이 복잡한 동물 형상을 몹시 좋아하는 것도 여기에 뿌리가 있다. 형태가 다채로운 것은 주관적 빛 영상의 형태를 쉽게 따르기 때문이다.」
주관적 감각 자극은 꿈의 원천으로서 객관적 자극과 달리 외부의 우연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 말하자면 설명에 필요할 때면 언제든 불러다 쓸 수 있다. 그러나 관찰과 실험이 객관적 감각 자극에 대해서는 꿈 유발 요인의 역할을 입증했지만 주관적 감각 자극에 대해서는 그 역할을 확인하기가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하니, 이 점에서 주관적 감각 자극은 객관적 감각 자극에 뒤진다. 주관적 감각 흥분에 꿈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는 주된 증거는 이른바 입면(入眠) 환각에서 나온다. 요하네스 뮐러가 「환상적 시각 현상」이라고 기술한 것이다. 입면 환각은 많은 사람에게 잠이 드는 동안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무척 생생하고 변화무쌍한 영상으로, 눈을 뜬 뒤에도 잠시 남아 있을 수 있다. 이 환각에 적잖이 시달린 모리[48]는 이를 철저히 연구하여, 입면 환각이 꿈 영상과 관련되어 있다고, 아니 오히려 꿈 영상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이미 요하네스 뮐러가 주장한 바다. 모리의 말로는, 입면 환각이 생기려면 어느 정도의 심리적 수동성이 필요하며 주의의 긴장이 풀려야 한다(59쪽). 그러나 체질이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더라도 한순간 그런 무기력에 빠져들기만 하면 입면 환각이 생길 수 있다. 그 뒤 아마 다시 깨어나고, 이 과정이 여러 번 되풀이되다가 마침내 잠으로 끝난다. 모리에 따르면 그 뒤 곧 깨어나면, 잠들기 전에 입면 환각으로 지각한 것과 같은 영상을 꿈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134쪽). 한번은 모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에 기이한 머리 장식을 한 기괴한 형상들의 영상 한 무리가 잠들 무렵 믿기지 않을 만큼 끈덕지게 그에게 밀려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바로 그것을 꿈에서 보았다는 것이 기억났다. 또 한번은 꽤 엄격한 식이 요법을 지키느라 배고픔에 시달리던 그가 입면 상태에서 접시 하나를 보았고, 포크를 든 손 하나가 그 접시에서 음식을 조금 집어 가는 것을 보았다. 꿈에서 그는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에 앉아 있었고, 식사하는 사람들이 포크로 내는 달그락 소리를 들었다. 또 다른 때에는 눈이 따갑고 아픈 채로 잠들었는데, 현미경으로나 보일 만큼 작은 글자가 보여 그것을 하나하나 애써 판독해야 하는 입면 환각을 겪었다. 한 시간 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아주 작은 글자가 적힌 책이 펼쳐져 있고, 그것을 끝까지 힘겹게 읽어 내야 했던 꿈을 기억해 냈다.
이런 영상과 마찬가지로 낱말이나 이름 따위의 청각적 환각도 입면 상태에서 나타났다가, 뒤이을 오페라의 주요 모티프를 미리 알리는 서곡처럼 꿈속에서 되풀이될 수 있다.
