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꿈의 해석(아) 이차 가공
차례
로그인

제6장 꿈 작업

(아) 이차 가공

이제 마침내 꿈 형성에 관여하는 요인들 가운데 넷째 요인을 설명할 차례다.

앞에서 대강 밝힌 방식대로, 곧 눈에 띄는 대목마다 꿈 사고의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따져 가며 꿈 내용을 계속 검토하다 보면, 전혀 새로운 가정을 세워야만 설명할 수 있는 요소들과 마주치게 된다. 내가 염두에 둔 것은 꿈속에서 놀라움이나 분노나 저항을 드러내는데, 그것도 꿈 내용의 한 부분 자체를 향해 드러내는 경우다. 꿈속에서 비판 능력이 이렇게 발휘되는 경우는 대부분, 적절한 예를 들어 보여 주었듯이, 꿈 내용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꿈 재료의 일부를 넘겨받아 알맞게 이용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것 가운데 몇몇은 그렇게 처리되지 않는다. 꿈 재료에서는 그에 대응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 이를테면 꿈속에서 드물지 않게 나오는 「뭐, 꿈일 뿐이야」라는 비판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내가 깨어 있을 때 할 법한, 꿈에 대한 진짜 비판이다. 이 비판은 깨어남의 전조가 되는 일이 결코 드물지 않고, 그보다 더 자주는 이 비판에 앞서 고통스러운 느낌이 오는데, 이 느낌은 꿈을 꾸고 있는 상태임이 확실해지면 가라앉는다. 꿈을 꾸는 도중에 떠오르는 「하지만 꿈일 뿐이야」라는 생각은, 오펜바흐의 아름다운 헬레네가 무대 위에서 제 입으로 전하려는 것과 같은 목적을 지닌다. 방금 일어난 일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뒤따를 일에 관용을 얻어 내려 한다. 그 목적은 어떤 심급을 안심시키고, 말하자면 잠재우는 데 있다. 그 심급으로서는 바로 이 순간 나서서 꿈의 ― 또는 그 장면의 ― 계속을 금지할 이유가 충분하다. 「어차피 꿈일 뿐이니까」 계속 잠을 자면서 꿈을 참아 주는 편이 더 기분 좋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지만 꿈일 뿐이야」라는 깎아내리는 비판이 꿈속에 들어오는 것은, 한 번도 완전히 잠든 적이 없는 검열관이 자기가 이미 들여보낸 꿈에 허를 찔렸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꿈을 억제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그래서 그 심급에는 꿈속에 나타나는 저 불안이나 고통스러운 느낌의 기색이 따라붙는다. 이것은 심리적 검열관 쪽의 esprit d’escalier〔계단의 재치, 곧 때를 놓치고 뒤늦게 떠오르는 재치〕가 드러난 것이다.

이 예에서 우리는, 꿈에 담긴 것이 모두 꿈 사고에서 오는 것은 아니며 깨어 있을 때의 우리 사고와 구별할 수 없는 심리 기능도 꿈 내용에 무언가를 보탤 수 있다는 흠잡을 데 없는 증거를 얻는다. 그러면 이제 물음은 이것이다. 이런 일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일어나는가, 아니면 평소에는 검열로서만 활동하는 심리적 심급이 꿈 형성에 규칙적으로 한몫하는가?

