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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아) 꿈과 정신 질환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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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꿈 문제에 관한 학술 문헌

(아) 꿈과 정신 질환의 관계

꿈과 정신 장애의 관계를 말할 때 우리는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1) 병인론적·임상적 관계. 꿈이 정신병 상태를 대신하거나 그 발단이 되는 경우, 또는 그런 상태를 뒤로하고도 이어지는 경우가 그렇다. (2) 정신 질환에서 꿈 생활이 겪는 변화. (3) 꿈과 정신병 사이의 내적 관계, 곧 둘이 긴밀히 이어져 있음을 가리키는 유사점들. 두 계열의 현상 사이에 얽힌 이 다양한 관계는 의학사의 이른 시기에 의학 저술가들이 즐겨 다룬 주제였고, 근래에 들어 다시 그런 주제가 되었다. 슈피타[64], 라데슈토크[54], 모리[48], 티시에[68]가 모아 놓은 관련 문헌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최근에는 산테 데 상크티스가 이 관계에 눈을 돌렸다. 우리 논의의 목적에는 이 중요한 주제를 잠깐 훑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꿈과 정신병의 임상적·병인론적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관찰들을 본보기로 들겠다. 혼바움은 광기의 첫 발작이 불안하고 무서운 꿈에서 비롯되는 일이 많고, 지배 관념도 이 꿈과 이어져 있다고 주장한다(크라우스, 39쪽 참조). 산테 데 상크티스는 편집증 환자들에게서 얻은 비슷한 관찰을 내놓으면서, 그 가운데 몇몇 환자에게는 꿈이 「vraie cause déterminante de la folie〔광기의 진정한 결정 원인〕」라고 단언한다. 정신병은 정신 장애를 일으키고 그 장애를 설명해 주는 내용까지 품은 꿈과 함께 느닷없이 생겨날 수도 있고, 아직 의심과 싸워야 하는 꿈이 거듭되면서 서서히 자라날 수도 있다. 데 상크티스의 한 사례에서는 마음을 뒤흔든 그 꿈에 가벼운 히스테리 발작이 따랐고, 이 발작에 이어 다시 불안한 멜랑콜리 상태가 찾아왔다. 페레(티시에의 인용)는 히스테리성 마비를 일으킨 꿈을 언급한다. 여기서 꿈은 정신 장애의 병인으로 우리 앞에 제시된다. 하지만 정신 장애가 꿈 생활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고, 곧 꿈속에서 처음 터져 나온다고 말해도 실제 사정을 그 못지않게 올바로 헤아리는 셈이다. 다른 사례에서는 꿈 생활이 병적 증상을 담고 있었거나, 정신병이 꿈 생활에만 머물렀다. 이를테면 토마예르[70]는 간질 발작의 등가물로 보아야 할 불안 꿈에 주의를 환기한다. 앨리슨은 야간 광기를 기술했다(라데슈토크의 인용).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낮에는 겉보기에 멀쩡하다가도 밤만 되면 어김없이 환각이나 광란 발작 따위를 일으킨다. 데 상크티스와 티시에도 비슷한 관찰을 보고한다(알코올 중독자의 편집증적 꿈 등가물, 아내의 부정을 고발하는 목소리). 티시에는 병적인 성격을 띤 행동(망상이나 강박 충동에 바탕을 둔 행동)이 꿈에서 비롯된 근래의 관찰 사례를 풍부하게 보고한다. 기슬랭은 잠이 간헐적 광기로 대체된 사례를 기술한다.

의사가 언젠가 꿈의 심리학과 더불어 꿈의 정신병리학까지 다루게 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광기에서 회복되어 가는 사례에서는, 낮의 기능은 정상인데도 꿈 생활은 여전히 정신병에 속해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유난히 뚜렷하게 드러날 때가 많다. 이런 사례에 처음 주목한 사람은 그레고리라고 한다(크라우스[39]의 인용). 마카리오(티시에의 보고)는 한 조증 환자의 사례를 전한다. 이 환자는 완전히 회복되고 일주일이 지난 뒤에 꿈속에서 병을 앓을 때의 사고 비약과 격정적인 충동을 다시 겪었다.

만성 정신병 환자의 꿈 생활이 겪는 변화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가 아주 적다. 반면에 꿈과 정신 장애 사이의 내적 관계에는 일찍부터 관심이 쏠렸다. 이 관계는 양쪽에 나타나는 현상이 폭넓게 일치한다는 데서 드러난다. 모리[47]에 따르면 카바니스가 『인간의 신체와 정신의 관계(Rapports du physique et du moral)』에서 처음으로 이 점에 주목했고, 그 뒤를 렐뤼와 J. 모로, 그리고 누구보다 철학자 멘 드 비랑이 이었다. 물론 이런 비교 자체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 라데슈토크[54]는 이 비교를 다루는 장의 첫머리에 꿈과 광기의 유사성을 보여 주는 말들을 한데 모아 놓았다. 칸트는 어디에선가 이렇게 말한다. 「미치광이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꿈꾸는 사람이다.」 크라우스는 「광기란 감각이 깨어 있는 꿈이다」라고 한다. 쇼펜하우어는 꿈을 짧은 광기라 부르고, 광기를 긴 꿈이라 부른다. 하겐은 섬망을 잠이 아니라 병이 불러일으킨 꿈 생활이라고 묘사한다. 분트는 『생리학적 심리학』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실제로 우리는 정신병원에서 마주치는 증상 거의 전부를 꿈속에서 몸소 겪을 수 있다.」

