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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나) 전치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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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꿈 작업

(나) 전치 작업

꿈 압축의 예를 모으는 동안,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종류의 관계가 우리 눈에 띄었을 것이다. 꿈 내용에서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 두드러져 나서는 요소들이 꿈 사고에서는 결코 그와 같은 구실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이와 짝을 이루어, 이 명제를 뒤집은 것도 참이다. 꿈 사고에서 분명히 본질적인 것이 꿈에는 전혀 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꿈은 말하자면 중심이 어긋나 있다. 꿈의 내용은 꿈 사고와는 다른 요소들을 중심점으로 삼아 그 둘레에 모여 있다. 이를테면 식물학 연구서 꿈에서 꿈 내용의 중심점은 분명 「식물학」이라는 요소다. 그런데 꿈 사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동료들끼리 베푼 호의가 서로를 빚지게 만드는 데서 생기는 얽힘과 갈등이고, 그다음으로는 내가 취미에 너무 많은 것을 바치곤 한다는 비난이다. 「식물학」이라는 요소는 대립을 통해 꿈 사고의 이 핵심과 느슨하게나마 이어져 있지 않았다면 그 속에 결코 자리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식물학은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공부에 들지 못했으니 말이다. 내 환자의 사포 꿈에서는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 위층에 있는 것과 아래에 있는 것이 중심점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꿈이 다루는 것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과 성관계를 맺는 데 따르는 위험이다. 그러니 꿈 사고의 요소 가운데 오직 하나만, 그것도 걸맞지 않게 부풀려진 채로 꿈 내용에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성욕과 잔인함의 관계를 주제로 하는 6월 딱정벌레 꿈에서도 잔인함이라는 요소가 다시 나타나기는 하지만, 다른 연관 속에서, 성적인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제 맥락에서 뜯겨 나와 낯선 무언가로 바뀌었다. 또 삼촌 꿈에서는 꿈의 중심점인 듯 보이는 금빛 수염이, 우리가 꿈 사고의 핵심으로 알아낸 위대함을 향한 소원들과 아무런 합리적 연관도 없는 것 같다. 이런 꿈들이 전치된 인상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이 예들과는 정반대로, 이르마의 주사 꿈은 개별 요소들이 꿈 사고에서 차지하는 것과 똑같은 자리를 꿈 형성에서도 요구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꿈 사고와 꿈 내용 사이의 이 새롭고 전혀 일정하지 않은 관계를 알게 되면 처음에는 놀라움이 앞설 것이다. 정상적인 생활의 심리적 과정에서, 한 표상이 다른 여러 표상 가운데서 골라져 우리 의식 속에서 유난히 생생해진 것을 보면, 우리는 이 결과를 승리한 표상이 유달리 높은 심리적 가치, 곧 어느 정도의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로 여기곤 한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꿈 사고 속 개별 요소들의 이 가치가 꿈 형성에서 보존되지 않거나 아예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꿈 사고의 요소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가치가 높은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판단이 곧바로 알려 준다. 그런데 꿈 형성에서는 강렬한 관심으로 강조된 요소들이 마치 하찮은 것처럼 다루어질 수 있고, 꿈 사고에서 분명히 하찮았던 다른 요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처음에는 개별 표상들의 심리적 강도1는 꿈의 선택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고, 오직 그 표상들이 얼마나 여러 겹으로 결정되어 있는가만 고려된다는 인상을 받는다. 꿈에 들어가는 것은 꿈 사고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꿈 사고 속에 여러 번 거듭 들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가정해서는 꿈 형성에 대한 이해가 그리 나아가지 않는다. 다중 결정과 고유한 가치라는 두 요인이 꿈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때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으리라고는 애초에 믿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꿈 사고 속에서 가장 중요한 표상들은 아마 가장 자주 되풀이되는 표상들이기도 할 것이다. 개개의 꿈 사고는 그 표상들을 중심점 삼아 거기서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꿈은 특히 강조되고 여러 방면에서 뒷받침을 받는 요소들을 물리치고, 뒤의 성질만 지닌 요소들을 자기 내용에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난점은 꿈 내용의 다중 결정을 조사하면서 받은 또 다른 인상을 살펴보면 풀릴 수 있다. 어쩌면 많은 독자가 이 조사에 대해 벌써 나름의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꿈 요소들의 다중 결정은 자명한 것이니 대단한 발견이 아니라고 말이다. 분석에서는 꿈 요소에서 출발해 그것과 이어진 생각을 모두 적어 나가니, 이렇게 얻은 사고 재료 속에 바로 그 요소들이 유난히 자주 나타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 반론이 타당하다고 인정할 수 없지만, 나 자신도 그와 비슷하게 들리는 말을 하려 한다. 분석이 밝혀내는 사고 가운데에는 꿈의 중심 생각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어떤 뚜렷한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끼워 넣은 것처럼 나머지와 구별되어 보이는 것이 많다. 그 목적은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꿈 내용과 꿈 사고 사이에 연결을, 그것도 흔히 억지스럽고 무리한 연결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이런 사고들이다. 이 요소들을 솎아 낸다면 꿈 내용에는 중층 결정은커녕 꿈 사고에 의한 충분한 결정조차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꿈의 선택을 결정하는 다중 결정이 꿈 형성에서 늘 일차적인 요인은 아닐지도 모르며, 오히려 우리가 아직 모르는 어떤 심리적 힘이 이차적으로 드러난 것일 때가 많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다중 결정은 역시 개별 요소가 꿈에 들어가는 것을 좌우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것이 꿈 재료에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 경우에는 상당한 수고를 들여 만들어 낸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가정에 바짝 다가서 있다. 꿈 작업에서는 어떤 심리적 힘이 드러나는데, 이 힘은 한편으로 심리적 가치가 높은 요소들에서 강도를 벗겨 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가 적은 요소들에서 중층 결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며, 이렇게 생긴 새 가치가 뒤이어 꿈 내용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진행된다면, 꿈 형성에서는 개별 요소들의 심리적 강도의 전이와 전치가 일어난 것이며, 꿈과 사고 내용의 문면이 서로 다른 것은 그 결과다. 여기서 우리가 가정하는 과정은 다름 아닌 꿈 작업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꿈 전치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 꿈 전치와 꿈 압축은 꿈의 형태를 빚어낸 공을 주로 돌려야 할 두 장인이다.