주저 없이 뒤의 견해를 택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꿈 내용의 제한과 생략에서만 그 영향을 알아보았던 검열하는 심급이 이 내용에 무언가를 끼워 넣고 덧붙이는 일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끼워 넣은 것들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들은 머뭇거리며 보고되고, 「마치 ……인 듯」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그 자체로는 딱히 생생하지 않고, 꿈 내용의 두 부분을 잇거나 꿈의 두 대목 사이의 흐름을 매끄럽게 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자리에 어김없이 끼어든다. 또 꿈 재료에서 나온 진짜 산물보다 기억에 달라붙는 힘이 약하다. 꿈이 잊히게 되면 가장 먼저 떨어져 나가는 것이 이것들이며, 꿈을 그토록 많이 꾸었는데 대부분을 잊어버리고 조각만 기억한다는 우리의 흔한 불평도 이어 붙이는 구실을 하던 바로 이 생각들이 곧장 떨어져 나가는 데서 비롯한다는 쪽으로 나는 강하게 기운다. 완전한 분석에서는 꿈 사고 속에서 이 끼워 넣은 것들에 해당하는 재료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 정체가 드러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주의 깊게 검토해 본 끝에 나는 이런 경우를 드물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개는 끼워 넣은 생각도 꿈 사고 속의 한 요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다만 그 요소는 제 가치로도, 중층 결정으로도 꿈속에 자리를 요구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꿈 형성에 관여하는 이 심리 기능은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만 독창적인 창작에 손을 뻗는다. 할 수만 있으면 꿈 재료에서 찾아낼 수 있는 쓸 만한 것은 무엇이든 이용한다.

꿈 작업의 이 부분을 다른 것과 구별해 주고 그 정체를 드러내 주는 것은 그 경향이다. 이 기능은 시인이 짓궂게도 철학자의 짓으로 돌린 것과 비슷하게 일한다. 넝마 조각과 누더기로 꿈의 구조물에 뚫린 틈을 틀어막는다. 그 노력의 결과 꿈은 부조리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겉모습을 잃고, 이해할 수 있는 체험의 본보기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이 노력이 언제나 완전한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대충 살펴보면 흠잡을 데 없이 논리적이고 올바르게 보이는 꿈들이 생긴다. 이런 꿈은 있을 법한 상황에서 출발해 일관된 변화를 거치며 그 상황을 이어 가다가 ― 아주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 부자연스럽지 않은 결말로 끝난다. 깨어 있을 때의 사고와 비슷한 심리 기능의 손에서 더없이 철저한 가공을 거친 꿈들이다.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의미는 꿈의 참된 뜻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분석해 보면 이차 가공이 재료를 아주 제멋대로 왜곡하여 재료 본래의 관계를 되도록 남겨 두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가 깨어서 해석하기도 전에 이미 해석되어 있는 꿈이다. 다른 꿈에서는 이 목적에 맞춘 가공이 어느 지점까지만 성공했다. 그 지점까지는 일관성이 지배하는 듯하다가 꿈이 무의미해지거나 혼란스러워지고, 어쩌면 마지막에 가서 그 흐름 속에서 다시 한번 합리적인 겉모습으로 올라서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꿈에서는 가공이 완전히 실패했다. 우리는 조각난 내용이 뜻 없이 뭉친 덩어리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나는 꿈을 빚는 이 넷째 힘에게 ― 이 힘은 곧 우리에게 낯익게 보일 것이다. 실은 꿈을 빚는 것들 넷 가운데 우리가 잘 아는 것은 이것 하나뿐이다 ― 그러니까 이 넷째 요인에게 창조적으로 새로운 기여를 꿈에 보태는 능력이 있음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요인의 영향도 다른 요인들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꿈 사고 속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심리적 재료를 우선하여 골라내는 데서 드러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요인이 꿈에 말하자면 전면(파사드)을 세우는 수고를 대부분 덜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구조물이 꿈 사고의 재료 속에 이미 완성된 채 쓰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다. 여기서 염두에 둔 꿈 사고의 요소를 나는 「공상」이라 부르곤 한다. 깨어 있는 생활의 백일몽을 곧바로 비슷한 예로 들면 아마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1 이 요소가 우리 정신생활에서 맡는 역할을 정신의학자들은 아직 충분히 인정하지도 연구하지도 않았다. 내가 보기에 이 연구에서는 M. 베네디크트가 매우 유망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백일몽의 의의는 시인들의 어김없는 통찰을 비껴가지 못했다. A. 도데가 『나바브(Nabab)』에서 한 조연 인물의 백일몽을 그려 낸 대목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정신신경증을 연구해 보면, 이런 공상 또는 백일몽이 히스테리 증상의 ― 적어도 그 가운데 아주 많은 것의 ― 바로 앞 단계라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히스테리 증상은 기억 자체가 아니라 기억을 바탕으로 세워진 공상에 곧바로 기대고 있다. 의식적인 낮의 공상이 자주 일어나기에 우리는 이런 형성물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의식적인 공상이 있듯이 무의식적 공상도 아주 많은데, 이것들은 그 내용 때문에, 그리고 억압된 재료에서 나왔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채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낮의 공상의 성격을 더 깊이 살펴보면, 이런 형성물에 우리가 밤에 하는 사고의 산물과 같은 이름, 곧 꿈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 얼마나 충분한 까닭이 있는지 알게 된다. 낮의 공상은 그 특성의 본질적인 부분을 밤의 꿈과 함께 지닌다. 사실 이것을 살펴보았더라면 밤에 꾸는 꿈을 이해하는 가장 짧고도 좋은 길이 열렸을 것이다.