입면 환각의 좀 더 최근 관찰자인 G. 트럼불 래드[40]는 요하네스 뮐러와 모리가 걸은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는 연습을 거듭한 끝에, 서서히 잠이 들고 2분에서 5분이 지났을 때 눈을 뜨지 않은 채 갑자기 깨어나는 능력을 얻었고, 덕분에 막 사라져 가는 망막의 감각을 기억에 남아 있는 꿈 영상과 비교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언제나 알아볼 수 있다고 장담한다. 망막의 자발광이 만드는 빛나는 점과 선이 말하자면 심리적으로 지각된 꿈 형상의 밑그림이나 도식을 그려 준다는 뜻에서다. 이를테면 눈앞에 또렷이 인쇄된 글줄이 보여 그것을 읽고 공부하는 꿈은 망막 속의 빛나는 점과 선이 평행한 줄로 배열된 것에 상응했다. 그 자신의 말로 하면 이렇다. 「꿈속에서 그가 읽고 있던 또렷이 인쇄된 책장은, 깨어 있는 지각에는 종이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너무 멀어서 뚜렷이 알아볼 수 없는 거리에서 들여다본 실제 인쇄물의 일부처럼 보이는 대상으로 바뀌었다.」 래드는 이 현상에서 중추적인 부분을 조금도 과소평가하지 않으면서도, 망막의 이런 내적 자극 상태가 공급하는 재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시각적 꿈은 우리 마음속에 거의 생기지 않는다고 믿는다. 어두운 방에서 잠든 직후에 꾸는 꿈은 특히 그렇고, 아침에 깨어날 무렵에 꾸는 꿈은 밝아진 방에서 눈으로 스며드는 객관적인 빛에서 자극을 받는다. 망막의 자발적 발광 흥분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끝없이 변하는 성질은, 꿈에서 우리 앞에 펼쳐지는 영상들이 변덕스럽게 잇따르는 모습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래드의 관찰을 조금이라도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 주관적 흥분의 원천이 꿈에 얼마나 풍부하게 이바지하는지를 얕잡아 볼 수 없다. 시각 영상이 우리 꿈의 주된 구성 요소를 이루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청각을 빼면, 다른 감각 영역에서 오는 몫은 그보다 보잘것없고 들쭉날쭉하다.
III. 내적(기관적) 신체 흥분. ― 꿈의 원천을 유기체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찾으려 한다면, 우리 내부 기관은 거의 모두 건강할 때는 제 존재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지만, 우리가 흥분 상태라고 부르는 상태에 있거나 병이 들면 극심한 통증을 주는 감각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이 감각은 통증과 감각 자극을 일으키는 외부의 자극원과 동등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를테면 슈트륌펠[66]이 다음과 같이 단언하는 것도 아주 오래된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잠자는 동안 정신은 깨어 있을 때보다 훨씬 깊고 넓게 신체와의 연관을 의식하게 되며, 깨어 있을 때는 자각하지 못하는 신체 부위와 신체 변화에서 비롯되는 자극적인 인상을 받아들이고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리스토텔레스[1]조차 이미, 꿈이 인상을 과장해 주기 때문에 깨어 있을 때는 전혀 알아채지 못한 초기의 병적 상태에 꿈이 우리의 주의를 돌리게 하는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꿈에 예언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 것과는 분명 거리가 멀었던 몇몇 의학 저자도, 적어도 병을 예고하는 일에서는 꿈에 이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M. 시몽, 31쪽과 그 밖의 여러 옛 저자들을 참조하라.)
오늘날에도 꿈이 이렇게 진단 능력을 발휘한 사례로 확인된 것이 모자라지는 않은 듯하다. 이를테면 티시에[68]는 아르티그(『꿈의 증후학적 가치에 관한 시론(Essai sur la Valeur séméiologique des Réves)』)에게서 마흔세 살 된 한 여성의 병력을 인용한다. 이 여성은 겉보기에 완벽하게 건강했던 몇 해 동안 불안 꿈에 시달렸는데, 나중에 진찰해 보니 초기의 심장 질환이 드러났고, 얼마 뒤 그녀는 그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내부 기관의 심각한 장애는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서 꿈의 유발 요인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심장병과 폐병에서 불안 꿈이 잦다는 점은 꽤 널리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꿈 생활의 이런 관계는 많은 저자가 워낙 두드러지게 앞세우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문헌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치겠다. (라데슈토크[54], 슈피타[64], 모리, M. 시몽, 티시에.) 티시에는 병든 기관이 제 특징적인 면모를 꿈 내용에 새겨 넣는다고까지 가정한다. 심장병을 앓는 사람의 꿈은 대개 아주 짧고, 겁에 질려 깨어나는 것으로 끝난다. 그 내용에는 끔찍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 장면이 거의 언제나 한몫을 한다. 폐병을 앓는 사람은 질식하는 꿈, 사람들 틈에 끼여 짓눌리는 꿈, 도망치는 꿈을 꾸며, 그 가운데 상당수는 잘 알려진 가위눌림에 시달린다. 덧붙이자면 뵈르너는 엎드려 누워 호흡 기관의 구멍을 막는 방법으로 이 가위눌림을 실험적으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소화 장애가 있으면 꿈에는 향락과 혐오의 영역에서 나온 표상이 담긴다. 끝으로 성적 흥분이 꿈 내용에 미치는 영향은 누구나 경험으로 충분히 알 수 있으며, 기관 감각이 꿈을 자극한다는 이론 전체를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게다가 꿈에 관한 문헌을 훑어보면, 몇몇 저자(모리[48], 바이간트[75])가 자신의 병적 상태가 제 꿈의 내용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꿈 문제를 연구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주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 없이 확립된 이 사실들이 꿈의 원천에 보태 주는 것은 짐작만큼 중요하지 않다. 꿈은 건강한 사람에게서, 아니 아마 모든 사람에게서 밤마다 일어나는 현상이며, 기관의 병적 상태는 꿈에 없어서는 안 될 조건 가운데 하나가 아닌 듯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문제는 특별한 꿈들이 어디서 생기느냐가 아니라, 정상인이 꾸는 평범한 꿈의 자극원이 무엇일 수 있느냐다.