꿈 전치라는 사태에서 드러나는 심리적 힘을 알아보는 일도 어렵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전치의 결과, 꿈 내용은 꿈 사고의 핵심과 더는 조금도 닮지 않게 되고, 꿈은 무의식 속에 있는 꿈 소원을 왜곡된 형태로만 재현하게 된다. 그런데 꿈 왜곡이라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정신생활에서 한 심리적 심급이 다른 심급에 가하는 검열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했다. 꿈 전치는 이 왜곡을 이루어 내는 주요 수단 가운데 하나다. Is fecit, cui profuit.〔그것으로 이득을 본 자가 그 일을 한 자다.〕 꿈 전치는 이 검열, 곧 내심리적 반발의 영향으로 일어난다고 가정해도 좋다.2

꿈 형성에서 전치와 압축과 중층 결정이라는 요인들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작용하는지, 어느 것이 주도하는 요인이고 어느 것이 딸린 요인인지, 이 모든 것은 뒤에 연구할 주제로 남겨 두겠다. 지금으로서는, 요소들이 꿈에 들어가기 위해 충족해야 할 둘째 조건으로 그것들이 저항의 검열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둘 수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꿈을 해석할 때 꿈 전치를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셈에 넣을 것이다.

주

  1. 1. 표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하는 심리적 강도·가치·강조는 물론 감각의 강도와도, 표상된 것의 강도와도 구별해야 한다.

  2. 2. 꿈 왜곡을 이렇게 검열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는 것을 나는 내 꿈 이론의 핵심으로 여기므로, 여기에 륑코이스의 『어느 현실주의자의 공상(Phantasien eines Realisten)』(빈, 제2판, 1900)에 실린 이야기 「깨어 있을 때처럼 꿈꾸기(Traumen wie Wachen)」의 뒷부분을 끼워 넣는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내 이론의 이 주된 특징이 그대로 되풀이되어 있는 것을 본다.

    「결코 무의미한 꿈을 꾸지 않는다는 놀라운 특성을 지닌 한 남자에 관하여…….」

    「깨어 있을 때처럼 꿈꾸는 자네의 그 놀라운 특성은 자네의 미덕에, 자네의 선량함과 정의로움과 진리에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네. 자네를 둘러싼 모든 것을 알기 쉽게 해 주는 것은 자네 본성의 도덕적 명료함일세.」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고 상대가 대답했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만들어져 있고, 어떤 인간도 무의미한 꿈은 꾸지 않는다고 나는 믿고 싶을 지경일세!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또렷하게 기억되는 꿈, 그러니까 섬망 상태에서 꾼 꿈이 아닌 꿈은 언제나 의미가 있다네. 아니, 달리 될 수가 없지! 스스로 모순되는 것은 결코 하나의 전체로 묶일 수 없으니 말일세. 시간과 공간이 흔히 완전히 뒤죽박죽이 된다고 해서 꿈의 진짜 의미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지는 않네. 둘 다 꿈의 본질적인 내용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기 때문일세. 우리는 깨어 있을 때도 흔히 그렇게 하지. 동화를, 대담하고 심오한 숱한 환상적 창작물을 생각해 보게. 무지한 사람만이 그런 것을 두고 『그건 무의미해! 불가능한 일이니까』 하고 말할 걸세.」

    「방금 내 꿈을 풀어 준 것처럼 언제나 꿈을 바르게 해석할 수만 있다면야!」 하고 친구가 말했다.

    「그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닐세. 하지만 꿈꾸는 사람 자신이라면 주의를 조금만 모아도 언제나 해낼 수 있을 걸세……. 왜 대개는 그게 불가능하냐고? 자네 꿈은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 독특하고 더 고상한 종류의 순결하지 못한 무언가, 생각으로는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자네 본성의 어떤 신비를 감추고 있는 것 같네. 그래서 자네 꿈은 그토록 자주 의미가 없거나 심지어 모순인 것처럼 보이는 걸세. 그러나 가장 깊은 뜻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네. 아니, 그럴 수가 전혀 없지. 잠들어 있든 깨어 있든 언제나 같은 사람이니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