꿈과 마찬가지로 이 공상들은 소원 성취다. 꿈과 마찬가지로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어린 시절 체험의 인상에 바탕을 둔다. 꿈과 마찬가지로 그 산물은 검열의 관용을 어느 정도 누린다. 그 형성 과정을 더듬어 보면, 이 공상들을 만들어 내는 데 작용하는 소원 동기가 그 재료를 가져다가 한데 뒤섞고, 다시 배열하고, 새로운 하나로 짜 맞추었음을 볼 수 있다. 이 공상들이 거슬러 올라가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맺는 관계는, 로마의 몇몇 진기한 궁전이 고대 유적과 맺는 관계와 같다. 그 유적의 마름돌과 기둥이 근대식으로 지은 건물의 재료가 되었다.

꿈을 만드는 넷째 요인의 몫으로 돌린 꿈 내용의 「이차 가공」에서, 우리는 백일몽을 지어낼 때 다른 영향에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드러나는 바로 그 활동을 다시 발견한다. 더 에두를 것 없이 말하자면, 우리의 이 넷째 요인은 주어진 재료로 백일몽 같은 것을 만들어 내려 한다. 그런데 꿈 사고와 관련해 그런 백일몽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경우에는, 꿈 작업의 이 요인은 즐겨 그것을 손에 넣어 꿈 내용 속으로 들여오려 애쓴다. 그런 낮의 공상, 어쩌면 무의식적인 채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르는 공상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꿈들이 있다 ― 이를테면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과 함께 전차를 타고 달리는 소년의 꿈이 그렇다. 내 꿈 「Autodidasker」에서는 적어도 꿈의 둘째 부분이, N. 교수와 나 사이의 일을 두고 품었던 ― 그 자체로는 무해한 ― 낮의 공상을 충실하게 되풀이한 것이다. 이렇게 마련된 공상이 꿈의 한 부분만을 이루는 일이 더 많다는 것, 또는 공상의 한 부분만이 꿈 내용에 이른다는 것은, 꿈이 생겨날 때 충족해야 하는 조건들이 복잡하다는 데서 비롯한다. 대체로 공상은 잠재적 재료의 다른 구성 요소와 다름없이 다루어지지만, 꿈속에서 하나의 전체로 알아볼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내 꿈에는 나머지 부분과는 다른 인상으로 두드러지는 부분들이 자주 나온다. 그런 부분은 내게 유동하는 상태에 있는 듯하고, 같은 꿈의 다른 조각보다 더 잘 짜여 있으면서도 동시에 더 덧없어 보인다. 나는 이것이 연상의 힘으로 꿈속에 들어오는 무의식적 공상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런 공상을 붙잡아 적어 두는 데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밖의 점에서 이 공상들은 꿈 사고의 다른 모든 구성 요소와 마찬가지로 한데 뒤섞이고, 압축되고, 하나가 다른 하나에 덮이는 따위의 일을 겪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온갖 단계가 있다. 공상이 바뀌지 않은 채로 꿈 내용을, 또는 적어도 꿈의 전면을 이루는 경우가 한쪽 끝이라면, 그 반대쪽 끝에는 공상이 제 요소 하나로만, 또는 그런 요소에 대한 먼 암시로만 꿈 내용에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공상이 검열의 요구와 압축의 경향을 얼마나 견뎌 낼 수 있느냐도 물론 꿈 사고 속에서 그 공상이 맞을 운명을 결정한다.