그러나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앞에서 든 어느 원천보다 풍부하고 실로 어떤 경우에도 마르지 않을 듯한 꿈의 원천을 찾을 수 있다. 신체 기관이 병이 들면 꿈의 자극원이 된다는 것이 확립되었고, 잠자는 동안 외부 세계에서 돌아선 정신이 몸 내부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꿈 영상으로 자라날 자극이 잠든 정신에 닿기 위해 기관이 반드시 병들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쉽게 가정할 수 있다. 깨어 있을 때 우리가 그 질로만 구별할 수 있는 전신 감각으로 막연하게 지각하는 것, 의사들의 견해로는 모든 기관 계통이 저마다 제 몫을 보태는 것, 바로 이 전신 감각이 밤이면 강력한 힘을 얻고 그 개별 성분들로 활동하게 되어, 자연히 꿈 표상을 만들어 내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가장 흔한 원천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관 감각이 어떤 규칙에 따라 꿈 표상으로 바뀌는지는 아직 살펴보아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방금 말한 꿈의 기원 이론은 모든 의학 저자가 가장 즐겨 내세우는 이론이었다. 티시에는 우리 존재의 본질을 「moi splanchnique」〔내장의 자아〕라고 부른다. 이 본질을 우리 앎에서 가리고 있는 어둠과 꿈의 기원을 둘러싼 어둠은 너무도 잘 들어맞아서 둘을 서로 연관 지을 수밖에 없다. 기관 감각을 꿈의 유발 요인으로 삼는 이 생각의 흐름은 의사에게 또 다른 매력도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서 그토록 많이 일치하는 꿈과 정신 질환을 원인론의 측면에서 하나로 묶기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기관 감각의 변화와 내부 기관에서 나오는 흥분은 둘 다 정신병의 발생에서 폭넓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체 감각 이론의 뿌리를 좇아가면 그것을 저마다 독자적으로 내세운 창시자가 여럿 나온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1851년에 전개한 생각의 흐름은 여러 저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우주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우리 지성이 바깥에서 들어오는 인상을 시간과 공간과 인과성이라는 거푸집에 다시 부어 빚어내는 데서 생겨난다. 유기체 내부에서 교감 신경계를 거쳐 나오는 감각은 낮에는 대개 무의식적인 영향을 우리 기분에 미친다. 그러나 밤이 되어 낮의 인상이 휘두르던 압도적인 영향이 더는 느껴지지 않으면, 안에서 위로 밀고 올라오는 인상이 주의를 끌 수 있게 된다. 낮에는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던 샘물의 졸졸 소리가 밤이면 들리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지성이 이 자극에 반응하는 길이 제 특유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 말고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지성은 자극을 공간과 시간을 채우며 인과성의 첫머리에서 움직이는 형상으로 바꿀 것이고, 그렇게 해서 꿈이 생겨난다. 셰르너[58]와 그 뒤를 이은 폴켈트[72]는 신체 감각과 꿈 영상 사이의 더 긴밀한 관계를 파고들려 했다. 그러나 이 시도들에 대한 논의는 꿈 이론을 다루는 이 장 (사)로 미루어 두자.
