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꿈은 왜 깨고 나면 잊히는가
꿈이 아침이면 「스러져 버린다」는 말은 속담처럼 굳어 있다. 물론 꿈은 기억해 낼 수 있다. 우리는 깨어난 뒤에 꿈을 떠올려야만 꿈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꿈을 불완전하게만 기억한다고, 밤에는 꿈이 더 있었다고 믿는 일이 무척 잦다. 아침까지만 해도 생생하던 꿈의 기억이 낮 동안 사라져 작은 조각 몇 개만 남는 것을 지켜볼 수도 있다. 꿈을 꾸었다는 것은 알지만 무슨 꿈이었는지는 모르는 일도 흔하다. 게다가 우리는 꿈이 잊히기 쉽다는 사실에 워낙 익숙해서, 아침에 꿈의 내용도, 꿈을 꾸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를 때조차 실은 꿈을 꾸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터무니없다고 물리치지 않는다. 반면에 꿈이 놀라울 만큼 끈질기게 기억에 남는 일도 있다. 나는 환자들과 함께 그들이 스물다섯 해도 더 전에 꾼 꿈을 분석해 볼 기회가 있었고, 나 자신도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서른일곱 해 전에 꾼 꿈 하나를 기억하는데, 그 꿈은 내 기억 속에서 신선함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며,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꿈의 망각을 가장 자세히 다룬 사람은 슈트륌펠[66]이다. 이 망각은 분명 복잡한 현상이다. 슈트륌펠이 그것을 한 가지 이유가 아니라 꽤 많은 이유로 설명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첫째로, 깨어 있을 때 망각을 일으키는 요인은 모두 꿈의 망각에도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깨어 있을 때 우리는 수많은 감각과 지각을 금세 잊곤 하는데, 그것들이 너무 약하고 거기에 실린 감정도 아주 적기 때문이다. 많은 꿈 영상도 마찬가지다. 너무 약해서 잊히고, 그 곁의 더 강한 영상은 기억된다. 그렇다고 강도라는 요인 하나만이 꿈 영상의 보존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슈트륌펠도, 다른 저자들(콜킨스)도 인정하듯, 생생했던 것으로 알려진 꿈 영상이 금세 잊히는 일이 잦은 반면, 기억에 남는 영상 가운데는 아주 흐릿하고 몽롱한 것이 많다. 또 깨어 있을 때 우리는 한 번만 일어난 일은 쉽게 잊고, 되풀이되는 일은 더 쉽게 기억해 두곤 한다. 그런데 꿈 영상은 대부분 한 번뿐인 체험이며,1 이 특성 역시 모든 꿈의 망각에 한몫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망각의 셋째 동기다. 감정, 표상, 생각 따위가 어느 정도 기억에 남으려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알맞은 종류의 결합과 연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짧은 시구의 낱말들을 가져다 뒤섞어 놓으면 그것을 기억하기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알맞은 순서로 잘 배열되어 있으면 한 낱말이 다른 낱말을 돕고, 전체가 하나의 뜻으로서 쉽고도 단단하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모순된 것은 대개 뒤죽박죽 흐트러진 것만큼이나 어렵게, 드물게만 간직된다.」 그런데 꿈에는 대부분 뜻도 질서도 없다. 꿈의 구성물은 그 본성상 기억될 수 없으며, 대개 바로 다음 순간 허물어져 버리기 때문에 잊힌다. 물론 이런 결론은, 우리가 가장 기이한 꿈을 가장 잘 기억한다는 라데슈토크[54]의 관찰(168쪽)과 온전히 들어맞지는 않는다.
슈트륌펠에 따르면, 꿈의 망각에는 이 밖에도 꿈과 깨어 있는 상태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요인들이 작용한다. 깨어 있는 의식이 꿈을 잘 잊는 것은 분명 앞서 말한 사실의 이면일 뿐이다. 곧 꿈은 깨어 있을 때의 기억을 순서대로 이어진 채 넘겨받는 일이 (거의) 없고, 그 기억의 몇몇 세부만을, 그것도 깨어 있을 때 그 기억이 떠오르던 익숙한 심리적 연관에서 뜯어내어 가져온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므로 꿈의 구성물은 정신을 채우고 있는 심리적 계열들 사이에 끼일 자리가 없다. 기억을 돕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꿈의 구조물은 말하자면 우리 정신생활의 토양에서 솟아올라, 하늘의 구름처럼 심리적 공간을 떠돌다가 다음 바람 한 줄기에 금세 흩어진다」(87쪽). 깨어나는 순간 밀려드는 감각 세계가 곧바로 주의를 사로잡고, 이 힘을 버텨 낼 수 있는 꿈 영상은 극히 적다는 사실도 여기에 한몫한다. 꿈 영상은 햇빛 앞의 별빛처럼, 깨어난 아침의 새 인상 앞에서 스러진다.