나는 꿈 분석의 예를 고를 때, 무의식적 공상이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꿈은 되도록 피했다. 이 심리적 요소를 끌어들이면 무의식적 사고의 심리학을 길게 논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예를 드는 일에서도 「공상」을 아주 빼놓을 수는 없다. 공상은 꿈속에 통째로 들어가는 일이 많고, 꿈에 뚜렷이 배어드는 일은 그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꿈 하나를 더 들어 보겠다. 서로 다르고 대립하는 두 공상이 몇몇 자리에서 겹치며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꿈인데, 첫째 공상은 표면에 있고, 둘째 공상은 말하자면 첫째 공상의 해석자가 된다.2

꿈은 ― 내가 꼼꼼히 적어 두지 못한 꿈은 이것 하나뿐이다 ― 대략 다음과 같다. 꿈꾼 사람은 ― 미혼 청년이다 ― 어느 술집에 앉아 있는데, 술집은 실제 모습 그대로 보인다. 몇 사람이 그를 데리러 오고, 그 가운데 그를 체포하려는 사람이 하나 있다. 그는 같은 탁자에 앉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돈은 나중에 낼게, 다시 올 거야.」 그러나 그들은 비웃으며 그에게 외친다. 「그런 건 다 알아. 누구나 그렇게 말하지.」 손님 하나가 그의 등 뒤에 대고 외친다. 「또 하나 가는군.」 그러고 나서 그는 좁은 방으로 끌려가는데, 거기서 아이를 안은 여자를 발견한다. 그를 데려가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말한다. 「이분이 뮐러 씨입니다.」 담당관인지 다른 어떤 관리인지 하는 사람이 표인지 서류인지 하는 뭉치를 훑어 넘기며 뮐러, 뮐러, 뮐러 하고 되풀이한다. 마침내 그 담당관이 그에게 무언가를 묻고, 그는 「예」 하고 대답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 여자를 한번 쳐다보고, 그녀에게 커다란 수염이 나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서는 두 구성 부분을 쉽게 가를 수 있다. 표면에 있는 것은 체포되는 공상으로, 꿈 작업이 새로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뒤에서 결혼 공상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 재료는 반대로 꿈 작업의 손을 거치면서도 조금밖에 바뀌지 않았다. 두 공상에 공통된 특징들은 골턴의 합성 사진에서처럼 뚜렷하게 두드러진다. 단골 탁자의 제자리로 돌아오겠다는 총각의 약속, 숱한 경험으로 약아진 술친구들의 의심, 뒤에 대고 외치는 「또 하나 (장가)가는군」 ― 이 모든 특징은 쉽게 다른 해석도 받아들일 수 있다. 관리에게 한 긍정의 대답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되풀이하며 서류 뭉치를 훑어 넘기는 것은 결혼식의 부수적이지만 누구나 아는 특징 하나, 곧 제각각 도착한 축전을 소리 내어 읽는 일에 해당한다. 축전은 물론 모두 같은 이름 앞으로 와 있다. 이 꿈에 신부가 몸소 나타난다는 점에서는, 결혼 공상이 자기를 가리고 있는 체포 공상을 이기기까지 했다. 이 신부에게 끝내 수염이 나 있다는 것은 물어서 알아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 분석할 기회는 없었다. 꿈꾼 사람은 전날, 자기 못지않게 결혼을 싫어하는 친구와 함께 길을 건너다가 마주 오는 아름다운 갈색 머리 여자를 친구에게 가리켜 보였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그래, 이런 여자들이 나이 들면서 제 아버지처럼 수염만 나지 않는다면 말이야.」

물론 이 꿈에도 꿈 왜곡이 더 철저하게 손을 댄 요소가 없지 않다. 이를테면 「돈은 나중에 낼게」라는 말은 지참금 문제에서 장인이 보일 태도를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온갖 망설임 때문에 꿈꾼 사람이 결혼하는 공상에 기꺼이 몸을 내맡기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걱정 가운데 하나가 ― 결혼하면 자유를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 체포 장면으로 바뀌면서 모습을 얻었다.