정신의학자 크라우스[39]는 특히 논리 정연하게 전개된 한 연구에서, 꿈의 기원과 섬망 및 망상의 기원을 같은 요소, 즉 신체 기관에 따라 결정되는 감각에서 찾았다. 이 저자에 따르면 유기체 안에서 꿈이나 망상의 출발점이 될 수 없는 곳은 거의 없다. 그런데 신체 기관에 따라 결정되는 감각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 전신 감각(total feeling)에 속하는 감각(general sensations), (2) 식물적 유기체의 주요 계통에 내재하는 특수 감각. 이것은 다시 다섯 무리로 나눌 수 있다. (ㄱ) 근육 감각, (ㄴ) 호흡 감각, (ㄷ) 위 감각, (ㄹ) 성 감각, (ㅁ) 말초 감각(두 번째 논문의 33쪽).」
크라우스는 신체 감각을 바탕으로 꿈 영상이 생겨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파악한다. 일깨워진 감각은 어떤 연상 법칙에 따라 그것과 관련된 표상을 불러내고, 이 표상과 결합하여 하나의 유기적 형성물을 이룬다. 그러나 의식은 이 형성물에 대해 정상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의식은 감각 자체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거기에 따라붙은 표상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문제의 사태가 그토록 오랫동안 오해받아 온 까닭도 여기에 있다(11쪽 이하). 크라우스는 이 과정에 「감각의 꿈 영상으로의 실체 변화(transubstantiation)」라는 독특한 이름을 붙인다(24쪽).
내부 신체 감각이 꿈 형성에 얼마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오늘날 거의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에 깔린 법칙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여러 가지 답이 나오고, 그 답은 흔히 모호한 말로 되어 있다. 신체 흥분 이론에 서면, 꿈 해석의 특별한 과제는 꿈의 내용을 그 원인이 된 기관 자극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는 일이다. 그런데 셰르너[58]가 내놓은 해석 규칙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관의 자극원이 오직 꿈의 내용에서만 드러난다는 곤란한 사실에 자주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거의 같은 내용으로 무척 많은 사람에게서 되풀이되기 때문에 「전형적」이라고 불리는 여러 형태의 꿈을 해석하는 데서는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한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 이가 빠지는 꿈, 하늘을 나는 꿈, 알몸이거나 옷을 제대로 걸치지 않아 당혹스러워하는 꿈처럼 잘 알려진 꿈들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 꿈은 그저, 잠결에 이불을 걷어차서 몸이 드러나 있다는 것을 지각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이가 빠지는 꿈은 「치아 자극」으로 설명되는데, 그렇다고 이것이 반드시 치아의 병적인 흥분 상태를 뜻하지는 않는다. 슈트륌펠[66]에 따르면 비행 꿈은, 흉부의 피부 감각이 무감각해진 뒤 폐엽이 오르내리면서 생기는 흥분량을 해석하려고 정신이 쓰는 적절한 영상이다. 날아간다는 표상과 연관된 감각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 뒤의 사정이다. 꿈에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은, 피부 압박 감각이 의식에서 소실된 상태에서 팔이 몸에서 흘러내리거나 구부린 무릎이 갑자기 펴지면서 피부 압박 감각이 다시 의식에 돌아오고, 의식으로 넘어가는 이 이행이 심리적으로 떨어지는 꿈으로 구현되는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슈트륌펠, 118쪽.) 그럴듯한 이 설명 시도들의 약점은 분명, 아무런 해명도 덧붙이지 않은 채 이런저런 기관 감각 무리를 설명에 유리한 배치가 갖추어질 때까지 심리적 지각에서 사라지게 하거나 거기에 밀고 들어오게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나는 뒤에서 전형적인 꿈과 그 기원을 다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M. 시몽[63]은 비슷한 꿈 여러 편을 비교하여, 기관 감각이 그 결과로 생기는 꿈을 결정하는 데 미치는 영향에 관해 몇 가지 규칙을 세우려고 애썼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34쪽). 「잠자는 동안, 평소 어떤 정동을 표현하는 데 관여하는 신체 기관이 무슨 이유에서든 그 정동이 흔히 불러일으키는 흥분 상태에 빠져들면, 그렇게 해서 생겨난 꿈에는 그 정동에 들어맞는 표상이 담긴다.」
또 다른 규칙은 다음과 같다(35쪽). 「어떤 신체 기관이 잠자는 동안 활동이나 흥분이나 교란 상태에 있으면, 꿈은 그 기관이 수행하는 기관 기능의 발휘와 관련된 표상을 가져온다.」
무를리 볼[73]은 신체 감각 이론이 가정하는 영향을 한 영역에 한정하여 실험으로 입증하려고 했다. 그는 잠든 사람의 팔다리 자세를 바꾸는 실험을 하고, 그 결과로 생긴 꿈을 자기가 가한 변화와 비교했다. 그 성과로 그는 다음과 같은 이론을 보고한다.