꿈의 망각을 돕는 마지막 요인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꿈에 대체로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한동안 꿈을 연구하며 꿈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대개 그 기간에 다른 어느 때보다 꿈을 많이 꾼다. 다시 말해 자기 꿈을 더 쉽게, 더 자주 기억한다.
보나텔리가 슈트륌펠의 이유에 덧붙인 꿈 망각의 다른 두 이유(베니니[3]가 전한다)는 실은 이미 그 안에 들어 있다. 곧 (1) 잠든 상태와 깨어 있는 상태 사이에 전신 감각이 바뀌는 탓에 두 상태가 서로를 재생하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2) 꿈에서는 표상 재료의 배열이 달라서, 말하자면 깨어 있는 의식으로는 꿈을 번역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슈트륌펠이 말하듯, 꿈을 잊게 하는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꿈이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그만큼 더 주목할 만하다. 저자들이 꿈의 기억에 관한 법칙을 세우려고 줄곧 애써 왔다는 것 자체가, 여기에도 수수께끼 같고 풀리지 않은 무언가가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최근에는 꿈의 기억에 관한 몇 가지 특이한 점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이를테면 아침에 잊혔다고 여긴 꿈이, 잊힌 꿈 내용을 우연히 건드리는 어떤 지각을 계기로 낮 동안에 다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라데슈토크[54], 티시에[68]). 꿈의 기억 전체에는, 비판적인 눈으로 보면 그 가치를 크게 떨어뜨릴 만한 반론이 따라붙는다. 꿈에서 그토록 많은 것을 빠뜨리는 우리의 기억이 남겨 둔 것마저 변조하지 않았는지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슈트륌펠은 이렇게 말하며 꿈 재현의 정확성에 대한 이런 의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능동적인 의식이 꿈을 회상하면서 저도 모르게 많은 것을 끼워 넣는 일이 쉽게 일어난다. 사람들은 실제 꿈에 들어 있지 않던 온갖 것을 꿈꾸었다고 여긴다.」
예센[36]은 아주 단호하게 말한다(547쪽). 「게다가 지금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한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질서 있고 논리적인 꿈을 조사하고 해석할 때, 우리는 꿈을 기억에 떠올리면서 거의 언제나 진실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자기도 모르게 빈틈을 메우고 꿈 영상을 보충한다. 앞뒤가 이어진 꿈이 기억 속에서 보이는 만큼 정말로 이어져 있었던 적은 드물고, 어쩌면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진실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고 꿈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모든 것을 연관 속에서 파악하려는 인간 정신의 경향은 워낙 강해서, 꿈이 조금이라도 앞뒤 없이 떠오르면 모자란 연관을 자기도 모르게 채워 넣는다.」
V. 에게르[20]의 관찰은 분명 독자적으로 얻은 것일 텐데도, 예센의 말을 거의 번역해 놓은 것처럼 들린다. 「…… L’observation des rêves a ses difficultés spéciales et le seul moyen d’éviter toute erreur en pareille matière est de confier au papier sans le moindre retard ce que l’on vient d’éprouver et de remarquer; sinon, l’oubli vient vite ou total ou partiel; l’oubli total est sans gravité; mais l’oubli partiel est perfide; car si l’on se met ensuite à raconter ce que l’on n’a pas oublié, on est exposé à compléter par imagination les fragments incohérents et disjoints fourni par la mémoire ……; on devient artiste à son insu, et le récit, périodiquement répété s’impose à la créance de son auteur, qui, de bonne foi, le présente comme un fait authentique, dûment établi selon les bonnes méthodes…….」〔……꿈을 관찰하는 데에는 특유의 어려움이 있다. 이런 문제에서 모든 오류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방금 겪고 알아챈 것을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종이에 적어 두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망각이 금세 찾아온다. 완전한 망각일 수도 있고 부분적인 망각일 수도 있다. 완전한 망각은 대수롭지 않다. 그러나 부분적인 망각은 음험하다. 나중에 잊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기억이 건네준 앞뒤 맞지 않고 서로 동떨어진 조각들을 상상으로 메우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사람은 저도 모르게 예술가가 되고, 이따금 되풀이되는 이야기는 이야기한 사람 자신의 믿음마저 사로잡는다. 그는 선의로, 그것을 올바른 방법에 따라 제대로 확인된 진짜 사실인 양 내놓는다…….〕
슈피타[64]도 비슷하다. 그는 느슨하게 이어져 있는 꿈 요소들을 우리가 정돈하는 것은 꿈을 재현하려 할 때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것은 「연관 없는 것에서 연관을 만드는 일, 곧 꿈에는 없는 논리적 결합의 과정을 덧붙이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 기억의 신뢰성을 가늠할 객관적 통제 수단이 지금으로서는 달리 없고, 우리 자신의 체험이며 기억만이 유일한 원천인 꿈을 검토할 때에는 그런 통제가 애초에 불가능하므로, 꿈에 대한 우리의 회상에 과연 어떤 가치를 둘 수 있는지는 여전히 물음으로 남는다.
주
1.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꿈이 거듭 관찰되었다. 샤바네[11]의 모음집 참조.