꿈 작업은 꿈 사고의 재료로 공상을 새로 지어내기보다 이미 완성되어 손에 닿는 공상을 즐겨 이용한다는 명제로 돌아가 보자. 이 사실을 염두에 두면 꿈의 가장 흥미로운 수수께끼 하나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1장 (다)에서 모리[48]의 꿈을 이야기했다. 막대기로 목덜미를 얻어맞은 모리는 긴 꿈 하나, 곧 프랑스 대혁명 시대를 무대로 한 완결된 소설 한 편을 지닌 채 깨어난다. 이 꿈은 앞뒤가 맞게 이어져 있고 방해 자극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되는데, 잠자는 사람은 그 자극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남는 가정은 하나뿐인 듯하다. 곧 이토록 풍부하게 짜인 꿈 전체가, 막대기가 모리의 경추에 떨어진 순간부터 그 타격으로 깨어날 때까지의 짧은 시간 안에 지어지고 또 진행되었으리라는 것이다. 깨어 있을 때의 정신 활동에 그런 속도가 있다고 볼 근거는 없으므로, 우리는 놀라운 사고의 가속을 꿈 작업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쳐 주고 싶어진다.

순식간에 널리 받아들여진 이 추론에 맞서 근래의 저자들(르 로랭[45], 에게르[20] 등)이 단호하게 반론을 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모리가 꿈을 정확하게 보고했는지 의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깨어 있을 때 우리 정신 능력의 속도도 꿈 작업에 서슴없이 인정해 줄 수 있는 속도 못지않게 빠르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이 논의는 근본적인 물음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물음을 매듭짓는 일은 나와 그리 밀접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테면 에게르의 논증은 모리의 단두대 꿈을 반박하기에 설득력 있다는 인상을 내게 주지 못했음을 털어놓아야겠다. 나는 이 꿈을 이렇게 설명해 보고 싶다. 모리의 꿈이 여러 해 전부터 완성된 채 그의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던 공상을 보여 주고, 그 공상이 그가 방해 자극을 알아차린 순간에 일깨워졌다고 ― 아니, 넌지시 암시되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 보는 것은 그렇게도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일까? 그렇게 보면, 여기서 꿈꾼 사람에게 주어진 지극히 짧은 시간 안에 그토록 긴 이야기를 세부까지 모두 지어내야 한다는 어려움은 사라진다. 이야기는 이미 지어져 있다. 막대기가 깨어 있는 모리의 목을 쳤다면, 아마 「아니, 이건 꼭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것 같군」 하고 생각할 틈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잠든 채 막대기에 맞았으므로, 꿈 작업은 들어오는 자극을 재빨리 계기로 삼아 소원 성취를 짜 맞춘다. 마치 (이것은 순전히 비유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저러한 때 책을 읽으면서 만들어 두었던 소원 공상을 실현할 좋은 기회가 여기 왔군」 하고 생각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 꿈 소설이 바로 젊은이가 강렬한 인상에 사로잡혀 지어낼 법한 그런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공포 정치를 그린 글을 읽고 누가 ― 더구나 프랑스인이자 문명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겠는가? 그 글에서 귀족들, 곧 국민의 꽃인 남자들과 여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죽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고, 운명의 호출이 올 때까지 날랜 재치와 세련된 삶의 태도를 잃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의 한가운데서, 사랑하는 여인의 손에 입 맞추어 작별하고 두려움 없이 처형대에 오르는 젊은이 가운데 하나로 자신을 공상해 보는 것은 얼마나 마음 끌리는 일인가! 아니면 이 공상을 지배하는 동기는 야심일까? 오로지 사고의 힘과 불같은 웅변만으로 인류의 심장이 그토록 경련하듯 고동치는 도시를 다스리고, 확신에 떠밀려 수천 명을 죽음으로 보내며, 유럽의 변혁에 길을 닦으면서도, 정작 제 머리가 온전하리라고는 장담하지 못해 언젠가 그 머리를 단두대의 칼날 아래 눕힐지도 모르는 저 막강한 인물들 가운데 하나의 자리에, 어쩌면 지롱드파의 한 사람이나 영웅 당통의 역할로, 자신을 놓아 보려는 야심 말이다. 기억에 남아 있는 「헤아릴 수 없는 무리가 뒤따르는 가운데」라는 특징은 모리의 공상이 이런 야심 찬 공상임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던 이 공상은 잠 속에서 다시 체험될 필요가 없다. 말하자면 「건드려지기만」 하면 충분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렇다. 