1. 꿈속 팔다리의 자세는 실제 자세와 대략 일치한다. 즉 우리는 실제 상태에 상응하는 팔다리의 정지 상태를 꿈꾼다.
2. 움직이는 팔다리를 꿈꿀 때는 그 움직임을 수행하는 동안 나타나는 자세 가운데 하나가 언제나 실제 자세와 일치한다.
3. 꿈에서는 자기 팔다리의 자세가 다른 사람의 것으로 돌려질 수 있다.
4. 또 그 움직임이 가로막히는 꿈을 꿀 수도 있다.
5. 어떤 특정한 자세를 취한 팔다리가 꿈에 동물이나 괴물로 나타날 수 있는데, 이 경우 둘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 성립한다.
6. 팔다리의 자세는 꿈에서 그 팔다리와 이런저런 관련이 있는 표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를테면 손가락을 놀리고 있으면 숫자 꿈을 꾼다.
이런 결과를 보면 나로서는, 신체 감각 이론조차 불러일으켜질 꿈 영상이 결정되는 데서 드러나는 겉보기의 자유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고 결론짓게 된다.3
IV. 심리적 자극원. ― 꿈과 깨어 있는 생활의 관계, 그리고 꿈 재료의 기원을 다루면서 우리는, 가장 오래된 연구자든 가장 최근의 연구자든 사람은 낮에 하는 일과 깨어 있을 때 관심을 두는 일을 꿈꾼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깨어 있는 생활에서 잠 속으로 이어지는 이 관심은 꿈을 삶에 이어 주는 심리적 끈일 뿐 아니라 얕잡아 볼 수 없는 꿈의 원천이기도 하며, 여기에 잠자는 동안 관심을 끌며 활동하게 되는 자극들을 더하면 모든 꿈 영상의 기원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는 위의 주장과 정반대되는 주장도 들었다. 꿈은 잠든 사람을 낮의 관심사에서 떼어 놓으며, 대개 우리는 낮 동안 주의를 쏟은 일을 그것이 깨어 있는 생활에서 현재성의 자극을 잃고 난 뒤에야 꿈꾼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꿈 생활을 분석하다 보면 우리는 걸음마다, 「흔히」 「대체로」 「대부분의 경우」 같은 말로 표현되는 단서를 달아 두지 않고 예외가 성립할 여지도 마련해 두지 않은 채 일반 규칙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의식적인 관심이 내부 및 외부 수면 자극과 함께 꿈의 원인론을 다 감당할 수 있다면, 우리는 꿈의 모든 요소의 기원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꿈의 원천이라는 수수께끼는 풀리고, 남는 과제는 개개의 꿈에서 심리적 꿈 자극과 신체적 꿈 자극이 맡은 몫을 가려내는 일뿐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꿈 하나를 이렇게 완전히 풀어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그렇게 풀어 보려 한 사람은 누구나, 대부분의 경우 원천을 설명할 수 없는 꿈의 성분이 아주 많이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꿈의 심리적 원천으로서 일상의 관심은, 우리 모두가 깨어 있을 때의 일을 꿈에서도 계속한다는 자신만만한 주장을 정당화할 만큼 멀리 미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꿈의 다른 심리적 원천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뒤에서 언급할 셰르너[58]의 꿈 설명을 아마 예외로 치면, 문헌에서 찾을 수 있는 설명은 모두 꿈에 가장 특징적인 표상 영상의 재료가 어디서 오는지를 밝히는 대목에 이르면 커다란 공백을 드러낸다. 이런 곤경에서 대다수 저자는, 접근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꿈 자극의 심리적 요인을 되도록 깎아내리는 경향을 키워 왔다. 물론 그들은 꿈을 크게 신경 자극 꿈과 연상 꿈으로 나누고, 연상 꿈은 오로지 재생에서 원천을 얻는다고 주장한다(분트[76], 365쪽). 그러나 그들은 연상 꿈이 「심리적 자극에 떠밀리지 않고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아직 떨쳐 내지 못한다(폴켈트[72], 127쪽). 