이런 동일시를 수긍하게 해 주는 구체적인 일치점들은 슈피타[64]가 열거했다. 모리 역시 아주 비슷하게 다음과 같이 묶어서 열거했다. 「(1) 자기의식이 정지하거나 적어도 느려진다. 그 결과 자신이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그래서 놀랄 줄 모르며 도덕의식도 없다. (2) 감각 기관의 지각이 달라진다. 곧 지각이 꿈에서는 줄어들고, 광기에서는 대개 높아진다. (3) 관념과 관념의 결합이 오로지 연상과 재생의 법칙만을 따른다. 그래서 관념이 저절로 무리를 짓고, 그 때문에 관념 사이의 관계가 균형을 잃는다(과장, 환영).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과로, (4) 인격이, 때로는 성격의 특성까지 바뀌거나 변형된다(비뚤어짐).」

라데슈토크는 재료 면에서 드러나는 특징, 곧 유사점을 몇 가지 덧붙인다. 「환각과 착각은 대부분 시각과 청각, 그리고 전신 감각의 영역에서 나타난다. 꿈에서와 마찬가지로 후각과 미각이 내놓는 요소는 가장 적다. 열병 환자는 꿈꾸는 사람처럼 먼 과거의 회상에 시달린다. 깨어 있는 건강한 사람이 잊은 듯한 것이 잠 속에서, 또 병 속에서 다시 떠오른다.」 꿈과 정신병의 유사성은 가족끼리 닮은 모습이 그렇듯, 미세한 표정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에 드러나는 저마다의 특징에까지 미칠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가치를 얻는다.

「육체와 정신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꿈은 현실이 허락하지 않은 것, 곧 몸의 안녕과 행복을 베풀어 준다. 광인들도 그처럼 행복과 위대함과 숭고함과 부의 찬란한 영상을 본다. 가졌다고 믿는 재산과 상상 속의 소원 성취가 섬망의 주된 내용을 이루는 일이 많은데, 바로 그것이 허락되지 않거나 무너진 일이 광기의 심리적 원인이었다. 몹시 사랑하던 아이를 잃은 여인은 섬망 속에서 어머니의 기쁨을 누리고, 재산을 날린 남자는 자기가 어마어마한 부자라고 여기며, 버림받은 처녀는 다정한 사랑의 행복에 잠긴 자신을 그려 본다.」

위에 인용한 라데슈토크의 글은 그리징어[31]의 예리한 논의(111쪽)를 간추린 것으로, 꿈과 정신병에 공통된 상상의 한 특징으로서 소원 성취(wish fulfilment)를 더없이 선명하게 드러낸다. (내가 연구하면서 배운 바로는, 꿈과 정신병에 관한 심리학적 이론의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념의 부조리한 결합과 판단력의 약함이 꿈과 광기의 주된 특징이다.」 자기 정신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맑은 정신으로 판단하면 부조리해 보이지만, 꿈에서도 광기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꿈속에서 생각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은 정신병의 사고 비약에 대응한다. 둘 다 시간의 척도라고는 전혀 모른다. 꿈속의 인격 해리는 이를테면 자기가 아는 것을 두 인물에게 나누어 주어 그 가운데 낯선 인물이 꿈속에서 자기 자아를 바로잡게 하기도 하는데, 이는 환각성 편집증에서 잘 알려진 인격 분열에 고스란히 대응한다. 꿈꾸는 사람도 낯선 목소리가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듣는다. 고정된 망상조차 판에 박힌 듯 되풀이되는 병적인 꿈(rêve obsédant〔강박적인 꿈〕)에 그 닮은꼴이 있다. 섬망에서 회복된 환자가 병이 마치 언짢은 꿈 같았다고 털어놓는 일은 드물지 않다. 아니, 병을 앓는 동안에도 이따금 자기가 그저 꿈을 꾸고 있을 뿐이라고 느꼈다고 알려 주기도 한다. 잠잘 때 꾸는 꿈에서 흔히 그러듯이 말이다.

이 모든 점을 생각하면, 라데슈토크가 자신의 견해와 다른 많은 사람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광기는 비정상적인 질병 현상으로서,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정상적인 꿈 상태가 고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228쪽).

크라우스[39]는 꿈과 광기의 관계를 병인에(아니, 그보다는 자극원에) 근거 지으려 했는데, 그럼으로써 둘이 드러내는 현상의 유사성만으로 가능했던 것보다 그 관계를 한층 더 긴밀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크라우스에 따르면 둘에 공통된 근본 요소는, 앞에서 보았듯이, 신체 기관에 따라 결정되는 감각, 곧 신체 자극의 감각이며, 모든 기관이 저마다 몫을 보태어 만들어 내는 전신 감각이다. 모리[48]가 인용한 페스를 참조하라(60쪽).