음 몇 개가 울리고, 『돈 후안』에서처럼 누군가가 「이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거야」 하고 말하면, 내 안에서 갑자기 기억들이 밀려 올라오는데, 그 가운데 어느 것도 바로 다음 순간 의식에 불러낼 수는 없다. 그 특징적인 악구가 입구 정거장 구실을 하고, 거기서 하나의 완결된 전체가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의식적 사고의 경우에도 다를 까닭이 없다. 깨우는 자극은 단두대 공상 전체로 가는 길을 여는 심리적 정거장을 움직인다. 그러나 이 공상은 잠자는 동안 하나하나 훑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깨어나서 기억할 때에야 비로소 훑어진다. 깨어나면서 사람은 꿈속에서는 하나의 전체로 여겨졌던 공상의 세부를 기억해 낸다. 게다가 꿈에서 꾼 무언가를 정말로 기억해 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같은 설명, 곧 깨우는 자극이 통째로 움직이게 한 완성된 공상을 다루고 있다는 설명은 깨우는 자극에서 생겨나는 다른 꿈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를테면 폭탄이 폭발할 때 나폴레옹이 꾼 전투 꿈이 그렇다. 그렇다고 깨우는 자극에서 생긴 꿈이 모두 이렇게 설명된다거나, 꿈에서 표상이 가속되어 방출되는 문제가 이런 식으로 남김없이 풀린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꿈 내용의 이 이차 가공이 꿈 작업의 다른 요인들과 맺는 관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과정은 이런 것일까? 꿈을 지어내는 요인들, 곧 압축하려는 충동, 검열을 피해야 할 필요, 그리고 꿈이 쓸 수 있는 심리적 수단에 비추어 본 표현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먼저 잠정적인 꿈 내용을 만들어 내고, 그 뒤에 이 내용이 둘째 심급의 요구를 충족할 때까지 고쳐지는 것일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 심급의 요구가 처음부터 꿈이 충족해야 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에 들어 있고, 이 조건이 압축, 검열, 표현 가능성의 조건과 꼭 마찬가지로 꿈 사고 속 재료 전체에 동시에 작용하여 그것을 유도하고 선별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그러나 꿈 형성에 필요한 네 조건 가운데 가장 나중에 알게 된 이 조건은, 그 요구가 꿈을 가장 느슨하게 구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꿈 내용의 이른바 이차 가공을 떠맡는 이 심리 기능이 우리가 깨어 있을 때 하는 사고의 작업과 같은 것이라는 점은 다음과 같은 고찰에서 꽤 확실하게 추론할 수 있다. 깨어 있을 때의 우리 (전의식적) 사고는 주어진 지각 대상을 대할 때, 문제의 그 기능이 꿈 내용을 대할 때와 꼭 같이 행동한다. 지각 재료에 질서를 세우고, 관계를 짜 맞추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연관의 요구에 따르게 하는 것은 깨어 있을 때의 사고에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 우리는 여기서 도를 넘는다. 마술사의 묘기는 이 지적 습관을 이용해 우리를 속인다. 주어진 감각 인상을 이해할 수 있게 짜 맞추려 애쓰다가 우리는 흔히 더없이 기이한 잘못을 저지르고, 심지어 눈앞에 놓인 재료의 진실을 왜곡하기까지 한다. 이에 대한 증거는 누구나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여기서 길게 다룰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인쇄된 지면에서 오식을 보지 못하는 것은 상상이 바른 낱말을 그려 넣기 때문이다. 널리 읽히는 프랑스의 한 신문 편집자는, 긴 기사의 문장마다 「앞에서」나 「뒤에서」라는 말을 찍어 넣어도 독자 가운데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리라는 데 내기를 걸었다고 한다. 그는 내기에서 이겼다. 여러 해 전 신문에서 읽은 그릇된 연상의 기묘한 예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 하원의 어느 회의에서 무정부주의자가 의사당 안으로 던진 폭탄이 터져 공황이 일어났을 때, 뒤퓌는 「La séance continue〔회의를 계속합니다〕」 하고 침착하게 말해 공황을 가라앉혔다. 그 회의가 끝난 뒤 방청석에 있던 사람들은 이 암살 기도에서 받은 인상을 증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 가운데 시골에서 온 사람이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어떤 연설이 끝나자마자 폭음을 들었지만, 연사가 연설을 마칠 때마다 한 방씩 쏘는 것이 의회의 관습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다른 한 사람은 이미 연사 여럿의 연설을 들었던 듯한데,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다만 그는 이 발포가 특히 훌륭한 연설 뒤에 보내는 찬사의 표시라고 여겼다는 점이 달랐다.