순수한 연상 꿈의 특징적 성질도 모자란 것으로 드러난다. 폴켈트의 말을 인용하면 이렇다(118쪽). 「본래의 연상 꿈에서는 그런 단단한 핵을 더는 말할 수 없다. 여기서는 느슨한 짜임이 꿈의 중심부까지 파고든다. 이미 이성과 지성에서 풀려난 표상 활동은 여기서 보다 중요한 심리적·정신적 자극에 더는 한데 묶이지 않고, 목적 없이 제멋대로 떠돌며 완전한 혼란에 내맡겨진다.」 분트도 「꿈의 환영을 순수한 환각으로 여기는 것은 분명 부당하며, 아마 대부분의 꿈 표상은 실은 착각일 것이다. 잠자는 동안 결코 꺼지지 않는 희미한 감각 인상에서 나오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함으로써 꿈 자극에서 심리적 요인을 깎아내리려 한다(338쪽 이하). 바이간트[75]는 이 견해에 동의하면서 그것을 일반화한다. 그는 「모든 꿈 표상의 첫째 원천은 감각 자극이며, 여기에 재생적 연상이 뒤따라 붙는다」고 주장한다(17쪽). 티시에[68]는 심리적 자극원을 깎아내리는 데서 한층 더 나아간다(183쪽). 그는 「Les rêves d’origine absolument psychique n’existent pas」〔순전히 심리적인 기원을 지닌 꿈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6쪽) 「Les pensées de nos rêves nous viennent de dehors……」〔우리 꿈의 생각은 바깥에서 우리에게 온다……〕라고 한다.
영향력 있는 철학자 분트처럼 중도를 택하는 저자들은, 대부분의 꿈에서 신체 자극과 꿈을 부추기는 심리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며, 뒤의 것은 알려져 있지 않거나 낮의 관심사로 밝혀진다는 점을 빠뜨리지 않고 지적한다.
꿈 형성의 수수께끼가 생각지도 못한 심리적 자극원을 밝혀냄으로써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뒤에서 알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정신생활에서 비롯되지 않은 자극들이 꿈 형성에서 과대평가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기로 하자. 그런 자극만이 쉽게 찾아낼 수 있고 실험으로 확인할 수도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꿈의 기원에 대한 신체적 견해가 오늘날 정신의학에서 유행하는 사고방식과 완전히 맞아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뇌가 유기체를 지배한다는 점은 특히 강조된다. 그러나 정신생활이 증명할 수 있는 기질적 변화에서 독립해 있음을, 또는 정신생활의 발현에 자발성이 있음을 입증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 오늘날의 정신의학자를 불안하게 만든다. 마치 그런 것을 인정하면 자연철학의 시대와 심리적 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견해가 틀림없이 되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정신의학자의 불신은 말하자면 정신을 후견인 밑에 두었고, 이제는 정신의 어떤 감정도 제 고유한 능력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물질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 사이에 뻗어 있는 인과 사슬이 튼튼하다는 것을 별로 믿지 못한다는 표시다. 조사해 보니 심리적인 것이 어떤 현상의 일차적 원인으로 드러나는 곳에서도, 언젠가는 더 깊이 파고든 연구가 심리적인 것의 기질적 결정 요인에 이르는 길을 이어서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지식으로는 심리적인 것을 종착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곳에서, 그렇다고 해서 심리적인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