꿈과 정신 장애가 특징적인 세부에 이르기까지 부정할 수 없이 일치한다는 사실은 꿈 생활에 관한 의학적 이론을 가장 강하게 떠받치는 근거에 속한다. 이 이론은 꿈을 쓸모없고 방해만 되는 과정이자 저하된 심리 활동의 표출로 그린다. 그렇다고 정신 장애에서 꿈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정신 장애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는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에 대한 견해가 바뀌면 정신 장애의 내적 기제에 관한 우리의 생각도 바뀔 수밖에 없을 공산이 매우 크다. 그러니 꿈의 비밀을 밝히려고 애쓸 때 우리는 정신병을 해명하는 일에도 매달리고 있는 셈이라고 말해도 좋다.

꿈 문제에 관한 문헌을 요약하면서 이 책의 초판이 나온 때부터 제2판이 나온 때까지의 시기를 다루지 않은 데 대해서는 해명을 해야겠다. 이 해명이 독자에게 그리 만족스럽지 않게 보일지 몰라도, 내가 그렇게 한 것은 어디까지나 이 이유 때문이었다. 문헌이 꿈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요약하게 한 주된 동기는 앞의 서론으로 이미 다 충족되었다. 이 작업을 이어 갔다면 엄청난 수고가 들었을 테고, 얻는 이득이나 지식은 보잘것없었을 것이다. 앞서 말한 9년 동안, 꿈을 이해하는 데 새롭거나 값진 것은 실제 재료로도 관점으로도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나온 출판물 대부분에서 내 연구는 언급되지도 고려되지도 않았다. 관심을 가장 적게 기울인 것은 당연하게도 이른바 「꿈 연구자」들이었고, 그들은 이로써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싫어하는 학자 특유의 성향을 보여 주는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다. 냉소가 아나톨 프랑스는 「Les savants ne sont pas curieux〔학자들은 호기심이 없다〕」라고 했다. 학문에도 복수할 권리라는 것이 있다면, 나 역시 이 책이 나온 뒤의 문헌을 무시해도 떳떳할 것이다. 학술지에 실린 몇 안 되는 서평은 어리석음과 오해로 가득해서, 나를 비판한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 달라는 부탁뿐이다. 어쩌면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달라고 부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신분석 치료법을 쓰는 의사들(융, 아브라함, 리클린, 무트만, 슈테켈, 랑크 등)은 자기 저작에서 수많은 꿈을 보고하고 내 지침에 따라 해석했다. 이 저작들이 내 주장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 경우에는, 그 성과를 내 논의의 맥락 안에서 밝혀 두었다. 이 새 출판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은 책 끝 문헌 목록 후반부에 보충으로 모아 두었다. 산테 데 상크티스가 꿈에 관해 쓴 방대한 책은 나오자마자 독일어 번역본이 나왔는데, 말하자면 내 책과 엇갈려 지나갔다. 그래서 그 이탈리아 저자가 나를 참고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를 참고할 수 없었다. 유감스럽지만 한마디 더 해야겠다. 공을 많이 들인 이 저작은 생각이 지극히 빈약하다. 얼마나 빈약한지, 이 책만 읽어서는 내가 다룬 문제들이 있다는 것조차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끝으로, 꿈 문제를 다루는 내 방식과 가까운 관계를 보여 주는 출판물 두 가지를 언급해야겠다. 젊은 철학자 H. 스보보다는 W. 플리스가 발견한 생물학적 주기성(23일 단위와 28일 단위)을 심리 영역으로 넓히려고 나섰는데, 그렇게 해서 내놓은 상상력 넘치는 저작1에서 다른 여러 문제와 함께 이 열쇠로 꿈의 수수께끼도 풀었다. 이 이론대로라면 꿈 해석은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꿈에 담긴 재료는, 그날 밤 생물학적 주기 가운데 하나를 처음으로 또는 n번째로 채우는 모든 기억이 한데 겹친 결과로 설명될 테니 말이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해 준 말 때문에, 나는 그 자신도 이 이론을 더는 진지하게 내세울 생각이 없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이 결론은 잘못이었던 것 같다. 스보보다의 주장과 관련된 관찰 몇 가지를 다른 곳에서 보고하겠지만, 그 주장의 결론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뜻밖의 곳에서, 본질적인 면에서 내 견해와 완전히 일치하는 꿈에 대한 견해를 우연히 발견했을 때는 훨씬 더 기뻤다. 시기로 보아 이 견해가 내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문헌 가운데 내 꿈 이론의 본질과 일치한다고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례로 반겨야 한다. 내가 염두에 둔, 꿈에 관한 대목이 실린 책은 륑코이스의 『어느 현실주의자의 공상(Phantasien eines Realisten)』으로, 1900년에 제2판이 나왔다.

주

  1. 1. H. 스보보다, 『인간 유기체의 주기(Die Perioden des Menschlichen Organismus)』,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