그러므로 꿈 내용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들고 다가가, 그것에 예비 해석을 가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을 완전히 오해하게 만드는 심리적 심급은 다름 아닌 우리의 정상적인 사고다. 우리가 해석할 때는 어떤 경우에나 꿈의 겉보기 연관을 출처가 의심스러운 것으로 여겨 무시하고, 요소가 분명하든 혼란스럽든 똑같이 꿈 재료로 되돌아가는 퇴행적인 길을 따르는 것이 규칙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앞서 이 장 (다)에서 언급한, 혼란에서 선명함에 이르는 꿈의 질적 등급이 본질적으로 무엇에 달려 있는지 알게 된다. 이차 가공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었던 꿈의 부분은 우리에게 선명해 보이고, 이 활동의 힘이 미치지 못한 부분은 혼란스러워 보인다. 꿈의 혼란스러운 부분은 흔히 덜 생생하게 새겨진 부분이기도 하므로, 우리는 이차적 꿈 작업이 개별 꿈 구조물의 조형적 강도에도 한몫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정상적인 사고의 영향 아래 드러나는 꿈의 최종적인 형태에 견줄 대상을 찾는다면, 『플리겐데 블레터(Die Fliegende Blaetter)』가 그토록 오랫동안 독자를 즐겁게 해 온 저 수수께끼 같은 비문보다 나은 것은 없다. 독자는 주어진 문장 속에 숨은 라틴어 비문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 문장은 대조의 효과를 노려 사투리로 되어 있고 뜻도 되도록 상스럽다. 이를 위해 글자들을 음절의 묶음에서 떼어 내어 새로 배열한다. 군데군데 진짜 라틴어 낱말이 생겨나고, 다른 자리에서는 그런 낱말의 약어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며, 비문의 또 다른 자리에서는 부서져 떨어져 나간 부분처럼 보이는 겉모양이나 비문에 난 틈에 이끌려, 흩어진 글자들이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그냥 넘겨 버린다. 이 농담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비문을 찾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글자를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어진 배열에는 아랑곳하지 말고 우리 모국어의 낱말로 짜 맞추어야 한다.

이제 꿈 작업에 관한 이 긴 논의를 요약해 보겠다. 우리 앞에 놓인 물음은, 정신이 꿈 형성에서 제 능력을 모두 한껏 펼치는가, 아니면 능력의 한 조각만을, 그것도 활동이 제한된 채로 발휘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연구 끝에, 이런 식으로 물음을 세우는 것 자체가 우리 사정에 맞지 않는다며 통째로 물리치게 된다. 그러나 물음이 우리에게 들이밀어진 바로 그 지반 위에 머물러 대답하자면, 겉보기에 서로 대립하고 서로 배제하는 두 견해를 둘 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꿈을 형성하는 심리 활동은 두 가지 기능으로 나뉜다. 꿈 사고를 마련하는 기능과, 그것을 꿈 내용으로 바꾸는 기능이다. 꿈 사고는 전적으로 올바르며, 우리가 치를 수 있는 온갖 심리적 비용을 들여 형성된다. 꿈 사고는 의식되지 않은 우리 사고에 속하며, 의식된 우리 사고도 어떤 전환을 거쳐 이 사고에서 생겨난다. 꿈 사고에 관해 알 만한 것, 수수께끼 같은 것이 아무리 많다 해도, 이 문제들은 꿈과 특별한 관계가 없으며 꿈의 문제와 함께 다루어져야 할 까닭도 없다. 반면에 무의식적 사고를 꿈 내용으로 바꾸는 저 둘째 부분의 활동이 있다. 이것은 꿈 생활에 고유하고 꿈 생활을 특징짓는 활동이다. 그런데 이 독특한 꿈 작업은, 꿈을 형성하는 심리 활동을 가장 단호하게 깎아내린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도 깨어 있을 때 사고의 본보기에서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다. 꿈 작업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데, 깨어 있을 때의 사고보다 더 소홀하거나, 더 부정확하거나, 더 쉽게 잊히거나, 더 불완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깨어 있을 때의 사고와 질적으로 전혀 다른 무엇이며, 따라서 결코 그것과 견줄 수 없다. 대체로 생각하지도, 계산하지도, 판단하지도 않으며, 바꾸어 놓는 데 그친다. 그 산물이 생겨날 때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을 염두에 두면 꿈 작업은 남김없이 서술할 수 있다. 이 산물, 곧 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검열을 벗어나야 하며, 이를 위해 꿈 작업은 심리적 강도의 전치를 이용하되 그것을 모든 심리적 가치의 전도에까지 밀고 나간다. 사고는 오로지 또는 주로 시각적·청각적 기억 흔적의 재료로 재현되어야 하는데, 이 요구가 꿈 작업에 표현 가능성에 대한 고려를 안기고, 이 고려는 새로운 전치를 마련해 그 요구에 응한다. 밤마다 꿈 사고가 쓸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강도를 (아마도) 마련해야 하는데, 이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이 꿈 사고의 구성 요소를 가지고 벌이는 풍성한 압축이다. 사고 재료의 논리적 관계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논리적 관계는 결국 꿈의 형식적 특성 속에서 가려진 표현을 얻는다. 꿈 사고의 정동은 그 표상 내용보다 덜 바뀐다. 정동은 대개 억제된다. 보존되는 경우에는 표상에서 풀려나 서로 비슷한 것끼리 한데 모인다. 꿈 작업 가운데 단 한 부분만이 ― 부분적으로 깨어난 의식적 사고가 가하는, 양이 그때그때 다른 손질만이 ― 저자들이 꿈 형성의 활동 전체로 넓히려 한 견해와 조금이나마 들어맞는다.

주

  1. 1. Rêve, petit roman〔꿈, 짧은 소설〕 ― day-dream, story〔백일몽, 이야기〕.

  2. 2. 여러 공상이 층층이 겹친 데서 생겨난 이런 종류의 꿈을 나는 「어느 히스테리 분석의 단편(Bruchstück einer Hysterie Analyse)」(1905)에서 좋은 예로 분석했다. 덧붙이자면, 나는 주로 내 꿈을 가지고 작업하는 동안에는 꿈 형성에서 이런 공상이 지니는 의의를 과소평가했다. 내 꿈은 백일몽에 바탕을 두는 일이 드물었고, 대개는 토론과 마음속 갈등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밤의 꿈과 백일몽 사이의 완전한 유사성을 증명하기가 훨씬 쉬운 일이 많다. 히스테리 환자에게서는 발작을 꿈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백일몽의 공상이 두 심리적 형성물 모두의 첫 단계라는 것이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